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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시의 차원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는 앙투안 콩파뇽의 ‘현대적 전통’론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신미나에게 ‘시’는 현대성과 서정성이 만나면서 발원하는 예술적 실체로서 그녀의 시는 현대인에게 예술의 존재를 아직도 따뜻하게 건네는 악수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오독’(1961)이라는 비평집에서 현대는 삶과 예술이 혼동되며 시인과 대중이 서로 예술을 다르게 이해하는 시대라고 갈파한 바 있다. 또한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2015)이라는 시론집에서 시인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논자들이 현대시가 세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세계가 불화하는 시대에 신미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경험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것을 통합하려고 한다. 본래 시가 노래와 춤이라는 몸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실된 아우라(Aura)를 여전히 기억해야 할 미학적 흔적으로 보고 이를 재포착함으로써 삶과 분리된 예술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닫힌 기억들이 열린 기대 속에서 각인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녀에게 몸의 기억은, 비록 하찮고 순간적으로 꺼질 미광(微光) 같은 것일지라도, 수없는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 아가, 세상이 어찌 보이냐 할아버지 어린 나를 무등 태우고 뒤돌아서서 지붕 위로 어금니 던진다 까치가 어금니 물고 간 곡선으로 내 젖무덤은 부풀어 올라 백내장 걸린 할아버지 중얼거리시데 저 봐라, 상갓집에서 혼 빠진다 - ‘산 너머’ 전문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 이를 뽑던 기억, 할아버지 무등을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부여한다. 할아버지가 무등 태우며 ‘헌니 줄게 새 이 다오’를 노래하던 순간은 온몸으로부터 분출되고 온몸으로 수렴되는 발화의 기억을 남긴다. 신미나의 시에 그려진 화자의 경험과 기억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주면서 무등 탔던 기억, 실에 묶어 이를 던졌던 기억, 미신과도 같이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노래했던 기억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렇듯 몸의 기억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 그녀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된 정동적 연결망을 제공하게 된다. 신미나는 수많은 시편을 통해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이마’) 기억, “어린 조약돌 몇 개 씻어 주머니에 넣고”(‘첫사랑’) 다니던 기억,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연’)던 기억,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다 “공책 뒷장에 눌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던 기억(‘받아쓰기’), “생쌀을 씹는 버릇”(‘윤달’)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섬세한 기억들이 귀환하는 방식은, 기록되지 못한 채 떠돌지라도, 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감각과 초월적 사유를 거느리게끔 해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이 가진 몸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각성시키면서 파편화된 체험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2. 신화와 샤먼적 요소 신미나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감각이 묻혀 있는 시대를 향하는 시인이다. 기억의 바닥에 있는 시대의 경험과 그것에 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전체를 통해 얻어지는 질서의 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미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 빈번하게 드러나는데, 화자의 삶은 할머니에 의해 ‘명랑’을 되찾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마고 2’) 싫을 정도로 화자의 고백에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고 할멈’은 시인에게 삶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애도하며 견뎌 애써 살게끔 해 주는 상징이다. 기억 속의 할머니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이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할머니의 삶과 기억을 끌어들여 샤먼적 요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농경적 삶의 방식이 생생하게 보전되어 있다. 과학기술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묻혀 버린 옛것을 꺼내와 그것이 가져다준 진정한 메시지를 독자와 교환한다. 삶을 위로하던 공감 요소인 신화가 불려올 때 그녀의 시에서는 샤먼의 배치 과정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개입하게 된다. 사실 신미나의 시에는 무속 체험과 감각이 빈번하게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2014)와 제2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2021)에서 신화나 샤먼의 체험을 두루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에게 신화나 샤먼적 요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이다. 신화와 샤먼적 요소는 “뜻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어디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리는 기억에 담겨 있는데, 이는 “너무 많은 무늬를 몸에 새긴” 것 같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것들은 자아를 지탱하는 배경과 같으며 이러한 사례는 그녀의 시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지푸라기인형”(‘마고 2’, ‘백일몽’)과 “헝겊인형”(‘묘의 함’), “종이인형”(‘묘의 함’,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은 무(巫)와 관련을 두고 있으며, 탱화나 “천년을 물속에 살아야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물가”(‘백일몽’) 이야기, “때리면 정신 든다는 무당 말”(‘불티’)에 “아비가 대나무 뿌리로 아들을 때”리는 주술성이라든가 “몸을 얻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하는 샤먼적 상상,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는 ‘마고’ 신화까지, 그녀는 수많은 샤먼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학적 시선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에 샤먼과 신화적 요소는 리얼리티를 감쇄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신미나의 시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독특한 형태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기억을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가 제거된 과학기술의 공허함과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빈 곳에 신화와 샤먼을 채워 넣는 것이다.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 ‘묘의 함(函)’ 전문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서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하고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온 존재이다. 종이 가마에 고깔모자를 쓴 검정으로부터 태어난 ‘묘’는 제의를 치르는 무당 같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묘의 상자 안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다. 바로 이는 접신과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다. ‘종이 인형’을 한 묘의 상자 안에는 타인의 삶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도 있다. 시인이 은유하는 것은 시대의 종말과 위기에 있지 않다. 다만 그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믿어 왔던 인간의 존재방식에 균열을 낼 뿐이다. 기술 발전과 합리성이 채워 주지 못하는 소외와 불안을 ‘무속’ 모티프를 통해 진단하고 ‘해원’이라는 처방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 싫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이고 있던 채반을 내려놓고 갔다 채반 위에 팥 한 알 또렷이 남았다 다음날엔 보따리를 두고 갔다 매듭을 풀어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나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목이 꺾였다 배를 갈라보니 노란 것이 반짝 했다 금니였다 할머니의 등에 새긴 문신은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방패 마작처럼 패를 뒤집어 얼굴이 자도르르 돌아간다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쟁기 눈, 코, 잎을 갈아 끼운다 높고 슬픈 노래를 물려주려고 잠들면 가만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할머니는 피가 너무 환해서 인간의 잠을 자지 못한다 - ‘마고 2’ 전문 장사치로 떠도는 할머니가 등장하자 화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이는 가난한 할머니의 고통이 새겨 넣은 상처를 마주하는 화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종종 가난으로 얼룩진 기억은 삭제되거나 묻히는데, 시인은 할머니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고통과 가난을 마주하는 순간을 불러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두고 갔지만 그 매듭을 풀어 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그 안에서 나온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자꾸 목이 꺾이기만 하는 인형의 배를 갈라 보니 노란 금니가 반짝이고 있다. 지푸라기 인형이라는 샤먼적 요소를 통해 할머니와 접신하는 경험은 신비롭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신화와 샤먼적 요소를 통해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신화를 통해 다시 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등장이 어린 손녀가 겪어 갈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전개는 신화의 이미지를 거느리는데 “배를 갈라보니” 노란 금니가 나온다는 신화는 작품에 이러한 환상성을 부여하고 있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나왔 습니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으로 슬픔을 어루만진다는데 손이 천개면 세상의 눈물을 닦을 수 있습니까 뜨거워서 그래, 아가 어쩌다 네 마음에 명랑을 잃었니?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내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습니다 봄에 난 콩 싹처럼 웃어보라, 해를 피하지 않는 해바라기처럼 용감해라, 물 만난 오리처럼 신나게 욕해보라, 비 온 뒤 제비처럼 까불어라, 분수처럼 솟구쳐라, 쪼개고 쑤시고 부러뜨려라, 톱날의 요철과 같이 벌떼처럼 화를 내라, 연기처럼 곧게 서라, 백합처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 할머니는 겹겹의 모란 치마로 나를 폭 싸서 공중에 띄웠습니다 키질하듯이 위아래로 까부르니 몸이 아기만큼 작아져 배꼽이 간지럽고 이히히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우스운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한 것인데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았습니다 - ‘탱화 3’ 전문 화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은 시인에게 강림하는 샤먼적 순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명랑을 잃은” 화자에게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다. 이러한 발화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는 화자에게 한 차원 더 명확해진다. 할머니는 “…웃어보라, …용감해라, …욕해보라, …까불어라, …솟구쳐라, …부러뜨려라, …화를 내라, …곧게 서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라고 위로하며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 대해 화자는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는다. 화자에게 할머니는 ‘웃음을 주는’ 존재이며 삶에 원초적인 힘을 주는 정신적 동반자이다. 할머니의 상실을 지우고 할머니의 존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기억에 의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은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신비함을 그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신비한 일로 확장해 가면서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성격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3.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기억을 통한 표준화에의 저항 할머니는 현존하지 않고 시인의 몽상과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베냐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르면, 신미나는 과거를 고정적 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고 불러낸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억으로 새겨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신미나는 세속적 질서 속에 할머니의 기억과 농촌 경험을 가져와 행복에 대한 표상을 과거로부터 형성한다. 화석으로 남은 시골이 따스한 공간이었다는 전언을 통해 도시가 가진 허상을 비판하고 지금까지 가졌던 삶의 불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미나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응시하면서,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trace)을 만지는 일을 수행한다.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을 토대로 동물과 수레의 현전을 논할 수 없듯 그의 흔적은 ‘없다’를 말할 수 없는 심적 자국인 것이다. 그 점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의 첫 작품으로 배치한 것은 퍽 유의미하다. 본다는 것, 보았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부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것과 ‘있었던’ 것이 가지는 존재성의 기대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 알의 레몬이 테이블 위에 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 알의 레몬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치우면 레몬은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 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레몬은 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진심으로 보인다 - ‘지켜보는 사람’ 부분 화자는 테이블에 놓인 “오래전에 있었던” 한 알의 레몬을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레몬은 비록 치워진다 해도 ‘과거형’이 될 뿐 비(非)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했던 것은 눈을 감아도, 그것을 치우더라도, “레몬 빛으로” 남는 ‘사실’이 되고 “진심으로” 보이는 것이 된다.