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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대북 수출 금지’ 품목 확대…핵·미사일 제조 가능 물질 포함

    중국 정부가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라 대북 수출 금지 품목을 확대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공업정보화부와 국가원자력기구, 해관총서 등과 공동으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중심으로 한 대북 수출 금지 품목 리스트를 발표했다. 리스트에는 자석 물질과 고강도 스틸, 컨벡터, 화학전 약품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등이 포함됐다. 금지 품목은 군용과 민수용 등 두 종류로 사용이 가능한 품목이지만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개발,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전용될 소지가 큰 물질들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5일 석탄, 항공유 등 북한 수출입을 금지하는 품목 25종을 발표한 데 이어 두 달여 만에 수출 금지 품목을 확대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이 지난주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 측에 대북 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약속하면서 이행 현황을 공동으로 점검하기로 약속한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최근 북한이 영변에서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다시 가동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이후에 이뤄진 조치란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소식통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과 북한이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게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엄격하고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한·러 외무 “北 핵보유 인정 안 해”

    한·러 외무 “北 핵보유 인정 안 해”

    박 대통령 방러 문제도 논의… 北 “외교 놀음 날뛰어” 비난 취임 후 처음 러시아를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3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을 열어 양국의 대북 제재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러시아 외교부 영빈관에서 열린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윤 장관은 “진지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북핵 공조, 극동 개발 협력 등을 논의했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이 긴요하며 북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하나가 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재확인하면서 양국 공조를 더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해야 한다는 공동 의지를 확인했고 핵보유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면서 “평양(북한)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안보리 결의 2270호 이행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한·러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내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답방 및 한·러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더불어 양국 장관은 북핵 문제, 유엔, 북극, 테러 등 분야별 협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의 ‘2016~2017년 한·러 외교부 간 교류계획서’에도 서명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결의 2270호 논의 당시 채택을 미루고 예외 조항을 삽입하는 등 ‘몽니’를 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북 금융 제재에 착수하는 등 제재를 이행하고 있으며 유엔에 이행 보고서도 제출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러시아가 대북 제재 이행 및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북한이 받는 압박은 커지게 됐다. 이번 방문에 대해 북한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전날 ‘헛된 망상을 버려라’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보수패당이 요즘 ‘북핵 포기’를 위한 ‘대북 압박 외교’ 놀음에 총출동해 국제 무대에서 우리를 고립 봉쇄해 보려고 미쳐 날뛰고 있다”고 비난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사토리 세대와 N포 세대

