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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2)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2)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하)

    김종직이 함양에다 관영차밭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사건이었다.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우리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 저지른 우리들의 수치이기도 하다. 김종직 군수가 관영차밭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도학사상이 내뿜은 빛이었다.현실세계의 부정과 불의를 질타하고 대안을 내놓아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는 도학정치의 실천이었다. ●개인 소유 땅 보상해주고 차밭 조성 엄천사 북쪽 대밭 근처에다 함양현에서 직접 관리하는 차밭을 만들려고 하는 땅은 개인소유였다.당연히 적정 가격으로 보상해 주고 사들이거나 아니면 크게 모순되지 않는 조건으로 땅을 바꾸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김종직 군수는 함양현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땅과 엄천사 옆의 개인 소유 땅을 바꾸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땅을 보상해 주는 이 과정에서 그의 도학사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만약 국가의 법령과 제도에 따라서 관영차밭을 만들어야 했다면 문제될 일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법에 정해진 대로 토지를 장만하고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직 군수가 만든 차밭은 법령이나 제도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군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생겨난 일이었다.따라서 함양군수가 나서서 굳이 관영차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차밭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군수가 처벌받을 일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관영차밭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양 농민들이 차 공물의 부담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 도망을 쳐버리거나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군수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물을 바치도록 지도하고 계몽하지 않았다는 행정적 책임 정도는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양 농민들한테서 차 공물을 거두지 못한 나라에서는 함양현에서 책임져야 할 양만큼을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 떠안겨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사 군수들이라면 김종직의 일을 두고 부질없는 일을 자초하여 괜스레 군수의 일거리만 잔뜩 벌여 놓았다며 불평했을 것이다.김종직 군수의 생각은 달랐다. 만일 그쯤에서 관영차밭을 만들고 차를 생산하여 이것으로 농민들의 차 공물을 대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장차 함양 농민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함양 땅에서 차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임 군수들은 하나같이 아무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관영차밭 조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정부에다 함양 농민들이 겪는 고충과 차 공물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아 달라는 상소라도 올렸어야 옳았다. 그런 일은 고사하고 도리어 기일 안에 차 공물을 바치지 못하면 군수에게 돌아올 행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전들로 하여금 농민들을 독려하도록 엄하게 명령을 내리고 호통쳤을 뿐이었다. 이런 내력을 소상하게 헤아린 김종직 군수는 사뭇 남다른 생각을 했다. 차 공물 제도는 함양군수 따위가 폐지를 건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제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양 농민들에게 매겨진 차 공물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게 되면 그 폐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함양 농민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지역 농민들이 떠안게 되면 그 지역 농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할 것임을 생각했다. 농민들의 부담은 너무 무거웠고,벗어날 방도도 없었다.그렇다고 모든 공직자가 방임해버린다면 가련한 농민들의 삶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지를 아프게 생각했다.백성이 불행하면 나라 또한 불행해진다는 것이 김종직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함양 농민들에게 해마다 부과되는 차 공물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외교 업무에 사용되고 있어서,공물의 납부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국가의 위신에 큰 손상이 생기게 된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 즉 차 공물은 서울의 왕이나 사대부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중국과의 외교에 긴요하게 사용되는 조공물(朝貢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국 황제와 귀족들의 기호품이었다. ●차 조공은 중국황실 요구 따른 것 조선왕조의 조공사행(朝貢使行)에는 동지사(冬至使: 동지 때 파견하는 사절로서 한 해를 보내게 된 데 대한 인사),정조사(正朝使: 새해맞이 인사를 위해 보내는 사절),성절사(聖節使: 왕,왕후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천추사(千秋使: 황태자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의 정기적인 사행(使行)과 임시사행이 있었다.이때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조공물 중에서 매년 시월에 보내는 세폐(歲幣)의 품목에는 차(茶)가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는 불교를 억압하는 차별정책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이는 고려왕조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어서 고려왕조의 문화적 특성이었던 차 마시는 문화를 단절시켰다. 다만 도학사상의 의리파에 속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과 그의 학맥은 차 마시는 문화를 이어내렸다. 결국 조선왕조에서 차 공물제도를 유지시킨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의 조공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또한 조공품목에 차를 포함시킨 것은 조선왕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중요하다. 차 문화는 중국이 더 화려했지만 정작 차의 품질면에서는 조선의 차가 더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차를 높이 평가했고 이를 구하기 위해 외교적 방법까지 이용했던 사실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자라는 찻잎은 맛과 향기,색깔 모든 면에서 중국 차보다 우수했으며,차 외에도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의 효험이 빼어났기 때문에 역대 중국의 귀족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김종직은 그 자신 차 문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함양 농민들에게 지워진 차 공물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차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고뇌했던 것 같다. 대답은 관영차밭을 조성하는 것,찻잎을 따고 가공하는 일은 함양 농민들이 협동하여 해냄으로써 부담을 줄이고 차 공물이 지닌 국가적 중요성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높은 학문과 깊은 경륜으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 구석구석을 챙겨주고 보살펴줌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아온 어진 사람의 덕망은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다. ●백성의 고통 어루만진 도학정치 김종직 군수는 그의 도학사상을 강론이나 책 속의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모순에 찬 현실을 개혁하고 불의의 근원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삶에서 정치의 꿈이 실현되는 현실 속의 이상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유학자로서 도학정치의 완성을 꿈꾸었던 그는 조선 차의 역사와 성품을 만들면서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온 백성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던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백성의 존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깊은 화근이자 폐해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며 가진 자들의 그릇된 생각임을 아프게 꾸짖는 말씀으로 새겨진다. 한편 함양을 두고 “좌강(左江) 안동(安東)이나 우강(友江) 함양” 이라고들 한다.낙동강 동쪽에서는 안동이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낳은 땅이고,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이 그런 땅이라는 말인데,이는 함양을 자랑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 함양 유학의 기틀이 된 이는 김종직의 문하이면서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이다.그는 세종 때 함양 지곡에서 나서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서의 생을 살았다.연산군 때 그의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는데,그 스승과 제자를 죽인 사람들의 이름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오늘까지 한국인의 가슴에 향기롭게 살아남아 있다.정녕 문화의 새벽을 여는 민족 정신의 종소리다.
  • 35년 외길 걸어온 산림학자 김종관 박사

    산림 가꾸기 외길인생 35년.산주(山主),나무와 부대낀 평생의 고집이 때론 답답하고 미련스러워 보이지만,범접하지 못할 여유와 넉넉함을 전한다. 김종관(60·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박사.그는 나무와 숲은 말이 없지만,보살핀 만큼 풍성한 자람으로 보답한다고 말한다.그는 그러면서 나무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숲은 생명의 젖줄입니다.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숲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숲을 가꾸는 임업 분야의 중요성은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사유림의 개발과 경영의 모델을 ‘창시’했다.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임도도 적지 않다.산과 숲속에서의 그의 삶은 때로 ‘땅꾼’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그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개발논리에 밀린 산림 훼손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자연을 무시한 인간의 오만은 머지않아 엄청난 재앙으로 앙갚음 받을지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재앙은 이미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다가왔다고 분석한다.대기 오염과 산림 훼손 등에 따른 세계적인 기상이변,사막화 등이 구체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인간의 오만은 자연재앙으로 돌아와 나무와 그의 인연은 집안 분위기 탓이 컸다.아버지가 사방공사 기술자였기 때문이다.아버지의 권유로 임학(고려대)을 전공했다.1968년 졸업과 함께 유엔 한국 산림조사기구(UN Korea Forest Survey Project) 근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74년 경남 양산의 임업기술훈련원으로 자리를 옮겼다.한국과 독일이 두 나라 임업의 공동발전을 위해 만든 산림경영 사업기구였다.그는 지역의 영세한 산주들을 모아 산림경영협업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그는 이곳에서 공동 산림 경영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유림 경영사업의 모델이 됐고, 전국으로 보급됐다. 사유림 경영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업기술훈련원 근무 초기 그는 직원 6명과 함께 1년 동안 울주군 두서면과 상북면 산속에서 살다시피 했다.어떤 시범사업을 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서였다.이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산을 헤매고 다녔다.주민들로부터 뱀 잡으러 다니는 땅꾼으로 오해받은 것도 이때였다. 그는 훈련원장을 거쳐 1999년 정년퇴임 때까지 양산·울산지역 산림현장에서 산주들을 지도하며 우리나라 사유림 경영사업의 모델을 개발·정리했다. ●200살 참나무는 벤츠 한대값 김씨는 1977년 1년 동안 임업 선진국 독일에서 연수를 했다.거미줄처럼 잘 정돈된 독일 임도망에 큰 감명을 받았다.그는 귀국한 뒤 우리나라 임도 1호로 꼽히는 울주군 상북면 소호령 임도를 직접 설계해 만들었다.2차 대전에 사용됐다는 고물 불도저를 경남 도로관리사업소로부터 빌려 공사에 나섰다. 운전사에게 닭을 잡아 주고 술을 대접하며 작업한 끝에 1981년 소호령 임도가 탄생했다.이것이 국내 임도건설의 효시였다.이후 국내외 임업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산림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많은 자원을 생산해 주는 거대한 옥외 공장입니다.이 공장을 잘 운영하는 나라는 번창하고 황폐화시키는 나라는 망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임업진흥 사업은 공해없는 농공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양산사업소에 파견 근무를 하던 독일인으로부터 독일에서는 200년이 넘은 우량한 참나무 한 그루 값이 벤츠 승용차 한 대와 맞먹는다는 말을 들고 1982년부터 소호리 일대 5㏊의 참나무 천연림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산 주인이 표고버섯 자목으로 팔기 위해 한때 모두 벌채하려 했던 이 참나무 천연림에는 현재 수령 40년이 넘은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우리나라 천연림 보육사업의 견학장이 돼 독일 산림청장이 방문한 것을 비롯해 국내외 임업 관계자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됐다. ●수십년 산을 다닌 나는 행복한 사람 김씨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황폐화됐던 우리나라 산림이 70∼80년대 거국적인 사방·식목사업에 힘입어 푸름을 되찾았지만 제2의 수난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무를 심기만 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전국 곳곳의 삼림의 수목이 뒤엉키고 밀폐돼 산짐승조차 다니기 어려워 간벌을 비롯한 육림작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가치있는 목재를 생산하고 건강한 숲을 조성하기 위해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빨리 대대적인 육림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임에도 필요한 목재의 94%를 수입해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는 목재수입도 석유 등 수입해 사용하는 다른 자원처럼 예상치 못한 파동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국내 산림을 잘 관리해 자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숲과 산주를 위한 꿈’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30년 현장에 근무하면서 ‘산림지’와 ‘한국임업신문’ 등에 기고했던 사유림 임업경영에 대한 경험·이론·일화 등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들여 산을 다니는데 저는 수십년 동안 돈을 받고 산을 다녔으니 행복한 사람이죠.” 김씨는 평생을 어울려 정이 든 숲속에 퇴임한 뒤에도 산림을 연구할 수 있는 조그마한 거처를 마련해 지내고 있다. 3월부터는 경북 상주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 강의를 나갈 예정이다.평생의 지식과 노하우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단 한번도 돈 안받아” 수뢰 부인

