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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사진개척자 나다르 걸작전

    ◎오르세미술관,1850년대 백50점 모아/세계최초 항공촬영·사진인터뷰로 유명 초기사진사의 개척자인 나다르(1820∼1910)의 사진 작품전이 프랑스 파리시내 오르세 미술관에서 9월11일까지 석달간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회에서 그의 걸작이라할수 있는 「사라 베른하르트」등 전성기인 1854년부터 1860년까지의 작품 1백50여점을 볼 수 있다. 그의 본명은 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숑이지만 청년기에 파산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신문들에 「나다르」라는 필명으로 기고를 하면서부터 나다르가 아예 본명이 되다시피했다.그래서 그는 생존시는 물론 사망후에도 여전히 나다르로 통한다. 당시 그와 절친했던 작가 빅토르 위고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봉투에 주소도 쓰지 않고 나다르라고만 썼으나 파리의 우편배달부는 정확히 나다르의 집에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나다르가 초기 사진사의 개척자로 꼽히는 것은 당시 대부분의 초상 사진이 뻣뻣하고 격식을 차린 자세로 촬영됐는데 그는 여기서 탈피해 자연스런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비극배우 베른하르트의 어깨를 드러낸 모습을 천사같이 담은 사진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뛰어넘어 경악을 불러일으켰다고 기록돼 있다. 1854년 파리시내에 스튜디오를 처음 연 나다르는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했고 특히 유명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많이 담았다. 시인 보들레르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찬 몽상가로,화가 마네는 거의 야성적일 정도의 강렬한 시선을,드 뒤브로는 몸짓에 중점을 둬 그가 팬터마임 배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수 있을 정도로 「살아있는」 사진을 찍었다. 나다르는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 인물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했고 명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그래서 그는 명암을 완벽할 정도로 이용한 빛의 명인이자 감정과 본성의 연출가로 불렸다. 나다르는 불굴의 개척자 정신으로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을 많이 했다.1855년에는 지도제작과 측량에 사진을 이용하기 위해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세계최초로 항공사진을 찍었다.지하납골당에 들어가 사진을찍었는가 하면 과학자 유진 세브렐이 말하는 모습을 21장의 사진에 담은 최초의 「사진 인터뷰」를 만들어내화제가 됐었다.
  • 초기인상파 그림 파리에 모였다/팔레미술관

    ◎마네·드가등 명화 1백80점 특별전 전세계에 있는 초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파리에 모인다. 파리의 그랑 팔레 미술관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19세기 후반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모두 모아 「인상파와 그 기원」이라는 대대적인 기획 전시전을 23일부터 열고 있다. 세계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상파의 마네·모네·피사로·세잔·르누아르·드가등 화가들 작품 1백8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사물을 구조에 따라 묘사하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방법을 과감히 탈피하고 눈에 띈 순간의 모습을 그리려 시도했던 1859년부터 1869년까지 10년간의 인상파 초기화가들의 작품들.당시 아카데미와 살롱에서 배척됐던 「혁명적」작품들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모스크바,스톡홀름등에 소장돼 있는 이 미술품들이 1백40여년만에 집결되는 셈이다. 그랑 팔레의 이번 전시회 기획 취지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명을 하는 것이지만 파리가 예술의 중심임을 다시한번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15세기에는 피렌체,17세기에는 로마가 유럽 미술의 중심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파리가 미술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몽마르트의 테르테르 광장에서 무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화실을 박차고 나온 인상파 화가들이 정착시킨 새 풍속이다.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초상·풍경·바다경치·생활정경·정물·나체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젊은 부인의 초상」「풀밭위의 식사」「스페인의 가수」등이 있다.마네는 매일 하오 2시부터 2시간동안 비평가인 보들레르와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신의 미술세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들레르로부터 「현대적인 생활을 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인상파」라는 이름을 낳게 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등이 전시돼 인상파의 역사를 알수 있게 해준다. 부드러운 터치와 밝고 감미로운 색깔로 주로 인물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한길」「목욕장 풍경」등과 드가의 판화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화가들이 마치 다시 모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새로운 소재와 화법으로 기존 화단에서 배척받아 살롱에 등장하지 못하고 「낙선자 전시회」라는 특별전시회에 전시됐던 작품들이 살롱에 다함께 등단하는 것이다.
  • 그림자인형극 자료 전시관 “북적”/독일 전용공간에

