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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8)尹潽善과의 갈등(下)/윤보선과 평가

    1961년 5월16일 새벽2시쯤 張勉은 총리 숙소로 쓰는 반도호텔 809호실에서경호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어났다.張都暎 육군참모총장이 급한 일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張都暎은 “육군 30사단이 장난질 하려는 것을 막았고,현재 해병과 공수부대일부가 서울로 들어오려는 것을 한강다리에서 막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염려마시고 그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아십시오”라고 덧붙였다. 張勉은 와서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기다리지만 張都暎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오자 張勉은 경호대장 등과 함께 지프를타고 반도호텔을 떠났다.거리가 가까운 미국대사관과 대사관 사택을 찾았지만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잠시 몸을 피하려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혜화동 수녀원으로 갔다”(회고록 중에서).그리고는 55시간이 지난 18일 낮12시쯤에야 모습을 드러내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내각 총사퇴를 발표한다. 尹潽善은 새벽 3시30분에서 4시 사이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張勉과 마찬가지로 張都暎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張都暎은 “쿠데타가 일어나 헌병을 동원해 한강다리에서 저지하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뚫렸다. 쿠데타군이 시내로 들어왔는데 진압될 것같지 않다”고 우려했다(尹潽善 회고록에서). 尹潽善은 “피신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일신의 안전만을 위해 300만 서울시민을 버릴 수 없고” 또 “그들하고 사리를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요, 설령피살이 된대도 그리 부끄러울 것은 없다고 생각해” 자리를 지킨다. 5·16쿠데타가 발생해 제2공화국이 결국 무너지기까지 국무총리 張勉은 몸을 숨겼고 대통령 尹潽善은 현장에 남아 ‘유일한 헌법기관’으로서 쿠데타세력을 상대한다.쿠데타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지 못하고 자기 한몸 피신하는 데 그쳤던 張勉은 제2공화국 붕괴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尹潽善은 제 할일을 다한 걸까. 16일 낮 쿠데타 주역인 朴正熙소장과 柳原植대령이 청와대로 尹潽善을 찾아왔다.이 자리에는 玄錫虎국방장관과 張都暎 등이 함께 있었다.玄錫虎는 쿠데타 소식을 듣고 반도호텔로 가서 張勉을 만나고 헤어진 뒤 쿠데타군에게 체포된 상태였다. 접견실에서 朴正熙 일행을 만난 尹潽善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말로 입을열었다.이 말은 훗날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尹潽善을 비난하는 쪽은 “쿠데타를 기다렸다는 투의 이 표현이야말로 그가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쿠데타세력과 관련해 보여준 행동을 설명하는키워드”라고 풀이했다.현장에 있던 玄錫虎는 회고록에서,尹潽善이 이 말에이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었다”면서 張勉정부에 비난을 퍼붓고 朴正熙의 거사에 찬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尹潽善의 설명은 물론 다르다.“그들(朴正熙 일행)을 대하는 마음이 서글퍼나도 모르게 이 말이 떨어졌고,당시 사회적·정치적 혼란상을 생각할 때 당장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같아서”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尹潽善은 “군인들끼리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잘 수습하라”는 말로 발언을 끝낸다.모두 물러갔다가 朴正熙와 柳原植이 다시 들어왔다.柳原植이 “저희는 이 혁명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면서과거에도 대통령에게 충성을다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마치 張勉내각이 물러나면 권력을 尹潽善에게 넘길 것처럼 들리게끔 하는말이었다. 尹潽善은 이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미 국무부 자료를 보면,그는 白樂濬 참의원의장을 쿠데타군쪽에 보내 ‘헌법 69조에 따라 尹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한다면 군부가 권력을 이양하고 철수할 것인가’를 타진한다. 한편 朴正熙 일행에 이어 마셜 그린 주한미대리대사와 매그루더 UN군사령관이 함께 尹潽善을 방문한다.두 사람은 이미 “張勉총리 영도 하의 합헌적인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였다.두 사람은 “서울시내에 들어온쿠데타군은 4,000명이 채 안되므로 4만 병력만 출동시켜 서울을 포위해 들어가면 쿠데타군이 항복할 것”이라며 무력진압을 주장했다. 그러나 尹潽善은 “국군끼리 전투를 벌여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북한 인민군이 기회를 노려 남침한다”는 논리로 끝내 반대한다.그린은 “각하의 이번결정으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군부통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를 남기고 돌아간다.매그루더는 尹潽善과의 면담후 본국 합참본부에 전문을 보내“尹대통령은 張총리를 몰아내고 싶어 가능한 법적 절차를 찾고 있다”고 보고한다. 尹潽善은 이날 오후 張都暎이 요청한 계엄령을 승인했으며 17일 오후 2시에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 “군사혁명위원회가 정부 기능을 대신한다”고 밝혀 張내각 퇴진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또 쿠데타를 “애국적인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張勉은 수녀원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사태의 전개를 알고 있었고 16일아침 그린 대리대사와 통화도 한다(그린의 증언).그는 내각 총사퇴를 결심한 이유를 “미대사관에서 尹씨의 태도를 연락받았는데 그가 쿠데타 진압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서밝혔다.그러나 張勉은 尹潽善에게 직접 연락해 쿠데타 저지를 논의하거나,최소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직접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尹潽善은 張勉의 행방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제2공화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적 지향과 인적 구성 등에서 이질적이었던 민주당의 신·구파,그리고 그들의 대표격인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갈등과 대립은 갓 피어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히게 하는 크나큰 비극을 초래한다.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저울질한다면 張勉과 尹潽善 그 어느쪽으로도 저울추가 결코 기울지는 않을것이다. 이용원- [기고] 張勉과 尹潽善 평가 5·16쿠데타가 일어나 張勉총리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尹潽善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한 것은 두 사람의 비극적 결합을잘 말해준다.우리가 슈뢰더 독일총리는 알아도 대통령 이름은 잘 모르듯 내각책임제 아래 대통령은 명목상 존재에 불과하다.그런데도 尹潽善은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처럼 행세하다 막상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때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해 버렸다. 尹潽善에게 쿠데타가 ‘올 것’인 이유는 자신의 파벌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당시 집권당은 한민당 후신인 구파와,재야 민주화세력인 신파의 연합으로 구성된 민주당이었다.申翼熙·趙炳玉같은 비중 있는 지도자가사망한 뒤 구파를 이끌게 된 尹潽善은 전형적인 과거형 정치가였다. 구파의 전신인 한민당은 우익민족주의 세력과 친일파 세력이 혼재한 정당이었다.UN한국위원단이 ‘보수적 지주정당’이라고 지적했듯이 해방직후 토지개혁에 반대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며,李承晩의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따라서 한민당이 李承晩과 결별하고 야당의 길을걸은 것은 이념과 정책상의 대립이라기보다 李承晩의 권력독점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한민당은 해방이후 좌익세력의 급진성과 李承晩의 독선이 낳은‘반감(反感)’이란 정치적 공간을 적절히 점유해 생존한 과거형 정당인 것이다. 4월혁명후 ‘대통령=구파,총리=신파’라는 합의 덕에 대통령에 선출된 尹潽善이,자파인 金度演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정치적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여기는 과거형 정치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대통령과 총리를 모두 차지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구파는 결국 민주당을 뛰쳐나가 신민당을 창당한다.尹潽善은대통령으로서 이런 분열적 행위를 제지하기보다는 부추기는듯한 처신을 보였고,정부를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해 張勉정부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개인과 파벌의 이익을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한 행위인 것이다. 반면 신파를 이끈 張勉은 1960년대 한국상황에서는 등장이 너무 빨랐던 미래형 정치가이다.자유민주주의에의 신념과 종교적 경건함이 밴 구도자적(求道者的) 정치가인 張勉은 2000년을 눈앞에 둔 현재에도 시기상조일지 모를 정도로 선진적인 정치가였다.그는 尹潽善이 이끄는 구파의 끝없는 시비를 인내하면서,1960년 10월 제2공화국 경축식에서 말한대로 “정부의 시정목표로서경제제일주의”를 주창한 실질적이고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쿠데타 세력이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내세운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나 국토건설사업은 모두 張勉정부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실천하고자 수립한 것들이다.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경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 張勉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 실천되었더라면 5·16이후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신화’라는 어두운 경제성장사는 ‘국민신화’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5·16후 두 사람의행보도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張勉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란 죄의식 속에 참회하다가 죽어간 반면,尹潽善은 ‘올 것이 왔다’던 쿠데타세력의 朴正熙 후보와 1963년과 67년 두 차례 대결했으나 패배했다.현실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꿈을 접었을 무렵인 1980년대에는 全斗煥 정권에 협력하다가 세상을 떠났다.쿠데타후 두 사람의 삶은 현재우리 정치의 낙후성의 한 원인을 말없이 웅변해준다. [李德 一 역사평론가·문학박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
  • 한나라 비주류 捲土重來 할까

