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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파프의 警告(林春雄 칼럼)

    지난 5월,인도네시아 사태가 한창일 때다.뉴욕타임스 지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는 현대 자본주의가 잘못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에 대한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 칼럼에서 인도네시아 사태는 바로 ‘무정부적 자본주의’가 한 나라,나아가 국제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준 실례라고 주장했다. 수하르토 일가의 족벌체제가 30여년이나 지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권력자들은 국가개발이란 이름아래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외국투자가들에 협력의 대가로 돈을 챙겨 부자가 된다.이들 권력자는 더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더 많은 외국자본을 유치하게 되고 그들은 그 부(富)를 토대로 나라의 부를 독점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다. 외국자본과 국내의 권력이 결탁해 한 나라의 부를 종횡(縱橫)하는 무절제하고 탐욕적인 이런 자본주의를 그는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돈놓고 돈먹기 식이라는 얘기다.그는 이런 나라들에서 IMF의 보호아래 무한대의 부를 챙기는 국제적 투자가들에게도 엄중히경고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아래 돈놓고 돈먹기식 ‘카지노 자본주의’가 한 사회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것은 비단 인도네시아의 경우만이 아니다.우리는 이러한 예를 아시아와 남미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수없이 보아왔다.금세기 초 미국에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을때 자본주의의 교사 존 M.케인스도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가져올 도덕적 허무주의에 대해 깊이 우려한 바 있다. 파프는 미국의 세계화 정책에도 경종을 울린다.비교적 진보적이라 할수 있는 민주당 정권인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관리에서부터 보수적 공화당정권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대 정책담당자들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당연히 민주주의를 촉진시키고 세계의 번영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이다.그는 세계화된 시장자본주의가 영향력 측면에서만 보자면 레닌주의보다도 훨씬 급진적이며 혁명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역사상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던 전쟁이나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핵무기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그는 경고한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라 할수 있는 IMF체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상반된 시각이 함께하고 있다.아직은 어느것이 옳은지 판정이 나지 않은 시점이다.다소 편협한 일면이 없지 않지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 같은 이는 지금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해 매우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마하티르 총리는 동아시아의 위기가 아시아의 도전(挑戰)을 잠재우고 세계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서구자본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는 이들 서구의 탐욕적 자본에 맞서 동아시아의 발전 모델과 아시아적 가치를 고수해야 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IMF체제에 대해서는 그 도덕성이란 점에서 세계자본의 중심인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서까지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이란 본시 이윤을 찾아서는 무슨 일이든 해내는 야만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규제되지 않는 자본의 세계화는 결국 인류의 재앙(災殃)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적절히 규제되고 있는지,IMF에는 응분의 대처를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 문화재 수난/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사방 어디를 쳐다보아도 고층아파트와 상가건물만이 즐비한 지역에 저렇게 곱고 연한 자연의 곡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서울 사람들의 천복이다’이것은 미술평론가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방이동 몽촌토성을 보고 쓴 글이다.몽촌토성은 백제의 토성으로 전해져왔으나 토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채 망실된 백제의 역사만큼이나 무관심속에 팽개쳐 왔었다. 그러다가 지난 84년,이 지역이 88올림픽을 위한 체육시설 건립지역으로 확정되자 서울시와 문화제관리국이 유적공원을 조성하게 되었고 이 토성으로 인해 그 일대에 푸르른 녹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부지방을 강타한 기습폭우로 서울 덕수궁 함녕전 서까래와 창덕궁의 담장 일부가 훼손되고 몽촌토성·풍납토성 등 각종 지방 유적이 파손되거나 유실되는 등 수해의 상처가 이어지고 있다.이번 폭우에 파손된 문화유적만 46건에 피해액만도 15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긴급 보수반이 출동하여 능이나 토성을 비닐로 덮고 물길을 트는 등 응급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평소의 엉성한 관리체제를 졸지에 드러낸 셈이다. 비 한번에 수백년을 견딘 서까래나 담장이 무너진다면 그 나라의 문화보존 수준이 얼마나 허술한 가를 짐작케하는 일이다.사고가 난후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은 무의미하다.비가 오기 전에 철저한 방수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한 나라가 지닌 문화재에서 민족정신과 슬기와 문화의 차원을 점칠 수 있다.문화재란 이미 사라진 역사를 되찾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증거물이다.멸망한 비운의 나라라는 생각만 앞세웠던 백제가 토성하나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만 봐도 문화재의 위대성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살펴보면 어느 곳에서나 쉽사리 선조들의 삶의 자취를 찾아낼 수 있다. 역사의 무게는 깊고 값진 것이기에 한순간의 재해로 보물들을 마모시키거나 훼손시킨다면 커다란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라는 생각으로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관심을 일상적으로 인식해야 한다.수백년 풍상을 의연하게 버틴 선조들의 얼과 멋을 투철하게지켜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 수재 복구 젊은이들 나서라(사설)

    지리산에 이어 서울·경기·충청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보아야 할지 망연자실해 있다. 그들의 좌절감과 상실감은 우리에게 또다른 아픔을 준다.9일 집중호우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치자 수재민들은 실의를 딛고 복구작업에 비지땀을 흘렸으나 10일 또다시 비가 내리거나 여전히 100㎜ 이상의 호우전선이 중남부에 걸쳐 있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행히도 많은 국민이 수재민돕기에 적극 나서 인명·재산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주고 있다.수재민돕기 모금운동을 통해 고사리손의 돼지저금통이 고스란히 전달되는가 하면 70할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처음 당한 폭우라면서 손수 수레를 끌며 수재 복구작업에 나서는 모습은 역시 우리의 이웃사랑과 공동체의식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육군이 10만명 이상의 병력과 장비를 투입해 도로 철도 전기 통신 등 기간시설 복구 및 대민 지원활동에 나섰다.육군은 지난 7일 경기도 송추 계곡 집중호우때부터 지원활동에 나섰으며,10일부터는 이같이 병력을 대거 투입해 주요 침수지역의 물빼기 작업과 유실된 도로 및 제방복구,도로 청소작업을 펼치고 있다. 군에 입대한 우리의 아들들과 같은 세대인 대학생등 젊은이들도 하기방학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수재복구에 적극 나서기를 당부한다.수재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3D(어렵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를 체험하고 ‘관념적 애국’이 아니라 ‘실제적 애국’이 무엇인지,노동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의 부모세대들은 60∼70년대 황야와 같은 벌판에 공장을 세우고,중동의 모랫바람을 온몸으로 마시며 달러를 벌어들여와 경제화·산업화를 일구어 냈다.개발시대에 열정을 퍼부으면서 부패구조의 낡은 병폐를 확대재생산한 경우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아버지 세대들은 그동안 이 나라 경제발전의 중심축이 되었던 것이다.이 점을 수재지역을 찾아 경험해보라고 권한다. 오늘의 IMF체제가 온 것은 젊은 세대들이 3D를 기피,외면한 데도 큰 원인이 있다.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며 또 쉽게 세상을 살려고 하는 반면,어렵고 괴로운 일엔 애당초 접근하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IMF체제를 불러온 이유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젊은이들의 수해복구 참여는 아버지 세대들의 에너지원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하며 국가관을 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아울러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내는 국민적 저력을 후계세대들도 갖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이와함께 정부는 150만명 이상의 실업자들을 수재지역 복구에 투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를 바란다.
  • 베이비시터/주부 부업으로 인기

