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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가 이미경(이세기의 인물탐구:146)

    ◎글씨마다 유·절·곡… 궁체의 대가/획과 여백이 미 조화 붓끝에 예술혼 담아/작품 미·캐나다박물관 소장 ‘국제 서도인’ ‘멀고 먼 서법의 길/가도가도 끝없어라/지름길 따로 없어/한 골로만 모는 채찍/외로운 발자국마다/내모습이 찍힌다’ 한글서예중에서 궁체의 우뚝하고 독보적인 존재인 꽃뜰(하정 이미경)의 시조 ‘서법의 길’ 전문이다.그는 틈틈이 남모르게 써온 시조들을 모아 지난 여름 ‘붓끝에 가락 실어’란 제목으로 시조집을 엮어냈다.서여기인이라면 시·서·화에 능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서예가의 타이틀로 시조집을 펴낸 것은 아마도 꽃뜰이 처음일 것이다.그의 글씨만큼이나 시조 또한 구절구절 영롱하고 근엄하여 마지막 이조여인의 기개인 ‘양반은 외부의 자극에 함부로 동하지 않는다’는 ‘강류석부전’을 굳건히 지킨다. ○‘붓끝에 가라길어’ 시조지보 꽃뜰은 바로 한글서예에서 갈물체를 이룩한 이철경(전 금란여고 교장)의 친제이다.언니인 갈물과 비슷한 시기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으면서도 결혼생활로 한동안 서단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그의 성격이 남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여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개인적 풍모가 소개된 적도 드물다.그러나 서예계 원로들이 한글서예를 말할때 ‘꽃뜰’을 으뜸으로 점치면서 일중 김충현은 그가 발간하는 ‘서법예술’에다 ‘꽃뜰의 궁체’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명한 바 있다.‘고통을 인내할줄 아는 한국여성 특유의 자세로 고전을 발굴하여 계승시킨 여사의 궁체는 아담하며 청초하면서도 그 운필은 찬연하고 풍격은 고고하다’고 했다.우선 그의 글씨에서는 ‘향기’가 우러난다.그의 아호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뜨락이기 때문인지 그가 펼치는 글씨는 한다발의 백매나 홍매,어느때는 모란향같은 기품이 은은히 풍겨나온다. 글씨를 쓰는데 있어 한자는 획수가 많은 편이어서 공간처리가 용이하지만 한글은 획수가 적어 여백처리가 난해한 편이다.이른바 그림에 비유한다면 한글서예는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에 비유되고 한자는 화면을 꽉채우는 서양화에 가깝다.그래서 획과 여백의 비중을 똑같이 배분해야만 치졸이 배제된다.여백처리에서 만약 실오라기만한 틈새를 보여도 궁체가 지니는 특징은 삽시에 소멸된다.백낙청이 ‘비파행’에서 비파소리를 ‘은쟁반에 떨어지는 옥구슬’이라고 했듯이 ‘그의 글씨야말로 옥구슬 금구슬을 꿰어낸듯 오색광채를 발한다.글씨가 구슬인 것은 꽃뜰의 글씨를 보면 실감된다’는 평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특히 이은상의 ‘만폭동팔담가’며 2천여자가 넘는 ‘관동별곡’,동해에서 해뜨는 광경을 보고 쓴 ‘동명일기’ 등은 10곡병풍을 펼치는 순간 문자그대로 ‘보석이 쏟아지는 현란한 현기증’이 느껴진다.글씨마다 흐르고(유) 맺히고(절) 감돌고(곡) 굽이치면서 정자에서 흘림,진흘림과 반흘림이 초성에서 종성까지 반듯하게 대맥을 이어나간다.그리고 어느 글씨를 쓰든 글씨의 결론은 그것이 예술답게 아름답다는 정답을 얻어내고야 만다.시조시인 정완영은 꽃뜰의 서체에 대해 ‘이분은 청산 한나절 넉넉하게 기대앉은 초가삼간처럼 한유해 보이면서도 자강불식의 심락을 누리는 그림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화여전땐 피아노 전공 본래 그의집안은 강원도 원주이지만 한성의학교(서울대 의대전신)를 나온 부친 이만규씨가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4녀2남중 위로 세 언니와 오빠는 개성출신이고 부친이 다시 서울 배화학교 부교장에 부임하여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서예를 하게 된 것은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편지쓰실때 글줄이 자를 대고 줄친 것처럼 고르게 뻗은 봉서의 흘림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성격이 강명한데다 필재가 뛰어난 것을 보고 부친이 붓을 잡고 천자문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14살 되던해 ‘애련설’을 써서 교내습자대회에서 입선하자 더욱이나 글씨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배화학교 졸업후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그의 음악공부가 글씨쓰는 일에 특별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이른바 문자예술에서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덧칠하지 않는 일회성,생체리듬과 음악의 리듬같은 율동성으로 작품을 이루는 순간의 서법등이 음악을 이루는 과정과 같은 맥락을 지녔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학졸업후 서울공대 출신인 남상인씨(전 서울공대 교수)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의 홍제동한옥에 정착하면서 시할머니(57년 91세로 작고) 시어머니(93년 97세작고)를 모시고 사는 엄격한 시집살이를 감당해왔다.그의 고옥은 초가을인데도 녹음이 창연하고 청결한 한복차림으로 그는 마루에 나앉아 아침나절이나 마음이 움직일때 붓을 잡는다.요즘은 주로 자작시조를 서두로 잡고 있다. 언니인 갈물이 갈물회를 발족한 것은 58년이고 그는 50대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서예활동을 시작하여 갈물회 정회원이 된것은 72년이 처음이다.그때 글씨를 회원전에 내놓았고 ‘유독 그 영롱한 필체가 돋보여 뭇시선을 끌었다’고 생전의 갈물이 자랑한 바 있다. ○‘궁체서예의 제일봉’으로 아직도 꼿꼿하고 청청한 그는 ‘한글서예의 우뚝한 존재’임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글에 대한 예술성은 10년정도의 서력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경지이며 보통 30년정도의 서력을 길러야만 서예와 서도를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고 ‘서예의 대가가 시조의 신인’이 되어 ‘서중유시’를 이뤄낸 것이다.한연대가 흘러가면 한사람의명인에 의해 그 시대의 정서가 아로 새겨지듯이 일중은 번뇌를 해탈하는 ‘오도일이관지’에서 따온 ‘일이당‘을 꽃뜰의 당호로 내려주면서 ‘궁체서예 제일봉의 외로움’을 격려해 마지않았다. 무현고금이라고 했던가.‘줄이 없어도 울리는 거문고’처럼 그의 시서 쌍전은 혼탁한 진토속에서도 백옥같은 빛을 발하며 먼 훗날에도 그의 붓끝은 심혼의 절조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연보 ▲1918년 서울 출생 ▲1936년 배화여고 졸업 ▲1940년 이화여전 기악과 졸업,미세스 골먼에게 피아노 사사 ▲1958년 갈물서회 발족 ▲1954∼63년 이화여중 서예강사 ▲1970∼74년 서울YWCA 서예반 강사 ▲1972년부터 갈물서회 회원전출품 ▲1974년부터 갈물회 대표 ▲1977년 미국 워싱턴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한글서예’전시 ▲1982년부터 신사임당상 수상,한국미술협회 회원 ▲1983년 ‘갈물 이철경­꽃뜰 이미경’자매전(캐나다 토론토,미국LA) ▲1986년부터 국제서도회 이사 ▲1987년 꽃뜰 이미경 서예전(백악미술관) ▷작품소장◁ ‘동유기(동유기)’(예술의 전당)‘만폭동 팔담가(만폭통 팔담가)’(세종대왕 기념관) ‘한국 여성서체’(미국 시애틀박물관)‘오우가’(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속미인곡’(캐나다 로열박물관)외 ▷저서◁ 갈물 꽃뜰 공저 한글’(81년) 꽃뜰 이미경 쓴 ‘한글서예’(82년) 이미경 시조집 ‘붓끝에 가락 실어’출간(97년 토방출판사)
  • 환경·경제사범 처벌 대폭 강화/대법재판운영 어떻게 바뀌나

