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수주의자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0
  • 미 공화온건파/뷰캐넌 일제 공격/돌·알렉산더·파월

    ◎보호·고립주의 정책 강력 비난/각국,미제일주의 표방에 우려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 패트 뷰캐넌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자가 지난20일 뉴햄프셔주 예선 승리이후 급격히 부상하자 당내 온건파는 22일 그의 극단보수주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국제사회는 그의 보호주의 및 고립주의 정강에 우려를 표명했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뷰캐넌 후보에게 패배한 보브 돌 상원 원내총무는 사우스다코타주 집회에서 뷰캐넌 후보가 공화당을 분열시키고 벼랑끝까지 끌고갔다고 비난하는 한편 그의 보호무역주의를 공격했다. 라마 알렉산더 후보경선자도 뷰캐넌 후보의 무역정책이 경제발전을 후퇴시킬 우려를 안고 있다면서 그의 보호주의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와 함께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은 21일 밤 ABC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미국대륙 안으로 철수할 수 없다』며 뷰캐넌 후보의 고립주의를 비난하고 그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편 국제사회는 「미국제일주의」를 부르짖는 뷰캐넌 후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상당수 국가들은 그의 당선 가능성보다도 그의 국가주의와 보수주의가 이미 국민에 뿌리를 내린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특히 이스라엘은 그의 반유태주의 성향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멕시코는 그가 당선될 경우 인종적 적대감을 부추길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 각국은 극우 보수주의자인 그가 선전하는 데 우려를 보내고 있지만 당선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일본 정부의 한 소식통은 그가 일시 승리했지만 최종후보로 뽑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 뷰캐넌 돌풍(외언내언)

    20일 실시된 미국대통령선거전 뉴햄프셔주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패트 뷰캐넌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보브 돌후보를 앞섰다고 해서 미국은 물론 세계의 매스컴이 주목하고 있다. 뷰캐넌의 승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의 정치성향 때문.우선 그는 「미국제일주의」를 앞세우는 극우보수주의자.보호무역론자이며 외교적으로는 신먼로주의(고립주의)자다.뷰캐넌을 지지하는 세력이 이른바 「잊혀진 중산계급」이란 점도 특이하다.고졸학력 정도의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래서 그는 저소득층을 대변하는 사회주의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되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는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는 KKK단도 끼어있다.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경쟁자인 필 그램상원의원의 부인이 한국계라고 해서 그램을 유색인종주의자로 몰아붙였던 것도 그의 지지세력이 한 일로 알려지고 있다. 좀처럼 핏대를 내는 일이 없는 미국사회에서도 미국의 대표적인 격렬 논쟁프로그램인 CNN­TV의 「크로스 파이어」에서 연일 상대와 삿대질을 해가며 논쟁을 벌이는 것도 뷰캐넌이다.이런인물이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 그러나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4년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똑같은 해설이 되풀이 됐었지만 뷰캐넌은 대통령이 아니라 여전히 「크로스 파이어」의 고정 출연자에 불과했다.92년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뷰캐넌은 당시 현직대통령인 조지 부시후보와 맞서 부시를 58%대 40%의 득표로 추격,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그러나 그의 인기는 불과 3주후 11개주에서 동시에 예비선거가 실시되는 「슈퍼 화요일」에 끝나고 말았다.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 뉴햄프셔에서 그가 선전하는 것은 이곳이 대단히 보수적인 데다 인구 1백만이 조금 넘는 작은 주여서 이들 극우세력이 집중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기가 용이한 때문이다.그래도 문제는 남는다.미국에도 이런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뷰캐넌 1%차로 돌 눌러/미 뉴햄프셔 공화예선

    ◎5만6천표 얻어 득표율 27%/알렉산더 23%로 3위… 포브스 4위 【맨체스터=나윤도 특파원】 극우 보수파 TV 평론가인 패트 뷰캐넌(57)이 20일(현지시간) 실시된 뉴햄프셔주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선두주자 보브 돌 상원의원(72)을 누르고 승리했다. 개표 결과 뷰캐넌은 5만6천4백53표를 얻어 27%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돌의원은 5만4천91표로 26%의 득표를 기록했다. 예상밖으로 선전한 중도 온건성향의 라마 알렉산더 전 테네시주지사는 23%로 3위이며 단일세율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한때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억만장자 출판업자인 스티브 포브스는 12%를 얻는데 그쳤다. 공화당 뉴햄프셔 예비선거의 승리자인 뷰캐넌은 무역에서 낙태문제에 이르기까지 보수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인물로 특히 무역문제에 있어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보호 무역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뷰캐넌은 지난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예상밖의 우세로 2위를 차지하면서 뉴햄프셔주에서 돌 후보에 맞설 강력한 후보로 지목되어 왔다. ◎미 대선 뉴햄프셔 예비선거 결산/신보수주의 물결 거세질듯/뷰캐넌 정책 당론과 차이… 공화선거전략 혼선/세후보 격차 적어 공화후보 지명 장기전 예상 96미대통령선거의 첫번째 예비선거가 치러진 뉴햄프셔주에서 과격극우 보수주의자 패트 뷰캐넌 후보의 승리는 그동안 줄곧 선두를 달려왔던 보브 돌 후보 진영에 큰 타격을 준것은 물론 미국사회 전반에 신보수주의의 거센 파고를 몰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뷰캐넌의 승리는 당초 가정가치 등 사회적이슈로 출발했던 지명전 양상을 경제적이슈로 바꿔놓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가 제시한 정책들은 공화당의 기존 당론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어서 앞으로 공화당지도부의 선거전략에도 상당한 혼선을 빚게 됐다. 더우기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이후 돌­뷰캐넌­알렉산더의 3파전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첫예비선거에서 세후보가 모두 2∼3%의 근소한 차이를 기록함으로써 예년과는 달리 앞으로 공화당후보지명자의 윤곽이 잡히기까지는 장기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뷰캐넌이 자금과 조직력 지명도등에서월등히 앞선 돌을 제치고 선두에 나설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경제이슈에서의 승리 때문이다.99%가 백인인 뉴햄프셔주에서 경제민족주의 또는 경제보수주의라고도 불리는 그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근로자 이익보호 주창이 크게 어필할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혀 있던 백인사회의 불만을 대변했기 때문으로 볼수 있다. 뷰캐넌은 이번 승리를 계기로 아이오와 이전부터 줄곧 상승세를 이뤄온 여세를 몰아 전국적인 지지기반 확보에 나설수 있게 됐으며 타후보에 비해 열세에 처해있던 정치자금 모금에 있어서도 유리한 위치에 서는등 전반적인 국면전환을 이룰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랫동안 선두를 고수해온 돌의 패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힐것으로 보인다.일찍부터 잘알려진 그의 공약들은 신선감을 잃었으며 작년말 50%를 상회하던 인기도가 줄곧 하락해왔다는 점에서 상승세로의 분위기 반전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의 경우 그동안 펼쳐온 ABC(알렉산더(A)가 클린턴(C)을 이긴다(B=beat))전략이 크게 어필하는등 아이디어면에서 돌과 뷰캐넌을 한수 앞서왔다.아이오와에 이어 3위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인기도는 상승세에 있으며 뷰캐넌의 불안한 인기와 돌의 무기력에 대한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뷰캐넌의 부상에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자유무역이 보편화돼가는 시점에 그의 경제보수주의가 미국인 다수의 지지를 받을수 없는 것은 물론 그의 인종주의 반이민주의등도 문제라는 것이다.더우기 클린턴과 대적할 경우의 승리가능성 조사에서도 뷰캐넌은 31%로 알렉산더 34%,돌 46%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뷰캐넌의 신보수주의 물결이 전미국인에 어필할 수 있을지,돌이 기사회생할수 있을지,알렉산더가 제3의 대안으로 부상할 것인지 우선 당장 앞으로 다가온 24일의 델라웨어 예비선거,27일의 애리조나 예비선거 등 하나하나가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 미 뉴햄프셔주/대선 예비선거 시작/오늘 상오 10시 윤곽

