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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울릉천국 아트센터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울릉천국 아트센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울릉천국이 너희를 쉬게 할지니. “나는 누구인가 /내 이름 석자 그대로인가/...(중략).../왜 나를 이세상에 던져 오갈 바를 모르게 하나” <이장희, 나는 누구인가 中에서 . 2013> 이장희(72)는 인생의 구도자가 분명하다. 그가 사는 울릉도 북면 현포리는 멀어도 너무 먼 곳에 있다. 강릉이나, 울진, 포항까지 단잠 깨워 새벽녘에 도착하면 다시 배로 바꾸어 타고도 울렁울렁 3시간 30분, 내려서는 또 다시 한 시간 반을 달려야만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멀미약마저 포기한 듯, 뒤집어진 속을 내려놓을 땅이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어디든 천국이라 부를 수 있을 지경이다. 집 떠난 지 9시간 만에 드디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쉴 수 있는 푸른 초장이 불현듯 등장한다.천국은 분명 울릉도에 있다. 단, 그대는 반드시 첫 차에 몸을 싣고, 페리를 타고, 마을버스에 오르는 3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천국을 맛 볼 수 없으리라.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표현대로 여행은 ‘시퀀스(Sequence)'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오직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울릉에 온 자만이 울릉천국에 다다를 수(?) 있다. 여하튼 이 곳은 손 떨리게 쉴 수 있는 울릉도 송곳봉(430m) 아래 울릉천국 아트센터다.울릉천국 아트센터가 있는 울릉도는 확실히 여느 섬과는 느낌이 다르다. 항구에서 출발 4시간 후에 갑자기 설악산 중턱에 배가 닿는 느낌이다. 그냥 설악산 흔들바위 등산길 가파른 오르막 중간지점에 항구가 있는 듯, 내려야 한다. 모든 길은 구불구불 산 위로 가파르게 나 있고, 평지라고 해 봐야 나리 분지, 도동항이나 저동항 주변이 전부다. 그러하니 입도(入島)하는 관광객들이나 울릉주민들은 도동항, 혹은 저동항에 소북이 다 모여 있어 체감하는 인구밀도는 오히려 웬만한 대도시 도심보다 더 높다. 한 마디로 울릉도는 섬이라기보다는 산 중턱부터 바다에 솟아 있는 산골 마을에 가깝다.#주변은 울릉의 신비 그대로, 일주도로로 편하게 울릉도는 면적이 72.86 km², 동서로 10㎞ 남북 9.5Km로 펼쳐진 화산섬으로 크기로는 우리나라에서 9번째이며 거주인구는 약 1만 명 정도다. 바로 울릉도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섬의 북부인 평리와 천부리 마을이고 이 곳에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있다. 불과 올 2월까지만 해도 저동항에서 울릉천국 아트센터까지는 한 시간하고도 30분을 더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 3월 말부터 울릉해안 일주도로 미개설 구간이었던 울릉읍 저동리와 울릉천국 아트센터 근처인 북면 천부리 간 4.75㎞ 구간이 연결되어 지금은 울릉천국까지는 도동항에서 이제는 30분이면 갈 수 있다.울릉천국 아트센터는 1970년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등 특유의 음색과 직설적인 가사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쎄시봉 출신의 가수 이장희(72) 씨가 2004년에 터를 잡은 울릉군 북면 현포 평리마을에 위치해 있다. 그는 자신의 농장 부지 일부(연면적 1652m², 약 500평)를 제공하고, 경상북도와 울릉군은 7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1150m², 150석 규모의 공연장과 카페테리아, 전시관 등이 있는 상설공연장을 지난 2016년에 완공하였고 2018년 5월 8일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개관하였다. 현재는 이 곳에서 시즌별로 매주 한 두 번씩 밴드 ‘동방의 빛’ 멤버들인 강근식, 조원익 씨와 더불어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관객이 많든, 적든 그냥 그들은 함께 살며 60년 우정을 음악과 함께 한다.울릉군 역시 울릉천국 아트센터에 대한 관심은 각별해서 낙석관리 및 입도 관광객 안내, 주변 환경 정화 등과 같은 군청 차원의 지원은 관람객의 눈에도 금세 드러날 만큼 두드러진다. 이 곳에서 만난 김철환(54) 울릉군 시설관리소장은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준 보석과 같은 분이셔서 울릉도 토박이로서 늘 감사드린다’라며 엄지척을 올린다. 그러면서 공연을 앞둔 센터 주변 시설 관리에 신경을 쓰는 진심이 느껴질 정도다. 또한 울릉천국 아트센터 바로 앞 도로 오른편으로는 나리분지, 천부해중전망대를 비롯하여, 삼선암, 관음도, 석포 전망대 등 그동안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천혜의 울릉도 비경들도 올 3월에 연결된 울릉 일주도로를 이용해 일반인들도 이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울릉천국 아트센터 바로 앞 일주도로에서 바라본 일출과 일몰 광경은 세상 풍파 다 겪은 고희(古稀)의 음악인들이 이 곳에 사는 이유를 짐작케 할만큼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름 한 번 멋지다. 울릉천국! <울릉천국 아트센터에 대한 여행 10 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울릉도에 간다면 필히. 아트센터와 더불어 펼쳐진 울릉도 북부 해안 일주도로는 풍광이 압권이다. 50대 이상, 산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방문 권유. 울릉도는 바다에 떠 있는 산이다. 2. 누구와 함께? -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 관람을. 3. 가는 방법은?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평리2길 207-4 - 마을버스로는 평리에서 내려 10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평리침례교회 바로 윗집. 4. 감탄하는 점은? - 울릉천국 아트센터 뒷산인 송곳산, 앞으로 펼쳐진 울릉 북부 해안 절경.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최근에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 6. 주변에 꼭 봐야할 것은? - 울릉천국 아트센터 공연장, 정원, 해안 일주도로의 삼선암, 관음도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와 식당은? - 홍합과 따개비 칼국수, 부지깽이와 참고비, 삼나물, 더덕, 명이 울릉도 나물 비빔밥, 오징어 내장탕, 호박엿 / 도동항 - 99식당의 따개비밥, 보배식당의 홍합밥, 산나물식당의 비빔밥, 향우촌의 울릉약소/ 저동항 - 삼정본가식당, 싱싱횟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ulleung.go.kr/tour/page.htm?mnu_siteid=tour2&mnu_uid=251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예림원, 공암, 삼선암, 관음도, 나리분지, 천부해중전망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이 곳은 이장희 씨의 집이다.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칠순의 음악인들의 모습을 보아도 다가서지 마시고 가벼운 목례 정도로만. 특히 이장희 씨와 친구들이 생활하는 숙소에는 절대 접근 금지. 맘 편히 '칠순의 어르신들'이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따뜻한 배려를.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열정의 아이콘’ 유노윤호 15년 만에 솔로 앨범

    ‘열정의 아이콘’ 유노윤호 15년 만에 솔로 앨범

    동방신기 유노윤호(본명 정윤호·33)가 데뷔 15년 만에 첫 솔로앨범을 발매했다. 2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보이그룹 리더이자 최고의 한류스타에서 자신만의 ‘진짜 색깔’을 내는 아티스트로 한 발 더 도약한다. 유노윤호가 12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첫 번째 미니앨범 ‘트루 컬러스’를 공개했다. 유노윤호는 “다시 그때의 그 느낌이 난다”며 2003년 말 동방신기로 무대에 처음 올랐던 때를 떠올렸다. 이어 “첫 시작이라는 설렘은 참 좋은 것 같다. 좋은 느낌의 떨림 같다”고 포부를 다졌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팔로우’ 등 모두 6곡이 수록됐다. 삶의 여러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고 트랙마다 매칭컬러를 배치해 다채로운 감정을 시각화했다. 보아와의 하모니가 매력적인 올드스쿨 시카고 하우스풍 댄스곡 ‘스윙’은 레드, 가로등 켜진 야간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가사의 ‘불러’는 오렌지, 왈츠 리듬으로 진행되는 동화적 분위기의 ‘체인지 더 월드’는 화이트로 그려냈다. 타이틀곡 ‘팔로우’는 주문을 외우는 듯한 인트로 내레이션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팝댄스곡이다. 동방신기의 히트곡 ‘주문-미로틱’을 만든 유영진과 토마스 트롤센이 협업했다. 여기에 유노윤호 특유의 절도 있는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어벤져스’ 속 군단의 동작을 안무에 녹였다. 유노윤호는 “전곡 프로듀서 느낌으로 참여를 했다. 스토리라인이 다 이어져 있으니 ‘이 뒤에 뭐가 더 있겠구나‘ 상상하면서 들어 달라”고 앨범을 소개했다. 이어 “그룹에서는 힘을 주고 어둡고 강렬한 댄스를 했다면, 솔로에서는 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느낌을 연기로 승화시켜려 했다”고 말했다. 유노윤호는 15년간 쉬지 않고 활동하면서도 구설수에 오르는 일 없이 바른 이미지를 쌓아 왔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한류스타다. 동방신기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일본 10개 지역에서 펼친 33회 공연으로 68만여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국내에선 예능 등에 출연하며 ‘열정의 아이콘’ 이미지를 얻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펼쳐낼 그의 또 다른 모습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생강으로 정치를 생각하다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생강으로 정치를 생각하다

