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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큰 ‘진주’ 품은 조개…1억여년 전 화석서 발견

    무려 1억 4500만년 된 진주조개 화석이 공개돼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화석 전문가들이 이 진주조개를 MRI 촬영한 결과, 조개 안에 매우 희귀한 진주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진주는 1억 년이 훌쩍 넘는 오랜 세월을 견딘 것뿐만 아니라 그 크기가 무려 골프공 만해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전문가들은 이 조개 속 진주가 ‘세계에서 가장 큰 진주’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문제는 귀중하고 희귀한 진주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가 어렵다는 것. 만약 진주를 빼낼 경우 조개 화석이 완전히 훼손될 수 있으며, 조개 화석 역시 자연과학계에서 매우 중대한 자료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재 진주를 꺼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 진주조개를 보관 중인 영국 포츠머스의 불루립아쿠아리움 관계자는 “이 조개는 솔렌트 해협의 어업종사자가 발견한 것”이라면서 “당시 어부는 살아있는 조개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살핀 뒤 화석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전문가에게 맡겼다.”고 전했다. 보석 전문가인 지오프레이 문은 “골프공 크기의 진주는 매우 특별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자연산 진주 중 가장 큰 것은 이번에 발견한 진주의 절반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화석 전문가들은 조개에도 나무처럼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가 존재하며, 이번에 공개된 대형 진주조개에서는 수 백 개에 달하는 나이테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한 전문가는 “이 조개화석서 발견한 나이테를 보아, 1억 년이 훨씬 넘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간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SBS 보아 7집 컴백무대

    SBS 보아 7집 컴백무대

    2년만에 정규 7집 음반으로 돌아오는 보아의 컴백 특별무대 ‘BoA 4354’가 28일 낮 12시 5분 SBS에서 방영된다. 4354는 2000년 8월 데뷔부터 컴백 무대 방송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 자작곡이자 타이틀곡인 ‘온리 원’(Only one) 등이 처음 공개된다. 13살의 나이로 데뷔한 보아가 자작곡을 들고나와 이제 어엿한 음악인으로 성장했음을 선언하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일상 속 보아의 인간적인 면모도 함께 공개된다.
  • 北에서 최고로 치는 남한 걸그룹 알고보니…

    北에서 최고로 치는 남한 걸그룹 알고보니…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들도 북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사회 전반에 ‘남조선풍’(南朝鮮風)이 확산되면서 이를 단속해야 할 군과 공안기관들도 한국 대중문화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소속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25일 ‘한류,북한의 대중문화가 되다’라는 자료에서 “정부당국 및 대북소식통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 SBS ‘런닝맨’·‘강심장’, KBS ‘1박2일’, MBC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프로그램과 가요프로그램까지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이제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된 지 1주일이면 북한 장마당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은 ‘껄떡쇠’ 같은 각종 성인물 뿐만 아니라 ‘섹스앤더시티’, ‘위기의 주부들’ 등 미국 드라마까지 시청한다.”고 전했다. 김남주, 장동건, 신민아 등 배우들과 유재석·강호동 등 MC들, 이효리·2PM·소녀시대 등 가수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윤 의원은 “북한 청소년과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모르면 대화에서 소외된다. 젊은 군인들도 입대 후 한국 영상물을 끊지 못하는 바람에 정신교육이 이뤄질 정도”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인기 영상물을 CD판으로 구입하려면 북한 돈 1000~4000원을 줘야 하고, 한 번 대여하는 데는 200~300원 정도가 든다. 성인물 가격은 북한 근로자 평균임금(2000~8000원)을 크게 웃도는 1만원에 이른다. 윤 의원은 “한류 영상물은 북한내 시장발달과 함께 상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더욱 확산되고 있다.”면서 “당 간부와 보위부, 부안부 요원들도 상인들의 뒤를 봐주면서 뇌물을 받거나 가족, 친인척을 동원해 직접 유통과 판매에 개입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인기있는 남한 대중문화 작품들은 ▲영화는 조폭마누라, 공공의 적, 투캅스, 결혼은 미친짓이다 ▲드라마는 천국의계단, 겨울연가, 역전의 여왕, 제5공화국, 순풍산부인과 ▲오락물은 도전골든밸, 런닝맨, 스펀지, 강심장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연예인으로는 김연자, 나훈아, 송대관, 심수봉, 보아, 2PM, 소녀시대, 빅뱅, 신민아, 송혜교, 이영애, 권상우, 김태희, 장혁, 강호동, 유재석, 송해 등이 유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한국 영상물을 시청·대여한 사람은 노동단련형(사회봉사)과 노동교화형(징역형), 대량 복제·판매한 사람은 공개처형에까지 처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라고 윤 의원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주민인권법 제정 서두르자/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열린세상] 북한주민인권법 제정 서두르자/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제19대 국회 들어 새누리당은 참담한 북한 인권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북한인권법안을 제출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주권 간섭이고 외교적 결례이며 법적 효력도 없고, 결국 삐라살포단체지원법이 될 것이라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한바탕 정치적 공방을 벌인 뒤 정치권은 잠잠하다. 미국이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올해는 탈북아동인권법도 제정하려고 하는 마당에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철 반짝 이슈로 등장했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법 이름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2004년 미국이 제정한 법의 이름은 원래 북한인권법이 아니라 북한주민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이다. 북한 노동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입법에 의한 선전포고가 아니었다. 법의 주된 목적은 당장 먹고사는 것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인권유린을 당하는 북한 주민들을 국제 구호 기준에 따라 일단 살리고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 적대적 대립 구조를 형성했던 냉동정책부터 결국 핵무기 개발을 도운 무조건적 퍼주기 햇볕정책, 그리고 자존심만을 앞세운 폐쇄정책까지 대북정책이 정권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와중에 나빠지고 핍박받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다. 단순한 삶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다. 북한주민인권법은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문제를 정치적인 이유로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객관적인 북한 주민 지원정책을 명백하게 정해 놓자는 법이다. 법의 성격은 당연히 국내법이고 법의 내용은 대한민국 행정부, 국회, 시민단체들이 준수해야 할 의무를 규정한 우리의 법이다. 행정부는 국제 기준에 따라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고, 북한 정보가 많은 정보 기구들은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인권 정보를 인권대사에게 제공하며, 행정부와 국회는 중국과 국제사회에도 호소하고, 북한인권재단을 창설해 시민운동을 조율하고 역사적인 사료로 남기는 일을 하도록 우리의 의무를 법으로 정하는 내용들이어야 한다. 법은 원래 압박용이다. 형법은 범죄인에 대한 고강도의 압박이다. 민법은 사적 영역에서 채무불이행자와 같은 약속 위반자를 압박한다. 북한인권법은 인권 참상을 초래한 북한 노동당 정권을 국제사회가 연대해 압박하기 위한 법이다. 인권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실천 수단으로서의 경제력이 근간이다. 언제까지나 퍼주기만 해서는 개선될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의식을 고양해 자결권을 확보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아시아 자유방송을 통해 북한에 방송되는 이유다. 논리의 연장선에서 설령 북한인권법의 일부 내용이 삐라살포단체지원법이 된다고 하더라도 삐라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의식 고양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북한 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되고,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경제력을 확보할 때 북한 인권 문제가 안착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세계 각국이 공동 노력을 하는 상황에서 내정간섭과 외교적 결례 운운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의식도 결여된 언행이다. 인권은 내정간섭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다. 극악한 인권 참상에 대해 국제 정의에 입각한 간섭은 지상 명령이고 그것이 인도적 개입 입법의 법리다. 세계 각국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법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같은 동포인 우리만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인권적 직무유기이자 역사적 소명 포기다. 이제 정치인들은 생존의 문제와 북한 주민들의 자결권 확보가 목적인 ‘북한주민인권법’을 제정하라. 대한민국 국회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인권법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북한 노동당 정권으로부터 내정간섭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북한주민인권법은 전 세계를 향한 자주적 결단으로 한반도 평화와 복지법이고 글로벌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국력 신장법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종북 논쟁을 막아 예산을 절감해 주는 법이고, 북한 주민과 탈북 난민들을 위한 한 줄기 구원의 손길법이다.
  • 또 오디션? 그래도 오디션! 나도 ☆이 될래