    안상영 부산시장이 구치소안에서 매일 하루 일과와 심경을 기록해 놓은 일기에는 무죄를 확신하며 마음을 다잡다가 보석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심신이 급격하게 약해지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하지만 검찰의 강압수사 등에 관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12월17일 자살을 결심한 듯,아들·딸·부인에게 애틋한 사랑이 담긴 유서 1장씩을 썼다.부인에게는 재산상속과 기부 등에 대한 내용까지 언급했다.또 부인 앞으로는 12월 31일과 1월 2·16일 3차례에 걸쳐 사랑과 미안함을 담은 4장의 유서를 더 썼고 모두 ‘당신의 사람 상영’이라는 글귀로 맺었다. 부산시 공무원과 시민에게도 시장으로 중도하차 하는데 대한 미안함과 착잡한 심정을 담은 글을 한장씩 남겼다. 아들과 딸에게 쓴 유서에서 “훌륭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버지처럼 당당하게 살아 아버지 아들로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빈다.할머니 잘 보살피고 어머님 잘 모셔라.”고 당부했다. 부인에게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몇자 정리해 둡니다.가장으로 집안을 잘 이끌어 주시오.어머님 마지막까지 잘 보살펴 주시오.세상에 왔다가 보람 남기려 했는데 안타깝소.”(12월17일),“혼자 꿋꿋하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우리 다시 만나 못다한 것을 다 합시다.”(12월31일),“우리 열심히 살았습니다.남에게 원성산 일도 하지 않았는데.미안하오.더 좋은 가장,훌륭한 시정을 펼친 시장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었소.많은 짐을 남기고 가는 사람 미워하시오.”(2004년 1월2일)라며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구속된 뒤 3일째인 지난해 10월19일 일기에서 “나는 받지 않는 사람이다.다른 사람이 아닌가 잘 생각해보라.인격적으로 존중했는데 자기보호를 위해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서울에서 5번 부산에서 4번 조사받으면서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하고 피라미드식으로 조여왔다고 했다.지금까지 압력받고 시달렸으니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10월22일) 라며 검찰의 강요 때문에 상대방이 허위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힘겹다.나이도 있고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다.이 시련에서 벗어나도록 힘을 주십시오.”(11월13일),“약이 없이는 잘 수 없다.허리가 매우 불편하다.전부가 망가지고 있다.”(12월16일),“앉았다 일어나려면 몇번이나 시도해야 가능하다.식사후 일어나기가 힘들다.이것이 마지막 일는지도 모른다.”(12월18일),“몸이 한계에 왔다.”(12월20일)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일기내용이 짧아지고 글씨체도 흐트러져 있어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지치고 마음의 동요가 심했음이 엿보인다. “부산시장 재임동안 단 한건의 부정과 야합한적 없습니다.단 한번이라도 부정한 돈을 받은 적 없습니다.”(1월3일)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정다툼에 따른 심리적 부담,민선시장으로서의 자존심의 상처 등을 견디지 못해 결국 마지막 길을 택한 듯하다. 부산 강원식기자 kws@˝
  • 분황사 정원 추정 신라시대 연못 확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북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동쪽의 황룡사지전시관 건립부지를 발굴조사하여 정원시설인 못(苑池)의 전모를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 일대에서는 지난 2001년 원지로 보이는 유적의 일부가 드러났으며,이번에 추가발굴로 못의 규모와 축조방법,관련 시설 등을 파악했다. 신라왕경에서 확인된 원지 유적은 안압지(雁鴨池)와 용강동 원지(園池)에 이어 구황동 것이 세 번째다.이번에 확인된 원지는 남북 46.3m,동서 26.1m의 장방형으로,안압지의 15분의1 크기다.조사단은 2개의 인공섬을 중심으로 축대,계단,입ㆍ출수구,수로,전각부지,담벼락 등 다양한 원지시설을 확인했다.원지 담벼락 바깥에서 크고 작은 건물터와 우물,보도 등도 발굴했다.이밖에 세련된 솜씨의 기와와 벽돌,중국제 자기,금동판보살좌상,금동신장상,오리 모양의 손잡이 잔 등 1330여점의 유물도 함께 나왔다. 서동철기자 dcsuh@˝
  • 장애우들 비디오테이프에 위문메시지“119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

    “아,아,아저씨 빠,빨리 나으,나으시,나으셔야 돼,돼요.” 잘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또박또박 말하려 애를 쓰는 정신지체 장애우 맹영숙(48·여)·채미자(46·여)씨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돌아가자 병실 안은 조용해졌다.얼굴뼈가 부서져 왼쪽 눈이 실명위기에 놓인 서울 강남소방서 응급구조사 이영직(52)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평소 장애우와 독거노인,고아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생필품을 마련해주며 보살펴왔던 이씨가 버스에 치여 중상을 입은 것은 지난 23일.설 연휴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사투 끝에 의식은 되찾았지만 얼굴과 팔에 큰 상처를 입었다.가장 안타까워한 사람들은 이씨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경기 광주 은혜동산의 장애우들.이들은 몸이 불편해 병문안을 갈 수 없자 위문 메시지를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27일 오덕희(55·여) 원장을 통해 병원으로 보내왔다.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김순자(62·여)씨는 “재작년 태풍 루사로 수해를 입었을 때 아저씨만 남아 고립된 사람들에게 전등불과 가스를 전해줬다.”며 두 손을 모았다.하반신 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이씨가 많은 관심을 갖던 권에셀(11)양은 눈물만 그렁그렁 맺힌 채 한참을 울먹이다 “아저씨,빨리 오세요.”라는 한 마디만 전하고 고개를 숙였다. 몇번이고 장애우들의 모습을 찬찬히 돌려보던 이씨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깜짝 놀랐다.”면서 “걱정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잘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파병된 작은아들에게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는 부인 박정미(47)씨는 “이런 이웃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29일 얼굴뼈 부분에 대수술을 받는다.테이프를 전달한 오 원장은 “우리 아이들 머리는 누가 깎아주느냐.”며 쾌유를 빌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프랑스인들의 동물사랑

