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아
    2026-06-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158
  • 문화재 80억대 한밤 ‘싹쓸이’

    문화재 80억대 한밤 ‘싹쓸이’

    향교와 서원 등을 돌며 80억원대의 문화재 수천 점을 훔친 50대와 이를 사들인 사설 미술관장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1일 경상도와 충청도 등을 돌며 불상과 고서 등 2300여점을 훔친 박모(53·무직)씨와 훔친 문화재를 고미술상으로 연결해준 한국고미술협회 전 경북지부장 정모(46)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다른 알선책 손모(53)씨 등 2명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들이 훔친 물건을 사들인 서울 종로구의 사설 미술관장 권모(63)씨 등 2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박씨와 함께 문화재를 훔친 김모(41)씨 등 3명을 쫓고 있다. 박씨 등 일당 4명은 지난 2월 15일 오후 8시쯤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에서 보물 제350호 중정당의 기단면석 2점을 훔치는 등 지난해 8월부터 11차례에 걸쳐 2352점의 문화재 80억원 어치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충남 서산 해미향교의 청금록 등 고문서 10여권과 전남 보성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불상의 배경장식인 광배와 1900년대 초반에 발행된 증권과 보험료 영수증까지 마구 훔쳤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전국의 인적이 뜸하고 경비가 소홀한 서원과 향교를 골라 밤시간대에 문화재를 훔쳤다. 이들은 부피가 큰 문화재를 파내어 운반하기 위해 크레인이 달린 2.5t 트럭을 이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청에 이들이 훔친 문화재의 감정을 의뢰한 결과 80억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문화재사범단속반 강신태 반장은 “이들이 훔친 물건은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추어야 알 수 있는 문화재들로 훔친 규모로 볼 때 역대 최대의 문화재 절도사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와 올초 빈번하게 발생했던 문화재 절도사건이 이들이 검거되자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보아 더 많은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계속 수사하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儒林(316)-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16)-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비교적 늦은 나이인 21세 때 진사였던 허찬(許瓚)의 딸과 혼인하였던 것은 퇴계의 노모 박씨의 성화 때문이었다. 퇴계는 공부에 전념하느라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박씨는 아들 퇴계가 빨리 혼인하여 후손을 잇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며, 또한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오를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퇴계는 비록 6년 동안밖에 함께 살지 못하였으나 첫 아내 허씨를 사랑했던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퇴계의 첫 부인 허씨의 무덤은 의령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퇴계가 직접 쓴 ‘가례동천(嘉禮洞天)’이란 유필이 남아 있을 정도인 것이다. 퇴계는 아내 허씨가 죽은 후에도 장모 문씨 부인을 지극히 봉양하였다.‘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백발이신 장모님 생각 때문에 한양 벼슬길을 향해 차마 발을 못 옮긴다.’라는 말을 문집 속에 남길 정도로 처가에 대한 상념이 지극하였다. 지금도 ‘가례동천’의 기념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가례동천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태두요, 동국부자(東國夫子)로 추앙 받고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유묵 금속문이며, 유서 깊은 유허지이다. 가례동은 선생의 처가가 있는 곳이다. 문무사백들과 시문 강론으로 소요하시는 한편 후진양성에 전념하신 사적과 더불어 향당의 표준이 되고, 국가문화유적으로서 소중한 곳이다.” 이러한 퇴계의 마음은 손자가 장가갈 때 보낸 퇴계의 편지 속에 자세히 드러나고 있다.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 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칭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고 인격을 멸시해 버린다. 이런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려면 처음부터 조심해야 한다.” 이 편지는 퇴계의 부부간의 근본이념을 요약한 가르침이다. 부부는 지극히 친밀하기 때문에 지극히 조심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말은 부부 사이의 예절을 가리키는 말이고, 가정을 바로잡고자 하면 출발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근신이 치가의 법도임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손님처럼 공경하였던 첫 번째 부인 허씨는 퇴계의 나이 27세 때 병사해 버리고 만다. 아내가 죽은 후 퇴계는 향시에 응시하여 2위에 합격하고, 진사에도 합격하는 등 승승장구하였으나 그 후 3년 동안 줄곧 광부(曠夫)로 지냈다. 3년 후 퇴계는 권씨 부인과 재혼하였는데, 이 결혼은 불행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권씨 부인과 16년간의 결혼생활을 퇴계 자신도 ‘참으로 불행했었다.’고 고백하고 있음인 것이다. 이는 권씨 부인이 칠거지악을 일삼던 악처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맑지 않은 실성한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어릴 적 충격으로 인해 미쳐 버린 여인이었던 것이다. 권씨 부인은 본래 신라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나말여초(羅末麗初), 안동을 지키던 김행(金行)이 후백제 왕 견훤에게 몰린 왕건을 패망의 순간에 도와 고려 건국을 튼튼히 하자 김행을 태사로 모시고 안동을 식읍으로 내렸다. 그리고 김행에게는 집권에 따라 판단을 잘하였다고 해서 권(權)씨를 성으로 쓰게 하는 사성개명(賜姓改名)을 내렸던 안동에서 대대로 살아온 명문가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부안행 버스 속에서 남사고는 먼젓번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나는 이 기회에 변산의 길지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서울서 부안까지는 고속버스 편을 이용했다. 서울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쯤 지나 삼례를 지난다. 이 때부터 드넓은 호남평야가 눈앞에 가득하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부안은 김제 만경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다. 그곳은 곡창지대이면서도 서해바다에 연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부안 출신의 한학자 한 분을 만났는데, 그는 예부터 ‘생거(生居) 부안’이란 말이 있다고 자랑했다. 농수산물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변산(邊山)이란 명산이 있어 부안은 무척 살기 좋은 고장이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부안은 다소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변산에서 군산까지 이어질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생태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이 시작되는 백산이란 지역도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다. 갑자기 1984년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농민군들은 모두 흰옷에 죽창을 들고 있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고 했다던가? 이런 역사적 격랑의 한복판에 변산이란 길지(吉地)가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밤 나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꺼내놓고 혹시 변산에 관한 설명을 찾아 볼 수 있을까 해서 좀 뒤적여 보았다.“노령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파고들어간다. 서·남·북 3면은 모두 바다다. 이곳은 많은 봉우리와 허다한 골짜기로 돼 있는데 변산이라 부른다.” 맞는 말이다. 변산은 3면이 바다에 닿아 있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유난히 많다.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 그러나 이중환의 설명과 다른 점도 있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변산의 멧부리는 노령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계보를 자세히 적은 ‘산경표(山經表)’에도 변산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고지도를 보더라도 변산은 홀로 떨어진 외로운 산이다.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서자인 셈이다. 정감록의 길지는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에 확실하게 능선이 닿은 적자(嫡子)들이다. 그렇다면 서자 격인 변산은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길지로 거론된 것일까? 누구도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답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난 변산의 지리와 역사를 좀더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버스는 서서히 부안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난 지 4시간 만이다. 읍내 길거리엔 바다 냄새가 물씬하다. 남도의 봄 향기도 객을 반기는 듯하다. ●내변산 우동 정감록서 말한 길지 지인의 소개로 나는 읍내에서 지관 김철수(71·가명)씨를 만났다. 김 지관의 말을 들으니 변산은 길지에 필요한 외형적인 조건을 제법 잘 갖춘 편이란다. 변산의 산세는 용맥이 강이나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갑자기 멈춰선 경우에 해당해, 이른바 산진처(山盡處)의 명당이란다. 김 지관은 서남해안 일대에는 그런 명당이 몇 군데 더 있다며 가야산과 팔령산과 태안반도를 예로 든다. 그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변산의 지세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지관의 대답은 이러했다.“변산의 청룡, 즉 동쪽 산세는 사창재, 노승봉(상여봉), 바드재를 건너 옥녀봉으로 이어지다가 잠시 남서쪽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내소사의 주산인 세봉을 건너서 월명암의 주산인 쌍선봉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뻗어요. 그게 학치, 청림리 삼예봉에서 끝나지요. 변산의 백호, 즉 서쪽 산세는 개암사의 주산인 우금산에서 우슬재를 거쳐 의상봉으로 이어진다고 봐야지요. 이 두 흐름을 갈라놓은 것이 그 옛날 백천이었는데, 지금은 부안호가 돼 없어졌어요. 백천의 물길은 본래 우슬재에서 시작됐거든요. 백천도 그렇지만 변산의 청룡과 백호가 그려낸 형상은 결국 산 태극, 물 태극이오. 계룡산과 같다, 이런 말씀이지요.” -그럼 ‘정감록’에 나오는 변산 동쪽의 길지는 구체적으로 어딘가요? “아, 그것은 말이지요. 일단 내변산으로 통하는 입구인 우슬재나 바드재를 좀 잘 봐야 해요. 그저 그 길목만 잘 지키면 인근의 청림리와 중계리는 참 좋은 피난처가 돼요. 거 뭐더라, 정감록에 나오는 호암을 찾으려면 상서면 통정리에서 우슬재를 넘어가면 돼요. 우슬재를 살짝 넘어가면 쇠뿔바위라고 나오지요. 그런데 이게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의 오른쪽에 있어요. 쇠뿔바위 동남쪽을 잘 살펴보면 산비탈에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우거하던 집이 지금도 있지. 몇 해 전에 복원됐지요. 그 산 아래 마을이 우동이야. 보안면 영전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곰소로 가다 보면 마주치는 동리인데 원래 이름은 우반동이란 말이오. 이 마을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옥녀봉이 있고 멀리 그 산 끝자락에 굴바위가 보인단 말이지요. 바위 입구가 틀림없는 호리병 모양이에요. 호암이라 이거지요! 우동은 앞이 시원하게 터진 듯하면서도 천마산이 막아주고 있어 삼태기형 명당이 분명하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난 우동이 바로 그 ‘정감록’에서 말하는 길지다, 그렇게 봐요. 안 그렇겠어요?” -김 지관님, 그런데요. 역사상으로 볼 때 길지가 있다는 내변산이 외변산보다 훨씬 더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구한말이나 6·25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변산의 우동을 길지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그거야 잘 모르겠소! 누가 그걸 알겠어요? 그래도 옛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없어요. 우리가 사는 이 변산은 아주 옛날서부터 미륵님이 나타나신 땅이고, 관세음보살님의 성지요. 원효, 진표, 진묵 등 큰 스님들도 많이 오셔서 도를 닦으신 것만 봐도 이게 보통 땅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요! 근세엔 증산교를 세운 강일순이도, 원불교의 소태산도 다 여기 변산서 도를 닦았단 말이죠. 그 분들이 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분들인데 왜 다른 명당 다 놔두고 부안을 왔겠어요? 정감록에도 길지라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미륵님이 현신하신 곳이니까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봐요.” 김 지관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변산은 과연 미륵신앙의 발상이요, 불교의 성지였다. 왜,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점이 중요하게 생각돼 난 서둘러 발길을 현장으로 옮겼다. ●변산의 옛 사찰들 부안읍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박재환(45·가명) 선생이 길잡이를 맡아주었다. 