    ◎바쁜 엄마대신 아이와 놀아주고 공부 봐주기/시간당 3,000∼4,000원 수입 어린이를 시간제로 맡아 돌보아주는 베이비시터가 주부의 새 부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아이를 예뻐하고 건강하기만 하면 나이·학력에 큰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취미·사회활동에 나서는 추세여서 그 수요는 갈수록 증가할 전망이다. 베이비시터가 하는 일은 아이 숙제 봐주기,함께 놀아주기,학원에 데리고 오가기 등 아이에 관련된 것일 뿐 파출부처럼 집안 일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 시간당 3,000∼4,000원을 받으며 한집에 정기적으로 나가게 되면 수입이 한달에 70만∼80만원에 이른다. 3년째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김금자씨(46)는 강남의 한 아파트로 상오 9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5살바기 어린이와 놀아주다 하오 6시면 퇴근한다. 김씨는 “애를 둘 키워봐서 어려운 점은 없고 다만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금 맡은 아이와 1년7개월이나 생활하면서 정이 깊이 들어장차 헤어질 일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나 전문업체를 통해 베이비시터 일자리를 얻으려면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베이비시터 교육을 시키는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여성신문 교육문화원(512­3301∼3)이 있다. 서울YWCA·주부클럽연합회·성동YWCA 등에서는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쯤으로 일정을 잡아놓았다. 교육문화원의 ‘영·유아관리사’교육과정은 주2회,넉달동안 진행하며 신생아 돌보기,이유식 만들기,영양관리,응급처치 등을 가르친다. 수강료는 15만원. 수강 자격은 중졸이상의 20∼50대 여성이며,미혼도 가능하다. 문화원 이찬영 간사는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서 “다만 전염성 질병을 가졌거나 사투리가 심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제외시킨다”고 밝혔다. 한편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려는 부모는 교육문화원이나 베이비시터 파견업체에 연락하면 된다. 파견업체로는 지난 96년 설립한 ‘아이들 세상’(567­9494)과 최근 문을 연 ‘사랑방 아이들’(430­0119)등이 있다. ‘아이들 세상’은 서울말고도 광명 분당 일산 의정부 오산 부천 인천 포항 수원 평택 대전 울산 대구 등지에 체인점이 있어 이용이 가능하다.
  • 아파트 분양권 전매,이젠 투기가 아닙니다

    ◎중도금 2차례 내면 명의까지 이전 가능/어떻게 팔고 어떻게 사나/세금혜택은­매입자 취득세 등 이중부담 없어 양도세도 투기성 아닌 거래 적용/조심할점은­매도자 연체 등 금융기관 확인.건설社에 분양권 가압류 등 문의/미등기전매와 다른점­잔금 지급 이전에 명의양도 가능.두번 등기따른 매입자 손해 줄어 오는 20일부터는 아파트 분양권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투기행위로 간주해 온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허용키로 한것은 주택경기가 극심한 불황에 빠진데다 중도금을 내지 못하는 당첨자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분양권 전매와 미등기 전매는 어떻게 다르나=분양권 전매는 잔금 지급전에 양도하는 것이고,미등기 전매는 잔금 지급 후 등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권을 사고 파는 행위를 말한다. 분양권 전매 허용 방침에 따라 이달 20일부터 수도권지역 일반 분양아파트는 중도금을 2회 이상 납부한 뒤부터,수도권 이외지역은 분양계약과 동시에 바로 분양권을 매매할 수 있다. 건설교통부는 재건축 및 직장·지역조합아파트도 일반 분양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분양권 전매를 허용할 방침이다.지금까지는 사업승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분양권 매매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분양권 전매는 어떤 점이 유리한가=우선 합법적으로 분양권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점이다.중도금을 치르지 못해 연체금이 쌓이거나 위약금을 물고 해약해야 할 위기에 놓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분양권을 타인에게 넘길 수 있다.또 기존의 불법적인 분양권 전매의 경우 당첨자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 명의 이전 후에는 사는 사람 이름으로 다시 등기를 해야 했다.때문에 총 분양대금의 5%에 이르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이중으로 부담했다.그러나 이번 조치로 나중에 분양권을 떠안는 사람만 취득·등록세를 물면 된다. 양도소득세 세율도 미등기 전매와 큰 차이가 난다. 미등기 전매는 투기성 거래로 보아 보유기간에 상관없이 75%가 적용된다. 반면 분양권 전매는 일반 부동산 양도세와 같은 세율을 적용받는다.아파트 보유기간이 2년 미만인 상태에서 분양권을 팔면 50%,2년 이상인 상태에서 팔면 30∼50%의 세율이 적용된다. ◇유의할 점은 없나=우선 금융기관을 찾아가 매도자의 대출금액과 연체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분양권에 가압류나 가처분이 되어 있는지도 건설회사에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매도자의 채무관계에 따라 소유권 제한조치가 취해져 있으면 명의변경 자체가 불가능하다. 매매계약은 분양권 소유주와 직접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리인과 계약 체결시에는 분양권 소유주의 위임장을 꼭 받아 둬야 한다. ◇준공검사 후 잔금을 치르지 않은 사람도 아파트를 팔면 분양권 전매에 해당되는가=잔금을 치른 시점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국세청의 유권해석이다.준공검사를 받았어도 잔금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소유권이 아닌 부동산을 취득할 권리가 있으므로 분양권 전매에 해당된다는 것이다.부동산중개업계도 이같은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준공검사일 이후 잔금을 내지 않은 것은 등기를 회피하는 행위인 만큼 명백한 미등기 전매로 봐야 옳다는 의견도 있다.
  • 가이아의 복수/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가이아의 복수일까.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전국에 엄청난 물난리가 이어지고 있다. 가이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大地)의 여신이다.지구의 생물을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는 자비로운 신이다.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살아 있는 지구’의 개념을 ‘가이아’로 표현했다.지구는 그 자체가 거대한 생명체로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생존에 가장 좋은 조건을 유지해 주기 위해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서로 연계하여 지구환경­토양,해양,그리고 대기까지도­을 시시 각각으로 변화시켜 전체 생물권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이론이다. 지난 79년 이 이론을 담은 책 ‘가이아’가 발간됐을때 많은 과학자들은 코웃음쳤지만 이제는 신과학 운동의 중요한 업적으로 가이아 이론이 꼽힌다. 또 환경론자들 가운데는 끝없는 발전과 개발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해 인간에 대한 ‘가이아의 복수’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는 가이아의 복수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난 2월과 5월 지진으로 9,500여명이 사망했고 파푸아뉴기니에서는 7월에 지진과 해일로 8,00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살인더위로 113명이,인도에서는 홍수로 1,100여며이 사망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등 중부유럽에서도 폭우로 1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양쯔강을 범람시킨 중국의 홍수는 2,000여명의 사망자와 2억여명의 이재민을 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4월이래 엘니뇨 현상으로 세계 41개국이 홍수피해를,22개국이 가뭄,2개국이 대규모 삼림화재를 당했다고 밝힌것만 보아도 기상이변은 전지구적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지난해부터 올해 폭풍·홍수·가뭄등 최악의 재해가 일어날 것을 예고했고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4월 엘니뇨와 쌍둥이인 라니냐에 의한 아시아 지역의 폭우를 경고한 바 있다.가이아의 복수는 허황한 이야기가 아닌셈이다. 러브록은 “지상에는 오직 한 종류의 오염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다”고 말했다.인간이 더이상 생태계를 오염시키지 않아야 가이아의 복수를 피할수 있을 듯싶다.
  • 수해 복구에 온 국민 나서자(사설)

