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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한국 아파트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는 거리형과 단지형 간의 대립과 복합이라는 구도다. 이것은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가 주변 지역, 특히 거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한다. 상가 아파트는 거리형 아파트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길에 면한 건물의 저층에 주거 보다는 상가를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층부 거주 환경이 더 좋은 단지형에서 상가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상가동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예외가 있다. 즉 거리형과 단지형이 복합된 경우다. 대표적으로는 이미 소개했던 반포 주공 1단지(1974)나 앞으로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양맨션(1971) 등이 그렇다. 둘 다 대규모 단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단지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고은 아파트, 연화 아파트, 그리고 홍파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 모래내로 고개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 무악재를 따라 놓인 통일로는 홍제동을 둘로 나눈다. 지난번에 소개한 유진 상가, 원일 아파트, 안산 맨숀은 모두 통일로 북동쪽, 즉 인왕산 쪽의 홍제동에 있다. ‘고은 아파트’가 있는 곳은 통일로 너머 반대쪽, 즉 안산 쪽 홍제동이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과 무악재역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모래내로에서 답사가 시작된다. 안산 중턱을 가파르게 경사져 오르다가 다시 홍제천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그 고갯마루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가 있다. 외벽이 벽돌로 된 정감 있는 건물이다. 1975년 6월 17일에 사용승인을 받았고 2개 동 139가구의 오붓한 단지형 아파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가동과 나동의 2개 동 중 상가가 있는 것은 가동이다. 전면 도로를 따라 건물이 ‘ㄴ자’로 꺾여 있는데 그 부분에 상가가 있다. 상가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세탁소, 실버용품 상점, 염색 전문점, 신발 가게, 전자제품 상점 등 일상적인 삶을 위한 가게들이다. 마침 그 앞은 버스 정류장이다. 아파트단지 주민뿐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쉽게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인접한 광산 아파트가 역시 소규모 단지형 아파트이면서도 가로에 일체의 상가가 없는 것과는 대조된다. 벽에는 ‘고은 아파트’라고, 관리실에는 ‘고은 맨숀’이라고 씌어 있어서 이 당시 두 단어가 서로 약간의 긴장감을 이루며 함께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일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래내로라는 정식 도로명 대신에 화장터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찾아보니 고은 아파트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홍제동 화장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세워졌으나 점차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1970년 9월 1일 경기도 벽제로 이전한 ‘시립장제장’이 바로 그것이다. 화장장이 있던 시절에는 인근 안산의 나뭇잎에서 그을음이 묻어났었다고 하니 인근에 공동 주거가 들어서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고은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1975년으로 이미 화장터가 옮겨간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새로운 지역에 일어나는 변화 뒤에는 항상 이렇게 사연이 있다. # 네 그루의 가로수가 리듬 맞춘 연화아파트 상가아파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종종 이런저런 제보를 받는다. ‘연화 아파트’도 그런 경우였다. ‘1970년대 지어졌고 이전에는 고급이었던 상가아파트가 연희 삼거리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고은 아파트에서 모래내로를 타고 오면 자동차로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다. 연희동의 중심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연희로와 증가로인데 이 두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연희 삼거리다. 연화 아파트가 이 삼거리 북쪽 증가로 변에 들어선 것은 1975년 12월 6일이었다. 안산 너머의 고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난 지 약 반년 후의 일이었다. 연희동은 원래 조선 시대 이궁의 하나였던 연희궁이 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연가구학교 자리로 전해진다. 궁은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거기서 다소 떨어진 궁동산(宮洞山)이라는 이름에 아직 남아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치른 저 유명한 연희 104고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산이다. 연가구학교 신촌 캠퍼스가 있어 이전부터 학생 인구가 많았고 또한 한국한성 화교중학교의 존재로 짐작할 수 있듯이 화교 인구도 상당하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교수, 외국인 등을 위한 고급 주택지가 많은 것도 연희동의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약간의 이국적 분위기가 감도는 고급 동네, 이것이 연희동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면서 상업과 주거가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맛집 거리, 사러가 쇼핑 등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연화 아파트는 이러한 연희동의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의식하고 자리잡은 것 같은 모습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가 다소 내려앉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의 스케일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 적절한 높이와 폭, 보행자의 접근을 최대로 배려한 1층 상가, 정갈하고 차분한 외관. 특히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저 연보라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까지. 한마디로 참 깔끔한 아파트가 아닐 수 없다. 의도인지 모르지만 증가로변 정면의 가로수 네 그루는 마치 건물과 함께 리듬을 맞추는 것 같다. 정면에서 보면 그냥 단독 건물처럼 보이지만 연화 아파트도 엄연히 배치상으로는 단지형이다. 다만 한 동이 ‘ㄱ자’로 구부러지면서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다. 마당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1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다음해 초인 1976년 1월 26일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계획을 한 셈이다. 총 38가구의 매우 아담한 연화 아파트는 지상 5층, 지하 1층 건물이다. 현재 가로에 면한 지하실은 미용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방공대피시설 안내판이 아직 붙어 있다. 평수 16평, 수용인원 96명, 심지어 관리 책임자의 이름도 보인다. 이런 안보 관련 시설들을 둔감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으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남침 땅굴 발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들이 이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시설의 필요성은 당시로서는 현실이었다. 민간의 공동 주거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태권도장? 주차장? 홍파아파트 지하 정체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거리형 상가아파트는 특정 지역 몇 군데에 몰려 있다. 충정로를 포함한 서대문 일대가 그렇고 홍제동이 또한 그렇다. 나중에 소개할 용산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사대문 안에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반면 이 패턴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대문에서 한참을 더 간 제기동 길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홍파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파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제기로를 따라 고려대 쪽에서 접근하면서 보면 홍파 아파트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이 강조된 디자인이지만 한쪽 면이 좀처럼 보기 드문 ‘지그재그’ 형이다. 꺾이는 곳마다 창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형과 실내 공간 계획을 정확히 일치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홍파 아파트의 정면은 제기로라는 넓은 도로지만 그 측면은 좁은 골목길이다. 서쪽 골목길은 제기로 13길로 불리는데 이 길은 45도 방향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이 골목길에 아파트의 배치를 맞추다 보니 지그재그형의 특이한 조형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변 지역, 특히 좁은 도로와의 관계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몸을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면뿐 아니라 골목길에도 1층에 상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마도 좁은 골목길에는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담장을 쳐서 골목과 단절해 놓은 것은 다소 아쉽다. 다만 저층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골목길을 따라 나름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놓여 있는 모습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주 출입구는 오른쪽 골목으로 형성된 마당 겸 주차장 쪽으로 나 있다. 즉 상가와 주거의 입구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지만, 정면에만 도로가 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홍파 아파트는 대지의 깊이 덕분에 뒤에 마당을 만들 수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홍파 아파트는 폭 대 높이의 비가 거의 1대1로 상당히 홀쭉한 비례다. 그 덕분에 실제보다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제기로 남쪽 일대는 홍파초등학교, 경동시장 등 기본적으로 낮은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6층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역의 망루 같은 존재감을 갖는다. 입면을 보면 창호와 벽체 그리고 발코니가 이루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6개 모듈로 좌우 대칭 구성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재미있다. 내부 평형과 측면 가구의 구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다. 홍파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6층이다. 48가구가 입주해 있으니 작은 규모의 아파트다. 특이한 것은 지하층의 용도다. 겉보기에는 주차장이고 실제로 차량이 들고 날 수 있는 램프가 두 군데나 있지만 건축물관리대장 상에는 주민운동시설인 태권도장으로 되어 있다. 공부상의 용도와 실제 용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만 홍파 아파트의 경우 이미 건립 당시부터 지하층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더구나 이 아파트의 사용승인일이 1971년 10월 7일로 앞서 소개한 고은 아파트나 연화 아파트보다도 시기적으로 몇 년 앞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하 공간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데 홍파 아파트도 그런 경우의 하나인 것이다. 홍파 아파트는 장흥식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회사가 아닌 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대 자본이 아닌 개인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아파트들의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것은 동원된 자본의 규모와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일부러 다양한 디자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다양성이 있었던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거대 단지로 공동 주거를 공급해 온 그간의 상황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 “누진제 전기료 폭탄 못 참아” 불볕 더위에 집단소송 급증