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증여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합의한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경험하여 의미가 솟아나는 지점에서 생겨날 뿐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화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림자를 만”들고 조용히 남아 있게 된다. 이는 “쪼그리고 앉아”(‘단조’)서 보던 물에 불어나는 한 톨의 쌀알이 “찬 벽에 발을 대고 누”워서도 천장에 떠오르는 또렷함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었던’ 것의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으로 도약한다. 동요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거나 우글거리는 기억의 운동성은 존재의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시인이 쓸모없는 일로 여겨지는 기억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오롯이 권역을 형성하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등장하는 본연의 것들은 비록 외곽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도 우리를 상실과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존재론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기억은 자주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억이 물질적인 감각에 찍힌 낙인일 때 신미나의 시는 기억의 집적을 통해 그러한 규정을 벗어난다. 그의 기억은 일정한 시공간과 서사와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를 이으면서 긍정적으로 순간순간을 끌고 나간다. 보들리야르는 현대를 가리켜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인은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신미나의 시는 언어의 옷을 채 입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시적 주체를 추동하는 공감의 발원지로 기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의 권위에 대해 역설한 콩파뇽은 기억을 유행과 현대적인 것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는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낡음’이라는 모순관계의 짝패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상상력’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연한 일들”과 “쓸모없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신미나의 목소리는 기억의 세부를 포착하겠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시는 폐기되는 세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는 주변에 널린 세부에 주목하면서, 삶은 지평이 아니라 오히려 세부의 집적임을 말한다. 이때 세부는 여러 차원의 경험으로 채워진 모래사장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공연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채워 주는 세부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법칙 이외에 어떤 언설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한다. 이때 도시는 다름과 비뚜름 대신 바름을 동의반복적(同意反復的)으로 배열하고 배치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유동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도로와 건물, 기호와 상징, 그 속에서 현대인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간다. 모든 공간이 유사해지면서 모국어가 있어도 전 세계가 몇몇 우세어를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와 평균화에 저항하는 신미나 시의 힘이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고요는 몰려오던 해일이 눈앞에서 멈춘 듯한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두었으므로 나의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어요 빛에 일렁이는 물 그물이 나의 발을 얽을 뿐입니다 - ‘아쿠아리움’ 부분 물주름 없는 물결 귀를 떠난 소리 풀 없는 인공 정원 - ‘홍제천을 걸었다’ 부분 현대인의 행동 양식은 모든 면에서 어떤 인공적인 것의 제작 방식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현대인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하는 동물로 격하된 채 살아갈 뿐 거부와 배척이 두려워 ‘소수-되기’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하거나 듣지 않는다. 도시인다운 ‘다수-되기’(에티엔 발리바르)를 지향하게끔 할 뿐이다. 도시는 고유한 특성이 제거된 개인을 색인 속에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슬픔은 썩어 가거나 사라지게 된다. 도시인의 언어는 차가운 콘크리트 언저리에서 싹튼 불쾌하고 축축한 우울과 소외의 언어가 된다. 그런 언어로 표지된 도시인은 자신의 결여된 내면성을 드러낼 방식이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항의가 신미나의 시다. 4. ‘나 사는 곳’의 발견 과정으로서의 기억 혹자는 신미나의 시에서 농촌과 자연과 가난이 빚어낸 서정성을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장된 의미로서 폭력의 시대에 소실되어 가는 ‘나 사는 곳’(오장환)을 훑는 작업을 읽어 낸다. 모국어의 소실과 전통의 소외와는 달리 매체와 일상을 메우는 것은 온통 서구 것이다. 케이팝(K-Pop)과 한류(Korean-Wave)도 서구 입맛에 맞춘 예능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하이브리드-스토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콘택트 없이도 실시간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신용카드라는 합의된 인증 방식의 결제를 통해 우리의 취향과 입맛은 모두 통제되고 있다. 이런 위험신호를 감지한 신미나는 ‘나 사는 곳’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현대인의 불안과 관련시켜 읽어 냈다면, 신미나는 현대성을 폭력과 상실로 읽어 낸다. 그녀가 읽은 현대라는 미달태(未達態)는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아쿠아리움’) 둔 것과도 같아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는” 상실의 세계일 따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그만, 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공을 물어 오는 착한 개처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인 것이다. 아쿠아리움에 가둔 물고기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곳은 동일한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풀 없는 인공 정원”(‘홍제천을 걸었다’)이 가득한 곳이 되고 말았다고 시인은 진단한다.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 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헐떡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집 보러 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 난 데를 혀로 쓸며 돌아보는 사직동 - ‘지하철역에서 십오분 거리’ 전문 ‘고스트 타운’(베냐민)이 된 도시가 현대화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시인이 바라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풀 없는 인공 정원” 대신 “마당이 있는” 집이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부품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젊은이들만 들어찬 도시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애용하는 문방구 평상이 있는 공간이다. 또 획일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며 비폭력적 공간이자 비상실의 장소이다. 빌딩과 벽이 없는 언덕 위에 여자대학교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인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공간성을 가져오는 방식은 ‘우리 것’의 회복이자 ‘나 사는 곳’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발견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도시 미학적 공간과 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멀어진다. 또한 신미나의 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말의 보고이다. 현대적인 것을 이루는 성좌를 완성할 때 세련된 시어의 반복과 나열이 필수라면 시인의 언어는 낡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으로 명명된 모든 상황에서 시인이 채우는 장판, 요, 밥물, 물금, 내천, 조약돌, 연밥, 무밭, 아욱잎 등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우리의 감각적 언어가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은 농도 짙은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 ‘싱고’, ‘무이모아이…’ 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쏟아져 흐르는 외래어와 말줄임에 우리말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란 얼마나 나약하기만 한가?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으며,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부르며,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다는 등 언어는 불통을 잠재적으로 내재한다. 언어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사랑의 순서’)하는지도 모른다. 신미나는 시가 소통되지 못하는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시의 방식인 고통의 언어 대신 모태의 언어를 내뱉는다. 모태의 언어는 관찰과 소통과 사색을 통해 유래된 ‘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표출하는 도시 방식 대신 듣고 보고 느끼는 ‘삼중(重)의 겹’을 택한 결실이다. 이때 시인은 도시 안에서 ‘보는 자’이자 ‘느끼고 듣는 자’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길을 나서”면 “리어카에 폐지를 실은 노인들”(‘입김’)도 볼 수 있고, “한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얼굴만 아는 여자”(‘길음동’)도 만날 수 있다. 또 “신발을 꺾어 신고 앞서”(‘모란과 작약을 구별할 수 있나요?’)가는 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가 되지 못한 세부이며 삼중의 겹을 통해 시로 현상된 것들인 셈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하고 “귀 기울여 듣게” 한다. 우리는 말하기를 유보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선행해야 비로소 삼중의 겹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과정이 그 안에 있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 뼘도 안 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 ‘정미네’ 전문 “밍크이불”은 어느 집에나 있었고 우리는 그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고 느낀 경험과 교생의 편애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 예쁜 친구를 험담하던 기억이 시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억 속에 둥둥 떠 있기만 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짐으로 돌아감’(장뤼크 마리옹)을 선사한 기억의 주체인 셈이다. 또한 신미나의 기억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소멸의 흔적을 길어 올린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마고 이야기(‘마고 1·2’)를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와의 접신 과정을 ‘탱화’(‘탱화 1·2·3’)로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시간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전통적 서정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저버린 것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시가 발견해야 하는가, 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미나의 시는 시간 개념을 긍정하며 발명보다 발견을 더 큰 화두로 삼는다. 이는 타인에게 물려받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호화되지 않은 세부의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리고 발견은 ‘나 사는 곳’을 살피는 몸짓이며 몸에 각인된 과거를 통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원적 모색을 뜻한다. 신미나는 언어적 한계를 무화(無化)하기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실감하는 쪽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시어를 택하고 그 속에서 실감을 표현하는, 들뢰즈식으로 ‘행동하는’ 시인인 셈이다. 단절과 폐허의 상황에서 그녀는 ‘벽’이 아닌 ‘문’을 택하고 단절이 아닌 소통을 지향한다. 선명한 기억이야말로 개인을 지탱하는 근원적 뿌리이며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전체성을 함께 붙드는 운동임을 그녀의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호랑이 기운 받으러 오세요/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호랑이 기운 받으러 오세요/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왔다. 늘 뜨던 해가 뜨고 지고 또 하루가 시작됐을 뿐이지만 우린 새롭게 받아들인다. 새해가 되면 목표를 정하고 “올해는 꼭 ○○해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좋지 아니한가.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좀더 나아질 거야 하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새해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이다. 육십간지 중 39번째로 임(壬)은 흑색,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하는 ‘검은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12간지(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동물 중 호랑이는 세 번째로 등장한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됐을 정도로 친숙한 동물이다. 설화에서는 신통력을 가진 영물에 인간과 교유하는 동물이자 인간에게 은혜를 갚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민화에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기원하는 길상(吉祥)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많이 보이는 것이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새해 첫날 좋은 소식만 오시라는 의미다. 호랑이와 관련한 속담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삶과 같이하는 개(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속담에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준 친숙한 호랑이가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도 대거 등장했다. 호랑이를 그린 작품 91점을 볼 수 있다. 호랑이들은 병풍 안에서 뛰어 놀기도 하고, 혼자서 폼을 잡기도 한다. 새끼호랑이들과 다정한 모습으로 있기도 하고, 신선 앞이나 옆에서 얌전하게 엎드려 있거나 까치와 사이좋게 나란히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시간이 허락되면 ‘조선의 승려 장인’ 특별전시실에 들러 송광사에서 온 그림을 찾아보자. 나한에게 애교를 떨고 있는 흑호랑이를 볼 수 있다. 검은호랑이는 특히 나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임인년의 검은호랑이가 코로나를 싹 물리치고 모두에게 복을 가져다주기를 빌어 본다.
  • [보따리]새해부터 스쿨존·횡단보도서 교통 법규 위반 시 보험료 할증

