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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사 정운현차장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출간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정직한 역사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그러나우리의 현대사는 권력에 의해 왜곡된 역사로 얼룩져 있다.현대사의 왜곡은해방 후 당연히 단죄됐어야 했던 친일세력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불행한 일로부터 시작됐다.많은 것을 희생하며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온 애국투사들은 독립된 조국의 무대에서 밀려나고,친일세력이 옷을 갈아입고그 무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민족적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부끄러운자화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라는 책이 나왔다.(개마고원 8,500원) 이 책은 정운현 대한매일 문화부 차장이 1998년 8월14일부터 올 4월26일까지 대한매일(98년 11월11일 이전에는 서울신문)에 ‘친일의 군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에다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만들어졌다.친일파 문제가 일간지에 연재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친일파 문제를 집요하게 천착해 온 지은이는 일본에서 입수한 새로운 자료등을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성과를 뛰어넘는 알찬 내용을 담아 이 책을 꾸몄다.강화도조약 체결 때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 1호’ 김인승,조선인 출신신직(神職) 이산연,만주 특무공작의 거두 김창영 등은 ‘친일의 군상’ 연재를 통해 처음 공개된 친일파들이다.지은이는 또 최남선의 친일 행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7년 먼저 시작됐음을 자료를 통해 입증했다. 이 책은 을사오적 중의 한 명인 이근택,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우범선,공주갑부 김갑순,박흥식,이선근,이항녕,김활란,윤치호,윤보선 일가,최남선,김성수,방응모,주요한,김동환,이광수,여자 밀정 배정자,무용가 최승희,승려 이종욱,최린,이갑성,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고등계형사 선우순·갑 형제 등많은 친일파들의 행적을 인물별로 소개한다. 저자는 집필동기를 이렇게 말한다.“친일파 문제는 법적·역사적 청산이 안됐다.많은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권력 엘리트로 군림해 옴에따라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민족사를 더럽힌 사람은 역사에 오명으로 기록된다는 엄숙한 경고를 보여줘야한다”. 친일파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현장은 우리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 민족의 성지인 국립묘지에도 백낙준·진의종·백두진·엄민영·황종률·이은상·이선근·조진만·이응준을 비롯,10명이상의 친일경력자들이 국립묘지에묻혀 있는 것이다. ‘위대한 3·1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3·1문화상 예술분야 수상자중에도 조연현·안수길·백철·모윤숙·최정희·이상범·김인승·김기창·김성태 등 모두 13명의 친일파가 포함돼 있다.정부차원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친일파가 포함됐는가 하면 ‘동인 문학상’‘난파 음악상’등 친일파 인사들의 이름은 딴 여러가지 상이 만들어졌다.최근에는 이화여대에서 친일파인 김활란의 이름을 딴 ‘우월 김활란상’을 제정하겠다고 밝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겼다. 저자는 아직도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친일의 잔재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친일문제의 청산은 굴절된 현대사를 바로 잡는 중요한 작업이다.그 작업은 역사의 시계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창순기자 cslee@
  • 고양·용인시장 補選 서서히 열기

    고양시장(8월19일) 용인시장(9월초) 보궐선거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벌써부터 현지에선 누구누구가 나선다는 등의 얘기가 나돌자 여야 모두후보선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여당은 누가 후보로 낙점되든 양쪽지역 모두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국민회의는 27일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후보자심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양시장 후보는 원점에서물색중이다.후보로 내정됐던 이영복(李永馥)고양·덕양지구당 위원장이 불출마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이위원장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에따라 행정경험이 있는 조한유(趙漢裕) 현부시장(49),김학재(金學載) 2000년 고양시 꽃박람회 사무처장(59·전부시장),이성호(李星鎬) 전고양부군수(63) 등 3인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용인시장 후보로는 예강환(芮剛煥) 현부시장과 김정길(金政吉) 전의원과,김학민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박세호 용인문화정책연구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국민회의의 몫이라 자민련이 양보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련은 김학기(金學基·50)전용인시 지구당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어 조정여부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경기지사 부부구속 사건 등으로 민심이 야당에 호의적이어서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16대 총선의 판세를 가늠할 전초전의 성격이 짙은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전략이다. 고양시장 후보에 모두 7명이 등록,이 가운데 김용수(金龍洙)부대변인과 황교선 한일약품 고문 등 2명으로 좁혀진 상태다.특정후보 내정설로 잡음이 생겨 후보선정이 늦어지고 있다.이에 따라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전권을 위임,28일 열리는 당무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용인시장 후보도 곧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이총재의 핵심측근인 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이 유력시 되고 있다. 강동형 박준석기자 yunbin@
  • 삼성 2연승 선두 탈환…WLBL

    최강의 전력 삼성이 2연승을 거두며 단독 선두에 나섰다. 삼성 페라이언은 25일 영천체육관에서 열린 한빛은행배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1차대회에서 주전의 고른 득점에 힘입어 한빛은행을 87-62로 눌렀다.이로써 삼성은 4승1패로 이날 경기가 없던 현대 레드폭스(3승1패)를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한빛은행은 2승2패로 뒤처졌다. 정은순(18점 14리바운드)이 골밑을 장악한 삼성은 박정은(21점 10리바운드)왕수진(9점) 유영주(9점)의 외곽포를 앞세워 전반을 43-24로 훌쩍 앞서 나갔다.삼성은 후반들어 이미선(4점)과 정서영(9점) 박선영(3점) 이은아(6점)김계령(6점) 등 후보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는 여유를 보이면서도 조직력에서우위를 보였다. 한빛은행은 ‘기린센터’ 이종애(22점 9리바운드)가 정은순과의 골밑 싸움에서 크게 밀리며 실책까지 남발,삼성전 징크스를 좀처럼 벗지 못했다. 김경운기자
  • DJP 성토장 된 자민련 대전후원회

    21일 오후 대전시 유성관광호텔에서 열린 자민련 대전시지부 후원회는 마치‘내각제 사수대회’를 연상케 했다. 특히 이날 공동여권이 연내 내각제 개헌유보를 공식화한 뒤 열린 후원회라서 그런지 한껏 격앙돼 있었다. 대전지역을 비롯,충남·북출신 의원 10여명은 2시간동안 계속된 후원회에서내각제 개헌 유보를 공식선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의원들은 신당창당설과 내각제 개헌 유보선언으로악화된 최근 지역여론을 반영하듯 상기된 모습이었다.일부 의원들은 분노를삭이지 못하고 “내각제 연내개헌 약속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각제 매파의 좌장격으로 당직을 떠난 뒤 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도 대회에 참석해 내각제 유보를 강도높게 비난했다.김부총재는 “내각제 개헌은 DJP 합의만이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사실상 포기선언과 다름없는 연내 개헌 유보는 국민과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범(李元範)의원도 “대통령이 국민앞에 약속한 내각제 연내개헌이 뒷골목에서 암거래되듯 내팽개쳐질 수는 없다”면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일부 참석자들은 내각제 약속이 어긋난 만큼 공동정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행사장 곳곳에는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에 불만을표시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정치 신의 저버리면 국민정부 끝장난다’는 경고성 문구를 비롯,‘내각제 약속깨면 자민련은 공동정권에서 탈퇴하자’는 극단적인 문구까지 등장했다. 이날 후원회는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를 둘러싸고 자민련 내부의 갈등이 한동안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대전 박준석기자 pjs@
  • [김삼웅 칼럼] DJP협력의 역사인식