    ‘비주류는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수 있을 것인가.그렇다면 그 시기는’-최근 한나라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의문 가운데 하나다.한나라당내 비주류의 행보가 정치권 전반의 구도변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정가의 관심은 더욱 비상하다.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비주류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세(勢) 결집 양상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지난해 하반기부터 2,3월 거사설이 나돌았으나 ‘거품’에 그쳤다.비주류는 또다시 4,5월 거사설을 주장하지만 ‘명분확보’에 힘겨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7일 총재회담을 전후해 당내 비주류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졌다.李會昌총재가 총재회담을 위상 강화의 호재(好材)로 여기는 반면 당내 비주류는여전히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시간을 곱씹고 있다.여권핵심의 의도가 ‘야당의원 빼내가기’에서 ‘젊은 인재 수혈’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비주류로서는 운신(運身)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李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현재 한나라당은 역대 어느 야당보다 잡음이 적다”며 비주류의 재기(再起) 가능성을 일축했다. 비주류쪽은 그러나 “늦어도 5월 이전에는 당내 비주류의 목소리가 구체화될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가까이는 3·30 재보선과 5월 이전 송파갑 재선거를 비주류 결집의 적기로 여긴다.한나라당이 선거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처지여서 자칫 지도부가 책임론에 휘말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金潤煥·李漢東부총재 등 민정계 출신 비주류 의원들의 골프회동도 ‘위기감’의 표출이 아니라 ‘활로모색’ 차원이었다는 주장이다. 비주류 모임은 아니지만 22일 TK(대구·경북지역)의원 골프회동에서도 주류인 李총재와 비주류인 金부총재의 갈등 국면이 화제에 오를 전망이다. 일부 참석자가 두 사람간 조속한 화해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황은간단치 않다.특히 최근 자민련 일각에서 “朴泰俊총재가 한나라당 비주류 핵심으로서 내각제론자인 金·李부총재와 회동,정국운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전개과정이 주목된다.
  • 새마을協·바살協·자유총련 등 관변단체 정치색 뺀다

    ◎특혜 중단… 시안별 진흥기금 지원/經實聯 등 시민단체와 경쟁 유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자유총연맹 등 정부 지원을 받아온 관변단체들에 대해 ‘정치적 중립화’ 방안이 모색된다. 또 정부의 별도 지원이 중단되고 대신 다른 사회단체들과 경쟁해 프로젝트별로 심사를 거쳐 민간운동진흥기금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 ◇정치적 중립 제도화=국민회의는 29일 당무회의에서 ‘6·4 지방선거’와 ‘7.21 재·보선’ 과정에서 관변단체들이 중립성을 상실한 채 구(舊)여권에 편중된 활동을 펼쳤다고 판단,이들 단체의 중립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辛基南 대변인이 밝혔다. 金琫鎬 지도위의장은 회의에서 “관변단체들의 활동과 인적 구성이 구여권에 편중돼 있다”면서 “관변단체를 포함해 통·반장 조직 등에 대한 중립화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金玉斗 지방자치위원장도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관내 관변단체의 중립화를 꾀하라고 요청했으나 성과가 미흡하다”면서“당 차원에서 중립화 방안을 마련,고위당정협의회에 상정할 것이며 단체장들에게도 중립화 방안 마련을 거듭 촉구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당정책위와 지방자치위 차원에서 구체적 중립화 방안을 마련한 뒤 고위당정을 통해 정부측에 건의할 방침이다. ◇민간단체와의 경쟁체제=정부는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바르게살기 중앙협의회,자유총연맹은 앞으로 경실련(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YMCA,YWCA,환경운동연합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경쟁시키는 방안을 마련중에 있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이날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등을 사회단체의 하나로 인정할 것”이라며 “개혁방향과 맞고 국가 및 사회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이에따라 민간운동진흥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한 민간운동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새마을운동 조직육성법,바르게살기운동 조직육성법,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을 각각 폐지하고 대신 민간운동의 육성·지원을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민간운동지원위원회를 설치하고,민간운동진흥재단을 설립해 공정하게 지원금 또는 보조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 한편 경실련 등의 5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협의회는 국민회의 법안을 토대로 시민사회 발전기본법 시안을 마련중에 있으며 다음달 중 공청회를 거쳐 법안을 확정해 국회에 청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 재·보선 투표율 제고 비상/선관위 홍보 총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7일 나흘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재·보선의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가 휴가철에 치러지는데다 평일이라 15대 총선 평균 재·보선 투표율인 53%를 밑돌 것으로 보고있다. 선관위는 이날 경제단체와 재·보선지역 기업체,각급 기관 및 단체에 공문을 보내 선거일이 평일이지만,‘근로자들이 투표하는 시간은 휴무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선거법 규정을 집중 홍보,회사에 다니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할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투표참여를 촉구하는 전단 15만장을 긴급 제작해 이날 열린 합동연설회 청중들에게 배포했다.
  • 수도권 재보선 후보에 공천장/金 대통령