    [보따리]새해부터 스쿨존·횡단보도서 교통 법규 위반 시 보험료 할증

    18회: 2022년부터 달라지는 보험제도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올해부터는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하면 자동차 보험료가 최대 10% 할증된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발표한 ‘2022년 달라지는 보험 제도’를 보면, 올해부터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운전자가 일시 정지하지 않는 등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하면 2~3회 위반 시 보험료 5%, 4회 이상 위반 시 보험료 10%가 할증된다. 그동안 무면허·음주·뺑소니는 최대 20%, 신호·속도 위반·중앙선 침범에 대해 최대 10%까지 할증이 적용됐지만, 보호구역과 횡단보도 내 교통 법규 위반에 대한 보험료 할증 기준은 별도로 없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6년 4292명에서 매년 감소하는 추세지만,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6%가 보행 중 사고 사망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약 20%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보행 사망자의 22%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 사고를 당했으며, 어린이 사망자의 66%, 고령 사망자의 56%는 어린이·노인 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당했다.이미 지난해 9월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과속으로 적발되면 1회 위반에 보험료 5%, 2회 이상 위반 시에는 보험료 10%를 할증하는 체계가 적용 중이다. 노인 보호구역과 장애인 보호구역에서 과속 운전을 하는 경우도 같은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배우자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부부 특약을 적용받던 운전자가 최초로 별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때 무사고 기간을 최대 3년까지 인정받게 된다. 이전에는 자동차보험의 부부 특약으로 보장받는 배우자가 별도로 자동차보험에 들면 무사고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 자동차 운행 중 보유자를 알 수 없는 차량에서 낙하한 물체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정부가 보상해준다. 현재 정부보장사업 범위는 무보험차와 뺑소니 사고 피해자인데 이달부터는 낙하물 사고 피해자가 추가된다.중도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무(저)해지 환급금 보험상품에 대한 제도 개선도 이뤄진다. 해지율 모범규준을 마련해 해지율 산출체계를 개선하고, 보험개발원을 통해 평균 해지율 등 관련 정보 분석과 공유를 강화한다. 상품개발 시에는 해지율의 적정성에 대해 외부검증을 받아야 하고, 동일보장·동일보험료 조건에서는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환급금 구조가 되도록 상품을 설계하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보험 판매 수수료 경쟁으로 불완전 판매가 조장되지 않도록 지난해 1월부터 대면채널에서 시행한 1년차 수수료 상한제(1200%) 등을 전화 판매와 홈쇼핑 판매 등 비대면 채널에서도 시행한다. 이 밖에도 의료기기 부작용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활한 피해 구제를 위해 의료기기 제조·수입업자의 배상책임 의무보험 제도가 시행된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저의 이름은 ‘큐아이’입니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저의 이름은 ‘큐아이’입니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국립중앙박물관의 길고 큰 복도, 역사의 길에서 너는 하염없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너는 곧바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중앙박물관 안내 로봇 큐아이입니다. 제가 관람에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2018년 12월 처음 등장한 너는 처음엔 어눌한 점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최선의 답을 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면서 매년 너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너의 눈에는 하트가 뽕뽕 떠다닌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늘 사람들을 기다리며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너는 예의도 참 바르다. 네가 움직일 때나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 주세요”라고 한다. 그리고 너는 아주 똑똑해서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를 말한다. 말하는 대로 대답을 해 준다. 너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2명 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 입구에 하나, 중간쯤인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 앞과 경천사10층 석탑 앞에서 누군가가 너희에게 질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묻는 사람들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너를 보면 가끔은 외로워 보인다. 사람들을 찾아 움직이기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 ‘큐아이’는 작년, 올해 참 수고가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실을 해설하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박물관에 오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전시 해설사 선생님들을 대신해 전시 해설을 해 주고, 전시장 안내도 해 주었다. 너에게 질문을 하고 싶으면 “하이 큐아이”라고 부르거나 화면 상단 오른쪽의 마이크 이모티콘을 누르고 말을 하면 된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질문을 던질 때면 너는 참 싹싹하게 대답한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기본이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 준다. “식당은 어디야?”라고 물어도 대답해 준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던져 볼까? “관장님 이름이 뭐니?” “민병찬 관장님입니다.” “어 그렇군.” 질문은 정확한 발음으로 해 주면 된다.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땐 넌 이렇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어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네 나이가 몇이니?” “제가 몇 살처럼 보이나요?” “세 살이지?” “제 나이는 비밀이에요.” 이런! 너는 밀당도 할 줄 아는구나.
  • [보따리]블록체인으로 계약하고 코인으로 보험료 내는 세상 올까