    [김욱동 창문을 열며] 사토리 세대와 N포 세대

    중세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르네상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단테의 ‘신곡’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지옥 편’ 지옥문 앞에 걸려 있는 유명한 문구를 알 것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렇다. 어떤 형태건 희망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곧 지옥일 것이다. 덴마크의 우수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도 절망이나 자기상실을 두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부르는 이름이 어디 한두 가지랴마는 ‘희망이 없는 시대’, ‘탈출구가 없는 시대’도 아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일본에서는 사토리(さとり) 세대라는 말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2013년도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올랐을 만큼 잘 알려진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대 일본의 경제 사정과 만나게 된다. 이 무렵 일본이 불황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젊은이들은 아예 취직을 포기한 채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사토리 세대는 우리말로는 ‘득도(得道) 세대’로 옮길 수 있다. 한 국내 신문사에는 ‘달관 세대’라는 용어로 사용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사토리’란 일본어 용어는 깨닫다는 뜻의 동사 ‘사토루’(悟る)에서 파생된 말이다. 마치 수도승처럼 현실의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취직을 하지 못하고 좌절한 나머지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이렇다 할 욕심이 없다. 고급 휴대전화나 자동차, 사치품 등에 전혀 관심이 없다. 둘째, 그들은 연애나 섹스에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그저 사치스러울 뿐이다. 셋째, 그들은 좀처럼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해외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가까운 거리로 이동하는 국내 여행마저 꺼린다. 이 밖에도 사토리 세대는 술도 별로 마시지 않고 유흥거리에도 관심이 없고 더 나아가 재산을 축적하거나 출세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득도란 본디 불교 용어로 심오한 도를 깨닫는 것을 뜻한다. 보리(菩提), 즉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사토리 세대의 득도는 삶을 달관하여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무기력과 세상의 불공평함을 자조(自嘲)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수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어찌 일본뿐이겠는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도에 잘 나가던 기업도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일본에 ‘사토리 세대’가 있다면 한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세대를 지칭하는 ‘N포(抛) 세대’가 있다. 여기서 ‘N’이란 가상의 수를 말한다. 처음에는 한두 가지, 세 가지, 다섯 가지를 포기하더니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두 세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체념에 가까운 상태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다. 사토리 세대나 N포 세대는 무한경쟁과 출세를 부추기는 기성세대에 대한 무언(無言)의 저항이요, 경제성장과 소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자본주의에 대한 침묵의 반발로 볼 수 있다. 또한 젊은이들이 나름대로 슬기롭게 살아가려는 삶의 지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터득한 ‘도’는 희망 없는 시대에 싹튼 병적인 삶의 방식일 뿐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좀 더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는 국가대로,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단테가 지옥 문지방에 새겨놓은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볼 때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곧 지옥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UNIST 초빙교수
  • 커지는 “EU 탈퇴” 英운명 혼전, 세계는 혼란