    지리산에 이어 서울과 경기북부지역이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200여명의 고귀한 인명을 잃었고 1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재산피해가 추산되고 있다.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수많은 이재민들의 모습이 참담하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있는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고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모두가 나서 재난을 수습하고 피해를 복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온국민이 정성과 온정으로 수재민의 상처와 아픔을 씻어주고 하루 빨리 재기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재민의 구호가 우선 시급하다. 집과 논밭이 물에 잠기고 생활수단까지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갈수 있도록 지원해야하고 생활터전을 되찾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한다. 수해에 뒤따르는 수인성 전염병과 피부염등을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방역과 보건대책도 필요하다. 이재민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금은 신속하게 집행되어 이재민들의 재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것이다. 끊어지고 막힌 도로와 철도,통신시설의 복구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침수된 농작물에 대한 병충해 방제와 사후관리로 감수(減收)에도 대비해야 한다. 엄청난 수재의 복구에는 정부의 재해대책비나 행정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군의 유휴인력이나 쉬고있는 민간 장비등의 지원을 비롯, 모든 능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의 따뜻한 동포애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다만 과거에 종종 보아왔던 ‘높은 분’들의 너무 잦은 현장시찰등 이재민들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성가시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여름 휴가철이긴 하지만 이재민들의 아픔을 더하게 하는 무분별한 행동들도 당분간 자제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수재복구 노력과 함께 앞으로 이런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상예보체제를 비롯한 종합적이고도 효율적인 재난대책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이번 물난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를 비롯한 기상관계기관들이 엘니뇨의 영향으로 동남아등지의 홍수위험을 여러차례 경고했었고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의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웃인 중국의 양쯔강 일대가 엄청난 물난리를 겪고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비가 소홀했었고 기상예보마저 번번이 빗나가기만 했다. 같은 비구름대가 지나간 일본 니가타현이 기민한 예보와 조직적인 대피로 피해를 최소화한 것과 좋은 대비가 되고 있다. 겉만 요란하고 속은 없는 재난대책으로 큰 피해를 당하고서야 허둥대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것이다.
  • 대출금리 담합은행 제재

    ◎공정위 “인하폭 주시… 협의잡히면 본격조사” 은행들이 담합해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거나 또는 일정한 비율을 정해 소폭으로 인하할 경우 부당한 공동행위로 간주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된다. 공정위는 6일 최근 은행들이 수신금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면서 담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앞으로의 금리인하 움직임을 정밀분석,담합 혐의가 잡히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거의 모든 은행이 현재의 높은 대출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또는 일정한 비율로 같이 인하할 경우 일단 담합으로 간주, 조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또 금리인하 폭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다른 정황으로 보아 담합했을 소지가 있을 경우에도 조사를 하게 된다.
  • 속좁은 거대 야당/吳豊淵 정치팀 차장(오늘의 눈)

    3일 국회의장 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휘청거리고 있다. 마치 거대한 공룡(恐龍)이 추락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오는 31일 전당대회 때까지 당 운영이 제대로 될지 걱정된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형국이다.야당의 전유물로 인식된 ‘등원 거부’ 카드가 힘을 얻고 있어 당분간 국회가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등원은 지난 달 여야 총무단 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이다.그럼에도 국회의장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약속을 깨는 것은 공당(公黨)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4일 의총에 앞서 열린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는 “크게 보자”며 등원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선거 참패가 등원 거부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게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의총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20여명이 차례로 나서 당지도부와 표 이탈자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등원 여부에 대해서는 강경파의 가세로 거부쪽이 다소 우세했다.趙淳 총재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최대 공약수를 도출해 내겠다고만 언급했다. 등원 거부에 대해서는 국민의 여론도 냉소적이다.당리당략(黨利黨略)에 의한 등원 거부를 수없이 보아왔고,진저리가 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원내 의석 299석 중 과반수를 넘어 151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다.모든 것을 표로 결정하는 의회민주주의에서 ‘주도권’은 이미 쥐고 있는 셈이다.그렇다면 장외(場外)투쟁은 필요없지 않은가.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상임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고,법안도 당 소속 의원만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원내로 들어와야 한다.그래야만 당이 추스려지고,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비록 대선에서 져 정국 주도권을 빼앗겼지만,원내에서는 ‘큰형’노릇을 해야 한다.이처럼 건전야당·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줘야 4년 뒤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글과 아래아한글/서해성 소설가(굄돌)

    그리하여,아래아한글은 살아났다. 어쩌다 한글에 대해 말이 오갈라치면,양말로 이 말짱한 사이버시대에 세종에 버금가는 몫을 하고 있다고 조금 과찬해서 떠들어대기를 주저하지 않아 온 사람인지라,이즈음 아래아한글이라는 한 무른모의 운명을 대하면서 깜냥껏 희비가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딴은 그만한 내력이 있는 터였다. 우리말글살이가 걸어온 길이나 당찮게도 영어로 살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에 비춰보건대,세종 운운하는 게 그저 시정잡배의 흰소리만은 아닐 게다. 우선 등 따시고 배부르고 돈 많은 사람들이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더구나 그게 어느 특정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이 땅에서 가장 널리,늘 쓰는 우리의 영혼을 나타내는 ‘무른 물건’이라니. 천민성이 판을 쳐오고 있는 남한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이건 거의 엽기적인 일이라 해도 좋다. 다른 하나는 그 아래아한글이 제국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갈 뻔했던 것을 소비자운동을 통해 지켜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는 일찍이 일제 아래서 벌인 우리말지키기 싸움과도 진배없는,슬프고도 자랑스런 일이다. 여기서 한번 되짚어보아야 할 대목은,우연이겠지만 한글을 만든 사람들이 자본의 옷을 입고 여기저기 어설픈 투자를 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하면서 한글이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한쪽에 마구잡이 베껴쓰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태종이 마무리한 권력의 중앙집권화에 이어 문화적으로 구체제와의 완전한 결별을 뜻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인에게 힘입어 되살아난 우리의 무른모 한글이 보란 듯이 이번에 ‘구체제’와 갈라서 다시금 초발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어쩌면 이게 한글과 한글이 지닌 운명이 아닐까. ‘불온한’ 음지의 소비자들 또한 마구잡이 베껴쓰기가 결국 우리말글살이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거듭 새겨두었으면 한다.
  • 대기업 무역금융/혀용해야 아직 안돼/재경부­재계 등 시각차