    “누진제 전기료 폭탄 못 참아” 불볕 더위에 집단소송 급증

    소송 누적 신청 인원 2400여명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한국전력공사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도 급상승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는 누진제 폭탄이 두려워 더위를 감수하는데, 산업용인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에너지 과소비를 부른다는 형평성 논란도 제기돼 왔다. 누진제에 대한 논란은 급기야 집단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7일 법무법인 인강에 따르면 한전을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 전날 700여명이 참여한 데 이어 이날 460여명이 동참했다. 인강이 2014년 8월 20일을 시작으로 소송 대리에 나선 이후 누적 신청 인원이 2400명을 넘어섰다. 이들 가운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인원은 750명이다. 소송은 서울중앙지법과 대전·광주·부산지법 등에 모두 7건이 걸려 있다. 이들의 청구 금액은 1명당 평균 65만원에 이른다.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과 광주지법에서 일부 소송의 선고 기일이 잡혔다가 변론이 재개된 상태다. 인강은 한전이 위법한 약관을 통해 전기요금을 부당 징수했으니 해당 차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관규제법 제6조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보아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부당하게 불리’한 부분은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6단계로 구성된 전기요금 체계 중 1단계(100㎾h)까지는 ㎾h당 60.7원으로 책정돼 있다. 산업용(81원)과 일반용(105.7원) 전기요금보다 낮다. 하지만 500㎾h를 초과하는 6단계에 들어서면 ㎾h당 709.5원으로 1단계의 11.7배가 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도시 4인 가구 기준으로 여름철 하루 평균 에어컨 사용 시간은 3시간 31분이다. 에어컨 없이 월 342㎾h의 전기를 사용해 5만 3407원을 내는 가구가 3시간 30분 에어컨을 켰다면 전기 사용량이 521㎾h로 늘어난다. 전기요금으로는 13만 5946원으로, 에어컨 사용 전에 비해 월 8만 2000원(179㎾h)을 더 낸다. 에어컨을 하루 8시간(432㎾h) 썼다면 누진제가 적용돼 월 31만 6566원(774㎾h)을 내야 한다. 이렇게 격차가 큰 전기요금 체계를 갖춘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강 관계자는 “주택용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 중 3%만이 누진제 적용이 안 되는 100㎾h 이하를 사용한다”면서 “한전이 일방적, 독점적으로 정한 요금제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여름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 과연 유망창업 아이템일까?

    한여름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 과연 유망창업 아이템일까?

    연이은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불쾌지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예보한 시원한 장맛비는커녕 폭염만 계속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더위를 잊고자 시원한 디저트를 찾는다. 여름철 시원한 디저트라고 하면, 대게 빙수를 떠올린다. 그만큼 빙수는 소비자들의 여름철 수요가 많은 사업아이템이다. 대부분의 예비창업자들은 여름철 대목을 잡기 위해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여름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을 유망 창업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창업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한 계절에 잘 되는 유망 사업아이템 이라고 유망 창업이라 하기는 어렵다.”라고 말을 모았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내 빙수 프랜차이즈는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다. 팥빙수, 과일빙수, 요거트 빙수, 눈꽃 빙수, 콩가루 빙수, 대패 빙수 등 가짓수도 다양하다. 이처럼 다양한 아이템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창업 선발주자로 나섰다면, 소비자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물론 성공창업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빙수 프랜차이즈 창업은 포화상태다. 눈꽃빙수를 선보인 S빙수 프랜차이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하나둘씩 아이템을 베끼기 시작하면서 어딜 가도 똑같은 빙수를 파는 곳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국외에서도 국내 빙수 프랜차이즈를 베낀 브랜드가 속속히 나타나고 있어 또 하나의 골칫거리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포화상태로 경쟁력이 떨어졌음에도 빙수 프랜차이즈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과 위생 문제로 소비자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에 따라 편의점 업계에서 기존의 프랜차이즈 빙수보다 저렴하고 맛 좋은 빙수를 선보이면서 빙수의 경쟁력은 현저히 낮아졌다. 유망창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쟁력이다. 업종변경이 잦은 현재, 경쟁력 낮은 사업아이템을 유망창업아이템이라 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빙수라는 아이템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특색을 띄우고는 있지만, 포화상태로 낮아진 경쟁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계절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 업종 변경을 고려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창업 전문가들은 유망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계절적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유사 브랜드가 없고 특색 있는 경쟁력을 갖춘 아이템을 선택하라고 한다. 아이템이 넘쳐나는 창업업계에서도 흔치 않은 사업아이템이다. 한국 프랜차이즈 대표 컨설팅 협회측에서는 “사계절 내내 따라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경쟁력이 있어야 성공창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이미 흔한 아이템이 되어버린 빙수, 커피, 아이스크림 등이 아닌 신선하고 다양한 디저트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대표적은 디저트 유망 프랜차이즈로는 디저트카페 dessert39이 있다.”라고 말했다. dessert39는 자체 제과센터와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어 독자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창업이다. 자체적으로 세계 각지의 유명 디저트를 만들어 희소성을 높이고 대형 냉동창고와 물류센터를 통해 가맹점과의 소통을 원활히 한다. 주 아이템인 디저트가 계절적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지고 있다. 아이템의 한 면만 보고 창업하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반드시 장점과 단점, 경쟁력을 따져보아야 한다. 경쟁력 없이 성공창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新전원일기] 대기업 이사, 年매출 1억대 멜론박사 되다

