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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를 잃은 황량한 계절… 그 끝에 사랑이 피어났다

    엄마를 잃은 황량한 계절… 그 끝에 사랑이 피어났다

    소설에 쓰인 모든 문장에 눈물이 맺혀 있다. 애써 참다가도 끝내 터지고야 만다. 왜? 한없이 공허하다고 느낀 이 세상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의 신작 ‘겨울을 지나가다’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의 상처를 보듬는다. 죽음의 고통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죽음과 마주하기 전엔 이를 모른다. 언제나 영원히 살 것처럼 굴며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을 매일 허비하는 이유다. 작가는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고. “겨울은 춥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그래서 아주 차갑고 길쭉한 통로가 연상되지만, 그 통로 끝은 어둡지 않으니까요.”(‘작가의 말’ 중에서)소설은 겨울이라는 통로를 지나 봄으로 향하는 이들을 그린 일종의 ‘로드무비’다. 동지(冬至)와 대한(大寒), 우수(雨水)로 이어진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그야말로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 췌장암을 선고받은 엄마는 잇단 치료에도 차도가 없자 “이제 그만하고 싶다”며 투항한다. 죽을 때가 돼서야 “북유럽이 어떤 데인지 보고 싶긴 했다”고 고백하는 엄마에게 주인공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친다. 사랑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기어이 외면한 자신을 향한 통렬한 질책이다. “엄마 갔어, 라고 말하는데 그제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말을 함으로써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는 마음의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듯이. 눈물의 감촉은 따듯했다.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의 온기였다.”(33쪽) 주인공은 그래서 엄마가 되기로 한다. ‘J읍’에 있는 엄마의 집에 내려가 살며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털신도 신는다. 엄마처럼 칼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조금씩 죽음으로 향하던 엄마를 온몸으로 이해한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설 끝부분 이웃에 사는 노파와의 대화에서다. “점심 안 하셨으면 저랑 칼국수 먹어요.” “소화가 안돼.” “밥도 있어요.” “난 안 가지. 밥 그까짓 게 뭐라고 남의 집에서 돈 내고 먹나.” “그냥 제가 드리고 싶어서요. 사 드시는 거 아니고요.” “….” “왜 웃으세요, 할머니?” “그이 딸내미 맞으니까 웃었지.”(111쪽) 천진한 얼굴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지만 상실의 고통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할 반려견 ‘정미’를 주인공은 은근히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감에 집 밖으로 한 발짝 나서지 못할 때도 산책이 필요한 정미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계속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앞으로도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정미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한쪽 무릎을 접고 앉아 정미의 목덜미에 내 뺨을 부볐다. 나를 붙잡아 달라는 듯이, 숲과 그 숲에서 나와 함께 발을 맞추며 걸었던 엄마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기를 바랐던 그 무모한 소망을 깨뜨려 달라는 듯이, 감촉으로 이토록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현생일 뿐이란 걸 알려 달라는 듯이….”(49쪽) 봄은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품고 있었고 그걸 기꺼이 드러내 보였던 목공소 남자 영준과 주인공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둘은 결국 사랑하게 됐을까. 소설은 다만 이렇게 끝난다. “정미와 함께 식당에 도착하자 시내로 나가기 전 반죽해 놓은 밀가루가 기특하게도 먹기 좋을 만큼 숙성해 있었다. 나는 영준씨에게 칼국수를 먹으러 오라고, 어서 오라고 말했다.”(133쪽)
  • 눈물 맺힌 문장은 사랑의 계절로 가려는 몸부림

    눈물 맺힌 문장은 사랑의 계절로 가려는 몸부림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작가정신/140쪽/1만 4000원 소설에 쓰인 모든 문장에 눈물이 맺혀있다. 애써 참다가도 끝내 터지고야 만다. 왜? 한없이 공허하다고 느낀 이 세상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의 신작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의 상처를 보듬는다. 죽음의 고통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기 전엔 이를 모른다. 언제나 영원히 살 것처럼 굴며,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을 매일 허비하는 이유다. 작가는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고. “겨울은 춥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그래서 아주 차갑고 길쭉한 통로가 연상되지만, 그 통로 끝은 어둡지 않으니까요.”(작가의 말 중에서)소설은 겨울이라는 통로를 지나 봄으로 향하는 이들을 그린 일종의 ‘로드무비’다. 동지(冬至)와 대한(大寒), 우수(雨水)로 이어진다. 연중 밤이 가장 긴 절기인 동지는 그야말로 겨울의 한가운데. 췌장암을 선고받은 엄마는 잇단 치료에도 차도가 없자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고 투항한다. 죽을 때가 돼서야 “북유럽이 어떤 데인지 보고 싶긴 했다”라며 고백한 엄마에게 주인공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친다. 사랑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기어이 외면한, 자신을 향한 통렬한 질책이다. “엄마 갔어, 라고 말하는데 그제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말을 함으로써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는 마음의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듯이. 눈물의 감촉은 따듯했다.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의 온기였다.”(33쪽) 주인공은 그래서 엄마가 되기로 한다. ‘J읍’에 있는 엄마의 집에 내려가 살며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털신도 신는다. 엄마처럼 칼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조금씩 죽음으로 향하던 엄마를 온몸으로 이해한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설 끝부분, 이웃에 사는 노파와의 대화에서다. “점심 안 하셨으면 저랑 칼국수 먹어요.” “소화가 안 돼.” “밥도 있어요.” “난 안 가지. 밥 그까짓게 뭐라고 남의 집에서 돈 내고 먹나.” “그냥 제가 드리고 싶어서요. 사드시는 거 아니고요.” “…….” “왜 웃으세요, 할머니?” “그이 딸내미 맞으니까 웃었지.”(111쪽) 천진한 얼굴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지만, 상실의 고통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할 반려견 ‘정미’를 주인공은 은근히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감에 집 밖으로 한 발짝 나서지 못할 때도, 산책이 필요한 정미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계속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앞으로도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정미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한쪽 무릎을 접고 앉아 정미의 목덜미에 내 뺨을 부볐다. 나를 붙잡아달라는 듯이, 숲과 그 숲에서 나와 함께 발을 맞추며 걸었던 엄마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기를 바랐던 그 무모한 소망을 깨뜨려달라는 듯이, 감촉으로 이토록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현생일 뿐이란 걸 알려달라는 듯이…….”(49쪽) 봄은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품고 있었고, 그걸 기꺼이 드러내 보였던 목공소 남자 영준과 주인공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둘은 결국 사랑하게 됐을까. 소설은 다만 이렇게 끝난다. “정미와 함께 식당에 도착하자 시내로 나가기 전 반죽해놓은 밀가루가 기특하게도 먹기 좋을 만큼 숙성해 있었다. 나는 영준 씨에게 칼국수를 먹으러 오라고, 어서 오라고 말했다.”(133쪽)
  • 성진환·오지은 이혼 발표 “갑작스럽지만…”