    찬반 팽팽… 여론조사 엎치락뒤치락 최근 탈퇴론이 10%P 앞서기도 캐머런 등 ‘잔류’ 진영 공황 상태 종교·과학계도 “브렉시트 안 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열흘 앞두고 EU 탈퇴 여론이 상승세를 타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잔류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탈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자 영국 정·재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과학계 인사들도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EU 잔류 진영은 총공세를 펼쳤다.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12일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칼럼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잔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성공회가 국민투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잔류에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웰비는 이민 통제를 위해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탈퇴 진영의 핵심 주장에 대해서는 “가장 부도덕한 본능에 굴복하지 않고 정직하게 이민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영국의 저명 과학자 13명은 지난 10일 텔레그래프에 게재한 공개서한에서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과학 연구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개서한에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제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와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핵심 인자를 발견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폴 너스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과학은 아이디어와 사람이 활발히 교류할 때 번창한다”며 “EU는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협력을 가능케 하지만 브렉시트가 되면 이런 이점은 사라질 것이며 EU의 연구비 지원도 끊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막판 종교계와 과학계 거물들이 잇따라 잔류 진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최근 탈퇴 여론이 잔류보다 우위에 서는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잔류 진영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지난 10일 여론조사업체 ORB와 인디팬던트의 조사에 따르면 EU 탈퇴 지지율이 55%를 기록해 잔류보다 10% 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이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영국의 FTSE100 지수는 1.86% 급락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발표된 오피니움의 조사에서는 잔류가 2% 포인트, 유고브의 조사에서는 탈퇴가 1%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여론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잔류 진영은 최근 2주 동안 탈퇴 여론이 모멘텀을 얻어 유권자들이 급속히 탈퇴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전 시장 등 탈퇴 진영은 캐머런이 이민 통제에 실패했다며 EU를 탈퇴해 이민자가 영국의 일자리를 뺏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최근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서울광장] 현실화되는 중국의 선택적 균형 전략/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현실화되는 중국의 선택적 균형 전략/오일만 논설위원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이 심상치 않다.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국제사회의 제재국면에서 북한이 동북아 안보의 핵심 변수였지만 최근에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북·중 관계 회복 조짐이 가시화되면서 중국 변수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15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는 향후 동북아 정세의 시금석이다. 남·동 중국해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미·중 간의 힘겨루기는 예상보다 강도가 높았다. 최근엔 중국 군함이 처음으로 일본과의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접속 수역 안에 진입해 그동안 잠잠했던 중·일 간 영토권 분쟁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해 중국이 작심하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우리 외교·안보 딜레마는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강도에 비례해 우리의 외교 자산이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실제로 남·동 중국해 영유권과 사드 배치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격렬하게 부딪칠수록 북한의 전략적 자산 가치가 높아지는 묘한 함수 관계로 변했다. 샹그릴라 대화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던 황재호 외국어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수위가 높아질수록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기류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의 유엔 대북 경제제재의 실행 의지는 현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분석했다. 2012년 11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마디로 ‘선택적 균형전략’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 정권을 유지시키면서 남북한 세력균형과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을 깨야 하는 3중 딜레마에 직면한 중국의 안보 전략인 것이다. 중국은 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요약되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이 현실화되면서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한 과도기로 진입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선택적 균형전략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일단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유지하되 북·중 관계를 동맹과 정상 관계의 중간에서 정책 방향과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미다. 한·중 관계 역시 한·미·일 군사동맹 전환을 막으면서 남북한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등거리 외교로 집약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하며 ‘대북 고립외교’를 펼쳤던 지난 1일 시 주석은 4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온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면담을 가졌다.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동참을 선언한 중국이지만 정부 레벨보다 한 차원 높은 당대당 교류를 이어가면서 북·중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자금 세탁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뒤 미·중 전략·경제대화 직전에 중국 통신기기 제조사인 화웨이(華爲)의 대북 거래 조사에 착수하며 중국을 압박했지만 시 주석은 전략·경제대화 축하연설에서 ‘중·미 신형 대국관계’를 앞세워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의 북핵 외교는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과 중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압박한다는 한·미·중 3국 전략대화도 물 건너갔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인 한·미·중 전략대화는 2013년 7월 첫 회의가 열린 뒤 3년 동안 중단된 상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재개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우리의 대북 외교·안보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중국 역할론’을 과대평가한 측면이 크다. 선택적 균형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중국이 자신의 국익을 해치면서까지 우리를 도울 것으로 생각한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는 의리나 도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로지 국익을 잣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집단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작금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국익은 늘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동북아 정세가 미·중 간 대립 구도로 고착될 경우 북한의 전략적 가치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우리가 앞장설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ilman@seoul.co.kr
  • 中,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 미루는 이유는…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 채택에 따른 제재 이행 보고서 제출 기한(6월 2일)을 일주일이나 넘긴 10일까지도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이 주목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아직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총 25개 유엔 회원국이 이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나머지 안보리 상임이사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캐나다, 호주 등도 여기 동참했다. 하지만 수차례 대북 제재 의지를 피력해 온 중국이 보고서 제출을 미루면서 최근 관계 회복을 꾀하고 있는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외교 분야 실세인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관측도 있다. 미·중은 최근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통상 마찰 등을 놓고 격돌했다. G2(미·중)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를 중국이 일방적으로 따르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으로 이행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별다른 의도는 없다는 시각을 보였다. 한편 지난달 제7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북한 노동당 규약에 ‘핵보유국’이 명시되지 않았으며 김 위원장의 호칭이 “노동당과 조선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영도자)”로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국제 제재 비웃는 北 플루토늄 생산 재개