    [新전원일기] 대기업 이사, 年매출 1억대 멜론박사 되다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소.”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이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 1930년대에 멜론이라니…. 선구적 모더니스트인 이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센비키야는 1834년 설립된 일본의 고급 과일 전문점으로, 일반 과일 가게보다 3~10배까지 가격이 비싼 대신 최고의 맛과 모양을 자랑하는 과일만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충남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 위치한 ‘예란 농원’에서 멜론 농사를 짓고 있는 전영태(60)·구미경(54)씨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시인 이상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농원 앞 둑길까지 마중 나온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당대 최고의 천재 시인을 매료시켰던 이국(異國)의 향이 달콤하게 풍겨 오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사우나에 들어섰을 때처럼 훅 하고 얼굴을 덮으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바깥의 온도는 32도에 육박했고, 온실 내부의 온도는 그보다 10도 더 높았다. 멜론 농원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등줄기와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열대 과일을 조우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름에는 온실 내부의 온도가 50도 이상까지 올라갑니다. 체력 소모가 크죠. 그래도 햇빛을 받아 멜론 알이 굵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작지만 단단한 몸집, 새까맣게 탄 피부가 인상적인 전 대표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튼실하게 여문 멜론 앞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란 농원에서 주로 생산하는 품종은 ‘머스크멜론’으로, 과일에서 사향(麝香)이 난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껍질 표면이 그물로 둘러진 모양이라 해서 시중에서 ‘네트멜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1년 이곳 청남면으로 귀농한 전 대표는 ‘고급스러운 이국의 과일’이라는 멜론의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멜론은 일상적으로 먹는 과일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날에 먹거나 선물하기 좋은 과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중적이지 않은 고급 과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대신에 농사를 잘 지으면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는 고소득 작물이기도 합니다. 품종이 같은 머스크멜론이라 하더라도 크기, 모양, 맛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동네 과일 가게에서 1개에 5000원에 팔기도 하고, 백화점에서는 1개 1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죠.” # 깐깐… 고객 냉장고서 떨어질 당도까지 관리 상품성이 높은 멜론은 대체 어떤 멜론일까. 전 대표는 우선 식감을 자극할 정도로 예뻐야 하고 동그란 모양도 중요하다고 답한다. 멜론은 선물용으로 많이 찾는 과일이라 모양에 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단다. 머스크멜론은 초록색 껍질 표면에 나타난 네트의 모양도 중요하다. 밝은 회색의 네트가 올록볼록 선명하고 두껍게 올라온 멜론을 상품(上品)으로 쳐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과일의 맛이다. 전국에서 가장 단 멜론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는 전 대표에게 근거가 있는 자랑이냐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달콤함이란 손으로 만져지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미감이 아니던가. “보통 14브릭스(Brix·당의 농도를 측정하는 단위) 정도의 멜론이면 시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데, 저는 과일 안쪽 기준으로 16브릭스가 되어야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껍질과 가까운 바깥쪽 과육도 12브릭스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기준도 세워 놓았고요.” 깐깐한 품질 관리를 위해 출하가 가까워지면 매일매일 당도를 측정한다. 열매마다 철저하게 당도 표시를 하면서 관리하기 때문에 남다른 맛의 멜론을 출하할 수 있단다. 너무 달아서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은 없느냐는 질문에 “우리 멜론을 한 번 맛본 손님들은 다른 집 멜론은 싱거워서 못 먹겠다고 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멜론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먹는 경우가 많잖아요. 온도가 내려가면 그만큼 단맛이 줄어들거든요. 냉장고 안에서 단맛이 감소되는 것까지 감안해서 당도를 관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멜론은 아무리 달아도 기분 나쁜 단맛이 아니라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해 주잖아요.” 멜론에 대해 ‘후숙 과일 채소이기 때문에 덜 익은 것을 수확해 익혀 먹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전 대표에 따르면 완전히 익은 상태에서 수확한 과일을 구입 후 2~3일 정도 상온에 두었다가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출하되는 시점에 16브릭스에 달하는 예란 농원의 멜론이니, 후숙시킨 다음에는 당도가 더 올라간 상태로 고객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열대과일은 냉장고에 오래 두면 신맛이 나기 때문에 먹기 직전에 1~2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가장 맛있게 멜론을 먹는 방법이라고 귀띔까지 해준다. 아직 출하 시기가 아니라 당도가 떨어질 거라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전 대표가 따 온 멜론 하나를 아내 구씨가 예쁘게 깎아 내놓았다. 맛이 별로 없을 거라는 그의 말과 달리, 특유의 향이 코끝을 휘감으면서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특히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과육의 부드러움이 일품이었다. “충분히 맛있다”는 나의 칭찬에 머리를 갸웃거리며 전 대표는 당도계를 꺼내 과일의 당도를 측정해 보여주었다. 측정 결과는 14브릭스. 시중에서는 괜찮은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본인 기준에는 못 미친다며 맛있는 멜론을 맛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전 대표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단맛과 함께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드는 멜론의 육질도 범상치 않았는데, 출하 직전까지 멜론에 물을 주는 것이 그만의 과육 관리 비법이란다. “다른 멜론 농가에서는 출하 보름 전부터 멜론밭에 물 공급을 끊어요. 가물어야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멜론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과일이잖아요. 저는 수분 공급이 충분해야만 과육이 부드럽고 영양분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을 끊지 않는 대신 과일이 터지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죠. 물 때문에 과일이 싱거워지지 않도록 당도 조절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하고요.” 당도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농부의 손에서 풍부한 물을 머금고 자란 예란 농원의 멜론은 도매시장 대신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직거래로 판매된다. 실제로 전 대표의 멜론은 일반 농가의 멜론보다 박스당 1만~2만원 더 비싸게 팔린다.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7동 규모로 따로 직원을 두지 않고 부부 위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1억원 이상의 연매출, 5000만원 수준의 연소득을 자랑하게 된 것은 까다로운 농법을 고수하면서 고급화 전략을 추구한 덕이다. # 행복… 윗선 결재 안 받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 충북 영동에서 나고 자란 전 대표는 광운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LG그룹에 입사해 이곳에서만 30여년을 일했다. 서울로 올라가 성공하고 싶었던 시골 소년의 꿈은 현실에서 이뤄졌다. LG오티스에서 이사까지 지냈고, 2010년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직했다. 회사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가 본 셈이었다. 문제는 대기업 임원 자리를 내려놓았을 때 그의 나이가 55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백세 시대에, 겨우 인생의 절반에 도달한 시점인데 회사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협력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몇 년 더 일한다고 한들 그 이후의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귀농을 결심한 계기도 여기에 있었다. 고향 땅과 가까운 곳에서 멜론 농사를 지으면서 인생 이모작을 꿈꿔보기로 했다. “퇴직 5년 전부터 귀농을 결심하고 꾸준히 정보들을 수집했어요.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 땅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저한테 맞는 작물이 무엇일지 알아보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타고난 이과 체질’이라 농사에서도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것을 즐긴다는 전 대표는 윗선의 결재가 필요했던 회사 생활과는 달리, 직접 농원을 운영하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이 벌이는 적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느라 큰 수익이 나지 않았어요. 머스크멜론뿐 아니라 양구멜론, 백자멜론 등 다양한 멜론을 수확하느라 효율성도 떨어졌고요. 하지만 손해가 나더라도 제가 책임지면 될 문제이니 마음이 편해요.” 손해가 생기면 부인에게 혼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아내 구씨가 옆에서 싱긋이 웃으며 말한다. “귀농을 결심했을 때에도, 농사짓는 방식에 대해서도 저는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해본 적이 없어요. 워낙에 남편이 성실하고 반듯하기 때문이죠. 같이 농사를 짓지만 남편이 저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는 걸요.” 대기업 임원 사모님에서 농사꾼이 되어 햇볕에 그을리는 일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사 사모님에서 대표이사 사모님으로 승진한 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씨 가족은 청양군에서도 성공적인 귀농귀촌 사례로 꼽힌다. 큰딸 예슬씨(29)는 지방공무원직에 합격해 올 봄부터 청양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딸이 수년간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다가 지원 지역을 바꾸면서 한 번에 합격한 것만 보아도 청양과 전 대표 가족 간의 기운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단다. 두 딸의 아버지인 전 대표는 예전부터 동네에서 소문난 ‘딸 바보’였다고. 예란 농원이라는 농원 이름은 둘째 딸 예란씨(28)의 이름에서 따왔다. ‘예쁘고 맛있게 자란 멜론’이라는 뜻은 딸 이름을 따서 작명부터 하고 나중에 붙인 거라고 한다. 