    |파리 함혜리특파원|지난해 12월13일과 14일 파리에 있는 전람회장인 에스파스 오퇴이에서는 ‘동물들의 크리스마스(Noel des Animaux)’라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프랑스 최대의 동물보호단체인 전국동물보호단체(SPA)와 전직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회장으로 있는 동물보호단체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버려진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들이 새 보금자리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도록 해 주기 위해 마련됐다.한마디로 주인없는 개와 고양이들의 입양행사다.이 행사를 통해 올해에도 수백마리의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이 새 주인을 만났다.최근 급증하는 애완동물 만큼이나 버려지는 동물들이 늘고 있는 우리네 상황에 비춰볼 때 버려진 동물에게도 극진한 정성을 다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극진한 동물사랑 정신은 관심을 모은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나라다.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카페,슈퍼마켓 등에도 개를 데리고 간다. 애완동물을 친자식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하다 엄청난 유산을 자신이 키우던 개나 고양이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사료제조업체조합(FACC)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현재 프랑스 전 가정의 52.7% 정도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이중 개 혹은 고양이 1마리 이상을 키우는 가정도 45.5%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견 수는 약 810만마리에 이르며 고양이는 900만마리나 된다. ●버려진 동물도 친자식처럼 보살펴 동물보호단체도 셀 수 없이 많다.대표적인 단체는 150년 역사를 지닌 SPA와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동물지원재단 등.기부금과 자원봉사자 등 순수한 민간의 참여로 운영되는 이들 단체들은 동물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지 않도록 계몽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운동을 펼친다.동물을 학대하는 경우가 발견되면 법적인 제재를 가하도록 단체들이 연대해 가해자를 고발하기도 한다. 동물보호 운동가로 개고기 식용 금지 운동을 펼쳤던 브리지트 바르도는 최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전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중국에서 대량 도살된 사향고양이보호에 나서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바르도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앞으로 편지를 보내 ‘무고한 피해자’의 도살을 중단해 줄 것을 호소했다. 동물보호단체가 하는 주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버려진 애완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한 뒤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다.유럽 제1의 애완동물 국가인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유로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내다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만마리의 애완견이 버려지고 있다.주인들이 버리는 고양이는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SPA의 홍보담당자 미리엄 뷔송은 “주인이 더이상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주변에 대신 키워줄 사람이 없거나,이혼·별거로 주인이 집을 나와야 하는 경우,어린 자녀가 태어난 가정 등 애완동물을 버리는 이유는 다양하다.”면서 “동물을 감정을 지닌 생명체가 아닌 물건으로 생각하는데서 비롯되는 이기적인 행위는 동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양도된 모든 동물 문신 의무화 프랑스에서는 버려지는 애완동물(유기동물)을 법으로 정해 특별관리하고 있다.프랑스 농촌법은 버려진 동물의 관리 책임을 자치단체가 지도록 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시장)은 개와 고양이가 버려지지 않도록 시민들을 계도하는 등 적정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공공장소에서 배회하는 개나 고양이를 발견하면 일단 포획해 지역 수의과 산하의 동물보호소에 인계해야 한다. 포획된 애완동물은 동물보호소로 넘겨져 10일 동안 보호상태에 놓여지며 이 기간중 목걸이 등을 통해 주인에게 연락해 찾아가도록 한다.주인이 나타나면 보호기간 동안 소요된 비용을 징수한 뒤 돌려주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수의사가 전염병 감염여부를 검사한 뒤 동물피난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동물보호협회나 단체에 무료로 양도된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피난처에 들어온 동물들에게는 수의사의 건강검진 후 일련 번호가 부여되며 동물신분증에 해당하는 문신도 새겨진다. 1992년 이후 프랑스에서는 무상 혹은 유상으로 양도된 모든 동물들에 대해 문신이 의무화돼 있다. ●까다로운 입양조건 동물피난처에서 수의사의 건강검진 결과 건강한 동물은 새로운 주인에게 분양된다.하지만 동물을 좋아한다고 아무나 입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내에 거주증명을 가진 세대주로 무엇보다도 동물을 애정으로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1년안에 재분양이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도 금지되며 특히 1주일에 적어도 3회 이상 산책 등 애완동물 사육규칙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한다. SPA의 한 자원봉사자는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문신표지 및 예방주사 비용에 해당하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동물을 입양할 수 있지만 입양을 했더라도 6개월안에 방문해 부적절한 조건에 동물이 처해 있음을 발견하면 즉시 입양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새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보다는 이미 키우고 있거나 키운 적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입양을 해 가는 경우가 많다.개 3마리,고양이 9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미셸 로카르 전 총리는 SPA의 ‘동물들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더 입양했다. ●주인 잃은 동물은 ‘동물 양로원'서 여생 보내 주인을 잃은 애완동물들 가운데는 입양되지 않고 ‘동물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동물도 있다. 동물피난처에 들어온 동물은 의무적으로 이틀안에 수의사의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며 수의사의 의견에 따라 부상을 당했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애완동물,너무 늙어 쇠약해진 동물은 안락사를 시키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유일하게 동물지원재단만은 안락사에 반대하며 자연사할때까지 지낼 수 있는 동물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양로원에는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기 어려운 개나 고양이,거동이 불편해진 노인들이 맡긴 나이 든 애완동물,혹은 노인들이 유언으로 양로원에 맡긴 동물들이 ‘안락사’의 두려움없이 지내고 있다. 동물지원재단의 셀린 모랭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말 못하는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otus@ ■로리안 데스트 전국동물보호단체 부회장 |파리 함혜리특파원|“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아끼는 것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귀찮다고,너무 짖는다고,늙고 병들어서 보기 싫다고 무책임하게 내다 버리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입니다.” 프랑스 최대의 동물보호단체인 SPA의 로리안 데스트(사진) 부회장(문학박사·파리 10대학 교수)은 “프랑스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많이 키우지만 동물을 감정을 지닌 개체가 아니라 장난감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며 “동물을 존중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물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서부터 개·고양이들과 친구처럼 지내 왔다.”는 그녀는 동물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20년 넘게 SPA를 통해 동물보호운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동물보호단체인 SPA에서는 전국에 56개의 동물피난처와 10여개 동물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이곳에서는 주인들로부터 버림받은 개나 고양이를 보살피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안락사시키고,개나 고양이의 불임수술도 시술한다. 데스트 부회장은 “불임수술을 하거나 안락사시키는 것이 비인간적 측면도 있지만 새로 태어난어린 동물이나 늙고 병든 동물들이 방치되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동물들에게 고통을 안기지 않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U, 애완동물에 여권 발급 유럽연합(EU)은 애완동물을 동반한 여행객들과 동물의 편의를 위해 오는 7월3일부터 역내를 여행하는 애완동물들에게 EU 동물여권을 발급할 예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애완동물들은 지금까지 EU 15개국이 각각 발급하던 각종 증명서 혹은 여권 대신 EU 대부분 지역에서 통용되는 여권을 수의사들로부터 발급받게 된다. 새로 발급되는 동물여권은 지갑 크기로 EU 로고가 새겨져 있다.여권에는 동물의 출생 연도,성별,종류,색깔 등과 함께 해당 동물의 건강상태도 상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특히 애완견의 경우 광견병 예방접종 확인 도장을 찍는 난이 마련돼 있고 동물의 신원 확인을 위한 마이크로칩과 문신,의료기록이 첨부되며 사진은 선택 사항이다. EU의 애완동물 여권은 개와 고양이,담비를 대상으로 하며 생쥐와 토끼,파충류,물고기 등은 여권 없이도 국경을넘나들 수 있다. 동물여권 도입으로 유럽내 동물여행에 관한 규정은 간소화될 전망이다.그러나 동물 검역에 매우 철저한 영국과 스웨덴,아일랜드는 동물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역내로 들어오는 동물에게 추가 광견병 검역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데이비드 번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은 “사람과 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에 있어 의미 깊은 조치이며 광견병 퇴치운동이 극적인 진전을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 [씨줄날줄] 家長 스트레스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위헌 심리를 위해 부계중심 혈통제도의 과학적 타당성 여부를 저명한 생물학자에게 물었다고 해 화제다.그의 대답은 ‘노’.그에 따르면 인간의 혈통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될 때 여성의 세포질을 통해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다.수정 때 정자는 핵만 난자 속으로 들어갈 뿐 정자의 세포질은 분해돼 없어져버리므로 인간의 가계는 부계가 아니라 오히려 모계를 통해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호주제 유지론자들이 주장해 온 ‘씨앗론’과 정면으로 대립된다. 생물학자는 여기에 또 하나의 견해를 더했다.40∼50대 한국 남성의 사망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도 ‘호주제’ 또는 ‘가부장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가장으로서 한 가정의 운명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건강을 해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호주제는 과학적이지도,인간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시대와 환경,사회에 따라 다양하게나타난다.인류학자들은 자연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은 수렵채집사회나 원시농경사회에는 오늘과 같은 남녀 유별이 없었다고 말한다.남성은 생계부양자,여성은 남성의 보조자이자 자녀 양육자로 역할이 분리된 것은 집약농경사회 때부터로 이후 산업사회에 들면서 복잡 세분화됐다고 한다.이때 약육강식의 논리가 팽배한 직업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들에게 요구됐던 덕목이 공격성,용기,책임감,합리성,자제력,결단력 등이었다.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사회가 후기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전문화,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종전의 강한 남성성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을 뿐더러 고실업 환경에서 생계부양자로서의 의무는 남성에게 높은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요즘 젊은 남성의 대부분은 맞벌이 신부감을 선호한다는 조사결과는 이러한 인식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를 ‘남성성의 위기’라고 말한다.그러나 이 생물학자의 지적처럼 ‘가장 스트레스’를 부담하면서까지 ‘남성가장’ 전통에집착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기든스는 21세기를 움직이는 원리는 소통과 보살핌이라고 말했다.이제 한국 가족의 원리도 군림이 아니라 소통과 보살핌의 원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연숙 논설위원
  • 설특집 We/세상에 이런일이

