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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4개부처 개각] 국정기조 유지 ‘소신 공유’ 인사

    [4개부처 개각] 국정기조 유지 ‘소신 공유’ 인사

    노무현 대통령은 4개 부처의 개각을 통해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이 빠진 자리를 메우는 등 일단 국정공백의 최소화를 택했다. 새해 벽두부터 내각의 분위기를 새롭게 하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개각과 관련,“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라는 발언과는 달리 시기를 앞당긴 것은 이미 짜놓은 틀을 굳이 늦출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공석이 된 부처와 장기 재직한 장관만을 개각 대상으로 삼았다. 당초 1차 개각에서 7∼8개 부처가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4개 부처 선에서 마무리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복지부장관도 조만간 내정될 것 같다. 청와대는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을 사실상 복지부장관으로 발탁, 당과 조율만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김완기 인사수석도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유 의원에 대한 신망은 “국무위원으로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두텁다. 따져보면 열린우리당을 비롯, 여권 일부에서 제기됐던 재보선 참패나 황우석 사태 등에 따른 민심수습을 위한 대폭적 인적쇄신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결국 노 대통령의 ‘수요가 있는 곳에 인사를 한다.’는 특유의 인사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또 개각 전권을 위임받은 이해찬 총리의 뜻도 충분히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내정자는 대학 총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행정가로 조직관리능력과 조정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학계·정계·관계 등의 신망도 두터워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의 추진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한때 교육계의 반대에 부딪쳐 교육부총리로 입각하지 못한 흠집을 가지고 있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인 이종석 NSC 사무총장은 북한 문제 전문가로 남북문제에 정통한 데다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구상, 중장기 외교안보 전략 수립에 중요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게 발탁 배경이다. 정세균 산자부 장관 내정자는 3선의원으로 실물경제에 밝고 여당 정책위의장·원내대표·당의장을 맡아 보여준 대화와 타협의 조정력이 평가받았다. 김 인사수석은 노동부장관 내정자인 이상수 전 의원의 경우,5공 시절 인권변호사로 두각을 나타냈고 변호사시절 노동법률사무소 소장을 맡는 등 노동 문제에 대한 식견이 풍부해 당면 현안을 잘 처리해 나갈 것으로 기대,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지난 대선 때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까지 됐던 이 전 의원의 장관 기용이나 이 통일부장관의 서열파괴형 기용 등으로 인해 ‘측근 봐주기 코드인사’ ‘땜질식 개각’이라는 일각의 비난도 피하기 어렵게 된 측면도 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한나라 ‘텃밭’ VS 우리당 ‘인물’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한나라 ‘텃밭’ VS 우리당 ‘인물’

    영남지역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한나라당의 ‘당의 힘’에 맞서 현직 장관 등 실세들을 내세워 ‘인물의 힘’으로 맞설 태세다. 한나라당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 4월과 10월 영천과 대구에서 치른 재보선에서 드러났듯이 ‘한나라당 후보=당선’이라는 등식은 예전만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다가올 대선에서 영남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둬 대선까지 분위기를 끌고갈 작정이고, 여당은 영남 교두보 구축을 기대하고 있다. 대구에선 한나라당 소속 조해녕 시장의 재선 불출마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한나라당 내부 경쟁이 뜨겁다. 이한구·서상기 의원,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의 출마가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상주출신 이재용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김태일 대구시당위원장, 박찬석 의원이 거론된다. 이 장관은 무소속으로 두 차례나 대구지역 구청장에 당선됐고 2002년 시장선거에서도 선전해 만만치 않은 지역기반을 보였다. 그러나 ‘당 핸디캡’이 걱정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여당 후보로 대구중·남에 출마했지만 완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난 10월 대구동을 재선거를 통해 1차 검증을 마친 이강철 전 청와대시민사회수석도 당 차원에서 거론된다. 경북도지사는 이의근 현 지사가 3선 연임으로 ‘3진 아웃’된다. 한나라당에선 김관용 구미시장, 정장식 포항시장, 김광원 의원이 이미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병석·임인배 의원도 저울질 중이다. 영입설이 나돈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에선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이름이 나오는 등 전·현직 장관 출마설이 끊임없이 나돈다. 부산·경남 지역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고지라는 점이 변수다. 부산시장 한나라당 후보로는 허남식 시장이 재선 도전에 나선 가운데 3선의 권철현 의원이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은 중량감 있는 ‘빅카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의 이름이 거론된다.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본인의 부인에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름도 맴돈다. 당 중앙인재발굴기획단 관계자는 “지난 보궐선거에서도 인물만 보면 오 장관을 찍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인물론’에 기대를 걸었다. 경남도지사는 한나라당에선 김태호 지사가 재선 도전 의지를 밝힌 상태다. 송은복 김해시장이 출마의사를 확실히 한 가운데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최근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강삼재 전 의원이 ‘아직도’ 고민 중이어서 최대 변수다. 이방호·권경석 의원도 오르내린다. 열린우리당에선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거의 출마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민배 대한지적공사 사장, 정해주 전 국무조정실장, 장인태 전 경남 행정부지사도 거론되고 있다. 울산시장은 한나라당에선 재선 도전을 선언한 박맹우 현 시장과 이채익 남구청장의 대결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에선 송철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이두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도 오르내린다. 이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이갑용 울산동구청장과 정창윤 전 울산시당위원장 등이 출마를 고려 중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당마다 “붙어볼만”… 접전 예고

