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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6

    ◎삼권분립 가속화… 「기득권」이 개혁 걸림돌/「국가=당」 무너져 각종제약 한꺼번에 풀려/민주적 여론 수렴할 신당 출현도 눈앞에 보수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실패는 결과적으로 소련에 정치개혁의 수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역설적으로 말하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 5년여 동안 이루지못한 것을 이들 보수세력들이 단번에 해치운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소위 사회주의 틀속에서의 「한계내의 개혁」을 고집함으로써 파생됐던 숱한 문제들 다시말해 공산당의 권한 약화,다당제도입,시장경제로의 이행,신연방조약 구상 등에 있어서의 각종 제약들이 마치 칼로 자르듯 한꺼번에 해소돼 버렸다. 특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개혁은 지난 5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게됐다.고르바초프 자신도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스탈린주의·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를 청산하고 레닌이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구현하려했던 진정한 사회주의를 찾아가자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개혁의 과정과 폭은 당·국가에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즉 고르비의 개혁은 애당초 체제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그러나 일단 시작된 개혁운동은 국민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전반에 엄청난 변화들을 가져왔다. 이러한 소위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혁명」사이의 괴리는 결과적으로 체제에 대한 회의로 발전했고 이러한 체제도전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려는 세력들의 우려가 이번 쿠데타로 나타났다고 할수있다. 향후 정치개혁은 일단 신연방조약이 체결될 경우 새연방구성에 따른 헌법개정을 하고 직접선거등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새 국가기구들을 구성하게 된다.현행 헌법은 브레즈네프가 1977년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건설이 완성된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사회조직·국가조직·민족관계등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사회주의 틀속에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방식도 완전히 바꾸어 순수한 국민대의제가 될것이다.지금까지는 당이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해 이의 도입이 불가능했다.예를들어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에서도 공산당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 몫으로 일정 의석을 할당하는 등의 편법을 썼었다. 소련공산당은 정상적인 의미의 공산당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등 국가의 모든 업무를 당이 관장하는 기형적인 「국가=당」의 기능을 가졌었다.공산당의 이런 기능이 중지됨으로써 이제는 명실상부한 3권분립시대가 열리게됐다. 국가속의 국가로 불리며 모든 국가정책의 최고결정기구 역할을 했던 당정치국·당중앙위원회및 각급 당조직이 보유한 권한들이 모두 국가기구로 이전되게 됐다. 이미 여러 공화국에서 군·KGB·경찰·공장 등에 있는 당세포 활동이 중지됐다. 정치개혁의 가장 큰 장애가 돼온 것이 바로 당의 지도적 입장조항이었다.지난해 3월 헌법 제6조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뒤에도 소련공산당은 여전히 지도적 위치를 누려왔다.공산당의 몰락으로 이제 소련에서도 민주적 여론수렴의 요체라 할수 있는 복수정당제시대가 열리게됐다.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예두아르트드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 등 개혁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신당이 창당준비중이고 루츠코이 러시아공 부통령을 주축으로 한 공산당내 개혁파들도 새 마르크스주의당을 결성하는 등 벌써 몇개의 정당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연방정부,연방정부들끼리의 관계도 지배­종속관계를 벗어나 횡적인 협조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소련의 정치개혁은 한마디로 사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고 있는 공산당의 영향력을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소련이 안고있는 정치제도상의 비정상적인 문제들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 군·소수민족 동향에 초비상/중국

    ◎1급 경계령속 연일 사상교육/각군/부주석이 자치구 선무순회/소수민족/「제2천안문사태」 우려속 조직적 움직임은 없어 소련의 대정변에 충격을 받은 이웃 공산대국 중국은 전군에 1급 비상경계령을 내린 가운데 정치사상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각종 신문과 방송들은 지난 주말부터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하자』는 국가부주석 왕진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가하면 느닷없이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의 환한 모습을 1면에 싣기도 했다. 이는 소공산체제 붕괴와 발트해 3국등 소수민족의 독립움직임과 같은 불똥이 중국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홍콩신문은 전하고 있다. 어쨌든 중국지도부는 쿠데타발생 첫날인 19일 당정치국회의를 소집,우선 인민해방군에 1급비상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이같은 조치는 사회적 혼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군인들의 발목을 붙잡아두자는 의미도 있었다.홍콩 스탠더드지는 1급비상령과 함께 모든 군인들의 절대적 안정을 확보하고 소정세변화의 의미를 교육시키며 동시에 각종 루머의 차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첫날 정치국회의에서는 ▲고르비의 실각은 찬양할 일이다 ▲중국은 8인 비상위원회를 승인해야 한다 ▲중소관계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3개항을 결의했으나 이 내용이 당하부조직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고르비의 복귀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원로들까지 참석한 정치국확대회의가 22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등소평은 사회주의의 장래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며 크게 낙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이 자리에서는 보수파 지도자 등력군이 중국의 진로에 대해 『우리로서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화평연변」(평화적방법으로 사회주의체제를 변혁시키려는 서방측의 공작)을 막아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이날 회의에서 화평연변을 막기위해 이념·문화·교육·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자본주의사상 침투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련사태가 발트해 3국의 독립문제로까지 넘어가자 중국은 여기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국가부주석 왕진은 소수민족문제로 가장 골치아픈 신강자치구를 1주일간이나 순회하면서 공산주의 선전에 열을 올렸고 덩달아 보도기관들도 왕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쨌든 중국지도부는 소련의 쿠데타 발생및 실패와 같은 쇼킹한 뉴스에도 『그것은 소련 내정문제로 소련인민들이 알아서 할일』이라며 너무 흥분하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침착한 태도를 보여줬다.하지만 쿠데타실패에 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반시민들의 경우 소련의 공산체제몰락에 축배를 든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이에 동조하는 어떤 조직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6·4천안문사태의 악몽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게 분명하다.
  • 소 공산당 붕괴에 운동권 동요/「투쟁」이론 재정립에 고심

    ◎쿠데타 찬양하다 실패로 끝나자 암담/전대협 침묵… 이념·노선 갈증심화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에서 강경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뒤 공산당이 와해되는등 대변혁이 일어나면서 재야 운동권이 큰 타격과 함께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19일 쿠데타가 발생한뒤 학생운동권의 중심인 「전대협」은 아직까지 소련사태에 대해 이렇다할 공식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학생운동권이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혁명으로 큰 충격을 받고 방향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운동권학생들은 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개혁정책은 사회주의원칙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군부가 더나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서 쿠데타세력을 찬양하고 나섰다가 쿠데타가 소련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3일만에 실패하자 크게 당황해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학생들은 특히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련사회를 70여년 이상 이끌어온 공산당이 완전히 분해되는 등 자유의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거칠게 일자 이념적인 갈등마저 일으키고 있다. 마르크·레닌주의 이념을 추종해온 민중민주(PD)계열은 소련 공산당의 몰락으로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게돼 운동이론을 수정하거나 재정립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이들과 함게 학생운동권의 축을 형성해온 민족민주(NL)계열도 북한의 노선과 통하는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PD계열에선 지난 19일 쿠데타가 발생한뒤 쿠데타를 지지하거나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내붙이는등 쿠데타를 지지하는 행동을 보였다. NL계열이 주류인 「전대협」은 그러나 공식적으로 침묵을 지키며 태도 표명을 않고 있다. 이에대해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소련사태에 대한 정세판단과 상황분석에 필요한 정보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전대협」의 공식입장 표명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천안문사태와 이란·이라크전등 큼직한 국제문제가발생할 때마다적극적인 주장을 펴온 종전의 태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이념적인 갈등이나 노선정립에 고초를 겪고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전대협」은 빠른 시일안에 소련사태에서 비롯된 이같은 충격에서 벗어나 「비핵군축」과 「남북단일의석 유엔가입」등 이른바 「조국통일운동」을 차질없이 벌여나간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태에 대해 국민과 일반학생 대다수가 자유민주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같다.또한 그들 내부에서도 이념과 노선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여 활기를 되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 전문가들은 『소련 공산당의 붕괴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운동권내에서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종주국 소 공산독재의 조종을 들으며…/각계 반응

