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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열베이비 선물 ‘빌비’는 쥐? 캥거루?

    영국 ‘로열 베이비’가 선물로 사막동물 ‘빌비’(bilby)를 얻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케빈 러드는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첫 아들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선물보따리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에 서식하는 동물인 ‘빌비’를 함께 넣어 보냈다. 선물로 보내진 빌비의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으며 새로 태어난 로열 베이비를 기념해 지을 예정이다. 이 동물을 보호하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있는 타롱가동물원 측은 페이스북을 통해 “로열 베이비에게 전달하는 호주 정부의 선물에 우리 동물원이 도움줄 수 있어 기쁘다”는 뜻을 전했다. 빌비는 호주의 건조한 초원지대 및 사막에 서식하는 중형 유대류 동물로 크게는 55cm까지 자란다. 쥐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몸통은 캥거루를 닮았다.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개원하면 돈방석? 다 옛말… 그래도 쥐꼬리 수당에 고난도 수술은 싫다

    [주말 인사이드] 개원하면 돈방석? 다 옛말… 그래도 쥐꼬리 수당에 고난도 수술은 싫다

    흔히들 의대를 마친 젊은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하는 걸 보면 ‘돈’이 보인다고들 말한다. 상당 부분 근거가 있다. 우리 사회가 한때 성형 열풍에 휩싸인 것은 앞다퉈 개원한 병·의원들이 뒤질세라 광고를 해대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구를 자극한 탓이 크다. 성형 열풍은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파이였다. 이렇게 커진 시장에 거대한 돈의 흐름이 형성되자 새내기 의사들이 마치 엘도라도라도 되는 양 너도 나도 개원 대열에 합류했고, 이런 흐름이 의사들의 전공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들은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왜 개원했느냐고요. 이유는 많지요. 교수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 빡빡한 대학병원에서 기약 없이 뺑뺑이 돌 수도 없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강했고…. 뭐 그렇지요.” 서울 강남에서 4년 전 성형외과를 개원한 전문의 K(37)씨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개원의가 금융 부담을 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도 대출이다, 리스다 해서 짊어진 금융 부담이 20억원이 넘어요. 이 중 절반 정도는 공동원장들이 분담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부담이죠. 이 정도의 금융 부채 털어내는 데 7∼8년, 길게는 10년 이상도 걸리겠지요. 그래도 걱정은 안 해요. 그 정도야 누구나 안고 가는 부담이고, 아직 성형 열풍이 살아있으니….” 한 치과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페이닥터’로 3년간 근무하다 서울 강동에서 개원한 치과의사 H씨는 K씨와는 생각이 좀 달랐다. “개원하면 돈방석에 앉는다고들 생각하지만 세상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새로 생기는 치과는 많은데 시장 규모는 안 커지니 속된 말로 뜯어먹을 게 줄어드는 셈이지요.” “10년쯤 전에 목 좋은 곳에 개원해서 2년만에 본전 뽑고, 떼돈 벌었다는 사람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요. 임플란트 시술비 후려치는 거 보세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임플란트 등 보철 비용이 3~4분의 1밖에 안 되잖아요. 그것도 비싸다고 환자들은 여기 저기 비교하고 다니는 판이니 죽을 맛이지요.”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개원한 P씨는 “우리 나라의 성형 열풍이 의료 선진국이나 이웃 일본, 중국과 비교해도 지나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푸드코트 밖으로 보이는 성형외과 등 개원의 간판을 한번 세어보라. 그것이 강남 개원가의 현실이다”고 말했다. P씨는 “나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라도 노력 없이는 돈 벌기 어렵다. 쉬지도, 놀지도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도 바뀌어가고 있지만…”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급 과잉을 말했다. “사실, 개원만 하면 돈을 긁어모은다고 생각하지만 직원들 월급 못 주는 병원이 널렸고, 아예 망해서 주말에 중국으로 진료 다니는 보따리 의사도 많다”고 귀띔했다. 물론 바람 잘 타 ‘떼돈’을 번 의사들이 적지 않다. 강남 개원가에서는 돈 많이 벌었다는 개원의들을 줄줄이 꼽기도 한다. 30년 전에 개원한 정형외과 원장 A씨와 이비인후과 원장 B씨, 개원 20년을 넘긴 안과 원장 C씨와 성형외과 원장 D씨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본인들의 생각은 세간의 평가와 온도차가 있다. C씨는 “의대를 마친 뒤 소수는 대학이나 연구 쪽으로 빠지고 나머지는 개원을 하기 때문에 개원 자체를 ‘돈 벌려는 선택’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물론 최근에는 능력있는 신진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개원하는 건 맞지만 그 사람들도 대부분은 기존 의료전달 체계나 보험제도가 내몬 사람들”이라면서 “그 결과로 그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 해서 그걸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선택이 오로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불합리한 현행 의료수가 체계가 부른 ‘예고된 혼돈’이라는 지적도 많다. 새내기 의사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A씨는 “외과에서 어려운 개흉·개복 수술을 해봐야 수가를 코딱지만큼 책정해 놓으니 누가 흥미를 갖겠나. 뒤집어 보면 성형이나 안과, 이비인후과를 선호하는 게 돈을 많이 번다는 측면보다 돈도 안 되는 어려운 전공과를 피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풍선효과처럼 특정 전공과를 기피하다 보니 자연스레 또 다른 특정 전공과로 인력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강동경희대병원 비뇨기과 이형래 교수도 수가체계의 불합리성에 상당 부분 동의했다. 비뇨기학회 이사이기도 한 이 교수는 “이런 추이를 방치하면 머잖아 비뇨기과 등 특정 진료과 의사의 씨가 마를 판”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수가체계의 불합리 때문에 의사들이 비뇨기과를 기피하는 것이 맞다. 그 정도의 수가로 어려운 비뇨기 분야 수술을 감당하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여기에다 지금도 수많은 비뇨기 질환자들을 산부인과 등 다른 전공과에서 진료하고 있다. 이런 문제도 비뇨기과 기피에 한몫을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비뇨기 개원의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진료의 기회 박탈이 큰 이유”라면서 이에 대한 환자들의 이해와 정부의 개선 의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의사들의 전공과 선택에는 돈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배어있을까. 이에 대한 의사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미 국내 의료 공급체계가 포화상태여서 이후 어떤 진료과도 이전의 ‘붐’을 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일성 대한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장은 “전공과 부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 있다”면서 “요즘 젊은 의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고, 수술 등 어려운 분야에 투신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전공과 선택이나 개원 추세에 반영됐다. 따라서 이런 흐름을 돈으로만 해석하려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2년 전국의 전공의 모집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와 피부과·성형외과·안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 등이 지원율이 높은 상위 7개과로 꼽혔다. 반면 결핵과·흉부외과·예방의학과·비뇨기과·병리과·외과·산부인과 등은 지원율이 낮은 7개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이들 하위 7개과가 모두 정원을 못 채웠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올해 서울대 전공의 지원현황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내과·신경외과·정형외과·성형외과·정신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률(1.4∼1.7대1)을 보인 반면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병리과 등은 정원도 못 채웠다.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병리과 등은 2008년에도 똑같이 미달사태를 겪었다. 이런 추이는 세브란스병원도 다르지 않아 올해의 경우 내과·정신과·피부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은 지원율이 높았던 반면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병리과 등은 정원을 못 채웠다. 이 같은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일부 중소병원이나 지방 병원들은 아예 진료과를 폐지하는가 하면 의료인력을 줄여 형식적으로 진료과를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의료인력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의료인들은 전공 선택을 ‘먹고사는 문제’라고 말한다. 적정 수가도 보장되지 않는 전공을 택해 고난도 진료의 부담을 짊어질 이유가 없는 데다 개원마저 여의치 않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선호도가 높은 전공과의 경우 비급여 진료 영역이 넓어 의료수가의 문제를 커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원이 용이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외과 전공의는 “이런 수급불균형의 문제 이면에는 돈을 먼저 생각하는 영악함이 개입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인턴 정원보다 의사 국가시험 합격자 수가 크게 못 미치는 등 기형적인 수급문제가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규모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인턴과 레지던트 정원을 늘렸으나 정책이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국가시험 합격자<인턴 정원<레지던트 정원’이라는 왜곡된 수급체계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성공한 피부과 개원의로 꼽히는 R원장은 “지금의 전공의 지원 실태가 왜곡된 건 맞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를 오로지 돈벌이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수가 개선 등 지원체계를 강화해 국가 의료의 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씨줄날줄] 이사지왕/안미현 논설위원