    [5·31 지방선거 누가 뛰나] 당마다 “붙어볼만”… 접전 예고

    충청·강원·제주 지역의 광역단체장 선거도 출마 예상자가 정당별로 2∼3명씩 거론되는 등 치열한 전초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곳은 영·호남에 비해 지역색이 옅어 정당마다 “한번 붙어볼 만하다.”고 벼르고 있다. 상당수 지역이 맞대결 구도보다는 다자간에 물고 물리는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특히 충청권은 오는 17일 공식 창당하는 중부권 신당이 당의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신당의 존폐 여부까지 좌우될 수 있어서다. 신당은 ‘데뷔전’에서 열린우리당·한나라당과의 접전을 예고하며 ‘올인’을 각오했다. 여당은 지난해 4·30 재·보선에서 행정중심도시 예정지인 충남 공주·연기에서 무소속 정진석 의원에게 의석을 내줘 절치부심해왔다. 헌법재판소가 ‘행복도시법’ 위헌소송에서 각하결정까지 내린 마당이라 ‘이번에는 꼭’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한나라당은 40%대까지 치솟고 있는 높은 지지율이 최대 무기다. 대전시장의 경우 열린우리당에선 지난해 4월 입당한 염홍철 시장의 재선 출마가 점쳐진다. 여론이 비교적 호의적이고,40%대를 넘나드는 지지율이 강점이다. 지역구 의원인 권선택 의원이 대전시 기획관리실장과 행정부시장을 지낸 경력을 내세워 도전장을 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양희 전 의원이 거론된다. 박성효 정무부시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출사표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당측은 “일단 창당부터”라고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창당 초기부터 물밑작업을 벌여온 이원범 전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 뜻밖의 인물을 영입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박춘호 현 대전시당위원장이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이다. 신당은 무엇보다 충남지사 수성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창당을 주도한 심대평 현 지사가 이미 3선(選)을 기록했기 때문에 더 출마할 수 없어서 이곳만큼은 꼭 신당의 새로운 인물이 당선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인제 의원이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해 충남지사에 출마하고, 심 지사는 이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계룡·금산 재선거가 치러지면 출마해 ‘싹쓸이’하겠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아직 뚜렷하게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없다. 다만 충남 서산시장을 지낸 박상돈 의원과 이명수 전 행정부지사,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한나라당은 박태권 전 충남지사가 강한 의지를 내비친 가운데 이완구·전용학 전 의원의 출마도 점쳐진다. 충북지사 후보로는 열린우리당에서 마땅히 부각된 인물이 없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홍제형 의원과 충주시장을 지낸 이시종 의원의 이름이 흘러나왔지만, 양쪽 모두 출마를 고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이원종 현 지사가 3선 고지를 노리고 있지만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으로 한때 자민련에서 차세대 주자로 꼽히다가 최근 입당한 정우택 전 의원의 기세가 거세다. 신당측 인사로는 오효진 청원군수의 출마가 점쳐진다. 강원지사 후보감으로는 열린우리당에서만 3파전이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되며, 강무현 해양수산부 차관, 김종환 전 합참의장 등의 이름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김진선 현 지사가 3선 도전을 선언해 별다른 도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유재규 전 의원, 민주노동당 길기수 도당위원장도 거론된다. 제주지사에는 열린우리당 진철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이 2004년 6월 재선거에 이어 두번째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송재호 제주관광대 교수도 강력하게 출마를 원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김태환 현 지사가 연임을 노리는 가운데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출사표를 던질 채비다.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민주당의 고진부 전 의원, 민주노동당의 김효상 도당위원장 등도 고심 중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되돌아본 정치권 2005 말… 말… 말…