    북한 김정은 정권이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에 들어서고 있다.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견고한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미 국무부 고위 간부의 전언이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영변 핵시설 내 5㎿급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를 빼내 식힌 다음 재처리 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폐연료봉에서 핵무기 원료 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기존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연쇄 도발을 감행하자 지난 3월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사실상 봉쇄하는 강력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층의 집단탈출 등 그 효과도 차츰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 도발 의지를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올 초부터 의심스러운 재처리 관련 활동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이 이미 2013년 4월 5㎿급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비춰 보면 지금까지 상당량의 폐연료봉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간 원자로 가동에 사용된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6㎏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고, 이는 핵무기 2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미 확보한 40㎏ 외에 매년 6㎏씩 지속적으로 비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축 우라늄은 이와는 별개니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위협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급히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어야만 하는 이유다. 더욱 공고한 제재 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핵개발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것은 제재를 ‘종이호랑이’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재 강도가 약해지고 대화 국면으로 바뀐 그동안의 ‘학습효과’ 탓도 클 것이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며 제재 전선에 균열을 내는 것 아닌가. 미국과 중국은 그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북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상호 약속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한 치의 틈도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북한도 핵무기에 집착하는 한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美 “北 플루토늄 생산 재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5㎿급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재처리 활동을 재개했다고 로이터가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7일(현지시간) 전했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및 2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관련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관리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빼내 식힌 다음 재처리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언급은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위성사진 자료 등을 근거로 북한이 영변에서 재처리 시설을 다시 가동했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지 하루 뒤에 나왔다. 아마노 총장에 이어 미 국무부 고위관리도 북한이 영변에서 핵무기용 원료를 얻기 위한 재처리를 다시 시작했다고 밝히면서,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도발에 대응한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하지 않고 핵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있음이 재확인된 것이다.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2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3차 핵실험 후인 2013년에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흑연감속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5㎿ 원자로)를 포함한 핵시설의 재정비·재가동을 발표했는데, 북한은 실제 영변의 농축 시설을 확장하고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이 “수주 또는 수개월 내에” 5㎿ 원자로의 사용후 연료에서 플루토늄 추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가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재처리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재처리 활동에 돌입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정보사항”이라며 확인하지 않았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란·우간다·쿠바 이어 러 껴안기 ‘北우방’ 공략… 北고립 포위작전

    이란·우간다·쿠바 이어 러 껴안기 ‘北우방’ 공략… 北고립 포위작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에 이어 오는 12~14일 러시아를 방문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시작으로 정부가 외교의 초점을 ‘북한 포위 및 고립’에 맞추고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윤 장관이 13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한·러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한반도 문제와 지역 정세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 도출에 총력을 기울인 정부는 지난 4월부터 북한의 우방국들을 상대로 공세적인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앞세우고, 경제협력을 지렛대 삼아 적극적인 교류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 시작은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다. 북한과 오랫동안 군사적 협력을 도모해 온 이란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경협은 물론 이슬람 문화를 존중해 ‘히잡’까지 착용하는 배려를 보여 현지인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어 북한과 공산권 동맹으로 돈독한 관계인 몽골의 대통령을 한국으로 초청해 극진히 대접하는 성의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의 안방으로 불리는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을 차례로 방문해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하며 북한 옥죄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같은 전략은 윤 장관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대한민국 외교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형제국’인 쿠바와 외교장관회담을 갖는 등 북한으로서는 매우 아픈 곳을 건드렸다. 이런 면에서 윤 장관의 러시아 방문은 대북 봉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외교적 공세는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며 “북한이 대북 제재를 상쇄시키기 위해 국제사회로 나갈 수 있는 곳은 비동맹 외교라든지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들인데 이들을 정부가 미리 공략함으로써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 철강 등 무역통상 분쟁, 북핵 해법 등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양상이 우리 정부의 대북 포위 전략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미국에 불만을 품은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서 북한의 숨통을 틔워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중국은 북한을 끌어들여 미국과 대항하는 구도를 만들 것”이라며 “이미 그런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촘촘한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안 좋은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우리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8~9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대북 제재 공조를 다잡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북한도 우리 정부의 포위 전략에 맞서 공산권 국가들을 상대로 외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최태복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에 이어 지난 6일 라오스를 방문했다. 앞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지난달 17~26일 적도기니를 방문했다.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도 지난달 31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면담했다. 김영철 당 부위원장도 지난달 24일 쿠바를 방문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케리 “미·중, 北 핵보유국 주장 불인정 동의… 대북제재 이행”

