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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수백만년 전 유인원 루시Lucy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으며,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는’ 나라. 전설과 신화, 역사가 뒤엉킨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 흡사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 속을 유랑하는 것만 같았다. 랄리벨라에 있는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사의 모습 곤다르 교회의 천장에 새겨진 천-사들의 얼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Axum악숨 에티오피아의 처음을 더듬어 보다 와인처럼 깊은 향기가 매혹적인 예가체프Yirgacheffe 커피를 제외하고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별다른 호감이 없었다. 가난과 기근,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원시 부족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이런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굳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할 이유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에티오피아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자부심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고대에는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일대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도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19~20세기 열강의 침략을 뿌리친 나라. 이처럼 화려했던 에티오피아의 과거를 더듬어 보는 여행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이번 여정은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출발해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바하르다르Bahar Dar, 곤다르Gondar, 악숨Akxum, 랄리벨라Lalibela를 거쳐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기원을 만날 수 있는 곳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악숨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실 악숨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눈이 심심한 도시였다. 가는 곳마다 유적은 폐허였거나 발굴 중이었기에 ‘볼거리’ 측면에서 영 시덥지 않았다. 그러나 시바Sheba 여왕과 성경에 얽힌 전설 혹은 신화(그들은 ‘역사’라 한다), 악숨왕국의 명성 등은 여행자로 하여금 무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여행 후에도 그 잔상은 오래 남았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시바는 기원전 10세기경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 일대를 다스렸던 나라로, 시바의 여왕이 이스라엘의 솔로몬과 사랑에 빠져 낳은 아들이 바로 에티오피아 최초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메넬리크Menelik’다. 시바 여왕과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에서는 단순히 국가의 시조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들에 얽힌 신화는 주변국인 수단, 에리트리아, 예멘 등도 공유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자신만의 역사로 편입시키며 국가의 뿌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러한 역사가 서린 악숨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시바 여왕의 존재를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여기지만 악숨에는 여왕의 궁전터와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악숨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시바 여왕의 목욕탕에서 세례의식을 치르며 그녀를 잊지 않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악숨에 자리한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바로 옆에 있는 ‘구교회’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모세의 법궤가 있다고 한다 2 정교회에서는 에티오피아 고대어인 ‘기즈어’로 쓰인 성경을 본다 3 교회 앞마당, 보라색 꽃이 핀 자카란다 나무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모세의 법궤에 얽힌 수수께끼 신화가 서린 도시 악숨에서도 가장 믿기 힘든 이야기는 모세가 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법궤, 그러니까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에서 각별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역시 시바 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메넬리크는 아버지 솔로몬을 만나고자 예루살렘으로 갔고, 부자는 감격적인 해후를 나눴다. 솔로몬은 메넬리크에게 왕권을 물려주길 원했으나 메넬리크는 고심 끝에 거절하고 에티오피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를 아쉬워 한 솔로몬은 유대교 사제 64명과 1만2,000명의 젊은이들을 함께 보내 줬다. 그런데 한 신실한 사제가 신의 법궤와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그것을 훔쳐 왔고 법궤의 힘으로 메넬리크와 무리는 ‘순식간에’ 악숨까지 이동해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주변국에 점령을 당해 수천년간 비참한 국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궤를 잃은 탓이라 한다. 법궤는 지금까지도 악숨의 ‘시온의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4세기 무렵 악숨의 이자나Ezana 왕이 세운 것으로,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법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정교회 수도사뿐, 그것도 1년에 단 한차례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교회 옆, 오래된 박물관에는 고대, 중세 왕들의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다채로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군대가 이 유물들을 갈취하러 왔다가 법궤의 기운에 압도되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화 같은 전설들을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의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악숨에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내시에 관련된 유적도 있다. 예수 사후, 초대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스라엘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직접 세례터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세례터가 악숨에서 발견됐다. 시온의 성 메리 교회 주변에는 오벨리스크Obelisk 수십 개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높이 30m, 무게 500톤이 넘는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만으로도 강력했던 당시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 묻혀 있던 유물들은 모두 도굴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4세기 악숨의 이자나 왕 시절에 전파됐다.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단성론을 믿으며, 20세기 초까지 이집트 콥트교회의 분파였다가 독립된 체제를 갖추게 됐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43% 가량이 정교회 교인으로,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강력한 사회문화적 토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Lalibela 랄리벨라 천사가 함께 만든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영토에서는 다양한 국가가 명멸을 거듭했다. 고대에 위세를 떨쳤던 악숨 왕국은 홍해와 아라비아 지역의 무역 중개권을 무슬림에 빼앗긴 뒤 붕괴됐고, 이후 수백년간은 암흑기로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12세기에 이르러 악숨에서 400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랄리벨라Lalibela 지역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자그웨 왕조Zagwe Dynasty가 들어섰고, 건축사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독특한 암굴교회를 남겼다. 랄리벨라 공항에 내려 암굴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흡사 인디애나 존스가 법궤를 찾아가는 여정을 연상시켰다. 해발 2,800m, 산악지대에 건설된 도시는 모래먼지가 휘날리며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눈에 띌 리가 없는 암굴교회는 미로 속을 헤짚어야 나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교회는 마을 중심가에서 멀지 않았고, 입구에는 유럽에서 온 성지순례 여행객들로 바글거렸다. 순례객들은 11개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연신 ‘언빌리버블!’을 외치기에 바빴으니, 이는 기이한 건축물의 위용에 압도된 것도 있겠지만 약 천년 전 교회가 만들어진 과정도 믿기 힘든 마술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위세를 떨치던 12세기, 랄리벨라 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난 뒤 자신의 땅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왕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무슬림에 공격을 당하더라도 화재의 위험이 없는 암굴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약 4만명을 동원해 23년에 걸쳐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 유럽의 중세교회 하나를 짓는 데 수십년에서 100년 이상 걸린 것을 감안하면 ‘눈 깜짝할 사이’라 할 만하다. 전승에 따르면 인부들이 일을 하다가 잠을 자거나 쉬는 사이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사를 도와줘 시간이 단축됐다 한다. 