    임종 직전에라도 마이크만 들이대면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한다는 정치인의 속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권은 2005년 한해에도 풍성한 말잔치를 벌였다. 한마디 ‘말씀’은 정국 흐름을 확 바꾸기도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실소를 사기도, 거침없는 독설로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혀’를 잘못 놀렸다가 도리어 화를 입는 ‘설화(舌禍)’도 허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의 달인’답게 ‘후끈한’ 발언으로 뉴스를 주도했다.“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며 시작한 ‘연정(聯政·연립정부)’ 관련 발언이 그랬다. 그 강도는 갈수록 거세져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도 있다.(7월 6일)”“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2선 후퇴나 임기단축을 시작할 수 있다.(8월30일)”며 점차 진화해 나갔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스토커”라고 반박했고, 당사자로 거론된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가 펄쩍 뛰며 제안을 거부했다. 여당에서도 문학진 의원 등이 “대통령이 신(神)이냐.”“예스맨은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대한민국 걱정 두 가지는 태풍과 대통령” 대통령의 직선 화법도 여전했다.9월초 외국 순방 길에서는 “대한민국에 두 가지 걱정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라면서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라고 ‘자해’했다. 유전의혹 등 측근 비리가 불거졌을 때는 “밥을 먹어도 힘이 안 난다.”고 고백했다. 부인 명의로 된 대부도 땅 문제로 집중 포화를 맞은 이해찬 국무총리는 5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경기지사는 정치적으로 나보다 한참 하수”라고 말해 구설에 휘말렸다.10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과 2004년에 이어 ‘2라운드’로 맞붙어 “쓰나미 피해 지원을 했던 다른 나라 국회의원이 (방청석에)와서 보고 계신데 (그런)질문에 답변드리는 게 창피스럽다.”고 냉소했다. 다음날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에겐 “의원들이 품위있고 사리에 맞게 질문해야지, 답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팀 ‘미림팀´과 ‘X파일´ 논란도 정국 흐름을 좌우했다. 국민의 정부 때도 일부 불법 도·감청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양심고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병원신세를 졌고,‘병상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는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고, 별일이 다 있다.”고 토로했다.‘삼성 킬러’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불법으로 도굴돼도 문화재는 문화재”라며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은 두 차례 재보선에서 완패해 무력감을 드러냈다. 당에서는 ‘27대 빵’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5월말 당 워크숍에서 “대중에게 비쳐진 여당 이미지는 ‘무능 태만 혼란’”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당 의원들도 이에 공감했지만,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해 20%대로 곤두박칠쳤다.“태풍이 올 때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다. 까불다가는 쓰나미에 다 휩쓸려간다.”고 몸을 사렸던 문희상 의장은 10월 재보선이 끝난 직후 ‘유구무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폭탄주 안 마셨지만 맥주잔 속 양주 마셨다” 한나라당은 연거푸 터져나온 술자리, 욕설 추태로 곤혹을 치렀다. 곽성문 의원은 골프장에서 맥주병을 던졌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감 기간에 피감기관과 술을 마신 데다 술집 여사장에게 성희롱이 담긴 욕설을 퍼부었다고 논란이 일었던 주성영 의원은 “폭탄주는 마시지 않았지만 맥주잔 속에 든 양주잔을 빼내 마신 사실은 있다.”고 해명하는 촌극을 빚었다. 박계동 의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송파구지역협의회 출범식에서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게 축사기회를 안 준다며 맥주를 끼얹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최근에는 임인배 의원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의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여직원에게 “싸가지 없는 X” 등 욕설을 퍼부었다. 열린우리당은 “역시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돈 많은 정당”이라고 비아냥거렸고, 한나라당에서는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 물 다 흐린다.”고 탄식했다. 비뚤어진 음주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만든 ‘폭소클럽(폭탄주 소탕 클럽)’은 이후 회원들이 한두 잔씩 폭탄주를 다시 먹는 바람에 회원이 자연 감소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도 취임 직후 “신고식 하느라 폭탄주를 다섯 잔이나 먹어 박진 회장에게 죄송하다.”고 고해성사했다. 와중에 ‘조용히 폭탄주 마시는 모임’인 ‘조폭클럽’도 생겨났다. 국회 행자위원회 의원들이 국감을 끝내고 저녁을 먹다가 발족했다. 엉터리 자료로 망신을 산 의원도 있다.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충청북도 국감에 앞서 ‘이원종 충북지사가 안기부 도청 X파일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질의자료를 배포했다가 부랴부랴 자료를 회수했다. 이 지사를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원종 정무수석과 혼동한 해프닝을 벌인 홍 의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제발 잊어달라.”고 읍소했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10월초 ‘이해찬 국무총리가 1가구 2주택자’라고 밝혔지만, 이 총리는 이미 한 채 팔아버린 뒤였다. 총리는 발끈했고, 이 의원은 “집계상 실수였다.”고 사과해야 했다. 단식도 유독 많았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원내대표실에서 단식에 들어가 13일을 굶었다. 뒤늦게 심재철 의원이 5일 동안 단식했고, 안상수 의원은 “의원이 돌아가며 1일씩 단식하자.”며 숟가락을 얹었다.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앞두고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무려 29일 동안 44㎏이나 살이 빠지면서도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농촌을 살리자.”며 눈물을 보였다. 행정중심도시법에 대한 위헌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해지자, 해당 지역구인 무소속 정진석 의원은 “합헌 결정이 나기 전에는 햇볕을 볼 수 없다.”며 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앉아 열흘간 곡기를 끊었다. 여당의 선병렬·양승조 의원도 9일 동안 회관 1층 로비에서 ‘노숙’하며 단식했다.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세운 전여옥 의원은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열린우리당의 전병헌 대변인은 취재진에 e메일을 보내 “(헷갈릴 수 있으니)‘전 대변인’ 약칭 대신 양쪽 대변인 이름을 모두 표기해달라.”고 잽싸게 요청했다. 차기 대권후보군의 말도 화제를 모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을 접한 뒤 미니홈피에 추모글을 올려 “호스피스의 홍보대사였던 그가 막상 자신의 스트레스와 좌절감, 외로움을 들어줄 친구를 찾지 못했나보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모친을 여읜 직후 어버이날을 맞아 미니홈피에 애절한 사모곡을 올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공주’라는 별칭을 붙인 것을 가리켜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 본 적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동안 박 대표를 ‘수첩공주’라고 말해온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봤다. 일본에는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가 있다.”고 응수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솔직히 노무현과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라고 말했다가 발끈한 ‘창(昌)’에게 공개 사과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경포대’라는 신조어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가, 강원도의 거센 반발과 함께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경기도가 포기한 대통령 후보”라는 핀잔을 들었다. ●“국회의장 모가지 뽑아놓든지…” 발언 면박당해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부 언론인과 학자가 친미파”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국회의장 모가지를 잡아 뽑아놓든지….”라고 했다가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고 면박당했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한마디 말로 단연 스타가 됐다. 쌀 협상 비준안을 처리할 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몸으로 막자,“제 자신이 닭보다 더 험한 발을 가진 농부의 아들”이라며 마이크도 없이 찬성토론을 벌여 비준안 처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당 ‘구원투수’ 정세균 의장은 최근 당·정·청 워크숍에서 “수구 우파가 다음에 집권한다면 역사의 후퇴이며 재앙”이라고 말했다가 한나라당의 역공을 맞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님, 올 초 약속 지키셨나요/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님, 올 초 약속 지키셨나요/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님, 기억하십니까. 올해를 여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 전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탄핵을 딛고 일어서 선진한국을 기치로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얘기했습니다.“민주주의의 핵심은 화해와 포용”이라며 통합과 관용을 강조했습니다.“많이 배웠고, 더 넓어지려 한다.”는 말로 집권 3년차 대통령의 성숙함을 내보였습니다. 보수언론들조차 “대통령 코드가 바뀌었다.”고 반겼습니다. 의욕도 넘쳤습니다. 경제활력 회복과 양극화 해소, 정부 혁신, 투명사회 건설 등 사회 구석구석에 눈길과 손길을 건넸습니다. 올 한해 많은 걸 이뤘습니다.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방혁신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작업이 궤도에 올랐습니다.19년을 떠돈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 주민 뜻에 따라 경주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겠다던 집값, 땅값은 8·31대책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국방개혁의 틀도 세웠고, 사법개혁도 착실히 준비돼 가고 있습니다. 고위공무원단제 도입 등 정부혁신 또한 숨가쁠 정도로 발빠릅니다. 어느 정부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먼저 양극화 해소입니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률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백약을 무색케 합니다. 경기가 나아진다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이 겨울이 춥습니다. 북핵 문제도 좀처럼 풀리질 않습니다. 미국과의 동맹은 불안불안하고, 일본과는 수교 40년만에 최악의 관계입니다. 최대의 사회협약인 노사정위원회는 기능이 정지됐습니다. 문제는 잃은 것입니다. 민심입니다. 화해와 통합입니다. 지금의 사학법 갈등은 물론 강정구 교수 논란,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등 해묵은 정체성 논쟁으로 서로가 등을 돌렸습니다. 얼마전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꼽았습니다. 물과 불이 따로 논, 분열과 반목의 한해였다는 것입니다.2003년 참여정부 첫 해의 사자성어가 우왕좌왕이었고, 지난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습니다. 갈팡질팡하다 패를 갈라 싸우더니, 이마저도 지쳤는지 등 돌리고 앉은 형국이라는 게 이들이 매긴 참여정부 3년의 자화상입니다. 고약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니 말입니다.27전27패의 재·보선 성적표와 20%대의 낮은 지지율이 달리 뭘 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여권에선 지금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당찬 목소리가 나옵니다. 엊그제 열린우리당 대선 3주년 기념 워크숍에서도 자화자찬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몇몇 고위인사는 틈만 나면 언론 탓, 보수 탓 하기 바쁩니다. 유신독재시대에 머문 국민의식을 꾸짖는 간 큰 공직자도 있습니다. 자찬과 남탓은 문 걸고 하는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 파문의 한 쪽에서 국민들은 또 다른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 정부의 비겁함 말입니다. 재기의 희망마저 잃는 듯해 몸이 떨립니다. 대통령께서 조만간 미래국정구상이라는 거대 담론을 내놓을 것이라 합니다. 연정론으로 한번 어리둥절했던 터라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혹여라도 내년 지방선거나 후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를,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틀이기를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너무 높이, 너무 멀리 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윗불이 뜨거울수록 아랫물은 차갑습니다. 반발짝 앞선 대통령의 열정이 국민과 사회를 따뜻하게 덥히는 상택하화의 새해를 기대해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는 충분히 다이내믹합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정의장 “3당국회 가동” 압박