    한국현대사에서 지도자들의 협력이 절실할 때 분열함으로써 국가의 진운에큰 타격을 입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정치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이 역사를그르친 사례가 크게 네 차례나 있었다.첫번째는 여운형과 송진우다. 해방직후 이들이 손을 잡았다면 건국준비위원회의 좌경화를 막고 임시정부를 봉대하여 정통성 있는 정권을 수립했을지 모른다. 여운형은 해방직전부터 송진우에게 민족해방에 대비할 것을 제의했다.측근을 보내 제휴를 희망하고, 해방당일에는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송진우가 여운형의 거듭되는 합작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제협력의 자격지심과 들러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결과 해방정국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암살당했다. 두번째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분열이다. 두사람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협력했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통성을갖춘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는 발붙일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김구는국민의 희망이었고 신화적 존재였다. 두 영수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국민은 힘을 합해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정부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두 영수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민당과 인민공화국이 각기두 사람을 영수급으로 추대한데서도 드러난다. 만약 이승만이 집권 후 김구를 보호하고 후계로 삼아 제2대 대통령으로 지원했다면,그리하여 김구가 북한측과 새로운 남북협상을 시도했다면 6·25전쟁과 자유당의 12년 폭정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번째는 4월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과 장면의 분열이다. 구파의 윤대통령과 신파의 장총리는 민주당의 한 뿌리이면서도 학생혁명이 갖다바친 정권을독식하고자 꼴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였다.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의 책임이컸다.힘을 모아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사회악을 청산하며 경제건설과 민주발전에 전력해야 하는데도 권력다툼으로 1년여 만에 군사쿠데타를 맞아 탈권당하고 30여년의 군사통치가 자행되었다. 네번째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이다. 1980년 ‘서울의 봄’때 양김이 협력했다면 신군부의 쿠데타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 6월항쟁 이후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헌정의 파행과 양민학살,그리고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의 사슬이 끼어들지는못했을 것이다. 역대 지도자들이 협력보다는 분열을 일삼아온 데 비해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는 협력하여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IMF국난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두사람의 협력은 민주화세력의 본류와 근대화세력의 본류가 합류하는, 한국정치사(사상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5·16이래 갈등과 대립관계를 지속해온 두 세력이 공동정권을 수립한 것은 근현대사에서 개화와 쇄국, 독립운동과 친일매족, 통일정부와 분단정부, 민주화와근대화의 대립선상에서 처음으로 합치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들, 예컨대 40년 특정지역의 패권주의가 소외지역으로교체되었다든가, 반세기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하겠다. 또 진보(상대적)진영과 보수(상대적)진영이 협력함으로써 ‘용공 매카시즘’을 극복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펴게되고 민족민주운동의 희생자들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DJP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신의냐 대의냐,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뛰어넘는, 협력해야 할때 협력할 줄 모르는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처음으로바로잡는 ‘역사인식’이라 하겠다. 칠순을 넘긴 두 지도자와 측근들이 항상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林昌烈지사 사퇴할까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가 지난 16일 구속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자천타천의경기지사 후보들이 거론되지만 경기지사 보궐선거 여부는 임지사에 달려 있다.임지사가 사퇴를 거부하면 최악의 경우 적어도 확정판결에 필요한 1년이지나야 보선이 이뤄질 수 있다.그래서 임지사의 사퇴시기에 관심이 쏠리고있다.임지사는 사퇴할 것인가. 국민회의는 임지사를 제명조치하는 등 기동성있게 움직이고 있다.또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임지사의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미지가 좋지 않은 임지사가 지사직을 계속 수행할 경우 국민회의와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는 판단에서다.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이 “부정부패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게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이런 분위기는 분명 임지사의 조기사퇴를 점칠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임지사는 ‘버티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그는 밀어붙이는스타일이다.또 저돌적인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구속된 게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그래서 쉽게 지사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민선 단체장은 공무원 결격사유가 되는 ‘금고(禁錮) 이상의 형’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받을 때까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구속돼도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는 버티는 게 ‘보장’된 셈이다.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다.박용권(朴容權) 광주 남구청장은 지난해 12월 구속됐지만 아직까지 구청장직을 사퇴하지 않고 있다.박구청장은 옥중(獄中)결재를 하고 있다. 임지사가 사퇴를 거부하면 경기도청의 공무원들은 당분간 매주 1∼2차례씩서류를 들고 수원 도청과 인천구치소를 오가며 옥중결재를 받아야 한다.이렇게 된다면 국민,해당 공무원,국민회의 입장에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분명아닌 것 같다. 곽태헌기자·수원 김병철기자 tiger@
  • 고양시장 보선 8월19일 확정

    경기도 고양시장 보궐선거일이 8월19일로 확정됐다. 시는 당초 다음달 12일 보궐선거를 치르기로 했으나 휴가철 중간이어서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이같이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고양 박성수기자songsu@
  • 金대통령 전방 순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25 49주년인 25일 전방 육군 ‘열쇠부대’를 시찰,군의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병사들을 격려했다.서해 교전사태 이후 안보의중요성을 강조하고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행보였다. 김대통령은 이날도“서해에서 당한 북한이 뭔가 설욕하려는 계획을 할지 모른다”며 장병들에게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이날 열쇠부대 전망대에서 현황보고를 들었다. 전망대 시찰을 마치고 내무반 순시에 앞서 김대통령은 뜻밖의 조우를 했다. 지난 97년 6월23일 대통령후보 시절 전방부대 방문때 오찬장 안내를 맡았던윤보선 수색대대장을 만난 것이다.당시 윤중령의 이름을 보고 “나보다 정치선배구만”이라는 조크를 던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듯 김대통령은 윤대대장을따뜻하게 격려한 뒤 부하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대통령은 내무반에 들러 생일을 맞은 장병 3명과 함께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시계를 선물했다.10여분 동안 안보의 중요성과 햇볕정책의 의미를 설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기고] 의혹 만들기로 날이 샌다