    또 오디션? 그래도 오디션! 나도 ☆이 될래

    올 하반기,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전쟁이 또 한 번 재점화된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냐?’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지만, 여전히 가수 지망생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야말로 가수가 될 수 있는 등용문, 그 자체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참가자들도 더 늘어나고 있고,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각 방송사에서 우후죽순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먼저 첫 출발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로 불리는 엠넷의 ‘슈퍼스타 K’. 8월 17일 오후 11시 첫 방송 예정인 슈퍼스타 K 시즌 4(이하 ‘슈스케4’)는 지난 4개월 동안 제주도·부산·광주·원주·대구·인천·대전 등 전국 8개 지역을 돌며 지역 2차 예선을 진행했다.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예선을 끝으로 지역 2차 예선을 마무리한 상태다. ‘버스커 버스커’, ‘울랄라세션’, ‘허각’, ‘존박’ 등 슈스케 출신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져서일까. 이번 서울 지역 2차 예선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명 이상의 참가자가 모였다. 특히 그룹 룰라의 리더 출신인 가수 이상민도 부산지역 2차 예선 오디션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을 포함한 전 지역 2차 예선은 모두 208만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시즌 3에선 197만 명이 지역 예선에 참여했다. 슈스케4에선 가수 이승철, 싸이, 윤미래가 본선 심사위원을 맡는다. 슈스케가 가수 지망생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데에는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과 비교했을 때 슈스케 출신들의 가수 활동이 비교적 성공적이란 평가 때문이다. 지난 시즌의 우승팀 ‘울랄라 세션’과 준 우승팀 ‘버스커 버스커’는 내놓은 음원마다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엠넷 등을 소유한 CJ E&M 계열 케이블 방송의 잦은 출연으로 여느 신인 가수들에 비해 홍보 효과도 비교적 쉽게 누렸다. 또 시즌 1때와 달리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출연에도 큰 지장을 받지 않으며 활동의 폭을 넓혔다. 각 공중파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자들이 주로 해당 방송사만 출연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케이블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들이 대중과의 접촉 기회가 더 많다. MBC와 SBS 역시 올 하반기, 자신들의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인다. MBC는 세 번째 시즌의 ‘위대한 탄생’으로 공중파 오디션 열풍에 힘을 보탠다. 시즌 3의 첫 방송은 10월로 예정돼 있다. 앞서 시즌 2는 지난해 방송을 시작해 지난 3월 종영했다. 시즌 1과 달리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선희, 이승환, 윤상, 윤일상, 박정현 등이 심사위원이자 멘토가 돼 방송 초반에 화제가 됐지만, 시즌 1에 비해 흥행 성적은 낮았다. 그래서 시즌 3에선 변신을 꾀할 예정이다. 먼저 회차를 조정한다. ‘위탄3’는 회차를 약 20회로 대폭 줄였다. ‘위탄 1’은 27회, ‘위탄 2’는 31회로 구성됐으나, 회차가 많아 늘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 심사위원과 멘토도 기존의 5명 체제를 깨고 4명으로 줄인다. ‘위탄 1’에선 김태원, 이은미, 신승훈, 방시혁, 김윤아가, ‘위탄2’에선 가수 이선희, 이승환, 윤상, 윤일상, 박정현이 멘토로 나섰다. 박지민, 이하이 등을 배출한 SBS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의 시즌 2는 오늘 11월 방송을 목표로 한다. 역시 심사위원에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국내 3대 기획사를 대표하는 YG의 양현석 대표, JYP의 박진영 대표, SM의 가수 보아가 또 한 번 뭉친다. 우승자 및 상위 성적의 참가자들에게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3대 기획사에서 활동할 기회를 준다. 실제로 시즌 1 참가자들의 성공적인 행보가 시즌 2에 대한 강력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시즌 1 우승자 박지민은 JYP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2위의 이하이는 YG와 계약했고, YG는 이미쉘, 이정미, 이승주는 수펄스로 데뷔시킬 예정이다. 3위를 차지했던 백아연은 ‘K팝스타’ 출신 중 가장 먼저 음원으로 대중들과 만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1일 발매된 임재범의 6집 앨범 수록곡 ‘행복을 찾아서’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 이외에 JYP행을 결정했던 박제형도 가수 데뷔 준비 중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글로벌 시대] 밥상과 창의력/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밥상과 창의력/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자문위원

    프랑스 유학 초기에는 한국식으로 서둘러 점심을 끝낸 후 나머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고역일 때가 많았다. 프랑스의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 2시간이다. 주말이나 저녁 식사는 더 길다. 비즈니스로 저녁을 할 때도 보통 오후 7~8시쯤 시작해서 밤 12시 가까이 되어야 끝나기 일쑤다. 저렇게 먹고 즐기면서 언제 일을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속도와 무한경쟁을 무슨 전쟁터의 구호처럼 외쳐대는 글로벌 시대를 조롱하듯 프랑스인들은 느긋하게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즐기고, 와인을 음미하며 다양한 주제들을 식탁 위에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를 해야 한다. 사람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행위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사람이 먹는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바로 맛이란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고 살지만, 막상 맛의 정체가 뭘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면 쉽게 감이 오지 않아 당혹스러운 게 또한 맛이다. 맛이란 단어는 친숙한 만큼 모호하고, 모호한 만큼 신비롭기조차 하다. 국어사전에는 맛을 ‘물건을 혀에 댈 적에 느끼는 감각, 사물에 대한 재미스러운 느낌,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느낌’ 등으로, 프랑스의 프티 로베르 사전에는 ‘오감 중 하나를 통해 감지하는 느낌, 음식의 맛, 어떤 음식에 대한 끌림, 좋고 아름다운 것 등에 대한 판단이나 감정, 특별히 좋아하는 것’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맛이란 단지 먹고 마시는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 그리고 심지어는 미적 감각까지를 어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맛이란 결국 이성이나 논리의 범주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느껴지고 감지되는 감정이고 감흥인 것이다. 하지만 맛은 직관을 통해 인간을 어떤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맛의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맛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심오하고 광대하기에, 라이프니츠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맛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맛 혹은 맛의 비판을 ‘미학’이란 이름으로 철학에 편입시킨다. 맛으로부터 미학이 탄생한 것이다. 맛의 철학은 칸트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에 따르면, ‘맛에 대한 분별력은 인간의 독립성과 도덕적 자유의 상징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저런 맛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의 손맛에서부터 다국적 거대 식료품기업의 수많은 제품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양하고 새로운 맛에 길들여지며 살고 있다. 효용성과 결과·속도만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에 부합하는 규격화된 맛의 대명사인 패스트푸드의 전성시대에, 맛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다른 어떤 사회적 담론이나 철학적 주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주희의 근사록에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가운데서 언어와 식음 이상의 것은 없다.’란 대목이 나온다. 세월이 한참 흐른 오늘날 더욱 곱씹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프랑스의 식문화에 대한 나의 의문은 베일을 벗는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이와 어울리는 와인을 천천히 즐기는 행위는 언뜻 시간의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맛을 느끼고 즐기는 행위는 그것 자체가 감각을 깨우는 훈련이요, 창의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여기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간의 대화와 토론은 창의력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맛에 대한 각자의 표현과 반응은 곧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드러내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이다. 뒤늦게나마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당국에 제안하고 싶다. 창의성 교육을 밥상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맛의 날’을 제정해서 일찍부터 맛에 눈뜨게 하면 어떨까? 왜냐하면 프랑스의 창의성은 밥상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 “기내용 가방에 아이가…” 5개월 아들 ‘밀반입’ 부부