    金大中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오는 21일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광명을) 盧武鉉 부총재(서울 종로) 朴旺植 지구당위원장(수원 팔달) 등 국민회의 후보들에게 공천장을 수여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광명시의 그린벨트 재조정의 필요성을 요청한 趙대행에게 “건설교통부에 지시,검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JP “친정집”에 힘 실어주기

    ◎보름만에 자민련 당사 찾아 당직자 격려/재보선 후보 면담… 부산·대구도 곧 방문 金鍾泌 총리서리가 2일 자민련 마포당사를 또 찾았다.지난달 17일에 이어 보름만이다.이날은 당쪽에서 요청했다.7·21 재보선 후보자 3명을 격려해달라고 부탁했다.그는 겨우 짬을 냈다.머문 시간이 10분을 넘기지 못했다.자민련으로서는 그의 친정(親政)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얘기다. 金총리서리는 먼저 대구·부산 방문 계획부터 공개했다.방문 목적은 산업시찰이라고 밝혔다.처음에는 대구만 갈 예정이었다고 했다.그런데 金大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부산에도 가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두 곳은 7·21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이다. 朴泰俊 총재는 “두 곳의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에게 강력히 얘기해달라”고 지원을 은근히 요청했다. 金총리서리는 관권선거 시비가 신경쓰이는 듯 했다.“그곳에 가더라도 선거 냄새가 나는 짓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金총리서리는 명예총재로서의 격려발언을 이어갔다.그는 “잘되는 집은 장맛이 다른데 당사에 들어올때 냄새부터 다르더라”면서 분위기를 유도했다. 이어 “친정에 가는 심정처럼 여기 오니 좋다”고 덧붙였다.재보선 후보자 3명을 확정하고,李美瑛 여성부대변인 임명,金慕妊·李澤錫 부총재 임명 등으로 모처럼 당사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이자 흐뭇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는 10일부터 17일까지의 프랑스 및 폴란드 방문 계획도 소개했다. 具天書 총무는 “서리 꼬리를 떼고 떠나시도록 하려고 했는데 죄송하다”고 출국 전 인준해결이 사실상 어려움을 토로했다.金총리서리는 “때가 있는 법인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거들었다.이날 자민련 당사는 꽉 찼다.
  • 자민련“숨은 1승 찾아라”/李壽成 전총리·5共인사 영입노력 무산

    ◎조직강화 등 재·보선 1석 건지기 안간힘 “숨은 1승을 찾아라” 자민련이 7·21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특명을 내렸다. 단 1승이라도 챙기려고 안간힘이다. 하지만 자민련이 후보를 낸 지역은 사실상 ‘난공불락’이다. 서울 서초갑,부산 해운대·기장을,대구 북갑 등 어느 한 곳도 전망이 밝지 않다.4·2보선과 6·4지방선거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자민련은 당초 ‘후보’로 승부를 시도했다. 서초갑에는 평통 수석부의장인 李壽成 전 국무총리 등 ‘빅 카드’를 검토했다. 대구 북갑에는 全斗煥 전 대통령의 동생 敬煥씨나 아들 宰國씨,鄭鎬溶 전 의원 등 5공세력 영입을 추진했다. 朴泰俊 총재는 全전대통령 자택을 방문해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무산됐다. 현재로서는 서초갑 李龍萬 전재무장관,대구 북갑 金吉夫 전 병무청장 등 기존 예상 후보를 능가할 인물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도부는 회심의 ‘역전 카드’를 내놓기 위해 분주하다. 극도의 보안속에 제3의 거물급 인사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25일 공개할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는 분위기다. 해운대·기장을의 경우 일찌감치 바람몰이에 나섰다. 오는 27일엔 지구당개편대회를 갖는다. 金東周 후보의 상품가치로 보아 해볼 만하다는 주장이다. 朴泰俊 총재는 26·27일 이틀동안 현지에서 지원 활동을 편다. 지방선거 때 선전했던 金杞載 전 부산시장후보의 측면 지원에도 기대를 거는 눈치다. 또 조직으로도 뒷받침할 태세다.이번 선거를 위해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朴俊炳 총장이 위원장을 맡아 지휘토록 했다. 韓英洙 서울·李台燮 경기·朴哲彦 대구·鄭相千 부산·池大燮 광주 전남지부장이 위원으로 가세한다. 金顯煜 의원은 충청권을 대표해 지원토록 했다.
  • 2與 강원지사 후보공천 신경전

    ◎자민련­“연고지 양보 불가” 한호선씨 선출 강행/국민회의­“당선 가능성 높은 인물로” 당론 고수 여권이 강원도지사 후보공천을 둘러싸고 난기류를 만났다.그것도 2중으로 형성됐다.국민회의와 자민련간 신경전에 자민련 내부의 불협화음이 겹쳤다.‘DJT’ 삼각공조의 한 축이 위협받는 형국이다. 자민련은 13일 강원도지사 후보선출대회를 강행했다.앞서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이날 자민련 金龍煥 부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趙대행은 “연합공천이 해결될 때까지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金부총재는 “예정대로 성대히 치룰 것”이라고 거절했다. 자민련 朴泰俊 총재도 참석하려고 했다가 인천시장후보 선출대회 일정이 빡빡해 고심 끝에 취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朴총재가 참석하면 국민회의와의 절충을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선다.金大中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따라서 한발 뒤로 물러서 절충여지를 남겨 놓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양측 입장이 너무 팽팽하다는 점이다.국민회의는 ‘李相龍후보’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趙대행은 이날 “당론을 반드시 관철시킬것”이라고 말했으며,다른 핵심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쪽 후보는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은 전날 저녁과 이날 새벽 두차례 긴급 부총재단회의를 열어 ‘양보불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金龍煥 부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공동정권 정신에 입각해 강원도는 자민련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내부에서도 미묘한 마찰음이 감지되고 있다.朴총재와 金鍾泌 총리서리 사이가 그렇다.金총리서리측은 강경하다.朴총재가 국민회의측에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총재단은 ‘양보불가’ 결의를 朴총재에 전달했다.힘을 실어 주려는 취지도 있다.하지만 朴총재는 金총리서리가 보낸 ‘무언(無言)의 압력’으로 여기고 있다.朴총재는 ‘경기공천’때처럼 다시 DJP 틈바구니에 낀 형국이다.결국 이번 고리도 DJP가 풀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 기지개 켜는 거야 명예총재