    ◎이념문제로 사회불안 야기시키는 일 사라져야/소 현대사가 민주체제의 우월성 입증/자유의 맛본 시민들이 권위주의 거부/북한도 더 큰 사태 맞기전에 개방·개혁 나서야/정정 안정때까지 경원 신중히… 우리는 조기통일준비 서두를때 소련 공산당과 연방의 붕괴를 지켜본 각계 인사들은 자유와 인권을 맛본 사람들을 권위주의 체제로 묶어 놓으려는 시도는 역사의 물길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짓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경제운용의 지표가 없는 공산주의의 경제적 실패에 환멸을 느낀 소련국민들 사이에 서방세계등 자본주의체제의 풍요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넓어져가면서 소련공산당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같은 사태가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불러 일으켜 통일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종일씨=소련에서의 거대한 「지각변동」은 예상된 것이다.20세기초 유럽 근대사상인 합리주의의 대안으로서 「착취가 없는 완전한 인간상」을 정립하려 했던 소련식 정치발전모델이실패한 것이다. 빵과 자유를 맛본 소련사람들을 정치·경제·사회적인 면에서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인 권위를 빌리지 않고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 합리적인 사회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60년대부터 소련은 혁명적 개혁을 통해 지도자와 정치제도를 바꾸는 외에 소유욕과 공격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마저도 「창조적 개조」의 대상에 넣었으나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의식적인 통제대상」으로 할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소련에서의 「지각변동」은 가까운 중국·북한에도 조만간 「미진」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며 가까운 장래에 이같은 움직임이 소련내 보수·반동세력에 의해 멈춰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김봉석씨=보수·반동세력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린후 소련 공산당이 급격히 몰락하게 된 것은 경제적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미 공산당이 주장했던 「공동분배」는 권위주의적 통제체제아래에서 「공동빈곤」만을 초래했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어떤 이상적인 이념이나 사상도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됐다. 차제에 북한도 더이상 자멸의 길을 걷지 말고 하루속히 개방과 개혁의 역사적 장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김성태신부=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은 종교적으로 볼때 유신론의 무신론에 대한 극복으로 이해된다. 소련 정부통제에 의해 겉으로는 종교가 사라진 듯했지만 내적으로는 종교적 흐름이 계속돼온 것을 알 수 있다.그리스도교의 한 계통으로 러시아에 유입된지 1천년이나 된 동방정교회가 1세기에도 못미치는 탄압을 받았다고 사라진다는 것은 예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소련의 최고지도자인 고르바초프도 어렸을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임동승씨=비록 쿠데타라는 계기가 있었다고는 하나 70여년간 계속된 소련의 공산체제가 이처럼 쉽게 허물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특히 개별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과 함께 연방체제가 급속히 해체됨에따라 소련의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경주해온 연방중심의 협력관계는 당연히 공화국중심으로 전환돼야 하겠지만 당분간 사태진전을 관망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본다.즉 연방정부와 약속한 30억달러 경협이행문제를 당장 저버릴 수는 없겠지만 우선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 현금결제가 가능한 교역에만 치중하고 투자는 유보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소련은 지금 정치적으로 보수세력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비록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다 할지라도 상당기간동안 혼란을 겪을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고흥문씨=최근의 소련사태는 자유민주주의 이름 아래 진행된 민중혁명으로 18세기 프랑스혁명에 비견할 역사적 사건이다.이로써 공산주의는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잔여 공산국가,특히 북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여 서두르지 말고 통일준비작업에 나서야 한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소련혁명의 완성이다.여기에는 두가지장애,즉 경제문제와 소수민족문제가 있다.따라서 생필품 부족 등으로 허덕이는 소련에 대해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또 소련의 각 공화국들의 독립선포로 연방이 해체될 경우 정치불안과 유럽정세의 불안정이 예상되는데 이점에 대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협력도 절실하다. △이재운씨=소련 공산당의 몰락은 소련 자체의 사회주의 붕괴보다도 다른 공산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데 더 큰뜻이 있다. 아직까지 사회주의를 지키고 있는 중국도 소련의 영향을 받아 노선을 수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고 민주화의 길을 걸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이같은 국제정세와 뒤처진 내부경제사정 등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끝까지 견지할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유엔공동가입과 국제적 핵사찰승인,일본과의 수교문제등 방향전환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에서 북한의 변화된 모습은 이미 읽을수 있고 더욱 가속화되리라 전망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교류와 협력을 통한 대북접촉을 더욱 강화해 나가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길을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허영자씨=소련 공산당의 몰락은 공산주의 이념이 그 인도적이고 범인류적인 세계적 이상으로서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그같은 이념이 70여년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여겨지기조차 한다. 소련 공산당의 붕괴와 공산주의 이념의 붕괴는 자동적으로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 주었다.그러나 우리는 그에 자만하지 않고 자유민주체제의 약점을 보완·치유하는 등 궤도수정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자유민주주의체제 또한 「부익부·빈익빈」현상 같은 분배의 불공평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하나가 된 세계는 인류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공유하고 현재의 진통을 잘 수습,마무리하여 명실공히 인류의 진보와 번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옐친에 사실상 대권 이양/“공산당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반공 대세에 고르비 “정치적 패배”/개혁발걸음·공화국독립 가속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을 선언하고 공산당 중앙위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공산당 재산 몰수를 선언한 것은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공산당이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하는 동시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앞으로의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패배선언을 의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공산당 반대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해 공산당으로 하며금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었다.공산당이 민주적인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믿었고 이제 개혁의 대세가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이틀만에 사실상 공산당과의 결별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급격히 확산되는 공산당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거부감과,특히 이같은 기류를 등에 업은 옐친의 거센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핵심각료 인선과정에서 옐친에게 끌려다니며 그의 요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공화국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등 수모를 겪고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더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원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공산당은 이미 붕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제 소련 공산당은 더이상 집권당이 아닐 뿐 아니라 일부 동구권국가에서 처럼 불법화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소련의 실질적인 대권행사는 사실상 옐친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칼자루를 손아귀에 쥔 옐친은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해오던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급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있다.옐친의 측근인 실라예프현러시아공화국총리가 연방총리로 임명돼 정부구성위원회와 경제계획위원회를 이끌고 확고한 시장경제 신봉자들이 경제계획위원에 포함된 것은 향후 소련경제개혁의 가속화를 짐작케한다.소련의 보수회귀 가능성을 우려해 대소경제지원을 머뭇거려오던 서방세계의 태도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개혁 이외의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경제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경제보다도 당장 더욱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 문제는 연방체제의 변화이다.과거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는 발트3국 등 산하 공화국들의 독립추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저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그러나 옐친은 실세로 부상한 뒤 발트3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일부 공화국들의 탈소독립이 기정사실화단계에 들어간 것이다.이에 자극받아 2번째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공화국도 24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연방에서의 독립이 유행처럼 번질 전망이다.옐친이 이같이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이 소련전체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등 대세를 좌우하고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러나 독립열기가 군소자치주로까지 파급돼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이 또한 만만치않은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은 비공산정권시대를 맞음으로써 개혁에의 최대장애물을 일단 제거하기는 했으나 개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RSLDP),민스크에서 1차 당대회 개최. ▲1903년=RSLDP 2차 당대회.레닌당이 직업적 혁명가로 철저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속한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분열을 주도. ▲1917년=RSLDP,11월7일의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함. ▲1918년=RSDLP,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21년=레닌,10차 당대회에서 민간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신경제정책(NEP) 제안. ▲1924년=레닌 사망.이후 수년간 당내투쟁이 전개되나 스탈린이 당권을 장악,트로츠키는 망명길에 오름. ▲1929년=스탈린,신경제정책 폐지.공업화및 농업의 집단화 운동에 착수함. ▲1934년=스탈린,17차 당대회에서 독재통치 강화.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의 집단지도 체제 시작.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유리 안드로포프가 권력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브레즈네프의 측근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승계. ▲1985년=체르넨코 사망.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27차 당대회에서 조심스런 개혁과 당지도부 개편 시작함. 보리스 옐친,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름. ▲1987년=옐친,고르바초프및 정치국원들과의 불화끝에 당직 사임. ▲1990년=대통령제가 신설돼 고르바초프 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대통령에 선출됨.
  • 소련공산당의 붕괴(사설)

    소련의 이번 쿠데타사태는 한마디로 소멸위기에 직면한 공산당의 존립과 기득권 옹호를 위한 보수강경파의 마지막 몸부림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그 몸부림이 삼일천하의 무참한 실패로 끝난 지금 소련 공산당의 몰락·붕괴 내지 결정적 약화는 불가피한 순서라 해야할 것이다.그리고 그 순서가 지금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추이와 결과,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져올수 있는 또 다른 세계적 파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련 공산당은 고르바초프 개혁의 시작과 동시에 소멸이냐 근본적인 개혁의 변신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고르바초프는 개혁을 통한 변신을 모색했으며 옐친을 비롯한 급진개혁파는 공산당 소멸의 새출발을 희망함으로써 갈등의 불씨를 키워온 것이 그동안의 과정이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근본적 개혁구상이나 옐친의 새출발 희망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한 것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고르바초프는 서구형사회주의 정당을 지향했으며 그것은 정통 공산당의 사실상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옐친도 서구형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의 공산당 소멸이라는 급진개혁 추구의 옐친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서구형 사회주의정당을 모색하는 고르바초프의 점진적 개혁에도 불만이었던 보수 강경파의 반발이 이번 쿠데타였던 것이다.그리고 그 중요한 동기는 1천5백만 공산당원은 물론 공산당과 군부 및 KGB의 간부등 70만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의 기득권 옹호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일단 저지되었으며 당연한 반작용으로 지금 소련에서는 공산당 박멸캠페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고르바초프는 아직도 근본적이긴 하나 공산당의 기본틀을 살리는 서구형 사회주의정당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급진개혁파의 대세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현재의 대세로 보아 소련 공산당의 운명은 사실상 끝난것 같으며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서도 집권당으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구 민주화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공산당의 몰락과정을 목격한바 있다.공산종주국이며 공산당의 발원지이자 조국인 소련에서는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그러나 역시 공산당 중심의 개혁은 한계가 있고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쿠데타사태는 보여준 셈이다.그리고 그것은 뒤늦었지만 소련에도 마침내 동구식 개혁의 불길을 댕겨 놓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그 불길을 더욱 약화된 고르바초프가 진정시킬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련 공산당의 붕괴는 원조공산당의 붕괴를 의미한다.그것이 민주화 개혁을 거부하는 아시아공산당에 주게 될 충격 또한 클수 밖에 없을 것이다.북한공산당의 대응이 주목된다.민주사회주의정당으로의 개혁과 변신이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활로일 것이다.북한공산당도 하루속히 개혁과 변신을 통해 통일한국의 새 질서에 적응토록 재출발하는 것이 역사의 요구요 순리일 것이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무안해진 김일성/장수근 북한부장(데스크시각)

