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수화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6·25 전쟁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노원구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불법 도박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전시장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2
  • 일 신진당/「평화헌법 개정」 당론 채택/18일 전당대회서

    ◎정치대국 명시… 보수화 가속 예고 【도쿄 연합】 일본의 통합야당인 신진당(당수 오자와 이치로)은 12일 평화헌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한 정책구상안을 마련해 오는 18일 전당대회에서 정식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신진당이 평화헌법 개정논의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은 처음으로 일본의 총체적인 보수·우익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정책구상안은 헌법의 기본 이념을 견지,전진시켜 나감과 함께 자위대와 미­일안보조약을 둘러싼 개헌론 및 헌법해석론 등 불필요한 논쟁을 없애기 위해 4∼5년에 걸쳐 새로운 헌법을 국민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진당은 또한 안보문제와 관련해 유엔안보리 진출을 역설한뒤 유엔의 중심적 역할을 맡아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혀 정치대국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진당이 개헌논의 필요성을 정식으로 제기한 것은 냉전후 국내외 정세에 현행헌법이 맞지 않다고 보고 대담한 구조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며 특히 집단적 자위권행사 등 안보강화를 중시함으로써 총선거를 앞두고 현재의 자민­사회­사키가케 연립정권과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분석된다.
  • 일 정계/보수우익바람 거세진다/하시모토정권 등장의 기류

    ◎민족주의 강성 여야뉴리더 전면부상/“국제역할·군사외교 강화” 목청 높일듯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자민당 총재가 새 일본총리로 등장함에 따라 일본정계에 강력한 민족주의를 배경으로한 보수·우익화 바람이 더욱 게세게 휘몰아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종전5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우익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진데 이어 보수성향이 강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가 지난해말 최대 야당인 신진당 당수로 선출됐고 이어 같은 성향의 하시모토가 총리직을 맡게돼 「보수우익화 물결」이 불을 보듯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국의 우익화는 냉전종식후 사회당이 퇴조하면서 한때 강화됐었으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사회당 당수가 총리로 취임하고 경기후퇴의 장기화로 잠시 주춤했었다.하지만 지난해 여름 참의원선거에서 공산당·사회당이 참패한데 이어 이제 사회당당수인 무라야마 총리까지 퇴임하게 돼 진보·좌파의 영향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반면 하시모토정권이 일본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강력한 민족주의자를 자임하면서 경제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군사·외교분야에서도 일본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갈게 분명하다.더구나 일본에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한 우익보수화는 군국주의로 발전했던 과거의 역사를 갖고있다.따라서 한국이나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물론 미국 유럽등지에서도 앞으로 자주 일본정부와 마찰을 빚지않을까 경계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하시모토의 매파적 이미지는 오래된 이야기다.그는 93년부터 일본유족회장직을 맡아왔다.일본유족회는 호소카와전총리가 침략전쟁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을 때 항의성명을 냈던 보수단체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단체다.하시모토는 회장으로서 연 3회 꼭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왔다.지난해 미­일자동차협상시 끝까지 완강한 자세를 보인 「강성 이미지」도 붙어다닌다. 하시모토 총재는 『중국 침략과 조선 식민지지배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러한 역사인식을 가진 하시모토 총재와 오자와 당수등 일본의 뉴리더들은 과거침략에 대한 아시아에서의 반일감정을 고려,유엔을 무대로 일본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해야한다며 일본의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모색해왔다. 일본의 이같은 적극적인 국제적 역할 모색이 과거와 같은 군국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않다.하지만 일본은 군사·외교면에서의 역할증대를 꾸준히 확대해오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에서의 군사외교를 강화하고 있다.하시모토 총재가 일본의 총리로 취임할 경우 일본의 이러한 군사외교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본이 안보면에서도 대국주의를 지향할 경우 중국과의 마찰등 아시아안보의 불안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러 외교정책 보수화 불가피/코지레프 러시아 외무 사임이후

    ◎총선승리 좌파·민족주의자 의견 수렴/나토확장·보스니아정책 제동이 증좌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외무장관이 5일 사임함으로써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변할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같은 날 메드베데프대통령실 대변인은 『외무장관의 사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이번에 국가두마(하원)에 진출한 당사자도 의원직을 수행하기 위해 단순히 옷을 벗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공산당의 압력으로 그는 외교사령탑자리를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코지레프전장관은 옐친각료가운데 옐친의 신임속에 가장 장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친서방주의자인 그는 또 지난 여러달동안 공산당등 보수·민족주의세력들로부터 『러시아의 자존심을 서방에 팔아먹고 다닌다』며 엄청난 사임압력에 시달려왔다.옐친각료들 가운데 총선이후 이들의 사임표적1호는 코지레프였다.때문에 이번 외무장관의 교체는 총선의 여론이 반영된 것이며 어떤 식이든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바뀌지않을 수 없다는 옐친정부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옐친정부는 『러시아의 이익을 한번도 대변한 적이 없다』는 좌파·민족주의세력의 비판을 수용,지역분쟁등 범세계적 이슈에 대해 민족주의적 색깔을 가미시켜갈 것 같다.오는 6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때문에서라도 옐친정부는 좌파의 목소리와 총선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보아도 좋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계획」에 대해 러시아는 『러시아도 핵·군사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줄곧 맞서고 있다.보스니아에 관한 정책에 있어서도 일일이 제동,유럽의 한 국가라기 보다는 냉전시대 소련 때와 똑 같은「지분」들을 요구하고 있다.나토참여군의 독자지휘권이 한 예이다.폴란드·루마니아등 옛 소련위성국과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등 옛소련국에 대한 경제·군사적 행보를 강화,지도력를 과시하고 있는 것도 예가 될 수 있다. 모스크바의 한 서방외교소식통은 『러시아가 옛 슈퍼파워로의 복귀를 기도하려는 생각에는 옐친대통령에서부터 공산당등 반대세력에 이르기까지 이미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대통령직속기구로 외교정책위원회를 신설한 것도 이같은 외교정책 변화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따라서 후임 외무장관이 누가 되든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직접 틀어쥐고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여론의 향배에 톤을 맞추어 갈 것으로 보인다.
  • 에토와 무라야마의 「제국근성」/강석진도쿄특파원(오늘의 눈)