    실낱같은 목숨을 “차, 생강, 막걸리 따위로 겨우 부지해 간다”(茶薑紅麯與相依)고 제주 유배인 김정희는 말했다. 그는 이 가운데 특히 생강을 적극적으로 먹었던 것 같다. 가장 좋은 반찬으로 “두부, 오이, 생강, 나물”(大烹豆腐瓜薑菜)을 꼽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김정희는 비교적 장수를 했다. 송시열도 제주도에 유배를 와서 생강 농사를 지었다. 1772년에 세워진 유허비에 보면 “하루는 지팡이를 들고 뜰을 둘러보고 빈 땅에 손수 생강을 심었다”고 했다. 이제 곧 사약을 먹고 죽게 될 사람이 왜 생강을 심었는지 모르겠다. 포항에서 유배살이할 때도 “뜰 앞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어 놓고 밭 가운데 생강을 심었다”고 했다. 이처럼 생강을 중시했다. 물론 그 덕분인지 그도 장수를 했다. 생강이 몸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효능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귀중하고 소중한 식재료이자 약재임이 분명하다. 필자도 생강차는 물론 꿀에 잰 생강절편을 좋아한다. 특히 막걸리를 사 가면 안주로 어머니가 만들어 내놓으시는 생강김치야말로 최고의 별미다. 생강 맛의 기묘한 탄산음료도 있다지만 아직 마셔 보진 못했다. 해로움보다 이로움이 많은 것이 생강이다. 그런데 김정희나 송시열이 생강을 좋아한 것이 비단 건강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화합할 줄 알며,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라”고 했던 이율곡의 충고처럼 자기 향과 맛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음식들을 만나면 과감히 화합해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 그런 ‘생강 같은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들과 과감히 화합할 줄 아는 삶. 바로 그것이 ‘생강 같은 삶’이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희는 성공했다. 그의 유배생활을 필자는 한마디로 “추사는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고 정리한다. 그는 불행한 유배인이었지만 유배지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제자로 삼아 격려하고 가르쳐 준 덕분에 제주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을 살면서 자기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문제는 자기도 행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한 경우다. 최근의 우리 정치권이 그렇다. 여야가 정면충돌하면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다. 자기 당에 대한 고집과 막말로 화합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전혀 행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화합할 줄 알며, 자기 색을 잃지 않는 생강이 되라”던 충고가 새삼스럽다. 우스개일지 모르지만 정치권 양반들은 생강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국회 식당의 요리사가 문제다. 생강의 인문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국회 파행을 지켜보면서 절묘한 생강 요리로 국회의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어야 했다. 어쩌면 그런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 국회는 생강 요리 하나로 회복되기에는 이미 살벌한 투쟁장으로 변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생강의 힘은 조화의 힘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는 것만이 조화가 아니다. 대종교의 논리를 빌리자면 조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조의 원리를 어기는 것이고, 파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조화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장수하게 하는 묘수다. 과감히 조화하지 못하면 제주 유배인 최익현의 지적처럼 “이욕(利欲)이 넘쳐 나고, 의리가 어두워져 밤낮으로 괴이한 데로만 치달리고, 예의와 염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돼 결국 모두가 파국을 맞게 된다. 모쪼록 생강을 통해 정치를 생각해 보자.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나 혼자 산다’ 유노윤호 보아, 단 둘이 떠난 여행 “친구 그 이상”

    ‘나 혼자 산다’ 유노윤호 보아, 단 둘이 떠난 여행 “친구 그 이상”

    가수 보아와 그룹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절친 케미가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지난 7일 밤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유노윤호가 출연, 동갑내기 친구 보아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이날 유노윤호는 보아에게 요리 선물을 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직접 재료 손질을 하는 정성을 쏟고, 운전 중 급정거를 하자 보아를 보호하려고 본능적으로 팔을 뻗는 ‘매너 손’을 하는 등 다정한 매력을 선보인 것은 물론 동심을 찾는 콘셉트로 놀이공원, 사파리 등의 여행 코스를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유노윤호는 열정 가득하지만, 실수 연발 요리 실력으로 허당기 넘치는 모습도 보여줘 웃음을 자아냈으며, 방송 말미에는 보아에게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은 것에 이어 진심이 가득 담긴 손편지까지 선물해 감동을 선사했다. 이에 보아는 연신 긍정적이고 해맑은 미소로 호응하며 “오늘 정말 즐거웠다. 유노윤호는 언제 만나도 어제 본 것 같은 편안함이 있는 친구다. 이란성 쌍둥이가 있다면 우리 같을 것이다”라고 우정을 과시하는 소감을 밝혀 훈훈함을 더했다. 유노윤호는 ‘나 혼자 산다’ 스튜디오에서도 보아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고백했다. 그는 “제가 정말 힘든 순간이 인생에서 딱 두번 있었다. 그때 무작정 걸으면서 혼자 생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보아가 어떻게 알고 나타났다. 전화로 ‘집으로 돌아와’라고 해주면서 저를 잡아줬다. 어떤 면에서 동성인 남자 친구들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친구”라고 강조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나 혼자 산다’ 유노윤호, 보아와 캠핑장 데이트 “10년 만의 고백”

    ‘나 혼자 산다’ 유노윤호, 보아와 캠핑장 데이트 “10년 만의 고백”

    가수 유노윤호가 보아를 위한 캠핑 요리를 선보인다. 7일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절친 유노윤호와 보아가 사파리 데이트에 이어 캠핑장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에게 전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캠핑장에 도착한 유노윤호는 손수 썰어온 야채들을 꺼내놓으며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줄 것을 호언장담, 보아에게 앉아서 쉬고 있으라며 본격 요리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정작 요리에 필요한 기본 조미료들을 준비해오지 않는가 하면 끓지 않는 물에 온갖 재료들을 일제히 투하하는 무근본 요리법으로 보아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어 요리를 맛본 유노윤호는 마법의 가루의 힘을 빌려 소생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웃음과 공감을 산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보아의 감시를 피해 조용히 요리를 들고 캠핑카 안으로 들어간다. 이내 마법의 가루를 꺼내려는 찰나 보아가 그를 불러 과연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지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노윤호는 보아에게 10년 동안 전하지 못한 마음을 털어놓는 진솔한 시간을 갖는다. 그는 보아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고백함은 물론 진심이 담긴 손편지까지 선물하며 두 절친 사이의 훈훈함을 더할 예정이다. 한편 보아만을 위한 풀코스 하루를 준비한 유노윤호의 모습은 7일 금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여 능안골 고분군서 백제 귀족층 무덤 양식 변화상 확인