나는 박 선생과 함께 내변산 입구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대형 지도에서 변산의 유적지를 다시 점검했다. 변산은 제법 큰 산 덩어리여서 변산면(邊山面)·하서면(下西面)·상서면(上西面)·진서면(鎭西面)에 걸쳐 있다. 그런데 최고봉이라는 의상봉 마천대(508m)도 실은 야트막한 편이라 웅장한 느낌은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은 서해안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산봉우리를 외변산이라 하고, 내륙으로 뻗은 골짜기와 봉우리는 내변산이라 부른다. 외변산에는 격포리(格浦里) 해안의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이 특히 유명하다. 이 두 곳의 명칭은 강이지만 실제는 해안의 바위벽이다. 채석강이니 하는 이름은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과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중국 지명을 본뜬 것이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뜻이다. 변산의 해안풍경이 그처럼 절경이라 해도 정작 변산을 전국적인 길지로 만든 것은 산속에 위치한 옛 사찰들이었다. 박 선생이 승용차로 변산을 구석구석 구경시켜 준 바람에 모든 게 뚜렷해졌다. 외변산에 해당하는 상서면 감교리의 개암사(開岩寺)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대웅전(보물 292호)이 참으로 볼 만하다. 개암사에 딸려 있던 원효방이란 암자는 신라 때 명승 원효가 수행한 곳이라 전한다. 그런가 하면 변산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 역시 신라 때의 고찰인데 대웅보전(보물 291호)·고려 동종(보물 277호)·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보물 278호) 등 문화재가 많다. 내소사 경내의 전나무 숲은 울창하기가 전국 최고라 하고 이 절간의 저녁 종소리는 변산8경의 하나로 친다. 내변산은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깊은 계곡이 여럿이고 나무 또한 울창해 풍광이 곱다. 그 중 산내면 중계리(中溪里)에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변산의 제2봉인 쌍선봉(498m) 중턱에 자리잡은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의 물안개는 변산8경의 하나다. 암자 뒤편의 낙조대(448m)에서 서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역시 변산8경으로 손꼽는다. ●불사의방과 영산사, 한국 미륵신앙의 성지 변산에는 위에서 말한 사찰들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해 뵈는 암자 하나가 있었다. 의상봉 꼭대기 있었다고 믿어지는 불사의방(不思議房)인데 이곳이야말로 미륵하생신앙의 진원지였다. 장차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을 불교적 이상세계로 인도할 거라는 하생신앙이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 변산이라니 신기한 느낌이 든다. 따지고 보면,‘정감록’에 약속된 새 세상도 미륵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미륵하생신앙은 정감록 신앙의 뿌리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불사의방에서 미륵신앙을 체험한 승려는 신라의 진표(眞表)였다. 그는 경덕왕 19년(760)부터 3년 동안 3업(身·口·意業, 몸뚱이·언어·의지의 작용)을 닦았다. 아울러 망신참법(亡身懺法·몸을 희생시키는 참회법)에도 힘써 5륜(두 무릎, 두 손, 머리의 5體)을 바위에 마구 부딪쳐 무릎과 손이 깨져 피가 비오듯 했다고 한다. 진표의 극진한 기도에 감동한 지장보상(地藏菩薩)은 진표에게 모습을 드러내 정계(淨戒)를 주었다. 그러나 진표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부근의 영산사(靈山寺)로 수행 장소를 옮겨 더욱 정진했다. 미륵보살을 친견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마침내 미륵보살이 진표 앞에 나타나 그의 신심을 칭찬하고 점찰경(占察經) 2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수행으로 얻은 果와 점치는 대쪽) 189개를 주었다. 진표는 미륵보살의 수기(授記)를 받은 셈이다. 경덕왕 21년(762), 진표는 신도들을 이끌고 금산사(전북 김제)에 16척이나 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2년 뒤 마침내 미륵상은 완성되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된다. 진표에 관한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변산에서 미륵신앙이 출범했다는 점이다. 그 뒤 우리 역사상 미륵신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특히 난세에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위로를 줘왔다. ●월명암, 또 하나의 종교적 성지 알고 보니 변산의 월명암(月明庵) 역시 종교적인 성지로 의미가 크다. 월명암은 관음보살을 모신 곳이라는데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영지라 한다. 월명암에 오르기 위해 나는 남여치에서 차를 내려 쌍선봉 쪽을 바라보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이 암자는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했다. 한말엔 의병들이 월명암을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과 싸웠는데 전투에 진 바람에 1908년엔 다시 잿더미가 됐다. 그 후에도 월명암은 몇 차례 심한 몸살을 겪었다. 지금 월명암 옛터에는 대웅전을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월명암을 개창한 부설거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의 행적은 ‘부설전’이란 고소설에 상세하다. 경주에서 출생한 부설은 법우(法友)인 영조·영희와 함께 구도의 길을 떠나 변산(능가산)에 들어가 묘적암을 세우고 오직 수도에만 몰두했다. 뒷날 그들 3인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길을 떠나는데, 부설원(정읍군 칠보면)에 이르렀을 때 부설은 삼생연분(三生緣分)이 있는 묘화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반드시 부부가 돼야 할 운명이었다. 환속한 부설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이란 딸을 두었는데 말년이 되자 변산에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이란 두 암자를 지어 아들딸에게 각기 하나씩 맡겼다. 겉으로 보면, 부설과 묘화 부부는 속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평생 남몰래 수도에 정진해 도력이 출중했다. 부설거사보다 한 수 낮았다는 묘화만 해도 환한 대낮에 조화를 부려 비나 눈을 내리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때로 묘화는 빗방울이나 눈송이를 단 하나도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고 전한다. 월명암을 중건한 진묵대사도 많은 이적을 남겼다. 진묵은 조선 중기 호남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었는데, 어느 날 탁발을 나갔다가 매운탕 한 솥을 얻어 마셨다. 그 다음 진묵은 물가에 가서 토해냈는데 탕 속에 들어 있던 죽은 물고기들이 전부 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근대에는 백학명(1867∼1929)과 같은 고승이 월명암에 주석했다. 학명은 불교개혁의 일환으로 선농(禪農)일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참선과 농사를 같은 것으로 파악해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박중빈도 세상을 구제할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월명암을 찾았다.1919년 소태산은 학명과 더불어 동안거를 했다. 이때 학명의 거처는 법당이었고 소태산은 그 옆방을 사용했다. 원불교의 2대 교조인 정산종사도 한때 학명의 상좌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증산교를 창설한 강일순(姜一淳) 역시 월명암을 찾았었다. 강증산과 소태산은 모두 새 세상을 열기 위해 부심했다고 한다. ‘부설전’을 보면 월명암에서 모두 4성인,8현자,12법사가 나온다고 했다. 월명암 스님들은 부설거사 가족 4명을 성인으로 간주한다. 옛날 이 암자에 주석했던 성암·행암·학명 스님은 3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5현과 12법사가 더 나올 예정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 말대로 될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장차 지켜볼 일이다. 요컨대 변산은 불보살과 깊은 인연이 있어 정감록이 손꼽는 길지가 되었다. 변산의 경우에서 보듯 때로 민중의 깊은 불심은 풍수조건을 능가하기도 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문화마당] 적극외교의 허실/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옆 사람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슬쩍 찔러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잘 참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가해자가 이번에는 팔꿈치로 옆 사람을 툭 친다.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그까짓 정도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옆 사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이 녀석, 바보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가해자가 이번에는 아예 따귀를 세게 때린다. 그때서야 옆 사람은 화들짝 놀라서 화를 내며 달려든다. 일본이 시마네현을 앞세워 ‘독도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를 지난 3월16일 통과시켰다. 그후 우리 정부는 통일부장관과 대통령이 차례로 나서서 일본의 그런 행위를 침탈행위라 규정하며 비난하고 경고했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분노하며 일본을 규탄하고 앞다투어 독도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일본의 집적거림을 이른바 ‘조용한 외교’로 해결하려고 했다는데 그 ‘조용한 외교’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다. 무대응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물밑접촉을 뜻하는 것일까? 지난 2월23일에 시마네현의 의원들이 독도편입 100주년을 맞았다며 법석을 피웠고,3월10일에는 현의회 상임위에서 그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그런 침탈행위를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국민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 때문일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강하게 반발하겠다고 우리 언론을 통한 간접 위협밖에 국민은 아는 것이 없다. 독도를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 그런 조례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조례가 통과된 뒤에 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적극적 외교로 바꾼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본이 대통령의 담화까지 ‘국내용’이라고 폄하시켰던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이 ‘독도의 날’에 관련된 조례를 통과시키기 직전에 한 야당 국회의원이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지적한 바가 있다. 작년 10월 말에 주일대사관이 후소샤 출판사의 역사교과서 검정신청본을 입수해서 11월1일 교육부에 내용분석을 요청했고, 교육부는 그 결과를 11월 초순에 외교통상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소샤 출판사의 역사교과서는 4년 전보다 더 왜곡된 형태로 4월 초에 있을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말 교육부에서 구성했다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은 그동안 몇 번이나 모였고 무슨 대책을 세웠을까? 외교통상부는 그 대책을 바탕으로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여서 그 교과서의 검정요청 자체를 막기 위해 대책을 숙고했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했다고 자신있게 국민에게 그 내용을 공개한다면 설령 지금과 똑같은 결과가 나왔더라도 우리는 정부에 큰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내건 슬로건이 ‘국민이 대통령입니다’였다. 그런데 정부가 정말로 국민을 대통령으로 대접하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영어에서는 국민을 지배(government)하는 집단일지 몰라도 우리말에서는 종복(從僕)이다. 적어도 참여정부가 슬로건을 거짓말로 내세우지 않았다면 국민이 정부의 주인이다. 종은 주인을 편하게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인의 뜻을 미리 헤아려야 한다. 주인에게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한다. 감추었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주인을 분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주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잘못의 판단은 주인이 한다. 잘한 것만 주인에게 자랑하지 말고 잘못한 것까지도 주인에게 말하며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참여정부도 과거의 정부들과 다를 바가 없다. 참여정부가 내건 개혁이란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개혁이라는 것이 새롭게 고치는 것이라면 과거의 정부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요약하면 댐에 생긴 조그만 구멍을 밤새 손가락으로 막아서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무시해도 좋을 것에 관심을 가져서, 결국 자기 시간과 몸을 희생해서 큰 파국을 막아냈다는 이야기다. 국민은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며 전력투구한 후에 평가를 기다리는 정부를 원한다. 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 [박은영의 DVD 레서피]동심의 향기에 빠져보아요