    조개요리에 콘돔 조미료? |샌타애나(미 캘리포니아주) 연합|고급 레스토랑이라고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에서 콘돔이 나온 어이없는 사건을 둘러싼 배상논란이 법정으로 비화되기 일보 직전에 해결됐다.양측 변호인은 최근 합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돼 오렌지 카운티 민사법원의 심리가 취소됐다고 밝혔다.합의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양측 모두 만족해하고 있다고만 말했다.원고인 라일러 술탄(48) 등 여성 4명은 지난해 2월26일 매코믹 앤드 슈믹스 해산물 전문음식점에서 주문한 대합조개 요리에서 콘돔이 나오자 식당측의 관리소홀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식당측은 지난해 9월 대합조개 공급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공급자의 손을 들어줬다. 남자가 뭐기에… “아줌마,주책 그만 떨고 내 남자친구 놓아줘요.”,“애초에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너야.” 지난 14일 서울 강동경찰서 형사계에서는 머리를 쥐어뜯긴 20대 여성과 얼굴에 멍이 든 50대 여성이 나란히 앉아 조사를 받으며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나이로만 따지자면 어머니와 딸 사이인 이들은 폭행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로 경찰서에 왔다.바로 한 남자를 둘러싼 ‘애증의 삼각관계’ 때문이었다. 3년 전 서울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고모(51·여)씨는 전남 여수에서 상경,일자리를 찾고 있던 배모(26)씨를 처음 만났고 여관에 일자리를 줬다.이렇게 이들은 주인과 종업원 사이로 첫 인연을 맺는다.고씨는 의지할 데 없는 배씨를 따뜻하게 보살펴줬고,배씨도 고씨를 따랐다.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배씨에게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배씨는 다른 모텔로 직장을 옮겼고 같은 곳에서 일하던 맹모(26·여)씨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됐다.고씨는 ‘어르고 달래며’ 배씨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씨는 “너 때문에 우리 사이가 멀어졌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맹씨에게 보내 끈질기게 괴롭혔다. 고씨는 경찰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맹씨때문에 애인이 나를 멀리하는 것이 화가 났다.”고 말했다.고씨와 배씨는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모두 불구속 입건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 결혼이 뭐기에… ‘너무 급했나?’ 만난 지 1주일만에 성급하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른 남자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벤처업체 직원인 송모(34)씨와 안모(27·여·회사원)씨는 지난 5일 한 결혼업체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순탄한 만남을 갖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은 12일이었다. 서울 목동의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에서 만난 두 사람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양주 한병을 시켜 함께 마셨다.얼큰하게 술에 취한 송씨는 갑자기 “나와 결혼해 달라.”며 깜짝 청혼을 했다. 송씨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안씨.“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특별한 감정이 없다.”며 일단 거절했다.그러나 술에 취해 있던 송씨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다.“어떻게 청혼을 거절할 수 있느냐.”며 안씨의 빰을 때렸다.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송씨는 ‘얘기를 더하자.’며 안씨를 같은 빌딩 34층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다시피 데리고 갔다.집에 와서도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송씨는 두세 차례 안씨의 얼굴과 배를 손으로 때렸다. 송씨는 “진심을 거절당해 술김에 손찌검을 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찰은 12일 송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5)백제인의 사랑 진표율사

    진표 스님을 뵙기 위해 금산사(金山寺) 가던 날은 절기로 소한이었다.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는 겨울 속에 봄 날씨를 차려 입고서 뜬금없이 진표 스님의 안부를 묻는 나그네에게 개구리는 왜 우느냐고 되물었다.이 질문은 금산사를 찾아가는 모든 길손에게 던지는 것이면서 금산사에 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알았느냐고 또 묻는다고 했다. 그날은 잿빛 참나무 숲에서 우는 동박새 울음소리에 실려서 물어왔다.어떤 때는 봄날 노고지리 노래나 겨울 갈가마귀떼 울음으로도 물어온다 했다.눈보라로 울부짖거나 천둥번개로 절규하기도 하며,살모사 눈빛이나 하현달의 쓸쓸함으로 물어올 때도 있단다. ●견훤이 물었다 “후백제를 아시오?” 개구리가 왜 우느냐고요? 실은 저도 오늘 그걸 여쭙기 위해 찾아가는 길인 걸요.돌아갈 때는 꼭 대답을 들려주고 가란다.걸음이 무거워졌다.금산사 일주문 조금 못미쳐 돌로 된 굴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안내판 글자 속에서 견훤이 걸어나오더니 나그네를 붙들었다.후백제를 아시오? 후백제라….신라와 당나라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무려 240년이나 지난 뒤에 옛 백제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건국한 나라가 아니냐고 대답하자 견훤이 버럭 고함을 쳤다. 연합군이라고? 이런 시러베아들놈 같으니라구.연합군은 뭔 연합군이야,늑대 같은 외세지. 외세 끌어들여 욕심 채우려다가 시퍼런 증오와 원한의 늪에다 백제인들을 처밀어놓고,고구려 저 광활한 영토 몽땅 다 빼앗기고서 반도 남쪽 구석에 내몰려서 쭈그리고 사는 꼴 하고서는….그 잘난 신라가 저질러버린 엄청난 과오를 당신도 지금 보고있지 않은가.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즈그네덜거로 한다며 떵떵거리고 있는데도,그 뭣인가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얄궂은 것들은 입 딱 봉하고 있담서.외세 끌어들여 민족 영토 거덜내버린 신라 정치인들이나,중국 눈치 살피면서 몸사리는 정치인들이나 모조리 다 거시기할 것들이여. 참으로 두렵고,아프고,무거운 해후였다.견훤은 백제 유민인 전주지방 인민들의 회고적 감정에 호소하며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는데,그때 가장 결정적인 힘이 백제 유민들의 그 회고적감정이었다.백제가 신라 역사에 편입된 지 240년이 지날 때까지도 옛 백제를 못잊어하고,신라의 지배질서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단순히 옛 일만이 아닌 것 같다. ●금산사에 계신 진표 스님을 뵙다 진표 스님은 금산사 대웅전 뒤편 조사당(祖師堂)의 영정 안에 계셨다.오른 쪽에는 은사이신 숭제법사(崇濟法師)께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나그네와 진표 스님 사이에는 12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우주는 마음으로 짓고 허무는 것이라는 진표 스님의 법문을 믿고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스님께 여쭈었다.스님은 고요속에다 말씀을 풀어놓으셨다.그렇게 조사당문답(祖師堂問答)이 시작되었다. 나그네: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 국민들은 참담한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다.목숨을 내건 테러로 살상과 증오의 날들이 쌓이고 있습니다.이 불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을 먼저 여쭙고자 합니다.오늘날 이라크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스님께서 목숨을 건 망신참회(亡身懺悔) 수행을 통하여 백제인들과 신라 집권자들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던 그때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표 스님:미국과 이라크는 인간이 지닌 모순의 두 측면을 각각 대변하고 있구나.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여기는 쪽과 일체의 사물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또 한 측면의 충돌이지.똑같으니까 싸우는 것이지.나는 그때 백제인들에게는 무모한 저항을 하지 말도록 설득시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신라의 지배자들에게는 잔혹한 탄압을 중지시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위해 편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그리되면 약자들로부터는 굴종을 강요한다는 원성을 들을 수 있고,강자한테서는 저항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불만·투쟁 잘 다스려야 나그네: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다.인간이 사는 세상은 불만과 투쟁이라는 두 축 위에서 절규하는 것일 수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두 원인을 잘 다스리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자랑이란 욕심을 만드는 종자이기 때문이다.백제인들에게는 신라의 지배질서를 따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해야 하고,신라 지도자들에게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백제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그런데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엄청난 장애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그네: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진표 스님:내가 왜 이 일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었다. 나그네: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비상한 시름은 평범한 물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백제인들은 한 세기 가깝도록 신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증오는 저주로 변했다.신라의 편견도 지배자라는 타성에 젖어서 점점 더 폭력적인 지배방법만 강구했다.서로의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웬만한 조정능력으로는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과거의 인연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했다.그 능력으로 나와 타인의 과거에 얽힌 인연과선악에 관한 것을 알고자 했다.이를 숙명통(宿命通)이라 하느니라.또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인과응보를 확인시켜줌으로써 눈에 안 보이는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지.이것은 천안통(天眼通)이라 하느니라.번뇌가 끝나서 얻은 지혜로서 현재의 번뇌를 끊어버리는 능력을 얻는 누진통,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인 천이통,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인 타심통을 합한 육신통(六神通)과 해탈법을 깨닫기 위한 결심을 한 것이다.이 육신통이야말로 비상한 시대 문제를 풀 수 있는 비상한 물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그런 능력이 있어야만 양쪽 모두를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깨달았다.지배자와 민중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적대감정을 해결하여 공존과 상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율자가 되기로 한 것이지.그런 조율자로서의 능력과 방법을 지장보살님과 미륵부처님께 물었다.내 몸을 던져서 답을 구했다.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망신참회라 부른다. 나그네: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수행법인 망신참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내 개구리는 업장을 깨우쳐 주었노라 진표 스님:동기라고 했느냐?(스님은 오른쪽에 있는 그의 스승이신 숭제법사 쪽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었다.)너는 개구리가 왜 우는지 아느냐? 나그네:생물시간에 배우기로는 암컷과 수컷이 교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진표 스님:그래야겠지.그런데 내 개구리는 울어서 내 미혹과 업장을 깨우쳐주었다. 나그네:무슨 말씀이신지…. 진표 스님:나는 열 살 이전에 활을 잘 쏘아 명궁 소리를 들었다.자주 사냥에 나가 활솜씨를 자랑하곤 했지.어느날 사냥가던 길에 개구리떼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놈들을 잡아 구워먹고 싶었다.크고 살진 놈만 잡아서 버들꿰미에 꿰었다.돌아올 때 갖고 가기위해 냇가에 두었는데 사냥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만 집에 오면서 잊어버렸어.일년 뒤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작년에 내가 잡아서 꿰어둔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순간 개구리들의 처량한 모습이 내 이웃 사람들로 느껴졌고,나는 내 이웃 사람들을 박해하는 신라 지배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부끄러웠다.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금산사 숭제법사님을 의지하여 출가를 했다.
  • [토요일 아침에] 주는 기쁨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란다.특히 우리는 무엇인가를 받을 때에 행복함을 느낀다.생일 선물을 받으면 행복하고,입학이나 졸업 선물,취직이나 승진 선물을 받으면 행복하다.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은 이들을 부러워한다.한때는 생기는 것이 많은 자리를 좋아하고,무엇인가를 가져오도록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요즈음은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부정직한 돈이나 뇌물을 받고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주는 것은 더 행복한 것이다.이 말씀은 자신의 삶에서 체험해 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잘 아는 이는 한 달에 한번씩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였다.고아원의 아이들이 귀여웠고,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과 같이 있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주고 사랑하였으니,아이들이 잘 따르는 것은 당연하였다.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임을 갈 때마다 느끼곤 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한 달에 한번씩 월중 행사처럼 고아원에 가는 자신의 모습이 사치스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고아 중의 하나를 자기 집에 데려와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먼저 부인과 상의를 하고,그 후에 세 자녀들과 함께 가족회의를 하였다.초등학교 4학년의 막내만이 반대를 하였다.며칠 동안 함께 기도한 후에 막내도 동의를 하여 돌이 지난 아이를 입양하였다.저녁에 일찍 퇴근 하는 등 가정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겼다.새로 가족이 된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보다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더 친밀하게 되었다. 놀라운 일 중의 하나는 주위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었다.“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밖에서 애를 낳아서 데려오다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서운 오해였다.그러나 올바른 사실을 안 후로는 기저귀,옷,먹을 것 등이 들어왔다.“당신은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아이를 하나 더 데려왔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나는 가정이 있었지만 저 아이한테는 가정이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가 나에게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신부님,사람들은 제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 아이가 더 큰 것을 저희 가정에 주고 있습니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함을 체험을 통하여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각박하고,어둡고,메말랐고,무섭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나 혼자만 행복하려고 애쓰면 불행해지고,이웃과 함께 행복하려고 노력하면 나도 행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자신의 처지를 둘러보고 이웃을 바라본다면 이웃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받는 기쁨도 행복하지만 주는 기쁨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마음 깊은 데에서 나오기에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된 행복이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 국제연합에서 하신 연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들린다.“이웃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부자도 없고,이웃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것처럼 가난한 이도 없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 연초에 “주는 기쁨”이 가져오는 행복을 체험하면 얼마나 좋을까! 유흥식 주교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 [씨줄날줄] 포로된 국군포로