    성진환·오지은 이혼 발표 “갑작스럽지만…”

    스윗소로우 출신 성진환과 가수 오지은이 이혼을 발표했다. 성진환과 오지은은 22일 각자 이혼 소식을 직접 알렸다. 성진환은 “오랜 시간 가족으로 함께 지낸 오지은과 얼마 전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고, 실제로도 서로 도와가면서 차분하게 모든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성진환은 “저는 인생을 다시 살게 된대도 이 사람과 지난 모든 시간을 똑같이 보내고 싶다. 오늘의 저 자신을 어제보다 좋아할 수 있게 해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었고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며 “오랫동안 저희 두 사람을 따뜻하게 지켜봐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와 함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털어놨다. 오지은 역시 같은 날 “갑작스러운 얘기입니다만, 저 오지은은 성진환과의 혼인 관계를 마치게 되었다”며 “둘이 긴 시간 대화를 하고 다다른 결론이다. 함께한 시간 동안 그는 연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제게 너무나 많은, 귀한 감정을 가르쳐주었다. 고마움을 안고 앞으로 그의 인생에 있을 기쁨과 행운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비록 저희는 따로 살게 되겠지만 흑당이와 꼬마는 최선을 다해 함께 보살피겠다”고 밝혔다. 성진환과 오지은은 4년 열애 끝 지난 2014년 결혼했다. 성진환은 2005년 스윗소로우로 데뷔, 지난 2019년 탈퇴 후 현재 만화가로 활동 중이다. 오지은은 2006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서 동상을 수상 후 이듬해 1집 앨범 ‘지은’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11월 23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3년 11월 23일

    쥐 36년생 : 과욕은 허탈감만 온다. 48년생 : 가까운 이의 말을 너무 믿지 마라. 60년생 : 만사가 형통하다. 72년생 : 곧 좋은 운이 들어온다. 84년생 : 알고 지내던 사람과 급진전 된다. 소 37년생 :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마라. 49년생 : 허영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 61년생 : 가족에게 좋은 소식 들릴 수. 73년생 :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마라. 85년생 : 어려움이 닥쳐도 방도 생긴다. 호랑이 38년생 : 컨디션 유지에 힘써라. 50년생 : 재물 욕심부리다 망신당한다. 62년생 :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라. 74년생 : 참고 견디면 웃는 날이 다가온다. 86년생 : 새 일 벌이면 손해 보겠다. 토끼 39년생 : 운이 급상승하니 기쁘다. 51년생 :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재물운 있다. 63년생 : 서두르다가 뜻밖의 어려움 있겠다. 75년생 : 친인척으로 인한 고민 있겠구나. 87년생 : 선후배 관계에 신경 써라. 용 40년생 : 기다리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좋겠다. 52년생 : 안정을 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64년생 : 사소한 일이라도 성심성의껏 다하라. 76년생 : 최선을 다하라. 좋은 일 있다. 88년생 : 문서 관계는 곧바로 해결하라. 뱀 41년생 : 잃는 것 많지만 얻는 것이 있다. 53년생 : 스스로 진퇴를 분명히 하라. 65년생 : 유흥장 출입 삼가라. 77년생 : 의욕은 넘치나 행동은 신중히. 89년생 :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구설수. 말 42년생 : 가정에서 기쁜 일 생긴다. 54년생 : 구설수를 조심하라. 66년생 : 계획된 일이 자꾸 늦어진다. 78년생 : 경사스러운 일 있겠다. 90년생 : 일 관련 기쁜 일이 생긴다. 양 43년생 : 큰일은 꿈꾸지 마라. 55년생 : 친한 사람으로부터 도움받는다. 67년생 : 자존심만 억제하면 행운 있다. 79년생 : 기쁜 일 중에 궂은일 있다. 91년생 : 심신이 피곤하지만 미래는 밝다. 원숭이 44년생 : 어려운 일이 생기나 곧 풀린다. 56년생 : 서두르지 않아도 명예가 따른다. 68년생 : 사업 계획이 들어오겠다. 80년생 : 작은 이득이 있겠다. 92년생 : 혼자 고민하는 외로운 형국이구나. 닭 45년생 : 작은 것이 쌓여 커다란 행운이 있겠다. 57년생 : 가정의 근심은 곧 해결. 69년생 : 신수가 태평하구나. 81년생 : 친구와 휩쓸려 다니지 마라. 93년생 : 지나친 경쟁을 삼가야 길하다. 개 46년생 : 재물운 넘치니 이웃을 보살펴라. 58년생 : 겉치레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70년생 : 생각지도 않았던 행운이 찾아든다. 82년생 : 성급하게 결정하면 후회한다. 94년생 : 먼 곳에서 기쁜 소식 있겠다. 돼지 47년생 : 약속이 미루어진다. 59년생 : 너도나도 도와주니 행운이 넘쳐난다. 71년생 : 성공이 눈앞에 보인다. 83년생 : 한꺼번에 큰 것을 노리지 마라. 95년생 : 시빗거리가 생기니 조심하라.
  • 이혼한 아내 13년간 간병해준 남편…“임대주택 물려줘야”

    이혼한 아내 13년간 간병해준 남편…“임대주택 물려줘야”

