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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옴부즈맨 칼럼] 북섹션, 피서 특집 마련했으면…/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옴부즈맨 칼럼] 북섹션, 피서 특집 마련했으면…/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여름은 ○○의 계절’. 이 동그라미 안에 어떤 단어를 채우고 싶은가. 7080세대는 ‘여름은 사랑의 계절, 젊음의 계절’과 같은 유행가 후렴구를 콧노래로 흥얼거릴지 모르겠다. 필자에게 ‘여름은 독서의 계절’이다. 불볕 더위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에너지를 충전하기는커녕 방전하기 십상인 피서지보다 서늘한 냉방시설이 된 커피전문점, 혹은 도서관이나 서점 등에서 책장을 넘기며 보내는 ‘독서휴가’가 필자에겐 최고의 호사이고, 피서법이다. 이는 수치로도 방증된다. 출판계 관계자에 따르면 여름에 다른 계절보다 책 판매량이 15% 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흔히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 운운하며 “책을 가까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말하지만 착각이란 지적이다. 가을엔 산으로 들로 소풍가기에 바빠 여름에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리더들과 CEO의 여름휴가 계획엔 ‘다섯 수레’ 정도까진 아니지만 ‘한 보퉁이 책보따리’를 챙겨 읽겠다는 계획이 빠지지 않는다. 현명한 리더들은 아예 휴가를 독서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촉망받는 젊은 인재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시행했다. “각자 맡은 직무로 인해 독서에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 본전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글을 읽고 성과를 내어 내 뜻에 맞게 하라.” 일명 독서휴가제다. 완전 ‘공짜 휴가’는 아니어서 월과라고 독서 휴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 번꼴로 유급 독서휴가인 ‘셰익스피어 휴가’를 줬다. 한 달가량 쉬면서 셰익스피어 작품 다섯 편을 정독해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 다양한 인간관계가 잘 묘사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민중의 심리를 엿보는 통찰력을 얻으라는 의미에서였다. 서울신문 주말판 북섹션 ‘책읽는 당신’은 필자가 제일 먼저 반갑게 펼치는 면이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의 바다’에서 나름의 ‘전문가’ 혜안으로 걸러진 양서를 고르고 출판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톱기사로 다뤄진 책뿐 아니라 ‘당신의 책’에 다뤄진 3~6줄의 신간 소개들도 귀중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 ‘저자와의 차 한잔’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저자에게 직접 조근조근 듣는 듯 감칠맛이 있다. 애독자로서 바라는 점은 북섹션도 피서, 방학 같은 시류를 반영한 특집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다. 비록 세종대왕에게 ‘독서휴가’를 받은 홍문관의 학자는 아니지만 휴가나 방학은 ‘집중’해서 정독할 수 있는 모처럼의 ‘싱크 위크’(Think Week)이다. 이 기간엔 신간뿐 아니라 심도 있는 독서 길잡이로서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청소년 자녀들과 함께 읽고 토론할 독서, 아니면 각계 전문가들이 부문별로 권하는 ‘피서철 추천도서’도 좋다. 경제경영부문은 평소 지면 배정이 인색한데 이때 특집을 배정해도 좋을 것이다. 제한된 지면에 ‘구간’(舊刊)을 소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신간 소개 때 관련 도서, 같이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는 것도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 ‘월과’와 같이 독서감상문 내지 보고서를 독자들로부터 온라인으로 받아 디지털 백일장을 여는 것도 ‘한여름 독서 삼매경’으로 인도하는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축제 하면 록페스티벌뿐 아니라 북페스티벌도 함께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북섹션이 앞장섰으면 한다.
  • [공기업 탐방-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슬람권에 한국 인삼·유자를 유행시키다… 그것이 창조농업