    열린우리당은 18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3주년을 기념해 당·정·청 워크숍을 열어 참여정부 3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 이해찬 국무총리와 장관들,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 등 100여명은 3년의 성과에 후한 점수를 매겨 자축하면서도 앞으로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로 남은 과제를 마무리짓자고 결의했다.●“참여정부, 잘 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기조 발제에서 그동안 이뤄낸 성과를 하나씩 짚어가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흔히 국가 채무가 높다고 하지만, 공적자금 도래분과 외평채 등을 빼면 순수 재정적자 규모는 6조 규모로 낮아 (정부가)아주 알뜰한 살림을 해왔다.”면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만 해도 역대 어느 정부가 이번처럼 공공기관 이전 등 다양한 특별법 같은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접근했느냐.”고 자부했다. 이 총리는 특히 “내년 하반기 이후에 건설경기가 살아나는 등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며 “참여정부 끝날 때까지 국민소득 1만 8000달러를 달성하면 그 다음 정부가 사회적 관습·법률·문화만 개선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해져 결국 선진국 진입의 틀은 참여정부가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민주·민노당과 함께 임시국회 가동” 정세균 의장은 17대 국회 성과를 언급하면서 “한나라당이 과거에는 행정부 독재를 하더니 이제 (길거리에서)입법부 야당 독재를 하려고 한다.”면서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 무분별한 장외투쟁 같은 구태 정치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나라당이 계속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면 부득이 타(他)야당과 공조해 (법안을)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아 사실상 민주당·민주노동당과 함께 ‘3당 국회’를 가동할 뜻을 시사했다.‘여야 합동 의원총회’도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영선 의원은 “소득세 과표구간은 1996년에 만들어졌는데, 사회 양극화는 1997년 IMF사태 이후 심해졌으니 이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임종석 의원은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가급적이면 매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재보선 패배 등)작은 게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대통령)선거에서나 역사적 평가에서나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野서 대통령돼도 나라 안망해” 유시민의원 대선낙관론 경고

    이해찬 총리의 중동 순방을 수행 중인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은 27일(현지시간) “우리가 서민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정책들을 꿋꿋하게 펼쳐나가야 한다.”며 “그래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야당을 하는 것이고, 야당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야당도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재 우리당이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하고 지지율 급락으로 침체된 상태이지만 대선에서는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당내에 팽배한 데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도하 연합뉴스
  • [사설] ‘신상우 KBO총재설’ 사실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 부의장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계와 체육계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또다시 낙하산 인사냐.”라는 비난에서부터 “신씨를 앉히려고 박용오 총재를 끌어내렸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모두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설령 내정설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백지화해야 한다. 야구와 관련이 없는 신씨의 KBO총재 취임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체육계 고위직을 정치인 봐주는 자리로 활용하는 그릇된 정치관행도 이번 기회에 사라져야 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후 프로야구를 총괄하는 KBO 총재는,98년 취임한 박용오 현 총재(12∼14대)이전까지 전직 장관과 정치인들이 도맡아 왔다. 초대 서종철 전 국방장관부터 이웅희·이상훈·오명·권영해·김기춘·홍재형·정대철씨 등 예외가 없었다. 구단 이사회와 총회가 자율로 선출하도록 돼 있으나 현실은 ‘낙하산 인사’로 얼룩져 온 것이다. 신씨가 KBO 총재로 취임한다면 그나마 박 총재(취임전 OB구단주) 선출로 제자리를 잡아가던 인사관행이 과거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참여정부는 낙하산 인사 문제로 여러차례 논란을 빚어왔다. 엊그제 취임한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와 앞서 이철 철도공사 사장 인선 때에도 코드인사 논란을 빚었다. 총선 및 재·보선 낙선인사 가운데 31명이 정부와 유관기관에 들어갔고,23개 국책연구기관장의 74%가 낙하산으로 채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순수해야 할 체육계마저 정치논리로 혼탁하게 만든 과거 정권의 악폐를 참여정부는 되풀이하지 말야야 할 것이다.
  • [서울광장] 전세기 오른 이 총리와 개각/ 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전세기 오른 이 총리와 개각/ 진경호 논설위원