    국군포로가 또 포로가 됐다? 6·25 전쟁으로 포로가 돼 고향을 잃은 것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50년도 더 지난 지금 또다시 인질로 붙들렸다니…. 분단의 아픔과 좌절,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소설 ‘광장’에서 작가 최인훈은 이렇게 마무리한다.“흰 바닷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희망도,기착지도 보이지 않았던 피해자는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 최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시점은 이념과 분단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고,그래서 그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최 작가가 이런 모습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정부,통일부가 앞으로 탈북자에 대한 초기 정착금 지급액을 전체 지급액의 4분의1에서 5분의1로 낮추고 나머지는 3년 분할에서 5년 분할로 지급키로 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취지는 자본주의 경제에 취약한 탈북자들이 목돈을 까먹지 않도록,사기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취지는 좋다.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생각이 탈북자들을 미리 보살피겠다는 ‘예방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을 등치는 사기꾼이 설치니까 뒤늦게 ‘아는 척’하는 것으로 보여 불쾌하다. 현재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가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언젠가는 이들의 귀국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정착금을 노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국군포로들의 탈북과 귀국에 개입하고 있는 브로커들은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포로가 됐던 것만 해도 서러운데 이제 와서 또 몸값까지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의 시대는 지났다.국군포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이들을 두번 죽이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국군포로가 무슨 노예나 물건인가? 이들의 아픔을 방치하는 국가는 ‘비열한 장사꾼’이고,브로커는 인신매매범보다 더 한 ‘인간 사냥꾼’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 불붙은 ‘운주사 천불천탑’ 논쟁/‘몽골의 문화영향’ 재조명 계기될까

    서울신문이 새해 들어 연재를 시작한 소설가 정동주씨의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시리즈의 첫번째 주제인 ‘운주사 천불천탑-신비에 대한 오해와 몽골문화’가 지난 3일과 5일 나뉘어 실린 것이 곧바로 도화선이 됐다. 정동주씨가 이 글에서 “운주사 천불천탑은 몽골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몽골군의 삼별초를 진압한 전승기념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자,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민족문화에 대한 음해”라면서 강력히 반발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운주사 천불천탑이 몽골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은 충격적으로 들리지만,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미술사학자인 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운주사 탑상의 조성불사’라는 논문은 이런 주장의 뿌리에 해당한다.2001년 ‘동원학술전국대회’에서 발표됐을 때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소 연구관은 논문에서 “운주사 탑과 불상은 스타일이 일률적이어서,고려왕조의 힘이 미약했던 원 침략기에 수많은 석공이 동원되어 단기간에 완성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통 불교문화를 충분히 인식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수준으로는 이처럼 수많은 불탑과 불상을 한꺼번에 조성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주사 불사(佛事)는 원의 군부가 주도하고 막대한 고려의 물자와 석공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면서 “멀리 타국에 나와 있는 원병(元兵)들의 무운을 빌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그는 특히 “고려석공들은 라마불탑에 익숙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을 토속적인 고려식으로 조성했고,생소한 원반형탑이나 난형탑(卵形塔)들은 라마탑의 시험적 작품일 것”이라면서 “◇형과 X형 등 전혀 고려탑에서 볼 수 없는 무늬들은 몽골식 도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볼 때 정동주씨의 주장은 곧 소연구관이 제기한 문제를 발전시키고,몽골 현지를 찾아가 증거들을 직접 수집한 결과를 스스로 밝힌 대로 세상에 “보고한 것일 뿐”이다. 불교학자인 허일범 진각대 교수도 다른 방향에서 운주사 천불천탑과 몽골의 관련 가능성을 언급했다.그는 “밀교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은 티베트 불상의 특징을 계승한 것”이라면서 “운주사 석조감실안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의 합체불은 티베트나 몽골 등지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는 40여년의 대몽(對蒙)항쟁기간과 한 세기에 걸친 정치적 간섭기를 거쳤다.원의 간섭은 고려시대와 그 이후의 정치·사회·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그들이 신봉한 라마불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최근 출간된 ‘불교조각 Ⅰ·Ⅱ’(강우방 이화여대교수 등 3인 공저, 솔 펴냄)에는 ‘화려한 장엄,라마 불교의 영향’을 하나의 주제로 삼아 취급하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특히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강산 출토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아예 “원에서 직접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한국미술사’(예술원 펴냄)에서 내놓았다. 나아가 고려에 유입된 라마 양식의 불상은 이국적 풍모에 장식성이 강한 양식을 형성하여 조선 초까지 크게 유행했다.이런 왕실불상의분위기는 퇴화하기는 했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소 연구관은 “운주사의 불탑과 불상이 자력불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해도,몇몇 이국적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고려시대 선조들이 이룩한 토착적 석공예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나아가 ‘달빛의 역사…’은 명백히 실재(實在)했지만 규명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몽골의 문화적 영향’을 부각시켜 세상의 관심을 갖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몽골의 영향이 있으면 있는 대로,우리 고유의 미의식이 담겼으면 담긴 대로,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숨기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문화사를 풍요롭게 하는 노력이 아니겠느냐.”는 한 독자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동철기자 dcsuh@ 史料로 본 천불천탑 운주사(雲住寺)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다.남북으로 길게 벋은 협곡에 이른바 천불천탑이 자리하고 있다.운주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현재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구가 남아있다고 적고 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조선 성종 12년(1481년) 편찬하고 중종 25년(1530년) 증보한 ‘동국여지승람’이다.영조 19년(1743년) 발간된 ‘조선사찰사료’의 ‘도선국사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지형은 떠가는 배와 같으니 태백산,금강산은 머리이고 월출산과 영주산(한라산)은 꼬리이다.변산은 키이며,지리산은 삿대이고,운주는 그 뱃구레이다.뱃구레를 눌러주어야 솟구쳐 엎어지는 것을 면한다.이에 절과 탑,불상을 세워 진압하게 됐다.” 이와 함께 천불천탑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냈다는 전설도 이 지역에는 전해진다.그러나 미술사학자들은 천불천탑이 도선국사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신라말이 아니라 13세기를 전후한 고려 중기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한다.특히 양식은 30년 이상의 시차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큰 힘에 의하여 일거에 만들어지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해 왔다.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명찰순례’(대원사 펴냄)에서 이를 신불(神佛)의 힘을 빌려 몽골군을 격퇴하고자 조성한 호국도량으로해석했다. 하룻밤 창건설을 논외로 한다면,소설가 정동주씨가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에서 새로 펼쳐 놓은 ‘몽골의 전승기념물’이라는 주장과 최완수 연구실장의 ‘고려의 호국사찰’이라는 학설은 조성의 주체만 다를 뿐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진실이 어떤 쪽이든,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는 날이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만은 분명하다. 서동철기자
  • 사랑으로 일어섭니다/복직준비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

