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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여성시대] (3)사회운동

    ‘세계 NGO(비정부기구)와 사회운동은 이제 여성의 몫’ 15일 폐막되는 ‘99 서울 NGO 세계대회’가 전 세계에 띄운 메시지중 하나다.루이스 프레쳇 유엔 사무부총장,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라롱위 아프리카 여성개발협회(FEMNET)의장,클라렌스 디아스 국제법개발센터의장 같은 ‘거물’이 참석해서만이 아니다. 공동대회장 3인중 아파브 마푸즈 유엔경제사회 이사회 NGO협의회의장,일레인 발도프 유엔공보처 NGO집행위원회 의장이 여성이고 대회에 참가했던 크고작은 NGO의 일꾼들 상당수도 여성이었다. 새 밀레니엄에 인권, 여성,제3세계의 빈곤과 기아,환경 등 산적한 지구촌의 과제를 풀어나갈 주역으로 여성이전면에 등장했음을 실감케 한 대회였다. 여성의 몫과 역할이 커진 것은 유엔 인권위원회 의장을 지낸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1884∼1962)처럼 징검다리 역할을 한 여성 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미국 산아제한운동의 주창자 마거릿생어(1879∼1966),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 에멀린 팬크허스트(1858∼1928·영국)도 손꼽을 만한 전세대 사회운동가였다. 여성의 진출이 크게 늘면서 활동분야도 활짝 열렸다. 여성과 환경운동을 접목시킨 에코-페미니즘의 저명한 이론가인 마리아 미즈(68·독일).그녀는 80년대 미국 독일 등 선진국 여성들의 미사일 설치 반대시위,인도·아프리카 여성들의 자연파괴 저지운동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인도 출신의 반다나 쉬바도 미즈 여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학자이자 환경운동가다. 90년대 중반 세계 YMCA 의장을 지낸 라지아 슬탄 이즈마일(56·인도)은“세계인류의 보편적인 문제가 바로 여성의 문제”라는 시각으로 여성과 사회운동을 접목시켰다. 필리핀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주도하며 ‘아시아 여성주거연대’를 구성한 피데스 바가사오(46·필리핀),여성환경개발기구(WEDO) 의장인 벨라 압죽(79·미국)도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유엔을 무대로 활약하는 여성도 크게 늘었다. 9년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을 지내고 있는 오카타 사다코(72·일본)는 코소보 사태 때 ‘50만 코소보 난민의어머니’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그녀는서울 NGO대회때 내한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인 메리 로빈슨과 유엔에서 ‘여성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유력 정치가 부인들도 사회운동을 주도하거나 남편의 영향력을 업고 현장운동가들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캐나다 총리 부인 알랭 크레티앵 여사 등 아메리카 대륙 퍼스트 레이디의 모임인 ‘아메리카 영부인 회의’는 지난 9월 회의를 갖고 아동조기교육과 보건강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앨 고어 미 부통령의부인 메리 엘리자베스 에이친슨 고어(48)도 무주택 및 의료개혁 분야의 사회운동가다.이밖에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부인 제한 사다트(66),미국의 지미 카터 전대통령의 부인 로잘린(72),부시 전대통령의 부인 바바라 부시(74)도 퍼스트 레이디 이전부터 착실히 사회운동을 펴왔다. 여성의 부단한 사회운동은 97년 ‘지뢰없는 세상만들기 운동’을 펴온 미국의 조디 윌리엄스(49)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결실을 봤다. ‘인간이 존중되고 인간이 중심에 서는 인간적인 인간사회,문화적인 복지사회,보편적인 민주사회를 구현해내는’ 서울 NGO 대회의 이념대로 여성의 활동영역은 새 밀레니엄에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피임 합법화 투쟁' 美운동가 '마거릿 생어' ‘피임,즉 성생활과 산아제한의 자유야 말로 여성해방과 인류발전에 필수조건이다’ 마거릿 생어(1879∼1966).반세기 이상을 여성의 신체해방을 위한 길고 긴투쟁에 나섰던 미국의 운동가. 산아제한을 최초로 주창한 그녀는 나아가 인구폭발이라는 재앙의 문턱에서세계를 일치감치 구해낸 구원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인구 60억 시대를 돌파한 지금.그녀의 공로가 단순히 여성해방운동차원을 벗어나 인류 공동 발전에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임법이나 성이란 말을 언급하는 자체가 음란죄에 해당했던 1900년대 초반. 간호사였던 그녀는 뉴욕 빈민굴의 한 병원에서 계속된 임신으로 지치고 허약해진 젊은 산모들을 지켜보면서 피임의 자유가 여성운동의 가장 핵심이라고판단,적극적인 피임 정보보급및 합법화운동에 나선다. 당시는 의사조차도 산아제한에 관한 언급이 불가능했던 시절.그녀는 ‘여성의 반란’이란 월간지를 출판했다. 이 잡지를 비롯한 그녀의 팸플릿과 잡지는 우송 불가물로 판정돼 강제폐간됐으며 수차례의 구속과 기소,재판을 되풀이했다.1916년 뉴욕 브루클린에 미국 최초의 산아제한 클리닉을 열어 여성들에게 피임상담을 함으로써 미국과유럽대륙까지 시끄럽게 만들었다. 후에 미연방 가족계획국의 토대가 된 ‘미국 산아제한 연맹’을 21년 설립했다.23년 최초로 의사가 진료하는 ‘산아제한 연구 클리닉’을 뉴욕에 열었고 이후 300여개의 클리닉이 전국에 세워졌다.미 의학협회가 의과대학에서피임에 관한 강의를 하도록 허락한 것은 1937년이었다. 그녀는 계속 인구증가율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종교단체 등에 의해 묵살됐다.결국 2차대전후 인구폭발의 위험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그녀의 주장과 공로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52년 세계가족계획연맹의 초대회장이 된 그녀는 여성이 스스로 조절할 수있는 안전한 피임법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주도했으며 마침내 60년 처음으로피임약이 개발됐다.그녀가 죽기 1년전인 65년 미 정부는 1개주에 남아있던피임약사용금지법을 폐지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의 성생활과 임신에 대한 자유.그 역사는 이처럼 1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서울 NGO세계대회 참석차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메리 로빈슨(54) 유엔인권고등 판무관은 13일 탈북자 문제와 관련,“강제 송환이 이뤄지고 있다면심각한 인권침해”라며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은뒤 유엔에 돌아가 대책을 상의하겠다”고 밝혔다.90년부터 7년동안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인권대통령으로서 명망을 얻은 그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방문 소감은 NGO 대회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세계적인 인권 수호자로 알려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법무장관 등을 만나 한국 인권문제와 보안법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겠다. ■동티모르의 학살극과 관련,위란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전범으로 기소될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우선 한국의 동티모르 파병에 감사한다. 동티모르 학살극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연루됐는지에 관해서는 동티모르 사태조사담당 위원회의 결론을 기다리겠다.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떤 편견도,판단도 내리지 않겠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평화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어떤부분에서 우수하다는 견해보다는 ‘균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여성은 문제에 대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보호받아야 될 집단을 보살필 능력이있다.여성이 책임감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중요하다. ■중국 등지의 탈북자에 대한 지원방안은 없는가 이번 한국 방문중에 탈북자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기를 바란다. 강제송환이 이뤄지고 있다면 중대한 인권침해다.정치적 보복이나 박해 등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강제송환이이뤄질 경우 기본적 난민협약 규정에 위반되는 것이다.오가타 유엔난민 고등판무관과이 문제를 논의하겠다. ■미군의 노근리양민 학살사건에 대한 견해는 미국 언론들이 인권침해와 유린에 대한 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노근리사건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미국 간에 긴밀한 협조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엔활동에 관심을 두게된 개인적인 계기는 어렸을때부터 인권문제,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변호사로서 아일랜드는 물론 유럽과 국제사회의 인권문제에 주목해왔다.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생각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유엔은 베이징(北京)세계여성대회의 행동강령 이행상황에 관한 결과 보고서를 내년에 발표한다.세계 여성의 현실을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아일랜드 대통령 지낸 인권파수꾼 '로빈슨 판무관' 아일랜드 명문 트리니티대학을 수석입학,졸업하고 25세에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고 20여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보수적인 가톨릭사회,내각책임제하에서도 대통령 당선 직후 북아일랜드를 방문,내전치유에 나서고 이혼합법화,동성애자 차별금지 등의 조치를 이끌어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로빈슨은 97년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유엔의 인권관련 활동을 총괄하는 인권고등판무관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인권의 파수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金杞載 행정자치부장관

