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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0) 낯선 땅에서

    *짜고..맵고..투박하고..'경상도 맛'은 원색적. 공양 법회에 참례하지 않고 부엌에 달린 찬방에서 보살님들과 밥을 먹으면더욱 격식없이 이것 저것 해먹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두부를 만들 때에도 삶은 콩을 맷돌에 가는 일을 도우면 따로 순두부 찌개를 해먹었고 독상을 받는 큰스님들 밥상을 준비할 제 갖가지 특식을 얻어 먹곤 했다. 내가 특히 맛있다고 기억하는 건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먹는 쌈밥들이다.상추 쌈이야 늘 먹던 것이니까 아예 말할 것도 없고 너푼너푼하게 잘 자란 곰취 잎에 된장 쌈을 해서 먹는 맛은 그 싱그러움이며 쌉쌀한 뒷맛이 그만이다.나중에 백두산 갔다가 양념장을 쳐서 싸먹던 야생 곰취의 맛은 잊을 수가없다.아예 밥을 참기름과 깨소금에 잘 버무려서 한입만큼의 주먹밥을 만들어,살짝 데친 취 잎으로 싸서 김밥처럼 한덩이씩 먹는 맛도 좋다.도토리나무잎을 데쳐서 싸먹기도 하고 깻잎을 쑥갓과 어울려서 고추장 넣어 싸먹기도한다.생 다시마를 데쳐서 향그런 쑥갓과 더불어 싸먹는다.뒤란의 호박잎을따다가 껍질을 대충 벗기고 찜통에 살짝 쪄서 풀기만 죽여서,마늘을 얇게 썰어 곁들여서 막된장을 넣어 싸먹는다.배추나 양배추 쌈은 여름날 집에서도흔히 해먹던 것이고,특이한 것은 고구마잎도 쌈밥을 해먹을 수 있다.이것은잎을 끓는 물에 아주 삶아낸다. 조금 쓴 맛이지만 머위 잎도 먹을만 하다.잎을 데쳐 내는데 쌈장과 함께 풋고추 쑹덩쑹덩 썰어낸 것과 곁들여 싸먹으면 쌉쌀하고 매운 맛이 어우러진다.근대는 적당히 자란 것은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지만 웃자란 잎들은 역시끓는 물에 슬쩍 데쳐서 싸먹어도 좋다.아욱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큰스님의 심부름으로 오래간만에 부산 시내에 나갔다.신부님이나 스님이 대개 어슷비슷한데 아마 군인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외출 나와서 세상과 만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영화 구경을 하는 일이고 자장면을 사먹는 일이 그 두 번째다.호주머니가 가벼운 탓도 있겠지만 아무도 동행한 사람이 없이 혼자라 그 두 가지 일 외에는 별로 할 일도 없는 셈이다. 내 기억으로는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흑백 영화였는데,늙어서 일자리를 잃은 노인 악사들로 교향악단을 꾸린 소녀가 실제 인물로 출연하는 스토콥스키를 찾아가 지휘를 부탁하고 드디어 화려하게 데뷔한다는 내용이었다.영화를 보고 눈부신 극장 앞 광장으로 몰려 나오는데 인파 속에서 내 얼굴을아는 이를 만났다.큰 자형의 가까운 친구되는 이였다.그는 내 승복 차림을보고 놀라서 손을 잡으며 물었다.너 어느 절에 있느냐,느이 어머니가 지금눈물로 세월을 보내신다,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한꺼번에 묻는 것이었다.나는 부산 근방에 있다고 겨우 둘러대고는 달아나듯이 그이와 헤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 보름 되었을까.그날도 아침을 먹고나서 법당에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를 불렀다.누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산문을 나서고 오솔길을 지나 절집 어구에 상가가 늘어선 곳까지 나가 보았다.바로 앞쪽에 기념품 상가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이쪽을 향하고 서있는 여자가 보였다. 멀리서도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자세히 보니 모친이었다.어머니는 대뜸 내 손을 잡고 눈물바람이었다. 그렇게 되어서 산문을 나선 그 길로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산 국제시장 들러서 사복과 모자 하나를 사서 승복 벗어버리고 옷을 갈아입었다.부산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거의 일 년만에 불고기 백반을 먹었는데 맛이 있다기 보다는 누린내 같은 고기 냄새가 역했던 것 같다.아마도그동안 풀과 푸성귀로 오감이 바뀌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어머니는 자형 친구로부터 승려가 된 나를 부산에서 보았다는 말을 듣고,부산에 당장 내려와 어느 곳에 무슨 절이 있는지 수소문하여한군데씩 찾아 다녔다고 한다.드디어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만나게 된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그이는 냉정하게 거절하더라는것이다. 이미 출가한 사람이라 아무리 모친이라 하여도 만날 수 없습니다. 저는 홀어미이고 아들이라고는 그것만 믿고 살아왔습니다.비록 제가 기독교인이지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가엾은 일에 대하여는 다 같겠지요.제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어머니가 그렇게 울며불며 사정을 하니 광덕 스님은 한참이나 묵묵히 앉았다가 제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만나는 보세요.아들이 어머니를 따라가면 어머니 자식이 될 것이오 만약에 절로 돌아오면 부처님 자식이니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 그랬는데 나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두 말할 것 없이 손 잡고 따라서 집으로돌아왔으니 속세의 아들로 되돌아온 셈이다.이제는 모친이나 광덕 스님이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데 나는 시방 누구의 자식인고. 나와 경상도 땅의 인연은 어려서 전쟁 시절에 대구로 피난 가서 소학교 다니던 데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군대생활까지 보내게 되었다. 경상도의 음식을 들라면 우선 짜고 맵고 투박하며 원색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부산에 갔을 적에 이른 아침에 아낙네들이 ‘재칫국 사이소!’를 외치며 창밖을 지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재첩 조개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끓여낸 국은 개운하고 속풀이에 좋았다.요즈음 점심참에 먹기 좋지만 우뭇가사리 묵을 채썰어서 콩가루와 갖은 양념을 치고 식초 섞은 냉국을 부어서 먹는 우무냉국도 속이 씨원해진다.대구의 따로국밥은 예전에는 대구탕이라고 불러서 생선 대구탕과 혼동이 될 정도로 유명했다.연변에서 수십년만에 귀국했던 소설가 김학철 노인도 친지에게 옛날식으로 대구탕이 먹고싶다고 했다가 생선 대구탕 집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낭패를 보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부산의 고래고기 회나 포항 지방의 과메기는 술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과메기는예전에는 청어를 썼지만 요새는 청어가 드물어져서 꽁치로 대신한다.꽁치를바닷바람에 꾸득꾸득하게 말려서 그대로 찢어 먹는데 길게 찢어 돌돌 말아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전에는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그대로 바다에 버리던 생선이었는데 요즘에 와서 맛을 내게된 것 두 가지가 있으니 쥐치와 아구가 그것이다.그중에서도 아구는 아구찜이라는 독특한 마산 요리가 개발되어값 비싼 생선이 되어 버렸다.아구찜은 콩나물과 미더덕이라는 멍게 비슷한갯벌 생물과 만나야만 완성이 된다.매운 양념에 톡톡 씹히면서 터지는 미더덕과 뼈다귀채로 씹는 아구 맛이 입맛을 확 돌게한다.경상도의 막장은 찌개로 좋고 집장은 가지 무 오이 장아찌를 함께 담그기에 좋다.골짠지는 다른고장의 무말랭이 장아찌 비슷한데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검은 깨와 강엿과 갖은 양념에 매콤 달콤하게 무쳐서 항아리에 담가 두고 겨우내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늦봄에 꺼내 먹는다. 황석영.