    ◎의원 등 50여명 초청오찬… 새 역할 모색/12일 지구당 개편 참석 정치행보 재개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가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조짐이다.6박7일동안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일 귀국한 이명예총재는 5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당시 공항출영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가까운 인사들을 초청,점심식사를 대접했다.이날 오찬행사에는 현역의원 29명과 지구당 위원장 10명 등 50여명이 참석,‘예상밖의’ 성황을 이뤘다. 이명예총재가 국회의 파행사태에 따른 노고를 치하하자 일부 참석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흔들림없이 구심점을 갖춰야 원내 대책은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이회창 역할론’을 개진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특히 오랜만에 상견례를 가진 이명예총재에게 ‘정치적’ 덕담이 건네지고 황낙주 전국회의장이 건배를 제의하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명예총재는 오는 12일 대구달성 지구당(위원장 박근혜) 개편대회 등 재·보선 지역구의 선거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레 정치 행보를 재개한다.특히3개 지역구의 재·보선을 앞둔 대구·경북에서는 벌써부터 이명예총재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내주부터는 언론사와의 공식 인터뷰도 다시 시작한다.정치 전면에 나서기에는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 이명예총재측의 생각이지만 가변적인 정치상황에서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해 보인다.
  • 반상서 읽는 정치재기 의지

    ◎이수성 전 총리­이인제 고문 22일 바둑회동/이 전 총리­정계개편이후 입지 모색중/이 고문­보선 등 대비 ‘TK 모시기’ 뜻 이수성 전 총리와 국민신당 이인제 고문이 오는 22일 바둑회동을 갖는다. 이번 회동은 대선 이후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는 두 사람의 새해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바둑대결 이상의 관심을 끈다. 이전총리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경선 때 지지했던 서청원 의원 등과 회동한 이후 새해들어 정치권 인사와의 접촉은 일체 피하고 있다.오는 2월말 객원교수로 와달라는 미국 조지타운대의 요청도 일단 유보해놓은 상태다.한 측근은 “IMF사태가 터졌는데 한가롭게 외국에 나가는게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새 정부 출범과 맞물릴 정계개편 등 정국상황을 보아가며 정치재개의 입지를 찾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정가에선 국민회의의 이전총리 영입설도 무성한 상태다.이 측근은 그러나 “아직 구체적 제의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정치를 다시 할 뜻은 분명히 갖고 있다”고 전했다. 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5월 지방선거에서 재기를 노리는 이인제 고문도 이번 회동에 나름대로 의미를 두는 듯 하다.지난 대선 TK지역에서 참패한 이고문으로선 이전총리 ‘모셔오기’의 포석으로 보인다.공인 아마5단의 기력을 보유한 이들의 반상대결(28일 바둑TV방영예정)은 22일 상오 서울 평창동 조훈현 9단의 자택에서 이뤄진다.
  • 정부수립부터 오늘까지/연표로 본 대한민국 50년

    ◎36년만의 주권 회복… 6·25 상흔 딛고 산업화 대장정/시련속에 꽃피운 민주화운동… ‘문민시대’ 열며 개혁의 길로 ▷48년 정부수립 과정◁ ◇정치 ▲1월8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방한 ▲5월10일 남한 총선거 실시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 ▲6월10일 국회의장에 이승만 박사 선출 ▲7월17일 제헌절 제정 ▲7월20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통령 이시영 선출 ◇사회·문화 ▲1월7일 의무교육제 실시 ▲4월3일 제주도 무장폭동 ▷제1공화국◁ ◆정치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미군정폐지 ▲ 〃 9월13일 행정권의 한국 정부 완전이양 ▲ 〃 11월30일 국군조직법 공포 ▲ 〃 12월9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승인 ▲50년 6월25일 6·25동란 발발 ◇경제 ▲50년 12월10일 한·미 경제원조협정 조인 ▲55년 8월8월 증권시장 개장 ◇사회·문화 ▲48년 10월20일 여수·순천 반란사건 ▲50년 6월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체육 ▲50년 4월12일 한국,보스톤 마라톤대회 제패 ▷제2공화국◁ ◇정치 ▲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실시 ▲ 〃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성명 ▲ 〃 4월28일 과도정부 구성 ▲ 〃 8월12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 의원 선출 ▲ 〃 8월19일 초대 총리에 장면 의원 ▷제3공화국◁ ◇정치 ▲61년 5월16일 군사혁명위원회 설치 ▲ 〃 5월20일 장도영 중장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 출범 ▲62년 4월24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대통령권한대행 ▲62년 12월26일 헌법개정(대통령책임제) ▲63년 12월7일 제3공화국 출범(박정희 대통령 취임) ▲70년 12월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72년 10월17일 박대통령,국회해산 및 계엄선포 ▲ 〃 12월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첫 대의원 선거 ▲ 〃 12월27일 유신헌법 공포 ▲74년 1월8일 긴급조치 1·2·3호 선포 ▲ 〃 1월15일 고위공직자 숙정 ▲ 〃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경제 ▲62년 1월5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66년 1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회·문화 ▲68년 11월29일 서울시내 전차철거 ▲ 〃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72년 4월10일 문교부,지명의 로마식 표기공표 ◇통일·외교 ▲65년 1월8일 월남파병 결정 ▲68년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납 ▲68년 11월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출현 ▲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71년 3월27일 첫 미군 철수 ▲ 〃 9월20일 남북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첫 예비회담 개최(판문점) ▲ 〃 12월27일 국가보안법 국회 통과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 8월30일 남북적,본회담 평양서 개막 ▲74년 1월30일 한·일 대륙붕협정 체결 ▲ 〃 8월15일 서울지하철 개통 ▷제4공화국◁ ◇정치·행정 ▲75년 2월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률 73.11%) ▲79년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 ▲ 〃 1월6일 최규하 대통령 취임 ◇사회·문화 ▲75년 6월30일 예비군 창설 ▲ 〃 9월2일 학도호국단 발단식 ▲ 〃 9월22일 민방위대 발대식 ▲76년 4월30일 매월 말일을 반상회로 지정 ▲ 〃 8월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 ▲77년 9월15일 한국등반대 에베레스트 정복 ▲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 〃 4월21일 대한항공기 소련 무르만스크강제착륙 ▲ 〃 10월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경제 ▲76년 6월18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77년 6월19일 국내 최초 고리원자력1호 발전기 점화 ▲ 〃 7월1일 부가가치세 실시 ◇통일 외교 ▲75년 4월29일 주월 한국대사관 철수 ▲76년 8월18일 북한군 판문점에서 집단도끼만행 사건 ▲77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사령부 발족 ▷제5공화국◁ ◇정치·행정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 〃 7월9일 2급이상 고위공무원 232명 숙정 ▲ 〃 7월15일 3급이하 공무원 4천760명 숙정 ▲ 〃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 〃 8월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대통령당선 ▲83년 1월1일 공직자 윤리법 발효 ▲ 〃 7월13일 입법예고제 첫 실시 ▲ 〃 10월8일 아웅산 테러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공직자 17명 사망 ▲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대표,대통령직선제 선언 ◇경제 ▲80년 11월8일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81년 8월21일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5년 7월4일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0년 7월30일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 〃 8월2일 컬러TV 시판 ▲ 〃 11월1일 사회정화위원회 발족 ▲81년 9월30일 서울올림픽 개최확정 ▲82년 1월5일 야간통금 해제 ▲83년 3월2일 중고생 복장자율화 ▲ 〃 6월30일 KBS 이산가족찾기운동 ▲ 〃 9월1일 KAL기 격추 ▲86년 1월13일 대입논술고사 첫 실시 ▲88년 2월15일 예술의 전당 개관 ◇통일·외교 ▲84년 2월1일 팀스피리트 훈련개시 ▲85년 7월23일 남북 국회회담 첫 예비접촉 ▲ 〃 9월20일 남북고향방문단 서울·평양에 도착 ▲86년 1월20일 북한,남북회담 일방연기 ▲87년 11월29일 북한,KAL기 추락 ▷제6공화국◁ ◇정치·행정 ▲88년 9월17일 제24회 서울하계 올림픽 개최 ▲ 〃 11월23일 전두환 대통령 재산헌납 발표 ◇경제 ▲91년 11월12일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9년 1월1일 해외여행제한연령 완전철폐 ◇통일·외교 ▲90년 6월5일 한소 정상회담(샌프란시스코) ▲ 〃 9월4일 남북 첫 총리회담 개최(서울) ▲ 〃 10월16일 2차 남북총리회담(평양)▲ 〃 9월18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91년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선언 ▲ 〃 12월31일 남북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92년 한중 수교합의 발표 ▷문민정부◁ ◇정치·행정 ▲93년 2월27일 김영삼 대통령 재산공개,국무위원 등의 재산공개 당부 ▲ 〃 8월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 가동 ▲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5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선거,김대중 후보 당선 ◇경제 ▲93년 5월26일 신경제 5개년 계획발표 ▲ 〃 8월20일 경부고속도로 차종 TGV 확정 ▲ 〃 12월13일 쌀시장개방 합의 ▲94년 5월16일 금융실명제 실시 ▲96년 12월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97년 12월3일 IMF자금 요청으로 ‘IMF시대’ 도래 ◇사회·문화 ▲93년 4월6일 종합유선방송 허가 발표 ▲ 〃 8월20일 제1차 대학수학 능력시험 실시 ▲94년 1월6일 대입 본고사 14년만에 부활 ▲ 〃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96년 5월31일 한·일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 결정 ◇통일·외교 ▲94년 7월2일 남북정상회담실무절차 합의 ▲95년 6월29일 대북 경수로지원 합의 ▲97년 8월19일 대북경수로 부지공사 착공
  • 전국 기초단체장 총회­대정부 건의문 내용