    4일은 일본에서 신년연휴가 끝나고 새해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전후 50주년이었던 지난해 과거 침략사와 관련,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워낙 잦았기 때문에 올해는 제발 일본정치인들도 맑은 도쿄 겨울하늘처럼 과거사에 대해 밝은 시각을 가져주길 기대해 보았다.그러나 이런 기대가 지나친 것이었음이 즉각 드러나고 말았다. 지난해 한국·중국 등 피해국민을 격노시켰던 망언의 당사자 에토 다카미(강등륭미) 전총무청장관은 이날 장관사임의 원인이었던 한국식민지지배 정당화 발언을 또다시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실언한 것도 아니고 폭언이나 망언을 토한 것도 아니다.나쁜 것은 나쁘다고,좋은 것은 좋다고 당연한 말을 한 것 뿐이다.왜 반성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한일합방조약에 대해서도 『국민의 총의를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탄압도 했다』면서도 『다만 양국간에 체결한 국제조약으로서는 성립했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미국 민주주의는 노예제도와 인디언 학살 위에 이루어졌다고 기술한 책도 있다』면서 『(일본도 한국에 대해)사탕과채찍을 모두 사용했으며 심한 일도 했으나 부산항과 인천항,5천개의 학교도 건설했다』고 망언을 되풀이했다. 에토 전장관은 지난해 망언한 것이 문제가 되자 한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며 발언을 전면적으로 철회한 뒤 한국측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통합야당인 신진당이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하자 전격 사퇴했었다.그의 발언 철회,사퇴는 결국 속임수에 불과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같다. 또 5일 사임 의사를 표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4일 첫 행사로 일본왕가의 선조를 받들고 있는 이세신궁을 공식참배했다.65년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 총리의 참배 후 자민당 단독정권 시절 총리의 이세신궁 연두참배는 항례행사였다.무라야마는 그러나 지난해 「정교분리의 헌법원칙에 위배된다」며 참배하지 않았다.그것이 1년만에 참배로 선회했다.위헌이라고 비판하던 입장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소금」은 짠 맛을 잃고 있고 일부 보수정객들의 병든 과거사 인식은 그대로다. 전후 50주년이라는 한 매듭이 지나갔지만 일본정계의 보수화 흐름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 새해 벽두부터 일본정치권이 주는 인상이다.
  • 이영희 여의도연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

    ◎“「5·18」 단죄해야 정치 선진화 이룩”/「노씨 비자금」 보수세력 정치재기음모 노출/이젠 때묻지 않은 새 세대가 정치 주도할때 민자당 부설 정책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 이영희 소장은 28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특강에서 「한국정치의 선진화와 개혁과제」란 주제강연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조치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시대의 틀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지와 결단』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이소장의 주제강연요지. 5·18특별법 제정조치는 현실정치의 차원을 떠나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5·18단죄가 성공해야 수구세력이 완전히 퇴장하고 정치선진화의 역사적 토양이 만들어진다. 과거 3당합당은 문민정부 출현을 위해 불가피했다.김대중씨의 평민당 창당과 민주세력의 분열로 기존 집권세력을 완전배제한 문민정부 수립은 어려웠다.이후 「태생적 한계」라는 비난에도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정치자금단절 등 역사적 개혁조치를 과감히 수행했다.민주화과정에 협력한 보상으로 5·16,5·18세력의 처벌을 유예,역사의 평가에 맡겼고 국정에도 참여시켰다.5·18불기소와 구여세력의 사면복권조치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수화의 논리가 득세,여야 할 것 없이 보수세력과 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수구세력이 재결집하여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는 시도마저 나타났다.때마침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이 터져 부정부패의 실상이 드러나고 수구세력의 숨겨진 음모가 발견된 것이다.따라서 5·18단죄방침에서 보이는 역사 바로잡기와 당명개칭을 통한 민자당의 새출발방침은 역사의 방향을 개혁으로 바로잡는 것이다.국민의 요구와 야당의 주장을 수용한 특별법 제정은 「태생적 한계」를 초월한 결단이다. 속죄하고 자숙해야 할 쿠데타세력이 위헌·약속파기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야당이 「깜짝쇼」라고 비판하지만 전격적 방법이 아니고 결단이 가능한가.「정국흐리기」라지만 비자금사건이 과연 물 건너간 것인가.「정국주도용」이라고 비꼬지만 집권당으로서 당연한 행동이 아닌가.야당도 수구세력의 결집을 막고 개혁의 길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일부에선 『왜 이제 와서…』라고 의혹을 제기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최후의 시기다.『정치적 배신,토사구팽,민정계 축출용』이라지만 이는 역사관과 평가척도의 부재에서 비롯된 잘못된 인식이다.이번 조치는 자기 살을 베는 일대 결단이며,결과적으로 현대판 트로이목마식 정치전략이다. 대통령이 구속되는 나라는 정치보복의 나라가 아니라 법이 있는 나라를 뜻한다.정치가 법의 아래에 위치하는 진정한 법치주의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낙후한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일대 도약의 계기를 만들었으니 이제 때묻지 않은,때가 덜 묻은 새세대가 중심이 돼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
  • 「한·일 정상회담」 도쿄측 입장

    ◎일,「과거」 사과로 대한관계 회복 모색/대북 접촉 한국과 긴밀협의 약속할듯/무라야마 입지 취약… 결과 지켜봐야 18개국 정상,부통령 등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비공식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것중 하나가 한일정상회담이다.클린턴 미대통령의 방일 취소로 한일정상회담은 더욱 비중이 높은 행사로 「격상」됐다.그렇지 않아도 한일정상회담은 주목을 모아오던 터이다. 일본은 양국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가 수습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서 긴밀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로 자리잡던 한일관계가 더 이상 어그러져서는 무라야마정권으로서 커다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사이에 안보관계의 조정과 오키나와기지의 축소,무역마찰 등 묵직한 안건들이 걸려 있고 중국과는 대만과의 관계,핵실험,정부개발원조의 삭감 등으로 부드러운 관계가 아니다.무라야마정권이 들어서서 동북아지역에서 외교적 성공을 거둔 것은 너그럽게 보아도 별게 없다. 특히 한국과의 관계는 과거 식민지배와 이를 미화하는 망언 등 일본에 귀책 사유가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적극적 대책을 세울 수 밖에 없다.일본은 과거 침략사와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망언이 끊이지 않는데 대해 이미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 정중하게 사과했다.물론 한일합방조약의 유·무효 여부,한일기본조약의 해석 문제 등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하지만 보수화하는 일본사회 분위기와 보수·극우세력을 대표하는 대주주 자민당에 얹혀 있는 약체 무라야마정권으로선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우선 과거사와 관련,외무장관 회담에서 물꼬를 튼 수습국면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또 다시 정중한 사과와 노력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정부가 강한 불만을 표시한 「머리를 뛰어넘는」북·일 접촉에 대해서도 한국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언명할 것으로 보인다.한·미·일 3국 외무장관은 17일 대북한 정책협의를 위해 고위급 정책협의를 하기로 이미 합의해 놓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는 올해 사상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일관계의 현안으로는 부상되지 않고 있다.정치논리로 풀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따라서 일본이 기존의 산업협력관계의 강화·발전 이상의 「영양가 있는」약속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과거사와 남북한·일본 삼각관계에 대한 무라야마 총리와 고노외상 등의 발언이 말 그대로의 무게를 지닐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과거의 경험이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에토 다카미(강등륭미)전총무청장관의 예처럼 망언­사죄­반발­사임을 거치면서 한국 외교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들이 되풀이됐고 보수·극우그룹은 전혀 역사관을 바꾸고 있지 않다.또 무라야마정권은 리더십이 취약하다.의견조정이 어려운 연립정권의 한계도 안고 있다.일본은 구멍뚫린 양국간 담장을 때우려 할 것이지만 그 결과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20억 받은 사실 당엔 안알렸다”/김대중 총재 방중 귀국 주변