  • 閔昇基 대구경찰청장 장애아 돌보기 ‘화제’

    대구지방경찰청 민승기(閔昇基·52·치안감)청장이 남몰래 뇌성마비 장애어린이를 2년째 돌보고 있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민청장은 지난 98년 초 서울경찰청 방범부장 재직시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의 권유로 생후 6개월된 중증 뇌성마비 아기였던 김태준군을 맡아 지금까지돌보고 있다. 태준이는 민청장과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재활치료 덕택에 심하게 뒤틀렸던 팔다리가 펴지는 등 상태가 크게 좋아졌으며 민청장에게 서툰 어투로‘아빠’라고 부를 정도가 됐다. 민청장은 “지방 근무로 서울집을 자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들이 태준이를 애지중지 길렀다”면서 “태준이가 이젠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는 귀염둥이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통계청조사 국민 하루 생활시간 실태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성별,연령별,직업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20세 이상 취업자의 경우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 36분이다.출퇴근 등일과 관련해 이동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44분,신문을 읽는 시간은 38분이다. 이들이 평일에 일하는 시간은 평균 7시간17분이며,토요일은 6시간26분,일요일은 3시간51분을 일에 매달린다. 20대 취업자의 식사시간은 평균 1시간34분이며,교제활동과 취미에 할애하는시간도 각각 46분,40분에 그친다. 반면 10세 이상 전 국민은 하루 24시간 중 10시간18분을 잠자고,식사하고,세수하는 ‘필수활동’에 쓴다.개인 여가활동은 하루 5시간이며,이중 TV 시청(2시간5분),신문 읽기(7분) 등 대중매체 이용에 2시간23분을 할애한다. 또 10세 이상 전 국민은 평일에는 밤 11시26분,토요일에는 11시32분에,65세이상은 요일에 관계없이 밤 10시14분쯤 각각 잠자리에 든다.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적으로 아침식사를 오전 7시46분에 시작하여 23분간하고,저녁식사는 평균 오후 7시22분에 시작해 30분 정도 소요된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은 남자(8.8%)보다는 여자(10.5%)가 많으며,20대 미혼 여성은 4명 중 1명꼴(25.5%)로 아침식사를 거른다.성인남자 5명 중 1명은평일에 청소와 집안 정리를 하루 10분 이상 하며,집이나 차를 관리하는 일은여자보다 남자가 많이 한다.성인 남성이 평소에 하는 집안일은 청소(19.8%),가족 보살피기(12.9%),식사 준비 및 설거지(12.1%) 순이다. 20세 이상 여자 중 평일에 10분이상 집안일을 한 사람은 92.2%이며 평균 가사시간은 4시간19분이다.평일에 초등학생은 7시간20분,중학생은 8시간52분,고등학생은 10시간7분을 공부한다. 학교 수업과 관계없이 자기 계발을 위한 학습을 하루 10분 이상 하는 대학생은 8명 중 1명꼴이고,일반인은 2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서울지역 임금 근로자는 출퇴근하는 데 1시간20분을 써서 49분으로 가장 짧은 충남과 전남에 비해 31분이 더 걸린다.남자가 여자보다,미취업자가 취업자보다 신문을 많이 읽는데 평일에는 남자의 28%가 평균 39분 신문을읽고,일요일에는 23%가 41분 읽는다. 김성수기자 sski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첫 가출길 절집서 먹어 본 쑥밥엔 매캐한 향내... 내가 절집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열 아홉 살 무렵이었다.어느 잡지의 신인상을 받고나서 오랜 숙원이던 고등학교 자퇴와 가출을 동시에 해냈다.나중에대학에 가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유치장에서 만난 부랑 노동자와 간석지 공사장엘 찾아갔던 것은 본격적인 방랑이 되었지만. 하여튼 첫 가출은 거의 한 해가 걸렸다.동행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전여행비슷한 출발이었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오랫동안 국토를 누벼 본 적이 없었다.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는데 부둣가에 서자마자 배를 타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강열한 소망에 들떴다. 동행과 청주 대구 마산을 거쳐서 진주 어름의 농가에서 보리 베기를 하며 밥을 얻어 먹다가 중국집에서 -그때는 철가방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상자로 배달을 했는데- 자장면도 배달하다가 빵공장에서 빵 목판을 나르는 일도 했다. 청주에서는 아이스케키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얼음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 팔기도 했다.칠북이란 작은 면에 갔다가 야산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절집에 불목하니로 들어앉게 되었다.우연히 주지 스님과 이야기 해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산하겠다는 말이 나와 버렸던 것이다.스님은 거의 달포 가까이 나를 절에 두고 관찰해 본 다음에 일봉서신과 함께 부산으로 보내 주었다. 내가 절에서 난생 처음 먹어 본 음식이라면 쑥을 넣어 지은 밥과 엉겅퀴로끓인 된장국이다.쑥밥은 그냥 산야에 널린 쑥을 뜯어다가 콩나물밥이나 무밥처럼 넣고 지은 밥을 양념장을 쳐서 비벼 먹는다.역시 들판에 지천인 엉겅퀴를 캐다가 냉이국처럼 된장과 들깨를 넣고 한소끔 끓일 뿐인데 입안에 싱싱한 풀향기가 가득찬다.푸른 물이 든 쑥밥의 매캐한 향내도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내가 끝내 맛을 들일 수 없었던 것은 산초라는 이상야릇한 향내가 나는 열매를 가지 채로 간장에 담근 장아찌였다.열매의 알알이 약간 여물게 씹히는데 입 속에서 톡톡 으깨지면서 독특한 향내를 진동 시킨다.나중에 이 열매나 잎을 가루로 내어 미꾸라지 추어탕에 쳐서 먹던 것이 생각났다. 보살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가죽잎을 말리던 것도 생각난다.너푼너푼한 가죽나무 잎을 따서 땡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찹쌀로 풀을 쑤어서 마른 나뭇잎에다 정성껏 바른다.앞 뒤에 찹쌀풀을 발라서 채반이나 자리에 널어 놓고 다시 말린다.이것을 저장해 두고 먹을 때에 기름에 튀겨낸다.마치 튀긴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아삭거리고 고소했다. 스님은 나를 동래 범어사에 있는 그의 도반이던 고광덕 스님에게 보냈다.광덕은 나중에 대학생불교연합의 지도법사를 거쳐서 불광이라는 잡지도 만들던분이다. 그는 당시에 범어사의 원주를 지내고 있었다.조실은 저 유명한 하동산 스님이었다.편지를 찬찬히 읽어 보고나서 그는 나를 동산 스님에게로 데려 갔다. 어린 아이처럼 곱게 늙은 노스님이 나를 힐끗 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고 그러는고…?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앉았을 뿐이었다.절하고 나오기전에 한 말씀 올렸다. 갈 데가 없으면 쭉 있을랍니다. 그것이 아마 면접에 해당이 되었던지 광덕은 나를 말없이 재우고 나서 이튿날 범어사를 방문한 스님에게 붙여서 보냈다. 그것은 아마도 울산 거의 다 가서 후미진 바닷가에 있는 작은 암자였을 것이다.바로 지척에서 바위를 때리는 세찬 파도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나를 데려간 스님은 불을 때라 밥을 해라 시키더니 저녁 밥으로 밥 한 사발씩에 고구마순 나물과 시어 터진 김치에 국 한 가지로 저녁을 먹고 나서 건너가 자랜다.단칸 오막살이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 모셔 놓은 법당 마루를 지나 왼편에 길죽하고 비좁은 변소 같은 토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방은 그대로흙을 바르고 오래 되어 꺼풀이 일어난 멍석 한 장이 깔렸다. 파도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호통소리가 들렸다.부처님에 귀의하겠다는 놈이 예불 시간도 모르고 쳐질러 잔다고 그 꼭두새벽에 나가라는 소리였다.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달려 와서 걷고 또 걸어서 당도한 곳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지만 쫓아내니 가방을 달랑 들고 길을 찾아 나오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걷다가 타다가하며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미 끼니 때가 넘은 저녁무렵이었다.가방을 들고 산문에 들어서니 누구 하나 아는 체 하는 이가 없었다. 마침 요사채 툇마루에 얼굴 아는 동승이 앉아 있었다.그는 내가 범어사를 찾아올 제 버스에서 내려 십여릿길을 함께 걸어오며 이야기를 나눈 아이였다. 나이는 한 열 대여섯쯤 되었을까,살결이 희고 코가 오뚝하며 눈이 맑은 미소년이었다.그는 지금쯤 한소식 하고 큰 스님이 되어 있을지.내가 마루에 가서털썩 주저앉으니 그는 내가 멀리까지 다녀온 것을 모른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는 동승이 빙긋이 웃었다. 문을 세 개쯤 지나야 입산이 되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그가 나에게 왜 스님이 되려느냐고 물었다.나는 표를내는 건 어려서부터 질색이었으므로 이렇게 답했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여기나 들어오려구 해요. 엊그제 여기서 처음 자려고 할 적에 행자 하나 들어오더니 제법 능숙한 자세로 합장하고 나서 내게 자기를 찾으려고 왔느냐는 둥 소크라테스 같은 폼을잡길래 한마디 했다.집이 없어서찾아 왔을 뿐이라고 대답했는데 동승도 그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집에 갈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시험은 몇 번 더 계속 되었고 나는정말 세상에서 아무 데도 갈곳이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처를 정하여 주었는데 거기가 참선 공부의 산실인 해운대 금강원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공양의식에 참례하기 시작했다.스님들은 모두 목기로 만든 자신의 발우를 보자기에 싸서 대중방 선반에 올려 두고 있었는데 공양 때에는 그것들을 펼쳐 두고 모두 벽을 등지고 늘어 앉는다.제일 먼저 물을 받아 그릇을 씻고 밥과 국과 찬을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 내어 각기의 목기에담아 공양한다. 국은 언제나 채소 된장국이고 찬은 나물 두 가지에 김치다.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기름기 있는 전붙이나 튀김도 나온다.식사를 끝내면 남은 음식물을 모두 제 뱃속으로 버린 다음에 물을 받아서 남겨 둔 김치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밥풀이며 음식 찌끼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그 물을 마신다.그리고 다시 맑은 물을 받아헹구고 또 마신 다음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서 보자기에 싼다. 나는 머리를 깎고 계를 받기 전까지 겉 모양은 스님과 같지만 아직은 연습중인 행자가 되었다.내가 맡은 일은 주로 절집 안팎의 청소와 허드렛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마당과 앞 뒷뜰을 쓸고 법당에서 선원에 이르기까지 비질 걸레질을 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스님들도 빨래는 각자가 알아서 했지만 각 방에 큰 스님들 밥상을 나른다거나 잔심부름 할 일도 만만치 않았다.부엌에 들어가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은커녕 불을 때는 일도 내게는 차례가오지 않았다. 황석영.