    ◎“기초단체장협 법적단체 인정을”/‘장’의 정당공천 배제·사퇴시 보선 필수적/‘자치발전 과제’ 추진때 ‘장’의견 반영해야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협의회 총회에서 참석 단체장들은 9개항의 정부건의문과 결의문,성명서을 통해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 협의회’를 법적단체로 인정해줄 것 등을 요구했다. 또 내무부에서 구상중인 지방자치발전 10대과제 추진에 기초단체장의 의견을 반영해줄 것도 주장했다. 전날 회장단회의에서 채택한 정부건의문 이외에 총회에서는 각종 요구사항이 봇물처럼 쏟아졌다.특히 기초단체장에 대한 공천배제문제와 광역자치단체장이 중도하차했을 경우 후임자 선정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최근 협의회가 기초단체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정당공천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만큼 공천배제문제를 정식으로 건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조순 서울시장과 이인제 경기지사가 사퇴하면서 후임 광역단체장을 보궐선거 없이 지명에 의해 선임할 경우 ‘민선기초단체장이 관선광역단체장의 지시’에 따르는 결과를 낳게돼 민선자치의 취지를 뿌리채 부인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총회에서 ‘공천배제’와 ‘보궐선거’를 공식적으로 결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각 단체장들의 소속 정당이 각각 다른데다 만장일치가 아닌 투표까지 갈 경우 모양새가 좋지않다는 주최측의 주장에 따라 일단 두가지 안건은 공동회장단에서 결정토록 하자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이날 총회는 또 기초단체장들이 지난 2년동안 민선단체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지방자치제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함과 동시에 법적 지위가 애매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모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단체장 임명제나 단체장들의 권한 약화 등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수없이 세제개혁과 제도개선을 요구했지만 어느것 하나 시원하게 개선된 것이 없고,민선단체장의 위상에 대해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면서 실상 당사자들은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이와는 별도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각 정당에 공약으로 해줄 것도 요청하는 한편 대통령 후보자들과 간담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 갈수록 꼬이는 DJP 단일화/안양보선 공천싸고 양당간 신경전

    ◎국민회의측 출마포기로 땜질 처방 야권후보 단일화협상이 안양 만안 보궐선거의 암초에 걸려 좌초될 뻔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후보공천을 놓고 벌인 신경전이 원인이 됐다.이 때문에 이날 예정된 협상소위가 무기 연기되는 진통을 겪었다.국민회의측의 양보로 땜질은 급히 이뤄졌지만 서로가 보인 앙금은 협상의 험로를 예고했다.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간단하다.자민련은 김일주씨를 야권후보로 공천했다.국민회의는 비주류 반발 때문에 이의를 제기했고,자민련이 묵살한게 전부다.그러나 전개과정에서 감정전으로 서서히 비화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국민회의 한광옥 부총재와 김충조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자민련 김종필총재를 만나 제고를 요청했다.김총재는 “우리 뜻을 존중해달라”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그리고는 자민련은 14일 단일화 협상 직전에 보이콧을 선언했다.김일주 공천자를 내세운 안양만안 지구당 개편대회도 강행했다.이 과정에서 자민련 김용환 부총재는 국민회의측의 ‘항의성 특사’파견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협상을 깰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국민회의측은 탈당 및 민주당 후보 출마 불사를 선언하며 버텨온 이준형 안양만안지구당위원장의 출마 포기로 급한 불을 끄게 됐다.이로써 협상이 곧 재개될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하지만 이번에 노출된 양측의 대립은 협상 앞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민회의측은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측 인사였던 김일주씨를 공천한 데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보수대연합에 더 마음이 가있는게 아니냐는 시각이다.자민련 또한 국민회의와의 결합이라는 외길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사실상 김종필 총재의 양보를 요구하는 단일화협상인 만큼 더 그렇다.
  • 이기택·박태준 운동원 충돌/포항 보선 전야 표정