    요즈음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기다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황당무계한 도둑 김강룡이 제기한 의혹에서부터 재보선 50억원 살포,고급 옷 로비,신북풍설,언론사 간부의 땅 투기,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언론단 신설에 따른언론통제 의혹에 이어 그림로비 의혹에까지 왔다.다음엔 무슨 의혹이 제기될지 궁금할 지경이다.게다가 아무개 리스트라고 하는 것들이 난무한다.이 리스트들은 음성적으로만 유통되기 때문에 이것도 의혹이다. 이것뿐이 아니다.이제 돼지고기는 먹어도 되는지,코카콜라는 마셔도 되는지,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지,도대체 의혹 투성이다.지방자치단체에서 벌어지는 의혹들도 수두룩하다.온통 이 사회가 의혹으로 덮인 것 같다. 당연히 국민은 궁금해 한다.의혹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것들의 정확한정체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그래서 의혹의 안개가 말끔히 걷히기를 고대한다.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공의 것일까?분명한 것은 진실을규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공 부분에 대해서도 그 경위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왜냐 하면 가공된 의혹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면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북한 함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에 대해 우리 해군이 침착하고도 단호한 대응으로 사태를 현명하게 마무리한 일을 두고도 북풍설을 제기한다는것은 상식밖의 일이다.누가 이런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했는지,또 누가 이를 어떤 의도로 부풀렸는지 밝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일차적으로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이것을 피해가려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정부는 두고두고 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국민은 그 의혹들을 진실로믿어버릴 것이다.피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으며 그럴 일도 아니다.설령 의혹의 일부가 진실이어서 당장에 정부 여당이 약간의 타격을 받더라도 소위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어쩌면 지금이 국민의 정부 성패를 가름하는 중대한 기로인지도 모른다.어떠한 일이 있어도 정부는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주어야 한다. 또 하나의 의혹이 생긴다.언론은 왜 자꾸 의혹을 생산해내느냐이다.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정부가 하나의 의혹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관계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다른 의혹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다.소위 최순영 리스트에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고위층 인사,그리고 언론사 간부들이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정부는 선뜻 리스트를 공개하고수사에 착수하지를 못한다.이 사이 언론은 자신의 치부를 덮고 다른 의혹을만들어내 과녁을 피해간다.이 점에서는 여야 정당도 한 패다.도대체 최순영씨가 고가의 그림을 대량으로 매입했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로비의혹으로 연결시킬 수가 있는가?한나라당과 언론의 탁월한 임기응변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정원의 언론단 신설에 대해서도 그렇다.그게 그렇게 1면 머리기사가 될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언론이 이토록 기가 올라 있는데 국정원이라고 언론을 의도대로 사찰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프락치를 강요했다고 대학생이 폭로하여 국정원이 망신을 사는 세상이다. 이제 더 이상의 의혹은 정말 사양이다.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도 충분하고남는다.남은 과제는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 의혹의 보따리를 푸는 일이다.그리고 의도적으로 의혹을 만들어내고 부풀린 세력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엄중히 물어야 한다. 여기에 성역이란 있을 수 없다.그가 국회의원이건 장관이건 언론인이건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그리고 언론은 ‘의혹’을 ‘상품화’하는 장난을 그만두어야 한다. 金東敏 한일장신대 교수 언론학
  • 鄭均桓총장 사무처에 ‘회초리’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이 중앙당 사무처에 모처럼 ‘회초리’를들었다.정총장은 21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체당직자회의에서 ‘친정’인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근신(謹愼)과 자중(自重)을 촉구했다.최근 잇따른 여권의 악재로 자칫 당 사무처의 분위기가 느슨해 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정총장은 “일부 당직자가 본의아니게 당에 누가 되는 일을 가끔 하고 있다”면서 “한두사람 때문에 250여명의 당직자가 매도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고삐를 바짝 죄었다. 정총장은 한 예로 “일부 언론의 ‘3·30재보선 50억 살포설’은 당직자들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한 것이라고 하더라”면서 “오해를 살 수 있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오도하게 하는 언행에는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정총장은 “할말이 있고 안할말이 있으며 무덤까지 갖고 가서 파묻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라면서 “개혁의 기수로서손색없이 언행을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총장의 질책성 발언이 10분 남짓 이어지자 회의장은 숙연해졌다.무거운분위기를 의식한 듯 정총장은 “당의 핵(核)인 사무처가 자존심을 가져 달라”면서 “대통령도 24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여러분을 격려할 것”이라고 다독였다.“사무처의 금강산 유람계획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찬구기자 ckpark@
  • [사설] ‘國調權 합의’를 촉구한다

    국정조사권 발동을 둘러싼 여야간 실랑이가 너무 지루하다.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에 관한 의혹을 규명하자며 야당측이 강력히 발동을 요구한 것이 국정조사권이다.여당이 이를 흔쾌히 수용함으로써 여야간에 구체적인 협상이진행됐지만 막상 멍석이 펴지자 야당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급기야 국조권 협상은 벽에 부닥치고 여당은 단독으로 국조권을 발동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대치국면에 국민은 답답하고 피곤하다.국조권 발동은 야당이 요구하고 여당이 받아들였으므로 일사천리로 이뤄질 것 같던 일이었다.그런 일이 꼬여 가는 것은 야당의 지나친 정략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야당 탓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여당의 협상태도도 능동성이 결여돼 있고 경직돼 있다. 그렇더라도 야당의 정략과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지나쳐 보인다.솔직히 협상을 하자는 건지 깨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협상은 상대가 있는 법인데도 일방적으로 고집을 피우는 것 같다. 원래 파업유도 발언의 진상을 밝히자고 야당이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했었다.그런데 실제 협상과정은 그같은 본래의 취지에 충실치 못했다.야당은 파업유도 발언뿐만 아니라 옷사건,3·30 재·보선 자금살포사건,고관집 절도사건 등을 다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해 협상을 결렬상태로 몰고 갔다.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특검제 수용 요구까지 들고 나왔다.물론 여당이 이를 받아주어버리면 일은 간단하다.하지만 받아줄 수 없다는데도 계속 고집을 피우니 이는 진정으로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태도라 봐주기 어렵다. 협상이 결렬위기를 맞자 여당은 단독 국조권 행사를 방침으로 정했다.이에대해 야당은 본회의장 점거,장외투쟁 등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있다.두 모습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일이 못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더구나지금은 시기적으로 특별한 때다.연일 북한 경비정들의 월경(越境)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국민의 촉각이 예민해져 있다.이런 때에도 벌어지는 정치권의극한대립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여야는 다시 진지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파업유도 발언 의혹의진상을 밝히는 것은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그 약속을 지키자면 원래의 취지대로 파업유도 발언 의혹부터 규명을 시작해야 한다.다른 까다로운일은 다른 일대로 순차적으로 논의해가면 될 것이다.여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다시 한번 국조권 합의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한다.
  • [제2공화국과 張勉](30·끝)시리즈 결산 전문가 좌담