    등줄기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에 환자복이 식은 땀으로 젖는다.시계는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다.열흘전 허벅지 피부를 이식받은 오른발 쪽이 몹시 아프다.머리맡을 더듬어 약병을 집어든다.힘겹게 꺼내든 수면제 2알.아내는 습관이 된다며 만류하지만 다섯시간이라도 잠다운 잠을 자려면 어쩔 수 없다.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온몸이 축 늘어진다.두아들 준성,효성의 얼굴이 스치듯 사라진다. ●7차례 대수술… 멀고 험난한 재활의 길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역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려다 양쪽 발을 잃은 철도 공무원 김행균(金幸均·43)씨.‘아름다운 철도원’이란 부담스러운 별명까지 얻었지만 재활의 길은 고독하고 험난하다. 2일 오후 경기 부천시 순천향병원 6층 병실에서 만난 김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수술은 7차례나 받았다.지난해 11월 왼쪽 발목 절단수술을 받았고 지난달 19일에는 양쪽 허벅지 피부를 떼어내 발가락이 잘린 오른발에 이식했다.13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매일 밤 11시 잠자리에들지만 대여섯 시간 이상 자지 못한다.격심한 새벽 통증 때문이다. ▶관련기사 2면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김씨는 “고통이 올 때마다 가족의 얼굴과 격려 글을 보내온 이름 모를 이웃들을 떠올린다.”면서 “두 다리는 잃었지만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사랑을 몇곱절이나 더 얻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선물상자’에는 전남 보성의 이발사 손정수씨의 격려편지 5통과 전남 나주 금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보내온 돼지저금통이 들어있었다. 요즘은 재활운동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재활에 열심인 것은 복직한 뒤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치료받는 시간 말고는 모두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틈틈이 뉴스도 보고 책읽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고 어린이 부모의 전화 받았었다” 김씨는 이날 자신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아이의 부모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사고 며칠 뒤 ‘수술 결과는 어떻습니까.죄송합니다.시간을 내서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고 말하고 끊은 전화 한통이 있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 부모의 전화였던 것 같습니다.” 김씨는 “내가 그 부모였더라도 처음에 찾아올 기회를 놓쳤다면 나중엔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라며 그들을 감쌌다.‘아낌 없이 주는 나무’.김씨는 병원에서 이렇게 불린다.지난 9월 입원해 어느덧 ‘고참환자’가 된 김씨는 새 환자가 들어오면 병원생활과 재활 치료의 노하우를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자신에게만 쏠리는 관심과 격려를 환자들과 나누려고 애쓴다. 담당의사 이영호(36)씨는 “지난달 수술결과가 좋다.”면서 “1주일 뒤 이식한 피부에 감각이 돌아온다면 늦어도 6개월 뒤부터는 혼자 걷고 계단을 오르내릴 만큼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글 이영표 이세영기자 sylee@ ■수발 5개월… 아내 배해순씨 1면서 계속 “위만 바라보고 아등바등하던 예전과 달리 주위와 아래 쪽에 눈을 맞추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라구요.” ‘아름다운 철도원’의 아내 배해순(40)씨도 역시 ‘아름다운 아내’였다.그는 남편을 5개월 남짓 병수발 하면서 하루도 좌절하거나 절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배씨는 “사고 직후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했다.”면서 “남편의 몸이 몸통만 남아있어도 평생 내가 팔과 다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하는 중환자들,몸은 멀쩡 하지만 정신이 병 든 사람들….우리보다 더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그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더라구요.” 남편의 사고소식에 한때 눈앞이 캄캄했으나 병원에서 훨씬 사정이 나쁜 사람들을 보고는 오히려 힘을 얻게 됐다고 했다. 배씨는 “남편이 비록 두 발목은 잃었지만,재활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가 얼마나 큰 삶의 활력소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한가지 배씨가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해오던 자원봉사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점이다.그는 집 근처 부천 중동사회복지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었다.배씨는 “남편이 사고를 당한 이후 시간이 나지 않아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배씨는 요즘 큰 아들 준성(14·중학교1년)군이 훌쩍 컸다고 대견해했다.배씨는 “준성이가 막내 효성(9·초등학교2년)이와 함께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 ‘남편의 사고후 더 많은 것을 얻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준성군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빠 얘기를 할 때마다 부끄러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뿌듯하다.”면서 “아빠가 퇴원하면 지난 봄 온 가족이 함께 갔던 영종도 갯벌을 다시 찾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복귀 기다리는 영등포역 동료들 “김행균씨가 돌아와 예전처럼 함께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김씨가 근무하던 서울 영등포역 열차운용팀장실.김씨의 직장 동료들은 ‘그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열차운용팀은 영등포역의 열차운행을 통제하는 ‘사령실’이다.업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팀장급만 10명이 근무한다.승강장에서 승객의 안전을 보살피는 일도 맡고 있다.김씨는 사고 전까지 이곳에서 4개월동안 일했다. 열차운용팀장 이동환(48)씨는 “지난해 7월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요즘도 가끔씩 김씨의 안부를 묻는 승객들이 있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잊혀지겠지만 김씨의 따뜻한 선행이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조에서 일했던 기근(41)씨는 “김씨는 책임감이 강하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범적인 동료”라면서 “짧았지만 현장에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던 때가 그립다.”고 밝혔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동료들은 여전히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장영재(39)씨는 “1년전쯤 안양역에서 승객들을 살피다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숨진 철도원이 있었다.”면서 “열차가 들어오는데도 취객이나 어린아이가 선로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김씨의 일이 떠올라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이유종기자 bell@ ■쾌유 기원하는 네티즌들 “철도원 아찌 힘내세요!” 네티즌들은 김씨가 보여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사고 당일인 지난해 7월 25일 만들어진 ‘아름다운 철도원’ 커뮤니티(cafe.daum.net//beautifulrailman)에는 지금까지 2500여명이 가입,김씨의 빠른 쾌유를 빌고 있다. 구랍 28일 김씨에게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네티즌 ‘연은정’은 “오른쪽 다리가 말썽인데 이것만 잘 아물면 의족도 맞추고 회복도 빨라질 것”이라면서 “다행히 김씨의 얼굴이 밝았다.”고 전했다.ID ‘두레박615’는 “빨리 회복해 이웃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네티즌 ‘그사람’도 “마음만이라도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면서 “‘받은 만큼 베풀고 살겠다.’는 김씨의 말씀이 새해를 맞는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고 밝혔다.영등포역에서 공익요원을 지냈다는 한 네티즌은 예전처럼 열차운용팀장으로 일하기 어렵다면 영업과 또는 관리과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가 구한 어린이와 그 부모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글도 많았다.네티즌 ‘daeun0217’은“죽음의 문턱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 사람을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유종기자
  • 주5일시대 달라지는 삶의 질/””삶의 활력소””...지구촌 생활패턴으로

