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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쪽 7남매의 북 큰형맞이

    “누님이 지은 모시적삼 입고 고향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꼬…” 50년만에 서울에서 만날 큰 형 권중국(權重國·70)씨를 맞을 준비를 한 13일 중호(重浩·56·서울 광진구 노유동)씨의 32평짜리 집은 7남매가 모여 선물 보따리를 꾸리느라 마치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서울에 사는 조카와 일가 친척 등 20여명이 하루 종일 집안을 가득 메웠다. 고향 경북 영주에 사는 순희(順姬·76·여),계희(桂姬·74·여),차희(且姬·66·여),중후(重厚·62),춘례(春禮·59·여)씨도 새벽 3시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중호씨 집 근처에 사는 막내 중수(重守·50·광진구 중곡동)씨까지 7남매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50년만에 만날 형 얘기로 꽃을 피웠다. 지난 49년 결혼해 신접 살림을 차리고 있던 중국씨는 이듬해 6·25가 나자 고향에서 인민군으로 징집돼 가족과 헤어지게 됐다.10년동안 수절하던 형수는 형제들의 권유로 개가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떴다. 7남매는 형님이 어떻게 변했을까,시누이는 어떤 여자일까 등 정담을 나누면서 선물 가방에 가족사진첩,목걸이,시계,오리털잠바,내의,양말 등을 정성스레 담았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남동생 중후씨가 “형님 환갑이 지난 10년전부터 형님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3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사셨으면 꿈에도 못 잊던 큰아들을 만날 수 있으셨을 텐데…”라고 말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둘째 계희씨는 “50년만에 만나는 동생에게 내 손으로 지은 옷을 입히고 싶었다”며 손수 만든 하얀 모시적삼을 어루만졌다.계희씨는 “이 옷을 입고 부모님 산소에 술이라도 한 잔 따라야 할 텐데…”라면서 “형제가 50년 동안 갈라져 산 것도 억울한데 왜 고향에도 못 가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씨가 고향에서 손수 베껴 만든 소학(小學)책까지 꼼꼼히 챙기던 7남매는 “조카 부부와 손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인데 50년 동안쌓인 이산의 한을 어떻게 선물보따리 하나로 풀 수 있겠느냐”면서도 “뭐 하나라도 더 보낼 것이 없는지 챙겨봐야 하겠다”면서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한편 평양으로 가족을 만나러 갈 실향민과 서울로 오는 가족을 맞을 남쪽 가족 모두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면서 짧은 여름밤을 하얗게새웠다. 전영우기자 ywchun@. *방북탈락 이산가족-실향민들 추가상봉 소식에 '환호'. “우리도 갈 수 있다니 정말이냐” “정말 고향 방문이 가능하냐”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방북 언론사 사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산가족상봉이 9,10월에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이 알려진 13일 밤 ‘8.15 방북단’에서 탈락한 이산가족들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일 안에 북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8.15 상봉 명단’에 포함됐으나 109세의 노모를 만나는 장이윤(張二允·72)씨에게 순위를 양보했던 우원형(65·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장옹에게 양보할 때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로부터 ‘다음번 이산가족상봉에는 1명이 가더라도 최우선적으로 포함시키겠다’는 말을들었는데 이처럼 빨리 갈 수 있게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기뻐했다. 6·25때 고향 충남 청양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돼 소식이 끊긴 셋째형 이상두씨(68)의 생존사실을 이번 명단 교환 때 확인한 상기(相起·60·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씨는 “탈락 소식을 들었을 때 누이와 남동생과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서로 위로했지만 섭섭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면서 “다음번에형을 꼭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다려야겠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정순용(鄭順溶·61·여·강원도 춘천시 동면)씨는 “최종 명단에서 탈락해 절망했는데 한가닥 희망을 가지게돼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북한에서 우리 네자매를 특히 귀여워해 주신 고모와 삼촌에게 남쪽에서 태어난 손아래 여동생 3명을 꼭 소개시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처음부터 명단에 들지 못했던 실향민들도 추가적인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반겼다. 부인 장정희(張貞姬·71·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는 이번에 최종명단에 들어 북으로 두 명의 여동생을 만나러 가지만 자신은 명단에서 탈락한 평양 출신 김학구(金學九·82)씨는 “북에 살아 있는 일흔다섯살이 됐을 누이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심장이 안 좋지만 꼭 건강을 회복해 고향땅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고희를 맞은 이종권씨(70·인천시 남동구 구월동)는 “친지끼리 모여 고향 황해도 해주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면서 “고향에서 한번 더 고희연을 갖고 싶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전영우기자
  • 복지부 醫亂대책 제시 안팎

    의료계의 전면 재폐업 시한을 하루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10일 내놓은 대책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9일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파격적이라고 생각할만큼 발상을 전환하자’고 했던 주문만큼 정부의 대책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나 국민경제에 대한 부담 등 기존의 고려변수를 뛰어넘는 인상폭을 담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쏟아질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보따리를 모두 풀어헤친 만큼 이제 공은 의료계로 넘어갔다. 의료계 지도부는 의료보험수가의 현실화 등 복지부가 제시한 9가지의 대책에 대해 ‘상당히 미흡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나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물론 의료계가 지난 6월 의료계 집단폐업 당시 요구한 의료수가 2.5배 인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요자인 국민들의 추가 부담을 감안할 때 ‘이제는의료계가 한발 물러설 때’라는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의료계는 또 재폐업 철회의 조건으로 약사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최근 개정된 약사법과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 임의·대체조제 등 의료계의 요구사항이 이미 상당 부분 반영됐다.또 열악한 전공의 처우와 근무환경도 당장개선키로 했으며,의대 정원도 감축키로 했다.이 때문에 의료계가 정부 대책수용을 거부하고 재폐업을 강행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날 대책을 내놓으면서 적잖은 부담을 떠맡게 될 국민들의 반발을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최선정(崔善政) 복지부장관도 이날 정부대책을발표하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당한 부담’은 아니라고 지적했다.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대비 보건의료비가 2.8%에 불과하나 선진국들은 8∼10%나 된다며 국민들의이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집단적인 힘에 밀려 대다수의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는 불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유상덕기자 youni@
  • 팔 걷어붙인 崔善政 복지