    ‘제2공화국과 장면(張勉)’시리즈를 30회로 마감하며 제2공화국 시대와 장면정부,그리고 장면에 관해 총정리하고 평가하는 대담을 갖는다.참석자는 ▲장면정부 때 민의원 의원으로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씨와 ▲올 가을 ‘장면 재조명’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사진전시회 등을 준비중인 조광(趙珖)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다. 김영구전의원 제2공화국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돼 장면정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반갑습니다.그동안 장면정부의 실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왜곡된 모습만 강조됐습니다.뒤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지요. 조광교수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을 평가하려면 그 기준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입니다.정치적으로는 문민통치에 입각한 민주사회의 확립,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한 국민소득 증대를 추구하는 것 등이라고 봅니다.하나의 정권이나 인물을평가할 때 이런 정책들을 굳은 신념을 갖고 현명하게 추진했느냐가 중요한평가요소가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야말로 자유당 일당독재에 맞서 국민 참정권 회복에 공헌한 민주투사예요.제2공화국 내각 수반으로서 민주사회 확립을 도모했고,관료 공채제도를 최초로 시행해 관료사회의 전문화와 효율화도 꾀했고.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이를 관(官)주도가 아닌민간자율 형식으로 실천했습니다. 조교수 장면박사는 이 땅에 단군이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바꿔놓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자유당 독재체제 아래 위축됐던 각 이익집단과 사회단체들이 분출해 내는 욕구를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억누르지 않았습니다.대화라든지 협력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취했습니다. 김전의원 사실 억업됐던 자유를 풀어주니까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습니다. 방종으로 흘렀다고나 할까요.이를 극복하지 못해 군부세력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키는 소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하긴 장면정부가 무능해서 쿠데타가일어난 것만도 아니지요.군부세력은 이승만정부 때부터 쿠데타를 계획해왔으니까요. 조교수 각종 한국사 개설서를 들춰보았는데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부정 일변도로 기술했습니다.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 평가한 것이지요.저는 장면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아니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부패,무능은 쿠데타이후 군사정권이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조작한 것입니다. “부패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그보다는 혁명적인 열정과 순수성을 갖고 정치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청렴성은 정권에서 담보됐습니다.공채제도 하나만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이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전제해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전의원 공개채용에는 사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입학시험 보듯 한 거니까요.그때 뽑힌 사람들이 나중에 거의 전부 장·차관을 했습니다.유능한 사람을 시험 쳐서 뽑았으니까 그대로 키우니 인재가 된 거예요. 조교수 장면정부를 ‘데모공화국’운운하는 것도 잘못이지요.쿠데타 직전에는 오히려 데모가 줄고 사회가 안정돼 갔으니까요.데모 하나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라는 비난은 쿠데타를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부패의 예라고 거론된 사건이 몇가지 있지만,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모략이라는 것이(쿠데타세력의)혁명재판에서 입증됐습니다.공판기록에 다 나와 있거든요.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급합니다. 김전의원 당시 우리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영영 놓친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맸습니다.머리를 짜낼만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밤을 샜어요.국토개발계획의 틀이 거기서 나왔습니다.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져야 해요.군사정부는 장면정부로부터 하나도 이어받은 것이 없다고 하고,국토개발계획도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민주당정부에서 만든 겁니다. 군사정부는 또 아무 기초도 없이 재벌을 양산했습니다.그래서 중소기업의 토대가 없어졌어요.재벌의 배만 불리는 재정·경제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IMF로 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조교수 외교면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정권이었습니다.우월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추진했지요.제2공화국이 한·일관계에서 어떤 정책을수립하고 무엇을 했는지 더 밝혀야 합니다. 김전의원 한·일관계 정상화 교섭 때 장면정부는 처음 일본에 배상금을 100억달러 요구했어요.일본정부가 깜짝 놀라 “그 절반 정도면 안되겠느냐”고 했습니다.교섭 당사자의 말을 들으니 50억달러는 무난했고 아마 70억∼80억달러는 받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그런데 쿠데타후 군사정권은 ‘3억달러+α’에 합의했습니다.국민을 배신한 것이지요. 조교수 이 문제가 밝혀져야 장면정권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군사정부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서둘렀고 국민에게 이같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 6·3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김전의원 군사정부는 ‘3억달러+α’를 받아서 기반을 닦았다지만 민주당정부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50억달러이상을 받아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저는 지금도 그것을 한(恨)으로 생각합니다. 조교수 이는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입니다.일본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매달릴 때 고자세로 나가야 했는데 말입니다.군사정부는 태생적인 취약성 때문에 열세의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전의원 신·구파 갈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조병옥(趙炳玉)박사가 일찍 돌아가신 게 비극이에요.조박사만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신·구파가 갈라서지 않았을 겁니다.윤보선(尹潽善)씨나 김도연(金度演)씨는 리더십을 가진사람이 못됩니다.그나마 윤보선씨가 구파를 장악했더라면 일본 자민당처럼(신·구파가)교대로 정권을 잡았을텐데.그랬다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아30년 동안 군사독재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도,국민이 고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교수 모든 정권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갈등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됩니다.요는 수습과정과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의 정당성 여부입니다.장면정권은 권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합의를 도출해내는 힘을가졌습니다.내각이 몇차례 바뀌고 보강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쿠데타 직전에는 안정이 됐습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가 평화시에는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지만 난세에는결국 어려웠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장박사는인간적으로,정치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상대방 파트너들이 나빴지요.그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교수 장면박사가(정치에 어울리지 않는)성직자 상이라는 평가는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정치인은 적당히 부패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는 평가는 전근대적 지도자 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장박사는정치인으로서도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련의 저항세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이 때문에 쿠데타로 정권을 상실했다는 시각이 있지만,공과를 논할 때 공(功)은 장박사에게 돌리고 허물은 당시 한국사회의 후진성 내지는 미숙성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당시 과(過)의 대부분은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결함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전의원 제2공화국 사람들도 다 가고 내 나이도 이제 여든인데….대한매일이 진상을 파헤쳐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이 시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장면정부의 진실은)영원히 역사적으로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집니다.학자들이 깊이,또 많이 연구해 나가기 바랍니다. 조교수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그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출발선에 섰음을 알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민주사회의 정당성에관한 일반의 의식을 드높이는 데도 이바지했습니다.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학계에 부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지요. 덧붙이자면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에 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우리의 장래를 위해 모델을 찾는 작업에 너무 무관심합니다.학계도 그렇고 일반인도,제2공화국 연구를 강화하고 이해를 깊이해 우리 민주주의를 건전한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매일의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현대적 요청에 부합하는,시의적절하고도 역사성을 가진 기획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 이용원 문호영기자 ywyi@■張勉시리즈 목차 지난 2월23일 시작해 오늘 30회로 끝을 맺은 ‘제2공화국과장면(張勉)’시리즈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2회 국토건설사업(상·하) 3∼5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상·중·하) 6∼8회 윤보선(尹潽善)과의 갈등(상·중·하) 9∼11회 신구파 대립과 분당(分黨)(상·중·하) 12회 소장파(少壯派)의 도전 13∼15회 분출하는 욕구(상·중·하) 16회 혁신계의 부침(浮沈) 17∼18회 봇물 터진 통일론(상·하) 19∼20회 요동치는 군(상·하) 21회 대일(對日)외교 전략 22∼23회 지지부진한 혁명과업(상·하) 24회 실패한 내각책임제 25∼27회 장면의 정치역정·생애(상·중·하) 28∼29회 김대통령 특별회고(상·하) 30회 시리즈 결산 전문가 대담대한매일·스포츠서울 뉴스넷(http:///www.kdaily.com 또는 http:///www.seoul.co.kr/)은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물 총 30회분을 정리,별도의 아이콘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금감위 大生처리 ‘속앓이’