모든 일에 딸들이 우선이라는 딸 바보 아버지는 이제 딸을 돌보는 마음으로, 자식과 손주에게 가장 맛있는 과일을 먹이겠다는 마음으로 멜론을 키운다. # 신뢰… 겉으론 알 수 없는 멜론, 농부가 답 서양 속담에 ‘사람과 멜론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Man and melons are hard to know)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으로 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와 같은 말인데, 그만큼 겉으로 봐서는 멜론의 맛이나 품질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꺼운 껍질에 싸여 눈으로는 좀처럼 그 속을 가늠하기 어려운 멜론, 어쩌면 그래서 그 멜론을 키우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멜론을 알기는 처음 본 사람을 아는 것처럼 어렵지만, 신뢰할 만한 멜론 농부 하나를 알고 지내는 것은 씁쓸한 인생의 달콤함을 배가시키는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이더냐?” - 전주 경기전과 전동성당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이더냐?” - 전주 경기전과 전동성당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입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는 스승 무학대사에게 “스님, 생긴 것이 돼지 같구려”라고 먼저 농(弄)을 던진다. 그러자 스님은 의외로 뜬금없는 칭찬을 한다. "전하(殿下)께서는 부처님같사옵니다". 서로 우스개소리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머쓱해진 태조 이성계는 "어찌 스님을 돼지라고 놀렸는데도, 나를 부처라고 답하오. 그럴 필요는 없는 자리오"라고 정색을 한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날린 일격의 가르침이 바로 위의 대답이었다. 말 그대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인 셈이니 정말 유쾌한 블랙 유머 한 장면이다. ● 육룡이 나르샤, 태조(太祖) 이성계의 상(相) - 전주 경기전(慶基殿) 전주다. 흔히들 한옥마을이라 하여 마을 안 한옥들 가운데 있는 공원 정도의 느낌으로 있는 경기전이지만 실상은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바로 조선을 세운 태조(太祖)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적 제 339호. 1410년에 그의 아들, 조선 제3대 왕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 이방원이 어용전(御容殿)이라 하여 부왕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한껏 높아진 맞배지붕을 뒤로 한 채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만날 수 있다.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는 드넓은 경기전 뜰은, 왕의 얼굴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들이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현재의 전주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광해군 6년, 1614년에 중건한 곳이다. 지정 면적이 거의 5만 제곱미터에 이를 정도의 넓이를 자랑한다. 건축물의 구성으로는 가장 중심에 위치한 본전, 본전 양 옆 익랑(翼廊: 문의 좌우편에 잇대어 지은 행랑),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어진만을 따로 모신 ‘어진박물관’이 있어서 관람객들은 주로 이곳을 방문한다. 경기전 내에서 관람객들이 접하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1442년에 그린 것을, 1872년(고종 9년)에 왕실에 대대로 전해지던 원본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어진은 현존하는 태조의 어진 중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원본 어진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어야만 한다. 또한 붉은 옷의 홍룡포(紅龍袍)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푸른 빛의 청룡포(靑龍袍)의 어진이다. 이는 조선의 홍룡포가 보편화되기 전 고려의 곤룡포(袞龍袍)를 입어서 그러한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다. 그토록 유명한 ‘이성계’의 얼굴, 생경한 기대감으로 쳐다 본다. 아니 용안(龍顔)을 뵙는다. 관람객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만나는 노년의 조선 창업주 얼굴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왕자의 난으로 스스로 재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그대로 전해진다. “내가 젊었을 때에 어찌 오늘날이 있을 줄 알았으랴. 다만 오래 살기를 원하였더니 이제 70이 지났는데도 아직 죽지 않는다”(태종실록. 태종 6년 4월 4일)라며 한없는 근심을 말하던 태상왕 이성계의 목소리가 경기전 어딘 가에서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전주 관광의 대세, 남부시장 청년몰 그리고 전동성당 기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애당초 전동성당(殿洞聖堂)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옥마을이 너무 커져버려 오히려 전동성당이 한옥마을 내의 작은 관광명소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전동성당은 결코 관광지가 아닌 한국의 대표적인 카톨릭 성지이자 종교 시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 200-1.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건축물로서 현재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이다. 1791년 신유박해 시절에 신자 윤지충, 권상연이 순교한 풍남문(豊南門) 바깥 터에 1914년 프랑스 외방 전교회 신부였던 프와넬 신부가 설계 완성한 근대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영남의 계산 성당의 역사처럼 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성당으로도 의미가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을 기본으로 하여, 로마네스크식 건축양식의 특성인 두터운 벽과 작고 깊은 창, 그리고 안정된 평면 구조를 지니고 있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여기에 비잔틴풍의 종탑의 종머리 장식을 지니고 있어 서울의 명동성당이나 다른 로마네스크 주조의 성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바로 이 전동시장 맞은편에 ‘청년몰’과 ‘야시장’으로 유명한 전주 남부시장이 있다. 원래 남부시장은 외지인들에게 콩나물국밥 원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긴 나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늘 다대기와 파 다대기, 그리고 수란(水卵)을 풀어 먹던 콩나물국밥집은 이미 국내 유수의 체인망을 갖춘 식품기업이 되었다. 시간은 그리도 흘렀다. 지금의 남부시장은 탁배기 콩나물국밥 뿐만 아니라 바로 ‘피순대’, ‘청춘몰’, 그리고 ‘야시장’으로 세월을 훌쩍 넘어섰다. 거의 버려지고 황폐하였던 남부시장의 2층. 문화관광부, 전주남부시장 상인회, 전주시 등이 후원한 프로젝트, 청년장사꾼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레알뉴타운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들어선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은 어느덧 한옥마을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곳에는 젊음의 감성으로 가득한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핸드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커피가게, 전통매듭을 이용한 수제공방, 반려견들을 위한 소품샵 이외에도 다양한 전문요리점 등 각양각색의 매장들이 있어 남부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전(慶基殿)과 전동성당, 남부시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 전주라는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국내 여행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막연히 한옥마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경기전, 전동성당, 남부시장은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볼만 한 가치는 있다. 꼭 한옥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보자.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 이곳은 누구라도 좋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자녀분이 있는 가족이라면 두루두루 만족할 만한 여행지이다. 3. 숙소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 말 그대로 한옥마을이다. 수많은 한옥 민박집이 많다. 하지만, 광고와는 사뭇 다른 한옥 ‘냄새’만 나는 민박집도 많으니 가격이 저렴하다고 혹하지 말고 면밀히 알아보고 가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옥의 특성상 방이 작고 세면시설이 열악한 곳이 많을 수도 있으니 모쪼록 잘 살펴보아야 한다. 4. 경기전(慶基殿)과 전동성당, 남부시장의 실제모습은? - 세 군데 다 방문할 가치가 있으며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더구나 이 공간이 전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지로서는 최적의 지리적 배치를 지니고 있다. 5.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 주차문제다. 한옥마을 안에는 교통이 통제되다보니 외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한옥마을은 생각보다 넓어서 막연히 차를 세우고 어떻게든 찾아 가겠지라고 마음먹었다가는 거의 보물찾기 수준의 헤맴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전주 한옥마을 http://tour.jeonju.go.kr/index.9is?contentUid=9be517a74f72e96b014f8332a1e4145f -경기전 http://www.eojinmuseum.org/ -전동성당 http://www.jeondong.or.kr/ -남부시장 http://jbsj.kr/?m_code=jjnm 7.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 전주에서 맛집을 추천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를 하자면, 은행집(286-4766. 백반), 현대옥(282-7214. 콩나물국밥), 삼백집(284-2227. 콩나물국밥), 신한양불고기(284-7331. 돼지불고기), 동창갈비(287-2911. 숯불갈비), 일품향(285-0581. 군만두), 홍콩반점( 284-2024. 물짜장), 성미당(287-8800. 비빔밥), 가족회관(284-2884. 전주비빔밥), 초원슈퍼(228-1747. 맥주), 조점례 피순대(232-5060.피순대), 영동슈퍼(283-4997. 닭발), 전일슈퍼(284-0793. 갑오징어), 연가(010-5240-3163 연잎 떡갈비),꼬꼬통닭(283-2655), 상덕카레(288-0824), 베테랑분식(285-9898.칼국수) 등등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나요? - 어르신과 같이 전주에 왔다면 마이산을, 아이들과 같이 왔다면 전주 농업과학관을 추천.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은? - 당연히 한복 체험. 평소에 입기 힘든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보자.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 경기전(慶基殿)의 경우 조선의 창업주,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관상학(觀相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왕(王)의 상(相)을 확인하는 귀한 장소인 곳이니 일반인들도 왕의 얼굴을 꼭 확인해보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트럼프 “NFL이 대선토론 날짜 바꿔달라더라” NFL “그런 적 없다”