    최선정(崔善政) 보건복지부장관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의료계 집단 휴진 및파업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최 장관은 취임 다음날인 지난 8일 곧바로 의협회관을 방문,의협 상임이사단,의권쟁취투쟁위원회 관계자 등을 만나 머리를 맞대고 진솔하게 대화할 것을 호소했다. 9일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재정(金在正)의협회장,한광수(韓光秀)서울시의사회장등을 면회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최 장관이파악하고 있는 의료계 집단 휴·폐업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은 의·약·정 상호 불신이다.서로 믿지 못하는데서 오해가 생겼고 골이 깊어져 사태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계의 핵심 요구사항인 수가인상과 진료권 보장에 대해 나름의 복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의·약계 지도부와 좀더 논의하면서보따리를 순차적으로 풀어헤치겠다는 구상을 지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의료계의 요구대로 ‘저보험료-저수가’를 고치려해도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쉽지 않을 뿐더러엄청난 재원이 소요된다는 점이 최 장관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있다.또 진료권 보장문제도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10일도채 안된 마당에 다시 개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그럼에도 진찰료 및 수가 인상 등에 최대한 성의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는데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 장관은 의료계도개원의, 병원봉직의사(월급의사),전공의,전임의 등 신분에 따라 이해가 다른만큼 ‘일괄타결”보다는 ‘각개격파식’의 전략을 구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의약분업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인 최 장관이 난관을 어떻게 헤치고 나갈지 두고볼 일이다. 유상덕기자
  •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상봉 준비에 들뜬 하루

    오는 15일 꿈에 그리던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 방문단에 선정된 100명의이산가족들은 가슴졸이며 기다렸던 ‘낭보’에 밤잠을 설쳤다.일요일인 6일에는 북한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며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들이 갖고갈 선물은 손목시계,속옷,한복,족보,과자,카메라,현금 등 다양했다.하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100명 모두 똑같았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직후 서울에 들어온 박영일씨(76·서울 양천구 목동)는 6일 북한에 있는 누나 혜준씨(78)와 동생 임준씨(64)에게 줄 첫번째 선물로 족보를 챙겼다. 박씨는 “재산을 모두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대한적십자사로부터 1,000달러 이내에서 선물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비싼 선물보다는북한에 있는 후손들에게 조상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족보를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동생 경희(60),여동생 경수씨(66)를 만날 임경옥씨(69·경남 김해시 외동)는 “50년전 헤어진 동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면서“경희에게는 카메라를,경수에게는 한복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덕씨(72·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평양에 사는 큰언니 순덕씨(75)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 6명의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강씨는 “남쪽에있는 손자들처럼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손자들도 초코파이를 좋아할 것 같다”면서 “초코파이와 생전의 부모님 사진,달러, 의약품 등을 갖고 갈 계획”이라며 기뻐했다. 허리 통증으로 10일 전 입원한 김금지씨(70·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병원에서 방북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오빠를 만날 기회를 겨우 잡았는데 몸이 아파불안하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를 꼭 만나겠다”고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김씨는 오빠 어후씨(74)에게 줄 선물로 자녀의 결혼식과 자신의 환갑때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손목시계,손자들이 부른 노래 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간병중인 며느리에게 일렀다. 장정희씨(70·여·서울 양천구 신월7동)는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다.코트와 쌍가락지,영양제 등을 준비한 장씨는 “고향에 가기 전까지동생들에게 줄 모시적삼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부인 이옥녀씨(72)와 딸 현실씨(51)를 만날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가난 때문에 남들처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공공근로와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김씨는 “아내와 딸에게 근사한 옷을 선물하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답답하다”면서 “남은 기간 곰곰이 생각해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방북단 탈락 26명…”다음엔” 희망 안버려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이 확정된 지난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의 생사가 확인된 126명 가운데 최종명단에 끼지 못한 실향민들은 또다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보따리를 도로 풀었다. 우원형(64·禹遠亨·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뜬눈으로 지샌 뒤 6일 새벽경기도 파주시 수양사를 찾았다. 이번에도 북한에 살아 있는 여동생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달래기 위해서다.아들 병희(丙熙·32)씨는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126명의명단에 든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면서 “여동생에게 줄 한복과 의약품도 준비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신천 출신 강재필씨(74·여·전남 광주시 북구 인동)는 “북한에 사는조카들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생전 사진이라도 건네받으려 했다”면서 “100명이라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좋은 일아니냐”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분들 모두 한을 풀고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이번에 못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장홍진(張洪珍·5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북한에 계신 누님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달러,약,옷가지 등 누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라고 섭섭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나보다 20∼30살이나 많은 분들이 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위안했다”면서 “다음에 방북단을 선정할때 탈락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얘기도 들리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금융파업 타결국면/ 파업서 타협 합의까지

    금융총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예고된 것은 6월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파업은 10시간 만에 끝났지만 파업준비는 한달여를 끌었다. [금융지주회사법이 파업 시발점]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노조는 총파업을 결심했다.그러나 ‘설마 은행이 파업이야 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높았다.금융노조 산하 22개 금융기관이 7월3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일제히 실시하고,금융결제원마저 파업에 가담키로 함으로써 총파업은 ‘현실’이 됐다. [노조 정치투쟁전략으로 선회] 그 사이 노조의 투쟁전략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강제합병 철회’의 경제투쟁에서 ‘관치금융 청산’의 정치투쟁으로돌변한 것이다.강제합병 철회만으로는 우량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을 총파업 대열로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지도부 내부의 판단 때문이었다.그러나 이는 결국 정부의 노선 변화를 야기,지도부의 발목을 잡았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일 금융개혁은 한치도 늦출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했고,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이용근(李容根)금감위원장은초강경으로 돌아섰다. [노사정위원회의 중재로 협상 시작] 극한으로 치닫던 노·정을 테이블에 주저앉힌 것은 노사정위원회였다.김호진(金浩鎭)노사정위원장이 양쪽을 분주히오간 끝에 ‘7일 1차 협상’을 이끌어냈다. 마침 이 장관은 이날 일본 출장이 예정돼있었다.노조는 이 장관이 오지 않으면 협상에 참석하지 않겠다고버텼다.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깨질 판이었다.이 장관은 일본 출장을 취소했다.마침내 7일 오후 5시 서울 명동회관에서 노·정 대표 4명이 각각 마주앉았다.다섯시간에 걸친 ‘진지한’ 대화가 이뤄졌다.그러나 주로 노조가 설명하고 정부가 반박하는 쪽이었다. [노조 서서히 균열] 한미·수협 노조가 파업불참을 공식선언했고, 개표결과제일·평화은행의 파업찬성률은 과반수에도 못미쳤다. 