  • [자랑스런 공무원] 원성1동 직원 尹載弼씨

    헌혈이 ‘특수시책’인 동(洞)이 있다.충남 천안시 원성1동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원성1동사무소 직원 윤재필(尹載弼·31·건축8급)씨다. 그는 동네에서 ‘헌혈왕’으로 통한다.헌혈 횟수는 모두 84차례.고교 1년때인 85년부터 시작됐다. 올 초 천안시가 발행한 ‘천안 기네스북’에 헌혈 1인자로 올라있다. 1년에 몇차례 하던 그의 헌혈은 지난해부터 부쩍 늘었다.인근 천안역 앞에‘헌혈의 집’이 생겼기 때문이다.매달 두번은 빼놓지 않고 한다. 그 전에는 50여㎞ 떨어진 대전까지 찾아가 헌혈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92년 논산에서 공직에 첫발을 디딘 그는 97년 원성1동으로 와서도 헌혈의 열성은 변치 않았다. 헌혈증서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가족을 위해 쓴 것은 지난해 장모가병원에 입원했을 때 한번 뿐이다. 헌혈증서 모두 천안시 소속 동료 공무원과 관내 영세민에게 배포,본인이나가족을 위해 쓰도록 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윤씨는 매달 나환자후원회,한국복지재단,백혈병돕기후원회에각각 1만∼2만원을 보내는 등 이웃사랑에 발벗고 나선다. 자신은 오랫동안 전세를 살다 최근에야 임대아파트로 옮길 정도로 풍족하지 않지만 베푸는 일에는 넉넉하다. 그의 고운 마음씨는 일에서도 배어난다.매일 수십명의 건축 민원인들이 찾고 있지만 짜증 한번 안낸다. 법이나 건축지식을 모르는 민원인에게 언제나 자상하게 상담해준다.때로는알기 쉽게 도면을 그려 설명하고 까다로운 민원은 직접 현장을 찾아 법적 문제가 없는지 가려주곤 한다. 주위에서는 그의 선행을 보고 ‘부전자전’이라고 칭송한다.천안시 성환읍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의 부친(57)은 오래 전부터 소년소녀가장의 생활을 보살피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와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평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살피는데 몸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늘 가슴 속에 담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문화도시 문화거리](1)축제의 땅 춘천

    8월이 되면 왜 사람들은 춘천을 찾는가.어떤 이는 의암호에 비친 저녁노을을,어떤 이는 소양호 선착장과 고즈넉한 청평사의 분위기를 그 이유로 든다.어떤 이는 경춘선 열차의 낭만적 분위기와 강촌의 시원한 강바람이 생각나서,어떤 이는 삼악산에서 흘린 땀을 등선폭포에서 식히려는지도 모르겠다. 식도락가들도 춘천으로 간다.막국수를 먹어야할지,닭갈비를 택할지 고민스럽다.게다가 춘천호의 송어·향어도 사람을 유혹한다.그러나 물결이 반짝이는의암호변 카페에 누군가와 마주앉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고 남음이 있지 않을까.청평사·등선폭포는 다 무엇이며,더구나 막국수와 닭갈비라니…. 춘천은 이렇게 자연이나 생활 유산만으로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도시라고할만하다.그렇지만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물려받은 문화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춘천인형극제가 열리는 8월,사람들이 이 도시로몰리는 것도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형극제는 5월의 마임축제,11월의 애니메이션축제와 함께 춘천 문화예술축제의 트로이카를 이룬다.그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인형극제를 살펴보면 문화도시 춘천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인형극제는 해마다 8월 둘째주 목요일 막을 연다.올해는 8월10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국내외 65개 극단이 모두 150여차례 공연을 펼치게 된다.그러나이렇게 큰 행사에 드는 예산은 2억여원 남짓.전문가들은 다른 도시에서 이정도의 축제를 벌이려면 적어도 6억∼7억원,많으면 10억원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공연기획가 강준혁이 이끄는 조직위원회의헌신이 있기 때문이다.하나의 도시를 이상적 문화도시로 바꾸어놓겠다는 문화운동가로서 꿈을 이루는 것이 이들이 바라는 유일한 반대급부이다.그렇다보니 이벤트업체를 참여시킬 필요가 없고 전체예산의 20∼30%에 이르는 업체의 수익금을 지출할 필요도 없다. 인형극 참여극단에는 ‘개런티’라는 개념이 없다.극단 마다 1주일 이상 춘천에 머무르지만,사례금은 ‘기름값’뿐이다.세계적인 인형극 도시를 하나만들어놓겠다는 인형극인들의 여망이 가슴뭉클하다.200명의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도 중요한 경쟁력이다.대학교수·회사원·자영업자 등 20대에서 50대에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이들은 수고비 한 푼 받지 않아 예산 걱정을 잊게 만든다.용달차를 운전하는 50대 자원봉사자는 인형극제가 열린 11년 동안 빠짐없이 짐을 날랐다.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대학생이 많은 것은 조직위에 인턴으로 채용되어 전문공연기획가로 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25만명의 중소도시로는 유례가 없는 충실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성공의 열쇠다.인형극제는 어린이회관의 대극장과 무지개인형극장·야외무대,문화예술회관의 대극장과 전시관·야외무대,강원평생정보교육관 대·소극장,춘천시민회관,강원체육회관 등에서 나뉘어 열린다.의암호반에 새로 짓는 500석짜리 인형극장은 인형극박물관과 야외무대를 갖추어 내년에는 새로운 명물로 떠오를 것이다. 8월24일에는 300석짜리 국악전용회관도 문을 연다.기존의 1,800석짜리 강원대 백령문화관,700석짜리 한림대 일송아트홀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도시로서 춘천의 앞날이 밝은 것은 ‘화려한 축제의 중심지’라는 오늘의 위상에 도취돼 있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춘천시는 이미 2004년까지 시청을 중심으로 1만 5,000여평에 ‘문화공원’을 만드는 사업에 들어갔다.문화시설을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시설은 그대로 두고 용도만바꾸는 개념이다.예를 들어 기존의 교회건물은 무대만 조금 손보면 예배용긴의자를 그대로 객석으로 활용해 마임전용극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큰공사가 필요치 않은 만큼 마임전용극장은 올해안에 문을 열 것이다.이런 식으로 마임극장과 미술관·인형극장이 들어서고,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간도만들 계획이다. 문화공원에는 지역예술인이 침체에 빠지면 지역문화도 몰락할 수 밖에 없는만큼 지역예술이 설 수 있는 바탕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오늘의 문화도시 춘천이 있게 한 문화적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마임축제에 모두 35만명의 관람객이 참여하자 한 인터넷 회사는 “마임축제를 500억원에 팔라”는제의를 진반농반으로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춘천시 관계자의 대답은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행사를 무엇 때문에 지금 팔겠느냐”는 것이었다.아직은 문화예술이 ‘돈벌이’에 나서기에는 어리지만 한해두해 키워가다 보면 어느 틈에 어른이 되어,돈을 벌어오지 말라고 해도 큰 돈을 벌어오는 효자가 될 것이라고 춘천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서동철기자. [기고] “오랜 시간 정성 들여야 문화도시 결실”. 매년 춘천에서 열리는 춘천국제마임축제나 춘천인형극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이제 춘천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호반의 도시만이 아니다.근년에는 ‘애니메이션’도 춘천의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21세기에서는 개성적이면서도 긍정적이고 또 분명한 이미지가 가치로서 서열 1위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사실 춘천인형극제 출범 당시 인형극단하나도 없었던 춘천에 정착하게 된 것도 이미지 덕분이었다.80년대 후반 국제적인 인형극축제를 열기에 알맞은 ‘너무 규모가 크지 않은 도시’,‘현대화의 때가 덜 묻은 도시’,‘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 등을 찾던 우리에게 ‘호반의 도시,춘천’은 매우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때 오래된 나무 장농이 궁상스럽다고 철제 캐비닛으로 자랑스럽게 바꾸었고,가난의 상징 초가지붕을 걷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는데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문화적 이미지의 가치를 잠시 망각해버린 옛날 이야기 같지만아직도 전국 곳곳에서는 사람이 걸어 다니기 좋은 길을 차량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로 바꾸는 일을 자랑스럽게 해 대고 있다.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문화도시의 이미지와 세계적 문화축제를 요구한다. 한 지역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결코 한 번의 위대한 행사로 얻어질 수는 없다.그런 의미에서 춘천에서 탄생되어 성장하고 있는 마임·인형극 그리고 애니메이션 사업 모두가 아직은 충분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그리고 이들이 충분히 자랐을 적에 현재의 보살핌은 수천 수만 배로 불어나 춘천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탄생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은 문화행사 뿐 아니라 문화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춘천시가 국고의 보조를 받아 건립중인 춘천인형극장의 경우는 차후에 인형극제나 마임축제의 중심 공간이 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고 보급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라나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제까지의 관주도형 문화공간처럼 비전문적인 관리인 몇 명으로는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국내 최초의 시립인형극단이 들어서고 또인형극인을 키워낼 수 있는 인형극학교도 함께 고려될 때 인형극장에 필요한 전문인력들이 모여 들고 공연장도 활성화 될 것이다.그러나 춘천이 문화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느 것 보다도 중요한 점이 있다면 이는 문화를 경제논리나 기타 논리로 다루지 말고 ‘문화논리’로 다루는 일일 것이다. 강준혁 춘천인형극제 조직위원장·추계예술대 예술경영대학원장
  • 한국 古미술 특별경매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종춘)는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동한국고미술상설전시관에서 ‘새천년한국고미술 특별경매전’을 연다. 출품작은 청자관음보살입상,청동초두,금동삼존불입상,고종황제어진,청동기시대의 홍도(紅陶),조선시대 화가 허주 이징의 이금(泥金,아교풀에 갠 금박가루)산수도 등 도자기와 불상,민속품,서화 1,500여점.이 가운데 특히 고려시대 청자관음보살입상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겉옷은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양손에는 향통(香筒)으로 보이는 짧은 막대모양통을 쥐고 있는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불상보다는 무속상으로서의 관음보살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이번 전시에는 연상(硯床),경상(經床),서안(書案),지함(紙函),퇴침(退枕) 등 조상들의 생활정서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고미술협회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에 이르는 이 작품들을 23일 오후2시 경매할 예정이다.고미술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15일부터는 인터넷사이트(www.daboseong.co.kr)를 통한 사이버전시도 마련한다.(02)3487-3900.