    트럼프 “NFL이 대선토론 날짜 바꿔달라더라” NFL “그런 적 없다”

     미국프로풋볼(NFL)이 입만 열면 사달이 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와 편지를 보냈느니 마느니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대선 토론의 날짜와 장소, 형식과 기준 등을 정하는 독립적이고 비당파적인 대통령토론위원회(CPD)는 지난해 9월에 이미 오는 9월 26일(이하 현지시간)과 10월 9일과 19일 등 세 날짜를 토론 날짜로 정해놓았다. 그런데 토론 첫 날인 9월 26일 ESPN은 애틀랜타 팰컨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먼데이 나이트 게임 중계를 예정하고 있고, 두 번째 토론일인 10월 9일에는 NBC가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와 캐롤라이나 팬서스의 대결을 선데이 나이트 게임으로 중계할 계획이다. 같은달 19일에는 이렇다 할 스포츠 빅이벤트와 겹치지 않는다.    선데이 나이트 게임이나 먼데이 나이트 게임 모두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경기라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와 정치 이벤트 날짜가 겹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돼 왔다. 더욱이 올 대선은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한 접전이 점쳐지고 있어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돕기 위해서라도 CPD가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가 지난 31일 ABC의 ´디스 위크´에 출연해 CPD의 스케줄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와의 후보 토론 날짜가 NFL 경기와 겹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이런 날짜들이 선택됐는지 알 수 없다. 왜 이들 날짜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다“고 말한 뒤 ”클린턴 후보가 많은 이들이 지켜보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날짜를 선택하게 됐다“고 해서는 안될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한 발 나아가 NFL 사무국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토론 날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 내가 싫어하는 일을 말해줄게요. NFL 두 경기 일정과 겹치는 거예요. NFL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웃기는 일이다. 왜 토론 날짜를 그렇게 충돌하게 짜는 걸까, 왜냐하면 NFL은 토론 날과 겹치게 짜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주 많은 이들이 보아야 할텐데, 맞죠?“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NFL 사무국은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브라이언 맥카시 NFL 대변인은 ”우리 역시 CPD가 다른 날을 골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긴 하지만 트럼프 씨에게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CPD도 이날 성명을 내고 ”18개월 전부터 방송사와 최대의 시청자를 불러모을 수 있는 날을 고르게 하고 두 당의 간부들과도 충분히 상의해 이들 날짜를 잡았다“며 ”모든 스포츠 이벤트를 피할 수는 없다. 대다수 선거 일정이 있는 날 밤에는 토론과 경기가 함께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토론 날짜가 재조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포스트 휴먼의 시대/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포스트 휴먼의 시대/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우리 시대의 가장 수상한 소문, 각종 연구물부터 일간지까지 퍼져 있는 ‘포스트 휴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포스트 휴먼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구하고 지금껏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것들을 극복하며 등장할 새로운 인류를 총칭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유명해진 인공지능, 타고난 생물학적 조건을 변경하는 생명공학,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로봇공학 등이 포스트 휴먼 담론의 핵심에 자리 잡는다. 그러니까 포스트 휴먼이라는 용어 없이도 우리는 나날의 생활 속에서 포스트 휴먼과 익숙하게 마주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포스트 휴먼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좌표에 자리 잡는지는 가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 자신이 우주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가늠이기도 할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포스트 휴먼의 꿈은 생각보다 오래다. 독일 의사 후페란트는 1796년 한 권의 책을 펴내는데,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장수식품학 또는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한 기술이 그것이다. 오래된 저작이지만 이 책의 과제는 기술을 통한 인간 수명 연장이라는 오늘날 포스트 휴먼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후페란트는 이 책을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동시대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에게 보내면서 편지에 이런 취지의 말을 써서 건넨다. ‘질병은 인간의 자유의 활시위를 느슨하게 만든다. 인간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의 뿌리에 있는 것은 자유의 선한 사용이다….’ 쉽게 말해 질병은 인간 본성에 속하는 자유를 구속하며, 따라서 건강히 장수하는 비결에 관한 연구는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는 목적을 지닌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어 인간 개념을 완성한 사람이다. 후페란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인간 개념의 완성자 칸트에게 자신의 책을 보내면서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한 기술이 인간의 본성인 자유의 실현이라고 말한 것은 기술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게 해 준다. 바로 그것은 ‘인간성의 실현’이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의 욕구를 길잡이로 삼고서만 움직인다. 후페란트의 연구처럼 포스트 휴먼 역시 인간의 본성적 욕구인 질병 없이 편하게 오래, 또는 영원히 살려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려 한다면 포스트 휴먼은 인간성의 완성, 휴머니즘의 완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다른 한편에서 포스트 휴먼은 전통적인 인간상을 깨트려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의식이나 성격은 한 인간만의 고유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미래학자 도미니크 바뱅은 말한다. “의식은 컴퓨터에서 다운받고, 신체는 인간·돼지·로봇의 여러 부품을 섞어 조립하고, 신경계통 임플란트를 장착하고, 성격을 바꿔 주는 약품을 먹고…. 포스트 휴먼 시대에는 ‘나’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모든 내용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스트 휴먼은 더이상 우리가 알던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포스트 휴먼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성의 구현이며, 우리가 인간이라고 알고 있던 초상화를 깨트려 버린다는 점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것이 포스트 휴먼이다. 어떤 의미에서 칸트의 인간(人間)과 니체의 초인(超人)의 결합이 포스트 휴먼인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모더니즘 대(對) 포스트모더니즘, 휴머니즘 대 반(反)휴머니즘이 포스트 휴먼 안에서 종합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니까 포스트 휴먼 속에는 인간과 기계만 종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몇 세기 전부터 시험해 보았던 상반된 철학적 입장이 종합되고 있다. 이런 종합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앞으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제가 떠오를 것이다. 과거의 인간 본성과 초인이라는 미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어떻게 진행하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제 말이다.
  • ‘원티드’ 박효주, 죽음 위기에도 방송복귀 하려는 전효성에 ‘착잡 심정’

    ‘원티드’ 박효주, 죽음 위기에도 방송복귀 하려는 전효성에 ‘착잡 심정’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의 박효주가 전효성을 향한 착잡함과 함께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극의 전개를 촘촘하게 채웠다. 지난 ‘원티드’ 11회에서는 연우신(박효주 분)이 몸도 다 추스르지 않은 채 방송에 복귀하려는 박보연(전효성 분)을 걱정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연우신은 박보연의 앞날과 안전을 우려해 방송복귀를 만류했지만, 강경한 그녀의 뜻에 더는 어찌하지 못했다. 이어 연우신은 “방송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박보연의 말에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며 그녀를 향한 염려를 거두지 못했다. 그 동안 연우신은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박보연과 정혜인(김아중 분)에게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그녀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같은 엄마로서 아이의 납치로 상처받은 정혜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해하려 하는 연우신의 모습과 자신과 같이 ‘정혜인의 원티드’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받은 박보연에 대한 걱정을 미루어 보아 이러한 감정이 동질감에서 비롯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했다. 이처럼 동료의 아픔과 위기에 공감하는 연우신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극 후반을 달려가며 서서히 범인에 대한 정체와 그 배후가 밝혀지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는 국내 최고 여배우가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생방송 리얼리티 쇼에서 범인의 요구대로 미션을 수행하는 고군분투기를 그리는 드라마로 SBS에서 매주 수, 목 밤 10시에 방송된다. 사진=SBS ‘원티드’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녀에게 장미가 아니라 벼룩을 바친 시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녀에게 장미가 아니라 벼룩을 바친 시인

    시인이라면 잊지 못할 연애시 한편은 남기고 죽어야 한다. 내가 읽은 가장 재미난 연애시는 존 던(1572~1631)의 ‘벼룩’(The Flea)이다. 이 벼룩을 좀 보아요,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이 날 거절함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보세요. 이놈은 먼저 나를 빨고, 이제 그대를 빨아, 이 벼룩 속에 우리의 두 피가 섞였지요 이것은 죄도 아니고, 수치도 아니며, 처녀성의 상실도 아님을 당신도 알고 있지요. 그런데 이놈은 구혼하기도 전에 즐기며 두 사람의 피가 하나로 된 것을 실컷 먹어 배가 불렀지요, 그러니 이는, 아 정말이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그 이상이네요 오 멈추세요, 한 마리 벼룩 속의 세 목숨 해치지 마세요, 이 속에서 우리는 거의 결혼, 아니 그 이상을 했지요. 이 벼룩은 당신과 나,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결혼 침대이며, 혼례식을 올린 성스러운 곳이요; 비록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고, 당신도 내켜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만났고, 이 흑옥(黑玉)의 살아 있는 벽 속에 숨어 있지요 비록 당신은 나를 죽이는 습관이 있지만 거기에 자살을 추가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셋을 죽여 세 가지 죄를 짓는 신성모독을… 하하-.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벼룩’을 이용하다니! 남들은 징그러워 오래 쳐다보지 않는 벌레,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벼룩을 보며 남자와 여자의 피의 ‘혼인’을 떠올린 참신한 발상에 나는 탄복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대상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 상상력이다. 하긴 사랑도 전염병이니, 벼룩과 연애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곤 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를 만난 적은 없으나, 존 던은 무척 귀여운 남자였을 것 같다. 벼룩을 보며 웃을 여자가 있을까. ‘벼룩’을 읽으며 웃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이렇게 재치 넘치는 언어로 구애하는 남자한테 안 넘어갈 여자가 있을까. ‘여자를 웃게 하면 그녀의 침대에 반쯤은 걸터앉은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피가 하나로 된 것을 실컷 먹어 배가 불렀지요’(pampere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는 임신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두 번째 연을, 무심코 벼룩을 때려 죽이려는 애인을 말리는 구어체 감탄사인 “Oh stay,”(오 멈추세요)로 시작해 극적인 긴장감을 높였다. ‘흑옥(黑玉)의 살아 있는 벽’은 벼룩의 검은 몸체를 말한다. ‘벼룩’처럼 재기발랄한 연애시를 쓴 사람이 훗날 세인트폴 대성당의 사제가 되었으니, 존 던의 파란만장한 삶 자체가 한편의 시대극이다. 던은 1573년 런던의 유서 깊은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던이 세 살 때 죽었고, 던의 어머니는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의 조카딸이었다.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되었으나 반역죄에 몰려 처형당한 가톨릭 성인이다. 수장령을 선포한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 기간에 가톨릭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던의 생이 순탄할 리 없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3년 공부했지만 가톨릭 신앙 때문에 영국 성공회의 충성맹서를 하지 않아 학위를 따지 못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공부만 하고 학위를 따지 않았다. 1593년 가톨릭 신부를 도와주다 체포된 동생 헨리가 감옥에서 죽자, 던은 가톨릭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된다. 상속받은 상당한 유산을 여자와 여행으로 탕진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던은 당대 정계의 실력자인 토머스 에저튼 경의 비서관이 되었다. 에저튼의 후원 아래 착실한 경력을 쌓던 던은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에저튼의 조카딸인 열여섯살의 앤과 사랑에 빠졌다. 1601년 앤과의 비밀결혼이 발각되어 던은 해고되고 결혼식의 증인이었던 신부님과 함께 투옥되었다 곧 풀려났다. 앤의 사촌이 젊은 부부를 위해 시골에 피난처를 제공했고 부유한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혼축시를 써 주거나 법률 자문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앤은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12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6명만 살아남았다. 사십 세가 되도록 가난을 면치 못하던 던은 1615년에 성직에 들어갔다. 제임스 1세에 의해 성공회 사제로 임명되며, 드디어 오랜 돈 걱정이 끝났는데 1617년에 부인 앤이 열병을 앓다 사망한다. 던은 ‘가장 잘 선택되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여인, 가장 귀엽고 순결한’ 아내를 기리는 비석을 세워 앤의 죽음을 애도했고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하나님 밑에서 그의 유해와 그녀의 유해가 합쳐져 새로이 결혼할 것을 서약하노라’는 비명(碑銘)이 말해주듯 두 사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짝이었다.
  • [열린세상] 북한 주민들이여, 무엇을 열망하십니까/손기웅 통일연구원 부원장

