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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23)-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下)

    장면(張勉)정부에게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사건 처리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국민감정을 만족시키려면 ‘부정축재’범위를 넓혀 주요 기업인들을 대부분 구속하고 그들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더욱이 국정지표의 으뜸으로 ‘경제제일주의’를 내건 장면정부로서는 민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도 있는 정책을 섣불리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국민감정을 따른다’는 명분과 ‘경제건설의 토대를 망칠 수 없다’는 당위 사이에서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장면정부의 고민이었다.그고민은,장면이 총리로 등극해 처음 민의원에서 밝힌 시정방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장면은 우선 “구정권 하에서 부정·불법 축재한 자를 처단할 것은 물론이나 사업과 경제를 마비시키지 아니하는 적절한 한도는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이어 과도정부가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적발한 46개사,23명을 계속 수사하는 한편 추가조사도 벌이겠다면서 “증거를 포착하기 곤란한 만큼 국민의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정축재자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정치비리 관련자에 대한 것 못지않았다.이승만(李承晩)이 하야한 지 10여일만인 1960년 5월1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부정축재자의 재산을 환수하라”는 데모가 일어날 정도였다. 반면 부정축재의 범위를 정하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는 정치사건에 비해 훨씬 힘들었다.게다가 허정(許政)과도정부가 부정축재자 처리를 ▲징역형보다는 재산형(財産刑)으로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헌납하도록 테두리를 정한 터여서 운신의 폭은 좁았다. 장면정부가 출범한 나흘 뒤인 8월27일 참의원(상원)은 ‘부정축재자 조사특별위원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31일에는 정부가 부정축재한 46개 업체에 벌과금 87억환,추징금 109억환을 통고했다. 장면정부는 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 추진하던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관련자 처리와 맞물려 소급입법 대상으로 넘어간다.개정헌법을 바탕으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청조직법은 60년 말에 속속 제정되지만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은 해를 넘긴다. ‘부정축재처벌법’제정이 늦어진 까닭은 장면정부의 경제진흥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61년 봄 국토건설사업을 시작해야 했고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년)을 거의 성안(成案)한 입장에서 민간경제계를 ‘죽일지도 모르는’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더욱이 장면정부는 60년 12월5일부터 닷새동안 ‘종합경제회의’를 열어 경제개발을 해나가는 데 민간경제계와 보조를 맞추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부정축재처벌법’안은 61년 2월9일 민의원을 통과한다.60년 4월26일을 기준으로 그 5∼8년전까지를 조사대상 기간으로 정해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 ▲‘3·15부정선거’에 1천만환 이상 정치자금을 제공한 자 ▲지난 5년간 연 1천만환 이상 탈세한 자를 처벌대상으로 삼았다.경쟁입찰에서 담합했거나 재산을 해외도피한 자,뇌물수수로 연 600만환 이상 이득을 취한 공무원도 부정축재자에 포함시켰다.경제계는 예상을 뛰어넘는 엄격한 기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법안대로라면 처벌받을 사람이 5만7,00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61년 초 결성된 한국경제협의회(전경련의 전신)는 대한상의·무역협회·방직협회·건설협회와 뜻을 모아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3월4일 몇몇 일간지에 발표한 경제 5단체 성명서의 뼈대는 다음과 같다.“이 법안이 그대로 참의원을 통과하면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들여 기업인의손발을 묶을 것이다.기업활동을 가로막고 민족자본을 흐트러뜨리며 나아가분열을 조장하는 이 법안을 제정하지 않기를 충심으로 진언한다.”이 성명서는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그 안에 “북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한의 경제 번영이라면,이 법안은 북괴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의원이 곧바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경제협의회 대표를 출석시키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성명서 해프닝’은 경제5단체가 해명서를 신문에 싣는 것으로 결말짓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은 “중소상공인 5만여명이 피의자로 묶인다면 경제진흥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경제계 주장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참의원에서의 법안 심의에 반영됐다.민의원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을 참의원이 대폭 완화한 것이다.수정안은 처벌대상을 ▲3·15선거에서 자유당에 자진해서 3,000만환 이상을 제공한 자 ▲공무원 및 정당인으로서 부정하게 재산상 이득을 취한 자로 제한했다.피의자는 5만7,0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크게 줄었다. 참의원의 수정안은 4월12일 민의원에서 그대로 통과됐다.재석 163석 가운데찬성 138표,반대 25표였다.장면총리는 각료를 모두 대동하고 표결 현장에 참석해 재계를 지원했다. 국민감정을 만족시키느냐,아니면 경제진흥을 위해 정치에 연루된 경제인들을 용서하느냐 라는 갈림길에서 장면정부는 후자를 택했다.경제발전이야말로시대적인 사명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법에 따른 부정축재처리위원회(위원장 沈宗錫 참의원 의원)는 5월4일 가동됐다.위원회는 처벌 대상자에게 5월16일까지 자진신고하라고 공표했는데 그 마감일에 쿠데타가 터졌다. 군사정권은 61년 12월20일 기업체 30개사에 494억여환,공무원 32명에 75억환의 부정축재분을 환수한다고 최종 통보했다.이어 62년 1월23일 백인엽(白仁燁)예비역 육군중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부정축재자 12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張총리“소급입법 위헌”첫 지적 장경순(張慶淳·73)씨는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 5대 국회에 진출,재경분과위원회에서 활약했다.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의 추천으로 중앙정계에 데뷔한그는 장면(張勉)정부의 경제관련 정책을 가까이서,두루 지켜보았다. “부정축재자 처리를 민의원에서는 재경분과위에서 맡았습니다.민주당 신파건 구파건 구분없이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뜻이 같았지요.하지만 장면총리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장 전의원은,민의원이 ‘부정축재자 처벌법’제정을 놓고 갑론을박하던 어느날 밤 장총리가 신파 간부 15명을 중앙청으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고 했다.한명씩 돌아가며 발언한 뒤 장총리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좋다.그러나 제정 후에 위헌 판정을 받으면 어쩌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소급입법은 위헌이므로 개헌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생각들을 못했기 때문에 장총리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그는 “장총리는 특별법 제정에 끝까지 신중을 기했지만,여론의 압력이 거센데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마저 10월10일 특별담화를 발표해 독촉하는 바람에 소급법을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장 전의원은 부정축재자 처벌과 관련해 민주당이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말들이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만약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챙겼다면 5·16쿠데타 후에 무사했겠느냐는 설명이다. 다만 몇몇 의원이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가령 민주당 이(李)모 의원이 나서 기업인들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면 주위에서 “또낙전지변(落錢之辯=돈 달라는 말)이군”하며 혀를 차곤 했다고 기억했다.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가 몇년만 계속했어도 우리 경제가 훨씬 빨리,그리고 정경유착·빈부격차와 같은 부작용 없이 발전했을 것”이라며여러가지 근거를 들었다. 먼저 장총리를 비롯해 경제각료들이 모두 열의에 차 있었음을 꼽았다.“김영선장관 집으로 전화할 때는 새벽 5시 전에 해야 했다.그 시각이 지나면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참 부지런하고 청빈한 분들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국회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의원 대부분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각오 아래 소장층은 건설복을 입고다니며 새생활운동을 실천했다고 회고했다.또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의원들이 “일체의 향응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했다는 것. “서민생활 안정에 주력해 세법도 많이 개정했다”고 밝힌 장 전의원은 자신이 발의해 근로소득세 면세점을 1만6,500환에서 3만환으로 높였다고 공개했다.“하루벌이가 1달러(당시 달러당 1,300환)도 안되는 근로자에게서 소득세를 받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해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는 5·16쿠데타후 민주당 재건에 참여,6대 국회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이후에도 “당복(黨福)이 없어(당을 잘못 선택했다는 뜻)” 낙선을 거듭하다“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정치를 포기하고 사업가로 돌아섰다.지금은 여권전직의원들의 모임인 ‘일오회(一五會)’회장으로 있다. “장면정부를 무능·부패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악선전일 뿐”이라고 잘라말한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때 데모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 있느냐”“그때경제비리가 무엇이 있었냐”고 거듭 반문하면서 “데모가 전투처럼 변한 거나 대형 경제사건이 터진 것도 모두 박정희(朴正熙)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용원 기자
  • 선관위-한나라당‘정당성명’신경전