    주5일 근무제가 점차 지구촌의 보편적 생활 패턴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삶의 질을 중시하는 프랑스 등 북서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선 주5일제가 뿌리내린 지 이미 오래다.아시아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주5일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미국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주5일 근무제의 역사가 70년을 넘었지만 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는 여전히 6일 근무제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은행으로 토요일에도 오후 1시까지 문을 연다.물론 직원들이 반반씩 나눠 일하지만 은행부터 주5일 근무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공무원들 역시 주5일 일하지만 우체국은 토요일에 쉬지 않는다.일요일만 쉴 뿐 토요일에도 배달원은 가정에 우편물을 날라다 준다. 학교의 경우 주5일제에서 4일제로 전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특히 농촌지역이나 산악지대인 콜로라도와 켄터키 등지에서는 주4일 수업제가 확산되고 있다.냉·난방비 및 학교버스 운행비 등의 예산절감 차원이다. 그러나 수업시간은 주5일과 같으며 학교 및 지역사정에 따라 월∼목요일,또는 화∼금요일로 수업 날짜를 정하는 등 융통성을 갖고 있다. 대기업들은 주5일 근무제가 확립돼 주당 40시간 일하지만 서비스 분야는 주6∼7일 근무하기도 한다.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른 미국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은 41.1시간. 특히 휴대전화나 케이블 TV 등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업체들은 토요일에도 오후 1시까지 영업한다.자동차 딜러는 일주일 내내 자정 넘어서까지 문을 여는 곳이 있으며 잡화점과 할인점 등의 도·소매점은 주7일 근무제다.이는 파트타임제로 일하는 근무여건이 조성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됨에 따라 미국에선 금요일 저녁에 각종 행사와 파티가 몰린다.때문에 퇴근 시간대인 오후 5시를 넘으면 오히려 시내로 들어가는 차량이 더 밀린다. 보통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주류 판매점도 금요일에만 자정까지 문을 열기도 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특히 자녀들의 생일 파티는 어김없이 토요일 오후에 부모와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이를 위해생일 파티만 전문으로 대행하는 파티전문업체나 놀이업체들이 성행한다.가족 단위의 주말 나들이 인파를 위해 공원에는 바비큐 그릴 등이 마련됐다. 혼자 사는 미혼 남성들이 느는 가운데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애인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신종 ‘철새족’들도 급증하고 있다. mip@ 일본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의 주 5일제(일본에서는 주휴 2일제라고 표현)는 2002년 공립학교의 주5일 등교제 실시와 더불어 사실상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토요일 부모는 쉬는데,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불균형이 절반쯤은 해소된 셈이다. 지금은 기업의 90.3%(2002년 10월 후생노동성 조사)가 채택하고 있을 만큼 보편적 근무형태로 자리잡았다.그래서 직장인들은 완벽하게 주 5일 근무에 바이오리듬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잔업이나 저녁 접대가 많은 사토(39·회사원)는 “토요일은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푹 쉬는 대신 일요일은 가족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토요일 집에서 쉬지 않는 날은 체력단련을 위해 테니스를 치거나 동네스포츠클럽에 다닌다. 젊은층에선 자기투자에 시간을 쏟는 사례가 많아 어학원,요리교실이 성업 중이다.거품경제 붕괴 이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요일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날로 정한 회사원들도 눈에 띈다. 대기업에 19년째 다니는 루리코(42·여)도 그런 경우다.독신이라 주말에 공부할 여건이 기혼자보다는 나은 편이라 영어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등록을 했다. 레저산업도 활발하다.하네다~김포를 금요일 심야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 여행상품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는가 하면,금요일 심야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으로 여행을 다니는 알뜰 여행족도 많다. 반면 주5일의 반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아직도 유흥가는 금요일 저녁이 가장 흥청망청하지만,“이틀간 휴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 금요일을 피해 목요일 술을 마시는 ‘주당’이 늘었다.주민 불편이 늘어나자 지방자치단체나 우체국이 토,일요일에도 기본업무를 하기 시작했으며,주5일 등교제로 학력저하를 우려한 학부모를 노린 학원들의 상술도 등장했다. marry04@ 유럽연합 |파리 함혜리특파원|오래 전부터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유럽에서 주말 분위기는 목요일 오후부터 감지된다.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의 시작인 금요일을 맞이하기 위해 관공서 등에서 볼 일을 목요일까지 대부분 마무리하고,주말에 상점 문이 닫는 것에 대비해 미리 미리 쇼핑을 한다. 유럽인들은 여름 휴가가 워낙 길고 부활절,만성절,크리스마스 등 중간 중간에 2주일 정도의 휴가가 끼어 있기 때문에 평상시 주말에는 일상의 리듬을 깨는 장거리 여행은 자제한 채 스포츠를 즐기거나 취미생활을 하고,혹은 산책을 하며 휴식을 취한다. 주말의 생활 리듬은 날짜별로 조금씩 다르다.월요일부터 힘들게 일한 뒤 맞는 주말의 첫날인 금요일 저녁에는 밤 늦게까지 친구들을 만나거나 집에서 텔레비전·비디오·DVD 등을 보면서 한 주일의 긴장을 푼다. 토요일은 가장 황금같은 날이다.아침에는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통이다.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주부들은 그동안 밀린 가사일을 오전 중에 끝내고 오후에는 쇼핑을 하거나 박물관,공원 등으로 가족 나들이를 한다. 부모 형제 친지의 집을 방문하거나 이들을 초대해 여유있게 정담을 나누며 가족간의 식사를 즐기는 때도 토요일이다.토요일에는 다음날 아침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어 늦은 시간까지 여가활동이나 교제에 몰두한다. 일요일에는 새로운 한 주간의 시작에 대비해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가까운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애완동물을 보살피거나 독서를 즐기는 등 편안히 하루를 보낸 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가장 보편적 것은 아무래도 텔레비전 시청 및 비디오·DVD 감상이다.프랑스의 경우 지난해 DVD 매출이 17%정도 신장했고,홈시어터 설비 판매도 5%정도 늘었다. 유럽 각국에는 지방마다 축구장,테니스장,수영장 등 운동 공간이 마련돼 있고 조깅을 할 수 있는 공원도 도처에 있다.더구나 스포츠클럽이 발달해 있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말에 스포츠를 즐긴다.프랑스의 경우 전국에 17만 1000개의 스포츠클럽이 있으며 2600만명이 여기서 정기적으로 활동한다.취미생활을 겸해 하는 여가활동으로는 집안수리와 정원가꾸기가 도시생활을 하는 유럽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lotus@ 중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주5일 근무는 1995년 5월 국무원령 개정을 통해 국가·공공기관에서 선도하면서 시작됐다. 주 5일근무의 범위를 서서히 확대하다가 1인당 GDP 732달러였던 1997년 민간에까지 전면적으로 실시했다.주5일 수업제는 96년 9월부터 전국 초·중·고에 적용됐다. 중국정부는 주5일 근무를 통해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한편 휴일 확대로 인한 내수시장 진작,고용증대 효과를 겨냥했다.노동자 대중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목적도 깔려 있었다. 당국이 추산하는 고용증대 효과는 500만∼600만명 이상이다.하지만 관공서와 학교 이외에 민간 기업에서 주5일 근무가 완벽하게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적지 않은 시중은행들도 전산망 구축 미비 등을 이유로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노동보장과학연구원 스메이샤(石美夏) 연구원은 “정부는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을 위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집중홍보하고 있으나 처벌조항과 인센티브제가 명확하지 않아 이행실적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밝혔다. 실제 중국에선 노동감찰제도가 있으나 주5일 근무제 미이행에 대한 감찰보다는 주로 임금 미지급 문제에 중점을 두는 상황이다.임금문제의 경우 중국 국무원은 기본급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근로시간만 단축시켰다.베이징 소재 LG 필립스사의 경우 추가근로 가산금에 따른 노동비용이 주5일 실시전과 비교,1인당 13∼15%가 늘었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 도입은 내수시장,특히 관광·레저·서비스 산업 활성화에는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베이징청년보는 최근 주5일 근무제와 관련,92년 국내 여행자수가 3억 3000만명에서 2002년 7억 5000만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2일 휴일 중 1일은 가사에,1일은 자기 충전에 사용되면서 공공도서관 출입자 수 등이 증가,삶의 질도 높아지는 추세다. oilman@
  • “글로벌 일류기업 구현 집중” 이건희 삼성회장 신년사

    이건희(얼굴) 삼성회장은 30일 신년사에서 “삼성그룹은 새해의 경영방침을 ‘글로벌 일류기업 구현’으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데 경영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1등 제품 확대 ▲사업의 부가가치 제고 ▲지역특성에 맞는 현지 중심의 1등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인재 육성과 차세대 첨단기술 개발은 경영의 기본이자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여기에 한층 무거워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 협력업체와 한 배를 탄 공동체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때 나눔의 사회와 상생의 경영을 구현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승기자 ksp@
  • 20·30代 현대작가 ‘8人8色’/호암갤러리 ‘아트스펙트럼’展

