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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워낙 바삐 서두르다 보니 외출하면서 가방에 넣은 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와 지하철이 생각보다 일찍 연결되어서 약속 장소에 나와 시계를 보니 상대방이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제야 내가 가방 속에 무슨 책을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책과 관련된 일을 오래 해서일까. 어딜 가든지 책 한 권을 함께 데려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꺼내 맨 뒤쪽 면지를 보니 누군가 써 놓은 글씨가 일순간 눈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책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이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거기서 30분 동안 나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를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정작 책은 한 문장도 읽지 못했다.올해로 헌책방 운영도 11년째를 맞이했지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헌책방 일을 배운 것까지 더하면 11년 위에 몇 년을 더 얹어야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새 책이 아니라 헌책을 더 좋아할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된 것 중 하나는 헌책이 주는 특별한 질감이다. 여기서 질감이라고 하면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을 포함해서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나무 냄새,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흔적을 말한다. 그렇다.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책은 헌책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흔적’이라고 해도 좋다. 책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 스스로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책에 있는 흔적은 모두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책을 갖고 있었던 주인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헌책을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책 속에 있는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그 책의 예전 주인과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밑줄과 메모가 가득한 책을 보면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성실한 어떤 사람 얼굴이 금세 떠오른다. 시처럼 멋진 문장을 면지에 남긴 것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이를 상상하게 되고, 어떤 때는 며칠 동안 그렇게 상상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저 사람이 바로 그이가 아닐까 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책의 흔적에서 비롯된 이런 기분 좋은 설렘도 헌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어떤 사람은 왜 헌책을 좋아할까 그날 내 가방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책을 확인하니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표지를 감싸고 있는 종이커버 재질 때문인지 벌써 테두리 쪽은 빛바랜 자국이 선명하다. 책을 볼 때 항상 서지면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은 솔출판사에서 2000년에 펴낸 것으로 초판은 10월 5일에 나왔는데 내가 가진 것은 2쇄 본이고 그 날짜는 10월 16일이다. 딱히 특별한 구석은 없는 책인데 초판을 내고 불과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게 솔직히 부럽다.●“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다시 책 속에 누군가 써 놓은 글씨를 살핀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글을 쓴 날짜는 2002년 5월 23일이다. 이 날은 목요일이고 일주일 후면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에 거리 이곳저곳에서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IT 회사에 출근했을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애써 특별함을 갖다 붙여 보자면 이날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과 같다는 것 정도일까. 어쩌면 이 책의 주인도 나처럼 축구보다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급히 외출을 했는데 가방 속에 책을 챙겨 넣는 걸 잊었던 것이다.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 서점에 들어가서 산문집 한 권을 사들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선 책을 펼치고 면지 아래에 글씨를 쓴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날짜도 써 둔다. 2002년 5월 23일. 이 독서가는 낙타가 십리 밖에 있는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어디서든 책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향기를 잡아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었던, 내가 그려낸 상상 속 독서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렇듯 말 없는 헌책은 내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해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모아 엮어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헌책방에서 일하며 느꼈던 보석 같은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남다른 애정이 깃들어 있다. 보통은 책을 쓰고 난 다음 그 책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책을 준비하는데 이 헌책의 흔적에 관한 책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떠날 줄 모른다. 헌책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런 인연과 만나기 때문이리라.‘아이들의 풀잎노래’는 양정자 시인이 교사로 일하며 써낸 진정성 넘치는 시들이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993년 초판인데 책 뒤표지 안쪽 면지에 누군가 긴 일기를 써놓았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니 시집의 첫 주인은 시인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것 같다. 담당하고 있는 학급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빼곡한 손글씨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한달음에 써내려 간 하루치 일기라곤 하지만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서 어쩌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양정자 시인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고 시인을 만나면 시집을 내보이며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보들레르가 ‘바우델아이레’? 어떤 독자는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책 속 면지에 강렬하고 치열한 시어 곳곳에서 “Baudelaire의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나는 한동안 알파벳으로 쓴 이 작가의 이름을 “바우델아이레”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시인은 없었다. 전공자들이나 알 만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시대 작가가 아닐까? 상상력이 지나치게 발동되어 바우델아이레라는 시인의 작품을 꼭 찾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보들레르”였던 것이다. 전에는 무슨 이유 때문에 보들레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책이나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오해였기에 부끄러운 심정을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 나는 반성하는 자세로 보들레르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최승자 시인의 시들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 알제대학의 철학교수인 장 그르니에는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아름다운 산문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를 발굴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 그르니에의 책 중에서 ‘섬’은 카뮈가 쓴 서문이 들어 있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카뮈는 ‘섬’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나도 가슴이 벅찬 나머지 그대로 집까지 내달려서 방에 들어가 스승의 글을 읽었다고 썼다. 그것은 카뮈가 스무 살 즈음에 겪은 일이고 이 책을 읽은 후 자신도 글을 써 보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 무명의 독자도 카뮈와 같은 심정으로 민음사 이데아총서 시리즈로 펴낸 ‘섬’을 읽었나 보다. 그는 100년 전 카뮈가 그랬듯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짧은 글을 남겼다. 이 문장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헌책이라면 거기에 더해 이름 모를 또 다른 독자들과 친구가 되는 설렘을 만들어 준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 성별, 종교, 가치관, 이념, 그 무엇도 상관없다. 우리는 헌책 속에 남겨진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인연을 나눈 것이다. 헌책을 읽는 것은 책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 남겨진 흔적은 그 책을 가졌던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만나는 거룩한 인연의 시작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연재를 마칩니다.
  • 공직자 재산신고서 빠진 ‘가상화폐’

    “법적 성격 규정 안돼” 신고 대상서 제외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에 가상화폐가 빠져 있어 재산신고 누락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말까지 정무직과 4급 이상 공무원 등 공직자 22만명을 대상으로 재산변동 신고를 받고 있다. 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가상화폐는 아직 법적 성격이 규정돼 있지 않아 재산등록 신고 대상이 아니다. 가상화폐가 아직 예금이나 주식, 채권, 부동산, 자동차처럼 법적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신고 대상에 포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를 신고하더라도 정부가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신고 내용은 공직자윤리법에 근거한 16가지 재산 목록으로 부동산 소유권 및 전세권, 소유자별 합계액 1000만원 이상의 현금, 예금·보험·주식 등 유가증권 등이다. 또 500만원 이상의 금이나 500만원 이상의 보석 등 동산도 포함된다. 모두 정부가 확인해 변동이 있을 시 신고 대상자에게 소명을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등록된 재산은 정부가 검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가상화폐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성격 역시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공직자 재산신고 목록에 가상화폐는 빠져 있다. 재산신고 대상자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면, 실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부는 알 수 없다. 물론 정부도 올해 재산변동 신고를 앞두고 가상화폐 보유 현황을 신고 대상에 포함할지 고민했지만, 아직은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포함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사처는 공직자가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가상화폐에 투자해 전년보다 현금이 준 경우엔 당사자에게 소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관계자는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성격이 결정되면 제도 개선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대북 유류 밀수출 선사 “중국인 의뢰 받아”