    이집트의 한 부부가 5개월 된 자신의 아이를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아랍에미리트(UAE) 일간지 걸프뉴스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샤르자국제공항 엑스레이(X-ray)검색대를 통과하던 한 가방 안에서 아이 형태의 물체가 포착됐다. 공항당국의 조사 결과 이 작은 가방은 이집트에서 온 부부가 가져온 것으로, 가방 안에는 그들의 5개월 된 아이가 들어있었다. 공항 관계자는 “이집트에서 온 탑승객들의 기내 반입 수하물을 검사하던 중, 작은 손가방에서 아기의 모습을 발견했다.”면서 “엑스레이 스캐너를 통해 아기를 발견하고는 곧장 관계자들에게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하물 검사용 엑스레이 스캐너는 아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면서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울 뻔 했다.”고 덧붙였다. 현지 공항경찰의 조사 결과 이들 부부는 여행 비자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이의 여권이나 비자 등이 전혀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이를 몰래 아랍에미리트로 데리고 들어오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과거 아랍에미리트에 불법거주 한 이력이 있으며,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이집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함께 아랍에미리트로 돌아오려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아이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대가로 곧장 연행했으며, 애초 이집트 공항에서 아이를 어떻게 비행기에 태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추가로 조사 중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마카오에 3일간 머물렀다. 짧은 일정이었다. 초점은 음식에 맞춰졌다. 중국 광둥요리, 매캐니즈 푸드, 일본 음식, 국수와 에그 타르트 등 미식 기행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다른 출장에서 열흘간 먹은 음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했다. 안 그래도 나온 배가 한결 더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다이어트에 관한 한 마카오는 ‘적성국’이다. 에디터 김기남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02-778-4402 kr.macautourism.gov.mo 1 도시형 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인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 유럽의 정찬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2 알티라 호텔의 일식당 텐마사. 일본의 유명 텐푸라 레스토랑인 텐마사의 해외 지점이다 3 아마 사원 가까이에 위치한 오 포르토 인테리어. 매캐니즈 푸드 전문 식당이다 4 마카오 타워에 자리한 광둥요리 레스토랑 루아 아줄. 5 바닐라 민트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시럽을 얹어 먹는 더 테이스팅 룸의 디저트 6 포르투갈 특산물과 디저트 등을 선보이는 루시타누스.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서로 다른 문화의 합작품 15세기와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유럽의 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은 모두 포르투갈 사람이다. 배를 보낸 나라의 입장에서 그들은 탐험가였고, 배가 도착한 나라의 관점에서 그들은 침략자였다. 포르투갈은 중국의 남쪽 끝 마카오에도 발을 디뎠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두 세력이 말문을 트게 됐다. 1557년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당시 명나라의 군대를 도와준 대가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주했고, 자연스레 포르투갈의 음식과 음식 문화도 따라왔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운송 여건은 열악했다. 식료품은 마카오에 입성하기도 전 썩어버렸다.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지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법은 포르투갈의 것을 고수하되 재료는 마카오에서 나는 것을 이용했다. 여기에 포르투갈이 교역하던 다양한 기항지의 음식 재료와 양념 등이 보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카오 사람들도 점차 포르투갈 음식을 즐기게 됐고, 자연스레 중국의 요리법도 스며들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과 마카오가 함께 절차탁마해서 만들어낸, 오직 마카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캐니즈Macanese 푸드다. 삼각형 모양의 만두 매캐니즈 사모사는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는다. 고기, 양파, 고수를 잘게 다져 속을 채운 뒤 노르스름하게 튀긴다. 아프리칸 치킨, 덕 라이스, 커리 크랩 등은 메인 요리로 사랑받는 품목들이다. 닭고기에 10여 종의 향신료를 첨가한 다음, 오븐에 구워내는 아프리칸 치킨은 매콤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일단 먹고 나면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것처럼 몸이 더워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매운 것은 아니다. 덕 라이스는 말 그대로 오리고기를 넣어 지은 밥 위에 포르투갈 소시지를 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향신료가 곁들여진다. 커리 크랩은 마늘, 양파, 고추 등과 함께 볶은 게에 화이트 와인, 피시 스톡, 코코넛 밀크, 레몬즙 등을 넣어 익힌다. 게살을 발라 먹은 후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면 금상첨화다. 디저트 메뉴 중에는 세라두라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바닐라 크림과 고소한 쿠키 가루를 번갈아 쌓아 만드는데, 살짝 얼려 먹으면 더욱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갓 구운 에그 타르트를 들고 카페로 이동 중인 로드 스토우스 직원의 모습 2, 5 로드 스토우스의 카페 간판과 이곳의 명물 에그 타르트 3 더 테이스팅 룸의 치즈 플레이트 4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원두를 사용한다는 카페 싱잉 빈 커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중독은 시작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에는 애프터눈 티를 내놓는 곳이 많다. 홍콩 ‘옆 동네’인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는 세련되고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MGM 그랜드 마카오의 파티세리MGM Patisserie, 요새를 호텔로 개조한 산티아고 호텔 라운지의 라 팔로마La Paloma 등이 애프터눈 티 명소로 꼽힌다.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도 사랑스럽다. 마카오 타워 4층의 싱잉 빈 커피Singing Bean Coffee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특별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커피 맛도 준수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인기도 상당하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외곽에서 가장 빛나는 곳은 테주 강변의 벨렘 지구다. 앞서 말한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중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벨렘 탑, 1960년 엔리케 항해 왕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53m 높이의 발견기념비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벨렘 지구에 가면 꼭 맛보게 되는 음식이 에그 타르트다. 재정 자립을 위해 수도원에서 만들어 팔던 것을 상업화한 경우다. 너무 달다는 느낌도 들지만 커피와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마카오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우스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는 마카오 에그 타르트의 간판스타다. 원조와 최고, 두 가지 모두 로드 스토우스의 몫이다. 이 집 에그 타르트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폭신한 커스터드가 혀를 감싸는 순간, 중독이 시작된다. 1 다양한 차를 시음해볼 수 있는 마카오 차 이야기 2 국숫집 룩 케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3 루시타누스의 파두 기타리스트 4 루아 아줄의 딤섬 요리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차를 마시고 파두를 감상하다 마카오에서는 모든 중국 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중국 요리의 ‘4대 천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이징·산둥·쓰촨·광둥 지역의 요리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둥요리가 가장 발달했다. 광둥요리는 압축해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깊고 넓은 맛의 세계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재료로 상을 차린다. 산해진미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딤섬은 광둥요리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다. 쫀득한 찹쌀 피가 새우를 감싸고 있는 하가우, 육즙이 함초롬하게 고여 있는 샤오롱바우, 노란 만두피 안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게살을 넣은 슈마이, 부추와 새우로 속을 꽉 채운 고우초이가우 등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하다. 마카오에서 딤섬 잘하는 집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랜드 리스보아 2층에 자리한 중식당 더 에이트The Eight도 뒷줄에 서지 않는다. 맛도 맛이지만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비단잉어 벽면 등으로 멋을 부린 인테리어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카오 타워에 입점해 있는 루아 아줄Lua Azul도 평판이 좋은 광둥요리 레스토랑이다. 중국인들의 차茶 사랑은 유별나다. 생활의 일부분이다. 식사할 때도 차를 빼먹지 않는다. 중국 음식 특유의 기름기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에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다. 녹차의 일종으로 은은한 향이 일품인 용정차, 차의 생잎을 발효 도중 볶아 만드는 우롱차, 숙취 제거와 소화 촉진에 좋은 보이차, 맛이 달짝지근한 철관음차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마카오 여행 문화 체험 센터CATC 2층에는 마카오 차 이야기Macau Tea Story가 들어서 있다.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시음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루시타누스Lusitanus가 자리한다. 와인을 비롯한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타리스트가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를 연주해주는 점이 이채롭다. 애조 띤 선율이 우리네 정서에도 비교적 잘 맞는다. 숙명이란 뜻을 지닌 파두의 태생과 유입 과정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뱃사람이나 죄수들이 입에 자주 올리던 노래, 다른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 여러 갈래의 주장이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1,800년대 초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그리고 아프리카의 콩고와 앙골라에서 기원한 춤과 노래인 ‘룬두’가 파두의 발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은 무게감을 지닌다. ▶미식가를 위한 Travel to Macau 교통 에어 마카오가 인천~마카오 구간의 직항 편을 매일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3시간 30분.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레스토랑 매캐니즈 레스토랑으로는 아마 사원 부근의 리토랄Litoral, 오 포르토 인테리어O Porto Interior, 아 로차A Lorcha 등이 유명하다. 포르투갈 요리 타이파 빌리지의 안토니오 레스토랑은 정통 포르투갈 요리를 선보인다. 스타 셰프 안토니오 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궁>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리스보아 호텔의 레스토랑 귄초 아 갈레라Guincho a Galera도 포르투갈 음식을 내놓는다. 중국 요리 윈 리조트의 골든 플라워Golden Flower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한 개를 받은 중식당이다. 청나라 전통 요리를 제공한다. 샌즈 코타이 센트럴의 다이너스티 8 Dynasty 8은 청·한·수·당·송 등 중국 8개 왕조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티브로 한 레스토랑이다. 그랜드 리스보아의 누들 & 콘지 코너Noodle & Congee Corner는 상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국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주방장의 밀가루 반죽 퍼포먼스도 구경할 수 있다. 룩 케이Luk Kei는 서민적인 분위기의 국수 가게. 일본 요리 알티라 호텔의 텐마사는 다다미방을 마련해 놓은 일식 레스토랑이다. 와인 알티라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오로라Aurora는 마카오 최대 규모의 와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The Tasting Room에서는 유럽식 정찬 요리를 만끽할 수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의 비다 리카Vida Rica는 광둥요리에서부터 서양 요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9) 류성룡과 조헌