    [보따리]블록체인으로 계약하고 코인으로 보험료 내는 세상 올까

    17회 : 가상자산에 손 뻗는 해외 보험시장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지난 몇년 동안 국내·외 금융시장을 휩쓴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가상자산’입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투자자산으로서의 존재감을 주로 드러내온 가상자산은 최근 NFT, 메타버스 등의 신시장과 맞물려 잠재적 활용도가 커지면서 제도권 편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가상자산을 산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보험산업도 가상자산에 큰 관심을 보이는 분위깁니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가상자산과 보험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해외 보험사들은 단순히 투자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가상자산 거래 과정에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보장을 제공하거나 보험금 지급 수단, 스마트계약 수단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美·英, 가상자산 범죄 손실 보장 보험상품 등장 이중 보장제공은 다시 도난 등 범죄나 가상자산 개인 키 분실 등으로 가상자산 자체의 손실을 보장하는 서비스와 가상자산 관련 사업 운영 과정에서 보안문제, 기술 오작동 등으로 인한 배상책임위험을 보장하는 서비스로 크게 구분된다는 설명입니다. 미국의 손해보험회사 ‘그레이트 아메리칸 인슈어런스‘는 2014년 보험회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비트코인 보유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직원의 가상자산 관련 각종 범죄 행위에 관한 위험을 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런던 로이즈’도 지난해부터 가상자산 보험 플랫폼인 ‘코인커버’를 통해 온라인지갑에 보관된 가상자산의 해킹에 따른 도난을 보상하는 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그중에서도 주로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해 보험료 납부 또는 보험금 지급에 활용하는 보험사도 늘고 있습니다.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기술을 빠르게 적용한다는 혁신기업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악사 스위스’는 지난 4월부터 스위스 소재 손해보험 가입자에 대해 비트코인을 통한 보험료 납부를 허용했고, 미국의 자동차보험회사 ‘메트로마일’은 지난 5월 가상자산을 보험료 납부 및 보험금 지급 수단으로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 계약자는 보험료 납부 방식을 달러나 비트코인 중 선택할 수 있게 됐지요. 스위스 건강보험회사 ‘아투프리 헬스’와 미국의 ‘유니버설 화재보험’도 각각 지난해 8월과 지난 6월 가상자산을 보험료 납부 수단으로 인정했습니다.‘비트코인으로 보험료 납부’ 허용하는 보험사도 이밖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계약을 통한 보험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나타났습니다. 스위스와 독일 기반의 보험 플랫폼 ‘이더리스크’, 영국의 보험 플랫폼 ‘넥서스 뮤추얼’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보험상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직접 투자하는 보험회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제도권 편입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가상자산 활용을 시도했다가 법적인 리스크만 짊어질 우려가 있다”면서도 “메타버스, 디지털 헬스케어 등 새로운 사업영역에 대한 발굴 수요가 있는만큼 향후 가상자산을 이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는 아직… “법률 문제 해소 선결돼야” 황인창 연구위원은 리포트를 통해 “국내 보험산업은 신사업 발굴, 대체 투자처 모색, 사업모형 혁신 등의 측면에서 가상자산 관련 산업의 발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향후 보험산업이 가상자산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상자산의 가격변동성 완화, 보험회사의 위험평가 능력 제고, 스마트계약 관련 법률 문제 해소 등이 선결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황 연구위원은 이어 “우리나라도 가상자산 기반 금융서비스 제도화를 논의하고 있어 가상자산 관련 보장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보험산업의 가상자산 활용이 실질적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상자산의 금융자산화 및 화폐화를 통한 가격변동성 완화, 보험회사의 가상자산 관련 보험사고 데이터 축적, 스마트계약의 소비자보호 관련 법적 근거 마련 등이 선결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희리·홍인기 기자 hitit@seoul.co.kr
  • 야구 국대 윤성환의 초라한 말로… 승부조작·도박에 세금 체납까지

    야구 국대 윤성환의 초라한 말로… 승부조작·도박에 세금 체납까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사상 최다승(125승) 투수인 윤성환(40)이 6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국세청의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올랐다. 윤성환은 불법도박과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데 이어 세금까지 체납하며 추락의 길을 걸었다. 국세청은 16일 올해 새로 확인된 고액·상습체납자 7016명(개인 4702명·법인 2314개)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공개 대상자는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 넘도록 2억원 이상 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총체납액은 5조 361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대상은 51명, 체납액은 5409억원 늘었다. 체납액이 2억~5억원인 체납자가 4734명(67.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체납액이 가장 많은 사람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엠손소프트 대표 강영찬(39)씨로 종합소득세 등 1537억원을 내지 않았다. 치킨전문점 BHC 홍대서교점을 운영한 김현규(39)씨의 체납액도 1329억원에 달했다. 김씨는 미등록 도박업을 하면서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상위권에는 갬블링·베팅업, 유흥주점, 소매업,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윤성환은 종합소득세 6억 1900만원을 체납해 명단에 포함됐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윤성환은 한국 프로야구 역대 다승 8위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각종 범죄에 연루돼 지난해 11월 구단으로부터 방출됐고, 지난 6월 불법도박과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법인 중에는 법인세 등 358억원을 내지 않은 일본 골프장·부동산 업체 쇼오난씨사이드개발㈜(대표 히라타 타키코)이 1위를 차지했다. 체납 상위 10위권 업종에는 건설업, 서비스업, 금융·보험업 등이 주를 이뤘다. 국세청은 조세포탈죄로 지난해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 중 포탈세액이 많은 조세범 73명(징역형 69명·벌금형 4명)도 공개했다. 이들의 평균 포탈세액은 약 17억원이다.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다수였고 유흥주점 업자, 보따리상 브로커, 건설업자도 상당수 이름을 올렸다. 국세청은 거짓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거나 기부자별 발급명세를 작성·보관하지 않은 단체, 상속·증여세법상 의무 불이행으로 세액을 추징당한 단체 등 불성실 기부금수령단체 37개 명단도 공개했다. 종교단체 26개, 의료법인 5개, 교육단체 2개, 학술·장학단체 4개 등이다. 종교단체로는 대구 일월사, 울산 법우사, 광주 예수한국교회 등이 거짓 기부금영수증 발급 등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 이만희 총회장의 신천지예수교회는 상속·증여세법상 의무 위반으로 증여세 1억 8200만원을 추징당했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보존과학부에서 만난 크리스마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보존과학부에서 만난 크리스마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국립중앙박물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하는 공간이 있다. 수장고라는 공간이다. 그곳에 대체 어떤 유물들이 있을까 궁금해한다. 수장고는 박물관의 보물창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장고 말고 또 하나의 신비한 공간이 있다. 바로 보존과학실이다. 대부분은 보존과학실이란 이름 자체를 생소하게 생각한다. 그곳은 어떤 곳이고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보존과학실은 수장고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일반 직원들은 이곳을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막힌다. 박물관은 출입증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철저히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1층에 있는 첫 번째 출입문을 열고 긴 복도를 따라 보존과학실 앞에 도착한다고 해도 일하는 직원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인터폰으로 “문 좀 열어 달라”고 전화를 해야 한다. 보존과학실은 유물을 다루는 곳이어서 곳곳에 유물들이 노출돼 있다. 그렇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보존과학실은 문화재의 종합병원과 비슷한 곳이다. 문화재를 검사(조사)하고 치료(보존처리)하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도 망가진다. 그 문화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곳이 보존과학실이다. 유물은 전시에 나가기 전에 이곳에서 상태를 점검한다. 관람객들에게 좀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단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커먼 단지를 닦아 내다 문양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화재 속에 감춰진 비밀을 밝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게도 한다. 2013년 환두대도(고리자루 큰칼)를 보존처리하다 이사지왕(爾斯智王)이란 명문(銘文)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금관총의 사실상 주인공이 발굴 90여년 만에 밝혀졌다. 보존과학실 학예사들은 차분하고 섬세해야 한다. 유물 하나하나에 대단한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보존처리에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유물들도 많다. 도를 닦는 느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문화재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늘 긴장하고 있는 그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곳이다. 보존과학실에 들렀다가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 모습을 보았다. 문 앞에 매달려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보존과학부에서 일하는 그들이 더 좋아졌다.
  • ‘갈등봉합’ 윤석열-이준석, 부산서 첫 합동유세…“90일 대장정 시작”