    케리 “미·중, 北 핵보유국 주장 불인정 동의… 대북제재 이행”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 폐막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면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전면적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이어 “나는 중국 측 상대방이 지금부터 전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제재를 이행한다는 데 동의해준 것에 감사한다“면서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한반도 안정과 북한의 평화로운 비핵화 선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합치된 노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날 케리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고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했고, 이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 핵 문제 등에서 이미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양국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이날 양국이 북핵 강경 대응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유엔 제재가 앞으로도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미·중 양자 간 투자협정(BIT) 체결 작업도 빨라질 전망이다. 중국은 이날 투자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위해 자국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세 번째 ‘네거티브 리스트’를 다음주 미국에 제시하기로 했다. 이번 3차 네거티브 리스트 교환에서 이견을 좁힌다면 미·중 간 BIT 체결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또 미국에 2500억위안(약 44조 2000억원)의 위안화적격외국인투자자(RQFII)쿼터를 배정키로 했다. 중국은 또 미국에서의 위안화 거래와 결제 업무를 강화키로 하고, 조건에 부합하는 은행을 지정해 위안화 결제를 대행시키기로 했다. 미국과 철강 생산과잉 공방을 벌인 끝에 중국이 철강 생산을 억제하는 양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왕양(汪洋) 중국 부총리는 “모든 갈등을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약 60여개 항목의 성과를 도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민감한 현안에서는 양국의 입장차가 첨예하게 갈렸다. 양제츠 (楊潔?)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 여러 섬들은 자고 이래 중국의 영토”라면서 필리핀이 상설중재재판소에 낸 영유권 분쟁 신청에 대해 수용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케리 장관은 ‘국제법에 근거한 협상과 평화로운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힌 뒤 “(모든 관련 당사자가)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포토] 공효진, 런던서도 빛나는 독보적 패션 감각

    [포토] 공효진, 런던서도 빛나는 독보적 패션 감각

    6월 2일, 배우 공효진이 한국 연예인 최초로 구찌(Gucci)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공효진이 참석한 구찌 2017 크루즈 컬렉션 쇼는 영국 왕세손과 왕세손비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 유명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진행 되었으며, 이 곳에서 열린 브랜드 행사로는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받고 있다. 쇼 현장에서 포착 된 공효진은 플라워 패턴이 돋보이는 가디건과 실버 레더 소재의 스커트, 2016-17 가을 겨울 컬렉션 핸드백으로 시크하면서 쿨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패션쇼 이후에 진행된 에프터 파티에서는 아이보리-화이트 컬러에 펄 장식이 돋보인 니트와 웹 스트라이프가 특징적인 스커트를 착용해, 공효진만의 독보적인 감각으로 각국의 패션 피플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한편, 공효진은 영화 ‘싱글라이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출처: 디마코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中에 “북핵 보조 맞춰라” 압박

    케리 “北 제재 모든 행동 취해야” 시진핑 “이미 긴밀히 협조” 반박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6일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고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반도 핵(북핵) 문제 등에서 이미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 개막식에서 한 연설에서 “중·미 양국은 북핵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가장 엄격한 제재를 통과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양국은 제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마땅히 보조를 맞춰야 하고 지속적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모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리 장관은 특히 “미국은 앞으로 이란 핵 문제를 모범으로 삼아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 대북 압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미국은 최근 북·중 간에 이뤄진 고위급 대화가 대북 제재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은 개막식 축사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문제 등 지역과 세계의 주요 이슈에 대해 긴밀한(유효한) 소통과 협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북한 핵 문제를 특정해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더 강한 대북 제재에 대해 “중국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어 “이 같은 협력이 양국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및 세계의 안정과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특히 “중국은 중·미 간 신형 대국 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이라면서 “국제질서를 더욱 공정한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사설] 한·일, 북핵 협력과 과거사 문제 투 트랙 접근을