    북한에 유류를 밀수출한 홍콩 선박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의 임차 선사인 대만 무역상이 중국인의 의뢰를 받아 유류 밀수를 실행했다고 진술했다. 4일 대만 자유시보 등에 따르면 가오슝(高雄) 지방검찰은 지난 2일 잉런(盈仁)어업그룹 소속 가오양(高洋)어업 주식회사의 책임자인 천스셴(陳世憲·52)으로부터 이 같은 진술을 받았다. 천은 검찰에서 중국 국적 남성 브로커의 중개로 석유정제품을 공해상에서 넘기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가 북한 선박인지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천은 “국제 유류 거래에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며 “판매자는 실구매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 브로커도 공급책에게 구매자 신분을 알려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검찰 조사 결과 천의 회사는 석유류 제품을 취급하며 라이트하우스 윈모어가 작년 대만에 기항했을 당시 세관에 낸 수출통관내역서에 행선지를 ‘홍콩’으로 허위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업무상 허위문서 작성 혐의로 입건된 천은 150만 대만달러(약 5700만원)의 보석금과 출국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현재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는 우리나라 여수항에 입항해 정유제품을 싣고 출항한 다음 동해상에서 북한 선박 삼정2호에 정유제품을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이전한 혐의로 여수항에 억류된 상태다. 중국 관영언론은 윈모어가 중국 회사 소유이지만 대만기업이 임차한 선박이라며 불법행위는 대만기업이 저질렀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 측의 논리를 반박하는 증언이 나온 셈이다. 대만 외교부는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필요한 수사와 대북 제재 조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새라 새로운 새해여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새라 새로운 새해여

    요 며칠 쌩쌩 돌아가는 보일러로 절절 끓는 방바닥이 아까워 이불 한 장 끌어다 덮고 맨바닥에서 잔다. 침대에서 자는 게 더 몸이 가뿐한 듯도 하지만, 당최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게 노글노글 느즈러지는 기분도 괜찮다. 언제부터 내리꽂힌 햇볕인지 얼굴 한쪽이 따갑다. 애벌레처럼 꿈지럭꿈지럭 해를 피하면서 눈을 떴다. 창 너머로 보이는 어느 한 집 연통에서 뿌연 연기 줄기가 푸짐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지 곧게 올라가고 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마냥 따뜻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건만. 내 집을 비롯해 모든 집이 지금 이 시간 저처럼 연기를 뿜어 내고 있을 걸 생각하니 기도가 조여 드는 듯 숨이 답답하다. 감기가 덜 나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장래 기후 환경이 어떨까에 한겨울에 연기 못 피우는 굴뚝이 슬픈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근래 누구를 만나기만 하면 침을 튀기며 권한 책이 스티븐 밀하우저의 소설들이다. 내가 좋았다고 해서 당신도 읽어 보라고 강요하다시피 권했으니, ‘무슨 책 읽으라고 가르치지 마. 내 책은 알아서 골라’라고 거부감을 느낀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스티븐 밀하우저의 소설은 특히 시인을 위한 소설인 것 같다. 두께도 얇은 ‘황홀한 밤’은 발걸음 가볍게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아름답고 쉬운 글을 당장 쓰고 싶은 걸’ 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두껍디두꺼운 ‘에드윈 멀하우스, 완벽하고 잔인한 인생’은 ‘그래, 맞아!’ 연신 맞장구치며 ‘어쩜 이렇게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일까’ 작가의 기억력과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기억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한다. 사소한 일화들이 촘촘 보석으로 박혀 있는 거대한 광산 같은 소설인데, 일화가 사소할수록 더 반짝거리며 마음을 간질거리게 한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쉬는 시간의 한 운동장 풍경.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야만인처럼 노래를 부르며, 두 개의 줄이 빙빙 돌면서 만들어 내는 혼돈 속으로 뛰어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가 그렇다. 학교 운동장에서건 동네 공터에서건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장면이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서 불쑥 솟아오른다. 고무줄놀이는 잘하고 싶었지만 전혀 못하던 놀이였다. 노래에 맞춰 고무줄을 종아리나 발목에 감았다 풀었다 하며 깡충깡충 뛰고 몸을 돌리는 게 거의 마술 같아 보였지. 나는 놀이에 낄 엄두를 못 내고 그저 한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면서 노래에 목청을 보탤 따름이었다. 부근에서 다른 놀이를 하거나 우두커니 있던 또래 남자아이였을 소설의 화자가 그 순간에 여자아이들이 야만인처럼 노래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기억을 되살릴 때, 새된 목소리로 일제히 단조로운 가락의 노래를 뽑아내는 게, 가령 텔레비전 드라마 ‘타잔’에서 아프리카 토인들이 노래하는 것 같았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나 역시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밀하우저의 글을 읽는 순간 그 엉뚱한 청각적 묘사가 너무도 생생히 고무줄놀이 장면을 환기시켜 웃음이 터졌다. ‘에드윈 멀하우스, 완벽하고 잔인한 인생’은 전기(傳記) 형식을 띤 한 예술가의 성장기로서 어린 인간, 그리고 예술가의 본성을 정을 담뿍 담아 신랄하게 다루고 있다. ‘신랄’이라고 쓰는 순간 내 친구, 시인 이윤림 생각이 난다. 우리는 갓 여고생이 됐을 때 서울의 고등학교 문예부 연합 클럽 신입 회원으로 처음 만났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 애는 살짝 턱을 들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똘똘하게 자기를 소개했다. “제 이름은 이윤림인데요, 자음접변 역행동화해서 이율림입니다. 윤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그 후 자음접변 역행동화 낱말을 대할 때마다 윤림이 생각이 났다. 2017년은 내게 가슴 아픈 일이 많은 해였다. 그래도 두셋 좋은 일도 있었지. 쓰라린 시간은 길고 기쁜 시간은 아주 짧은 게 인생, 그 짧은 기쁨의 기억으로 나머지 긴 시간을 견디는 것이라지. 아니다! 나는 부단히 기뻐하면서, 기쁜 일을 찾아다니면서 살련다. 좋은 일 하나 없이 가슴 아픈 일만 있었던 이여, 더 큰 기쁨을 주려고 그런 것이기를. 다 보상받는 새해 되시기를.
  • 반려견 발로 차 학대한 영국 남성