천사가 일꾼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바위를 쪼개가며 30m 이상의 깊이로 바위를 파내가며 예술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불가사의한 건축물임에는 틀림 없다. 11개의 교회들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한덩이의 암석으로 이뤄진 교회가 있는가 하면, 몇 개의 거대 암석을 덧대어 만든 것도 있고 동굴 형태도 있다. 가장 큰 규모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는 한덩이 암석으로 72개의 기둥을 갖췄을 정도로 세밀하게 고안됐는데 형태는 악숨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졌다. 가장 유명한 교회는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된 ‘성 조지 교회Bet Giyorgis’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의 십자가형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형태가 완벽히 보존돼 있다. 실내는 다른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화살촉 문양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쪽의 ‘아바 리바노스 교회Bet Abba Libanos’는 랄리벨라 왕의 부인이 천사들과 함께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요르단의 페트라를 연상시킨다. 11개의 교회들은 크게 북쪽 그룹과 남쪽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간에 흐르는 강은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Jordan river’, 교회 곁을 지키고 있는 야트막한 산은 예수가 거룩한 모습으로 변했던 ‘다볼산Mt.Tabor’으로 불린다. 메드하네 알렘 교회 내부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무덤이 꾸며져 있어 ‘제2의 예루살렘’을 꿈꿨던 랄리벨라 왕의 신앙심 혹은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11개 교회에는 지금도 수많은 정교회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사진을 요청하거나 귀중품을 보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수도사들에게 정중하게 팁을 건네는 것은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랄리벨라 11개 교회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 조지 교회.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암석을 위에서 파내려가며 만들었다 2 정교회 수도사들은 친절하게 여행객을 맞아준다3 교회 내부에는 예수의 제자들과 정교회에서 추앙하는 성자들을 새겨 기념하고 있다4 랄리벨라는 유럽 성지순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또 궁상떨고 있네. 어미로서 피붙이를 두고 모질게 폄하하면 안 되지. 구월이가 못 들었으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어미를 얼마나 원망하겠소.” “잔술 팔아 연명하는 숫막 여편네가 내지른 천출이긴 합니다만, 도감 어른도 아시다시피 제 소생이 됨됨이가 워낙 맵짜고 성깔도 다부지지 않습니까. 용모도 그만하면 천출치고는 밉상은 아니지요. 그런데 명색 내 속으로 내지른 여식을 술청 심부름이나 시키고 본데없는 사내들과 겨끔내기로 희롱이나 받고 채다 보면 나중에는 염전에 있는 부잣집 후취로 내주기 십상이 아니겠습니까. 묵사발이라고 우습게 알고 함부로 내돌리다 보면 깨지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염전 부자들 후취가 어때서? 그런 인연 찾아내기도 갈밭에 꽂힌 화살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잖소.” “부자 아니라, 울진 질청의 구실아치들이라 하더라도 후취 자리라는 것이 저년에겐 거적문에 백통 돌쩌귀 달기가 아닙니까. 분수에 넘치는 인연은 나중 가서 필경 소박당하기 마련입니다. 천출은 천출끼리 인연을 맺어야 뒤탈이 없는 법입니다. 후취 자리라는 것이 십중팔구 사내 구실 못 하는 늙고 병든 병추기 만나기 십상일 것이고, 풍 들린 시어머니 병수발에 날밤이나 새우고 해코지를 못 해서 눈깔이 시뻘건 전처 소생들 등쌀에 하루하루를 살얼음 밟듯 살아야 하는데, 그 고초와 수치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것들이 처음에는 구박하다가 나중에는 소박하여 필경 친정으로 내쫓고 말겠지요. 도감도 아시다시피 재치와 총명이 남다른 아이인데. 앓느니 죽고 말더라고 우리 구월이 그런 후취 자리에다 내던지기는 죽기보다 싫소. 언감생심 칼 물고 뜀뛰기지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비석거리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방물장수 여편네들도 있지 않소. 그네들이 방방곡곡 휘젓고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견문이 많고 반죽도 좋아서 혼사를 맺어 주는 일이 많다고 하지들 않소. 말래에 가면 매파도 없지 않고.” “약고 꾀바른 봇짐장수 여편네들은 중신한답시고 구전에만 눈이 어두워 걸핏하면 손바닥부터 내민답디다. 그렇다고 이 첩첩산골에 매파가 찾아올 리도 없지요.” “어리석은 사람. 오뉴월 황소 불알 떨어지면 구워 먹으려고 다리미에 불 담고 다닌다더니 주모가 그 짝 났구려.” “아닙니다. 비록 산협 숫막에서 술막질하고 있는 견문 없는 계집이지만, 나름대로 안목은 있답니다.” “조금 전에 듣자 하니, 신랑감을 눈여겨보아둔 것 같던데?” “예.” “그게 누구요?” “귀를 좀 빌립시다요.” 주모에게 귀를 빌려준 정한조가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나중에는 떨떠름해서 면상이 일그러졌다. “슬하에 일 점뿐인 여식을 떠나보내면, 주모 혼자서 그 소슬한 세월을 어찌 보내려 하나. 지금 당장은 애물단지라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홀연히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며 밤낮으로 눈물짓게 될 것이오.” “걱정은 내 몫입니다. 도감께서는 혼사가 성사만 되도록 알선해 주십시오.” “중신애비가 되어 달란 얘기겠는데, 물론 운을 떼어 보겠네만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으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말귀가 어둡긴 하네요. 그러니깐 데릴사위 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하지 말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소? 당사자가 처가살이를 바라겠소? 누워서 침 뱉기지만, 행상꾼은 좋은 신랑감이 아닙니다. 건장한 남편이 집을 보전하려고 상인이 되었다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머리는 어느새 백발로 뒤덮이어 자손이 장성하였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네. 집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노인이 된 안해는 어디서 오신 뉘시냐고 물었다는 옛말이 있다는 것 아시오?” “남의 복장 풀쑥풀쑥 지르지 말고 저년 연분이나 맺어 주오.” “주모가 눈썰미 한 가지는 제법이오. 내가 운은 떼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 [남미통신] 1개월 된 딸에 ‘염색’시킨 철부지 엄마

    [남미통신] 1개월 된 딸에 ‘염색’시킨 철부지 엄마

    머리를 염색한 신생아가 병원에 버려졌다. 현지 언론은 “아기의 머리를 염색한 것으로 보아 엄마는 10대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엄마의 철없는 행위로 아기가 부작용에 고생하고 있다.” 고 전했다. 사건은 최근 도미니카공화국에 있는 한 병원에서 발생했다. 1개월 전 태어난 딸이 아프다면서 한 여자가 신생아를 안고 병원에 들어섰다. 의사들이 증상을 물었지만 그는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병원은 아기를 입원시키고 정밀 검사를 하기로 했다. 아기의 엄마가 돌연 사라진 건 그때였다. 아기가 입원하자마자 엄마는 병원을 빠져나가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졸지에 버려진 아기를 돌본 건 간호사들이었다. 병원이 아기가 염색한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면서였다. 아기는 머리칼을 노랗게 물들인 상태였다. 엄마는 아기의 머리를 가린 채 안고 병원에 왔었다. 검진 결과 아기는 염색으로 인한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담당의사 안토니오 크루스는 “신생아는 피부가 약해 염색 같은 화학적 처리를 견디기 힘들 수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유니비젼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손짓으로 차인꾼을 불러 세운 행수란 놈은 곱상스럽게 생긴 외양과는 달리 완력이 장사였다. 오줌을 지리며 엉거주춤 다가서는 차인꾼의 상투를 한손으로 비틀어 잡고 태질을 시켜 얼살을 빼는가 하였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허릿바를 끌어올려 덜미잡이로 엎치자, 차인꾼은 제힘에 겨워 꼬꾸라져서 콧등에 흙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사람의 혼백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넋을 빼놓은 다음에 그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모르겠습니다.” “이놈, 어디로 가는 줄 모르다니, 넋은 어디다 두고 다니길래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이런 산중에서 소피보는 계집이나 간색하며 허둥지둥한단 말이냐?” “보시다시피 쇤네는 태게꾼일 뿐입지요. 원상들이 향도하는 데로 몇 날 며칠이고 입 닥치고 따라갈 뿐 신지가 어딘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 태게꾼이라 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신지가 어딘지 궁금하지도 않더냐?” “쇤네는 그저 원상들이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을 천직으로 알 뿐입지요.” “혼백은 집 시렁에 얹어두고 고깃덩이만 왔다 갔다는 얘기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와들와들 떨고 있는 차인꾼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치고 나서, “이놈 봐라.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방금 넋은 빼고 다닌다고 네놈 주둥이로 씨부리지 않았더냐?” “…….” 한마디 언사에 실려 있는 위엄을 듣자 하니, 산골 무지렁이 출신은 아니란 것을 단박 알아차릴 만하였다. 살년을 견디다 못해 산적으로 나선 일자무식 세궁민은 아니었다. 글줄이나 읽은 위인이란 생각이 얼른 뇌리를 스쳐갔다. “쇤네는 삯전이나 받는 담꾼일 뿐입니다요.” “이놈,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을 듣지 못했느냐? 네놈이 담꾼이든 원상의 행세를 하는 놈이든 상관없이 같은 일행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비겁하게 발뺌을 하여 그 초라한 목숨이나 구걸하자는 것이냐? 이놈 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 배은망덕한 놈.” “창졸간에 불쑥 나온 말이니 해량하십시오.” “이놈 포달 떠는 꼴이 가관이군.” 당장 목이라도 베일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차인꾼에게 명령하여 널브러진 시신을 들쳐 업도록 하였다. 