  • [대한광장] 교각틈 갈대의 교훈

    버스를 타고 서울역 앞을 지나다가 신호 때문에 정차를 하고 있는 동안 고가도로를 받치고 있는 교각 아래에서 갈대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아스팔트가 깔린 곳과 교각의 틈 사이에서 갈대는 한가하게 고개를 흔들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우선 그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갈대가 자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에서부터 지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놀라운 자생력이 떠오르는가 하면,우리 사회가 통과한 파란만장한 역사적 과정도 기억속에서 꿈틀댔다. 80년 봄,그 자리는 수많은 학생들이 신발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최루탄과지랄탄의 아비규환 속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곳이었다.그 길을 꽉 채우며 진정한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외친 그 함성은 뒷날 광주민주화운동으로,87년 6월항쟁으로,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심참담한 노력이 가해진 뒤에야 오늘날 그 결실의 일말을 보고 있는것이리라. 마침 정부는 민주화과정에서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참으로 잘된 일이다.의로운 길에 서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 특히 그 일 때문에 다치거나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일은 서두를수록 좋다.공의를 위해 희생당한 일에 정당한 보상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특히 일제강점기 이래 우리 민족사의 정기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도 찬성할 만하다.친일세력들이 역사의심판을 받기는 커녕 후대에도 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역사에서가장 부끄러운 일 아니던가. 그러나 염려가 있다.진정한 민주화란 정치적 민주화 못지않게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 달성된다고 생각한다.또한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이른바앞에 나서서 큰 희생을 치른 사람들만이 그 공을 모두 받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6월항쟁때의 기억이다.경찰에 쫓겨 우왕좌왕할 때 서울역 부근의 한제화점 주인은 경찰에 쫓겨 들어온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셔터를 내려주고 대야에 물을 떠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점포의 물건들을 치워주었다. 사람들은 눈물범벅으로 그 모습에 감동하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닌선의와 따뜻함에 참으로 큰 감격을했다.뒷날 6월항쟁이 끝났을 때 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말없는 희생과 보살핌이 지금 우리의 삶을 이만큼 훌륭하게 이끈 원동력이란 생각을 했다. 앞에서 희생당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익명으로 감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희생과 성원이 모여서 선을 이룬 것이라 할 때 자칫 정부가 취할 예정인 민주화보상법이 오히려 진정한 국민적 통합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희생이라든가 봉사가 값진 것은 그것이 보상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연히 그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름의 희생을 돈으로 계산하고 나면 희생의 참된 의미는 희석되고 자칫하면 모든 행동은 곧바로 보상된다는 저급한보상심리의 다른 이름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철학자 칸트는 ‘이 세계에서 무제약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선의지(善意志)밖에 없다'는 말을 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이 돈으로 계산되면서그 큰 의미가 훼손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나는 그 점에서 사회적으로 보상을 해야될 급박한 사람들 외에는 개별보상을 가급적 유보하고 거기에 쓰일 재원으로 민주화회관이라든가 노동운동회관등등의 기념관을 건립하고,거기서 어려운 사람들의 일자리도 제공하며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대백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 생각한다. 엄정한 자료정리와 검증을 통해 이 땅에 심어진 많은 사람들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이 집대성될 때 우리가 이룬 역사의 의미나 참된 희생의 의미를 선양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화보상법이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되면 우리삶의 진정한 가치가 돈에 의해 계량되고 마침내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할 위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행에 만전을 기했으면 한다. 교각 틈서리에서 어렵사리 뿌리를 내리고 잎을 흔들고 있는 갈대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있는 것이 그것 아닐까! [姜 亨 喆 시인·숭의여전 교수]
  • 정신장애인들의‘싱싱한 결실’

    “몸과 마음은 모두 불편하지만 이 고추만큼은 정성들여 가꿨습니다.” 지난 10일 도봉구 쌍문1동 269일대 100여평의 경작지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모임인 ‘비둘기회’ 회원들이 도우미들과 함께 싱싱한 풋고추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고추밭은 도봉구(구청장 林翼根)가 정신질환자들의 재활과 사회적응을돕기 위해 마련한 것. 17세의 청소년에서 65세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된 비둘기회 회원들은 지난 4월 이곳에 500여 포기의 고추를 심은 뒤 그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흙을 북돋우고 버팀나무를 세우는 등 정성을 다해 보살펴왔다. 이들이 흘린 땀이 거름이 되어 고추는 무럭무럭 자라났다.이들은 수확한 고추 25㎏을 모두 그동안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고추 수확에 참가한 강모씨(38)는 “이번 경작체험을 통해 우리도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활짝 웃었다. 도봉구 백경애(白敬愛) 보건과장은 “이들의 재활과 사회적응을 위해 경작활동외에도 그림그리기와 음악요법 등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장애를 이겨내려는 이들의 의지가 눈물겹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新 김정일 연구](11)통치기반 확대

    ‘인민의 어버이’-.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을 먹여살리고 보살펴주는 자상한 ‘어버이’이다.‘장군님’으로 불리는 그는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충성을 받고 있으며 ‘위대한 영도자'로 통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통치는 인민대중속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인민들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선심을 쏟으면서 소박하고 근면한 지도자로 다가가고 있다.그가입버릇처럼 내세우는 말도 ‘인민을 위해서’이고 인민을 하늘처럼 받든다는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말도 즐겨 앞세운다.김 위원장이 정립했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그는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이고 인민은 그를 받드는 ‘대중’이다. 김 위원장은 자상한 배려로 인민들을 곧잘 감복시킨다.그의 이같은 자세는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정중히 접대하는 과정에서도 잘 나타났다.북한 신문이나 방송엔 그의 이같은 지도자로서의 풍모를 선전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자주 소개된다. 지난 96년 11월24일 새벽.판문점 시찰에 나선 김 위원장은 시간이 너무 일러개성시 인근에서 차를 멈추고 무려 2시간 동안이나 한지에서 기다렸다. 새벽단잠에 빠져있을 병사들을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는 김 위원장이 병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방송에 자주 나온다. 김 위원장은 소탈한 옷차림에 재담과 편안한 분위기 조성 등으로 인민들의마음을 사로잡는 장기가 있다.또 생일상 차려주기,각종 훈장 및 표창 주기,친필서한 보내기,‘감사’ 전달,인민들과의 사진촬영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인민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들어서도 실리 중시를 앞세우고 현지지도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대중속으로 파고들고 있다.현지지도란 군부대,공장,사업현장,마을 등에 직접 찾아가 지도하는 것으로 김 부자가 즐겨사용하는 현장통치방법이다. 올들어서만 30회에 가까운 공개활동 가운데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북한 선전매체들은 그가 쪽잠(잠깐 눈을 붙이는 것)과 줴기밥(주먹밥)으로 분과 초를 쪼개가며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에 나서고 있다고 선전한다.소탈함과 자상한 배려로 상대를 감복시키고 부지런한 김 위원장의 자세는인민들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지와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그러나 이는 오래전부터 그의 몸에 배어온것이기도 하지만 인민들을 다스리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행동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또 인민생활에 기본적인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통치기반에 가장 큰 취약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이와함께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가한 정상회담쇼크를 어떻게 추슬러나가느냐는 것도 김 위원장이 풀어나가야 할 통치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마음은 북녘 고향에](6)평남 성천 출신 이태흥 할아버지

    “별명은 ‘돌배’,야무졌던 북녘의 동생이 살아 있는지…” 이태흥(李泰興·70·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씨는 4일 “평남 성천군 대곡면 대곡리 추피마을에 두고 온 막내 동생 태용(泰龍·62)이는 어릴 적 별명을부르면 나를 곧바로 알아볼 것”이라며 신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보비(75)와 보옥씨(73),누이동생 보화(68)·보여씨(65)도 고향에 남았지만 나이가 많은 누님 둘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난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돌배’가 누이동생 둘은 잘 보살피고있을 것이라고 되뇌인다. 이씨는 1946년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일제 치하에서 대장장이 일로 어머니를 비롯,8남매를 부양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버지가 44년부터 강원도이천군 음탄면 건자리 두메산골에 숨어 지내다 광복 이듬해에 어머니와 함께 장티푸스로 숨진 것이다. 이씨는 부모님을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 전인 그해 2월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당장 생계가 걱정인데다 이불 보따리 등 이삿짐도 많아 ‘돌배’만은 두 매형에게 맡기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고향 길은 험난했다.원산에 이르자 눈이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쌓여 사경을 헤메다 간신히 트럭을 얻어탈 수 있었다.하지만 고향에 돌아온지 얼마 안돼 태용은 10세의 나이로 수백리 길을 찾아와 ‘과연 돌배’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 1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48년 11월 흩어졌다.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곧 전쟁이 터져 50여년 동안 생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1·4후퇴 때 동생과 누이들의 얼굴도 못본 채 혼자 남으로 내려와 1남 4녀를 둔 이씨는 “고향 앞을 흐르는 대동강의 물결치는 모습이 아련하다”면서 “죽기 전에 동생과 누이,친척 어르신들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한수기자 onekor@