    ◎사법부의 직권보석 활용… 불구속 재판 확대/기소후 2주내 첫 재판… 지연따른 피해 없애 대법원이 1일 새롭게 재판 운영 방안을 마련한 것은 최근 크게 늘고 있는 환경 및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사법선진화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 대한 사법 서비스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다음은 주요 운영방안 시안. ▷단기자유형 활용◁ 상습적인 음주운전이나 무면허 운전 뿐 아니라 환경범죄,경미한 사기나 횡령 등 재산 범죄에 대해 최고 6개월까지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한다.이들 대부분이 대벌금형을 두려워 하지 않아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환경 사범을 엄단키로 한 것은 생활 환경의 질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다.환경사범은 대부분 공무원의 부정과 연계돼 있는 만큼 공무원들의 환경의식도 달라지기를 사법부는 기대하고 있다. ▷직권 보석 활용◁ 불구속 재판을 확대하기 위해 재판부의 직권 보석을 적극 활용한다.아울러 불구속 피고인이 공판에 불출석하는 등 보석 조건을 위반했을 때는 보석을 취소하고 보증금을 몰수하며 양형에 참작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보석이 허가된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면 형의 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달아날 염려가 있으므로 선고 전에 기소전 보석 피고인은 법정구속하고 기소뒤 보석은 보석을 취소하고 재구금한다. ▷증인 보호◁ 살인·강도 등 특정강력범죄와 관련해 출석한 증인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검사에게 신변안전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할 수 있게 했다.강간 피해자 등에 대한 증인신문은 방청객이 적은 시간대로 정하고 소환장에 비공개 신문을 한다는 사실을 기재하도록 했다.이같은 내용은 현재도 시행되고 있으나 명문 규정을 마련했다. ▷형사재판절차◁ 구속사건뿐만 아니라 불구속 사건도 재판의 지연으로 인한 증거수집 곤란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해 기소후 2주안에 첫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했다.지금은 보통 3∼4주 후에 첫 재판이 열리는 실정이다. ▷비디오테이프·컴퓨터 자기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 재판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기위해 비디오 테이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조사 방법을 제시했다.지금까지는 명확한 조사방법이 없이 재판부마다 달랐다. ▷피해자 진술권 보장◁ 피해자가 탄원서나 진정서 등을 제출하면 직권으로 피해자를 소환해 증인신문을 하고 사건에 대 의견진술을 하도록 했다.아울러 피해자 신청이 없더라도 치료비와 물적 피해액에 대한 배상 명령을 적극 활용한다. ▷항소심의 양형변경 신중◁ 1심의 형량이 빈번하게 변경되는 것이 재판부에 대한 피고인의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 등에 따라 항소심 양형변경에 신중을 기하도록 했다.
  • 부랑자의 삶 통해 소외다뤄/폴 오스터 장편소설 ‘문 팰리스’

    ‘리바이어던’‘미스터 버티고’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계 미국 작가 폴 오스터(50)의 장편소설 ‘문 팰리스’(원제 Moon Palace,황보석 옮김)가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나왔다.‘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란 평을 듣는 그의 작품은 미국문학에서의 사실주의적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전통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문 팰리스’는 자발적으로 파산해 부랑자가 된 주인공 포그를 둘러싼 3대의 이야기로,그들의 개인사는 각자 살아온 시간의 틀 속에서 전개된다.이들은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퇴락의 길을 걸은 뒤 재생의 길을 발견한다.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이 ‘허공에 매달린’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이 시대의 질병인 소외의 문제다.이 상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우연과 운명이 조우하는 세계,영혼의 고뇌가 깃든 신비로운 여행길로 들어서게 된다.
  • 아시시성당(외언내언)

    아시시는 12세기의 청빈한 성자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다.포도와 올리브로 유명한 움브리아에서 삼나무가 빽빽한 올리브언덕에 오르면 주변에 펼쳐진 녹색평야속에서 로마네스크의 수도원건축군이 장엄하고도 우아한 자태를 나타낸다.이 건축은 초기 이탈리아 고딕의 걸작품으로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따서 성프란체스코성당으로 불린다.1253년에 완성된 이 교회는 성자의 묘가 있는 지하실 외에 2층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화가인 치마부에의 ‘성모전’‘묵시록’등의 벽화와 지오토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신·구약성서’ ‘성모와 구세주전’ ‘성 프란체스코전’벽화연작 등 성자의 생애가 보석같은 28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프란체스코는 ‘미움과 오해가 있는 곳에 사랑을’ 주는 ‘평화의 기도’로서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하늘을 나는 새들과도 마음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있다.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처음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그 뒤 중병을 앓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제가 되자 세속을 떨친채 빈자를 위한 헌신과 탁발의 생활을 지켜나갔다.1209년 교황의 허락을 받아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설립했고 수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몬타 델라 베르나에서 기도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환상을 체험,양손 양발 옆구리등 다섯군데에 입은 ‘인오상’은 가톨릭 사상 처음이자 가장 뚜렷한 기적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지진으로 저 유명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지붕의 일부가 내려앉고 지오토의 프라스코벽화들이 손상되었다니 애석한 일이다.지금도 연중 수십만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신앙심을 다짐하는 ‘성지’이기 때문이다.이 성당의 훼손에 대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피에르 로센베르관장도 ‘세계적 문화유산의 큰 재앙 초래’로 표현했다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한 성인의 흔적이 하루 빨리 본상태로 복원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성인은 자신의 사랑으로 바람소리를 변화시킬줄 안다’고 한 것처럼 모든 마음이 허약한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라도 성 프란체스코성당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 모스크바 크렘린(세계 문화유산 순례:45)