    부여 능안골 고분군서 백제 귀족층 무덤 양식 변화상 확인

    백제 사비기(538∼660) 귀족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부여 능안골 고분군(사적 제420호)에서 무덤 조성 방식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여군과 백제고도문화재단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75-10 일원 능안골 고분군에서 지난 4월 재개한 발굴조사를 통해 석실묘(石室墓·돌방무덤) 5기와 수혈(竪穴·구덩이) 1기를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1·3호 무덤은 횡혈식 석실묘(굴식 돌방무덤)이고, 5호 무덤은 횡구식 석실묘(앞트임식 돌방무덤)다. 심상육 백제고도문화재단 책임조사원은 “층위상 3호 무덤이 1호 무덤보다 위에, 5호 무덤이 3호 무덤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1호, 3호, 5호 무덤 순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무덤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인 현실(玄室)로 통하는 길인 연도(羨道)의 경우 1호는 길고, 3호는 중앙에 짧게 냈고, 5호는 없다”면서 시간에 따라 연도가 짧아지는 양상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1호 무덤은 연도 길이가 2m이고 3호 무덤은 50㎝로 짧은 편이다. 5호 무덤은 연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도에서 현실로 들어가는 문인 현문(玄門)은 1호에 없고, 3호에만 있다. 봉분은 1·3호 무덤에서 일부가 나타났다. 1호 무덤은 현실 천장석 상부에 약 80㎝ 두께의 봉토가 일부 남아 있는데 풍화암반토와 깬돌을 섞어 단단하게 다졌다. 3호 무덤의 봉토는 두께가 최고 86㎝로 모래 함량이 높은 흙을 사용했다. 봉분 형태는 지름이 7.7~10.1m인 타원형으로 확인됐다. 한편 재단은 능안골 고분군 동편부터 능안골 고분군을 포암한 청마산성 남성벽 사면부 일대에서 백제 고분 분포 양상도를 조사했다. 재단 측은 “현재까지 백제 고분 100여 기가 새롭게 확인됐다”며 “능안골 고분군 일대에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백제 고분의 분포 밀도와 범위가 넓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능안골 고분군은 1995~1996년 긴급 발굴조사 당시 은제관모장식과 금동제이식(금귀고리) 등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2017년부터는 시굴·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마음은 바래지 않았다… 서른줄에도

    마음은 바래지 않았다… 서른줄에도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덕후 여자 셋 자금·행동력 갖춰 ‘빠순질’ 하기 더 좋아 보고싶어 하는 덕질, 남 눈치볼 거 있나 작가도 수년째 ‘빠순이’로 살고 있다고여자 중학교에 다닐 무렵, 해마다 특정한 날이면 흰 우비를 입고 다니는 언니들이 있었다. 매년 3월 14일이면,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 중 하나와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두 손 가득 하얀 박하사탕을 받았다. 친구들이 “언니, 얘도 오늘 생일이에요!” 하면 언니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을 하고 “정말?” 하며 살갑게 반가워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이런 사소한 우연에 꺄르륵 웃을 수 있는 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언니들은 나이 들어 무엇이 되었을까. 더러 이탈자도 생겨나겠지만 대부분은 ‘나이 든 빠순이(극렬 여성 팬)’가 된다. ‘본격 아이돌 소설’을 표방하는 ‘우주를 담아줘’는 아이돌 덕후인 삼십대 여자 셋, 디디와 과 제나의 사랑과 우정 얘기다. 고3 겨울, 같은 반이었으면 친해졌을지 알 수 없을 그들은 팬사이트에서 오로지 좋아하는 오빠들을 매개로 친해졌다. 디디는 좋아하던 멤버의 이니셜에서, ‘크리스티나’였던 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닥터 크리스티나 에서, 제나는 ‘언제나mvp’라는 닉네임에서 각각 따왔다.마음만 바래지 않는다면 서른줄의 ‘빠순질’은 더 용이하다. 돈과 시간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티켓팅에 실패하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티켓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췄고 국내 공연에 실패하면 해외 공연에 갈 수 있는 행동력까지 갖춘 삼십대 빠순이니까. 누가 인생은 삼십대부터라고 말하던데, 나는 빠순질 역시 삼십대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야 좀 할 만해졌다고나 할까.”(14~15쪽) 소녀들은 어른이 되어 번역가가 되고, 학교 선생님이 되고, 회사원이 되었지만 좋아하는 ‘오빠들’ 아래서 흥성거리는 마음은 그 시절 그대로다. 콘서트 티켓을 거래하러 만난 여자가 같은 브랜드의 초콜릿을 들고 나온 것은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니겠지만 이들에게는 ‘찌릿’ 하는 동류의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디디는 인터넷 연예 기사를 훑다가 ‘일본 유명 아이돌, 이마무라 유야 중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된다. 유야는 디디가 사랑했던 옛날 오빠, 구 아이돌이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세상을 떠난 유야에게는 자살 의혹이 인다. 급히 휴가계를 내고 일본행 비행기를 타는 디디. 이런 그를 별말 없이 다독여주는 과 제나다. 사랑하는 아이돌을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디디의 결정이 새삼스럽지 않다.소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보다 늘 우위에 있는 감정은 ‘보고 싶다’였다. 항상 보고 싶었다. 보러 가는 길에도, 보고 있을 때에도, 더이상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44~45쪽) 30대가 되어서도 계속되는 덕질의 실체는 저 몇 줄에 요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질은 보아서 즐거운 것, 즐겁기 위해 보고, 보고서 즐거운 오만 가지 일들 중 하나인 것이다. 남이 무용하다, 지적할 일은 하등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은어들, 가령 뜻밖에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덕후가 됨을 비유하는 말인 ‘덕통사고’, 특정 연예인의 팬임에도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지칭하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덕후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기 힘들다는 뜻의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 탄다) 등은 오늘도 평화로운 그들의 나라를 은유한다. 2012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의 첫 장편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 “오직 즐겁기 위해 썼다”고 했는데, 종이 위를 신나게 내달리는 문장에서 그 말을 오롯이 실감할 수 있다. 작가는 소개말에 이렇게도 썼다. “7년간 소설가로, 2n년간 빠순이로 살아가는 중.”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北외무성, 6·12성명 1주년 담화…“美, 셈법 바꾸고 우리 요구에 화답하라”

    北외무성, 6·12성명 1주년 담화…“美, 셈법 바꾸고 우리 요구에 화답하라”