조기출을 비롯한 일행은 다만 사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대꾸 한번 변변스럽게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육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시각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몸은 물먹은 솜같이 무거웠으나, 잠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이틀 전에 겪었던 봉변을 소상하게 이야기한 조기출의 입에서 문득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구차하게 살아남기만 해서 뭣하겠소. 전대 털린 것은 그렇다 치고 수하에 따르던 차인꾼 한 사람 속절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린 주제에 어디다 비위짱 좋게 낯짝을 쳐들고 다니겠습니까. 적당들이 그런 술책으로 우리 일행의 눈을 어둡게 만들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적당들 턱밑에 낯짝을 디밀고 죽여달라고 지다위 못 한 것이 여한이 되었습니다. 명줄을 놓아버린 사람이나 끌려간 사람이나 원망이 구천에 사무치겠지요. 어찌 되었거나 시생과 같이 미욱하고 무지한 밥쇠가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운세 사나웠던 탓이오. 너무 자책 마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하지 않았소.” “행수 명색이었던 시생이 행중이 화적떼에게 된불을 맞고 멸구를 당하게 되었다면 사태를 불문하고 떨치고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어야 했는데, 난생처음 봉적한 일이라 할지라도 흡사 구경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치욕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감 정한조나 둘러앉은 원상들 역시 말이 없었다. 말없이 앉아 있기 진력날 즈음에 침묵하던 곽개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적당들의 짜놓은 미술에 여지없이 끌려들었을 것입니다. 적당들은 고개치나 산코숭이 같은 내왕이 호젓한 곳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북새통을 놓으며 복물과 전대를 취탈해 왔는데, 이 화적들은 백주창탈을 예사롭게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예사로 저지르고 말았소. 그 악행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소. 게다가 미술을 쓴다는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적당들도 이젠 완력만 가지고 봇짐을 털려는 것이 아니란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내 불찰로 자책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맞설 수 있는 계략을 꾸며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머리에 총알 박혀…기적의 ‘터미네이터’ 군인

    머리에 총알 박혀…기적의 ‘터미네이터’ 군인

    이마 한 가운데 총알이 박힌 군인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군인의 동료가 직접 펜치를 들고 총알을 잡아 빼는 장면까지 담겨 영상의 진위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영국언론 데일리메일 등을 통해 보도된 화제의 군인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인으로 체첸 반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0년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상은 뒤늦게 유튜브 등을 통해 화제로 떠올랐고 ‘터미네이터’ 군인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전투에서 이 군인은 AK-47 소총의 총탄에 맞았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총알은 머리를 관통하지 않고 이마에 그대로 박혀 아마도 어딘가에 부딪혀 튕겨나온 총알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동료가 펜치를 들고 직접 총알을 잡아빼는 장면으로 이 군인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보였다. 데일리메일은 “터미네이터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 군인의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면서 “영상 속 여유있는 표정으로 보아 기적적으로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인터넷뉴스팀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헤어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만난 조기출 일행의 행색은 꿰다 만 산적같이 꾀죄죄하게 육탈이 된 것은 물론이었고, 모두 쥐 뜯어먹은 송곳 자루같이 남루했다. 꿩 구워 먹은 자리에는 재라도 남아 있지만, 그들은 육탈은 물론이고 손에 쥔 것이라곤 흙먼지뿐이었다. “이런 작변이 있나. 어쩌다가 이토록 몰골 숭한 꼴을 당하였소? 이틀 전만 하여도 허우대들 멀쩡하지 않았소.” “적변을 당했습니다.” 먼저 잠들었던 일행이 나중 온 일행들을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아랫목으로 잡아끌어 앉히고 물을 떠다 먹이며 야단을 떨었으나 봉노 안의 부산스러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아니었다. 나중 돌아온 일행의 수효를 눈대중으로 점고하던 정한조가 조기출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일행 중에 두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 “이런 낭패가 있나. 두 사람 목숨이 창졸지간에 모두 거덜났더란 말이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적당의 칼을 맞고 숨을 거뒀습니다. 시신조차 산적들이 거두어 갔습니다. 한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산비알로 튀었는데 어디로 줄행랑을 놓았는지 도무지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잠시 찾아 헤매긴 하였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구들장이 꺼져라 하고 한숨 소리가 터져나왔다. “도대체 어느 어름에서 적변을 당했다는 것입니까?” “내성 경내를 금방 벗어나 상주길로 접어들어 반나절도 못 간 백주 대로였습니다. 해가 나절가웃이나 기울었을까요. 그때라면, 백주 대낮이나 다름없지요.” “백주 대낮인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몽땅 털렸더란 말이오?” “복물은 물론이고 장두전이며 전내기 짚신까지. 육승포 외골 전대에 감추었던 150냥을 몽땅 털리고 사람 목숨까지 거덜내고 말았습니다. 전대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간 적당들이 배를 가르고 창자라도 꺼내갈 기세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희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신표하며 물미장까지 빼앗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50냥이면, 한양 변두리에 가서도 기와집 두 채 값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소용없을 성부른 물미장까지?” “예.” 조기출 일행은 샛재 숫막에서 정한조 일행과 같은 날 발행했지만, 복물짐이 비교적 단출했던 탓으로 내성에는 하루 먼저 당도하였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길을 줄일 욕심으로 내성에서 사처를 잡지 않고 내처 상주길로 접어들기로 하였다. 해가 질 때쯤이면 맞춤한 숫막을 찾아들어 하룻밤을 유숙할 작정이었다. 내리고 있는 진눈깨비가 언제 그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면 습기 먹은 건어물이나 미역 짐이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 길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열불 나게 길을 줄이는 중에 중화참이 지나고 나자, 극성스럽던 진눈깨비가 씻은 듯이 긋고 난 다음 촘촘한 봄 햇살이 자드락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다. 일행의 발걸음도 햇살과 함께 한결 가벼워지고 농담까지 나누며 산코숭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일행이 산코숭이를 돌아가려는 그 참에 난데없는 일행과 만나게 되었다.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스무 살 안팎의 남색짜리 새색시와 코에서 흙냄새가 풍기는 늙은이였다. 보아하니 꼬락서니는 뭣하나 명색 신행길이 분명했다. 대낮이라 하나 허리가 매화나무 등걸처럼 휜 늙은 노인네 한 사람과 나이 불과해서 이팔로 입에서 젖비린내조차 가시지 못한 어린 각시가 작반하여 행로가 한적한 산중길을 더듬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조기출 일행이 자청하여 작반을 청하게 되었다. 늙은이도 퍽이나 다행스러웠던지 일행을 향하여 행수가 어느 분이신지 과람하다며 몇 번이나 허리를 조아려 체면을 차렸다. 너무나 한적한 터에 내려쪼이는 햇살 아래로 일행을 할끔할끔 눈짓하며 장금장금 걸음을 떼어놓는 각시에게 모두 시선을 빼앗기게 되었고, 쓰개치마 사이로 보이는 용모를 훔쳐보자 하니, 산중 아낙네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밉상이 아니었다. 일행은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신행길을 바싹 따라붙어 농을 걸기도 하였다. “허릿매가 잘록하여 색탐깨나 하게 생겼는걸.” 신부는 일행들이 언죽번죽 걸어오는 농염한 희롱에도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싫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아서 산골 계집치고는 때를 벗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허, 저 엉덩이 보게나. 교태와 고혹함이 가히 현종을 모신 양귀비일세.” “예끼, 이 사람. 하찮은 산골 각시를 감히 어따 빗대나.” “양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랐으니, 추물인들 서시로 보일 수밖에.” 늙은이가 뒤따라야 할 신행길에 난데없는 행상꾼들이 언죽번죽 걸쭉하게 내뱉으며 뒤따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 [열린세상] 일본 우경화에 담긴 심리/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열린세상] 일본 우경화에 담긴 심리/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침략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아베 총리의 망언 이후 일본 정치권은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나서 아베 총리의 망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아베 정권은 한·일 관계의 악화가 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뭇매를 맞고도 최근 아베 정권의 핵심 간부가 식민지 지배와 주변국에 대한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서 ‘침략’이라는 표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이어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망언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미국의 여론조차 일본에 대한 비난을 거세게 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베 정권의 행동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아 황당하기 그지없다. 