    1921년 9월 경주 노서리 주막집 주인 박문환은 주막을 늘리기 위해 뒤뜰을 팠다. 그런데 난데없이 유물이 나왔다. 경주경찰서의 일본인 순경 미야케 고조는 소문을 듣고 즉시 박문환의 집으로 달려갔다. 땅 파기는 중단됐고 27일부터 30일까지 유물 수습 작업이 이뤄졌다. 4일 만의 ‘뚝딱 발굴’로도 유명한 금관총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1927년 11월 10일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도둑이 들었다. 금관만 남기고 허리띠, 귀걸이 등 순금 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구열이 쓴 ‘한국문화재비화’의 한 토막. “차마 금관까지는 손댈 수 없었는지 아니면 가져가기 거추장스러웠는지 금관만 무사했다. 천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느니, 무덤 속 물건을 갖고 있으면 변고가 생긴다느니 온갖 헛소문까지 퍼뜨렸지만 허사였다.” 심리전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였다. 1928년 5월 20일, 도둑은 경주경찰서장 관사 앞에 유물 보따리를 슬그머니 놓고 갔다. 그때 다시 찾은 허리띠가 지금의 국보 88호다. 지난 3일 그 금관총 출토유물(고리자루큰칼)에서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었다. 정체는 아직 미스터리다. 내물왕 등 신라시대 여섯 마립간(왕)의 다른 이름이거나, 왕이 아닌 고위 귀족일지 모른다는 등 가설만 무성하다. 일본 규슈지방 출신 왕의 이름이 이사지라는 얘기도 있다. 만약 왕이라면 서기 503년 지증왕이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다는 종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금관총의 주인이 여자라는 학설도 위협받고 있다. 이사지왕이 금관총 여주인의 남편일 수도 있다. 고고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이사지왕이라는 네 글자를 앞에 두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양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사지왕의 칼을 발굴하고도 거기 새겨진 글자를 찾아내는 데 무려 92년이 걸렸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다가 올해 초에야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사업’이 시작된 탓이다. 박물관 측은 해방 이후 우리가 발굴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만도 손이 달려 일제강점기 발굴 유물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그렇더라도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지사,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건 만큼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력과 예산 배정에 앞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학자적 양심과 열정이 우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다른 이사지왕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안개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데 피란민들은 보따리를 메고 갈팡질팡하고 어린 아이들은 울부짖고 난리도 아니었지. 우리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열악한 총을 들고 지리산에 숨어 있는 북한군과 싸우느라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 6·25 참전용사인 이덕회(82)옹은 3일 서울 강북구 번동 자택에서 손자·손녀뻘 되는 인근 화계중학교 2학년 5반 학생 12명에게 전쟁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경청하던 학생들은 때때로 “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화계중학생 754명에게 이날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주관한 ‘6·25 참전 영웅과 함께하는 세대 공감 친구데이’ 행사를 통해 평소 보기 힘들었던 고령의 6·25 참전용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0여명씩 한 조를 이뤄 각각 서울 소재 참전용사 69명의 자택으로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고 청소와 설거지, 안마 등의 봉사 활동을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받는 참전수당 월 19만원으로 겨우 살아간다는 이옹은 “대학생들도 6·25의 의미를 잘 모르는 요즘 중학생들이 이렇게 찾아와줘 고맙다”면서 “그때 나라를 빼앗겼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김다솔(14)군은 “집 청소를 깨끗이 해드리려고 했는데 저희가 온다고 할아버지께서 청소를 다 해 놓으셔서 죄송스럽다”면서 “어르신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 황건희(14)군은 “평소 집에서 어른들께 듣지 못했던 6·25 전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으니 신기하다”면서 “저희도 커서 군대에 가겠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나라의 소중함과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 깨닫게 돼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인성교육이 될 것”이라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라디오/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차를 몰 때를 빼고는 라디오를 듣는 일이 거의 없다. 화려한 색상의 화면이 겸비된 방송이 전화기 속에서도 나오는 시대이니 라디오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텔레비전이 없던 어린 시절, 트랜지스터 라디오 옆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드라마를 듣고 퀴즈도 풀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면이 없다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속극의 장면들이 총천연색으로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라디오는 상상력을 키워 준 고마운 존재였다. 불을 꺼놓고 ‘법창야화’의 강진 갈갈이 사건을 들으면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몸이 오싹해졌다. ‘왕비열전’에서는 인목대비며 장희빈이라는 이름과 함께 조선의 역사를 배웠다. 구수한 음성으로 들려준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같았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선명한 게 부산에서 방송된 ‘자갈치 아지매’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성우(그때의 성우는 김옥희씨였다)가 아침 시간에 5분 동안 신랄하게 사회 비판을 했다. 1964년 6월 7일 시작되었다는 이 프로가 지금도 장수 방송으로 살아남아 있다니 놀랍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택견 수업·영화상영… 사회적 기업 선물보따리