    ◎금품살포 시비 유권자 막판 과열에 눈쌀 포항 북구 보궐선거 하루 전날인 23일 각 후보 진영은 막판 표다지기와 함께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시장 등 유권자들이 모인 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그러나 민주당 이기택 후보측과 무소속 박태준 후보측 운동원들이 금품살포 시비 끝에 서로 폭력을 휘두르는 등 과열 혼탁양상을 빚어 유권자들이 눈쌀을 찌푸렸다. ○…이날 상오 10시 30분쯤 대해초등학교 인근 가정집에서 민주당원 4명과 무소속의 박태준 후보 부인을 포함한 4명이 돈가방 시비로 서로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박후보의 부인 장옥자씨가 팔과 다리에 찰과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치료중이며 이 후보측 운동원인 최창락 마효창씨 등 2명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이어 이 후보측과 박 후보측이 북부시장 등 개인연설회장에서 상대방을 비난하자 유권자들이 ‘비난 자제’를 요청하는 등 진풍경. ○…신한국당의 이병석 후보는 전날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 후보의 지원유세로 힘을 얻은 듯 아침 일찍부터 표밭을 다니며 막판 대역전극을 꾀하는모습.이후보는 지원차 포항을 찾은 김윤환 상임고문과 이상득 의원,이명박 의원 등과 함께 죽도시장 흥해시장 등을 방문하며 지원를 호소했고 우창동 양학동 등 그동안 자주 찾지 못한 곳을 구석구석을 돌며 ‘세대교체’를 외치는 등 하루종일 바쁜 일정. ○…이기택 후보는 이날 하루동안 모두 13회에 걸친 개인연설회를 펼치는 등 강행군.상오 9시 자신의 고향인 송라 장터에서부터 밤 10시 숙소인 장성동 럭키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긴 개인연설의 노정을 밟았다.이후보는 “노장정치를 끝내고 50대의 젊은 정치인을 키워주는 것이 한국의 정치 발전에 이바지 하는 길”이라고 역설. ○…박태준 후보는 개인연설회를 겨우 5차례 정도 가지는 대신 이른 아침부터 마을 뒤산인 탑산 등을 돌아다니며 밑바닥 훑기를 전개.하오 6시부터 포철 전용구장에서 열린 프로스펙스 배 축구대회장에 참석해 관람객들에게 지지를 호소.
  • 정치권 본분에 충실하라(사설)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통령후보 선출로 여야 3당이 모두 대선체제를 갖추어 대선정국으로 급속히 전환될 전망이다.지난 2개월동안 정치권은 여야 3당의 전당대회로 어수선했다.이제는 내부경쟁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소홀히했던 국정현안을 차분하게 다루어 본분에 충실해야할 차례다.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조기선거분위기가 조성되고 당리당략의 다툼이 치열해져 앞으로 대선까지 5개월간의 국정이 정략에 의해 왜곡되고 심지어 민생현안들이 정쟁때문에 뒷전에 밀려 표류할 우려마저 없지않다.그렇게되면 금년들어 반년이상을 경제난,한보사태 등으로 허송한데 이어 사실상 대선때까지 1년을 갈등과 소모의 정치로 국력을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전환기일수록 정치권은 안정을 유지하는데에 협력하고 민생현안과 개혁입법 등의 처리에 성의를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생산적인 정치상을 보여주기를 각별히 당부한다. 우선 그동안 신한국당의 경선으로 개점휴업상태에 있던 임시국회를 정상화하여 내실있게 운영하기 바란다.23일부터 벌어질 대정부질문을 상대당과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의 정쟁기회로 삼지말고 국정현안을 다루는데 전념해야할 것이다.30일까지의 각종 법안처리도 심도있게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24일에 실시되는 충남 예산의 국회의원 재선거와 경북 포항의 보궐선거도 여야가 대선 전초전으로 의미를 확대하여 중앙당 차원의 과열개입을 조장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끝내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야는 정치개혁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대선정국으로 들어가면서도 돈안드는 선거 구현을 위한 새로운 대선규칙은 마련되어 있지않은 상태다.지난달 21일부터 현행선거법상 기부행위제한의 적용이 시작되고 선관위는 벌써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에 대해 사전선거운동의 자제를 요구한 바 있다.금권선거의 소지를 배제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공명선거를 이룩할 수 있는 대선의 새로운 룰을 만드는 과제는 시급하다.임시국회의 남은 일정이 촉박하다면 폐회전에 최소한 최종시한의 설정과 특위구성 등 방법과 처리원칙 정도는 여야간에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것마저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여야합의로 정부주도 입법을 요청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아울러 여야는 대선의 공정관리 등 대통령의 임기마무리를 위한 국정수행에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신한국당의 후보선출로 여당의 지도체제가 변화하고 자유경선의 결과로 계파가 소멸하는 대신 주류대 비주류의 역학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대통령후보와 현직대통령간의 관계정립도 주목의 대상이다.자칫하면 범여권의 갈등과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여권은 권력이동의 민감한 시기임을 살펴 여당의 안정을 통한 국정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인내와 자제로 단합과 협력을 실천해야할 것이다.
  • 이회창 후보 선출­투·개표 이모저모