  • [끊어지지 않는 지구촌 분쟁](4)티베트의 홀로서기

    반세기동안 계속되는 티베트의 독립·분리운동은 중국에게는 피하고 싶은아킬레스건이다.티베트내의 인권상황은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곤혹스럽게 한다.97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미국 방문때 공식거론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논란이 됐었고 최근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문제로 한-중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올초에는 티베트 불교계 서열 3위인 카마파 라마(14세)가 인도로 월경,중국-인도관계가 불편해졌다.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달라이 라마가 98년 11월 티베트 독립 포기를선언하고 ‘완전 자치’를 요구하면서 티베트 문제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공은 중국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분쟁의 역사]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과 영국의 통치를 번갈아가며 받아왔다.1911년 신해혁명이후 한족을 몰아내고 1950년 중국이 지배권을 주장하며 무력 침공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왔다.중국은 1906년 티베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영국과의 조약을 근거로 티베트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1951년 5월 베이징 정권이 무력을 이용,달라이 라마 정부와 17개조의 ‘티베트 평화해방협정’을 체결했다.정교일치 체제의 존속은 인정하되 토지개혁을 포함한 사회개혁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그러나 1959년 중국의 점령에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중국군에 의해 진압됐다.이후 79년까지 100여만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달라이 라마는 59년 추종자 6,000여명을 이끌고인도로 망명했다. 중국 정부는 65년 티베트에 자치구(서장)를 세웠다.67년 문화대혁명(∼1977년)이 시작되면서 역사적 유산이 모조리 파괴됐다.마오쩌둥(毛澤東) 사망을계기로 화해를 시도했지만 티베트 민족주의 저항은 약해지지 않았다.봉기 30주년인 1989년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90년 5월까지계엄체제가 지속됐다. [분쟁원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살아있는 부처’인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신권정치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티베트가 갖는 군사적·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티베트 고원은 지리적으로 무기배치와 개발에 이상적이다.중국의 로스알라모스(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원자력 연구 중심지)에 해당하는 ‘제 9아카데미’가 티베트 북동부에 주둔하고 있다.중국과 인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티베트가 미사일 및 핵시설등을 갖춘 중국의 전진 군사기지화되면서인도의 견제가 심화됐다. 중국은 목재·수자원·광물자원과 세계 최대의 우라늄 광산에 대한 개발권도 놓치고 싶지 않다.여기에 티베트의 독립 내지는 완전자치가 다른 소수민족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전망] 중국은 헌법에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티베트에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풍부한 자원개발 및 전략적 요충지인 티베트 고원에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을중국이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무리일 것 같다. 김균미기자 kmkim@. *티베트 분쟁 일지. ●1913.1 달라이 라마 13세,티베트 독립 선포. ●1950.10 중국군,티베트 무력 점령. ●1951.5 티베트,중국 서장자치구에 편입. ●1959.3 티베트서 독립요구 대규모 시위, 달라이 라마 인도로 망명. ●1965.9 중국,티베트 자치구 성립 선언. ●1987.9 달라이 라마 ‘평화 5항목’제안,중국 거부. ●1987.10 대규모 독립요구 시위. ●1989.3 59년 독립시위 30주년 대규모 시위로 6명 사망,100여명 부상.중국사상 최초로 계엄령 선포. ●1989.10 달라이 라마,노벨평화상 수상. ●1992.4,1993.10 티베트서 폭동 발생,사원들 폐쇄. ●1998.11 달라이 라마,티베트 독립포기 발표. *열매 맺는 망명정부 외교.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와 네팔 부탄 등에 흩어져 사는 13만여 티베트인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망명정부는 완전 자치를 쟁취하기 위해 대(對)유엔,미국,유럽 등 국제적인지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은 특히 티베트 문제를중국의 민주주의,인권문제에 포함시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망명정부는 사법부인 티베트 최고사법위원회와 입법부인 국민대표국회,행정부로 이뤄져있다.내각과 국회는 5년마다 선거로 구성원들을 선출한다.또 뉴델리와 뉴욕 런던파리 등 10여개 도시에 대표사무소를 설치,티베트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국제 티베트 운동’의 후원 아래 세계 곳곳에 있는 수백개의 ‘티베트 우호회’ 지부들이 티베트 돕기에 나섰다.특히 미국의 영화배우 리처드기어 등 헐리우드 인사들이 티베트 돕기운동에 동참하고 티베트 관련 영화‘쿤둔’과 ‘티베트에서의 7년’이 개봉되면서 티베트에 대한 세계인들의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티베트의 인권보호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세계 티베트의 날’ 행사가 매년 열리는 등 국제적인 지원행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운동과는 별개로 티베트 독립운동세력은 한때 미국과타이완의 지원을 받아가며 중국에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70년대이후 미국과 중국관계가 호전되면서 지원이 끊어졌고 지금은 비조직적인 소요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 印 다람살라 망명정부 르포. [다람살라(인도) 김성호기자] 인도 동북부 해발 1,900m의 산악지역인 다람살라.망명자들을 비롯,티베트와 인도 전역에 퍼져 사는 티베트인들이 고유의종교와 문화를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자치에의 염원을 이어가는 이색지대다.마치 일제하 상하이 임시정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중국의 폭압이 한창이던 59년 6,000여명의 측근과 함께 티베트를 탈출한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네루 당시 인도 총리의 주선으로 정착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 망명도시.89년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 본격적견제에 나선 중국 정부와 이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줄다리기가 오늘도 팽팽히 벌어지고 있다. 망명 티베트인 1만명이 사는 고지대와 인도인 2만명이 거주하는 저지대를합쳐 인구는 총 3만명.소형차 한대가 간신히 통행할 수 있는 비좁은 길을 따라 상가와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망명정부 청사가 자리잡은 거리를중심으로 사원과 학교가 산재하며 어느 곳에서든 티베트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거리에는 티베트 불교가 좋아 무작정 찾아든 서방세계의 젊은이들이 불상이며 탱화를 벌여 놓은 좌판 주위에 몰려 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손님 주위에는 어김없이 인도 걸인들의 구걸이 이어진다. TCV(Tibetian Children’s Village)와 도서관은 티베트의 전통과 종교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달라이 라마의 누이동생 제툰 페마가 총괄하는 TCV는 일종의 종합학교로 티베트 불교 중심의 9년 과정.인도 전역에7개의 학교가 운영되는데 다람살라에는 700명이 수학중이며 한국 학생도 4명이 있다.59년 망명 때 티베트인들이 등짐을 져 날라온 경전 7,000종이 고스란히 보관된 도서관엔 각국 학생·승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티베트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사원.조캉사원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와 관세음보살상 옆에 60년대 문화혁명 때 티베트에서 파괴된 불상의 목 2개가 함께 봉안돼 있다.티베트 불교와 티베트인들의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 파괴된 티베트 사원은 6,000여개.산꼭대기 달라이 라마의 거처 주변에 자리잡은 중앙대회당에는 1년에한번씩 달라이 라마의 법어가 내려지며 남걀사원 역시 정월 대보름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다.사원 곳곳에서 손을 뻗고 엎드려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승려와 일반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예비 비구니들이 10년에 걸친 교육을 통해 사미계를 받는 비구니 강원을 들어서면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예비 승려들이 읽는 독경소리가 신비감을 전한다. 토속 주술신앙과 티베트 불교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를 갖춘 네퉁사원은 신통을 받은 승려가 달라이 라마에게 행동지침을 전하는 신탁의 장소다. 정부 청사거리.달라이라마가 신왕(神王) 위치에 있지만 총리 1명,장관 7명으로 구성된 내각 카샥과 망명 티베트인들이 뽑은 46명의 의원이 모인 의회등 나름대로 자치의 틀을 갖추고 있다.중국 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50년 티베트를 쳐들어오면서 트기 시작한 비극의 싹이 결국 이곳으로 귀결된 것이다.59년 중국 침공에 맞선 독립시위에는 잔혹한 진압이 따랐고 그때 티베트 전체 인구의 20%인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행방불명된 이들은 헤아릴 수 없다.티베트에서 최근 망명한 전직 경찰관 탐딘 체링씨(56)는“폭압의 잔혹성은 59년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면서 “60년 이후 약 20만명이 더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옛 티베트의 면모를 아스라히 풍기면서도 차츰 현대문명의 물결이 스며들고있는 다람살라가 언제까지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티베트인들이 더이상 달라이 라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될 때 나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달라이 라마의 말이막연하게나마 다람살라의 앞날을 점쳐볼 수 있게 한다.