    서울 종로구가 오는 11월까지 취약계층 주민들을 연계하는 ‘사회적기업과 함께하는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종로구에 자리를 잡은 35개 사회적기업 가운데 부암뮤직소사이어티, 결련택견협회, 밝은청소년, 마이크임팩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라이프세이버스, 추억을 파는 극장 등 모두 7개의 사회적기업이 재능기부 사업에 동참한다. 이번 재능기부 사업은 사회적기업들에겐 사회적 목적 실현을,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될 것으로 구는 기대하고 있다. 7개 사회적기업은 지역 주민들에게 어린이 공연, 택견 체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부모 교육,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청춘페스티벌 입장권 기부, 추억의 영화 상영,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대상 심폐소생교육, 강의 제공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구가 사회적기업별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대상과 인원 등을 파악한 뒤 동 주민센터의 협조를 통해 월별로 기부 사업을 조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구는 참여기업에 재능기부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아름다운 서울, 서울 디딤돌’이란 글귀가 새겨진 현판을 제공하기로 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시론] 최룡해 방중과 한중 협력/김흥규 성신여대 중국 및 국제정치 교수

    [시론] 최룡해 방중과 한중 협력/김흥규 성신여대 중국 및 국제정치 교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2일 자신의 특사자격으로 국제무대 초년생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파견했다. 그의 방중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간 갈등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절묘한 시점에서 이뤄졌다. 최룡해의 방중은 시진핑과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진행되어 온 북·중 간 일련의 기 싸움에서 일단 중국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최룡해의 중국 파견은 북한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거의 소진하였고, 국제적인 고립국면에서 받고 있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김정은은 중국의 요구에 자신이 굴복하는 모양새를 피하면서 현 위기의 핵심인 안보문제를 논의하고, 동시에 최룡해의 국내적 위상을 높여주려 하고 있다. 깊어가는 미·중 간의 대북 협력체제에 대한 스스로의 우려를 불식하면서도 방미를 앞둔 시진핑에 선물을 주는 모양새도 취하고 있다. 시진핑 방미 시, 중국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또 최근 들어 부쩍 가까워진 한·중 관계 및 곧 다가올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견제의 성격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중국의 북핵 협상대표인 우다웨이의 방북 제의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일본 카드까지 써가면서 중국 및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에 저항해 왔다. 이에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암시까지 주면서 북한을 압박하였다. 북·중 관계에도 더 이상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다면 최룡해가 어느 정도의 선물 보따리를 가져갔는지가 궁금하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더 이상 군사적 위기를 조성하지 않겠다는 것,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김정은의 방중 건은 다음의 일이다. 북한은 분명 최룡해의 방중을 계기로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대화와 협상국면으로 전환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이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도록 요구하고, 9·19 공동성명을 존중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북한 정책 우선순위에서 비핵화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듯이, 북한의 핵 무기화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무기화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거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일정 정도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보다 적극적인 중국식의 대북 ‘햇볕정책’을 단행할 개연성이 커 보인다. 현재, 북한이나 중국 그리고 한국 모두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게 하는 구조적인 조건들이 바뀌지 않고 있어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제 스스로 강대국이라는 자아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중국 외교의 DNA가 바뀌고 있고 기존의 대북정책도 조심스럽지만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는 한국에 기회이기도 하다. 6월 말로 예상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의미에서 한·중 간에 어떻게 북한 핵문제 및 대북 협력의 기초를 마련하느냐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상호간의 다른 기대치는 향후 불필요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할 것이고, 중국은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이 마련해 주는 ‘한국 역할론’을 생각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상호간 당장의 결실을 추구하기보다는 향후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의 내실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방중이 되어야 한다.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무기화와 도발에는 단호하고 협력적인 한·중 관계를 추진하되, 한·중이 이 불확실한 핵 경쟁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중·북한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북한을 이끌어 가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 미래 경쟁력은 ‘융합형 SW’… 朴정부 벤처 활성 ‘지원사격’