일요일인 9일,오후 2시에 같은 장소에서 노·정이 다시 만났다.이번에는 정부가 주로 설명하고 노조가 반박하는 쪽이었다.그러나 5시40분쯤 이용득 노조위원장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결렬이었다.그날 밤 이용근 금감위원장이 명동성당 농성장을 찾아갔지만 40여분을 기다렸어도 이용득 노조위원장은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각,이 위원장은 명동성당 부근 모처에서 총파업투쟁전략을 짜고 있었다. [평행선을 달리는 노·정협상] 그러는 사이 시시각각 D-데이는 다가오고 있었다.마침내 파업 하루 전날인 10일,파업참가 은행의 노조원들이 연월차휴가원을 제출하기 시작했다.동시에 국민·주택·조흥은행 등 본점 직원들이 잇따라 파업불참을 선언했다.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돌입시각 0시를 2시간 남겨두고 노·정은 다시마주앉았다.그런데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노조측 대표인 김철홍(金喆弘) 주택은행 노조위원장이 “위원장님!”하고 거칠게 불렀다.일부 은행에서 전야제 참석을 막기 위해 조합원들을 감금하고 있다는 항의였다.일순,협상장에는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기자들을 서둘러 회담장 바깥으로 내쫓았다. [김호진 위원장의 기지가 돌파구] 기자들이 나가자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은이 장관과 이용득 노조위원장을 불렀다.“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협상이 안됩니다.솔직히 1·2차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 성토였습니다.협상 방식을 바꿔보면 어떻겠습니까.실무위원회를 구성해거기서 현안을 논의해봅시다” 양측 대표단이 술렁거렸다.정부가 먼저 ‘OK’를 냈다.그러자 노조측에서물었다.“정부에서 뭔가 진전된 보따리를 준비해 왔느냐” “일단 들어보라” “다 들어봤다가 우리가 받을 게(수용) 없으면 어떡하느냐” “그때는 본회의를 다시 열어 논의하자”.결국 노조측도 수용했다.이종구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윤태수 금융노조 홍보분과위원장이 주축이 된 4명의 실무위원회가즉석에서 만들어졌다.이때가 10일 밤 11시50분. 실무회담은 다음날 새벽까지 정회·재개를 거듭했지만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벼랑끝 대치에서 타결로] 노조는 11일 새벽 5시 연세대에서 파업을 공식선언했고,정부는 오전 8시30분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그러면서도 실무협상은 계속 가동됐다.오후 1시,이용근 금감위원장과 이용득 노조위원장이 명동성당에서 다시 만났다.두 사람은 문을 걸어잠그고 담판에 들어간 지 2시간여만에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안미현기자 hyun@
  • [김삼웅 칼럼] 상호주의, 역리와 병리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인 ‘상호주의’는 남북관계를 거래관계로 보겠다는발상이다.통일시대를 앞두고 남북간에 켜켜이 쌓여온 질시와 미움을 삭이기위해서는 ‘상호이해’가 절실하다.”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이 지난 4일 의원연찬회에서 한 발언이다. 한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6일 회견에서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은 상호주의 원칙하에 북한의 개방·개혁과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추진돼야 한다”고 당의 입장을 밝혔다. 같은 당에서도 의견이 다르고 여야간에도 현격한 견해차이를 보이는 대북 상호주의는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상호주의’(reciprocity)는 원래 경제용어로 상대국의 시장개방 정도에맞추어서 자국의 시장개방을 결정하려는 입장을 말한다.세계적인 불황으로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구미 각국은 각기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한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내세웠으며,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에 역행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미국의회에서는 1981년 말쯤부터 이같은 상호주의적 견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해 상·하원에 제출된 ‘상호주의법안’이 12건에 달하기도 했다. 국가간 거래는 엄격한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피도 눈물도 없는 국제무역 관계에서는 상호주의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남북 사이는 어느 신문 사설처럼 결코 ‘냉엄한 비즈니스 관계’가 될 수 없다.피와눈물을 나누는 동포끼리 어찌 냉엄한 상호주의를 적용할 것인가. 아무리 비정한 사람이라도 형제 사이에 상호주의를 적용하지는 않는다.형편이 조금 나은 형이 아우를 돕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혈육지정이고 인지상정이고 동포애다. 남한이 비료 20만t을 북한에 지원했으니 우리도 그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장사의 원칙이지 인도주의는 아니다.북한이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변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겠다는 탈리오의 법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지금 북한은 엄청나게 변화중이다). 과거에는 반공이면 만사형통이었다.어떤 논리나 명분도 잠재울 수 있었다. 대북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 ‘애국’이고냉전논리만 열심히 개발하면 유능한 지식인·언론인이 됐다.그러면서 상호간에 북한은 소련의 허수아비(괴뢰)이고 남한은 미국의 허수아비라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뢰논쟁’으로 민족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언론은 ‘북한괴뢰’를 열심히 성토하면서 신문을팔아먹고 학자는 보따리 장사를 하고 정치인들은 보수정객 노릇을 했다.이렇게 적대와 증오심을 키워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남은 것이 무엇인가.냉전논리를 팔아먹고 사는 집단에 ‘기득권’을 안겨줬는지는 몰라도 국민과 민족에는 씻을 수 없는 생채기만 남겼다.그래서 뒤늦게나마 깨닫고 화해협력의 손을 마주잡은 것이 6·15남북선언이 아닌가. 이제 남북이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으로 나가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면서,새로운 냉전논리의 ‘변형적 주술(呪術)’이 되고 있는 ‘상호주의’란용어는 북한과 관련해서는 쓰지 말아야 한다.앞에서 말한 대로 국가간 시장개방에서 쓰이게 된 용어를 남북 사이에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장기수 북송이나 국군포로 맞교환과 같은 인도적 문제는 상호주의를 뛰어넘어서 해결해야 한다. 남북 당국간의 경제협력 관계는 등가성(等價性)이나 동시성(同時性)이 전제되지 않는 탄력적인 상호이해가 적용돼야 한다.비정한 상호주의 대신 상호이해를 원칙으로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중요하다. 북한은 우리가 적기에 보내준 비료 20만t을 그토록 고맙게 생각하더란다.그쪽 동포들이 굶주릴 때 우리가 식량과 의약품을 보낸 것은 동포애이지 대가를 바라는 상호주의는 아니었다.여유 있는 측에서 아량을 보이는 것은 만고의 철칙이다.그래야 포용하게 된다. 냉전시대에 엄청난 ‘안보비용’이 들었듯이 화해시대에도 ‘평화비용’은요구된다.그렇지만 훨씬 절약된다.따라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평화의 기회비용지불,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투자 그리고 통일비용의 축소라는 탈냉전적사고로 이해하고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임혁백 고려대 교수)란 지적은탈상호주의 정신을 요약한다고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우리학원 명강사] 노량진행정고시 교육학 조화섭씨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강의를 이미 한 번쯤 들었거나 아니면 명성이라도 접했을 것이다. 노량진행정고시학원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조화섭(42) 강사는 불과 2년 사이에 교사임용고사 교육학 강의의 정상급으로 올라섰다.조 강사는 그동안 ‘암기과목’으로만 여겨졌던 교육학을 ‘원리 이해 과목’으로 바꿔놓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정통파 강사’로 통한다.교육학을 전공한 강사가드문 학원가의 현실에서 박사학위(교육철학)를 갖고 있는데다 공부 욕심도많아 또 다른 전공(교육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조 강사가 학원가로 뛰어든 것은 98년 1월.IMF의 한파속에 ‘보따리 장사’인 강사 수입으론 최저 생계유지도 안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첫 공개강의때 학생 수는 3명에 불과했다.이후도 한동안 20∼30명 정도 모였다. 요즘 그의 강의에는 400여명의 수강생들로 가득 메워진다.단순히 암기할 내용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운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원리를이해시킨다.깊이있는 강의를 하는 그의 독특한 강의 방식이 학생들의 발길을 끈 것이다. 또한 조 강사는 요즘 매주 수·목요일 오전과 일요일에 1시간 30분동안 무료 특강도 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이 때는 400여명을 수용하는 강의실이 부족해 다른 강의실에 텔레비전 화면을 연결한 화상강의도 하고 있다. 조 강사는 수강생들이 단지 시험에 합격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그는 “학생들이 믿고 찾아와 기댈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학원 강사이기에 앞서 먼저 교육의 길로 뛰어든선배의 입장에서 예비교사들과 고민을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조 강사는 “처음엔 강사와 학생의 관계가 삭막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학보다 훨씬 인간적인 면이 많다”면서 “열심히 가르치다보니 학생들의 반응도 순수한 것같다”고 말했다.전공을 교육학으로 택한 데는 경기도 부천의한 교회에서 탁아 공동체 활동을 했던 선친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 [마음은 북녘 고향에](6)평남 성천 출신 이태흥 할아버지