    기자 문답 아닌 대변인 성명으로 수위 높여공동성명 이행 의지 강조…美 태도변화 압박“우리 인내심 한계… 공동성명 귀중히 여겨”역사적인 6·12 북미공동성명 1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에 새 해법을 갖고 하루빨리 협상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면서도 “우리의 인내심엔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4일 발표한 담화에서 “역사적인 6·12 조미(북미)공동성명 발표 1돌을 맞으며 미국은 마땅히 지난 1년간을 돌이켜보아야 하며 더 늦기 전에 어느 것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으로 되는가를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대변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발언을 언급하며 “이제는 미국이 우리의 공명정대한 입장에 어떻게 화답해 나오는가에 따라 6·12 공동성명이 살아남는가 아니면 빈 종이 장으로 남아있는가 하는 문제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으며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그러면서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미국은 지금의 셈법을 바꾸고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화답해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또 “대화 일방인 미국이 자기의 의무를 저버리고 한사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여 달린다면 6·12 공동성명의 운명은 기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새 해법 대신 현재의 선 비핵화를 고집할 경우 이미 천명한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연합뉴스가 분석했다.이어 “조미(북미) 사이의 첫 수뇌회담에서 두 나라 수뇌분들이 직접 서명하신 6·12 공동성명을 귀중히 여기고 앞으로도 그 이행에 충실하려는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입장 발표가 공동성명 1주년에 즈음했다는 점에서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이 아닌 대변인 담화라는 비교적 수위높은 형식을 취했다. 북한이 공동성명 1주년이 아직 1주일 이상이나 남은 시점에서 사실상 1주년 기념 논평을 내놓았다는 점도 이례적으로, 그만큼 미국의 태도 변화에 압박하려는 속내가 읽힌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북미 간 대화재개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은 이래 여러 차례 다양한 형태의 입장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전환을 압박해왔다.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24일에도 중앙통신 기자문답 형식을 빌려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이상 조미(북미)대화는 언제 가도 재개될 수 없으며 핵 문제 해결 전망도 그만큼 요원해질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암자의 일상이 시들하고 무료해지면 나는 이웃 마을로 나들이를 간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오래 살다 보면 시들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건너편 풍경으로 몸과 시선을 이동해야 한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가끔 찾는다. 김남주 시인이 살았던 집의 마루에 앉아 질박한 촉감을 느끼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상념에 젖는다. 또 고정희 시인의 서재에서 묵은 책들의 묵향을 맡기도 한다. 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대흥사와 10여분 거리에 있다. 터를 바꾸니 마음도 새롭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말소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다.근자에는 강진 월출산 아래의 백운동 원림을 찾는다. 자연친화적인 정원이 있는 별서를 원림이라고 한다. 백운동 원림은 최근 명승지로 지정됐다. 벽에 새겨진 불화가 많은 무위사와 수려한 산 아래 펼쳐진 차밭이 원림과 닿아 있다. 이 원림은 조선 후기 문인 이담로(1627~1701)가 월출산 옥판봉 아래 조성한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은둔의 원림은 1812년 월출산 소풍을 마치고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다산 정약용 선생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산은 연하의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흥조인 일지암 초의 선사에게 주변 풍경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백운동 12경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 원림은 정선대라고 이름 지은 정자에서 바라본 옥판봉과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만든 유상곡수가 일품이다. 검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은 이 별서정원은 은근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기품이 있다. 답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풍경과 분위기에 끌린다고 소감을 말한다. 모란이 활짝 핀 날 원림이 명승으로 지정된 기념식을 마치고 여러 사람과 차담을 나누었다. 모두들 원림의 풍경에 감탄하고 칭송하면서 이후 몇 가지 걱정과 바람을 말했다. 혹여 관광의 바람에 휩쓸려 원림을 만든 본래 의미가 퇴색하고 탈색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내비쳤다. 한 해 이곳을 방문하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자칫 서비스 차원에서 주변에 여러 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옆의 사람들도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선비정신이 깃든 처소의 아름다움은 생략과 절제에 있다. 오래 가는 아름다움은 노골적이지 않고 숨기는 멋과 맛에 있다. 여유와 소요의 가풍이 깃든 곳일수록 최소한의 모습만을 드러내야 한다. 다행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백운동 원림을 지키고 있는 후손 이승현 선생은 생각이 깊으신 분인데, 본인 스스로 원림의 정신과 기품을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마침 그분과 통화할 일이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점차 유명해지고 있는 원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저는 여느 관광지처럼 훌쩍 점찍고 가는 곳으로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넉넉한 시간 속에서 원림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고 갔으면 합니다.” 넉넉한 시간 동안 머물렀으면 한다는 생각에 믿음이 듬뿍 갔다. 내가 사는 일지암도 초의 선사와 차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일지암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의를 하면 나는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먼저 최소 30분 이상 머물고, 오자마자 촬영부터 하지 않으며, 스마트폰 검색을 하지 않고, 빠르게 감탄하지 마시라. 그리고 눈과 귀를 무심의 경지에서 고요히 열어 놓으시라. 그리하면 늘 보던 하늘과 나무와 물소리가 새삼스럽게 보이고 들릴 것이다. 최근에 둘레길이 유행하고 문화 답사가 흥행하는 일은 매우 좋은 조짐이다. 그러나 먼저 번잡한 세속의 습관을 내려놓고, 쫓기는 발걸음을 멈출 때 비로소 보고 들었던 것들이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한 구절이 문화 답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짧은 시간 허둥지둥 스치듯 사진을 찍으며, 그저 ‘보는’ 풍경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피사체일 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 시대 어느 문인의 말뜻을 새긴다면 풍경은 마침내 ‘보일 것’이다. ‘보는’ 풍경은 그저 똑같은 사진으로 남을 것이고, ‘보이는’ 풍경은 저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다를 것이다.
  • 보아, 4일 자작곡 ‘피드백’ 발표… 유노윤호 콩트 화제

    보아, 4일 자작곡 ‘피드백’ 발표… 유노윤호 콩트 화제

    가수 보아(33)가 새 싱글 ‘피드백’(Feedback)을 발표한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보아는 4일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새 싱글 ‘피드백’을 공개한다. 특히 이번 싱글은 보아의 자작곡으로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한층 깊어진 음악적 역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피드백’은 펑키한 기타 연주와 시원한 신스 사운드가 어우러진 레트로 댄스팝 곡으로, 가사에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받고 싶어하는 여자의 직설적인 고백을 담았다. 보아는 작사, 작곡, 편곡뿐 아니라 프로듀싱에도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음악 색깔을 녹여냈다. 개성 있는 보이스와 래핑으로 사랑받는 래퍼 넉살이 피처링과 작사에 참여했다. 보아는 ‘피드백’ 발표에 앞서 여러 SNS 공식 계정 등에 티저 이미지와 콩트 영상을 올리며 홍보에 나섰다. ‘SM 오피스’ 콩트 영상에는 유노윤호가 출연해 웃음을 자아내는 등 신곡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아코이하트, 베이비모니터로 우리아이 24시간 안전하게

    아코이하트, 베이비모니터로 우리아이 24시간 안전하게

    실시간 베이비케어 스마트 디바이스 아코이하트(AKOi Heart)가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될 스마트디바이스쇼 KITAS 2019에서 선보여진다. 전시회에서는 소비자가 30% 저렴한 아코이하트를 만나볼 수 있다. 최근 핵가구가 보편적인 가족 구성으로 자리잡으며 아이 돌봄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부들이 많은데 24시간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신생아케어의 경우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고 해도 하루일과가 끝난 뒤 저녁시간부터 새벽까지는 부부가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육아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코이하트는 가장 중요한 아이의 호흡, 기저귀 교체시기, 뒤집기를 감지하고 알려주기 때문에 아이 돌봄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IoT(사물인터넷)에 기반한 실시간 베이비모니터는 아이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AKOi Heart APP을 통해 알림을 보내며 ▲호흡이 10초 이상 감지되지 않을 경우 ▲몸이 120도 이상 뒤집히는 경우 ▲소변 활동이 감지되는 경우에 즉각적으로 알림이 울리게 된다. 또 국립전파연구원의 KC인증을 받았고 약 2시간의 USB 충전으로 일주일 간 사용이 가능하다. 8.5mm 두께의 500원 동전크기로 슬림해 아이의 옷이나 기저귀에 간편하게 부착할 수 있다. 한편 2012년 1회를 시작으로 2019년 9회를 맞이하는 국내 유일 스마트 디바이스 전시회 KITAS는 IT기기와 연동 가능한 액세서리와 주변기기 전문 전시회다. 지난해 전시회에는 155개사 229부스가 참가하여 전시기간 3일 동안 총 26,027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이 중 국내바이어는 8,739명, 해외바이어는 86명이 방문해 국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기업들의 판로 개척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보아, 50일 전 1타 차로 내준 우승 그대로