    삼성이 지난 13일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 육성 및 연구 지원에 10년간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한지 이틀 만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는 두 번째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삼성은 15일 총 1700억원을 들여 소프트웨어 인력 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의 첫 단계로 벤처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삼성이 벤처 생태계 조성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전사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년 전인 2011년 7월 ▲소프트 기술 ▲최고급 인재 ▲특허(원천기술)를 3대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서비스 등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당시 이 회장의 주문에 대한 삼성의 해법이기도 하다. 특히 삼성은 소프트웨어 전공과 무관한 대학생들에게도 비전공자 양성과정을 통해 해당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0개 대학에 비전공자의 수준에 맞는 소프트웨어 과목을 개설해 2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기당 2과목, 총 12과목(36학점)을 이수하게 해 5000명을 육성한다. 전산 관련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2500명보다 2배 많은 숫자다. 이처럼 삼성그룹이 비전공 소프트웨어 전문가 양성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미래 국가경쟁력은 융합형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세계적 베스트셀러 ‘너지’(Nudge)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은 심리학을 전공했고,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철학을 공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학교를 그만둘 때까지 인문학을 중시했다. 이공계 분야의 세계적 거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기준에서 보면 ‘문과생’이다. 산업의 융·복합화가 확대되면서 전자 제품을 비롯한 모든 기기에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성능과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경쟁력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용유발효과는 제조업의 2배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청년실업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창의성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은 물론 글로벌 사업화도 가능해 창조경제 실현의 기반 역할도 가능하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 창조경제 선도 ‘3대 프로그램’ 내놔

    삼성 창조경제 선도 ‘3대 프로그램’ 내놔

    13일 삼성이 미래 기술 육성을 위해 1조 5000억원(10년간)에 달하는 투자 보따리를 푼 것은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에 힘을 보태겠다는 행보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회동이 이뤄진 방미 직후 이 같은 계획이 나오면서 재계가 경제민주화로 인한 서운함을 접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향후 적극 보조를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조만간 다른 대기업도 창조경제 투자 등에 동참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원 창구로 오는 6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해 ▲미래 노벨과학상 수상 육성 ▲소재 기술 육성 ▲정보통신기술(ICT) 융합형 창의 과제 지원 등 3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학 교원, 국공립 연구소 연구원 및 기업 연구원(대기업 제외) 등을 대상으로 약 100~200개의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과제를 선발해 집중 지원한다. 기금은 전액 삼성전자가 출연한다. 삼성은 특히 결과물의 산업화나 상용화까지 적극 지원하고 성과물의 권리를 연구자에게 부여할 방침이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국가 지원 프로젝트와 겹치지 않게 (연구 과제를) 선정, 지원할 것”이라며 “주로 국가가 나서기에는 규모가 큰 연구를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삼성은 미래 노벨과학상 수상 육성을 위해 4대(물리·화학·생명과학·수학)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를 집중한다. 인재와 기술이 자산인 우리나라가 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은 “기초과학 역량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노벨과학상을 분석해 보면 아이디어 착안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평균 28년이 소요돼 연구자 조기 발굴과 함께 장기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재 기술 육성의 경우 첨단 분야의 핵심 소재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최근 소재의 경쟁력이 완제품과 부품의 성능과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핵심 소재 개발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은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소재 기술의 발굴 및 설계에서부터 가공까지 전 가치사슬의 연구와 상용화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ICT는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실현시킬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삼성은 ▲ICT를 활용한 교육, 교통, 에너지, 환경 관련 혁신적인 연구 ▲모바일 헬스케어를 비롯한 라이프케어 연구 ▲다양한 빅 데이터 분석, 감성 연구, 인문사회과학과의 융합 연구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한결같은 ‘효심과 사랑’

    47년째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어머니를 모신 정재순(67)씨 등 39명이 서울을 대표하는 효행자, 장한 어버이 등으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8일 제41회 어버이날 기념식을 열고, 정씨를 비롯해 오랜 기간 효를 실천해온 ‘효행자’,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녀를 바르고 훌륭하게 키워낸 ‘장한 어버이’,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노인복지에 이바지해온 ‘노인복지기여단체’ 등 39명에게 서울시장 표창을 수여했다. 효행상을 받은 정씨는 26년 전 남편을 잃고 1남 5녀를 홀로 키워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도 치매 증상이 있는 시어머니를 47년째 모시며 효행을 실천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정씨 외에도 이웃 어르신들께 쌀을 나눠 드리고 아플 때 직접 병원에 모시고 병원진료를 다니는 등 선행 활동을 이어온 장춘기(62)씨 등 19명도 ‘효행상’을 받았다. 보따리 장사와 식당일에 척추수술로 거동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면서 남편의 대학공부를 뒷바라지하고, 자녀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서정자(73)씨 등 7명은 ‘장한 어버이상’을 받았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향토기업 특선] “정부의 대기업 진입 제한 장치 큰 도움 돼”