    [공기업 탐방-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슬람권에 한국 인삼·유자를 유행시키다… 그것이 창조농업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리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생산 이후의 가공, 유통, 수출 등 분야에서는 무한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합니다.” 김재수(56)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우리나라 농업구조를 ‘생산 농업’에서 ‘생산 이후의 농업’으로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을 말했다. 그는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국산 가공식품의 수출 증가를 일례로 들었다. 우리의 노력이 바탕이 돼 입맛이 전혀 다를 것 같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한국산 가공 식품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누에고치로 인공고막을 만들어 사양길에 있던 잠업을 되살린 것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창조농업’의 성공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산물 무역 역조가 심해질 것이라는 걱정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기우(杞憂)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이슬람 문화권이 우리나라 식품 수출의 새로운 활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식품의 현지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이슬람 문화권은 인구만 20억명이고 식품시장의 규모는 연간 7000억 달러 수준이다. 전 세계 식품시장이 5조 4000억 달러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이슬람권은 세계 식품시장의 13%에 이르는 ‘블루오션’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체 식품 수출의 10.5%(8억 4000만 달러)를 이슬람 문화권에서 달성했다. 전년보다 9.4% 늘어났다. 담배나 커피제품, 고등어, 명태 등이 많이 수출된다. 국가별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2억 2450만 달러)의 수출액이 가장 많고 인도네시아(1억 5190만 달러), 아프가니스탄(9280억 달러) 순이다. →이슬람권 수출을 위해서는 ‘할랄’ 인증이 중요하지 않나. -이슬람 문화권의 식품 수출 인증을 ‘할랄’이라고 부른다. 이슬람어로 ‘허용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생산·도살·가공된 식품에 부여하는 인증이다. 식품에 이슬람에서 금기인 돼지 추출 성분이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이슬람중앙회 소속 한국할랄위원회에서 ‘한국 할랄’을 인증해 준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공신력 높은 ‘말레이시아 할랄’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 식품이 한국 할랄을 받을 경우 말레이시아 할랄과 같은 동등성을 인정하도록 말레이시아 정부에 신청해 지난달 초 허가를 받았다. 이슬람권 수출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현재 할랄 인증은 세계적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가 가장 유명하다. 곧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도 ‘한국 할랄’의 동등성 효력을 인정받을 예정이다. →이슬람권이라고 해도 국가마다 식품에 대한 기호가 다를 텐데. -그렇다. 국가별로 특화된 수출품목 육성이 필요하다. 사우디와 이집트는 면이나 배, 유자를 선호하고, UAE·터키·이란 등은 인삼이나 과즙음료, 담배를 원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소스류, 면류, 커피 등의 수출이 잘된다. 2017년까지 20억 달러 수출이 목표다. aT는 올해 이슬람 지역에서 수출업체의 개별 박람회를 14회 지원한다. 카자흐스탄과 UAE 아부다비의 전시회에 참여해 한국식품관을 운영하고 이슬람권 대학에서 한식 강좌를 열 계획이다. 또 이슬람권 특급 호텔 2곳에서 한식요리법을 교육한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은 중요하고 오래된 과제지만 시원한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aT가 하는 일 중 80~90%가 유통구조 개선일 것이다. 사실 그동안은 공판장을 짓고 경매시스템을 정착시키는 쪽으로 유통구조 개선 정책이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는 정착됐지만 농산물의 수급에 따른 가격 변동폭이 너무 커졌다. 가장 큰 고민은 유통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류비와 인건비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를 볼 때 사이버 거래를 통해 물류비와 인건비를 대폭 낮추는 방법이 가장 좋은 대안으로 보인다. 우리 공사가 ‘농수산물 사이버 거래소’를 운영하는 이유다. →정부의 농산물 수급 정보가 많이 틀리는 것도 원인 아닌가. -맞다. 배추 파동이 오면 1000원짜리가 5배, 10배씩 오르기도 한다. 이상기후가 증가하면서 기후 예측이 힘들어졌다. 농산물 수급 관측 기법도 좀 더 발전해야 한다. aT는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수급상황실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에 빠른 유통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창조경제’가 화두인데 농업 분야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농업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대지(大地)다. 사양산업이었던 잠업은 차(茶), 화장품, 치약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면서 최첨단 사업으로 변신했다. 인공고막도 만들었고, 인공뼈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벌침은 젖소 유방암 치료제로 쓰이며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재료도 중국의 팔각나무 씨다. 농촌은 치료농업, 힐링농업, 관광농업에 눈을 뜨고 있다. 농업을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을 모두 합친 6차 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농업은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어떤 산업과도 융합될 수 있다. 창조경제의 중심이 될수 있다는 의미다. →식품산업에는 골목 영세상인이 특히 많다. 상생(相生)의 측면에서 중소 식품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은. -2011년말 음·식료 제조업체의 92.1%가 종업원 10명 이하의 영세업체다. 음식점 중에는 종업원 10인 이하 사업장이 97.6%다. 어느 분야보다 상생발전이 중요하다. aT는 해외 농산물을 수입해 비축했다가 중간 상인을 통해 국내에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공매라고 부르는데, 특별한 기준이 없어 대부분 큰 업체가 대량으로 사다가 시중에 팔았다.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공매 제도를 개선해나가고 있다. 영세 식품업체를 위해 식품기업협의회를 만들어 광고, 마케팅, 경영, 세제 등 많은 부문에서 전문가들이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한 알로에 음료 업체는 aT의 영세기업 해외 박람회에 잇따라 참여해 보따리 장사 수준에서 중견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중 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농업 분야에 대한 우려가 많다. -농산물의 개방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수출이라고 보고 있다. 공격에는 공격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는 우리나라가 농산물을 수출하는 선진국들이 소비 부진을 겪었고, 특히 엔화 약세에 일본 수출이 힘들었다. 하지만 상반기 수출은 27억 8000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6% 증가했다. 또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2011년보다 1.3% 줄었지만, 농식품은 4% 증가했다. 우리 농식품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다. aT는 한류 열풍을 농식품 수출과 연결시키기 위해 지난 6월 상하이 코리안 푸드 페어를 개최했으며 베트남, 미국, 홍콩 등 세계 전역에서 계속 열 계획이다. →현재 중국 농산물 무역적자를 볼 때 수출로 중국의 공세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지난해 대중국 농식품 수출액은 12억 8000만 달러였고, 수입액은 53억 달러였다. 40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났다. 이런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는 없지만 노력을 멈추어서도 안 된다. aT의 대 중국 농수산물 수출 전략은 고품질·고부가가치 제품, 중서부 내륙시장 개척, 온·오프라인의 새로운 유통 채널 확보로 정리할 수 있다. 내년 3월에 aT의 칭다오(靑島) 수출전진기지 물류센터가 완공된다. 고품질 냉장·냉동식품을 수출할 수 있고, 물류비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 주도의 수출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수출 100억 달러를 기점으로 민간 영역이 수출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 48억 달러였던 농수산물 수출액은 지난해 80억 달러까지 늘었다. 2~3년 안에 1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100억 달러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업은 비싼 원자재가 필요한 반면 농업은 씨를 키워 열매를 따는 산업이다. 수출액의 대부분이 순이익이라는 의미다. 수출 100억 달러가 넘으면 정부가 나서서 농산물 포장까지 일일히 보완하는 시대는 끝날 것으로 본다. 민간 영역에 의해 수출 품목이 다양화되면서 수출액도 지금보다 더 빠르게 늘 것이다. →농업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농민은 전체 인구 중 2.6%에 불과하다. 하지만 식품 가공, 유통, 수출 인구까지 합한 ‘애그리 비즈니스’ 인구는 전체 인구의 18%에 이른다. 농업 생산이 아니라 생산 이후의 산업들이 발전하면 일자리는 크게 증가한다. 우리 공사가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 사명을 바꾼 것도 식품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리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1957년 경북 영양 출생 ▲경북고, 경북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중앙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1회 ▲농림수산부 시장과장·국제협력과장·식량정책과장·농업정책과장, 농림부 농산물유통국장·농업연수원장,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장, 농촌진흥청장,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 [하프타임]

