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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 기업은 亞 사회경제문제 해결 대안”

    “사회적 기업은 亞 사회경제문제 해결 대안”

    “사회적 기업은 실업과 양극화 등 신흥 경제국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 사회적 기업 전파에 힘써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번엔 해외로 그 무대를 옮겼다. 28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26일부터 3일간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 등에서 열린 경제분야 국제 학술 행사인 ‘상하이 포럼 2012’에 참석해 아시아 각국의 사회경제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 모델을 제시했다. 최 회장이 각계 지도층이 모인 국제 행사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은 올 들어서만 세 번째. 그는 지난 4월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열린 제11차 보아오 포럼에서 SK식 사회적 기업 육성 전략을 소개했었다.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기간 중 ‘한국의 밤’ 행사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설파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최근 연매출 1250억원 규모의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를 출범시키며 ‘통 큰 실천’을 보여 줬다. 그는 평소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SK는 그동안 사회적 기업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더 확대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개막 당일 상하이 포럼 축사에서 “경제분야 학술 포럼의 가치는 미래경제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발전적 대안 제시에 있다.”고 운을 뗀 뒤 “아시아 고유의 공동체 정신에서 잘 드러나는 사회적 가치는 아시아 국가들의 차별화된 철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상하이 포럼은 SK그룹이 설립한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와 함께 주최하는 경제분야 국제 학술포럼이다. 한편 ‘경제 글로벌화와 아시아의 선택-미래 10년의 전략’을 주제로 한 상하이 포럼에는 한쩡 상하이 시장, 하오핑 국무원 교육부 차관,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폴 볼커 전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소 원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홍혜정기자 jukebox@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3) 사육신과 단종 복위