    [향토기업 특선] “정부의 대기업 진입 제한 장치 큰 도움 돼”

    진성기업 윤대호(오른쪽·56) 사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교육환경을 개선한 선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윤 사장은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수요자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해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는 특허를 기반으로 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현장 경험을 경영에 접목시켜 영세 가구업체를 튼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그가 가구업계에 발을 디딘 것은 학창시절 겪었던 아픈 기억들이 밑거름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용 가구 제조업체에서 4년간 경험을 쌓은 그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책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과감히 창업을 했다. 우선 그는 무겁고 불편한 책걸상을 가볍고 능률적이며 쾌적하게 설계했다. 특히 삐져나온 못에 걸려 바지가 찢어지고 상처를 입었던 생각이 나 안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윤 사장은 타 사 제품보다 뛰어난 책걸상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 제품을 모두 뜯어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열정을 쏟아부었다. 새벽 4시에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했다. 회사에서는 책상에 앉아있기보다는 공장에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품질개선과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벽 1시에 공장에 나가 설계도를 그리고 시제품을 만들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일벌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윤 사장이 연구 개발과 시장 개척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이성순(왼쪽·52)씨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윤 사장이 신경 쓰지 못하는 회사의 안살림과 직원관리, 회계 관리 등을 모두 이씨가 맡아 했기 때문이다. “높낮이 조절용 책상이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을 때 연구 개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고품격, 고품질 제품 생산만이 극심한 경쟁에서 생존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사장은 신제품 개발 못지않게 정직한 경영과 성실한 자세를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회사 이미지가 나빠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 사장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품의 우수성은 기본이고 납기일 준수, 사후관리, 대리점 관리 등도 모범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진성은 상품과 회사, 경영인 모두 진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사장은 “정부에서 ‘보따리장수’로 불리는 페이퍼 컴퍼니들을 근절시키고 대기업들이 시장 진입을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게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 디자인 시대에 걸맞게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색상, 모양 등을 개량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설] 北, 개성시민 20여만명 생계 외면할텐가

    개성공단에 머물던 우리 기업 직원 126명이 그제 귀환한 데 이어 나머지 50명도 오늘 전원 철수하게 된다. 이로써 2004년 처음 가동에 들어간 뒤 9년여 동안 남북 협력의 불꽃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 없는 개성공단 330만㎡의 땅은 단 한 명의 남측 관리직원이나 북측 근로자를 찾아볼 수 없는 침묵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제 경기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줄지어 내려온 남측 차량들에 가득 실린 보따리들을 보노라니,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남북 화해의 꿈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북한 당국의 이성적 판단을 거듭 촉구한다. 개성공단은 남북 어느 한쪽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라는 특장을 살려 남북이 손을 맞잡고 세계 시장에 내놓을 제품을 만들어내며 공동번영의 꿈을 함께 꾸어온 곳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공단 가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의 꿈만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가동 중단을 선언하고, 남측 직원들 진입을 가로막고, 북측 근로자들을 몽땅 철수시키고, 공단에 남은 남측 직원들에게 줄 먹거리마저 차단하고, 이로 인해 결국 개성공단을 텅빈 벌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그래서 반민족적·반인도적 처사인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파행 앞에서 남한 기업의 직접 피해가 얼마니 따지며 주판알을 튕길 일이 아니다. 굳이 이를 따지겠다면 남북의 경제력 차이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며, 이 경우 자신들의 고통 지수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9일부터 발을 끊은 공단 근로자 5만 3000여명과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 등 20여만명의 생계만 해도 북한 당국은 어찌할 셈인가. 간식으로 제공받는 초코파이 하나까지 아끼고 모아가면서 생계를 꾸려온 이들을 평양 당국은 책임질 수 있는가. 아니면 나 몰라라 내팽개칠 텐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어제 개관을 앞둔 주민편의시설을 둘러봤다는데, 정작 그가 살필 곳은 텅빈 개성공단과 생계수단이 막힌 공단 근로자들의 삶의 현장이다. 개성공단 파행을 우리 정부를 흔들 카드나 미국을 움직일 지렛대로 삼을 요량이라면 이는 잘못된 상황인식이다. 금강산의 현대아산 시설물에 이어 개성공단마저 몰수해 제 것으로 만들 속내라면 더욱 큰 오산이다. 제대로 물건을 만들 능력도, 내다 팔 판로도 없을뿐더러 그 반칙적 상거래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파행이 길어질수록 해법은 멀어진다. 혹여 무력도발로 현 국면을 타개할 생각이라면 접기 바란다. 돌아갈 것은 파국뿐이다. 대화만이 유일한 출구다. 북은 즉각 대화에 응하고, 공단을 열어야 한다.
  • [사설] 경제민주화·경제살리기 정책조합 고민할 때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경기회복과 민생안정을 위해 모두 19조 3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새 정부 출범 지연에 따라 추경 편성도 늦어진 터에 세계 경제는 ‘차이나 쇼크’를 맞이했다. 중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달리 7.7%에 그쳤다는 소식이다. 예상치(8.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런 탓에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각국의 노력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도 보다 속도감 있게 경기부양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28조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 많은 규모의 추경이라고는 하나 경기 부양효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수 부족분 12조원을 빼면 실제 경기부양 투입 추경 예산은 5조 3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4000억원의 일자리 창출 예산으로 연내 5만명의 일자리를 마련해 낸다는 계획의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도의 추경안으로 어떻게 민생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해 내겠느냐고 오히려 야당이 걱정할 지경이 아닌가. 추경 재원은 국채 발행으로 마련된다. 국채는 미래의 빚인 만큼 국채발행 규모를 무작정 늘리기 어려운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GDP 0.3% 포인트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추경안으로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은 324조원이고,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은 230조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홀로 국가 경제를 떠맡기에는 역부족이고 민간의 경제규모는 급증했다. 국채 발행의 여력이 없을 때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 52조원을 투자하면 우리 경제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는 당연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국회)상임위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대선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논의 대상에)포함돼 있다”면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꾸 누르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래 취지나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다만 경제민주화를 어느 정도까지, 어떤 속도로 추진할 것인지는 당면한 경제여건에 따른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공감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를 무조건 일감몰아주기로 간주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이런 속도 조절을 경제민주화 후퇴라고 몰아세우는 정치 공세는 온당치 못하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되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현금보따리를 풀도록 하는 지혜로운 정책 조합이 무엇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 이건희 삼성회장 4개월만에 출근 재개