    ◎탑·성곽·성당 어우러진 ‘종합건축의 완성품’/이반3세,512년전 통일러시아 과시위해 건립/탑높이 20∼95m… 나폴레옹 침입땐 진군나팔 크렘린을 어디서부터 얘기할 것인가.무척 힘든 일이다.고딕양식인 20개의 크고 작은 탑,바로코와 로코코양식을 대표하는 4개의 대성당,1천45개의 총안을 가진 둘레 2천235m의 성벽 등 모두가 값진 보물이다.모스크바 강 건너편에는 고성의 탑들이,붉은광장에는 아름다운 성벽들이,성벽사이로는 금장의 돔들이 여기 저기 솟아올라 저마다 색다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크렘린의 유적군을 굳이 분류한다면 탑,성곽,성당건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 가운데 크렘린다운 상징건조물은 진홍빛의 크고 작은 탑과 노란 성곽이다.탑들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마르코 루포와 알레비오소 프리아지네 등이 설계했다.단순히 외장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전투용,평시용등 그 쓰임새가 다양한 건조물이다.관광객들이 입장권을 끊고 나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쿠타퍄 탑이다.그리고 총안무늬의 다리를 지난 다음 트로이츠카야 탑에 다다른다.모두 5개이상 전투용 총구를 가진 이들 탑 지하2층에는 크렘린방어용 탄약을 비축하도록 설계됐다.16∼17세기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의 탑들과 마찬가지로 죄수를 가두는 감옥역할도 해냈다.이들 탑 맞은편 스파스카야 탑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들을 맞는 개선문으로도 사용됐다.19세기 초 나폴레옹 군이 진입할 때 진군 나팔소리를 울렸던 곳도 여기다.높이가 20∼95m까지 다양한 이들 탑을 지을 당시 용도는 전투용의 감시초소였다. ○성벽둘레 2,235m 1937년 스탈린시대 크렘린은 사치가 대단했다.건축물에 박힌 루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루비가 크렘린안의 5개 탑 꼭대기에 설치됐기 때문이다.대형 별 모양의 이 보석은 당대 러시아 최고의 건축설계사인 표드르 페도로브스키가 제작한 것이다.가장 큰 루비별은 니콜스카야와 스파스카야 탑 꼭대기에 설치됐다.직경이 3·75m,무게는 1·5t이 넘는다.이처럼 엄청난 무게의 붉은 별보석은 바람이 부는대로 돌도록 설계됐다. 크렘린 성곽에는 노란빛이 감돌았다.원래 크렘린의 벽은 갈참나무였으나 13세기 몽고 침입후 한세기쯤 지나 화강암으로 바꾸기 시작했다.크렘린을 한때 ‘흰돌도시’로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탑과 탑사이를 잇는 크렘린 벽에는 모두 1천45군데의 총구가 있다.총구는 가로 세로 2m나 돼 적들이 크렘린을 둘러싸면 총구를 나무방패로 막았다.그 대신 이웃의 작은 구멍을 통해 화염을 내뿜었다고 한다.성벽의 두께는 3.5∼6.5m로 현대식 화기에도 끄덕없다는 것이다. 12세기 유리 돌고루키 왕자때 시작된 크렘린 역사는 1382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이때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모든 것이 불에 탔다.그래서 재건에 들어가 이반3세 때인 1485년쯤 오늘의 크렘린이 완성됐다.성곽은 벽돌로 다시 치장됐고 우스펜스키 성당 등 내부 주요건물이 1백여년간에 걸쳐 복원됐다.이반3세가 크렘린을 전력투구해 복원한 까닭은 통일 러시아의 힘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탑은 전투용 감시초소 이반3세는 블라디미르와 같은 전국 각지에서 토목기사·건축가들을 동원했다.그리고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이탈리아의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테,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마르코 루포등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이 가운데 12세기 러시아건축물의 대표격인 우스펜스키 성당은 바로 피오라반테가 감독한 건축물이다.이반3세는 피오라반테에게 러시아 전국을 여행시켜 주며 러시아식 건축양식으로 성당을 짓도록 독려했다.우스펜스키 성당은 조밀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도 현대식 공법이 아니면 뽑아내기 힘든 넓은 내부공간을 지금도 자랑하고 있다. 크렘린 안 4개의 대성당은 모두 르네상스시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화려했다.르네상스양식의 벽화와 성화,금은 상들리에로 가득차 있다.12세기의 성화 ‘세인트 조지’‘삼위일체’,11세기 비잔틴양식으로 그린 ‘블라디미르의 여인’등은 크렘린 관광객을 사로잡는다.아르항겔스키 성당,블라고베쉬첸스키 성당에는 복원하지 못한 각종 프레스코와 성화가 아직도 많다.크렘린역사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르네상스시대 예술품 복원이 한창이다.이 대성당들은 화려했을 뿐더러 사치를 한껏 누렸다.1812년 나폴레옹이 크렘린을 점령했을 때 부하들이 마굿간에서 대량의 금·은괴를 약탈할 정도였다. ○4개 대성당 내부 화려 옛소련과 러시아정부의 크렘린 복원노력은 대단했다.재미있는 사실은 레닌조차도 혁명후 1918년 포고령으로 크렘린안의 모든 건축물과 예술품울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제2차 세계대전이후 스탈린 시대에는 5개의 주요 탑 상층부 모두에 금과 구리를 입혔다. ◎여행가이드/대회의당서 ‘백조의 호수’ ‘호두까지 인형’발레 관람 크렘린은 붉은 광장과 바로 이웃했다.내부정원은 물론이지만 붉은 광장,모스크바 강위에 세워진 교각에서 크렘린을 보는 경치는 각별하다.밤시간의 조명도 화려해 모스크바 강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그리고 러시아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옐친대통령이 근무하는 ‘대통령궁’에도 관광객들이 15m 전방까지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크렘린내 대회의당은 발레프로그램을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해놓은 유명한 극장 가운데 하나.크렘린 관광객들은 여름 휴가철만 빼놓고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등 러시아 고전발레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 재키림 사회봉사명령

    서울지법 양승국 판사는 25일 대마와 코카인을 흡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뮤직 비디오 자키(VJ) 재키림 피고인(31·본명 임하정)에 대해 대마관리법위반죄를 적용,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40시간을 선고했다.
  • 미성년 약취­살인 등 4개혐의… 사형·무기/전씨 처벌 어떻게