    [선택! 역사를 갈랐다] (13) 사육신과 단종 복위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癸酉靖難), 아니 계유사화(癸酉士禍). 어떤 사건이 크면 클수록 그 직접적인 영향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계유사화 같은 정변도 그러하다. 계유사화는 그 자체로 엄청난 살상극이었다. 단종 복위 운동에서 목숨을 잃은 사육신 등을 포함하면, 필자의 추산으로 70명 이상의 인재가 조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에게 불의가 무력을 이용하여 정의를 대신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뿌리 깊은 내상(內傷)을 심어주었다. 신숙주·정인지·한명회 등은 공신(功臣)이 되어 노비와 전답을 하사받고 잘 먹고 잘살았다. 홍윤성 같은 자는 멋대로 양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만행을 부려도 세조는 눈감아 주었다. 공신들의 세상. 원래 불의의 특권이 더 달콤한 법이다. ●원기(元氣)가 손상된다는 것 반면 찬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죽고 가족은 노비가 되었다. 이래서 뜻있거나 젊은 사람들은 세조 정권을 외면했다. 김시습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시습이 조정에서 별로 활동한 일도 없는데 자꾸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공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항하고 비판하였으되 이름을 남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이 김시습이었다. 남효온이 젊은 나이에 과거를 그만두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시습이 “나는 세종의 은혜를 받았으니 당연하지만, 그대는 나와 다르니 세상을 살아갈 계책을 세우라.”고 충고했을 때, 남효온은 “소릉(昭陵·문종 비 현덕왕후의 능호)이 추복되었을 때 나가도 늦지 않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조의 찬탈은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않았다. 비판은 좌절되었고, 공신들의 득세는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사마천은 물었던 적이 있다. 왜 좋은 사람들은 해를 입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자들은 떵떵거리며 잘사는가, 하늘의 도라는 게 옳은가 그른가? 어디 사마천만 했던 질문이었겠는가? 역사 속에서 숱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요, 지금 우리도 던지는 질문 아니겠는가? 이 질문을 던질 힘이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다. 냉소하는 것, 애써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좌절, 원기의 손상은 거기서 시작된다. 세조의 찬탈은 한동안 조선 사람들의 원기를 손상시켰다. 그것이 세조가 남긴 진짜 업보이다. ●찬탈은 간신(奸臣)을 낳고 임사홍(任士洪)은 그 아들들이 예종과 성종의 사위였으며, 이를 기회로 권력을 등에 업고 횡포를 자행하던 조선조의 대표적인 간신이었다. 도승지에 올라 유자광(柳子光)과 파당을 이루어 전횡을 부렸으며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에는 신진 사림들을 김일손(馹孫)의 사초(史草·후일 정리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관이 그때그때 적어놓는 1차 자료) 사건에 얽어 숙청하였다. 무오사화는 아다시피 이극돈(李克墩) 등이 자신의 비위사실을 있는 대로 적은 사관 김일손 등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애도한 글이라고 몰아가 모반죄로 얽음으로써 일어난 사건으로 연산군 폭정의 서막이었다. ‘조의제문’을 종종 한글을 읽는 호흡에 따라 ‘조의-제문’하는 식으로 읽는 분이 있는데, ‘조-의제-문’하는 식으로 읽어야 한다. 항우(項羽)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김종직이 실제로 세조의 찬탈에 비유하여 이 글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임사홍 등이 그 글을 세조 찬탈을 풍자한 것이라고 하여 김종직 등을 모반죄로 얽었던 데는 그 글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세조찬탈의 명분에 대해 임사홍 일당과 김종직 등 사림들 간에 첨예한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 명분의 차이는 경제 정책의 기조, 정치 운영의 원칙 등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었다. 역사의 인과응보는 참으로 알 수 없어,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세조 때의 공신들은 무덤에서 죄를 받았다. 딸 둘을 왕비로 들여보냈던 공신 한명회나 공신 정창손 등은 부관참시되었다. 생모 폐비(廢妃) 윤씨가 사약을 받았을 때 동조했다는 이유로 연산군에게 보복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홍귀달, 이유녕 등 다수의 사림 역시 해를 당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었지만, 중종 14년 기묘사화가 일어난다. 조광조 등 개혁세력들이 공신세력들의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잡았던 공신들이 왜 또 사화를 일으켰는가? 공신이라는 특권을 제한하려는 조광조 등의 견제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리고 반정공신의 행태는 세조시대 이지러진 특권의 향유와 행사를 본받았고, 그 결과 출발과는 달리 자신들만의 영화를 위한 특권을 형성하며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방향으로 타락했다. ●기억하는 사람들 언제부터 사육신을 사육신이라고 불렀을까? 단종은 언제부터 노산군이 아닌 단종이 되었으며, ‘노산군일기’는 언제부터 ‘단종실록’이라고 불렸을까? 중종 때 소릉을 복위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 소릉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인데, 어머니 최씨와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된 뒤 폐위되었고 능의 석물이 훼손되었다. 중종 8년 반정의 기운이 남아 있어 다행스럽게도 소릉은 복위되었다. 그러나 단종과 사육신은 여전히 금기 대상이었다. 사림정치가 본격화하는 선조대에 이르러서도 이들에 대한 복권은 여의치 않았다. 선조 2년 어느 날 경연에서, 퇴계와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은 “그들의 의도는 상왕(단종)을 복위하려는 것이었는데 세조는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며 복위를 건의한 일이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기대승의 논리는 세조에 대한 ‘반역’과 상왕 복위를 분리하여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실은 이 논리밖에는 없었다. 이미 사육신이 세상을 뜬 지 10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기대승의 문제 제기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선조 9년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을 가져다 본 선조는, “내가 그 글을 보니 춥지 않은데도 떨린다. 지난날 우리 광묘(光廟·세조)께서 천명을 받아 중흥하신 것은 진실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저 남효온이란 자는 어떤 자이길래 감히 필묵을 놀려 국가의 일을 드러나게 기록하였단 말인가? 이는 바로 아조(我朝)의 죄인이다.”라고 단언했다. 민간에서 알음알음 전해오면서 읽어오던 책이 ‘육신전’이었는데, 이는 곧 금서(禁書)였던 것이다. ●군(君)에서 대군(大君)으로 그러나 당색을 막론하고 노산군을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어졌다. 곧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바꾸는 일이 현실화했다. 숙종 7년(1681), 그러니까 숙종 즉위년부터 정권을 담당했던 남인(南人)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1680)으로 실각하고, 서인(西人)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 7월 무더운 어느 날의 낮 공부(晝筵) 시간에 숙종은 이렇게 말하였다. “정실의 왕비 소생은 대군이나 공주라고 부르니, 노산군도 대군으로 불러야 한다. 대신들은 의논하라.” 이에 따라 논의한 결과 대신들도 대군으로 고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숙종의 견해는 참으로 기발했다. 이것은 이 사건에 대해 200년 이상 축적된 합의가 낳은 대안이며,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위한 여러 단계 중의 하나였다. 원래 노산군이라고 할 때의 ‘군’(君)은 서자(庶子) 왕자에게 붙이는 칭호와 글자는 같아도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폐위된 임금을 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자(朱子)가 ‘자치통감강목’에서 만든 역사 기록 범례의 하나였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숙종의 착상인지 이전에 어떤 의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위의 논리는 노산군에게서 ‘폐군’의 혐의를 벗기고 ‘적실 왕비의 왕자’라는 지위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단종’으로, ‘충신’으로 이로부터 10년 후, 숙종은 노량진에 자리한 사육신묘에 제사를 지내게 하고, 복관 조치를 내림과 함께 사당에도 편액을 하사한다. 당시 이미 민간 차원에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오던 터였다. 그러므로 편액을 내리는 것으로 사당 건립을 사후 승인한 셈이었다. 이런 배경에는 숙종 6년, 강화유수 이선(李選)이 세조도 아들인 예종에게 ‘사육신은 충신’이라고 유시(諭示)했다는 것을 근거로 사육신을 정려할 것을 요청했던 상소에서도 나타나듯이, 사육신을 충신으로 표창해야 한다는 공론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숙종 24년(1698)에는 현감(縣監)을 지낸 적이 있는 신규(申奎)가 노산대군의 왕호를 회복하라고 상소했다. 이후 숙종은 조정의 신하는 물론 지방관과 이미 관직을 그만두고 초야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의견을 묻도록 하였다. 한 달 뒤인 10월에 숙종은 승정원에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노산대군의 왕호를 추복하게 하였다. 단종이 영월 땅에서 승하한 지 햇수로 242년 만의 일이다. 이후 곧바로 온 나라의 축하 속에 단종 복위가 반포됨으로써, 강봉된 노산군은 243년 만에 후손들에 의해 단종으로 복원되었다. 우리가 장희빈만 기억하는 시대, 조선사람들의 유전인자에 냄비근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기나긴 역사바로세우기가 마무리되었다.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맨손으로 월남한 지 23년.「진로(眞露)」는 23년만에 연간 1백억원어치가 팔리는 대기업으로 자라났다.「진로(眞露)그룹」의 경영주 장학엽(張學燁·71)씨는 이제 학교를 세워 내일의 인재를 키우는 것만이 남은 소망이라고 말한다. 20살 교사생활 인상 깊어…20년 전부터 장학회 운영  72년 매상액이 소주「진로(眞露)」만 1백억원. 73년 목표가 무려 1백50억원이다. 앞으로 줄곧 매해 50%씩의 성장을 가늠한다는 초「스피드」성장 계획. 그래서 74년 목표를 자그마치 2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 무난히 이루어질 줄로 알고 있읍(습)니다. 68년부터 기획·관리제도를 도입해서 철저히 실행해 왔는데 아직 목표 달성을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읍(습)니다 』  말이 1백억원이지 1백억원어치의 소주라면 보통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1백억원어치의「진로(眞露)」는 40개들이 상자로 5백30만상자. 병수로 따지자면 2억1천2백만병이 된다. 어쨌든 71년에 계산해 본 바론 그 해에 팔린 소줏병을 늘어 놓으면 경부고속도로를 21차례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이밖에 포도주 판매액이 72년에 10억원. 인삼주는 7년에 5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예정.그러나「진로(眞露)」의 경우「예정」이란 단어는 곧「꼭 그렇게 되는 것」으로 믿어도 좋다. 아직까지 목표 달성에 미달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니까.  현재「진로(眞露)그룹」에는 크게 잡아 5개 자회사가 있다. 으뜸은 역시「진로주조」.그 다음「서광(西光)산업」이 연간 4백만$(달러)어치의 봉제 가공품을 수출하고 있고「효성병유리」는「진로」에서 쓰이는 각종 병을 자가 생산. 「도원관광」이 7월 준공 예정으로 부산 용두산에 부산「타워」를 건설 중이다. 72년에 인가를 얻은「우천(友泉)학원」은 74년 3월에 문을 열어 중·고교 입학생을 받을 예정.  『본래 꿈이 젊은이들을 가르쳐 보는 것이었어요. 20년 전부터 장학회를 운영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꿈은 교육자였지요. 아직도 내 추억 중엔 나이 스무살 때 황해도에서의 국민(초등)학교 선생 시절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읍(습)니다』  오늘의「진로」가 있기까지에는 크게 잡아 3차례의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그 첫번째가 6·25로 인한 월남. 맨손으로 피난지 부산에 떨어져 오직 성실과 근면으로 뛰었다. 54년에 현재「진로」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이사. 지금은 3천명 종업원이지만 그때 종업원은 고작 1백명. 지금은 소주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60~70%를 오르내리는 입장이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더구나 자기 지본은 적고 남에게 빈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커 더욱 고생이 많았다. 어려운 고비 3차례 겪고…거센 반발 속에 기반 굳혀  이 고비를 넘기는데 소비한 햇수가 4년. 4년만에 웬만한 빚은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 고비는 10년 후인 65년에 닥쳤다. 당시 정부 양곡관리법에 따라 순곡소주를 없애고 고구마에서 주정을 뽑아내는 새 소주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 이와 함께 타 업체와의 경쟁이 극심해져 광고선전비·접대비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외상 판매의 비중이 격증, 67년에는 회사의 존폐가 우려될 정도로 극심했다.  『이때부터 외상을 없애고 현금거래제도로 뜯어 고쳤습니다. 반발이 컸지만 그대로 밀고 나갔어요. 덕분에 오늘의「진로」로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었지요』  68년부터「진로」는 종래의 경영 방식에서 탈피, 생산 판매를 모두 치밀한 계획하에 집행하는 기획·관리실 위주의 경영으로 탈바꿈 했다.이에 따라 다달이 경영분석·결산을 하여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68년 이후 5년 동안에 거든 성장율(률)이 5백%, 해마다 두곱으로 회사가 커온 셈이다. 65년에 비하자면 10배의 성장율(률)을 기록하였을 정도.  『72년 이익율(률)이 11%입니다. 만족할만한 성과였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이제「진로」의 과제라면 세계 무대로의 진출이 남아 있지요. 국제 경쟁력 강화로「세계의 진로」가 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요』  만족할 만한 “이익율(률) 11%”…지금은 한창 새로운 술 연구  현재「진로」는 새 품종 개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 중.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져만 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을 새로운 술을 멀지 않은 장래에 선보일 예정이다.  『장(張) 사장의 성격은 한마디로 과묵 실천형이죠. 또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셔요. 예전에는「와이샤쓰」한벌에「칼라」만 떼었다 붙였다 하며 헐도록 두고 두고 입으실 정도였어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창피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저희 회사 건물부터가 아주 낡고 사무실이 비좁은 것도 이 때문이지요』  부사장이자 장(張) 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장학형(張學炯)씨의 말. 아닌 게 아니라「진로」의 신길동 사무실은 여간 흐름하지가 않다. 신길동 공장을 신축하던 54년 당시 종업원 1백명으로 출발할 때의 건물을 모체로 종업원 3천명을 헤아리게 된 오늘까지 그 공장에 덧붙여 하나씩 늘려 왔기에 때문에 이런 현상은 거의 불가피했다고.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올해안에 신길동 공장을 재배치, 사무실용 6층「빌딩」을 새로 짓고 공장 건물도 대량 생산 체제로 크게 바꿀 예정이다.  『아시다시피「진로」의「마스코트」는 두꺼비입니다. 51년 부산에서 다시 출발할 때부터 두꺼비로 했는데 아마 두꺼비가 우리「진로」를 여러모로 돌보아 준 모양입니다. 두꺼비 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할까요?』  「진로」는 아직 비공개법인. 현재 주주의 입장에서 주식 공개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총자산 36억원에 비해 이익율(률)이 높기 때문에 주식 공개시 성공은 자신있다고.  3남 2녀를 둔 진로(眞露)「그룹」의「리더」장학엽(張學燁) 사장은 무취미가 취미.「골프」와 거리가 멀고 오직 바둑을 조금 두는 정도. 앞으로는 74년에 문을 열「우천(友泉)학원」을 돌보는 일이나 재미를 붙여 보겠다고 했다.  <수(秀)>  ◇ 장학엽(張學燁)씨의 약력◇  1923.3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상과 졸업   3 황해도 곡산공립보통학교 교원  1927.4 평남 용강군에서 진천(眞泉)양조장 경영(상품명 진로(眞露))  1950.11 월남  1951.3 부산에서 구포(龜浦)양조 합자회사 경영  1954.1 서광주조(西光酒造) 사장  1959 「진로(眞露) 장학회」  1966 「진로주조(眞露酒造)」  1970 「대한교련」에서 교육 독자ㅣㄱ상 수상  1971 은탑산업훈장 수상 [선데이서울 73년 3월 11일 제6권 10호 통권 제23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열린세상] 영리의료법인 논쟁 되돌아보기/조원동 한국조세연구원장