    ◎“두달전 월간지 인터뷰서 시인”/“선거 위로조로 받았다” 기존입장 재확인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29일 하오 3시3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귀빈실에서 보도진들에게 비자금 수수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10분간 짤막히 설명했다. ○…김총재는 『노태우씨가 부정축재한 돈일줄 정말 몰랐다』면서 『당시 노태우씨가 민자당을 떠났었고,중립내각이 구성된 상태여서 선거에 대한 위문성격의 돈인 줄 알았었다』고 기존의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김총재는 『이미 북경에서 충분히 밝혔으므로 여기서 더 할말은 없다』면서 『비자금과 관련한 당의 입장과 나의 생각은 내일 당에서 지도회의를 열어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그는 또 『숨길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한 푼도 안받았다」고 당에서 발표한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오였다』고 사과한 뒤 『두달전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돈을 받았다는 내용을 이미 내비쳤었다』고 강조했다. ○…김총재는 비자금 수수와 관련된 말은 자제하면서도 방중 성과는 길게 설명했다.김총재는 『교석 전인대중앙상무위 의장등 중국의 지도자들과 만나 여러 의견을 나눴다』면서 『특히 일본의 극우보수화 경향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모았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중국내에서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과의 교류는 단순히 경제협력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강대국의 패권주의를 막는 차원에서도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포공항에는 『입출국시 일체 나오지 말라』는 김총재의 지시에도 불구,정대철·조세형·박상규 부총재를 비롯,김영배·손세일·한광옥·신순범·김대식·유준상·박상천·남궁진·한화갑·김옥두 의원과 당직자등 1백50여명이 나와 김총재를 맞이했다.
  • 일본 정치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창순 국제부 차장(오늘의 눈)

    일본 사회당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두개의 얼굴로 인식돼왔다.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붉은 색의 사회주의정당이라는 인식과 함께 일본의 「양심세력」이라는 인식이 혼재해왔다. 냉전의 잔재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회주의정당은 우선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하지만 사회당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거부하고 그들의 만행을 비난해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그러한 사회당의 당수다.그는 사회당내에서도 과거의 침략을 가장 강도 높게 비난해온 좌파의 대표다.그러한 무라야마총리가 『한·일합방조약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실시됐다』는 망언을 했다. 그의 망언은 지금까지 되풀이돼온 일본지도층의 일상적인 망언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일본의 반복돼온 망언은 보수·우익세력의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은 진정으로 침략행위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그것이 일본 보수세력의 실체다.그러나 그러한 보수세력의 반대편에 있던 무라야마총리마저도 왜곡된 역사인식을 정당화하고 있다. 무라야마총리의 망언은 이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큰 충격이다.과거 침략행위를 반성·사죄해야 한다는 사회당과 무라야마총리의 지금까지의 주장이 단순히 허구적인 「행위예술」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라야마총리는 진솔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된 후 그의 말과 행동은 조금씩 보수·우익세력의 논리에 접근해왔다.그러다 마침내 군국주의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는 일본의 보수화물결속에 일본사회 모두가 용해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일본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2차대전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이 통하지 않아왔는데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일본인의 그러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들 스스로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함을 무라야마총리의 망언은 증언하고 있다.그들의 되풀이되는 망언은 이제 신물이 난다.하지만 매번 발끈하는 우리의 처지도 서글프다.냉엄한 국제현실에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망언을 되풀이하는 일본을 역사왜곡의 초라한 섬나라로 보이게 하는 빠른 길인지도 모른다.
  • 미국 「정치 잡지」열풍/국내 정치평론 주로 게재… 10여종 인기

    ◎케네디 주니어 발행 「조지」 창간호 흑자/보수성향 「내셔널 리뷰」 22만부 팔려 미국에서 정치전문 잡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상업성이 하도 철두철미해 출판되는 잡지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시사·연예·취미잡지와 대별되는 순전한 정치 잡지만은 찾아보기 어려울 성 싶은 미국이지만 실상은 꾸준히 발행되는 정치잡지가 상당수에 달한다.그중에 몇몇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일반뉴스가 아닌 정치논의에 있어서도 라디오와 TV의 토크쇼한테 할 말과 일거리를 거의 다 잠식당한 것은 사실이나 십만부 이상씩 팔리는 정치 주·월간지가 여럿 상존해 미국의 정치와 문화를 심도있고 다채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널리 홍보된 끝에 최근 첫 시판된 옛 대통령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 발행의 「조지」란 월간지 표지에서는 슈퍼 모델 신디 크로포드가 배꼽을 드러내놓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으로 분장하고 있긴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가 누누이 강조하듯 「롤링스톤」이나 「배니티페어」 외형을 갖춘 엄연한 정치잡지다.2백80페이지 중 1백75페이지가 광고이며 50만부를 찍었다.다음호는 몰라도 이번 창간호는 수지가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보수파 정치주간지로서는 30여년만에 처음이라는 「스탠다드」가 선을 보였다.미 보수파의 귀족적 원로 자제들이 공화당 압승과 보수화 시류에 고무돼 만들어낸 이 잡지는 10만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 보수파 정치잡지의 큰형격은 「내셔널 리뷰」로 격주간지인 이 잡지는 평균 22만부의 판매부수를 과시한다.보수성을 띤 월간 정치잡지 「어메리컨 스펙테이터」는 25만부가 팔린다. 진보적 색채로 독설이 심한 「워싱턴 먼슬리」는 28만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며 미 정치잡지 중에서 탁월한 젊은 정치평론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또 길러내는 전통으로 유명한 「뉴리퍼블릭」은 10만부.철저한 진보성향에서 약간 비켜선 진보적 보수파로 해석될 수 있는 「네오콘」(신보수)조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네이션」이 9만부,「프로그레시브」가 4만부가 팔리는데 모두 진보적 색채다. 「타임」 「뉴스위크」지가 세계적으로 매주 3백만∼4백만부씩 팔린다지만 기삿거리가 숱한 세계 뉴스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미국 국내정치에 대한 평론만을 다루는 정치잡지들이 10만부 이상 팔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왕가영 홍콩중문대 아태연연구원(해외논단)