    이혼 뒤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를 위해 사망할 때까지 10여년간 옆에서 보살피며 함께 살아온 전 남편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사실혼 배우자로서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22일 권익위에 따르면 A씨는 1979년 아내 B씨와 이혼한 뒤 30년간 떨어져 지내다 2009년 “아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만나게 됐다. 당시 생활고로 옥탑방에 혼자 살았던 B씨는 당뇨 합병증에 치매까지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A씨는 B씨를 간병하기 위해 함께 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아내 명의로 임대주택도 신청했다. 이 곳에서 A씨는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13년간 함께 살며 병간호를 도맡았다. 그러나 2022년 아내가 숨지자 LH는 A씨에게 “법률상 배우자가 아니다”라며 “B씨 명의의 임대주택에서 퇴거하라”고 요구했다. 법적인 혼인 관계인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임대주택 명의를 승계해 그대로 거주할 수 있지만, A씨는 이미 이혼한 상태라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A씨는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신청했고, 권익위는 “법적인 배우자는 아니더라도 사실혼 관계로서 배우자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권익위는 A씨가 해당 임대주택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명의 승계를 허용해야 한다고 LH에 권고했다. 권익위는 현장 조사를 통해 ▲A씨가 약 13년간 B씨를 간병한 사실 ▲부부로서 함께 생활을 한 사실 ▲A씨가 80세가 넘은 고령인 점 ▲A씨가 B씨 간병 과정에서 입은 낙상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상태인 점 등을 감안해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권익위 김태규 부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사실혼 관계 배우자에게 임대주택 승계가 가능함을 확인해 준 사례”라며 “앞으로도 형식적인 법 논리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는 국민이 없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 독신으로 산 뭉크가 그린 금쪽같은 아이들 [으른들의 미술사]

    독신으로 산 뭉크가 그린 금쪽같은 아이들 [으른들의 미술사]

    안과의사 막스 린데 박사(Dr. Max Linde, 1862~1940)는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초기 후원자 가운데 하나다. 1902년 뭉크는 린데 박사와 함께 지내며 린데 박사의 집과 가족을 14점 그렸다. 뭉크는 린데 박사의 네 아이들의 초상을 그렸다. 네 아이들은 공원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오라는 부름을 듣고 지금 막 도착한 참이다. 네 아이들은 외국에서 온 손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뭉크는 낯선 이를 바라보는 이 아이들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 있는 자세로 본 아이들의 성격 표현   뭉크는 이 아이들을 세심한 눈으로 각자의 성격을 표현했다. 키 순서대로 왼쪽에서 벽에 기댄 아이가 첫째 아이이며 그 앞에 막내가 서 있다. 특히 막내와 첫째의 몸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막내는 아직 낯선 이가 두려워 큰형에게 의지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벽에 기대 삐딱하게 서 있는 걸로 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 아이는 벌써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며 동생들 그리고 낯선 이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귀챦다. 그러나 손이 많이 가는 막냇동생만큼은 자신이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다. 반면, 오른편에 서 있는 둘째 아이는 형제들과 따로 떨어져 있어 매우 독립심이 강해 보인다. 다리를 벌리고 뒷짐을 져 매우 강한 자아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빨간 리본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챙긴 걸로 봐서 이제 막 멋부리기 시작한 아이다. 이 시기 아이들의 특징은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꾸미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다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유행하는 모든 아이템을 섞는다는게 문제다. 팔십 평생 독신으로 산 뭉크가 그린 의외의 그림  가운데 배꼽손 자세를 한 셋째는 낯선 사람의 등장을 반기는 유일한 인물이다. 아이는 가운데 서서 낯선 이를 정중한 태도로 맞이하고 있다. 셋째 아이가 보인 환영의 태도는 화가 혹은 관람자를 맞이하는 태도다. 셋째가 보이는 환영의 태도는 형제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 첫째는 책임감으로, 둘째는 자신감으로, 막내는 애교로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지만 셋째는 친근함으로 다가가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막내는 오른손을 뒷짐 지고 있으나 아직 사회 생활이나 다 함께 하는 단체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집단의 규율을 따르지 못한다. 아이의 발은 자제력이나 의지력이 부족해 땅에서 떨어져 있거나 손수건으로 이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네 아이를 여러 차례 관찰한 뭉크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 독립심이 강한 아이, 사회성이 발달한 아이, 그냥 귀여운 아이 등 아이들을 보이는 대로 그렸다. 팔십 평생을 독신으로 산 뭉크가 아이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그린 것은 의외다. 아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금쪽이는 보이지 않는다.
  • “日 유출된 무덤 기록 후손에 돌려주려 기증”

    “日 유출된 무덤 기록 후손에 돌려주려 기증”

    인적사항·행적 기록해 묻은 ‘지석’‘약봉’ 김극일 5점 국학진흥원에 “본관과 이름, 조상의 계보,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무덤 앞이나 옆에 묻는 지석(誌石)은 조상의 얼과 정신이 깃든 유물입니다. 일본 고미술상 등에 우리 지석이 나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제자리를 찾아 주고 후손에게 돌려줘야 제 마음이 편하겠다 싶어 지석 기증을 결심했죠.” 한국국학진흥원은 일본에서 환수한 약봉(藥峰) 김극일(1522~1585)의 지석 5점을 최근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아무 대가 없이 지석을 기관에 기증한 주인공은 일본에 넘어간 우리 문화재 환수에 힘써 온 전윤수(55) 중국미술연구소 대표다. 전 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어느 고미술상에 김극일의 지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직접 사비로 구입했다”며 “김극일이 안동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점을 고려해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약봉의 지석은 그의 사망 143년 뒤인 1728년(영조 4) 밀암 이재(1657~1730)가 쓴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도굴돼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 대표는 “최근 환수되거나 발견된 지석이 완전한 한 벌을 이루는 경우가 드문데 온전한 상태로 찾아오게 돼 기쁘다”며 “국보급 문화재를 고국으로 가져오는 어려운 작업도 중요하지만 지석 같은 유물 환수는 문화재에 열정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지석 기증 행보를 이어 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금릉군부인 심씨 백자 묘지명과 전만추 백자 묘지명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라도 관찰사 홍중하 지석을 국립광주박물관에 잇달아 전달했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사로 중국 고미술을 전공한 전 대표는 지난 28년간 일본에 밀반출된 우리 문화재 환수 작업에 힘을 보태 왔다. 그는 “일본 소장가가 갖고 있는 ‘백제 미소보살’(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환수를 꼭 추진해 보고 싶다”고 했다.
  • “조상 얼 깃든 유물, 제자리로 돌려놔야죠” 지석 기증한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 대표

    “조상 얼 깃든 유물, 제자리로 돌려놔야죠” 지석 기증한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 대표