    [열린세상] 영리의료법인 논쟁 되돌아보기/조원동 한국조세연구원장

    주변 의사들에게 ‘자기자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대체로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 힘으로 동원가능한 자금’이다. 본인의 자금이거나 주변 또는 금융기관에서 빌려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발전과정 맥락에서 보면, 상업자본주의 시절의 사고방식이다. 상업자본주의 시절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민간부문에서 자금이 많이 드는 큰 사업을 하는 게 어려웠던 여건이었다. 사업에는 무한책임이 따르고, 빚을 갚지 못하면 패가망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인간성 좋은 안토니오가 무역업을 하는 친구 빚보증을 섰다고 죽음 문턱까지 가지 않았던가? 사업자금 조달의 물꼬가 터진 것은 산업자본시대에 주식회사 제도가 도입되어 양도가능한 주식거래가 활성화되고 주주에 대한 유한책임이 확립된 시점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죽하면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이 뉴욕 증시를 중국경제가 미국에서 배워야 할 핵심과제로 지목했을까. 우리의 의사들도 이러한 산업자본주의의 장점을 결코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주식투자 전문가로 명성을 쌓은 의사도 있고, 필자 주변만 보아도 펀드투자 등 재테크를 실천하는 의사들도 꽤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의사들은 여전히 상업자본주의 시절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사회주의인 중국에서도 심지어 국영기업들까지 주식공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바로 비영리법인 족쇄 때문이다. 사실 의료행위도 대가를 전제로 치료라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영리행위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영리법인 체제에서 의료행위 자체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현재처럼 의료기관에 대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지된다면 환자들은 영리 의료법인에서도 보험수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의료기관이 다 영리법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영리법인이 허용된 외국에서도 대학병원을 포함한 유수 의료기관이 여전히 비영리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은 대규모 기탁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에서 영리법인이 허용된다는 의미는 단지 사업에서 철수할 때 자본 회수가 가능하고 투자한 자금에 대해 이윤배당이 가능해진다는 것뿐이다. 그러면 비영리법인에서는 자본 회수가 불가능하고 투자한 자금에 상응한 이윤도 취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지 않다. 비영리법인도 이사장직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굳이 이윤 배분 형식이 아니더라도 투자한 자금에 대해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굳이 영리법인 체제와 차이점을 찾자면 거래가 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은(?) 차이로 인한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비영리법인체제 하에서는 거래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다 보니, 형성되는 가격 자체가 투명하지 않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거래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이라고 하지 않던가? 영리법인으로 자금조달 선택의 폭이 넓어질 때 나타날 가장 큰 변화의 하나가 의료기관 간 인수·합병(M&A)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고가 의료장비 보유 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병원들의 8할 이상이 200병상 미만이라는 우리 의료산업의 현실 때문이다. 의료기관 간 M&A는 우리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환자들의 후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병원 간 M&A가 이뤄지면, 병원마다 고가 의료장비를 구비할 필요성은 적어질 것이다. 어느 한 병원을 급성기 병상병원으로 지정하고 응급차를 통해 환자를 모아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고가 의료장비를 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해야 할 유인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언제 이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발전에 수백년이 소요되었지만, 우리의 영리의료법인 논의는 이제 겨우 십수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 대한 지나친 자조(自嘲)가 아닐까.
  • [열린세상] 개인정보 보호 국가안보에도 중요/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개인정보 보호 국가안보에도 중요/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가 어떠한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해서 관리되는지, 어느 곳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메시지 또는 채팅 정보가 테러 집단이 창궐하는 국가에 소재하는 서버에서 관리되고 있다면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서비스 이용자들은 정보보호, 특히 개인정보 보호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ID와 패스워드의 암기가 쉽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ID와 패스워드로 여러 가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은행·보험·증권의 접속 ID, 포털 서비스나 동호회 및 카페의 ID, 심지어는 자신의 회사 업무 계정이나 유관 기관의 용역 관리 계정 ID도 동일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만약 A포털 서비스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해당 포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포털 서비스의 이용자와 관련된 모든 인터넷 서비스도 해킹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패스워드가 암호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ID의 유출에 따른 파생적 피해는 실로 크다. 그런데 아직까지 일부 상용 서버는 패스워드를 암호화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클라우드 서버의 경우에는 패스워드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ID와 패스워드가 유출되면 자신은 물론 자기와 연계된 친구, 동료, 회사, 거래처마저도 모두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늘날에는 ID가 사이버 공격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버 공격은 서비스 거부 공격, 즉 디도스(DDoS) 공격이 단골 메뉴였다. 디도스 공격은 일시적으로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켜 업무를 마비시키지만 악성 트래픽을 제거하면 일정 시간 후에 다시 서비스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ID 공격은 디도스 공격보다 한 단계 진화된 것으로, 일일이 서버가 ID와 패스워드를 비교해서 패스워드가 다를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신종 사이버 공격 수법이다. 따라서 ID 공격은 디도스 공격보다 적은 트래픽으로 서비스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치명적 사이버 테러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개인의 ID 노출이 이용자 한 사람의 침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침해 사고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 정보를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기본권 문제로 국한해서 이해하기보다는 국가안보적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물론 개인 정보를 국가기관, 특히 정보기관이 다루는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요즘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민간인 사찰이나 여론 통제를 위하여 개인정보가 불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기관(정보기관)이 국민들의 개인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의 흐름을 파악해서 테러 집단이 개인 정보를 탈취해 가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에 따라 개인 정보의 안전한 관리를 위하여 중소사업자들에 대하여 무료백신을 공급하고 보안실태를 점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예방조치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의 개인 정보가 테러 집단으로 넘어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범정부적 차원의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정보원 등은 정보 주체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물론이고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개인 정보가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기관 상호 간에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본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패스워드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ID가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사랑의 시인 김수영 사전