    6·3재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중앙선관위 사이에 신경전이 한창이다. 중앙선관위 이용훈(李容勳)위원장이 11일 “선거 과정에서 발표하는 여야정당의 성명과 논평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허위사실 유포로 즉각 검찰에고발 및 수사의뢰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별도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선관위는 지난 3·30재보선때도 가정통신문 발송문제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한 바 있어 이번 싸움은 2라운드인 셈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야당의 입을 봉쇄하려 해도 유분수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했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12일 “허위사실을 발표하면 선관위가 고소·고발을 하지 않더라도 해당 당사자가 즉각적인 법적대응 조치에 나서는 것이 정치권의 풍토”라면서 “선관위는 본연의 임무나 충실히 하라”고 쏘아댔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도 “문제와 의혹 제기는 정치권,특히 야당의 주요책무 가운데 하나”라고 반박하고 “정치권의 의혹 제기로 덮어졌던 사건이밝혀지고,수사에 착수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가세했다.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은 “선관위가 중립적 자세로 공정선거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야당이 문제삼을 일도 없다”고 일침(一針)을 놓았다. 이에 대해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발언은 과열선거를 막기 위한 선언적 의미가 크다”면서 “야당이 민감하게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반응에 대해 “선관위의 원론적 선언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같다”고 평했다.
  • 한나라 서울집회표정

    한나라당은 12일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김대중정권 국정파탄 규탄대회’를 열고 현 정권을 강력 비난했다.대회에는 당 지도부를 비롯해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대거 참가했다. 연사들은 한결같이 여당의 국회안건 변칙처리,야당 의원 빼가기,재보선 부정,고관집 절도사건 등을 성토했다.그러나 장외집회에서 재선에 관련된 발언이 나오면 엄정 조치하겠다는 선관위의 발표탓인지 재선과 관련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한나라당은 대회에서 ‘제2의 민주화투쟁 선언서’를 채택하고“민주주의는 더 이상 정권의 전리품이나 전유물이 아니다”며 지속적인 강경 대여 투쟁을 펼칠 것을 재차 다짐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규탄사에서 “여당의 행태는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이라며 “야당이 앞장서 김대중정권의 반민주적 행동을 국민과 함께심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총무는 또 국회법안 변칙처리의 책임을 물어 국민회의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김덕룡(金德龍)부총재는 “이 정권은 포장만 민주주의이지알맹이는 군사정부 이상 가는 독재정권,날치기정권”이라면서 “나라의 불행을 막고 민주주의 수호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서자”고 역설했다.대회장 곳곳에는 ‘국정파탄 민주주의 파괴 DJ는 각성하라’ ‘오만독선 못막으면 독재정권 발호한다’ 등 현 정권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또 대회 시작 전 송파지구당 당원들로 구성된 사물놀이패가 출연,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대회 참석자는 당초 예상했던 3만명의 절반 수준인 1만5,000여명이었다.이들 대부분은 지구당에서 동원된 사람들로 일반시민들의 참가는 저조했다.참가자들은 ‘독재타도’ ‘민주수호’라고 적힌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르고 연사들이 현 정권의 실정을 성토할 때마다 양손에 든 태극기와 한나라당기를 흔들었다.대회에는 직장의료보험노동조합,전국농민단체총연합회 등일반단체들도 참가했다.
  • [사설] 죽고 살고식 선거는 안된다