    “본관과 이름, 조상의 계보,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무덤 앞이나 옆에 묻는 지석(誌石)은 조상의 얼과 정신이 깃든 유물입니다. 일본 고미술상 등에 우리 지석이 나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제자리를 찾아주고 후손에게 돌려줘야 제 마음이 편하겠다 싶어 지석 기증을 결심했죠.” 한국국학진흥원은 일본에서 환수한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 1522~1585)의 지석 5점을 최근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아무 대가 없이 지석을 기관에 기증한 주인공은 일본에 넘어간 우리 문화재 환수에 힘써온 전윤수(55) 중국미술연구소 대표다. 전 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어느 고미술상에 김극일의 지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직접 사비로 구입했다”며 “김극일이 안동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점을 고려해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약봉의 지석은 그의 사망 143년 뒤인 1728년(영조 4) 밀암 이재(李栽, 1657~1730)가 쓴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도굴돼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 대표는 “최근 환수되거나 발견된 지석이 완전한 한 벌을 이루는 경우가 드문데 온전한 상태로 찾아오게 돼 기쁘다”며 “국보급 문화재를 고국으로 가져오는 어려운 작업도 중요하지만 지석 같은 유물 환수는 문화재에 열정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이에 그는 최근 지석 기증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금릉군부인 심씨 백자 묘지명과 전만추 백자 묘지명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라도 관찰사 홍중하 지석을 국립광주박물관에 잇따라 전달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자료팀장은 “그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환수 활동을 펼치며 그 결과물을 관련 있는 지역의 박물관에 기증해 왔는데 이번 사례도 의미있는 기증 행보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사로 중국 고미술을 전공한 전 대표는 지난 28년간 일본에 밀반출된 우리 문화재 환수 작업에 힘을 보태왔다. 그는 “지금까지 들여온 문화재 가운데 10여점 이상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외국에 반출된 문화재를 가져오려면 돈만 가지고는 안 되고 수년간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며 공을 들여야 한다”며 “일본 소장가가 갖고 있는 ‘백제 미소보살’(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환수를 꼭 추진해보고 싶다”고 했다.
  • “결혼 12년간 부부관계 10회 이하” 사연자 등장

    “결혼 12년간 부부관계 10회 이하” 사연자 등장

    결혼 12년 차에 부부 관계가 10회 이하라는 사연자가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해 토로했다. 20일 방송된 KBS Joy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는 부부관계로 고민하는 류경희(41)씨가 출연해 MC 서장훈, 이수근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이날 방송에서 사연자는 “결혼한 지 12년이 됐는데 부부 관계가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고 고백했다. 11살, 10살, 6살의 세 아이를 두고 있다는 사연자는 관계를 가질 때마다 아이가 생겼다며 “남들은 금실이 좋다고 보는데, 불행한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해야 되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혼전 순결주의였다는 사연자는 남편이 연애 1년간 기다려준 끝에 결혼했지만 신혼여행 이후부터는 자신만이 부부 관계를 요구했으며, 첫째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남편이 계속 부부 관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사연자는 남편의 마음이 바뀔 만한 계기가 있었냐는 질문에 “결혼하고 나서 신혼여행에서의 첫날밤이 서로의 기대치에 못 미쳤나보다”라고 답했다. 남편과 대화도 잘 하지 않는다는 사연자는 첫째 낳은 뒤로 쭉 각방 생활을 해왔으며 스킨십도 없다고 전했다. 사연자는 “남편이 하도 저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너무 살이 쪄서 그런가’ 싶어서 30㎏을 감량했는데 관계는 전혀 없었다”고 털어놨다. MC 서장훈은 “우리 추측으로는 정은 이미 떨어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힘들다”고 추측했다. 사연자는 “전 남편한테 사랑 받고 싶었는데 제 남편은 그냥 사람, 아이들만 원한 것 같다”며 “저도 이제 포기했다. 뭔가 얘기하면 싸우게 된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MC 이수근 역시 “남편 마음이 완전 떠났다. 남편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양심으로 (결혼을 유지하는 거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연자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남편이 아이들과 관계가 좋은 줄 알았으나 첫째의 우울증 문제로 상담을 받아본 결과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유대 관계가 형성이 안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 때문에 함께 산다는 남편에게 결국 이혼을 통보했다는 사연자는 “남편이 3개월 뒤에 (이혼) 해준다더라. 지금은 바빠서 안 된다고 그러더라”라고 전해 MC들을 분노하게 했다. MC 이수근은 “서류상으로나 부부지 남편은 계속 거짓말 하고, 넌 그걸 이해해주고 이게 무슨 결혼 생활이냐”라고 안타까워했다. MC 서장훈은 “아직 41살이다. 앞으로 인생이 한참 남았다. 남은 40년을 이런 식으로 살 거냐. 너무 우울하지 않나. 이혼이라는 제도는 너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거다. 너야말로 꼭 이혼해야 한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같은 집에서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너도 일하지 않나. 애 셋 양육비 제대로 받고, 아이 키우면서 네 삶 찾아라”라며 새로운 인생을 응원했다.
  • 16기 옥순 “고교때 하루 용돈 30만원” 부친 수입 어마어마

    16기 옥순 “고교때 하루 용돈 30만원” 부친 수입 어마어마

    ‘나는 솔로’ 16기 출연자 ‘옥순’이 서장훈, 이수근과 만나 ‘억 소리’나는 집안 재력을 과시했다. 옥순은 최근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양악수술설 등 본인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오해들을 풀고자 보살들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혼과 연애, 집안 재력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특히 이날 MC 서장훈이 집안 재력에 대해 묻자, 옥순은 “아버지가 1980년에도 수백억원을 버셨다”라고 답했다. 이어 “고등학교 때 하루 용돈이 30만원이었다”고 덧붙였따. 양악수술설과 관련해선 “나는 솔로 촬영 당시 아파서 지금보다 10㎏ 빠져서 갔다”라며 “원래 턱이 작았지 깎은 적 없다”고 옥순은 해명했다. 이를 듣던 이수근은 “그건 믿는다. 가난한 집 애들이 하관이 발달한다”라며 가난했던 본인의 어린 시절을 설명했다. 옥순은 나는 솔로 다른 출연진과의 연애 소문에 대해선 “그분 말고 새로 만나는 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사귀는 건 아니고 알아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이수근은 “아직 솔로라는 얘기지?”라며 옥순에게 내년에 있을 보살팅에 출연한 것을 권유했다.
  • “한파 속 잠옷 입은 치매아빠에 외투 벗어주고 간 시민”…딸, 눈물 쏟았다