    [최동호 새벽을 열며] 사랑의 시인 김수영 사전

    5월 8일 김수영 시비를 찾아 도봉공원을 향했다. 현대시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10년의 작업을 거쳐 김수영 사전을 마치고 난 다음 현장을 한번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오후 늦게 도봉산을 향하니 초여름을 연상시키는 무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오래전과는 주변상황이 크게 달라져 시비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등산객에게 물어보아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등산로 어디에도 표지가 없었다. 도봉산서원의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굽은 산길을 오르다 보니 시비는 공사장 펜스 앞에 초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등산로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시비가 쓸쓸해 보였다. 2003년 가을 시작된 김수영 사전은 연인원 80명이 넘는 인원이 작업에 참여해 30여 차례의 기획 편집회의를 열었고 10차례의 교정을 보아 지난달 출간되었다. 한국현대문학 연구를 보다 실증적 차원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기초와 뿌리에 대한 객관적이며 실증적인 연구 없이 이루어지는 문학 연구가 외래의 비평 방법에 좌우되거나 감성적인 비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실증적 연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화려하지도 않아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사전작업이다. 이 사전의 표제어는 모두 5220개이며 대상 작품은 모두 176편이다. 사전을 통해 시어 활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김수영은 부정어 ‘않다, 없다, 안, 없어, 아니, 말다, 못하다, 안한다’ 등의 시어를 98편의 시에서 가장 많은 250차례 사용했다. 이는 김수영이 지닌 부정의 정신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긍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사랑’이란 시어를 16편의 시에서 48차례나 사용하고 ‘좋다’를 32편에서 41차례 사용했으며 ‘웃다’를 17편에서 33차례 사용했다. 그는 참여시를 대표하는 부정의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그는 사랑의 시인이요, 긍정의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란 시어도 56편에서 92차례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사랑이 사람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는 사회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이나 부정이 사람을 사랑하는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감각인지어 계열의 시어는 ‘보다’가 72편에서 123차례 사용됐으며 ‘보이다’가 22편에서 34차례 사용됐다. 이는 그가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뜻하며, 동시에 피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수영은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60년대 김수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1970년대의 김지하의 풍자적 담시나 1980년대의 신경림의 민중시를 생각할 수 없다. 어휘 활용사전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그는 현실을 부정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과 긍정에 도달하는 시적 인식의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시인이다. 이는 그의 시를 바라보는 종전 시각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명편으로 알려진 ‘풀’이나 ‘사랑의 변주곡’ 등은 그가 보여준 부정의 정신이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시대에 대한 그의 부정과 비판은 사랑과 긍정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수영은 4·19혁명의 시인이다. 그는 4·19의 영광과 좌절을 경험한 1960년대 시의 한 정점에 도달했다. 그는 자유에서 피의 냄새를 느끼고 자유의 억압에서 굴욕을 느꼈던 시인이었다. 오는 6월 16일은 그의 44주기이다. 이를 기념하여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이 사전을 헌정하는 것은 물론 한 시대의 첨단에서 고투했던 그의 영혼을 위무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 김수영 시비가 지키고 있는 도봉산의 서늘한 기운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21세기 한국의 현대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두 얼굴/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두 얼굴/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칭기즈칸은 당시 최상의 파발마를 갈아타며 몽골에서 유럽까지 가는 데 무려 6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비행기를 타면 인천에서 파리까지 12시간이면 도착한다. 전화나 인터넷 공간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현대 과학이 낳은 놀랄 만한 축지법이라 하겠다. 국내 상황으로 보아도 어느새 국제결혼이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농촌에서부터 새로운 풍습으로 자리잡았고, 국내 거주 외국인은 100만명을 넘었다. 매년 2000만명이 넘는 코리안들이 외국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우리는 지구촌 시대를 나날이 실감하며 살고 있으며, 동시에 타문화와의 만남과 교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애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작게는 언어나 제스처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역사나 종교의 상이한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글로벌의 특성은 외형상 모든 것이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서울, 도쿄, 뉴욕, 파리와 같은 대도시 젊은이들의 겉모습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삶의 형태도 유사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해볼 수 있다. 세계화는 곧 단일화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문화적 상이성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두 가지 병행적인, 그러나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기술과 생산수단은 물론 생활습관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수렴이 진행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차별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관찰한다. 이는 각 사회의 가치 기준이나 개인의 동기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이따금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지나친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으로 간주될 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행동이 급진화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문화적 상이성은 기회나 가능성으로보다는 장애물 내지는 위협으로까지 간주되며, 스스로를 외부 문화의 위협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타문화와 다를 수밖에 없는 자기 고유의 문화에 집착하는 아주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타문화 이해를 위한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열린 마음과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즉, 다른 문화를 장애물이나 충돌의 요인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타문화에 대한 존중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어떤 문화든 그것이 형성된 여러 복합적이고 특수한 환경과 역사가 존재하기에,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충분하고, 또 바로 그런 이유로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과정에서 자기 고유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리매김, 즉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시각과 차원에서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문화란 박물관에 원형대로 보존해야 하는 유물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꾸준히 변화 발전하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문화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접근과 인식은 충돌보다는 상호이해를 가능케 해주는 공존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내 것만이 최고라는 폐쇄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은 외견상으로 여러 가지 기준이나 생활양식 등의 보편화를 필수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는 문화적 차별화나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노력이 병행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외형적 보편화와 문화적 차별화가 어떤 함수관계로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구촌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자의 상황과 이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타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만은 자명하다.
  • 태양 거대 흑점 활동, 대규모 태양폭풍 징조인가?

    태양 거대 흑점 활동, 대규모 태양폭풍 징조인가?

    태양에서 거대한 흑점이 발견된 가운데 지구에 대규모 태양폭풍(플레어)가 몰아칠 것으로 예측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견한 거대 흑점군 ‘AR1476’은 폭이 약 17만km에 달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이는 지구 지름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흑점은 일반 태양 표면보다 약간 온도가 낮아 일시적으로 어둡게 보이는 부분으로, 지구의 약 4000배나 되는 강력한 자기장의 활동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태양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태양에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플레어가 일어나면 우주선이나 우주에서 활동 중인 인간에 방사선 피해를 입히며, 지구에 도달할 시 모든 무선통신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전파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태양물리학자들은 플레어를 C, M, X라는 3가지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이번 플레어가 중간급인 M 이상이 될 확률이 75%이며 제일 강한 X급은 20% 정도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편 이번 거대 흑점은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해 NASA는 그 크기를 ‘몬스터급’이라고 칭했다. 전문가들은 천체망원경 등을 사용해 관측할 경우 “절대로 직접 눈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사진=미국항공우주국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익어간 시간/가람 사랑이 시간 속에 익으면 정이란 이름으로 포근해지더라 더러는 매정하게 돌아서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한겹 두겹 허물을 벗어서 그대에게 입혀주고 더 이상 벗을 허물이 없을 때 당신의 허물은 내 허물이 되더라 앞으로 뒤로 모로 보아도 무덤덤한 믿음만 남는 내가 못나서 익어버린 정이 좋더라 사랑에 찌들어 삭은 향기가 좋더라
  • 국내1호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공개현장 가보니…