    윤석영, 7개월만에 데뷔전 잉글랜드 프로축구 챔피언십(2부리그)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의 수비수 윤석영(23)이 입단 7개월 만에 데뷔전을 치렀다. 7일 엑시터의 세인트 제임스파크에서 열린 엑시터시티(4부리그)와의 2013~14 캐피털원컵 1라운드 경기에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 풀타임을 뛰며 2-0 완승에 힘을 보탰다. 추신수, 38번째 멀티히트 추신수(31·신시내티)가 7일 그레이트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미국프로야구 홈경기에서 시즌 38번째 멀티히트에 볼넷까지 얻어 세 차례 출루했다. 시즌 타율은 .284, 출루율은 .419로 올랐다. 그의 2득점을 앞세워 팀은 3-1로 이겼다. LA 다저스는 세인트루이스와의 4연전 2차전에서 클레이턴 커쇼가 6이닝 2실점으로 역투했지만 1-5로 져 원정 연승 기록을 ‘15’에서 멈췄다. 비너스 윌리엄스 1회전 탈락 2개월 만에 코트로 복귀한 여자프로테니스(WTA) 전 세계 1위 비너스 윌리엄스(미국)가 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WTA 투어 로저스컵 단식 1회전에서 키르스텐 플립켄스(13위·벨기에)에게 1-2(6-0 4-6 2-6)로 져 최근 3개 대회에서 잇달아 1회전에서 탈락해 보따리를 쌌다.
  • ‘힐링캠프’ 이적, “아내에게 만취고백하고 잊어버릴까봐 메모했다”

    ‘힐링캠프’ 이적, “아내에게 만취고백하고 잊어버릴까봐 메모했다”

    이적이 아내와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고백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는 ‘한여름밤의 힐링 콘서트 특집’으로 이적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노래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 방송에서 이적은 아내와의 첫 만남 때 소개팅 주선을 부탁할 만큼 이성적인 끌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남부터 깊게 빠져들어 용기를 내 고백했다고 밝혔다. 당시 자리에 함께 했던 이적의 후배 또한 이적의 아내에게 한눈에 반해 고백을 결심했던 상태. 이적은 자칫 우물쭈물하다가 아내를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적은 그날 저녁 만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사귀어줄 수 있으세요?”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고 전했다. 다행히 이적의 아내 역시 호감이 있던 상태라 한번에 승낙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적은 술에 취하면 전날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어 자신이 다음날 고백한 사실을 잊게 될까봐 서둘러 노트에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고 그녀가 오케이했다’라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결국 그 메모는 큰 역할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날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던 이적은 탁자 위에 남겨놓은 메모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뒤 태연하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 약속을 잡게 됐다고 밝혔다. 이적은 “메모를 안 했다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라면서 “하마터면 인간 말종이 될 뻔했다”고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적 아내, 남편 술버릇 공개 “취하면 침대에서…”

    이적 아내, 남편 술버릇 공개 “취하면 침대에서…”

    이적 아내가 편지를 통해 이적에게 서운했던 점을 전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는 ‘한여름밤의 힐링 콘서트 특집’으로 이적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노래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 방송에서 이적의 아내가 쓴 편지가 공개됐다. 아내는 이적에 대해 “필요한 순간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것을 ‘가끔씩’ 느낀다”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남편은 합리적인 사람이다”라면서도 “하지만 너무 합리적이라 무슨 일이 있을 때 늘 내 편만을 들어주는 건 아니다”라고 서운한 점을 전했다. 이적의 술버릇도 공개했다. 그는 “(이적이)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장시간에 걸쳐 여러 의견을 나누고 대화를 하는데 문제는 다음날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라며 “그리고 술을 마시면 침대 아래 위를 굴러다니며 잔다. 얼굴은 전혀 티가 안나 침대를 심하게 기어다니면 ‘많이 먹었구나’한다”고 폭로했다. 한혜진은 이적에게 “아내에게 미안한 점이 있느냐?”라고 물었고 이적은 “크게 미안한 거는…”이라고 뻔뻔한 모습을 보여 또 한 번 웃음을 선사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유재석이 영상으로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적 어머니의 삼형제 서울대 합격 비법은?

    이적 어머니의 삼형제 서울대 합격 비법은?

    가수 이적이 서울대 합격 비법을 공개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는 ‘한여름밤의 힐링 콘서트 특집’으로 이적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노래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 방송에서 이적은 자신을 포함해 3형제가 모두 서울대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이적의 형은 서울대 건축학과, 동생은 인류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힐링캠프 MC들은 “전담 과외를 시켰나”라면서 삼형제를 모두 서울대에 입학시킬 수 있었던 이적 어머니의 교육 방침에 대해 물었다. 이에 이적은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게 방법이었다”고 답해 궁금증을 키웠다. 알고 보니 이적의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서 생활하다가 39살의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자 자녀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학습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각별히 따랐던 형제들은 괜스레 어머니 곁에 함께 있고 싶어 옆에서 책도 보고 시키지 않아도 숙제를 하면서 관심을 끌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적의 어머니는 아들들이 “내가 공부 잘하면 뭐해 줄 거야?”라는 질문에 “네가 공부하는 건 날 위한 게 아니야. 네가 잘 되면 네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거니?”라고 답해 아이들의 자립심을 일찍부터 키워줬다고 이적은 덧붙였다. 다만 이적의 어머니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공부할 생각 하지 말고 수업시간에만 집중해라”라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유재석이 영상으로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재석, 힐링캠프서 이적 실체 폭로…“야한 농담 즐긴다”