    “한파 속 잠옷 입은 치매아빠에 외투 벗어주고 간 시민”…딸, 눈물 쏟았다

    한파 특보가 내려진 날 잠옷만 입고 길거리를 헤매던 노인에 외투를 벗어주고 경찰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 준 여성의 사연이 뒤늦게 전해졌다. 지난 16일 채널A에 따르면 올가을 첫 한파 특보가 내려진 지난 7일 오전 서울 은평구에서 치매를 앓던 80대 남성이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길거리를 헤맸다. 채널A가 공개한 당시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 사이로 잠옷만 걸친 노인이 느리게 걷다 갑자기 옆으로 넘어진다. 노인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곧바로 달려왔고 그 중 한 여성이 노인을 일으켜 세워 길가에 앉혔다. 여성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노인에게 입혔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따뜻한 음료와 핫팩을 쥐어 주고 20분 동안 곁에 머물렀다. 이 여성은 경찰이 도착하자 자신의 외투도 돌려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출근길 발걸음을 멈추고 노인을 보살핀 여성은 직장인 김선씨로 밝혀졌다. 김씨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어르신이) 몸을 많이 떨고 계셔서 일단 옷을 입혀드렸다. 너무 추우신 것 같아서 옆에 붙어 앉으면 좀 따뜻할까 봐 넘어지지 않게 붙어 앉아서 잡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노인의 집은 그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500m 떨어진 곳이었다. 김씨 덕분에 2시간 만에 아버지를 찾은 딸은 지구대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따님이) 말씀하시면서 너무 우셨다. (제가) 아버님이 안전하게 가셔서 너무 다행이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추위로 인해 동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며 따뜻한 선행을 보인 김씨에게 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 일렁일렁 붉은 물결에 마음의 짐 던져 놓게

    일렁일렁 붉은 물결에 마음의 짐 던져 놓게

    늦은 가을과 이른 겨울이 포개지는 시기다. 중부권 산자락의 수목들은 거의 다 가을색을 털어냈지만 경북 영천처럼 남녘의 분지엔 아직 만추가 머물고 있다. 눈으로 붉은 숲을 담고 귀로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듣자면 역시 늦가을이 제격이다. 영천 팔공산 자락의 중암암을 다녀왔다. 대가람 은해사에 딸린 산내 암자다. 가을의 끝자락, 스산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의 짐을 덜어 낼 의지처를 찾으시는가. 그렇다면 산중 암자로 향하는 호젓한 숲길 트레킹을 권한다.영천 은해사는 ‘은(銀)의 바다(海)’란 뜻의 절집이다. 은해사가 깃들인 팔공산에 안개와 구름이 끼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단풍 일렁이는 가을엔 붉은 바다가 된다. 절집 주변을 감싼 나무들이 대체로 활엽수라서 그렇다. 특히 은해사에서 산내 암자인 중암암(中巖庵) 가는 길이 멋지다. 올해 강수량이 적어선지 바싹 마른 단풍잎이 많긴 한데, 그래도 햇빛이 숲을 비추기 시작하면 곳곳의 단풍들이 붉은빛으로 일어선다. 그 자태가 퍽 장관이다. 팔공산 하면 흔히 대구에 속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 대구 땅은 4분의1 정도다. 이웃한 영천과 칠곡이 대구와 비슷한 지분을 가졌고 나머지는 군위와 경산 등에 흩어져 있다. 입시철에 인기 만점인 갓바위도 사실 경산에 속했다.‘불국토’(佛國土)라 불리는 팔공산엔 크고 작은 절집들이 많다. 그중 은해사는 대구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을 양분하는 대가람으로 꼽힌다. 은해사 일주문을 나서면 곧 금포정(禁捕町)이다. ‘동물의 살생을 금하는 구역’이란 뜻이다. 키 크고 잘생긴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숙종 38년(1712)에 조성됐다니 300년을 훌쩍 넘긴 숲이다. 여기부터 은해사 보화루까지 산책하기 좋은 흙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제법 선 굵은 바위 절벽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가 상쾌하다. 요즈음 은해사에서 가장 멋진 공간은 주변 계곡이다. 수많은 나무들이 계곡을 향해 반쯤 누운 채 멋진 단풍을 드리우고 있다. 은해사는 백흥암, 중암암 등 산내 암자가 8곳, 말사도 50여곳에 이르는 대찰이다. 아름드리 솔숲을 지나 만나는 은해사의 웅장한 자태가 감탄할 만하지만, 늦가을 산사의 매력을 엿보고 싶다면 여기서도 서너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중암암은 은해사에서 4.8㎞ 정도 떨어져 있다. 비교적 높은 산정에 터를 잡아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중암암에 이를수록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의 된비알도 만난다. 다만 등산로로 쓰이는 임도가 잘 닦인 편이어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이른 아침의 산길은 청아하다. 홍진의 악다구니가 없어설까, 한 발짝 오를 때마다 마음도 한 걸음씩 내려가는 듯하다. 승용차도 오갈 수 있긴 한데, 낙엽 깔린 급커브와 급경사 구간에선 위험할 수 있다. 가급적 걷거나 사륜구동 차량을 이용하길 권한다. 산내 암자 중 하나인 백흥암까지 차를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백흥암에서 걸어간다면 1시간 남짓 소요된다. 거리로는 중암암까지 2.3㎞다.중암암은 거대한 바위가 포개져 만든 돌구멍을 지나야 나온다. ‘구멍바위 절집’이라 불리는 이유다. 돌구멍을 지나면 곧 법당 앞마당이다. 마당이라 해야 겨우 손바닥만 하지만 그래도 암자 마루에 앉으면 주변 산들이 부복하고 안겨 오는 장쾌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가을볕이 쏟아지는 마루는 더할 수 없이 여유로운 공간이다. 한소끔씩 불어오는 바람과 산새 소리가 어우러져 고적미를 듬뿍 안겨 준다. 중암암 대웅전의 네 기둥에는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이 주련으로 걸려 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일체의 현상계는 꿈이고 허깨비이고 물거품과 그림자에 불과하고 이슬이나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세상을) 이처럼 보아야 할 것”이라는 의미란다.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법당 앞엔 소원지를 매다는 줄이 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띈다. “주식 대박 나게 해주세요.” 주련의 의미를 알고 걸었을까. 참 얄궂다. 중암암 위로도 볼거리가 꽤 있다. 바로 위 삼층석탑과 석등은 고려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조성양식을 따랐다고 적고 있다. 석탑 주변은 온통 큰 바위다. 꼭 거인족이 거대한 공깃돌을 쌓아 놓은 듯하다. 바위들이 여러 겹 포개지다 보니 곳곳이 돌구멍이다. 그중 하나가 극락굴이다. 좁고 어두운 굴 틈을 세 번 지나면 소원이 이뤄진다니 부디 시도해 보시길. 신라 김유신 장군이 17세 되던 해에 이 석굴에서 수련했고, 원효대사도 화엄삼매에 들어 정진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삼층석탑 바로 옆에 있다.바윗길을 이리저리 돌아 오르면 만년송과 만난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다. 1만년까지야 어림도 없겠지만 물 한 방울 없을 듯한 암반에 뿌리 내리고 힘차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의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넘을 듯하다. 만년송 앞은 삼인암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불붙은 듯한 팔공산 단풍을 조망할 수 있다. 삼인암 바로 아래는 중암암의 중심 법당이다. 여느 전망대와 달리 몸가짐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영천은 여말선초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다. 그의 자취가 임고면 일대에 남아 있다. 임고서원은 포은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처음 조성된 건 조선 명종 때인 1554년이다. 이후 임진왜란 등 여러 전란을 거치며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임고서원은 구서원과 신서원, 포은유물관, 조옹대, 용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서원 들머리엔 선죽교가 조성돼 있다. 이방원(태종)이 회유하기 위해 보낸 ‘하여가’에 완강한 거부의 뜻을 담은 ‘단심가’로 응수했다가 자객에게 살해당한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실제 선죽교는 북한 개성에 있다. 포은의 생가는 임고서원 인근 우항리에 마련됐다.임고서원 입구의 은행나무가 볼만하다. 높이 약 20m,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다른 지역의 은행나무 노거수에 견줘 단풍 시기가 꽤 늦다. 11월 초를 지나고 중순으로 접어들 무렵에야 노랗게 물든다.이 은행나무는 본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심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1592)으로 훼손된 임고서원을 1600년쯤 현 위치로 옮길 때 함께 옮겨 심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선조들의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인 셈이다. 현재는 경북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만추에 가볼 만한 오래된 숲 하나 덧붙이자. 화북면 자천리의 ‘오리장림’(五里長林)이다. 이 마을 주민들이 1500년대부터 조성한 유서 깊은 숲이다. 숲이 5리(2㎞)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숲 가운데로 길이 나고, 태풍 등으로 많은 노거수들이 사라져 지금은 마을 앞 군락지 일부에서만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숲엔 왕버들, 굴참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조화롭게 모여 있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한동훈 장관 부인 진은정씨 첫 공개행보 [포토多이슈]