    [박은영의 DVD 레서피]동심의 향기에 빠져보아요

    연어들이 하천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은 전에 살던 물 냄새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리보다 먼저 코가 추억을 떠올리는 경험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냄새는 치매를 치료할 만큼 강력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아기들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비릿한 젖 냄새에서 자연스레 유년 시절을 반추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냄새는 때때로 그 자체가 훌륭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 전라도 낡은 식당에서 먹었던 청국장 냄새, 비 오는 날 먹었던 파전의 고소한 기름 냄새는 실제의 맛보다 기억 속에서 훨씬 더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봤던 애니메이션에서도 이 비슷한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주제가를 함께 부르는 것만으로도 금세 끈끈하고 묘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1942년에 제작된 디즈니의 ‘밤비’는 쿠엔틴 타란티노도 걸작이라고 인정했을 만큼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힌다. 당시 목소리를 맡았던 어린이들은 이미 초로의 노인이 되었고 ‘밤비’를 본 세대 역시 수없이 바뀌었다. 그러나 1940년대나 2000년대에 본 이들 모두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유년의 비릿한 젖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베스트셀러를 옮긴 ‘스노맨’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이 높다. 서정적인 화법과 유년의 따뜻한 팬터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 밤비 어린 사슴이 숲의 왕자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라이온 킹’의 원전이라 할 만하다.1942년 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풍부한 색상과 질감이 돋보인다. 특히, 부가영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감독과 월트 디즈니, 스태프들의 미팅 기록을 모아 두었다가 그들이 실제 대화하는 것처럼 재연한 ‘스토리 미팅’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인상주의 화법으로 완성된 배경에 관한 꼼꼼한 설명과 스토리보드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 주목할 만하다. 유아들부터 어린이까지 할 수 있는 게임과 DVD롬에서 구동되는 영어학습 프로그램도 수록되었다. 방대한 분량의 제작 뒷이야기도 놓쳐선 안 될 부가영상이다. ● 스노맨 아이들의 동화이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눈사람이 녹기까지 하룻밤 안에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데이비드 보위가 회상하는 인트로 부분을 빼면 대사도 거의 없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스코어와 색연필로 한 장 한 장 그려낸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의 그림으로만 이루어졌다. 제작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어린왕자’처럼 이야기와 그림체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번 DVD는 20주년 판으로 약간의 추가 장면이 있다. 제작과정, 초기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 등의 부가영상은 애니메이터들에게도 참고 될 만큼 심도가 있다.
  • [송두율칼럼] 종교에 대한 단상

    [송두율칼럼] 종교에 대한 단상

    재작년 가을 37년만에 가족과 함께 일시 귀국했다가 예상치 못한 사나운 폭풍을 맞았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정말 보고 싶은 많은 곳들을 직접 찾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겨우 며칠동안 들른 곳 중에는 절과 교회도 있다. 그러나 절도 교회도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서울의 밤하늘에 붉은 네온 빛을 발하는 수많은 교회의 십자가는 1970년대 초 뉴욕의 할렘지역에서 처음 본 흑인교회의 네온십자가를 연상시켜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 법정으로 가는 도중 호송버스의 차창 밖으로 보였던 도로변 상가건물에 붙어있는 교회간판들이며 중세서양의 고딕 건축양식을 본받아 지붕 위에 세운 뾰쪽한 종각들은 한국기독교의 현주소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100년이 넘은 큰 개신교교회당이 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왠지 쓸쓸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신자 수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교회건물 유지하기조차 힘든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이와는 달리 한국에서 기독교는 정말 번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로베니아출신의 철학자 지제크(S Zizek)가 아시아와 유럽이 서로 맞바꾸고 있는 최고의 탈(脫)현대적인 아이러니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최근 유럽에서는 불교나 샤머니즘과 같은 아시아적 신앙체계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내가 있는 대학에서 많은 한국유학생이 기독교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결코 많지 않은 교민 숫자인데도 불구하고 한인교회도 여럿 있다. 독일출신으로 현재 시카고대학에서 종교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리제브로트(M Riesebrodt)는 한국사회는 물론 해외동포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을 남미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한국기독교의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교의 가부장적인 이념과 위계질서가 기독교에 그대로 관통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교회 내의 여성의 제한된 역할과 위치를 문제삼았다. 남미의 교회가 전통적인 남성주의(machismo)를 극복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도 문제지만 한국의 기독교가 타종교와의 공존 속에서 얼마나 관용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상이 우상이라며 이를 훼손해서 사회적으로 문제된 적도 있고, 기독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쓰나미의 피해를 받았다는 어떤 목사의 설교처럼 종교의 다원성에 대한 인식부재는 심각하다. 또 개인의 영적 구원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니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수립에 너무나 좁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십자가가 담고 있는 보편적인 뜻이 성조기나 태극기로써 전달될 수 있겠는가. 기독교신앙의 핵심이자 구원의 완성인 예수의 부활의 뜻이 교세의 양적 확대와 배타성, 그리고 반공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겠는가. 종교는 정보와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이제 곳곳에서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힘의 요소로서 부활하고 있다.‘종교의 복귀(復歸)’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종교는 오늘날 미국의 정치에서도, 또 이슬람의 근본주의적 저항에서도 그 힘을 다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세계화가 몰고 오는 엄청난 충격은 지구촌 곳곳에서 위기감과 무력감을 증폭시켜 종교의 형식을 빌린 위기의 예방과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종교의 역할이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종교는 과거보다 더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 종교만이 유일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지적 권위를 배타적으로 행사해서도 안 된다. 종교는 이제 ‘시민종교’로서 민주적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정치적 윤리규범을 설정하면서도 ‘비종교적인 것’에 대해서도 보다 더 열린 태도로 임해야 한다.‘종교의 복귀’는 ‘탈(脫)세속화’가 아니라 일종의 ‘재(再)세속화’의 현상이다. 천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이 지상의 문제 때문에 종교는 다시 돌아온 것이다.
  • [씨줄날줄] ‘우정의 섬’/이용원 논설위원