    「개혁의 향도」고르바초프를 밀어내고 권력을 찬탈하려했던 소련 강경보수파의 궁정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이번 쿠데타가 실패하리란 것은 거사 직후부터 여러 대목에서 예견돼왔다.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정령」발표 이후 이뤄진 쿠데타군의 출동,언론장악의 실패,지도부의 분열상 노정등. ○개혁은 역사의 당위 이에 더해 시민들의 끈질긴 항거와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 보리스 옐친을 중심으로 한 개혁 지지세력들의 총구의 위협을 무릅쓴 저항도 쿠데타군의 발길을 병영으로 되돌리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번 소련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사의 당위속에서 솎아내야할 것 같다. 이미 동구와 소련에서 실패한 것으로 판정이 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노라 탱크를 몰고 나온 보수세력집단에 손을 들어주는 「우군」은 아무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스탈린식 체제부활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 85년이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으로 민주와 자유를 누려온 모스크바 시민들은 주저않고 몸을 던져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았다.개혁의 흐름이 멈춰지고 보수의 회랑으로 되몰리기 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다는 저항 의지의 표출이었다. 소련 공산당의 끝장을 의미하는 이번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향후 소련의 국내 정국은 물론 세계질서에도 심대한 영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지금 전후 어렵사리 구축된 평화공존의 큰 틀이 손상을 면하게 된데 대해 안도와 환영의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 고르바초프의 모스크바 복귀소식이 전해지면서 낯을 붉히고 있는 쪽도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19일 고르바초프가 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정규 뉴스시간이 아닌데도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즉각 보도하는 기민한 반응을 보였다.그런가하면 20일에는 노동신문의 논설을 통해 『사회주의의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주장하며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고무·격려된 듯한 태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비록 웃는 모습은전해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그것봐라,꼴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김주석은 그간 고르바초프가 추구해온 개방과 개혁정책을 『사회주의 이념을 저버린 배신행위』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난해왔다. 그런 그가 소련내 보수강경파의 재등장에 손뼉을 쳤으리란건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 때문에 그동안 소원해진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이란 기대를 안겨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소련이 보수강경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소련이라는 든든한 동맹국을 다시 얻게 된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몇푼의 달러에 몸을 파는 고르비』라며 매도,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김주석에게 고르비의 크렘린 귀환은 그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소 재건 기대 물거품 사회주의 승리의 표상으로서 김주석이 걸었던 소련재건의 기대는 이제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특히 그동안 유동적 상황에 놓여있던 소련의 개혁정책이 이번 쿠데타실패를 계기로 뚜렷한 방향을 잡을 경우 김주석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질 터이다. 이번 사태가 그동안 나름대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던 보수파의 몰락과 함께 김주석이 한사코 거부하는 개혁과 그 추진세력들의 완승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러하다. 김주석이 등을 비빌 수 있었던 보수파가 허물어지고 고르바초프를 정점으로 하는 개혁파가 다시 전권을 장악한 현 시점에서 그의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비롯한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등 소련의 지도층은 북한정권이 이번 「3일천하」쿠데타 때 소련군부 강경세력에 적극 동조한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김주석의 무안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식」 고집땐 자멸 앞으로의 소·북한관계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사실에 속마음을 온통 드러낸채 환호했던 김주석이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잡느냐에 따라 조율돼 나갈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그가 소련이 앞장서 선도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의 흐름에 역행,계속 「우리식대로 살자」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집할 경우 북한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이번 소련사태에서 깨달아야할 가장 큰 교훈은 민주화·자유화의 노선을 보다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와 그 이후(사설)

    역시 역사의 대세는 거스를수가 없는 것이었다.삼일천하로 끝나고만 소련의 공산보수파 쿠데타시도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그것은 반력사적 봉기였으며 그 실패야말로 역사의 순리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온 세계를 풍미하며 도도히 흐르는 공산주의 독재의 몰락과 민주개혁및 개방의 역사적 물결은 온갖 도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갈길을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울한 한반도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과 용기를 갖게된다. 쿠데타를 주도한 소련공산주의 보수강경파가 내세운 명분은 경제적 파탄과 연방붕괴의 저지였다.그러나 그것은 길게보면 고르바초프 개혁의 산물만인 것은 아니다.따지고 보면 그것은 소련 공산주의 70년의 과오와 그것이 낳은 온갖 비리와 부조리의 복합적 산물이며 그것이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으로 일시에 노출된 결과일 뿐인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혼돈과 좌절속에서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따라 느리긴 하지만 시정과 개선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70년의적폐가 아무런 갈등없이 하루아침에 질서있게 시정되고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참고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순리요,도리였으며 역사의 요구였을 것이다. ○반역사적봉기의 실패 쿠데타주도의 보수파도 그 점을 몰랐을 리는 없다.그러나 그들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오랜 공산독재의 사고로 굳어진 그들의 눈엔 민주개혁의 진통이 혼돈과 국가붕괴의 위기로만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그런 그들을 자극하고 부추긴 보다 큰 숨겨진 동기는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불안심리였을 것이다.공산당의 분열·약화·지리멸렬에 그들은 절망하고 분노했으며 마침내 최후수단의 무력봉기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그것은 역사에의 저항이었으며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그들의 시도는 단기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었을 뿐아니라 새로운 비전도 계획도 없는 충동적인 것이었으며 오늘의 소련이 안고있는 문제는 오직 민주개혁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보수파 쿠데타와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세계가 경악하고 분노하며 좌절감을 느꼈던 것은 그것이 반역사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소련과 세계의 역사를 되돌려 놓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크게 후퇴시킬 수는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단기간일망정 성공했더라면 그들의 계속적인 개혁추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보다 심각한 혼돈은 불가피 했을 것이며 그것이 세계에 미칠 충격 또한 심각한 것이었을 것이다.소련은 물론 세계의 혼돈,그리고 냉전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세계적인 화해와 공존시대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쿠데타의 삼일천하 실패에 세계가 이토록 안도하고 환영을 보이는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민주시민들의 용기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소동을 보면서 특별히 인상적이고 감명적인 것은 옐친을 비롯한 민주개혁파 지도자들과 자유민주화 경험이 6년밖에 안되는 소련의 민주시민들이 보여준 용감한 저항정신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단호한 대응이었으며 우리는 거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자유민주주의의 보람찬 가치를 깨닫고 신봉하게 된 민주시민의 용기있고 질서있는 대응을 우리는 보았다.구심점이 된 옐친의 용기도 돋보이지만 그를 뒷받침한 그 많은 무명민주시민의 봉기에서 우리는 소련민주개혁의 전도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부시대통령과 콜총리등 서방세계의 신속하고도 단호한 대응 또한 훌륭한 것이었으며 오늘의 세계가 하나이며 지구촌적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으로 평가할만한 것이었다. 아무튼 역사는 다시 순리로 돌아갔으며 방향을 바로 잡았다.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여전히 전도험란한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소련은 물론 세계를 위해서도 전화위복의 역사적인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 승리를 확고히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소련국민의 보다 큰 인내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이번 사태가 응분의 지원을 하지못한 결과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 세계도 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이번 사태는 소련의 실패가 몰아올 수 있는 불길한 결과를 온 세계가 음미할 수 있게 해준 훌륭한 계기이기도 한 셈이다. ○대세에 북도 순응해야 이제 다시 또 우리는 한반도의 우울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역사의 흐름을 완강히 거역하고 있는 북한을 생각하게 된다.보수쿠데타로 북한은 크게 고무받는 듯 했다.외부사건은 언제나 늦게 해설을 달아 국민에게 알리던 그들도 이번에는 이례적인 신속성을 보였다.어처구니 없는 콜레라핑계로 월말 평양개최예정의 남북고위급회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솔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소련의 반역사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북한이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걸프사태에서 고무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던 것처럼 소련의 쿠데타소동에서도 북한은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는다.역사의 방향은 뚜렷하다.언젠가 결국은 따라야할 이 역사의 대세에 북한은 하루속히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소련사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쿠데타 실패이후 권력변화 예진(크렘린 대지진:4)