  • [지방자치5년 현주소와 문제점](1)행정의 개념이 바뀐다

    *'봉사행정 싹 틔우기'일단은 성공.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본격 도입된 지 1일로 만 5년을 맞았다.발아기를 거쳐 착근기에 접어든 우리의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도록 5년동안 자치가 남긴 빛과 그림자를 조명,앞으로 지향해가야 할 길을 시리즈로 모색해본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여야간 정치적 타협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데다 국민들의 자치에 대한 인식과 경험 부족,법령 등 제도적 기반의 미비,지역간의 극심한 불균형 등 제반 여건이 취약해 출발 당시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다.하지만 실험기에 불과한 짧은 기간동안 자치는 정치지형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관청과 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탈바꿈시켰으며,실제 일상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등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낳고 있음에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일단 성공적으로 싹을 틔웠다는 것이 중평이다. 5년동안 자치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행정의 변화다.주민 위에 군림하고 주민을 통제하던 관치(官治)행정이 서비스 행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관청의 문턱 낮추기부터 시작해 민원인 불편 없애기,소외계층 보살피기,지역경제 살찌우기,주민 삶의 질 높이기 등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각 자치단체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집중의 폐해인 획일주의 행정을 불식시킨 점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중앙정부의 일률적 지시·시달을 단순집행하던 행정은 이미 옛날이다.똑같은예산을 쓰더라도 이제는 지역사정,주민들의 경제수준·기호·성향 등에 따라 집행하는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밖에도 자치가 남긴 공(功)은 다양하다.하지만 부작용과 폐해 또한 적지않아 자치의 뿌리내리기를 가로막고 있다.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다 보니 봉사행정의 다른 한켠에서는 차기 선거를의식한 선심성·전시성 행정이 판을 치고 있고,정작 마땅히 해야 할 각종 단속은 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행정의 이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건주의,업적주의에 집착한 무모한 사업들이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반면 쓰레기소각장,하수처리장,화장장 등이른바 혐오시설들에 관한한 내 지역만은안된다는 지역이기주의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지역발전과 세수 증대를 빌미로 개발에 열을 올려 오히려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자치지역도 한 둘이 아니다. 이같은 행정의 낭비와 무모한 사업경쟁으로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재정상태를 빈사상태로 몰아가 자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방분권의 이면에서는 단체장이 대체권력자가 되어 인사·사업에 전횡을 휘두르고 그 주변으로 지역의 이른바 유력자들이 몰려들어 패거리를 형성하는 토호 발호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도입 5년을 맞은 우리의 지방자치는 두 얼굴의 모습을 지닌채 아직은 과도기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권한의 중앙집중도가 여전히 높고 교육과 치안분야가 제외돼 온전한 자치기능 발휘에는 미치지 못하고있다. 최병렬기자 choibl@.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만 5년.그동안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행정 서비스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전에는 민원인이 무엇을 물어봐도 대꾸도 없이 턱으로 응대하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일어나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따라다니며 민원을 원스톱으로처리해준다.수동적인 일처리에서 벗어나 주민들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행정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After Service)는 물론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까지 등장했다.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민간기업의 친절도를 따라잡았다는 평가다. ◆행정서비스,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돌아온 A씨는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주민등록과 운전면허 처리를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를 구비하는데 며칠 걸릴 것 같다고 하니 담당직원이 “휴가를 떠나는데…”라며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 있다가 그날 나와서 처리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세상 많이 변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선 행정기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각 행정기관들은 민원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기본은 친절행정에 있다고 보고대대적인 친절교육을 실시했다.항공사의 친절아카데미 강사를 초청,친절교육을 받는가 하면 아예 직원을 파견,친절교육을 받게 한 뒤 친절강사로 위촉하기도 했다. 대 시민 서비스 제고를 위한 아이디어 경쟁도 치열하다.타 자치단체의 우수시책은 즉시 벤치마킹한다. 등기소 업무인 등기부등본을 구청에서 발급해주는가 하면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민원부서의 근무시간을 오전과 오후에 각 30분씩 연장하기도 한다. 직원용 통근버스를 이용,야간자율학습 등으로 밤늦게 귀가하는 여학생들을집에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또 민원실을 호텔 로비처럼 꾸며 민원인들이 아늑한 분위기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애프터 서비스 행정도 등장했다.민원인에게 전화로 민원처리중 불편사항 등을 물어 불만이 있을 경우 시정을 해주거나 처리해주는 제도다.특히 공무원의 잘못으로 다시 관청을 찾게 될 경우 1만원의 교통비나 전화카드 등을 주는 민원처리보상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비포 서비스도 있다.일부 자치단체는 여권의 만료기일을 미리 알려주는가하면 고교3년생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돌며 병무행정에 대한 사전안내를 해준다. 벤처기업 및 중소기업을 위해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는 곳도 많다.코스닥시장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터넷 포털사이트회사 골드뱅크의 경우 처음 둥지를틀어 창업의 꿈을 이룬 곳은 다름아닌 서울 강동구가 마련한 창업보육센터였다. ◆공짜가 좋아/ 각 자치단체는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공짜서비스를 개발해내고 있다.일부 자치단체는 구청 및 각 동사무소에 인터넷폰 시스템을 설치,시외는 물론 국제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최근에는 무료 화상전화까지 등장했다.민원실에 자동안마기도 있다. 호적신고나 출생신고,혼인신고 장면 등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에 넣어 선물하기도 한다.드릴,만능사다리,파이프렌치 등 값비싼 생활공구를 무료로 빌려주는가 하면 장애인 재활용구도 공짜로 나눠준다.컴퓨터,어학 등의 무료강습은 물론 건축물 안전진단도 무료로 해준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몰라보게 달라졌다.장애인이 청사 앞에서 벨을 누르면 도우미가 즉시 뛰어나와 안내한다.점자로 된 청사 안내도를 비치하는가 하면 점자 블록도 설치해 놓았다.아예 장애인 전용창구를 마련,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해주기도 한다.휠체어에 탄 채 계단 등을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전동 휠체어 리프트까지 등장했다. ◆주민을 위해선가,단체장을 위해선가 /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기 선거를 의식한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이라는 비난도 만만찮다.인사고과 적용 등 자치단체장들의 쥐어짜기식 친절강요에마지못해 민원인들에게 기계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공무원도 많다. 주민들을 위한 이벤트를 자주 벌이다 보니 예산낭비도 비일비재하다.전임단체장들이 벌여놓았던 각종 사업들을 무시하고 새롭게 판을 벌이는 바람에중복투자도 많다. 친절의 이면에는 난개발,재정악화,토호와의 유착이 자라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몸에 배지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는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용수기자 dragon@. *자치단체 행정서비스 국민만족도 조사한다. 지방자치제실시 5년간 행정서비스의 질은 얼마나 좋아졌나. 궁금해할 사람이 많겠지만 정부는 아직 서비스의 개선 여부를 객관적으로설명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최근 나름대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부터 ‘행정헌장 서비스제’에 대한 평가를 시작했다. 자치단체별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겠다’는 헌장을 만들어놓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올해 처음 그 결과가 나왔지만 비교대상이 없다.또한 행정서비스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측정하기 어렵다. 이와는 별도로 ‘지자체 평가’도 지난해 처음 시범실시했다.그렇지만 평가항목은 공공혁신,지역경제 활성화,주민안전관리부문 등 행정력 측정에만 집중됐다.역시 행정 서비스를 평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행자부는 올해 들어서야 국민만족도 조사를 계획중이다. 제도 도입 5년간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던 것은 정부가 그 필요성을 일찍깨닫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자치단체들이 평가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선출직 단체장들이 운영하는 기관을 왜중앙정부가 평가하려 드느냐”는 게 자치단체장들의 기본인식이다.일종의 간섭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나쁜 평가점수나 순위가 공개되면 다음 선거에서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러나 선출직 단체장은 국가로부터 특정지역의 행정을 위임받았기 때문에평가를 수용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운기자 jj@. *C씨의 바뀐 행정 체험기. 서울 K구에 거주하는 C씨(45·관악구 신림3동)는 며칠전 평소보다 훨씬 이른 아침 6시30분쯤 집을 나섰다.그날은 자신의 사무실 건물 건축허가서를 접수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하 1층,지상 4층에 연면적 250평 규모의 아담한 건물.부지 구입과 설계를 마치고 드디어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오전 9시,설계사무소 직원과 함께 구청으로 향하면서 마음을 다져먹었다.주변에서는 “건물 한번 짓고 나면 관청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게 된다”며 지레 겁부터 줘온 터였다.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는 것은 예사고 착공,중간검사,준공검사때 관련 공무원들에게 상납을 안 하면 건물을 못짓는다는 얘기도들었다. 각오를 했지만 막상 구청을 들어서려니 오금이 저렸다.