    반려견 발로 차 학대한 영국 남성

    길거리서 반려견을 학대하는 남성의 모습이 공개돼 영국 사회가 공분하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8월 16일 리버풀의 한 슈퍼마켓 인근서 반려견을 발로 걷어차는 남성 가빈 듀란(Gavin Doolan·57)의 모습이 포착된 영상을 기사와 함께 보도했다. 영상에는 리버풀의 테스코 슈퍼마켓 인근서 코기-잭러셀 교배종으로 보이는 개 한 마리를 목줄을 한 채 걸어가는 듀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갑자기 그는 나란히 걷던 반려견을 사정없이 발로 걷어찼으며 그의 잔인한 행동을 목격한 행인들이 직접 나서 동물학대를 문제 삼으며 제지했다. 결국 그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동물학대 혐의로 체포됐다. 사건을 맡은 판사 소하일 나자르(Sohail Nazar)는 “(법정에서) 듀란이 개를 발로 찼다고 시인했다”면서 “그는 개를 발로 찬 이유에 대해 자신을 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듀란은 이와 관련 없는 31개의 전과가 있으며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절도 및 구타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듀란은 앞선 판결로 집행유예 기간이며 12개월 간의 지역봉사명령과 외출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듀란의 변호사 클레어 플레처(Claire Fletcher)는 “이것은 단순 충동적인 사건이다. 개가 듀란의 손가락을 물었고 그가 개를 발로 찼다”면서 “견주인 듀란의 동생과 개 사이에 문제가 발생해 듀란이 개를 맡은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듀란의 정신 건강과 몸이 좋이 않아 8월부터 보호관찰을 지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보석 상태의 듀란의 양형은 오는 22일 확정될 예정이다. 한편 영국동물보호협회 RSPCA에 따르면 듀란에 의해 학대받은 개는 현재 일반 가정에 입양돼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Liverpool Echo 영상팀 seoultv@seoul.co.kr
  • 15cm 초대형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보러오세요

    15cm 초대형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보러오세요

    경기 여주시 여주 곤충박물관은 내년 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두 달간 ‘살아있는 세계 곤충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세계 곤충 특별전은 세계 곤충 생태관, 곤충 표본관, 곤충 체험관, 양서류, 파충류, 조류 놀이터 등 겨울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생태 환경적으로 기초 생물인 곤충의 소중함과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 되었다. 세계 곤충 특별전에서는 국내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코카서스 장수풍뎅이, 황금 사슴벌레, 뮤엘러리 무지개 사슴벌레 등 살아있는 20여종의 희귀 곤충 200여 마리를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최소 6cm 이상의 초대형 세계 곤충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이번 행사에서는 특히 15cm가 넘는 세계 최대 크기의 거대한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와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뮤엘러리 무지개 사슴벌레가 누구에게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조미숙 관장은 “이번 곤충 특별전은 곤충의 다양한 가치를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선보이는 행사로서 관람객들의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씨줄날줄] ‘자랑스러운 ○○○상’/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자랑스러운 ○○○상’/임창용 논설위원

    퇴임 후 조용히 지내 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성균관대 총동문회가 얼마 전 황 전 총리를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공직자 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면서다. 적지 않은 동문이 선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확산되는 조짐이다. 촛불의 심판을 받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이고, 요즘 청산 작업이 한창인 각종 적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황 전 총리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상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닐 터인데 수상자로 선정돼 적폐의 한 축으로 몰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짜뉴스를 특정 언론과 세력이 반복적으로 퍼뜨리고 있다”고 올린 황 전 총리의 페이스북 글에서 난감하고 불쾌한 심정이 읽힌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황 전 총리 퇴임 전에도 논란이 됐던 내용들이어서 총동문회의 이번 선정이 세심하지 못한 듯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각 대학 동문회가 연말마다 주는 ‘자랑스러운’ 이런저런 상들에 대해선 예전부터 아쉬움이 컸다. 동문이 정말 자랑스러워할까? 학생들이 진정 존경하는 인물인가? 그런 의구심 때문이다. 사실 출세하면 받는 상이란 생각이 더 컸다. 실제로 이번에 황 전 총리를 선정한 성균관대 총동문회는 2015년엔 이완구 전 총리(수상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이듬해엔 정홍원 전 총리를 선정했다. 다른 주요 대학 동문회들의 수상자 선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직자는 장·차관 이상, 경제계에선 은행장이나 금융지주 회장, 대기업 부회장이나 회장 등 고관대작이 아니면 수상자 후보에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선거라도 있는 해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이 줄줄이 모교의 자랑스러운 동문 반열에 오른다. 높은 지위에 오른 것만으로 ‘자랑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관행은 구태다. 앞으론 어느 동문회든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동문을 수상자로 선정했으면 싶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약자를 보호하고 타인을 배려해 사회를 따뜻이 덥히는 동문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주변엔 지위가 높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몸이 불편한 제자를 며칠씩 업고 다니며 수학여행 꿈을 이뤄 준 교사, 자비로 버스를 구입해 몰고 다니면서 수년째 오지 주민들을 치료해 온 의사, 남들이 맡지 않는 재심사건에만 매달려 누명을 벗겨 주는 변호사 등등. ‘자랑스러운’이란 수식어가 넘치지 않는, 사회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앞으론 시상식장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sdragon@seoul.co.kr
  • “中은 언론인 감옥… 52명 수감 세계 최대”

    “中은 언론인 감옥… 52명 수감 세계 최대”

    52명의 기자가 구금 상태인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언론인 감옥’이라고 국제 언론인 인권보호 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19일 연례보고서를 통해 밝혔다.RSF는 1995년부터 매년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과 폭력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는 65명의 언론인이 사망했다. 26명은 취재 도중 사망했고 39명은 살해당했는데 시리아에서 12명, 멕시코에서 마약 거래 등을 취재하던 기자 11명이 목숨을 빼앗겼다. 특히 중국은 반체제 언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진 않지만 대신 감옥에서 질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고의적으로 방치한다고 RSF는 지적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와 반체제 인사 블로거 양퉁옌을 그 예로 들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감옥에서 암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RSF는 또 2004년 언론 자유상 수상자인 황치(黄琦·54)도 고문을 당했지만 쓰촨성 몐양에서 치료를 거부하고 수감 중이라고 우려했다. 1998년 갑자기 실종된 시민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인권보호 사이트 ‘64티엔왕’을 설립한 황은 종양, 신장질환 등으로 보석을 신청했으나 중국 당국은 응답조차 없는 상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섬과 섬, 그리움이 다리 되어