    ◎소 권력구조 지각변동 온다/보수파 숙청되면 개혁파 급부상할듯/“공산당,이념고수땐 소수당전락”경고 소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소련의 「피플파워」는 강경보수파들의 「역사의 반복」을 거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이번 쿠데타의 실패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승리라고 선언했다.그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정책은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을 천명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이미 소련사회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음이 이번 쿠데타로 증명되었다.민주와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소련국민들이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이는 소련사회에서도 「힘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소련의 권력은 전통적으로 공산당·군부·KGB에 의해 장악되어 왔다.그러나 이번 쿠데타는 민중의 힘이 소련의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쿠데타 실패로 몰락의 길을 스스로 재촉했다고 볼수 있다.물론 쿠데타 실패가 아직도 소련사회각 부문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보수화 성향을 일거에 청산시킬수는 없을 것이다.더욱이 보수세력들은 쿠데타 실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군부·공산당·KGB관료체제에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러나 강경보수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군부나 KGB는 이번 정변을 계기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우선 쿠데타 주도 세력이었던 야조프국방장관과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군부와 KGB내의 숙정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대통령도 쿠데타 주도세력의 제거를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쿠데타를 지지한 군부나 KGB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내에서의 보수파들의 영향력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전보좌관이었던 야코블레프는 공산당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지향정당과 기존의 공산당으로 분열될 것으로 전망한다.그는 공산당이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고집할 경우 수구파만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마셜 슐먼교수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제는 보수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더이상 보수와 개혁파간의 줄타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수세력의 영향력 위축을 전망한다.고르바초프는 그러나 보수와 개혁파간의 완충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고르바초프가 과연 어느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이다.일부 분석가들은 고르바초프가 상징적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또 고르바초프는 점차 독립을 추구하는 공화국들에 권한을 내어주고 약화된 연방정부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듀크대의 제리 휴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개혁의 구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르바초프와 옐친은 각각 자신들의 직책을 유지하는 비공식적 공동지도체제 이른바 「이중적 권력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옐친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옐친은 이번 쿠데타를 저지시킨 피플파워의 구심점이 되며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러시아공화국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쿠데타를 저지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소련국민들 뿐만아니라 서방세계지도자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옐친은 서방국가들에게 위대한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과거 어릿광대 취급을 하던 부시 미대통령도 『나는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그의 위대한 용기를 찬양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쿠데타 후유증의 치유와 경제난 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경제적 혼란이 쿠데타의 주요 원인이 될 만큼 소련경제상황은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아직 가시적 결실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많은 정치분석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세계는 소련의 보수화를 막기위해서도 대소경제지원을 적극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 강화는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물론 쿠데타실패로고르바초프와 부시대통령이 추진하는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그러나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로 소련이 서방세계 경제권으로 통합될 경우 국제정치의 화해무드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신연방조약에 따라 소련은 새로운 연방체제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조약체결을 약속한 9개공화국 외에 어느 공화국이 새로이 조약체결에 동참할지는 미지수이다.그러나 적어도 발트해 3개공화국은 그들의 독립움직임을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전망된다.에스토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은 쿠데타의 와중에서 독립을 선언했다.라우치스틴 에스토니아의회부의장은 『발트해 공화국의 실질적인 독립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방조약은 소련의 분권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크렘린의 집중됐던 권력이 공화국으로 분산되는 것이다.소련의 분권화는 소련사회의 민주화를 촉진시킬것으로 전망된다.쿠데타에 저항한 피플파워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소련은 시민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 「소 대반전드라마」에 뜬눈 밤샘

    ◎시민들,고르비 권좌 복귀소식에 안도 표정/탱크 몸으로 막은 용기에 찬사/업체등선 현지 정황파악 분주/“북한빗장 열리는 계기됐으면”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결행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밤 시민들은 모스크바 현지에서 연출되는 「역전 드라마」를 밤늦게까지 TV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한결같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은 특히 무력에 의해 합헌적인 정권을 붕괴시키려 한 반란세력의 탱크와 총칼앞에 분연히 맞서 위대한 민권의 승리를 창출해낸 소련 시민들의 용기와 자유수호정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일부 시민들은 지난 89년 6월 발생한 중국 천안문사태와 이번 소련사태를 대비시켜 가며 쿠데타가 실패하게 된 배경과 향후 전망등에 관해 밤을 세워가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밤 언론기관등에는 쿠데타 실패의 사실여부및 반란 주역들의 행방을 묻는전화가 빗발쳤으며 「모스크바 8인방」의 정권 찬탈극이 「3일천하」로 끝났음을 확인했다. 소련에 진출한 일부 기업체에선 간부들이 회사에 나와 그동안의 불안을 털어내고 현지 지점이나 거래처와 전화연락을 시도하며 정확한 사태및 향후 전망을 파악하는등 바쁘게 움직였다. S대학생 김봉수군(22)은 『이번 소련에서의 쿠데타실패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 소련국민의 승리이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의 승리』라고 정의를 내리고 『지난 19일 사태가 터진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보여준 단합된 힘이 쿠데타를 주도한 8인비상사태대책위원들의 무릎을 꿇게했다』고 분석했다. 서울D고교 교사 김재봉씨(38)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산주의는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수강경파에 의해 주도된 쿠데타를 내심 반겨왔던 북한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회사원 김정섭씨(35·동부고속 인사과)는 『밤늦게까지 TV를 지켜보면서 자유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면서 『소련사태가 이처럼 빨리 끝난 것은 개혁과 개방의 물결속에서 소련국민의 인권존중과 헌법수호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하유미씨(28·노원구 중계 아파트 124동)는 『TV를 지켜보면서 흥분에 몸을 떨었다』면서 『지난 19일 이후 우리나라와 소련·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으나 이같은 걱정이 사라지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 “공산주의 되살리려는 「반개혁 쿠데타」”