올 초만 해도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제일 먼저 특사를 보냈고, 자민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주최하는 것을 연기하는 등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필요하다는 전략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아베 총리가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작심을 한 듯이 망언을 쏟아내고, 일본 정치권도 일제히 이를 옹호하는 망언들을 이어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현재 아베 정권의 행동을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선거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또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헌법 개정과 집단적인 자위권 해석 변경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과거사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먼저 제기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베 망언 이후 우익 신문인 산케이신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 매스컴들이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을 질타하는 점을 상기하면 결코 망언이 지지 표를 확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본 보수 세력의 망언을 허용하는 정치적인 상황과 우익이 갖고 있는 심리가 서로 상승작용하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전후 체제는 천황제가 지속되면서 제국주의 청산이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현재 일본 정치권은 양심 세력이 없어지면서 전후 금기시됐던 우익적인 사상이 여과 없이 표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문제는 일부 보수 세력들 사이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아시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리에 아키라 교수의 지적처럼 전전(戰前)의 일본 외교는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본 국익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기에 세계의 보편주의 사상과 철학은 통용되지 않았다. 즉 제국주의 당시 일본의 보수 세력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일본 국익을 위해 아시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고려는 도외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까지 이어져 일부 보수 세력은 제국주의 전쟁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베 정권의 ‘전후 체제 탈각’ 노력에는 이런 심리가 근저에 깔려 있기에 주변 국가들과의 충돌은 필연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 우익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심리적 배경에는 한국은 무엇을 해 주어도 항상 불만이라는 것과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서로 결착을 보았음에도 한국은 다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오해가 광범위하게 펴져 있다. 이를 선거에서 악용하려는 것이 아베다. 아베는 선거에서 한국과 중국에 과거사에 대해 양보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과도한 요구’뿐이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 결과 일본 정치권에는 동북아 국가들이 과거사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면 할수록 반성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항변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건전한 시민 세력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일본의 미래를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말래 도방에서 병구완을 받고 있던 그 위인이 끝내 본색을 밝히지 않고 버티더니, 불현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네. 의리는 새옹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배워왔었는데, 궐자가 그 의리를 헌신짝 버리듯 배신하고 말았다네.” “부러진 다리가 쾌복이 되지 않았을 텐데요?” “그런 휘진 몸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도 불길한 징조일뿐더러, 오랜 숙객*으로 서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우리 상단 일행을 색주가에 데리고 가서 창피를 안긴 윤기호의 속내 하며, 운수납자 행세하는 무뢰배가 자취를 감춘 병자를 뒤쫓고 있다는 소식도 서로 얼개가 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내막인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네. 도방으로 오는 도중에 숫막 쪽 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았으나 전혀 짚이는 게 없었네.” “그 포병객은 만기가 남아서 차인들과 같이 병구완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만기가 아직 황구를 벗어나지 못해서 좀 해망쩍은 구석이 있지 않은가. 내가 여러 번 알아듣도록 일러두었지만, 몰래 자취를 감추려고 기회를 엿보는 놈에겐 당할 재간이 없었겠지.” “도감 어른께선 만기를 너무 두둔하는 것 같습니다.” “만기도 원상인데 우리가 역성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사고무친한 아이를 누가 위해주겠는가. 아니래도 은(銀)을 주고 사는 것이 초년고생이라고 내가 떠먹이듯이 달래주었으니, 공연한 트집 잡아서 번거롭게 만들지 말게나.” “윤가를 어떻게 할까요? 못된 소행머리를 가졌다면 이참에 우리와 거래를 끊어버리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윤가의 처신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두부 먹다가 이빨 빠지는 일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성깔 있는 곽개천의 말에 사뭇 어두운 안색이던 정한조가 가만히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닐세. 윤기호로 말하면 명색 내성 장시를 휘어잡고 있다는 포주인이 아닌가. 우리가 궐자와 오랫동안 거래를 트고 자별하게 지내던 인연을 단칼에 무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일세. 그랬다간 또 어떤 환난이 닥칠지 모를 일이 아닌가. 수상한 일일수록 순서에 따르는 법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세. 포주인이 설마 우리를 무단히 야료하려 들었겠나.” “야료가 아니라, 우릴 날탕으로 삼키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도감 어른 말씀처럼 두고만 보다가 나중에 큰 손실을 보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손실당할 게 뭐가 있나. 우리가 억매흥정으로 소금 짐을 넘긴 것도 아니고 시게전이든 드팀전이든 행상들을 상종하여 풍속을 어지럽히고 색주가에서 색사나 벌이며 희희낙락한 적도 없지 않은가. 윤가의 사위스러운 속내를 세세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우릴 욕보일 심지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상의 정도를 지킨다면 함부로 덧들이지는 못할 것이야. 우리들 처신하기 나름일세.” 사달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시름 놓았다 싶었던 일행이 다시 등잔을 끄고 누웠다. 추녀를 스치고 지나는 칼바람 소리는 3월 초입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스산했다. 너무나 을씨년스러워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멀리 있는 색주가에서 들려오던 가녀린 소음도 드디어 가라앉아 사위가 고즈넉하여 바람벽을 기어오르는 벌레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삿자리를 깐 방바닥은 헐벗은 각설이 불알처럼 차가웠으나 눈두덩은 벌써 천근같이 무거웠다. 바로 그때였다. 도방 울바자 너머로 부산하게 내닫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도방의 울바자 앞에서 멈추어 섰다. 몇 사람은 벌써 코를 골고 있었으나, 생각이 많았던 정한조는 뜻밖의 발소리에 진작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밖까지 걸어온 발소리가 멈추고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감 어른. 시생 조기출이올시다.” 벌떡 일어난 정한조가 찌그러진 외짝 바라지를 손으로 쳐서 벌컥 열었다. 어두운 밤빛 속이어서 확연하게 짚여오지 않았으나, 분명 상주와 고령의 저자를 겨냥하고 발행하였던 조기출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떨고 서 있는 조기출의 등뒤에 어슥버슥 서 있는 7, 8명의 일행들 행색 역시 덕장에 매달려 눈보라에 시달리는 동태 꼴이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명 저고리에 껴입었던 배자하며 단단히 조여매었던 통행전이며 패랭이는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었고, 동저고리와 옹구바지 차림으로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사추리에 달린 불알인들 온전했을까. 비 맞은 수탉 꼴이 된 몰골들을 한동안 넋을 빼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정한조가 소스라치며 밖에 서 있는 일행을 봉노 안으로 불러들였다. 찬바람이 봉노 안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잠들었던 일행이 눈이 휘둥그레져 일어나 등잔에 불을 당기느라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게 어떤 육시랄 놈들의 소행이오?” *숙객:단골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곽개천의 점잖은 언사에 찌그러진 바라지 문을 열었던 궐자가 한순간 머뭇거리는가 하였더니, 내친김이란 듯 걸찍하게 내뱉었다. “이놈 봐라, 대살지게 생겼다 해서 제법 고시랑거리는군. 난장 박살을 내주기 전에 썩 비켜나라, 이놈.” “함자가 뉘신데 언사가 그토록 고약하시오?” “혓바닥을 뽑아버릴 놈들. 보면 몰라서 묻고 있느냐. 눈깔은 뒀다가 동냥을 보냈나, 꽁무니에 박고 지내나. 보아하니 비킬 데 없는 행상꾼들이 분명한데, 언죽번죽 제법 할퀴고 드는군. 정말 회술레를 돌려야 정신을 차리겠나?”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초저녁부터 주찬을 질탕하게 차리고 앉아 술판들 벌이고 있구려.” 점잖게 타이르는 말에 오히려 기분이 상한 궐자가 메줏덩이만 한 주먹을 뭉쳐 내려칠 시늉을 하며, “엇따. 이놈 봐라, 네놈들은 안 처먹어도 배부른 생불이더냐?” “내게 무슨 대단한 도량이나 있는 줄 아시오? 