    일본 시마네현이 지난 16일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한·일간에 폭발한 싸움은 해결책을 찾기 힘든 지경에 이미 들어섰다. 우리사회에서야 예로부터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이 한마디도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일본 내 여론도 최근 갈수록 강경해진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한 중진 언론인이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자며 일종의 ‘조건부 양보론’을 제시했다.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27일자 기명칼럼에서, 독도를 공동관리하면 좋겠지만 한국이 응할 리 없으니 일단 한국에 양보하자고 주장했다. 그 대신 한국은 독도를 ‘우정의 섬(友情島)’으로 부르고 일본에 주변 어업권을 인정한다, 또 일본이 중국·러시아와 각각 벌이는 영토분쟁에서 일본을 전면 지지한다는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와카미야 논설주간의 제안은 우선 신선하다. 비록 조건을 달긴 했지만, 자국민들이 제 땅이라고 여기는 섬을 양보하자고 주장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자신 칼럼에서 “섬을 포기하자니 국적(國賊)이란 비판이 눈앞에 떠오른다.”고 썼을 정도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독도를 ‘우정의 섬’으로 삼자는 대목에서는 양국간 우의를 돈독히 하고 미래를 함께 기약하기를 바라는 그의 선의가 전해진다. 그렇더라도 와카미야 논설주간의 제안을 한국민이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땅이름은 소유국의 고유권한이자 국제사회의 지표이다. 독도는 독도일 뿐이다. 다만 한국정부가 이를 ‘우정의 섬’으로 선포해 관광 등 일정 부문에서 일본인들에게 개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처럼. 또 일·중, 일·러간 영토분쟁에서 무조건 일본측을 편들어 달라는 것은 주권국가에 요구할 사항이 아니다. 조건 가운데 어업권만큼은 기존 한·일어업협정이 있으니 그 범주에서 일본측 편의를 보아줄 수는 있을 것이다. 독도가 진정 한·일간에 ‘우정의 섬’이 되려면 일본이 먼저 조건 없이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 양국이 화해하고 국제문제에서 협력할 때 비로소 분쟁의 섬은 우정의 섬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어쨌건 와카미야 논설주간의 양식 있는 제안은 반갑고도 고맙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녹색공간] 고촌의 동백아가씨/오한숙희 여성학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가요무대에서나 들음직한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 노래가 요즘 나의 화두, 아니 우리집의 화두이다. 다름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지금 동백 아가씨가 되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지 삼십년이 된 어머니가 동백아가씨된 사연은 변심한 임이 아니라 변해가는 우리 동네 풍경 때문이다. 재작년인가. 나지막하니 평화롭던 논에 대형트럭들이 흙을 쏟아붓더니만 작년부터 아파트공사가 시작되었다. 예전 같으면 연초록의 어린 모가 심겨졌을 봄 논에 높다란 공사 철탑이 공룡처럼 뻗쳐 서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살풍경하다. 우리 어머니는 그 꼴이 보기 싫어 마을 뒤쪽의 꼬부랑길로 다니시고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지나가야 할 때는 마치 못 볼 것을 대하듯 고개를 외로 꼬신다. 이런 속내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부러움을 담은 덕담을 쏟아냈다. “좋으시겠어요. 땅값 올라가는 게 보이네, 보여. 선견지명이 있으셨지 뭐예요.” “좋긴 뭐가 좋아요. 난 하나도 안 좋아.” 우리 어머니의 시큰둥한 반응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할 뿐이었다. “아직 실감을 못하셔서 그렇죠. 아파트완공만 되어 보세요. 그때는 춤을 덩실덩실 추실걸요.” “뭐? 춤을 춰? 난, 아파트완공되는 꼴 보기 전에 이 동네 뜨고 싶어.” “그럼요. 여기 뛸 만큼 뛰면 팔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시는 게 현명하죠. 거긴 땅값이 아직 많이 쌀 테니까요.” 가치관의 차이는 이렇게 동문서답을 양산할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우리집 뒤 야산에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이 얼마전에 날아 들었다. 정말 동네를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비보였다.“도대체 언제 그 길이 뚫린다는 거냐,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 거냐.” 논에 아파트가 설 때는 한숨만 쉬시던 어머니가 뒷산 소식에는 애를 끓이셨다. 그나마 우리는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오셨는데 이것마저 위협을 받게 되자 이번에는 아이들까지 들썩였다. 아침저녁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산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마을 진입로에 ‘마을관통 고속화도로 절대 반대’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띄더니 이웃집 아저씨가 서명을 받으러 오셨다. 어머니는 “그럼 그렇지. 여기 사는 사람들이야 다 숨쉬는 맛에 사는 건데. 다들 반대하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하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한숨이었다. “입장들이 다 달라요. 서울 사람이 땅 주인이면 반대할 이유가 없죠. 토박이들도 자식들이 은근히 좋아하니 헷갈리시죠. 서명은 받습니다만 어떻게 될 지는 애매해요.” 아저씨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는 딱히 누구한테랄 것 없는 역정을 내셨다. “집값 올라 돈 벌었겠다고 다들 떠드는데 그래, 얼마가 오른다더냐. 산 없애고 돈 주면 그 돈이, 이 산이 주던 것보다 더 크냐. 그이들이 이 산이 주던 것을 헤아려 봤대? 계산해 봤대? 이만한 산을 다시 만들려면 얼마 드는지 견적 빼봤다더냐. 모르는 소리. 잃고나서야 후회한다. 어리석은 사람들. 그깟 눈먼 돈 잠깐이면 날아갈 텐데. 그 돈 물려줘봐야 자식들 앞 길 망치기만 할 텐데.” ‘이 집을 내 마지막 거처로 생각했다.’는 어머니 말씀에 나는 목이 메고 말았다. 실향민으로 아버지 생전에 문패 한번 달아보지 못하고 셋집을 전전하느라 자식들의 일기장이며 성장의 귀한 기록들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을 세월이 갈수록 애통해하시는 어머니에게 집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질숭배신앙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어느 새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뭐든지 바꿀 각오를 안고 산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들은 어찌할 것인가.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연환경은 자본의 저울대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증명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요즘 어머니는 해가 진 다음에도 종종 창문을 열고 뒷산을 바라보신다. “이 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헤아릴 수가 없단다. 그런 걸 어떻게 돈으로 계산해 주겠다는 건지.” 집값은 오른다는데 우리 어머니 가슴은 동백꽃잎처럼 빨갛게 멍이 들어간다. 오한숙희 여성학자
  • [데스크시각] 패러디가 통하는 사회/김성호 문화부장

    세상엔 이런저런 풍자(諷刺)가 횡행한다. 특정인을 애써 폄하하는 풍자가 있는가 하면 그 대상을 극도로 미화하는 풍자가 있다. 어떤 것이든 풍자는 흔히 ‘촌철살인’의 웃음과 비판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풍자가 그렇듯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확연할 때 풍자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예로부터 풍자는 모든 문화예술 장르에서 애용돼왔으며 많은 이들이 그것이 음성적이든 양성적이든 함께 접하고 보아왔다. 요즘 가장 흔한 풍자의 기법은 아무래도 패러디(parody)일 것이다.‘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 ‘파로데이아(parodeia)’에서 비롯된 패러디는 문학에서 ‘특정 작가의 약점이나 특정 문학유파의 과도한 상투성을 강조해보이기 위해 그들의 문체나 수법을 흉내내는 일종의 풍자적 비평이나 익살스러운 조롱조의 글’로 통용된다. 그런가 하면 음악에선 ‘기존 곡의 선율을 가지고 새롭게 곡을 쓰는 재창조 작업’으로 쓰여왔다. 하지만 이 패러디는 문화예술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단을 넘어 이제 일상 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인터넷에선 각종 사이트가 횡행하며 의도와 성향을 드러내는 무차별적인 기술로 애용되고 있다. 패러디의 순수한 사전적 의미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요즘 널리 쓰이는 패러디는 이런 사전적 의미에서 훨씬 더 나아가 작품이나 작가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모든 매체와 기술을 차용해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와 ‘인격침해’의 양단에서 줄타기를 하며 단속이라는 제재를 받기도 한다.17대 총선을 앞두고 급속히 확산됐던 인터넷 정치풍자 패러디물에 대한 경찰 단속이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반발을 크게 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표현에 대한 제재는 최근 한나라당 박세일·전재희 의원 패러디방송을 내보낸 끝에 결국 해당 코너인 미디어몹 헤딩라인뉴스 코너가 폐지된 KBS 2TV ‘생방송 시사투나잇’ 파문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이 코너는 경제부총리 임명과정에서 있었던 잡음을 명화 ‘천지창조’에 빗대 ‘총리창조’로 표현하고 한나라당 수도권지키기 노력이 무산된 상황을 ‘낙원상실’이라는 그림을 이용해 표현했다. 그림 위쪽에 박근혜 대표가 합성되고 아래와 가슴 부분만 가린채 발가벗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의 누드그림에 두 의원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 ‘성적으로 모독’했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코너를 담당한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은 “한나라당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원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방송이 나간 후 정작 시청자들은 별 이의제기가 없었는데도 한나라당이 부당한 모욕을 당했다는 듯 문제삼는 것이야말로 왜곡이라는 것이다. 비틀고 과장해 풍자의 묘미를 갖는 패러디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단순한 풍자를 넘어 비판의 기능까지 도맡게 된 양상이다. 그 흐름에서 패러디는 어디까지나 수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갖는 사안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KBS 시사투나잇 파문에 대한 시청자들의 입장을 볼 때 그 점은 명확해진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시민단체와 일반인들이 패러디를 보는 시각은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이라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물론 과도하게 저속하거나, 특정인을 향한 인신공격성 패러디도 세상에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대상을 명백하게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거나 사회적으로 큰 저항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면 한발짝 물러서서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아량을 갖는 것이 어떨까? 패러디에 관한 한 요즘 사람들은 충분히 자정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나 네티즌들의 주장대로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이명박 시장 홈페이지 글 전문