    여야가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한 지가 얼마 안된 것같다.한데정치는 다시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마침내 6.3재보선에 출마하기로 했다.서울 송파갑구에서 공동여당 후보인 자민련 김희완(金熙完)후보와 맞붙게 되는 것이다.그는 여기에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걸었다.정치생명이 걸린 대모험을 감행키로 한 것이다.따라서 여야간에 살벌한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 선거에 이총재의 정치적 야망과 명운이 걸렸다.그러니 개인의 역량과 당력을 기울여 사력을 다 할 것은 자명하다.이총재뿐이겠는가.여당도 가만 있을 리 없다.자칫 온갖 구태가 춤추고 과열혼탁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우리는 이것을 걱정한다.특정인의 당락을 걱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더구나이총재가 동원할 선거전은 필시 공세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될 것이다.이번선거를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규정한 것부터가 그러하다.제2민주화투쟁이니 총체적 국정파탄이니 하는 구호들도 마찬가지다.여당으로하여금 결코 물러설 수 없도록 만드는 구호들이다.이렇게 되면 선거는 죽고살기식이 되기 쉽다. 죽고 살기식 선거는 치유하기 어려운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긴다.무엇보다정국불안이 문제다.지금은 경제회복과 국민통합을 위해 참으로 정치가 중요한 때다.이런 때에 조성되는 정국불안은 회복국면의 경제와 시대적 소명인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가 그래서야 말이 안된다.그런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재앙일 뿐이다.어디 그뿐이랴. 국민의 정치혐오는 심화될 것이며 정치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이런 선거를 방치할 수 없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한쪽에서 후보를 사퇴라도 했으면 안심이 되겠다.그렇다고 후보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이총재가 나중에 나섰으므로 이총재가 물러서든지 야당총재를 예우해서 여당이 물러서든지 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책같다.실제로 그같은 물밑대화가 오고 갔다고 알려지고 있어 흥미롭다.그렇지만 어느쪽을 보아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그렇다면 선거관리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하는 방법뿐이다.선관위와 시민단체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선거를 감시해야 한다.혼탁을 막아야 하며 과열타락선거가 안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구태선거에 지쳐있다.또 이런 선거가 있어서는 여야 정치인 모두국민들로부터 집단퇴출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여야는 차분하고 공명한 선거를 위한 특단의 결의와 대책을 국민 앞에 밝혀주어야 겠다.
  • 독자의 소리-고비용 정치구조 타파는 시대적 과제

    우리의 정치구조는 아직도 고비용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97대선이 끝난 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저비용 정치를 부르짖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그후 IMF시대에서 사회 각 부문에서 총체적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강행할때 유독 우리 정치권만은 여전히 방관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이러한 사실은 중앙선관위가 최근 공개한 각 정당의 수입·지출회계보고서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3·30 재·보선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 탓인지 정치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에 분주한 모습이다.이제 16대 총선도 얼마남지 않았다.고비용 정치구조의 불식은 우리가 반드시 이룩해야할 시대적 과제다. 이제 정치권은 어떠한 정치적 돌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대국적 견지에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치개혁안을 이른 시일내에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관수[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 “지적재산권 반대” 카피레프트운동 확산

    윌리엄 미첼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도시계획 대학원장은 그의 저서 ‘비트의 도시(City of Bits)’에서 “미래 사회에서는 경제·사회·정치·문화적 행위의 상당 부분이 사이버 스페이스 안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상품 거래도,인간간의 만남도,정치도,예술 창작도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회.이러한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모든정보와 지식을 공유하여 ‘사이버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것이 카피레프트(copyleft)운동의 이념이다. 카피레프트운동은 지적재산권(copyright)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카피레프트 정신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창작품에 대한 권리는 상업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 밑바닥에는 선진국이나거대 기업의 지적재산권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지적 공유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좌파적 이념과 맥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카피레프트의 보호를 받는 소프트웨어는자유롭게 복제하고 소스코드를 개작·변형하거나 분배할 수 있다.인터넷에서는 실제로 ‘카피레프트’ 표시를 붙인 소프트웨어 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피레프트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리처드 스톨먼 MIT 교수다.그는지난 84년 GNU(GNU Is Not Unix)프로젝트와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을 창설하며 카피레프트운동을 시작했다.GNU프로젝트는 소프트웨어의 상업적 독점에 반대하며 프로그램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GNU프로젝트 아래 FSF는 컴퓨터 운용체계에서부터 응용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100% 카피레프트의 보호를 받는 소프트웨어체계를 개발하고 있다.스톨먼은 “70년대 컴퓨터를 연구할 때는 프로그래머들이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한다.그러나 80년대 들어 컴퓨터대중화로 거액의 돈을버는 프로그래머들이 등장하며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이 강화됐다.카피레프트운동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피레프트운동은 컴퓨터의 새로운 운영체계(OS)인 리눅스(Linux)가전세계적으로 뜨며 큰 힘을 얻고 있다.91년 핀란드의 리누스 토발즈에 의해 개발된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Windows)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작동시키는데 필수적인 기본 운영체계다.리눅스는 카피레프트정신에 따라 소스코드가 공개되고 프로그램의 복제·수정·배포에 제한이 없다. IBM·휴렛패커드·컴팩 등 대형 컴퓨터회사들이 잇따라 리눅스를 OS로 한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섬으로써 리눅스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리눅스의 ‘공유와 나눔의 철학’은 그동안 공급자 중심의 시장상황에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리눅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최근 1∼2년 사이에 급증하며 10%에 이르렀다. 한국에도 리눅스코리아가 지난해 3월 설립됐다.한동훈 리눅스코리아 대표는 “한국에서의 리눅스의 시장 점유율은 90년대 중반이후 매년 100%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리눅스의 확산은 한국의 카피레프트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카피레프트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그들은 ‘정보연대 SING’,‘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의 단체를 만들어활동하고 있다.오병일 진보네트워크 기술팀장과 김지호 정보연대 SING 대표는 “카피레프트운동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으로 힘을 얻고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피레프트운동은 아직 폭발적인 힘은 얻지 못하고 있다.한국에서의 카피레프트운동은 더욱 초보 단계다. 김지호 대표는 “94년부터 96년 까지는 한국의 카피레프트운동이 비교적 활발했다.그러나 그당시 대학생으로 카피레프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군대·취업문제 등에 직면하며 활동이 약간 위축되고 있다.더욱이 한국에는 미국과 같은 시민운동이나 재단의 지원도 거의 없다.재단설립 등 지원센터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카피레프트운동은 소프트웨어에만 한정하지 않고 책·미술·음악 등 다른창작물로도 확대되고 있다.‘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저작권 시효가 지난책 등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정보선진국들과 기업들은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고 있다.지적재산권 옹호자들은 카피레프트운동이 정보사회의 무정부주의(anarchism)를유포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그러나 카피레프트 운동가들은 지적재산권의 디지털 상업주의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열린 공동체 구축과 자유로운 정보유통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이러한 논란 속에 지적재산권자의 독점이라는 견고한 틀에 조그만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이창순기자 cslee@*창시자 스톨먼은 카피레프트운동을 창시한 리처드 스톨먼은 신화적 해커 출신이다.84년 GNU프로젝트와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을 창설했다.빗질도 잘 하지않은 덥수룩한 머리의 MIT 괴짜 교수다.그는 GNU 전도사,카피레프트의 성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90년대 초 리눅스를 개발한 핀란드의 해커출신 리누스 토발즈와 함께 리눅스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리눅스 세계의 정신적 지주인 그는 리눅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70년대부터 MIT에서 컴퓨터를 연구해 오고 있다.카피레프트 정신에 철저한 그는 지난해 토발즈와함께 전자개척재단(EFF)에서 주는 ‘개척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카피레프트'란 카피레프트(copyleft)는 저작권(copyright)의 반대 개념이다.좋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공동개발하자는 취지로 소프트웨어의 독점적 상업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시작.지적재산권을 반대하고 지식·정보의 공유와 표현의자유를 지향한다.그러나 창작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인정한다.이 때문에 불법복제나 해적행위와는 다르다.지적재산권 인정은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가윈도를 상업적으로 독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공개된 자유 소프트웨어를 누군가 변형해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을 행사할 뿐이며 상업화는 반대한다.
  • ‘자동차 100년’한자리에/역사관에 국산·외국차 35종 전시