여차하면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 성미니 대중없는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댁이나 나나 죽고 나면 모두가 여섯 자 아니겠소. 자칫 완력을 뽐내다 보면 평생 신세 망치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 “어허, 기침에 재채기가 겹친다더니. 말본새 한번 피마 씹구멍같이 잘도 실룩거리네. 결기를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들어 봐.” 어육지변을 만들겠다고 땅땅 벼르는 중에 곽개천은 냉큼 둘러댈 말구멍을 찾지 못하자, 얼굴이 원숭이 볼기짝이 되어 안절부절이었다. 그는 봉노에 둘러앉은 패거리들의 얼굴에서 문득 살기를 느꼈다. 분명 일손을 놓고 장삿길로 나선 도부꾼들이나, 장시를 배회하며 일손을 찾는 차인꾼들은 아니었다. 장시를 배회하는 무뢰배들이라 하더라도 감히 원상들을 상대하여 그런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완력 한 가지로 막 살아가는 부류거나 추쇄당하고 있는 살범이 아니라면, 지난날 포수 생활 할 적에 어디선가 한두 번 마주친 듯한 얼굴도 있었다. 더 이상 대거리를 주고받다간 난리 북새통을 겪을 것이었다. 그때, 윤기호가 곽개천의 괴춤을 잡아끌며 말했다. “걸레는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법, 더 이상 비위짱 사나운 꼴 보기 전에 그만 돌아섭시다. 내성 술청 거리에 색주가가 한두 군데입니까. 내가 업어다 난장 맞힌 꼴이 되었소.” 곽개천 일행이 그들을 상대하여 완력을 겨루기로 한다면 결코 불리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방을 코앞에 둔 내성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까닭이야 어디에 있던,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징치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속내를 좀더 알고 보면 그 왈짜들 역시 형세가 불리한 곽개천의 사정을 익히 꿰고 있었기에 시비를 걸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한때, 보부상의 우두머리에게 장시의 풍속 단속권을 부여한 적이 있었으나, 스스로 작폐를 저지르는 경우 구성원의 우두머리와 접장을 처벌했었다. 그러나 장시의 질서가 워낙 어지럽게 되자 단속권 자체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무뢰배와 도부꾼들이 물밀듯이 장시로 몰려들어 풍속을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괴춤을 뒤져보았자, 냄새나고 성가신 불알 두 쪽밖에 가진 것이 없는 왈짜들을 상대로 세력 다툼을 벌인다면 우세 당하는 쪽은 곽개천 일행일 수밖에 없었다. 머쓱해서 술청에서 물러서고 마는데, 잔뜩 기대했던 김청도가 일행의 뒤를 따르며 혼잣소리를 하였다. “검은 구름에 학 지나가듯 잠시 희다 말았군.” 일행의 떨떠름한 기색을 모를 리 없는 윤기호가 냉큼 발명하였다. “행중에 이런 수치가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겠습니까. 공연히 본데없는 것들 상종했다가 살풍경한 꼴을 당했습니다. 모두 엄포에 불과하지만 제 불찰이 큽니다.” 배고령이 맞장구쳤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입니다. 당초부터 떡전을 찾거나 도방에 둘러앉아 막걸리 추렴이나 할 생각을 가졌더라면 그 발칙한 놈들에게 우세는 당하지 않았을 테지요.” “우리 행중에게 색주가 출입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어서 그런 수치를 당한 게야. 그만 도방으로 들자구. 휘진 몸둥이들 이끌고 색주가 전전해 보았자 골병만 깊이 들 뿐이지.” 곽개천이 딱 부러지게 일갈하자 모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술청 거리를 벗어났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머지않아 돌담으로 둘러친 술청 거리가 나타났다. 명색 색주가라 하지만, 돌담 일색이었다. 돌담은 바람만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봄이 되면 각종 약초 따위가 돌 틈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4월이 되면 그 돌 틈에서 제비꽃*이 움을 튼다. 제비꽃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개미집이 있는데, 제비꽃을 개미들이 번식해 주기 때문이다. 제비꽃 뿌리를 찧어 화농된 상처에 바르고 명주로 싸매주면 증상이 멎는다. 저녁 거미가 내려온 터라, 술청 거리는 벌써 나름대로 분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색주가 돌담에 기대 세운 장대 위의 용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술청마다 등불을 밝혀서 창자가 출출하거나 타향길에 고단한 길손들의 가슴속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여름날이면, 마당에 내다 놓은 살평상에 논다니나 들병이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호객도 삼가지 않았지만, 추운 겨울에는 얼어죽을까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빈 봉노에 불만 희미하게 밝혀두었다. “주모오.” 윤기호는 단골인 색주가로 들어서면서 호기 있게 주모를 불렀다. 그러나 평소와 같이 엉덩이를 얄기죽얄기죽 흔들어 대며 내닫는 주모가 냉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보아하니 진작부터 봉노를 차지하고 술추렴하는 낯선 패거리들이 있었다. 정주간에는 늙은 중노미 혼자서 국솥에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윤기호는 중노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언성을 높였다. “주모오?” 그제야 정주간으로 난 바라지 문을 살짝 열고 주모가 삐쭘 얼굴을 내밀었다. 주모는 윤기호를 알아보자 냉큼 영색을 짓고 정주간으로 나섰으나 행동거지가 평소처럼 날렵하지 않고 굼떴다. 게다가 봉노에서 술추렴하던 패거리들에게 거웃을 내주고 시시덕거리던 중이었는지 고쟁이 속곳 차림에 맨발이었다. 들병이 둘을 두었는데, 그 논다니들 역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술청에는 너댓 되는 장정 패거리들이 두루거리 술상에 난삽하게 둘러앉아 술추렴들 하고 있었는데, 밖에 서 있는 일행들을 힐끗힐끗 눈짓해가며 주거니 받거니 곤댓짓을 하면서 떠들었다. 단골집을 찾아왔는데도 예상치 못했던 홀대를 당하자, 적잖이 배알이 뒤틀렸던 윤기호는 주모에게 심사 뒤틀린 눈길을 보내며 볼멘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굴러온 패거리들인가?” 공술을 주는 대로 받아마셔 취기가 도도한 주모가 게트림 길게 빼고 난 다음 시큰둥하게 대꾸를 건넸다. “그야 모르지요. 어디 굴러온 개뼈다귀들인지.” 단골인데도 주모의 언행이 느닷없이 상되고 퉁명스러운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윤기호는 소금 도가 포주인으로서 내성 장시에서는 행세깨나 한다는 위인이었고, 그의 수결은 멀리 있는 고령이나 원산의 보부상들 사이에서도 거리낌없이 통용될 정도로 신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윤기호에게 주모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문전박대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었다. 소금 상단 일행은 그 연유를 알아챌 수 없었다. 사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온 패거리인지 모르겠다는 주모의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정주간 바라지 문이 부서져라 버럭 열리면서 한 사내가 나보란 듯이 문 밖으로 썩 나섰다. 입성은 뜯다 만 꿩같이 스산했으나 눈은 얼음에 빠진 쇠 눈깔처럼 번들거리는 궐자가 다부지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더니, 어느 개자식이 찾아와 남의 속을 불쑥 질러?” 험악한 목자를 보자하니 대중없이 덧들였다간 장정 다리 하나쯤은 일같잖게 작신 분질러놓을 것 같았다. 얼떨결에 윤기호를 뒤따라온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일행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배고령이 옆에 선 길세만의 잔허리를 꾹 찌르며 속삭였다. “냉큼 비켜나세.” 윤기호를 따라온 소금 상단 일행 중에는 결기 있는 곽개천이 끼어 있었다. 그는 열린 바라지 문 사이로 봉노 안의 풍경을 문득 엿보았다. 일견해서 행랑것이나 장물림들로 보이긴 했다. 그러나 같은 원상들이라면 이쪽에서 다소 범절에 어긋난 행동거지를 보였더라도 다짜고짜 욕지거리로 대거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맨상투 바람인 그들 중에 댓개비로 만든 패랭이(平凉子)를 쓰고 있거나 이마에 패랭이를 쓴 자국을 가진 자도 없었다. 분명 원상들은 아니었다. 굴러온 뜨내기임은 분명했는데, 그 본색을 얼른 가늠하기 어려웠다. 곽개천은 그들의 속내를 떠보기로 하고 한마디 던졌다. “큰소리로 주모를 찾은 우리들도 결례가 있었지만, 대뜸 험한 말로 대거리할 것은 아니지 않소.” *제비꽃:오랑캐꽃
  • ‘부처님오신날’ 불교계 각 종단 봉축사·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축하메시지

    ‘부처님오신날’ 불교계 각 종단 봉축사·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축하메시지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17일)을 앞두고 불교 각 종단 대표들이 일제히 봉축사를 발표,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행복을 기원했다. 특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도 불교계에 축하 메시지를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각 종단 수장들의 봉축사와 봉축 메시지를 요약한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세상에 희망이 넘치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경건한 신심으로 두 손 모으고 환희로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모든 이웃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희망이 넘치고 저마다의 마음에 따뜻한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으뜸으로 받들어야 할 가치는 바로 공동체 의식입니다. 탐욕과 증오를 내려놓고, 편견과 차별을 내려놓고, 멈추어 서서 다시 바라볼 것을 염원합니다. 그리하여 연대와 협력의 손을 잡고 평화와 행복의 길에 동행합시다. 이웃을 부처로 모시는 일이 삶의 현장에서 구현되기를 발원합니다. ■인공 태고종 총무원장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임을 깨달을 때 상생의 삶이…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가치 추구는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오고 재난과 자연재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배금주의는 전통적 윤리관과 미풍양속을 훼손하고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적 가치의 바탕 위에서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상생하는 삶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 밝히는 하나의 연등이 사바의 어둠을 걷어내고 부강한 국가와 온 국민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도정 천태종 총무원장 부처님 가르침은 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길 부처님오신날은 우리 모두의 생일날입니다. 일체중생이 눈을 뜨고, 높은 것은 높아서 아름답고 낮은 것은 낮아서 어여쁜 그 본래의 면목을 찬탄하고 환희하는 날입니다. 