    ◎정치대결 넘어 홍콩 민주발전에 기여/시민들 97년 주권이양 우려… 대중 비판의식 표출 왕가영 홍콩중문대학 홍콩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은 홍콩입법국(의회)선거결과를 분석한 글을 19일자 홍콩 연합보에 기고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영국식민지아래서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가 어제 완료됐다.이번 선거는 중국과 영국정부의 홍콩에 대한 정치개혁 협상이 실패한뒤 중국정부의 반대아래서 홍콩의 영국정부 단독결정으로 치러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선거를 둘러싸고 중국과(홍콩의)영국정부사이의 마찰·갈등은 물론 「민주파」와 「친중파」를 둘러싼 2대 정치세력사이의 공방및 정치적 긴장이 조성됐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현지는 물론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97년까지 정치적 합의와 정치발전전망,각종 모순과 문제를 담고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의 영국정부는 이런 선거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광고및 대민선거등에 적잖은 돈을 투입하는등 물량작전을 펼쳤다.반면 이 선거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선거를 부정하면서도 「친중파」를 통한 선거참여에는 적극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홍콩에서 중국정부를 대표하는 신화사는 선거당일에도 중국정부는 97년 7월1일,입법의회에 대한 해산방침엔 변함없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이번 선거의 과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그러면서도 「친중세력」의 참여극대화에 노력했다.97년 홍콩을 접수할때 「친중파」를 통한 각 권력기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정치적 우위를 장악하려는 계산이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자는 92만여명으로 이전 투표자수보다 17만여명이나 많다(투표율 35.79%).투표자 수로 따질때 홍콩투표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한 것이 된다.구체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각종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무형의 압력속에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가한 것은 홍콩시민들의 민주·자치선거에 대한 긍정과 정치적 성숙성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합의는 미래 정치발전과 판도에 대한 충격성에 있다.이번 선거에서의 「민주파」의 승리로앞으로 홍콩입법의회에서 민주적 성향과 탈중국적인 자주성향의 색채가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민주파」는 친중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강한 대항능력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것은 「민주파」의 방대한 동원능력과 민간의 지지다.반대로 친중파인 민건련의 김옥성주석등 핵심인물들이 참패,낙선한 것은 일반 홍콩시민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와 비판의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지난 89년).천안문 6·4사태가 지난지 오래지만 이에대한 홍콩시민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듯 하다. 97년 주권이양에 대한 홍콩인들의 일종의 감정이 이번 선거에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민주파」를 선출하는 것이 「친중파」를 뽑는것보다 더 주권이양의 과도기에서 더 홍콩시민들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다른 각도에서 볼때 이번 선거에서 「친중 인사」들의 낙선으로 97년 주권회복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정부의 정책은 더 보수화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현행 선거방식과 제도에 대한 변화도 예상된다.현행 소선구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1등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제도를 대선구제,또는 중선거구제로 변화시켜 「민주파」가 우세를 나타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희석시켜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친중적인 민건련의 핵심인사들은 낙선했지만 그들의 지지율 자체는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이 점에서 이들 역시 이미 홍콩시민들의 민의에 대한 기초를 확보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친중인사들의 주요 패배 요인 가운데는 중국과 영국의 홍콩정부사이의 차이및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앞으로 중·영관계가 개선되고 양쪽의 차이가 줄어든다면 이들의 활동공간도 커질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직접 선거구민들을 대면하고 선거운동을 한 친중인사들의 행동은 대단히 용기있는 것으로 평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들이 승패로서 영웅을 논하지 않고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이원대립의 정치대립을 넘어서서 말한다면 이들은 모두 다 홍콩 민주정치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즉 이러한 선거를 치러 냈다는 과정 자체가 민주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 이들에게서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면 누가 정말 민주정치의 실천자인지 분별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이것을 확인하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것으로 생각된다.
  • 새정치국민회의의 창당(사설)

    김대중씨를 총재로 하는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대회를 가짐으로써 공식출범했다.제일야당의 창당에 일단 축하의 뜻을 보낸다.그러나 김총재는 과연 이 길밖에 없었던가 하는 착잡한 심경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대다수국민들이 갖는 의구심은 이 창당이 과연 새술을 새부대에 담는 진정한 새출발인가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김총재가 두번씩이나,그것도 민주정치가 정상화된 지금에까지 멀쩡한 야당을 깨고 굳이 새당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는 계속 남는다.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세대동안 우리정치를 좌우해온 김총재의 대권4수를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어떠한 성형수술이나 신장개업도 새술이나 새부대로 보아 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아닐수 없다. 김총재가 세번의 대권도전에 실패하고 국민심판에 따라 스스로 선언했던 정계은퇴약속을 거짓말로 만든 부도덕성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또 국민회의가 갖고 있는 지역주의와 사당적 성격,그리고 창당과정의 이합집산등 구시대적 병폐는 창당대회를 계기로 해소되는 「한때의 오해」가 아니라 국민회의의 불행한 태생적 한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여야를 가리지 않고 도덕성과 정당성을 거스르는 정치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정치사의 교훈을 명심하여 새정치국민회의가 자기모순을 극복하는데 힘써야 한다.지역주의를 탈피하고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창당대회가 김총재의 이미지를 바꾸기위해 정강정책을 보수화하면서도 야당으로서 확실한 정치개혁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개혁성의 실종은 「새정치」의 내용부재를 반증한다.「새정치」라는 것이 김총재의 대권4수의 포장이 아니라면 다른 구체적인 정치개혁안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4당체제 아래서 제일야당으로서 국민회의가 갖는 위상은 현실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김총재도 말한 바대로 국회에서의 정치투쟁지양등 책임있는 야당상을 보여준다면 정치발전에 긍정적인 기여가 될 것이다.
  • 동남아/화교 기업들 경영권 분쟁/테코사 창업2세­사위 불화