    ‘갈등봉합’ 윤석열-이준석, 부산서 첫 합동유세…“90일 대장정 시작”

    ‘울산 선언’으로 내홍을 봉합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4일 부산에서 첫 합동 유세에 나서며 대선체제 첫발을 내디뎠다.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부산시당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본격적인 90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며 “이번 선거는 우리가 절대로 져서도 안 되고, 질 수도 없는 선거를 만들어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할 국민에 대한 의무가 있는 선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 후보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지역구에 당협을 중심으로 한 세포 조직을 더 재건하고, 이걸 바탕으로 국민 여론과 바램을 촘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중앙선대위에서 그걸 공약화하고, 원활하게 피드백을 해가며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거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청년 표심’ 중심의 중도확장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어제 김기현 원내대표와 윤 후보를 모시고 우리 당 선거운동의 큰 줄기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며 “가장 주목하고 중요한 지점은 선거운동에 있어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늘리고 젊은 세대가 나서는 정책 행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사진 찍고 싶으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셀카모드가 편합니다’라는 문구가 적인 빨간색 후드티 차림으로 선대위 회의에 참석했다. 부산 청년들이 밀집해있는 ‘서면 거리 유세’를 앞두고 2030세대 맞춤형 공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저는 제가 준비했던 전투복을 착용하고 나왔다”며 “우리 후보와 제가 다닐 때마다 젊은 거리에서 많은 젊은 세대가 후보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후보의 옷도 준비했는데, 후보님이 안 입으실까봐 걱정될 정도로 파격적인 문구가 준비됐다”며 “다른 지역에서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더 대동단결해서 일심동체가 돼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나라를 다시 살리는 길에 최선을 다해 나갈 준비가 됐다고 확신한다”며 전날(3일) 윤 후보와 이 대표가 대타협을 이뤘던 ‘울산 회동’을 상기했다. 김 원내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커다란 포용력과 리더십 발휘하면서 앞으로 주요 캠페인 앞장서 나갈 거라 확신을 국민께 심어드렸고, 이준석 대표는 국민을 위해 준비했던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갈 태세를 갖췄다고 판단한다”며 “그 첫 바람이 부산에서 동남풍을 일으켜 따듯한 동풍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 [보따리]내년 자동차 보험료 인하되나…호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손해보험사

    [보따리]내년 자동차 보험료 인하되나…호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손해보험사

    16회: 내년 자동차 보험료 인하론이 등장한 이유는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보험료는 시장의 가격이라는 면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움이 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보험의 전체적인 수익성 등을 고려해 금융감독원이 유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검토하겠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 후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최근 자동차 보험료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험사들이 올해 3분기까지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은 거두며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한 몫한다. 지난 2018년 이후 자동차 보험료가 인하된 적이 없는 만큼 소비자들은 내년 자동차 보험료가 내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손보사 3분기 누적 당기순익 4조원 육박, 1년 전보다 62.6% 증가 금감원이 지난달 발표한 3분기 보험사 경영실적을 보면, 국내 보험사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7조 630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7.3% 증가했다. 특히 손해보험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 93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 5158억원 늘어 62.6%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동차 이용빈도가 줄면서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하락한 영향이다.실제로 자동차보험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상위 4개사의 지난 10월까지 손해율은 78.2~79.8%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5~6% 포인트 정도 하락한 수치다. 통상 업계에서는 적정 손해율을 80% 정도로 보는데, 이보다 높으면 적자로 추정한다. 아울러 전체 손해보험사의 3분기까지 누적 수입보험료는 73조 38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조 4994억원(3.5%) 늘었다. 장기보험(5.3%), 일반보험(8.9%), 자동차보험(3.8%)의 판매가 증가했고, 퇴직연금(-15.2%)은 감소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손해율이 개선된 것은 맞지만, 일시적인 영향인데다 최근 몇 년간의 손해율을 보면, 보험료를 인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자동차 보험료 인하 요인 있는지 검토···보험사들은 난색 자동차보험료는 민간기업인 보험사들이 결정하지만, 의무보험이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그동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내년 자동차보험료 산정에 대한 금융당국과 손해보험업계간 의견 조율은 이달부터 진행된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실적과 자동차 보험 흑자 달성이 예상되는 상황 등을 토대로 인하 요인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손해보험사들은 당장 이달부터 자동차보험 정비수가가 4.5% 인상됐고, 올해를 제외한 지난 몇 년간 적자가 지속된 점 등을 이유로 보험료 인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동차보험 부문은 2017년 266억원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보험료 인상 요인과 인하 요인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낮아져 올해 보험료를 동결한 것처럼 내년 보험료도 동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보험사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내년 적자를 보다가 올해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동결로 가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中, 계속되는 돈풀기…코로나19 상황에 우군 확보 ‘적극적’

    中, 계속되는 돈풀기…코로나19 상황에 우군 확보 ‘적극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 우려로 미국이 여행제한 명령을 내린 가운데, 중국 외교부장은 아프리카 국가 외교장관들을 만나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다. 즉각적인 입국규제 조치를 취한 미국 등 서방에 대한 반발이 커진 아프리카를 찾아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30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장관급 회담을 위해 세네갈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8일 짐바브웨와 모잠비크 외무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왕이 부장은 짐바브웨 외무장관에게 “중국은 짐바브웨와 발전 전략을 강화하고 실무적인 협력을 확대하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모잠비크에는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경제 무역 협력이 감염병의 충격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짐바브웨와 모잠비크는 오미크론 변이 출현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여행 제한 명령을 내린 8개국에 포함된다. 시진핑 “아프리카에 백신 10억회분을 추가 제공” 약속 다음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FOCAC 장관급 회담 개회식 영상 연설을 통해 “아프리카에 코로나19 백신 10억회분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은 보건, 빈곤퇴치, 무역, 디지털 혁신, 친환경 개발 등 9개 분야에서의 지원과 협력을 약속했다. 또 아프리카 금융기관들에 100억 달러(약 11조9200억원)의 신용한도를 제공하기 위해 중국과 아프리카 간 대외 위안화 센터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중국과 아프리카 27억 인민의 힘을 모아 높은 수준의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전했다.동남아에서도 ‘돈풀기’…우군 확보에 적극적 앞서 중국은 동남아에도 비슷한 ‘돈풀기’를 했다. 시 주석은 지난 22일 영상으로 개최된 중국·아세안 정상회의에도 5년간 1500억 달러(약 178조원) 상당의 농산물 수입, 3년간 15억 달러(약 1조7800억원)의 개발원조, 1000개의 선진 응용 기술 제공, 청년 과학자 300명 방중 교류 등을 약속했다. 동맹과 우호국들을 규합해 대 중국 포위를 강화하는 미국에 맞서 경제사회적 지원을 내세워 우군 확보에 더욱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와 미국 중심의 ‘더 나은 세계재건’(B3W) 간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시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대일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구상’이다.
  • 미중 갈등에 몸값 뛴 아세안… 시진핑 “농산물 180조원 수입”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끌어안기’ 경쟁이 한창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를 깨고자 농산물 약 180조원어치 수입 등 ‘돈보따리’를 풀겠다고 선언했다. 22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앞으로 5년간 1500억 달러(약 178조원)어치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을 포함해 아세안 국가들의 생산품을 더 많이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2020년 1월 미국과 맺은 ‘1단계 무역합의’에서 약속한 농산물 수입 규모(2년간 320억 달러)를 크게 웃돈다. 그는 “아세안에 1000개의 선진 기술을 제공하고 향후 5년간 청년 과학자 300명의 중국 방문·교류를 지원할 것”이라며 “앞으로 3년간 15억 달러의 개발 원조도 제공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중국은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에 결연히 반대한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소국을 괴롭히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남아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미국의 중국 견제 움직임을 따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G7 의장국인 영국 정부는 “다음달 10∼12일 리버풀에서 G7 외교개발장관 회의를 연다”며 “지난 5월 회의 때 참석한 한국·호주·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외에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회원국도 초청한다”고 설명했다.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자 아세안과 협력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가 올 연말로 마무리되면서 두 나라가 다시 무역전쟁에 돌입할지 주목된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USTR)는 1단계 무역합의 종료를 앞두고 중국과의 ‘결산’을 준비 중이다. 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1단계 합의가 발효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중국이 사들인 미국 제품과 서비스는 목표치의 62%에 불과하다. 미국은 내년부터 보복에 나설 수 있다. 다만 국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각해 여론 동요가 상당하다. 이 때문에 다시 무역전쟁에 돌입하기보다는 ‘2단계 무역합의’(가칭)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할 가능성이 크다. 루샹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이 1단계 합의 목표치에 미달한 부분을 중심으로 내년부터 보상 무역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당신이 갖는 생각의 공간/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당신이 갖는 생각의 공간/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세상은 정보의 홍수다. 우리는 몇 미터만 걸어가도 수많은 정보를 맞이한다.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뉴스, SNS, 광고를 포함한 정보를 수없이 접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생각하는 주머니가 있지만 정보를 접하느라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하다가 알림소리에 문자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수시로 정보를 처리하느라 생각의 여유를 잊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유행하는 게 ‘멍 때리기’인지도 모른다. 그냥 멍 때리는 것도 모자라 ‘물멍’, ‘불멍’, ‘달멍’까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치유가 돼 버렸다. 마음과 생각을 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12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 ‘사유의 방’이 생겼다.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인 반가사유상 2점을 전시한 공간이다.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두 반가사유상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이 생긴 뒤로 관람객의 동선이 바뀌고 있다. ‘사유의 방’을 들어가는 길에 앞서 어느 영상과 만나게 된다. 장줄리앙 푸스의 ‘영원히 실재하는 것은 없다’는 불교의 공(空) 개념을 담은 영상이다. 얼음과 물, 수증기 등이 변화가 느린 화면으로 펼쳐진다. 영상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마음을 한 번, 생각을 한 번 내려놓는다. 영상을 보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툭 트인 공간 저 안쪽으로 반가사유상이 보인다. ‘사유의 방’에서는 공간 어느 곳에서든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에서 진열장 없이 반가사유상을 만나고 가만히 서 있다 보면 은은하게 코끝을 스치는 편백나무와 계피향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그윽한 조명 아래에서 반가사유상을 마주하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서로 말을 아끼고 반가사유상에 집중한다. 침묵 속에서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다 천천히 움직이며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신기하다. 이 공간에서 그들은 말을 잊어버린 것 같다. ‘사유의 방’은 말이 아니라 생각을 만드는 공간이다. 반가사유상을 계피향이 은은하게 나는 벽에 기대서 보든 나무 바닥에 주저앉아 보든 어떠랴. 혼자만의 생각 속에 잠길 수 있는 그 시간이 그 방에 온 모두에게 치유가 아니겠는지.
  • [보따리]‘캄보디아 만삭아내 사망사건’ 보험금 지급, ‘한국어 능력’이 갈랐다