전쟁의 위협도 경제 불황도 인륜의 타락도 본래 없는 것임을 사무쳐 보아, 청정자성의 심연(深淵)에 연꽃 한 줄기 피워 올리는 날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물질만능의 폐퇴(廢頹)가 지역과 집단, 세대와 계층 사이의 갈등과 부조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 속에서 지혜를 보고, 지혜로써 자비를 일으키고, 자비로써 억조창생을 구제하는 길입니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불교의 나눔·실천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나눔, 자비, 사랑의 정신일 것입니다. 종교인이 먼저 상대에게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며 참다운 진리로 나아감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더욱 큰 희망의 징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불교 최대의 축제일인 석탄일을 봉축하며 부처님의 생애와 설파하신 말씀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불교의 나눔과 실천의 정신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의 최상주가 입아귀를 비쭉하고 나서 면박을 주었다. “성깔하구선, 쳐다보는 데 체면 깎이나?” “모두 나만 쳐다보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이 방안에 있는 행중 식구들 중에 살송곳 박는 솜씨가 출중하다는 뜻인데, 성깔부터 벌컥하면 어떡하나. 임자는 성질 올곧지 못한 수탉처럼 걸핏하면 핏대를 곤두세우고 대드나?” “어허, 이런 봉패가 있나. 여러 동무끼리 두둔하지는 못할망정 여러 총중이 보는 면전에서 창피를 주면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야.” “연잎에 물방울 붙는 것을 본 적이 없듯이 자기 행실이 옳으면 감히 욕을 들을까.” 정한조가 나서 오금을 박아주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행중이 싸잡아 부아를 돋우었다면, 방구석에 있던 목침이 날아가는 변고가 벌어질 뻔했다. 그런데 윤기호의 말이 언중유골이라고 생각했던 최상주가 지나간 얘기를 다시 되돌려 곱씹고 나섰다. “아니, 우리가 한강 떼배 사공들보다 주머니가 가볍다는 말씀은 듣기 거북하네요. 물길과 산길을 내왕하며 연명하는 게 다를 뿐 가가예문이라고 염낭쌈지 무겁고 가벼운 것은 견주어 보아야 아는 것 아닙니까. 한강 떼배 사공 놈들 울진의 백두대간 금강송을 몰래 벌목해 모리를 챙긴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까?” 정한조에게 한주먹 쥐어박혔던 윤기호가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사과하였다. “아이고. 그렇구말구요. 제 주둥이가 가벼워 창졸간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혜량하십시오.” 금세 안색을 바꾸어 영색을 짓는 윤기호를 바라보며 껄걸 웃는 중에 정한조가 말했다. “술청거리 색주가에 주등이 켜지기 전에 물상객주들 찾아가서 겨냥한 물화부터 흥정하게. 전대들 단단히 조여 매고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고려 적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일세. 아니면 임소의 반수하며 나한테 혼쭐이 날 줄 알게들.” 볼일이 있다며 행수가 먼저 자리를 뜨자, 행중 몇이 뒤따라 일어서고 몇 사람이 남았다. 어딘가 미련이 남아 냉큼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윤기호가 금방 안색을 바꾸고 남은 사람들에게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었다. “울진 포구로 회정하자면, 썰렁한 접소에서 3, 4일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아니겠소. 행수가 회정길을 서두른다고 댁들도 덩달아 학춤을 출 수야 없지 않겠소. 유기전이니 시게전이니, 포목전이니 원매할 물건들이 도가에 쌓여 있지만, 흥정이란 시일을 두고 밀고 당겨야 길미가 많은 법이란 것을 시생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괜히 서두르다 보면 억매흥정에 무단히 악명 쓰기 십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인생 산다는 것이 칼 물고 뜀뛰기가 아닙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때에 전 입성으로 행로가 번다한 병문 거리로 나가서 해동갑으로 발서슴해본들 반갑게 맞이하는 일점 혈육인들 있습니까. 모두가 허망할 뿐입니다. 길미에만 눈독들이지 말고 쌓여 있는 행역들도 풀어주어야 맛이지요.” “어디 좋은 데가 있습니까?” “시생이 누굽니까. 이 내성장 병문 거리에서 여립꾼으로 잔뼈가 굵은 처지가 아닙니까.” “포주인 말씀이 그럴싸합니다. 거느린 가솔도 없는 처지에 아득바득 이문을 노려서 어디다 쌓아두겠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들은 성애 먹던 소반을 밀치고 약고 꾀바른 윤기호와 함께 어물 도가를 나섰다. 벌써 해는 지고 멀리 바라보이는 산허리에 희미한 저녁 이내가 비단 폭을 두른 듯 치렁치렁하게 걸려 있었다. 윤기호가 먼발치로 선머리에 서고 네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도감 정한조가 으름장을 놓았던 터라, 누가 염탐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쭈뼛거렸으나, 색주가에서 벌어질 짜릿짜릿한 광경들이 뇌리에 떠올라 윤기호를 뒤따라가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계집의 사타구니에 콧등을 박아본 지가 까마득한 옛날로만 생각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 달포 전에 길가에서 인심 좋은 들병이를 만나 육허기를 채운 사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찌된 셈인지 그것이 까마득하게 먼 옛날에 겪었던 일로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해가 진 후에도 길거리는 심심찮게 오가는 길손들로 분주했다. 좌반전, 어리전, 드팀전, 애막, 황화전들을 벌였던 난전 좌판 어름에는 노인네들과 철부지들이 뒤섞여 횃불을 켜들고 땅에 떨어진 낙곡이나 엽전을 줍자고 야단이었다.
  • [시론] 창조과학과 창조경제/이창석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시론] 창조과학과 창조경제/이창석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의 한 부처 명칭이기도 한 ‘창조과학’과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정치권이 슬로건으로 내건 용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적은 거의 없다. 국민의 보편적 눈높이에 맞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논란이 되는 것은 의미를 보편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탓이다. 필자가 전공하는 생태학은 주어진 생태적 공간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종합 학문이다. 생태학적 연구를 통해 구성원 간의 상호관계를 보면, 각 구성원이 발휘하는 기능에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내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각 구성원 기능의 합 이상의 기능이 나타난다. 나무들이 흩어져 있으면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숲을 이루면 서로 도움을 주면서 강한 바람이나 건조함과 같은 환경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남는다. 숲을 이루는 나무 각각이 발휘하는 기능의 합보다 숲의 기능이 더 크다는 얘기다. 생태학에서 일컫는 창발(創發) 기능, 즉 창조적 기능이다. 생태학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다른 학문과 활발한 융합을 시도하는 요즘이다. 생태학은 오랫동안 생태학과는 아주 다른, 어떤 면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온 토목공학과 융합을 시도해 생태공학을 탄생시켰다. 생태공학은 오늘날 파괴된 각종 생태계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인간의 과도한 욕심으로 병든 지구환경을 되살리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문 간 융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창조과학이 지구의 미래 환경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예가 또 하나 있다. 생태학은 본래 박물학과 지리학이 결합한 학문이다. 그러나 생태학은 종적 깊이를 추구하고, 지리학은 횡적 확장에 주력했다. 한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두 학문이 다시 만나 현대생태학의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경관생태학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분야다. 경관생태학은 생태학의 시야를 넓혀 생태학자들에게 공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오늘날 환경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 이질적이고 다양한 융합 사례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 초점은 기후변화에 기인한 생태계 변화다. 그 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해 변화에 대한 적응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모든 연구에서 그렇듯이 진단을 위한 관찰은 연구의 중요한 출발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관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물이 보이는 계절현상이 아주 중요하게 활용된다. 예컨대 꽃이 피고, 새 잎이 나오고, 곤충이 우화(羽化)하고,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새들이 산란하는 시기 등의 계절현상은 생태계 차원에서 기후변화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부지불식간에, 그것도 관찰하기 힘든 공간에 숨어 진행되는 이러한 현상의 관찰을 눈에만 의존할 때 우리는 그 시기를 놓치거나 관찰한 반복 수가 모자라 질 높은 자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적응전략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생태학자와 전자공학자, 정보통신 전문가가 힘을 합쳐 생물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해낼 수 있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환경부가 새로 추진하는 생태·혁신과제를 통해서다. 또 하나의 창조과학이 탄생,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혼란스러운 생태계 변화의 의문도 조만간 풀릴 전망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온 학문이 만나 조화로운 융합을 이루어낼 때 그 조합은 그들의 합 이상의 어떤 것, 즉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 분명 새로운 것으로서 창조라는 말과 어울릴 수 있는 효과다. 따라서 융합된 학문에 따른 새로운 학문은 창조과학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과학과 경제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은 요즘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도 충분히 가능하다.