    ◎전경련­5월부터 수출 감소… 경기부양에 필요/재경부­“통화증발·기업구조조정 찬물” 반대 수출이 추락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재계는 “적어도 6대 이하의 30대 그룹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의 무역금융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재정경제부나 한은,금감위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달 31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자원부에서 열린 수출진흥대책회의에서 대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허용을 강도높게 촉구했다.전경련측은 “중소기업의 수출이 조금이나마 늘고 있는 데 비해 대기업의 수출은 5월 이후 급락하고 있다”며 무역금융 허용을 호소했다.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이 우리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또 중소기업의 60% 이상이 대기업과 수급관계에 있다”면서 “대기업을 지원하지 않고는 수출촉진이나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 모두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정부부처 가운데는 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산업자원부가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나 금감위가 이문제를 보는 각도는 산자부나 재계와 다르다.무역금융을 허용하면 통화증발의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이 돈이 부실계열사를 살리는 데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보조금 지원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도 어긋난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재계는 ‘대기업이 죽으면 모두가 죽는다’며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고 있다.“금융경색이 심화돼 우량 수출업체마저 쓰러지고 나면 구조조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WTO협정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재계는 “이미 무역금융은 보조금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이 지난해 내려졌다”고 일축한다. 대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허용 여부는 크게 보아 ‘긴축이냐 부양이냐’는 정책 기조와도 연결된다.산자부나 재계는 내심 하반기 경제운영 방향이 적정규모의 경기부양 쪽으로 가닥이 잡힌 만큼 대기업 무역금융도 허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산자부는 4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수출업계의 이같은 의견을 적극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 “성추문 회오리 벗어나자”/클린턴 양동작전

    ◎비디오 증언 CCTV 중계로 온갖 풍문 차단/美·日 정상회담 등으로 국내외 지지 높이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성추문 회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이다. 국민의 지지도를 유심히 지켜 보아온 클린턴이 한편으로는 정면 돌파작전으로 성추문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다른 쪽로는 적극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끌어 올리는 양동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17일 백악관에서 하기로 했던 연방 대배심에 대해 증언이 예정대로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 폐쇄회로 TV로도 생중계되도록 했다. 증언이 진행되는 동안 연방 지법 배심원들은 검사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이다. 클린턴은 이와 함께 기자들과 만나 17일의 증언에서 ‘정직하게 대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미국 국민들에 대해 모든 것으로 이실직고하여 더이상의 갖가지 풍문을 차단시키고 나아가 양해를 얻어 내겠다는 적극적인 전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최근 뉴스위크지의 여론조사 등에서 보여주듯 성추문이나 위증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탄핵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0%을 웃돌 만큼 압도적이라는 데서 자신감을 얻은 듯 보인다. 클린턴의 정면 돌파의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의 ‘방어작전’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이미지 제고작전을 마련했다. 때마침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전화를 걸어 오자 즉석에서 정상회담을 제의해 약속을 받아냈다. 오부치 총리가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9월21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막연히 예정되어 있던 정상회담의 날짜를 확정한 데 이어 일본을 비롯한 최근 아시아 경제위기를 논의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민의 지지여론을 등에 업고 클린턴이 시도하는 성추문 벗어나기 양동작전은 시작부터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 위증 논란 클린턴 탄핵될까

    ◎“르윈스키 증언해도 문제 없을것” 대변인 발표/性관계 개념 법적 해석 따라 교묘히 피해갈수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과 관련,성관계(sexual relationship)의 의미와 의회의 탄핵절차 추진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클린턴 성추문의 다른 쪽 당사자인 모니카 르윈스키(25)는 이른바 ‘성관계’를 시인했다. 클린턴이 미국 사회에서는 강력한 규탄 대상이 되는 거짓말 즉 위증을 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대목이다. 클린턴은 폴라 존스 성희롱 사건과 TV에 출연해 ‘성관계’를 전면 부인했었던 터다. 그러나 백악관의 반응은 여유롭기만 했다. 매커리 대변인은 28일 “르윈스키가 그녀의 변호사에게 밝힌 것처럼 완전하고도 진실된 증언을 한다면 명백히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TV 회견에서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단언하면서 오럴섹스는 성관계가 아니라고 말한 대목이 의아심을 풀어 주는 대목이다. 클린턴은 ‘성관계’에 오럴섹스를 포함시키지 않는 것같다.그리고 클린턴의 여성편력 행태와 발언 등으로 보아 르윈스키와는 오럴섹스에 그쳤을 가능성을 높다. 르윈스키가 시인한 성관계를 스타검사측이 해석하는 것과 클린턴 대통령측 개념과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도 클린턴 대통령이 성희롱사건 증언에서 부인한 ‘성관계’가 오럴섹스나 폰섹스,농도짙은 애무 등도 포함하는 것인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클린턴의 이같은 주장이 법정에서 일단은 수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클린턴은 또 한차례 법망을 교묘히 빠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국민적 여론에 따른 정치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민의 절반가량이 클린턴이 위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하원과 상원의 투표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성추문 사건을 수사중인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수사를 종결,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검토되게 돼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은 한동안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 北間島 개척(秘錄 南柯夢:19)