    김보아, 50일 전 1타 차로 내준 우승 그대로

    50일 전 보그너 여자오픈 때 90cm 파 퍼트 놓쳐 연장 승부 실패이번엔 김지영 마지막홀 2.5m짜리 버디 퍼트 놓친 덕에 1타 차 우승불과 1m도 안되는 파 퍼트를 놓쳐 연장의 기회를 날린 김보아(23)가 50일 만에 통쾌한 역전 우승으로 아쉬움을 풀었다. 김보아는 2일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 제주 컨트리클럽(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칸타타 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최종합계 14언더파 202타로 정상에 올랐다. 이틀간 선두를 달렸던 김지영(23)을 1타차로 따돌린 김보아는 지난해 보그너 MBN 여자오픈 우승 이후 1년 만에 통산 2승 고지에 올랐다. 상금 1억 2000만원을 받아 시즌 상금랭킹도 6위(2억 3315만원)로 올라섰다. 내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출전권도 챙겨 미국무대 진출 기회도 잡았다. 김보아는 “시즌 목표는 2승, 다음 우승은 한국여자오픈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보아는 지난 4월 14일 센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최종일 18번홀에서 90㎝짜리 파퍼트가 홀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조정민(23)에게 1타차 우승을 내줬던 아픔을 겪었다.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준우승까지 했던 대회다. 우승 욕심이 나서 앞서나갔던 것 같다”면서 “그때 배운 게 있어서 이번 대회 때는 내가 할 일만 해놓고 기다리자고 마음 먹었다”고 설명했다.공동선두 김지영(23)과 이소미(20)에 2타 뒤진 7언더파 공동 3위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김보아는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골라내며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6번홀까지 4개의 버디를 잡아내 공동 선두로 치고 나간 김보아는 김지영과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김지영이 단독선두와 공동선두, 다시 단독선두를 오르내리는 동안 김보아는 파를 지키며 기회를 엿봤다. 12번홀(파4) 다섯 번째 버디로 공동선두를 되찾은 김보아는 14번홀(파3) 4m짜리 버디를 떨궈 마침내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박빙의 1타 차 리드를 이어가던 김보아는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버디는 놓쳤지만 김지영도 2.5m 버디 퍼트가 홀 바로 앞에서 멈춰선 덕에 1타차 우승을 거뒀다. 공이 반 바퀴만 더 굴렀어도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김지영은 결국 3타를 줄이는 데 그쳐 13언더파 203타,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지난해 54홀 최소타 신기록(23언더파 193타)으로 우승했던 조정민(25)은 2타를 줄여 5위(10언더파 206타)로 ‘디펜딩 챔피언’의 체면을 세웠다. 시즌 3승에 도전한 상금랭킹 1위 최혜진(20)은 3타를 잃어 공동 26위(3언더파 213타)로 밀려났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선 박성진 국장이 말하는 ‘서원의 가치’“우리 한국이 서원(書院)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중국이 많이 아쉬워해요. 서원의 시발지인 중국이 유학 내지 성리학의 종주국을 마치 빼앗긴 것처럼 못내 애석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고, 성리학적 전통이 한국화되어 정착한 독특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서원 9곳이 한꺼번에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되게 된 것은 우리가 서구문화를 좇으며 소홀히 한 그 가치를 서구인들이 알아보며 깜짝 놀라 합니다. 서원이 변질되면서 훼철이라는 역사의 철퇴를 맞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혼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입니다.”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서 열리는 총회서 확정朴사무국장, 9년간 무보수로 서원 세계화에 앞장덕수궁 수문장교대식 첫 고증 재연한 문화전문가 지난달14일 한국의 서원이 이코모스에 의해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서원 등재를 위해 9년 동안 ‘무보수’로 일한 이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소문 끝에 서원에 세계화에 앞장선 박성진(60)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28일 그를 찾아가면서 혹시 갓 쓰고 도포를 입는 사람이 아닐까 했는데 캐주얼 차림이었다. 박 사무국장은 1994년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낸 우리 문화 전문가다.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맞느냐’고 확인하니 그는 수줍은 듯 “먹고 살만합니다. 그 대신, 비상근으로 일하지요.”라며 살짝 웃는다.이코모스 심사평가서에는 대한민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 모두를 등재(Inscribe)할 것을 권고했다. 등재되는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안향)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퇴계 이황)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회재 이언적)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한훤당 김굉필)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일두 정여창)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하서 김인후)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고운 최치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사계 김장생)이다. 이들 서원은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동안 이코모스의 권고가 거부된 적이 없어 이들 서원은 등재를 예약한 상태다. 이로서 한국은 모두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서원 유네스코 등재에 中 종주국 뺏긴듯 아쉬워해서구인들, 500년 전통 사립 엘리트 교육 명맥 경탄우린 서원 가치 폄훼… 세계인 탁월한 보편 가치 인정” - 실사왔던 이코모스, 반응이 어땠나. “작은 나라 한국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엘리트 양성 사립학교 시설이 있을 수 있었나 하고 놀라워합니다. 조선시대에 서원이 900여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에게 끊이지 않고 약 500년간 제향을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도 경탄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어요. 전국에 서원과 사당이 그처럼 많은 것에도 놀라워하고 있고요. 결국 수많은 외침 속에 민족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 학자나 순절한 충신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전쟁이 나도 지역 유림이 위패를 생명처럼 모시고 피란 갔다가 온 일화들이 많습니다. 근 현대화에 밀려 우리가 서원의 가치를 폄훼했지만 세계인들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왜 9곳?… 국가사적 기준에 역사성·완전성 고려조광조·율곡 이이·남명 조식·황희 정승 서원 빠져‘우린 왜 뺏느냐’ 항의도 …다른 선양 기회있을 것”- 왜 하필 이 9곳 서원인가. “현재 남한에만 672개의 서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서원이 다시 복원된 것이지요. 훼철을 피한 서원 23곳 가운데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 국가사적이면서 역사성과 완전성 등을 고려해 선택된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피폭 여부도 고려되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을 제향하는 산청의 덕천서원이나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파주 자운서원, 조광조 선생을 기리는 용인 심곡서원,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상주 옥동서원이 포함됐더라면 하는 바람이 많습니다. 또 이들 서원으로부터 ‘우리도 같이 신청하지 않고 왜 뺏느냐’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전체가 인정받은 것이니만큼 다음에 다른 방안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있는 정몽주를 제향하는 숭양서원, 율곡을 기리는 황해도 소현서원도 같이 남북이 힘을 합쳐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서원에 대원군에 의해 적폐로 지목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설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향교가 공공 교육기관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 파폐(罷弊)되면서 그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를 대신한 것이 서원입니다. 사액서원이 되어야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원받습니다. 국왕으로부터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죠.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서원당 10~20명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 무료였어요. 그런 만큼 재정이 취약했지요. 사액서원이 되지 않으면 서원 설립자 혹은 그 문중에서 운영비를 모두 조달하였습니다. 서원이 그 설립 정신을 잃고, 당쟁이나 붕당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식 전수와 인격 도야 기관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샀기에 대원군 시절에도 서원이 살아남았습니다.” “서원, 교육 공간 넘어 천인합일 추구한 수양처영남은 산자락… 전라·충청은 들판 시작점 위치서원, 영남에 많은 이유?… 벼슬길 막힌 학풍 탓호남엔 유학보다 의리 실천한 ‘충절 서원’ 많아”- 서원, 지역별 차이가 있나. “서원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한 수양처입니다. 건축물 배치는 전당후묘(前堂後廟·앞에는 교육강당, 뒤에는 사당 설치), 전저후고(前低後高·앞이 낮고 뒤가 높음) 질서를 따르지만 서원마다 독창성도 있지요.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지만 지역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도 서원이 대체로 산자락에 있다면 전락도·충청도 서원은 대개 산자락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합니다. 영남쪽 서원이 많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것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낸 서원을 선정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원이 영남 쪽에 많은 것은 조선시대의 지역별 학풍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남 쪽 학자들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거나 빨리 그만두고 낙향해 후진 양성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관직 진출이 막힌 남인들이 벼슬을 못하자 신분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차선책으로 유학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지요. 영남 양반에겐 현실적 이해가 걸린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반면 호남엔 유학을 연구하는 서원(77곳)보다 이를 실천하는 사우(108곳)가 더 많았습니다. 의리의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충절인의 비율이 높은 것이 호남 쪽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남은 도학서원, 호남은 충절서원이 많다고들 합니다.” - 서원이 다른 나라에도 있나. “서원은 우리나라와 중국 뿐만 아니라 유사한 유산으로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었습니다. 유학 문화권에 있는 것이지요. 중국은 관료시험 등과 같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통일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과목도 정부 정책에 따라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서원에 가보면 과거시험 합격자의 명단을 새긴 제명비(題名碑)가 좍 늘어서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서원에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성리학을 학습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선 중국과는 달리 오직 지역 단위의 선현에 제향을 지냈습니다. 일본의 경우 설립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커리큘럼도 서원마다 달랐습니다. 의학과 산학도 가르쳤습니다. 이게 사숙(私塾)입니다. 일본 근대화에 큰 힘을 보탰지만 한국의 서원은 지방 지식인의 구심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주희가 중건한 중국 장시성 여산(廬山)의 백록동서원은 서원 자체가 아니라 세계자연유산의 일부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원은 청나라 시대에 관학화되고,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 한국으로부터 오히려 배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박성진 사무국장은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재현하며 관광상품화하자는 차원에서 1995년 문화행사 전문기업인 예문관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정조대왕릉 행차,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재연, 고종 황제 즉위식 재연, 과거시험 재현 등을 해마다 하고 있다. 영주선비촌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현궁, 남산한옥마을 등을 위탁운영하기도 했다. 10년을 투자해 강원도 영월에 단종의 유적 발굴과 기념관도 만들었다. 또 거의 10년간 준비해 고향인 경북 문경에 박열 의사와 가네코후미코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2016년 철회 때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 낙망中日 서원과 차이 보강해 재도전… 1년반 심사中, 관료 교육… 과거 급제자인 ‘제명비’ 늘어서日, 의학·산학도 가르친 사숙… 근대화 힘보태韓, 서원서 과거준비 못해… 제향 전통 中과 유사”- 유네스코 등재신청을 철회한 적도 있다던데. “3년 전인 2016년 4월 이코모스의 반려 의견에 따라 자진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 등 준비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성을 도야하는 천인합일적 경관과 한국 성리학 정신의 독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의 기대가 엄청 컸는데, 크게 낙담하셨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유산구역의 재조정,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 등을 보완해서 1년 반 동안 이코모스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재도전한 끝에 따낸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생각합니다.” - 어떻게 서원과 인연을 맺었나.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성균관 기획실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유행하던 사물놀이와 농악차원보다 더 고급스러운 궁중문화를 선보이고자 문화전문법인인 ‘예문관’을 설립해 운영해왔습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냈습니다. 성균관 유교교육원 교수, 유교방송본부장도 지냈습니다.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로 일하던 2010년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님께서 ‘우리의 교육전통인 서원 전통을 너무 모른다’며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서원은 한국의 교육전통이고, 교육은 우리 민족의 지적 자산이라는 것이죠. 작년에 등재된 산사 7곳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 차원으로 추진했던 것이지요.” - 서원하면 엄숙, 근엄이 연상된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없나. “서원의 학교 기능은 제도 자체가 바뀌어서 이제는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향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원마다 소속된 유림이 1년 두 번 향사를, 한 달에 두 번 제향을 올리는 전통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교나 성균관에서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향 행사 한 번에 유림 40여명이 참여합니다. 경주의 옥산서원이나 장성의 필암서원 같은 곳은 지역 유림이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강학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교육 기능 멈춰… 향사·제향 전통 계속정좌수련, 도인술, 선비체험 등 ‘서원스테이’도청소년에 친근하게 다가설 활성화 방안 고민서원의 오늘날 의미?… 타협과 조화 더욱 요구치열한 공론, 올곧은 선비정신은 되새길 기회”- 서원 활성화 방안은.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만 안동 도산서원은 ‘서원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간 20만명이 찾고 있습니다. 주로 교사와 공무원, 학생들이 1박2일, 또는 3박4일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면서 4만명 이상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고요. 선현들이 했던 수양방식 따라 정좌 수련과 일종의 신체단련인 도인술도 합니다. 이외에도 비석에 아무 글도 새기지 않은 ‘백비’가 있는 장성의 필암서원도 2만명 이상이 찾습니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렴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는 아니지만 일부 서원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등재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 문화재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해당 지자체가 하게 돼 있습니다. 이번엔 서원이 있는 광역 및 기초 14곳이 균등하게 예산을 출연했습니다. 이 예산은 신청서 쓰고, 사례조사 하고, 연구비 지원하는데 소요됐습니다. 서원 9곳, 작년 산사 7곳 이렇게 하니 유네스코 등록이 쉽게 되는 줄 아는데 절대 그게 아닙니다. 그리고 해당 국가는 1년에 한 건 밖에 신청 못 합니다. 저 큰 서울시가 한양도성, 몽촌토성, 성균관 등을 신청하려 하지만 국내 경쟁도 뚫지 못하고 있지요. 올해 세계유산 등재 후보 목록은 총 38건이지만 이중 19건만 이코모스 등재 권고를 받았습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다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도덕은커녕 가치관마저 극도로 혼란해합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 뉴스 속에 우리 사회 구성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국민이 계층으로, 이념으로 사분오열되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타협과 조화가 더욱 요구됩니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공론을 도출한 서원을 역할을 한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론의 장, 공익을 위해 과감하게 결단하거나 자신을 희생했던 올곧은 선비 양심, 교육입국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던 서원의 역할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정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 23일 만에…자강도 일대 공개 시찰