    섬과 섬, 그리움이 다리 되어

    딱 하나가 덧붙여졌습니다. 섬과 섬 사이에 다리 하나가 새로 놓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풍경은 몇 곱절 넘게 확장됐습니다. 전남 완도의 장보고대교. 완도 끝자락의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다리입니다. 길고 외로운 다리는 고즈넉했습니다. 더이상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됐던 섬에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새로 놓인 다리를 따라 완도와 강진을 돌아봤습니다. 갯마을 위주로 돌다 보니 얼추 마름모꼴의 궤적이 그려지더군요. 그러니 이를 ‘다이아몬드 드라이브’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어디 코스의 형태뿐이겠습니까. 길 주변에 매달린 풍경들도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장보고대교는 완도 고금도와 신지도를 잇는 다리다. 길이는 1305m. 2010년 공사가 시작돼 지난 6일 완공됐다. 이로써 완도 아래 섬들이 약산대교(약산도~고금도), 신지대교(완도읍~신지도), 고금대교(강진~고금도)와 함께 4개 교량으로 모두 연결됐다. 다이아몬드 드라이브 여정의 들머리는 완도다. 강진 쪽에서 짚어오는 게 거리상 더 가깝지만, 어딘가 불공정한 느낌이다. 완도의 다리를 방문하겠다면서 강진부터 찾다니 말이다. 게다가 강진만으로 쏟아지는 해거름의 금빛 물비늘과 마주하려면 강진을 날머리로 삼는 게 낫다.●완도 끝길서 신지도·고금도로 새로운 길 시작 완도타워부터 찾는다. 일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완도타워는 읍내 뒤편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조성됐다. 높이는 76m. 차로도 오를 수 있지만 관광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맛도 각별하다. 타워에 오르면 인근의 섬 등 어지간한 관광명소는 죄다 눈에 담을 수 있다. 완도타워 아래는 산책로다. ‘미소정원’, ‘바다정원’, ‘꽃비가든’ 등이 조성돼 있다.완도타워에서 꼬박 십리 떨어진 곳에 구계등(명승 3호)이 있다. 모래로 이뤄진 여느 해변에 견줘 구계등은 둥근 갯돌로 이뤄졌다. 바다에서 해안 언덕까지 갯돌의 층이 아홉 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 해서 구계등(九階燈)이다. 갯돌은 젖먹이 손바닥만 한 것부터 무등산 수박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크기는 달라도 파도와 바람이 깎아낸 모양새는 하나같이 둥글다. 그 때문에 보는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눈여겨보던 갯돌의 위치를 잃기 일쑤다. 늘 같은 건 없고, 늘 다른 것도 없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갯돌들이 소리를 낸다. 차르르~. 낮고 고른 소리다. 귀를 씻어 주고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듯하다. 완도는 통일신라 때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한 해상왕 장보고의 고장이다. 장좌마을 일대에 장보고공원, 장보고기념관, 청해진 유적(사적 308호) 등이 있다. 장좌마을에서 연도교를 건너면 청해진 유적이 있는 장도다. 내성문과 외성문, 고대, 사당, 굴립주 등이 복원돼 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유적지 가장 높은 곳의 망루에 서면 외남문 너머로 고금도와 신지도, 더 멀리 강진의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벽 아래엔 약 1200년 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목책이다. 1959년 태풍 사라가 지날 때 거센 바람이 갯벌을 깎으면서 발견됐다. 제대로 보려면 날물 때 찾아야 한다. 장좌마을엔 한켠에 장군샘이 있다. 사각형의 우물이다. 당시 성 안의 주민들과 병사들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물은 여전히 맑다. 직사각형의 빨래터는 요즘 주민들이 파래 등을 씻는 장소로 쓰인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건너면 신지도다. 이 섬에 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명사(鳴沙)는 모래가 운다는 뜻이다. 모래밭이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퍼진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곱디고운 모래가 가득한 해안은 길이가 4㎞에 이른다.●4㎞ 길이 모래사장, 파도소리에 마음도 씻기네 신지도 끝에서 장보고대교를 건넌다. 차창 너머로 일대의 풍경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다리를 건너면 곧 고금도다. 읍내 곳곳에 작은 현수막이 나붙었다. 현수막엔 ‘면민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현수막을 내건 이들은 ‘50년 동안 뱃길 지킨 (주)풍진해운 직원 일동’이다. 풍진해운은 신지 송곡항에서 고금 상정항을 오가던 철부선을 운항했던 회사다. 50년 동안이나 섬 주민을 실어 날랐으니 뱃전에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새겨져 있을까. 그 철부선의 명맥이 장보고대교의 개통으로 끊긴 것이다. 철부선만 사라진 게 아니다. 고금터미널에서 철부선을 타고 바다 건너 완도군청까지 다녀오던 군내버스도 사라졌다. 이제 배를 타고 목적지를 오가던 독특한 군내버스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세상에 다 좋은 것은 없는 거다.●이순신 장군 묻혔던 곳에서 다도해 굽어보며… 고금도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선연히 새겨진 섬이다. 당대의 흔적이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계추를 당대로 돌리면 영화 같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1597)에서 대승을 거둔 뒤 고금도에 수군 본영을 설치한다. 당시 조선 수군과 합세해 기세를 떨쳤던 이가 명나라 장수 진린이다. 진린은 1598년 7월 전함 수백척과 2만여 수군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의 진영 옆 해안에 주둔한다. 승리를 빌기 위해 바다 바로 옆에 관왕묘도 세운다. 삼국지의 명장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그러나 이해 11월 19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이순신 장군의 시신은 관왕묘 바로 앞의 작은 섬에 안치된다. 당시 장군의 가묘가 있던 자리가 바로 현재의 월송대다. 장군의 유해는 소나무 아래에서 83일간 안식한 뒤 충남 아산으로 운구된다. 그러다 한국전쟁 뒤 관왕묘는 옥천사로 옮겨졌고, 1959년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지면서 이 충무공의 사당인 ‘충무사’로 이름을 바꾼다. 충무사는 이듬해 사적 제114호로 지정된다.고금도에서 약산연도교를 건너면 약산도다. 제법 너른 섬이다. 다리 인근의 전망대에 오르면 다도해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고금도에서 고금대교를 건너면 한국의 대표적인 미항으로 꼽히는 마량항이다. 후박나무가 무성한 까막섬(천연기념물172호)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강진 땅은 여기부터 시작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입간판이 선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이어 가면 곧 가우도다. ‘강진만의 여의도’라고 불리는 섬이다. 여의도가 대방동, 마포와 다리로 연결됐듯 가우도 또한 도암면과 대구면 방향으로 각기 다른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차는 갈 수 없는 도보 전용 다리다. 걸어서 너른 강진만을 횡단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륙교가 생기기 전엔 무인도처럼 썰렁했던 섬이 이젠 제법 번다해졌다. 강진의 명소로 확실히 발돋움한 결과다. 가우도 옆은 하저마을이다. 저두바닷길이 이 마을에 조성돼 있다. 너른 갯벌, 찰랑대는 바다는 지친 가슴 안길 만큼 늘 넉넉하다. 드넓은 갯벌에선 삶의 체취도 짙게 묻어난다. 고깃배 타고 나간 아버지와 갯일하는 어머니의 묵묵한 삶이 응어리진 공간이다. 저물녘이면 갯벌은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한다.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겨 생긴 웅덩이마다 금빛 햇살이 담긴다. 그 모습이 꼭 반짝이는 보석을 보는 듯하다. 글 사진 완도·강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강진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어느 방향으로 도느냐에 따라 국도 선택도 달라진다. 완도 쪽으로 돌겠다면 강진에서 해남 방면 18번 국도, 강진 쪽을 먼저 보겠다면 23번 국도를 타야 한다.→맛집: 완도 읍내에 먹거리 타운이 조성돼 있다. 고금도에선 요즘 석화 채취가 한창이다. 도시의 수산시장에서는 구경조차 어려운 굵은 씨알의 굴을 싼값에 맛볼 수 있다. 강진 쪽에선 바지락회무침을 맛봐야 한다. 칠량면의 청자식당(435-1515)이 유명하다. 읍내에 오감통 먹거리장터가 있다. 다양한 한정식집이 밀집돼 있다. 읍내에서 다소 멀긴 해도 병영면의 수인관(432-1027), 설성식당(433-1282) 등은 관광 삼아 찾는 게 좋다. 달달한 돼지불고기로 이름났다. →잘 곳: 완도읍내에 완도관광호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소가 밀집돼 있다. 강진 주작산 자연휴양림(430-3306)도 좋다. 적요한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 백승주 의원 “방청객 3차례 피고 변론은 특혜” 민유숙 후보 “다른 사건도 기회 줘”