    ◎“간도 개간해 영유권 회복” 은밀히 제의/관직 물러난 심선택,부국강병책으로 진언/고종,“뜻은 거창하나 재정연구뒤 착수” 지시/심,“삼도 어사삼으면 수령출척 충당” 아뢰니 “흉년에 민폐 끼칠라…” 물리치자 없던 일로 두만강 건너 이북의 땅을 북간도(北間島)라 한다. 지금 연변 조선족이 사는 곳이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그리고 발해의 옛 강역이었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그토록 귀한 땅이 대륙의 이민족에게 넘어간 것은 고려때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 간도땅을 차지한 민족을 만주족,일명 여진족이라 하는데 여진족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워 중원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민족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사학자 가운데는 여진족이 이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금과 청의 역사를 중국사에서 떼어내 한국사의 일부로 끌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만일 계속 간도땅을 영유하고 있었다면 약소국의 설움을 맛보지도 않았을 것이요,일제로부터 침략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렇게 중요한 간도에 고종황제가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느날 심선택(沈善澤)이 나(정환덕)를 찾아왔다. 이 사람은 전 동부승지 의평(宜平)의 아들이다. 지난해 엄귀인(嚴貴人:엄비)의 여동생에게 장가들어 외척이 되더니 그 인연으로 성주목사(星州牧使)자리를 얻어 나갔다. 그러나 겨우 일년이 지나 어머니 상(喪)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상를 마친 뒤 아무 직업도 없이 있다가 드디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매우 좋은 일이 있소이다. 영감께서 황상께 아뢰어 꼭 성취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요,창업공신과도 맞먹는 일이니 생각이 어떠하십니까”라는 것이었다. 심선택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것은 북간도 개척문제였다. 그래서 정환덕은 “순서대로 조용히 말씀해보시오”라고 말했다. “북간도는 원래는 조선 땅으로 사방이 4천리나 됩니다. 남이(南怡) 장군이 당시에 백두산의 북쪽인 중국 동부지역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여기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보면 그 지역이텅비어 있고 관할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곳에 공사관(公使館)이나 영사관(領事館)을 설치해 중국과 조선이 서로 무역을 하고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 부국강병책이 스스로 그 안에 있을 것입니다. 영감께서는 이 사업을 각별히 힘써서 주선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북간도의 지도 한장과 북간도에 관한 사실을 조사한 서류 한 점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세종때 남이장군이 세웠다는 백두산정계비는 백두산보다 훨씬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목격자도 많은데 일제가 폭파했다는 설이 있다. 그뒤 18세기초에 다시 청나라가 강요하여 정계비를 백두산 남쪽에 새로 세우게 되어 백두산 천지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문제된 강이 토문강인데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하고 우리는 두만강이 아니라 해란강이라고 주장했다. 심선택은 이같이 간도땅의 역사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종에게 건의하여 간도땅을 되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그런데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은 거창한데 재정이 어려워 섣불리 착수할 수가 없다. 아직은 보류하고 재정을 연구한 뒤 착수하기로 하자”고 분부하셨다. 그래서 심선택에게 상감의 교시가 이와같다는 뜻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상감의 교시가 비록 그와같다 해도 좋은 방도가 있으니 상감께서 우리일가 심상훈(沈相薰)을 불러 “북간도의 일을 심선택과 상의하여 보라고 처분을 내리시면 방도가 나올 것이니 다시 그렇게 아뢰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궐에 들어가 다시 아뢰었더니 상감께서 심상훈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북간도 일은 심선택과 함께 상의해 처리하라”고 교시하시었다. 심상훈은 대한제국의 공신으로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심선택이 심상훈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선택의 말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심상훈이 심선택에게 “상감께서 북간도 일을 어른(심선택)과 상의해보라는 교시를 내리셨는데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감께서 잘 여쭈시어 나를 북쪽 삼도(三島) 어사(御史)로 삼아 옛 식대로 마패(馬牌)를 가지고 현지 수령들을 출척(黜陟)하는 권한을 갖게 해주신다면 일년도 되기 전에 쉽사리 몇천만원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북간도에 들어가 시설을 하면 재정의 부족은 근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찌 국고(國庫)의 돈으로써 경비를 낭비하는 일이 있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농민들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는 많이 이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경을 딛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청나라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와 의복을 지켰다. 청나라의 관리들은 한국농민들에게 머리를 깎고 청나라 옷으로 갈아입으면 토지소유권을 준다고 유혹하였으나 백의민족으로서 긍지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범윤(李範允)을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임명,파견하였다. 이 때문에 심상훈과 심선택은 의견충돌이 일어나 각자 화를 내고 헤어졌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심선택은 국가의 일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탄한들 어찌하겠는가. 그 뒤 심상훈이나를 찾아와 “북간도의 일은 다시 여쭈지 말라”고 단단히 요청하였다. 그리고 심상훈이 황상께 입대해서 아뢰기를 “신(臣)이 저의 일가 심선택의 말을 들어보니 북쪽 삼도(三島)백성의 재산을 거두어서 북간도를 개척하자고 하기 때문에 ‘민간의 재정이 고갈돼 있고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한데 이러한 때를 당해 저같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일이 성취되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니 서로 관계하고 싶지않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 황송한 마음은 모두 여쭈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심선택이 나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저 일가 사람 심상훈이 나의 말을 믿지 않고 이와같이 반대하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기를 “상감께서 처음부터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이요,심상훈이 반대한 것이 아니니 차차 일의 형편을 보아가며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심선택은 물러가고 말았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했듯간도도 우리땅이었다. 우리 농민들이 개척한 땅이어서 이름을 간도(墾島)라 불렀던 것인데 일제가 ‘사이 간’자로 바꿔 간도(間島)라 명명했고 1909년에 마침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땅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 잠재적인 신창원/최은순 변호사(굄돌)

    탈옥수 신창원이 화제거리가 돼 그의 탈옥이전 죄명과 10∼20대 생활이 궁금하여 관련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그가 어른이 돼 갑자기 강도치사 행위를 하고 현재의 탈옥수 신창원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를 중퇴,그후부터 7년 사이에 네번이나 소년원과 교도소에 수감됐다. 현재까지 탈옥기간을 합쳐 3년이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올해 국선변호 활동을 하는 내게 배당되는 사건은 대부분 청소년 건이다. 환각물질 흡입,떼지어 다니면서 또래아이들을 공갈·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행위,절도·폭력 등이 이들의 범죄행위다. 그런데 이들 중 열에 여덟 정도는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자녀이고 학교를 중퇴한 이력을 가졌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은 주로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닌다. 그중에 몇은 용돈을 벌려고 주유소나 음식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중학교 무렵부터 반복해서 소년원이나 구치소를 들락거리게 되고,갈수록 형은 늘어난다. 신창원의 이력과 너무나 비슷하다. 법정에서마주치는 많은 청소년들을 보면서 이들이 잘못하면 ‘신창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신창원 사건을 그 도주생활,경찰과의 숨바꼭질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신창원에서 현재의 탈옥수 신창원까지 이력을 밟아보아야 할 것 같다. 청소년범죄가 날로 늘어가고 형사처벌만으로는 그 뾰족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에서 한 어린 소년이 어떻게 해서 탈옥수인 성인으로 자라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법정에서 마주치는 많은 ‘잠재적인 신창원’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단서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이혼때 재산분할 양도세 부과부당”/국세청 판정

    ◎재산공동형성 인정 지방세 과세 무효로 증여세는 물어야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의 경우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국세청은 27일 “이혼한 자의 한쪽이 민법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재산분할을 청구받아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는 경우 양도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이번 판정은 이혼한 처에게 가정법원의 화해조서에 따라 소유 건물을 넘겨주자 금년 초 관할 지방국세청으로부터 1억5천만원의 양도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은 金모씨(52)가 이에 불복,심사청구를 낸데 따른 것이다. 金씨는 심사청구에서 “쌍방의 화해에 따라 재산분할을 위해 갖고 있던 부동산의 절반을 처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준 것이므로 양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관할청은 부동산을 처와의 이혼에 따른 사실상의 위자료로 대물 변제한 것으로 보아 양도세를 과세한 것은 정당하다고 맞섰다. 국세청은 결론적으로 “민법상 재산분할 청구권은 이혼한 자의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와 기타 사정을 참작해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이같은 부부 공동재산에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다만 배우자 공제액 상당액을 초과하는 재산가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이혼시 재산분할로 2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받은 경우 증여세 배우자 공제액이 15억원이라면 5억원어치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부과된다는 것이다.
  • 한·러 관계 빨리 정상화돼야(사설)

