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고향 얘기 이제 그만할래요”
그는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독서의 집중을 방해한다. 담임 선생과 부잣집 아이가 반장인 자신을 빼고 작당 모의를 할까봐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바지에 똥 싼 이야기며, 개똥에 돼지 쓸개까지 갈아넣어 만든 것을 동네 할아버지에게 불로장생약이라고 먹인 이야기, 갈치 몇 토막으로 과부 인심 얻으려다 망신당한 동네 유부남 이야기 등은 책으로 얼굴 가리며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한때 박치기왕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가 이제는 알츠하이머에 시달리고 있는 퇴역 레슬러와의 만남, 20년 전 유족도, 남도 아닌 채 연인을 떠나보내고 검은 상복을 입었던 대학 시절 여자 선배의 기억, 치매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 얘기 등은 먹먹하게 퍼지는 울림에 잠시 책을 덮고 먼산을 바라보도록 한다.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채만식문학상, 무영문학상, 민족문학연구소 올해의 작가상 등을 받은 17년차 소설가 전성태(41)가 유쾌하면서도 가슴 저릿해지는 산문집 ‘성태 망태 부리붕태’(좋은생각 펴냄)를 내놓았다. 좋은생각 웹진(www.positive.co.kr)에 올해 초까지 일곱 달 동안 연재한 글을 묶었다. ‘개똥 든 불로장생약’을 먹은 할아버지가 불렀던 어린 시절 별명을 그대로 제목 삼았다. 부제는 ‘전성태가 주운 이야기’다.
28일 서울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만난 전성태는 “어머니, 할머니, 동네 이웃 등 함께 지낸 사람들이 만들었고, 그것을 그냥 옮겨 적었다.”면서 “잃어가던 기억을 되찾는 시간이었고 독자들과 함께 공감,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까마득한 남쪽 바닷가 전남 고흥군 도덕면 신성리다. 이름 바꾸기 전에는 귓등마을로 스무 집 남짓 모여 사는 곳이었다. 고갯길 지나던 트럭에서 훔쳐낸 연탄을 보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으니 문명과 떨어진 거리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전성태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세대들보다는 열댓 살 윗줄 선배들과 기억을 공유할 때가 많았다.”면서 “작가가 되고 나서야 느꼈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소설적 자산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책으로 충분히 풀어냈겠건만, 기자들과의 만남 내내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갯벌에서 축구하던 얘기, 자책골 넣고 동네 형한테 귀싸대기 맞은 일 등…. 해학적이면서도 민중적인 묘사와 문체는 여전하건만 그동안 그가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선 굵은 서사, 민중들에 대한 진지한 애착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김일, 유제두, 백인철 등 고흥 출신 스포츠 영웅들과 교직하는 한국 현대사, 슬픈 지역사를 장편소설로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이번 산문집으로 고향 얘기, 어릴 적 얘기는 그만하고 좀 더 본격적으로 소설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