    김정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 23일 만에…자강도 일대 공개 시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 강계시와 만포시의 경제시설을 공개 시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강계트랙터종합공장,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 장자강공작기계공장, 2·8기계종합공장 등 자강도 일대의 공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지난달 9일 단거리 미사일 발사 참관 이후 23일 만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찰한 공장들은 모두 북한의 대표적인 군수 공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강계트랙터종합공장은 한국 정부가 2016년 9월의 북한 5차 핵실험 등에 대응해 그해 12월 단체 35개, 개인 36명을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때 제재 대상에 포함된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곳을 찾아 “당의 새로운 전투적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를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또 만포시의 장자강공작기계공장을 찾아 “당에서 대단히 중시하는 공장”이라며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이바지할 최신식 기계제품들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설비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금속재료를 전혀 쓰지 않고, 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서 1945년 건설돼 ‘어머니 공장’으로 불리는 2·8기계종합공장에 들러 지방의 재활용 자재로 만든 생필품을 높이 평가한 후 “유휴 자재로 생활필수품 생산을 정성화해 가지 수를 늘리고 질을 높여야 한다”며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 취한 조치이며 중요한 정책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수공장을 찾은 것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의 군수공장들이 폐자재로 다양한 생필품을 대량생산해 판매하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군수공업 강화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김 위원장은 강계시 도심부에 있는 도내 학생들의 과학 및 예체능 과외교육기관인 ‘배움의 천리길 학생소년궁전’을 찾아 궁전의 낙후한 시설과 운영 상황에 대해 강도 높이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시찰에는 노동당 제1부부장인 조용원(조직지도부)·유진(군수공업부)·김용수,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김 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한 김창선 국무위 부장, 마원춘 국무위 설계국장 등이 수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은정 부장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고소장 위조’ 공범”

    임은정 부장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고소장 위조’ 공범”

    고발인 자격으로 경찰 출석5시간 조사 받은 뒤 귀가 “검찰이 수사 안해 고발한 것검찰이 자초한 일…반성해야”“검찰 개혁 묵살 당해”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가 31일 경찰에 출석해 5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임 부장검사는 이날 9시 25분쯤 서울 중랑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하면서 “2016년 부산지검과 대검찰청 감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달 19일 김 전 총장,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 황철규 부산고검장, 조기룡 청주지검 차장 등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전 총장 등이 2016년 당시 부산지검 소속 윤모 전 검사(현재 퇴직)가 사건처리 과정에서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별다른 징계 조치 없이 무마했다는 게 임 부장검사의 주장이다. 임 부장검사는 “검찰에서 수사하지 않아 직무유기로 고발한 것이며 경찰은 고발사건을 수사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각자 할 일을 하는 것”이라며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시기의 공교로움에 대해서는 검찰이 자초한 일이므로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전 총장까지 혐의가 있다고 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검 감찰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사표 수리는 검찰총장의 결재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김 전 총장이) 공범이고 최종 책임자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성폭력 은폐 사건부터 시작해 대검 감찰 제보시스템을 통해 자체 개혁과 감찰, 처벌을 요구했는데도 묵살당했다”며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는데도 1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떠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되어 슬프다”고 말했다. 또 “2015년 성폭력 사건과 2016년 공문서 위조사건을 무마했던 관련자들에 대해 감찰을 요구했지만 현 대검 수뇌부도 이들을 징계하지 않고 있다. 당시 사건을 덮었던 이들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현 수뇌부의 2차 직무유기도 추가 고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찰에서 2016년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겠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할 확률이 높다고 보아 재정신청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체적으로 (검찰) 조직문화의 문제가 너무 깊어 자체 개혁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검찰에 훌륭하고 생각이 바른 사람이 없지 않은 만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기초는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부산지검은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뒤인 지난해 10월에야 윤 전 검사를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 수사 결과 2015년 12월 윤 전 검사는 고소인이 낸 고소장을 분실하자 고소인이 이전에 제출한 다른 사건 고소장을 복사했다.그는 이어 실무관을 시켜 고소장 표지를 만든 뒤 상급자 도장을 임의로 찍어 위조하는 방법으로 분실 사실을 숨겼다. 윤 전 검사는 위조된 고소장을 바탕으로 사건 각하 처분을 내리고 상부 결재까지 받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소인이 문제를 제기하자 윤 전 검사는 2016년 6월 사표를 냈다. 당시 부산지검은 감찰하거나 징계위원회를 열어 고소장 분실 경위 및 고의성 여부, 위조 이유 등을 조사하지 않은 채 사직서를 수리해 의원면직 처리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당시 사표 수리가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자체 감찰을 한 부산지검에서 중징계 사안이 아니라서 사표 수리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고 대검도 타당하다고 판단해 사직서를 수리했다”고 말했다. 오후 2시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임 부장검사는 검찰의 해명에 대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했다. 감찰을 해야 할 관련자들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았다면 그게 바로 직무유기”라고 거듭 주장했다. 또 시중은행의 현직 회장인 윤 전 검사 아버지가 이번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사건 전에도 부산지검에서 연이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면서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아버지 덕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 2012년도에도 문제가 있어 감찰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다녀가고 나서 덮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생명 탄생에서 문명 진화까지… 결정적 순간을 좌우한 ‘느낌’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생명 탄생에서 문명 진화까지… 결정적 순간을 좌우한 ‘느낌’