    백승주 의원 “방청객 3차례 피고 변론은 특혜” 민유숙 후보 “다른 사건도 기회 줘”

    청탁보석 의혹… 법원기록 없어 권순일 선관위원 보고서 채택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청탁 보석’ 의혹을 비롯해 민 후보자가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재판에서 방청객에게 발언권을 준 것이 ‘특혜’라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민 후보자가 담당했던 범민련 재판을 언급하며 “당시 방청객에게 세 차례나 피고인을 위해 변론을 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민 후보자의 배우자(국민의당 문병호 최고위원)는 민주당 소속이었고 피고인이었던 최동진 범민련 편집국장은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정치적 고려나 배우자에 대한 고려 때문에 했는지 공정성에 의심이 든다”는 내용이 담긴 조선일보 사설을 인용했다. 이에 민 후보자는 “(다른 사건에도) 대부분 발언 기회를 줬다”고 해명했다. 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변호사의 청탁을 받고 보석을 허가해 줬다가 다른 판사로부터 항의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 후보자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이어졌지만 법원 기록 확인 결과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보석 신청 자체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민 후보자는 또 교통법규 상습 위반 의혹과 관련, “일단 송구스럽고 사과드린다”면서 “(제가) 차량을 운행하면서 (위반한 것은) 두 차례였고 배우자, 배우자 사무실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면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후보자는 2008년부터 주정차 위반과 버스전용차로 위반 등 22차례(77만 2480원) 과태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민 후보자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전날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옹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낙태죄에 대해서는 “낙태 허용 범위를 세분화하는 방향도 신중히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여야는 한편 이날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원 후보자에 대해 만장일치로 ‘적격’ 의견을 담은 청문보고서 채택 안건을 의결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 ‘청탁받고 보석 허가’ 의혹에 “기억 없다”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 ‘청탁받고 보석 허가’ 의혹에 “기억 없다”

    민유숙(52·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 후보자가 20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탁 보석’ 의혹을 부인했다.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민 후보자가 1994년 광주지법에서 근무할 때 한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피의자의 보석을 허가했다는 ‘청탁 보석’ 의혹을 제기했다. 주 의원은 “휴가 간 형사단독 판사를 대리해 민 후보자가 직무를 보면서 심야 중앙선 침범 사망사건 피의자의 보석을 허가했는데, 이후 휴가에서 복귀한 담당 판사가 강력히 항의했고 이에 모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한 일이라고 실토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민 후보자는 청탁했다고 거론되는 모 변호사에 대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누군지 모르겠다. 평소 친분도 없다”며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주 의원은 “판결문으로는 보석 관련 내용의 규명이 쉽지 않고 사건 기록은 보존돼있지 않으니 비공개로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판사를 (불러) 증인신문을 하자”고 요구했다. 민 후보자는 ‘강력히 항의했다’는 판사와의 관계를 묻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형사 재판이 아니라 민사재판을 같이했던 시절 언쟁은 있었다고 답했다. 민 후보자는 “(해당 판사가) 민사재판에서 직원과의 업무 협조 문제로 직원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고 개입했다가 그 판사가 고성을 내고 저에 대해서도 질책한 적이 있었다”며 “당시 제가 나이도 어리고 잘 지내보자는 마음에서 그 자리에서 사과한 일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 후보자는 형사 재판의 보석 허가와 관련해서 언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홍일표 한국당 의원은 논란이 된 변호사의 증인신문과 관련해서는 간사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주에서 체포된 ‘북한의 경제 간첩’ 최찬한, 그는 누구인가

    호주에서 체포된 ‘북한의 경제 간첩’ 최찬한, 그는 누구인가

    호주 연방 경찰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북한 정권을 도운 ‘경제 간첩’으로 체포한 호주 남성 최찬한(59)에 대한 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졌다고 영국 BBC가 18일 전했다. 최씨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에서 30년 이상 거주하며 자연스럽게 시민권을 땄으며 지금은 병원 청소부로 일하며 홀로 시드니 외곽 이스트우드의 전셋집에서 지내고 있다. 또 한국인 기독교도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일간 ‘오스트레일리언’ 기사를 인용해 소개했다. 경찰은 그를 “고차원의 애국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것으로 믿는 충성도 높은 간첩”이라고 표현했다. 옛날 교회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북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 뒤 사람이 달라졌으며 곧잘 북한을 방문하는 등 더 노골적으로 북한에 경도됐다. 한 친구의 아내는 “우리 남편이 그와 만나는 게 싫었고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싫었다. 많은 이들이 안전 때문에 두려워했다”며 “북한에 자주 오가면서 그는 매우 비밀스러워졌고 아주 이상하게 변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부부는 그의 체포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최씨가 자신의 돈을 북한에 송금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했다고 밝혔다. 이웃들은 현지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점잖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씨는 다른 나라와 탄도미사일을 판매하려는 협상을 시도하고 석탄과 같은 상품을 중개함으로써 유엔과 호주 정부의 제재를 위반하는 등 여섯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가 인정되면 10년 형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17일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북한 미사일부품 수출도운 한국계 호주브로커 체포

    북한 미사일부품 수출도운 한국계 호주브로커 체포

    북한산 미사일 부품과 석탄 등의 불법 수출을 중계하려던 한국계 호주인 브로커가 호주 연방경찰에 체포됐다.17일(현지시간) 호주 연방경찰에 따르면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국계 남성 최모(59)씨가 암호화된 통신수단으로 북한의 대량생산무기판매를 중개하고 공급을 논의한 협의로 16일 체포됐다. 최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에 귀화해 30년 이상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씨가 북한의 ‘경제적 대리인’으로 북한 미사일, 부품, 기술 등을 외국 기관 등에 팔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가 팔려던 미사일부품 중에는 탄도미사일 유도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산 석탄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수출할 수 있도록 알선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석유와 보석같은 제품의 거래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08년부터 최씨를 조사해온 연방경찰은 최근 다른 국제기관의 제보로 체포하게 됐다. 일단 지난해 범죄 행위에 관련한 6가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고 보강 수사를 통해 추가기소를 한다는 방침이다. 호주 연방경찰 닐 고건 부청장은 “최씨는 충성스러운 북한 대리인으로 본인 스스로 애국적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고 믿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그가 북한 정부를 위해 돈을 벌어 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팔 것이라는 점이며 만약 이들 거래가 성공했다면 국제 사회의 대북 무역제재를 위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수천만 달러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유엔과 호주의 대북제재를 각각 위반해 호주의 대량살상무기법에 따라 기소되는 첫 사례가 됐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내려진다. 이 사건과 관련해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북한을 도우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연방경찰이 찾아낼 것”이라며 “북한은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하고 무모한 범죄 정권인 만큼 더 많은 경제적 압박이 가해질수록 더 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끈질기게 제재를 집행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주 경찰, 미사일 기술 수출 시도한 59세 북한 남성 체포