    ◎낙선 후보와 일일이 포옹… 화합 다짐/4인연대 결속… 지원호소 불구 역전극 무산/박빙의 3위 이한동 후보 결선개표전 퇴장 21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신한국당 제15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는 집권당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완전자유경선 답게 시종 진지하면서도 뜨거운 열기속에 진행됐다.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과 이만섭 대표서리,경선후보 6명을 비롯 대의원 1만2천104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회는 1차투표까지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다 투표결과가 발표되면서 대회장은 흥분과 긴장의 도가니로 바뀌었다.그러나 1차투표에서 5표차이로 2,3위를 차지한 이인제,이한동 후보의 투표결과를 놓고 이한동 후보측이 재검표를 주장,재검표를 실시하는라 행사 시간이 크게 지연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힘모아 뛰어줄것 확신 ▷결선 투·개표◁ ○…이회창 대선후보당선자는 하오 8시30분 탄생했다.민관식 선관위원장은 결선투표 개표결과를 전달받은뒤 1만여명의 대의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이회창 후보 6천922표,이인제 후보 4천622표”라고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알렸다.이어 서정화 전당대회의장의 당선 선포와 동시에 대회장에 축포가 터지고 꽃가루가 흩뿌려지면서 대회는 최고조의 절정에 이르렀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당선자와 꽃다발을 나눠 들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손을 맞잡아 들어 당의 단합과 필승을 다짐했다.팡파레와 대의원들의 연호가 뒤엉킨 가운데 이당선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결선상대였던 이인제 후보와 이수성 최병렬 김덕룡 후보와 힘차게 포옹하며 화합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한동 후보는 결선개표가 시작된 직후 곧바로 대회장을 퇴장,근소한 표차로 1차투표에서 낙선한데 따른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당선자는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이해와 화해,타협,단결을 거듭 강조했다.이당선자는 “저를 지지한 당원이든,다른 후보를 지지한 당원이든 우리 모두는 신한국당의 기치 아래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갈 동지”라며 “저와 경쟁했던 모든 동지들이 이제부터 저와 함께 굳게 손을 잡고 힘을 모아 뛰어줄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결선투표 결과가 발표된뒤 축하연설에서 “이후보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경선에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임한 모든 후보들에게도 마음으로부터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은 밝은 표정과 힘찬 어조로 “이후보는 도덕성과 경륜을 갖춘 인물로서 대통령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지도자”라고 이후보 당선자를 치켜세운뒤 “이후보가 연말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어 여러분의 지지에 보답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이어 이후보 당선자를 신임 대표위원으로 지명한뒤 함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결선투표 정견발표◁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결선투표에 앞서 이날 긴급동의에 따라 마련된 정견발표를 통해 득표를 위한 최후의 대결을 벌였다. 먼저 등단한 이인제 후보는 “연말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누를 후보가 과연 누구이겠느냐”고 되묻고 “내가 김총재와 대결한다면 10% 차이로 압승하는 것으로 여론조사에 나타났다”고 본선경쟁력을 강조했다.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의 웅변식 연설을 겨냥,“나는 웅변으로 말자랑이나 하러 나서지 않았다”고 ‘발톱’을 세웠다.이후보는 “과연 41%를 얻은 이회창이 여러분과 함께 있는가,아니면 14%를 얻은 다른 후보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가”라고 대세론을 앞세웠다.이후보는 이어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할 것”이라면서 “안정적 개혁과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력을 원한다면 이회창을 선택하라”고 호소했다. ○대의원들에 결속 과시 ○…연설에 앞서 두 후보는 10여분동안 각각 측근 40여명과 함께 스탠드의 대의원석을 2∼3차례씩 돌며 바람몰이를 시도했다.두 후보가 스탠드를 도는 동안 장내는 이들을 연호하는 대의원들의 함성으로 열기가 한껏 고조됐다.특히 전날 2위득표자에게 표를 몰아 주기로 합의했던 ‘4인연대’의 이한동 이수성 김덕룡 후보는 이인제 후보와 함께 대의원석을 돌며 결속을 과시했다. ▷1차개표◁ ○…민관식 선관위원장은 하오 2시50분 1차개표작업이 마무리되자 곧바로 1만3천여명의 청중이 숨죽인 가운데 개표결과를 발표했다. 민위원장은 “개표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한 뒤 “김덕룡 후보 1천674표,이한동 후보 1천771표,최병렬후보 236표,이회창 후보 4천963표,이수성 후보 1천648표,이인제 후보 1천776표를 차지,결선투표에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올랐다”고 선언했다. ○“힘든싸움 될뻔했다” ○…개표결과가 발표되는 순간,41%의 득표로 1위를 차지한 이회창후보 진영과 지지대의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1차투표 승리를 기뻐했다.특히 “이수성 후보가 2위를 차지하면 결선투표가 지역대결구도로 흘러 ‘힘든 싸움’이 될 뻔했다”고 이수성 후보의 5위 득표에 안도하기도 했다.이후보측은 이인제·이한동 후보에 대한 재검표가 실시되는 동안 측근 30여명과 함께 지지대의원들의 연호속에 행사장을 한바퀴 돌며 2차투표에서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수성 후보 “결과 승복” ○…이수성 후보는 1차투표 결과 아슬아슬한 차이로 5위를 기록하자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을보였다. 이후보는 1차투표 개표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들에게 “처음이나 지금이나 담담한 심정”이라면서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장영철·김동욱·유용태·강성재·정의화 의원 등 지지자들을 만나자 “내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서 “내 의견대로만 선거운동을 해온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1차투표에서 불과 8표차로 2,3위가 갈린 이인제 후보측과 이한동 후보측 가운데 이인제 후보측은 특히 초조한 표정이 역력했다.이후보측은 “당 선관위에 투표함 보전신청을 하고 사후에 잘잘못을 가리면 될 것을 전수 재검표로 시간을 끌고 있다”고 선관위측에 항의.이후보측은 결선투표에서의 역전은 4인연대의 결집력에 달려있으나 결선투표까지의 빈 시간이 늘어나면 1차에서 탈락한 후보 지지대의원들이 귀향하는 등 결속력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모습.실제 이수성 후보를 지지했던 경남 모지구당의 경우 대의원들이 행사장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귀향하는 대의원 일부가 행사장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차투표◁ ○…1차투표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결선승리의 분수령인 ‘40%선 득표’를 허용한 ‘4인연대’진영에서는 그러나 ‘4인연대’의 표를 모두 합친 수가 6천869표로 이회창 후보보다 1천906표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결선에서 뒤집을수도 있다”며 기대섞인 결선 대역전극을 점치기도 했다. ○단합 정권재창출 촉구 ○…김대통령은 후보선출에 앞서 총재 치사에서 당의 단합을 통한 정권재창출을 다짐.김대통령은 “대선을 향한 진군대오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굳게 뭉쳐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영광의 월계관을 쟁취하자”고 역설.김대통령은 특히 당의 단합과 대선 승리를 다짐하는 대목에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고,대의원들은 13차례의 박수와 환호로 이에 화답.김대통령은 이어 투표가 시작되자 대의원번호 1번으로 제1투표소에서 한표를 행사. ○“나와 닮은 후보찍어” ○…19일 경선후보직을 사퇴한 박찬종 고문은 투표가 시작되자 곧바로 한 표를 행사한 뒤 대회 시작 1시간만인 상오 11시 수행원들과함께 대회장을 총총히 퇴장.박고문은 “누구를 찍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을 찍었다”고만 언급. 지난달 말 경선후보직을 전격 사퇴한 뒤 미국으로 출국했던 이홍구 고문도 20일 귀국,이날 대회에 참석해 한표를 행사. ○정견발표 요구로 소란 ▷대회장 주변◁ ○…이날 전당대회에서는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위원장들이 ‘4인연대’를 대표해 후보자 정견발표를 요구하며 의사진행발언을 요청하려다 대통령경호실 직원과 행사진행요원에 의해 대회장 밖으로 끌려나가는 등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총재치사 직후 대통령후보자 선출안건이 상정되자 이후보측의 송천영 이철용 박홍석 위원장 등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고 “의장,긴급동의 있다”며 대의원석에서 걸어나갔다.순간 행사장내의 경호실직원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행사장바깥 복도로 몰아내는 과정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맞고함이 오갔다.송위원장 등은 “발언권도 주지않고 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전당대회는 절차상 명백한 하자가 있다”며 격렬히 항의했다.이에 당 선관위는 현장에서 즉각 전체회의를 소집,결선투표에서 1·2위 후보들의 동의를 조건으로 10분씩 정견발표를 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 온산계 오늘 대규모 모임 눈길