    국내1호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공개현장 가보니…

    최영(32) 판사는 ‘시각장애인 판사’가 아니라 ‘판사’였다. 다를 거라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사건을 보는 듯했다. 11일 오전 10시 서울 북부지법 701호 법정.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민사11부 판사들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와 동시에 국내 첫 시각장애인 법관인 최 판사가 동료 판사들의 팔을 잡고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초임인 최 판사는 부장판사의 왼쪽, 선임 판사는 오른쪽에 앉았다. 최 판사의 모습과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의 이미지가 오버랩됐다. 디케는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눈을 가렸다. 최 판사는 다른 판사들과는 다르게 사건 기록이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를 장착한 노트북에 연결한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재판 도중 확인이 필요한 부분의 사건 기록을 듣기 위해서다. USB에 담긴 내용은 재판을 위해 업무보조원이 증거 자료와 사건 기록 등을 미리 음성 파일로 만들어 저장한 것이다. 변론 도중 다른 판사들이 펜으로 메모하는 것과 달리 최 판사는 필요한 내용을 음성으로 듣기 위해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는 변론을 진지하게 청취했다. 중간중간 다른 판사와 조용히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재판장의 공지 뒤 재판 내용을 별도로 녹음했다. 최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주심을 맡은 전세권 설정 소송에 대한 변론을 주의 깊게 들었다. 법원 측은 최 판사의 업무를 돕기 위해 지난 2월 최선희(30·여) 실무관을 채용했다. 최 실무관은 최 판사에 대해 “시각장애인인데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감동해 자원했다.”고 밝혔다. 최 실무관의 주요 업무는 최 판사가 음성으로 사건 기록을 검토할 수 있도록 내용을 한글 파일로 작성해 주는 일이다. 접수된 사건 기록을 최 판사와 함께 읽고 최 판사가 필요한 부분을 결정하면 해당 내용을 한글 파일로 만드는 것이다. 최 판사는 이후 센스 리더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건 기록을 들을 수 있다. 청취 속도는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빠르다. 눈으로 보아야 할 증거 자료는 손으로, 사진이나 그림은 설명으로 읽는다. 최 판사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자료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보이지 않는 탓에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고교 3학년 때인 1998년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고 이듬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최 판사는 현재 방에 불이 켜졌는지 정도만 알 수 있는 1급 장애 상태다. 이창열 북부지법 공보판사는 “음성 기록 파일을 두 번 정도 들으면 사건 내용을 모두 외울 정도로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면서 “기억력이 좋다.”고 말했다. 최 실무관 역시 “법학 전공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많지만 최 판사께서 차근차근 알려주셔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최 판사는 재판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시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판사라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장애에 얽매이지 않고 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시각장애인의 임용을 여성 법관 임용에 비유, “처음엔 여성 법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금은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 판사는 “법원도, 저 자신도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고 밝혔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장태평 징검다리] 경쟁의 르네상스

    [장태평 징검다리] 경쟁의 르네상스

    얼마 전 로버트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이라는 책이 인기리에 읽힌 적이 있다. 그는 무한경쟁만 추구하는 지금의 시장경제가 수컷 말코손바닥사슴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크고 멋진 뿔을 가질수록 암컷을 차지하기 쉽고, 그래서 점점 뿔은 크게 진화한다. 그러나 거대한 뿔은 번식을 위한 경쟁에 필요하지 외적을 막는 무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렇게 경쟁적으로 진화한 결과,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종족이 된다. 개인은 좋으나 전체는 심한 경쟁을 통해 나쁘게 된다는 말이다. 프랭크는 승리한 1등이 모든 부를 독차지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이와 같다고 하면서 이 사슴의 사례를 들었다. 전통적 경제이론이 굳건히 믿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상대적 능력에 따른 보상, 특히 능력의 차이만큼 비례하여 주어지지 않고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할 수 있게 하여 경쟁의 치명적 결함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경제 질서로 경쟁이 아닌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쟁의 종말이다. 그는 더 이상 경제 문제를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경쟁에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낭비되고 경쟁에서 우위에 서면 부와 권력이 편중되는 일이 발생한다. 또 개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절대적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보아왔다. 그러나 경쟁이 무조건 나쁜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물은 나름대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되었다. 무스사슴의 뿔처럼 불리하게 진화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몇 가지의 사례를 일반적인 진화의 흐름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흐름은 “경쟁을 통해서 진화한다.”는 것이다. 경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본성에 기초하여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고 속성이다. 마찬가지로 경쟁은 사회적 현상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는 국가나 기업의 흥망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은 일본보다 앞섰으나 근세에 쇄국정책 때문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인도와 중국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때문에 2차대전 이후 뒤졌다가 최근 개방과 경쟁을 통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북한과 남한의 발전 격차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경쟁이 없는 사회는 생명력이 없다.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산소와 같고 빛과 같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발전하게 된 것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가능했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경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경쟁에 있다. 아니, 오히려 모든 문제는 탐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완전경쟁을 통하여 우월한 자는 강자가 되고, 강자가 된 자는 모든 것을 독점하게 된다. 종족에 불리하거나 세상이 무너져도 개별적인 탐욕은 계속된다. 강자가 독점화하면서 경쟁이 소멸하게 된다. 대기업은 시장을 지배하고, 하청 중소기업을 지배한다. 여러 수단을 통해서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을 왜곡시킨다. 이미 강자가 된 기득권 세력은 여러 수단을 통해서 참입을 제한한다. 산업의 문을 닫고 나라의 문을 닫는다. 이는 무자비한 경쟁의 결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순간 경쟁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착한 경쟁의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경쟁과 분배는 대칭의 개념이 아니다. 분배는 경쟁의 목적이고, 잘 분배하는 것은 좋은 경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전제가 된다. 공산체제하의 소련에서는 감자가 온 국민이 다 먹고 남을 만큼 생산됐으나 배급과정을 통해 만성적으로 공급이 부족하였다고 한다. 분배방식에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고에서 잠자고, 운반되면서 멸실되고, 시스템이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은 사람들의 일할 의욕과 성취 동기를 높이고, 자신이 가진 자원의 효용을 극대화하여 보다 나은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며, 조직에 있어서도 상승작용을 일으켜 혁신을 이루게 한다. 착한 경쟁, 따뜻한 경쟁, 통합의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방식의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경쟁의 종말을 고할 것이 아니라 경쟁의 르네상스를 일으킬 때다. 한국마사회장
  • [미주통신] 뉴욕경찰 업무는 아동 포르노 보는일?

    뉴욕 경찰의 연금을 담당하는 ‘NYPD 연금재단’에서 해고당한 전직 직원이 재단 직원들이 업무용 컴퓨터를 이용해 늘상 아동 포르노는 물론 동물과의 수간 등 미 연방법이 범죄로 규정하는 비디오를 보아왔다며 해당 직원과 뉴욕시를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제소해 파장이 예상된다. ’NY 데일리뉴스’에 따르면 안토니 보넬리로 알려진 이 전직 직원은 과거에도 이 재단에 배치된 한 경찰이 한 달에 70여 차례 이상 ‘야동’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재단에 근무하는 민간인은 다른 직원이 보는 앞에서 무려 1,561회나 야한 사이트를 방문하고 880회 이상 포르노사이트를 방문했지만 해고는 커녕 훈계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NYPD 연금재단’은 7만 5000명에 이르는 전 현직 뉴욕경찰의 연금을 지급하는 재단으로 약 200억 달러의 운영자금으로 현직 경찰은 물론 전직 경찰 그리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15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재단이다. 보넬리는 “재단 직원들의 이같은 행위는 관련 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악성 소프트웨어 감염을 가져와 뉴욕경찰 등의 신상정보는 물론 중요 데이터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뉴욕시 법무 대변인은 상세한 논평을 회피한 채 “단지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니엘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미주통신] 열차에 받히고도 되레 큰소리친 ‘황당남’ 화제