    금융감독위원회가 대한생명 2차입찰 발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입찰참여자가 8개 업체로 1차입찰 때보다 2배로 늘었으나 마땅한 후보감이 없어 골치를 썩고 있다. 대한생명 매각과 구속된 최순영(崔淳永)회장의 리스트를 연계시킨 ‘정부밀약설’이 나도는 가운데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2차입찰도 유찰될 것이라는 소문마저 퍼져 금감위의 후보선정은 쉽지가 않다. 13일 금감위에 따르면 민간전문인으로 구성된 생보사구조조정위원회는 지난주 3차례 회의를 열어 8개 업체가 낸 투자제안서를 검토했으나 예비심사 기준을 모두 만족한 업체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의 경우 인수가격으로 2조원 이상을 제시했으나 후순위 차입금이 상당액 포함돼 이를 제외하면 실제 인수가격은 1조5,000억∼1조7,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1차입찰 때 LG가 현금 1조원,후순위 차입금 1조원을 써 탈락한 것을 감안하면 한화도 기준미달이라는 평가다.금감위는 여전히 후순위 차입금은 인수가액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푸르덴셜생명을 끌어들인 미국의부동산관리회사 암코나 인수·합병(M&A)전문회사인 노베콘그룹은 인수금액이 미달한 데다 생보업 발전에 공헌할 가능성이 적다는 평을 받았다. 협상을 통해 인수금액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한화을 포함한 1∼2개 업체를 인수 후보자로 선정할 가능성도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유찰시나리오를기정사실화하고 있다.정부는 유찰시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최 회장의 지분을 포함해 기존 주식을 100% 소각하면 뒤탈이 없을 것으로 본다. LG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행하면 재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그러나 이번 입찰이 유찰될 경우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게 됐다는 비난을받을 공산이 크다.금감위로서는 이래저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백문일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29)-金대통령 특별회고(下)/사료적 가치

    28회에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 증언 가운데 장면(張勉)박사를 만나 가톨릭 영세를 받은 과정 등 5가지 질의에 대한 답변을 싣는다. 장 박사를 만나기 전에도 성당에 나간 것으로 압니다.영세를 받은 과정을들려주십시오. 제 전처의 처가가 가톨릭 집안이기 때문에 자주 성당에 나갔지만 정식으로영세를 받은 것은 1957년이었습니다.그때 저는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한 윤형중(尹亨重)신부로부터 교리강독을 받았고 노기남(盧基南)대주교의 방에서 김철규(金哲奎)신부라고,그때 우리 민주당과 매우 가까운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최서면(崔書勉)씨라고,그때 서울교구 사무국장으로 있던 제 친구가 주선했는데 장 박사를 대부로 소개해준 사람도 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장 박사하고 영적으로 대부·대자의 관계가 되었고,그 인연으로 저는 신파의 총수인 장 박사 밑에서 젊은 엘리트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자연히 장 박사 가족하고도 잘 알게 되었는데 특별히 인연이 깊어진 것은 장 박사가 5·16을 겪고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명륜동 자택에 칩거할 때였습니다.과거에 교류가 있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장 박사를 외면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6대 국회의원이던 저는 장 박사를 찾아뵈면서 관계를 유지했고,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한번은 장 박사 추도식을 동성고등학교에서 대대적으로 했는데 그것을 제가 전부 주선한 일이있습니다.이런 일들로 해서 장 박사님 가족하고는 더욱 절친하게 되었습니다.제가 1980년 사형 언도를 받아 있을 때 장 박사 사모님께서 제 사형 언도가 풀릴 때까지 매일 그 추운 겨울에 성당에 나가 저를 위해서 기도하셨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경제전문가이기도 합니다.장면정부가 내세운 경제제일주의와 구체적으로 추진한 ‘국토건설사업’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당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이 중심이 되어서 입안했습니다. 그리고 국토건설단은 사상계를 발간해 지식인들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던 장준하(張俊河)씨가 맡아줌으로써 큰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습니다.국토건설단에 젊은 청년들이 정말로 나라를 한번 다시 세운다는 의욕으로 적극적으로참여하는 분위기가 크게 일어났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토건설5개년계획이 얼마나 좋은 안(案)이었나 하는 것은 그후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朴正熙)정권이 추진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토대가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제일주의는 장면정권의 양대 모토였는데 여기에 대해서 당시 우리나라 경제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며 예산의 절대적 액수를 원조해주던 미국까지 적극적으로 지지한 바 있습니다.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도록합의가 돼 장면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고자 출발하려는 찰나에 군사쿠데타가일어난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민주당 신파 계열을 지켜온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는 표현을 가끔 하십니다.신파의 특성,또는 장점을 설명해 주십시오. 일제시대 관료 출신들이나 은행가들이 해방 후 2대 국회를 중심으로 대거 정계에 등장했습니다.자유당에 의한 사사오입개헌이 일어난 후 이들이 민주국민당과 손을 잡고 민주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민주국민당 계열이 구파를 이루게 되었고 과거의 관료계층이신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과거 관료 대부분은 이승만(李承晩)정권에 협력을 했지만 신파에 참여한 관료 출신들은 양심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자유경제,그리고 남북간의 평화적 교류,이런 것을 생각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신파는 구파에 비해 개혁적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해서도더 철저한 면이 있었습니다.실제 이승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서 신파는매우 강하게 투쟁했고,이 점에 있어서 구파하고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4·19가 일어날 무렵 구파는 대거 자유당에 입당했고 신파는 자유당정권으로부터더욱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신파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리고 시장경제라고 할까,자유경제에 대한 정신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저는 그 후로 일생의 정치생활을 통해서 일관되게 그때 받은 영향을 그대로 견지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16쿠데타 발생 후 장 총리는 수녀원으로 도피했고,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쿠데타를 추인했습니다.두 분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장 박사와 윤보선 두 분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이지 제가 여기에서 말할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2공화국 당시의 내각책임제를 어떻게 보십니까.제2공화국,그리고 장 박사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해주십시오. 정국을 책임지고 잘 장악해 안정을 유지해서,그런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총리였던 장 박사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그러나 거기에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장 박사가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괴롭힌 면이 있었습니다.저는 과거에 내각책임제를 열렬히 지지한 바 있지만 5·16을 겪고 나서 내각책임제에 대해 큰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그 이유는,당시 경험으로 정당과 국회의원이 성숙하지 않고서는 내각책임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5·16 당시 나라가 공산화 직전에 있었다든가,장정권이 지나치게 부패했다는 쿠데타 명분에 대해서 상당 부분 공정한 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5·16 직전 정국은 아주 안정이 되었고 오히려 매일같이 일어나던 시위도 거의 가라앉은 상태였습니다.정치 역시 안정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패 역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5·16 후에 장정권의 부패를 대대적으로 조사를 해가지고 신문 양면에 걸쳐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워서 발표를 했지만 재판결과 부패로서 처벌받은 것은 김영선재무장관이 출장 중 중고품 냉장고 하나를 어느 공무원에게서 선물받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나머지는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처럼 학생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정치인들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분오열해서 가뜩이나 약한 정권을 잡고 흔드는 일을 한 데다 언론까지 가세해 결국 장정권이 유지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장면정권의 간부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지만 역시 정치가 안정되고 정권이 성공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특히 정치인은 스스로가 책임 있는 자세로서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그런 건전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시 뼈저리게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증언 통설 뒤집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증언은 현직 대통령이 신문 연재물에 직접 참여했다는 의미말고도 증언 자체가 갖는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김 대통령은 먼저 장 박사와 관계를 맺게 된 계기를 “장 박사가 1956년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무소속인 제가 장 박사 지지를 선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돼서”(28회에 게재)라고 공개했다.이 말은 언뜻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김 대통령은 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므로 56년 당시에는 일개 정치 지망생에 불과했다.그런 그가 장 박사를 지지했다고 해서 신문에 보도되기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그때 이미 주목받는 논객이었다.55년 9∼10월에만 동아일보에 다섯 차례 ‘시론’을 실었고,당시 지식인 사회를 대변하는 월간지‘사상계’ 55년 10월호에도 장문의 논설을 발표했다.제목은 ‘노총(勞總)분규와 우리의 관심’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 ‘노조는 유해한가’ 등으로모두 노동운동을 주제로 했다.따라서 ‘장면 부통령후보 지지 선언’이 보도될 만한 여건은 충분했던 셈이다. 60년 4월6일 민주당이 주도한 서울 중심가 시위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밝힌 것(28회 게재)도 상당히 소중한 역사적 증언이다.그날 시위의 전개와 이후‘4·19혁명’에 끼친 영향 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흔히들 제2공화국의 민주당정부를 4월혁명에 ‘무임승차한’정권이라고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의 주장은 다르다.민주당이 4월혁명을 일정 부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3·15부정선거’ 당일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지만 막상 서울에서는 3월17일 성남고생 400여명이 거리에 나섰을 뿐 학생·시민의집단적인 움직임은 없었다.이처럼 잠복한 민심을 민주당이 촉발했다는 주장이다.그런데도 그 증거로 ‘4·6민주당 시위’를 내세우고 이 시위를 생생하게 되살린 증인은 여태껏 없었다. 김 대통령의 증언을 보면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는 과정,일단 시위대에 끼자 경무대를 목표로 삼으려고 한 사실들이 명백하게 밝혀진다.학계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부분이다. 당 대변인이 된 과정(28회 게재)도 그 무렵 김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60년 ‘7·29총선’에서 민주당은 민의원 172석을 차지했다.그야말로 제제다사(濟濟多士)라 할 만큼 인재가 넘치는 상태였는데 김 대통령은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았다.유망한 청년 정치인에게 거는 민주당 지도부의 기대와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통령은 장면 박사와 제2공화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에서 “정치인은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로서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건전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고 결론내렸다.지금의정치권에도 적용되는 주문일 것이다. 이용원기자
  • 與 “특검제 도입 검토”