    한동훈 장관 부인 진은정씨 첫 공개행보 [포토多이슈]

    [포토多이슈] 사진으로 다양한 이슈를 짚어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 연재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부인 진은정씨가 연말 이웃 돕기 적십자 봉사활동에 나섰다.진 씨는 14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앙리뒤낭 홀에서 열린 ‘2023 사랑의 선물’ 제작 현장에서 봉사활동에 참석해 선물꾸러미를 제작했다.진 씨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부인 김희경 씨를 비롯해 다수의 국무위원 부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에서 선물 제작과 함께 중간중간 부족한 물품을 옮기거나, 빈 상자를 치우기도 했다.한편 이번 행사는 주한 외교 대사 부인과 국무위원 및 차관 부인, 금융기관장 및 공공기관장 부인 등 70여 명이 했으며 적십자 봉사원이 결원을 통해 보살펴드리고 있는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위해 방한용품과 생활용품 등 10종을 담아 전달될 예정이다.
  • ‘험지 출마’ 요구받는 장제원, 교회 간증서 “난 눈치 안 보고 산다”

    ‘험지 출마’ 요구받는 장제원, 교회 간증서 “난 눈치 안 보고 산다”

    “우리가 뭐가 두렵고 어렵나. 권력자가 뭐라 해도 제 할 말은 하고 산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당내 영남권 중진 의원들에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를 요구한 가운데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저는 눈치 안 보고 산다. 할 말은 하면서 사는 타입”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꼽히는 장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장제원TV’에서 공개된 한 교회 간증 영상에서 이같이 말하며 “벌써 (정치 인생) 15년째인데 많은 어려움도 겪고 풍파도 있었고 한 번은 4년 쉬기도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지역 주민의 사랑으로 당선되는 기적도 맛봤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저는 눈치 안 보고 산다, 할 말은 하고 산다”며 “아무리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할 말 하고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장제원 험지 출마하라고 하는데 제가 16년 동안 걸어온 길이 쉬운 길이 아니었다”라며 부친이자 부산 사상구 소재 동서대학교 설립자이기도 한 고(故) 장성만 전 의원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정치적 무대인 부산 사상구와의 인연을 전했다. 장 의원은 “저는 정치인의 아들이자 목사의 아들, 교육자의 아들로 커왔다. ‘금수저’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별로 안 좋다”라며 “소주 한 잔을 먹어도 ‘목사 아들이 술 먹는다’고 한다. 정치인의 아들로 산다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나. 아버지가 알려진 사람이니 공부를 잘하면 과외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 의원은 정계 진출을 결심했을 당시 부친과의 에피소드로 털어놨다. 그는 “30대 후반 정계 진출을 생각했을 때 ‘정치하겠습니다’라는 각오에 ‘최고가 되도록 하라’는 부친의 답변을 받았다”면서 “아버지께서 ‘정치로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좋은 국회의원이 되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무조건 1등을 하라’고 하셨다”라고 전했다. 4200명 산악회 참석…지역 세 과시 장 의원은 4200여명이 모인 대규모 지역 외곽조직 행사 참여를 알리며 세 과시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다녀왔다. 경남 함양체육관에 버스 92대 4200여명의 회원이 운집했다”며 관련 사진을 게시했다. 장 의원은 “여원산악회는 지난 15년 동안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산행을 하면서 건강과 친목을 다져왔다”고 밝혔다. 여원산악회는 장 의원 지역구(부산 사상구)의 기반인 외곽조직으로, 장 의원은 10여년간 이 조직의 명예회장직을 맡아 왔다. 장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지역구 현안 사업 및 예산 확보 성과 등을 소개하며 “그런데 서울에 가랍니다”라며 인 위원장의 의중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고, 참석자들은 “(서울에 가면) 안된다”며 장 의원의 발언에 호응하기도 했다. 장 의원의 잇단 지역구 활동 소식 공개는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라는 혁신위의 권고에 우회적으로 거부의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인 위원장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그분을 특별히 거론한 것도 아니고 그 행동이 무슨 행동인지 아직 저도 잘 이해가 잘 안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 서정희, 연하 건축가와 재혼 전제 열애중…유방암 투병 때 간병도