뭔지는 몰라도 덜미를 잡힐 것같은 기분이었다. C씨의 생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살가운 도우미들의 안내며 꽃화분이 가지런한 민원실 분위기가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내심 “아니 언제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처럼 고압적인 지시형 어투나 민원인의 실수를 꼬집는 신경질적인 응대도 없었다. 잔뜩 주눅들어 내민 설계도면과 건축허가서를 살펴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이 건물은 건축과와 청소환경과,교통지도과,교통행정과와 관할 소방서를경유해야 하며 처리기간은 1주일입니다” “그럼 그쪽을 순서대로 거친뒤 와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건축허가는 복합민원이므로 원스톱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1주일 후 건축과에착공신고를 하면 하루,이틀 후에 우편으로 착공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공사는 그 때 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의 말은 명쾌했다. 민원실을 나서는 C씨는 순간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내가 일을 제대로 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주머니에 넣어간 두툼한 돈봉투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기분좋게 회사로 돌아온 C씨는 구청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이런 글을올렸다.‘구청장님,인터넷사업을 한다는 제가 행정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달라진 공직자들의 모습에서 내 건물보다 든든한 우리의 미래를 읽었습니다.친절한 행정서비스,정말 감사합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영화 ‘로렌조 오일’ 실존 어머니 사망

    [페어팩스(미 버지니아주) AP 연합] 영화 ‘로렌조 오일’의 실존 인물로아들을 불치병에서 살려내겠다는 집념으로 로렌조 오일이란 물질을 찾아낸어머니 미카엘라 오도네가 11일 폐암으로 사망했다.향년 61세. 의학에 문외한이었던 오도네는 뇌의 백질이 차츰 파괴되어 가는 희귀병인부신백질 이영양증(ALD)에 걸린 아들 로렌조를 살리기 위해 남편과 함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올리브와 평지씨 기름을 혼합한 기적의 치료약인로렌조 오일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사연은 92년에 수전 서랜든과 닉 놀테가 주연한 ‘로렌조 오일’이란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의학 전문가들은 처음에는 이 물질의 효능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이후 여러 임상연구를 통해 로렌조 오일이 초기에 투여될 경우 ALD의 진행을 억제할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남편 아우스토 오도네는 “아내는 여행도,휴가도 가지 않고 심지어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매일 16시간 이상 계속해서 아들을 보살폈다”면서 “오랜 간호로 인해 아내의 건강이 악화됐다”고 말했다.그는 또 “이 물질의 진실은 앞으로 10∼15년 뒤 드러날 것”이라면서 “로렌조 오일은 아직도 임상실험 단계에 있으며 아직 판단은 이르다”고 말했다. 한편 아들 로렌조는 현재 22살로 병을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 끝에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순국선열 묘소·동상 관리 엉망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과 민족정기 회복에 몸 바친 선열들의 묘소와 동상·기념비 등 애국심을 일깨우는 귀중한 시설물이 내팽개쳐지고 있다.관리 주체가 국가보훈처,문화재관리청,지방자치단체,각 기념사업회 등으로 분산돼있어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관리비 예산이 부족한것도 원인이다. 사적 330호인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은 상해임시정부 요인이었던 김구·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치된곳.그러나 공원에는 애국지사들의 묘소나 기념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지판조차 없다. 김구 선생의 묘비는 비바람에 퇴색해 회색으로 변했고,비둘기와 까치 등의배설물을 뒤집어 쓴 채 외롭게 서 있다.봉분에도 잡초만 무성하다. 이봉창 의사의 동상은 다 쓰러져가는 울타리 안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솔방울과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곁에 나란히 있는 이봉창·윤봉길·백정기·안중근 의사의 묘소와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하다. 공원관리사무소 직원 이모씨(53)는 “하루 평균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면서 “8명의 직원으로는 쓰레기 청소도 버겁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산공원에도 안중근 의사를 비롯,순국 선열 10명의 동상과 9개의 기념비가있으나 사정은 효창공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동상과 기념비들은 건립된지30년이 넘어 심하게 녹이 슬었고,심지어 표면이 떨어져 나간 것도 있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공원내 동상 관리에 배정되는 예산은 연간 180만원 안팎.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동상에 스며든 녹과 기단의 화강암에 낀 때를 제거하려면 동상 1개당 2,000여만원이 든다”면서 “예산이 모자라 1년에한번 비둘기 배설물만 닦아 낸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애국선열 묘역의 이준 열사,이시영 선생, 광복군 18인묘소와 위훈비 관리도 엉망이다.이준 열사 위훈비는 이끼와 거미줄로 범벅이돼 있고 흉물스런 철조망이 묘소를 둘러싸고 있다. 묘역 입구에 사는 이시영 선생의 며느리 서차희(徐且喜·90)씨는 “예전에는 정부에서 묘소 관리를 도와주곤 했는데,요즘은 지원이 거의 없어 동네 사람과 참배객들의 힘을 빌려 청소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선양정책과 신명철(申明澈)서기관은 “공원·기념비·묘소 등의관리 주체가 제각각인 현 상황에서는 시설물의 소재 파악조차 힘들다”면서“관리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는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경빈(尹慶彬)광복회장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유적지에도 관심을 가질 때”라면서 “선열들의 넋이 깃든 곳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국민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방문 2일째 이모저모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은 서울 방문 이틀째인 25일 오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시간 가량 비공개 연습을 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숙소에서 휴식을취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에 앞서 평양학생소년궁전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무대미술·음향책임자 등 지원인력 10여명은 오전 9시50분쯤 극장을 찾아 예술의전당 스태프진과 무대 구조등에 관해 상의한 뒤 무대를 설치했다.예술단은 26일 오전과 오후 두차례 리허설을 거쳐 오후 7시 첫공연을 올린 뒤 28일까지 총 5차례의 공연을 갖는다. ◆예술단은 이번 서울공연에서 합창,무용,악기 연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19개를 선보일 예정.인형복장에 가면을 쓰고 춤추는 인형춤 ‘정말 고운 옷’과 장새납(태평소 개량악기)을 위한 민족기악중주 ‘모란봉’,손풍금중주‘통일열차 달린다’,목금을 위한 경음악 ‘유격대 말피리’등이 연주된다. 단원 모두가 합창곡 ‘다시 만납시다’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1시간10분의 아쉬운 공연을 마무리한다. ◆예술단원 78명은 평양의 명문 금성제1고등중학교와 금성제2고등중학교를비롯해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 등 평양 소재 5개 예술단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학생들로 구성됐다.금성제1·2고등중학교 학생들은 오전 수업이끝나면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과학기술,스포츠, 기악,미술,성악,문학,무용 등 각종 예체능 소조에서 의무교육을 받게 돼있다.평양외국어학원과는 달리 가정신분이 크게 문제되지 않아 고위층보다는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알려졌다. 이순녀기자 coral@. *평양예술단 최휘 단장 최고 엘리트코스 거친 신진간부.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을 이끌고 24일 서울에 온 최휘(46) 단장은 북한 최고의엘리트 코스를 거친 전도유망한 신진 간부.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비서직을 맡고 있는 그는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첫 노동자 출신 장관이었던 최재하 전 건설상의 장남이기도 하다. 57년 최 건설상이 사망하자 김일성 주석은 가족들을 각별히 보살펴 차관급이상 고위간부 자녀들의 전용학교였던 평양남산고등중학교에 다니는 등 승승장구했다.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나온 그는 청년동맹의 전신인 사로청 중앙위에 배치됐다. 최 단장의 동생인 미림(44·여)과 연(42)은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와자동화학부를 졸업하고 대학교수와 무역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청년동맹에서 대남관계를 담당하고 있는 최단장은 95년부터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도 맡고 있다.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가 있으며 자녀들은 소년예술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금성 제1고등중학교와 평양외국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대통령의 구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3일 현 정국을 집권후반기로 넘어가는 중차대한시점으로 규정하고 내각에 심기일전을 강조했다.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서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또 총리 지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정국상황과 관련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자민련과의 공조복원 시동과 정몽준(鄭夢準)의원의 민주당 입당설,호남지역무소속 당선자들의 민주당 입당 등으로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발,정국이 급속냉각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안정 구상 김 대통령은 내각의 분발을 당부했다. 집권후반기 가교역의 ‘이한동 체제’가 등장한 만큼 새로운 각오로 국정을추스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대통령은 이같은 지시는 일각에서 움트고 있는 ‘개혁 피로감’에 대한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사실여부를 떠나 국정개혁 및 경제와 관련해 국민들이 피로감에 싸여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전하고 각료들에게 성의껏 국정을 보살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불확실성을 제거해 안정된 경제를 구축할 것과 국민 기초생활보장과의료보험통합,의약분업 등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이한동 내각’의 역할을 이제까지의 개혁성과를 다지면서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각종 암초의 제거에 뒀다고 할 수 있다. 즉 개혁이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성과를 체계화하면서 미진한 부분에 대한개혁은 계속해 나가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김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국정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인권신장,노조권리 보장,거시경제 지표,금융개혁 등을 열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국 대처방향 김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복원으로 정국상황에 대처할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후반기 정국운영 구상과 연관이 있다.김 대통령 스스로도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집권후반기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정국주도권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경제불안 등 작금의 동요가정국불안정에 기인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 대통령이 국무회의 말미에 “중요한 때이므로 국정전반에 걸쳐 일치단결해 일하자”고 분발과 안정을 강조한 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한센병, 국가차원 전문의료진 확보 시급