    [선택! 역사를 갈랐다] (19) 류성룡과 조헌

    임진왜란을 앞두고 비둘기파였던 류성룡(1542~1607)과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된 매파 조헌(1544~1592)은 원칙주의자로서 서로 갈등했다. 전쟁 후 류성룡은 ‘징비록’을 저술했고,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사한 조헌은 그의 제자 안방준의 기록 ‘은봉야사별록’을 통해 잘 알려졌다. 이 두 개의 문헌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류성룡과 조헌에 대한 해석은 제2라운드를 맞이한다. ●임진왜란 직전의 일본의 망상 100년 이상 이어지던 일본의 분열상태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중국 명나라는 물론 인도까지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나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선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도요토미는 조선과는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자리한 쓰시마(대마도)의 지배자인 소씨(宗氏)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소 요시시게(1532~1589) 등에게 조선 국왕이 직접 자신에게 항복하러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조선 국왕이 순순히 항복을 하면 조선과는 전쟁을 하지 않고 조선군을 앞세워 명나라를 칠 것이요, 아니면 조선을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쓰시마와 조선의 관계는 도요토미가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만일 반도와 열도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는 쓰시마로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터였다. 그래서 쓰시마 측은 조선 국왕 대신 조선 측의 사절단을 오도록 하겠다고 도요토미에게 아뢴 뒤, 이번에는 조선 조정측에 사절단의 파견을 간청했다. 사절단만 보내주면 두 나라 사이에서 전쟁은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비둘기파와 매파의 이견 사절단을 파견해 달라는 쓰시마 측의 요청을 받은 조선 조정의 의견은 갈라졌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거부했지만 쓰시마 측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당시 대제학이던 류성룡은 속히 결론을 내려서 두 나라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현장에서 동분서주한 실무가였다. 그러나 그는 임진왜란이라는 일본의 침략 전쟁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적대 정책을 펴서는 안 되며, 국내적으로는 전쟁을 대비하고 대외적으로는 능숙한 외교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징계해서 뒤의 어려움을 대비한다.”는 뜻을 제목에 담은 ‘징비록’의 첫머리에 성종에게 신숙주(1417~1475)가 남긴 “일본과의 화의를 잃지 마소서.”라는 유언을 실은 것이나, ‘징비록’에서 “왜”라는 호칭과 함께 “일본”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한 데에서도 실무가 류성룡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조헌은 쓰시마 측의 사절단 파견 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에서는 일본의 상황을 도요토미가 선왕(先王)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조헌은 신하의 신분으로 임금의 자리를 빼앗는 불의를 저지른 도요토미가 통치하는 일본과는 절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1591년 귀국한 황윤길(1536~?)과 김성일(1538~1593) 등이 가져온 도요토미의 국서 내용에 분개한 조헌은 일본 사신을 참수하고 그 시체를 여러 나라에 보임으로써 불의의 일본을 정벌할 연합군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김상헌(1570~1652)의 ‘청음집’에 적혀 있다. 이처럼 전쟁 발발 목전의 조선 조정에서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은 전쟁의 위기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어떤 나라에서든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선 군사정보, 일본으로 유출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나고 말았다. 조헌은 전쟁이 일어난 1592년에 고경명·영규 등과 함께 의병군을 이끌고 참가한 금산 전투에서 전사했고, 류성룡은 전쟁이 끝난 1598년에 관직을 삭탈당하고 하회로 낙향했다. 전쟁을 막고자 한 두 사람은 전쟁 중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비슷하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그래도 류성룡은 ‘징비록’을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헌보다는 행운이었다. 그 대신, 조헌은 비장한 최후를 맞이함으로써 후세에 변호인을 얻을 수 있었다. ‘은봉야사별록’을 쓴 안방준(1573~1654)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하늘이 조헌으로 하여금 살아서는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죽어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도록 했다며 슬퍼했다. 실로 조헌을 대신하여 그의 변론문을 썼다고 하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징비록’과 ‘은봉야사별록’은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겪은 류성룡과 조헌, 안방준에 대한 귀중한 증언임과 동시에, 전쟁 당시 조선 측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중요한 군사적 문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헌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약탈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쟁 후 검은 커넥션을 통해 일본으로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두 문헌이 조선국 바깥으로 유출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83년에 작성된 쓰시마의 장서목록에 이 두 문헌이 나란히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유출 시기는 그 이전으로 짐작된다. 유출된 지역은 아마도 왜관으로 생각된다. ●‘징비록’ 17세기 日 지성계에 큰 영향 근세 일본에서 이야기되던 임진왜란 담론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당사자나 그 주변인이 남긴 증언과 문헌에 의거한 것으로, 여기에는 오로지 일본 측 시각만이 담겨 있다. 그러다가 17세기 초기에 중국 명나라에서 제작된 ‘양조평양록’과 같은 문헌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일본인들은 임진왜란 때 자신들과 싸웠던 적국의 내정(內政)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명측의 문헌에는 자국의 군대가 한반도에 진입하기 이전 단계인 1592년의 전황을 비롯하여 조선 측의 상황이 소략됐고, 조선에 대한 명의 편견 역시 상당했다. 그 결과 일본과 명나라의 문헌을 종합해서 편찬된 ‘조선정벌기’ 등의 문헌에서는, 임진왜란은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전쟁이고 조선은 전쟁의 무대이자 수동적인 역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기록된다. 역사는 반복돼 1895년 청일전쟁 이후에도 되풀이된다. 17세기 중기 조선의 임진왜란 문헌 몇 점이 일본에 유입된다. 그 가운데 일본 지식인들이 주목한 것은 류성룡의 ‘징비록’이었다. ‘징비록’을 통해 명측 문헌에서 보이는 조선 측에 대한 편견 몇 가지가 수정되고, 조선 측에도 전쟁 영웅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일본에 알려졌다. 이순신이 일본에서 ‘영웅’으로 인식된 것도 ‘징비록’의 영향이었다. 비록 임진왜란을 명과의 일대 결전으로 바라보고 싶어 한 근세 일본인들의 관점을 ‘징비록’ 하나가 뒤집을 수는 없었지만, ‘징비록’이 근세 일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 것 역시 사실이었다. 예컨대, 1695년 교토에서 출간된 일본판 ‘징비록’의 서문을 쓴 유학자 가이바라 엣켄(1630~1714)은 당시까지 일본에 존재하던 임진왜란의 기록 가운데 ‘징비록’과 ‘조선정벌기’만이 ‘실록’(實錄)이며 다른 것들은 번잡하여 볼 것이 없다고 평하였다. ●日 ‘은봉야사별록’으로 ‘징비록’ 비판 물론 인기를 끌면 반발도 생기는 법. 18세기 후기가 되면서 ‘징비록’을 폄하하는 문헌들이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왜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지닌 쓰시마의 학자가 쓴 ‘조선정토시말기’라는 책의 서문에서, 아사카와 도사이(1814~1857)는 류성룡이 “당시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에게 해를 입힌 죄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거짓을 적어 사람들을 속였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징비록’을 ‘실록’이라고 칭송한 가이바라 엣켄을 비판하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상반된 견해가 이 시기의 일본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아사카와는 1849년 일본에서 간행된 ‘은봉야사별록’에도 서문을 실었다. 여기서 그는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 국왕 선조는 음락했고 조정에서는 류성룡·이덕형 등의 간신이 발호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침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명나라의 도움을 기다려서 간신히 나라를 되살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양조평양록’의 기사를 끌어와 류성룡과 ‘징비록’을 비판한다. ‘은봉야사별록’를 간행한 것은 미토학(水戸学)이라 불리는 에도시대 후기의 일본중심적 학파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아사카와처럼 ‘징비록’에 대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은봉야사별록’을 함께 이용함으로써 ‘징비록’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격하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류성룡과 조헌의 대립과 갈등은 ‘징비록’과 ‘은봉야사별록’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임진왜란 문헌에 실려 일본 학자들에게 알려졌다.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 편을 들 필요가 없던 일본 학자들은 두 문헌을 비교하며 냉정한 눈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측 상황을 서술했다. 조선 내부의 갈등이 근세 일본에서 재현되어 저들에게 편리하게 이용된 씁쓸한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가와구치 조주(1773?~1834)는 임진왜란 관련 문헌을 종합하여 임진왜란을 연대순으로 편찬한 ‘정한위략’을 간행하였다. 그는 이 문헌의 기본틀을 잡기 위해 ‘징비록’의 서술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이이·조헌과 대립한 류성룡을 비판하는 ‘은봉야사별록’의 구절을 여럿 가져와서 ‘징비록’과 류성룡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류성룡이 간신이었다는 ‘양조평양록’의 글에 대해 ‘은봉야사별록’에서도 류성룡을 마찬가지로 비판하고 있는 걸 보니 이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다만, ‘징비록’에서 우국충정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 류성룡은 처음에는 나라를 그르쳤으나 전쟁이 일어난 뒤에 반성했음을 알겠다고도 적고 있다. 김시덕(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
  • [기획]최고경영자=⑪ 세방(世邦)그룹 오세중(吳世重)씨