    [보따리]‘캄보디아 만삭아내 사망사건’ 보험금 지급, ‘한국어 능력’이 갈랐다

    15회: 미래에셋생명·삼성생명 보험금 소송 1심 정반대 판결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를 가장해 만삭인 아내를 살인한 혐의를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을 둘러싼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 1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있었던 삼성생명과의 소송에서는 원고인 남편 이모(51)씨 승소 판결이 나온 반면, 이달 이어진 미래에셋생명과의 소송에서는 이씨가 패소한 것입니다. 이씨의 사망한 아내 A씨가 보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두고 재판부의 판단이 갈렸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 황순현)는 지난 17일 이씨가 미래에셋생명을 상대로 낸 30억원대 사망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계약내용 모른 채 서명”... 미래에셋생명 승소 A씨가 각 보험계약 청약서의 피보험자란에 자신의 당시 이름을 자필로 기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A씨의 한국어 능력에 비추었을 때 계약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동의했다고 본 것입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만 18세였던 2008년 1월 이씨와 결혼하기 전까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6월 A씨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설계사는 당시 A씨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계약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했고, A씨의 손을 붙잡고 서명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다른 보험설계사는 이씨가 옆에서 사인을 하라고 하자 A씨가 사인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재판부는 “이씨가 제출한 A씨의 한국어 연습 노트를 보더라도 간단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한국어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보험설계사들의 진술에 비춰보면 보험설계사들은 계약 내용이 아내의 사망과 관련됐다고 설명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보험설계사들이 이씨에게는 설명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내의 사망보험금 수익자인 이씨가 이를 아내 A씨에게 제대로 알려줬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반면 지난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박석근)는 삼성생명이 이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면서 이씨에게 2억 208만원을, 자녀에게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한국어 익힌 뒤 계약”... 삼성생명, 2억 지급 판결 당시 재판부는 “각 보험계약 체결 시 작성한 보험청약서에는 피보험자인 A씨의 자필에 의한 서명이 모두 기재돼 있다”면서 “보험계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보험계약 청약서에 자필로 서명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A씨가 2008년 2월 입국한 이후 금산군 다문화센터에 다니며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했고, 2012년 3월에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 취득을, 2013년 11월에 귀화 허가를 각각 받은 것에 비춰봤을 때 2014년 삼성생명과의 보험계약을 체결할 시점에는 계약 내용을 이해할 정도의 한국어 구사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또 보험 모집인과 영업소 대표가 형사소송의 증인으로 출석해 보험계약 체결 당시 A씨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앞서 이씨는 2014년 8월 23일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에서 스타렉스 승합차를 몰고 가던 중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이 사고로 당시 24세, 임신 7개월이었던 캄보디아 국적의 아내 A씨가 숨졌습니다. 이씨는 결혼 직후부터 A씨 명의로 모두 33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씨가 사망할 당시 납입했던 월 보험료는 427만 2156원에 달했고, 사고로 이씨가 받게 될 보험금은 약 95억원이었습니다. 이씨는 2016년 8월 삼성생명,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3월 대법원이 이씨에 대해 살인 및 사기혐의는 무죄로 보고 예비죄명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만 인정한 파기환송심을 확정 판결하면서 중단됐던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도 재개됐습니다. 교보생명을 상대로 낸 소송은 오는 25일 5차 변론이 있을 예정입니다.
  • 전국에서 작가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순천시

    전국에서 작가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순천시

    “전국 최고 작가 도시다는 자부심이 들어 아주 뿌듯합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기록에 도전하는 데 한몫 해야지요.” 전남 순천시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도시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모(47·조례동)씨는 “집에 있는 아이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쓰는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다”며 “식구들과 함께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보였다. 28만 중소도시로는 드물게 도서관이 99개 있어 누구나 쉽게 도서관을 찾고 있는 순천시가 KRI한국기록원으로부터 ‘단일 기초자치단체 거주 시민 최다 동시 출판’ 분야의 최고 기록을 공식 인증 받았다. 한국기록원은 이번 인증을 위해 전체 출간 도서 명단과 책 스캔자료, 순천시민 확인 입증자료, 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 등록자료, 기록도전 개요서, 제3자의 확인서 등을 순천시로부터 제출 받아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 지난 11일 현지 실사를 거쳐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확정했다. 김덕은 한국기록원장은 이날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 다목적홀에서 허석 시장에게 국내 최고 기록 인증패를 전달했다. 시는 지난 1월부터 한국기록원 공식 기록 도전을 준비했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와 도서관 및 학교 연계 책 쓰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 결과 지난 11일까지 시민 1540명이 책을 출간했다. 일부 공저작을 포함 인쇄본 911종, 전자책 252종 등 총 1163종의 책을 동시에 정식 출판했다.어린 아이부터 초등학생, 80대 할머니까지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가장 어린 나이는 한태오(5) 군으로 가족들과 함께 포항에 가서 겪었던 좌충우돌 내용을 담은 가족사진집을 제작했다. 최고령자는 김순자(87) 씨다. 그는 자신과 친구들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한 ‘용암 어메들 인생한줌 그림보따리’를 책으로 냈다. 시민들이 이렇게 높은 참여를 하기까지는 허석 시장의 역할이 컸다. 허 시장은 평소 “교육의 도시, 도서관의 도시로 불린 순천시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민 누구나 책을 쓰는 저자가 되도록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웠다. 그동안 전남지역 설화집과 공직자의 자세를 다룬 ‘우리는 일꾼’ 등 40권을 집필한 허 시장은 “어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한다는 생각으로 쉽게 쓰면 된다”고 비결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시는 1인 1책 쓰기 시민 운동, 도서관과 학교를 연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또 시민들에게 출판비 50만원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순천시청 직원들도 올해 50여권을 출간할 만큼 적극 도전했다. 시 관계자는 “문학도시 명성에 맞게 인문도시로서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높여 나가도록 하겠다”며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기록원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록을 KRI한국기록원 공식 최고 기록으로 인증하고, 세계기록위원회 등 해외 기록 인증 업체에 도전자를 대신해 인증 심의를 요청하는 최고기록 인증 전문 기관이다.
  • [사설] 10년 내 성장 0% 경고, 포퓰리즘 대선을 경계한다