    유재석, 힐링캠프서 이적 실체 폭로…“야한 농담 즐긴다”

    국민MC 유재석이 가수 이적의 실체를 폭로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는 ‘한여름밤의 힐링 콘서트 특집’으로 이적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노래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 방송에서 유재석은 영상을 통해 깜짝 등장해 이적의 실제 모습을 폭로했다. 유재석은 “이적이 평소 지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야한 농담을 즐긴다”면서 “이적은 지적인 야한 농담을 즐기는 반면 김제동은 ‘김야동’으로 불린다”고 말해 이적과 김제동을 동시에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어 “이적이 야한 농담을 하면 그 옆에서 김제동이 기름을 붓는다”면서 “외로움과 사무침, 고독을 야한 농담으로 승화시켜 덧붙인다”고 폭로했다. 유재석은 또 “한마디로 이적은 천재다”라면서 “노래를 잘 못하는 나도 녹음하면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천재적인 면이 있다”고 칭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열베이비 선물 ‘빌비’는 쥐? 캥거루?

    영국 ‘로열 베이비’가 선물로 사막동물 ‘빌비’(bilby)를 얻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케빈 러드는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첫 아들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선물보따리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에 서식하는 동물인 ‘빌비’를 함께 넣어 보냈다. 선물로 보내진 빌비의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으며 새로 태어난 로열 베이비를 기념해 지을 예정이다. 이 동물을 보호하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있는 타롱가동물원 측은 페이스북을 통해 “로열 베이비에게 전달하는 호주 정부의 선물에 우리 동물원이 도움줄 수 있어 기쁘다”는 뜻을 전했다. 빌비는 호주의 건조한 초원지대 및 사막에 서식하는 중형 유대류 동물로 크게는 55cm까지 자란다. 쥐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몸통은 캥거루를 닮았다.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개원하면 돈방석? 다 옛말… 그래도 쥐꼬리 수당에 고난도 수술은 싫다