    외교관 맞추방으로 틀어진 한·러관계의 정상화가 기대됐던 양국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돼 두나라 관계의 경색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趙成禹 참사관의 추방에 아브람킨참사관의 추방으로 맞대응하면서 빚어졌던 양국간의 긴장사태는 더 이상의 확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우리측 정보관계외교관 5명 추가철수요구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조기에 수습되는 듯했다. 양국 외무장관의 마닐라회담은 이번 사태의 마무리단계로 한때 불편했던 관계를 복원하고 양국 정상회담 및 정상들의 상호방문등 두나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다지는 방안들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실무협의까지 마친 상황에서 러시아 외무장관이 아브람킨참사관의 재부임과 유사한 사태의 재발방지등을 요구하면서 두나라 장관간에 책임공방만 되풀이하다 회담을 끝냈다는 소식은 앞으로의 두나라 관계를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이미 양해가 된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까지 긴장사태를 지속하려 하는의도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않을 수 없다. 수교이후 한국쪽으로 기울어졌던 외교정책을 ‘남북한 등거리외교’로 바꾸어 남북한에 고루 영향력을 높이려 한다는 추측에서부터, 4자회담에서 소외된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든가, 무기구매를 위한 외교적압력일 것이라는 등의 갖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와 정보기관간의 단순한 마찰이라는 설까지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사태추이로 보아 러시아의 의도가 우리측이 가볍게 대응하거나 쉽게 수용할 수준 이상일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의도야 무엇이든 이번 사태의 발단에서부터 외무장관회담의 결렬까지 러시아가 보여준 태도는 긴밀한 한·러관계를 바라는 우리를 크게 실망시켰다고 하겠다. 러시아의 의도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채 사태해결을 낙관하고 안이하게 대응했던 우리 정부의 잘못도 크다고 본다. 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 큰 영향력을 갖고있는 4대강국의 하나이다. 두나라 모두 뜻하지않았던 경제적 어려움으로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경제·문화 협력의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두나라의 이익차원에서도 중요할뿐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 질서와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국 정부는 두나라 관계의 더이상의 악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하여 하루빨리 관계를 정상화하기 바란다.
  • 연극연출가 孫振策(이세기의 인물탐구:177)

    ◎‘전통의 창조적 파괴’ 마당극 지킴이/“지금 우리의 삶 즐겁게” 마당정신 올곧이/‘서울말뚝이’ ‘오장군…’ 등 숱한 화제작 양산/우리 연극의 세계화 끊임없는 연구·정진 동양철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도올 김용옥 박사는 연극연출가 孫振策을 향해 ‘항상 공부하는 손진책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야 말 것은 믿어 의심할 바 없다’고 단언해왔다. 한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친밀한 교분을 잇고 있는 도올은 지난 86년 손진책이 자신의 극단을 창단할 때 극단 이름‘미추(美醜)’를 지어주었다. 큰 ‘대(大)’위에 양(羊)을 쓰는 미(美)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양’,추(醜)역시 ‘술병을 놓고 춤춘다’는 ‘제의식과 놀이’의 의미가 함축되어 이름에서부터 흥겨운 마당놀이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다. 창단 선언문에서 손진책은 ‘마당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이자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 인습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통’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추의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며 ‘마당’이란 시간적으로 ‘지금’,공간적으로는 ‘여기’, 즉 지금 이곳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유도한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현대극에다 우리 가락과 몸짓을 집어넣고 고전과 현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접목하여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인간다운 삶을 엮어내기 위해 전통을 창작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전통에 바탕을 두지않고는 우리 문화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그는 ‘전통의 창조적 파괴’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셈이다. 그래서 소재도 시대의 아픔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우리의 한맺힌 소리와 흥청의 몸짓이 곁들여진다. 그의 공연양식에 대해 연극계 일각에서는 ‘전통의 왜곡’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만 ‘치열한 자기개혁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전통’이 그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극단명 ‘미추’,김용옥이 지어 초기엔 극단 산하의 연출부에서 수습시절을 보내다가 73년 원로연출가 허규씨를 만나 극단 민예를창단,다음해 ‘서울 말뚝이’를 첫 연출로 그는 ‘배비장전’‘꼭두각시 놀음’‘한네의 승천’‘허생전’등 일련의 전통극의 현대화로 자신의 연극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 MBC 후원으로 ‘마당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멍석을 깔고 탈춤을 추는 복고풍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 이 광장에서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깬 오늘의 춤, 오늘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킴이’‘오장군의 발톱’‘신이국기(新二國記)’‘영웅만들기’‘시간의 그림자’‘남사당의 하늘’등이 그 예이며 이러한 민족적 기상을 살린 연극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미국등 해외무대에 진출, 그때마다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을뿐 아니라 해마다 중요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민족연극 해외서 더 호평 그동안 90여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작품의 ‘완성도’에 치중하여 1년에 한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신념은 ‘문화는 흐르는 물과도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막을 수도 없고 또는 수세적인 자세도 문화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의다. 국내는 물론 바깥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무엇을 내놔야 부끄럽지 않은 경쟁력을 지니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해학성, 예술성을 치밀하게 복합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물론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되고 그가 연출한 어떤 작품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손진책은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미청년의 모습이다. 천재성을 번뜩이지도 않고 난삽한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밝히기위해선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한다. 경북 영주에서 사업을 하던 孫秉吳씨와 黃鳳漢씨의 8남매중 넷째이자 장남, 위로 누나셋중 큰누나인 손정숙은 서양화가이고 셋째누나인 손봉숙은 한국정치연구소장이다. 서울에서 대광고에 다닐 때는 연극무대가 있는 명동에 드나들었고 한 때는 클래식음악,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아서 밀러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의 길로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패인 남운용옹을 비롯 동해안 별신굿의 김영달,한국 가면연구회의 이근성씨등 전통연희의 장인들을 만나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를 전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가족은 75년 극단 민예시절에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로 만난 金星女와의 사이에 남매. 김성녀는 창과 춤솜씨가 뛰어난 중견배우다. 배고프고 외롭던 연극초창기에 그는 극단 민예의 아현동과 이대앞 대현동 시절을 거쳤고 지난 90년이후 장흥부근인 경기도 양주군 백석에 그의 오랜 염원이던 300석규모의 ‘미추산장’을 개관했다.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연극을 만들면서 연극 워크숍과 공연은 물론 연극학교도 열 계획이다. 그와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국악작곡가 박범훈은 ‘손진책은 가무악(歌舞樂)이 함께하는 우리 토착예술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며 만약 고향 영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농토를 지키는 멋진 지킴이가 됐을 거라고 조언한다. ○전통연회 장인들에 전수 그의 연극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질주해 왔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해도 일목요연한 발전만으로 모든 파란은 침몰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학구파인가는 그가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천여권의 연극대본과 연극학 한국학 국악 철학관련 서적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각오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험로(險路)다. 그러나 도올의 단언대로 그는 ‘남사당의 하늘’‘시간의 그림자’같은 주옥편을 탄생시켰고 이제는 사방이 확 트인 자연속에서 불멸(不滅)의 명작을 잉태하기 위한 흥과 정취,긴 신명을 도저하게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47년 경북 영주출생 ▲1970년 서라벌예대 연극과 졸업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입단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창단동인 ▲1974년 ‘서울말뚝이’ 연출데뷔 ▲1881­현재 마당놀이 ‘허생전’‘‘이춘풍전’등 서울및 지방공연중 ▲1982년 런던로열셰익스피어극단연수 1982­86년 극단민예극장 대표▲1986년 극단 미추창단대표,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 ▲1987년 극단 미추창단기념공연 ‘지킴이’연출, 국악관현악단 지도위원 ▲1989년 ‘심청전’ 유고공연 ▲1990년 ‘아리랑’ 소련순회공연 ▲1992년 태평양국제연극제 참가 ▲1993­현재 LG복지재단주최 전국고교순회 마당극 ‘이춘풍전’등 공연 ▲1994­현재 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 부회장, ‘심청전’ 미국순회공연 ▲1995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1996년 오늘의 작가전­최인훈 연극제 및 베세토국제연극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참가 ▲1997년 세계연극제 국내공식초청작 ‘오장군의 발톱’공연 참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75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작품상(86년) 서울연극제연출상(87년) 예술평론가제정 ‘최우수예술가’선정(87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88·89·91·93년)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5·끝(정직한 역사 되찾기)