    이해찬 국무총리의 중동 순방이 회자되고 있다.8억원짜리 전세기를 이용하고, 그 전세기에서 개각을 논했다는 것이다. 기업인 40여명을 포함해 100여명에 이르는 순방단 규모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모두가 지난 시절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나 볼 법한 행보인 까닭이다. 사실 총리가 전세기를 쓴 예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 일반 여객기를 탔다. 문민정부 시절 이영덕 총리는 일반 승객 사이에 앉기도 했다. 개각 발언도 총리에겐 금기에 가까웠다. 알아도 모른 척 입단속부터 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고, 그래야 자리도 지켰다. 전세기가 아니더라도 분명 이 총리의 힘은 막강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어진 국정의 상당 부분을 나눠 쥐고 있다. 그가 주재하는 굵직한 회의만 하루 5∼8개에 이른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총리실 간부는 “이 총리가 온 뒤로 청와대의 정책조정 기능이 몽땅 넘어왔다.”고 전했다. 지난 9월에는 노 대통령이 실질적인 각료 임명권까지 넘기려 했다니 그의 위상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 총리는 또 정말 열심히 일한다. 총리실을 출입하면서 지켜본 일과는 가히 철인에 가깝다. 하루 15시간을 국정에 쏟아붓는다.‘워크홀릭’이 따로 없다. 그는 능력도 갖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당 정책위원장과 교육부 장관에 앉혔고, 숱한 총리를 경험한 총리실 간부들도 일에 관한 한 그를 ‘넘버원’으로 꼽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처럼 실력 있고, 힘 있는 인물이 총리를 맡은 참여정부의 인기가 날로 추락하느냐는 말이다. 언론이 왜곡을 일삼아서인가. 국민들이 무지몽매하고 반개혁적이어서인가. 이 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6월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40%대를 웃돌았다. 그러나 1년 반이 흐른 지금 반토막이 됐다. 반면 20%선의 한나라당은 40%를 돌파해 50%대를 넘본다. 두 차례의 재·보선에서도 여당은 27전27패했다. “그게 어찌 다 내 책임이냐.”고 총리는 항변할지 모른다. 하긴 이달 초 작성된 열린우리당 조사보고서에서도 지지율 하락의 첫째 원인이 ‘대통령’이라고 나왔지, 총리 이름은 없다. 하나 어쩌겠나. 권력을 나눴으니 책임도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총리의 책임이 없다고도 하기 어렵다. 대선후보 선호도가 말해 준다. 이 총리는 3%선이다. 야권 주자들에 한참 못 미친다.“출마한다고 한 적 없다.”고 할지 모르나 다른 주자들도 한 적 없다. 노 대통령에겐 몰라도 국민들에겐 인기가 없는 것이다. 억울하지 않나. 일을 열심히, 잘하는데 말이다. 퇴임 후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는(?) 고건 전 총리는 여전히 선두를 달리는데 말이다. 원인은 여럿 있겠으나 이제 개선책을 찾아 차근차근 그 센 힘을 쓸 때가 됐다고 본다. 첫 무대는 연말연시로 잡힌 개각이다. 벌써 어느 장관을 빼서 지방선거에 내보내고, 빈자리를 여당의원들로 채워 넣는다는 말이 나돈다. 이래선 안 된다. 내각은 집권세력의 전리품도, 정치인 연수원도 아니다. 경력 쌓기라면 정동영·김근태 장관으로 충분하다. 인재풀을 한껏 넓히고 밖에서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각료제청권을 최대한 행사해야 한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과 마주 앉아 인선을 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야당에 하듯 대통령에게도 소신발언을 하길 바란다. 제대로 된 개각이라야 총리가 살고, 정부가 살고, 대통령이 산다. 국민이 산다. 덜 싫은 정당을 가리는 여론조사가 국민들은 지겹다. 일만큼 민심도 즐기는 총리가 됐으면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행정도시 ‘사실상 합헌’] 靑·여권 “환영” 한나라 “결정존중”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리자 정치권은 대체로 ‘환영’과 ‘존중’의 뜻을 나타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은 적극적인 환영의사를 보이면서 국면전환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한나라당은 ‘톤’을 한단계 낮춰 ‘결정 존중’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자칫 ‘제2의 당내분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노대통령 “국토재배치 차질없이”노무현 대통령은 24일 “(행정도시 건설계획이) 앞으로 차질없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이제 소모적 논쟁을 접고,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건설을 위해 국민적 의지와 국가적 역량이 하나로 모아지기를 기대한다.”면서 “정부는 쾌적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수도권 발전대책과 함께 혁신도시, 기업도시 프로젝트릍 통해 대한민국을 선진한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국토재배치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재보선 패배 이후 도청정국 등 연이은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열린우리당은 ‘구세주’를 만난 분위기였다. 정세균 의장은 예정에도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 의장은 “다시는 이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국론을 분열시켜 국민을 걱정시키는 일이 마감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 지역의 반발을 의식한 듯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은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한 것으로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면서 “지방과 수도권이 윈·윈하는 정책을 성과있게 추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국민중심당 “역사의 선택”이날 창당발기인대회를 연 국민중심당은 “역사의 선택”이라면서 여권보다 더 크게 환영했다. 충청권을 기반세력으로 한 만큼 이번 결정은 향후 활동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에 존중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여권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했다. 계진 대변인은 “국운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소모적인 논쟁 중단을 요구하면서 부작용해소와 국가균형발전 종합대책을 요구했다.박준석 구혜영기자 pjs@seoul.co.kr
  • 손지열 선관위원후보자 청문회

    손지열 선관위원후보자 청문회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1일 중앙선관위원에 내정된 손지열 대법관을 상대로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열어 직무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했다. 내년 5월 말 지자체 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화두로 올랐다. 여야는 각자의 입맛에 맞게 선관위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사례를 들어 추궁했다.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선관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행위를 못하게 돼 있는데 최근 김헌무 중앙선관위원이 (야당쪽)시국선언에 동참했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임명권자에게 해촉을 요청하겠느냐.”고 따져물었다. 반면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을 엄중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김무성 의원도 “임좌순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4·30재·보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것은 문제”라고 거들었다. 이에 손 후보자는 “퇴직 후 본인 의사에 따라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가타부타하기 어렵지만 고위직을 지낸 분은 가능하면 직접 안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직을 걸고서라도 선관위의 중립성,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비슷한 선거사범도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잘 되면 80만원 벌금이고, 속된 말로 악질을 만나면 ‘배지’를 떼는 것처럼 선거사범의 양형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손 후보자는 “판사들이 열심히 토론하고 논의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절대적인 통일은 어려운 것이고, 현재 그렇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종이당원 없애라” vs “창당정신 훼손”

    “종이당원 없애라” vs “창당정신 훼손”