  • “고급 외교술” VS “한국어 놔두고” 朴대통령 영어연설 네티즌 갑론을박

    “고급 외교술” VS “한국어 놔두고” 朴대통령 영어연설 네티즌 갑론을박

    박근혜 대통령의 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영어연설이 네티즌들의 화제로 떠올랐다. 9일 각 포털사이트에는 박 대통령의 영어연설 동영상이 수십개씩 올려져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대통령은 34분간의 유창한 영어연설로 41차례 기립박수를 받는 등 참석 의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겁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보면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확인했다”(kih****), “6.25 참전용사 출신 국회의원 이름을 부르면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상당히 좋은 고급외교술” (showmet******), “영어연설을 원고없이 거침없이 하는 것만 보아도 믿음직스럽다. 정말 자랑스럽다”(glara****), “보통 이런 연설은 프롬프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모지 한장 가지고 올라갔다”(7IIUW*****), “부드러움 속에 힘이 느껴진다. 전세계 외교가에서 철의 여인의 새로운 버전으로 각인될 것 같다”(yuhn*****) 등 박 대통령을 극찬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반면 우리 말을 놔두고 영어연설을 한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네티즌도 등장해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영어로 연설하고 박수 받은 게 자랑할 일일까? 다른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서 자국말로 연설하나”(yan****), “영어를 잘하건 발음이 어떻든 별 관심없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국민의 권력을 대리해 나간 사람이 영어로 저렇게 연설하는 모습이 왜이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like_fil********)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 심지어 특정 예능프로그램이 결방된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박근혜 연설인지 뭔지 때문에 ‘짝’이 방송되지 않았음에 더 분노했음”(seohy*******), “짝은 결방되고 라스(라디오스타)는 지연되고 이런…(must_sa*******) 등의 반응이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8명의 영어실력을 분석한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의 저서 ‘대통령의 공부법’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학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김대중 전 대통령, 현대그룹에서 일하면서 해외 세일즈를 많이 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상급의 영어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 민주화 투쟁을 해 영어를 익힐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외 연설을 대부분 한국어로 했다. 하지만 일부 비공식 연설은 영어로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의 지상파 3사 방송 시청률은 12.4%를 기록했다. 온라인뉴스팀 iseoul@seoul.co.kr
  • [朴대통령 방미] 朴대통령 “한국경제, 北 위협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에서 북핵 리스크 잠재우기에 나섰다. 4박6일 일정의 방미 첫날인 5일(현지시간)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다. 박 대통령은 “요즘 여러분께서도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것 때문에 걱정이 크실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국내외 기업들도 투자 확대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대북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어 “우리 정부의 빈틈없는 안보태세와 국제사회와의 굳건한 공조 강화를 통해 단호하고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 채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순매수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면서 “이는 우리 경제가 북한의 위협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가 알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세계 금융의 심장인 뉴욕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북한발 안보위기로 불거질 수 있는 세계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간담회엔 뉴욕과 뉴저지 인근에 사는 동포 30만명을 대표해 450여명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 오전 뉴욕 맨해튼에서 ‘한국 투자 신고식’을 개최해 보잉사와 커티스라이트, 올모스트 히어로스 등 7개 미국 기업으로부터 3억 8000만 달러 규모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뉴욕 방문과 관련해 뉴욕경찰(NYPD)이 이례적으로 입체적 경호를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뉴욕경찰이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숙소인 월도프 호텔에 이르기까지 헬기를 띄우고 교통통제를 하는 등 입체적 경호를 펼쳤다”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나 다른 국가 정상의 방문을 보아 왔던 외교부 쪽에서도 뉴욕경찰의 입체적 경비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사무총장과 면담을 갖고 “유엔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행복한 지구촌 건설을 위해 기여하겠다”며 적극적 역할을 다짐했다. 박 대통령은 면담 직후 유엔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70여명을 만나 “국제기구 등 해외 진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해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돕고 글로벌 인재 양성을 능동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욕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도감이 두 사람과 마주친 장소가 얼추 몇 마장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 그들이 적당인 게 틀림없다면 소굴 역시 십이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아직은 소굴을 찾아낼 때까지 시치미를 잡아떼고 은밀히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약차하면 우리 상대가 적환을 입기 전에 먼저 소굴을 색출하여 쑥밭을 만들어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그 운수납자 행세하는 놈의 뒤를 쫓거나 말래 도방에 업어다놓은 위인을 간병 핑계하고 붙잡아두는 게 상책이겠군.” “탁발을 가장한 놈을 놓쳐버려서 제가 먼저 몰골을 드러내기 전에는 뒤밟기가 손쉽지 않을 것이고, 도방에 데려다놓은 병자는 다리가 부러져 굴신을 못 하니, 나가라고 내쫓아도 못 나가겠지요.” “궐자를 잡아두되 쉬쉬하지 말고 삼이웃이 떠들썩하도록 소문내는 것이 탁발승을 유인하는 데 효험이 있을 테지. 이참에 십이령에는 산적들이 언감생심 얼씬도 못 하도록 잡도리해야겠네. 소굴이고 화적이고 두 번 다시 화근이 되지 않도록 아주 작신 분질러 도륙을 내야 하네. 그것이 우리 원상들의 명분이 아닌가. 요사이 장시를 보게. 이런 야단이 없네. 협잡꾼들이 칠년대한에 비 만난 듯이 몰려와 무고한 사람들에게 봉변 안기는 것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놈이 원상인지, 어느 놈이 협잡꾼이고 무뢰배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되었네. 구실살이 하는 서리, 마름이며, 사기꾼들이며 와주와 화적들까지도 모두 원상을 가장하고 분탕질이어서 장시의 기강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네. 백주창탈도 이쯤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네. 죽은 고양이가 산 고양이보고 아웅 하더라고 신표를 가졌다는 원상들은 걸핏하면 무뢰배들에게 걸려들어 상투가 잡히고 회술레를 당해 인사불성이 되도록 창피를 당하지 않던가. 장시의 풍속이 이토록 더렵혀지면 조만간 푸줏간 칼자며 노복들까지 나서서 우리 원상들을 해코지하려들 것일세. 그러한즉슨, 차제에 원상의 면목을 세우지 못하면 봉변은 그렇다 치고 보부상들이 살아갈 명분조차 찾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네. 이토록 피폐하게 되면 장세(場稅)는 누가 걷고 임방 경영은 누가 하겠나.” “지방 관아의 수령들이 감당하기는 어렵겠지요?” 도감 정한조가 불쑥 퉁기는 말에 반수가 오히려 볼멘소리를 하였다. “토색질에만 눈이 뒤집힌 아전과 늙어서 눈자위에 진물이 나는, 벙거지 쓴 형장들 몇 가지고는 물가에서 살아가는 너구리 한 마리인들 온전히 잡겠나. 감히 적당들을 소탕하겠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일세. 그놈들 고개치 이름 하나도 변변히 아는 게 없네. 원진을 친답시고 숫막집 봉노 질화로 도차지하고 둘러앉아 하품이나 하다가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이, 똥 싼 놈은 놓치고 방귀 뀐 놈만 잡아서 곤장을 내려 피칠갑을 시킬 테지. 그 떨거지들에게 설령 그럴 결기가 있다 할지라도 기골이 든든한 우리들 손으로 적굴 놈들을 소탕해야 체면이 설 게 아닌가. 아전이나 군교 들을 믿지 말게. 예전 사람들은 구실아치들도 소박해서 성품들이 진국이었네. 요사이는 벼슬아치든 작청의 구실살이든 군교들이건 모두 기지(機智)를 숭상하게 되었네. 기지는 필시 기교(機巧)를 낳기 마련이고, 기교는 간사(奸詐)를 낳기 마련일세. 간사가 횡행하면 속임수를 낳게 되지. 속임수가 횡행하면 세도가 날로 어지러워지기 마련일세.”