    [열린세상] 북한 주민들이여, 무엇을 열망하십니까/손기웅 통일연구원 부원장

    1989년 10월 7일은 동독 건국 40주년이었다. 당시 사회주의 제1의 경제 강국이었던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은 동독 체제에 대한, 자신의 통치력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주려고 동베를린의 알렉산더광장에서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폴란드의 야루젤스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북한의 연형묵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주요 정치지도자를 옆에 배석시킨 가운데 동독 인민군의 사열과 분열, 27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가공할 만한 단·중·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무기체계를 행진시켰다. 호네커는 당시 동구에 몰아친 개혁과 개방의 바람에도 변화 없이 자신만의 길을 흔들림이 없이 갈 것이라고, 자신이 통치하는 동독 체제가 얼마나 확고한가를 특히 곁에 선 고르바초프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밤에는 같은 장소에서 수십만을 동원해 횃불 군중시위를 펼쳤다. 자신의 앞으로 일렁이며 행진하는 횃불 바다 앞에서 그는 손을 내뻗으며 외쳤다. 동독 체제가 수백 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정확히 한 달 이틀 후인 1989년 11월 9일 동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호네커의 앞을 행진했고 환호했던 바로 그 인민군과 시민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제는 서독으로의 행진을 시작했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 화려했던 무기들도 부질없었다. 비밀경찰 슈타지를 통한 억압과 통제, 강력한 정치사상 교육에도 불구하고 호네커는 동독 주민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열망됐는가를 결코 알지 못했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평화적인 합의 통일이었다는 것이다. 흡수 통일이 아니다. 동독 주민들이 그들의 체제가 아니라 서독에 더 많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장벽을 허물었다. 베를린 장벽이 열린 후 4개월이 지난 1990년 3월 18일 동독 역사 40년 만에 최초로, 전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자유로운 총선거’에서 동독 주민의 다수는 서독 체제로의 조속한 통일 염원을 표출했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를 부르짖었던 그들이 자유선거를 통해 전 세계에 자유민주체제로의 민족자결권을 행사한 바로 이날이 ‘독일민족’의 통일 날이었다. 이 선거를 통해 구성된 동독의 마지막 정부가 서독과 7개월간의 협상을 진행해 마침내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법적으로 하나가 됐다. 동독 주민의, 동독 주민에 의한, 동독 주민을 위한 평화적 합의 통일이 독일 통일의 과정이었다. 우리의 통일도 남북한의 주민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두 개의 정치 체제가 각각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추진하면서 국민의 행복, 국리민복을 위해 건설적인 경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 복지와 인권이 더 많이 실현되는 체제로 뜻을 모으고, 민족자결권의 행사를 통해 평화적 합의에 의해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거나 무력에 의한 통일은 결단코 배제돼야 한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27년 전의 호네커와 똑같은 형식으로 가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낮에는 류인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옆에 세우고 화려한 열병식을, 밤에는 역시 거대한 횃불 군중시위를 펼쳤다. 자신이 얼마나 확고하게 북한을 틀어쥐고 있는지, 주민들이 얼마나 자신을 떠받들고 있는지, 북한 체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주고자 했다. 또한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 복지와 인권을 외면한 채 권력 유지에 매달리고, 이를 위한 군사적 모험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김정은을 북한 주민들이 과연 신과 같은 수령으로 충심으로 사랑하고 있을까. 김정은 앞을 행진한, 충성을 고함지른 북한 인민군, 북한 주민들은 과연 무엇을 열망하고 있을까.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도발이 지속되고 있다. 그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의 강구와 함께 북한 주민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통일정책도 동시에 추진할 시점이다.
  • “헐버트, 중국에 한글 도입 설파… 中도 긍정 검토”

    “헐버트, 중국에 한글 도입 설파… 中도 긍정 검토”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가 1910년대 중국 수뇌부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증언이 담긴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26일 서울 종로구 YMCA에서 열린 헐버트 내한 130주년 기념 글 모음집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참좋은친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다. 저자인 김동진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장은 이날 헐버트의 이 같은 제안이 담긴 미국 신문을 공개하며 “헐버트가 살고 있던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에서 발행되는 ‘리퍼블리컨’지에 그가 중국에 3만개의 한자 대신 한글을 바탕으로 한 38개의 소리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중국인 식자층도 이 제안을 지지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며 “기사 스크랩 과정에서 신문 발행 일자가 잘려 나가 언제 발행됐는지 알 수 없지만 기사 속 중화민국 건국에 대한 문맥으로 보아 1913년쯤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헐버트가 당시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상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중국 고위 인사와 교류하면서 한글 사용을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헐버트는 한글이 이 땅에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한글을 중국에 수출하려는 한글 세계화의 첫걸음을 뗐다”고 평했다. 김 회장은 헐버트 손자에게서 이 신문 기사를 입수했으며, 관련 내용은 저서에도 자세히 언급돼 있다. 헐버트의 한글 예찬은 저서 곳곳에서 눈에 띈다. ‘나는 한글을 200개가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 봤지만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관성에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글이야말로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문자 중 하나다.’(335쪽) 헐버트는 ‘한국사’ 등 단행본 7권, 소설 4권, 희곡 4편, 자서전 3권, 20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겼다. 이번에 출간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엔 단행본을 제외한 20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 중 헐버트가 1886년 7월부터 1897년 10월까지 쓴 57편의 논문 및 기고문이 수록돼 있다. 김 회장은 “200여편의 논문과 기고문을 20년에 걸쳐 수집했다”며 “나머지 15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도 곧 번역해 출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헐버트는 1886년 7월 4일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영어교사로 조선에 첫발을 디뎠다. 고종의 대미특사와 헤이그특사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한글운동가, 어문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등 헐버트를 일컫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1891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고, 훈민정음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일제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쫓겨난 1907년까지 AP통신 등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1950년 외국인 첫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에 이어 2014년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걸스피릿’ 러블리즈 케이,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 싱크로율 100% 무대