    ‘병만 있고 대책이 없다’ 흔히 나병으로 불리는 한센병이 해마다 30∼40여명의 신환자가 발생하는 엄연한 법정 전염병인데도 기본 연구체계는 물론 환자관리에 허점을 드러내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전염병은 근절이 힘든 데다 언제든지 재발이 우려되는 데도 정부와 국내 의료계는 단순히 환자 수 감소에만 만족,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자칫대규모 환자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거의 박멸된 것으로 인식됐던 말라리아는 2∼3년전부터 해마다 2,000∼3,000명의 환자가 다시 발생하고 있고 요충환자 발생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볼 때 한센병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97년 현재 국내 한센병 등록자는 2만명.일본 6,200명,미국 6,500명에비하면 엄청난 수준이다.물론 신규등록환자는 1969년 1,891명에서 97년 34명으로 지난 30년간 22분의1로 감소했다.그러나 인구비례로 볼때 우리 인구 4,600만명중 신환자 34명은 일본 1억2,000만에 20명,미국 2억6,000만명에 175명에 비하면 거의 후진국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내 의료계는 수수방관이다.현재 국립소록도병원과 성라자로마을,구라선교회예수의원,여수애양재활병원을 포함해 13곳에서환자들을 치료,혹은 수용하고 있지만 이들 시설에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대부분이 외래진료나 단순 수용,형식적인 진료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전문의료진에 의한 치료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전무하다는 것이다.현재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는 가톨릭의대에 설치된 한센병연구소가 고작.이곳에서 전임강사급 전문가 2∼3명이 전국의 한센병 진단을 도맡고 있다.일본은 ‘아시아의 한센병을 근절하겠다’는 목표아래 국립 13개,민간 7개등 20여개의 전문 연구소가 활동중이며 모두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있다. 의과대학 강의만 보더라도 한센병관련 커리큘럼은 단 한군데도 없고 피부과나 병리학 미생물학에서 부수적인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여기에 나병진단과 치료를 위한 시약도 현재 한센병연구소에서만 만들고 있어최악의 경우 실험용 나균이 바닥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전문가 확보와 지원이 필요하다고입을 모은다. 대학의 고급인력과 전국 각 지역의 진료 연구단체를 연계해 상설 연구체계를 갖추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처럼 국가가 약을 사서 진료·수용시설에 제공,투약하는 수준으론 5∼10년뒤큰 위험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가톨릭의대 한센병연구소 채규태(蔡奎泰)소장은 “한센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거의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도 많은 한센병 관련 시설이 단순 투약차원에 머물고 있어 환자가 확산될 우려가 있는 만큼 국가지원아래전국적인 차원의 전문가 그룹과 유기적인 진료체계가 시급한 실정”이라면서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김성호기자 kimus@. *성라자로마을은 어떤 곳. 다음달 2일 설립 50주년을 맞는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모락산 기슭의 성라자로마을은 국내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환우(癩患友) 시설.전국어디에서나 나환자가 쉽게 눈에 띄었던 1950년 6월 2일 미국 메리놀회 선교사인 조지 캐롤 안 주교가 천대받는 나환우를 위해 만든 뒤 지난 50년간 나환우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오며 세계적인 복지시설로 자리잡았다. 성라자로마을은 비단 의지할 곳 없는 나환우들을 수용하고 치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치유된 사람들의 사회복귀까지 도와주고 있는 복지시설.현재 나환우 110명과 나병이 치유된 정착민 200여명이 김화태 원장 신부와 6명의 수녀,20여명의 직원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렵게 유지해가던 성라자로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이경재(李庚載·98년 작고) 신부의 공이 크다. 1952년 3월부터 2년간 초대원장을 지내다 미국으로 갔던 이 신부는 성라자로 마을의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70년 귀국,세상을 떠날 때까지28년간 헌신하며 성라자로마을을 나환자들의 보금자리로 일구어냈다.그가 결성한 ‘라자로돕기회’는 현재 회원수만 2만명에 달하며 이 모임은 지난 91년부터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를 해마다 열어 그 수익금으로 다른 나환우 복지시설도 돕고있다. 지난 16일에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어김없이 제18회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성라자로마을은 6월3일 마을안 성당 앞에서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가운데 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이경재 신부 기념관 준공식을 갖고 50주년 연혁 등의 기념문건도 배포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 [대한광장] 형제요 누이인 佛子들에게

    뒤늦게나마 부처님이 우리에게 오신 날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나는 부처님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저려옵니다. '고생할 이유가 없는 고생'에 짓눌려 있는 중생들에게 부어주시는 그 크신 대자대비(大慈大悲)에 무슨 말씀으로 응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하기는 부처님의 대자비가 어찌 중생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어미가 어미이기에 자식을 사랑하듯이,부처님은 부처님이니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겠지요.그런 줄 알기는 합니다만,그렇다고 해서 어미의 사랑을 받는 자식이 그 사랑에 대하여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나라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아무도 나에게 그럴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만,부처님 오신 날을 맞은 불자(佛子)들께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의 짓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불상(佛像)에 대한 훼손이 매스컴에 보도될 때마다,또는 산속 암자의 벽에 붉은 페인트로 그려진 십자가를 볼 때마다,무슨 말씀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는지 모르겠더군요.다만,익숙지 않은 몸짓으로 합장을 하고 서툴게나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의 이름을 염하며 어쨌든지 간에 부처님 대자대비의 가피(加被)에 힘입어 바다같은 용서의 물결이우리 모두를 덮으소서,기도할 따름입니다. 세상에 세 가지 독(毒)이 있는데,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무명(無明)이라고도 하지요.성내는 일도,탐내는 일도뭐가 뭔지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무지(無知)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그 분은 숨지는 순간이렇게 기도하셨다지요.“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주십시오.저들은 지금자기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내 형제요 누이인 이 땅의 불자들이여.우리는 크리스천이기 전에,불자이기 전에,사람입니다.우리가 서로 '사람'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장벽과 무슨 갈등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겠습니까?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람'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서(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서(恕)의 힘이야말로 모든 무지와 무지에서 나오는 폭력 따위를 한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는 엄청난 힘입니다. 인간의 허물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용서하는 너그러움에 견주면 동해바다 위의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자님도,사람이 한평생 간직하고 나아갈 바가 아마도 서(恕) 아니겠느냐고 그러셨겠지요.예수님의 가르치심보다 교회의 전통에 사로잡힌 몇몇어리석음이 그동안 저지른 이런저런 사고들에 대해 아무쪼록 여러분의 수행을 위해서라도 자비심으로 너그러이 대해주실 것을 거듭 부탁합니다. 황벽선사(黃蘗禪師)께서 말씀하셨다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지우지않고 일을 지운다. 슬기로운 사람은 일을 지우지 않고 마음을 지운다” 혹시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암자에서 벽에 그려진 십자가를 그대로 두시고, 그것을 볼 때 일어나는 소란스런 마음을 지우는 쪽으로 계속 정진하시는게 어떨는지요? 그렇게만 하신다면(하실 수 있다면) 어느 무지한 손이 암자 벽에 그려놓은 십자가야말로 그대의 수행을 돕는 보살의 손길로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기독교 안에도 그런 일로 마음 아픈 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기회에 알려드리고 싶습니다.정진 또 정진하시어 마침내 성불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이현주 목사 아동문학가. @
  • “간병 어려운 환자 보살펴 드립니다”

    ‘치매 할머니 등을 대신 보살펴 드립니다’ 전남 장흥군(군수 金在鍾)이 최근 치매나 정신장애,뇌졸중 등 가정에서 간병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낮동안 돌보고 진료도 해주는 보호시설(0665-860-0549)을 운영,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군은 1억7,000여만원을 들여 군 보건소 1층 26평 공간에 침대와 물리치료기 등을 갖추고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등 의료진 5명을 배치했다.또 자원봉사자 22명이 하루 2교대로 근무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보호시설은 6월말까지는 화·목요일 주 2일,7월부터는 주 3일동안 운영된다.시설 이용료와 급식·간식비는 전액 무료다. 그러나 물리치료를 받거나 침·뜸 등 한방진료에 따라 약을 지을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된 진료비를 내야 한다. 입소 대상자는 거동 불능자,치매 환자,독거 노인,만성퇴행성 환자 등으로 생활보호대상자 등 저소득층이 우선 이용할 수 있다. 장흥 남기창기자 kc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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