    [기획]최고경영자=⑪ 세방(世邦)그룹 오세중(吳世重)씨

     관광업체 중「랭킹」1위를「마크」하고 있는「세방(世邦)」의 73년 외화 획득 목표액은 4백56만$, 한화로 치면 18억원. 세방(世邦)여행사,「글로발」여행사, 세방관광(世邦觀光) 3개 회사를「리드」하는 세방(世邦)「그룹」회장 오세중(吳世重)씨(49)는 대학시절 영어책을 내다 팔아 끼니를 때우던 고학생, 자수성가의 대표적인「케이스」다. 『「호텔」이 모자라요. 관광객을 받아들일「호텔」방이 없어서 이 정도에 그치고 있읍(습)니다.이 문제만 해결되면 6백만~7백만$까지도 기록할 자신이 있읍(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 까무잡잡한 얼굴. 사장이나 회장이란 인상을 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샐러리맨」과 같은 느낌이다.  세방(世邦)의 72년 실적은 관광객 3만8천명에 2백30만$. 외국관광객 한 사람에 평균 61$씩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이에 비해 73년 목표는 7만8천명에 4백56만$로 관광객 1인당 58$씩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72년의 전체 외국관광객이 37만명이었으니 그 중 10%의 손님을 세방(世邦)이 시중 든 셈이다.  관광업체 중에서「톱」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한때 어머니와 팬츠 장사…영어사전 팔아 끼니 때(우)고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의 80%가 일본인입니다. 일본 관광객의 대중화가 아루어진 반면 질적인 면에선 해마다 떨어지고 있어요. 72년 관광객 1명에 대한 수입이 60$선이었던 것이 올해는 50$선으로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쨌든「붐」은「붐」이에요. 큰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 3~4년간은 한국 관광「붐」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읍(습)니다. 그 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복이 있겠지요』  오(吳)씨가 지적하는 바론 8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관광객은 구미 관광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 구미 관광객은 일단 관광에 나서면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도는데 비해 일본인은 거의 한 곳에 머무르며「릴렉스」하는 관광여행이라는 것이다.  결국 3~4년 후 혹시 중공(중국)의 문이 열리면 그쪽으로 몰리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상을 하고 있다.  관광업계에 오(吳)씨가 뛰어든 것은 58년 5월. 대한여행사 해외여행부 직원으로 출발했다. 60년에 지금의 세방(世邦)을 창설, 만 13년만에「랭킹」1위의 관광업계로 세방(世邦)을 키워 왔다.  『관광업도「서비스」업이 아닙니까? 남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라고 믿고 있지요.「정직」하면 사업도 번창하고 돈도 모을 수 있겠지요』  오(吳)씨는 고대(高大) 영문과 출신. 대학 졸업후 피난지 부산(釜山)에서 국제신보 외신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후 우연한 기회에 서북항공사로 옮겨 5년간 근무하다가 뛰어든 곳이 바로 대한여행사였다.  오(吳)씨의 학창 시절은 가난과 고생으로 점철되었던 시련기.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맨손으로 월남한 처지였기에 눈물나는 고생을 해야 했다.  서울에 떨어져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림을 꾸려야 했는데 하루는 쌀독이 바닥났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보아도 집에 값나갈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들고 나간 것이 영어「콘사이스」. 전차 탈 차비마저 없어 마포에서 종로2가의 고서점까지 걸어야 했다.「콘사이스」를 처분하여 생긴 돈이 5백환. 메고 갔던 배낭에 살 한되를 넣고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해 먹은 추억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남대문시장에서「팬츠」장사로「아르바이트」. 헌 광목을 사다 염색을 하여 만든「팬츠」를 내다팔아 생활을 꾸려나갔다.  당시「팬츠」만드는 바느질 일을 맡은 것이 어머니. 광목을 사오고 , 만든「팬츠」를 내다파는 일은 오(吳)씨가 맡았다.  『동란 때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거의 20대는 비참할 정도였어요, 극장이나 다방이라곤 근처에도 얼씬해 보지 못한채 나이 30을 넘겼으니까요』  공부하는 경영자로 사원 승진시험 치러  이 때문인지 오(吳)씨는 이름난 구두쇠. 꼬장꼬장하고 헛돈을 안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오(吳)씨와 함께 일하는 사원들의 이야기를 빌면 오(吳) 회장 자신이 메(미)주알고주알 너무나 다 알고 있어 일하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고.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예이기에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과는 나무나 차이가 난다고 혀를 내두른다.  또 오(吳)씨는 한번 사람을 쓰면 절대로 내보내지 않는 경영자로도 유명.  현재 세방(世邦)에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중역진의 대부분이 60년 세방(世邦)이 출범할 당시 신입 사원들이었다.그래서 현재 세방(世邦)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연조 깊은 사원이 많아 월급이 너무 많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 사원 봉급이 세방(世邦) 전 예산의 50~60%를 처지하는 데다 봉급「베이스」가 높은 사원이 많아 골치를 앓고 있다.  『이젠 옛날과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희같은 관광업체의 경우엔 특히 사원들의 자질 문제가 회사의 장래를 결정하게 되었읍(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이는 우선 만나는 고객들과 이야기가 통하질 않게 돼요. 때문에 근무 연한이 오래 되었다고 승진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치러서 일정한 수준의 성적을 따야 승진하도록 하고 있읍(습)니다』  경영자로서 영문과 출신이란「핸디캡」을 메우기 위해 오(吳)씨는 69년 고대(高大) 경영대학원 연구과정(1년「코스」)을 수료한데 이어 그 해에 또다시 석사과정에 입학,「공부하는 경영자」가 되기 위한 자세를 가다듬었다.  대학·대학원을 모두 고대(高大)에서 수료한 탓인지 사원의 8~9할이 고대(高大) 출신. 그러나 오(吳) 회장 자신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파안대소.  오(吳)씨의 취미는 바둑(7급)과「골프」(「핸디」10). 세방(世邦) 창설 후에는 사회 활동도 부지런히 해 온 편. 1960년 이후 줄곧 JCI·「로터리·클럽」회원으로 활약해 왔다.  부인 백남희(白南姬)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해부터는 수도여사대 관광개발과 강사로도 출강. 오(吳)씨 자신의 뼈아픈 대학 생활이 너무도 사무쳐 수도여사대에「세방장학회」를 마련, 가난한 대학생을 돕고 있기도 하다.  <신근수(申槿秀) 기자>[선데이서울 73년 3월 25일 제6권 12호 통권 제23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진짜 외계인은 오렌지빛 해파리처럼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해온 것과 달리, 외계인은 오렌지 색깔을 띠며 해파리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는 과학자의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인공위성 전문가이자 정부 자문관인 매기 애더린-포코크는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보면, 실제 지구 밖에서 사는 생명체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다르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녹색빛 사람 형태가 아니라 축구공 사이즈의 작은 해파리와 비슷하며, 부력을 가진 양파 모양의 주머니를 가졌고 아래쪽은 오렌지 빛을 띤다는 것.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외계인의 금속 재질 피부는 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커다란 입을 통해 각종 화학적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비록 해파리처럼 생겼지만 바다에서 생존하지는 못하며, 양파 같은 주머니에 뜨거운 공기를 넣어 허공을 둥둥 떠다닐 수 있고 적을 만났을 때 몸을 재빨리 움직이는데 쓰기도 한다. 또 대부분 외계인은 탄소가 풍부한 환경에서 생존한다고 여겨져 왔지만 오히려 규소(silicon)가 많은 대기에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애더린-포코크 박사는 “외계인은 반드시 존재하지만 우주가 너무 광활하여 당장 접촉이 불가능 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지금껏 상상한 외계인은 그저 우리 주위에서 보아 온 것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계인의 실질적인 정보를 파악한다면 우주에서 지구가 과연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훈장(MEB·Memb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을 만큼 유명한 이 애더린-포코크 박사는 외계인이 실존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내세운 과학자 중 한명으로서, 현재 프랑스의 우주 개발 회사인 ‘아스트리움’(Astrium)에서 우주과학 전문가들을 이끌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98% 완벽 보존된 ‘아기 공룡’ 화석 공개