    느낌의 진화/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임지원, 고현석 옮김/아르테/392쪽/2만 8000원좋지 않은 느낌과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은 뿌리 깊다.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특화한 존재라고들 하는데, 어째서 결정적인 순간을 좌우하는 것은 느낌과 감정일까. 느낌에 의지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나면 내가 덜 진화된 인간인가 하는 찜찜함이 남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찜찜해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책은 ‘느낌’이 어떻게 우리를 살리는지 치밀하고 꼼꼼하게 증명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현재 인간의 문명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시간 동안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느낌과 감정이다. 책을 읽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느낌과 감정이 나를 살렸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적지 않다. 누구나 있지 않은가. 쎄한 느낌,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 덕분에 위험을 피했던 경험이. 책의 원제는 ‘만물의 놀라운 순서: 생명, 느낌, 그리고 문화의 형성’이다. 3부에 걸쳐 우리가 아는 것과 실제의 ‘순서’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1부 ‘생명활동과 항상성’에서 저자는 항상성은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명체는 균형과 안정을 추구한다고 알려졌으나 저자는 “열역학적 측면에서 평형 상태란 어떤 계와 주위 사이에 열의 차이가 0인 상태, 즉 죽음의 상태”라고 잘라 말한다. 항상성은 좀더 좋은 상태를 향해 자신을 조절하는 생명의 작용이다. “환경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생명이 그 상태를 유지하고 미래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비의도적이고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잘 조율된 절차가 바로 항상성”인 것이다. 이러한 항상성이 진화의 맨 앞에 놓인다. 기존의 ‘진화’의 순서가 재조정된다. 느낌은 항상성의 대리인이다. 항상성이 부족한 경우 부정적인 느낌이 일어나고, 반대로 항상성이 적절하게 유지될 때 긍정적인 느낌이 생겨난다. 복잡한 신경계의 탄생은 순서상 그 뒤다. 2부 ‘문화적 마음의 형성’에서는 신경계와 뇌의 작용을 다루는데, 저자는 이 부분에서도 전통적인 시각을 뒤집는다. 우리의 몸과 신경계는 서로 얽히고설킨 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도를 만드는데, 이것이 곧 ‘마음’이라는 것이다. 3부 ‘문화적 마음의 작용’에서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다. 고도로 발달한, 정교한 문화 또한 느낌과 항상성의 연장선에 있다. 이것을 이해해야 현재 부딪친 문화의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생물학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 웃음 나르는 황새, 어둠 밝히는 팔색조…고찰에 안긴 예술, 솔숲에 깃든 기백

    웃음 나르는 황새, 어둠 밝히는 팔색조…고찰에 안긴 예술, 솔숲에 깃든 기백

    충남 예산군이 들썩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4월 초 개통한 예당호 출렁다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놓였습니다. 다리 길이는 402m, 얼마 전까지 호수에 설치된 국내 최장 출렁다리였던 충남 청양군의 천장호 출렁다리(207m)보다 2배쯤 길지요. 다리는 걸어서만 건널 수 있는 보행교로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 꼬박 8분이나 걸립니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그 말인즉 저수지에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를 감상하거나, 초여름 햇빛을 온몸에 스미게 하거나, LED 조명이 반짝이는 다리에서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넘이 후의 출렁다리는 특히 감탄을 자아냅니다. 다리에 색색의 조명이 들어오고 조명의 반영이 예당호를 빛으로 채웁니다. 무지갯빛 예당호 출렁다리를 걸으며 청청한 여름으로 들어갑니다.예산에 여행할 장소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 4월 6일 개통한 길이 402m, 주탑 높이 64m의 예당호 출렁다리가 그것. 예당호 출렁다리는 ‘호수에 설치된 가장 길고 높은 주탑 출렁다리’로 한국기록원(KRI)의 공식 인증을 받았다. 5월 26일 기준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예산의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예당호 출렁다리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예당호부터 짚고 넘어가자. 예당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큰 저수지다. 예당호를 보고 “여기가 바다야?”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 둘레가 40㎞, 마라톤 풀코스 거리에 육박하고 면적은 약 10㎢, 서울 여의도의 3배가 넘는다. 50여년 전에 예산과 당진을 걸친 평야에 물을 대고자 조성된 저수지는 오늘날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예당호 출렁다리 앞에 선다. 숨을 훅, 들이쉰다. 오른발을 디디니 평지와 다름없는 듯하다. 왼발을 내려놓으니 기우뚱, 몸이 왼쪽으로 쏠린다. 다시 오른발을 디디면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흔들리는 다리에 맞춰 발에 리듬이 실린다. 폴짝폴짝 뛰며 다리의 성능을 시험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현수교다. 64m 높이의 주탑에서 주케이블을 늘어뜨렸고, 주케이블에서 384개의 행어가 내리뻗었다. 발을 디디면 출렁다리는 흔들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렇다고 안전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리는 초속 35m 강풍과 진도 7의 강진에도 끄떡없고, 몸무게 70㎏의 성인 3150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리 상판 양옆은 나무 데크, 가운데는 촘촘한 철판이라 아래가 훤히 보이지 않는다. 담력이 약한 사람도 아찔함을 즐기며 건널 만하다. 다리는 예당국민관광지와 예당호 북쪽을 잇는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기도 잠시, 시선은 점점 발끝에서 먼 곳으로 나아간다. 주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예당호는 서정적인 풍경을 그린다. 나무의 초록빛 그림자가 수면에서 춤을 추고 바다 같은 저수지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예당호 북서쪽의 수상좌대, 출렁다리 북쪽 끝과 맞닿은 수변 산책로 역시 온화하기 그지없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걷는 재미만큼 바라보는 운치도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본 출렁다리는 새하얀 황새가 날개를 펴고 착지하는 듯한 모양새다. 다리는 예산의 군조(郡鳥)인 황새를 형상화했다. 주탑은 황새의 몸과 머리를, 주케이블은 날개를 나타낸단다. 조망 포인트는 문화광장 벽천수로를 마주한 채 오른쪽 나무 데크를 오르면 나타나는 언덕. 소나무 군락 사이에 새하얀 다리가 들어차 구도가 그럴싸하다. 예당호 출렁다리의 밤은 낮보다 휘황하다. 일몰 후부터 밤 10시까지 다리 상판에 색색의 LED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늘이 시퍼런 청빛으로 물드는 순간을 신호 삼아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무지갯빛 조명이 다리를 수놓는다. 사람들은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에 바쁘다. 밤의 조망 포인트는 낮과 다르다. 문화광장 전망데크에 서면 기다란 다리를 비교적 적은 왜곡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다리 조명이 예당호에 데칼코마니 무늬를 그린다. 불빛이 번져나가는 수면은 이글거리는 태양 같기도, 번쩍이는 네온사인 같기도 하다. 예당호 출렁다리가 그린 빛의 그림 위로 예당호의 밤이 깊어간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관광지의 기능에 충실하다. 물자 대신 사람들의 웃음을 나른다는 이야기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다리의 길이만큼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다리, 때 이른 더위, 자신의 일상, 대화 주제가 무엇이건 간에 다리의 끝에 닿을 때까지 옆 사람과 말을 섞는다.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예당호 풍경에 무시로 감탄한다. 무서움을 떨치려 손을 맞잡고 휴대폰으로 서로를 담는다. 예당호 출렁다리를 찾은 사람들은 다리가 세워진 이유를 증명한다. 옆 사람과 눈 맞추고 손잡을 시간, 우리에게는 이런 시간이 좀더 많이 필요하다고 일러준다. 다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은유한다. 402m의 길이만큼 우리는 좀더 가까워지리라.●간결한 아름다움… 700년 고찰 수덕사 수덕사는 예산10경 중 제1경에 해당하는 고찰이다. 백제 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었다. 고려 시대의 목조 건물 양식이 잘 드러난다고 하여 국보 제49호로 지정됐다. 대웅전은 간결함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앞면 3칸, 옆면 4칸 크기의 대웅전은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은 채 나무의 오랜 색만 남았다. 대웅전을 감상하기에 적절한 위치는 앞보다 옆이다.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기둥이 옆에서 보아야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이 빚은 간결미, 700여년 세월에 빛바랜 배흘림기둥이 시간이 깊어질수록 아름다운 것의 모습을 보여 준다. 수덕사에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흐른다. 수덕사에 딸린 비구니 스님의 도량, 환희대에 머무른 김일엽 스님, 만공 스님에게 스님이 되길 거절당한 신여성 나혜석, ‘문자 추상’(문자를 형상화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대표되는 예술세계를 구축한 고암 이응노 화백 등이다. 일주문 근처의 초가집은 수덕여관, 이 화백의 부인이 운영하며 화백이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수덕사 풍경을 화폭에 옮겼던 곳이다. 수덕여관 옆은 이응노를 비롯해 오늘날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선미술관이다.●윤봉길 의사의 기개가 어린 충의사 “대한 독립 만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상하이 점령을 축하하는 일본군 사이에서 폭탄이 터진다. 폭탄을 던진 이는 예산 청년, 윤봉길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예산군 덕산면, 지금의 충의사 일대다. 충의사는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윤 의사는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농민독본’을 편저해 농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문맹 퇴치와 농민운동에 힘썼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면 농민들의 무지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의사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지만 풍경이 근사한 곳이 있다. 윤봉길 의사의 부인인 배용순 여사의 묘소다. 충의사 홍살문을 마주한 채 왼쪽으로 걸어가면 아담한 연못을 지나 묘소로 가는 산책로가 나온다. 묘소 일대가 울울한 솔숲이라 잠시나마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의사의 일대기를 유품, 사진, 디오라마 등으로 전시한다. 의사의 유품 50여점이 가장 큰 볼거리다. 맏아들에게 남긴 편지, 4·29 의거 전 김구 선생과 정표로 맞바꾼 회중시계, 의사의 피땀이 묻은 손수건,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 복제품 등에 독립을 향한 의사의 절절한 의지가 묻어난다.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아라.” 4·29 의거 이틀 전,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남긴 유시 중 일부다. 의사의 바람대로 충의사에는 입구 양옆부터 태극기가 나부낀다. 개인의 안위 대신 나라를 구하는 것을 택한 의로운 청춘의 이야기가 예산에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비봉교차로,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분기점을 거쳐 예산수덕사IC교차로에서 ‘보령, 홍성’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평촌삼거리에서 ‘예산, 예당국민관광지’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예당관광로를 1.7㎞가량 따라가면 예당호 출렁다리다. 예당국민관광지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맛집 : 예당저수지 주변에 예산 별미인 어죽과 붕어찜 음식점이 많다. 예당저수지 동쪽의 대흥식당(335-6034)은 어죽 맛집이다. 별미식당(337-6363)은 수덕사 앞의 산채정식 전문점이다. 산채더덕정식, 산채비빔밥 등 산나물 위주의 건강한 한 상을 차린다. 신창집(338-2357)은 삽교 거리의 10여개 곱창집 가운데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돼지곱창 전문점이다. →잘 곳 : 리솜스파캐슬(330-8000)은 덕산 온천수가 공급되는 스파리조트이다. 400여개 객실에 대규모 스파 시설을 갖췄다. M펜션(331-3123)은 예당저수지에서 도보 5분 거리다. 객실 통유리 창으로 예당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30명 다 똑같아” 발리우드 스타 등용문 ‘미스 인도’에 무슨 일이