    ‘걸스피릿’ 러블리즈 케이,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 싱크로율 100% 무대

    러블리즈 케이가 ‘걸스피릿’에서 보아로 변신한다. 26일 방송되는 종합편성채널 ‘걸스피릿’에서는 첫 번째 경연의 주제로 가수의 꿈을 지켜준 자신만의 응원가인 파이트송 부르기 경연이 펼쳐진다. 최근 진행된 ‘걸스피릿’ 녹화에서 케이는 “보아 선배님 덕분에 가수의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자신의 롤 모델인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를 선곡했다. 케이는 선배 가수인 인피니트 성종의 지원사격을 받았다. 성종은 케이의 연습실을 찾아 후배의 도전을 응원했다. 경연 당시 케이는 완벽한 가창력 뿐 아니라 당시 보아의 의상, 소품까지 준비해 싱크로율 100%의 무대를 선보였다는 후문이다. 케이이 무대를 확인할 수 있는 ‘걸스피릿’은 26일 화요일 밤 10시 50분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美 선교사 헐버트 “중국, 한글 공식 문자 지정 긍정 검토했다”

    美 선교사 헐버트 “중국, 한글 공식 문자 지정 긍정 검토했다”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가 1910년대 중국 수뇌부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증언이 담긴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26일 서울 종로구 YMCA에서 열린 헐버트 내한 130주년 기념 글 모음집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참좋은친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다.  저자인 김동진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장은 이날 헐버트의 이 같은 제안이 담긴 미국 신문을 공개하며 “헐버트 박사가 살고 있던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에서 발행되는 ‘리퍼블리컨’지에 그가 중국에 3만개의 한자 대신 한글을 바탕으로 한 38개의 소리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중국인 식자층도 이 제안을 지지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며 “기사 스크랩 과정에서 신문 발행 일자가 잘려 나가 언제 발행됐는지 알 수 없지만 기사 속 중화민국 건국에 대한 문맥으로 보아 1913년쯤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헐버트가 당시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상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중국 고위 인사와 교류하면서 한글 사용을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헐버트는 한글이 이 땅에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한글을 중국에 수출하려는 한글 세계화의 첫걸음을 뗐다”고 평했다. 김 회장은 헐버트 손자에게서 이 신문 기사를 입수했으며, 관련 내용은 저서에도 자세히 언급돼 있다. 헐버트 박사의 한글 예찬은 저서 곳곳에서 눈에 띈다. ‘나는 한글을 200개가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 봤지만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관성에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글이야말로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문자 중 하나다.’(335쪽)  헐버트 박사는 ‘한국사’ 등 단행본 7권, 소설 4권, 희곡 4편, 자서전 3권, 20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겼다. 이번에 출간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엔 단행본을 제외한 20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 중 헐버트가 1886년 7월부터 1897년 10월까지 쓴 57편의 논문 및 기고문이 수록돼 있다. 김 회장은 “200여편의 논문과 기고문을 20년에 걸쳐 수집했다”며 “나머지 150여편의 논문 및 기고문도 곧 번역해 출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헐버트는 1886년 7월 4일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영어교사로 조선에 첫발을 디뎠다. 고종의 대미특사와 헤이그특사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한글운동가, 어문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등 헐버트를 일컫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1891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고, 훈민정음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일제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쫓겨난 1907년까지 AP통신 등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1950년 외국인 첫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에 이어 2014년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여기는 남미] 고속도로 무단횡단 하다 ‘체포’된 펭귄

    [여기는 남미] 고속도로 무단횡단 하다 ‘체포’된 펭귄

    어디선가 나타난 펭귄 때문에 페루의 한 고속도로가 한동안 마비됐다. 아장아장 곧잘 걷는 펭귄은 겁도 없어 고속도로를 횡단하려 했다. 그런 펭귄을 살리기 위해 경찰은 한때 고속도로 차량통행을 전면 중단시켜야 했다. 남미 페루 안카시 지방 산타푸에르토 인근의 도로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펭귄이 나타난 곳은 북부 팬아메리칸 고속도로 448km 지점. 기름을 뒤집어쓴 팽귄이 갓길 쪽에 불쑥 나타났다. 처음엔 그저 시선을 끄는 '특이한 동물'일 뿐이었지만 펭귄이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자동차들이 펭귄를 피해가려고 핸들을 꺾거나 속도를 줄이면서 대형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누군가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 펭귄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뒤뚱거리면서도 빠르게 걷는 펭귄을 잡긴 쉽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고속도로의 차량통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관계자는 "양방향 통행을 중단시켜 한때 고속도로가 마비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펭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달리더라"라며 "경찰 여럿이 달려들었지만 한동안 펭귄을 잡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겁없이 고속도로를 건너려 한 펭귄은 어디에서 왔을까? 경찰은 "기름을 뒤집어쓴 채 나타난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왔을 것 같지만 아직까지 경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근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페루에서 펭귄이 도시에 나타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페루 북부 누에보 침보테에서도 펭귄이 도심 나들이에 나섰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에도 펭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페루 경찰 제공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데스크 시각] 증강현실, 가상현실, 리얼리티/이순녀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증강현실, 가상현실, 리얼리티/이순녀 문화부장

    믿기 힘든 현실과 마주할 때 쓰는 ‘영화 같다’거나 ‘드라마 같다’는 표현은 이제 용도 폐기돼야 할 듯싶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뉴스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현실들이 사회 곳곳에서 은밀히 벌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설마 저렇기야 하겠어?”, “재미를 위해서 실제보다 부풀렸겠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가령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과 다음의 대화를 비교해 보자. “나는 최고 스펙을 지향한다. 너희도 그러길 바라고, 그래야만 하고. 왜냐? 우매한 대중은 거기서 이미 마음이 약해진다. 간단해요. 어느 대학을 나온 의사에게 내 건강을 맡길 것이냐, 어떤 변호사한테 내 재산과 권리를 맡길 것이냐.” “우매한 대중이란 거 자체가 틀린 전제 아니에요? 그건 대중을 무시하거나 대중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니들 아침 안 먹었지? 뇌가 허해서 헛소리들을 하는구나.” 지난해 방영됐던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나오는 장면이다. 굴지의 대형 로펌 대표인 한정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가르치며 나누는 대화다. 대대로 누려온 최상위 1%의 삶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에게 대중은 ‘힘과 전략으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다만, 그는 이런 말이 ‘돌 맞을 만한 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입 밖에 내지 말고 조용히 실천하라’고 당부한다. 이 장면을 볼 때만도 해도 그저 웃어넘겼다. 세태 풍자 드라마의 성격상 과장됐겠거니 했다. 그러다 올 초 영화 ‘내부자들’에서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 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란 그 유명한 대사를 듣고는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렇게 막가도 되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더 큰 반전이었다.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우하는 고위 관료가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기자들 앞에서 ‘신분제 공고화’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에 말문이 콱 막혔다.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즉 진경준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회장 간 석연치 않은 거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 등 기시감 충만한 사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면서는 아예 체념했다. 검사와 스폰서 기업 간 유착 관계, 정치인과 기업인이 연루된 성 스캔들, 1%끼리 서로 챙겨 주는 그들만의 리그. 그래,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 온 신물나는 장면들은 허구의 스토리가 아니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구나. 스크린과 TV를 통해 ‘풍문으로 들’었던 ‘내부자들’의 ‘부당거래’는 그렇게 눈앞의 현실로 쓱 다가왔다. 소위 사회지도층, 엘리트를 자임하는 이들의 비뚤어진 인식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목도하는 와중에 또 다른 한편에선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실세계에 펼쳐 놓은 가상의 캐릭터를 잡으러 수많은 사람들이 속초로, 울산으로, 부산으로 뛰어갔다. 덩달아 가상현실(VR)에 대한 관심도 수직 상승했다.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세상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일까. 누구 말마따나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coral@seoul.co.kr
  • 프랑스 니스테러 진실 은폐 논란 가열···올랑드 “법으로 진실 밝힐 것”

    프랑스 니스테러 진실 은폐 논란 가열···올랑드 “법으로 진실 밝힐 것”