    지난 8월 초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경기도·강원도 등 중부지방에 집중폭우가 쏟아져 내렸다.당시 5,000만 모든 국민이 하늘을 야속하게 생각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었다. 상흔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현재 항구적인 복구를 위한 대책마련에 온갖 지혜와 역량이 한데 모아지고 있다.지난 1개월여 동안 현장을 가득 채운 헌신적인 이웃들의 모습과 제각기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다고 느낀 것은 유독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때,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 시설을 지킴으로써 공공재산을 보호함은 물론 주민의 불편을 크게 해소시켰던일,수재의연금 모금이 발표되자마자 ARS와 언론기관의 모금창구에 물밀듯이밀려오는 따뜻한 이웃사랑의 물결,수해현장에서 우리나라 자원봉사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의 땀흘리는 모습은 지선지미(至善至美)의 결정체였다고나 할까. 특히 시·도의 자원봉사센터가 주관이 되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와 함께벌인 중부지방 수해지역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은 인상적이었다.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 자원봉사체계가 자리를 잡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지역봉사센터를 통해 2만8,0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고 이를 통하지않고 자율적으로 활동을 벌인 봉사자까지 합하면 줄잡아 5만여명이나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자원봉사자가 한 몫을 톡톡히 해냄으로써 자원봉사 천국이 될 가능성을 볼 수 있었음은 이번 수해로 인해 얻은것 중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했다.사랑의 실천으로 이웃을 보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생활 자세는 우리 사회를 활기차고 서로 화합하는 분위기로 이끌어나갈 것으로 믿는다. 보람과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던가.우리 사회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2)

    1970년 3월 17일 한강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전 정인숙(鄭仁淑)은 1년정도 미국에 체류했다.아들까지 낳은 정인숙이 도처를 다니며 청와대를 들먹이는 등 말썽을 일으키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정인숙 모자를 미국으로 보낸것이다. 정인숙 모자는 워싱턴 16번가에 있는 ‘우드너’라는 아파트와 같은 호텔에한달 반동안 살다가 뉴욕으로 옮겼다. 당시 뉴욕에는 미국남자와 결혼한 한국여성들의 모임인 ‘한미부인회’라는 모임이 있었다.정인숙의 화류계 친구중에도 한미부인회의 회원이 있어 정인숙도 모임에 한두 번 나왔는데 그때정인숙을 본 기억이 있다.예쁜 얼굴의 젊은 여인이 모자를 쓴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목소리가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같은 음색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신을 ‘미세스 박’이라고 소개했다.내가 물었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합니까?” “재일교포 사업가예요”. 나는 그때 그 남자아이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로 정일권이었다.정인숙이 죽고난 뒤 ‘워싱턴 포스트’의셀리그해리슨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그는 ‘정인숙사건’을 취재중이었다.한국신문에는 어차피 실리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취재원을 밝히지말 것을 전제로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며칠후 ‘워싱턴 포스트’ 1,2면에는 ‘한국의 크리스천 킬러 스토리’라는제목으로 셀리그 해리슨이 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크리스천 킬러’란 미모의 한 영국 고급창녀가 남성편력을 계속하다가 살해당한 사건을 가리킨다. 71년 3월4일 ‘프리덤 볼트 오퍼레이션(한미공수기동훈련)’ 취재차 나는이 신문을 들고 서울에 갔다.‘프리덤 볼트 오퍼레이션’은 ‘팀스피리트’의 전신이랄 수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다.오산공항을 거쳐 숙소인 조선호텔에 도착했을 때 정일권의 비서 김종하(金鍾河·전 신아일보 편집부국장)가나를 찾아왔다. “총리께서 문 기자님이 오신 것을 신문에서 보시고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정일권의 특징중 하나는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이다.특히 자신이 주미대사 시절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워싱턴에서 돌아오면 마지막까지 보살펴 출세길을 열어준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이들을 속칭 ‘워싱턴클럽’이라고 했다.나야 ‘워싱턴클럽’과 관계가 없었지만 정일권은 61년 주미대사 시절 안면을 익혔다고 해서 내가 한국에 가면 종종 ‘워싱턴클럽’의 식사자리에 나를 부르곤 했다. 이처럼 한국에 가면 정일권으로부터 종종 초대를 받았지만 71년 당시만은나를 만나자는 이유가 정인숙사건 때문이란 것을 직감했다.정일권이 워싱턴포스트 취재원이 나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 같았다.나는 나대로 정일권을 만나 진상을 추궁해볼 작정으로 약속장소로 갔다.잠시후 정일권이 측근 한 사람과 나타났다.그런데 앉자마자 뱉아낸 정일권의 발언이 걸작이었다. “문 기자,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리가없소.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 아마 요즘 정치인들 같으면 사실이야 어떻든 “나는 정인숙과 관계가 없다”고 딱 잡아뗐을 것이다. “딱 한번밖에 안 잤다”고 변명하는 정일권의 태도를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가군대시절 “야,야”하고 부르던 박정희에게 “각하”,“각하”하면서 끝까지미움을 사지 않고 그 그늘 밑에서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유들유들한 성격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의 ‘워싱턴 포스트’를 들고 그 길로 정일권의 부인을 만나러 갔다.그녀와 나는 정일권이 주미대사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지금까지내가 만난 여성들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조선여인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서슴지 않고 정일권의 부인을 꼽을 것이다.나는 들고 간‘워싱턴 포스트’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 사건 아세요?”.정 총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 집에 시집와 아들을 못낳은 죄로 우리집 주인이 어디서든 아들을 낳아 오면 받아들이려고 해요.그래서 우리 주인에게 신문에 난 그 아이가당신 혈육이라면 호적에 올리자고 했는데 우리집 주인이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장기영(張基榮·전 한국일보 사주·작고)씨 하고도 의논했어요.장기영씨가 ‘그분이 공직자라 곤란해서 그렇다면 일단 내 호적에 넣어주겠다’고도했는데 본인이 한사코 아니라고 하니 난들 어쩌겠습니까?” 70년대 후반 정일권의 이 현숙한 부인은 세상을 떴다.얼마후 정일권은 재혼을 해 새로 장가든 부인과의 사이에 3남매를 두었다.“불임수술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았는가”하고 따져보고 싶었는데 정일권 스스로 제 발이저렸는지 “불임수술을 풀었다”고 변명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정인숙의아들 정성일(鄭成一·32)은 90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정일권에게 자기를아들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정일권은 비서를 시켜 4,000만원을 전해주고는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정성일은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까지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은평구 모범구민 4명 오늘 시상