    ●행정수도에 관해 저 이명박이 말씀드립니다. -수도분할을 중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인터넷에 띄우신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은 잘 읽어보았습니다.그 글에서 “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도 꿈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렇습니다.저 이명박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저의 꿈은 통일수도입니다.대통령께서는 ‘분할된 수도’를 꿈꾸고 계시지만,저는 ‘통합 된 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충청권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온나라가 함께 잘사는 나라,남한과 북한이 하나 되고 함께 잘사는 나라,남북한 7천만 겨레가 합의하는 통일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개혁과 국가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신 것에는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하지만 수도분할은 아닙니다.개혁도 아니고,균형발전도 아닙니다. 사실 수도이전 논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나온 것이어서,저는 선거가 끝나면 당연히 국민의 의사를 물어 재고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께서는 ‘수도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한나라당에서도 재미좀 보라.’,‘정권의 명운을 건다.’,‘지배세력 교체를 위해 천도해야 한다.’,‘수도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정권 흔들기다.’라고 말씀하시는 등 국가대사를 극단적으로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보고,국가의 중대사인 수도이전을 오직 정치적 계산에서 추진한 것이지,국가균형발전이나 수도발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하여 추진한 것이 아님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발표하고 후속 조치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켰습니다.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은 성공한 예가 없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습니다.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수도이전은 지난해 대다수 국민의 반대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저는 그때 국민과 함께 ‘국력낭비를 막았다.’면서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도이전이 수도분할의 망령으로 되살아나 또다시 정치에 남용되고 있고,국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수도이전보다 더 나쁜 수도분할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성난 민심을 의식하여 “수도권 후속대책”을 쏟아내고 있고,국무총리는 ‘수도권발전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수도분할을 기정사실로 몰아가고 있습니다.수도분할로 충청권 주민을 현혹하더니,이제는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주민을 현혹하려 하고 있습니다.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수도분할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쁩니다. 제17대 국회는 2005년 3월 2일 수도를 분할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대통령과 6부는 서울에 남고,국무총리와 12부4처는 충청남도 연기·공주로 이전한다고 합니다.대통령은 3월 18일 이 법률을 공포했습니다. 정말 통탄할 일입니다.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수도를,그것도 행정부를 갈라 나누어 놓은 예는 없습니다.수도분할은 국정운영의 비효율과 국력 낭비,그리고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명백합니다. 요즘은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입니다.국정운영의 효율은 국가경쟁력의 기초입니다.대통령과 국무총리,장관들이 서로 120km나 떨어진 장소에서 근무해서는 국정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원만한 부처간 협의도,신속한 위기관리도 어려워집니다.수도분할은 국가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것으로서,수도이전보다 더 나쁩니다. 수도이전과 수도분할에 정략적으로 담합한 정치권은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16대 국회는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그때 저는 이 법률의 통과를 막기 위해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국민과 함께 사방으로 뛰어 다녔으나,여·야 정치권은 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입헌민주주의는 살아있었습니다.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21일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대의민주주의의 타락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순간이었고,대한민국 헌정사에 한 획을 긋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한나라당은 위헌 결정을 환영하면서,수도이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그러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 또다시 수도분할에 동조했습니다.수도를 두 동강내는 결정에 동조했던 정치권은 역사에 공동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중앙정부는 서울시와 단 한번의 사전·사후협의 없이 수도이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수도이전은 건국 이후 최대의 국책사업입니다.그런데도 중앙정부는 사전에도,사후에도 서울특별시장의 의견을 구하거나,협의를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에도,이해당사자나 전문가와 오랜 기간 기술적·경제적으로 치밀한 사전 검토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합니다.이것은 최소한의 예의이며,필수적인 절차입니다.수도이전은 작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대사입니다.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이러한 최소한의 예의와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정치적 담합으로 수도분할을 기정사실화 해놓고,“후속대책을 마련한다.”는 빌미로 사후적으로 지방정부를 불러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가 아닙니다.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부활이며,참여를 가장하여 지방자치를 억누르는 ‘참여권위주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방자치의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시대에 역행하는 ‘권위주의’ 방식의 모양 갖추기에는 결코 승복할 수 없습니다. 수도분할 반대는 수도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제가 수도분할에 반대하는 것은 수도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대가 아닙니다.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국가균형발전은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로 이룰 수 없습니다.만일 제가 충청권 시·도지사였을지라도,수도이전의 문제점을 똑같이 지적했을 것입니다. 수도이전 문제는 통일을 대비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해양수산부 이전 반대 이유는 지금도 타당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해양수산부장관 재직 시에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지금 보아도 아주 잘하신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는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가면 서울에 따로 사무소를 두어야 하고,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한다.”,“장·차관이 매주 국무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국회에도 출석해야 하는데,서울에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지방으로 이전하면 결재 등 업무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처이전보다는 실질적인 업무와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참으로 올바른 지적이며,지금도 타당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나,지금이나 사정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그런데도 대통령께서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수도권 후속대책”은 국민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수도권 후속대책”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서울시가 이미 계획했거나 추진하는 사업을 자신들이 새롭게 수립한 것인 양 발표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아무런 사전상의도 없이 서울시의 정책을 복사하여 발표한 것은 명백한 표절입니다. 중앙정부의 뚜렷한 역할이나 예산지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여당에서는 “서울시 청사를 광화문네거리에 대형 건물로 짓겠다.”고 하고,정부에서는 “대학로 발전방안”까지 발표했습니다. 대학로를 꾸미는 일은 기초자치단체인 종로구가 추진하고 있는 고유 업무이며,“청계천 역사문화벨트 조성”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역점사업입니다.그런데도 이러한 사업들을 마치 중앙정부가 마련하고 주도하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며,그간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촉구합니다. 정부·여당은 수도분할로 텅 비게 될 정부청사에 “벤처단지 조성”과 “초고층 업무빌딩 유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수도권과밀 해소를 위해 수도분할을 한다면서,그 후속대책으로는 오히려 수도권과밀을 부추긴다면,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입니다.정부부처가 떠난 자리에 기업을 유치하겠다면,처음부터 연기·공주에 유치하는 게 훨씬 더 낫습니다. 수도이전과 수도분할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 해소’를 이유로 추진되어 왔습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저의와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선거 때마다 이용하려는 정치책략임을 모든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심 쓰듯이 “후속대책”을 급조하고 남발하는 것은 잘못된 수도분할을 더욱 잘못되게 하는 일이며,충청권과 수도권,나아가 국민을 두 번 속이는 일입니다.국민을 두려워한다면,국가균형발전을 원한다면,이제는 진정으로 지방을 도와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수도분할과 “수도권 후속대책”은 바른 길(正道)이 아닙니다.국민의 행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그릇된 길(邪道)입니다.정부·여당은 지금이라도 통일한국과 7천만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바른 길로 돌아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길로 가기를 호소합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진정한 지방분권과 재정지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려고 한다면,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재원을 과감히 지방으로 이양해야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집중을 막기 위해 백약을 다 썼으나 무효였다고 하고 그래서 수도이전을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실은 백약 중 가장 효험이 있을 약은 제쳐두고 있었습니다.그것은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지방에 나누어 넘겨주는 일,즉 진정한 ‘분권’입니다. 중앙집권의 낡은 틀을 그대로 둔 채,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을 한다고 해서 지방이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균형발전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지방에 실질적인 결정 권한과 재원을 주면,지방정부는 지역특성에 맞는 발전을 이뤄 나갈 능력이 있습니다.세원이 많은 곳에서 세금을 더 거두어,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수도분할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의 일부를 지방에 지원해야 합니다.그러면 지역별로 특색에 맞는 발전을 이루어 지역균형발전은 빨라질 것입니다. 정부가 중앙행정기관을 인위적으로 강제 배분하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이며,지방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울의 과밀은 해소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수도이전 또는 수도분할의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 과밀 해소 및 국가균형발전입니다.수도이전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산업·교육의 기능을 분산시키고,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계화와 개방화의 시대입니다.수도권의 기능을 억제한다고 해서,이것이 곧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왜냐하면 자본과 시설,사람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지난날 수도권정책이 수없이 반복되었어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도권 집중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서 그 반사이익이 상해,동경 등 다른 경쟁도시의 몫으로 돌아간다면,그것은 오히려 서울과 지방을 공멸시키고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수도권 집중을 억제해도 비수도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면,비수도권의 발전은 그 지역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수도분할의 이유를 들면서 국가균형발전보다 수도권 과밀을 걱정하셨는데,이것은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현재 수도권은 과밀화 진행 단계를 지났습니다.서울의 인구는 줄고 있고,서울의 교통,환경,주거 여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인구과밀을 걱정했으나,1990∼2000년대에는 인구의 과소를 걱정할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서울시는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실제로 구체적인 성과를 착실히 이뤄가고 있습니다.서울에 세계의 첨단기업이 모여들고 있는 것은 그 증거입니다. ●공장의 위치보다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합니다. 정부는 지금 수도권규제완화를 거론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일부 규제는 필요하겠지만,수도권의 경쟁력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할 것입니다.그간 서울시는 수차례에 걸쳐 지나친 수도권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건의했으나,반영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세계화 시대입니다.세계 각국이 자본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수도권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면,지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갑니다. 공장의 위치가 수도권에 있느냐,지방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일자리 창출이 중요하고,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는 흥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는 별개의 사안입니다.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전제로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대통령께서는 “행정수도이전 정책과 수도권규제 개선은 수도권과 지방의 정치적 빅딜로서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이는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를 “맞교환하자.”는 주장인데,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수도이전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대사로서,수도권규제 완화와는 그 성격과 비중이 다릅니다. 수도이전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도권의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는 것은,마치 ‘정치적 흥정’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수도이전을 해도,지금의 수도권에 대한 규제가 합리적이라면 그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옳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수도이전을 하지 않더라도,수도권 규제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이를 철폐해야 할 것입니다. 그간 서울시가 수도권규제 완화와 수도권발전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중앙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수도분할에 대한 수도권주민의 분노가 들끓자,이를 달래려는 ‘사탕발림’ 식으로 수도권발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국가경영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시류에 따라,정치 분위기에 따라 오락가락해서는 안 됩니다.중앙정부가 진정으로 수도권발전을 원한다면,서울시가 꾸준히 건의해 온 방안을 검토하기를 바랍니다. ●서울은 지방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동북아중심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울의 경쟁력은 필수입니다.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입니다.대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주변 강대국의 주요 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동경,북경,상해,싱가포르 등 경쟁도시들과 한판 승부를 벌어야 하고,이겨야 합니다.그래야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질 것입니다.그런데 멀쩡한 수도를 두 동강낸다면,서울과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일본 도쿄도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적이 있습니다.오랜 세월 검토하다가,지난 2003년에 수도이전 논의를 중단했습니다.오히려 도쿄의 도시경쟁력을 키워주고 있습니다.2002년 7월 “수도권·기성시가지의 공업 및 제한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여 동경의 경쟁력이 곧 일본의 국가경쟁력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럽의 국가들도 20세기에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분산정책을 취했습니다.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대도시의 경쟁력을 육성하는 새로운 국가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런던,파리,로마,프랑크푸르트,베를린,그리고 브뤼셀 등 유럽 각국의 수도들은 유럽연합(EU)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집중전략을 다시 펴고 있습니다. ‘수도이전이 국가균형발전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서울은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지방도시와 경쟁하지 않습니다.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도쿄,상하이,베이징,홍콩,싱가포르 등 대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아시아 주요 도시와의 경쟁에서 서울이 이겨야 중앙정부가 표방하는 ‘동북아중심국가’도 성공할 것입니다. ●서울과 지방은 상호보완 속에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국가균형발전은 획일적인 형평성을 지향하는 ‘하향평준화’가 아닙니다.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상향일류화’가 되어야 합니다.그러자면,수도권과 지방이 상호보완을 이루어,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부는 서울과 지방을 분열시키지 않아야 합니다.서울과 지방은 서로 돕는 보완관계에 있습니다.예를 들어,전라남도의 관광단지가 발전하면 서울의 시민들이 가서 보고,지방의 무공해 농산물은 수도권시민이 이를 소비합니다. 수도를 약화시켜 다른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수도를 여러 개 만들어서는 안 되며,서울·대구·광주는 각자 특색 있게 발전시켜 상호보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 ●수도이전에 쓸 재정이 있다면 통일비용으로 아껴 두어야 합니다. 수도이전은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과 통일한국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구상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고,경제난이 겹쳐 체제가 내구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이러한 정세를 감안할 때,통일이 언제 실현될 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그러나,정부가 수도를 분할하여,새로운 행정도시를 완성하는 시기 이전에 통일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도를 온전히 지키는 일은 “통일 다음으로 중요한 이 시대의 애국과제”라고 생각합니다.그 이유는 수도가 국정수행의 중심이자,국가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통일한국과 7천만 겨레,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생각한다면,수도를 두 동강내서는 안 됩니다. 국가경영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수도분할은 시급하지 않습니다.지금은 수도분할이 아니라,민족통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됩니다.남·북한이 통일 후 공동 번영을 이루려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할 것인데,이렇게 한가하게 국력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수도분할에 사용할 재정이 있다면,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재원으로 아껴 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100만 명에 이르는 젊은 실업자가 있습니다.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입니다.수도이전에 쓸 돈이 있다면,차라리 그 비용으로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현명합니다. ●국익을 위해 결심을 바꾸는 것은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입니다. 국가지도자는 결심을 하고 집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때로는 결정을 취소하고 결심을 바꾸는 용기도 필요합니다.개인적인 차원의 명분보다 국가의 명운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노 대통령께서 지도자로 높이 평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70년대 말에 추진했던 ‘행정수도이전계획’은 수도의 영구이전이 아닌 임시 행정수도로의 이전계획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언급하여 한미관계가 어려워지고 안보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기 위한 국가안보상의 필요에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재는 그 때와 모든 국내외 상황과 여건이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동서냉전 시대가 가고 남·북 긴장이 완화되었으며,이제 세계는 경제적으로 국경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북한의 기습공격을 대비해야 했던 30년 전에는 수도이전이 논의될 만 했을지라도,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세계와의 경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6년에 ‘제6회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경제여력이 없다는 이유로,그리고 소요 재원을 국가적으로 더 시급했던 산업발전에 쓰기 위해 이를 반납했던 적이 있습니다. 행정중심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입니다.저는 젊어서부터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부터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일해 왔습니다.그러나,세계 어느 곳에서도 수도를 분할한 사례를 본적이 없고,브라질·호주·말레이지아 등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나라의 경우에도 수도이전에 성공한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결국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분할도 국력낭비로 이어질 것이 명백합니다.사정이 이런데도 꼭 해야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가지도자는 단순히 정책을 수립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닙니다.때로는 국익을 위해 기존의 정책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지도자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걱정하는 혜안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결단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대통령께서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수도분할을 재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만약 생각을 바꾸신다면,우리국민들은 은퇴 후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것이라 믿습니다. 2005년 3월 24일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 [시론] 독도에 일제식민 전시관 세우자/이숙영 방송인