    [미주통신] 열차에 받히고도 되레 큰소리친 ‘황당남’ 화제

    무려 76대의 자동차를 싣고 시속 80km로 주행하던 화물열차에 치여 부상을 입었으나 그것도 모르고 되레 경찰과 시비가 붙은 ‘황당남’이 있어 화제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일요일 새벽 미 위스콘신주 페워키 마을 철로 변에서 일어났다. 이 마을에 사는 토마스 볼스머(31)가 열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철로 변에 누워 있었던 것.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기관사가 급히 제동장치를 작동시켰으나 열차는 이 ‘황당남’을 치고 수백m를 더 가서야 겨우 정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딪힌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경찰이 출동했고 이내 인근 숲 속에서 왼쪽 팔과 엉덩이에 심한 부상을 입은 토마스를 경찰이 발견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자신이 열차에 받힌 것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면서 응급 처치를 해 주려던 경찰과 시비가 붙었다. 열차에 받혔음에도 의식이 있고 워낙 반항이 완강해 경찰은 음주 측정을 할 수 없었으나 주변의 빈 맥주병으로 보아 그가 술에 취해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경찰은 이 청년이 과거에도 자주 술에 취해 철로 변에 누워있던 것을 밝혀내 철도용지 무단 칩입죄로 기소할 예정이다. 다니엘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희귀 ‘뱀파이어 병’ 걸린 5세 소녀 발견

    희귀 ‘뱀파이어 병’ 걸린 5세 소녀 발견

    최근 베트남에서 희귀 ‘뱀파이어 병’ 증상을 보이는 소녀의 사례가 공개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vietnamnet.vn‘의 보도에 따르면,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소녀(5)는 현재 엄청난 통증과 피부 전반의 수포, 탈수 및 체중감소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전부터 피부에 민감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 소녀는 현재까지 몸 전체에 수 백 개의 수포가 올라왔고 그 안에는 물이 차올랐으며, 손톱과 발톱은 수포 등으로 인해 아예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지 의료진은 이 소녀가 포르피린 신드롬, 일명 ‘뱀파이어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포르피린 신드롬은 혈액 색소 성분인 포르피린이 혈액과 조직에 영향을 주는 유전성 혈액대사 이상증이다. 빈혈과 복통, 매스꺼움 등의 증상을 보이며 혈액의 양이 줄어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빈혈을 호소한다. 특히 햇빛이 피부에 닿으면 그 부위에 수포가 생기는 피부 병변이 일어나고, 잇몸 구조가 변해 이가 길어지는 사례도 있어 ‘뱀파이어 병’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를 진단한 현지 전문가는 “뱀파이어 병은 전 세계에 단 200케이스 정도만 보고된 매우 희귀한 병”이라면서 “아직까지 치료방법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녀의 가족 중 이미 비슷한 증후군을 앓다 사망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 질환인 뱀파이어 병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병원에 입원했던 소녀는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되돌려진 상태이며, 가족들은 소녀의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중이지만 성과가 없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날지 않는 공인구’ 속앓이

    [일본통신] 日프로야구 ‘날지 않는 공인구’ 속앓이

    올 시즌 새로운 공인구 도입 2년째인 일본프로야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1점대 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팀만 해도 2팀(주니치 1.55, 니혼햄 1.72)나 된다. 현재 각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주니치와 니혼햄 외에도 2점대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팀은 6팀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게 거의 없다. 사정이 이쯤에 이르자 일본프로야구 선수협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달 24일 일본프로야구 선수협 회장인 아라이 타카히로(35. 한신)는 “선수들의 통일구에 대한 재검토 요청이 높아지고 있다. 재미 없는 야구,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감안하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며 일본야구기구(NPB)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이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통일구 교체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라이 회장의 요청에 가토 료조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보다 일본의 공인구 제작 기술이 더 높다.”며 다소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투고타저’ 현상에 있어 날지 않은 공인구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뜬금없이 공인구 제작 기술 타령을 언급했으니 어이가 없을만 하다. 일본프로야구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투고타저’ 현상이 지속 될 경우 팬들의 외면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조짐은 이미 관중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과 비교해 지난해 관중수는 2.6%가 줄어들었다. 덧붙여 지난해 4월에 비해 올해 4월 관중수 역시 경기당 평균 약 3,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가다간 해마다 2,000만명 이상의 총 관중수를 유지했던 일본프로야구가 어쩌면 1,000만명대로 떨어질수도 있다. 올 시즌 역시 이대로 가면 지난해에 비해 10%정도의 관중수 감소가 예상된다. 일본의 투고타저 현상은 일반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기엔 그 현상이 극심하다. 거의 모든 경기가 투수전 양상을 띠면서 타자들의 불만, 더 나아가 투타 밸런스가 어긋나면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하위급 투수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센트럴리그의 평균자책점 1위는 2.21을 기록한 마에다 켄타(히로시마)였다. 그 뒤를 당시 주니치의 첸 웨인(2.87), 야쿠르트의 타테야마 쇼헤이(2.93) 순이었고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최하위(12위)를 기록한 선수는 요코하마의 시미즈 나오유키(5.40)다. 이 부문 10위권엔 3점대의 평균자책점 선수들이 대부분 포진했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투수 가운데 10위권 안에 든 투수는 한명도 없다. 야마모토 마사(0.55), 노무라 유스케(0.77) 이 2명의 0점대 평균자책점을 비롯해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들이 대부분이고 평균자책점 1.98의 사와무라 히로카즈(요미우리)가 이 부문 리그 13위에 랭크될 정도다. 퍼시픽리그 역시 별반 다를바가 없다. 투수들의 득세는 곧 타자들의 빈타로 이어졌다. 새로 바뀐 공인구가 ‘날지 않은 공’ 이란 기준에서 볼때 특히 홈런수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2010년 센트럴리그에서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모두 10명, 퍼시픽리그는 7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센트럴리그 4명, 퍼시픽리그는 단 2명에 불과했다. 올 시즌 30여 경기 가까이 치뤄진 현재, 지난해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티엔이 9개의 홈런, 퍼시픽리그는 소프트뱅크의 윌리 모 페냐가 6개의 홈런으로 각각 1위에 올라와 있지만 양 리그 모두 일본인 선수들 가운데 올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10년 센트럴리그 6개 팀 평균 타율이 .267였지만 지난해엔 2푼 이상 하락한 .242에 그쳤고, 주니치가 팀 타율 .228로 최악의 빈타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던 건 역시 2.46에 불과한 팀 평균자책점 덕분이다. 이렇듯 일본프로야구는 그 어떤 것을 비교해 봐도 공인구가 바뀐 이후 ‘투고타저’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볼수 있다. 일률적으로 조정할수는 없겠지만 그 변화가 이른 시일에 빨리 찾아왔기에 재미 없는 야구 역시 팬들의 피부에 빨리 스며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날지 않은 공을 사용하다 보니 투수들은 자신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자칫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수도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투수전이 계속되면 투수 스스로 자신의 구위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수 없기에 국제대회를 통해 전력 평가 역시 베일에 쌓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공인구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NPB의 주장도 반드시 수긍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에 비해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의 성적 하락폭이 굉장히 컸다. 일본야구 전문가들은 공의 솔기 부분이 이 차이를 결정한다고 언급했는데 전 요미우리 감독을 지냈던 호리우치 츠네오는 “커브는 솔기에 손가락을 걸쳐 회전을 주는 방법과 손목을 써서 공을 빠지게 해 던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손가락을 걸치는 경우는 솔기가 커져 회전을 걸기 쉬워진 이점이 있으나, 손목을 써서 던지는 투수는 그만큼 불리하다. 통일구는 솔기가 큰데다가 표면이 미끄러워 공을 빼기 어렵다.”고 새로 바뀐 공에 대한 평가를 한 바 있다. 또한 너무나 넓은 스트라이크 존도 ‘투고타저’ 현상을 부채질 하고 있는데 공인구 교체도 필요하지만 이것 역시 한번쯤 생각 해봐야 할 문제다. 날지 않은 공에 더해 스트라이크 존까지 넓으니 축구 스코어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옴부즈맨 칼럼] 선거와 착시, 그리고 언론/나은영 서강대 신방과 교수·사회심리학 박사