    ◎거듭나야할 법조/“권력이익이 우선” 탈법 방조/악법운용에 직간접 연관 고문 등 양심수주장 외면/최근에 검은돈에도 연루 ‘최후의 인권보루’ 요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을 순진하게 잘 지키는 사람만 손해본다” 우리사회에 그동안 유행돼온 법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말들이다.이는 법이 결코 대다수 국민들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인식의 결과이다. 이런 법치문화의 위기는 법을 악용하고 조작한 독재권력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악법과 법 운용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법부와 검찰은 왜곡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의 법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그 역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1987년 이래 폭발적으로 분출해온 온 국민의 민주화열기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 오늘날 사법부가 직면한 위기의 원천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88년 6월15일 서울지역의 판사 59명이 발표한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란 성명서 내용의 일부다. 이 성명사태는 전국 법원으로 확산됐고,마침내 金容喆 대법원장의 퇴임과 李一珪 대법원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와 움직임은 없었다.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해내고 고문 주장에 얼굴을 돌렸던 부당한 재판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도,사죄 한마디도 없었다. 수색영장 남발,고문주장 사건의 증거 인용 등 탈법적인 수사활동을 조장·방조하는 일이 이어졌다.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된 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검사들은 업무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준사법관으로서 법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성역없는 법 적용을 통해 추상같은 검찰권을 세워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검찰은 그동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88년 金淇春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국민들이 검찰의 변신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국민에 준법을 선도하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검찰부터 수사상의 적법절차를 엄히 지키고…,우리 검찰권이 중립성과 독립성이 존중되어야하는 국가공권력임을 잠시라도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임사로 끝났다. 사법부와 검찰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아직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올들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법조인들의 돈과 관련된 비리사건들은 우리 법과 법조인의 왜곡됨이 그 한계에 다다른 느낌마져 주고 있다. 법치주의는 국민들이 법을 집행하고 결정하는 법조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은 수백만달러의 연봉이 보장된 변호사를 포기하고,수십만달러를 받는 봉급장이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미국 국민들이 있고,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결정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겨보아야할 점이다. ◎시국사건판결 50년명암/권력에 맞선 소신 판사 줄줄이 해임/반공법사범 석방하자 뇌물사건 엮어 보복/대법원장이 “현실을 직시하라” 훈시하기도 격동의 반세기 속에서 많은 판사들이 권력의 편에 섰다. 굴욕을 거부하고 용기있게 권력에 맞선 법조인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굴욕을 감수하면 살아남고,이에 맞서면 옷을 벗어야 했다. 정의의 실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법조계의 반세기도 이같이 굴절된 어두운 역사로 얼룩져 있다. 1958년 7월 서울지법 유병진(재판장)·이병용·배기호 판사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 진보당위원장에게 국가보안법 일부 위반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정적제거를 위해 사건을 조작한 이승만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조용순 대법원장은 사법감독관회의를 열어 “법관이라 하여 국가목적을 위한 숭고한 정신을 망각하고 주관적인 견해만을 고집한다면 국가이념에 배치됨이 이보다 심함이 없을 것”이라고 훈시했다. 사법부의 수장 스스로 정치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어 서울고법 김용진(재판장)·최보현·조규대 판사는 항소심에서 조봉암에 사형을 선고했고,다음해 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7월 사형이 집행됐다.1심 재판장이었던 유병진판사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법관 연임이 거부됐다. 판사가 권력에 맞서 소신판결을 내리면 즉각 권력의 반격이 뒤따랐다. 대법원은 71년 국가재정 형편을 이유로 군인과 군속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판결에 참여한 대법원판사 9명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2년후 모두 의원면직됐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신민당사에 들어간 서울대생들과 월간 ‘다리’지 사건에 연관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임중빈씨 등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보복을 불러,반공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판사들이 제주도에 출장가면서 항공료 등 9만3,000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기각과 재청구,재기각 사태가 벌어졌고,급기야 전체 법관의 3분의 1인 153명이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 유신시대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때이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독재정권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들의 저항권 자체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민복기 대법원장은 75년 법원장회의에서 “현실을 직시하라.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이고 사법부의 권위를 앙양시키는 길인가를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이때 판사들은 대다수의 긴급조치 위반자들에게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 ◎朴禹東 변호사 인터뷰/“법조인들 나약해 법치주의 위협받아”/통치권자 사면권도 남용되면 곤란/오판위험 줄이게 피고·원고 모두 연구를 “법조 50년에 대한 평가요? 법조인치고 우리 법과 법조인이 제역량을 해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朴禹東 변호사(64)의 우리 법조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인색하다. 그 자신 33년간 판사생활을 했고 지금도 재야법조인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사정이 없다. 법치가 외면받고 위협받아온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법조인들의 나약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에 과감히 맞서 싸운 법조인이 많았다면 독재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고만 있어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요. 법치주의가 서려면 지금이라도 법조인들이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대법관,법원행정처장 등에 임명될 때 마다 ‘학구파’,‘선비형’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朴변호사. 그는 후배 판사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몇 안되는 법조인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은 판사시절을 돌이켜보며 “왜 좀더 깊이 검토하지 못했을까.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만큼,원고와 피고 양쪽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했던 것일까”라고 반문해보곤 한다. 그리고 항상 후배들에게 “50%가 아닌 100%의 연구와 검토를 양쪽 모두에게 쏟으라고 주문한다고. 그래야만 오판의 위험을 막을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가 일부 판사와 변호사들의 비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것에 대해 朴변호사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99.9%의 판사는 깨끗하고,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한다. 변호사들의 수임 관련 비리도 대한변협의 적극적인 자체정화 노력으로 점차 자취를 감출 것으로 내다 봤다.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 변호사들은 수임이 어려워 비리의 유혹을 받기 쉬운 만큼 개업보다는 법인에 취업하기를 권했다. 사법개혁 차원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양산하는 것에 대해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법조인 수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 사법시험 체제에서 합격자만 늘리는 것은 법조인의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전에 외국의 로스쿨 같은 폭넓은 시각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해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朴변호사는 법치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통치권자의 사면권 남용도 지양돼야 한다고 본다.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대법원에서 확정받고,해도 넘기기 전에 풀려나는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고유권한적·자의적 사면권 행사’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집기획팀 ▲李昌淳 팀장 ▲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1/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보안법 상처의 흔적들/시행 50년… 멍든 인권 곳곳에/曺奉岩 등 수많은 政敵에 간첩죄 적용/사회 전반에 올가미… 한해 수백명 구속 영화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때 양민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9월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와 한달 뒤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검찰은 이 영화 상영과 관련,인권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를 지난해 11월 구속했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였다. 그러나 부산영화제(조직위원장 문정수 부산시장) 상영과 관련해서는 구속된 사람이 없었다. 같은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도 보안법 적용은 이렇게 다르다. 검찰은 당시 “서씨는 비전향 사상범으로 고의성 여부가 문제된다”고 밝혔다.