    은평구(구청장 李培寧)는 30일 모범주민 4명을 은평대상 수상자로 선정,구민의날인 1일 시상하기로 했다. 부문별 수상자는 효행 홍정례(51·여),봉사 강동택(48)·정만수(62),특별부문 손정수(62)씨 등이다. 효행상을 받게 된 홍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13년동안 정성껏 수발하는 등 남다른 효행으로 선정됐고 봉사부문 강씨는 지난 95년 불광동에 장애인 복지시설인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버림받은 장애어린이들을 보살피는 등 몸소 사랑을 실천해 왔다. 정씨는 39년동안 교육계에 몸담아오면서 학교시설을 개방,주민들의 건강과화합을 도모하고 지역교육 발전에도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특별부문 손씨는 은평구방위협의회 수석부의장으로 협의회의 내실화와 주민 안보의식 고취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재억기자 jeshim@
  • 국립중앙박물관 오늘부터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제관련 고고·미술 자료 7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백제’특별전을 21일부터 11월14일까지 연다. 백제는 고구려,신라와 함께 우리 고대사의 한 축을 이루며 중국,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문화강국이었으나 전해지는 문헌사료와 유물이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다행히 최근 전라도와 충청도 여러 곳에서 백제 관련 유물이 다수발굴돼 공백으로 남았던 백제문화의 많은 부분이 서서히 복원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제문화 연구의 활성화와 백제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 특별전을 기획했다.이번 전시는 최근의 발굴 자료가 숫적으로 주축을 이룬다. 부여 능산리의 은화관식(銀花冠飾)·토제연통,충남 보령의 무덤내 토침(土枕),신안 도창리의 자라병,청원 주성리의 금제이식(耳飾),부여의 다리미 및 천안 용원리에서 출토된 중국제 흑호(黑壺)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최근 자료 뿐 아니라 공주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을 비롯 부여 능산리의 ‘금동대향로’,‘창왕명(昌王銘)사리함’,나주 신촌리의 ‘금동제보관(寶冠)’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제의 국보 유물들도 전시된다.또 발굴된 유골을 토대로 한 백제인의 얼굴을 복원하는 시도가 이뤄진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는 한국에서 출토되었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 보살반가상’‘일광(一光)삼존상’등 백제관련유물 50여점도 같이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은 중앙박물관에 이어 국립부여박물관(11월26일∼12월26일),국립대구박물관(내년 1월7일∼2월6일)에서 차례로 열린다. 김재영기자 kjykjy@
  • 과수農 돕고 배농사 경험

    서울 중랑구(구청장 鄭鎭澤)가 먹음직스러운 먹골배 수확으로 알찬 가을을맞고 있다. 구는 15일 신내동 봉화산 기슭 2,000여평의 배밭에서 주말농장의 먹골배 수확행사를 가졌다.이날 수확에는 올해 이곳 농장의 배나무를 임차한 구청 공무원 30명과 주민 등 130여명이 참가,성황을 이뤘다.이들은 올해초 구청 주선으로 배밭 주인 소병선(42)씨 등 2명과 그루당 5만∼7만원씩 1년간 배나무임대계약을 맺었다. 지역 특산품인 먹골배 재배농가의 안정적인 수입 보장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틈틈이 가족들과 과수원을 찾아 과수를 보살펴 온 참여자들에게는 전원생활의 넉넉함이 덤으로 주어졌다. 특히 올해는 이곳 배가 그루당 평균 150개에 이를 만큼 풍작을 이뤄 모두 2만여개 670상자 정도를 수확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날 하루에만 10상자가 넘는 400여개의 배를 땄다. 배나무 1그루를 임차한 박성택(문화체육과)씨는 “7만원에 임차한 나무에 140개가 넘는 배가 열려 족히 다섯상자는 수확하게 됐다”며 “과수농가를 돕기 위해 참여했는데 덕분에 올 추석 과일 걱정은 덜게 됐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 (16)삼국통일후의 판도

    663년 백왜연합군은 나당연합군과 마지막 대해전을 벌이고 역사에서 사라졌다.고구려 또한 671년 안시성과 함께 운명을 다했다.신라는 676년 설인귀가이끄는 당군의 기벌포 상륙작전을 분쇄하면서 축출에 성공했다.이렇게 해서80여년에 걸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은 막을 내렸다.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당은 백제 의자왕과 1만3,000여명의 백제유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구려에서는 3만8,000여호를 끌고가 양자강 유역 등 여러곳에 이주시켰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저력과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국제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특히 일본무역은 거의 독점했다.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의 물품을 매입하는 신청서(買新羅物解)와 소장품은 당시 대규모로 교역했음을 알려준다.신라의 상인들이 당에 건너오고,승려나 학자들도 당으로 유학했다.몰래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도 많았다.삼국사기와 구당서에는 816년 굶주림을못견뎌 170여명이 절강지방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모여들면서 출신국가는 달라도 민족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들이다.이때는 이미 동아시아는당(唐) 중심의 세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역사에서 소외당한 좌절감과 절박한 현실 속에서 유일한 생존방법은 경제권의 장악이었다.다행히 당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다른 종족을 포섭하는 세계화된 국가였다.그리고 각 지역간에 교역이 성행했다.특히 실크로드를 이용한 동서교역,바다를 이용한 남북무역이 활발했다. 그런데 서역의 대상들은 물품을 장안까지만 운반했다.페르시아상인들이 장악한 해양실크로드는 종착점이 광주나 영파,혹은 양주였다.때문에 남방의 물품을 북으로,서방의 물품을 남으로 보내는 물류망이 필요했다.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재당 신라인들은 절강에서 북경을 잇는 대운하의 주변에 정착해 운하경제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국제무역을 하는 대상인으로 변신했다. 마침 당을 중심으로 한 교역망은 황해로 인하여 한쪽이 뚫려 있었다.단절된신라와 일본을 국제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은 재당 신라인들의 몫이었다. 신라인들은 운하주변과 해변가에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 정착촌을 건설하였다.수륙교통의 요지이며,신라나 일본으로 출발하는 석도(石島:赤山),문등(乳山浦),연운(宿城村),초주,양자강유역의 양주,소주,절강성의 영파,황암(黃岩)등 항구도시에 이른바 산동에서 광동까지 이어지는 해안경제벨트가 형성되었다. 영파 앞에 있는 주산군도에는 신라상인들의 배가 얹혔었다는 ‘신라초(新羅礁)’란 바위가 지금도 있고,그때 배에 실었던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불긍거관음전(不肯居觀音殿)이 중국 4대 성지의 하나인 관음신앙의 본산지가 되어있다. 재당신라인들은 대운하에서 내륙의 물류체계와 관련산업을 관장하고,절강성에서 산동,산동성에서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절강에서 동중국해를 횡단해 신라나 일본으로 삼각중계무역을 했다.동아지중해의 물류체계를 장악하고,황해연안을 자연스러운 영토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재당신라인들은 어떻게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먼저 항로와 항해술이다.당과 신라,일본열도 사이를 항해할수 있는 항로는 2개뿐이다. 당시의 항해술과 조선술로서는 안전을 위해 연근해 항로를 이용해야한다. 산동반도에서 150여㎞ 남짓 횡단하면 나머지는 모두 연근해 항해 구역이다. 일본항로 역시 한반도 남쪽에서 대마도를 경유하거나,제주도를 거치면 안전하다.그래서 사신선이나 교역선,여객선,해적선 등이 이 항로를 즐겨 사용했다.일본의 견당선들은 신라정부의 위협 때문에 소위 남도로(南島路)와 남로(南路)를 이용한 적이 있으나 피해가 많았다. 하지만 이 황해중부 횡단항로는 횡단거리는 짧은 대신 물길이 매우 복잡하다.바다에서는 물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신라방은 적산포 유산포 영파와 같이 대체로 황해 서안의 중요한 물목이나 항구에 있었으므로 남북종단 연근해항로에 익숙하고,건너는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반면 횡단한 다음에 거쳐야할 옹진반도,경기만,영산강 하구와 해남 등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의 물길은 신라인들의 소관이었다. 물론 그들과 연결된 해운조직은 당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당 신라인들 뿐이었다.때문에 이 항로를 이용하는한 동아지중해의 상권은 범신라인들의 독점물이었다.모험심이 왕성하고,능력있는 그들은 항법상 어려운 동중국해 횡단항로도 개발했다.장우신(張友信)같은 신라인들은 절강성 주산군도를 출발,동중국해를 횡단해 제주도를 경유하면서 신라로 들어가거나,직접 일본의 규슈지역으로 항해하였다. 재당 신라인들의 활약은 항로상의 이점 외에 우수한 신라배들 때문에 가능하였다.그리고 황해는 원래 수천년 전부터 동이족이 개척한 바다였다.선천적으로 해양능력이 뛰어났던 그들에게 바다는 암울한 현실속에서 경제력으로자존심을 되찾는 유일한 장이었다.재당신라인들은 8∼9세기 동아지중해와 세계를 잇는 교류의 장을 열었고,또 본국인 신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해상영웅들을 우리의 역사는 또 저버렸다.그들의 실체를 알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해상강국이 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었다.100여년 동안 폐쇄회로였던 바다가 개방되면서 교류의 장,또는 경제전쟁의 주무대가 된 것이다.21세를 맞는 지금 다시금 재당 신라인들의 존재가 요구되고 있다.천년 전처럼 유민으로 정착한 조선족들이 곳곳에 ‘신라방’을건설하고 있다.그들과 역사가 바다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또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수 있을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