    여야는 10일 국정조사 대상등을 놓고 총무회담을 가졌지만 전날의 주장을되풀이해 합의점을 찾지못했다.여당은 그러나 야당이 국정조사 대상을 ‘조폐공사파업 유도’의혹에만 국한한다면 이사건의 규명을 위한 특검제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밝혀 최종 절충이 주목된다. 이날 두 차례에 걸친 총무회담에서 여당은 ‘조폐공사의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한해서만 국정조사를 하자고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비롯,△옷로비의혹사건 △‘3·30 재보선’ 50억원 사용의혹설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 거액도난 사건도 포함한 소위 ‘4대 의혹사건’으로 확대하자고 맞섰다.이총무는 특별검사제의 도입도 요구했다.그러나 공전중인 204회 임시국회는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파업유도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한 반면,한나라당은 78개 시민단체가 낸 특별검사제법 청원을 받아들여 국회에 냈다.
  • 정치권 ‘국조권 정국’ 주도전략 골몰

    여야는 국조권 발동을 앞두고 10일 고위당직자회의,의원총회를 통해 전의(戰意)를 다지는 등 힘겨루기를 벌였다.여당은 한나라당이 정치공세로 일관할 경우 여 단독의 국조권발동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한나라당은 특검제 도입을 거듭 촉구하는 등 대여 압박을 계속했다. ?欄뭐洸맛?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민심수습 차원에서 야당의 국정조사권 발동 요구까지 수용한 만큼 여당으로서는 할 도리를 어느 정도 다했다는 생각이다.따라서 야당이 이에 호응하지 않고 정치선전에 악용하려 할 때는 절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10일 오전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진형구(秦炯九)전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만이 국조권의 발동 대상이라는 기존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한나라당이 국조권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요구하는 ‘옷’사건과 고관집 절도사건,3·30 재·보선 50억원 살포설 등은 소문에 불과하고 국정행위가 아니기때문에 수용할 수 없으며 해당 상임위에서 다루면 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해당 상임위에서만약 한나라당이 계속 ‘4대의혹’을 국조권 대상으로 삼자고 고집하면국민회의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관련설이 나도는 ‘총풍’과 ‘세풍’사건에 대해서도 국조권 발동을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藍薇管? 국민회의와 큰 틀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검찰의 조폐공사파업유도의혹’파문만 국정조사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방침에서도 국민회의와 같다. 그러면서도 부분적으로 중간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독자성 확보를 꾀하고있다.4대 의혹에서 자유로운 처지에 있는 만큼 민심동향을 봐가며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자세다. ‘옷파문’만 하더라도 법사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시각이다.증인 및 참고인 신문활동도 허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한나라당이 사과를 요구한 국민회의 김봉호(金琫鎬)부의장 문제에 대해서는 ‘유감표시’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朗碁ざ遮? 4대 의혹 사건에 대한 국조권 요구를 끝까지 ‘사수’한다는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여당이 국조권을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한정하는 것은 여야 공방으로 몰고가 진실 규명을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여당 단독의 국조권 발동에 대해 장외투쟁까지 불사,내각총사퇴 공세를 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여세를 몰아 ‘여권 흔들기’를 계속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여당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만 국조권을 수용해서 통과의례를 통해 면죄부를 주게 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것”이라며 여당에 전면적인 국조권 발동을 촉구했다. 박대출 최광숙 추승호기자 dcpark@
  • 제2공화국과 張勉(28)-金대통령 특별회고(상)