    [옴부즈맨 칼럼] 선거와 착시, 그리고 언론/나은영 서강대 신방과 교수·사회심리학 박사

    선거가 끝나면 항상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결과를 알기 전에는 민심에 대한 주관적인 지각에 의존하다가,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진짜 민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잘못 지각하는 ‘착시’ 현상은 객관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 선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결론을 얻기 때문에, 그 과정에 사회심리가 작용한다. 투표는 개개인이 하지만,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나의 지각’이 상당한 영향을 준다. 여기에 개입되는 착시 현상 중 하나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효과다. 이는 “실제로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다르게 생각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프렌티스와 밀러 교수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얼마나 음주를 즐기는지, 그리고 ‘다른 프린스턴 학생들’은 얼마나 음주를 즐긴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실제로는 본인처럼 음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다른 학생들이 많음에도, 실제보다 더 많은 다른 학생들이 음주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다원적 무지’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백인들이 1960년대 흑백분리정책에 찬성하는 백인 비율을 실제보다 과대 추정했던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변화’의 방향 쪽에 있는 생각에 다원적 무지가 더 잘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심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사례를 찾아보면, 마음속으로는 야당 김용민 후보의 비상식적 발언으로 말미암아 지지 의사를 철회했더라도, 다른 사람들 생각이 자기와 다를 것으로 추측하여 의견 표명을 꺼렸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특히 야당 지지자가 다수를 점하는 서울의 유권자들과 트위터 이용자들은 여당을 지지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것이 서울의 출구조사 당시 숨어 있던 여당의 표가 최종 개표 결과로 드러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승자는 자만하기 쉽고, 자만이 있는 곳에서 특히 착시가 커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는 더 겸손하고 민주는 더 자성하라”라는 서울신문 4월 13일 자 사설은 핵심을 짚었다. 오만하여 판세를 잘못 지각함으로써 패배를 자초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2002년 대선 직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과 함께 당선 가능성을 추가로 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우위로 나오는데도 그 자체를 당선 가능성의 지표로 삼지 않고 당선 가능성을 추가로 물어 “지지율은 노무현 후보가 앞서지만, 당선 가능성은 이회창 후보가 앞선다.”라고 보도하는 언론들이 많았다. 대통령은 지지율로 결정되는 것이고, 당선 가능성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나의 지각’이 포함되기 때문에 착시가 섞인 응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지지율을 믿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을 줄기차게 함께 물었다. 최종 결과는 역시 착시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지지율로 결정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변화의 열망을 잘 읽어내는 쪽이 대다수 국민의 ‘실제 의견 분포’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승리에 다가갈 수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착시를 줄이려면 ‘사람’과 ‘미래’를 보아야 한다. 신문에도 ‘그 사람들’의 솔직한 ‘미래 비전’을 실어 주면 좋겠다. 언론을 통해, 그리고 대화를 통해 타인들의 의견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은 물론이려니와,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사람들의 의견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만큼, 그곳에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왜곡하여 받아들이지 않도록 정화된 글을 쓰는 분위기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 ‘폭풍 고음’ 박지민 K팝스타 우승 “이제껏 한 고생 다 보상 받았죠”

    ‘폭풍 고음’ 박지민 K팝스타 우승 “이제껏 한 고생 다 보상 받았죠”