    이건희 삼성회장 4개월만에 출근 재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넉 달여 만에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했다. 이 회장은 16일 오전 8시 30분쯤 도착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42층에 마련된 집무실로 곧장 향했다. 3개월간 일본과 하와이를 오가며 장기 경영구상에 몰두한 이 회장의 출근에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한층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통상 오전 6시 30분 출근하던 이 회장이 2시간이나 늦게 회사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주요 간부들은 오전 6시 이전 출근을 완료했다. 해외 체류 중에도 그룹 수뇌부들을 출장지로 불러 틈틈이 현안을 챙겨온 이 회장은 출근 후 연이어 업무 보고를 받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출근 후 각종 현안을 점검한 뒤 오찬이 끝난 오후 1시 30분쯤 퇴근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출근은 지난해 11월 30일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들과의 만찬 직전에 집무실을 찾은 이후 137일 만이다. 이 회장이 출근 경영을 재개하자 그가 어떤 경영구상을 풀어놓을지 재계 안팎에서 관심이 높다. 이 회장은 신경영선언 20주년을 맞는 데다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를 딛고 그룹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구상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장기 체류를 끝낸 뒤에 큰 폭의 변화를 시도해 왔다. 6개월간의 해외 출장 후 1993년 6월 나온 “마누라와 자식만 빼곤 다 바꿔라”는 신경영선언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귀국길 공항에서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이 회장은 “미래 사업구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그의 고민은 국내 경제는 물론 삼성그룹의 운명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에만 쏠려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 같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으로 그룹 최고경영진들을 통해 강도 높은 주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경기불확실성으로 더디기만 하던 신규 투자 등 삼성의 경영 전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이 핵폭탄을 쏘네, 미사일을 날리네 하면서 협박 수위를 높이는 바람에 정신이 온통 사납다. 국영 조선중앙TV를 통해 품격이라곤 전혀 없는 저열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저러다가 정말 무슨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저들의 모습이다. 외신을 보면 평양에서는 최근 전쟁 분위기와는 달리 봄맞이 치장에 한창이다. 그제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도 의외로 조용히 끝났다. 외국 대사관의 무관 가족들이 한가롭게 시내관광을 즐기는가 하면, 여군들이 전투복에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진도 찍혔다. 외신의 평양 르포엔 한 주민이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긴장이 높아져도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터뷰도 담았다. 핵폭탄 한 발 쏘면 그걸로 끝장인데 여러 사람이 요란 떨 일 있느냐는 투다. 핵무기 덕분에 주민들도 배짱이 두둑해진 모양이다. 하기야 20년 동안 북한은 핵으로 재미를 꽤 봤다. 핵으로 적당히 겁을 주면 미국이 “말로 하자”며 쪼르르 달려오지, 한국은 쩔쩔매다가 돈 보따리를 풀어놓지…. 북한 정권에 핵무기는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요전핵’(搖錢核)이 된 지 오래다. 그곳 주민들이 평온한 걸 보면 그들도 핵무기가 전쟁용이 아니라 부(富)를 창출하는 도깨비방망이란 사실을 이젠 눈치챈 것 같다.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요긴하게 써먹은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에 앞서 프랑스가 원조 격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유르겐 브라우어는 저서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에서 이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에서 60kt의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3배, 당시 소련이 보유 중이던 수소폭탄의 1900분의1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한방’으로 세계 핵 대치의 본질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핵 독점을 깼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의 치욕과 베트남전 패배로 위축됐던 국가의 자존심과 장엄성을 회복했다. 재래식 군대와 무기를 대체하고도 남을 전쟁 억지력도 갖추는 등 이문이 많이 남은 장사였다는 게 브라우어의 분석이다. 그는 “핵이야말로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드는 과격한 수단이자 보유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헌법에 명시까지 해서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떼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장난이 이제는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여당의 중진 정치인들까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목청을 높이겠는가.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이에 동조했다. 성질대로라면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북한의 못된 버릇을 당장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냉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핵에는 핵’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그럴듯해 보이나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미국의 핵우산 체제가 이끄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면 본전은 찾는다. 물론 급할 때 우리 마음대로 핵무기를 운용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 억지력으론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수백~수천 기의 핵전력을 갖춘 미국·러시아·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핵무기 선택권(Nuclear Option)을 가진 일본도 덩달아 무장할 것이다. 핵무기는 이미 강대국의 기득권이 돼 버렸다.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모른다. 1960~70년대처럼 핵무기에 대한 국제 감시망이 어수룩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전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해 전쟁 억지력과 자위권을 확보한다 해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립된 북한 짝 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핵무기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강력하고 유용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진 어떤 나라도 감히 실전에 써먹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굳이 핵무기를 가져 이웃 나라와 불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ycs@seoul.co.kr
  • ‘4중고 신음’ 재계, 투자 집행 못하고 눈치만