    [주말 인사이드] 개원하면 돈방석? 다 옛말… 그래도 쥐꼬리 수당에 고난도 수술은 싫다

    흔히들 의대를 마친 젊은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하는 걸 보면 ‘돈’이 보인다고들 말한다. 상당 부분 근거가 있다. 우리 사회가 한때 성형 열풍에 휩싸인 것은 앞다퉈 개원한 병·의원들이 뒤질세라 광고를 해대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구를 자극한 탓이 크다. 성형 열풍은 그렇게 ‘만들어진’ 일종의 파이였다. 이렇게 커진 시장에 거대한 돈의 흐름이 형성되자 새내기 의사들이 마치 엘도라도라도 되는 양 너도 나도 개원 대열에 합류했고, 이런 흐름이 의사들의 전공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들은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왜 개원했느냐고요. 이유는 많지요. 교수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 빡빡한 대학병원에서 기약 없이 뺑뺑이 돌 수도 없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강했고…. 뭐 그렇지요.” 서울 강남에서 4년 전 성형외과를 개원한 전문의 K(37)씨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개원의가 금융 부담을 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도 대출이다, 리스다 해서 짊어진 금융 부담이 20억원이 넘어요. 이 중 절반 정도는 공동원장들이 분담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부담이죠. 이 정도의 금융 부채 털어내는 데 7∼8년, 길게는 10년 이상도 걸리겠지요. 그래도 걱정은 안 해요. 그 정도야 누구나 안고 가는 부담이고, 아직 성형 열풍이 살아있으니….” 한 치과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페이닥터’로 3년간 근무하다 서울 강동에서 개원한 치과의사 H씨는 K씨와는 생각이 좀 달랐다. “개원하면 돈방석에 앉는다고들 생각하지만 세상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새로 생기는 치과는 많은데 시장 규모는 안 커지니 속된 말로 뜯어먹을 게 줄어드는 셈이지요.” “10년쯤 전에 목 좋은 곳에 개원해서 2년만에 본전 뽑고, 떼돈 벌었다는 사람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요. 임플란트 시술비 후려치는 거 보세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임플란트 등 보철 비용이 3~4분의 1밖에 안 되잖아요. 그것도 비싸다고 환자들은 여기 저기 비교하고 다니는 판이니 죽을 맛이지요.”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개원한 P씨는 “우리 나라의 성형 열풍이 의료 선진국이나 이웃 일본, 중국과 비교해도 지나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푸드코트 밖으로 보이는 성형외과 등 개원의 간판을 한번 세어보라. 그것이 강남 개원가의 현실이다”고 말했다. P씨는 “나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라도 노력 없이는 돈 벌기 어렵다. 쉬지도, 놀지도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도 바뀌어가고 있지만…”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급 과잉을 말했다. “사실, 개원만 하면 돈을 긁어모은다고 생각하지만 직원들 월급 못 주는 병원이 널렸고, 아예 망해서 주말에 중국으로 진료 다니는 보따리 의사도 많다”고 귀띔했다. 물론 바람 잘 타 ‘떼돈’을 번 의사들이 적지 않다. 강남 개원가에서는 돈 많이 벌었다는 개원의들을 줄줄이 꼽기도 한다. 30년 전에 개원한 정형외과 원장 A씨와 이비인후과 원장 B씨, 개원 20년을 넘긴 안과 원장 C씨와 성형외과 원장 D씨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본인들의 생각은 세간의 평가와 온도차가 있다. C씨는 “의대를 마친 뒤 소수는 대학이나 연구 쪽으로 빠지고 나머지는 개원을 하기 때문에 개원 자체를 ‘돈 벌려는 선택’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물론 최근에는 능력있는 신진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개원하는 건 맞지만 그 사람들도 대부분은 기존 의료전달 체계나 보험제도가 내몬 사람들”이라면서 “그 결과로 그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 해서 그걸 죄악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선택이 오로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불합리한 현행 의료수가 체계가 부른 ‘예고된 혼돈’이라는 지적도 많다. 새내기 의사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A씨는 “외과에서 어려운 개흉·개복 수술을 해봐야 수가를 코딱지만큼 책정해 놓으니 누가 흥미를 갖겠나. 뒤집어 보면 성형이나 안과, 이비인후과를 선호하는 게 돈을 많이 번다는 측면보다 돈도 안 되는 어려운 전공과를 피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풍선효과처럼 특정 전공과를 기피하다 보니 자연스레 또 다른 특정 전공과로 인력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강동경희대병원 비뇨기과 이형래 교수도 수가체계의 불합리성에 상당 부분 동의했다. 비뇨기학회 이사이기도 한 이 교수는 “이런 추이를 방치하면 머잖아 비뇨기과 등 특정 진료과 의사의 씨가 마를 판”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수가체계의 불합리 때문에 의사들이 비뇨기과를 기피하는 것이 맞다. 그 정도의 수가로 어려운 비뇨기 분야 수술을 감당하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여기에다 지금도 수많은 비뇨기 질환자들을 산부인과 등 다른 전공과에서 진료하고 있다. 이런 문제도 비뇨기과 기피에 한몫을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비뇨기 개원의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진료의 기회 박탈이 큰 이유”라면서 이에 대한 환자들의 이해와 정부의 개선 의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의사들의 전공과 선택에는 돈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배어있을까. 이에 대한 의사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미 국내 의료 공급체계가 포화상태여서 이후 어떤 진료과도 이전의 ‘붐’을 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일성 대한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장은 “전공과 부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 있다”면서 “요즘 젊은 의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고, 수술 등 어려운 분야에 투신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전공과 선택이나 개원 추세에 반영됐다. 따라서 이런 흐름을 돈으로만 해석하려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2년 전국의 전공의 모집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와 피부과·성형외과·안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 등이 지원율이 높은 상위 7개과로 꼽혔다. 반면 결핵과·흉부외과·예방의학과·비뇨기과·병리과·외과·산부인과 등은 지원율이 낮은 7개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이들 하위 7개과가 모두 정원을 못 채웠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올해 서울대 전공의 지원현황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내과·신경외과·정형외과·성형외과·정신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률(1.4∼1.7대1)을 보인 반면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병리과 등은 정원도 못 채웠다.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병리과 등은 2008년에도 똑같이 미달사태를 겪었다. 이런 추이는 세브란스병원도 다르지 않아 올해의 경우 내과·정신과·피부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은 지원율이 높았던 반면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병리과 등은 정원을 못 채웠다. 이 같은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일부 중소병원이나 지방 병원들은 아예 진료과를 폐지하는가 하면 의료인력을 줄여 형식적으로 진료과를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의료인력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의료인들은 전공 선택을 ‘먹고사는 문제’라고 말한다. 적정 수가도 보장되지 않는 전공을 택해 고난도 진료의 부담을 짊어질 이유가 없는 데다 개원마저 여의치 않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선호도가 높은 전공과의 경우 비급여 진료 영역이 넓어 의료수가의 문제를 커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원이 용이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외과 전공의는 “이런 수급불균형의 문제 이면에는 돈을 먼저 생각하는 영악함이 개입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인턴 정원보다 의사 국가시험 합격자 수가 크게 못 미치는 등 기형적인 수급문제가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규모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인턴과 레지던트 정원을 늘렸으나 정책이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국가시험 합격자<인턴 정원<레지던트 정원’이라는 왜곡된 수급체계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성공한 피부과 개원의로 꼽히는 R원장은 “지금의 전공의 지원 실태가 왜곡된 건 맞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를 오로지 돈벌이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수가 개선 등 지원체계를 강화해 국가 의료의 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씨줄날줄] 이사지왕/안미현 논설위원