    “별명은 ‘돌배’,야무졌던 북녘의 동생이 살아 있는지…” 이태흥(李泰興·70·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씨는 4일 “평남 성천군 대곡면 대곡리 추피마을에 두고 온 막내 동생 태용(泰龍·62)이는 어릴 적 별명을부르면 나를 곧바로 알아볼 것”이라며 신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보비(75)와 보옥씨(73),누이동생 보화(68)·보여씨(65)도 고향에 남았지만 나이가 많은 누님 둘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난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돌배’가 누이동생 둘은 잘 보살피고있을 것이라고 되뇌인다. 이씨는 1946년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일제 치하에서 대장장이 일로 어머니를 비롯,8남매를 부양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버지가 44년부터 강원도이천군 음탄면 건자리 두메산골에 숨어 지내다 광복 이듬해에 어머니와 함께 장티푸스로 숨진 것이다. 이씨는 부모님을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 전인 그해 2월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당장 생계가 걱정인데다 이불 보따리 등 이삿짐도 많아 ‘돌배’만은 두 매형에게 맡기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고향 길은 험난했다.원산에 이르자 눈이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쌓여 사경을 헤메다 간신히 트럭을 얻어탈 수 있었다.하지만 고향에 돌아온지 얼마 안돼 태용은 10세의 나이로 수백리 길을 찾아와 ‘과연 돌배’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 1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48년 11월 흩어졌다.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곧 전쟁이 터져 50여년 동안 생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1·4후퇴 때 동생과 누이들의 얼굴도 못본 채 혼자 남으로 내려와 1남 4녀를 둔 이씨는 “고향 앞을 흐르는 대동강의 물결치는 모습이 아련하다”면서 “죽기 전에 동생과 누이,친척 어르신들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한수기자 onekor@
  • 현대·北韓 합의 주요내용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이 풀어낸 ‘귀국보따리’가 기대이상이다.지지부진했던 서해안공단과 금강산 개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특히북한이 해외교포를 포함한 외국인의 관광허용과 함께 북한주민들의 한라산관광을 현대와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강산종합개발/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기존의 개략적인 금강산종합개발계획을 보다 구체화해 실행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이에 따라 현대는 삼일포·통천지역에 골프장·콘도미니엄·호텔 등 각 2개,통천에 스키장1곳,시중호·금강산 해변에 해수욕장과 야영장 각 2곳,장전항에 해상호텔 2개 등을 건립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금강산의 특별경제지구.이 일대가 무역·금융·첨단기술 연구개발단지와 레저단지로 개발되면,국제적인 종합무역센터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서해안공단/ 부지대상 후보지가 기존의 해주·남포·신의주 등 3곳에서 개성이 추가된 것은 현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판문점 해주 등과 가까운 점이고려됐다. 현대는 해주와 남포를 2,000만평 규모의 메머드급 공단으로 조성하되,나머지 후보지역도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갖고 있다.통천지역에도 3만평 규모의 경공업단지를 건설,관광기념품과 농수산가공품 등을 생산키로 하고,금강산에 통신장비 현지생산과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키로 한것 역시 의외의 소득이다. ●향후 절차 및 과제/ 현대는 7월 중순쯤 북측과 실무협의를 갖는다.가능한분야는 빠르면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금강산 추가 개발과 서해안 공단은 외자유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기존의 금강산 개발에만 향후 10억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등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서해안공단 조성사업은 부지확보가 마무리된 뒤라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주병철기자 bcjoo@
  • 鄭 前명예회장 오늘 訪北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이 막걸리를 들고 28일 오전 10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다. 정몽헌(鄭夢憲) 전 현대 회장과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 사장 등 24명이 동행하며 막걸리 300통과 건설장비도 함께 간다.막걸리는 포천 이동막걸리 등 8개사,10여종의 제품을 골고루 준비했다. 당초 예정됐던 소떼몰이는 농림부가 검역준비 미비 등으로 허가를 내주지않아 취소됐다. 정 전 명예회장은 27일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방북길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구상하며 조용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현대 관계자는 전했다.정 전 명예회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북한에서는 김 위원장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최대 안건은 2,000만평 규모의 서해안공단 부지 선정이다.김 위원장이 전에제의했던 신의주 대신 해주 또는 남포쪽을 부지로 선정해 줄 것을 간곡히부탁할 참이다. 금강산 관광종합계획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하고,북한 사회간접자본(SOC)시설 공사도 따낼 작정이다.그동안현대가 뚫어놓은 대북사업의 기득권이흔들리지 않도록 김 위원장을 상대로 못박아 두어야 한다. 현대로서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창구가 정부차원으로 넘어가면서 라이벌로 급부상하고 있는 삼성을 견제해야 할 상황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현대가 극비리에추진해 왔던 대북사업투자와 관련한 외자유치 등의 ‘선물보따리’를 내놓지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막걸리 협상’에 나선 정 전 명예회장의 귀국보따리가 주목된다. 주병철기자 bcjoo@
  • [50돌에 되돌아본 6.25](1)비운의 다리들

    우리에게 6·25전쟁은 무엇이었고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50년 세월동안 상쟁(相爭)과 배덕으로 얼룩졌던 한반도에 화해와평화의 여명이 드리워졌다.남북 상생(相生)의 물줄기가 용솟음치고 통일의빛이 어둠을 뚫고 내리비치고 있다.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쟁을 넘어평화로,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야 한다는 뜻에서 6·25특집을 시리즈로 마련했다. 1950년 6월28일 새벽 2시30분.칠흑같이 어두운 한강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고 화광은 일순간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다.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광진교가동강난 것이다.다리를 건너던 피란민 1,000여명도 수장됐다. 전쟁과 다리…. 다리는 땅과 땅을 이어준다.교류와 화해의 통로다.6·25 전쟁사에 등장하는다리는 예외없이 끊기고 찢어졌다. 한국 전쟁사에서 다리는 뺏고 뺏기는 격전의 장소가 아니었다.전진과 후퇴의 기로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작전상’ 끊은 것이 특징이다. 한강의 3개 다리와 함께 임진교,왜관교,금강교,대동강철교,압록강철교,평양승호리철교가 남진과 북진,후퇴 등 전세(戰勢)에 따라 엇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하면 도로와 철로는 곧 병참선(兵站線)이 된다.전쟁 초기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폭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쟁통의 다리는 피란민들의 피눈물이 어린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온 몸에 보따리를 이고 메고 들고 한강다리 난간에 매달린 피란민들의 행렬,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피란민이 망연자실해 강 건너쪽을 바라보는 모습들은 우리의 의식 깊숙이 각인돼 있다. 그러나 한강다리 조기 폭파는 국군의 퇴로를 차단,북한군의 포위작전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6·25 전쟁사는 대표적으로 ‘실패한 작전’이었다고기록하고 있다.