    국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최초의 여성, 또 최연소 우승자라는 영광의 타이틀은 박지민(15·대전 전민중)에게 돌아갔다. 29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생방송으로 열린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이하 K팝스타) 결승에서 박지민이 최종 우승자가 됐고, 함께 결승에 올라온 이하이(16·서울공연예술고)가 준우승자로 남았다. ●오디션프로 최연소 女우승자 우승자로 호명되자 박지민은 눈물을 쏟아내며 “이제껏 고생한 것이 다 보상받는 것 같다.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결승은 자유곡으로 시작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이하이는 잔잔한 솔의 느낌으로 롤리 리버맨의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을 불러 “관중을 압도하는 매력”(보아), “100점짜리 출발”(박진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루 전에 득남해 후한 점수를 줄 것”이라고 공언한 양현석 역시 “기분 좋게 들었다.”고 호평했다. 박지민은 임정희의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를 부르며 가창력을 뽐냈다. 이에 대해 보아와 박진영은 “무대를 즐겼으나 고음을 배분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진 미션 ‘참가곡 바꿔 부르기’에서 이하이는 아델의 ‘롤링 인 더 딥’으로 무대에 올랐다. 박지민이 불러 해외에서까지 화제를 모은 노래. 심사위원들이 좋은 평을 한 가운데 보아는 “완벽했다.”는 극찬을 하며 100점을 주기도 했다. 박지민은 이하이가 ‘배틀 오디션’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더피의 ‘머씨’를 선곡해 발랄하고 귀엽게 해석하며 심사위원 모두에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라이벌 이하이 ‘아쉬운 2위’ 우승자는 심사위원 점수 60%(자유곡 40%+미션곡 20%), 문자투표(실시간 30%+사전 10%)를 반영해 결정됐다. 배점이 높았던 자유곡에서 박지민이 이하이보다 1점 높은 292점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지민은 이번 우승으로 상금 3억원, 음반 발매 기회, 현대차 i40를 받게 됐다. 한편 이날 스페셜 무대는 보아와 박진영이 K팝스타 톱10 출연자들과 함께 꾸몄다. 또 가수 인순이가 깜짝 출연해 장애에 도전하며 노래한 김수환, 혼혈 출연자 이미쉘 등과 ‘클라임 에브리 마운틴’을 부르며 감동을 더했다. 최여경·이은주기자 kid@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조광조(호 靜庵·정암, 시호 文正·문정)의 일생은 짧고 격절(激切)했다. 1519년(중종14) 겨울, 전라도 능주에서 사약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젊은 선비가 남긴 일화들은 금세 신화가 되었고, 후세는 그를 성리학의 순교자로 기억하였다. ●절명시 전승되는 그의 최후 장면은 장엄한 서사다. 그때 조광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정중히 맞이하고, “임금께서 죽음을 명하셨다면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이다.” 라며 죄명을 물었다. 그런데 가져온 명령서에는 죄명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을 대접하는 도리가 이렇게도 초라하단 말인가.” 라면서 “당장에 상소를 올려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일이라 그만둔다”고 훈계했다. 사약을 마시기 전에 조광조는 시 한편을 읊었다. “나라님 사랑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소(愛君如愛父). 나라일 걱정 내 집안일처럼 걱정하였소(憂國如憂家). 밝은 해가 세상을 내리쬐시니(白日臨下土), 밝고 밝게 비추어 내 마음 아시리라(昭昭照丹衷).” 이 서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그는 만고 충신이며, 지순(至純)한 도덕군자이고, 세사를 초탈한 영웅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광조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정착되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기묘사화와 후세의 평가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쉬움으로 일관되었다. 학문이 완숙되기도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니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이(1536~1584, 호 栗谷·율곡)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하기를,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라고 말했다. 조광조를 쓰러뜨린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였다. 그 시작은 1519년 11월 16일(음력) 아침이었다. 중종은 남곤, 심정 및 홍경주와 함께 정치적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사로이 붕당을 지은” 죄로 조광조와 김정, 김식 및 김구 등 4명을 주범으로 몰았다. 윤자임, 박세희, 박훈 및 기준 등도 부화뇌동한 혐의로 엮였다. 붕당의 몸통으로 거론된 이들 8명은 당년 20~30대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각지로 유배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문제가 된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조광조는 “나라의 병통이 이원(利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명맥을 영구히 새롭게 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다시피 사적 ‘이익’의 추구는 성리학의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종반정 때 117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마구잡이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봉된 것이 조광조 등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가 있는 76명의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공신세력은 이에 분노했고, 중종은 반색하였다. 조광조 등이 숙청의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 첫째, 사건의 총지휘자가 중종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훈구파의 우두머리라는 남곤이 실상은 공신이 아니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셋째,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성격은 다양해, 기준과 권전 등의 급진파가 있었나 하면, 김안국·김정국 형제 등 소극적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조광조의 노선이 실은 선배 박경(?~1507)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조광조는 박경의 후계자 1507년(중종2) 박경 등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조광조를 비롯해 그 동지 김식, 공서린 및 조광좌 등이 연루되었다. 주모자 박경은 사림파의 종장(宗匠) 김일손(1464~1498) 계열의 학자였다. 서얼이었던 박경은 정국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변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박경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숙독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성리학의 근본가치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향리 선거법’ 즉, 추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관행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할 것, 특히 서얼과 종친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았다. 청년 조광조 등은 박경의 견해에 공감하였다. 서얼과 종친에 관한 부분을 뺀 나머지 사항들은 고스란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중심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조광조 등은 박경의 뜻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적 리더십 조광조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데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법 집행이 공정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지지가 컸다. 오죽했으면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자 한성부 향도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겠는가. 그때 1000명이 넘는 유생들도 대궐에 난입해 조광조의 구명을 요구했다. 조광조는 소통에 능하였고, 그래서 동지들의 신뢰가 대단했다. 특히 김정 및 한충 등과는 큰 이불과 긴 베개를 펴놓고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의 우정은 죽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또한 조광조는 정치적 명분이 뚜렷했고, 모든 일을 끝까지 정열적으로 밀고나가는 사람이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했다.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어, 겉으로는 칭찬하나 속으로는 욕하였다.”고 할 정도였다. 조광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섰다. ●왕이 최고의 성리학자라야! 조광조는 요순시대의 재현을 확신했다. 1515년(중종15)의 증광문과시험 시권(답안지)에서 그는,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을 통해 황금시대를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펼친 이상(理想) 정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있었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조광조는 이런 주장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왕을 만인의 스승, 즉 군사(君師) 또는 철인군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과 ‘명도’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상정치가 구현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훗날의 예를 보아도 ‘군사’를 자처한 당대 최고의 석학 정조 때에도 요순시대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야 어떻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구현을 위해 중종에게 대학과 중용 공부를 강조하였다. 특히 대학을 중시하였다. “비록 대학 한 권밖에 없다 해도 (왕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광조는 ‘소학’도 높이 평가했다. “세종 때는 오직 ‘소학’의 도(道)에 마음을 썼으므로, 그 책을 널리 반포하였습니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송나라의 성리학자들도 이미 ‘소학’과 ‘대학’이 표리관계임을 말하였다. ‘소학’은 성리학적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교과서요, ‘대학’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중종 물론 조광조 등이 이념에만 매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실제로 공신세력을 약화시켰고,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보급하는 등 몇 가지 개혁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기묘사화라는 역풍에 휩쓸려 좌초하였다. 조광조 등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세를 뒤엎지 못하였다. 왕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종이었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왕은 누구든 불신하였다. 우선 자신을 추대한 반정공신들도 믿지 못했다. 사림파를 요직에 임명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림파라고 해서 중종이 끝까지 총애할 리가 없었다. 중종은 4년간의 정치적 밀월 끝에 결국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처음부터 중종에게는 이상정치의 구현이라는 바람이 없었다. “왕은 (경연에서) 몸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고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용상(龍床)에서 퉁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조광조와 김식 등은 중종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종이 ‘소인’(小人)들에게 쏠리는 날이 올 것을 예측하였다. 특히 조광조는 자신들이 붕당(朋黨)을 만든 죄로 일망타진될 것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위험을 짐작하고서도 왕도정치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니, 그들은 이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조광조의 유산 중종이 공신들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구체화한 것은 1512년(중종7년)쯤이었다. 부왕 성종이 사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중종도 새 인물들을 찾았다. 그에 부응해 이조판서 안당이 조광조를 추천했다. 조광조는 동지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이성동 등 급진파는 삼정승까지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개혁을 외쳤다. 왕과 공신들은 그들을 혐오하였다. 1519년 겨울, 그들은 사화를 일으켜 이상주의자들을 내쫓았다. 그러자 낡은 정치가 재연되었다. 중종은 외척과 권신들을 들였다 내쳤다하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선비들은 ‘불나비’ 조광조를 잊지 못했다. 그들은 조광조의 뒤를 이어 성리학 지상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세웠다. 마침내 백인걸 등의 노력으로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선비들의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여기저기서 굉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본영인 미국 경제가 벌써 몇 년째 신음소리를 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아예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 또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다. 그래서 지금은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의미의 새로움이 요청된다. 우리가 조광조의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다. 21세기의 그 개혁사상가는 구체제의 귀결인 지배와 종속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공존공생의 평화공동체를 일으킬 것이다. 착취와 오염으로 병든 생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백승종(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 “네스호 괴물, 수중음파탐지기로 물속서 포착”

    네스호 괴물, 물속에서 ‘잡았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湖)에 산다는 전설의 괴물 ‘네시’가 물 밖이 아닌 물속에서 포착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수중음파탐지기로 포착한 것으로, 크기가 큰 미확인 물체가 깊은 물속을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을 포착한 마커그 앳킨슨(43)은 평소 어군탐지기(fish-finder)로 활용하는 수중음파탐지기가 장착된 보트로 관광업을 하던 중, 정체불명의 생물체를 감지하는 신호를 발견했다. 수중음파탐지기는 2분 간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으며, 해당 생물체는 어두운 수심 75ft(약 23m)에서 움직인 것으로 확인됐다. 앳킨슨은 “신호가 꾸준히 이어진 것으로 보아 생물체의 몸집이 매우 크고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이번에야 말로 네시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네시의 정체를 추적해온 일명 ‘네스호 괴물 헌터’인 스티브 펠트햄(49)은 “네스호에는 수중음파탐지기에 포착된 생물체만큼 몸집이 큰 어류가 살지 않는다.”면서 “특히 수심 75ft에 살 수 있는 호수 속 어류는 흔하지 않다.”며 네시의 정체를 확신했다. 그러나 사이먼 보셀 영국 사우스햄튼대학 국립해양센터(National Oceanography Centre) 소속 과학자는 “이번 사진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체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동물성플랑크톤처럼 작은 어류가 모여 커다란 형체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변종 바이러스 때문? 수천마리 돌고래 ‘떼죽음’ 미스터리

    남미 페루 해변가에 올해에만 총 3000마리가 넘는 돌고래의 사체가 발견돼 당국이 원인 파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지언론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지난주 페루 해변가에 877마리의 돌고래 사체가 또 발견됐다.” 면서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아 사인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보도했다. 돌고래 무덤이 되고 있는 곳은 람바예케라는 해변가로 당초 떼죽음의 이유는 주변 석유탐사로 인한 오염으로 파악됐다. 페루의 바다동물 보전을 위한 과학기구 이사장 카를로스 야이펜은 “해저에서 석유를 탐사하면 거품이 생긴다.”며 “바다동물에게 치명적인 사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석유 탐사를 위한 다양한 음향주파수를 사용하면 동물에겐 후유증이 남게 된다. 돌고래뿐 아니라 고래와 바다사자들도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페루 환경부 장관은 “현재까지 돌고래 죽음의 가장 유력한 가설은 정체모를 강력한 바이러스 때문” 이라며 “조만간 구체적인 사망원인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돌고래 떼죽음에 대한 다른 주장도 제기됐다. 국제동물보호협회 측은 “죽은 돌고래의 뼈가 부러져있고 장기 일부도 손상된 것으로 보아 지진파가 주요한 이유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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