    ◎위원장 50여명 참석… 이수성 고문 초청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아호 온산) 계보원들이 24일 저녁 시내 한 음식점에서 모처럼 자리를 같이한다. 이날 모임에는 온산계 원내외인사 5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수 정재문 노승우 김형오 김찬우 김동욱 유종수 김무성 김기재 한이헌 정형근 권철현 노기태 황학수 이강희 의원과 황명수 송천영 유성환 박태권 박홍석 송영진 위원장 등이다. 온산계가 이처럼 대규모 모임을 갖기는 지난 5일 계룡산 갑사에서 열린 민주산악회 전진대회 이후 처음이다.이번 모임은 특히 경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표측과 온산계가 속한 정발협이 정면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더구나 정발협이 당내 민정계모임 나라회의 이대표 지지움직임에 맞서 내달초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표명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적잖게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이날 모임이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이수성 고문의 참석이다.온산계는 23일 이고문에게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자리가 온산계의 이고문 지지모임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온산계의 이고문 지지 가시화는 정발협내 최대세력이라는 위상을 감안할 때 정발협 전체의 후보선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대표측과 전면전에 들어간 정발협으로서는 이한동·박찬종 고문 및 김덕룡 의원의 3인연대와 이인제 경기지사에게까지도 문호를 열어 놓아야 할 처지여서 당장 카드를 뽑지는 않을 전망이다.
  • 포항보선 D­30/외곽지원 “후끈”

    ◎TJ­자민련 전·현의원·박지만씨 잇단 방문/KT­김동길씨­비주류 가세 “해볼만한 싸움” 다음달 24일로 잠정 결정된 포항보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다음주 초쯤 선거일 공고에 이어 후보등록을 마치면 선거운동이 공식화될 전망이다. 박태준 전 포철회장과 이기택 민주당 총재라는 두 거물이 맞붙어 벌써부터 포항을 드나드는 정치인과 비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잦다.후보측의 요청이거나 자발적인 지원에 따라서 나서는 것이다.법정선거가 시작되면 정치인들의 포항행은 더욱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측을 지원하는 인사들은 조직적으로 몰리고 있다.자민련의 정석모·김현욱·강창희 의원과 박준병 전 의원이 다녀온데 이어 23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탤런트 이낙훈씨가 포항을 방문했다. 자민련의 박준규 고문·박철언 부총재·이정무 총무 등 TK인사들도 24일 전당대회가 끝나는대로 포항행에 합류할 예정이다.국민회의측의 공개적인 지원은 포항정서를 감안해 피하고 있다. 이총재는 야권통합운동때 친밀하게 지냈던김동길 박사가 「박태준 퇴진론」을 펴면서 간접적으로 이총재를 돕고 있다.이부영 부총재,제정·김홍신·이미경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도 뛰고 있다.신한국당 이병석 위원장은 최근 이수성·박찬종 고문과 이인제 경기도지사 등이 대의원 표밭을 다지기 위해 들렀다.그러나 이위원장측은 신한국당의 후보 경선분위기탓에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불만이 대단하다. 보선이 다가오면서 후보진영의 목소리가 변하고 있다.박 전 회장측은 포항을 하루라도 비울수 없을 정도로 이총재의 추격에 긴장하고 있다.이총재측은 한달만에 「해볼만한 싸움」에서 「이길수 있다」는 표현으로 바꿨다.
  • 주자들 경선원칙 합의하라(사설)

    집권여당 사상 처음인 신한국당의 완전한 자유경선에 의한 대선후보선출은 우리 선거문화와 정당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이다.3김시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의 모델을 창출하는 계기이기도 하다.돈 안쓰는 깨끗하고 명랑한 선거,음해와 모략의 인신공격 대신 21세기의 비전을 겨루는 정책대결,결과에 승복하는 축제적 전당대회라는 우리 정치의 숙원을 이루는 과제가 그것이다. 따라서 지역할거의 사당을 마음대로 부수고 짓는 악순환을 끊고 정권을 뛰어넘는 생명력을 가진 큰 정당,항구적인 정치안정의 보루로 지속시키는 새로운 정당사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한다는 여망에도 부응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경선의 예비단계인 지금까지의 양상은 시대적인 요청과는 거리가 먼 구태의 재연으로 비치고 있다.국가경영의 경륜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경쟁자의 약점을 염두에 둔 음해와 인신공격,사상시비 등으로 당이 연일 소란스럽다.심지어는 야당인지 여당인지 분간이 되지않을 정도로 인기영합의 무책임한 주장을 다투어 제기하고 세력확장에만 열을 올려 불신과 대립이 깊어지고 당이 온존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가뜩이나 어지럽고 어려운 국가적 난국을 가중시키고 정치의 불확실성을 심화시키는 이같은 부정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당내 민주화의 신기원을 열기 위해 예비후보들이 투철한 소명의식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점에서 한 예비주자가 부정적,폭로성 비판의 자제,비전제시와 정책대결,금력배제,결과승복등 경선원칙을 제시하고 주자들간의 회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한 움직임이다.특정인의 주장이라는 차원을 떠나 예비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페어플레이 원칙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합의 선언하고 행동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선운동방법도 세몰이식 대의원 포섭을 지양하고 TV토론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여 돈 안드는 경선을 수범할 것을 권고한다.
  • 이기택 총재 포항서 재기 시동

    ◎대변인 일 파견 박태준씨에 협조요청 민주당 이기택 총재가 고향인 경북 포항북에 새 둥지를 틀 것 같다.12·12 및 5·18 관련 재판으로 허화평씨가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그 빈자리를 노리고 있다.다음주 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힐 것이 확실시된다. 이총재는 23일 『당의 활성화를 위해 총재가 원내에 진출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대선전략 측면에서도 보선 출마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출마 결심을 거듭 내비치는 대목이다. 이총재는 지난해부터 이곳을 정치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것을 염두에 두어왔다는 후문이다.주변을 통해 현지 여론을 조심스럽게 탐색해왔고,「현지추대위」를 발족하는 방안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마지막 정지작업으로 22일 권오을 대변인을 일본으로 파견,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출마 여부를 확인했다.박 전 회장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측근을 통해 『이대표를 도와주든지,출마하려면 민주당 후보로 나와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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