    ◎6년5개월 권좌 왜 무너졌나/「바깥에 굽실…」 고르비행태에 보수 반발/민족문제·군축협상등 강경선회 할듯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던 19일 새벽(현지시간) 갑자기 실각당한 배경에는 소련군부와 비밀경찰 KGB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발표한 야나예프연방부통령,파블로프연방총리,바클라노프연방방위위원회 제1부의장 등이 모두 군부의 지원을 받는 보수파라는 점,그리고 이날 구성된 국가비상위원회에 크류치코프 KGB의장과 야조프국방장관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설득력이 있다. 소련군부와 KGB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운 84년 무렵부터 그 위치가 흔들려 왔지만 지난 7월말 소련 공산당이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포함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데 이어 20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되면 군과 KGB의 활동영역이 크게 축소되는 등 지금까지 누려온 정치적 위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소련 군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 이후 ▲소련군의 동유럽으로부터의 잇다른 철군▲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조인된 CFE(유럽재래식무기) 감축협정에 따른 병력감축▲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민족분규에 따른 국내 치안불안 등에 불만을 품어 왔다. 더욱이 새 공산당 강령안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될 것이 확실시되던 올해 들어서 소련 군부는 노골적으로 반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들은 이러한 불만을 간헐적으로 터뜨려 왔는데 지난달 23일에는 현역 국방차관등 12명이 보수적 신문인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에 게재된 공동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바깥에 굽실거리는」 지도자를 축출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호소,최악의 경우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시사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실패로 끝난 보수파인 파블로프총리의 비상대권 요구도 군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고 검은 대령으로 알려진 알크스니스대령 등도 인민회의 등을 통해 군부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해 왔다. KGB도 개혁 이후 최대의 피해자라고 불릴 만큼 몰락의 기로에 서 왔으며 외국인 감시와 종교탄압 반체제인사 감시를 일삼아오던 일부 기구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지금까지 소련 역사를 통해 지도자가 실각하는 경우­말렌코프,흐루시초프등­ 공산당 정치국을 통해 이루어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날 군부의 움직임은 공산권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또 야나예프의 이름으로 발표된 포고령은 이번 정변이 헌법 127조 7항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는 하지만 전례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이는 공산당이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KGB와 군의 직접적 개입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음을 보여준다. 1917년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와 함께 병영 소비에트를 조직,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 후에는 서방의 간섭과 반혁명세력의 준동을 무력으로 제압해 공산 소련의 기초를 다져온 소련군부는 혁명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흔들린 적이 없다. 소련 군부와 KGB는 이처럼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력의 전위에 서 오면서도 무력을 통한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자제해왔는데고르바초프의 개혁이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와 공산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데 이른 것으로 여겨지자 공산주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최후의 선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KGB와 소련 군부는 개혁파의 도전과 정책 수행의 직접적 책임에 노출되면서 개혁과 민족문제,그리고 미국과의 군축협상에서 공산주의 원칙을 반영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소련지도자 재임연표 ▲레닌=1917.10∼1922.3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수립. ▲스탈린=1922.3∼1953.3 5차례의 5개년계획추진.대규모 숙청등 전체주의 체제 구축. ▲흐루시초프=1953.3∼1964.10 초기 말렌코프 등과 집단지도체제 구축.56년 스탈린 비판.58년 1인집권 확립했으나 64년 보수파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됨. ▲브레즈네프=1964.10∼1982.11 체코 「프라하의 봄」을 무력진압하는 한편 미국과는 데탕트 추구. ▲안드로포프=1982.11∼1984.2 KGB의장출신으로 처음 권력장악.군부의 지지 업고 부패추방과 경제개혁을추구했으나 실효 못거두고 사망. ▲체르넨코=1984.2∼1985.3 소련 역사상 최단명 지도자.대내정책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서 강경노선 취함. ▲고르바초프=1985.3∼1991.8 혁명2세대로 처음 최고권력 장악.실용적 개혁정책을 추구했으나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권좌에서 축출됨.
  • 제목과 내용이 다른 나라­중국/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중국 광동성 심수는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조금 잘못 알려졌다.우선 「심천」이 아니라 「심수」이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센첸」으로 발음한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수를 흔히들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창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광동성 저아래 변두리 한촌이었던 심수는 11년전에 중국 자본주의실험창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 도시」로 지정,개발됐다.홍콩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심수는 이제 홍콩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가 돼있다. 그렇게 볼때 중국 자본주의 실험창구라면 오히려 그 수도 북경쪽이 더 가깝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중국대륙을 여행한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은 중국이란 참으로 크고 무섭고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었다.사회주의 중국이 표방하는 제목과 그 사람들이 연출해내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제목과 내용이 아주 다른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세계사적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근1세기전 새로운 세계관으로 등장하여 혁명적변혁을 이룩했던 마르크시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예언하며 자기비판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독화살이 이제 그 자신에 되돌아가 꽂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자아비판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는 끝났다.그로써 동유럽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제도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종막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인식에 혼동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그게 바로 오늘의 중국이다.제목은 사회주의인데 내용은 무척 자본주의적이다.아니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인정하는 공식문서는 한장도 없다.오히려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주자파」는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이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주자파에 대해 모택동이 벌였던 지각변동과도 같았던 대량 말살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등력군 등 중국공산당내 극좌이론가들은 그 주자파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제2의 문화혁명을 발동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과학원의 미래학자 하신은 보다 더 보수적이다.하의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자본주의 선진열강은 중국이 그 능력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이내에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중국은 이 신제국주의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공식이론과 「아래」의 움직임이 전혀 딴판인게 중국이다.그들 극좌이론가들과는 달리 이붕을 비롯한 전기운 추가화등 당정고위층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손님들과 악수하고 8차 5개년계획을 직접 브리핑하며 중국에 투자하는 나라는 무조건 친구 나라라며 파안대소한다. 북경의 번화가나 천안문 광장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왕부정 대가의 수없는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들이 지천으로 흘러넘치며 사람들 또한 물결친다.호텔·식당·백화점·극장들에다 자영상점들도 즐비하고 멋쟁이 아가씨들도 많다.저녁시간 북경 TV를 보노라면 한프로그램 앞뒤에 끼여드는 10여가지의 상품선전 광고에 눈이 부실지경이다.개방 중국 수도의한면이다.물론 상해는 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 심수야말로 오늘날 중국의 이중구조­제목과 내용이 다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심수는 잠안자는 도시다.새벽1시에도 중심가 화문로일대는 대낮같이 밝다.줄지어 늘어선 「가랍OK」(가라오케),무도장·가무청(댄스홀)·야총회(나이트클럽)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불야성을 이룬다.뒷골목들도 이에 지지않는다. 주자의 도시 심수에는 시인민정부(시청)청사가 둘이 있다.제1청사는 정치·행정부서이고 제2청사는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기획·투자유치와 집행부서가 들어있다.심수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곳이다. 경제발전과 개발의 모든것을 실무차원에서 지휘하는 「심수시 투자촉진중심」의 부처장인 여국추씨와 심수시 경제개발국 부국장인 이청삼씨는 그래서 그런지 외모부터가 퍽이나 「자본주의적」이다.그들은 모두 놀랍게도 명확한 어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효용성을 지지했고 제품가격결정의 자율성과 경쟁성을 강조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이증자형식으로 참여한 화리전자유한공사의 사장 고래지씨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제의 시장성과 가격결정의 자율성및 경쟁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에서 오는 기업의 비능률을 거리낌없이 비판한다.고씨는 그러면서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재의 고충을 말한다. 천안문광장 건너편 정면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그 바로 뒤쪽 일직선상에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화국봉이 2억원이나 되는 국비를 투자해 지은 이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는 오성공기로 하반신이 둘러싸인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공개되고 있다.이 기념관을 참배코자 수십만의 중국인이 뙤약볕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주자」를 박해한 모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무언가 달라지고 보다 잘살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아버지인 모의 유해에 경배하고 숙연해지는 것이다.그들의 행태에 주자의 요소는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그것이 모순인가 아닌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과 우리의 위상등 지난 몇년의 흐름은 우리 북방정책의 당위,나아가 그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과 이해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소「고르비 강령」 채택의 의미와 전망/긴급대담

    ◎“탈공산주의”… 새 국제질서 정립 가속화/계급투쟁 포기로 「서구식 민주노선」접근/쿠바등 국제프롤레타리아 활동 위축 예상/시장경제 완전 도입까진 시간 소요… 「과도적 혼합경제」 모색할듯 지난 70년간의 공산주의 실험이 마침내 실패로 끝냈다.소련공산당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고르바초프의 신당강령안을 채택함으로써 소련의 공산주의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소련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를 계기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과도기적 혼합체제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는 소련은 어디로 가는가.소련문제 전문가인 외교안보연구원의 서병철교수와 서울대의 전인영교수의 대담을 통해 소련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 배경과 역사적 의의 및 새로운 모습의 소련장래를 진단해 본다. ▲서병철교수=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신당강령안 채택으로 소련에서는 공산주의국가라는 의미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특히 소련이 계급투쟁및 노동계층 대변원칙을 포기하고 시장경제도입을 천명한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한 지난 70년간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자인한 것입니다.따라서 공산주의건설을 목표로 한 레닌의 국가론도 이제 더이상 국가지도이념이 될수 없을 것입니다.소련에서 시작된 개혁은 동유럽에서 꽃을 피우고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으로 다시 돌아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마지막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제 박물관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며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졌습니다.소련의 신당강령 채택은 탈이데올로기시대의 개막과 함께 새로운 국제질서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인영교수=이번 소련 공산당의 신당강령 채택은 향후 소련의 국내적 정책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대외 정책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익 옹호입장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전술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이같은 근본적 변화는 전세계 공산당및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봅니다. 또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후 70여년간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자인하고 계급투쟁이론을 포기하고 시장경제·다당제·의회민주제 등을 도입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단계로 돌입했음을 뜻합니다.이는 서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동유럽의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접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련 공산당의 이름이 유지되든 않든 이미 과거의 공산당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서=소련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신당강령을 채택하게 된 이유는 현재의 공산당강령하에서는 부분적인 개혁만이 가능하다는 한계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왔습니다.그래서 그는 소련의 전반적인 개혁을 뒷받침할 정치·이념적 제도개혁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초로한 당강령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소련 공산당이 이번 신당강령을 채택한 배경으로 원인과 근인을들수 있습니다. 우선 공산당내 소속인물들의 수십년간 권력독점이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또 생산·분배의 원활한 조정이 안되는 것등 경제체제로서의 실패도 근본적 배경속에 포함될 수 있겠죠.즉 몰락할 것으로 비난해온 자본주의가 번영하고 있는 반면 공산주의가 오히려 쇠퇴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소련의 신당강령채택은 이념은 이제 더이상 공산주의국가 운영에 원칙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언한 것입니다.동유럽 국가에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허용한 것과 국가운영에 이데올로기원칙을 배제한 것은 「고르바초프이즘」이나 「고르바초프 독트린」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서방국가들로부터의 경제지원을 보다 용이하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서방국가들도 이번 신당강령채택을 계기로 소련에 대한 불신을 많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고르바초프의 이번 중앙위 연설을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있습니다. 이 연설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포기라는 얘기는 없었습니다.사회주의 원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든가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얘기 등으로 미뤄볼 때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를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경제적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소유형태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얘기는 전체사회의 국유화도 전면사유화도 아닌 과도적 혼합경제단계를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70여년이란 짧지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회주의가 어느정도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일거에 이를 척결할 수는 없습니다. ▲서=과거 소련에셔의 공산주의이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소련의 외교도 공산주의 수출에 큰 비중을 두었었지요.그러나 소련은 이념적 지도국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한 셈입니다.고르바초프는 이념보다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이번 신당강령안 제출을 통해 잘 나타났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고르바초프는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함으로써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효율성을 높일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는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국가운영을 통한 소련의 발전을 추구할 것입니다. ▲전=유토피아적인 공산주의의 도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다 실증공산주의가 앞서 얘기한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실패로 끝났음이 이번 신당강령채택으로 실증된 셈입니다. 이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어느 한 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된다는 소련지도층의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명분과 원칙면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를 병행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면에서 사회주의를 상당부분 포기하고 시장경제체제·다원주의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서=소련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정치·사회의 안정과 경제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소련은 중앙계획경제의 도입이후 서구자본주의의 눈부신 경제성장과는 달리 경제의 침체라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을 더이상 경제적 후진국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입니다.소련은 그러나 풍부한 자원과 높은 기술수준등 잠재력이 대단한 나라입니다.소련은 좋은 제도만 채택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하고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전=그러나 소련의 현재 경제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소련의 소비재 가공생산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이번 강령에서 소비자 욕구 충족을 중시하고 있으나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루 아침에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또 인플레를 어떻게 감내하고 보수파의 반발을 여하히 무마하느냐 등 지도층이 개혁을 추진하는데 수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소련 공산당에서 보혁갈등이 보수파들을 당에서 떠나게 해 개혁파끼리 뭔가 해보는 것이라든가 분당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고르바초프가 능력도 있고 특이한 사람이긴 하지만 개혁 또는 성공의 대가로 물러나야 할 상황이 올 지도 모릅니다. 즉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당하겠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연 자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서=소련의 신당강령채택은 정통 공산주의국가인 북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소련은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가시적인 영향력 행사가 없더라도 북한은 공산주의적국가 존립에 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체제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수 없을 것입니다. ▲전=이번 신강령채택은 역사적 전환점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탈이데올로기시대가 본격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소련의 변화는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고 특히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과 쿠바 등에도 시간문제이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소련의 이같은 개혁추진과정에서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그같은 혼란이 대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도 소련이 70여년에 걸친 사회주의 실험에서 끝내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 소련 공산당의 개혁갈등(사설)