    처음 대한매일에서 원고청탁을 해올 때,재미있는 주제로 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주제’ 자체가 ‘국민의 정부’가하는 일들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림으로써 국민의 이해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되어,그런 내용으로 두 차례에 걸쳐 글을 게재한 바 있다. 이번만은 생활 주변의 소재로 써달라는 청탁이지만,사실 나는 하는 일이나생활 자체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드라마틱하거나 재미있지 못한 사람이다.9년여째 새벽에 집을 나서면 자정께 들어가고 휴일이나 주말,휴가는 생각지도 않은 지 오래다.이게 내 ‘생활’이고 ‘재미’다.그래도 무척다행인 것은 착한 아내가 그 생활을 이해하고 보살펴주며,두 딸이 아주 건전하고 바른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신나게 일할 때는 역시 기자들과 소주라도 앞에 두고 국정에 대한 설명을 할 때이다.나는 사실상 9년째 김대중대통령의 ‘입’노릇을 해왔다.야당총재일 때는 우리가 집권해야할 당위성에 대해,집권 후에는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쉬지않고 설명하고 있다.나는 일요일에도 출근한다.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론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그러다 보니 1주일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점심·저녁시간은 언론인과 함께 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나는 국가에서 공보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정열과 충성심이 중요하며,부지런히 언론인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때로는 비난도 있을 수 있겠지만,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속담에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정부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국민이 알아야 하고,국민의 비판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학자나 사상가는 책 한 권이 안 팔리더라도 학문과 사상을 위해 책을 쓸수 있다.그러나 모든 운동은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정치·시민운동·노동운동·학생운동 등 모든 운동은 국민의 지지가 필수적이다.물론,비판도 겸허히 수용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하고,그럴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보업무는 정부의 시책을 열심히 알리고,여론을 듣고 분석해서 상급자에게 보고하여,정책을 세우고 홍보해야 하는 일이다.구슬을 꿰는 업무다.나는 오늘도 구슬을 꿰려고 노력한다.
  • [‘거리의 무법자’ 폭주족](하) “욕구분출 놀이공간 제공을”

    폭주족으로 한 때 골머리를 앓았던 미국과 일본은 과학적인 단속과 체계적인 교육,전용시설 마련 등을 통해 폭주족을 크게 줄였다. 일본은 80년대 초반 20만명이 넘었던 폭주족을 특수 고무 그물을 이용한 ‘토끼몰이식 단속’과 심리 치료극 등을 통해 2만5,000명 수준으로 줄였다.또 폭주족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1,600여개의 전용 경주장도 만들었다. 미국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70년대 초반 반전(反戰)과 인권을 외치는 청소년들 사이에 폭주족이 생겼다.폭주족들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세력간 다툼과 약물복용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하지만 정부가 ‘청소년 통행금지 제도’와 ‘오토바이 레이싱 대회’를 만드는 등 대책을 추진하면서 폭주족은줄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폭주족들이 활개치고 있으나 ‘단속만 있고 대책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경찰의 형식적인 단속에만 의존했을 뿐 사회적으로 이들을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다.범죄집단화하고 있는 폭주족이 더 큰 사회문제로 번지기 이전에 청소년들의 억압된 욕구를 분출할 수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양대 병원 정신과 전문의 안동현(安東賢·45)박사는 1일 “폭주족은 정신병리학상으로 무언가 미친듯이 빠지는 ‘충동조절 장애’를 겪고 있다”고진단했다.안박사는 “폭주족에 대한 체계적인 단속과 함께 오토바이 레이싱대회 등 청소년들이 억압된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공간이나 교육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효선(李孝善)교수는 “폭주족들은 10대 중국집 종업원이나 가스배달원,고등학생 등 학교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청소년들”이라고 말했다.이교수는 “폭주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시적으로 단속하거나 선도해서는 안되며 이들의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을 만들거나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청소년 상담원 이명우(李明雨·36)씨는 “폭주족은 환호하는 동료와 미친듯이 매달리는 여학생들,질서를 깨부수는 통쾌함 등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분석했다.그는 “정부는 단속과 함께 이들이 욕구를 분출시킬수 있는 놀이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교통안전계장 이경필(李敬弼·48)경정은 “폭주족을 현장에서 붙잡는 것은 또 다른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기 때문에 현장검거보다는 집결지에 경찰력을 미리 배치해 단속하겠다”고 밝혔다.이경정은 “이와 별개로 오토바이 불법 개조업소를 단속하고 폭주족에 대한 선도활동을 펴 폭주족을 뿌리뽑겠다”고 했다.이계장은 “우리나라는 폭주족이 범죄를 저질러도 우발적인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폭주족의 범죄 조직화를 막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경운 조현석 장택동기자 kkwoon@
  • 원불교 박청수교무 라닥에 병원 개원

    히말라야 설산에 핀 인정어린 봉사의 꽃-. 18일 해발 3,600m의 북인도 히말라야 오지 라닥에서 뜻깊은 행사가 벌어진다.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62)교무가 지난 4년간 정성을 들여 추진해온 끝에 세운 이 지역 최초의 ‘마하보디 카루나’ 병원이 문을 여는 것.부지 3,125평,연건평 400평 규모에 병상 50개를 갖춘 슬라브 2층짜리 병원은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등 10개 진료과목에 걸쳐 6명의 의사가 지역주민을 보살피게된다.앰뷸런스로 산촌지역 등에 이동진료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매년 유목지역에서 안과캠프도 열 계획이다. 병원이 문을 열게 된 것은 95년 라닥을 방문한 박교무가 병원이 없어 기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마하보디 국제선센터 책임자인 상가세나 스님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계기.원불교 강남교당 교도들과 뜻있는 인사들의 모금으로 이듬해인 96년 5월 착공,모두 5억원을들여 이번에 완공을 보게 된 것이다. 박교무는 지난 10년간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해와 라닥에선 이름난 인물.92년 7월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를 세운 것을 비롯해 94년 4월엔 담요 이불 방한화 등 7만점을 보냈다.또 이 지역의 청년과 그의 누이를 한국 원광대에 유학시키기도 했다. 한편 이번 병원 개원식에선 원불교 경전 출판기념식이 함께 열릴 예정.병원 개원을 고맙게 생각한 상가세나 스님이 전문 번역인을 시켜 원불교 경전을인도 힌디어와 라다키어로 번역 출간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김성호기자
  • [대한광장] 주부이신 아내들에게