    ◎출산일까지 최소한 배려… 아기는 가족 인계 전현주씨는 만삭의 임신부이지만 ‘특별대우’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들은 전씨의 구속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따라서 전씨는 영장이 발부되는대로 구치소 미결수 감방에 갇히게 된다. 지난해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모씨(29·여)도 임신 8개월이었지만 구속적부심과 보석 신청이 잇따라 기각됐었다.전씨에 대해서는 동정 여론이 일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출산일을 전후해서는 최소한의 배려를 받는다.검찰 관계자는 “임신한 수인은 출산 10여일 전에 구치소가 지정한 병원에서 출산토록 배려해왔다”고 말했다.병원에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아기는 가족들에게 인계되고 산모는 다시 감방으로 돌아간다. 전씨에게는 미성년자 약취·유인,살인,사체유기,공갈·협박 등 4가지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이들 범죄가 경합되면 무기징역 또는 사형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 크렌츠 전 동독 서기장 보석허가로 곧 석방

    【베를린 AFP DPA 연합】 베를린 장벽 탈주자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린 혐의로 6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크렌츠의 변호인이 11일 밝혔다. 지난 89년10월 에리히 호네커의 뒤를 이어 서기장직에 오른 크렌츠는 지난달 25일 1심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재판부가 보석을 받아들여 석방을 결정했다고 변호인이 전했다.
  • 피의자 인권 실질보장/대법 영장실질심사제 개선안 마련 안팎

    ◎영장발부 법원·법관별 편차 줄이고/심사단계서 국선변호인제도 도입 대법원이 8일 영장실질심사제 개선안을 제시한 것은 시행 이후 8개월동안 지적됐던 문제점을 보완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법원은 이날 올 1월부터 영장실질 심사제를 시행한 결과 형사사법에서의 절차적 정의실현과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근절,신중한 인신구속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심사에 맞춰 구속의 사유,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등 수사 방식을 바꾸고 영장 신청에 신중을 기함으로써 합리적인 수사 기법 개발을 유도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도 적지 않았다.특히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법원 및 법관별 편차가 심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관계없이 재판에 회부된 뒤에는 범죄에 상응한 엄정한 형을 선고하여야 함에도 불구속 피고인에게는 온정주의적 경향을 보일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수사기관의 애로도 감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대표적인 예로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는 원칙적으로 모두 심문한다는 방침에 따라 수사 담당자의 상당수가 피의자 호송에 투입됨으로써 다른 수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대법원은 이날 제시한 영장심사 단계에서의 보석제도 및 국선변호인제도,영장 기각시 검사 항고 제도 도입 등으로 이같은 문제점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이 그대로 실현되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검찰이 영장실질심사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의 관계자는 “영장이 기각됐을때 검사가 항고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은 수사기관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영장실질 심사제 자체가 검찰의 수사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영장심사때도 보석 허가/대법 추진/기각때 검사항고권 명문화

    대법원은 8일영장심사 단계에서도 보석 허가 및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법무부와 적극 협의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이날 전국 지법과 지원의 영장전담판사와 법원행정처 송무국 판사 37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집중 논의했다. 대법원은 영장심사 단계에서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피의자를 석방하는 보석제도를 도입하되,보석으로 석방된 피의자가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출석요구에 불응하거나 도주하면 보증금을 몰수하고 가중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피의자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는 ‘기소전 국선변호인제도’의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구속 영장이 기각됐을 때는 검사가 이에 불복,항고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기로 했다. 현재 영장실질심사를 임의로 실시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의 조항도 필요적 심문 조항으로 전환,피의자가 원치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판사가 피의자를 반드시 심문하도록 개정키로 했다. 원하는 피의자에 한해서 영장실질심사를 실시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여야 국회의원 28명이 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만취상태 경관폭행까지/폭주족에 첫 봉사명령

    서울지법 임종윤 판사는 7일 면허도 없이 만취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몰다가 단속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모 피고인(23·음식점 종업원)에 대해 도로교통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30만원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젊은층의 심야 오토바이 폭주가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등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면서 “봉사 활동을 통해 반성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피고인은 지난 7월6일 상오 2시쯤 서울 종로구 연건동 대학로 부근에서 혈중알콜농도 0.24%의 만취 상태에서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단속을 받자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 결혼식 올렸던 성당서 수천명 추모/다이애나 사망 이모저모

    ◎“왕실은 지금 위기에…” 개혁 필요성 부각/찰스 재혼 초미 관심… 여론악화 걸림돌로 ○…다이애나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애도를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영국인들은 1일에도 그녀의 공식 주거지인 런던 켄싱턴궁 및 버킹엄궁 앞으로 몰려들어 촛불을 밝히거나 꽃송이를 놓으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런던 시내 일부 건물에서는 조기가 걸린 모습도 눈에 띄었으며 16년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던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2천여명이 모여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예배를 거행. ○회교권,영 음모설 제기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이집트를 비롯,회교권 국가들이 영국 정보기관의 음모에 의한 살해설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이집트 관영 메나 통신은 ‘인종주의적 음모설’을 제기한뒤 다이애나가 이집트 출신 회교도와 염문을 뿌린데 대해 영국권력 기구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도. ○…영국국민들의 일반적인 감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영국왕세자비를 기리기 위해 기념탑을 건립할 것을 원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지가 1일 보도. ○…윈저궁을 일반국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영국왕실에선 보기 드물게 국민들과 많은 접촉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왕세자비’로 불렸던 다이애나의 죽음이 영국왕실의 개혁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고. 영국왕실 문제를 연구해온 폴리 토인비씨는 1일 BBC와의 회견에서 “왕실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파이낸셜 타임스,더 타임스,데일리 텔리그라프 등 영국언론들도 “다이애나가 영국국민들에게 심어준 왕실에 대한 변화 기대심리는 다이애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세계적인 지뢰금지조약 협상이 타결되면 그 조약 이름은 다이애나의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한다고 자크 랑 전프랑스 문화장관이 1일 제안. ○…다이애나는 올연말 자선 등 공식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새연인 알 파예드와 함께 개인적인 생활에 충실할 계획이었다고 사망 6시간전 그녀와 전화통화를 가진 영국신문 데일리 메일의 왕실전문기자가 1일 밝혔다. 다이애나비가 가장 선호하던 기자중 하나인 리처드 카이 기자는 이날 다이애나의 결심이 사고자동차에 동승하고 있다 사망한 알 파예드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 ○…다이애나에 대한 지나친 보도경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더 선’ ‘더 미러’ 등 영국의 타블로이트판 신문들은 1일자 지면에 검은 테두리를 둘러 그녀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 ○“언론이 그녀를 죽였다” ○…다이애나의 죽음과 관련 언론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남아공에 있는 그녀의 동생 찰스 스펜서는 “나는 언론이 결국 그녀를 죽일 것으로 믿어왔다.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가져올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언론을 비난. ○…고액의 위자료 등으로 인해 영국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여성중 하나인 다이애나비의 재산 규모는 1천7백만∼4천만 파운드(5백80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고.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위자료를 받고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 찰스의 재산보다 많은 1천7백만 파운드를 소유,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매년발표하는 영국내 최고재산가 명단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여성중 하나로 올라 있다.다이애나비는 또 세자빈이 된 후 엄청나게 값비싼 보석들을 많이 갖게 돼 약혼반지 등을 포함한 보석이 1천7백만 파운드(2백46억5천만원) 상당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산 최고 580억원 추정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사망함에 따라 찰스 영국 왕세자의 앞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목을 끄는 대목은 찰스 왕세자(49)가 오랜 연인관계에 있던 이혼녀 카밀라 파커 볼스(50)와의 결합 여부.지금까지는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이 쉽지 않으리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찰스가 늘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해 왔으며,카밀라도 “찰스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카밀라의 경우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찰스와 다이애나의 이혼발표 이후 대부분의 영국민들이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이유로 꼽힌다. ○…다이애나를 태운 승용차가 사고를 낸 직후 반대편 차선에서 사고현장을지났던 미국인 관광객 가족은 5∼6명의 사진사들이 중상을 입고 죽어가는 다이애나의 주위를 “벌떼처럼” 둘러싼 채 다이애나비의 사진을 찍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 서양화가 김형근(이세기의 인물탐구:144)