    소련공산당이 또한차례 민주화개혁의 큰 진통을 시작하고 있는것 같다.25일부터 열리는 소공산당 중앙위 총회를 계기로 당의 개혁을 둘러싼 보수·개혁 양파간의 한바탕 격돌이 예상되며 그결과는 소련개혁의 앞날을 가름하는 또하나의 중대한 변화의 고비가 될것으로 주목된다. 이번 대결의 포문을 연것은 개혁파였다.셰바르드나제등 개혁파의 잇단 신당결성 발표는 공산당의 권위에 도전하고 개혁을 강요하는 원호사격 같은 것이었다.뒤이어 나온것이 정부기관·공공단체 등에서의 공산당의 조직화된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명령의 지원사격이었다.그 다음이 70년 역사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산당의 서구민주의회주의 정당화선언이 담긴 고르바초프의 당강령초안인 것이다. 공산당의 분열과 몰락 내지는 군소정당으로의 전락이라는 동구 공산당의 운명을 따를것이냐,과감한 개혁을 통한 사회민주당으로의 변신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것이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개혁파의 대보수파 공격이라 할수있는 것이다.소공산당은 작년2월 당대회에서 이미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한바 있으나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공산당의 국가지배체제는 무너지지 않고있는 실정이며 이것이 소련의 정치·경제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결정적 장애요인이라고 개혁파들은 판단하고 있다.그들은 이 장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며 고르바초프도 그들과 보조를 함께하면서 보수파의 반응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소련상황이 아닌가 한다. 보수파도 이미 만만치 않은 반발을 보이고 있다.국가 공공조직에서의 공산당활동을 금지시킨 옐친의 명령에 대해 보수파가 일제히 반발을 보인데 이어 바레니코프 국방차관보를 포함하는 12명의 보수강경파 그룹은 23일 군부만이 소련을 혼란상태로부터 보호할수 있다는 군사쿠데타 가능성을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성명을 발표하는 반격에 나섰다.이들의 성명은 조국을 사랑하지않는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외국의 보호자들에게 노예신세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난,고르바초프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이런 분위기에서 25일의 중앙위총회가 개최되고 문제의 신당강령안이 제출되는 것이어서 그귀추가 비상한 주목거리인 것이다. 소련공산당의 이같은 보수·개혁 양파 격돌의 진통은 어차피 한차례는 겪어야할 불가피한 과정인지 모른다.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동안의 상황은 소련의 혼돈과 고통을 장기화시키고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된다.종래와 같은 공산당주도의 개혁이 한계에 부딪친 느낌의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도 마침내 동구식으로 밑으로부터의 개혁 결단을 내렸는지 모른다.가부간의 분열이 불가피한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국면이란 느낌이다. 보수파의 반격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지만 새당강령이 승인되면 연말의 임시당대회에서 확정시키고 내년엔 최초의 민선연방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일정이다.세계는 물론 우리와도 이미 밀접한 관계가 되어버린 소련의 공산당개혁 진통을 주목해가지 않을수 없다.
  • 고르비,새 당강령 제시의 함축

    ◎“70년만의 탈레닌”… 소 공산당 “대 변신”/사회민주주의로 살아남기 시도/체제내 개혁 한계… 불가피한 선택/보수파 거센 반발… “고르비퇴진” 재론될듯 소련공산당이 70여년 동안 고수해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치를 내리고 사회민주주의체제로의 변신을 위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는 공산당 주도로 「체제내에서의」개혁을 목표로 시작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마침내 그 한계를 절감,현체제로서 더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3일 소련「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를 통해 보도된 새 당강령안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공산주의를 버리고 당의 공식이념을 「인도적 민주사회주의」로 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새 강령은 이와함께 당내민주화 조치로 과거의 중앙집중제 원칙을 포기하고 하부당조직의 역할을 강화,하위당직에 대해 권한과 기회를 대폭 부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공산당의 전반적인 권한축소조치의 일환으로 각급 소비에트의 행정,의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당세포조직의 권한행사도 제도적으로 정지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8년 제19차당협의회서 채택한 각급당세포의 제1서기가 행정소비에트와 의회의 책임자를 겸직토록한 조항은 조만간 효력이 정지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이 공산당의 간판을 사실상 내리겠다는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현실적으로 당을 살리는 길이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어차피 당은 쪼개질 운명에 처해있다.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과 정치국원을 지낸 야코블레프를 주축으로 한 개혁세력들이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개혁운동」이란 이름으로 신당창당을 서두르고 있고 이미 1천7백여만명으로 줄어든 공산당원중 다시 그 30%가 신당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공산당내 옐친 지지세력인 「민주강령」파 역시 당이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의회주의당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당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크렘린과 9개공화국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정치일정에 따르면 내년중 연방구성을 다시해 헌법을 새로 만들고 그에 따라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실시하기로 돼있다.고르바초프서기장은 지금의 당세로 선거에 임할 경우 공산당이 설자리는 없다는 계산을 했음이 분명하다.더구나 옐친은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자격으로 지난 20일 러시아공내 모든 공공기관 및 산업체내 당세포조직의 활동을 전면중지시키는 포고령을 내렸다.6월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선거에서는 옐친이 공산당을 탈당한 신분으로 출마해 압승을 거둔 반면 공산당은 공식후보조차 내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모스크바·레닌그라드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는 시장선거에서 비공산당 후보들이 공산당후보들을 물리치고 모조리 승리,이들이 시정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볼셰비키혁명으로 등장한 소련공산당의 수명은 이제 다했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수없게 된 것이다. 공산당의 위상변화 시도는 사실상 1990년초부터 꾸준히 시도돼왔다.그해 3월 인민대표회의(의회)에서 소련방헌법 제6조에 명시된 공산당의 권력독점조항이 폐지돼 혁명전위당으로서 공산당이 누려온 지위에 종말을 고했다.그해 10월에는 「대중 정당단체 조직법」이 채택돼 91년 1월1일을 기해 발효됨으로써 법적으로 다당제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당원5천명만 확보하면 전국단위 정당을 만들수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족문제,경제난 등에 밀려 명실상부한 제2정당의 창당움직임은 거의 없었고 각급단위에서 공산당이 여전히 과거의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의회에서는 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보수파들이 회의가 열릴 때마다 고르바초프 사임등을 요구하며 당분열을 부추겼다.지난4월 당중앙총회에서 보수파들이 시도한 고르비축출기도도 한 예이다. 따라서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된 당중앙총회에서도 고르바초프가 내놓을 당강령초안을 놓고 보수파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고르비사임요구 또한 재론될 것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중앙위총회에서 새 당강령을 제출하고 오는 8월쯤 임시당대회를 개최,당강령을 확정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연방잔류를 희망하는 9개 공화국과 신연방조약을 체결할 시기도 이번 중앙위 총회에서 결정 지을 예정으로 있다. 당서기장의 진퇴를 결정할수 있는 기구인 8월의 당대회에서 고르비가 전격적으로 당서기장직 사퇴를 결정할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당·정·입법의 권한을 철저히 분리하고 공산당은 순수한 정당기능만 수행토록 한다는 전제하에서이다. 물론 상당한 진통이 따르겠지만 이번 당중앙위는 소련 공산당이 과거의 「영광」을 사실상 마감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금년 상반기중 소련공산당 탈당자 수가 35만명이라는 통계가 있다.변화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동구공산당들처럼 몰락의 길로 가든가­선택의 여지는 별로 있어보이지 않는다.
  • 「핵공포」 탈출 첫 걸음… 동서군축 새 이정표