    ◎뷰캐넌 선전속 돌 추격여부 촉각/뷰캐넌 “그램후보,한국계와 걀혼” 비방선전물 물의 【맨체스터(미뉴햄프셔)=나윤도 특파원】 미공화당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3파전을 벌이는 가운데 96 미대통령선거의 각당후보를 결정짓기 위한 첫예비선거가 20일 뉴햄프셔주 전역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주도인 콩코드시 중심가 성모잉태교회에 마련된 제1투표소를 비롯 2백98개 투표소에서 시작된 투표는 하오 7시(한국시간 21일 상오 9시)까지 계속되며 1시간 후면 잠정결과가 집계될 예정이다. 민주당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렇다할 도전자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반면 공화당은 8명의 후보 가운데 보브 돌 상원원내총무,패트 뷰캐넌 정치해설가,라마르 알렉산더 전테네시주지사 등 3명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보호무역 등 강력한 경제보수주의의 실현이 최대이슈로 돼있는 이번 예비선거는 특히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이후 급부상,돌 후보를 바짝 추격해오던 뷰캐넌 후보가 18일의 일부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돌 후보를 리드한 상황에서 치러지고있어 뷰캐넌의 역전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패트 뷰캐넌 미공화당 대통령후보의 선거참모들이 이달초 루이지애나 코커스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필 그램 상원의원의 한국계 부인 웬디 그램여사에게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돌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 뷰캐넌측은 루이지애나 코커스가 실시된 지난 6일 일부 행사장에서 그램과 웨디의 사진이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는데 여기에 백인인 그램이 유색인종인 웬디와 결혼한 사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는 것. ○돌,딕스빌노치서 선두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는 20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지만 딕스빌노치라고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서는 전통적으로 상오 0시에 온마을 주민들이 모여 투표를 한후 그자리에서 개표,결과를 발표한다.이번에는 이마을 총인구 30명중 유권자 25명이 참석,투표한 결과 보브 돌 상원의원이 11명의 지지로 선두를 달렸으며 또 라마 알렉산더 전테네시주지사가 5표,정치평론가 패트 뷰캐넌이 2표,출판재벌 스티브 포브스와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이 각각 1표씩을 차지. ◎뉴햄프셔 선 전망/공화 대선후보 결정 승부처/뷰캐넌­극우·보수 표방… 전통적 백인지역에 호소/돌―인기 하락세… “패배땐 회복불능” 배수진/알렉산더 “개혁정책 인기 지속” 제3의 선택 기대 「앵그리 화이트(성난 백인)」.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앞두고 극우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패트 뷰캐넌 후보의 인기가 점차 상승하는 양상을 이곳에서 흔히 표현하는 말이다.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부터 보브 돌 상원원내총무,패트 뷰캐넌 정치해설가,라마르 알렉산더 전테네시주지사의 3파전으로 압축돼 진행된 뉴햄프셔 예비선거전의 최대이슈는 실업문제와 세금문제로 요약돼 왔다.농업지대인 아이오와주에서는 낙태문제 등 사회적 보수주의가 주요 이슈가 됐던데 비해 공업지대로 근로자층이 많은 뉴햄프셔주에서는 자유무역으로 해외에 빼앗기고 있는 일자리와 임금하락을 막기 위한 경제적 보수주의가 크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뷰캐넌 후보는 나머지 7명의 후보 모두가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혼자 자유무역주의와 대기업 옹호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섰다.즉 클린턴행정부가 무역장벽을 허물기 위해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세계무역기구(WTO),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협정을 반대하고 이민자들로부터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반이민정책을 표명했다. 이같은 뷰캐넌의 주장은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백인지역인 뉴햄프셔에서 그동안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백인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켜왔다. 따라서 아이오와 코커스 직후 여론조사에서 20%로 25%의 돌과 5%포인트의 차이를 두고 있던 뷰캐넌의 인기도는 줄곧 상승세를 유지,18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돌을 1% 포인트 앞설 정도로 큰 약진을 보여 이른바 「뷰캐넌 바람」은 20일 투표 결과의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돌이나 뷰캐넌 모두에게 사활이 걸린 한판으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인기가 하락세에 있는 돌은 만일 이번 선거에서 패한다면 완전히 회복불가의 상황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자금면에서 열세인 뷰캐넌은 이번 선거에 「도박」이라고 불릴 만큼 전력투구를 해왔기 때문에 진다면 당장 다음번 예비선거를 치를 비용조차 걱정해야 할 입장이다.그러나 승리하면 국면의 전환으로 정치자금 모금은 물론 지명전까지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다.또 공화당에서는 뉴햄프셔의 승리자가 지명전 티켓을 따냈다는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한편 여론조사에서 줄곧 근소한 차이의 3위를 유지해온 알렉산더는 모나지 않는 개혁정책으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연방정부의 대폭축소를 주장하는 그는 자신이 부시행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바 있는 교육부의 폐지를 비롯,불법이민을 막기 위한 국경수비대의 창설,의원임기제 및 세비 반액삭감 등 급진적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돌과 뷰캐넌에게 인기면에서는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뷰캐넌이 당내는 물론 온건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사고 있으며 돌이 이렇다할 이슈가 없고 고령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유권자들의 제3의 선택을 불러모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로 본 공화경선 전망

    ◎「확실한 보수」 뷰캐넌 급부상 예고/72세 고령 돌 인기 점차 하락… 불안한 선두/“포브스 인기는 거품”… 알렉산더 도약 주목 보브 돌 후보가 그간 독점해온 「선두」의 실체가 드러났다.돌 후보는 예상대로 선두를 차지했지만 72세의 나이처럼 힘빠지고 빛바랜 선두에 지나지 않았다.그는 지난 88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획득했던 37%의 선두지지율이 재현되기를 열망했다.뉴햄프셔 여론조사의 인기도가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줄어들자 이에 제동을 걸 찬스로서 아이오와 인기재현을 기대한 것이다.그러나 아이오와에서도 그의 인기는 쇠락의 기운이 갈수록 역력했었다.코커스 직전 28%에 머물렸는데 이날 또다시 2%포인트를 까먹고 말았다. 당원의 절반를 점하는 보수강경층이 돌후보의 「보수」를 믿지 못하고 순수 보수주의자인 패트릭 뷰캐넌을 힘껏 밀어줬다.낙태절대금지,가정등 전통가치 존중,미국인 제일주의 등 공격적인 보수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한 뷰캐넌은 아이오와에서 3위를 목표로 했으나 2위,그것도 선두를 위협하는 무서운 차점자로 껑충 뛰어 올랐다.스티브 포브스의 4위 몰락과 라마 알렉산더의 3위 부상은 뷰캐넌 급상승 추진력과는 또다른 힘이 일으킨 거대한 돌변이다. 돌에 이어 인기2위를 놓친 적이 없던 포브스였다.그러나 그의 실체와 실제 능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의구심이 증폭되면서 그의 거품인기는 금방 걷히고 말았다.한편 알렉산더의 확실한 상승세는 한층 객관적이고 사려깊은 사태분석의 산물이다.돌후보는 밀어주기엔 너무 나이들고 박진력이 부족해 보인다.「젊은」 클린턴과 맞붙어 싸울 상대로 그동안 포브스의 거품인기에 가려있던 알렉산더의 「신인」다움이 주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알렉산더에 대한 기대는 이제 막 떠오르는 단계이다.뉴햄프셔에서 알렉산더가 이같은 추상적인 단계를 넘어서면 그는 돌후보의 실제적인 대타로서,뷰캐넌과 정면으로 맞부딪힐 것이다.아이오와 투표직전까지 뉴햄프셔에서 인기동률 선두(25%)였던 돌과 포브스가 재기하지 말란 법은 없으나 뷰캐넌,알렉산더를 돌출시킨 힘 역시 만만찮아 아이오와 코커스가 주는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할수 없을 것 같다. ◎“예상밖 선전” 뷰캐넌/극우보수성향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자/정치해설가로 유명… 92년 대선 부시에 고배 대통령후보 지명전의 첫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예상외로 선전,2위에 오른 패트릭 뷰캐넌(57)은 극우보수주의자로 한번도 선거직에 선출돼본 적은 없지만 TV정치해설가로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작성 보좌관등으로 일한바 있으며 지난 92년에도 역시 지명전에 출마,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37%를 득표하여 당시 현직대통령이던 부시 후보에게 큰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그의 보수적 입장은 미국 역사상 낙태를 가장 반대하는 대통령이 될것이라고 다짐할 정도이며 멕시코 국경에 철조망 설치를 주장할 정도로 불법이민문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또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자로 미국의 일자리를 줄이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WTO(세계무역기구)등을 반대하며 미국땅에서 UN 및 산하기구의 추방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말 실시된 알래스카주 여론조사 1위에 이어 지난 6일 루이지애나주 코커스에서 예상외로 필 그램 후보를 제치고 승리해 보수층 유권자들의 건재를 입증한 바있다. 뷰캐넌의 아이오와 약진은 뉴햄프셔까지 이어져 신보수주의의 물결을 거세게 할것으로 보인다.
  • 일 총선/여 하시모토­야 오자와 “세다툼”(’96 지구촌 선거)