    서정희, 연하 건축가와 재혼 전제 열애중…유방암 투병 때 간병도

    방송인 서정희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13일 스포츠조선은 “서정희가 연하의 건축가 A씨와 재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다. 서씨의 딸 서동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하며 이미 A씨와 한 가족처럼 지낸다”고 보도했다. A씨는 서정희의 연인이자 사업 동반자로, 유방암 투병 중인 서정희를 정성껏 보살피며 간병했다. 서정희가 인테리어 및 건축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도로 종교 생활도 함께하고 있다. 서정희는 과거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이상형에 대해 “제가 건축을 좋아한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많이 하고 있다. 문화적인 코드가 안 맞으면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62년생인 서정희는 1982년 개그맨 서세원과 결혼했지만 2015년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 서세원은 지난 4월 캄보디아의 한 병원에서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 다리는 잃었지만 ‘식스팩’ 자랑하는 남성이 존경받은 사연 [여기는 베트남]

    다리는 잃었지만 ‘식스팩’ 자랑하는 남성이 존경받은 사연 [여기는 베트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장애를 딛고 ‘식스팩’ 몸매로 거듭난 베트남 남성에게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10일 베트남 현지 언론 탄니엔은 응웬 호앙 롱(24)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절망을 딛고 일어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최근 그의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되자 수많은 누리꾼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면서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인생의 불우한 사건을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동기를 찾게 됐다”는 등의 댓글을 올렸다. 공장에서 왼쪽다리 절단 사고로 절망에 빠져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14살 때 고향인 하우장을 떠나 호찌민시로 이주했다.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일을 해 번 돈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냈다. 비록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2017년 공장에서 일을 하다 왼쪽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사고 소식을 전하지 못하도록 형제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는 “부모님은 나의 사고 소식을 들으면 견디지 못할 게 뻔했고, 그 모습을 보면 나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직장 동료가 그의 부모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고, 그의 부모는 곧장 호찌민으로 달려왔다. 부모는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아들의 병원비, 치료비를 냈다. 다행히 그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그는 “앞날을 생각하니 너무 막막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면서 “내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전했다.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이대로 삶을 마감할지…’ 절망 딛고 체육관 찾아 몸단련, 페인트공으로 새 삶 찾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헌신적인 부모님의 돌보심과 사랑이었다. 밤낮으로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부모님을 보면서 ‘하루빨리 절망과 우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녹록지 않았다. 장애를 비하하는 불쾌한 말로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지만, 차츰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나쁜 말들을 무시하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갔다. 그는 “나는 다리 한쪽만 없을 뿐이지, 여전히 내 곁에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 나는 행운아”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오래 앉아 있는 생활을 하면서 몸무게가 83kg까지 늘었다. 그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용기를 내서 체육관을 찾아갔다. 체육관 주인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그를 위해 호의를 베풀었다. 이때부터 그는 날마다 체육관을 찾아 몸을 단련했고, 4개월 만에 20kg을 감량했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되면서 체력은 물론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올라갔다. 그는 한 인테리어 업체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할 기회도 얻었다. 그는 “운동이 제 삶을 바꿨습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체력도 강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일해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꾸준히 운동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면서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날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임만균 서울시의원, ‘제14회 서울사회복지대상’ 서울복지신문 사장상 수상

    임만균 서울시의원, ‘제14회 서울사회복지대상’ 서울복지신문 사장상 수상

    서울시의회 임만균 의원(더불어민주당·관악3)이 지난 9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제2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4회 서울사회복지대상’ 시상식에서 서울복지신문 사장상을 받았다. 올해 14번째를 맞는 서울사회복지대상은 서울복지신문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등이 후원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발전을 위해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지방의원, 사회복지공무원, 사회공헌기업, 시민봉사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임 의원은 공인노무사 출신으로서 전문성을 활용해 노동인권, 비정규직 등 서울시 행정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고 지역 소상공인, 재해 피난 가구, 청년 등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의정활동을 해왔으며, 특히 ‘도시계획균형위원회 위원’, ‘서울시의회 부동산대책 및 주거복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의 주거 안정에 앞장서고 있다. 임 의원은 “앞만 보며 의정활동을 꾸준히 해 온 것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라며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선출직 공직자로서 항상 주변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 빈 곳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 전쟁 스트레스 탓 “한 달 만에 흰머리로”…가자 주민의 일기 넘겨보니