당시 한강다리 폭파임무를 맡았던 최창식(崔昌植·대령) 공병감은 전쟁중이던 9월21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부산교외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낙동강변의 왜관교 폭파는 인민군의 워커라인(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낙동강방어전선)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이뤄졌다.미군제1기갑사단 호버트 개이 사령관의 “저 놈의 다리를 날려버려”란 한마디명령에 다리를 건너던 수백명의 피란민 대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파됐다. 6·25 전쟁사에는 폭파된 다리만 기록돼 있진 않다.특히 영도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자유의 다리는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되는 전쟁의 교훈’을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1934년 부산항과 영도를 연결하는 국내최초의 연륙교로 세워진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는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였다. “길을 잃고 헤매는 영도다리”란 가사로 전쟁의 아픔을 노래했던 ‘굳세어라 금순아’는 피란민들의 애창곡이었다. 영도다리 곳곳에는 사람을 찾는 벽보로 가득찼고 가족들을 기다리다 못해순간적으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잠깐만’이라는 푯말이 자살방지용으로 나붙어 있었다.다리 아래에는 교하촌(橋下村)이라고 불린 1,000여가구의 판자촌이 진을 쳤다.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 뒤쪽 사천을 가로지르고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경의선상행선 철교의 잔해로 남아 있는 자유의 다리 또한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휴전협정 조인 이후 남쪽과 북쪽으로 송환된 포로들이 건너기만 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던 다리였다.임진각에서 북쪽으로보이는 자유의 다리는 전쟁 와중에 상하행선이 모두 파괴됐으나 포로교환을위해 목조로 급조해 만들었다.1만2,773명의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자유 만세”를 외친 곳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다리들은 지난 50년 동안 다시 이어졌지만 당시 함께 찢긴상처와 안타까움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의 만남이전쟁통에 끊어진 남과 북을 연결시켜주는 ‘통일의 다리’가 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노주석기자 joo@
  • 남북 화해시대/ 수행원이 전하는 평양소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수행한 130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들도 얘기 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왔다.수행원들이 전해온 생생한평양 소식을 모았다. ◆만찬장서 자잣기 낭독 고은시인. 시인 고은씨(高銀·67·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는 15일 “북한도 이제까지의 대결구도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각성을 보여준 것 같았다”고 2박3일 동안의 방북소감을 밝혔다.이날 저녁 서울에 도착,청와대 연무관 뒷뜰에서 북한을 함께 다녀온 특별수행원들과 기념촬영으로 해단식을 대신한 뒤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 사이에 몇차례 합의서 작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언어’로만 남았지 진전이 없었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이번 방북에서채택한 남북공동선언은 공존의 인식을 새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대동강 앞에서’라는 제목의 장시(전문32면)를 낭독하여 분위기를 숙연케 했었다.“시는 그날 아침에 쓴 것”이라면서 “당초에는 낭독할 계획이없었으나 시를 썼다는 사실을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가 좌중에서 얘기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동명왕릉을 방문했을 때 큰절을 올린데 대해서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우리 시조”라며 자신이 동명왕과 같은 고씨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환히 웃었다.특히 북한에 머무는 동안 사회문화단체를 총괄하는 김영대 민화협위원장 겸 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만났다고 소개하고 “그에게 ‘통합문학독본’같은 것을 만들어 남북이 함께 공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문학독본’을 만드는 공동작업의 가능성에는 “8·15 이산가족상호방문이 성과를 거두고 양쪽이 공명을 얻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낙관하는 표정이었다.김정일위원장의 인상은 “처음 만났지만 생각과는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면서 “속에 있는 말을 결코 에두르지도,꾸미지도 않는 허심탄회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98년7월 보름 동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고씨는 “그 때와 지금은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이번에는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순간에 동참했다는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 회장.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왔다.두 정상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지난 90·98년 방북 때 주민들이 ‘천편일률’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반면,이번에는 그들 모두가 남측 인사들에게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했다는 점에서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개인적으로는 남북간 언론교류의 물꼬를 틀 계기를 마련한 것이 최대의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측 언론 3단체(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계획한 남북간 언론교류 제안서를 북측 기자동맹에 전달했는데 곧 답변을 줄 것이라는 전언을 들었다.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국회 회담 재개 문제를 요청했었다.그때는 남북회담 합의문이나오기 전이어서 회담 결과가 나오면 대답하겠다고 했었다. 양형섭 부위원장과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노동당 쪽에서 협의해 회답을 주기로 약속했다.앞으로 의장단 선에서 서로 연락을 할 것이다.이번에 내가 방북한 것도 이만섭 국회의장의 남북 의회교류 당부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신문에 난 것처럼 활달하고 소탈했다.식량난 등 북쪽 사정이한결 나아짐을 느꼈으며 북 인사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 남북한 여성이 갈라진 한반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자고 다짐했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환경운동 협력 등 여성교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북한의 탁아소시설은 남한에 비해 너무나 잘 돼 있었다.덕분에 여성의 49%가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북한여성들이 너무나 활동적이고 일인다역을 당차게 해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여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홍선옥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장,천연옥 여맹위원장은 자신의 힘으로 최고위치에 오른 유능한여성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 머리로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서 보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을 떠나오기 하루 전날인 15일 자정 청룡호텔에서 친척 2명을 극적으로상봉했다. 사업차 북한을 몇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가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더라. 방북일정이 빠듯해 고향땅(평북 영변)엔 못갔다. 이제 이산가족 만남이 테이프커팅된 거나 마찬가지다.북한 경제인 대여섯명과 한차례 경제인 회담을 가졌다.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를 보았다. □김민하(金玟河)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머물렀던 2박3일은 감격과 영광의 연속이었다.북측 동포들을 만나보니 남북 통일에 대한 큰 희망과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철학이 가져온 진효(眞效)다.남북한 7,000만 동포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측의 지도자들이 김 대통령의 통일 철학에 신뢰를 가졌다는 확신이들었다.작심하고 회담에 나온 것 같았다.대화 의지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서서히 화해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이완구(李完九)자민련 의원. 