    ◎무당파 유권자가 전체의 60%… 큰 변수/모두 강경 보수주의자… 정책차이 없어 일본정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실세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가 최대 야당인 신진당 당수로 취임한데 이어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자민당총재가 11일 신임총리로 선출됨에 따라 세대교체가 마무리되고 한동안 일본정치를 지배해 왔던 권력의 이중구조도 청산됐다.정치권의 이러한 새로운 변화속에 일본의 21세기를 준비하는 중요한 중의원선거가 올해 실시된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 언제 실시될지는 아직 정식 결정되지 않았다.하지만 하시모토 내각이 출범함에 따라 일본정국의 최대 관심은 총선으로 옮아가고 있다. 신진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지 않은 정권교체를 비판하며 조기총선을 주장하고 있다.총선체제를 어느 정도 갖춘 신진당은 예산안이 통과된 후 늦어도 4월까지는 총선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연립여당은 가능하면 총선을 늦출 방침이다.연립여당내의 사회당과 신당사키가케가 아직 총선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연정내에서는 이 때문에 가을에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하시모토 총리와 오자와 당수와의 숙명정인 대결이라고 분석한다.하시모토와 오자와는 모두 다나카(전중) 전 총리의 총애를 받던 다나카파 출신이지만 차세대 지도자를 꿈꾸며 끝없는 경쟁을 벌여왔다.사회당도 물론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신당사키가케와의 연계나 합당도 모색하고 있지만 사회당의 퇴조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은 하시모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오자와의 신진당간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 총리가 퇴진하고 하시모토 총리를 옹립한 배경중의 하나도 선거전략 때문이다.연정내에서는 야당이 선거의 귀재라는 오자와 당수를 중심으로 총선체제로 바뀐 상황에서 지도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무라야마 총리체제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다.연립여당은 이 때문에 국민적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를 전면에 내세워 오자와 당수와 대결하기 위해 그를 총리로 내세웠다. 총선 결과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이번 선거는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로 바뀐 후 첫번째 선거인데다 하시모토나 오자와 모두 강경보수성향의 지도자이며 정책에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그런 가운데 최대 변수는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고 있는 이른바 무당파의 움직임이다.9천여만명의 유권자중 60%를 차지하고 있는 무당파의 동향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수조엔의 부실채권을 안고 도산 위기에 처한 주택금융전문회사(주전)에 대한 정부의 거액융자를 둘러싼 책임공방과 신진당과 종교단체인 창가학회와의 유착과 이에 대한 비판도 총선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계는 오자와와 하시모토의 대결이 정국의 활력과 긴장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누가 승리자가 되든 일본의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하시모토나 오자와는 모두 말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일본은 경제대국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군사적 대국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또 침략의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일본은 이번 선거를 통해 국익과 민족주의를 앞세운 「21세기 일본」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 사우디 국왕 통치권 이양/건강악화로 동생 압둘라 왕세자에

    【리야드 AP 로이터 연합】 지난 11월 건강이 악화돼 요양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73)이 1일 이복동생인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 왕세자(72)에게 잠정적으로 국정을 이양했다고 사우디의 SPA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파드국왕이 성명을 통해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할 동안 왕세자에게 국정운영권을 이양한다』고 발표했으며 압둘라 왕세자는 국왕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이 조치를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파드 국왕은 압둘라 왕세자와 술탄 국방장관,그리고 정부 고위관료들을 접견했으며 사우디 TV 방송은 그가 목발을 짚고 관료들을 접견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압둘라왕세자는 누구/파드국왕의 이복동생… 현제1부총리/범아랍주의자… 급속한 현대화에 반대 지난해 11월 건강이 악화돼 입원했던 파드 국왕은 1주일간의 입원치료를 거친 뒤 요양중이며 이번 조치는 의사들이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하루 8백만배럴을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석유생산국이며 이러한 소식으로 인해 국제원유가격이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11월부터 뇌졸중으로 투병중인 파드 국왕이 국정을 이양한 압둘라왕세자는 범아랍주의 성향이 강한 보수주의자이다.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인 압둘라 왕세자는 파드왕이 즉위한 82년 왕세자로 책봉됐고 그후 제1부총리를 맡아 국정에 참여해 왔다. 파드 국왕의 유고시 세계최대 석유수출국이자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을 승계할 그는 파드왕의 급속한 현대화정책에 반대해온 「덜 개방적인 지도자」로 서방측에 알려져 있다. 관측통들은 그가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지만 종교적 신념과 보수세력의 지지 등을 감안해 정책노선을 다소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파드왕과 함께 국부인 압둘 아지즈 이븐 전사우디왕의 40명 이상에 이르는 아들중 한명인 검은 턱수염의 압둘라 왕세자는 6천여명에 이르는 다른 왕자나 공자와는 달리 공개석상을 꺼리며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미국 흑인들 16일 대규모 집회연다

    ◎1백만명 30년만에 워싱턴서 모여/63년 루터 킹 목사 “인종차별 반대” 행진 승계/심슨재판 여론 악화… 흑백 갈등 재연­악화 우려 미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지난 63년 워싱턴에서 인종차별반대집회를 열고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한지 30여년만인 오는 16일 워싱턴에서 또다시 대규모 흑인집회가 열린다. 그러나 이번 집회는 30년전 평화집회와 달리 1백만명의 흑인남성만 참석할 계획이어서 백인,여성,유태인들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보수주의자들의 미의회 장악과 O J 심슨재판에 의해 조성된 적대적인 환경속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이같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번 흑인집회는 흑인분리주의자인 루이스 파라칸과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회장으로 재직하다 공금유용 및 성희롱혐의로 올해초 해임된 벤저민 채비스가 주최측에 가담하고 있어 특히 논란을 빚고 있다. 주최측은 논란이 제기되자 파라칸의 얼굴을 뺀 집회공고포스터를 새로 제작하고,여성연사들을 초대했다.그 이후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등 유명한 흑인인사들이 집회동참의사를 밝혔다. 미의회 흑인의원모임도 지난주 이 집회를 63년 킹목사의 집회에 비유하면서 승인했다. 이 모임의 도널드 페인의원은 『지난 63년 워싱턴에서 열린 20만명 행진이 인권투쟁의 심각성을 일깨운 것처럼 이번 집회가 이 시대 미국 흑인들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자들도 여전히 많다.미국 최대규모 흑인단체인 NAACP는 채비스가 관계하고 있는 이 집회를 거부하고 있으며 흑인침례교목사 5백명으로 구성된 영향력있는 목회단체도 종교적인 이유로 집회불참을 밝혔다. 또 유태인단체들은 유태인을 흑인의 적으로 몰고 가장 큰 목소리로 비난해온 파라칸때문에 이번 집회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집회주최측은 1백만명의 흑인남성들이 워싱턴에서 행진함으로써 폭력,마약,실업에 취약한 계층인 흑인들에 대해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일 우익 「한·중 수탈사」 왜곡입증/일 귀족원 비밀회의록 공개의미

    ◎태평양전쟁에 조선인 징용 준비 확인/“공격대상 미·영” 논리 허구성 드러내 일본참의원의 전신인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추밀원) 비밀회의록이 5일 모두 공개됐다.비밀회의록은 24건으로 A4판 4백70쪽 분량.그 가운데 전후 미점령군 사령부가 가져간 「미국의 일본 공습 및 상륙에 관한 질의」는 공개대상이지만 자료는 입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중의원이 갖고 있는 비밀회의록의 공개가 과제로 남게 됐다. 비밀회의록의 공개는 대부분 한국에서는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등에 의해 널리 확인돼 왔으나 일본에서는 극우주의자나 일부 보수정치인등에 의해 제멋대로 왜곡돼 왔던 과거의 침략수탈사가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41년 1월 회의록에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1년전 이미 영미와의 전쟁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전쟁수행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할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이는 뒤에 징용으로 나타난다. 또 고노에 당시총리는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관련,「대동아 각 민족을 구미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한다」면서 「(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고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즉 구미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분리시켜 자원을 강탈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정치권에서 부전결의등의 채택을 둘러싸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와 싸운 것이 아니고 영·미와 싸우다가 본의아니게 아시아인에게 폐를 끼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미가 일본의 생명선인 유류등의 금수조치를 실시해 전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일본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논리가 엉터리라는 점이다.고노에총리는 『영·미는 중일사변과 관련,9개국조약에 기초해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대륙침략정책을 포기하지않자 영·미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가솔린등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고 말해 모든 원인이 한반도와 만주에 이어 중국까지 마구잡이로 침략을 자행한 일본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밖에 비밀회의록에는 1894년(한국의 동학농민전쟁에 일본이 개입,청일전쟁이 벌어진 해) 청일전쟁 임시군사비를 심의하는 귀족원 회의가 히로시마에 건설된 대본영의 가의사당으로 의원들이 집합해 열리는가 하면 심의도중 군사비에 관한 사항이라며 속기까지 정지돼 기록이 남겨지지 못하게 되는 등 군의 문민정치원리에 대한 훼손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45년 3월 도쿄대공습 직후 열린 비밀회의에서는 이미 공습사망자가 5만5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이와관련,한 전쟁작가는 당시 일본이 전쟁을 포기했다면 일본은 원자탄 투하도 피할 수 있었고 일본인 사망자 3백10만명 가운데 2백만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침략에 눈이 먼 지도자들이 일본국민과 아시아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회의록 내용을 살펴본 도쿄도립대 사사키 류지교수등은 「고노에내각은 절망을 선택했다」,「무책임한 체계의 공허함을 본다」면서 침략의 역사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일제 비밀회의록 요지 일본 참의원은 18 91년부터 19 45년까지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에서 행해진 비밀회의록을 5일 공개했다.다음은 비밀회의록 가운데 한반도 및 침략전쟁과 관련된 부분들의 주요내용. ▷태평양전쟁과 조선인 노동력 착취 계획◁ 1941년 1월 고노에 후미마로총리의 「국내외정세에 관한 보고」.…제국장래의 생명인 대동아 공영권건설 문제에 관해 독일·이탈리아 양국은 일본의 지도권을 인정한다고 함이 명료하다. 독·이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 말고는 길이 없다.전쟁은 독일측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믿는다.영국과 미국은 중일사변에 대해 우리의 지금까지의 대륙정책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제국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장래의 발전이 되지 않는다.그 결과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장개석정권을 원조하고 있으며 가솔린등의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 (영·미와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면서)특히 노동력 보급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곤란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지금의 탄광종사자 30수만명에 더해 시급히 약 4만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다른 산업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쉽지 않다.국내 노동자 모집,조선 노동자 도입등에 관해 현재 응급 특별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아시아각지의 침략과 관련)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 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 ▷중일전쟁◁ 40년 2월 요나이 미쓰마사총리(해군장관출신) 상황보고.중경정권(장개석정권)이 항전을 계속하는 한 사변은 계속된다.(왕조명정권의 목적은)중경정권을 약화굴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국제연맹탈퇴◁ 1933년 2월 사이토 마코토총리(조선총독역임)의 보고.(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립튼보고서를 국제연맹이 채택하면)동양평화의 확립에 대해 연맹과 소신을 달리하게 되므로 연맹과 협력할 여지가 없게 된다.…최후의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이 회의는 연맹이 보고서를 채택한 2월 24일보다 사흘 앞선 21일 열렸다).
  • 클린턴행정부의 북핵딜레마/윌리엄테일러 미국제전략연구소 수석 부소장