    ◎9년만의 「전략무기협상」타결 안팎/99년까지 미 25%·소 35% 전략핵 폐기/미 군사력 우위 유지… 「신질서」 계속 주도/9년 줄다리기에 지쳐 당분간 새 협상은 없을듯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은 17일 런던의 G­7회담장서 START,즉 전략핵무기 감축협상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산가운데 하나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이달말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공식 조인할 전략무기 감축협상은 작년11월 조인된 유럽배치 재래식무기(CFE)감축협정및 1987년의 중거리 핵미사일(INF)감축협정과 더불어 강대국의 대결 논리와 핵 전쟁으로 인한 인류 절멸의 공포를 크게 줄인 것이다. 이는 또 미소관계의 변화에 따라 진전과 후퇴를 거듭했던 군축협상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기도 하다.전문가들은 미소가 지루한 협상으로 지쳐있기 때문에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야 새로운 군축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2년 이후 9년간을 끌어온 이 협상의 타결을 「미소의 공동승리」라고 불렀다.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서방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소련의 아쉬움 때문에 START가 미국측에 유리하게 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동구 공산주의의 몰락,바르샤바조약 동맹 해체,소련경제의 와해,미국과 서구에서 고조된 군사비 축소 압력 등이 미소양국에 대해 군비축소를 강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미소는 냉전종식과 함께 지역분쟁 해결에 협력하고 있어 지난 62년의 쿠바위기와 73년의 중동전 때처럼 핵전쟁 일보전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사라졌다.따라서 세계는 이라크나 북한과 같은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핵개발 가능성과 소련의 위협이 사라짐으로써 새롭게 제기된 문제,즉 누가 이 막대한 분량의 핵무기를 통제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판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이달말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공식 조인될 전략무기 감축협상은 미소가 지난 4년사이에 타결한 3번째 군비통제 협정이다.이 협정에 의한 실질감축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유럽 재래식무기 감축협정및 중거리미사일 감축협정과 더불어 미소의 군사력 균형을 앞으로 「미국 우위」로 바꾸는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의 미소군축협정은 모두 소련의 미본토공격 능력을 감소시키는 한편 미국의 대소 군사억지력은 그대로 보존시키고 있다.전문가들은 『이제 소련은 명목상으로만 미국과 동등한 초강국일 따름』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은 걸프전 승리이후의 팍스 아메리카나 정책 즉 미국 주도하의 신세계질서 구축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START는 강대국의 전략무기 증강에 대해 제한을 가해왔던 과거의 군축협정과는 달리 현재의 보유 핵무기 가운데 약 30%를 실질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협정의 감축대상은 상대방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운반수단,즉 지상 발사 미사일은 물론 항공기·잠수함 등에서 발사되는 미사일과 이에 탑재하는 전략 핵무기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오는 99년까지 단계적으로 미국은 전략 핵무기 숫자를 현재보다 25%가 적은 9천개로,소련은 35%가 적은 7천개로 각각 줄여야 한다. 특히 소련은 정확도와 엄청난 투사 중양때문에 서방에 가장 위협적인 전략핵무기로 간주돼온 SS­18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1백54기로 감축하는 동시에 핵탄두 수도 1천5백40개 이하로 줄여야 한다.미국 역시 약3천개의 핵탄두를 줄여야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축 이후에도 미소 양국은 상대방을 몇차례 파멸시키기에 충분한 핵화력을 계속 보유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 잔류 핵무기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은 아직도 소련이 유럽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이 협정이 비준 발효되면 소련의 군사 작전 여지는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근년에 가속화된 군비 축소는 고르바초프집권(1985년 1월)전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큰 군사력 감축을 소련에 가져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과 소련은 1987년 12월 체결된 INF조약을 통해 핵무기시대 개막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모든 부문의 핵무기 제거에 합의했다.INF는 소련에 대해 미국보다 4배나 많은 미사일의포기를 요구했고 또 소련을 사정권에 둔 유럽배치 미군 지상 핵 미사일을 전면 폐기시킴으로써 유럽에서 핵 공포를 제거했다.바로 지난달에 미소 두나라는 사정거리 3백∼3천4백마일인 INF 미사일의 폐기를 끝냈다. 작년 11월 23개국 수뇌가 서명한 유럽배치 재래식군비 감축협정은 우랄 산맥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유럽 지역에서 탱크·대포·장갑차·공격용 헬리콥터·전투기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이 조약도 유럽의 비핵무기 부문에서 소련이 오랫동안 누려온 우위를 제거한 것이었다. 미소 양국은 START 비준 과정에서 각기 국내 정치적 진통이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부시 미대통령은 의회내의 극우 보수 세력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또 START 협상에서 소련이 더 많은 양보를 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면할 군부 보수세력의 반발과 위협은 더욱 심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미서도 연방·주정부 권한다툼/연방제 국가 내홍시대

    ◎중서부 주들,“타주 쓰레기 더는 못 받겠다”/환경청의 농약규제 완화조치에도 반발 ○대부분 실생활 관련문제 최근 들어 여러 나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한다툼」이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환경 세금 쓰레기 문제를 놓고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이 다툼을 빚고 있다. 더욱이 이런 다툼은 전통적으로 연방정부의 강화를 주장해 오던 민주당이 주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쪽에서고 주의 자율을 선호하는 공화당이 연방정부 편을 들고 있어 이채를 띠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다툼은 모든 사람들이 매일매일 먹는 음식,자동차 보험 쓰레기 은행대부 등 실생활과 직결된 문제들이어서 정치철학적 호기심 대상에 머물렀던 과거의 권한다툼과는 큰 차이가 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연방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은 주정부들이 시민권 보건 환경문제에 느린 행동을 보이자 연방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서서 보수주의자와 기업가들로부터 불평을 샀다. 80년대 들어서서는 레이건 행정부가 기업들을 돕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자 환경론자나 소비자그룹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주정부들,특히 민주당이 지배하는 곳에서 규제가 강화됐다. ○유해 화학물질 대폭 규제 예를 들면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에 대해서 연방정부는 불과 몇개에 대해서만 부정적 효과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86년 캘리포니아주는 구두약에서 통조림된 수프에 이르기까지 4백70개 품목에 대해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마음이 급하게 된 것은 기업가들. 그들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규제에 개입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국이 「발칸반도처럼 되고」 국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연방의회가 주법을 뒤엎을 수 있도록 돼 있는 헌법이 큰 무기이다. 앞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 문제가 될 사안들이 즐비하다. ▲농약규제‥레이건 행정부시절 환경보호청은 농약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었다. 그러나 그뒤 주정부들은 발암성 농약으로 의심되는 EDB와 알라를 사용 금지시켰다. 기업가들은 오는 8월 의회에서 심의될 예정인 농약규제법률에서주정부에 의한 규제가 무효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오물처리업체 크게 반발 ▲쓰레기‥북동부의 주들은 쓰레기를 남부나 중서부의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보내서 처분하곤 했다. 요즘 인디애나 등 중서부지역의 주들은 주정부가 다른 주에서 실려오는 쓰레기의 반입을 막을 수 있도록 입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연방정부와 쓰레기처리업체 등은 이것이 산업유통을 저해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은행‥각 주는 재무성이 법률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은행규제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새 은행법에 따르면 각 주는 연방정부의 인허가를 받은 은행의 주내 지점설치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연방정부는 이 조치가 금융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주정부들은 이 조치가 중소은행을 몰락시키고 각 주에서 모아진 저축이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보험 국제무역협상을 둘러싸고 연방과 주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당원 원내총무 조지 미첼 의원은 『주의자율을 내세우는 공화당의 선전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괴리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 “소 연방 무너져도 10년 뒤 초강국 재기”(해외논단)