이번 평양 방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내 생애 최대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독의 브란트 전 총리가 말했듯원래 하나였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순안 비행장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뜨겁게 악수를 나눴던 순간은 마치 정지된 활동사진을 보는 듯했다.회담의 명칭은 남북정상회담이라기보다 가족상봉회담이라고 불렀어야 맞다.한 민족이라는 강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북측 인사들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성어린 진심으로 환대했다.통일을 바라는 의지였다.그동안 북측에 가졌던 이미지는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차범석(車凡錫) 예술원 회장. 55년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다.서로 머리맞대면 실마리가 풀릴 일을 왜 그렇게 오래 먼길을 돌아왔는지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방북의 성과물은 ‘통일문학전집’ 발간이다.남북한 작가의 작품100권을 싣는 전집발간은 북측 민화협과 협의를 끝냈다.예정했던대로 2002년까지는 완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방북길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그것은 환영·환송식에나온 시민들의 열광적인 표정들이다.우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나는 그들의 눈물이 모두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감격이었다.이번 정상회담은 끊어진 국토와 민족의 핏줄을 잇는 초석이 된 사건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어 파격적으로 환대했다.그동안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김 위원장은 대단히 이활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또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들어 있었다.평양시내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으며 궁핍해 보인다는 인상은 느끼지 못했다.출발전 북한 역사학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으나 이번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 회장.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의 확실한 물꼬를 튼 것 같아 경제단체장의 한사람으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투자보장 및이중과제방지,분쟁조정절차 등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경제단체든 기업이든협력할 준비가 다 돼있음을 함께 확인했다.북한 관계자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남북 경협을 통해 강대국으로 거듭나자”고 말했다.특히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정운업(鄭雲業)회장은 남북경제협력공동위를 통해경제협력을 구체화시키자고 강조해 인상적이었다.앞으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남북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 남북 정상회담/ 재계 ‘訪北 보따리’ 뭘까

    13일 대통령과 함께 방북길에 오른 재계 인사들은 북한측에 어떤 보따리를풀어놓을까. 대북(對北)특수를 노리고 ‘동토의 땅’으로 떠난 이들은 이번 기회를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화될 남북경협에서 선점의 최대 호기로 보고,북한과의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물이 나오기 보다는 탐색전이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 남북경협의 선두주자인 현대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실무총책인 강종훈 서기장을 만나 서해안공단 부지선정(해주)과 금강산 종합개발을 위한 그동안의 외자유치 결과 등을 설명하며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간다.이달말로 예정된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방북때 최종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통천의 경공업단지(3만평) 조성과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금강산철도 복원사업도 협의대상이다. ◆삼성/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은 98년부터 추진해 온 전자복합단지(50만평) 건설부지를 해주로 확정하기 위한 담판을 벌인다.매년5억∼10억달러씩 투자하고,관련 중소업체와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방북 일정도 마무리한다. ◆LG/ 대북창구인 LG상사는 가전제품 및 생활용품을 포함한 전자·화학분야의물류단지 건설계획을 북한측과 협의한다.경공업 분야가 제 궤도에 오르면 광물,임수산물,관광자원 개발과 공단건설도 추진할 계획이다. 남포에서 컬러TV를 추가로 생산하고,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일정으로 미뤄져왔던 백색가전제품 위탁가공사업 추진도 이번에 협의한다. ◆SK/ 이번 기회를 대북진출의 무대로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 아래 정유소나석유화학공장 합작건설 방안을 놓고 북한측의 의사를 타진한다. ◆경제단체/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투자를희망하는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을 연결해 합작사를 세우는 방안을 협의한다. 현대와 삼성이 각각 추진 중인 서해안공단과 전자복합단지 조성도 전경련이중재할 수 있도록 북측에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김재철(金在哲) 무역협회장은 위탁가공 활성화 방안과남북 공동으로 제3국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북한 관계자와 논의한다. 이원호(李源浩)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은 대북경협 창구역을 하는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들과 만나 8∼9월쯤 중소기업 관계자의 방북을 추진한다. ◆실향민 기업가/ 이북출신의 고려합섬의 장치혁(張致赫) 회장과 린나이코리아의 강성모(姜聖模) 회장은 이북 출신 기업인들의 대북투자를 적극 모색한다. 주병철기자 bcjoo@
  • 鄭夢憲회장 ‘귀국보따리’ 뭘까

    31일로 예정된 현대의 최종 자구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30일 일본 출장에서돌아온 정몽헌(鄭夢憲)회장의 ‘귀국 보따리’엔 뭐가 담겼을까. 정 회장과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은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에 28일까지강력한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밝힌 바로 그날 일본으로 훌쩍 떠났다. 현대는정 회장의 방일 목적이 외자유치라면서 성과를 기대했고,하루 먼저 귀국한김 사장도 정 회장이 ‘외자 보따리’를 들고 올 것임을 내비쳤었다. □SOC자본 유치 성공? 현대 주변에서는 이날 귀국한 정 회장이 방일 중 대규모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인 경인운하 건설과 대북 SOC사업에 일본을끌어들이는 데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이단렌(經團連)고위 간부 등을 포함해 재계 인사들을 지난달에 이어 다시 만난 데는 '모종의 합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므로 가사화된 성과가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정 회장은 지난 3월에는 중국 베이징을 방문,일본 경제계 인사가 주선한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만나 대북 SOC투자에 대해 논의했었다. 정 회장은또 계열 분리 예정인 현대석유화학에 일본의 미쓰이상사와 50 대50으로 공동 투자하기로 하고,경협자금 명목으로 3,000여억원의 차관도 도입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단의 대책 나올까 현대는 정 회장 귀국과 함께 증시에서 계열사 주가가활기를 되찾고 시장 환경이 다소 진정되자 정 회장의 이번 방일이 일단 큰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에 따라 정 회장은 31일 최종 자구책 제출때 일부 비상장사와 업무용·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외에 일본에서의 외자유치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병철기자
  • 뉴스피플 최신호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5월16일 발매,5월25일자)는 요즘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로비’와 ‘로비스트’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백두사업,고속철도사업과 관련,검찰수사의 배경과 이를둘러싼 로비활동의 막전막후를 자세히 다뤘다. 과외금지 위헌판정으로 고액과외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인터넷과외 대안론’이 새롭게 일고 있는 것과 관련,현황과 문제점 등을심층취재했다.최근 발견된 생체 리듬 지배 유전자 활동을 토대로 한 ‘인간생명활동의 비밀’도 흥미롭게 취급했다. 대우차 인수를 둘러싸고 GM과 포드간의 신경전이 날카롭다.한국 자동차업계에 유리한 ‘보따리’를 제시할 쪽은 어딘지 꼼꼼히 짚어봤다.또 7세이하의유아들도 성폭행 대상이 되고 있지만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방법이 전무한‘유아 성폭행’의 현주소를 긴급진단했다. 올해로 스무해를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의 이모저모를 현장 취재했다.또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16주년 행사