    ◎예오그룹 상속싸움 휘말려 동남아의 화교자본이 휘청거리고 있다. 가족중심으로 똘똘뭉쳤던 싱가포르,대만,홍콩등지의 화교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에 말려들어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중국인 특유의 장삿술로 성공했던 이들 기업들은 서로 회사의 「방향타」를 잡으려는 2·3대 후손들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으로 정상적인 회사경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또 경영권분쟁이 해결돼 어려운 고비를 넘기더라도 경영자가 회사 곳곳에 포진한 친인척의 눈치를 살펴야는등 서로간의 마음에 난 깊은 골은 쉽게 아물지 않을 전망이다. 동남아 식품·음료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싱가포르의 예오 히압 셍그룹은 내홍으로 경영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만큼 막심한 타격을 입은 화교자본 중의 하나다.지난 35년 중국 복건성에서 건너온 간장제조업자가 세운 이 회사는 끈끈한 형제애를 바탕으로 동남아 음료시장의 상권을 장악했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에 따라 하루 두차례씩 회동,형제들의 사업을 논의할만큼 가문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최고 경영자에 오른 창업자의 손자인 알란 예오씨는 86년부터 94년까지 싱가포르 무역개발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88년엔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그러나 89년부터 불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당시 무역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인수한 미국계 통조림회사가 적자를 낸것이 도화선이 됐다.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가족원들이 단합해서 「정보독점」등의 이유로 알란씨를 맹비난했고 그는 이에 대해 자리만 차지했지 무능하다고 맞받아쳤다. 친·인척들의 압력에 굴복한 알란씨는 마침내 지난 1월 회장직을 사임했다.예오 그룹의 회장은 싱가포르 와이와이 그룹 회장으로 대체됐고 최고경영자(CEO)는 전직 휴렛패커드 간부가 떠맡았다.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부동산 재벌이 세력을 쥔 이사회에서 예오 형제들은 소주주로 전락해버렸다. 대만의 「블루칩」인 테코 일렉트릭에도 지난해 한차례 집안싸움의 태풍이 지나갔다.설립자의 사위로 회사경영을 맡고 있던 테오도르 후앙씨는 소외감을 느낀 아들들로부터 「원망」을 샀다.정권과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다거나 해외여행이 잦다는게 주된 불만이었다.결국 아들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분규는 타결됐지만 애초에 장거리 통신과 해외로 진출하려던 「야심찬」 계획은 중단됐고 이 와중에 회사 주식은 바닥권으로 폭락했다. 이와 같은 불안정성은 각각 68세와 78세의 회장이 지휘하고 있는 대만의 항공·운수그룹 「에버그린」이나 차이나트러스트 뱅크와 대만시멘트 등이 포함된 재벌 등 창업자가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고령인 기업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난다.80년대 아들중 한사람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확대시키려다 투자자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던 홍콩 부동산회사인 뉴월드 디벨럽먼트의 회장은 동요하는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건재를 확인시키는 해프닝도 일어났었다. 홍콩의 경제전문가들은 화교자본의 동요는 설립당초부터 뒤얽힌 복잡한 혈연관계가 분열의 씨앗을 제공해 원초적으로 내분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하지만 세대교체 혹은 경영층의 지각변동이 반드시 악재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찮다.거대기업의 해체로 완전히 새로운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고 또 젊고 유능한 전문경영자를 수혈받아 수십년간의 족벌운영으로 보수화된 기업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남아 화교경제권의 풍경화는 한마디로 사망이 임박한 등소평 사후의 권력구도를 짜기에 급급한 모국 중국과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 「부전결의」 깨기 의도적 도발/와타나베 망언 왜 나왔나

    ◎「전후50년」 일 사회 보수화기류 팽배/자민 등 세확대 노려 「침략미화」 경쟁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의 망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일본의 총리나 각료 등 지도자들은 50년대 이후 망언을 되풀이해 왔다.최근 들어서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연립정권 수립 당시의 약속을 깨기 위해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우리만 했느냐,그말을 넣으면 배상요구가 다시 나올 것이다,전쟁희생자들을 욕되게 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공공연히 해대고 있다.일본에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이 있지만 삐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이웃나라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 만큼 많다.전후 50주년을 맞아 그들은 더 많은 망언을 쏟아놓을 가능성도 높다.와타나베의 망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 등을 주장하면서 호시탐탐 한반도 강점을 노렸던 사실,무력을 동원한 강압적 합병,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 기도,징병·징용에 이어여성들을 데려다가 위안부로 삼고 전쟁말기 대부분 살해한 사실 등은 외면한다.그들은 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 등 역대 총리가 국회답변 등 공식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사실로부터 후퇴하고 있다.이들은 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말한다.가해의 역사는 땅에 묻어버리자는 속셈이다. 와타나베는 특히 외상까지 지낸 인물로서 평소 친한파로 여겨져왔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부전결의를 반대하는 자민당내 의원들가운데는 평소 친한파로 행세해 온 인물들이 많다.이같은 사실은 이제까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뒤편에서 늘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엉뚱한 짓을 전개해 왔다.지난해에는 인체실험을 했던 부대터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인골 1백여구를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검사도 않은 채 화장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이를 막기 위해선 그들의 가해의 역사,반인류의 만행들에 대한 확실한 뒤처리를 일본에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와타나베는 지난 3월 연립여당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국교정상화교섭 재개를 합의했고 지난달에는 북한대표단을 만나 쌀문제 협의를 주도하기도 했다.그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무라야마의 연립정권은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 부전결의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어떤 면에서는 일본에서 거세지는 보수화 바람에 편승한 자민당이 이같은 연정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3일 와타나베의 망언도 이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 일 폭발물 소포테러/도쿄도지사 노렸다/건전지 이용한 기폭장치 설치

    ◎「니혼 TV 폭바」관련 병행수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경찰은 17일 도쿄도지사 비서실 우편물 폭발사건은 아오시마 유키오(청도행남) 도쿄도지사를 직접 노린 테러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우편물의 발신인이 다나카 코조(전중황삼·67) 도의회 자민당 간사장 이름으로 돼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범인이 다나카 간사장의 이름을 사용한데는 특별한 범행동기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중점 수사중이다. ◎잇단 테러사건 왜 터지나/일 열도/경제성장 그늘서 병리 만연/전문지식·집단교육으로 윤리관 부재 초래/“사회 폐쇄성 탈출”… 광신집단 추종자 증가 일본은 요즘 사건 사고로 편할 날이 없다. 한때 안정된 사회로 평가받던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맞는 올해들어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사건 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한신대지진 당시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어 아픔을 함께 나눈 것도 일본의 모습이지만 옴진리교 사건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곳에 갑자기 해충군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느낌」(도쿄신문)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런가 하면 옴진리교단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청산가스사건,도지사를 상대로 한 폭탄테러도 잇따라 터지고 있다. 옴진리교단은 보통의 사이비종교와는 달리 국가를 흉내낸 체제를 갖추고 과학으로 무장을 시도했다.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도 아주 쉽게 결행했다.신자들중에는 이공계를 중심으로 고학력의 젊은이들이나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엘리트들이 다수 포섭돼 있었다. 이에대해 우선 전후의 경제우선주의 및 성적을 중시하는 교육이 인간관계를 경시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또 다른 의견은 일본 사회의 폐색감과 불투명성으로부터 초능력에 의지해 탈출하려한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한다.또 컴퓨터게임의 세대가 공상세계와 현실을 착각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아사하라 교주의 「공중부유」 등 상식밖의 초능력과 공상을 믿게 된 사회적 원인으로 전문지식 위주의 편협한 교육,실증적인 과학교육의 부재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이들은 일반대학 교육이 전문교육 위주로 흐르다 보니 젊은세대들의 시야가 좁아졌다면서 윤리관 확립,비판적 안목의 강화등 전인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후 50년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앞서 가는 구미만 보고 달려온 결과 이제는 구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무엇을 보고 어떻게 달려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목표를 제시하기 보다는 권력다툼에만 몰입해 있다.사회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윤택화·보수화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인간관계,가정과 사회의 룰이 확립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특히 지식인 사이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방치될 경우 자칫 나치시대나 전전의 일본사회에 있었던 것과 같은 광신적인 맹신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교토대의 아사다 교수는 산케이신문 기고에서 『70년대 학생운동,80년대 만화등 서브컬처에 몰입하던 젊은이들이 이제 기묘한 종교에 모여들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옴진리교의 조직은 구소련의 스탈린주의를 생각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또 도호쿠대의 아사미교수는 일본 사회는 옴진리교와 같은 광신집단을 다룰 태세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광신집단이 출현할 수 있다면서 제2의 아사하라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억강부약으로 사회적 조화를/이수윤(서울광장)