  • [열린세상] 130년 만의 조선책략 개정판/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130년 만의 조선책략 개정판/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 교수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와 고종에게 보고한 것이 일본 주재 청나라 공서참찬(公署參贊) 황준센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었다. ‘조선책략’으로 잘 알려진 이 책에 대한 당시 조선의 반응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발견된다. 중국의 일개 외교관이 쓴 조선정세 분석이었음에도 고종과 대신들은 상당히 공감했고, 수신사를 접대한 일본의 후의와 외교정책 방안을 한 수 가르쳐준 중국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반면 무조건적으로 외세를 배격하려는 국내의 척화 여론에 대해서는 불신했다.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되살려 보려는 조선 말기 지도층의 시세 인식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책략’의 내용은 자못 논리적이었다. 강대국 러시아가 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하려 하니, 가장 위기에 처해 있는 조선의 살 길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하는 것이라는 것이 책략의 핵심이다. 추운 지방에 위치한 러시아는 항상 따뜻한 남쪽으로 팽창해 왔는데, 유럽에서는 터키를 노렸으나 열강들의 공동대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연해주로 야욕의 대상을 넓혀 왔다는 점이 강조됐다. 사할린과 만주를 취한 러시아의 다음 먹잇감은 조선반도임에 틀림없으므로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주변 국가들과 힘을 합해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본을 평가한 부분도 독특하다. 조선과 일본은 늘 운명을 함께하는 지정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보완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한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도 무사할 수 없다는 순망치한의 논리였다. 또한 과거 진(秦)의 확장을 주변 국가들이 힘을 합해 막아냈던 것처럼, 중국과 일본·조선이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한 세력균형 연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럽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약소한 자를 돕고 공의를 유지하려는 미국 역시 조선이 받아들여야 할 훌륭한 외교 파트너로 간주됐다. 그런데 이런 핵심적인 제안과는 별도로 글 속에 숨어 있는 중국의 조선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황준센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중국의 힘뿐만 아니라 중국이 주변 국가를 침략하지 않는 평화지향적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온화한 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베트남·미얀마와 같이 중국과의 관계를 등한시해 환란에 빠지지 말고 ‘한집안’이라는 인식으로 중국을 섬기면 외세의 야욕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과시가 깔려 있다. 당시 서양의 침탈로 청나라가 기울어져 가던 와중에도 조선을 여전히 속국으로 간주하던 중화질서관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중국 인민일보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둘러싸고 관련 국가들에 대하여 엄중한 훈계를 던졌다. 한반도 정세가 북한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하지 말라는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을 일방적으로 제재만 해서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고, 일본이 한반도 위기를 기회 삼아 군사적 팽창을 노려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도 덧붙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최대의 피해자가 될 터인즉, 대화로써 중재를 취하라는 점잖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러시아 팽창의 위협에 직면했던 130여년 전 위기상황에 비해 환란의 원인은 달라졌지만, 중화질서관을 바탕으로 한 정세 인식은 그리 바뀌지 않은 ‘조선책략’ 개정판이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21세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의 조언과 인식은 중요하다. 이웃 강대국이 한반도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책략’의 의미가 그 방략의 정확함보다는 주변정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음을 감안할 때, 오늘날의 ‘조선책략’ 개정판 이면에 깔려 있는 은근한 메시지도 필히 주목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조선책략’이 기울어져 가는 중국의 맥없는 자문이었다면, 지금의 ‘조선책략’은 커가는 중국의 힘이 잔뜩 실린 경고인 듯하여 자못 찜찜하다.
  • 쌍둥이자매, 화장실과 자동차에서 각각 태어나

    쌍둥이자매, 화장실과 자동차에서 각각 태어나

    고향이 각각 다른 쌍둥이는 몇이나 될까? 한 명은 공항, 또 다른 한 명은 자동차가 고향(?)인 쌍둥이자매가 에콰도르에서 탄생했다. 28세 여성이 에콰도르 남서부 과야킬의 공항에서 쌍둥이자매 중 첫째를, 앰뷸런스에서 둘째를 각각 출산했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임신 34주 만에 쌍둥이를 낳은 여자는 여행을 하려 공항에 나갔다가 산통이 시작됐다. 병원에선 5월 말에야 아기를 출산할 것이라고 했던 터라 산통이 시작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하고 떠나려 했던 여행이다. 여자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공항화장실로 달려갔다. 첫 아이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이어 출동한 앰뷸런스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가다 차안에서 둘째를 낳았다. 키 41cm, 몸무게 1.7kg로 태어난 첫 아이에겐 알렉사 발렌티나, 키 38cm, 몸무게 1.4kg로 세상에 나온 둘째에겐 앙헬리카라는 예쁜 이름이 지어졌다. 그러나 일단 태어났지만 쌍둥이는 걱정스러운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쌍둥이 두 명 모두에게 호흡의 문제가 있어 상당히 민감한 상태”라며 “상태 호전 여부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코메르시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살생부 오른 박주영

    살생부 오른 박주영

    스페인 프로축구 셀타 비고에 임대된 박주영(28)이 원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의 방출 선수 명단에 포함됐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1일 축구 전문 매체 ‘커트 오프 사이드’에 따르면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박주영을 비롯해 니클라스 벤트너, 마루아네 샤마흐를 다음 시즌 전력에서 제외, 여름 이적시장에 내놓을 작정이다. 벵거 감독은 새로운 공격수 영입 계획을 갖고 있는데 다비드 비야(FC 바르셀로나)와 스테판 요베티치(피오렌티나)를 영입 리스트에 올려놓은 채 각각 1000만 파운드(약 170억원)와 2400만 파운드(약 410억원)를 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는 “벵거 감독이 선수 급료 지출을 줄이려고 이들 3명에 대한 헐값 이적 제의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아스널의 입장이 정해진 만큼 박주영도 아스널 복귀를 포기하고 새로운 팀을 알아보아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최근 전 소속팀 AS 모나코와 릴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스널이 박주영을 영입하면서 지불한 이적료 500만 파운드(약 85억원)를 회수하겠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으면 이적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 박주영이 최근 2년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선뜻 이 금액을 내놓고 영입할 팀도 찾기 어려운 실정. 이적료가 낮춰지면 여러 팀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아스널의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스널이 팀에서 내보내기로 정한 만큼, 이적료를 낮춰 박주영이 수월하게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그에겐 시련의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이제 메세나법을 제정할 때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이제 메세나법을 제정할 때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예술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은 이제 우문(愚問)이 되었다. 저명한 세계적 미래학자들의 이름을 빌릴 것도 없이 지금은 문화의 시대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덕분일까, 우리 사회에서 문화가 꽤나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민행복’을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정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열쇠말을 경제부흥, 국민행복 그리고 문화융성으로 설정했다. 이들은 모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경제부흥의 핵심은 창조경제이고, 창조경제의 핵심분야 중 하나가 콘텐츠산업, 곧 문화산업이다. 종교를 비롯해 문화예술이야말로 국민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실행수단이다. 문화융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군다나 임기 중 정부재정 2%의 문화재정 공약도 이미 공표된 바 있다. 이만하면 문화융성이 곧 눈앞에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아직도 마음을 졸이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수많은 공약(公約)들이 정권이 끝날 때쯤 해서 슬그머니 공약(空約)이 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초예술을 위한 공약(公約)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도 기초예술에 대한 배려는 문화산업이나 관광, 체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문화경제를 선두로 복지와 연관된 문화향수권 관련 정책이 문화정책의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산업의 모태가 되고, 삶의 질의 기반이 되는 문화창조력을 높이는 정책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래저래 기초예술 분야는 찬밥 신세인 셈이다. 앞으로 늘어날 사회복지 예산 등을 감안하면 문화재정의 획기적 확대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기초예술 분야를 진흥시킬 재원 확보는 더욱 난감하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은 운명을 다할 날만 기다리고 있고 이를 보충하거나 대체할 방안이 현재로선 없는 실정이다.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으면 예술이 고사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간접지원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세제 감면 등 세제상의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길정우 의원이 작년 수정 발의한 ‘메세나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필요한 단순한 이치다. 이 법이 순수예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을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갖는 경제적 효과는 물론, 문화예술이 다른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도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문화예술이 주는 계량화된 경제효과 못지않게 기업의 문화적 창조력과 조직 몰입, 국민의 행복한 삶, 사회통합, 국가브랜드 제고 등 이른바 비화폐적 사회경제효과를 계량화한다면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사실 조세특례제한법을 잠깐만이라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특례대상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 연구 및 인력개발, 국제자본거래, 투자 촉진, 고용 지원, 기업 구조조정, 금융기관 구조조정, 지역 간 균형발전, 근로 장려, 외국인 투자, 기업도시 개발 등 그 목록이 꽤 길다. 정치자금의 세액공제 및 손금산입 특례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조세특례제도는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을 대상으로 한 기부가 국가경제, 사회통합과 발전, 문화복지 실현 등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실익을 감안할 때 현 조세특례제한법에 명시된 다른 대상들과 비교해 그렇게 괄시받을 이유가 없다. 이제 문화를 주창하는 이 시대에 조세특례에 관한 시각은 바뀌어져야 한다. 나아가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는 장려되고 우대받아야 한다. 새 정부는 적어도 취임사로만 본다면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문화를 국정 전반에 표방한 최초의 정부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메세나 관련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은 물론, 국민행복을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고 문화융성을 주창한 대통령께서도 나서야 한다. 이 일은 새 정부가 내세우는 문화융성의 정책 화두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1단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정책사에도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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