    ‘4중고 신음’ 재계, 투자 집행 못하고 눈치만

    재계가 경제민주화, 대북 리스크, 엔저(低), 장기 불황 등 4중고에 신음하며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장기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황에서 일본 아베 정권의 엔저 정책과 대북 리스크라는 덫까지 놓였기 때문이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기업 총수·상장사 임원의 연봉공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부과, 공정거래위의 납품단가 직권 조사 등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일 이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5월 초 박근혜 대통령 방미 때 재계 총수들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 어떤 선물을 받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을 지켜보며 투자뿐 아니라 신제품 출시일까지 미루고 있다. 특히 최근 감사원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시점은 2012년이 아닌 2004년부터 소급적용하겠다고 나서자 경제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4중고에 시달리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것이란 지적이다. 상의 관계자는 “정부가 소급과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시점을 2012년 이후로 했는데도 감사원 지적으로 2004년부터 소급과세를 추진하면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는 것”이라면서 “위헌 요소가 내재해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많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013년 제1차 정책세미나’에서 “지금은 성장 페달을 밟아야 할 때”라며 “그러려면 경제 민주화 기저에 깔린 평등주의와 국가개입주의를 극복하고, 기업에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 대북 리스크는 국내 기업들이 자체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으로 대응할 수 없는 외부환경이다. 북한의 극단적인 협박 발언에 국내 기업들이 연일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수주 불이익은 물론 계약취소까지 우려하고 있다. 외국 바이어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엔저도 국내 기업의 수출채산성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위험요소다. 대북 리스크로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오름세(원화가치 하락)를 보이고 있지만 대북 리스크라는 먹구름이 걷히면 다시 엔저가 국내기업들의 목을 죌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아직 신규투자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투자계획도 밝히지 못했다. 유통산업발전법 등 규제에 부딪힌 유통업계의 투자 마인드는 극도로 위축했다. 롯데그룹은 1분기에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투자변수가 심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신차의 출시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이번 주 선보일 아반떼 쿠페도 지난해 말 출시예정이었으나 여러 가지 변수로 6개월가량 늦춰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대내외 환경이 예측 가능해야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면서 “정부도 기업에 채찍만 들 것이 아니라 신규 투자와 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사설] 朴정부 50일, 소통의 정치로 난국 헤쳐가라

    오늘로 출범 50일을 맞는 박근혜 정부의 초반 성적표는 국민 다수가 체감하듯 기대치를 상당히 밑돈다. 단적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정 지지도가 이를 말해준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를 놓고 보면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1월 하순 56%의 지지율로 고점을 찍은 뒤 새 정부 출범 후 지난달 하순 41%로까지 떨어졌다가 지난주 들어 44%를 기록하며 다소나마 회복 기미를 보인 게 고작이다. 대선 때 표를 던진 유권자들조차도 5명 중 1명이 실망스러워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시련은 정부 인사의 난맥과 원칙을 앞세운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어른대는 불통 이미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것이다. 장·차관 후보자 6명의 낙마를 부른 검증 부실과 전문성을 중시한 나머지 지역과 성(性)의 안배가 이뤄지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민 통합의 정신을 구현하는 데는 크게 미흡했던 정부 인사, 그리고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에서 도드라진 박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자세가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여야 지도부를 잇따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며 정치권과의 본격적인 소통에 나선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민주당의 지도부와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초대해 인사검증 부실을 사과하고 국정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것은 가파른 대립 정치만 봐 온 국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모두 출범 초 정치권과 거리를 둔 것이 국정 전반의 주름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할 때 새 정부의 여의도 다가서기는 올바른 방향이자 자세라고 할 것이다. 모쪼록 이 같은 정치권의 대화 모드가 민생에서의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 지금 국회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추경안 편성과 부동산 관련 세제 개정안을 중심으로 민생과 직결된 현안 80여개가 쌓여 있다. 대부분 때를 놓치면 정책효과가 반감되는 사안들로, 그만큼 여야의 조속한 절충이 요구된다. ‘긴밀한 협력’을 상대방의 양보로 간주하는 행태부터 여야는 버려야 한다. 내용보다 타이밍이 중요한 현안들이 대부분인 만큼 내가 먼저 과감하게 양보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 어제 북한은 우리 정부가 꺼낸 대화 카드를 교활한 술책이라며 일축했다. 눈에 확 띄는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 때까지 도발 위협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다. 어린아이 떼쓰듯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소통과 협력 그리고 결속이다. 겁박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가 더욱 공고해진다면 결국 제 풀에 지칠 쪽은 북한이다. 그들을 하루속히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여야는 긴밀한 소통으로 제 할 일을 다하는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 어제 시골밭의 시금치 오늘 우리집 식탁으로 ‘꾸러미’를 아세요~