    1921년 9월 경주 노서리 주막집 주인 박문환은 주막을 늘리기 위해 뒤뜰을 팠다. 그런데 난데없이 유물이 나왔다. 경주경찰서의 일본인 순경 미야케 고조는 소문을 듣고 즉시 박문환의 집으로 달려갔다. 땅 파기는 중단됐고 27일부터 30일까지 유물 수습 작업이 이뤄졌다. 4일 만의 ‘뚝딱 발굴’로도 유명한 금관총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1927년 11월 10일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도둑이 들었다. 금관만 남기고 허리띠, 귀걸이 등 순금 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구열이 쓴 ‘한국문화재비화’의 한 토막. “차마 금관까지는 손댈 수 없었는지 아니면 가져가기 거추장스러웠는지 금관만 무사했다. 천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느니, 무덤 속 물건을 갖고 있으면 변고가 생긴다느니 온갖 헛소문까지 퍼뜨렸지만 허사였다.” 심리전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였다. 1928년 5월 20일, 도둑은 경주경찰서장 관사 앞에 유물 보따리를 슬그머니 놓고 갔다. 그때 다시 찾은 허리띠가 지금의 국보 88호다. 지난 3일 그 금관총 출토유물(고리자루큰칼)에서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었다. 정체는 아직 미스터리다. 내물왕 등 신라시대 여섯 마립간(왕)의 다른 이름이거나, 왕이 아닌 고위 귀족일지 모른다는 등 가설만 무성하다. 일본 규슈지방 출신 왕의 이름이 이사지라는 얘기도 있다. 만약 왕이라면 서기 503년 지증왕이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다는 종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금관총의 주인이 여자라는 학설도 위협받고 있다. 이사지왕이 금관총 여주인의 남편일 수도 있다. 고고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이사지왕이라는 네 글자를 앞에 두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양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사지왕의 칼을 발굴하고도 거기 새겨진 글자를 찾아내는 데 무려 92년이 걸렸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다가 올해 초에야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사업’이 시작된 탓이다. 박물관 측은 해방 이후 우리가 발굴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만도 손이 달려 일제강점기 발굴 유물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그렇더라도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지사,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건 만큼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력과 예산 배정에 앞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학자적 양심과 열정이 우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다른 이사지왕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안개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데 피란민들은 보따리를 메고 갈팡질팡하고 어린 아이들은 울부짖고 난리도 아니었지. 우리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열악한 총을 들고 지리산에 숨어 있는 북한군과 싸우느라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 6·25 참전용사인 이덕회(82)옹은 3일 서울 강북구 번동 자택에서 손자·손녀뻘 되는 인근 화계중학교 2학년 5반 학생 12명에게 전쟁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경청하던 학생들은 때때로 “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화계중학생 754명에게 이날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주관한 ‘6·25 참전 영웅과 함께하는 세대 공감 친구데이’ 행사를 통해 평소 보기 힘들었던 고령의 6·25 참전용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0여명씩 한 조를 이뤄 각각 서울 소재 참전용사 69명의 자택으로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고 청소와 설거지, 안마 등의 봉사 활동을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받는 참전수당 월 19만원으로 겨우 살아간다는 이옹은 “대학생들도 6·25의 의미를 잘 모르는 요즘 중학생들이 이렇게 찾아와줘 고맙다”면서 “그때 나라를 빼앗겼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김다솔(14)군은 “집 청소를 깨끗이 해드리려고 했는데 저희가 온다고 할아버지께서 청소를 다 해 놓으셔서 죄송스럽다”면서 “어르신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 황건희(14)군은 “평소 집에서 어른들께 듣지 못했던 6·25 전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으니 신기하다”면서 “저희도 커서 군대에 가겠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나라의 소중함과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 깨닫게 돼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인성교육이 될 것”이라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라디오/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차를 몰 때를 빼고는 라디오를 듣는 일이 거의 없다. 화려한 색상의 화면이 겸비된 방송이 전화기 속에서도 나오는 시대이니 라디오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텔레비전이 없던 어린 시절, 트랜지스터 라디오 옆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드라마를 듣고 퀴즈도 풀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면이 없다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속극의 장면들이 총천연색으로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라디오는 상상력을 키워 준 고마운 존재였다. 불을 꺼놓고 ‘법창야화’의 강진 갈갈이 사건을 들으면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몸이 오싹해졌다. ‘왕비열전’에서는 인목대비며 장희빈이라는 이름과 함께 조선의 역사를 배웠다. 구수한 음성으로 들려준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같았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선명한 게 부산에서 방송된 ‘자갈치 아지매’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성우(그때의 성우는 김옥희씨였다)가 아침 시간에 5분 동안 신랄하게 사회 비판을 했다. 1964년 6월 7일 시작되었다는 이 프로가 지금도 장수 방송으로 살아남아 있다니 놀랍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택견 수업·영화상영… 사회적 기업 선물보따리

    서울 종로구가 오는 11월까지 취약계층 주민들을 연계하는 ‘사회적기업과 함께하는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종로구에 자리를 잡은 35개 사회적기업 가운데 부암뮤직소사이어티, 결련택견협회, 밝은청소년, 마이크임팩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라이프세이버스, 추억을 파는 극장 등 모두 7개의 사회적기업이 재능기부 사업에 동참한다. 이번 재능기부 사업은 사회적기업들에겐 사회적 목적 실현을,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될 것으로 구는 기대하고 있다. 7개 사회적기업은 지역 주민들에게 어린이 공연, 택견 체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부모 교육,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청춘페스티벌 입장권 기부, 추억의 영화 상영,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대상 심폐소생교육, 강의 제공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구가 사회적기업별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대상과 인원 등을 파악한 뒤 동 주민센터의 협조를 통해 월별로 기부 사업을 조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구는 참여기업에 재능기부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아름다운 서울, 서울 디딤돌’이란 글귀가 새겨진 현판을 제공하기로 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시론] 최룡해 방중과 한중 협력/김흥규 성신여대 중국 및 국제정치 교수