    독일에서 척추 뼈 하나까지 완벽하게 ‘살아있는’ 새끼 공룡의 화석이 공개돼 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억 3500만년 전 유럽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공룡의 화석은 지난 2009년 독일 남부의 한 채석장에서 발견됐으며 보존 비율이 98%에 달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화석의 주인 이름은 시우루미머스(Sciurumimus)로, 육식성에 두발로 보행한 수강아목의 공룡으로 추정된다. 몸에 난 잔털까지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유럽에서 발견한 공룡화석 중 가장 완벽한 보존 상태를 보인 이 공룡은 몸길이가 72㎝에 불과하며 생김새는 티라노사우르스와 유사하다. 알에서 깨어난 지 1년 정도 후에 죽었으며, 큰 두개골과 안쪽으로 숨겨진 짧은 다리, 부드러운 피부가 특징이다. 크게 벌리고 있는 입 사이로 작고 날카로운 이빨이 보이며, 긴 꼬리와 배 등을 보아 온 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발견한 독일 바이에른 고생물·지질학 수집연구소의 올리버 라후트 박사 연구팀은 “지금까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티라노사우르스의 화석 보존비율은 80%정도였지만, 이 화석은 98%에 달한다.”면서 “몸에 난 털로 보아 실러러소르(coelurosaurs)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새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작은 공룡인 실러러소르는 티라노사우르스 등 육식 공룡으로부터 진화했으며, 몸에 난 털이 훗날 새의 깃털로 진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라후트 박사는 “이 화석의 발견은 고생물학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화석과 관련한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학술원회지(PNAS·Proceeding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CEO 칼럼] 이발소와 사진관, 코닥의 교훈/윤문석 VMware Korea 지사장

    [CEO 칼럼] 이발소와 사진관, 코닥의 교훈/윤문석 VMware Korea 지사장

    130년 역사의 사진 기업 코닥이 올해 초에 파산을 선언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과 같은 아성이 ‘디지털’이라는, ‘스스로 주도한 혁신’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원인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코닥이 미래보다 현재에 집착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랬기에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하고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세계 필름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의 코니카와 독일의 아그파가 변화의 물결 속에 속절없이 사업을 접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후지는 의료, 전자소재, 화장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까스로 이름을 지켰다. 그러나 코닥은 1등이라는 현실에만 안주해 변화와 혁신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무심한 변화’가 일어나는 일상의 공간은 또 다른 배움터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과거 동네마다 이발소와 사진관이 즐비했던 때가 있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발소와 사진관은 꽤 장사가 잘됐다. 사진은 찍으면 반드시 현상 인화를 맡겨야 했고, 머리는 매번 자르고 가꿔야 해서 정기적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 업종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식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미용실의 출현으로 손님을 빼앗기더니, ‘남성용’ 프랜차이즈까지 생겨나면서 이발소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사진관은 이발소보다는 조금 더 명맥이 길었던 것 같다.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막 열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관을 찾았고, 사진을 인화했다. 하지만 온라인 사진 현상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굳이 사진을 현상하지 않아도 보고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기기들이 보편화되면서 사진관도 운명을 달리했다. 젊어서 배운 이발 기술로 부지런히 일하며 한 가정을 건사해온 어느 이발사나 은퇴 후 귀향하겠다던 어느 사진사는 파도 같은 변화에 떠밀려 가게를 닫고 지금 어디선가 새로운 업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규모 점포들도 이럴진대, 기업들은 또 어떠할 것인가. 2009년 11월 28일은 국내에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날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해 마지 않았던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애플이었고, ‘피처폰 시대’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국내 제조사들은 급작스럽게 한 시대의 종막을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는 계속해야 하는 법. 스마트폰의 시대에 발맞춰 우리 기업들은 지난한 혁신을 거듭해 어려움을 극복했고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와신상담의 저력을 세인들에게 확인시켰다.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 정보기술(IT) 업종만큼 변화와 혁신이 급격하고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곳도 없다. IT 기업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고객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남다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와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고 그에 따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기업의 부침과 존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혁신의 아이콘’이라면, IT 기업은 ‘혁신의 적자(嫡子)’라고 말할 수 있다. IT 기업들이 발굴한 기술과 서비스는 일반 기업들의 혁신에 필요한 다양한 계기와 동력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신기술’과 그것이 몰고 올 경제·사회적 변화를 눈여겨보고, 신속하게 제 것으로 만들어 혁신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트렌드 변화에 대한 통찰력, 적응력을 바탕으로 유연한 조직과 마인드를 갖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경영의 단초를 확보할 수 있다. 부릅뜬 두 눈으로 내일의 먹거리를 찾고, 가슴으로 소비자의 감성과 요구를 읽어내야 하며, 잰걸음으로 부단한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시대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4)대전 중촌동 왕버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4)대전 중촌동 왕버들

    60년도 더 지났건만 이 땅에 전쟁이 남긴 상처는 채 씻어지지 않았다. 전쟁 발발일이 들어 있는 유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갖가지 요란한 행사를 치르지만, 평화를 향한 걸음걸이는 여전히 제자리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사는 곳이 다르다는 턱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역사의 상흔은 안타깝게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누구라도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가 이토록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게 내려놓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야 참 평화가 살아 있는 세상에 다다를 수 있을지 곰곰 생각하게 되는 계절이다. ●좌익과 우익을 번갈아 학살한 현장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상처이기에 더 보듬어 안아야 해요. 감춘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증거를 생생히 보전하고 바라보는 것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첫걸음 아니겠어요.” 풀뿌리여성 마을숲 공동대표 민양운(49)씨는 토요일이면 마을 중학생들과 함께 ‘평화의 나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나무 주변의 공터를 청소한다. 시민들 스스로 ‘평화공원’이라 이름 붙인 공터 주변이다. 그러나 ‘평화공원’은 이곳 대전 중촌동 주민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이다. 평화공원이나 평화의 나무는 지역 행정의 공식 명칭이 아니다. ‘그루터기’라는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마을 역사 탐험대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다시는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붙인 이름이다. 한켠에 전쟁 희생자 위령탑이 높지거니 솟아 있지만 공원이라 부르기에는 초라한 아파트 옆 공터다. 이 자리에서의 참혹한 비극은 일제 식민지 때부터 시작됐다. 1919년에 일제가 이 자리에 ‘대전 감옥’을 짓고,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한 게 그것이다. 이어 한국전쟁 때는 이곳에 수감됐던 좌익 인사들이 죄 없는 양민과 함께 남쪽의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됐다. 바로 1800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전 산내 학살사건이다.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산내 학살사건 직후 대전 지역을 점령한 북쪽의 군인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북으로 퇴각하면서 수감 중이던 우익 인사 학살로 앙갚음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생명을 짓밟은 최악의 비극이었다.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건만 당시의 흔적이라고는 한 개의 우물과 망루가 전부다. 그나마 다른 건물들 틈에 파묻혀 찾기도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이름 붙인 나무 “제대로 남은 게 없어요. 당시의 자취를 지켜야 했는데, 좀 늦었어요. 마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안타까워하던 중 찾게 된 것이 바로 이 나무였죠.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았던 살아 있는 생명체로 유일하게 남은 흔적이지요.” 민씨는 마을 사람들과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지역에 남은 전쟁의 상처가 생각보다 우심하다는 걸 알았고, 이를 극복하는 게 곧 이 시대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옛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은 대부분 사라진 뒤였지만 다행히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을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나무를 ‘평화의 나무’로, 그 주변 지역을 ‘평화공원’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어 나무를 오래 지키기 위해 관계 기관에 보호수로 지정해 달라는 청을 넣었으나,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정성껏 추렴하여 나무가 겪은 옛일을 기록한 안내판을 세웠다. 평화공원 왕버들은 키가 9m를 넘고, 사방으로 고르게 14m까지 나뭇가지를 펼쳤다. 가지마다 무성하게 피어 난 잎사귀의 싱그러움은 청년기 왕버들의 전형적인 건강함을 보여 준다. 비스듬히 올라온 중심 줄기는 썩어 문드러지면서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나무의 규모를 이야기할 때에 흔히 이야기하는 사람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값은 그래서 의미가 없다. 줄기가 잘 썩는 왕버들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여느 나무에 비해 자람이 빠른 왕버들이지만, 현재 나무 줄기의 상태와 전체적인 규모로 보아 대략 100세 정도로 보인다.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일제가 대전 감옥을 짓고, 감옥 주변의 연못 가장자리에 풍치수로 심었던 여러 그루의 나무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평화는 밥 짓듯 스스로 조금씩 익혀 가는 것 대전 감옥 주변의 학살 참사를 고스란히 목격한 왕버들은 감옥도 연못도 심지어 나란히 서 있던 다른 나무들조차 모두 사라진 뒤에 홀로 남았다. 그야말로 폐허의 터에 욕처럼 살아남은 목숨이다. 옛 비극의 흔적을 갈아엎고, 고층아파트를 짓고, 번잡한 시장이 들어서며 모두가 잊으려 하는 기억을 홀로 붙들어 안고 서 있는 목숨이어서 더 치욕스럽다.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다. “모든 비극을 고스란히 바라보았을 나무가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옛일을 잊으려고만 했지 묻지는 않아요. 이제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게 평화에 다가서는 길이에요.” “평화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밥을 짓듯이 우리 스스로가 조금씩 익혀 가는 것”이라고 덧붙인 민씨의 어깨 위에 ‘평화의 나무’ 가지에서 살랑이는 잎새의 초록 향기가 살풋 내려앉는다. ‘호국보훈의 달’이 저물어 간다. 이제 전쟁의 상처를 씻어 내고 유월을 ‘평화의 달’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할 때다. 전쟁의 현장에서 ‘호국’보다 ‘평화’의 이름을 얻은 한 그루의 왕버들이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간절한 아우성이다. 글 사진 대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대전 중구 중촌동 16-11 자유회관. 경부고속국도의 대전나들목으로 나가서 2㎞ 남짓 직진하면 고가도로가 나온다. 고가도로를 이용해 다시 1.2㎞쯤 직진한다. 대전 시내를 흐르는 대전천을 건너자마자 우회전한다. 곧바로 나오는 대전중·고등학교를 끼고 좌회전해 450m쯤 간 뒤 우회전하면 곧바로 대전 선병원이 나오고, 그 맞은편의 자유회관 가장자리가 평화공원이다. 나무는 자유회관 마당 한켠에 있는데, 주변의 주차 사정이 좋지 않다. 도로변의 공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 “나 좀 살려주시게” 흥선대원군, 명성황후에게 목숨 구걸