    내년 2월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내에서 기간당원제 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각 계파들은 내년 지방선거에 이은 대선을 겨냥해 내부 저울질에 나서는 분위기다. 정세균 의장도 당헌·당규 개정 검토 입장을 보이고 있는 등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정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이 이끄는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가 13일 폐지불가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 강력 반발 중이다. ‘정동영(DY)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주류측은 현 기간당원제의 비현실성을 이유로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김근태계’는 크게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폭적 개정은 필요없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정동영계와 온도차가 느껴진다. 두 대권주자가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입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당내에서는 당비 납부 기간 6개월로 정해진 기간당원제의 요건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공직후보 선출시 국민참여경선 과정에서 일반당원의 참여허용과 여론조사를 반영하자는 등 구체안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기간당원제 고수를 주장하는 의원에게 ‘솔직히 기간당원 50만여명 가운데 90%는 종이당원 아니냐.’고 하자 ‘90%는 아니고 80% 정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간당원제는 밀실·정략·금품 공천을 없애고 당원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창당 정신이 담긴 제도지만 그동안 “외부인사 영입을 막는 장애물”,“소수파에 의해 정략적으로 좌우된다.”는 등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제 지난해 7월 2만 5000여명에 불과했던 우리당 당원 규모는 지난 2월 당원협의회장 선거를 전후 23만 5000여명으로 늘었다. 이어 3∼4월 재·보선 후보 경선과 전대를 마친 뒤 14만 8000명 수준으로 빠졌다가 내년 지방선거 공직 후보자 당내 경선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입당 마감일인 8월 말 5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인물들이 대거 종이당원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동영계인 ‘바른정치모임’의 김현미 의원은 최근 “선거에 이기는 정당을 해야 한다. 정당개혁, 정치개혁만 성공하면 된다는 분들이 있는데, 다른 데 가서 하라.”며 참정연측 유시민 의원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참정연은 종이당원 문제 해결에 공감하지만 당헌 개정까지는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참정연의 김희숙 대변인은 “일부에서 기간당원제 완화나 폐지를 주장하는데 당헌 틀 내에서 당규를 제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전대를 제외한 당내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 해체 문제도 논란거리다. 기간당원제를 포함해 당헌·당규를 개정하더라도 중앙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현재 중앙위의 20%를 점하고 있는 참정연측은 해체불가 입장이다. 개정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마지막 방어막이기 때문에 해체불가에는 김근태계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재야파 모임인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의 한 의원은 “중앙위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여론 뭇매… 몸낮춘 전교조

    전교조가 11일 연가투쟁을 유보한 것은 강행할 경우 예상되는 국민적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교원평가를 수용하라는 여론이 대세인데 반대 투쟁을 위해 연가를 내고 교사들이 거리로 나선다면 여론은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다. 이 때문에 전교조는 일단 한발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가 교원평가 반대투쟁을 접은 것은 아니다. 정부도 교원평가 실시를 예정대로 추진 중이어서 정부와 전교조간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비판 여론의식 이수일 위원장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의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여 연가투쟁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교원평가를 수용하라는 학부모단체, 현직 교사모임인 ‘좋은 교사운동’ 등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교사는 퇴출시키겠다는 학교운영위원회의의 경고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가투쟁 유보시한인 25일이 수능시험일(23일) 이후라는 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 반발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보결정이 이 위원장의 의향대로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 위원장은 “투쟁을 25일 이후로 유보하는 것은 우리의 정당한 주장이 관철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주장은 ▲교원평가 중단 ▲근무평정제 폐지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수업시수 경감 등이다. 조건은 전교조 주장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론과 협상 파트너인 정부의 전향적 태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교육부는 이날 연가투쟁과 관련,“교원평가 시범운영 계획을 예정대로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못박고 나섰다.나머지 요구사항들에 대해서는 적극 협의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전교조의 연가투쟁 유보와 관계없이 나왔던 입장이다.결국 이 위원장이 유보선언을 계기로 챙길 수 있는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이 위원장 불신임 움직임이 전교조 내부에서 제기되거나 본인 스스로 물러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이같은 혼란 상황은 교원평가 사업 여부와 관계없이 향후 정부의 교육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정부는 막판 홍보전 한편 정부는 교원평가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부 본부 실·국장들은 이날 전국 시·도로 긴급출장을 갔다.1박2일 일정으로 시·도 교육감을 만나 교원평가가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독려하려는 것이다. 전교조 유보결정이 교원평가 중단이라는 당초 목표달성을 위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전략’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교육부 관계자는 “전교조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나머지 3만여명은 교원평가를 찬성한다는 뜻 아니냐.”면서도 “유보결정이 교원평가 사업을 저지하는 데 역량을 모으려는 것일 수 있어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교원평가 필요성을 소개하는 홍보물도 전국에 배포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사설] 민심 외면한 여당의 갈팡질팡 행보

    민심을 정말 모른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열린우리당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과연 이 당이 민심과 민생을 안중에 두고 있기나 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한 끝에 비상체제를 꾸린 열린우리당이 활로의 하나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당 일각의 주장에 불과하다지만 내년 5·31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 일정과 당내 분위기를 감안할 때 통합론은 상당기간 이어질 모양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이런 움직임이 자신들에게 27전27패의 재·보선 성적표를 안겨준 민의로부터 동떨어진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설령 열린우리당의 민주세력 통합론이 어느 정도 명분을 갖추고 있다 해도 지금은 집권여당으로서 정기국회의 민생현안에 주력해야지, 섣부른 통합론으로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일로 창당 2주년을 맞는 열린우리당의 현실은 참담하다.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내세워 ‘지역당의 기득권 세력’과 결별한 여당은 한때 지지율이 50%에 육박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원내 과반인 152석의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 여당이 불과 1년 반 만에 지지율 10%대의 연전연패 정당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어제 ‘국민과의 대화’에서 터져나왔던 것처럼 국정운영의 미숙함과 정체성 혼란, 당·정·청 부조화, 당 지도력 부재 등 원인 진단은 엇갈린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민주당과의 결별이 지금 지지도 추락의 직접적 이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의 해법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심 이반을 초래한 내부요인을 찾아 하나씩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열린우리당의 과제는 정기국회의 민생입법과 예산안 처리에 주력하는 일일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하다 여의치 않자 선거제도 개편에 나서고, 그러다 돌연 민주당과의 통합에 고개를 돌리는, 이런 식의 갈팡질팡 행태는 그만해야 한다. 민주당과 통합하든 말든 열린우리당이 선택할 문제이겠으나, 국민들은 좌고우면하는 여당의 모습이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 한나라 범보수연대 본격 행보