    세상에는 소위 커리어 우먼이라고 불리는 여성들도 많다.전문분야에서 자기실력을 인정받고 튀고자하는 자아를 끊임없이 구현해내고 있는 여성들이다. 가부장 권력이 지배하는 이 사회가 용납한 커리어 우먼은 그러나 전체 여성인구에 비례해 몇퍼센트에 불과하다. 남성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의 부스러기 중 일부만 나누어준 셈이다.따라서 가부장권력 사회는 남성권력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커리어 우먼을 키운다.나머지 대다수는 가사를 돌보는 주부들이다. ‘아내’란 이름으로 여성들은 가부장이 일터로 나간 사이 집을 지키고 육아 등의 ‘잡사’를 돌본다.사실 잡사라 함은 가정에 남아 있는 주부의 입장에서 뱉어내는 자조적 단어이다.아침에 일어나면 남편과 아이들의 밥상차려주기,와이셔츠 다려주기,아이옷이며 책가방 챙기기,설겆이,빨래 등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주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잡사’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가사노동의 강도를 최소화했다지만아내들의손에는 하루도 물기 마를 날 없다.거기다가 아이들에게 쏟는 세심한 배려와정성까지 합해지면 종류도 다양한 잡사이다.문제는 주부인 아내들의 일이 커리어 우먼들의 것처럼 전문적인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잡사라는 데 있다. 아내들은 여자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주부의 잡사’인 반면 커리어 우먼은 ‘선택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갖는다.TV 등 매스 미디어에서는 한술 더 떠 커리어 우먼은 화려하고 빛나게,주부는 초라하고 빛바랜 존재로 대비해 놓기 일쑤이다.그렇다 보니 우리 주부들의 상대적 좌절감과 비애감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그래서 최근들어 여성관련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보면 주부들의 불만과 한숨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적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만 보면 주눅이 들고 자신은 인생의 패배자인 것같은 생각이 든다’,‘남편도 화려한 그들을 좋아한다’,‘아이들 챙기고 남편 외조하느라 평생을 보냈는데 남는 것은 소외감뿐이다’ 이같은 푸념이 급기야는 ‘나도 인생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세간에 물의를 일으켰던 피라미드판매사건 등은 주부들의 이러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부산물이다.그러나 이 땅의 주부이신 아내들.과연 그대들은 인생의 패배자인가.아니다.육아 등 가사일은 아낙네의 일이라고 무책임하게 팽개쳐 버린 채 자신들만이 자유 평등 혁명 민주 근대화의 높은 이념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남성사회는 지금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대들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집밖으로 나간 남편 대신에 이 순간까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중하게 지켰다.수직과 폐쇄와 독점의 권력이 판치는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 또한 대부분 패배자가 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그대들 앞에 누이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또하나의 세상인 우리 아이들도 당신들이 지키고 키워왔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 세상은 육아 등의 일은 아내들에게 맡기고 거창한 구호나 외치고 다닌 남성들이 지킨 것이 아니라 주부이신 그대들이사랑과 희생으로 지키고 이어져 오게 한 것이다.결국 당신들이 부러워하는커리어 우먼의 탄생도 이 ‘지킴이정신’ 앞에 무너져 버린 남성사회가 미안한 마음으로 던져준 떡 몇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허장성세의 가부장권력은 이제 곧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다.그대들이 이어져 오게 하고 지켜낸 세상을 홀로 독점하기에 남성들도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새천년에는 권력도 분점될 것이고 일자리도 나누어 질 것이다.당신들이 지켜낸 소중한 가치의 힘을 통해서 누구나 주부이고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앞당겨질 것이다.수평과 분산의 소중한 가치를 이루어 낸 그 힘의원천이 주부이신 당신들 속에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남녀가 서로 권력을 나누고 일자리를 나누는 나눔의 사회가 오면 남성들도 가부장이라는 무거운 멍에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나눔의 문화’를 주창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의 말이다.변화를 예견하면 주부도 행복하다. [洪思琮 정동극장장]
  • [대한광장] 세상살이

    비가 쏟아집니다.하늘에 구멍이 난 듯 굵은 빗줄기가 빨랫줄처럼 내리꽂힙니다.노도와 같이 질펀하게 흘러가는 흙탕물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물어린 원망스런 모습은 우리들의 가슴을 한없이 아프게 합니다.그때 저도 모르게 왠지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원망스러워하는 한스러워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어쩜 어머니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어 오버랩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늘그막에 “나는 한평생 속아 살았다”고 푸념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3남3녀를 낳아 기르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많으셨습니다.그래도 세월이 가면서 거는 기대는 자식들이나 잘 자라 당신을 호강시키기를 바랐습니다.“나는 젊어서는 남편에게 속고 늙어서는 자식들에게 속고 살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내나 잘 먹고 잘 쓸 것을…”이라고 한스러워하셨습니다.그러다 차남인 저마저 산사(山寺)로 출가(出家)를 해버리니 ‘그 속은 심정이 오죽 하셨겠나?’ 싶습니다. 그날은 성철 큰스님다비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그 많던 사람들이 서서히 다비장을 떠나가는데 한 보살이 한없이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가까이 가 보니 큰스님 막내 여동생이었습니다.“보살님,딴 사람도 아닌데 남 보는데 이렇게 통곡하시면 어찌하십니까?” 하니 “스님,나 큰스님열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오늘 이 자리에 서니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간절해서 웁니다.어머니가 오늘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 마르지 않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하여 “가신 큰스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님 생각이 나서라니요?” 하니 “어머님 말씀이,‘우리 큰 아들을 잉태하고부터는 네모난 평상에 앉지도 않고 네모난 떡도 먹지 않았다.둥글둥글 원만한 성격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빛내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빌고 빌었다’고 늘 말씀하셨는데,오늘 큰스님의 다비식장에 와서 보니 어머니의 원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슬플 때만이 아니라 기쁠 때도눈물을 한없이 흘린다’는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렇게 기대하던 큰아들이 출가하셨으니 어머니의 고통이또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래도 스님된 아들이 걱정되어서 옷이랑 먹거리를장만해서 찾아가면 스님께서 만나주지도 않으시고 냉대하니 할 수 없이 옷이랑 먹거리를 대문 밖에 놓아두고 오셨답니다.그후 다시 찾아가 보아서 옷이없어졌으면 “지가 입었겠거니” 생각하며 안심하시고,옷이 그대로 문 밖에방치되어 있으면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 없었다고 어머니께서 회고하곤 하셨다 합니다. 하루는 큰스님께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금강산 마하연에서 참선하면서 한철을 나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머니가 찾아오셨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합니다.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 골짜기에서 금강산까지 스님을 찾아오신 것입니다.그래서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는데 참선하던 대중스님들이 들고 일어나“아무리 정진하는 수좌라지만 먼 길을 찾아오신 어머니를 괄시하는 수좌와는 같이 살 수 없다”고 대중결의를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 유람을하셨다고 합니다. 당신께서도 금강산 마하연 선방에만 있었지,금강산 유람은 생각도 못했는데 “어머니 덕에 그때 나도 처음 금강산을 유람했지…” 하시면서 너털웃음을 지으셨습니다.어머니께서도 아들 손에 이끌리고 등에 업히면서 금강산 구경한 그때가 일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하셨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돈도,권력도 아닌 바로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일 것입니다.신용사회에서 신용이,믿음이 붕괴되어 버리면 곧 그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버리고 치유할 수 없는 사회파멸로 이어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들 어머니의 한(恨)과 원(願)은 자식에 대한 믿음이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국민들의 한과 원은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런 믿음들이 깨어질 때 우리 어머니처럼 “속고 산다”는 한숨과 눈물이 끝날 때가 없는 한풀이의 세상이 계속 될 것입니다.우리 모두믿음을 회복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원풀이의 밝은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圓澤 조계종 총무부장
  • [국제취업정보] 英 장애인 센터 체험기