    ◎한시대의 미감 바꾼 ‘은백의 화가’/사물을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내면 터치’/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도 지낸 ‘화단의 리더’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퇴색한 과녁에 박힌 세개의 화살,나뭇결이 선명히 드러난 과녁에 두개의 화살은 힘차게 박혀있으나 하나는 과녁을 맞추고도 힘에 부친듯 사선으로 그 끝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 70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한 김형근의 ‘과녁’은 싱싱한 박진감과 치열한 묘사력으로 인해 당시 이 작품을 뽑은 원로화가들은 “이는 일찍이 우리 화단사상 보지 못했던 현장감”이며 “한 시대의 미감을 바꾸어 놓았다”고 찬사해 마지 않았다.한장의 그림에 담긴 만감이 엇갈리는 진한 메시지는 작품의 의취를 일순간에 짐작할수 있게 하는 명작이기 때문이다.과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는가.그러나 실패와 좌절의 되풀이속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패배로 치부하지 않았고 시련은 아프지만 오히려 치솟는 힘이 되었다. ○70년 국전서 대통령상 수상 만일 김형근의 ‘여인상’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극단적인 미추구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영롱한 보석타래와도 같은 그의 여인상은 눈부신 치장과 황홀감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멈추게 하는 혼도직전의 전율을 던져준다.미적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색채와 조형적인 균제·비례와 조화와 함께 장미향기와 라일락바람이 넘나들고 어느 때는 오베른 언덕같은 천상의 노래가 가슴을 후비기도 한다.여인과 꽃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재현하기 위해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독특한 미감을 절묘하게 살리면서도 작가의 천부적 감수성은 실제에서 지각할 수 없는 내면의 지성미까지도 붓끝으로 일궈놓고야 만다.그래서 여인의 볼에서는 발그레한 생명감이 피어나고 실크처럼 고운 살갗은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가 날듯 섬세하고 연연하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극미와 화미에 다다르기 위해 보일듯 말듯한 미소에 귀족적 기품과 첨단적인 세련미를 담아내어 평자들은 “테크닉을 극복한 지점에 작가 자신을 세우고 있다”고 표현한다.‘사물을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읽는 관조미의 극치’가 그것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김형근의 은백색 공간’이란 한 미술평론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 사실주의 회화는 김형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단정한 바 있다.“지금까지의 사실적인 표현양식이 순수미와 자연주의를 재현하는데 그쳤다면 김형근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극사실적인 작품을 통해 작가적 입지를 구축했다”고 했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데는 남보다 특이한 환경에서 자라나 전혀 뒤늦게 화가의 길에 들어선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의 고향은 산자수명한 경남 통영.한의사이던 하범 김전수씨의 무녀독남으로 다섯살때부터 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그러나 통영수산고에 다닐때까지 학교에 바래다주고 데리러 오던 부친은 외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부친의 뜻과는 달리 그림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상 그는 지금까지 예상치 못했던 혹독한 고독과 고생스러운 수련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70년대 미 화단과 인연 그는 군인대학인 정치대 법정과를 나왔고 10년간 장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화가를 지망했으며 화단에 인맥이나 학맥이 닿을 리 없었다.오죽하면 대통령상 수상이후 그는 “심사위원들의 아집과 편견과 독선으로 인해 15년간의 국전도전시대는 까마득한 험난준급”이었으나 혼자서 어둠속을 걸어가는 듯한 극한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릴때만은 언제나 행복에 넘쳐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한 그가 ‘은백의 화가’로 불리는 이유는 ‘동양의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불생불사’의 세계를 형상화한데 있다고 할 수 있다.은백색과 흔적의 무한성,화면을 장식하는 꽃과 여인에서 그는 직선의 유리화병에 꽂힌 백합다발과 구름을 타고 비상하는 동자,다른 한쪽엔 남색 유리컵과 옛날의 종을 등장시키기도 한다.여기에 아득한 시간속에 가리워진 옛날을 현대에 용해시켜 유구하게 이어져온 역사와 생의 긍정과 환희를 절묘하고도 신비롭게 연출해낸다. 대통령상 수상이후 그는 미국 아메리칸 아트스쿨에 다니면서 70년대 이후 미국화단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오랜 작업실이던은평구 녹번동을 떠나 석촌 올림픽선수촌아파트로 옮기는가 하면 경기도 양평과 일본의 지바(천엽),뉴욕에 각각 대작을 위한 아틀리에를 둔 국제적 화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이김복여사와의 사이에 딸만 넷,모두 출가했고 그의 그림의 모델이던 차녀(성희씨)가 중년에 접어들자 최근에는 손자들을 데려다 모델로 삼고 있다. ○그의 그림선 숨결과 향기가… 시각적인 포만감뒤에 은은히 감도는 절제미는 특유의 긴장감을 극으로 끌어올리면서 그의 여인은 순정적인 정령의 서조를 당당하게 지켜나간다.그리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반드시 이겨내고 슬픔이나 분노보다 작가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부여한 빛나는 화면을 성취한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다이아몬드같은 흰빛을 뿌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상화된 현실을 만끽하기에 이른다.그를 아끼고 깊이 연구하는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심신을 정화시키는 미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서고 있다”고 표현한다.미의 사절인 김형근의 세계는 그림에서의 숨결과 향기와 음악과 함께 황폐한 현대인들로 하여금미의 극치앞에 감탄을 금치못하게 하고 결국 행복과 사랑을 깨닫게 하는 구원의 암시를 함축하고 있다. □연보 ▲1930년 경남 통영 출생 ▲1955년 국전 입선 ▲1968년 국전 특선 ▲1969년 국전 문공부장관상 ▲1970년 국전 대통령상 ▲1971년 도미기념전(신세계미술관) ▲1972년 아메리칸 아트스쿨수학 ▲1975년 역대국전 대통령수상작가 초대전, 김형근초대전(부산호텔화랑) ▲1977년 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78∼81년 수도여사대교수 ▲1979년 김형근도화전(선화랑) ▲1981년 서독미술전초대전 ▲1983년 국전 심사위원 ▲1988년 뉴욕 웰리F 화랑 전속,알파인화랑초대전 ▲1991년 시가 있는 그림전(서림화랑) ▲1993년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초대(현대화랑)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위원장 ▲1996년 현대리얼리즘회화 초대전(한국 포스코갤러리) ▲1997년 현대작가 1호전(선화랑) ▷수상◁ 경상남도문화상(68년) 서울시문화상(81년) 통영시문화상(95년) ▷작품소장◁ ‘과녁(관혁)’ ‘우리의 슬기’ ‘영원의 장’(청와대) 벽화 ‘여명의 비상’(한국외환은행) ‘한려수도’(경남도청)외 다수
  • 태양 숭배 오로촌·에벤키족(흑룡강 7천리:3)