    북한은 클린턴 미 정부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피하려한다는 점을 간파,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한·미관계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윌리엄 테일러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수석 부소장이 15일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이다. 북한은 클린턴 미행정부 및 지난해 10월 이루어진 제네바 핵합의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있다.실제로 평양측은 핵합의에 따른 관련 의제와 회담 시기등 모든 면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워싱턴은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채택하는 것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평양은 한국형 경수로와 기술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미국이 새 대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핵협상은 무효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핵합의때 한국과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만약 대화가 추진되지 않는다면 미국도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고 워싱턴은 밝혔다.이에 북한은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는다면 한국과 대화를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다.게다가 북한은 이같은 「적절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기 위해 한국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계속하며 지난달 베를린 경수로 회담의 일방적 결렬을 선언했다.또 판문점에서 폴란드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킴으로써 53년 체결한 휴전협정을 보기좋게 위반했다.북한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클린턴 행정부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클리턴 정권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미국은 이같이 외교적 교착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그러한 교착상태를 어떻게 풀것인가.워싱턴은 이같은 상황에서 꼼짝 못하고 말 것인가. 최근 클린턴 진영의 외교정책이 결단성을 띠고 있다고 일부에서는 말한다.그러나 이같은 말을 과신하지 말라.공화당 후보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를 위해 줄지어 서 있듯이 클린턴도 재선을 준비하고 있다.그의 재임기간동안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외교정책분야였다.따라서 그는 외교정책의 결단력이 없다는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투중이다. 현재 긴급성과 중요성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의 문제는 평양과의 교착상태다.클린턴 대통령이 내년 대선이 실시되기 전까지 외교정책 차원에서 우려하는 것은 지난해 여름과 같은 핵위기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으로서 다행한 일은 제네바 핵합의가 영변의 핵폐기물처리장 두곳에 대한 사찰이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한참뒤인 앞으로 5년이내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평양측에서 미국이 한반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린 점을 들 수 있다.따라서 전통적인 외교수법으로 보아 평양은 한미 동맹관계를 분열시키면서 미국의 「양보」를 계속 얻어내려 할 것이다. 「양보」는 무엇을 말하는가.더 많은 외국지원금,한·미군사훈련중단,북미평화조약,미국의 북한 인정,미·북한 무역및 미국의 북한투자에 대한 제한 완화,주한미군철수,남북통일을 위한 과정에서 한국의 북한 인정 등이다.평양은 핵합의의 이행을 위한 「적절한 조건」이 만족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많은 사항들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으로부터의 많은 양보 문제를 떠나서 「적절한 조건」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그것은 북한이 지하 깊숙이 감추려고 하는 핵무기 개발계획이다.북한은 이미 5메가와트의 원자로를 건설하겠다거나 외국의 압력은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핵무기계획의 모호성을 이용,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북한 관료의 관점에서 볼때,그들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미국·한국 등과의 관계에서 강력한 힘을 가져 남북대화를 위한 「조건」을 더욱 「북한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그리고 이는 지도자 김정일의 지위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지난 몇달 동안 김정일이 관심을 갖고 노력한 군부에 대한 그의 지도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편 미 의회의 공화당원들과 한국정부의 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정부가 평양측에 제시하는 양보조건들과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북한이 매번 「브링크맨십」(일촉즉발의 마지막순간까지 밀어붙이는 외교전략)을 유지하는 동안 클린턴 행정부는 핵협정에 있어 나약성을 보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는한 미국 정부가 선거 이전에 핵위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그것이 미국외교의 고전적인 딜레마다.
  • 돌 미 공화당 총무/내년 대선출마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봅 돌공화당 상원 원내총무(71)가 10일 상오(미국시간) 오는 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대선경쟁에 합류했다. 돌 원내총무는 이날 출신지인 캔자스주 토피카 소재 주의회 건물에서 자신의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후보 레이스 참여선언 안팎/돌 출마… 공화 대선경쟁 가열/「대권 3수」 71세… 작년 양원장악 주역/출마예상자 8명 가운데 지지율 선두 공화당의 최고지도자인 봅 돌상원원내총무가 10일(한국시간 10일밤)내년의 미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선언함으로써 공화당내 대권경쟁은 더욱 가열화될 전망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올해 71세의 돌총무는 공화당내 대권주자가운데서는 가장 선두를 달리고있는데 그가 재출마할 것이 거의 확실한 클린턴대통령을 이길 경우 최고령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공화당내에서 대통령후보지명전에 나설것을 공언한 인사는 돌총무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이다. 이들은 필 그램상원의원(텍사스주),라마르 알렉산더 전테네시주지사,알렌 스펙터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시사평론가인 패트 부캐넌, 유명 라디오방송사회자 앨런 키예스등이다. 이 외에도 리처드 루거상원의원(인디애나주)이 사실상 대선경쟁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고 피트 윌슨캘리포니아주지사도 출마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이에 따라 당내 경선은 8대1이상의 경쟁률을 보일것같다. 돌총무는 대통령도전 3수(수)라고 할수있다.지난 76년 제럴드 포드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으며 80년과 88년에 대통령후보경선에 뛰어들었다. 돌총무는 작년 11월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40년만에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최고원내지도자로서 클린턴대통령의 정책시행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그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공화당의 기본색깔인 보수주의자이지만 당내 정치색채 스펙트럼에서 보면 중도파라고 할수있다. 그는 언제나 왼손으로 악수한다.1945년 4월 2차대전당시 이탈리아의 전선에서 독일군과의 전투중 미육군 소대장이었던 돌은 적의 총탄에 어깨와 쇄골을 부서지고 척추를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어 오른 팔의 신경이 완전히 마비되었던것이다. 돌이 출마를 선언한 이번주는 그가 전상을 입은지 50주년이 되는 시점.베트남전에 징집기피한 클린턴대통령과의 대비를 극대화하기위한 선거전략의 하나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 돌,공화 대권후보 선두/미 뉴햄프셔주 첫 합동연설회