    우프,키부츠,워크캠프,자원봉사 등 해외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그중에서 나는 윙드 펠로우십 트러스트(WFT)라는 영국의 장애인 센터를 택했다.발전된 자원봉사 시스템을 배워 한국에 전파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 때문이다.제대후 복학까지 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의미있는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었고 인터넷을 통해 ‘국제자원봉사협회(KIVA)’를 알게됐다. 영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도움을 보태 항공권과 240파운드(48만원)를 들고 떠났다.그러나 돌아올때는 232파운드를 가지고 왔다.결국 영국에서는 8파운드 밖에 안쓴셈이다.단체에서 나오는 용돈으로 생활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WFT 최초의 한국인 봉사자였다.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두려움과 영어에 대한 우려가 영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나를 짓눌렀다. 히스로 공항에 마중나온 두 영국인을 만났을 때부터 걱정은 현실화됐다.그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그때 나는 “저들이 하는 말을 돌아갈 때까지 다 알아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정신없이 그들과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을 하게 됐다. WFT는 휴가를 얻은 장애인들이 1주일간 요양을 하는 곳이라 매주마다 다른사람을 보살펴야 했다.모두 신체적으로만 부자유스러울 뿐 밝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침 일찍 목욕과 식사를 돕는 것부터 밤 늦게 침실로 안내하는 것까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낮에는 그들과 함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쇼핑도 했다. 휴일에는 관광도 떠나고 멋진 파티도 열렸다.이곳에온 사람들은 정상인과 전혀 다름없이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가생활을 즐겼다.한국의 장애인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5개월 동안의 영국생활을 통해 연수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자부한다.최선을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은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진병준(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
  • 경기지역 노인복지시설 대폭 확충

    경기도에 오는 2003년까지 치매전문요양시설 5곳이 신설되고 노인 취업알선센터가 11곳에서 40곳으로 늘어난다.또 ‘노인의 집’이 38곳에서 78곳으로늘고 노인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에 국·도비가 지원된다. 경기도는 2일 이같은 내용의 ‘경기도 노인보건복지증진 5개년 계획’을 마련,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중증 치매노인들을 위한 치매전문요양시설 5곳과 낮시간 동안 치매노인들을 보살펴주는 주간보호시설 10곳을 신설하고 장애가 있거나허약한 노인을 돌봐주는 일반 주간보호시설도 시·군·구별로 1곳씩 설치하기로 했다. 도는 무주택 노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노인의 집을 78곳으로 확충하고 노인 고용촉진을 위해 노인취업알선센터를 4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산층 이상 노인들이 이주할 수 있는 노인복지타운 1곳과 도심형 노인주택타운 2곳의 건립도 추진하고 현재 17곳인 노인복지회관도 24곳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이밖에 점심을 거르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식당과 중풍노인을 위한 유급가정봉사원을 확대하고 경로당에대한 체육,의료기구 지원도 국·도비를 통해 확대하기로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유점사 53불상 어디로 갔나

    금강산 유점사의 53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8월29일까지) ‘아름다운 금강산전’에서유점사 53불이 사진으로 처음 일반에 공개되면서 불상의 소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사진들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1912년부터 1943년까지 찍어두었던 유리원판의 일부로 중앙박물관이 소장해 왔었다.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곽동석씨의 논문 ‘금강산 유점사 53불’에 따르면 유점사 능인보전에 봉안돼 있던 53불은 한국동란으로 절이 소실되면서함께 없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가 30㎝를 넘지않는 금동불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도난과 화재 등의 사고로 훼손된 불상들은 그때 그때 추가로 보충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으로 전하는 53불 가운데 통일신라 금동불은 47구(여래상 42구,보살상 5구)이고 나머지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불상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곽씨는 대부분의 53불에는 통일신라 최성기의 양식 또는 그 여운이 반영돼있어 제작 시기를 8세기 중엽에서 8세기 후반으로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상은 유점사의 부침에 따라 시련을 겪게 된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유점사는 단종 원년(1453년)에 불에 탄 뒤 세조 13년(1467년)에 다시 세워지고 성종 18년(1487년)에는 불상을 도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그후 불상이 어떻게 재조성되거나 보존돼 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않는다. 유점사 53불은 최초의 조사가 이루어졌던 1912년 이미 3구가 망실된 상태였다고 한다.1916년 3월에는 50구 가운데 15구가 도난당했다 7구가 반환되기도 한다.이후 53불에 대한 새로운 조사와 기록은 1935년 당시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근무하던 일본인 2명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조사후 사진을 첨부한 복명서를 작성,유점사 53불에 대한 전모를 전하게 된다. 유점사 53불 가운데 42구 정도는 해방되던 1945년과 그 다음해 초까지는 훼손없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전쟁 때 유점사가 전소된 이후 이들금동불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불상전문가들은 그러나 아무리 전쟁중이라 해도 불상 53개가 한꺼번에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일부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의 추정은 북한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북한 당국이 훼손이 안된 불상중 일부를 평양에 옮겼다는 입소문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다음은 해외로 유출됐을 가능성.북한의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일본 등 제3국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한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불상이 일제시대에 도난되는 등 수난을 겪었기때문이다.박물관 관계자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혹시 이번 전시기간중 유점사53불상이라고 주장하는 불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임태순기자 stslim@
  • 용모에 지나친 관심등 언론 性차별 여전

    한국미디어여성연합(공동대표 신동식 김진희)은 한국기자협회 여성특위(위원장 김미경)와 함께 ‘여성인사관련 보도,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28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강당에서 열었다.효성 가톨릭대 이정옥교수(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공동소장)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공론화 되면서 미디어에서 여성인사 관련 기사가 많아지고 있다.그러나 여성의 호칭문제를 비롯,여성을 보는 시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여러가지 갈등과 오해가 빈발하고 있다. 첫째,힐러리 등 접미사의 오·남용이다.힐러리는 미국 대통령부인으로 남편에 뒤지지 않는 전문경력을 쌓았고 최근에는 뉴욕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정치인으로서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인 여성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힐러리’는 ‘설치는 여성’의 대명사로 사용된다.최근 4억원 로비 수수로 구속된 주혜란씨,이인제 전경기지사 부인 김은숙씨 등이 모두 ‘경기도 힐러리’로 표현됐다.당당한 활동과 문제행동을 ‘설치기’로 뒤섞음으로써 여성의 활동=부정적 결과라는 그릇된 등식을 유포하고 있다. 둘째,남성과 달리 여성인사에 대해서는 용모와 가족 사항에 대해 지나치게관심을 보인다.환경부장관이 된 김명자 장관에게는 ‘미모’라는 수식어가따라 붙는다.남성장관에게 잘 생겼다는 수식어가 남용되지 않는 점과 대조적이다.그리고 여성인사의 가족·남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여성의 독자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셋째,사생활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다.주혜란씨의 경우 ‘∼나비’등선정적인 호칭을 사용하고 신창원의 동거녀에 대한 보도에서도 ‘조금 따뜻하게 해주니까 다 넘어갔다’는 투로 표현했다.이는 여성들은 주체적 판단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성별 분업의 변화에 대한 희화화,또는 과잉반응이다.엘리자베스 여왕남편 필립공의 졸고있는 모습을 촬영,지위가 높은 여성의 남편 역할이 고달픔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김용갑 전 장관이 병든 아내를 보살피는 것을 과장되게 기사화,남편이 아내를 보살피는 것을 예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핵가족끼리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채 아내를 돌보는 남성을 특별한 남성으로 미화하는 것은 공정치 않다. 다섯째,대선자금 의혹,거액 외화 밀반출,검찰의 여기자 성희롱 등 본질적인 사안은 작게 취급하면서 옷로비 등 여성관련 비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등 과민 반응을 보인다. 성희롱방지법,남녀차별금지법 등 성차별적 관행에 대한 법적 금지장치가 마련되고 있으나 언론의 보도 관행은 법 제정 속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의 보도 관행은 성평등적 문화를 통해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려는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것이다.언론의 성평등 학습장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언론계 종사자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들의 각성이 한층 요구된다. 정리 강선임기자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8회)