    지난 14일(현지시간) 어린이 10명을 포함해 84명의 목숨을 앗아간 프랑스 니스 테러 발생 이후 프랑스 정부가 테러 진실 은폐 논란에 휩싸였다. 25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내무부가 현지 경찰에 테러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진실과 투명성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법으로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진실 규명을 약속했다고 현지 라디오 프랑스 앵포가 보도했다. 은폐 논란의 중심에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등 잇따른 대형 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이 서 있다. 테러범 무함마드 라후에유 부렐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바스티유의 날’)인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밤 니스 해변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 축제 인파 속으로 흰색 19t 트럭을 몰고 가 84명을 살해하고 300여명을 다치게 했다. 니스 지자체 경찰 감시 카메라 부서 책임자인 산드라 베르탱은 전날 현지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슈와 인터뷰에서 테러 당일인 지난 14일 “경찰 배치에 관한 보고서를 수정하라는 압력을 내무부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베르탱은 “내무부에서 직원을 보내 현장 감시 카메라에서는 안 보이는 국립 경찰 위치를 적어넣으라는 지시를 하면서 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사실무근’이라면서 베르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국립 경찰 보고서에서는 테러범 부렐이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피하려고 산책로로 트럭을 몰고 갔다고 적혀 있지만, 베르탱은 현장 폐쇄회로(CC)TV에서는 경찰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이날 현지 BFM TV와 인터뷰에서 “이번 논란은 정부를 흔들기 위한 순전히 정치적인 공세”라면서 “공세를 중단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자크 위르보아스 법무장관도 “베르탱은 이번 사건을 언론이 아니라 검찰로 가져갔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니스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우파 야당인 공화당 지지자인 베르탱이 과거 소셜미디어에서 집권 사회당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지난 21일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테러범 부렐이 트럭을 몰고 산책로 입구로 돌진할 당시 국립 경찰은 없고 지자체 경찰차 한 대만이 배치돼 있었다면서 테러 예방이 불충분했다고 지적했다. 애초 이 기사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던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이후 산책로 입구에 “국립 경찰이 없었다”고 시인하면서 경무장한 지자체 경찰만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테러범을 사살한 영웅적인 국립 경찰이 산책로에 있었다”면서 중무장한 국립 경찰이 사건 현장에는 있었다고 말했다. 내무부는 논란이 커지자 테러 당시 경찰 배치가 적절했는지 국립 경찰 총감사관(IGPN)에 ‘기술적 평가’를 진행하도록 맡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평화집회 본보기 보여 준 성주 군민 상경 시위

    경북 성주 군민들의 상경 시위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성주 군민 2000여명은 그제 52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서울로 와 서울역 광장에서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 군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군민들은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머리에는 사드 배치 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평화 집회를 이어 갔다. 외부 세력 개입을 차단하고 평화 시위를 유지하고자 군민으로 구성된 질서유지 요원 250명이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지난 15일 황교안 총리 일행의 주민 설명회 자리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에 비추어 폭력 시위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군민들은 자신을 외부인과 구분하기 위해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을 달았다. 집회에 참석한 성주 군민보다도 많은 3700여명을 동원한 경찰이 무색할 정도였다. 우연히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은 집회가 열리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은 성주 군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집회를 앞다퉈 보도했다.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주의 주장을 얼마든지 전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된 시위였다고 할 만하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러나 우리는 폭력 시위 문화에 익숙해 있다. 성주 군민들의 평화 집회가 돋보인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총리 방문 때 욕설과 고성, 몸싸움이 난무하고, 물병과 달걀이 날아다닌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폭력 시위도 성숙한 시위문화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집회였다. 성주 군민들은 상경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 계속해서 촛불 집회를 이어 가고 있다. 성주 군민들의 평화 집회 지속 여부는 이제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가 군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진정으로 다가갈 때 군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드 배치 반대 집회가 그동안 보아 왔던 시위의 반복이 돼서는 안 된다. 주한 미군기지 평택 이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등에서 보았던 불순 외부 세력의 폭력 시위가 성주에서 재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정부는 왜 사드 배치가 필요한지, 전자파가 어떻게 인체에 무해한지, 어떤 보상을 할 것인지 등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설득해야 한다. 참외 농사를 짓는 선한 농부를 폭력 전과자로 만드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 [열린세상] 대학교육, 뭣이 중헌디/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학교육, 뭣이 중헌디/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8%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간다는 뜻이다. 자발적인 진학 포기자도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대학 진학 추세는 당분간 돌이키기 어려울 전망이고, 지식기반사회에서 높은 대학 진학률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학 졸업장이 더이상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남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무얼 배우고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머지않아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한다. 앞으로 한 사람의 인생은 대학 졸업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평생학습시대라고 하지만 대학 시절이야말로 공부에만 전념해도 되는 마지막 시기이고,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 대한 안목과 삶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은 바뀔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세계는 융합과 혁신이 성장과 발전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지식과 기술의 수명은 짧아지고, 산업은 시시각각 변한다. 글로벌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 내는 것이 생존과 번영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첫 번째 과제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할까. 학생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경험할 때 성공할 수 있을까.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껴온 몇 가지를 제언한다. 우선 문제 찾기의 중요함이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주어진’ 문제를 빨리, 정확히 푸는 연습에 매달렸다. 덕분에 호기심은 억눌렸고 상상력은 빈곤해졌다. 하지만 바야흐로 창조적 발상과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문제를 발견하고 본질에 접근하는 능력이 없다면 국가든 개인이든 늘 뒤따라가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최근 주목받는 ‘디자인 사고’의 첫 단계가 관찰과 공감을 통한 문제의 발견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대학 교육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에만 초점을 두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빠른 추격자가 아닌 창조적 선도자를 길러 내려면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내용과 방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에서 팀워크와 공동체 정신을 배워야 한다. 개인 창의성보다 팀 창의성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015 다보스포럼은 글로벌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어젠다로 양극화 해소와 협력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협업에 익숙하지 않고 공동체 의식이 취약하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을 경험해 온 탓이다. 지금의 대학 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평가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대평가 제도에서 학생들은 A를 받으려면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제 학생들이 함께 일하는 법과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경험하자. 전공을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교류함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마인드와 진취적 도전정신을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오히려 한반도 밖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청년들은 글로벌 이슈에 둔감하고, 글로벌 도전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언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관심의 문제이고 정신의 문제다. 학생들이 과감하게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고 넓은 세상을 경험토록 대학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 이제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할 때다.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장(場)에서 학생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경험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장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대학 사회에 존경을 보내는 이유는 대학이 변화를 직시하고 성찰하며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이 이를 보여 줄 최고의 시험대는 교육이 될 것이다.
  • [서울포토] ‘미니언과 함께 놀아보아요~’

    [서울포토] ‘미니언과 함께 놀아보아요~’

    구글코리아가 21일 오전 서울 청계천로 시그니쳐타워 앞 광장에서 슈퍼배드 미니언러쉬의 최고 인기 캐릭터 ‘미니언’과 함께 ‘구글플레이 오락실’ 오픈을 알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사설] 현대차·현대중 파업, 국민 차가운 시선 못 느끼나

    [사설] 현대차·현대중 파업, 국민 차가운 시선 못 느끼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19일부터 동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2일까지 부분적으로 조업을 중단하면서 적지 않은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노동조합연대 소속 조선사들도 연대 파업에 들어갔거나 돌입할 예정이다. 울산과 경남 거제 일원이 파업의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국내 굴지의 제조업체인 이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9600만원, 현대중은 7800만원이다. 대표적인 고임금 직장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에 기본급 7.2% 인상과 성과급 지급, 사외이사 추천권 등을, 현대중 노조는 기본급 5.09% 인상 및 우수 조합원 100명에 대한 해외연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조선 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과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 생산 시스템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생산 체제로 바뀌기 시작하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는 생산도 하기 전 발표 며칠 만에 수십만대가 예약 판매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자율주행차 개발 및 시판도 눈앞에 있다. 앞으로 15년 안에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이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업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동안 수조원에 이르는 혈세를 지원받아 연명해 온 처지다. 앞으로도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국고 보조를 받아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에 ‘임금을 올려 달라’, ‘해외연수를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파업까지 벌이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의 생떼와 다름이 없다. 지금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조도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시기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으라고 했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내 밥그릇만 챙기다간 생계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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