    국민들은 사회적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연속되는 안전사고는 국민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있다.국민들은 그 와중에서도 우주보다 더 소중한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생명을 1백명 단위로 앗아가는 사고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국민들은 그와 같은 사고의 빈발을 막는 근본적 대책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정치적 주도세력은 사고의 궁극적 원인이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적당주의에 있다고 간단히 얼버무려서는 안된다.정치적 주도세력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의식개혁을 해야 한다는 공허할 처방을 내려서도 안된다.정치적 주도세력의 그와 같은 주장은 국민들의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고 있다.국민들은 그 모든 사고의 원인이 좀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국민들은 국가의 이념적 방향이 보다 분명하게 구체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사회적 환경이 시민적 의식을 규정하는가 아니면 시민적 의식이 사회적 환경을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존재와 의식의 대립형태로 철학에서 항상논의되어 왔다.그 문제는 일면적 파악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존재와 의식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관점이 그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이다. 역사적·철학사적 검토에 입각해 볼때 의식개혁 운동은 항상 이중성을 띠고 있다.역사의 흐름이 보수화할수록 사회경제적 주도세력이 위선적일수록 그들은 스스로는 새로운 의식을 갖추지 않은채 심각하게 터져 나오는 사회적 갈등과 병폐의 원인을 개인적 인성의 결함과 시민적 도덕의식의 결핍에로 돌리면서 사람들이 기존의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충실히 적응하여 자신들의 맡은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바른 의식을 확립해 줄 것을 소리높여 외친다.역사의 대전환기일수록 정치적 주도세력이 진실할수록 그들은 새로운 의식으로 이론적 무장을 갖추고 그 이론에 따라 사회구조를 개선하는데 진력하면서 자유이념을 향한 역사진보를 실현해 왔다.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적당주의적 국민의식을 불식하여 안전사고의 빈발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진리에 입각한 이론에 따라 사회구조를 조화로운 방향으로개선해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지금은 한사람 한사람의 안녕과 행복이 다른 모든 사람의 의식과 행동에 결정적으로 의존하여 있는 시대이다.어느 한 사람도 생활전선에 위협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어느 한 사람도 억울한 대접을 받도록 해서는 안된다.극단적인 계층적 배타주의와 치열한 개인주의적 경쟁으로 인해 국민적 화합에 이상이 생기고 시민적 친애의 정신이 마비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그 어느 누구의 안녕과 행복도 보장될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의 긴급한 과제는 만인자유 실현을 향한 역사진보 이념에 따라 최선의 국가체제와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확립하는 일이다.바로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우리의 국가적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일이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적 이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민 모두의 자유 실현을 지향하는 국민적 자유주의이다.국민적 자유주의가 바로 민주주의이다.민주주의는 소수 부자들만의 자유만끽을 추구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구별된다.정치적 이념에는 네 유형이 있다.보수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가 바로 그것이다.보수주의의 정의원칙은 강귀약천이다.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의원칙은 약육강식이다.국민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의 정의원칙은 억강부약이다.사회주의의 정의원칙은 약존강폐이다.철학적 진리는 사회적 조화 실현을 정치적 이상으로 하는 국민적 자유주의이다.우리의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바로 국민적 자유주의이다.그 이념이 충실히 구현될 때 희망에 찬 국민들의 의식은 개혁되고 안전사고는 확실히 예방될 것이다.
  • 자위대 PKF 참가/일 사회당,허용 추진

    【도쿄=강석진 특파원】 자위대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에도 반대했던 일본 사회당이 유엔 평화유지군(PKF) 참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워 사회당의 보수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회당은 7일 중앙집행위 간담회를 열어 「민주·리버럴」 신당 결성을 위한 「95년 선언」 원안을 마련,PKF 참여에 대해 『무력행사를 전제로 하는 평화집행군과 유엔군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적 입장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말 발표했던 기초위 초안에서 『PKF 참가 동결 해제는 신중히 대응한다』(사실상 부정하는 일본어식 표현)고 표현했던 것보다 한발 더 PKF 참여에 적극적인 문귀다.
  • 「시대흐름 읽은 통찰력」일 부흥 일궜다(신 지도자론:4)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새진로 찾는 일본/「군사력없는 경제대국」 국가목표 설정/요시다/보수화 국제조류 타고 “정치대국”발진/나카소네/「록히드」등 정치자금 스캔들 사회자정 계기로 일본은 역사의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중의 하나이다.시대의 흐름을 국가발전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그러한 능력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의 합작품이다. 일본이 전후 반세기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지도자의 정책과 그것을 충실히 실행한 국민의 힘이었다.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시다 시게루.요시다는 참담한 패전의 절망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46년부터 54년까지 5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요시다는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목표를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경제건설에 집중 투자했다.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필요한 것은 경제부흥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그의 전략적 선택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올바른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요시다는 미·소냉전속에서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안보는 미국의 맡기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요시다는 그러나 경제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그는 열렬한 천황숭배주의자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상적·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요시다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를 냉철하게 읽고 경제지상주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찰력 있는 선택이었으며 전후 전혀 새로운 상황은 통찰력과 뚝심있는 요시다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요시다의 뒤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총리 등도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을 충실히 실행해왔다.국가주의 신본자인 기시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일본지도자들은 전후 기술과 시장을 함께 제공한 미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시다이후 70년대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다.그는 「결단과 실행」의 정치인 답게 「일본개조론」을 내세우며 전 국토의 개발이라는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했다.그의 개발론은 부동산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경제를 더욱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나카는 또 외교에도 과감했다.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 움직임을 보이자 「컴퓨터가 장착된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84일만에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다나카는 중국의 중요성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 차지하는 무거운 비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다나카는 그러나 과거사문제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지만 과감하게 정상화를 이루어 지도자의 결단력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청렴성이 부족했다.그는 개발이익을 정치자금과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더욱이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되는 불행을 맞았다.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쓸쓸히 사라진 그의 비극은 정치가에게 도덕성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정치에 보수화물결이 나타나자 일본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며 민족적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를 선도했다.나카소네는 레이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높혔다.나카소네는 전후 일본이 고수해왔던 평화주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고 군비증강을 시도했다.그의 정책은 내외에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지금의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위해 발진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정치에는 고질적인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됐다.다나카 뿐만아니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도 정치자금 스캔들로 사임했고 마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스캔들에 연루됐다.정치자금 스캔들은 그러나 일본사회를 정화하는 중요한 자정의 계기가 됐다.일본인들도 고도성장기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을 어느정도 묵인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다.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인기속에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그러나 호소카와도 정치자금의혹에 연루되며 8개월 만에 총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됐다.그러나 호소카와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 살아남기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인 것이다.일본은 지금 정치적 혼돈속에서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일본은 전후 경제제일주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경제신화를 이룩하고 지금은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적 혼돈은 그러한 실험이 아직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위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 정치판도 우경화(일본 「21세기 야망」:3)