    ‘자동차 산업 100년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만나세요’ 지구촌 자동차산업을 이끌어 온 역전의 용사들이 서울모터쇼 자동차역사관에 집결한다.국산차 20종과 외국차 15종 등 모두 35종이다. 가장 오래된 차는 1911년 제작된 포드 핫로드.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주는 세계 최초의 맞춤차다.뛰어난 순발력의 스포츠카로 국내에서는 주로 택시로 이용됐던 포드 디럭스세단(36년)과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이용했지만 미제라는 이유로 국내수입이 금지됐던 시보레 마스터디럭스 타운세단(38년)도전시된다. 고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의 공식 승용차이자 재벌총수들의 귀빈 접대용으로 쓰였던 캐딜락 플리트우드 67리무진(59년),국내 대기업사장들의 자가용으로 인기가 높았던 벤츠 280S(62년)등도 눈길을 끈다. 2인승 소형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피아트124,스포츠 스파이더(72년),48년부터 30년동안 1,900만대가 팔렸던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폭스바겐 비틀1300(74년),90년 한·러 수교기념으로 들여온 국내 유일의 러시아차 자츠(88년)도 나온다. 국산차로는우리나라 1호차인 시발(始發·55년)이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최무성씨 삼형제가 미군 짚차에 철판을 두드려 만든 차체에 자체 제작한 엔진을 얹었다.우리나라 최초의 경차인 신진자동차의 퍼브리카(67년),삼륜 용달차로 용달 붐을 일으킨 기아산업의 T600(69년)도 나온다.70년대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브라운과 아시아자동차에서 이탈리아 피아트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해 만든 피아트124(70년),신진자동차에서 도요타자동차와 제휴해 생산한 코로나(70년)도 시선을 끈다.국내 최초의 4륜구동 픽업트럭인 랜드크루저 픽업(68년),기아가 국민차 생산계획에 따라 만든 브리사Ⅰ(74년),국내 첫 고유모델로 7년동안 29만8,000대가 생산됐던 포니(75년)도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다.고급승용차로 인기가 높았고 나중에 로얄시리즈로 이어진 로얄1900(76년)도 추억의 기종.서울올림픽 공식 승용차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급모델인스텔라(83년)도 향수를 자극한다./김태균 기자
  • 김운용IOC위원 뇌물스캔들 ‘완전 탈출’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이 뇌물스캔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케바 음바예 IOC윤리위원장은 5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상임집행위원회가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패혐의와 관련,경고조치를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다”면서 김운용 위원에 대한 조사를 종결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아들이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조직위원회로 부터 봉급을 받았다는 혐의로 경고조치를 받았던 김 위원은 면죄부를 받아 새로운 입지 강화를 위한전기를 마련했다.김위원은 오는 6월12∼20일 서울에서 열릴 IOC 제109차 총회를 계기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특히 집행위가 조사종결을 선언한것은 김 위원의 무혐의를 인정한것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어진것이다.따라서 김 위원은 서울총회를 계기로 사마란치 이후를 겨냥해 정치적 공격을 가하고 있는 딕 파운드 부위원장 등에 대한 반격을 시도,명예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서울 IOC총회에서는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외에 IOC 부위원장과 집행위원 보선이치러질 예정이어서 김 위원이 다시역할을 강화할 수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솔트레이크 스캔들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는 등 또 다시부패혐의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수도 있으나 무더기 퇴출사건 이후 라틴-아프리카 그룹의 단결도 강력해져 김 위원의 입지는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그러나 김 위원과 함께 조사를 받았던 호주의 필 콜스 위원은 96년 아테네올림픽 유치활동과 관련,전 부인이 6,000달러 어치의 보석을 받은 혐의로 계속조사를 받게 됐다. 오병남
  • [대한광장]정치개혁, 누가 해야 하나