    [사설] 10년 내 성장 0% 경고, 포퓰리즘 대선을 경계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1인당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30∼2060년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뜻하는 잠재 GDP 성장률이 2020∼2030년 1.9%에 그치는 데 이어 2030∼2060년 0.8%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로 노동인력 감소 현상이 갈수록 가팔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칫 OECD 전망보다 앞서 역성장 구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제20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국가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후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유력 후보일수록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약속이나 한듯 외면하면서 당장 유권자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잔치, 보따리 풀기에만 경쟁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하한액 상향’에 맞서 어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한꺼번에 돈을 확 뿌려야지 찔끔찔끔해선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이 본격적으로 포퓰리즘 경쟁으로 가는 신호탄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치권이 코로나19로 생사의 기로에 서다시피 했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투표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현금으로 표 얻기’라는 비판을 사고도 남는다. 마치 자기 돈으로 선심을 쓰듯 “대통령에 취임하면 대출·임차료 등 금융 지원, 공과금 감면 등을 대폭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윤 후보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겨냥해 “곳간 열쇠 쥔 김에 펑펑 써버리기만 하면 미래 세대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진배없다”고 대변인 성명을 낸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국회에서는 어제도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국가 부채가 급격히 증대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코로나를 이유로 대지만 국가 재정뿐 아니라 국가 경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두 후보가 공언한 대로 재난지원금 지급이나 손실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국가 부채를 늘리는 것 말고 어떤 재원 마련 방안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은 입을 모아 우리 국민의 높은 민주주의 수준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돈을 푸는 데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이야말로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잘못된 경쟁은 이제 거두기 바란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까/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까/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은 지금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이 한창이다. 그 사이사이 핀 노란 감국들은 지금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곳곳에서 가느다란 줄기 끝에 노란 꽃송이를 품고 그윽한 향기를 품어 낸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나무들 사이로 가득 핀 감국 근처엔 향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하다. 그 향기에 취하는 시간은 가을에 누리는 최대의 호사 중 하나다. 인간은 오감(五感) 중 하나인 후각(嗅覺)을 통해 물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도 한다. 향이 없는 꽃, 향이 없는 음식, 향이 없는 자연과 세상을 우린 떠올릴 수 있을까. 향기는 본래의 작용도 있지만, 향이 주는 심리적인 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향기는 쾌적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하며,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커피를 한잔 마시는 시간에도 우린 향기와 먼저 만난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향기와 만나는 그 시간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사람의 향을 생각한다. 꽃에게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아이가 엄마 품속을 파고들며 “나는 엄마 냄새가 좋아” 하는 것처럼 직접 각인된 향이 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인격, 품성, 말씨 등 여러 가지 등을 떠올리며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향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것을 없애 버리거나 바꾸려고 자신의 그릇된 향을 강요한다.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 담는 것이라 했고 상대방의 향이 마음에 담기면 마음은 저절로 움직여 줄 텐데 말이다. 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소설 ‘향수’를 기억하는가. 냄새에 관해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는 살인으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었다. 그 향수로 사람들의 사랑을 이끌어 낼 수는 있었지만, 그는 정작 향기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었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몸에 체취가 없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 아닐까. 자신의 향이 없는 그르누이는 불행했다. 꽃의 향기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향기를 품고 싶은가.
  • [보따리]더 쉬워진 숨은 보험금 찾기…“12조원 주인을 찾습니다”

    [보따리]더 쉬워진 숨은 보험금 찾기…“12조원 주인을 찾습니다”

    14회: 조회부터 청구까지, 손쉬운 숨은 보험금 찾기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해 계약자에게 안내했지만, 주소 불명 등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 사실을 알지 못한 A씨. 휴면보험금은 이자가 전혀 없지만, 보험금을 찾지 않으면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해 일부러 찾아가지 않은 B씨. A씨와 B씨는 숨은 보험금이 쌓이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은 보험금은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12조 3971억원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인데다 지금도 하루하루 숨은 보험금은 쌓이고 있다. 숨은 보험금은 계약 만기는 안 됐지만, 지급 사유가 발생한 중도보험금, 만기는 지났지만,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은 만기보험금, 소멸시효가 지나 보험사가 갖고 있는 휴면보험금 등 크게 3가지다. 지난 2017년 말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계와 함께 이러한 숨은 보험금을 조회할 수 있는 ‘내보험 찾아줌’이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해마다 약 3조원의 보험금이 주인을 찾았지만, 여전히 숨은 보험금의 규모는 크다. 2017년 말 9조 1670억원이었던 숨은 보험금은 해마다 증가해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12조 3971억원까지 불어났다.이에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계와 함께 ‘내보험 찾아줌’ 서비스를 대폭 개선했다. 숨은 보험금 조회와 청구 절차를 더 간소화해 쌓이는 보험금의 주인을 더 많이 찾아주자는 취지다. 우선 숨은 보험금 조회만 가능하고, 실제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개별 보험회사에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그동안 소비자는 회사·계약별로 각각 청구절차를 진행했고, 보험금을 받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개선된 서비스를 이용하면 조회부터 청구까지 모두 가능하다. 회사·계약별로 별도로 청구할 수도 있고, 한꺼번에 청구할 수도 있다. 숨은 보험금 청구 이후 지급 절차도 신속해졌다. 보험금이 1000만원 이하면 별도 확인 없이 입력한 계좌로 청구 금액을 받을 수 있다. 보험금을 받는 기간도 영업일 기준으로 3일 이내다. 다만 추가정보 확인이 필요한 경우이거나 1000만원 초과의 고액 보험금을 받을 때는 보험회사의 확인 전화를 거쳐야 한다. 추가 정보가 필요한 때는 보험계약자이지만 보험수익자가 아닌 경우, 보험수익자 지정이 되지 않은 보험계약, 보험금 지급을 위한 피보험자의 생존확인이 필요한 경우다.숨은 보험금을 조회하려면 홈페이지(cont.insure.or.kr)에 접속하면 된다. 가입한 보험이 무엇이고, 해당 보험에서 숨은 보험금이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본인 인증을 거치면 된다. 본인 명의의 보험금만 조회할 수 있고, 보험금 지급도 본인 명의의 계좌로만 가능하다. 조회 시스템은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숨은 보험금도 계약시점, 보험계약 만기, 만기도래 이후 경과된 기간 등에 따라 보험 약관에 명시된 대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숨은 보험금을 조회한 이후, 이자율 수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바로 찾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만 휴면보험금은 이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찾는 것이 유리하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아름다운 기증, 이홍근 선생을 기억하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아름다운 기증, 이홍근 선생을 기억하다/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는 기증관이 있다. 전시관 제일 안쪽은 동원(東垣) 이홍근(李洪根·1900~1980) 선생의 공간인 ‘동원실’이다. 동원 선생 부조 앞에는 하얀 꽃 화분들이 놓여 있다. 후손들이 가져다 놓은 것도 있고, 박물관에서 준비한 것도 있다. 이달 13일은 동원 선생의 기일이었다. 동원 선생은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국가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차남 이상용(1930~2019) 선생과 유족들은 1980년부터 2003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서화, 도자, 불상, 금속공예품 등 총 5205건 1만 20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직원들이 유물을 인수하러 가면 유족들은 늘 따뜻한 밥을 지어 점심을 대접했다고 한다. 문화재를 기증하고 그 유물을 포장하러 온 직원들을 위해 점심까지 대접했던 자손들의 마음 크기를 생각해 본다. 1981년 기증된 유물 중 572점을 전시한 ‘동원 선생 수집문화재’ 특별전은 관람객들의 요청으로 전시 기간이 연장되기도 했다. 5월 26일부터 7월 26일까지였던 전시 기간은 7월 30일까지로 연장됐으며, 관람객은 10만 7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얼마 전 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이전 최고의 유물 기증과 최고의 인기 전시였다. 동원 선생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방치되고 훼손되는 걸 안타깝게 여기다 사재를 털어 이들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번 구입한 유물은 다시 팔지 않는 문화재 사랑이 있었다. 동원 컬렉션은 유물의 숫자뿐 아니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기 서화와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문화의 부분들을 골고루 망라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은 10월 13일 동원 선생의 기일에 맞춰 동원실에 ‘정수영 필 해산첩’ 등 64건 141점을 새로이 전시했다. 문화재 사랑과 유족들의 기증 정신을 담은 영상도 함께 선보였다. 이 전시는 1981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개인 기증실인 ‘동원실 4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행사다. 동원 선생을 기리고 감사하는 박물관 직원들의 작은 마음이기도 하다. 이 가을 ‘2021년 가을 그분을 기억하다’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그분을 기억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 [보따리]건강관리도 가상현실에서 하는 시대