    [시론] 독도에 일제식민 전시관 세우자/이숙영 방송인

    중국의 고전 한비자에 ‘반찰법(反察法)’이라는 게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눈에 보이는 직접적 현상만 보려하지 말고 그 이면을 뒤집어보라는 충고이다. 이런 관점에서 독도문제를 되짚어 보자면 우리가 흥분하면 할수록 저들은 쾌재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 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 3000회 특집으로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다. 가서 보니 독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본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독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오히려 우리쪽 뉴스화면이 인용 보도된 뒤 그 문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이 생겨나는 듯했다. 잘 아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혼네(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겉치레)로 두개의 얼굴이 있다고 하는데, 흥미로운 건 쓴 것을 먹게 하고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뒤의 반응이다. 한국인은 백이면 백, 얼굴을 찡그리고 뱉어내는데 일본인들은 뱉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독도에 관해서만큼은 우리도 이런 이중전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즉 민간차원에서 경제·문화교류는 계속하되, 정치·외교적으로는 독도소유권을 끈질기고도 이성적으로 주장하는 전법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는 감정적 대응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손자병법에 보면 가장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오로지 돌격만 명령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최근 독도 관련 보도나 정부 정책들을 보면 광분과 개탄만 있을 뿐이지, 정작 외교적 실리나 전략은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적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해내고 그들의 내면을 읽어 공수양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령 식당이나 골프장에 걸린 일본인 출입금지 팻말이 일시적 기분풀이는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본인들은 아무도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외교부는 전혀 몰랐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는 강경 메시지 역시, 대통령이 아닌 주무장관 입에서 나오게 하고, 대통령은 슬쩍 빠져서 소위 외교적 발언이라는 걸 하였더라면 모양새가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들의 흥분은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나, 대통령의 흥분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또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결국 그들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도쿄 생방송 후 느낀 점은 한류가 아직은 대단하다는 점이다. 일본 내의 우익세력들은 한류가 빨리 사그라지기를 바라며 거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나 본데, 현지에서 체감되는 한류 붐은 상상 이상이었다. 겨울연가에 이어 현재 일본 TV에서 방영중인 ‘천국의 계단’을 보려고 일찍 귀가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고, 도쿄 시내 음반 가게에는 보아는 물론이고 신승훈이나 신화 앨범을 찾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예전에는 한국인을 무시하던 중·장년층들도 겨울연가의 히트 이후에는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한류로 인한 경제 효과가 4조 5000억원이라는 보도도 있고 보니, 실로 어머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내 자신이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몇 년전만 해도 호텔 종업원들이 한국인들을 은근히 무시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그들의 태도마저 바뀌어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 취업해 있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 교포, 유학생, 한류 연예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건, 독도는 당연히 우리 것이므로 이 문제로, 모처럼 꽃핀 한류에 찬물 끼얹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언론, 그리고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고 공수 양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아 참, 이런 방법은 어떨까?어차피 실제 지배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가 유리하고, 마침 독도관광도 허용이 됐으니, 독도에다가 일제 식민시대의 만행을 알리는 전시관이나 위령탑을 세우면 어떨는지. 자기네들이 떠들면 떠들수록 부끄러운 과거가 회자될 테니까 결국은 조용해지지 않을까? 이숙영 방송인
  • [우영희의 출동! 요리구조대] 너비아니와 양송이 볶음

    [우영희의 출동! 요리구조대] 너비아니와 양송이 볶음

    결혼 10년차 주부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요리솜씨가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영희 선생님이 하는 요리를 따라 했더니 너무 맛있고 남편도 잘 먹었어요. 이번에 제가 배우고 싶은 요리는 손님접대용 음식입니다. 게다가 결혼 10년 만에 꿈에 그리던 새집으로 이사했거든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느낌으로 무지무지 행복하고 감사하답니다. 이사온 지 8개월이 넘도록 집들이를 못했는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멋진 요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에서 김주은 올림. “결혼 10년 만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니. 정말 축하드려요.” 현관을 들어서던 우영희씨가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넸다. “네, 이사온 지 8개월 됐어요. 아직도 가슴이 설레 잠이 안 와요.” 김주은씨의 얼굴이 다소 상기됐다. “집들이를 하고 싶다고요, 그러면 한식이 어떨까요?”라며 우씨가 불고기를 응용한 너비아니와 양송이볶음을 제안했다. “선생님, 너비아니는 고급 음식이잖아요. 파티음식에 좋을 것 같아요.”주은씨가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쇠고기를 손질했다.“주은씨, 고기가 너무 얇게 썰렸네요. 두께감이 있는 것이 더 좋은데…. 그리고 기름기가 많아서 손질이 필수네요.”우씨가 지적했다.“잘 몰라서 그냥 좋아 보이는 것으로 샀는데, 이를 어쩌죠? 기름기가 좀 있어야 맛있다고 하던데….”주은씨가 당장 울상이다. 칼을 집어든 우씨,“이렇게 두꺼운 기름을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높아져요. 고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처럼 하얗게 퍼진 형태가 보이지요? 이 정도가 적당하답니다.” 자세히 설명했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중요해요. 전 요리를 해서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엔도르핀이 솟구치는데, 주은씨도 그런 행복을 느끼게 될 거예요.” 고기의 기름기를 모두 제거한 우씨는 콜라를 찾았다. “선생님, 목마르세요?” 주은씨가 당황한듯 되물었다.“콜라는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작용을 해요. 키위나 배도 이런 작용을 하지만 콜라는 단맛이 강해 설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라고 설명하던 우씨는 콜라는 칼로리가 더 낮다고 설명했다. “고기 600g에 콜라를 반컵 정도 넣어 10분간 재우면 됩니다.”라고 설명하던 우씨는 주은씨에게 피망을 약간 듬직하게 썰도록 했다.“반듯하게 썰지 말고 어슷하게 써는 것이 보기 좋아요.”우씨의 요리팁이다. “참, 어떤 직장에 다녔어요?”우씨가 묻자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겁고 보람돼 여태껏 다녔어요.” 주은씨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은씨는 “수학은 공식이 많은데 요리는 공식이 없이 정성과 노력에 의해 맛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요리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라며 나름대로 요리와 수학의 차이점을 말했다. 양념장을 만든 주은씨가 재운 고기에 끼얹으려고 하자 우씨가 막았다.“양념장에 고기를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해줘야 고기에 간이 제대로 밴답니다. 고기 위에 양념장을 끼얹거나 재료 하나씩을 고기 위에 놓으면 맛이 안 나요.”라고 충고했다. “선생님, 양송이는 어떤 것이 좋아요?”양송이는 줄기를 만져 보아 단단하고 통통하며 짧은 것이 좋단다.“줄기가 푸석푸석한 것은 벌레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우씨는 생각난 듯 “쇠고기와는 양송이가 어울리고, 돼지고기엔 표고버섯이 어울립니다.”라고 지도했다. 이들은 고기를 볶고 버섯과 피망도 볶아냈다. 익힌 고기를 먹어본 주은씨,“콜라의 효능이 장난이 아니네요! 버섯이랑 피망이랑 먹으니 더욱 맛있어요.” 맛에 감탄했다. 새집에 가득 퍼진 맛있는 고소한 냄새에 주은씨의 행복이 넘치는 듯했다. ■ 너비아니와 양송이 볶음 재료 쇠고기(등심살) 600g, 양송이 300g, 노랑·파랑·초록 피망 적당량, 콜라 1/2컵, 식용유 적당량, 간장 1큰술, 설탕 1/2큰술 양념장(간장 5큰술, 설탕 21/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파 2큰술, 후추 적당량,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2큰술:모두 넣고 저어준다) ①쇠고기는 등심살의 기름을 제거한다. ②쇠고기를 콜라에 넣고 10분 가량 재운다. ③색색의 피망을 적당량으로 엇박자로 썬다. ④재워둔 고기에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다. ⑤팬에 식용유를 넣고 양송이, 간장, 설탕을 넣고 볶는다. ⑥썰어둔 피망도 소금간해서 팬에 볶는다. ⑦양념장에 재워둔 고기를 팬에 볶는다. ⑧열보존율이 높은 그릇에 담아낸다. 이번주 당첨자는 ‘도와주세요….’란 글을 올려주신 ‘초보주부’님입니다. 초보주부님에겐 오퀸이 제공하는 프랑스제 4인용 디너세트를 드립니다. 요리와 관련된 재미난 글을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의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상담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이메일도 꼭 남겨주십시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그곳에 다시 가봤섬 (2) 푸껫