    호주 경찰, 미사일 기술 수출 시도한 59세 북한 남성 체포

    호주 연방경찰이 북한 남성을 산업 스파이 혐의로 시드니에서 체포했다고 영국 BBC가 17일 전했다. 최찬한(59)이란 이름의 이 남성은 호주에서 30년 넘게 거주해왔는데 밀무역을 중개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거래하는 협상에 나선 의심을 받고 있다. 그는 전날 밤 시드니의 이스트우드 지역에 있는 자택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그가 유엔과 호주 정부의 북한 상대 제재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 1995년 호주에서 입법된 대량살상무기(확산) 금지법에 의거해 기소된 첫 사례라고 방송은 전했다. 최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보석 없이 10년은 교도소에서 지내야 한다. 경찰은 또 최씨가 “북한의 고위 관리들”과 접촉한 증거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기술 등을 판매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북한산 무연탄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수출하는 계약을 중개하는 일을 쭉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를 “고차원의 애국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것으로 믿는 충성도 높은 간첩”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그가 행한 잘못이 해외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호주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혐”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닐 고건 호주 연방경찰 부청장은 “그의 기소가 어떤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안다. 호주 영토에 어떤 무기나 미사일 재료들이 온 적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는 점만 분명히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호주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제재 방침과 거리를 둬야 “재앙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북한 정부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개구지고 해맑은 자화상 윤동주·일주 형제의 동시

    [이주의 어린이 책] 개구지고 해맑은 자화상 윤동주·일주 형제의 동시

    민들레 피리/윤동주·윤일주 지음/조안빈 그림/창비/112쪽/1만 1000원 ‘누나!/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흰 봉투에/눈을 한 줌 넣고/글씨도 쓰지 말고/우표도 붙이지 말고/말쑥하게 그대로/편지를 부칠까요.//누나 가신 나라엔/눈이 아니 온다기에.’(편지)서설(瑞雪)처럼 티 없는 동심의 이야기가 닮은 듯 다른 형제의 시편에 담겼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1917~1945)와 그의 동생 윤일주(1927~1985)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의 동시를 모은 시집이 나왔다. 1935~1938년 윤동주가 쓴 동시 34편과 1955년 ‘문학예술’로 등단한 윤일주의 동시 31편을 모은 ‘민들레 피리’다. 윤동주 시인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인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부터 연희전문학교 문과 1학년까지 동시를 썼다. ‘윤동주 평전’을 쓴 송우혜 작가는 “한국문학사의 보석 상자인 윤동주 시집에 가만히 숨어 있는 존재들이 그의 동시들”이라며 “그의 시에는 그가 겪은 인생 자체가 들어 있다고 한다면, 그의 동시에는 그가 겪은 삶의 행복이 담겨 있다”고 서문에 썼다. 그 말대로 윤동주의 동시에는 개구지고 해맑은 소년의 얼굴이 들어 있다. ‘서시’, ‘자화상’ 등에서 나타나는 염결한 청년 이미지만 생각해 온 독자라면 새로운 발견이랄 만하다. 엄마에게 빗자루로 볼기짝을 맞고 빗자루를 숨겼다 또 야단맞는 모습(빗자루)이나 동생이 이불에 싸 놓은 오줌 자국을 보고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갸우뚱하는 모습(오줌싸개 지도)이 담백하고 맑은 언어로 시가 됐다. 형의 시심을 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윤일주의 작품에서는 형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읽힌다. ‘눈 감고 불어 보는 민들레 피리/언니 얼굴 환하게 떠오릅니다./날아간 꽃씨는/봄이면 넓은 들에/다시 피겠지./언니여, 그때엔/우리도 만나겠지요.’(민들레 피리)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수출 전사’로 거듭난 국내 금 거래 70년 산증인