    북핵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 전선에서 크고 작은 틈이 여러 군데서 벌어지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회사 화웨이를 북핵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목하자 중국 측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15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만난 한·일 국방장관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문제에서 엇박자를 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공동보조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과거사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또 결정적 국면에서 북한에 뒷문을 열어 주는 악습을 되풀이할 조짐이 아닌가. 한·일 양국이 북핵 협력과 과거사 협상을 분리하는 투 트랙 접근으로 국제 공조의 빈틈을 메울 때다.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내려면 협상이든 제재든 주변국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관건이다. 특히 이란 핵문제 타결 사례를 되짚어 보더라도 일사불란한 제재가 생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금의 미·중 갈등이 매우 걱정스럽다. 사드 한반도 배치나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미국의 조치에 중국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면서 제재 공조에 누수가 생기면서다. 어제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 부참모장은 아시아안보회의 주제 연설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개리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선 “능동적으로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그물망처럼 촘촘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말까인데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중국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꼴이다. 이런 중국의 행보는 우리로선 매우 실망스러운 노릇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을 삐걱거리게 만들 우려를 무릅쓰고 대중 설득에 공을 들여 왔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날 미 조야 일각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어제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방 해역에서 중국 어선 2척이 연평도 어민들에 의해 직접 나포되는 황당한 사건의 원인(遠因)도 뭐겠나. 북핵 공조를 위해 중국과는 가급적 마찰을 피하려 한 관성이 낳은 부산물이 아니겠나. 그간 우리 수역에서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식 불법 조업이 다반사였지만, 우리 해경이 무력을 동원한 제재와 나포에는 매우 신중했다면 말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효과가 가시화하는 시점에서 중국의 ‘마이웨이’는 배신감을 느낄 만한 상황 전개다. 정부는 대중 설득 노력과는 별개로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국제 공조 강화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한·일 간 북핵 협력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할 때다. GSOMIA도 2012년 체결 직전에 보류된 사안이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군사협력을 추진한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해 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중국의 모호한 태도로 중대 기로에 선 상황이다. 우리는 한·일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한·미·일 대북 정보 공유에 추호도 허점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 北리수용 방중 직후 中 찾는 김홍균 6자 수석

    북핵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8일 베이징을 방문,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동한다고 외교부가 5일 밝혔다.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김 본부장의 중국 방문은 리수용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의 방중(5월 31일~6월 2일) 직후 이뤄지는 것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중 대화와 관련해 중국 측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한·중 양측은 북한의 7차 당대회 이후 한반도 정세, 북한의 대외관계 동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석 달이 지난 시점에서 결의의 철저한 이행과 북한의 추가도발 억지 등 북핵, 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중 간의 전반적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프랑스오픈 조코비치 우승,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프랑스오픈 조코비치 우승,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가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한 차례씩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조코비치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3201만 7500유로·약 419억원) 마지막 날 남자단식 결승에서 앤디 머리(2위·영국)를 3시간 3분여의 접전 끝에 3-1(3-6 6-1 6-2 6-4)로 눌렀다. 우승 상금은 200만 유로(약 26억 4000만원). 그동안 프랑스오픈에서 2012년과 2014년, 2015년 등 세 차례 결승에 올랐으나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조코비치는 ‘3전 4기’에 성공하며 역대 8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호주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에 오른 조코비치는 2011년 윔블던과 US오픈을 제패했고, 올해 롤랑가로스 패권을 차지하며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모두 수집했다.  지금까지 남자 테니스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프레드 페리(영국·1935년), 돈 버지(미국·1938년), 로드 레이버(호주·1962년), 로이 에머슨(호주·1964년), 앤드리 애거시(미국·1999년), 로저 페더러(스위스·2009년), 라파엘 나달(스페인·2010년) 등 7명만 달성했다. 이 중 현역 선수는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 등 3명이다.  조코비치는 1세트 초반 게임스코어 1-4까지 끌려가며 고전한 끝에 첫 세트를 내줘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2세트 이후 대반격에 나서며 그동안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당한 3연패 사슬을 끊었다. 또 지난해 윔블던을 시작으로 US오픈, 올해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 등 최근 4개 메이저 대회를 휩쓸며 메이저대회 28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머리는 2세트부터 갑자기 범실을 쏟아내며 자멸했다. 2세트에서 처음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줄 때는 더블폴트, 3세트에서 첫 브레이크를 당할 때는 손쉬운 발리가 네트에 걸리는 등 고비마다 실책이 나왔다. 공격 성공에서 조코비치가 41-23으로 앞섰고, 실책은 39-37로 머리가 2개 더 많았으나 2세트 이후만 따져서는 33-24로 차이가 컸다. 조코비치의 코치인 보리스 베커(독일)도 프랑스오픈의 한을 풀었다. 베커는 현역 시절 호주오픈에서 2회, 윔블던 3회, US오픈 1회 등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으나 유독 프랑스오픈에서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가 이날 조코비치의 우승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롤랑가로스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北 자금세탁 우려국’ 지정] 北 핵포기 않고 ‘北·中우호’ 확인 최대 성과