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적용이 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제사면위원회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석방노력으로 서씨는 얼마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과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보안법과 관련,서준식씨의 경우처럼 세인의 주목속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용히 처리되는 사건이 훨씬 많았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0주년을 맞지만 보안법 역사의 뒷면에는 대한민국 인권의 상처투성이 흔적들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안법을 비켜갈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보적인 정치인,지식인,학생,노동자 등이 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죽기도 하고 감옥에도 갔다. 진보적 정치운동과 관련, 보안법에 의한 최대의 피해사례로는 조봉암과 진보당사건 및 2차 인민혁명당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을 들 수 있다. 1958년 1월11일 밤 경찰은 조봉암 위원장 등 진보당 간부 10여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야당 당수 조봉암은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다음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심 재판장인 유병진 판사는 이승만 정권의 간첩조작에 저항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유병진 판사는 우익세력들에 의해 용공판사로 몰렸고 2년후 법복을 벗어야 했다. 2차 인혁당사건은 1974년 전국적인 반(反)박정희 투쟁을 준비하던 민청학련을 용공으로 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던 배후조직을 조작한 사례로 비판받고 있다. 10년전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이미 경미한 혐의로 판명됐던 인혁당이 10년 뒤 재건되어 정부전복을 꾀했다는 것. 그러나 2차 인혁당 사건은 1차 때보다 더 증거가 없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75년 대법원에서 상고는 기각됐고,24시간도 못되어 8명이 처형됐다. 보안법과 관련,현대언론사에서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꼽히는 것은 1961년의 ‘민족일보’ 사건이다. 진보적 혁신 언론을 표방한 민족일보는 용공언론으로 몰려 조용수 발행인의 사형집행과 함께 폐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소장에 용공으로 단정돼 예시된 것들은 ‘통일에의 전진을 위하여’‘남북교역 시기는 성숙하였다’ 등의 제목하에 실린 기사들이다. 보안법 위반 사건 가운데 한가닥의 온정도,최소한의 법적 기본권과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게 바로 간첩사건이다. 공안기관은 월·납북자의 친·인척,정보사법 전과자,조총련의 연고가족,납북 귀환어부 등의 신상 정보를 모두 입력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신상 정보는 언제라도 ‘간첩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작 의혹이 적지않았다. 78년 귀국중 간첩혐의로 체포돼 20년째 갇혀 있는 조상록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소조항/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노동·학생단체 등 민주화 운동 조직 파괴/찬양·고무죄­개념 모호해 자의적 해석 가능… 남용 심각/불고지죄­‘침묵의 자유’ 침해… 반인륜적 행위 강요 치안유지법,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국방보안법,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불온문서임시취체법…. 일제가 군사파시즘의 길을 걸으면서 국내외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했던 대표적인 법률들이다. 이중 치안유지법은 일본 및 식민지의 사회주의자와 반체제주의자,독립운동가 등을 처벌한 대표적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탄생(1948년 12월1일) 과정부터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빼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법의 특별법인 이 법이 형법 제정(1953년 9월18일)보다도 빨리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시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해 이 법이 얼마나필요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제2장의 제3∼10조가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처벌을 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조항들이다. 이중에서도 제3조·7조·10조가 가장 독소적이고 남용될 소지가 많다고 비판받는 조항들이다. 제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가입권유 등에 대한 처벌로 제7조 3항의 이적단체 구성·가입죄와 함께 민주화운동 조직을 파괴하는 주요한 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형벌도 반국가단체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혹하다. 그러나 막상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반정부적 노동·학생운동 조직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운동조직인 전민학련과 민청학련,기독교 청소년들의 신앙공동체인 한울회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제7조는 반공법 제4조를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찬양·고무 및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이적표현물 제작·반포·판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남용돼온 조항으로 일반 형법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안법의 ‘상징’과도 같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그 문언상 위헌이나 한정적 해석하에 합헌”이라는 한정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먼저 찬양·고무·동조라는 개념이 너무 애매모호해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집을 철거하려는 당국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했다가 구속되고(1978년), “북한이 남한보다 중공업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했다가 이 조항에 걸려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1976년). 10조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불고지죄 조항이다. 모든 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불고지를 처벌하다가,91년 개정때 3조·4조·5조의 죄에 한해 성립하도록 범위를 축소했다. 또 친족관계일 때는 죄를 감경(減輕)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에도 불구하고 불고지죄는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직업윤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반사회적인 행태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수년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에서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가 인터뷰중 알게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구속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동식 간첩사건과 관련,불고지죄 혐의로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씨는 “설사 보안법 위반자라는 것을 알아도 친구나 친척을 당국에 신고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라며 불고지죄의 반인륜성을 비판했다. ◎北 형법은 가혹한 反인권적 악법/유추해석 인정·중벌위주 형벌체계 적용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북한의 반국가사범에 대한 가혹한 형법체계다. 보안법보다 훨씬 가혹한 법조항들이 북한내 통일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만을 폐지하면 ‘남쪽만의 무장해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북한 형법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본 원칙인 법치주의 원리를 무시한 가장 비민주적인 악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북한 형법은 유추해석을 인정해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제10조에 “형사법에 동일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이 없을 때는 종류와 위험성으로 보아 가장 비슷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에 따라 형벌을 정한다”고 돼 있어,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범죄인으로 규정,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소시효에 대한 명문규정도 없다. 제42조는 “반국가범죄와 고의적 살인죄에 대해서는 기간에 관계없이 형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로 규정,범인은 죽을 때까지 형사소추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방하거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행위는 반국가범죄(제44∼55조)로 규정,사형이나 전재산 몰수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또한 은닉범,불신고범,방임범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반국가범죄의 경우 이를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다. 형벌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는 제21조에는 반국가범죄의 경우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 있어 우리법의 “○○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는 형식에 비해 중벌위주의 형벌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없는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반인권적 형벌체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앰네스티와 보안법/“국제인권기준에 맞게 개정해야”/매년 인권보고서 통해 개폐 촉구 “양심수를 양산해온 국가보안법은 국제인권법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국제인권기준에맞도록 개정돼야 합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로스 대니얼스 집행위원은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떤 사상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테러단체를 조직하거나 폭력혁명을 공개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이상 구속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앰네스티의 인권보고서를 통해 “보안법 위반으로 매년 체포되는 수백명 중 상당수가 폭력이 아닌 단지 ‘고무찬양’과 ‘이적행위’ 등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보안법 개폐를 주장해왔다. 또한 주요 보안법 위반 사건마다 항의성명과 함께 피해자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 96년에는 보안법 개정과 안기부의 권한 남용 방지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편지를 우리나라 정당 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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