    ◎모든 신상에 태양 그려 정성숭배/“황구가 해 삼켜 개기일식” 우리설화와 흡사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에는 1988년에 세운 중국과학원 지구물리연구소 산하의 막하지자대가 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밀밭 한 가운데 자리한 막하지자대에는 태양 에너지 전지판으로 작동하는 지자감측기가 설치되었다.2층 건물아래 지하에 설치한 지자감측기는 지구 자기마당(자장)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기록하는 기능을 지녔다.이 기록은 유도탄이나 인공위성 발사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개기일식 ‘장관’ 그런데 올해 천체관측을 하는 바람에 막하지자대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지난 3월9일 개기일식을 바로 이 지자대에서 관측했던 것이다.그리고 중국국영 텔레비전인 CCTV ‘막하의 천상기관’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생중계하여 1억2천만명이 동시에 시청했다.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운 우주쇼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중국은 물론 한국,미국,일본,독일,이탈리아 등지의 천문학자들이 막하로 몰려들었다. 올해 개기일식은 20세기에 나타난 6차례 개기일식중 마지막 일전식이라서 관심이 대단했다.더구나 막하지역은 개기일식을 가장 잘 볼수 있는 최적의 관측지라는 소문이 나 막하는 관광특수까지 누렸던 것이다.이에 따라 하얼빈철도 국제여행사는 관광객을 위해 3편의 전세열차를 운영했다.막하지자대가 위치한 북극촌은 일반인 통제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한 막하시는 시내에 임시관측소까지 세울 정도였다. 그 기개일식은 3월9일 상오8시44분 러시아 비스크 남쪽과 중국 신강성 일타이 북쪽에서 시작되었다.그리고 몽골을 지나 상오 9시8분 막하 상공에 들어선 개기일식은 동시베리아를 거쳐 북빙양에서 끝났다.300∼400㎞에 걸친 일식띠가 지나는 지역은 대부분 산이 아니면 황막한 들판이나 사막이었다.그래서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을 어느정도 갖춘 막하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개기일식은 중국 CCTV가 막하현 북극촌에서 생방송으로 내보냈다.해가 몽땅 자취를 감추어 북극촌 일대에 어둠이 깔린 시간은 정확히 상오9시7분40초대였다.그 순간이 지나자 태양 왼쪽 변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몇개의 점이 나타났다.빛나는 보석을 방불케 한 이들 점은 천문학에서 말하는 벨리구슬이다.몇초가 지나자 벨리구슬이 사라지고 달 그림자에 가린 태양에서 빛안개가 쏟아졌다. ○국영 CCTV서 생중계 중국의 TV와 신문들은 개기일식이 오기 1개월전부터 보도에 열을 올렸다.이는 계몽차원의 보도였는데,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그만큼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 것이다.흑룡강유역의 원주민의 하나인 오로촌족(Orochon·악륜춘족)은 이번 개기일식때도 한 차례 소동을 벌였다.이들은 예부터 일식은 누렁개 황구가 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태양을 숭배하는 오로촌족은 대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흑룡강성 치치할시 민족사범학교 교원이자 오로촌족인 황대영씨(39)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족에게 태양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그래서 신상에는 모두 태양을 그려 넣었습니다.두 사람이 싸움을 하다가도 해를 향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 할 정도니까요….지난 3월9일 일식이 있던 날에는 머리에 소래기를 뒤집어 쓰고나수로 두들기고 다녔습니다.태양신을 더럽히지 말고 어서 해를 토하라는 뜻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태양숭배는 에벤키족(Evenki·악온극족)도 마찬가지다.태양이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설화를 지닌 에벤키족 노인들은 지금도 시간을 태양과 별에 의존하고 있다.날이 밝는 시점부터 새벽,아침,점심,저녁으로 낮을 네 등분하는 관습을 지켰다.또 밤은 삼성이 나타날 때를 기준으로 초저녁,밤중,새벽으로 구분했다.동·서·남·북의 방위 역시 해를 따라 결정한 에벤키족들은 해가 머문 방향을 보고 사냥감을 찾았다.해가 정남에 있을 때는 노루를,해가 솟을 무렵에는 말사슴을 잡는 시간으로 여겼다. 달을 기억하는 방법은 달이 졌다가 조각달로 나타나 다시 만월로 커지는 달모양에 두었다.우리 민족처럼 월력을 따른 이들은 지금도 월력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흑룡강유역의 사람들에게서 우리 민족과 흡사한 심성을 읽었다.조선족 역시 일식은 개가 해를 삼킨다는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혜성을 재성으로 보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월력문화권의 전통도 다 버리지는 않았다.그러고 보면 오로촌족과 에벤키족은 우리 민족이 차츰 잃어가는 상고의 심성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정원근씨 보석석방/미 원정 도박 혐의