    정치불신이 극에 달한 지 이미 오래다.지난 3월 30일에 실시된 재·보선의투표율이 사상 최저였던 것은 국민의 정치불신을 반영한 것임은 물론이다.이제 정치불신을 넘어 혐오,배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안된다. 정치야말로 경제,교육,문화,국방,외교 등의 기본정책을 결정한다.이런 점에서 정치가 국민의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국민이 정치를 배격할수록 잘못된 정치가 국민을 더 괴롭힌다는 점에서도 불신과 배격의 대상이 된 정치를 이대로 둬선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주권 재민의 원칙에서 보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바로잡아야 한다.그러나 국민이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을 구체적인 권한과 책임은 바로 정치권에 있다.정치개혁의 핵심이 정치제도의 개혁이고,정치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곳은 국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국회의원이 정치개혁에 나설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국회의원들은 현행 제도에서 정치적 지위를 확보한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하는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국정의 최고책임자이기도 하지만 집권 여당의 총재고 지역주의 정치와 줄서기 정치의 정상에 있다는 점에서도 김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잘못된 정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지도자들이기 때문에 김 대통령은 오늘의 잘못된 정치를 개혁할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9월의 ‘광명을’ 보선과 금년 3월의 ‘구로을’등 재·보선이 부정선거였다는 논란이 일고있어,이에 대해 대통령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내년 4월에 있을 총선거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정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4월에 실시될 총선거가 혼탁한 선거가 될 경우 정부의 개혁은 실패할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래서는 안된다.이런 사태는 나라 전체의 불행이 아닐수 없다.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한다. 먼저 이미 발생한 부정선거를 엄단해야 한다.부정선거에 대해 엄벌하는 시늉만 내고 말 때는 더 큰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김 대통령은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당구조와 부패정치를 극복할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정치개혁의 핵심이 될 선거구제의 변경은 혁명적 상황에서나 가능할만큼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혁명적인 조치가 아니고서는 한국정치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 대통령의 혁명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공동 여당의 합의가 어려울 수도,야당이 정치개혁을 반대할 수도 있다.그러나 정치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유가 어디에 있든 그 책임은 김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상황이다. 김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 국민과 더불어 정치개혁을 주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張璂杓 신문명정책연구원장]
  • 3黨 6·3재선거 공천 ‘원위치’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의 ‘6·3 재선거’공천구도가 복잡하게꼬이고 있다.여야 모두 그렇다.고승덕(高承德)변호사의 한나라당의 서울 송파갑 후보 사퇴가 빌미가 됐다.원점에서 시작해야 할 판이다. ●여당 당초 국민회의는 송파갑,자민련은 계양·강화갑에 단일후보를 내려고 했으나 고변호사가 사퇴하면서 29일 지역구를 맞바꿨다. 국민회의는 30일 긴급 당무회의를 열고 후보선정을 위한 조직강화특위를 구성했다.송영길(宋永吉) 변호사가 여론조사에서는 박상은(朴商銀) 대한제당사장을 앞서고 있다.상대적으로 당내 소장파는 송변호사에,중진그룹은 박사장에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정균환(鄭均桓)총장은 “현재의 여론조사도중요하지만 선거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느냐는 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자민련은 답답하다.오세훈(吳世勳)변호사와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정무 부시장 순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하지만 오변호사와 김전부시장은 자민련에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여론조사 결과가 앞선 오변호사가 더 그렇다.오변호사나 김전부시장을 설득하고 잘되지 않을 경우에는 모 방송사 앵커를 후보로내세운다는 계획도 있다.공동여당은 2일 후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한나라당 재선거 보이콧 목소리는 낮아지고 있다.29일 밤에 열린 긴급 총재단 및 주요당직자 연석회의에서는 재선거 보이콧 검토도 나왔지만 하루가지나 흥분이 다소 가라앉으면서 보이콧 목소리는 현저히 낮아졌다.보이콧 명분이 너무 약한 탓이다.고변호사건을 진화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후보를 물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변호사 사태를 교훈삼아 검증된 ‘맑은피’를 가진 신진엘리트를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송파갑 후보로 이회창(李會昌)총재의측근인 진영(陳永)변호사가 다시 거론되고는 있다.하지만 이총재가 고변호사 공천실패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측근을 후보로 내세우는 게 부담스럽다는말도 나오고 있다.이총재는 젊은 법조계 출신을 좋아한다.그래서 ‘젊은 변호사모임’ 회원 중에서 낙점될 가능성도 있다.
  • 野, 구로乙·시흥 선거무효소송 제기

    한나라당은 28일 지난 3월 치러진 구로을 및 시흥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총체적 불법선거라며 대법원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소장에서 “지난 재·보선은 정부와 후보,선관위가 삼위일체가돼 저지른 불법선거로 선거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한나라당은 또 이지역에서 당선된 국민회의 한광옥(韓光玉),자민련 김의재(金義在)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거무효소송은 후보 개인의 불법선거 사실이 아닌 선거 자체의 불법을 이유로 관할 선관위원장을 피고로 제기하는 소송으로,대법원은 소 제기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판결해야 한다. 최광숙기자 bori@
  • 여야 6·3재선거 후보군 윤곽

    오는 6월3일 실시될 2개지역 재선거에 대한 여야 후보군이 윤곽을 잡아가고있다. 한나라당이 27일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 후보를 결정한데 이어공동여당도 1:1 공천구도속에 후보선별에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다. 이날 오후 현재 국민회의는 두 지역모두에서,자민련은 송파갑쪽보다는 인천계양·강화갑으로 선회,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결론을 내지못한 상태다. 공동여당이 공천지역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돌출변수’가 생겼기때문이다.한나라당이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둘째사위인 고승덕(高承德)변호사를 송파갑 후보로 확정하는 바람에 당초 송파갑을 예상하던 자민련이 뜻하지 않던 ‘장인과 사위’대결을 치러야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최근 위상강화를 노리는 박총재의 입장때문에 다시 계양·강화갑쪽을 청와대에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국민회의는 국민회의대로“자민련이 송파갑을 받기 어려우면 우리가 선거를 치르겠다”며 ‘양보’를요청했다. 여권의 후보 ‘교통정리’가 어려워지자 정균환(鄭均桓)국민회의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를 찾았고 청와대쪽은 후보선정과 관련,“공동여당이 나눠갖는 듯한 모양새는 좋지 않다”는 의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련이 계양·강화갑쪽으로 선회할 경우 자민련은 국민회의 문을 두드렸던 박상은(朴商銀)대한제당사장을 입당시켜 공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송파갑은 국민회의쪽에서 ‘젊은피 수혈’에 걸맞춰 김희완(金熙完)전서울시정무부시장보다는 오세훈(吳世勳)변호사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국민회의가 두곳 모두를 공천할 경우,인천 계양·강화갑 후보에는 송영길(宋永吉)변호사가 유력한 상황이다.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당무회의를 열어 송파갑 후보로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사위 고승덕(高承德)변호사,계양·강화갑후보로 안상수(安相洙)위원장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각당은 지난 재·보선이 ‘부정선거시비’에 휘말린 점을 의식,이번 재선거가 정치권에 ‘깨끗한 선거’를 심어놓을 실험대로 보고 새 선거전략을 짜는데 당력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유민 최광숙기자 bori@
  • [제2공화국과 張勉](17)-봇물터진 통일론:上