    [시론] 최룡해 방중과 한중 협력/김흥규 성신여대 중국 및 국제정치 교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2일 자신의 특사자격으로 국제무대 초년생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파견했다. 그의 방중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간 갈등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절묘한 시점에서 이뤄졌다. 최룡해의 방중은 시진핑과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진행되어 온 북·중 간 일련의 기 싸움에서 일단 중국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최룡해의 중국 파견은 북한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거의 소진하였고, 국제적인 고립국면에서 받고 있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김정은은 중국의 요구에 자신이 굴복하는 모양새를 피하면서 현 위기의 핵심인 안보문제를 논의하고, 동시에 최룡해의 국내적 위상을 높여주려 하고 있다. 깊어가는 미·중 간의 대북 협력체제에 대한 스스로의 우려를 불식하면서도 방미를 앞둔 시진핑에 선물을 주는 모양새도 취하고 있다. 시진핑 방미 시, 중국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또 최근 들어 부쩍 가까워진 한·중 관계 및 곧 다가올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견제의 성격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중국의 북핵 협상대표인 우다웨이의 방북 제의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일본 카드까지 써가면서 중국 및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에 저항해 왔다. 이에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암시까지 주면서 북한을 압박하였다. 북·중 관계에도 더 이상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다면 최룡해가 어느 정도의 선물 보따리를 가져갔는지가 궁금하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더 이상 군사적 위기를 조성하지 않겠다는 것,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김정은의 방중 건은 다음의 일이다. 북한은 분명 최룡해의 방중을 계기로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대화와 협상국면으로 전환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이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도록 요구하고, 9·19 공동성명을 존중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북한 정책 우선순위에서 비핵화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듯이, 북한의 핵 무기화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무기화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거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일정 정도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보다 적극적인 중국식의 대북 ‘햇볕정책’을 단행할 개연성이 커 보인다. 현재, 북한이나 중국 그리고 한국 모두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게 하는 구조적인 조건들이 바뀌지 않고 있어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제 스스로 강대국이라는 자아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중국 외교의 DNA가 바뀌고 있고 기존의 대북정책도 조심스럽지만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는 한국에 기회이기도 하다. 6월 말로 예상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의미에서 한·중 간에 어떻게 북한 핵문제 및 대북 협력의 기초를 마련하느냐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상호간의 다른 기대치는 향후 불필요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할 것이고, 중국은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이 마련해 주는 ‘한국 역할론’을 생각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상호간 당장의 결실을 추구하기보다는 향후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의 내실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방중이 되어야 한다.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무기화와 도발에는 단호하고 협력적인 한·중 관계를 추진하되, 한·중이 이 불확실한 핵 경쟁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중·북한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북한을 이끌어 가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 미래 경쟁력은 ‘융합형 SW’… 朴정부 벤처 활성 ‘지원사격’

    삼성이 지난 13일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 육성 및 연구 지원에 10년간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한지 이틀 만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는 두 번째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삼성은 15일 총 1700억원을 들여 소프트웨어 인력 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의 첫 단계로 벤처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삼성이 벤처 생태계 조성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인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전사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년 전인 2011년 7월 ▲소프트 기술 ▲최고급 인재 ▲특허(원천기술)를 3대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서비스 등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당시 이 회장의 주문에 대한 삼성의 해법이기도 하다. 특히 삼성은 소프트웨어 전공과 무관한 대학생들에게도 비전공자 양성과정을 통해 해당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0개 대학에 비전공자의 수준에 맞는 소프트웨어 과목을 개설해 2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기당 2과목, 총 12과목(36학점)을 이수하게 해 5000명을 육성한다. 전산 관련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2500명보다 2배 많은 숫자다. 이처럼 삼성그룹이 비전공 소프트웨어 전문가 양성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미래 국가경쟁력은 융합형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세계적 베스트셀러 ‘너지’(Nudge)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은 심리학을 전공했고,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철학을 공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학교를 그만둘 때까지 인문학을 중시했다. 이공계 분야의 세계적 거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기준에서 보면 ‘문과생’이다. 산업의 융·복합화가 확대되면서 전자 제품을 비롯한 모든 기기에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성능과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경쟁력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용유발효과는 제조업의 2배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청년실업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창의성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은 물론 글로벌 사업화도 가능해 창조경제 실현의 기반 역할도 가능하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 창조경제 선도 ‘3대 프로그램’ 내놔

    삼성 창조경제 선도 ‘3대 프로그램’ 내놔

    13일 삼성이 미래 기술 육성을 위해 1조 5000억원(10년간)에 달하는 투자 보따리를 푼 것은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에 힘을 보태겠다는 행보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회동이 이뤄진 방미 직후 이 같은 계획이 나오면서 재계가 경제민주화로 인한 서운함을 접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향후 적극 보조를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조만간 다른 대기업도 창조경제 투자 등에 동참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원 창구로 오는 6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해 ▲미래 노벨과학상 수상 육성 ▲소재 기술 육성 ▲정보통신기술(ICT) 융합형 창의 과제 지원 등 3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학 교원, 국공립 연구소 연구원 및 기업 연구원(대기업 제외) 등을 대상으로 약 100~200개의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과제를 선발해 집중 지원한다. 기금은 전액 삼성전자가 출연한다. 삼성은 특히 결과물의 산업화나 상용화까지 적극 지원하고 성과물의 권리를 연구자에게 부여할 방침이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국가 지원 프로젝트와 겹치지 않게 (연구 과제를) 선정, 지원할 것”이라며 “주로 국가가 나서기에는 규모가 큰 연구를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삼성은 미래 노벨과학상 수상 육성을 위해 4대(물리·화학·생명과학·수학)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를 집중한다. 인재와 기술이 자산인 우리나라가 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은 “기초과학 역량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노벨과학상을 분석해 보면 아이디어 착안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평균 28년이 소요돼 연구자 조기 발굴과 함께 장기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재 기술 육성의 경우 첨단 분야의 핵심 소재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최근 소재의 경쟁력이 완제품과 부품의 성능과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핵심 소재 개발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은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소재 기술의 발굴 및 설계에서부터 가공까지 전 가치사슬의 연구와 상용화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ICT는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실현시킬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삼성은 ▲ICT를 활용한 교육, 교통, 에너지, 환경 관련 혁신적인 연구 ▲모바일 헬스케어를 비롯한 라이프케어 연구 ▲다양한 빅 데이터 분석, 감성 연구, 인문사회과학과의 융합 연구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한결같은 ‘효심과 사랑’