    서울지법 형사9단독 오천석 판사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30만달러(한화 2억4천만원)을 빌려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차남 정원근씨(35·상아제약 회장)가 낸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 석방했다.
  • 도박 수사 형평성 유감/박은호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재벌 정치인 연예인 등 국내 유명인사들의 해외 카지노 원정도박 사건이 최근 사회적 이목을 끌고 있다.이들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이른바 ‘상류층’이기 때문일 것이다.검찰과 법원도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구속 여부 등 신병 처리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 느낌이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몇가지 석연찮은 점이 눈에 띈다.법적용의 형평성 문제다. 법원은 상아제약 회장 정원근씨 등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8명을 모두 영장실질심사에 회부,구속여부를 엄격히 심사했다.올해부터 실시된 실질심사제의 취지를 백분 살려 구속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이에 앞서 검찰에 적발된 엇비슷한 사건인 국내 상습도박단 피의자 103명에 대해서는 단 3명만 실질심사를 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서류심사만으로 영장을 발부했었다.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해외원정 도박단 피의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법원은 또 3백55만달러(30억여원)를 빌려 도박을 한 대전 동양백화점 회장 오종섭씨를 지난 18일 보석으로풀어주면서 “실제로 10만여달러만 잃었고 도박 빚을 갚을 능력이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한다.하지만 오씨의 변호인이 담당판사와 사법시험 동기생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도박의 상습성 여부보다 피의자의 재력과 ‘도박 실력’을 우선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검찰도 마찬가지다.검찰은 20만달러 이상을 빌려 도박한 사람만 구속한다는 내부기준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10만달러의 도박을 한 홍모 변호사 등에 대해서는 불구속 입건으로 수사를 마무리지었다.해외에서 신용카드로 5만달러 이상을 쓴 사람들을 구속한 지난해의 신용카드 수사때와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범죄의 경중이 특별히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이처럼 다른 구속기준을 정한 이유에 대해 검찰은 선뜻 답변을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대원칙 가운데 하나는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이다.법앞에 모두 평등하기 위해서는 법 적용의 형평성이 필수요건임은 물론이다.해외 카지노 도박사건에서 법원과 검찰이 과연 이같은 책무를 다했는지 의문이다.
  • 신명순 교수 변호사대회 심포지엄 주제발표 요지

    ◎검찰 독립 없인 ‘권력형 부정’ 못막아 신명순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열린 제9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 심포지엄에서 ‘권력형 부정·부패방지를 위한 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린다. 정치권의 권력형 부정·부패는 정부수립 이후 계속되어 온 현상이다.비리의 유형은 불법적 정치자금의 수수와 이에 얽힌 정치비리다.불법적 정치자금은 정치자금을 규제하는 법률에 위배되는 자금을 의미한다. ○정치권 눈치보기 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그런데도 불법적으로 자금을 수수하는 이유는 제공자에게 이권을 보장하거나 부정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묵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범죄를 사법처리하지 않고는 권력형 부정·부패를 막을수 없다.이 때문에 검찰의 역할이 중요하다. 권력형 부정·부패를 제어하려면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특히 정치권의 부정·부패는 ‘정치적’이 아니라 ‘법적’으로 처리돼야 한다.역대 정권에서 검찰은 독립성을 갖춘 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집권세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거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검찰의 눈치수사는 정치인들에게 부정부패나 비리를 자행해 사법처리를 받더라도 정치적으로 잘 해결되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권력형 부정·부패가 지속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한 셈이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근절을 저해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사법부의 특별대우를 들 수 있다. 한보비리사건을 볼때 구속기소된 피고인들의 대다수가 병보석이나 형집행정지 등의 결정으로 형기를 마치지 않았다. 이런 관행으로 말미암아 권력형 부정·부패로 크게 한탕한 뒤 잠시 교도소에 가서 쉬다가 오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됐다.또 국민들에게는 권력형 부정·부패는 항상 용두사미로 끝낸다는 불신을 심어줬다. 변호사의 역할도 문제다. ○관련자 변호 거부해야 권력형 부정·부패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능한 변호사를 동원한다.비슷한 죄를 범한 일반 피의자에 비해 훨씬 낮은 형량을 받고 얼마후에는 출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따라서 변호사들은 권력형 부정·부패 관련자에 대한 변호를 거부,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고비용 정치풍토도 개선돼야 한다.선거비용을 대폭 줄이고 정당의 지구당조직을 폐지해야 한다.국회의원선출방식을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로 바꿀 필요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권력형 부정·부패는 최고 권력자의 의지,검찰과 사법부의 법치주의 확립,언론과 시민사회의 계속적인 감시 등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 발레리나 최태지(이세기의 인물탐구:143)