    제2공화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분단 이후 통일논의가 가장 활발한 시대였다는 점이다.‘반공으로 동이 트고 해가 저무는’이승만(李承晩)정권 때나 5·16후 한세대 동안 지속된 군부권위주의 정권 때는 물론이고,그후에도 2공(共)시기처럼 남북통일이 국가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활기찬 이슈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지면서 ‘북진통일’로 대표되는 무력통일론은 자연히 도태된다.허정(許政)과도정부가 1960년 5월3일 국가의 근본방침을 밝히면서 “과거보다 더 견실하게 반공정책을 펴 나가겠지만 허장성세하는 물질적·정신적 낭비를 없애는 대신 유효하고 구체적인 대공(對共)방위태세를 확립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이로써 집단이건,개인이건 통일방안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특히 내각책임제 개헌에 따라 민·참의원을 새로 뽑는 ‘7·29총선’이다가오자 통일론은 주요한 선거 이슈가 되었다. 통일론을 먼저 제기해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킨 정치세력은 혁신계였다.하지만 혁신계의 분열을 반영하듯 그 무렵의 주장은 다양했다.한국사회당(대표 錢鎭漢)은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되 통일조국은 민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고,혁신동지연맹(張建相)은 “민주적인 모든 정당·사회단체가 통일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정치적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혁신당(高貞勳)은 “김일성(金日成)괴뢰가 타도돼 자유로운 정권으로 바뀌면 남북교류를 허용하고 그 다음에 남북 총선거로 평화통일을 기한다”는 일정을 발표했다.혁신계라고는 하지만 통일정책은 이처럼 ‘반공’의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혁신 양 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당과 사회대중당도 총선 직전 통일정책 공약을 내놓는다.사회대중당(徐相日)은 7월22일 성명에서 ▲정당·학계를망라한 협의기구를 설립하고 ▲유엔이 선정해 우리가 승인한 국가로 감시단을 구성,자유총선거를 치러야 하며 ▲경제건설 및 대외정책이 국토통일의 성취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원칙을 공개했다. 민주당도 나흘뒤 ▲유엔 감시하의 남북 자유선거 ▲선거감시단은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회원국으로 구성할 것을 제의하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선거전 남북연합위원회 구성’과 ‘통일 전 남북교류’는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 총선이 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뒤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8월13일 취임사에서 ‘유엔 감시하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통일’원칙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이보다 앞서 이루어야 할 근본문제는 남한이 혼란에서 벗어나 국력을 부강케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장면(張勉)총리도 민의원에서의 첫 시정연설에서 같은 통일방안을 밝힌다.‘선(先)건설,후(後)통일’이 장면정부의 기본정책으로 확립된 것이다. 장면정부가 ‘선건설 후통일’을 내세운 데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4월혁명 뒤처리를 맡은 정부로서 당면과제가 산적한 마당에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하는 통일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기는 어려웠다.따라서 장면정부는통일논의에서 소극적·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장면 내각에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고려대 법학과교수출신)는 “그때 시급한 과제는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어떻게 먹여살리느냐와,4·19이후 쏟아진 각계의 욕구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였다”면서 “솔직히 통일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김 전차관은 “통일문제는 형식상 외무부에서 관장했지만 사실은 주무부처가 따로 없었던 셈”이라면서중요한 일이 발생하면 장총리가 그때그때 처리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7·29 총선’에서 참패해 원외 세력으로 남은 혁신계는 돌파구를 통일논의에서 찾는다.총선 당시의 애매모호하던 통일논리를 강화해 ‘선통일후건설’을 내세웠다.장면정부의 ‘선건설 후통일’이란 결국 통일을 하지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하면서 통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통일지상주의를 강조했다. 혁신계 정당·단체들은 통일에 관한 이념과 행동을 통합하고자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民自統)’를 구성한다.9월15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민자통은 사회대중당·사회당 등 혁신정당,천도교·유도회 등 종교단체,민주민족청년동맹·4월학생혁명연합회 등 청년단체가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이 무렵 혁신계가 새로 가다듬은 ‘무기’가 남북교류운동,그리고중립화통일운동이었다.남북교류운동이란 사람·편지·문화예술·체육 교류를 가져민족의 동질성을 살리자는 것과,남는 경제재(經濟財)를 주고 필요한 것을 받아오는 물물교환을 하자는 두가지였다.이는 국민의 감성과 경제난에 호소하는 바가 커 큰 호응을 얻었다. 중립화운동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민자통은 9월 말 발표한 ‘통일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즉각적인 남북협상 ▲남북대표들의 ‘민족통일 전국최고위원회’구성 ▲외세 배격 ▲통일을 협의하는 남북대표자 회담 개최를 주장했다.그리고는 “통일 후 오스트리아식 중립 또는 영세중립을 택할 것이냐,아니면 다른 형태를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중립화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달쯤 뒤인 10월22일 미국에서 중립화론이 터져나왔다.마이크 맨스필드 상원의원이 ‘극동보고서’에서 “오스트리아를 중립화한 것처럼 미국이 여러강대국들과 협의,한국을 중립화해 통일시켜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맨스필드의 제안이 알려지자 혁신계는 크게 고무돼 혁신동지연맹·사회대중당·사회당 등이 잇따라 지지성명을 발표한다.이어 부산대 학생들이 11월5일 ‘통한(統韓)궐기대회’에서 ‘외세의존적인 통일을 배격한 중립적인 무혈(無血)통일’을 제의하고 나섰다.학생들은 또 “현 정부와 국회는 실천 가능성이 없는 통일방안을 주장하지 말고 국민투표로써 통일방안을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중립화 바람’은 통일논쟁이란 불씨를 거대한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그불길은,남북대치의 냉전구조에 토대를 둔 장면정부의 통일정책을 뿌리까지태울 기세로 밀려왔다. 이용원기자 ywyi@*북한의 대남정책 제2공화국 시절 통일논의의 세 축은 장면(張勉)정부,혁신계와 일부 학생 등 급진주의자들,그리고 북한이었다.이 가운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던 쪽은당연히 북한이다. ‘3·15부정선거’로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두차례 발생하자 북한 당국은 이를 ‘인민봉기’로 규정했다.지난 97년 모 주간지가 공개한 푸자노프(당시 평양주재 소련대사)비망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비망록에 따르면 1960년 4월11일 김주열(金朱烈)의 시신이 발견돼 제2차 마산시위가 일어나자 조선노동당은 이를 ‘인민대중의 진정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한 데 이어 “시위가 인민봉기 유형을 띠고 서울 부산 대구 마산 등대도시를 휩쓸고 있다”고 판단했다. ‘4·19’이틀 뒤 노동당은 “파국에 처한 남조선의 현사태를 수습할 대책을 토의하기 위해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의 연합회의를 긴급 소집하자”고 제의한다.아울러 “평화적 통일은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전체 조선인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남북조선 총선거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한이 ‘7·29총선’국면에 들어가자 북한은 혁신계 정당·단체의 창설을적극 지지하고 나선다.6월13일 푸자노프를 만난 김일성(金日成)은 “우리는단 하나의 (혁신계)대중정당이 아니라 여러 당을 지지하며 현재 그런 당으로는 한국사회당·대중사회당과 기타 정당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7·29총선’결과에 큰 기대를 걸어 “혁신계에서 35명 가량이 당선될 것같다“고 전망하지만 실제로 당선자는 민·참의원 합해 7명에 그쳤다.게다가 그들은 북한이 보수파로 분류한 인사들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듯 북한은 전략을 바꿔 ‘남북연방제’를 제안한다.김일성은 8월14일 열린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남조선 당국이 아직 자유로운 북남(北南)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먼저 민족의 긴급한 문제를해결하는 과도적인 대책이라도 세워야 한다”면서 남북연방제를 처음 내놓는다. 김일성은 “우리가 말하는 연방제는 남북조선의 현 정치제도를 당분간 그대로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보존하면서,두 정부 대표들로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조선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실시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남북연방제’제의는 과도적이자 단기적인 성격을 가졌다.연방을형성하면 곧바로 남북한 총선거로 넘어가는 수순이었다.북한이 연방제를 제의하며 통일공세를 적극 강화한 이유는,혁신계의 평화통일 주장에 발맞춰 전략적으로 유연한 통일방안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남북연방제 안은 50년대후반 북한학계가 전체적으로 동원돼 벌인‘과도기논쟁’을 이론적으로 수렴한 것이기도 했다. 북한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일성의 남북연방제를 재확인하는 내용의 각서를 11월11일 유엔에 제출한다. 남북 총선거의 전단계 또는 대안으로 북한이 마련한 ‘과도적 연방제’안은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다. 이용원기자
  • 국회 예결위 추경예산 심의서 與野 설전