    ◎슬라브계 4공화국만 뭉치면 미에 필적/러시아 민족주의로 「이념공백」 극복할 것 소련은 민족분규·경제난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5∼10년이면 강대국의 힘을 회복,다시 서방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 발표됐다. 미 하버드대 올린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D 포터 교수는 계간 「내셔널 인터레스트」 1991년 봄호에 실린 「러시아는 재기한다」라는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포터 교수는 소 연방의 장래와 관련해 소련은 앞으로 러시아공화국·우크라이나·백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입각한 대러시아국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렉시 토크빌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강대국의 요건으로 영토,풍부한 자원,인구,활기찬 민족성 등을 꼽고 미국을 세계최강국,당시 러시아제국을 그에 필적할 강국으로 들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 소련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이미 2류국으로 전락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경제적 침체,정치적 위기,군사력의 단기적 우열 등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이런 진단도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을 한 나라의 국력을 재는 궁극적인 잣대라고 할 수는 없다. 토크빌의 기준으로 보면 소련은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설사 지금의 소 연방이 와해되더라도 러시아공화국,러시아민족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국(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은 여전히 강대국 역할을 하며 서방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 러시아국은 인구 1억5천여 만 명에 영토는 프랑스의 30배나 된다. 현 러시아공화국을 비롯해 우크라이나·백러시아·카자흐공화국을 포괄할 것이며 이 경우 현 소련 영토의 92%,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아울러 소련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의 태반을 그대로 갖게 된다. 세계 최대의 핵무기,유럽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소련의 군수산업 중 85%,군사연구시설의 90%가 위의 4개 공화국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국은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군사력을 더 강화시켜 2000년까지는 미국에필적할 군사력을 재건할 것이다. 과거 러시아제국은 영토확장욕과 군사력에의 높은 의존,대내적으로는 독재체제가 특징이었다. 70년의 공산통치는 이런 특징을 더 강화시켰을 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운명이 끝나고 연방이 해체되더라도 이 유산은 남을 것이다. 새로 탄생하는 러시아국은 현재의 비밀경찰·군사조직을 존속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물론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관계가 재발뢴다고는 보지 않는다. 러시아국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기야 하겠지만 외교정책은 훨씬 현실적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 대신 러시아민족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서방세계는 이제 러시아공화국을 비롯,소련 전역에서 일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서방이 소련의 몰락을 점치는 근거는 크게 다음의 3가지 가정에 기초한다. 첫째 지금 같은 경제난이 계속돼 서방을 위협할 수준의 군사력 유지가 힘들 것이다. 둘째 동구를 잃은 지금 유럽에서 영향력을 되찾기는 힘들다. 셋째 민족분규로 인해 연방이 와해될 것 등이다. 이 가정들은 정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소련의 경제난은 너무 과장된 면이 있다. 지난해 소련의 곡물수확량은 사상 최고였다. 수송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이는 개선 가능한 문제이다. 산업구조도 개선돼 지난 2년간 국방비가 매년 10%씩 감소됐다. 소비부문 활성화를 위한 시장경제화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소규모 자영기업과 코페라티브가 번성해 이곳에서 일하는 인원이 5백만명에 달한다. 동구 상실을 소련 몰락의 전조로 보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 2차 대전 후 유럽에서 소련외교정책의 기본목표는 ▲유럽 주둔 미군 철수 ▲나토 해체 ▲독일의 중립화였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소련이 동구를 포기함으로써 이 목표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통일독일은 중립화는 안 됐지만 소련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유럽 주둔 미군은 감축을 시작했으며 나토는 존재이유를 거의 상실했다.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역시 민족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제국의 붕괴는 대부분 외침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 소련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외부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바초프 정권의 장래를 놓고 크게 5개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보수파 주도의 궁정 군사쿠데타 ▲극단적인 러시아민족주의 세력의 권력장악 ▲개혁세력에 의한 권력장악 ▲대규모 민중시위에 이은 민주정부 수립 ▲전면 내전상태 등이 그것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 5개 시나리오 모두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쿠데타에는 군의 지지가 필요한데 군내부에 이런 움직임이 없다. 러시아 민족주의는 이념적으로 뉴파시즘,반유태주의,쇼비니즘 등이 복합된 것 같은 것으로 군·최고회의에 동조자가 많다. 하지만 러시아민족주의를 표방한 「러시아민족 애국운동연합」의 인민대표회의 의석수는 16석에 불과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아직 없다. 소련국민들의 정치수준이나 정치적 무관심 등으로 볼 때 체코,폴란드 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건재하기 때문에 전면 내전상태로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된다. 현재 어떤 연방공화국도 군사적으로 중앙정부에 맞설 수 있는 곳은 없다. 몇 개 공화국이떨어져 나갈 수야 있겠지만 전면내전은 일어나기 힘들다. 소련은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제문제를 극복,다시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연방이 무너지더라도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 러시아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한 군사·산업 강국이 등장한다. 5∼10년 뒤면 우리는 이러한 러시아국의 등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1942년 윈스턴 처칠이 『우리는 러시아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한다』라고 한 말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 강택민총서기,왜 모스크바 가나

    ◎“미의 「신패권」 견제” 중소 공동보조 모색/각종 교류 늘려 사회주의 결속 강화/“한국 유엔가입에 불반대” 결론 낼듯/악화된 대미관계 반전의 지렛대로 활용 속셈도 중소 협력의 새 시대가 개막된다.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15일부터 19일까지 5일 동안 모스크바를 공식방문,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상호 협력·우의를 다지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이번 강 총서기의 모스크바행은 그가 지난 57년 11월 모택동 이래 34년 만에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하는 중국 공산당 수뇌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수뇌,34년만의 방소 게다가 현재의 국제정세는 걸프전 이후 신질서 재편 움직임과 함께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예견되는 소련 내부혼란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강택민·고르비 회담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이들은 올 가을 유엔총회의 초점이 될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 문제 등 한반도정책에 관해서도 사전 의견조정을 꾀할 것으로 보여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중소 정상의 만남은 또 시기적 상황의 극명한 대조로 역사발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측면도 있다. 50년대 후반 이후 모택동과 흐루시초프의 이념분쟁과 양국 국경선의 무력충돌 등으로 30여 년 동안 지속된 대립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고르비가 등소평(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을 방문했을 때가 89년 5월15일로 2년 후 강 총서기의 방소 날짜와 하루도 안 틀린다. 또 당시 북경은 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환호하던 모스크바와는 반대로 민주화요구시위의 열기에 휩싸였고 정치·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했으며 마침내 「6·4천안문사태」가 발생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택민이 방문하는 오늘의 소련은 바로 2년 전의 중국과 비슷하게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6·4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강경보수파가 지배하는 중국의 지도층은 최근 들어 고르비가 국내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보수경향을 띠는 데 크게 만족하고 있으며 이번 강 총서기의 방소도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고르비 회담의 주요의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예측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서로 이웃하고 있는 공산주의 거인으로서 새로운 협력과 우의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걸프전 이후 지적되고 있는 미국의 신패권주의 경향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북경과 모스크바 수뇌들은 2년 전 화해를 위해 만났던 것과는 달리 이제 사회주의 동지로서 군사·경제·과학 등 각 방면의 새 협력과 교류를 최대한 확대키로 다짐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이미 지난 3월 경제난에 시달리는 소련을 돕기 위해 7억1천만달러어치의 음식료품을 제공했고 소련측은 그 대가로 SU­27전투기를 중국에 넘겨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걸프전을 통해 서방국가들의 첨단과학 병기 우수성에 충격을 받은 북경측은 군의 현대화를 위해 당초 미국의 지원을 받으려했으나 방침을 바꿔 소에 의존키로 했다는 것이다. ○군 현대화 소에 의존키로 왜냐하면 미국은 인권문제를 내세워 중국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악화되거나 소원해질 가능성이 매우 많아서 지속적인 군사적 협력이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국제질서 재편에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에 대해 중국과 공동대항해야 할 입장이어서 모든 면에서의 상호 유대강화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소련내 공산세력의 재무장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증대시킬 것이란 점이다. 지난 57년 모택동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공산주의 세계의 대형은 당연히 소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져 오히려 중국이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제1의 강대국이 된 듯한 실정이며 강 총서기는 이번 회담을 통해 국가와 국가뿐 아니라 당 대 당의 관계를 결부시키는 방안들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안문 민주시위를 총칼로 진압,강경보수파에 의한 정치·사회안정을 이루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은 소련·동구 각국이 정치민주화로 큰 혼란에 빠진 사실에 대해 언제나 냉소어린 비판을 해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강 총서기는 소련내 공산세력의 부활을 지원하는 중국의 의지를 표명할 것이며 현재 공화국들의 연방탈퇴·경제혼란 등으로 최악의 곤경에 빠진 고르비도 이에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소정책은 미국을 크게 긴장시킬 것이며 결과적으로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예를 들면 최혜국 대우 연장적용 등)를 낳게 하고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 있어 전략적인 3극체제의 성립까지도 예측케 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회담에서 중소 두 나라는 한반도 안정이 양국을 포함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과 발전에 필수적임을 재확인하고 한국의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조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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