    주간 기획 시리즈 ‘굿 모닝 새 천년’은 이번 8회부터 중간 타이틀을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바꾸자’에서 ‘기초부터 다지자’로 바꿔 13회까지 6차례 게재할 예정입니다.앞으로도 ‘이것을 이어 가자’는 등의 다양한 중간타이틀 아래 다가오는 2천년대를 준비하는 특집을 연말까지 이어 가게 됩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100년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한국과 일본 사이의 격차를 경제력의 차이만 두고 계산해서는 안된다.한국 사람들이 안으로 정말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밖으로는 당당히 세계를 주도해 나갈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도덕과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64)씨는 지난해 12월 펴낸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이란 책에서 ‘정말로 맞아 죽을 정도로’신랄하고 적나라하게 무도덕,무질서,탈법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자화상을 그려냈다. 아파트에서 아래층까지 들리도록 뛰어노는 어린이들,식당이든 지하철이든심지어 비행기 안에서까지 그칠 새 없이 이어지는 휴대폰 소리,난폭운전 등다반사로 벌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입증한다는 이케하라씨의 주장은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고언(苦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이처럼 “남이 보지 않는다고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고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걱정돼 쓰레기매립장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며 금품을 살포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는 의식과 행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이른바 이기적 천민주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민주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족주의”라고 진단했다.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 또는 혈연·지연·학연에근거한 ‘우리’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배경좋고,출신좋고,연줄좋고,줄서기 잘하고,잘 갖다 바치면 어떤 경쟁에서도 이기는,이른바경쟁규칙의 위반이라는 부조리가 만연하면서 양보와 협동이라는 민주적 시민의식,공동체의식이 내동댕이 쳐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사회의 존립요건인 질서 유지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다.사회구성원 모두가 타인의 이익과 욕구를 나만의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사회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실마리는 거창한 ‘구호’의 절규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나부터’ 기초적인 공중도덕을 하나라도 실천하는데서 찾아진다.‘사람다운 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선인(善人)’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일상의 생활에서 이웃이나 타인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줄서기 등과 같은 최소한의 기초질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모두가 도에 지나친 욕구나 행동거지를자율적으로 규제하며 혹시라도 불편해 할 이웃을 한번쯤 생각하며 살면 된다.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천민적 이기주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공정경쟁의 규칙 앞에서는어떤 특권도,차별도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아울러 이른바 사회지도층인사들이 평소에 누리는 위세와 특권에 대한 보답으로 사회에 더 많은 것을 환원하는 ‘귀족의 의무(NOBLESSE OBLIGE)’를 실천함으로써 최소의 수혜자들까지도 살만한 사회가 될 때 진정 인간다운 공동체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실천하도록 하려면태교에서부터 임종까지 인간교육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이 가운데 공동체 의식을 터득케하는 최초의 교육기관인 가정의 중요성은 더없이 강조해도지나치지 않다.자녀들에게 질서와 규칙의 중요성,협동과 봉사의 가치,사랑하고 보살피고 베푸는 삶의 보람을 처음으로 가르치는 어머니의 역할에 새 천년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김인철기자 ickim@ * [밀레니엄 탐방]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물신주의와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파괴,경쟁과 위화감이 심화되고 ‘나홀로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우리 삶의 정신적 토양이황폐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새시대에 맞는 공동체적 정신문화와 민주공동체 의식을 일궈내는시민단체가 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808호에 자리잡은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공선련·상임공동대표 徐英勳)은 생명질서 존중,인간성 회복,공동체윤리 재건,공동선(共同善) 실천 등을 주창한다.지난 94년 10월 박한상 패륜사건,지존파·온보현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인간성 상실위기속에서 창립된뒤 깨끗하고 건강한 도덕사회와 활력있고 정의로운 민주시민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현재 회원이 1,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생명질서와 인간 존엄성을 회복해 새사회 공동체 윤리를 만들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공동선을 찾아,실천하기 위해 공선련이 펼치는 활동은 다양하다. 우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선련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교육이다.지난 4년동안 전국을 돌며 시민윤리 강좌 및 학부모 강좌를 개최했고,시민학교 운영은 물론 200여차례 전국 순회 강연회를 가졌다.이밖에 매년 100여명의 엘리트를 선발,미래사회에 대비해 공동체의식과 건전하고 올바른 윤리관,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길러주는 지도자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공선련은 ▲공공질서지키기,환경보호,바른 여가선용 등의 새생활 실천▲가족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이웃과 사회를 향해 열린 가족공동체를 확산시킴으로써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 ▲세기말 절망의 벼랑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땅끝정신 등 공동선 운동이념에 맞는 생활문화사업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서영훈 상임대표는 “인류의 양심과 지혜가 올바로 발휘되지 못한다면 물질적 혜택은 불행일 뿐”이라면서 “잘못된다면 우리나라가 무너지고,인류사회도 파멸하게 된다”고 경고했다.공선련은 지난해부터 ‘새로운 인간,다시 서는 한국’이란 구호아래 ‘비전 2005’운동에 주력하고 있다.다가오는 2005년 맞이할 광복 60주년을 민족 도약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으려는 뜻.새천년에 맞는 가치 규범을 공동체의 질서에 맞도록 체계있게 세워,우리 사회가 세계화돼 선진사회로 만들기 위한 뜻을 담고 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밀레니엄 인터뷰] 두레공동체운동본부 대표 金鎭洪목사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각자가 속한 국가에 충실한 국민으로남아 있으되 문화로,경제로,가슴으로 하나가 되자는 것이 한민족공동체입니다” 두레공동체운동본부 대표 김진홍(金鎭洪·58)목사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교회·성직자의 역할이란 생각에 줄곧 공동체운동에 나서고 있다.‘두레’란 옛 조상들이 쓰던 ‘함께 사는 공동체’란 뜻이다.그는 전통 두레의 정신에다 신앙을 접목시켰다. 김목사는 지난 79년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산리에서 농업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인 두레마을을 시작했다.초창기에는 실패해 지난 86년 다시 시작하기도 했고,매월 3,000여만원의 적자를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흑자로 돌아섰다.무공해 농산물 생산유통회사인 두레유통,사회복지법인 청십자두레마을,두레선교회,두레연구원,120여명을 해외에 유학시키고 있는 두레장학재단,두레자연고등학교 등도 잇따라 설립했다.두레마을에는 현재 180여명이살고 있다. “10여년전부터 중국과 러시아,북한은 농산물의 원료 생산기지가 되고,한국은 가공과 경영의 중심지가 돼 일본·미국을 유통기지로 만든다는 뜻을 갖고있었습니다” 김목사는 두레마을의 성공을 기반으로 삼아 한민족공동체를 하나하나씩 구체화시켜 가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에 500만평에 이르는 농지를 확보,러시아에 사는 동포인 고려인들과 서울에서 파견된 두레일꾼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중국의 경우 옌볜(延邊)에 150만평의 농지를 확보했다.이곳은 조선족 40여 세대와 두레일꾼 10가정이 함께 개척해가고 있다. 미국에는 서부지역인 베이커스필드에 두레마을 농장이 있고,동부지역인 뉴저지에는 20만평의 농장을 갓 시작했다.캐나다 서부 밴쿠버 인근도 두레마을이 시작되고 있다.일본에는 오사카와 도쿄에 두레모임이 결성돼 있다. 김목사는 “이제 국경은 낮아지고 이념과 체제는 무너져 가고 있는 반면 경제와 문화,창조적인 생각이 중요해지는 시대”라면서 “세계에 흩어진 우리민족들이 하나의 문화권,하나의 경제권으로 결속돼 안으로 민족의 질을 높이고,밖으로 평화세계 건설에 힘쓰자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김영중기자
  • [깊이읽기]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가슴은 최대로 강조하고 엉덩이는 작게 보이려는 스타일이 요즈음 여성 패션이다.그래서 얇은 천을 몸에 딱 달라붙게 입는다.가슴이 큰 것은 모성을상징하고 엉덩이가 작은 것은 남성의 상징이다.모성도 중요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오늘날의 여성상이다.1900년대와 1950년대는 가슴이크고 풍만한 여성을 미인이라 했고 1920년대와 1960년대는 반대로 소년처럼마른 여성을 선호했다.왜 이렇게 미의 기준이 달라지는가.뒷 배경을 조사하니 노동력이 넘칠 때는 가정적인 여성이 필요했고 노동력이 부족할 때는 소년같은 여성이 필요했다.그러니 여성의 몸매란 얼마나 사회적인가. 우리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그러나 푸코가 지식을 권력의 산물로 본 이래 어떤 현상 뒤에는 그렇게 만든 권력과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캐롤 타브리스(Carol Tavris)는 그녀의 책‘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The Mismeasure of Woman)’에서 현재 서구 여성운동이 지닌 맹점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본다. 60년대의 탈근대,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중심주의와기존 권력에 대한 의심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백인 서구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반발 가운데서도 여성운동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풍성한 이론과실천을 낳으며 진행된다.그리고 이런 운동은 몇 단계를 거치며 수정되고 보완된다.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그러니 지금까지 남성들이여성을 어떻게 종속적인 위치에 놓았는가 보자. 문학작품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어떻게 그려지는가,직장에서 여성은 어떻게 열등한 대우를 받는가.그래서여성들은 남성적인 이미지를 닮으려하고 차림새도 남성적이 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지금까지 있어온 남성중심주의의 틀에 여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므로 여성의 특색을 무시할 뿐아니라 중심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이제는 여성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여성작가를 연구해 보자.그런데 이것도 한동안 지속되니 여성이 더 우월하다는 암시를 주게된다.이제 남녀의 이분법을 벗어나 ‘여성적’인 특성을 중심주의의 대안으로 놓는다.남성의 단선적인 획일성보다 여성의 다성적인 열림이 탈근대의 패러다임이란 것이다. 이러한 단계에 속하는 여성운동으로 ‘생태 페미니즘’과‘문화 페미니즘’이라는 두 그룹을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남성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보아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를 일으켰다.문명의 주역이 저지른 훼손을 여성적인 보살핌으로 치유하자는 것이 생태 페미니즘의 입장이다.문화 페미니즘은 근대의 중심주의 대신에 타자를 인정하는 탈근대의 논리로 여성적인 것을꼽는다. 둘 다 모성을 찬양하고 소유대신에 관계를 중시한다. 긴 항해를 거쳐 여성운동은 이제 목적지에 도달했는가?여성의 특성을 나약함이 아니라 남성문화의 대안으로 내놓았으니 성공아닌가?그러나 이론은 멋진데 여전히 성차별은 존재한다.왜 여성은 직장에 나가면 여자답다는 소리를듣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남성적인 독립과 자유를 원하는가? 독재와 잔인함은남성만의 전유물이었을까? 남성들이 저지른 전쟁이나 착취 뒤에는 여성들의부추김이 없었을까? 타브리스는 이 두 그룹의 맹점을 지적하면서더 이상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여성우월주의는 남성우월주의와 똑 같이 성차를 고착시킨다.남성과 여성은 똑같지 않다.생물학적으로 다르다.그러기에 동등한 대우는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 남성의 기준을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남녀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다. 만약여성은 정감있고 남성은 거칠다고 계속 주장하면 남성이 부드럽고 여성이 강인해질 기회가 언제 오겠는가.동등함도 다름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차라리 둘 가운데 좋은 것을 서로 나누어갖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은 특정한 이론을 주장하기보다 이분법적 여성운동이 권력을 은폐하는많은 예들을 사회적인 문맥에서 들려준다.모든 이야기는 무언가를 빠뜨린다. 이 빠뜨림을 챙기는 것 자체가 글쓰기이고 평등을 향한 운동이 아닌가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권택영 경희대 영문과 교수]
  • [기고] 의로운 죽음 기리는 사회