    21일 정부가 제출한 2조6,570억원 규모의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 착수한 국회 예결위에서 여야는 추경예산은 물론 고관집 절도사건,3·30 재보선까지 도마에 올려 설전을 벌이는 등 공방을 거듭했다.회의에서 국민회의윤철상(尹鐵相)의원은 “어민피해 지원액으로 책정된 1,0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특히 간접피해를 본 관련산업에 대해서도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조홍규(趙洪奎)의원은 실업대책과 관련,“일자리창출을 위해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소규모창업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를 위해 재정지원보다 규제개혁이시급하다”며 정부의 대책을 물었다. 자민련 지대섭(池大燮)의원은 “현 경제상황에 부응할 수 있도록 추경예산은 철회되거나 대폭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종근(朴鍾根) 김재천(金在千)의원은 “이번 추경예산은 실업문제와 노사분규를 적당히 해결하려는 미봉책이자 선심성 정치예산”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고관집 절도사건도 물고늘어졌다.김문수(金文洙)의원은 “이번사건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지도층의 요구가 도덕적 명분을 잃었다”면서관련 공직자의 재산 재조사를 요구했다. 박준석기자 pjs@
  • 與野 ‘지하철-재·보선 불법’ 설전

    20일 열린 국회 행정자치위와 환경노동위에서 여야는 3·30 재보선 불·탈법 선거운동 여부와 서울 지하철 파업 등 현안을 놓고 팽팽한 설전을 거듭했다. 행자위 중앙선관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여야간 신경전이 펼쳐졌다.“3·30 재보선에서 일부 정당과 후보의 잘못된 선거운동이 있었으며 앞으로 여야 정당이 선거운동 풍토 개선에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는 선관위 손석호(孫石鎬)사무총장의 인사말이 꼬투리가 됐다.이원범(李元範)행자위원장은 “선관위가 적발해서 고발하면 그만이지 왜 주제넘게 정당과 후보를 매도하느냐”며 손총장을 질타했다.이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거관리가 선관위의 고유권한인데 무슨 소리냐”며 이위원장에게 정정발언을요구,한동안 여야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난 선거 당시 국민회의의 특위 위촉 건도 도마에 올랐다.한나라당 이해봉(李海鳳)의원은 국민회의 구로을지구당 명의로 된 나(羅)모씨의 ‘범죄예방특위 위원’ 위촉장을 들이대며 사전선거운동이라면서 “빨리 판단을 내려줘야 다음 재선거에서 대처할 것이 아니냐”며 선관위를 다그쳤다.이에 대해 손총장이 “선거에 임박,특위위원을 위촉했고 이들이 선거운동에 임했다면 위법”이라고 답하자 유선호(柳宣浩)의원 등 국민회의 의원들이 일제히 “‘임박’이란 용어가 모호하다”며 손총장의 해명을 요구,진통을 겪었다. 환경노동위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에 대한 시각과 대처방안이 여야간 쟁점으로 부각됐다.여당 의원들은 경제난을 들어 노동계의 자제를 촉구한 반면야당 의원들은 사측의 불합리한 구조조정안과 정부의 일방적인 교섭 지침 때문에 파국이 왔다면서 시정을 주장했다.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의원은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진행되는 인원감축에 노동계가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파업원인을 분석했다.반면 김종배(金宗培)의원은 “노동계도 똑같이 고통분담에 참여해야 한다”며 지하철 노조의 자제를 거듭 요청했다.
  • 2與 내년총선 연합공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8일 KBS 대구방송총국 개국기념 특별회견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 문제와 관련,“지난 3·30 재·보선에서도 연합공천을 한 성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하고 “양당은 내년 16대 총선에서도 차질없이 연합공천을 해서 서로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전국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또 “지금도 보면 전직대통령들이 어느 대통령은 무슨 지역,어느 대통령은 무슨 지역에 가서 정당을 만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이대로 놔두면 (지역감정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으므로여든 야든 전국적으로 골고루 의석을 얻을 수 있는 전국정당을 만들어야 할것”이라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젊은층 수혈론’에 대해서도 언급,“21세기를 담당할 젊은 세력을 정치권에 영입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면서 “멀지않아 당내 영입에 대한 기구를 설치,본격적인 영입작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2與 연합공천’ 여·야 반응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KBS 대구방송총국과 개국기념회견을 갖고 16대 총선에서의 공동여당간 ‘연합공천’을 밝힌 데 대해 여야 정치권은 ‘득실(得失)을 저울질하느라 바빴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안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반응이 엇갈렸다.반면 한나라당은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시하는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공동여당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16대 총선에서 압승을 하기위해서는 연합공천이 불가피하다”고 일단 환영했다.정세균(丁世均)의원도“공동여당간 공조체제가 확인돼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게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공천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합공천을 할 경우 공천을 받는 사람에게는 유리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면 정치생명이 끊긴다”고 우려했다.특히 지구당 관리를 소홀히 해온 의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서울 지역의 한의원은 “수도권 지역은 국민회의의 텃밭인데 연합공천을 하게 되면 자민련에 몇석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소 불만을 토로했다.전북 출신의 한 의원도 “호남 지역에서 연합공천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는 연합공천의 의미가 없고 누가 공천을 받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16대 총선에서는 양당 공조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반겼다.특히 수도권과 TK 지역 등 비충청권 세력은 연합공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데 반해 주류인 충청권 의원들은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지난달 30일 치러진 서울 구로을,경기 시흥 재·보선에서 연합공천의 위력을 실감한 터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특히 수도권 의원들이 크게반발했다. 김문수(金文洙)의원은 “연합공천은 현행 선거법에도 저촉되며 정당의 존립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지역감정을 이용하기 위한 구정치인의 간교한 술수”라고 비난했다. 정문화(鄭文和)의원도 “명백한 탈법이지만 현재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우리 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각적인 투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경재(李敬在)의원은 “합당한 것도 아닌데 안될 말”이라며“특히 정략적인 발상으로 수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오풍연 최광숙기자 poongynn@