    대한매일은 ‘정직한 역사 되찾기’의 일환으로 지난 2월부터 ‘제2공화국과 張勉’시리즈를 주 2회 1개 면씩 연재해 왔다.지난번 27회의 ‘장면의 정치 역정과 생애(하)’로 연재는 사실상 일단락되었다.이번 28회는 당시 민주당정부의 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를 상·하로나눠 그 전반부를 싣고 29회는 후반부를 싣게 된다.마지막 30회는 이번 연재물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제2공화국을 평가하는 대담으로 엮어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구술하여 녹취한 답변은 ▲장면(張勉)전총리와의인연 ▲그를 만나 가톨릭 영세를 받은 과정 ▲장면정부의 경제제일주의 평가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서의 자부심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평가 ▲제2공화국 및 장면정부 평가 등 여섯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다음은김 대통령이 ‘장면 전총리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여 술회한 내용이다. ?藜圄? 박사와의 인연 1956년 장면 박사가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무소속이던 제가 장 박사 지지를 선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장 박사가 그 사실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저와 장면 박사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본격적인 인연은 다음해 제가 가톨릭 영세를 받을 때 장 박사가 대부가 되어주면서 부터입니다. ?嵐适獵? 입당 저는 민주당에 입당해 중앙상무위원으로 일했습니다.민주당중앙상무위는 33명의 국회의원과 50명의 원외 당원으로 구성된 지금의 당무위원회 같은 것입니다.저는 젊은 나이에 발탁되었고 정책심의 등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의견을 제시한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하나 당시 민주당 내에는 신·구파의 큰 대립이 있었는데 저는 신파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많은 발언을 했고,그런 저에 대한 장 박사의 신임이 매우두터웠습니다.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역사에 ‘3·15부정선거’라고 기록된 60년 3월15일 정·부통령선거때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趙炳玉)박사가 돌아가시고 부통령 후보인 장 박사만 남아 선거를 치렀는데 주로 장 박사 계열의 신파가중심이 되어서 선거를 했습니다.저는 강원도 당무위원장으로서 강원도의 험준한 지역을 돌면서 일선에서 선거운동에 임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행해진 ‘3·15부정선거’에 대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저는 인사동 중앙당사 앞에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걸고부정선거를 규탄했습니다.그리고 4월6일 민주당이 중심이 된 시위가 있었습니다.시청 앞에 모여 을지로4가와 종로,그리고 파고다공원(지금의 탑골공원)과 광화문을 거쳐 다시 시청 앞으로 돌아오는 시위였습니다.그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시위는 거의 없었습니다.고등학생 일부가 부정선거를 규탄했고 대학생들은 아직 나서지 않던 때였습니다.그 시위에서 저는 앞장서 휴대용 마이크로 구호를 선창하는 입장이었고,정부에서는 내무장관 포고령으로 발포도 불사한다는 위협을 했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던 비장한 심정이었습니다. 시위가 시작되자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 진압보다는 시위대가 군중과 합세하지 않도록 격리하는 데만 주력했고,파고다공원 앞에 오자 학생들이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시위대가 광화문까지 오자 학생들은 경무대(지금의청와대)쪽으로 가려고 해 시위를 주도하는 우리와 약간의 실랑이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전개된 그날의 시위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襤逅?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정권이 들어섰을 때 당 대변인인 조재천(曺在千)선생이 법무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습니다.저는 부대변인을 했는데 조재천 선생이 “비록 김대중씨가 원외(院外)지만 그 이상 대변인을 해낼 사람이 없다”며 강력히 추천하고 장 박사도 그 말이 옳다고 동의함으로써 제가 여당의 대변인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많이 보도가 되었지만 저는 대변인으로서도 여당 입장을 잘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그때는 매일같이 여야 대표들이 학교나 명동에있던 시공관 등지에서 연설을 했는데 저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연설로 시민들에게서 많은 호응을 받았고,이로 인해 총리인 장 박사로부터 칭찬을 받은일이 몇번 있습니다. ?藍? 박사의 민주정신 저는 대변인으로서 매일 장 박사를 찾아가 몇가지 지시를 받고 제 의견도 말씀드리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하루는장 박사가 제게 “이 자리에 오래있는 것보다는 여야간 정권교체가 한번 되어야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온다”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했습니다.그 말씀에 저는 ‘참,이 어른에 대해 사람들이 약하다고 그러는데 또 약한 말씀을 한다’는 그런 생각밖에 못했습니다.그러나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장기 집권을 겪고나서야 저는 그 말씀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였다는 사실을 아주 깊이 깨닫게 되었고 정말 그 훌륭한 민주정신에 대해서 새삼스레 감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정국을 끌어나가는 데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구파가 정권을 차지하는 것에 실패하자 그냥 당을 깨고 나가 야당을 만들었습니다.그것은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그때 저는 “이렇게 해서 정국을 불안하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만일 조병옥 박사님이 아직 생존해 계셨다면 적어도 정부를 1∼2년은 안정시켜 놓고 분당을 해도 했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있는데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襤ㅁ? 흔든 당내 소장파 장 박사가 제일 크게 고생한 것은 당내 소장파들이 조직을 따로 만들어 정부가 하는 일을 일일이 비판한 것이었습니다.‘중석불사건’이라고, 6·25 부산 피란 시절에 중석불 부정불하사건이 있었는데 장 박사가 또다시 중석불 부정을 저질렀다고 소장 의원들이 들고나선 적도있습니다.5.16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성으로 중석불사건 등 부정부패를 지적했는데 군사정권에서 조사하고 재판한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제게 당내 소장파들의 움직임을 걱정하고 개탄하고 염려한 일이여러번 있었습니다.저는 장 박사에게 소장파 대표를 중요한 각료직에 등용해 정부에서 같이 일하도록 하면 그런 문제가 수습될 것이라고 건의를 드렸는데 이 방안은 당내 노장 중진들의 반대로 잘 안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fi?襤ㅁ? 타도 외친 혁신계 그리고 혁신계가 당시 참으로 사려깊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과거 이승만(李承晩)시대에 완전히 용공으로 몰려 숨도 크게 못 쉬고,감옥에 가고,심지어 조봉암(曺奉岩)씨의 경우는 사형까지 당하고 하던 혁신계는 4·19 이후 민주당정권 아래서 완전히 해방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그런 혁신계가 장면정권 타도를 내세우고 공세를 취했습니다.신문에도 보도된 것이지만 그때 저는 “지금 혁신계가 장면정권을 이렇게 괴롭히지만 만일 장면정권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혁신계다.‘입술이 있으면 이가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5·16 후제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혁신계는 그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압과 고초를 겪었습니다.저는 민심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세력들한테 불씨를 주는 행동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藍躍溶ㅁ? 망친 3신(新) 사실 당시 신문도 문제가 있었습니다.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매일같이 공격했습니다.심지어 정부기관지라는 신문까지 나섰습니다.결국 정부를 국민 앞에 완전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5·16 후‘3신(新)’이 장면정권을 망쳤다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3신’이란 신문(新聞),혁신계(革新系) 그리고 당내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新風會)가 그것이었습니다. 장면 박사는 본질적으로 독재자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였는데 그런 분이 당내와 언론과 혁신계로부터의 협격으로 힘도 제대로 못쓰게 되었습니다.그런 불안정한 상황이 일부군인들에게 마치 나라가 공산화되어 가고,나라가 붕괴 직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정리 이용원기자 - 金대통령 회고 이모저모 현직 대통령이 일간지의 현대사 연재물에 증언을 해준 것은 대한매일이 연재하고 있는 ‘제2공화국과 張勉’이 처음이다.제2공화국 당시 민주당정부의 집권당 대변인을 맡았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본보의 증언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민주당 대변인을 맡았고 장면 박사와 돈독한 관계에 있었던 김 대통령의 얘기가 왜 없느냐”는 등의 성화가 잇달았다. 독자들의 재촉에 못이겨 지난달 하순 서면으로라도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오리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당시 개각에 이어차관급 인사가 있었고 곧바로 러시아·몽골 순방이 예정된 대통령의 일정상‘한가롭게’ 40년 전 기억을 더듬을 틈이 없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길에 오르기 전날인 지난달 26일 밤 대한매일이 서면으로 회고를 요청한 6가지 질문에 대해 소상히 구술했다.청와대 관계 비서관이 이를 녹취하여 다음날 서면으로 옮긴 결과 A4용지 10장 분량이었다.200자 원고지로 34장에 해당하는 상세한 내용이었다. 해외 순방을 앞둔 노(老)대통령은 늦은 밤 질의서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옛날 일을 되새겼다.대통령의 회고에는 이 땅에 최초의 민주주의 꽃을 피운 제2공화국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에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진지함으로 가득했다.또한 그후 역대 군사정권에 의해 폄하된 장면정부가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하며 동시에 제2공화국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의 진로를 모색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간곡한 메시지도 회고의 행간에 읽을 수 있었다.이밖에 내각책임제에 대한 진솔한 평가와 집권자로서 정치권에 갖는 바람(29회 게재 예정) 등 김 대통령의 정치관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 이용원기자ywyi@
  • [사설] 진상규명인가 흠집내기인가