  • 공직비리 대대적 사정 착수

    정부는 3일 검찰,경찰,국세청,금융감독위,공정거래위,관세청 등 사정 관련기관간의 유기적 공조체제를 구축,공직기강 확립 및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대대적인 사정작업에 착수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대검찰청에서 김대웅 대검 중수부장,손영래 국세청 조사국장,최대욱 관세청 조사감시국장,이규식 경찰청 수사국장,이우철 금감위 기획행정실장,이한억 공정위 기획관리관,박상길 대검 수사기획관 등이 참석한가운데 ‘사정관련 기관 공직기강 확립 실무자 간담회’를 열고 효율적 사정활동을 위한 세부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달 24일 신광옥(辛光玉) 청와대민정수석 주재로 열린 사정관련기관 차관급 회의를 통해 범정부 차원의 공직 사정작업에 착수키로 한데 따른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해 열렸다. 회의에서는 우선 사정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각 기관별 중점 단속분야를 선정,기관별로 확정되는 대로 사정 작업에 돌입키로 했다.이에 따르면검찰은 공직비리,지역토착비리,민생비리 등을 맡고 국세청은 조직적인 탈세,금감위는 주가조작,공정위는 하도급비리,관세청은 마약밀수와 보따리상 밀수등을 담당한다. 국세청이 증여세 탈세 조사를 벌인 뒤 검찰에 수사의뢰할 경우 인력지원과합동조사 등 유관기관 공조대처 방안도 이날 함께 논의됐다. 검찰 관계자는 “각 기관 단위로 독자적 사정활동을 벌이되 합동조사나 인력지원이 요구될 경우의 공조방안에 관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남북 2차준비접촉 전망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에선 북측 입장이 주로 개진된다.첫 접촉때 우리 제의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이 구체화되는 자리다. 첫 접촉에서 우리측은 회담 의제및 절차에 대해 북측에 포괄적으로 설명했다.당시 북측은 기본원칙만을 밝힌 뒤 주로 경청했으며 ‘보따리’는 이번 2차 접촉때 풀어놓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이번 접촉에선 북측의 현안별 입장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접촉때 우리측이 이산가족문제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라며 생사확인·서신교환·면회소 설치 등을 제의한 것에 대해 북측 입장이 어떻게 나올지가 큰 관심사다. 정부 관계자들은 “정상회담의 날짜까지 ‘상층부’에서 합의한 이상,준비접촉은 커다란 어려움 없이 진행될 것”이라며 각론에서 북측의 협조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우리측 일부 제안에 대한 수정제의 등이 예상된다. 북측이 이번 준비접촉을 정상회담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한 절차논의에 국한하려는 듯한 태도도 보이고 있어 어느 정도까지 의제논의에 협조적일지도 관심사다. 또 우리측이 경호·의전·통신과 경제협력에 대한 별도 실무접촉을 제의해놓고 있어 이에대한 북측 반응도 주목된다. 별도 실무접촉에 응할 경우 준비작업에 더욱 속도가 붙게된다. 경호·의전·통신 등 절차 논의는 94년도 합의 전례도 있어 비교적 수월한접근이 예상된다. 경협 문제는 북측의 관심사항이지만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1차 접촉때 북측 김령성 수석대표가 제기한 ‘근본문제’에 대한 해석을 놓고 우려하는 의견도 있지만 북측이 외세와의 공조파기를 비롯한 소위 3개 선행실천사항 등 정치적인 문제를 강조해 회담 준비협상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상회담 개최날짜로 볼 때 대체적인 실무절차는 늦어도 5월 중순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 그래야 세부절차 논의,현장답사 등의 진행이 가능하다. 일정이 바쁘고 정상회담 개최의 대전제를 합의한 만큼 양측은 합의되지 않는부분은 뒤로 미루는 신축적인 자세의 협상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정상회담 합의후 변화 감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이후 북한의 대내외적인 변화 움직임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해 5개섬 통항 질서’ 선포후 서해안 일대 주요기지에 보강했던 군 장비를 후방으로 철수하거나,평시 상태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26일 “북한은 서해안 주요기지에 전진 배치했던 사거리 70km의 프로그-7 로켓을 후방기지로 철수했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기지에 배치돼 있는 사거리 80∼95km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전투태세에서 평시 상태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소속 8전대 경비정 10여척이 지난 연말부터 3월까지 실제 전투준비 태세 수준의 고속 기동훈련을 벌였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훈련 수준을 평시 수준으로 낮췄다”고 전했다. 정부는 특히 이런 조치들이 북한 군부의 대 남한 태도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이와 함께 해외공관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 배경과 의미를 주재국 정부에 설명하고 있다.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중국,러시아,오스트리아,폴란드정부에 남북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정상회담…정부 막바지 준비작업. 남북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을 하루 앞둔 26일 정부 관련부처는 막바지 준비작업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실무 담당자들은 청와대-통일부-남북대화사무실 등을 오가며 다각적 검토를진행했다.22일 1차 접촉시 우리측 제안에 대한 ‘북측 화답’의 강도를 가늠하면서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췄다. ■이날 남북대화 사무국에서 ‘실전상황’을 가정한 모의 시뮬레이션 회의를열어 예상되는 북측 대표단의 다양한 질의와 공세에 대비했다.비밀 유지를위해 모의 회담장 주변의 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도 감돌았다. 통일부측은 27일 2차 준비접촉시 회담의 전과정을 남북대화 사무국 내 CC-TV를 통해 지켜보면서 변화무쌍한 회담 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이에앞서 25일엔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정상회담 기획단회의(단장 梁榮植 통일부차관)를 갖고 부처별 의견수렴에 착수했다.청와대에서도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위원장 朴在圭통일부장관)가 2차 회의를 열어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준비 작업을 총괄 보고했다. ■외교부는 의전실과 정책실,북미국,국제통상국이 참여하는 ‘태스크 포스’를 중심으로 ▲의제선정 ▲의전준비 ▲주변 4강 협력 등 3대 목표에 초점을맞춰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장재룡(張在龍)차관보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기획단회의에 참석,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와 의전 원칙 등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2차 준비접촉장소 ‘통일각’. 제2차 준비접촉이 열리는 판문점 북측 ‘통일각’은 남측 ‘평화의 집’과대비되는 남북 전용 회담장이다.판문각 북서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연건평 460평에 지하 1층,지상 1층 건물로 지난 85년 8월 준공됐다.92년 5월부터북측 남북연락사무소로 사용,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열리는 대부분 회담이이곳에서 열렸다.당시 통일각의 연락사무소는 직원 5∼6명이 상주,직통전화2회선을 통해 남측과 연락업무를 수행했으나 북한이96년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키면서 연락사무소 간판도 내려졌다.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장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파트너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96년 11월 24일 판문점을 방문,통일각 등의 시설을 직접둘러보며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또 98년 6월 16일 정주영(鄭周永) 현대명예회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통일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통일각 바로 옆에서 북측에 인도되기도 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정부출연硏 연구회체제 1년/ 자율성‘경쟁력확보 개혁취지’흔들’