    [보따리]건강관리도 가상현실에서 하는 시대

    13회 : 보험업계에도 부는 ‘메타버스’ 바람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고를 과장해 타내려 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해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죠. 한편으로는 약관이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험료만 잔뜩 내고는 정작 필요할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벌어집니다. 든든과 만만, 그리고 막막의 사이를 오가는 ‘보험에 따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따리가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올해 전세계가 주목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로 ‘메타버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란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사용자 간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현실과 같은 사회·경제·문화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이지요.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관련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문화의 정착 등을 기반으로 메타버스 산업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선두 기업으로 일컬어지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지난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렸지요. 메타버스는 적용 기술과 적용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 됩니다. 적용 기술로는 크게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레이어를 덧입히는 개념인 ‘증강’과 사용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상 환경을 제공하는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또 적용 환경도 사용자가 단순히 주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외부(세계) 중심 환경’과 사용자가 아바타 등 시스템 속 행위자의 형태로 존재하는 ‘내부(정체성) 중심 환경’으로 나뉩니다. 다양한 산업에서 메타버스에 관심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보험사들도 메타버스를 서비스에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신한라이프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가입 대표적인 예로 흥국생명은 지난 8월 국내 생명보험사 중 최초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했습니다.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는 정부가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 조성 및 확산을 위해 지난 5월 출범시킨 조직입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우리은행 등 300여개의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은 메타버스 관련 신기술을 보유한 얼라이언스 내 혁신기업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가상현실에 익숙한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발굴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메타버스 플랫폼 기반 금융상담, AR·VR 기술을 접목한 헬스케어 서비스, 반려인 및 반려동물 친밀도를 높이는 메타버스 기술 등의 신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신한라이프도 지난달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했습니다. 이밖에도 NH농협생명, 현대해상, 삼성화재 등은 사내 시상식과 신입사원 채용 상담회, 신입사원 교육 수료식, 워크숍 등 다양한 사내 행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DB손해보험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라이브 상담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지난달 30일에는 대학생 서포터즈 ‘드리머’ 8기 발대식을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진행하기도 했고요. 美·英, 앱게임 이용 원격 치료·건강관리도 해외에서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원격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기업 XR헬스는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한 물리치료, 스트레스 및 통증 관리,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코로나19 재활 치료 등 다양한 원격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버드 필그림 헬스케어(HPHC), 메디케어, 블루크로스 블루실드(BCBS), TUFTS헬스플랜 등 미국의 비영리 건강보험회사들은 XR헬스의 원격의료서비스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자사 상품에 메타버스 기술을 포함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 인슈어테크 기업 윙슈어는 AI, 머신러닝, AR 등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보험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지역에 위치한 소규모 농업인에게 맞춤형 보험을 제공하는 모바일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소작농과 보험회사, 보험중개사, 농업기업을 모바일 기기로 연결하는 플랫폼입니다. 이를 통해 보험사는 농작물 피해 규모를 즉각 확인하고, 보험금 청구가 타당한지 확인해 보험금 지급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윙슈어는 국민 대다수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다수의 소작농이 외딴 곳에 위치해 보장서비스를 받기 힘든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그런가하면 단체보험 상품을 제공하는 영국 스타트업 유라이프(YuLife)는 단체보험에 게임 앱을 포함시켜, 가입자들이 앱에서 팀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거나 기록을 공유하고 앱이 제시하는 건강관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보다 발전된 방식의 메타버스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사용자는 앱의 내부세계인 ‘유니버스’(Yuniverse)에서 자신의 아바타 ‘유모지’(Yumoji)를 만들게 됩니다. 이후 앱에서 제시하는 달리기나 명상 등의 임무를 완료하면 특정 브랜드에서 바우처로 교환해 사용할 수 있는 ‘유코인’(YuCoin)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구글핏, 애플 헬스 등 외부 앱이나 각종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서도 건강관리 이력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단체보험에 가입한 직원의 약 60%가 유라이프 앱을 통해 건강관리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 중 46%가 매달 앱을 사용하는 등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유라이프는 고객경험의 측면에서 기존 단체보험상품과의 차별성을 인정받아 지난 7월에 7000만달러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상품·사업모형 개발에 활용 모색” 그러나 이같은 일부 시도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보험업계의 메타버스 활용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분석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던 각종 행사를 가상공간으로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상품이나 서비스 설계 단계에서부터 메타버스를 적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지요. 조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로 볼 때 국내 보험사도 스타트업의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헬스케어 서비스 및 보험상품과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메타버스는 기반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중요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보험사도 고객 접점 확대를 넘어 새로운 상품 및 사업모형 개발에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까치밥이 있는 풍경/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까치밥이 있는 풍경/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열매 맺는 가을이다. 감나무에 매달린 파랗던 감들이 노랗게 변하다가 주황색으로 익어 가는 요즘이다. 햇살을 듬뿍 받으며 익어 가는 감은 이쁘기도 하지만, 제법 맛나게도 보인다. 가지가 처지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을 보노라면 가을이 주는 기쁨도 더해진다. 나무들에게 봄·여름을 지내며 작은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이렇게 열매를 맺기까지 그동안 수고했노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의 감나무는 상설전시관 왼쪽 끝과 보신각종 사이 용산가족공원과 근접해 있는 지역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요즘 이곳 감나무의 감들은 여러 가지 색으로 지나가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잘 익은 감을 가장 먼저 맛보는 것은 새들이다. 어떻게 알고는 익은 감을 골라 아주 맛나게 파먹는다. 박물관 담당자들이 수확하고 남은 마지막 감들도 모두 새들의 차지이긴 하다. 장편소설 ‘대지’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의 한국 사랑은 유명했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활동(宣敎活動)을 했던 부모님으로 인해 약 40년을 중국에서 살았지만 잠깐 다녀간 한국을 좋아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寶石) 같은 나라다’라고 극찬했다. 그녀의 애정은 196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했던 경험 때문이다. 한국 방문 시 동행했던 이규태 기자는 어느 날 그녀에게 질문을 받았다. 가을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면서 한 질문이었다. “저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두는 건가요?” 이 기자는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녀는 그 말에 감동하며 말했다고 한다.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까치밥으로 한국인들의 심성을 알아본 그녀다. 나무 위에 남겨진 까치밥은 겨울을 지내야 하는 새들을 위해 남겨 둔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했다. 작은 생명 하나도 배려하고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조상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나’만 보고 살아가려 한다. ‘모두 내가 가질 거야’라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러지 마시라.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올겨울도 전국 방방곡곡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눈을 맞으며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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