    ◎파월­그램­웰드순 추격전/클린턴 실정 비판 “표줍기” 내년 11월의 미대통령선거에 나설 공화당 후보지명을 위한 각축전이 19일 뉴햄프셔주에서 있은 후보지망자들의 합동연설회를 시발로 본격화 되고있다. 선거 때마다 예비선거를 가장 먼저 실시하는 뉴햄프셔주는 예선을 꼭 1년 앞둔 이날 공화당 후보지망자들의 당원에 대한 일종의 정견발표회를 가졌던 것이다. 이날 연설회는 봅 돌 공화당 상원원내총무를 비롯,필 그램 상원의원(텍사스주),알렌 스텍터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인디애나주),라마라 알렉산더 전 테네시주지사 등이 나서 각자의 정치적 포부와 현행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밖에 정치평론가로 지난 92년 선거 당시 부시 대통령에게 최후까지 도전했던 패트 부캐넌,또 칼럼니스트 앨런 키이스,로버트 도넌 하원의원 후보(캘리포니아주),린 마틴 전 노동장관 등도 참석,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합동연설은 약 1천4백명의 공화당원들에게 이들 후보지망자들이 6분간에 걸쳐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있는 돌 총무는 이날 연설에서 올해 71세라는 고령이 자신의 약점임을 감안,『막연하게 나이가 많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하루만 지내보라』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다. 돌 총무는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전국을 석권,40년만에 상하양원을 장악하는 것을 계기로 공화당의 최고정치지도자로 부상한 뒤 계속 「96년의 선두주자」로 부각되고있다. 돌 총무는 최근 대통령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러닝메이트의 한사람으로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을 지목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후보경선 준비를 펴고있는 필 그램 의원은 오는 24일 후보지명전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선언할 예정인데,그는 이날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표방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최선의 정책과제는 균형예산이라며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CNN 방송보도에 의하면 이날 뉴햄프셔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을 조사한 결과 돌 총무가 35%,파월 전 의장이 20%,그램 의원이 8%,윌리엄 웰드 매사추세츠주지사가 7%,부캐넌이 4%를 각각 얻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램 의원은 공화당의 경쟁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의 선거자금을 모금했는데,이미 5백만달러를 확보한데 이어 텍사스 달라스에서의 단일 모금행사에서 2백50만달러를 추가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램 의원의 부인 웬디 리 그램 여사는 한국 이민 3세로 그의 할아버지가 하와이 사탕수수 노무자로 미국에 건너왔다.한국계의 김창준 하원의원은 그램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부인이 한국계 이민자이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동북부에 있는 뉴햄프셔주는 인구 1백만명의 작은 주이지만 항상 미대통령선거전의 첫시발점이자 지난 48년 이후 이 지역 예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거의 다 당의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곳의 후보경선동향은 선거철엔 항상 관심의 표적이 되어왔다.
  • 미 군정 3년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7)

    ◎일 관리 47년 8월까지 행정 참여/초기 미군정요원 배치안해 정책 혼선/친일파 중용… 「부일배경찰」 85% 넘어/소 의식한 본국반대불구,「한국군」 창설추진은 성과 한국의 미군군정은 미 제6·7·40사단으로 구성된 제24군단의 38도선 이남 점령임무 수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일본 민간인의 본국귀환,법과 질서유지,미국의 정책 속에서 정부역할 수행이 당초의 주임무였다.미군정은 1945년 9월12일 주한미군 본부 내에 독립된 사령부 성격을 띠고 「주한미군정」(USAMGOK)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진주한 제24군단 병력 가운데는 군정을 수행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군정부대는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10월21일 인천에 내렸다.그것도 한국점령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주요지역 통치를 위해 훈련받은 요원들이었다.그 병력은 4개 전술보조부대와 캘리포니아 몬테리에서 민정훈련을 받은 20개 중대로 충원되었다.그들은 먼 항해 끝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사실을 인천상륙 1주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의 군정은 전술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점령지역을 통치하는 과정에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되었다.지방이 특히 심했다.서울에서는 인공 산하의 치안대 활동이 멈추었으나,일부 지방에서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들을 체포할 정도였다.이 가운데는 행방불명이 된 미군도 있다.전남의 경우 제40사단과 교체한 제6사단 20보병연대는 인민위원회를 반대하면서 치안대를 공공건물로부터 몰아내는 등의 강공책을 썼다. 미군정의 군정장관으로 육군소장 A V 아놀드가 임명되었다.지난날 총독이 행사한 권한을 손에 쥔 군정장관은 전술부대에 소속하지 않은 모든 군정요원을 지휘했다.군정장·차관 밑에 총독부 정무총감 위치와 비슷한 민정장관을 두었는데,그 자리는 B B 프레스코 대령이 맡았다.그리고 8개의 부와 9개의 국을 설치했다.이들 기구는 1946년 5월10일 확정한 새 편제에 따라 11개위 부,4개의 처,86개의 국으로 개편되기까지 존속했다. 「주한미군정청」(USAMGIK)이라는 공식명칭은 1946년 1월4일부터 사용되었다.처음의 「주한미군정」의 약어 「USAMGOK」의 끝자리 3자 GOK가 조롱하는 말 GOOK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한달이 모자라는 3년 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면 미군정의 정책은 어떤 것이었으며,한국에 남긴 군정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에 적은 표현을 빌리면 「점령당국(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마치 모래수렁 같았고 점령당국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술한 그는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성채를 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워싱턴뜻과 배치 미군정은 초기의 정책을 수정,선회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에따라 1945년 11월 무렵에 수립된 새로운 정책은 크게 네가지를 목표로 했다.그것은 앞으로 탄생할 한국정부를 고려하면서 보수진영과의 제휴,경찰력 강화,군대의 창설,좌익의 탄압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들 정책은 워싱턴 고위층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그러나 군정에 파견한 국무성 관리들이 이 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군출신 두각 한국군 창설과 경찰력 강화 등 미군정의 새로운 정책은 남한 통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미군정은 1945년 11월13일 국방경비대,육군부와 해군부를 통괄하는 군사국을 설치했다.J R 하지는 점령 초기부터 한국군 창설문제에 관심이 있었다.소련을 의식한 워싱턴 고위국으로부터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겼다.1946년 6월 국방경비대는 통위부로,군사국은 조선경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군조직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군정은 1945년 12월초에 60명의 장교를 선발,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켰다.이들은 당시 국방경비대 고문 이형근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었다.이가운데 40명은 일본군 출신이고 광복군 출신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 출신들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 국군 창건 이후에도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광복군 출신들은 저만큼 뒤쳐져 있었다. 경비대에게는 내부소요 진압임무가 돌아갔다.1946년 후반기가 저물면서는 파업,폭동과 더불어 몇몇 경찰서가 불타는 등 소요가 잇따랐고 좌익좌파 3당은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1947년 9월에는 좌익검거 선풍이 불었다.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남로당과 민애청등의 지하 좌익세력들이 10월15일부터 한라산에 입산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비대는 폭 넓은 소요를 진압하는 두가지 무기의 하나로 평가되었다.다른 무기는 국립경찰이었다.군정은 1945년 9월17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경무국을 인수받았다.경찰을 헌병사령관 L E 쉬크 준장의 통제 하에 두었는데 일본인 경찰관들에게까지 「USMG」라는 군정 완장을 지급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특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제서야 일본인 경찰관들의 자리를 한국인들로 메꾸었다. 헌병사령관 밑에 있던 경찰은 11월30일부터 국방군 사령관이 지휘했다.그리고 해방이 되던해 10월 워싱턴 3성조정위원회로부터 한국 경찰 내의 친일파와 미움을 사는 기구를제거하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하지만 경찰의 볼썽 사나운 관행은 계속되었다.군정청이 피의자에 대한 폭행 금지명령을 내리자 대신 소방관을 시켜 폭행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1946년 4월 소방서가 경찰과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동료였던 터라 그런 부탁쯤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해방된 이 땅의 경찰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일제에 강한 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다시 썼기 때문에 부일배 경찰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나 되었다.1945년 10월 당시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간부의 53%,하위직 25%가 일본경찰 출신임을 시인했다고 한다.A W 그린이 「경찰의 오만 무례는 끝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경찰의 일제 잔재청산은 요원했는지 모른다. 일본인 관리들도 상당 기간동안 군정에 참여했다.1945년 12월 군정청에 지방행정과가 생겼을 당시 일본인이 감독책임을 맡고 있었다.1947년 8월15일까지도 일본인들이 군정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미 대통령 특사인 육군 중장 A C 웨드마이어가 작성한 「한국의 정치·군사 상황보고서」가 그것이다.이 보고서는대일 전승기념일(V J­DAY)이후 북한지역 5백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일본인 관리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청산 장애로 웨드마이어 보고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한국에서는 과거 7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든 경제요소는 물론 기술계층까지를 지배했다.그래서 지금 부산역장을 지냈던 한국인이 철도청장이 되고,직업학교 출신이 큰 수력발전소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일반 관료직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승계되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사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한국 점령기간 내내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자손을 출산하기 보다는 일본인 임신에 산파 역할 만을 해왔다」고….이는 군정의 유산으로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요소로 작용했다. “영어 아는 보수적 인사 많이 썼다”/군정고문 2인의 전문·보고서 발굴/“「일서 완전 해방」 한국인 열망 외면”/미학자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포함한 보수인사들을 그토록 많이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이에대한 해명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찾아낸 W R 랭던의 「국무성장관에게 보내는 전문」(1945년 11월26일)에 잘 나타나 있다. 랭던은 당시 미 국무성이 한국에 파견한 하지장군의 정치고문.그가 작성한 전문 보고서는 「초기에 보수적 인사들을 많이 뽑아썼다」고 시인하면서 「생면부지의 대중 가운데 누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보고서는 「고위직을 보수인사에서 고른 까닭은 한국인들이 사치스러워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역시 NARA에서 입수한 미군정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1945년 10월10일)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랭던의 전문보다 앞선 이 보고서는 다만 당시의 한국적 상황을 「한국인들은 친일파를 일본인보다 더 증오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보수주의자들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했지만,이런 낙인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고 「많은보수주의자들의 존재는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대해 미 미들버리대 C L 호그 교수는 「한국분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남한의 초기 통치과정에서 일본인 관리들과 일제의 경찰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은 정복자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무감각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정부와 경찰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히 훈련된 요원들을 일본에만 보낸 워싱턴과 최고사령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미­중 무역분쟁/배경과 전망