    그곳에 다시 가봤섬 (2) 푸껫

    ‘미소의 나라’ 태국의 푸껫이 아름다운 미소를 되찾았다. 높고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푸르다. 마치 언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냐는 듯 바다는 평온했고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거리와 해변, 호텔 등에서는 관광객들을 밝은 미소로 맞았다. 세계적인 휴양지 푸껫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여행지. 저렴한 비용으로 달콤한 휴식과 각종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해 다양한 밤문화가 있으며, 치안상태가 좋아 밤거리를 맘껏 활보할 수 있다. 여기에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는 타이 음식을 실컷 즐길 수 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면 거리 곳곳에서 맛깔스러운 음식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재탄생한 푸껫. 이제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다.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푸껫섬 남단에 위치한 나이한 비치. 푸껫 현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해변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다.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나는 푸른 바다를 반달 모양으로 휘감은 해변. 당장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밀려올 정도로 아름답다. 남국의 태양이 내려쬐는 해변에는 가족 단위 휴양객들이 파란색 파라솔 아래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고, 수십여척의 요트가 바다에서 넘실댄다. 이 곳에는 특히 누구의 시선에도 간접받지 않는 자유가 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꺼리낌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누드 상태에서 선탠을 즐기는 외국인 휴양객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해변가 언덕에 위치한 ‘르 로얄 메리디앙 요트클럽’에서는 해변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허니무너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이 곳은 천상에서의 휴식을 배가시키는 스파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어 서쪽 해변을 따라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까따노이 비치와 까따비치, 까롱비치의 모습이 잇따라 펼쳐졌다. 모두 안다만해의 모습을 품은 해변이지만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푸껫은 높은 산, 높은 언덕이라는 뜻의 말레이어 ‘푸낏’에서 유래됐다.”는 현지인들의 설명처럼 해변을 따라 작은 언덕이 줄이어 있고, 어디에서 보나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이 들어왔다. 푸껫 최대의 해변인 빠통비치에 이르자 가슴이 활짝 열렸다. 이곳에 쓰나미 피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지인들은 “쓰나미로 바다 물길이 뒤집혀 바다가 개발 이전의 모습과 같이 깨끗해 졌다.”고 설명했다.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해변의 풍경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빠통비치 인근에 위치한 다이아몬드클리프 리조트(www.diamondcliff.com). 창문을 열자 상쾌한 바닷바람과 함께 빠통비치 멀리 일몰의 장관이 연출됐다. 푸껫의 석양은 특히 아름다워 바라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낙조는 한순간이지만 아쉬운듯 여운은 길게 갔다. ●빠통비치의 화려한 밤거리 하루의 절반은 밤. 푸껫의 나이트라이프 또한 화려하다.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즐길거리가 충분하다. 나이트라이프의 중심지는 빠통 비치.150여개의 바와 스몰펍이 있다. 숙소인 다이아몬드 클립 리조트에서 택시처럼 활용되는 송태우로 5∼10분 거리에 있다. 송태우는 인원에 관계없이 편도에 약 100바트. 해변을 따라 세로로 이어진 타웨웅로드와 가로로 이어진 빠통비치로드, 방라로드 주변이 불야성을 이룬다. 젊음을 불사르는 나이트 클럽, 자극적인 붉은 불빛이 환상적인 노천카페 등은 이국적인 모습이다.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비록 가짜지만 세계 각국의 명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무명 작가들의 그림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이색적인 장소는 에로틱 음악에 맞춰 스트립쇼를 보여주는 아고고빠. 속칭 삐끼(호객꾼)들의 손에 이끌려 입장료 50바트를 내고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올누드쇼는 아니며 쇼가 비교적 단순하다. 간단히 맥주 한잔하기에 적당하다. 최대 쇼는 웅대한 스케일의 ‘판타시쇼’(Fantasea). 팬터지와 바다를 접목한 말로 볼거리중 하나다. 쇼는 코끼리와 닭 등 동물쇼와 마술, 태국의 전통무예인 무에타이, 서커스 등 2시간여동안 관객의 혼을 쏙 뺀다. ●몸으로 즐기는 타이 마사지 태국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 타이 마사지. 푸껫 빠통 시내에 가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타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2시간 온몸을 지압하는 마사지를 받고 나면 하늘을 날듯 가뿐하다. 마치 온몸의 뼈를 다시 조합해 놓는 느낌이랄까. 특히 묘한 중독성(?)까지 있어 대부분 여행객들이 짧은 여행에도 2∼3번 더 마사지를 찾는다. 마사지를 받기전 알아두어야 할 필수 용어는 ‘낙낙’(세게)과 ‘바오바오’(약하게). 타이 마사지는 지압식으로 처음 받을 경우 무척이나 아프다. 때문에 간단한 용어를 알아두면 적당한 세기로 받을 수 있다. 간혹 용어가 헷갈려 바꿔 말하는 경우가 많아 고생을 하기도 한다. 한 여행객이 용어가 헷갈려 ‘낙낙’을 외치다 결국 ‘으악’하는 비명을 질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마사지 숍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신 마사지는 1시간에 200∼250바트,2시간에 400∼500바트 정도이며, 발 마사지만 1시간 받을 경우 250바트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다. 여행객들이 농담삼아 타이마사지 외에 2가지 마사지가 더 있다고 하는데 왕족들이 받는 로열마사지와 은밀하게 이뤄지는 퇴폐 마사지인 ‘스페셜’(?) 마사지. 그러나 스페셜 마사지는 뒷골목에서 성행하는 만큼 범죄 타깃이 될 위험성이 높은 데다 병에 걸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어 절대 금물. 럭셔리하게 마사지를 즐기고 싶다면 호텔을 이용하면 된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안다만해에 위치한 푸껫은 제주도의 절반 크기로 방콕에서 890㎞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인구는 23만여명이다.평균기온은 29도로 4∼5월이 가장 더우며,11∼3월은 건기,6∼10월은 우기다.언어는 태국어지만 호텔과 시내에서 영어가 통용된다. 화폐는 바트화로 1바트에 30원 정도. 달러가 통용되지만 한국 돈은 환전하기 쉽지 않다.교통수단은 택시처럼 이용되는 송태우(일명 툭툭이)가 있는데 대개의 거리는 100바트 정도에 흥정을 하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가격을 미리 정해 놓아야 나중에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여행상품은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에서 푸껫 최고의 리조트인 르 로얄 메르디앙 요트클럽과 힐튼 아카디아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준비했다. 이달말까지 판매하는 요트클럽은 3박 5일에 59만 9000원,4월 한달 동안 판매하는 힐튼 리조트는 56만 9000원이다(02-536-4200).
  • [씨줄날줄] 베르테르 효과/이용원 논설위원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한다. 약혼한 여성을 사랑한 끝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연애담이라기보다, 사랑·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성을 추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열정 그 자체였다.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그에 못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내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가 급증한 것이다. 책은 다음해 판매금지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세상에 나온 지 딱 200년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도 일종의 전염 현상이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자살 소식이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온 뒤의 두달 동안 자살자 수가 평상시보다 평균 58명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제 주장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립스의 가설이 나오자 구미 각국의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지만 결론은 찬반으로 확연히 갈렸다. 어쨌거나 그뒤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불길한 용어는 사회학과 정신의학의 영역에 자리를 마련한다.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이은주씨가 지난달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자살자가 급증했다는 검찰 발표가 나왔다. 올 들어 이씨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하루 평균 자살자가 0.84명이었는데 그뒤 23일동안 2.13명으로 2.5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이씨와 같은 자살 방식을 택한 사례가 50%쯤 늘었고, 연령대 별로 보아도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15.5%에서 30.6%가 됐다. 전형적인 베르테르 효과라 할 수 있다.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은 전염성에 있다. 저명인사의 자살 소식을 접한 충격이 바이러스처럼 내재해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가해지면 충동적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뉴스를 전하는 언론매체, 또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네티즌 모두가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써 자살 대책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까닭이 시대상황에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함께 걷어내야 자살이라는 악질(惡疾)을 잠재울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해경4명 억울한 옥살이 12년

    해양경찰 대원이 1955년 중국으로 피랍돼 12년동안 옥살이를 했으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사실이 23일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해양경찰대 소속 경비정인 ‘견우정’ 대원이었던 안영진(80·충북 보은군 수한면), 박래봉(79·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김창호(77·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주시완(81·인천시 남구 봉춘동)씨 등 4명은 지난 6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이같은 사실을 진정했다. 안씨는 당시 계급이 경사였고 박씨 등 3명은 순경이었는데, 이들은 같은해 12월25일 오전 4시쯤 200t급 견우정에서 근무중 야음을 틈타 평화선을 침범해 불법 조업하던 중공 어선을 나포하던 중 오히려 피랍됐다. 견우정의 제1승선조인 이들은 당시 중공 선단중 한 어선에 재빨리 올라탄 뒤 저항하는 어부들을 신속히 제압하고 조타실, 기관실 등을 장악했으나 어둠속에서 추격해온 7∼8척의 중공 어선과 교전중 본선인 견우정과 떨어지면서 피랍되고 만 것. 이들은 피랍 과정에서 총 개머리판과 몽둥이 등으로 유혈이 낭자하게 구타당한 뒤 중공 정부로 넘겨져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지난(濟南)시의 감옥에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극한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1967년 4월 중공 정부가 구형한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 홍콩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돌아왔으나 이미 행방불명을 이유로 면직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피랍된 뒤 1961년11월까지 종전대로 가족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왔으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마저도 중단해 가족들 역시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었다. 이들은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온 뒤 7개월만에 복직됐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정년퇴직했으나 중국에서의 옥살이 기간이 복무기간에서 빠져 퇴직금. 연금에서도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특히 이들 중 주씨는 작년 8월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 등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박씨는 당시 고문으로 청각을 잃었고 안씨와 김씨도 모두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 매일 병원 신세를 질 정도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중앙PSAT연구소 실전풀이]