    고립 상태 ‘외교 공간’ 확장 기회 中서 대화 분위기 조성 나설 경우 北 ‘핵 모라토리움’ 선언할 수도 2일 마무리된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압박 가운데 처음으로 외교 공간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당장 제재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지는 못하더라도 중국이라는 ‘버팀목’에 기대 분위기 반전을 꾀할 여지가 어느 정도 생긴 것이다. 유엔 안전보상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중국과 러시아마저 고강도 제재에 나서고 전통적인 우호관계인 이란, 또 우간다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우리나라와 손을 잡으면서 북한은 극심한 고립 상태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북·중 우호협력 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며 휘청이던 북한에 손을 내민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중국 측 인사 면전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하고도 북·중 우호관계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방중 성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중국이 북핵을 용인했다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꾸준히 주장해왔고 이번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고강도 제재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제재 이행 의사를 계속해서 밝혔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체면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입장을 바꾸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리 부위원장 방중 기간 동안 중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은 북한의 실패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채택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전면 이행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깨닫고 하루속히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리 부위원장 방중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회복된다 해도 과거 같은 한·미·일 대 북·중·러 식의 구도로 회귀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에 대한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방중 결과에 따라 중국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설 경우 북한이 ‘핵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수준에서 성의를 보일 가능성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는 제7차 노동당 대회 이후 대외 정세 관리 차원에서 북한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과 북핵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협의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실험 중단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北 자금세탁 우려국’ 지정] “北 돈줄 전방위 차단 타깃은 중국”… 세컨더리 보이콧 먹힐까