    ◎양국 입장과 영향/총교역액의 2%… 효과보다 “힘겨루기”/중,신용실추… 투자유치 차질을 더걱정 미국이 4일 중국에 대해 무역 보복조치를 발표하고 중국도 즉각 역보복조치를 천명한 가운데 이달중 양국이 무역전쟁에 본격 돌입할 경우 중국은 최대 수출시장의 일부를 잃게 될 뿐아니라 신용마저 떨어져 외국 투자유치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저작권·특허권·상표권등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않다는 이유로 연간 10억8천만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상품에 대해 26일부터 1백%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도 즉시 미국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무역파트너인 양국간에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협상을 할 시간은 아직 남아있으나 중국의 통상 관리들은 5일 미국의 추가협상 제안을 수락할지의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사실 미국의 보복조치는 양국간 전체 교역량의 일부에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지난해 양국간 무역규모는 미국측 추산에 따르면 4백50억달러에 달했으며,중국의 지난해 총 수출량 1천2백40억달러중 문제가 되는 것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 중국및 미국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나 경제에 미치는 전반적인 효과는 비교적 적을 것이며,비록 미국이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라 하더라도 이번 제재조치가 중국에 대규모 실업사태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워싱턴대 중국경제전문가 니콜라스 라디가 전망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인해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기존의 협정을 중국이 지켜나갈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은 지난 92년 미국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한 바 있다.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업체들은 중국과의 계약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어있다. 미국은 또한 연간 7천5백만장의 해적판 콤팩트 디스크를 생산해내는 29개 중국공장을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먼저 이들 공장을 승인한 지방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들 공장들은 로열티를 한푼도 지급하지 않고있고 단지 생산비용만 부담하고있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은 새로운 지적재산권법을 시행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보고있는 마당에 미국관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5일 성명을 통해 『중국이 지적재산권보호를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재조치는 중국산 플라스틱제품·무선전화기·자동응답기·스포츠제품및 자전거등이 주로 해당된다. 또한 이들 제품이 주로 홍콩,대만,싱가포르등 외국 투자자들이 설립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이들에게도 타격을 주게된다. 홍콩정청은 이번 조치가 시행될 경우 올해 홍콩 경제성장이 0.1%포인트 하락하며,3천8백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을 회피하고 있다.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5일 미국의 이번 조치가 양국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라고말한것 외에는 예상되는 무역전쟁의 영향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있다. 이날 오의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은 홍콩 기자들에게 중국의 시장이 이미 다양화 되어있기 때문에 미국이 보복조치를 취한다 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은 총수출품의 약 3분의 1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오부장은 높은 관세로 일부 중국제품의 가격이 높아져 미국에서 팔수 없게 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이 기회를 이용,중국과의 무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등이후」 미·중관계/개혁파 기반 취약… 군·보수파 득세할듯/인권·대만·무기수출 등 갈등확산 소지 미국과 중국간의 지적재산권문제를 둘러싸고 무역전쟁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향후 양국관계는 중국의 권력이양시기로 인해 무역 뿐만 아니라 인권,대만 문제할 것없이 전분야에 걸쳐 악화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5일 워싱턴 포스트지가 미행정부의 중국관계전문가들과 정보분석가들을 집중 취재하여 종합한 바에 따르면 이번 무역전쟁의위기도 그 배경에는 중국의 국내정치권력의 대변화를 바탕에 깔고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보복조치가 발표된지 불과 1시간 만에 역보복조치를 발표한것은 「신중하고 까다로우며 등소평 보다 미국의 압력에 둔감한」지도자들이 지금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등소평의 건강악화 이후 사실상 거대한 중국을 이끌고 있는 새 지도자그룹들은 미국에 대해 비타협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행정부는 더 이상 등소평이 이미 중국의 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지않고 있으며 강택민주석이 이끄는 전문기술관료와 군부지도자들에게 권력이 넘어가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특히 강주석은 등에 비해 권력기반이 약하고 답답해 타협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민족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등소평 이후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정치개혁은 후퇴하고 오히려 인권탄압을 계속할 가능성이 많고 자칫 사태가 악화되면 가혹한 정치적탄압이나 대만에 대한 새로운 군사적 위협,또는 이란이나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등 미국과 더욱 대결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등소평 이후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것은 강택민이 얼마나 권좌에 남을수 있으며 그 이후에 권력을 계승할 지도자가 과연 어떤 정부를 탄생시킬 것인가에 따라 중국이 미국에 평화적인 세력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적이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전문가들로 구성된 미국방부의 한 위원회는 작년말 중국의 후계구도와 그 전망에 관한 분석을 했는데 급진개혁파가 집권하여 미국에 우호적인 강대국으로 출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반면 13명의 전문가중 3분의 1은 비교적 안정된 집단지도체제의 구축으로 지금과 같은 개혁과 군사력을 점진적으로 증강하되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지못하도록 군사적 간섭을 하고 남사군도의 유전지대에 대한 영유권 관철을 위해 전쟁불사의 강경책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절반 이상은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권위주의적인 강자의 출현으로 내부마찰이 증대되거나 아니면 연안지방과 내륙지방간의 경제격차로 중국이 결국 분열될 것으로 전망했다. 등이후나 또는 강이후에 누가 권력을 잡든 군부의 영향력은 증대될 것이며 이같은 조짐은 이미 해군총장 류훠킹이나 인민해방군의 사실상의 총수라 할수 있는 양상곤과 같은 극보수주의자의 영향력에서도 알수 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등의 후계자는 군의 지지확보를 위해 군의 영향력을 수용할수 밖에 없을 것이며 전통적으로 강한 반서방적 시각을 갖고있는 중국군부의 기류가 결국 앞으로의 미국과의 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87년 미·일 반도체분쟁/일서 굴복… “짭짤한 재미”/미의 무역보복 전례 미국은 과거 「신앙」처럼 떠받들고 있는 불공정성이 침해받고 있다는 판단이 서면 이의 시정을 위해 보복관세등의 무역보복 조치를 취해왔다.특히 불공정한 무역관행이 미국의 대외 무역역조의 주범이라는 확신이 설 경우 이같은 보복조치는 목적달성을 위해 가장 애용됐던 수단이었다. 미국은 지난 87년에도 일본에 대해 3억달러 규모의 무역보복조치를 내려 톡톡히 재미를 봤다.86년 7월말 양국간에 체결된 반도체협정을 일본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데 따른 보복조치였다.당시 미정부와 업계는 일제 반도체의 수출가격 덤핑중단 조치와 일시장내 미업체 점유율을 5년내 9%에서 2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일본측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보복조치가 따를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미국은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자 이듬해 4월 ▲컬러TV ▲회전용 천공기구 ▲동력공구 ▲탁상용계산기 ▲자동정보처리기구등에 1백%의 관세를 물리기로 공식발표했다.물론 미정부는 일본측이 확실한 무역역조 개선조치를 취하면 이같은 보복조치는 즉각 해제된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일본에서는 무역전쟁 불사의 강공기류도 흘렀지만 일본은 부랴부랴 슈퍼컴퓨터등 10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을 긴급구매하는등 미국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결국 일본시장의 미 반도체 점유율은 미국이 목표했던 수준에 도달했고 작년에는 세계반도체 시장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당시 미국의 이같은 협박이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일무역 역조가 섬유를 제외할 경우 총 무역적자의 47%인 데다 일본은 총무역 흑자의 86%를 의존하고 있어 일경제가 미국의 볼모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이번에 중국에 대해 강공을 가하는 것도 중국과 미국의 무역액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약 4백50억달러에 이르고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무려 3백억달러를 넘어 중국은 미국없이는 「성장」을 생각할 수 없다는 미측의 계산이 깔려 있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의 타협을 통해 실리 쪽을 선택할 것이다.10억달러를 챙기려고 몇십배의 중요한 시장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미국민의 선택/시대상황 도전할 인물뽑았다(신 지도자론:2)