    한나라당이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외연확대에 나섰다. 우선 ‘합리적 보수’와 ‘공동체 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건 뉴라이트전국연합 7일 창립식에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유력 대권주자 3인이 모두 참가해 사실상의 ‘연대’ 의사를 밝힌다.박근혜 대표가 지난 5일 당 중앙위원회 서울시연합회 출범식이 열린 용문산 산행에서 “정권교체를 향한 새출발을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수권정당으로 우뚝 서겠다.”고 언급한 대목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연말부터 외부인사 `헤드 헌팅´ 착수이와 함께 내년 5월말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내보낼 경쟁력 있는 후보를 확보하기 위해 이르면 연말부터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 위한 ‘헤드헌팅’에 나선다. 당 외부인사영입위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인재영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외부 인사 영입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여론 수렴에 착수키로 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의원은 “최종 목표는 정권창출을 위한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라면서 “영입과정에서 당이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면 정권교체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감세정책등 공동토론회도 추진이 가운데 뉴라이트전국연합과의 연대가 주목받고 있다. 이 단체는 ‘자학적 역사관을 극복,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고’,‘건강한 우파와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며 출범하는 단체다. 박 대표가 재보선전 ‘정체성’ 공방을 벌이며 “나라 걱정하는 데 효과적인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 점을 비춰 보면 뉴라이트와의 연대는 자연스러운 행보로 해석된다. 감세 정책을 뉴라이트 세력과 공동토론회 형식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 안팎에서는 수구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합리적 보수’를 명확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지기반을 넓히는 효과를 노리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새정치 수요모임이 ‘한국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주제로 오는 10일과 30일에 걸쳐 마련한 토론회도 이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수요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형준 의원은 “어차피 올초부터 11월과 12월은 개헌정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돼 왔다.”면서 “정치사회적 결사체가 앞다퉈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국에 한나라당도 정치적 역동성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대권주자 세불리기에 그칠수도그러나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이 기존 지지층 응집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제기도 나오고 있다. 당 관계자는 “당내 기류가 결집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의 행보만 좇는다면 (뉴라이트전국연합도) 자칫 대권주자들의 세불리기를 위한 ‘수혈처’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데스크시각] 축구협회 법인화를 보는 시각/곽영완 체육부장

    ‘임의단체’ 대한축구협회가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의원 총회에서 사단 법인 전환을 의결한 데 이어 25일 문화관광부에 법인 허가 신청을 냈고,28일에는 문광부 승인도 얻었다. 앞으로 법원에 등기만 하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오는 8일엔 현판식도 예정돼 있다. 이미 사실상 사단법인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동안 미적거리며 실행에 옮기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서두르게 된 데는 물론 지난달 국회 문광위의 국정감사 탓이 크다. 임의단체에 대해 국회가 감사를 벌일 수 있느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국감을 통해 축구협회의 잘못된 관행이 드러나고, 국민적인 질타를 받으면서 불가피하게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이 추진된 것이다. 사단법인이 됨에 따라 축구협회는 앞으로 대의원 중 한 명을 감사로 두었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외부의 회계전문가를 포함한 2명의 감사를 둬 회계활동을 감사받아야 한다. 회장, 부회장, 이사, 감사 등 임원 선출에 관한 사항을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당해 연도 사업계획서와 전년 사업 실적, 예·결산 내역을 대한체육회 및 문화관광부에 보고해야 한다. 기본 재산의 변동 등도 문화관광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회장 또는 3분의1 이상 재적 대의원으로 돼 있던 대의원총회 소집 요구를 회계 감사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행정도 깨끗해지고, 시스템화된다는 뜻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율에 의해서가 아닌 타율에 의해서 사단법인이 된다는 점이다. 사실 국감이 있기 전에도 축구협회는 여러차례 사단법인으로의 전환을 꾀해 왔다. 올 1월에도 대의원 총회에서 정몽준 회장이 재선된 뒤 재정투명성을 문제삼은 재야축구계 인사들의 법인화 요청을 받아들여 5월 말까지 사단법인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로 작업을 했었다.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나왔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결국 축구인들 사이에서도 잊혀질 즈음 국감에서 문제점들이 터져 나와 결국 법인 전환을 서두르게 된 측면이 있다. 축구협회가 사단법인 전환을 미적거린 이유는 어쩌면 법인이 됨으로써 행해야 하는 여러 의무들이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상위 단체가 협회 행정에 직접 관여할 여지가 없지만 간접적으로 임원 인사 및 운영에 대해 간섭할 개연성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같은 개연성 때문에 각 체육단체에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해온 정부가 그에 대한 반대 급부이자 행정과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법인화를 모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단체를 제외한 거대 단체들은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법인 전환시 10억원을 지급한다는 조건과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0개 체육회 가맹단체 가운데 10여개 정도가 법인화를 미루고 있다. 다른 단체에 비해 축구협회가 유독 사단법인화를 앞두고 눈길을 받는 이유는 축구는 남녀노소 국민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적인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 축구협회 회장만 살펴봐도 여운형 선생(2대)과 일제하인 1925년에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하경덕 박사(5∼6대), 그리고 신익희 선생(7대), 윤보선 전 대통령(9대), 장택상 전 총리(12대), 장기영 전 부총리(19·21·23대)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가 거쳐갔다. 어쨌든 축구협회는 이제 사단법인체가 됐다. 법인화로 그동안 정몽준 회장의 사조직이라는 등 의심의 눈초리도 사라질 것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제2의 협회’ 창설에 맞먹는 법인 전환을 통해 협회 운영과 재정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아무쪼록 축구협회가 더욱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국민의 단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곽영완 체육부장 kwyoung@seoul.co.kr
  • [오늘의 눈] 여당, 달라져야 한다/박준석 정치부 기자