  • 金대통령 ‘연합공천’ 언급 의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KBS 대구방송 특별회견에서 16대 총선 국민회의·자민련 연합공천을 언급한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김 대통령이 16대총선 연합공천 구상을 피력한 것은 처음으로,무엇보다도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공동여당 합당 주장을 수용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연합공천의 중요한 시사점은 정치권에서 한창 변경논의가 진행중인 선거구제와 관련된 해석이다.선거구제에 관한 국민회의의 당론은 아직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지만 중·대선거구도 검토중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일부가 선호하고 있는 중·대선구제 아래에서 연합공천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선거구당 3∼4명 이상의 여러 후보를 뽑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처럼 연합공천이 파괴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선회 움직임을 보이던 김 대통령의 최종 선거구제 구상이 다시 소선거구제로 가닥잡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의석 확대를 노려 중·대선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동정권의 대주주인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대응이 주목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관련된 투표방식이다.‘각 지역별로정당의 총득표로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하에서 연합공천은 후보를 내지 않는 쪽은 총득표에서 어느 한 쪽의 양보 없이는 성사가 어렵다.이 때문에 정당 투표까지 하는 1인2투표제의 필요성도 여전히 검토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양당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총론이라는 해석이다.지난해 지방선거와 3·30 재·보선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양당의 공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위한 원론적 언급이었다는 것이다.청와대 관계자도 “어떠한 경우에도 공조가 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즉 권력구조문제와 상관없이 총선 뒤에도 양당이 현재와 같은 공조관계를유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라는 것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YS, 16대총선 공천개입 움직임

    내년 4월에 치러질 16대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상도동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진영간 신경전이 한창이다. 상도동측이 먼저 ‘칼’을 뽑아들었다.“지난 ‘3·30 재·보선’에서 수도권지역의 공천을 잘못하는 바람에 구로을,시흥 모두 패배했다”고 이 총재측을 몰아붙였다.그러면서 “부산의 경우 지역 여론과 의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야 한다”고 말해 미리 보호막을 쳤다.김 전대통령이 부산의 맹주(盟主)로서 지분(持分)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상도동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16일 “부산에서는 김 전대통령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그가 총선에 나서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김 전대통령의 총선개입 ‘당위론’을 폈다.김광일(金光一)전청와대비서실장도 최근 김 전대통령의 부산 방문 중 “이미 진군나팔을 불었고 돌이킬 수 없다”면서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부산·경남지역 출신들은 YS(김 전대통령)에게 더 매달릴 것”이라고 가세했다. 여기에 이 총재측은 한마디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전날 부산지역을 방문한 이 총재는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김 전대통령의 ‘총선개입’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이 총재는 “김 전대통령의 공천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당에 총재가 있고 공식 당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쐐기를박았다.이 총재는 또 “누구 하나 나에게 와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일축했다. 신경식(辛卿植)총장은 “벌써 무슨 공천 얘기냐”고 못마땅해 했다.이부영(李富榮)총무 또한 “당원 자격도 없는 사람(YS)이 공천권을 행사하느냐”고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국회 본회의·상임委 이모저모

    1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전날 3당 총무회담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듯 모처럼 여야 공방이 없었다.한나라당 의원 2명만 5분발언을 신청했다.법사위와 국방위 등 5개 상임위도 열렸다. 본회의 한나라당 권기술(權琪述)의원은 지역 민원사업을 들고 나왔다.권의원은 “울산지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청와대 앞에 건설하는 격”이라며“한전에 매수된 극소수만이 울산핵발전소 건설에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어 “우리나라에서도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직원이 뇌없는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으며,핵발전소 부근에서 기형 송아지가 태어나거나 기형물고기가발견되는 것 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이국헌(李國憲)의원은 ‘3·30 재·보선’의 부정사례를 일일이열거한 뒤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이의원은 유권자 30%대의 낮은 투표율 아래 당선된 후보의 대표성 문제,선거법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된 국회의원의 각종 입법활동 및 의정활동에 대한 법적 타당성·실효성의 문제 등을 제기했다. 상임위 여야 의원들은 법사위에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개정법률안을 놓고 위헌(違憲) 공방을 벌였다.이 때문에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특히 야당의원들은 선거구획정안 보고서를 국회의원 총선거일 전 1년(16대총선의 경우 99년 4월 12일)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토록 한 규정을 어기고,‘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 그 제출기한을 연기할 수 있다’고 한 대목에 급제동을 걸었다.반면 여당의원들은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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