    ◎50년대/“2차대전 영웅” 아이젠하워 지지/60년대/“뉴프런티어” 내세운 케네디 등장/80년대/「확실한 보수주의자」 레이건 선호/90년대/“경제부흥의 적임자” 클린턴에 투표/내년11월 「새 세기 뉴리더」 선택에 관심 한 시대상황은 그 시대에 적합한 지도자를 낳는다.이같은 지도자의 선택은 미국민의 투표에 의해 어김없이 실현되어왔다. 다만 선거당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선거결과는 항상 역사의 필연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해주었다. 2차세계대전 후 반세기에 걸친 미국민의 지도자선택은 급변해온 시대상황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가 국가발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생생한 교훈으로 기록되고 있다. 2차대전의 전쟁영웅,아이제하워 대통령의 등장이 그러했고 뉴 프론티어의 깃발을 들고 혜성같이 나타난 케네디 대통령의 부상이 또 그러했다.월남전의 반전불길이 미국의 대학가를 휩쓸던 60년대 종반 외교의 천재,닉슨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나 냉전의 심화속에 강력한 미국을 내건 레이건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시대의 상황이 거기에 적합한 인물을 원했기 때문이다. 6·25사변,한국전쟁이 치열한 공방전을 겪으면서 지리하게 계속되던 1952년11월 제34대 미국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는 민주당의 오들리 스티븐슨 후보를 4백42 대 89표(선거인단기준)로 물리치고 압승했다. 2차대전당시 유럽의 연합군사령관으로 독일을 패배케 한 아이젠하워 원수가 이같이 전국을 석권하게 된 배경은 공산주의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어가는 가운데 이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미국민의 기대가 그의 지지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5년도 채 못돼 또다시 새로운 적,공산주의와 아시아에서 유혈대결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민은 더이상 전쟁을 오래 끌지 않고 종전을 실현하면서도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61년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제35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미국민과 세계를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미국시민 여러분,국가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주십시오.세계시민 여러분,미국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 함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봅시다』 케네디가 약관 43세의 무명의 상원의원에서 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그의 취임사에서도 일부 시사받을 수 있듯이 바깥으로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의 역할을 새로 재정립하고 안으로는 경제발전속에 두드러지는 빈곤층의 문제, 흑인을 중심으로 한 민권운동의 확산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케네디 후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시절 8년동안 부통령으로 재직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비록 매우 근소한 차이(총투표 6천8백만표중 12만표 차이)로 이겼지만 그가 내건 뉴 프론티어정신과 그의 신선한 지도력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다. 케네디의 지도력은 이상과 현실이 혼재하면서도 『독재와 빈곤과 질병,그리고 전쟁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겠다』는 목표의 명료성으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헌신적인 지도자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60년대 후반 미국은 월남전의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안으로는 반전무드가 확산되면서 국민의 여론은 양분되고 사회전체가 혼란의 와중에 놓이게 되었다. 68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63년11월 비명에 간 케네디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사회보장제의 확립을 겨냥한 「위대한 사회」건설이 이상에 치우쳤고 월남전의 고전과 함께 68년1월 북한이 미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는데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이었던 존슨행정부의 국제사회에서의 권위실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민은 월남전에서의 미군철수,공산주의 국가군과의 협상을 원했고 이에 따라 외교전략가로 평가를 받아온 닉슨을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다. 80년대 들어 확실한 보수주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에너지위기등 경제침체와 함께 이란의 미국인질석방실패등 나약한 미국으로 치부된 카터행정부의 불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92년11월 선거에서 현직인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것은 포스트 냉전체제를 이끌 지도자로는 「변화에 적합한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미국민의 정서에 힘입은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미국경제의 침체가 계속됨에 따라 신지도력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급상승했다.이에따라 92년초 예비선거때만 하더라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거의 확실시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시행정부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회의는 높아졌다. 이와 함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행정부간의 정치적 교착상태는 미국민으로부터 「워싱턴정가」에 대한 거부감을 낳았고 때마침 드러난 의원들의 수표불법남발사건은 「워싱턴의 현직정치인」에 대한 반발감을 증폭시켰다. 클린턴의 등장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민주·공화 양당에 대한 거부감이 소위 무소속의 「페로변수」로 나타남으로써 출범이후 계속 지지기반의 취약성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내년 11월 미국의선거는 21세기를 여는 미국의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하는 시대상황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시대상황이 빠르게 변하면 그에 따르는 지도력도 빨리 변해야만 국가가 후퇴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 정치판도 우경화(일본 「21세기 야망」:3)

    ◎“유리한 국제질서 창조” 신보수주의 대두/해외파병 제약 평화헌법 개정론 점차 확산/오자와 등 뉴리더들,“권력집중” 양당제 구상/무라야마 등장,사회당 해체 앞당겨 역사에 적응력 과시 『일본으로부터 미국에 좋지않은 두가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달러하락과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이라는 뉴스입니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탄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6월30일 미국의 NBC TV방송이 도쿄발로 보도한 뉴스다. NBC방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이 일본총리로 선출된 것을 이같이 미국에 나쁜 뉴스라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스도 같은날 『사회주의자가 일본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고 냉전시대 「거대한 악」이었던 사회주의자가 아시아 동맹국 일본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에 나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지않은 뉴스의 더 심오한 의미는 사회당위원장이 총리가 된 오늘의 정치상황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을지도 모른다.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사회당의 몰락을 앞당기고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강화를 촉진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조금씩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거시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무라야마 위원장도 자신의 총리선출이 사회당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해서일까 당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사회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역류가 아니라 일본의 놀라운 역사의 적응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국제공헌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라 전후 반세기동안 1국 평화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사회당의 퇴조를 가속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퇴조와 함께 일본에서는 미국의 보수화 회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것은 일본정치의 총보수화라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보수화가 일본정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나카소네 내각의 등장 때라 할수 있다.그는 저서 「새로운 보수의 논리」에서 『지금은 국내경제본위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욱 넓은 세계를 향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그것은 곧 보수통치의 부활이다』하고 역설했다. 안으로는 보수화,밖으로는 대국화를 지향하는 나카소네 전총리의 이러한 보수정치와 「전후정치의 총결산」 외침은 2차대전전 일본의 전통적 가치였던 국가주의와의 연속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러나 전후 교육을 받은 뉴리더들의 신보수주의는 천황제나 신도사상등 복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그들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 일본도 국가개조를 하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하타 쓰토무 전총리등 뉴리더들은 극우파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다.그들은 일본 국왕을 신으로 보지 않으며 군사력으로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극우파의 제국주의적 환상도 거부한다.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은 오늘의 일본은 국제적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막강한 경제·산업·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질서에 순응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전후세대들은 물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침략과 패전의 아픔보다는 성장과 풍요로움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적 우월감과 자신감에 도취하여 또다른 패권의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그러한 우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보수주의 뉴리더들의 군사적 국제공헌론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국화 의식」에서 읽혀진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후 국제상황에 맞지않는 국내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이내믹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을 단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선거개혁이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치는 2대 정당제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당·공산당등 혁신세력은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오자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집중형 양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일본의 국제화·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하나 남아 있다.헌법의 개정문제다.평화헌법은 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있다.물론 지금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고 있다.그러나 훨씬 더 적극적인 해외파병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헌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0%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평화주의 유토피아」에서 안주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그러나 평화헌법은 미군점령기의 굴욕적 유산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외침속에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최대의 평화헌법 수호자인 사회당은 그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을 바꾸는것은 일본이 강요된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헌법 틀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역사인식이다.일본은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일본방위아카데미 책임자를 역임한 온건보수파 지식인 마사미치 이노키도 『평화헌법의 개헌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나머지 마귀들이 모두 튀어나와 밤공기를 어지럽히는 사태와 같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 미 새 하원의장 깅그리치/52세 뉴트의 인생 이력서

    ◎고교때 꿈 이뤄냈다/의부밑에서 성장… 유아기 클린턴과 흡사/투병 아내와 이혼… 교수 출신 보수주의자 제1백4대 미의회가 개원한 4일(한국시간 5일)은 뉴트 깅그리치의 날이었다.40년만에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그를 하원의장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이날 낮 12시 기도로 시작된 개원식이전부터 미국의 모든 매체는 깅그리치의 인터뷰를 생중계했고 그의 취임사는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방불케할 정도로 국정의 대강을 제시했다. 올해 52세인 깅그리치는 미국동남부 조지아출신의 9선의원으로 어릴때부터 대통령보다 권력의 원천인 하원의장을 꿈꾸어왔다. 뉴트는 2차 대전때인 1943년 6월17일 펜실베이니아주의 해리스버그인근의 마을에서 아버지 뉴턴 맥퍼슨과 어머니 캐슬린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허쉬 초코릿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긴했지만 술고래에다 손찌검까지 잦아 뉴트가 3살 되던해 이혼을 했다.어머니 캐슬린은 해군중령인 로버트 깅그리치와 재혼했고 뉴트는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자신의 성도 생부의 성이아니라 양아버지아래 입적이 되어 깅그리치로 되었다. 뉴트의 이러한 유아기의 환경은 클린턴대통령과도 흡사하다.클린턴대통령은 생부가 결혼 3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숨져 유복자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을 따라 클린턴이 된것이다. 뉴트가 컬럼버스의 베이커고교를 다닐때 그는 5년 연상의 여인인 기하선생님을 좋아했다.그가 조지아주의 에모리대학을 진학했을때인 19살 되던 해 이 여선생인 재키 배틀리와 결혼을 했다.뉴트의 어린 시절을 군인의 절도로 엄하게 키워온 양아버지는 그로부터 연상의 연인과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결혼을 만류했으며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면 결혼식에 가족 어느누구도 참석하지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그러나 결혼은 이뤄졌고 뉴트부부는 4년사이에 두딸을 낳았다. 뉴트는 에모리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뒤 다시 툴레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0년에는 웨스트 조지아대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봉직했다.고교·대학시절부터 정치에로의 꿈을 키워오던 그는 두번에 걸쳐 근소한표차로 낙방의 고배를 마셔오다가 78년 조지아주 제6선거구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처음으로 워싱턴정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첫 임기가 끝날 무렵이던 81년 당시 암에 걸려 투병중이던 재키와 이혼소송끝에 헤어졌다.5년이나 나이많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이혼을 하게되었지만 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던 부인에게 이혼소송을 한것은 그의 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는 곧바로 지금의 마리아느 긴터여인과 재혼했다. 달변가이자 다혈질에다 논쟁을 불러일으킬수있는 독설과 주장을 서슴지않아 중후한 정치지도자로서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고있다.
  • 체첸진공 여파/러 정계 대변화 온다