    박세진,정수진,박미나와 사사,이윤진,문경원,한기창,이한수.각기 다른 개성과 색깔을 지닌 여덟 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스펙트럼(Art Spectrum)’전은 20,30대 젊은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 양상을 살피는 전시다.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주목받되 너무 노출되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이 전시는 삼성미술관이 2년마다 개최하는 한국 현대작가 기획전으로 2001년에 이어 두번째다. 참여작가 중에서 최연소인 박세진(26)은 가장 전통적인 회화 장르로 간주되는 풍경화를 통해 동영상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안견의 ‘몽유도원도’ 배경을 연상케 하는 그의 풍경화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처럼 이상적인 원경을 표현한다.하지만 그의 그림은 세부적인 데까지 빠짐없이 다룸으로써 근접(zoom-in)과 망원이라는 두 가지 시야를 동시에 확보한다.종이에 수채물감과 버찌를 으깬 즙을 사용한 ‘장미도’ 같은 작품은 하나의 모티프를 반복하는 ‘연속회화’ 방식을 택해 회화의 절대적인 시공간을 극복한다. 2층 전시실 전체를 차지한 이한수(36)의 ‘팬시 니르바나(Fancy Nirvana)’는 녹색,빨강,주황의 플라스틱 보살상 500개로 구성된 미디어 설치작품.이 중 절반 이상에는 레이저 포인트가 설치돼 있다.작가에 따르면 이것은 해탈한 보살을 의미한다.디지털 기술과 가상공간 등으로 대변되는 미래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내년 2월29일까지.(02)750-7824. 김종면기자 jmkim@
  • [녹색공간] 삶과 죽음의 공존

    얼마 전,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그대로 안방에 모셔둔 채 6개월을 함께 살았던 중학생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이웃간의 왕래가 없는 세태를 한탄하기도 하고,소년의 심리상태를 분석하기도 했으며,결국은 따뜻한 인정을 모아 소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함께 사는 이웃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을 그리 간단히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그렇다고 이 사건이 주는 정서적 떨림을 그대로 가라앉히기에는 주검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썩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주검 곁에서 일상을 살았을 소년에게 죽음이란 떠나감이나 이별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살아내야 할 일상의 짐이 조금 더 무거워졌음을 의미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게 그는 썩어가는 주검 곁에서 죽음과 함께 반년의 삶을 푹푹 삶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행동이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우리가 그러한 행동을 담아낼 문화적 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다.그러나 이 세상에는 주검과 함께 살아가는 전통을 가진 문화도 많다.함께하는 방식도,부모의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보살피는 유교적 전통에서부터,죽은 이의 시신이 새나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함으로써 영원한 자연의 순환에 들도록 하는 장례 풍습,유명인의 시신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교회에 보관하는 유럽 기독교의 전통,그리고 심지어는 죽은 이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서 부활한다고 믿는 식인풍습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이처럼 대부분의 전통문화에서는 죽음을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죽음을 가능한 한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고 한다.공동묘지는 깊은 산 속에 있어야만 하고,화장장이 들어설 예정인 곳에서는 연일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으며,죽은 사람의 모습은 TV 화면에서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일상과 격리된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라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서 인생을 정리하던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집에서 요양하던 환자라도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빠지면 병원으로 달려가게 마련이고,거기서 온갖 기계에 매달린 채 죽음과의 전투를 치르다가 최후를 맞는 것이 당연시된다.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이 아니라 공포의 상징,극복해야할 대상,심지어는 무찔러야 할 적으로까지 여겨진다. 이처럼 죽음을 적대시하는 태도는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낳는다.그래서 삶과 죽음은 연속이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양 극단이 되어버린다.죽음의 시점을 뒤로 미루는 각종 의학기술이 발전하고,심지어는 영원히 살기 위해 유전자가 동일한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제 삶은 질이 아니라 양으로 평가된다.그리하여 더 많은 삶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생명은 곧 투쟁에서 쟁취한 전리품의 양으로 평가되며,죽음은 이 투쟁에서의 패배일 뿐이다.원래 하나였던 생명이 이제는 너와 나의 생명으로 분열되고,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삶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명의 황폐화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철저히 부정하고 지나치게 삶에 집착한 결과다.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는 것을 생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또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보다 능동적으로 그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그러기 위해 먼저 죽음에 덧씌워진 음습한 이미지를 털어내고 그것과 친해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본래 생명이란 삶과 죽음의 절묘한 조화가 아니었던가. 강 신 익 인제대 의대교수 의철학
  • “더 이룰게 없는 국내에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이승엽 日 롯데 입단 회견 “돈보다 큰 무대서 인정 원해”

    “기자회견 10분 전에 일본행을 결심했습니다.” ‘국민타자’ 이승엽(27)은 11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일본 프로야구 롯데 마린스 입단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회견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일본행을 굳혔다.”면서 “아내는 아직도 삼성 잔류 발표로 알고 있다.”며 입단을 공식화했다.이어 “초심으로 돌아가 일본에서 성공하겠다.”고 밝혔다. 예정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한 이승엽은 기자회견 도중 삼성이 아들처럼 보살펴줘 고맙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눈물을 터뜨려 그동안 삼성 잔류와 일본행의 갈림길에서 막판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드러냈다. 지금의 심경은. -지난 9년간 삼성에서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떠난다고,그것도 외국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잠시 떠나 있더라도 관심을 가져달라. 일본행을 결심한 주된 요인은. -2년 뒤 자유계약으로 완전히 풀어주기로 한 것과 감독이 미국인인 점이 많이 작용했다.바비 밸렌타인 감독과 미국 야구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싶다. 막판 일본행을 망설인 것은. -가족 때문이다.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곁에서 보살피고 싶었다.이번 일본행과 관련해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고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일본에서 야구하는 것은 외로움과의 싸움도 될 것이다.하지만 자신감이 없거나 겁을 먹어서는 아니다. 미국행은 왜 포기했나. -돈 문제는 아니다.다른 문제가 있다.그 문제는 먼 훗날 밝힐 수 있을 것이다.일본에서 성공해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 구체적인 계약조건은. -2년간 계약금 1억엔과 연봉 2억엔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다.세세한 인센티브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만족한다.삼성에서도 이 정도 대우는 해주겠다고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나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다.실패하더라도 10여년이 지난 뒤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야구 외에 어떤 조건이 있었나. -일본에 빨리 적응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롯데는 빨리 적응하도록 모든 조건을 다 들어주며 야구만 생각하라고 했다.그동안 전폭적으로 도와준 삼성에 감사한다. 삼성 잔류와 일본 진출을 놓고 최종 결심한 시점은. -회견장으로 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다.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롯데 선택을 양해해 달라는 말을 삼성에 전해달라고 했다. 삼성 잔류 포기는. -목표 상실이다.지난 9년간 원하는 성적을 모두 냈고 상도 많이 받았다.높은 곳에서 인정받고 싶다. 일본에서의 예상 성적은. -일본 야구를 분석해야겠지만 타율 2할9푼대,홈런 30개로 첫 시즌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의 일정은. -입단식 일정은 아직 잡혀 있지 않다.몸이 망가져 있어 다음주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주변 정리도 하겠다. 김민수기자 kimms@
  • ‘죽은 어머니와 6개월 동거’ 소년 학교지원·성금으로 새 보금자리

    죽은 어머니를 지켜주겠다며 시신과 6개월여 동안 한 집에서 살아온 송모(15·중3)군에게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9일 송군이 다니던 S중학교와 이천시 등에 따르면 송군을 돕겠다며 각지에서 보내준 성금과 학교 교사들이 모은 돈으로 학교 인근에 방 한 개와 주방,거실이 딸린 12평(보증금 500만원,월세 20만원) 크기의 원룸 하나를 마련했다. 당초 학교와 시는 송군에게 학교 근처에 하숙방이나 무의탁 노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방 한칸을 얻어주려 했으나 혼자만의 생활을 좋아하는 송군의 의사와 이모의 허락에 따라 원룸으로 거처를 정했다. S중학교 이덕남(50) 교감은 “송군의 얼굴에서 한동안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젠 친구들과 농담도 하고 웃는 등 점차 밝고 씩씩한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군은 이천시 율면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이 결정됐으며 송군이 다니는 학교와 이천경실련,이천의 순복음예광교회 등이 부모 역할을 맡아 보살피기로 했다. 송군은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일자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재지정된 송군은 앞으로 매월 31만 4000원의 생계비와 연간 9만원의 교과서대금 및 학용품 구입비를 받게 되며,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고 의료보호대상자로도 지정돼 무료 진료도 받게 된다. 이천 윤상돈기자 yoon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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