    잠실1동에 살던 권용필씨는 97년 여름 여주 남한강에서 익사직전에 있던 두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 28세의 나이로 부인과 어린아기를 남겨둔 채 짧은 일생을 의롭게 마감했다. 또 방이동에 살던 최진희씨도 작년 강원도 양양해수욕장에서 가족과 피서중 여학생 두명이 물에 빠져 익사직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뛰어들어 두명 모두 구조한후 자신은 탈진한 상태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려 18세의 젊은 나이로 생명을 잃었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국가에서는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심사하고,의사자(義死者)로 선정했다.이 험악하고 자신만을 아는 세상에그래도 이런 분들이 있어 사회는 따뜻함과 의로움이 유지되는가 보다.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의로운 행동은 우리의 귀감이 되어 우리곁에영원히 살아 있어야 한다.그래서 구청에서는 그들의 흉상을 제작하여 송파나루 공원 호숫가에 세웠다.제막식 때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의로운 이들의 넋을 기리고,남을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뜻있는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우리는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터득한 이기주의로 어느덧 이같이 의로운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었다.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건 알 바가 아니다.교통사고로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고,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소매치기 현장을 보고도 못본체한다.못 본 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뛰어들어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그래봐야 자기만 손해보는데 왜 그러느냐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약해진다.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봉사하기를 꺼린다.자기중심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수 밖에 없다.그래서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되도록 해야한다. 그들의 동상 하나 세워서 무슨 소용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렇지가 않다.의로운 이를 기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시민들이 그를 생각하는 것은 보상금 못지않게 소중하다.바로 그것이 시민정신을 일깨우기도 한다.국가에서는 이런 일에 힘써야 한다.고귀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제도적으로도 보여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그래야 의로운 행동이 보람이 있고,의인들이 계속 나온다.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안타깝다. 얼마전에는 아르바이트 학원강사가 똑같은 행동으로 생명을 잃어 해당기관에 의사자 보호 신청을 했는데 법률상 직무와 관련이 된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부결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직업에 상관없이 동기와 당시의 상황에 따라폭넓게 적용해야지 소극적인 생각으로 규정에만 얽매여서 행여라도 공직사회의 경직성이 의로운 죽음을 외면하거나 다시 한번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해서는 안된다.이번에 발생한 씨랜드 참사에서 어린이들을 구하고 사망한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의사자로 선정하여 보상금을 주고 명단을 등록관리하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유족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잘해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특수한 사례를 골라 초등학교나 유치원 교과서에 올려 중요한 인성교육 자료로 써야한다.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사회,그런 사회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다. 김성순 서울 송파구청장·시인
  • [외언내언] 탈북자 자립센터 ‘하나원’

    탈북귀순자들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시설인‘하나원’이 8일 안성에서 준공식을 갖고 문을 열었다.97년 착공,지난5월 완공된‘하나원’은 연건평 2,200평의 건물로 100명이 동시에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생활관,체력단련실,도서실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앞으로 남한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을 마친 후 하나원에서 필수적으로 3개월동안 사회적응교육을 받게 된다.직업공단과 직업훈련소 등에서 직종에 따라 6∼8개월동안 직업훈련도 받는다. 이번‘하나원’의 개관은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을 찾아오는 모든 탈북귀순자들이 우리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사업으로 평가된다.특히 날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탈북자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문제가 중요한 정책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숫자가 6일현재 1,00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지난 48년 정부수립이후 북한을 탈출해 입국한 귀순자가 1,000명을 넘었다는 것은 많은의미를 시사한다.남북간 체제대결에서나 인간의 기본권 추구측면에서 볼때 대북우위를 입증시켜주는 대목이다. 또 앞으로 탈북자의 증가현상은 필연적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북한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삶을 포기하고 혈육마저 뒤로 한채 자유와 빵을 찾아 자유대한으로 귀순하는 탈북행렬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현재 중국과 러시아등주변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가 4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의 한국입국을 위한 노력이 필사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탈북자 문제는 인도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대책이 시급하다. 탈북자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관심을 갖고 보살펴 왔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탈북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생활고를 견디다못해 사회범죄까지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그런 맥락에서 볼때 이번에 탈북귀순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교육센터가 문을 연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정부와 국민들은 탈북귀순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도와줘야 한다.정부는 하나원 개관이 탈북자들의 집단수용시설인 만큼 이들에 대한 신변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앞으로 남북이 하나되는 통일을 준비하는 작은 실험장으로서의‘하나원’역할을 기대해 본다. 장청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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