    ◎무력사용 항의,옐친 측근들 등돌려/올 총선·내년 대선 영향클듯 체첸공화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정계판도는 피할 수 없는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가장 큰 변화는 지난 3년간 옐친 대통령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소위 개혁세력이 그와 결별하고 대신 과거 공산당 간부출신의 강경파 측근보좌관,보수민족주의세력이 그의 지원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점.금년말 국회의원총선과 내년 6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감안할 때 이런 사태는 러시아정국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금껏 의회내에서 옐친 대통령의 가장 큰 지지세력은 예고르 가이다르가 이끄는 러시아선택당,차기 대통령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야블로프파,그리고 보리스 표도로프 전재무장관이 주도하는 급진경제개혁파였다.체첸사태 이후 이 3개 그룹이 모두 옐친에게서 등을 돌렸다.정부내의 개혁세력도 거의 사라졌다.현재 체첸에 대한 무력공격을 부추기는 주세력은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과 빅토르 예린 내무장관,올레그 로보프 국가안보회의총서기,알렉산더 코르자코프 대통령경호실장,그리고 국경수비대,방첩부 등이다.반면 옐친개혁의 견인차이던 가이다르,알렉산더 쇼힌 부총리,표도로프 재무장관 등은 모두 물러났다. 옐친에게 도덕적 측면에서 힘이 됐던 원로개혁세력도 등을 돌렸다.러시아선택당 소속으로 옐친 대통령의 인권특사로 체첸에 파견된 세르게이 코발료프 의원은 현지에서 러시아의 무력사용을 가장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그는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가열되는 현지에서 민간인 피해참상을 언론들에 전하고 있어 이곳 언론으로부터 러시아의 양심을 지키는 「제2의 사하로프」로 불리고 있다.최근에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의 미망인 엘레나 보너 여사까지 체첸침공에 반대,옐친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체첸 침공을 계기로 옐친 대통령의 새로운 지원세력으로 등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극우민족주의자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와 러시아민족제일주의자인 알렉산더 바카쇼프.특히 바카쇼프는 지난 93년10월 의사당 강제해산 때 의회세력의 무장을 총지휘한 강경보수주의자로 지금은 「러시아민족동맹」이라는 반유대 민족주의단체를 이끄는 인물이다.이들은 러시아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분리주의자들의 저항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분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세력판도상의 이러한 변화로 개혁세력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시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다.가이다르 등은 체첸 침공 자체를 옛 KGB세력이 주축이 돼 경찰국가를 구축하기 위한 전조로 파악한다.코발료프 특사 등 체첸 현지에서 활동중인 대의원들은 『체첸에 투입된 탱크·장갑차가 나중에는 모스크바로 향할 것』이라며 옐친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시나리오까지 갖고 있다고 경고한다.평화적 해결노력 없이 무력사용만 고집할 경우 이런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간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 시사정치만화 「묘한 세상입디다」 출간/임재학씨(저자와의 대화)

    ◎“정치만화 소재 무궁무진합니다”/4컷아닌 80여컷 만화로 정치 상황 꼬집어/6·29이후의 경제·사회적 이슈도 다뤄 시사정치만화가 임재학(45)씨가 그동안 발표한 작품을 모은 「묘한 세상입디다」(전4권·한솔미디어 펴냄)를 최근 냈다.이 작품집에 실린 만화는 모두 1백6편으로 지난 87년 「6·29선언」이후 문제가 됐던 정치·사회·경제적 이슈를 대부분 다루고 있다. 『지난 87년 7월 모 만화잡지에 첫작품을 낼 때만 해도 독자 반응이 두려웠습니다.시사만화라곤 신문의 4컷만화나 만평만 보아왔던 독자들이 80여컷,10쪽 분량에 노골적으로 정치상황을 분석·비판한 만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습니다』 뜻밖에 독자반응은 기대이상이었고 그는 서너달만에 인기 만화가로 떠올랐다.임씨는 『대학교수·변호사·의사같은 지식인층에서 격려전화·편지가 많이 왔다』면서 『우리사회에 정치적 불만을 카타르시스할 방법이 그만큼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그 때를 회상했다. 그의 정치만화가 성공한 이유를 만화계에서는 ▲그 내용에 풍부한 정보와 날카로운 비판,정책적 대안을 갖추었고 ▲걸쭉한 대사에 성적인 비유가 서민정서에 들어맞으며 ▲이런 분위기를 거친듯 하면서도 곡선을 주로 쓴 그림체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민생은 아랑곳없이 싸움질로 지새는 정치인들을 비판한 「이 손 안에 있소이다」에서 국가사회의 위기를 극복한 세력은 늘 백성이었음을 강조한 뒤 「고 집나간 정치를 찾습니다.모든 걸 용서할테니 돌아오너라.국민이 위독하다」고 야유한다.또 빗나간 교육열로 고학력 실업자가 급증한 세태를 빗댄 작품에서는 『대학 졸업장 쥐고 2년이상 노는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성공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강도높은 비판을 가하다 보니 관계자들로부터 협박도 자주 받았고 87년에는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또 지난 91년 내놓은 작품집 「이야기 좀 합시다」는 곧바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판매금지 이유가 「청소년 정서에 해롭다」는 것이었습니다.성인용 만화에 청소년을 걸고 넘어지는게 분해서따져보려고 했더니 누군가가 「5·6공을 하도 비판해서 그랬다」고 귀띔해 주더군요』 그러나 이번 작품집에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민자당 국회의원),박찬종의원(신민당)등 정치인들과 언론인이 추천사를 써줘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38살에야 만화가로 데뷔한 늦깎이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다 중퇴한 뒤 대기업 사원,자영업을 거쳐 뒤늦게 만화계에 뛰어들었다.굳이 정치만화를 시작한 까닭을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남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보수주의자에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편』이라고 밝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는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아 정치만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쓰게 웃었다.
  • 영화심의 논란/강한섭 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굄돌)

    「데미지」 「투캅스」 「추락」 「엠마뉴엘부인」 「너에게 나를 보낸다」그리고 「해적」.금년 한햇동안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문제의 영화들이다.창작의 자유와 영화심의라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영화들은 이런 「유명한」 영화들만은 아니다.오늘도 상영과 방영불가의 판정을 받아 공개가 금지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계속 늘어가고 부분 삭제된 영화수는 그보다도 훨씬 많다. 영화창작자들은 보통 이러한 심의의 존재에 분통을 터뜨리며 창작자유의 완전한 보장을 요구한다.그러나 영화가 범죄 증가와 풍속저해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의강화를 목청 높이 외치고 있다. 영화심의가 여론의 주제로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비판한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모두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영화심의는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은 매우 논리적인 것 같지만 영화심의를 규정하고 있는 영화법이나 방송법도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반면에 흉악한 범죄만 발생하면 마치 마녀사냥식으로 범죄와 영화를 결부시키는 주장도 속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허구가 금방 드러난다.영화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도 살인마들은 수없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서구의 논리로 대한민국의 영화작가가 누려 마땅할 창작의 자유를 논해서는 안된다.또 마찬가지로 종교,국가 그리고 가족의 보수적 가치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영화작가에게 윤리적 책임의 갑옷을 씌워서는 안된다. 자유를 절대시하다가 포르노와 폭력영화의 함정에 빠진 서구의 상황도,자신의 종교에 비판적인 소설 하나도 수용하지 못하고 작가에게 암살자를 급파하는 회교원리주의의 모습도 측은하기는 마찬가지다.영화심의에 대한 우리의 논쟁은 그래서 새로운 차원을 필요로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