    47년째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어머니를 모신 정재순(67)씨 등 39명이 서울을 대표하는 효행자, 장한 어버이 등으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8일 제41회 어버이날 기념식을 열고, 정씨를 비롯해 오랜 기간 효를 실천해온 ‘효행자’,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녀를 바르고 훌륭하게 키워낸 ‘장한 어버이’,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노인복지에 이바지해온 ‘노인복지기여단체’ 등 39명에게 서울시장 표창을 수여했다. 효행상을 받은 정씨는 26년 전 남편을 잃고 1남 5녀를 홀로 키워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도 치매 증상이 있는 시어머니를 47년째 모시며 효행을 실천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정씨 외에도 이웃 어르신들께 쌀을 나눠 드리고 아플 때 직접 병원에 모시고 병원진료를 다니는 등 선행 활동을 이어온 장춘기(62)씨 등 19명도 ‘효행상’을 받았다. 보따리 장사와 식당일에 척추수술로 거동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면서 남편의 대학공부를 뒷바라지하고, 자녀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서정자(73)씨 등 7명은 ‘장한 어버이상’을 받았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향토기업 특선] “정부의 대기업 진입 제한 장치 큰 도움 돼”

    [향토기업 특선] “정부의 대기업 진입 제한 장치 큰 도움 돼”

    진성기업 윤대호(오른쪽·56) 사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교육환경을 개선한 선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윤 사장은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수요자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해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는 특허를 기반으로 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현장 경험을 경영에 접목시켜 영세 가구업체를 튼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그가 가구업계에 발을 디딘 것은 학창시절 겪었던 아픈 기억들이 밑거름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용 가구 제조업체에서 4년간 경험을 쌓은 그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책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과감히 창업을 했다. 우선 그는 무겁고 불편한 책걸상을 가볍고 능률적이며 쾌적하게 설계했다. 특히 삐져나온 못에 걸려 바지가 찢어지고 상처를 입었던 생각이 나 안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윤 사장은 타 사 제품보다 뛰어난 책걸상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 제품을 모두 뜯어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열정을 쏟아부었다. 새벽 4시에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했다. 회사에서는 책상에 앉아있기보다는 공장에서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품질개선과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벽 1시에 공장에 나가 설계도를 그리고 시제품을 만들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일벌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윤 사장이 연구 개발과 시장 개척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이성순(왼쪽·52)씨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윤 사장이 신경 쓰지 못하는 회사의 안살림과 직원관리, 회계 관리 등을 모두 이씨가 맡아 했기 때문이다. “높낮이 조절용 책상이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을 때 연구 개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고품격, 고품질 제품 생산만이 극심한 경쟁에서 생존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사장은 신제품 개발 못지않게 정직한 경영과 성실한 자세를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회사 이미지가 나빠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 사장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품의 우수성은 기본이고 납기일 준수, 사후관리, 대리점 관리 등도 모범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진성은 상품과 회사, 경영인 모두 진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사장은 “정부에서 ‘보따리장수’로 불리는 페이퍼 컴퍼니들을 근절시키고 대기업들이 시장 진입을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게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 디자인 시대에 걸맞게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색상, 모양 등을 개량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설] 北, 개성시민 20여만명 생계 외면할텐가

    개성공단에 머물던 우리 기업 직원 126명이 그제 귀환한 데 이어 나머지 50명도 오늘 전원 철수하게 된다. 이로써 2004년 처음 가동에 들어간 뒤 9년여 동안 남북 협력의 불꽃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 없는 개성공단 330만㎡의 땅은 단 한 명의 남측 관리직원이나 북측 근로자를 찾아볼 수 없는 침묵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제 경기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줄지어 내려온 남측 차량들에 가득 실린 보따리들을 보노라니,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남북 화해의 꿈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북한 당국의 이성적 판단을 거듭 촉구한다. 개성공단은 남북 어느 한쪽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라는 특장을 살려 남북이 손을 맞잡고 세계 시장에 내놓을 제품을 만들어내며 공동번영의 꿈을 함께 꾸어온 곳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공단 가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의 꿈만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가동 중단을 선언하고, 남측 직원들 진입을 가로막고, 북측 근로자들을 몽땅 철수시키고, 공단에 남은 남측 직원들에게 줄 먹거리마저 차단하고, 이로 인해 결국 개성공단을 텅빈 벌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그래서 반민족적·반인도적 처사인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파행 앞에서 남한 기업의 직접 피해가 얼마니 따지며 주판알을 튕길 일이 아니다. 굳이 이를 따지겠다면 남북의 경제력 차이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며, 이 경우 자신들의 고통 지수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9일부터 발을 끊은 공단 근로자 5만 3000여명과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 등 20여만명의 생계만 해도 북한 당국은 어찌할 셈인가. 간식으로 제공받는 초코파이 하나까지 아끼고 모아가면서 생계를 꾸려온 이들을 평양 당국은 책임질 수 있는가. 아니면 나 몰라라 내팽개칠 텐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어제 개관을 앞둔 주민편의시설을 둘러봤다는데, 정작 그가 살필 곳은 텅빈 개성공단과 생계수단이 막힌 공단 근로자들의 삶의 현장이다. 개성공단 파행을 우리 정부를 흔들 카드나 미국을 움직일 지렛대로 삼을 요량이라면 이는 잘못된 상황인식이다. 금강산의 현대아산 시설물에 이어 개성공단마저 몰수해 제 것으로 만들 속내라면 더욱 큰 오산이다. 제대로 물건을 만들 능력도, 내다 팔 판로도 없을뿐더러 그 반칙적 상거래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파행이 길어질수록 해법은 멀어진다. 혹여 무력도발로 현 국면을 타개할 생각이라면 접기 바란다. 돌아갈 것은 파국뿐이다. 대화만이 유일한 출구다. 북은 즉각 대화에 응하고, 공단을 열어야 한다.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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