    한 검찰 간부의 파업유도 발언과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권 발동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또다시 소모적인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9일에 이어 10일 열린 3당 원내총무회담이 계속해서 결렬되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한때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여야의 입장 차이라는 것이 있고,국정조사에 절차나 방식도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야당이 국조권 발동을 제안했고 모처럼 이를 여당이 흔쾌히 받아들였으면 국회는 국민들이 경악해 마지않는 이 문제를 하루빨리 조사해 진상(眞相)을 세상에 밝힐 의무가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行態)는 너무나 구태의연해 국민을 다시 한번 실망시키고 있다.이는 정치권에 아직도 상황인식이 제대로 안돼 있다는 증거다.특히 야당인 한나라당의 요구조건들이나 대응방식은 시쳇말로여권 흠집내기라는 한건주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한나라당은‘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외에도‘고급옷 로비사건’,‘3·30재·보선 거액 살포 의혹’,‘고관집 도난사건’도 함께국정조사해야 한다고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그처럼 광범위한 사안의 국정조사는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것은 물론 그런 문제들까지 끼여들면 이번 사건의 초점이 흐려질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파업유도 문제는 사안의 진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계의 반발로 당장 산업평화를 깰 염려가 있다.조사가 매우 시급한 문제다.또 만일 그것이 사실일 경우 개혁을 앞세우는‘국민의 정부’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이른다. 우리는 국정조사권을 둘러싼 여야간의힘겨루기나 절차상의 문제로 헛된 정치공방만을 계속하다 정작 밝혀내야 할 핵심은 흐지부지하고마는 사례를 자주 보아왔다.지난 1월 열렸던 환란(換亂)청문회도 그 한 예다.이번 국정조사도 반쪽 조사가 돼서는 국민들의 정치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수사를 해야 할 검찰이 바로 장본인이다.따라서 국회가조사하지 않으면 안될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한데 국회가 정치게임이나 하고 있어서는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권도 검찰이나 정부가초기 단계에서 밝힌 것을 합리화하려고만 할 게 아니다.정정당당히 조사할 것은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만큼 책임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계는 노동운동의 자존심마저 손상시킨 이번 일로 적이 속이 상하겠지만 국회의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행동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與野, 총무접촉등 이모저모

    여야는 10일 총무회담을 갖고 국정조사 대상을 놓고 협의했으나 전날에 이어 평행선만 달렸다.공전중이던 204회 임시국회의 정상화를 위해 1차 본회의를 여야 합의로 연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拉箕ト릿? 국민회의 손세일(孫世一)·자민련 강창희(姜昌熙)·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오전 11시 25분 국회의장실에서 총무회담을 했으나 30분만에 결렬됐다. 여당은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의혹사건만 국정조사대상으로 하자는 입장이었다.반면 야당은 △옷로비사건 △‘3·30 재·보선’ 50억원 사용설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 거액도난사건을 포함한 소위 ‘4대 의혹사건’을 대상으로 하자고 맞섰다.전날의 두 차례에 걸친 총무회담에서 나온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한나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특검제를 도입할 것을 추가로 요구했다.손총무가 새로 당선된 의원과 신임 국무위원들의 인사를 위해 본회의를 열자고 제의한 것을 이총무가 받아들여 본회의가 열렸다. ?擥뽁맛? 여야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국정조사 대상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총무회담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다.한나라당 서훈(徐勳)의원은 “김대중(金大中)정권 1년 6개월동안 도덕성에 문제가 많았다”며 “내각은 책임지고 총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한영애(韓英愛)의원은 “고급옷 사건은 이미 검찰수사가 끝났고 재·보선 50억원 사용설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며 반박했다.자민련 어준선(魚浚善)의원은 “우리들 앞에는 산적한 문제가 많다”고 말해 국정조사 대상을 확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톤으로 말했다. 의사진행 발언에 앞서 ‘6·3 재선거’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안상수(安相洙)의원과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한 국민회의 김태랑(金太郞)의원은 선서를 했다.이회창총재는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일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파업 유도’의혹 국조권 발동…김대통령 철저규명 지시

    여권이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과 관련,야당이 요구하는 국회 국정조사권 발동을 수용함으로써 ‘옷 로비’ 의혹 사건 이후 계속된 ‘공전국회’가 곧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는 9일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파문에 대해 “한점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히라”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제204회 임시국회에 참여하고 야당의 국정조사권 발동 요구를 수용키로 했다. 국민회의는 김영배(金令培)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당 8역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한 데 이어 국정조사 범위·일정 등에 대한 여야 합의가 늦어질 경우주도적으로 국정조사권을 발동키로 했다. 이와 관련,여야 3당 총무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국조권 발동 문제를 협의했으나 한나라당측이 파업유도 의혹사건 외에 고급옷 로비의혹,3·30 재·보선 50억원 살포의혹,도둑 김강룡 사건 등을 함께 조사대상에 넣자고 주장,진통을 겪었다.야당측은 국정조사 대상 등에 대한 절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 농성도 불사할 뜻을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김 총재대행과 조찬을 함께 하며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대해 “이 정부에선 그같은 일이 있어서도 안되고있을 수도 없다”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상을 밝혀 모든 의혹이 풀리도록 하라”고 김대행과 배석한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오전 이회창(李會昌)총재 주재로 긴급 총재단회의와 주요당직자회의 등을 잇따라 열고 이번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국기문란사건’으로 규정,국회 국정조사와 함께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유민기자 r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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