    ◎예술혼 담긴 춤사위 ‘호수의 백조’/기쁨의 율동엔 환희가,슬픔의 몸짓선 눈물이…/30대 최연소 국립발레단장… 한국발레의 기수 최태지는 변화가운데 발전을 추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예술가다.변화하기 위해서는 설득력을 잃은 낡은 전통에 더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차이코프스키의 야심에 찬 ‘백조의 호수’는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한 대작이지만 지난 87년 마츠에크가 개작하여 파리 데아트르 드라빌에서 초연했을 때는 더 이상 가냘프고 아름다운 백조는 아니었다.왕자가 백조를 들어올리는 ‘파드되’조차 다리의 근육을 이완시켜 덜렁거렸고 튀튀는 입었지만 맨발로 비상하여 파리시민들을 경악시켰다. 그외 자유분방(Fancy free)의 제롬 로빈스, 스펙터클한 모리스 베자르, 민족적 제재를 사용하는 지리 킬리안을 보고 배운 세대가 최태지라고 할 수 있다.특히 모리스 베자르에 경도된 그는 ‘무대는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정확한 크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이 세상 마지막 피란처’라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일본 교토서 태어나 그의 나이는 60·70대의 기라성같은 대선배들이 도열한 무용계에서는 어쩌면 신세대이지만 발레의 연륜이 다른 무용보다 짧다는 점에서 지금 최정상과 절정에 서있는 위치다.클래식발레의 규격화된 미감에 머물지 않고 매력적 연기를 가미한 드라마틱 발레를 추구하는 것도 그렇다. 그는 국립발레단 창단이후 처음으로 현대무용가를 트레이너로 초청하여 단원들에게 몸의 표정을 살리는 방법을 훈련시켰고 지난 7월에는 이스라엘 칼미엘 축제에 초청되어 이집트의 저명한 모하메드 알 에자비로부터 ‘동양에는 동양의 문화가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있다.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알려진 발레가 색다른 고급예술로 한국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호평을 받아냈다. 최태지는 일상생활에서도 꾸밈없이 시원하고 솔직해서 상대방에게 어떤 긴장감도 주지않는 성격이다.무대에서는 튀튀를 입고 현대적인 해석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지만 고도의 문학성과 철학성을 살려 발레 본연의 격조에 미세한 흔들림도 주지 않는다.국내 발레사상 최연소단장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발레단을 능란하게 운영하는 것을 본 전단장 김혜식은 ‘최태지의 행복하기만한 모습 저변에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쩔수 없는 고뇌의 흔적이 침잠되어 있다’고 말한다.그래서 그의 기쁨의 율동에서는 환희가 우러나오고 슬픔의 몸짓에서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최태지는 여러가지 특이한 주변환경을 지니고 있다.첫째 그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레미콘 회사를 경영하는 부친 최태병씨와 김명림여사의 2남4녀중 막내. 교토 마이즈루(경도부 무학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앞에 있던 마이즈루무용학원에 다녔다.마치 그의 운명이 춤추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가 태어난 도시는 ‘춤추는 학’이란 뜻의 ‘마이즈루’였고 그는 ‘발레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할만큼 춤에 빠져들었다.그리고 자연스럽게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여 만16세가 되기전에 ‘코펠리아’의 스와닐다로서 ‘마주르카’와 ‘밀 이삭춤’‘차르다즈(Czardas)’와 그랑 파드되를 추었고 17세때에는 가이타니발레단 제국(제국)극장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솔리스트로 뛰었다.다음해 ‘잠자는 미녀’로 일본의 발레계가 주목하면서 민족차별을 극복했고 국비장학생에 선발되어 프랑스 프랑케티발레학교에 유학했다. 83년,가이타니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일본 문부성이 주관한 ‘한여름밤의 꿈’에서 전일본신문이 대대적으로 호평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국립발레단이 그를 ‘백조의 호수’에 초청, 2년후 국립발레단에 정식 입단하면서 모든 레퍼토리의 주역을 휩쓸었다.이후 뉴욕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최두원씨를 만나 결혼,자녀는 딸만 둘.양재동에 자택이 있고 시부모는 근처에 함께 산다. 그는 ‘발레는 고도의 서커스같은 기술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한다.‘드라마틱 발레로서 예술성을 성취했을 때만이 발레로서의 아름다움이 보석처럼 빛나게 된다’고도 했다.그의 꿈은 네오클래시시즘에서 모던발레를 거쳐 드라마틱 발레의 완성을 이룩하고 싶은 것이며 세계 최고의 안무자인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춘희)를 위해 바로 혼신의 무대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백조의 호수’ 주연 ‘발레는 현실이며 환상의 예술이 아니라는 것’과 ‘관객의 가슴을 채워주지 못하는 발레는 더이상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리고 관객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선 얽매인 룰과 규격에서 벗어날수 있는 열린 사고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진보적 예술이란 변화가운데 질서를 유지하면서 예술의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일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그때 인간의 춤,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는 살아있는 춤,예술이 들여다보이는 최상의 춤으로 그는 최고의 비약을 꾀하려는 것이다. □연보 ▲1959년 일본 경도 출생 ▲1975년 가이타니발레단 도쿄 제국극장공연 ‘코펠리아’전막외 ‘삼각모자’ ‘스프링’ 주역 ▲1978년 일본 동무학고교 졸업, 뮤지컬 ‘한여름밤의 꿈’ 출연,NHK방송국 발레의 밤 ‘사계’ 등 주역 ▲1981∼82년 파리 프랑케티발레학교 유학 ▲1983년 한국국립발레단 객원 ‘세하라자데’ ‘백조의 호수’ 주역 ▲1987년 국립발래단입단,88년 문화예술축전 ‘왕자호동’ 주역 ▲1991년 ‘춤의 해’에 ‘올해의 무용가’ 선정 ▲1993년 국립발레단 지도위원,국립발레단부설 문화학교강사,예술의 전당개관기념 ‘백조의 호수’ 주역 ▲1994년 뉴욕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뉴욕 시티발레컴퍼니 발레연수 ▲1996∼현재 국립발레단 단장 및 예술감독 ▷대표작◁ ‘레파티누르’ ‘로미오와 줄리엣’ ‘해적’ ‘동키호테’ ‘바이올린소나타’ ‘에스메랄다’ ‘고려애가’ ‘레퀴엠’ ‘삼차원’ 등 주역 다수
  • 부유층 미 원정 100억대 도박/40여명 적발,8명 구속

    ◎재벌회장·전 의원·연예인 포함/현지 카지노 수금책 장부 압수… 수사확대/28억 날린 백화점부회장 보석… 검찰 항고 서울지검 외사부(유성수 부장검사)는 21일 정치인과 대기업 사주,변호사,연예인 등 국내 유명인사와 부유층 40여명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모두 1천2백여만달러(1백억여원)의 도박을 한 사실을 적발,수사중이다. 검찰은 라스베이거스 미라지호텔 카지노의 한국인 담당 수금책 로라 최씨(42·여)로부터 도박 빚을 진 한국인 고객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압수,지난 달부터 수사해 왔었다. 검찰은 명단에 판사출신의 변호사 홍모씨(37)와 가수의 매니저로 활동중인 코미디언 장고웅씨,인기그룹 ‘룰라’의 전 매니저 이상석씨 등 유명 연예인,전 국회의원,방송사 프로듀서(PD)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명단에는 없지만 로라 최씨로부터 “K그룹 L모 회장도 몇차례에 걸쳐 거액의 도박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신병 확보에 나섰다.L회장은 수사 착수 직후 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수 있을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면서 “이들이 모두 잠적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지난 7일 해외원정 도박자 가운데 대전 동양백화점 부회장 오종섭씨(41),H전자 전무 윤장혁씨(36) 등 4명을 상습도박 등 혐의로,로라 최씨 등 4명을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각각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오씨 등 도박 사범 3명은 첫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보석으로 석방됐다.오씨는 담당판사와 사법시험 동기생을 변호사로 선임,보석보증금 1억원을 내고 지난 18일 풀려났다.검찰은 이에 불복,항고했다. 검찰은 변호사 홍씨 등 5명도 상습도박혐의로 입건했다. 오씨는 6월5일부터 닷새동안 미라지호텔 카지노에서 로라 최씨로부터 3백20만달러(28억여원)등 모두 3백55만달러를 빌려 최고 3만달러의 판돈을 걸고 ‘바카라’ ‘블랙잭’ 등의 도박을 한 혐의로 지난 달 24일 구속됐었다.윤씨 등도 지난해 9월 이후 최씨로부터 32만5천달러(2억6천만원)를 빌려 도박을 했다. 오씨 등은 귀국한 뒤 도박빚을 받으러 온 최씨에게 빚 가운데 일부를 우리 돈으로 갚았으며,최씨는 미라지호텔 카지노 국내 대리인 김모씨(여)와 ‘환치기’ 업자인 강주원씨(42·구속) 등을 통해 수출대금으로 조작해 미국으로 불법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 경매거부 14명 고발/가락시장/중도매인 반발… 농산물 파동 우려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공사(사장 김창호)가 지난 10일 총각무에 대한 경매를 거부한 채소류 중도매인 14명을 18일 검찰에 고발,농산물 불법유통 및 경매거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관리공사측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8일∼11일 각각 7백만∼7천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첫번째 이루어진 경매를 거부한 정찬목씨(47·송파구 가락동) 등 중도매인 14명을 농안법 위반혐의로 이날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고발했다. 공사측은 “이들 중도매인들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뒤 경매를 거부하는 등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아 이번에 뿌리깊은 경매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공사측은 또 채소류 중도매인들이 이에 반발,궐기대회를 위한 성금을 모금중이며 과실류 중도매인은 중도매업 허가증 일괄반납 위임장을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중도매인연합회는 총궐기대회 개최 등 단계별 투쟁을 계획중이어서 94년 농안법 파동이후 최대의 농산물 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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