    *현주소와 과제. 정부출연연구소들이 흔들리고 있다.분야별 5개 ‘연구회 체제’에 편입된지 1년을 넘긴 출연연의 현주소다. 각 출연연 소속 연구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진 인상이다.때문에 분야별 연합이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재수술해야 한다는 의견도 서슴없이 표출된다. 인문사회연구회 산하인 통일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연구회 체제는 이미 실패작으로 판가름났다”고 단언했다.자율성 확보를 위해 단행한 개혁이 오히려 출연연의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연구회 소속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이를 “시어머니만 늘었다”는말로 요약했다.총리실,연구회,관련 부처,기획예산처 등으로 이중삼중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불평이었다.관련 부처로부터만 통제를 받았던 때가 그나마 나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연구회측은 “정부 부처를 상대하는 일을 연구회에 일임함으로써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전념토록 하는 것이 설립취지”라고 반박한다.그런 점에서상당부분 성과를 얻고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특히 “유사 연구기관간 협동 연구로 중복연구를 없애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인문사회연구회 이석휘 국장)는 지적도 있다. 나아가 연구회측은 ‘부처 친화적’ 연구에서 국가 전체를 내다보는 방향으로 연구의 질적인 변화가 이뤄지리라는 기대도 나타냈다. 그러나 정부출연연 연구원들의 얘기는 다르다.한 연구원은 “유관 부처와는 형식적으로 절연됐지만,실제 연구예산 배정권을 쥐고 있는 관계로 더 굽신거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통일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다른 각도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그는 “통일안보 분야는 정보가 생명인데 통일부와 고리가 끊어진 이후로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조차 제공받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고 하소연했다. 출연연,특히 자연과학계 연구소들은 연구회측의 출연연 평가시스템에 대해불신하는 눈치다.한 연구원은 “연구회 내에 전문적인 평가인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연구회측이 외부인사를 평가위원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럴 바엔 연구개발 과제에 정통한 관련 부처에서 하는 게 더 낫다는 논리도곁들였다.연구기관간 중복연구과제를 가리기 위한 사전심의기능 역시 아직정착되지 못했다는 중간평가다. 연구회측이 실질적인 연구비 배정권도 없이 겉도는 것도 문제다.출연연의입장에서 보면 연구과제를 따기 위해 여전히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여기에다 연구회와 총리실 등에 보고서 내는 행정업무만 늘어났다며 연구원들은 볼멘 표정이다. 물론 이같은 비판에 대해 정부나 연구회측은 연구회 체제의 전면개편은 아직 시기상조란 입장이다.연구회 체제가 이제 겨우 1년을 넘겼다며 “첫술에배부르겠느냐”고 받아넘겼다. 그러나 연구원들의 불만 토로가 아니더라도 연합이사회 체제는 어떤 형태로든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원을 떠나 업계나 학계로 간 인사들의 객관적인 지적이다. 구본영기자 kby7@. *연구원 이직러시. 새 천년을 맞고도 국책연구기관들의 이직 러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출연연들의 공식적인 구조조정이 일단락됐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지난해까지 대략 20% 정도 구조조정이 이뤄졌다.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생긴 파장이었다. 그러나 올들어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우 책임연구원급 이상 연구원 5명이 보따리를 쌌다.부원장을 지낸 엄봉성(嚴峰成) 선임연구원이 벤처기업 설립을위해 떠났다.다른 인사들도 대학과 민간연구소로 발길을 옮겼다. 자연과학계열 연구소들의 이직사태는 더욱 심각하다.우리나라 기초 및 산업과학 연구의 메카격인 대덕연구단지의 이직사태는 국책,민간 연구소를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다. 97년말 대비 지난 연말의 과학기술부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인력이 220명이나 줄어들었다.차세대동영상이동전화(IMT-2000)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 PCS 관련업체의 경우 지난 연말부터 현재까지 20% 가량의 인력이 자리를 비워긴급 인력수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를 연상케 하는 이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벤처기업이 황금알을 산출하는 엘도라도라도 되는 것일까. 연구원에 들어온지 8년차인 A박사의 연봉은 3,000만원 수준이다.그는 “공부를 택한 게 후회가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총리실의 한관계자도 “연구원들의 이직 사태는 보수 때문만은 아닐것”이라고 진단했다.자율성 등 근무여건이 좋은 교수직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분석에서 연구기관의 새로운 개혁방향을 알리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자율성이 바로 그것이다. 구본영기자. *연구회체제란. 정부출연연구소들을 각 유관 부처에서 독립시키는 작업은 새정부의 개혁 및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됐다.정부가 출연한 연구소들로부터 비효율과 저생산성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출연연 경영혁신 방안의 핵심은 이들을 관장하는 연합이사회를 설립하는 방안이었다.43개 출연연별 이사회를 전부 없애고 경제사회,인문사회 등 연합이사회를 설립하여 독립된 상설기구로서 각 연구기관을 운영한다는 발상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99년 3월15일 5개 연구회 체제가 공식 발족했다.경제사회,인문사회,기초과학,산업기술,공공기술연구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사회연구회 소속이고,통일연구원은 인문사회연구원 산하에 있다.이공계 분야에선 기초기술연구회가 중·장기 연구과제를,산업기술연구회가 산업화 기술을,공공기술연구회가 사회현안인 물·에너지 등 공공문제 해결을 위한 특화 과제를 맡고 있다. 각 부처가 담당하던 출연연구소 관리 업무를 형식적으로 연합이사회 성격의 이들 연구회에 맡긴 것이다. 그러나 정부출연연 설립·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 연구회를 관리 감독하는 실질적 책임은 총리실에 있다.따라서 출연연의 법적 주인은 총리실,정확히 말하자면 국무조정실인 셈이다. 현재 서초동 외교센터내에 5개 연구회가 독자 기구로 운영되고 있다.하지만 연구회의 권한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무엇보다 실질적 예산 배분권을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물론 연구회 출범의 가장 큰 명분은 정부로부터의 자율성 확보.그러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고위공무원이 차지하고 있어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본
  • 중국산 장뇌삼‘토종’둔갑

    장뇌삼(長腦蔘)과 인삼,참깨,참기름 등 한약재와 농산물 50여억원어치를 중국으로부터 몰래 들여온 뒤 국내산으로 속여 시중에 유통시킨 중간수집상과도·소매상 등 65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李德善)는 9일 한약업체인 H상사 대표 이재봉(李在鳳·44)씨와 S인삼 대표 윤태용(尹太溶·64)씨 등 8명을 관세법 위반 등의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한약재 중간수집상 우모씨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유모씨 등 3명은 약식기소하고 보따리상 50여명은 관세청에 통보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장뇌삼 2,400여본과 참깨 1.4t,참기름 1.8t,건고추 5.7t등 밀반입 농산물 10여t을 압수했다. 이씨는 98년 10월 중국을 드나드는 보따리상을 통해 중국산 장뇌삼 6,000여본을 본당 3,000∼5000원에 구입한 뒤 이 가운데 3,600본을 5,000만원에 도·소매상에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윤씨는 97년 3월부터 보따리상들이 밀반입한 중국산 미삼(인삼 뿌리) 9.4t을 원료로 제조한 인삼차를 국산품으로 둔갑시켜 시중의 면세점 등에 6억원어치를유통시켰다. 주병철기자 bcjoo@
  • 새달 ‘코리아 그랜드세일’에 관광객 17만명 유치

    일본 운수성의 초청을 받아 현지를 방문하고 있는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의 관광 세일즈 보따리가 두둑하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박장관은 26일 현지 여행업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오는 4월7일부터 한달동안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에 일본 관광객 17만명을 모집해 한국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니카이 토시히로(二階 俊博)운수상에게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한국의 남해안과 일본 서해안은 물론 중국까지 연계시키는 크루즈 관광상품을 개발할 것을 제안,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센다이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이와무라 사토시(岩村敬)운수성 항공국장에게 국내선 공항인 하네다 공항의 서울 직항로 개설을 거듭요청해 전향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오사카에서 열린 나카소네 히로부미(中曾根 弘文)문부상과의 간담회에서는 2002년 3∼7월 양국간 국보급 문화재 교류전시회를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오사카시립박물관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임병선기자 bs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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