    전쟁 스트레스 탓 “한 달 만에 흰머리로”…가자 주민의 일기 넘겨보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섬멸하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지상전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극한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는 전쟁이 주는 스트레스와 공포,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내는 가자지구 주민 지아드(35)의 ‘가자 일기’가 연재되고 있다. 가장 최근 것이 17일째인 지난 5일(현지시간) 일기였다. 극한의 삶을 견디면서도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지아드는 그 날 동물병원에 다녀오며 만난 지인의 외모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충격을 받은 일, 보석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일, 친구와 이 시련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 나눈 대화 등을 담담하게 옮겼다. 말미에 슬픔을 극복하는 일에 대한 철학적인 숙고는 그토록 험한 여건에 놓인 사람의 일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있고, 정갈하다. 이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21세기에 ‘안네의 일기’를 읽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일기 읽는 느낌을 충실히 살리기 위해 11월 5일의 일기를 그대로 옮겨본다. 새벽 5시 어제 우리가 찾아낸, 피를 흘리고 의식이 없던 고양이 재키가 밤을 견뎌냈다. 우리는 잠 한 숨 자지 못했다. 마나라(예전에 기르던 고양이인 듯)를 위해 만든 상자 안에 넣어줬더니 가쁘게 숨을 쉬었다. 따듯하게 보살폈다. 여동생이 물도 줬다. 고양이를 살려낼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는 재키를 고양이가방에 넣어 10시에 동물병원에 도착하려고 9시 15분에 집을 나섰다. 도착했을 때 여러 사람이 반려동물을 안고 내 앞에 줄지어 있었다. 가장 공통적인 얘기는 “우리 고양이가 거의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어요. 공격적이 됐어요.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지요”였다. 의사는 편안한 곳을 벗어나 피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란처도 집이든 학교이든 적어도 30~40명이 북적이는 곳이다. 모두가 “고양이랑 놀고 싶어해 ” 그녀석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재키를 진찰하더니 상태가 위중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눈도 뜨지 못했고, 코마와 비슷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의사는 주사를 세 대 놓았는데 2~3시간에 한 번씩 링거를 이용해 물과 이유식을 먹이라고 했다. “그럼 살아날까요?” 내가 묻자 수의사는 “며칠 경과를 지켜봐야죠. 아무튼 이틀 뒤에라도 데려야 주사를 더 맞히세요” 적어도 우리는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됐다. 재키가 그녀석 이름이란 것을 알게 돼 우리는 이제부터 잭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오전 11시 30분. 집에 돌아오던 길에 지인을 만났는데 그의 외모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긴가민가하자 그는 “내 머리 때문이지, 맞지?”라고 묻는다. 내가 “아 미안, 그런데…”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알아, 하얗게 세버렸어! 단 3주 만에 요모양이 됐어”라고 말했다. 한달 전에 봤을 때는 흰머리가 몇 갈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희어져버렸다! 나중에 한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그녀는 형제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와 두려움, 슬픔 때문에 한 달 만에 머리가 희어지는 일이 가능한가?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면 구글 검색을 해서라도 알아볼텐데. 내 경우에도 얼굴에 주름과 눈밑 다크서클이 늘었고 발의 정맥이 노인처럼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우리 삶의 수많은 날을 앗아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날을 빼앗아 갈 것인지 궁금하다. 오후 12시 30분 보석 상점이 문을 연 것을 알고 놀랐다. 누가 요즘 보석을 산단 말인가?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주인은 팔 보석이 없다고 했다. 빵을 살 돈이 없는 주민들이 갖고 있던 금을 팔고, 가게 주인은 그것을 사기 위해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그저 연명하기 위해 형편없는 가격에 금을 처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친구로부터 안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는데 친구의 가족들이 남쪽으로 피란을 떠나 연로한 부친이 가자시티의 아파트에 이웃들을 들여 함께 지내기로 했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친구는 가족들과 아버지의 연락이 잘 되지 않으며 건강이 나빠진다며 가족이 직면한 공포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고 식량도 물도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오후 5시 친구는 나와 모든 사태가 끝난 이후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집이 없어 노숙자가 되거나 수천 달러를 들여 집을 고쳐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걱정했다. 아울러 모든 가자 주민들이 처리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충격파에 대해 생각했는데 끝날 것이며, 심지어 금방 끝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나는 낙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에 바탕해 생각하면 끝나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밤 9시 다시 통신이 끊겼다. 어찌됐든 우리는 또 무엇을 잃었단 말인가? 존엄성을 잃었고, 목숨과 추억을 잃었다. 통신 같은 것은 더이상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됐다. 내가 전에 읽었던 사브리나 베나임의 책 ‘Depression & Other Magic Tricks’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I held hands with my sadness / Sang it songs in the shower, fed it lunch / And put it to bed early’ 이런 것이 우리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일까? 슬픔을 침대에 빨리 밀어넣어 다른 이들이 훔쳐가 희망을 품는 데 쓰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슬픔을 침대에 일찍 밀어넣으면 두려움은 어떻게? 애도는 어떻게? 서글픔과 소진됨은 어떻게? 나는 여전히 슬픔 1단계, 또는 어쩌면 0단계에 있는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하고 내가 그를 보고 있다고 그에게 말한다. 내가 어느 양만큼의 슬픔에 젖어있는지 깨달으면 갈 길이 먼 것처럼 느껴진다. 이 일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나는 오랫동안 슬펐으면 바라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자고 꼬옥 껴안고 무엇이 남아 있든 내 삶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자고 애쓸 것이다.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근황 전해졌다…밝아진 얼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근황 전해졌다…밝아진 얼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의 근황이 전해졌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프리한 닥터’에서는 유진박이 밴드 ‘헤이유진’을 결성해 축제와 행사를 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유진박은 2년 전 방송에 출연했을 때보다 젊고 밝아진 모습으로 제작진을 반겼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성년 후견인의 보살핌 아래 4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날 밴드 멤버들과 캠핑에 나선 유진박은 “여자친구 안 사귀냐”는 질문에 “우리 음악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60살 되면 그때 결혼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유진박은 “이 밴드는 내게 중요하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 “헤이유진 두 번째 앨범에 이어 단독 콘서트까지 준비하고 있다. 앨범과 공연 등 수익 관리는 후견인 변호인들이 철저하게 하고 있다. 세계로 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유진박은 3세 때부터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여 16세에 줄리아드 음악 대학에 조기 입학한 천재 뮤지션이다. 1997년도에 발매한 데뷔 앨범 ‘The Bridge’는 판매량 100장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고, 이후 믿었던 지인들에게 사기와 배신, 폭행 등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안타까움을 샀다.
  • “저 많이 컸죠?”…에버랜드 쌍둥이 판다, 엄마 품으로

    “저 많이 컸죠?”…에버랜드 쌍둥이 판다, 엄마 품으로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이 운영하는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태어난 국내 첫 쌍둥이 아기 판다들이 엄마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지난 7월 태어난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에버랜드는 7일 생후 4개월(120일차)인 쌍둥이 판다 자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의 사진도 공개했다. 지난 7월 7일 태어난 쌍둥이 판다는 지난 4일부터 엄마인 아이바오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합사 전까지 쌍둥이 판다는 한 마리씩 교대로 사육사 품과 엄마 품을 번갈아가며 자랐다. 엄마 판다인 아이바오가 홀로 쌍둥이를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육사들의 인공 포육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후 쌍둥이들이 성장해 가며 교대 주기가 점점 늘어났으며, 가장 최근에는 10일 주기로 인공 포육 순서를 바꾼 바 있다.‘판다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철원 사육사는 “쌍둥이는 현재 하체가 발달해 걸음마를 시작했고, 스스로 배변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며 “이제는 두 마리 모두 엄마 아이바오에게 맡겨 자연 포육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 사육사는 “앞으로 매일 체중 측정 등 건강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당분간 사육사들의 분유 급여 등을 병행해가는 등 어느 한 마리도 영양이 부족해지지 않게 쌍둥이 모두 세심하게 보살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한편 루이바오, 후이바오가 엄마 아이바오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은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및 말하는동물원 뿌빠TV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에버랜드는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엄마를 따라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내년 초에 외부 환경 적응 과정 등을 거쳐 일반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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