    대북 금융거래 中에 강력 경고 제3국 금융기관 압박 수단 작용 “중국 내 북한의 위장회사들과 금융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미국 관리) “무슨 소리냐. 증거를 대라.”(중국 관리) 미국과 중국이 지난 2월 미국의 초강력 대북제재법(H R 757)이 발효된 뒤 대북 금융제재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미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1일(현지시간) “미국의 대북제재법 후속 조치인 대북 돈세탁 우려국 지정은 사실상 중국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 3월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북·중 간 금융거래를 차단해 북한의 돈줄을 철저히 죄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미국 당국은 중국의 금융기관이 북한의 위장 무역회사를 통한 금융 거래가 있었다는 정보를 여러 차례 입수, 중국 측에 알렸으나 중국 측은 증거를 요구하며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북한을 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미국과 북한의 금융거래 차단은 물론, 미국 금융기관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경우 제재를 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3국 금융기관에 압력을 가하는 ‘세컨더리 제재’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금융제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는 제3국 금융기관이 북한의 은행 등 공식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초점을 맞춰, 중국 내 북한의 무역업체 등 위장회사 또는 공관원 등이 중국 금융기관들과 주로 차명계좌를 통해 이뤄지는 은닉 거래까지 모두 제재하기 어렵다는 허점이 있다. 이런 허점을 이번 조치로 메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번 조치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1일 면담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 강력한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소식통은 “미·중 간 대북제재 이행을 둘러싸고 물밑 접촉을 통해 대립해온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 제3국 금융기관과의 금융거래를 더 샅샅이 뒤지게 되면서 중국 측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북한이 2005년 돈세탁 금융기관으로 지정됐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이후 중국 등과 금융기관 간 공식 거래가 아니라 위장회사를 통한 은닉 거래를 많이 해온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에, 미국이 BDA처럼 구체적 사례를 찾아 중국 측에 통보할 경우 중국 당국이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금융기관이 미국 측과 거래가 없을 경우, 이 같은 조치는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의 정책적 의지에 따른 대북 제재 이행이 얼마나 이뤄지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김정은 특사 맞은 中, 북핵 오판 않게 해야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4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그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리 부위원장은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임명됐고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직도 맡는 등 외교 분야의 실세로 등장한 인물이다. 이번 방중은 제7차 노동당 대회 결과를 중국 측에 설명하는 게 주요 목적이지만 핵실험과 대북 제재 등으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북한과 중국이 일단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고 고립에서 탈피하는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탐색하는 자리인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 부위원장 일행과 면담을 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란 표현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변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앞서 리 부위원장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나 핵·경제 병진 전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지난 3월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했고 중국 역시 결의안 이행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런 와중에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발효되고 3개월 뒤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최룡해가 시 주석에게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한 문제 해결 의사를 밝힌 뒤 중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됐고 결국 지난 1월 4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지정학적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미·중 패권 다툼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이용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들이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베트남과 일본 순방을 대중 포위전략의 구체화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적 이익을 앞세워 북한을 비호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불용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중국이 그동안의 유엔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불가피하며 핵 포기 이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이번만큼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해 북한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
  • 北·中, 핵 문제는 평행선… 김정은 訪中 당분간 어려울 듯

    北·中, 핵 문제는 평행선… 김정은 訪中 당분간 어려울 듯

    習 “경제발전 성취하길” 덕담 양국 대화 물꼬… 관계 복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베이징에서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면서 북·중 관계 및 한반도 정세가 크게 변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 주석은 북한 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양국 우호관계의 계승과 발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번 대표단의 방문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양국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며 특사단을 파견한 김 위원장을 평가했다. 시 주석은 또 “북한 인민이 경제발전, 민생개선, 사회주의 사업 건설에 더 큰 성취를 이룩하기를 축원한다”고 덕담도 건넸다. 이날 오후 신화통신이 곧바로 면담 사실은 물론 시 주석의 발언까지 공개한 것도 중국이 북·중 관계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의 ‘진심’은 면담 말미에 나왔다. 그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면서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리 부위원장이 전달한 김 위원장의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및 안정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밝힌 구두 메시지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행동으로 보여 달라’는 뜻을 에둘러 전달한 것이다. 시 주석과 리 부위원장의 만남으로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에 고위급 대화의 물꼬가 터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양측은 핵심 쟁점인 핵 문제와 관련해 기존 입장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번 방중의 목적이 리 부위원장을 통해 김 위원장이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재확인한 ‘핵·경제’ 병진 노선을 중국에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시 주석은 자신이 누차 강조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허물면서까지 북한을 포용할 이유가 없다. 리 부위원장이 방문한 당일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무수단 미사일을 실험 발사한 북한을 두둔했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중국의 고립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중 관계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베이징대 선딩창(沈定昌) 교수는 “이번 만남으로 북한과 정상적인 교류를 하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가 표출됐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시 주석의 의지가 퇴색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민대 청샤오허(成曉河) 교수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번복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현재 상태로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중국으로서는 당 대회 결과를 설명하겠다는 북한 대표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김정은 방중은 북핵이라는 양국의 근본적인 장애물이 해소된 뒤에야 가시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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