    “나 좀 살려주시게” 흥선대원군, 명성황후에게 목숨 구걸

    1873년 실각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하는가 싶었지만 친청파인 명성황후의 역습으로 그해 청나라에 납치됐다. 유폐된 톈진(天津)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흥선대원군은 1882년 정치적 라이벌인 명성황후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한글 편지를 보낸다. “그동안 망극한 일을 어찌 만 리 밖 책상 앞에서 쓰는 간단한 글월로 말하겠습니까. (중략) 다시 뵙지도 못하고 (내가 살아 있을) 세상이 오래지 아니하겠으니 지필을 대하여 한심합니다. 내내 태평히 지내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종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27일 “흥선대원군이 편지봉투에 ‘뎐 마누라 젼(前)’이라고 써 놓은 편지가 그의 부인 민씨가 아니라 며느리인 명성황후에게 보낸 편지였다.”고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주장했다. 이는 1973년 11월 문학사상 14호에서 정양완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마누라’를 아내로 해석한 기초를 부정한 것이다. 이 연구원은 “‘뎐 마누라 젼’의 ‘뎐’은 대궐 전(殿) 자이며 ‘마누라’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된 말”이라며 “(순조 임금의 딸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의 글에도 ‘뎐 마누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중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는 “편지의 사연으로 보아도 대원군의 부인이 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마마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還位)를 하셨거니와 나야 어찌 생환하기를 바라오리까.’라는 편지 내용에서 ‘환위’는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지방으로 피신했다가 왕궁으로 돌아온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이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또한 안부를 물을 때는 임금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편지에서 흥선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의 안부보다 실권자인 명성황후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면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겠느냐.”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1)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1)

     두만간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시우(李時雨) 작곡『눈물 젖은 두만강』의 1절이다. 김정구(金貞九)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노래는 1935년에 OK「레코드」에서 취입됐다. 국내뿐 아니라 만주(滿洲) 일본 등지에 있는 교포들을 숱하게 울린 노래로, 그리고 근 40년 꾸준히 애창된 노래로 손꼽힌다. 2년 뒤면 60살이 되는 노장 가수 김정구(金貞九)는 지금도 술집 무대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김정구(金貞九)의「팬」이었던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 이제 다시 김정구(金貞九)의「팬」이 되어 이「두만강 푸른 물-」에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김정구(金貞九)는 1934년에「레코드」사「뉴·코리아」에서『어머님 품으로』란 노래를 취입함으로써 가요계에「데뷔」했다. 최근 감기 몸살로 4일간 쉬었다는 그는『4일간이나 노래를 못부른 건 평생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꾸준히 노래를 불렀다. 김정구(金貞九)야말로 가요 사상 최장수(最長壽) 가수다.  출생지는 함남(咸南) 원산(元山). 작곡가 겸 가수로 날린 김용환(金龍煥)이 바로 친형이고 일본(日本) 동경(東京)음악학교 출신의 여가수 김(金)안나가 바로 누나다.  『16살에 고향을 떠났읍(습)니다. 그때까지는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 공부를 했죠. 3남매가 남매 합창단이 되어 강원도 일대의 교회를 돌기도 했읍(습)니다』  형 김용환(金龍煥)씨한테「바이얼린」을 배웠고 이흥열(李興烈·작곡가) 황재경(黃才景·목사) 두 사람한테「클래식」을 배웠다. 그러니까 당초 김정구(金貞九) 의 꿈은 정통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중 가요로 목청을 돌린 건 돈벌이 때문이었다. 일본서 고학으로 음악학교에 다니는 누님이 너무 고생하는데 자극 받아 돈벌이가 되는 대중 가요를 택했다 한다. 물론 이 시도는 충분히 성공했다.「데뷔」1년 뒤『눈물 젖은 두만강』이「히트」함으로써 김정구(金貞九)는 돈방석에 올라 앉게 된 것이다.  학비 벌려 대중가요 택해···코믹·송으로 인기를 다져  『그때 취입료, 무대 출연료 모두 합쳐서 한달에 1천원 가량 받은 일이 있었죠. 3백50원 주고 고향에 대궐 같은 집을 샀읍(습)니다』그러나 세월 좋을때 마련한 재산은 고스란히 고향에 두고 1·4 후퇴때 빈 손으로 내려왔다.  당초 김정구(金貞九)의 인기는 만요(만謠)라고 불린「코믹·송」으로 굳혀졌다.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로 시작되는『총각 진정서』나「비단이장사 왕서방」의『왕서방 연서』가 그 방면의 대표곡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장「실크·해트」를 쓰고 부동 자세로 노래하는 게 무대「매너」였다. 만요가수 김정구(金貞九)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익살스런 노래에 맞춰 익살스런 몸짓을 해야 했기 때문에 손발을 흔들고 몸짓, 고갯짓을 했다. 이것이 새로운『제스처』라고 관객의 환영을 받았다.  목소리가 형 김용환(金龍煥)과 비슷해서 처음에는 오해를 받았다. 김용환(金龍煥)은「포리돌」전속이었는데 김정구(金貞九)가「뉴·코리아」에서『어머님 품으로』를 취입 발표하자 김용환(金龍煥)이 타사에서 취입했다고 일대 소동을 벌였다는 것.  OK로 옮겨와 처음「히트」한 노래가 박시춘(朴是春) 작곡의『항구의 선술집』이다.「부어라 마셔라 탄식의 선술집」이렇게 시작되는 이 비탄조의 노래는 그때 술집 기생들이 무척 즐겨 불렀다.「사나이 우는 맘을 누가 알리요」하는 2절은 그야말로 갈 곳없는 젊은이들의「엘레지」.「파이프 연기처럼 흐르는 신세, 내일은 어느 항구 선술집에서」의 3절은 방황하는 젊은이를「마도로스」에 비유한 것이라 한다.  대표곡『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 이면에는 흥미있는 일화가 뒤따르고 있다. 작곡자 이시우(李時雨)는 그때 만주지방 공연단을 따라 두만강변 국경 지대인 도문(圖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갈채받은 노래 때문에 유치장 신세까지  국경의 허술한 여관방에서 잠 못이루고 뒤척이던 그의 귀에 조용히 흐느껴 우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산란하던 그는 그 여인을 불러 우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 여인은 남편을 찾아서 국경을 넘어 왔는데 돈벌어 온다던 남편은 일본 경찰에 잡혀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는 것. 그때 독립운동단체의 연락 책임을 맡았던 탓으로 남편은 아마 죽음을 당한 것 같다는 사연.  이 여인의 슬픈 사연을 이시우(李時雨)는 5선지 위에 올렸고 당시 작사자로 날린 김용호(金用浩)가 가사로 만들었다 한다.  만주 지방에 흩어진 교포들은 김정구(金貞九)가 부르는 이「두만강 푸른 물에-」자기들의 설움을 담아 위안을 삼았다. 『낙화삼천(落花三千)』은 김정구(金貞九)에게 1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게 한 노래.「물어보자 물어보아(자) 3천궁녀 간 곳 어디냐」하고 부르는 이 노래는 망해 간 백제(百濟)를 소재로 한 것인데 일경(日警)의 귀에는 항일의 노래로 들린 것 같다. 평양 지방공연에서 이 노래가 갈채를 받자 그때 일경의 앞장이 였던「다까야마」란 한국인 형사가 김정구(金貞九)를 평양경찰로 연행해 가 1주일간 유치장에 넣었다. 마침내 노래마저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묘한 것은 이 노래가 바로 지원병 응모를 장려하는 총독부의 국책영화『너와 나』의 주제가 였다는 점이다.  <조관희(趙觀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18일 제6권 11호 통권 제23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23억원 기부 ‘젓갈 할머니’ 국민훈장 동백장