    ■ 문제 다음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관리의 가치판단 기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중앙부서의 어느 국장이 자신의 자리를 팔겠다고 신문지상에 경매광고를 내었다면 아마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다만 100년쯤 전의 일이다. 250년쯤 전에는 프랑스의 위대한 개혁주의 정치철학자였던 몽테스키외가 관직을 돈이 많은 사람에게 매매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지지했으며, 비슷한 주장을 영국에서 벤담도 하고 있었다.17,18세기에는 실제로 관직매매가 성행하였다. 관직을 매매한 이유도 다양하다. 국왕이 전쟁을 하거나 외국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해군을 강화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관직을 팔았던 것이 시발점이 되었고, 이를 사들인 사람이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매매하기도 하였다. 특히 나이가 들어 활동이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팔아서 노후생활을 하기도 한다. 연금인 셈이다. 과거 봉건시대에 국왕에게 공이 있는 자를 영주로 임명하고 봉납을 받거나, 봉건영주가 기사에게 토지를 배분하고 충성과 일정한 봉납을 받는 것과 관직매매가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관직매매가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을 행정부패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복자나 정복자의 후손이 국왕이 되어 정복된 영토내의 국민이나 국가를 소유하기 때문에 관직이 모두 국왕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이러한 가산국가에서는 관직을 어떻게 처분해도 정당성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시대에는 국왕이 변덕을 부려서 전혀 능력과 성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나, 아첨 잘하는 탐욕스러운 귀족을 관료로 임명하는 것보다는 돈 많은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벌면 농민도 관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직을 농민에게 매매하는 것은 농업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검소하고 열심히 돈 버는 중산층이 관료로 임명될 가능성 때문에 벤담도 관직매매가 개혁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 극히 부패한 행정행위가 극히 개혁적 행위이던 때가 있었다.-(행정학의 새로운 이해), 정정길-중에서 (1)염결(廉潔)이란 목민관의 본무(本務)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2)군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는 무거운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3)무릇 조정의 권귀(權貴)가 사사로이 글을 보내어 간절하게 청탁을 하더라도 이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4)절(節)이란 한도로 제약하는 것이다. (5)가난한 친구나 곤궁한 친척은 힘을 헤아려서 구제해야 한다. ■ 풀이 및 정답 윗글은 시대에 따른 행정부패개념의 변화를 나타낸 글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때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때가 있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는 점이다. 과거 관료들이 국민 위에서 군림하던 수탈 행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대의 관리는 국민(고객)에게 봉사(service)하는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즉 현대의 공직자는 최우선적으로 모범적 윤리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청렴한 공직자의 자세를 표현한 예시 (1)이 답이 된다. ■ 보충설명 공직자의 자세(예시 (1):목민심서 율기 6조)에 대해 더 알아보자. -염결(廉潔)이란 목민관의 본무(本務)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염결하지 않고서 능히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염결이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염결한 것이니, 사람이 염결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무릇 지혜가 깊은 자는 염결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으로써 경계를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 목민관이 염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을 지목하여 마을을 지날 때 더러운 욕설이 비등할 것이므로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뇌물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누가 비밀을 지키지 않으랴만 한밤중에 한 일이 아침이면 드러난다. 보내는 물건이 비록 사소하다 하더라도 은정(恩情)이 이미 맺어졌으니 사사로움이 이미 오고간 것이다.(중략)청탁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염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 아름다운 이름이 날로 빛나면 또한 인생 일세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
  • [사설] 라이스의 ‘다른 선택’, 때아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어제 중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안보리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날 서울에서는 “북한은 주권국가…6자회담에서 북·미대화가 가능하다.”고 유화적 발언을 했었다. 그의 한마디 마다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하루만에 온건-강경을 왔다갔다 하는 듯이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라이스가 이번 동북아순방을 통해서도 북한을 회담장으로 이끌 결정적 카드를 내놓지 않은 배경에는 한·미간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라이스의 방한 결과에 대해 정부는 ‘주권국가 언급’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주목했다. 반면 대부분 미국 언론들은 라이스 장관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도록 한국과 중국에 촉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중국과 미국·일본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미묘한 대북 입장차를 먼저 조율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북핵 해법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부시행정부가 대북 압박을 강화할 목적으로 북한이 6불화우라늄을 리비아에 수출했다는 거짓정보를 아시아 우방국에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사실이라면 한·미간 북핵 간극은 더 벌어진다. 정부는 라이스가 방송인터뷰에서 밝힌 ‘북 안보 문서화 가능’언급을 발전시킴으로써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오락가락하는 말로는 북한을 대화로 유인하기 힘들다.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다짐을 문서로 만들어 6자회담 전에 북한에 전달하는 방안을 미국측과 상의해보아야 한다.
  • [우리동네 이야기] 성동구 마장동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한국 포크음악의 대부 김민기, 작곡가 김희갑 등은 모두 마장동에 단골집이 있다? 이들의 단골집이란 마장동 하면 연상되기 쉬운 ‘고깃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장동에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이끈 숨겨진 주축 중 하나인 ‘유니버설 레코드(02-2293-3390)’가 있다. 지금은 기획사들마다 독자적인 음반 녹음실을 둔 경우도 많고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와 악기를 이용해 음반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부터 약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에는 서울, 장충, 유니버설 등 단 세 곳의 녹음실만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녹음전문 엔지니어 이청씨가 운영하는 마장동 유니버설 레코드에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가수나 작곡가들의 녹음작업이 많았다. 신중현, 김민기, 김희갑, 산울림, 송골매, 펄시스터스 등이 이곳에서 음반작업을 거쳤다. 최근에는 특유의 미성으로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가수 김경호씨나 그룹 신화의 멤버인 전진씨의 아버지 찰리박이 음반을 녹음했다. 서울 성동구에 속한 마장동은 조선 초기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다. 마장동의 옛이름 가운데 웅마장리(雄馬場里),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옛이름중 자마장리(雌馬場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마장동에서는 수말을, 자양동에서는 암말을 키웠던 곳으로 추측된다. 지난 1963년까지 운영되던 종로구 숭인동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마장동 ‘우시장’은 리모델링해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장동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건물 19∼20층에는 서울시내 도시고속도로를 종합관리하는 ‘교통관리센터’가 있다. 내부순환로의 차량이동대수와 평균속도, 사고여부 등의 교통정보를 30초 단위로 수집분석해 도로변 전광판이나 인터넷(smartway.seoul.go.kr)이나 자동응답전화(02-2295-2119)로 알려준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마장동은 청계천 복원의 대표적인 수혜지역으로 손꼽힌다. 청계고가도로가 지나 시계가 막히고 교통흐름이 좋지 않았던 이 지역은 청계천변을 조망할 수 있어 기존 아파트와 신규분양 아파트 모두 인기가 높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마무리될 때쯤 마장동에는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등의 자료를 보관, 전시할 청계천 문화관도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도쿄서 FM공동이원방송 마친 DJ 이숙영 씨

    “‘강경 일변도는 일본 우익을 돕는 일’이라는 말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말 일본 도쿄에서 ‘도쿄FM’과 공동 이원방송을 마치고 돌아온 방송인 이숙영씨는 21일 독도 문제에 대한 ‘차별화된 대응’을 강조했다. 공동 방송은 이씨가 진행하고 있는 ‘SBS라디오 파워FM(107.7㎒)’과 도쿄FM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를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전달하는 것으로, 처음 시도되는 행사다.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한류 붐 현상을 진단하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에서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부터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이씨의 팀은 예정대로 행사를 치를 것인가부터 심각한 고민을 했다. 반일 감정의 분위기를 타고 행사를 반대한 청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방송에서 ‘우정의 해’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꺼내지 못하고 왔다.”면서 “유명 일본 가수들을 출연시켰으나 출연 비중이나 일본어 인터뷰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이런 심적 부담감에서 워낙 ‘일본’‘독도’를 많이 거론하다 보니, 도쿄FM의 스태프들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더라.”고 이씨는 소개했다. 이어 “일본인 가운데는 ‘다케시마’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지금 독도가 문제가 됐는지도 모르더라.”고 전했다. 반면 현지 활동중인 체육·연예인들은 대단히 민감해하고 있다고 한다.“안정환은 독도 문제를 묻는 한국 기자에게 ‘강한’ 톤으로 답했다가 현지 소속팀으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고, 이런 사정을 아는 가수 보아는 아예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하면 민간 교류행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문화 통로’의 차단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에는 일본 뉴스도 한국 뉴스의 화면을 보도하며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면서 “국내에서의 일부 선동적인 ‘애국 마케팅’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영혼의 고백’ 녹아든 색채추상

    무릇 예술은 자기고백의 산물이다. 예술작품에는 어떤 형식이든 작가의 삶의 흔적이 서려 있다. 서양화가 정경자(66)의 작품은 그 두드러진 예다. 정경자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개인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 김구 계열이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으면서 집안이 기우는 아픔을 겪었다. 고향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일본여자미술대학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한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런 ‘경계인’의 입장으로부터 얼마간 자유로워진 것은 프랑스로 건너가면서부터다.1970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하면서 그는 예술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90년대 중반.50대에 뒤늦게 인권변호사 이흥록과 결혼한 그는 지금 경기도 양평에 정착해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원로 여성화가 정경자가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관훈동 학고재아트센터에 마련된 ‘봄의 소리’전은 국내 화단에는 아직 낯선 이름인 그의 화풍과 인생 내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출품작은 50여점. 작가의 어린시절 정신적 외상은 초기의 인형그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인형들은 한결같이 복잡한 창살이나 견고한 성벽에 갇혀 있다. 하지만 파리시절로 들어서면 작품은 한층 밝고 환상적인 색채의 신(新)구상화풍을 띤다. 이번에 선보인 ‘몽마르트의 봄’‘골목에서’ 등은 멀리 사크르 쾨르 성당이 보이는 파리의 거리 풍경을 원색으로 그려낸 대표작들이다. 작가의 ‘양평시대’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파리시절의 자유분방한 원색은 이제 온화하고 부드러운 파스텔조로 바뀌었다. 도회감각의 경쾌한 선들도 점차 사라져 자연의 색채추상에 녹아들었다. 작가는 오랜 외국생활에서 잊고 지내던 고국의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같은 마음자리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바람·물’‘호반’‘어스름’‘봄의 소리’ 같은 작품들이다. 오로지 색의 농담을 통해 자연의 서정을 풀어낸 이 작품들은 더없이 따뜻하고 경쾌하고 투명하다. 그것은 곧 작가의 영혼의 표백이다.29일까지 (02)739-493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