    어제 시골밭의 시금치 오늘 우리집 식탁으로 ‘꾸러미’를 아세요~

    “게으른 주부가 꾸러미 덕분에 건강 밥상 차리겠네요” “받을 때마다 한 보따리씩 음식 챙겨 들려주던 친정 엄마 생각납니다” “돼지감자? 처음 본 재료인데 알려주신 요리법대로 해보렵니다” 12일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가 운영하는 ‘언니네텃밭’ 게시판에는 매주 농산물 꾸러미를 받는 도시 주부들의 수다가 한가득이다. 꾸러미는 매주 또는 격주로 여성 농민들이 일주일 분량의 음식 재료를 포장해 도시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하는 농산물 유통방식이다. 한마디로 직거래 모델이다. 박근혜정부가 농산물 유통구조를 단축해 가격 거품을 뺄 획기적인 대안으로 주목하면서 꾸러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철에 맞춰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유정란, 두부나 청국장 같은 1차 가공품으로 구성된다. 14곳의 생산지에서 꾸러미를 공급하는 꾸러미 연합체인 언니네텃밭을 비롯해 꾸러미 사업의 발원지인 전북 완주의 용진농협, 대전 귀농인들의 농업법인인 게으른농부가 운영하는 하루네끼 꾸러미 등 꾸러미를 공급하는 생산지는 전국에 30곳 가까이 된다. 2011년 도입된 뒤 주부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꾸준히 성장해 왔다. “밭에서 딴 지 이틀 만에 배달되는 꾸러미에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렵죠. 도시촌놈이라 몰랐는데, 밭에서 바로 딴 채소는 맛이 청량해요” 경기 안양시에 사는 주부 정지선(34)씨의 말대로 꾸러미는 도입 초기 ‘로컬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각광받았다.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되는 채소는 수확을 한 뒤 선별장→도매시장 경매→도매시장 유통→소매상인 구입→소매점 전시 등의 과정을 거친다. 밭에서 뽑힌 뒤 최소 5~6일이 소요된다. 신선도와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꾸러미 채소는 밭에서 뽑힌 다음 날 곧바로 도시 가정으로 배달된다. 언니네텃밭의 이경희 간사는 “유정란 10알과 두부를 꾸러미에 매주 넣는데, 닭이 알을 조금 낳아 유정란을 6~7개만 보내도 소비자들이 이해해준다”면서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판매 걱정이 없어지자 지력(地力)에 맞춰 농민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토종씨앗을 이용한 유기농 재배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간 신선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꾸러미 가격은 동결됐다. 덕분에 회당 2만 5000원으로 다소 비싸게 느껴지던 가격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다. 전북 김제 생산농가가 4월 둘째 주에 보낸 꾸러미 품목은 두부·유정란·된장·쑥·시금치·콩나물·쌈채소·갓·풋고추 등 9종류다. 롯데마트에서 같은 품목으로 장을 보면 택배비를 포함해 2만 3000원가량 든다. 하지만 제철 노지 채소인 쑥과 갓은 마트에서 살 수 없다. 미국 등 각 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면에서 대농(大農) 육성이 주요 농업정책으로 채택되는 와중에 꾸러미는 농가의 부업쯤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올해 안에 꾸러미 생산지를 홍보할 수 있는 공동 홈페이지를 구축할 방침이다. 도시 농협에서 꾸러미를 받을 소비자를 모집하는 등 활성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신동국 농협 산지유통부 과장은 “농가 조직화 교육, 꾸러미 상품개발 등을 통해 중앙회 차원에서 농협 안심꾸러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씨줄날줄] 중·러 新밀월/육철수 논설위원

    어느 나라나 국가원수가 취임한 뒤에 처음 방문하는 외국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런 나라는 대개 정치·경제·군사·외교적으로 자국의 국익과 가장 긴밀하다고 보면 틀림없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후 미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해 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취임 8일 만에 러시아로 날아간 중국 시진핑 주석의 대외 행보가 관심을 끄는 것은 중·러 관계의 친밀도가 향후 세계의 역학관계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중국은 주변국의 민감한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교수는 “방문국 선정은 ▲외교관계의 중요성 ▲양국관계의 발전단계 ▲방문국 정상의 여유를 고려한다”면서 “러시아는 외교의 중요성과 함께 러 정부가 시 주석을 대하기 가장 편한 시기”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해 이에 대한 답방이란 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미국을 견제하거나 서방국가를 홀대하는 건 아니란다. 관점의 차이겠지만, 미·일의 중국 포위 전략에 대한 중·러의 역포위 전략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러의 사이가 늘 좋았던 건 아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고 사흘 만에 국교를 맺은 나라가 구(舊)소련이다. 그러나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64개 공산국가 회의에서 서방국가들과 발전적 관계를 인정하는 ‘평화선언’ 이후 두 나라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1969년엔 국경문제로 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2006년 푸틴 대통령은 주역을 인용해 ‘같은 소리끼리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끼리 서로 구한다’(同聲相應 同氣相求)며 양국 우호증진에 적극 나섰다. 푸틴이 지난해 다시 대통령이 되면서 중·러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밀월의 시기를 맞았다는 게 두 나라의 공통된 인식이다. 시 주석은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천연가스와 원유, 무기 수입 등 경제적 이익을 여러 보따리 챙겼다. 러시아를 찾은 국가원수 가운데 처음으로 이 나라 국방부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작전통제센터도 둘러봤다. 실로 파격적인 예우인 셈이다. 이쯤 되면 간과 쓸개를 서로 꺼내 보여줄 만큼 돈독한 ‘간담상조(肝膽相照) 외교’라 할 만하다. 중·러는 양국 협력을 통해 국제질서의 ‘균형추’ 역할도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외교적인 표현이겠지만 미·일 중심의 세력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엿보인다. 우리로선 국익이 서로 얽힌 강대국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데, 외교에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난 것 같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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