    23억원 기부 ‘젓갈 할머니’ 국민훈장 동백장

    평생을 피땀흘려 번 돈을 선뜻 내놓은 기부천사,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목숨을 구한 살신성인 희생자 등이 정부 포상을 받는다. 행정안전부는 26일 제2회 국민추천포상자 24명을 선정·발표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7년간 일하며 초·중·고·대학교 등에 23억원을 기부한 ‘젓갈할머니’ 유양선(79) 할머니에게는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된다. 아프리카에서 14년간 직업학교를 운영하며 지역인재를 육성한 김해영(47)씨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는다. 척추장애로 키가 134㎝인 김씨는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서 보츠와나로 가서 자신의 기술을 전수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목련장은 각각 3~4등급 훈장으로 지난해 국민포상자인 고 이태석 신부는 1등급 무궁화장을 받았다. 장애아동 5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을 입양한 강수숙(52)씨와 35년째 소외계층에 무료진료를 하는 고영초(59)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장 등 8명은 국민포장을 받는다. 목재소를 운영해서 모은 재산 15억원을 장학재단에 기증한 김흥제(84)씨와 우리나라 미혼모 문제 개선에 적극 나선 미국인 리처드 보아스(63)도 포함됐다. 천안함 피격사건 유족 보상금 중 1억원을 방위성금으로 내놓은 윤청자(69)씨,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재출발할 수 있도록 보일러 기술을 전수한 이영수(58)씨도 국민포장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밖에 부산 해운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익사한 신상봉(39)씨와 경기도 안산 앞바다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려다 숨진 김택구(50)씨, 검정고시 합격자 1800여명을 배출한 인천 최초 야학 설립자 김형중(65)씨 등 8명은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또 무보수로 인명구조와 환경보호활동을 하는 ‘백두대간지킴이’ 조형산악구조대도 단체 이름으로 대통령표창을 받는다. 정부는 국민 추천을 받고서 공적사실 확인과 국민추천포상 심사위원회 공적심사를 했으며 7월 초 훈포장을 수여한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시리아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1만년 전 건축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인 로버트 메이슨 박사는 지난 2009년 시리아를 방문했다가 기이한 형태의 돌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돌 건축물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5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근에는 19세기까지 사람들이 왕래하고 벽화 등이 보존돼 있는 마르무사 수도원이 있다. 주거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인근에서 거대한 선돌을 둥글게 줄지어 만든 환상열석(Stone circle)과 석기 등이 함께 발견됐으며, 연구팀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죽음의 풍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메이슨 박사는 정확한 건축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돌의 형태와 유일한 건축물인 수도원의 형태를 보아 신석기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6000~1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4500년 전 보다 수 천년 더 이른 시기다. 또 인근에 있는 수도원의 지하에는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무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슨 박사는 “돌들은 매우 심플하게 배열돼 있으며, 처음 발견 당시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이 미지의 돌 건축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여전히 내전이 활발해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곳은 ‘시리아의 스톤헨지’나 다름없다.”면서 “1만년 전 만들어진 돌 건축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미스터리 돌 건축물 인근의 마르무사 수도원 전경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PIIGS 세팀 4강, 그래서 축구다

    [스포츠 돋보기] PIIGS 세팀 4강, 그래서 축구다

    4강에 세 팀이나 ‘기어이’ 올라왔다. 포르투갈-스페인, 독일-이탈리아 대결로 압축된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12 4강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흥미진진한 ‘지정학적 매치업’으로 배치됐다. ‘이베리아 더비’로 불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해상 패권과 식민지를 다투던 전통의 앙숙이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알프스 산맥을 등진 데다 1차 세계대전 때 총부리를 겨눴다가 2차 세계대전에선 추축국으로 한 배를 탄 인연으로 돋을새김된다. 더욱이 유로존 17개 회원국 가운데 재정수지 악화, 부동산 거품 붕괴로 촉발된 금융 부실, 높은 실업률이란 공통점으로 싸잡혀 ‘PIIGS’(돼지들)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5개국 가운데 아일랜드와 그리스가 각각 이번 대회 조별리그와 8강전에서 짐을 싸고 세 나라가 준결승에 진출한 것은 자국의 사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진다. 특히 이들과 준결·결승에서 맞붙을 상대로 독일이 자리 잡은 것도 흥미롭다. 독일이 유로존에서 이들 나라의 재정 및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돈보따리를 풀어야 할 ‘물주’(物主)로 프랑스와 함께 거론되기 때문이다. 축구에 정치적인 해석을 가미하는 건 어울리지 않지만 나라 살림이 거덜난 국가의 응원단이 대회를 개최하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까지 찾아와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팬들이 적지 않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조별리그 1차전을 보기 위해 폴란드를 찾았다가 국민들로부터 ‘지금 축구 보러 다닐 때냐?’, ‘돌아오지 말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23일 독일이 8강전에서 그리스를 4-2로 따돌릴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관중석에서 어깨춤을 추며 손뼉을 치는 모습을 중계로 지켜본 그리스 축구 팬들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국민과 정치권, 금융계가 서로 경제난 책임을 돌리기에 바쁜 나라의 팬들이 유럽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적지 않은 관광 수입을 안기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호경기의 과실은 독차지하려 하고 불황의 고통은 분담하지 않고 축구를 유일한 탈출구 및 스트레스 이완제로 삼는다는 지청구는 마땅한 것일까. 일진일퇴, 한반도에 언제 그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남유럽발(發) 재정·금융 위기 속에 새벽잠 설치며 선진 축구를 어깨너머로 살피느라 여념 없는 국내 팬들이 한번쯤 화두로 삼을 법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이엠’ 대한민국 K-POP의 현주소를 말하다

    ‘아이엠’ 대한민국 K-POP의 현주소를 말하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샤이니, F(x), 보아, 강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아이돌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리얼 청춘 바이오그라피 ‘I AM’(이하 아이엠)이 국내 관객에게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 가수들이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친 공연 실황과 함께, 수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엠’은 다큐멘터리이자 성장영화의 성격을 띤다. 마이클 잭슨이나 밥 말리 등 아티스트의 공연실황이나 그들의 속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영화관에서 개봉된 적은 있지만, ‘아이엠’ 출연 가수들처럼 젊거나 어리고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은 작품은 많지 않았다. 공연실황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장르적 성격을 가진 만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공연장면과 국내 대표 아이돌 스타들의 오디션 당시 동영상, 멤버 별 일대 일 인터뷰 등 다양한 스토리는 마치 퍼즐처럼 서로 다른 조각으로 분리돼 있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의 모습으로 합쳐진다. 슈퍼주니어가 데뷔 무대를 마친 뒤 한데 뭉쳐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멤버 려욱만 화장실에서 남몰래 혼자 울어야 한 사연, 5명으로 시작했던 동방신기가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2인조로 다시 무대에 서기 직전 떠올린 생각, 예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F(x) 설리가 눈물을 흘리며 안무연습을 하는 모습 등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화려한 스타의 진짜 속마음 한 켠을 보면 인생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이엠’은 환호성과 눈부신 조명 아래 서는 아이돌 스타 개개인을 비추는 동시에, 대한민국 음악의 현주소를 넌지시 과시하기도 한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최초로 공연하는 아시아 아티스트라는 자부심과 그들에게 열광하는 파란 눈의 팬들은 K-POP(케이팝)의 열기가 그저 허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때문에 오로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땀 흘려온 그들의 성과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엠’이 SM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광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껄끄러운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이 ‘광고’는 ‘SM 제국’이 몇 년간 공들여 제작한 ‘상품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들의 ‘상품들’을 최고의 퀄리티로 업그레이드 하는 철저한 트레이닝과 관리시스템도 공개한다.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개개인의 땀과 눈물이 필수 과정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국의 거대한 자본이 땀과 눈물 뒤에서 강력하게 그들을 뒷받침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이엠’은 대한민국 음악과 문화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과시하는지, 또는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땀과 노력, 서러운 눈물,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SM엔터테인먼트는 그 미래가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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