    “30명 다 똑같아” 발리우드 스타 등용문 ‘미스 인도’에 무슨 일이

    2000년 미스 월드 우승자이자 ‘발리우드’ 슈퍼스타 프리양카 초프라를 배출한 ‘미스 인도’ 선발대회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 유력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오는 6월 15일 열리는 ‘미스 인도’ 결승에 진출한 30인의 미녀를 공개하고 인기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논란은 타임스오브인디아가 신문 한 면을 할애해 ‘미스 인도’ 결승 진출자들의 사진을 게재한 후 한 트위터 이용자가 질문을 던지면서 촉발됐다. 르브라운 제임스라는 이름의 이 네티즌은 “사진에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요지는 미녀 30명의 외양이 너무 비슷해 구별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실제로 미스 인도 결승에 진출한 30명의 미녀 모두 윤기가 흐르는 어깨 길이의 머리카락에 똑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미녀 30명 모두 찍어낸 듯 똑같다"는 조롱을 쏟아내고 있다. BBC는 30일(현지시간) “미스 인도 결승 진출자들을 두고 SNS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결승 진출자 모두 개별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인도인 평균 피부색과 다소 거리가 있는 밝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왜곡된 미적 기준과 밝은 피부에 대한 집착을 증명한다”는 비평가의 말도 덧붙였다. 미스 인도 선발대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0년에는 미스 월드 우승자인 프리양카 초프라를 배출했으며 아이슈와라 라이, 수슈미타 센 등 숱한 스타가 미스 인도를 거쳤다. 사실상 ‘발리우드 등용문’인 셈이다. 수년 전부터는 미스 인도 선발대회 준비를 돕는 학원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학원 대부분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밝은 피부색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BBC는 이런 추세가 인도에 뿌리 깊게 박힌 편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밝은 피부색의 여성을 선호하는데 이는 결혼 시장은 물론 미인 대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발리우드의 유명 스타 중 피부색이 짙은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화장품이 피부미백 관련 제품인 것 역시 이런 사회 분위기를 증명한다. 피부색에 대한 집착이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우수하다는 왜곡된 생각을 강화하고, 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자 인도의 광고표준위원회(ASCI)는 지난 2014년 새로운 광고 지침을 발표했다. ASCI는 새 지침에서 피부색이 짙은 사람을 매력적이지 않거나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인도 대표 미녀를 선발하는 '미스 인도' 결승 진출자 모두 밝은 피부색을 가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피부색에 대한 인도의 집착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다양한 시대·세대 아우른 ‘또 다른 서울’ 발견

    [흥미진진 견문기] 다양한 시대·세대 아우른 ‘또 다른 서울’ 발견

    투어는 서울극장 앞에서 시작했다.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의 이형표 감독은 골목을 누비는 카메라 워크에 한의사와 양의사 간의 대립과 화해라는 중산층의 삶을 담아냈다. 황미선 해설사는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투어단을 이끌었다. 피맛길로 이동하면서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에 잠시 들렀다. 서울극장을 포함해 세 영화관이 한때 한국영화를 이끌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예나 지금이나 종로가 문화의 거리라는 생각을 했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피맛길에는 큼지막하게 쓰여진 간판들과 빽빽하게 들어선 식당들이 쇼핑센터와는 다른 복작복작한 정겨움을 줬다. 돈의동 쪽방촌은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아도 녹록지 않은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다음 목적지는 춘원당 한방박물관이었다. 한의학을 7대째 가업으로 잇는 한 한의원에서 설립한 것이다. 아주 오래된 침통, 약탕기, 한의학 서적 등이 전시돼 있었다. 신식 약재 보관창고와 약탕기를 통한 전통한의학과 현대 의학의 결합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의사 ‘김학규’가 떠올랐다. 그는 양의학을 견제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에게 2019년 현재에도 한의학이 현대의학과 공존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음을 일러주고 싶었다. 탑골공원과 락희거리, 익선동을 탐방했다. 탑골공원과 락희거리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어르신들을 위한 저렴한 식사와 문화시설을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익선동으로 이동하기 전 운현궁에도 들렀다. 한복을 입고 궁궐의 정취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전통혼례를 치르는 부부도 봤는데 운현궁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결혼했다는 설명을 듣고 그 부부를 바라보니 남다른 소회가 느껴졌다. 운현궁에서 익선동으로 이동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거리로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한옥을 개조한 카페나 식당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일제강점기 경성시대 복식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이번 투어를 통해 다양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소진 이화여대 행정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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