    ◎“유리한 국제질서 창조” 신보수주의 대두/해외파병 제약 평화헌법 개정론 점차 확산/오자와 등 뉴리더들,“권력집중” 양당제 구상/무라야마 등장,사회당 해체 앞당겨 역사에 적응력 과시 『일본으로부터 미국에 좋지않은 두가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달러하락과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이라는 뉴스입니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탄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6월30일 미국의 NBC TV방송이 도쿄발로 보도한 뉴스다. NBC방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이 일본총리로 선출된 것을 이같이 미국에 나쁜 뉴스라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스도 같은날 『사회주의자가 일본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고 냉전시대 「거대한 악」이었던 사회주의자가 아시아 동맹국 일본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에 나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지않은 뉴스의 더 심오한 의미는 사회당위원장이 총리가 된 오늘의 정치상황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을지도 모른다.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사회당의 몰락을 앞당기고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강화를 촉진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조금씩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거시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무라야마 위원장도 자신의 총리선출이 사회당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해서일까 당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사회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역류가 아니라 일본의 놀라운 역사의 적응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국제공헌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라 전후 반세기동안 1국 평화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사회당의 퇴조를 가속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퇴조와 함께 일본에서는 미국의 보수화 회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것은 일본정치의 총보수화라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보수화가 일본정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나카소네 내각의 등장 때라 할수 있다.그는 저서 「새로운 보수의 논리」에서 『지금은 국내경제본위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욱 넓은 세계를 향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그것은 곧 보수통치의 부활이다』하고 역설했다. 안으로는 보수화,밖으로는 대국화를 지향하는 나카소네 전총리의 이러한 보수정치와 「전후정치의 총결산」 외침은 2차대전전 일본의 전통적 가치였던 국가주의와의 연속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러나 전후 교육을 받은 뉴리더들의 신보수주의는 천황제나 신도사상등 복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그들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 일본도 국가개조를 하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하타 쓰토무 전총리등 뉴리더들은 극우파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다.그들은 일본 국왕을 신으로 보지 않으며 군사력으로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극우파의 제국주의적 환상도 거부한다.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은 오늘의 일본은 국제적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막강한 경제·산업·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질서에 순응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전후세대들은 물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침략과 패전의 아픔보다는 성장과 풍요로움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적 우월감과 자신감에 도취하여 또다른 패권의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그러한 우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보수주의 뉴리더들의 군사적 국제공헌론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국화 의식」에서 읽혀진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후 국제상황에 맞지않는 국내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이내믹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을 단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선거개혁이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치는 2대 정당제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당·공산당등 혁신세력은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오자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집중형 양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일본의 국제화·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하나 남아 있다.헌법의 개정문제다.평화헌법은 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있다.물론 지금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고 있다.그러나 훨씬 더 적극적인 해외파병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헌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0%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평화주의 유토피아」에서 안주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그러나 평화헌법은 미군점령기의 굴욕적 유산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외침속에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최대의 평화헌법 수호자인 사회당은 그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을 바꾸는것은 일본이 강요된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헌법 틀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역사인식이다.일본은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일본방위아카데미 책임자를 역임한 온건보수파 지식인 마사미치 이노키도 『평화헌법의 개헌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나머지 마귀들이 모두 튀어나와 밤공기를 어지럽히는 사태와 같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 르완다·보스니아 종족학살 최대비극/되돌아 본 지구촌 ’94