    [인터뷰 플러스] ‘수출 전사’로 거듭난 국내 금 거래 70년 산증인

    금은 전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오랜 역사 속에서 꾸준히 가치가 상승하며 부의 상징이자 투자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 가치만큼이나 금을 취급할 때에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945년 창업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귀금속 업체로 입지를 다져 온 ㈜삼성금거래소와 ㈜SM금거래소는 그 브랜드만으로 신뢰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를 이끄는 박내춘 회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신뢰를 받으며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수출 공신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 이웃을 꾸준히 돕는 온정의 손길과 유망 골퍼들을 지원하는 스포츠 후원자로 금보다 빛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사금 채취로 시작했던 부친의 일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 박 회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1945년에 창업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희 부친께서 광산업을 하셨는데, 해방 직후 격동기를 겪으면서 일본 사람들이 광산을 개발해서 채광 후 일본으로 가지고 가고 폐광 인접 지역에서 사금 채취를 많이 하던 시기인데요. 그때 저희 아버님께서 사금 채취를 하시면서 이 업에 뛰어드셨고, 그 이후에 제가 이어받아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시간 사업을 해오시면서 금 거래 환경의 변화도 많으셨지요. -지금은 100% 투명하게 거래가 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부가세 신고제가 생긴 게 1972년도 박정희 대통령 때인데, 귀금속은 사치품으로 분류되어서 특소세가 부과되고 거래 과정도 좀 복잡하고 어려웠죠. 그러던 것이 2000년대 후반 금 거래 전용계좌가 생기고 금 거래 시 부가세가 국고 계좌에 선납되어야 거래가 되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거래도 활성화되고 투명해졌습니다.→지금은 수출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계신데, 이유가 있습니까. -귀금속 업계는 현재 수출에 주력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손재주나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국내 시장 자체가 작다 보니 저희 회사뿐 아니라 많은 주얼리 업체들이 수출증대에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외 수출로 활로를 찾아가야 합니다. →10년 전에 1천만불탑 수상을 했습니다. 지금은 수출이 더 늘었습니까. -금년에는 삼성금거래소에서 3,000만 불, SM금거래소에서 1,000만 불탑을 수상했습니다. 이건 작년 하반기부터 금년 상반기까지의 집계인데, 하반기 실적을 합하면 올해 수출액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주로 어떤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지요. -주로 문양이 들어간 골드 코인입니다. 저희 회사가 한국조폐공사와 MOU를 체결해서 기술 자문도 받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신뢰를 받고 있어요. 코인 제품은 인도와 중국 등으로 수출이 됩니다. 또 다른 품목으로는 미니골드바를 생산하여 수출하고 있고, 주얼리 제품 같은 경우는 미국이나 두바이 등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수출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을 텐데, 해외 진출에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많이 있었지요.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해외 바이어들의 믿음을 사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보기에 믿을 만하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네요. 해외 바이어들이 해당 국가에 나가 있는 무역협회사무실을 통해 신뢰할만한 국내업체를 소개받았다고 저희 회사에 직접 방문을 하고, 회사 직영 공장을 가서 한국조폐공사와 MOU 체결한 사실이나 수출 실적도 확인합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의 신용도와 업력 같은 것도 보고요. 이런 것들에서 저희는 비교적 준비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보다는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납품처는 어떤 곳들이 있습니까. -주얼리 귀금속류는 백화점이나 소매상 같은 곳에 주로 납품하고 또 대기업이나 중소제조업체에 공업용 금을 판매하고, 반도체 제조용으로 납품도 합니다. →한국조폐공사 MOU나 수출 성과 등으로 확실히 믿음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도 금을 살 때는 아무래도 신중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업체의 금은 거의 안 사려고 합니다. 대부분 조폐공사나 저희 회사에서 직접 생산하는 제품을 선호합니다. ‘삼성금거래소’라는 브랜드, 그리고 ´SM금거래소‘라는 브랜드가 그런 면에서 상당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보통 귀금속은 결혼할 때 예물로 사용되지 않습니까. 요즘 소비자들의 귀금속 트렌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저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커플들이 귀금속을 살 때도 실속 있는 제품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중에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려는 차원에서 다이아몬드도 많이 하고, 보석 종류도 많이 찾았는데 지금은 실속을 먼저 생각해요. →미니바를 찾는 소비자들도 많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골드바가 다 고가는 아니거든요. 부가세 포함해서 20만원 또는 10만원에서부터 시작하는 저중량 미니골드바 제품도 있습니다. 저중량 제품부터 고중량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지요. →골프단도 창설을 해서 이끌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주로 남자 골퍼들을 영입해서 육성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골프가 남자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였는데 요즘은 남자골퍼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죠. 여자 골퍼들이 해외에서의 성적도 잘 내고 있는 데 반해 남자 골퍼들은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여자골퍼보다 오히려 남자골퍼를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서 지원하고 있어요. →이웃을 돕는 일도 쉬지 않고 이어가고 계신데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간략히 들을 수 있을까요. -부끄럽습니다만 제가 ‘남북 사랑의빵 나누기 운동본부’라는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전에 이상운 대표님과 함께했는데 이 대표님이 2005년에 세계평화상을 수상했고요. 저는 올해부터 상임대표를 맡았습니다. 대표를 맡으면서 북한 이탈주민 50쌍의 결혼을 후원했어요. 50쌍에게 예물시계와 진주 목걸이 등을 기증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해온 것은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이번에 대한민국 문화예술 다문화봉사대상도 수상하게 됐지요. 크게 한 것도 없는데 너무 큰 상을 받아서 앞으로 더 열심히 돕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향후 회사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삼성금거래소와 SM금거래소는 골드유(GOLD YOU)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여 소비자에게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향후 골드유(GOLD YOU)를 육성하여 소비자가 믿고 신뢰하는 금제품과 원자재인 골드바를 통합해서 사용하는 브랜드로 다가가 앞으로는 금 투자도 브랜드를 믿고 선택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거래소를 이끌어 온 전문가로서 금 거래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에게 조언하신다면. -금은 다른 소비품이나 투자에 비해 가치보전이 잘되는 품목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금의 생산량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치가 유지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안전한 재테크 수단인 셈이죠. 다만 금에 투자를 한다면,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한국조폐공사 제품이라거나 홀 마크 품질보증이 있는 제품을 선택하셔야 안전하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中 반부패 단속에 작은 다이아 ‘품귀’

    中 반부패 단속에 작은 다이아 ‘품귀’

    일본과 수요 겹쳐 가격 상승 중국 정부의 반부패운동이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 엉뚱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뇌물이나 선물용으로 잘 팔렸던 대형 다이아몬드 대신 저렴한 다이아몬드를 사려는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소형 다이아몬드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니혼게이자이신문의 지난 12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최대 보석류 소비국으로, 특히 2014~15년 호경기에 힘입어 보석류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소형 다이아몬드의 표준 품격은 0.2캐럿인데, 중국 웨딩시장에서는 0.3~0.5캐럿 이상의 중형 다이아몬드가 주류를 이뤘다. 다이아몬드 가격은 무색에 가깝고 내부에 불순물이나 흠이 적을수록 비싸진다. 중국에서는 가장 무색에 가까운 D컬러, 불순물이 가장 적은 ‘Flawless’나 ‘IF’가 많이 팔렸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전부터 소형인 0.15~0.25캐럿에 색이나 투명도도 조금 떨어지는, 저렴한 가격의 다이아몬드를 선호했다. 그런데 일본 보석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바이어들이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저가 다이아몬드를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보석가공업체 구와야마의 한 관계자는 “인도에 구매를 하러 갔더니 이전이라면 가격이 좀더 높은 제품을 샀던 중국 바이어와 경합을 하게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선호하는 다이아몬드 등급이 겹치면서 수요가 집중돼 0.2캐럿 다이아몬드가 1캐럿 환산으로 지난해보다 약 10% 오른 6만~8만엔(약 58만~77만원)에 팔리고 있다. 중국인들이 소형 다이아몬드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에 대해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시진핑 정권이 부패척결운동에 열을 올리며 부패 단속을 강화해 뇌물이나 선물용 다이아몬드 수요가 정체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도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한편 전 세계 보석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시장에는 돈이 몰려들면서 희귀하거나 알이 굵은 다이아몬드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최대 경매업체 마이니치옥션이 주최한 경매에 나온 2.27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가 일본 귀중품으로는 최고가인 2억 2500만엔에 낙찰된 것이 대표적이다. 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의 경우 0.015캐럿에 20만~25만엔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10년 전 가격의 두 배다. 이에 대해 일본 보석수출입업체 스와무역 하라다 노부유키 대표는 “세계적으로 금융완화 상태가 이어져 여윳돈이 다이아몬드에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미국(244억 달러·약 26조 6400억원), 인도(199억 달러), 홍콩(189억 달러), 벨기에(154억 달러), 아랍에미리트(92억 달러), 중국(78억 달러) 순이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실종 8개월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호주 주부…남편 살인 혐의로 체포