    열린우리당의 내부 소란이 예사롭지 않다.10·26 재선거 패배 책임에서 비롯된 내홍이 지도부 사퇴를 넘어 친노-반노를 둘러싼 계파간 힘겨루기로 번졌다.‘탄핵’이니 ‘출당’이니 하는 극단적인 말까지 오간다. 새 지도부의 노력으로 갈등은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듯하지만 잠시 ‘잠수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다.‘배부른 논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특히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 정기국회 중임을 감안하면 그렇다. 물론 어느 집단이나 내홍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과연 집권 여당으로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내분을 겪은 적이 몇차례 있지만 이렇다 할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5월 4·30 재보선 패배와 실용-개혁 노선경쟁, 당·청 갈등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원 워크숍이 열렸다. 당시 지도부는 ‘국민을 위해 집안싸움 그만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기 위한 미봉책임이 바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계파나 개인간 노선경쟁, 당·청갈등은 여전했다.8월에도 또 한차례 워크숍이 열렸다. 대통령이 언급한 연정발언을 두고 시작된 당내 분란을 수습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때도 ‘논쟁은 그만하고 민생에 주력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역시 연정에 대한 당내 논란은 계속됐고 당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이번만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추락하는 지지율은 이제 더 떨어질 데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새 지도부의 역할도 크지만 현 시점에서 소속 의원 개개인의 태도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처럼 자기만 옳다고 외쳐대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목소리와 몸을 낮추어야 한다. 또 하나 대권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복귀를 문제해결의 ‘만능열쇠’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의원들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누가 오더라도 집권당으로서의 제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제왕적 리더’가 아닌 ‘민주적 리더’를 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박준석 정치부 기자 pjs@seoul.co.kr
  • [이경형칼럼] ‘妙手’는 없다

    [이경형칼럼] ‘妙手’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관계가 당정 분리 원칙으로 정리된 가운데 대통령의 내년초 ‘진로’발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10·26 재선거에서 완패한 열린우리당의 28일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가 대통령의 정치 불관여 요구 등 원색적인 불만을 쏟아낸 데 대해 노 대통령이 29일의 청와대 여권 수뇌부 만찬에 이은 30일 북악산 산행에서도 이 같은 당정, 더 좁게는 당·청 분리 원칙을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이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분리 원칙을 천명해왔고, 스스로도 당내 지위를 평당원(수석 당원)으로 규정해왔다.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여당의 총재를 겸함으로써 초래되었던 ‘제왕적 당 총재’의 상의하달식 비민주적 정당문화를 혁파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동안 당·청 관계를 보면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당의 주도적인 정국 운영보다는 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편입되어 청와대의 구심력에 따라 행동해 왔다. 노 대통령이 연정을 외치고 있을 때, 여당 지도부는 청와대에 대고 “그것은 아니 됩니다.”하고 간언하지 못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노 대통령도 한때는 당 중심의 정치를 강조하는 것 같았으나, 여당의 4·30 재·보선 참패 이후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른바 대연정을 제창하면서 이런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여당 내부의 의견 수렴은커녕 일방적으로 당을 끌고 갔다. 당정 분리란 말처럼 쉽지도 않고, 그 영역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특히 대통령중심제의 권력구조 아래서 대통령과 여당과의 관계는 아무리 역할을 분리한다 해도, 국정 수행에 따른 정책 고리만은 떼려야 뗄 수도 없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관계 입법, 권력구조 변경을 포함한 개헌 문제 등은 당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면, 행정 각 부처를 중심으로 한 정책 집행 등 국정운영 일반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당·청 관계는 당의 원심력보다 항상 청와대의 구심력이 더 강했다. 지난해 1월 열린우리당이 출범한 이후 1년 10개월 동안 당의장이 5명이나 사퇴해 평균 재임기간이 4개월여에 불과한 것은 대통령에 비해 여당의 위상이 그만큼 취약한 것을 방증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내년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지금과 같은 낮은 여당의 지지율로써는 지난번 재선거 참패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 남은 임기의 국정 운영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점을 모두 고려,‘사회적 의사 결정 구조를 포함한 국가 미래를 위한 제안’을 내년초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구사할 카드는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나 획기적인 정치지형의 변경을 노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정치적 위기에서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 이를 돌파해온 노 대통령의 과거 정치 역정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카드 가운데는 탈당 후 거국 내각 구성, 권력 이양 또는 국민투표를 통한 사회적 합의시스템 구축 등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묘수’의 유혹은 떨쳐버려야 한다. 많은 카드들이 대연정 무산과 함께 물건너 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밝혔듯이 당·청 분리를 더욱 철저하게 실천, 정치적 진로 문제는 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민생 경제, 사회적 갈등 해소, 외교·안보를 챙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가야 한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청와대를 향해 외친 ‘쓴소리’가운데는 분명 위기 극복의 묘약 성분이 들어 있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親盧 대반격

    親盧 대반격

    10·26 재보선 패배로 인해 터져나온 당청 갈등이 열린우리당 내 ‘친노(親盧)-반노 대립’으로 전이되고 있다. 이같은 구도는 ‘대통령이 여당 안에서 탄핵을 당했다.’고 주장한 친노 계열을 통해 먼저 표면화됐으며, 사태 이후 친노 계열은 소모임별로 빠르게 결집하는 양상이다. 나아가 주요 친노 그룹으로, 이광재·이화영 등 386 의원들의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유시민 의원이 이끄는 ‘참여정치연대’,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가 참여하고 있는 ‘국참1219’ 등은 모임별 연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노무현 흔들기 불용” 反盧와 대립각 이와 관련, 의정연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31일 “당내 ‘노무현 흔들기’ 현상을 더이상 용인할 수 없다.”면서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의정연, 참정연, 국참1219 등 친노 제 세력이 대통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특히 재야파를 겨냥,“단기적 현상으로 반짝 이익을 볼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부메랑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시민 의원은 이날도 중앙위원회 해체 움직임과 관련,“정동영계가 (해체를) 주장하고 김근태계가 동조해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으나, 이는 다수파의 쿠데타 음모”라면서 공격 대상을 분명히 했다. 국참1219는 이날 의원회관에서 당원 대토론회를 갖고 ‘친노 세력의 대결집’ 문제를 포함한 당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안영근 “대통령 탈당 지금이 적기”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은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과 KBS 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후단협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반노 세력을 성토했다. 그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탈당하겠다면 그 사람들이 당을 나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친노 그룹에 의해 ‘반노 그룹’으로 규정된 김근태·정동영계는 아직 별 대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안영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전망과 관련,“지금이야말로 그 시점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시사프로그램 ‘아침저널’에 출연,“대통령이 사회적 협의기구를 창설하려는데 여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으면 야당에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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