    ◎중동·남아공·아일랜드 평화 큰 걸음/아·구·미주 경제블록간 경쟁 격화 예고/부패스캔들·폐페스트 공포로 “홍역” 94년 역시 수많은 사건·사고가 지구촌에서 벌어졌다.제각기 별개의 사건들인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다.하지만 굳이 두드러진 한가지 추세를 끄집어낸다면 종족분쟁으로 대표되는 정치 측면에서의 분열과 블록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경제 측면에서의 통합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두드러졌던 한 해였다. 이같은 양극화 현상은 앙골라·라이베리아 내전 등의 휴전 돌입,남아공·북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기대 이상의 평화 진전 및 반세기만에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찾은 미국과 북한,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를 낳은 중동 각국간의 관계 개선에 비해 눈에 띄게 심했던 보스니아와 르완다,체첸공화국 등에서 목격된 비극적 분쟁에서도 뚜렷한 대비를 나타냈다. ○명암 뚜렷이 갈려 국제정치면에서는 냉전구조 와해 후 단결목표를 잃은 각국이 아직 윤곽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새 국제질서를 어떻게든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확립하기 위해 끝없는 암중 대결을 계속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미국에 밀리기만 하던 러시아는 옛 영화를 되찾으려는 듯 코지레프 외무장관,옐친 대통령 등이 미국에 대해 러시아를 배제한 국제사회의 안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경고를 잇따라 내놓았다.또 그동안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던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오랜 동맹관계에 있던 서유럽도 보스니아 내전 해결 방안을 놓고 미국과의 대립을 서슴지 않았다. ○미·러 대립 새국면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이념 대립에 따른 대결 구도는 사라졌다.그러나 종족대립과 종교갈등 등이 그 빈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면서 아프리카와 옛 소련,동유럽 등지에서 과거와는 다른 국지적 분쟁이 94년 지구촌의 새 이슈로 떠올랐다.종족·종교갈등은 분쟁의 최대 원인으로 부각됐다. 소수 투치족에 대한 다수 후투족의 학살로 시작돼 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 내전과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주민들에 대한무자비한 「종족 청소」가 끝없이 이어진 것은 94년 지구촌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됐다.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전격 무력침공은 「도를 지나친」 인권탄압이란 비난을 불렀고 성탄절을 앞두고 벌어진 알제리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비행기 납치와 인질 살해극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해야 할 성탄절을 피로 물들게 했다.협상을 통한 통일성취로 부러움까지 샀던 예멘은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예멘측이 다시 독립을 시도,전쟁까지 치른 끝에 무력으로 독립 움직임을 잠재웠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또다시 쿠웨이트에 침공 위협을 가해 걸프전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도 했다. ○러 인종분규 이슈화 이같은 사건들은 국제정치 분야에서 확실한 중심 핵이 사라짐으로써 옛 체제속에서의 협조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구심점을 잃은 국제정치무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소리만 커졌고 구멍난 협조체제의 균열 사이를 종족·종교갈등과 이해대립이 비집고 나왔다.옛 소련의 자멸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란 뜻하지 않았던 지위를 얻은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를 굳히려 했지만 소련의 공백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기대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는 실패했다. 그 반면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경제를 하나의 협조틀 속에 묶는다는 취지 아래 오랜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내년초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그러나 WTO체제가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불투명하다.협조체제 구축보다는 치열한 경쟁에 따른 이해 마찰의 소지가 아직도 더 크다.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올 한해 지구 전체에서 큰 유행을 이룬 통합의 물결은 경제주도권을 잡기 위한 통합경제세력간의 경쟁이 격화할 것을 예고해 주고 있다. ○WTO성공 불투명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지대(EEA)의 창설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미주자유무역지대(AFTA)로 확대·발전시키려는 움직임,가장 활발한 경제성장을 계속한 아시아지역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출범 노력등 94년 내내 이어진 활발한 통합 물결은 정치분야와는 달리 경제분야에서는 어떤 틀을 형성해 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같은 경쟁 심화는 한편 실질적인 경제 성과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해 국민들로 하여금 보수화의 길을 걷게 했다.그 대표적인 예가 40년만에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미국 중간선거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깨끗한 정치와 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일본 연립정권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민·사회 연정에 정권을 내준 것이라든지 독일의 콜 총리가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하면서 재집권한 것과 프랑스 좌파정부의 몰락,동유럽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옛 공산정당들의 부활 추세 등 보수화의 물결은 올 한해 지구촌 곳곳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도 세도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지만 유럽,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부정·부패 스캔들은 94년 주요 뉴스로 연일 현지 언론들을 장식했다.지난 3월 화려한 출범식을 가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끝내 부패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임,단기총리로 막을 내렸다.프랑스에서는 끝없는 각료들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현직 각료가 구속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영국에서 전해진 살을 파먹는 괴박테리아 소식과 인도에서 발생한 폐페스트 소식은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공포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지옥이 따로 없는 참극을 빚은 르완다는 곳곳에 널린 난민들의 시체와 불결한 위생 상태로 온갖 전염병의 발원지가 됐으며 그밖에도 아프리카와 동남아,러시아와 동구,또 중국에서도 페스트와 콜레라,디프테리아,홍역 등 갖가지 전염병의 발병 소식이 전해졌다. ○종파갈등 더욱 심화 한편 연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연말 일본에서 일어난 강진,유난히 잦았던 호우·가뭄 등 자연재해와 일본에서의 여객기 추락과 에스토니아호 침몰 등 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형사고 앞에서 인류는 엄청난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기만 한 존재를 다시 실감해야만 했다.「인간복제」실험은 그 결과가 가져올 가공할 사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논란을 빚었으나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의 메디컬센터연구팀이 결국 이 연구를 중단해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성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신진당출범/일 정계 총보수화 신호탄

    ◎내일창당… 정강과 열도 정국 전망/의원 180명… 소선거구제 생존위한 선택/개혁이념 부재… 「자민아류」 극복이 과제 일본 공산당을 제외한 야당이 모여 10일 창당하게 되는 신진당은 「제2의 자민당」이다. 신진당은 자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신생당,자유당,신당 미라이,가이후전총리 지지세력인 자유개혁연합,일본신당,공명당은 물론 34년전 사회당과 갈라졌던 민사당까지 포괄한다.야당들이 하나의 당으로 쉽게 결집하게 된 것은 최근 도입하기로 된 소선거구제 때문이다.난쟁이 당의 후보로서는 당선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로 뭉친 것이다.신진당의 창당은 지난 55년 자민당과 사회당의 두 기둥으로 세워졌던 일본 정계의 기존 구도가 완전히 깨졌음을 상징한다. 신진당이 내세우는 정책은 자민당과 차이가 거의 없다.주요 당 간부들도 자민당 출신들로 짜여 있다.특히 자민당 다케시타파 출신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간사장은 조직과 자금을 한 손에 장악한 실력자중 실력자다.신진당은 그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오자와당」으로서 정치행태도자민당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자민당 복사판이다. 오자와는 가이후의원이 자민당소속으로 총리를 하고 있을 때 자민당의 간사장이었다.그는 파벌내 항쟁에서 기세가 꺾이고 마침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거세게 불자 자민당을 떠나 신생당을 만들었다.그는 야당연립정권을 세워 자민당을 야당으로 밀어내고 흔들었다.자민당으로부터 많은 이탈세력이 나왔다.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당이 이탈,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세움으로써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했지만 이제 1백80여명의 의원으로 거대 야당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일본 정국이 자민당의 막후 실력자인 다케시타전총리와 오자와 신진당간사장의 대결로 압축됐다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신진당은 정치개혁의 흐름속에서 태어났지만 지금까지 보인 인선 및 정책비전은 개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선 밀실정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당수 결정과 관련 결국 하타·가이후·요네자와의 선거로 결착되기는 했지만 오자와간사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가이후전총리를 단독 후보로 만들기 위한 물밑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당내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보다는 파벌정치에서 몸에 밴 밀실조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밀실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실력자인 오자와의 뜻에 반해 하타전총리가 출마하자 하타·오자와 라인이 붕괴된 점도 밀실체질의 반영이다. 정책은 「새로운 일본의 창조」,「뜻있는 외교로 세계평화와 안정」,「생활자가 안심할 수 있는 복지와 풍요로움」,「신산업문명의 창조와 공생사회」 등을 내세우고 있다.지난 2·3개월동안 자민당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 헌법개정논의를 터부시하지 않는다든지 유엔의 개혁을 추진(상임이사국진출 의사의 다른 표현)한다는 내용 등을 포함시키고 있으나 자민당의 기존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이미 추진되고 있는 내용이다. 민사당과 공명당부터 자민당 이탈자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탈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루뭉수리하게 정책을 표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력하게 어필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이러한 정책과 이념의 부재는 임시국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대안부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신진당의 출현은 사회당의 정책전환과 함께 총보수화,총여당화하는 일본 정치변화를 상징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