    실종 8개월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호주 주부…남편 살인 혐의로 체포

    실종된 지 8개월 만인 지난 2월 호주의 한 국립공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47세 주부 카렌 리스테브스키의 남편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보스 리스테브스키(53)는 13일 아침 살인 혐의로 체포돼 멜버른 순회법원 법정에 출두했으며 변호인 롭 스타리는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며 검찰과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보석을 신청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그는 구금에 계속 처해진 뒤 내년 4월 18일 다시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그녀의 실종은 호주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져 경찰과 가족, 심지어 호주 영화배우 사무엘 존슨까지 나서 그녀를 목격한 사람은 신고해달라고 청원하는 등 뜨거운 관심사가 됐다. 아내 카렌은 지난해 6월 29일 멜버른 교외 아본데일 하이츠의 자택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사라졌다. 보스의 형은 제수가 여권을 위조해 해외로 도망갔다고 주장했고, 보스와 전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앤서니 리카드는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과 끊임없이 갈등해온 계모가 아버지 곁을 떠났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2월 집에서 50㎞나 떨어진 마운트 마세돈 레지오널 국립공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돼 호주 사회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지난 3월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됐는데 남편 보스도 관을 운구했으며 친딸 새라(21)가 어머니 영정을 들고 추모 행렬의 맨앞에 섰다. 그러다 실종된 지 1년 만인 지난 6월, 경찰은 카렌이 실종된 날 아침 마운트 마세돈으로 향하던 검정색 메르세데스 벤츠 SLK 쿠페 승용차의 동영상을 확보했다. 당시 실종자 수색대는 쿠페 승용차 소유주 20명을 탐문 수사해 문제의 승용차가 카렌 것임을 파악했다. 보스는 경찰에 아내의 2004년형 쿠페의 연료 게이지가 고장난 것을 확인하려고 차를 운전한 것이었으며 문제를 바로잡은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실종 당시 이들 부부는 재정난에 봉착해 110만달러짜리 집은 저당잡혀 있었고 카렌의 패션 가게는 폐점한 상태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어금니 아빠’ 이영학 딸, 정신감정 받는다…“저항없이 지시 따른 이유 확인”

    ‘어금니 아빠’ 이영학 딸, 정신감정 받는다…“저항없이 지시 따른 이유 확인”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의 범행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의 딸 이모(14)양에 대해 법원이 정신 감정을 하기로 했다.이양이 이영학의 범행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따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이성호)는 12일 오전 이영학 부녀와 이영학이 도피하도록 도움을 준 혐의(범인도피)로 구속기소 된 박모(36) 씨의 공판을 열고 이와 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양이 왜 아버지의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태연하게 따랐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 위압적인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양은 이영학의 지시로 지난 9월 30일 초등학교 동창인 A양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신의 집으로 유인, 이후 이영학이 살해한 A양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을 도운 혐의(미성년자 유인, 사체 유기)를 받는다. 당초 재판부는 이날 이양에 대한 심리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정신 감정 결과를 기다린 뒤 이양과 이영학의 결심 공판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이영학은 이날 딸의 재판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딸이 자신을 무서워하고 지시에 따른 이유를 “예전에 내가 화가 나서 키우는 개를 망치로 죽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양 측 변호인은 이영학에게 “상습적으로 딸과 아내를 폭행했기 때문에 (이영학의) 지시에 거부하지 못하고 이양이 따른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이에 이영학은 “심하게 장난한 적은 있어도 아내를 때리지는 않았다”며 “딸을 몇 번 혼내긴 했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엄마한테 말을 함부로 할 때뿐이었다”고 답했다. 이영학은 또 “감정조절이 안 돼서 아이를 혼낸 적이 있다. 그 부분에서 나를 무서워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딸이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이영학은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 10일 이영학의 재판을 열고 추가 기소되는 혐의를 심리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영학을 후원금 편취, 아내 성매매 강요 및 폭행 등 혐의로 조만간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한편 재판부는 이영학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박씨를 보석으로 석방하기로 했다. 이영학의 재판이 추가 기소된 사건과 맞물려 길어질 조짐을 보이는 데다 박씨가 이영학의 범행을 알고도 도피하도록 도왔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연말과 성탄절로 다가서는 계절에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연말과 성탄절로 다가서는 계절에

    유명 가수들이 앞다퉈 캐럴 음반을 내던 시대가 있었다. 1960년대에는 트로트를 주로 부른 이미자, 배호의 캐럴 음반도 있을 정도이니 그 열풍을 짐작할 만하다. 1980년대까지도 12월이 되자마자 길거리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울려 퍼지고 성탄 카드와 트리 장식품들이 번쩍번쩍 내걸렸다. 이제 이런 풍경도 옛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 국가도 아닌 나라에서 성탄절을 휴일로 제정한 것부터가 희한한 일이다. 미군정 경험과 기독교인 대통령이 그런 결정의 중요 배경이었겠지만 확실히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5년에나 이르러서이다. 성탄절을 요란하게 보내는 것이 촌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90년대였다. 올림픽을 치르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정부가 ‘세계화’를 내세우던 시대, 이제 미국과 서유럽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그리 엄청나 보이지 않게 된 시대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촌스러운 짓을 그만둘 수 있었다. 조용한 휴일 성탄절은 무언가 생각하기 좋은 날이다. 인간 세상과 신의 의미를 생각할 만한 날인 것이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후렴)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저 캄캄한 곤욕의 거리/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후렴)‘금관의 예수’ (1972, 김지하 작시, 김민기 작곡) 이 노래의 역사는 노래 가사 내용만큼이나 아프다. 처음 발표된 음반에서부터 이 노래는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1976년 양희은의 캐럴 음반에 숨어 있던 보석 같은 트랙이건만, 제목은 ‘주여 이제는 그곳에’였다. ‘여기의 우리’가 ‘그곳 그들’로 바뀌고 ‘어두운 북녘 땅에 한 줄기 빛이 내리고’란 반공주의적 가사가 들어가서야 겨우 발표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얼굴 여윈’, ‘죽음 저편’ 같은 가사, 김지하, 김민기란 이름도 모두 제거되어 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양희은의 고육지책이었는데, 이후 양희은이 창작자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다는 후문이다. 법과 무관한 민중가요권의 비합법 음반과 악보집에서나 원작 그대로 수록될 수 있었다. 제목과 가사가 훼손되지 않고 합법 음반에 수록된 것은 1993년 김민기 전집음반에서였다. 화려하고 처절한 양희은의 목소리와 달리, 낮고 음울한 김민기의 목소리는 기도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 노래는, 김지하가 쓰고 연출하여 1972년 서강대 운동장에서 공연한 연극 ‘금관의 예수’에 삽입된 작품이었다. 연극 ‘금관의 예수’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에서 모티브를 빌려왔다. 1971년 김지하는 황금에 갇힌 왕자 모티브를 구리에 갇힌 이순신으로 바꾸어 ‘구리 이순신’을 발표했고, 다시 이듬해에 이순신을 예수로 바꾸어 ‘금관의 예수’를 썼다. 금관에 짓눌려 답답해하는 예수가, 굶주린 문둥이와 거지에게 자신의 금관을 벗겨달라고 부탁하지만, 결국 금관을 벗긴 거지와 문둥이는 경찰에게 절도죄로 잡혀간다는 이야기이다. 노래의 험한 역사만큼이나 연극의 내용도 가슴 아프다. 이 노래는 지금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무릎 꿇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기도로 종종 현실로 불려나온다. ‘죽음 저편 푸른 숲’의 천국을 기다리기엔 지금의 삶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기도이다.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아직 이 땅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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