    ◎이집트·중국등 소도구 수백점/“매혹적 신비감”… 유럽에 큰 반향 전세계에 있는 초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파리에 모였다. 파리의 그랑 팔레 미술관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19세기 후반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모두 모아 「인상파와 그 기원」이라는 대대적인 기획 전시전을 지난달 23일부터 열고 있다. 세계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상파의 마네·모네·피사로·세잔·르누아르·드가등 화가들 작품 1백8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사물을 구조에 따라 묘사하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방법을 과감히 탈피하고 눈에 띈 순간의 모습을 그리려 시도했던 1859년부터 1869년까지 10년간의 인상파 초기화가들의 작품들.당시 아카데미와 살롱에서 배척됐던 「혁명적」작품들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모스크바,스톡홀름등에 소장돼 있는 이 미술품들이 1백40여년만에 집결된 셈이다. 그랑 팔레의 이번 전시회 기획 취지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명을 하는 것이지만 파리가 예술의 중심임을 다시한번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15세기에는 피렌체,17세기에는 로마가 유럽 미술의 중심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파리가 미술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몽마르트의 테르테르 광장에서 무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화실을 박차고 나온 인상파 화가들이 정착시킨 새 풍속이다.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초상·풍경·바다경치·생활정경·정물·나체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젊은 부인의 초상」「풀밭위의 식사」「스페인의 가수」등이 있다.마네는 매일 하오 2시부터 2시간동안 비평가인 보들레르와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신의 미술세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들레르로부터 「현대적인 생활을 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인상파」라는 이름을 낳게 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등이 전시돼 인상파의 역사를 알수 있게 해준다. 부드러운 터치와 밝고 감미로운 색깔로 주로 인물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한길」「목욕장 풍경」등과 드가의 판화작품들도 볼 수 있다.이 전시회는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이 마치 다시 모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새로운 소재와 화법으로 기존 화단에서 배척받아 살롱에 등장하지 못하고 「낙선자 전시회」라는 특별전시회에 전시됐던 작품들이 살롱에 다함께 등단하는 것이다.
  • 불 문고판 「리브르 드 포슈」/발간 40년… 모두 7억권 팔려

    ◎“호주머니책” 시장 38% 점유/지난달 9천6백11번째 「감정의 표류」 펴내 프랑스의 이세트 출판사가 내는 유명한 문고판 책 「리브르 드 포슈」(호주머니책)가 나온지 올해로 만 40년이 됐다.이 문고판 도서는 지난 40년동안 모두 7억권이 팔렸으며 지난해 팔린 것만도 1천8백만권이나 된다.19 53년2월9일 처음 나온 이 문고판의 첫 작품은 피에르 브누아의 소설 「쾨니히 스마르크」였으며 지난달 9일에 나온 이브 시몽의 1991년 메디치상 수상 소설 「감정의 표류」는 9천6백11번째 책이다. ○에밀졸라 판매 1위 「리브르 드 포슈」40년 역사를 통해 가장 책이 많이 팔린 저자는 에밀 졸라로 1천만권 판매기록을 세웠다.그 뒤로는 ▲에르베 바쟁(9백만) ▲프랑수아 모리아크(7백만) ▲기 드 모파상(6백만)▲콜레트(5백만) ▲애거사 크리스티(4백50만) ▲알랭­푸르니에(4백20만) ▲쥘 베른(4백만) ▲모리스 르 블랑(3백50만) ▲베르코르(3백10만) ▲알퐁스 도데(3백10만) ▲오느레 드 발자크(3백만) ▲크리스티안 로슈포르(2백50만) ▲지네트 마티오(2백30만)▲크리스틴 아르노티(2백만) ▲마리 카르디날(2백만) ▲레진 드포르주(2백만) ▲샤를르 보들레르(1백80만) ▲폴­루 쉴리체르(1백50만)등이 따른다. 그러나 메그르 경감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로 인기높은 조르주 심농은 문고판을 싫어해 「누렁이 개」하나만을 문고판으로 내고 있다.주요 작가의 주요 작품이 다 문고판에 들어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반면 이브 시몽의 「무지개 남자」는 당초 3천권밖에 팔리지 않았으나 「리브르 드 포슈」로 나오자 6만권이 팔렸다. 문고판은 책의 크기를 작게 하여 쉽게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값을 싸게 하여 누구나 큰 부담없이 사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두가지 필요에서 나온 것.영국서 시작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활발했다.「리브르 드 포슈」도 미국의 「포켓북」을 본뜬 것이다. 「리브드 드 포슈」의 최초 책임자는 앙리 필리파키였다. 필리파키는 인쇄및 제책과정의 개선을 통해 책값을 싸게 할 수 있었다.다른 책이 구화폐로 6백프랑일 때 1백60프랑의 파격적인 정가를 매겼다.이것이 가장 큰 성공의 열쇠였다.시각적으로도 표지에 화려한 색채를 써서 눈길을 끌었고 스스로 디자인하여 추리소설을 고양이,고전작품은 깃펜,역사소설은 탑,실용도서는 열쇠그림으로 나타냈다. ○파격적 염가로 첫선 처음 필리파키의 제안에 냉담했던 큰 출판사들이 그의 놀라운 성공을 보고 곧 「리브르 드 포슈」와 손잡아 이 문고판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다른 문고판들도 쏟아져 나왔다.그러나 「리브르 드 포슈」는 어려운 시장 경쟁을 겪으면서도 프랑스 문고판 시장의 38%를 지키고 있고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한권의 값은 우리돈으로 약4천5백원이며 개봉관 영화관람료의 절반쯤 된다.
  • 세밑 화랑가 3가지 이색전 눈길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이시대,우리의 건축전/19C이후 독특한 사진미학 소개/「프랑스」/TV 등 대중매체 활용 문명비판/「압구정」/건축의 문화적 한계성극복 탐색/「이시대」 평소 접하기 힘든 색다른 전시회 3가지가 연말 화랑가를 장식,문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12∼30일),갤러리아미술관의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12∼30일),동숭동 인공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12∼24일). 순수미술에서 소외돼있는 사진과 건축,그리고 한가지 장르를 꼬집기 힘든 여러 장르를 혼합전으로 구성한 이들 세 전시는 상업성이 앞선 화랑문화에 염증난 관객들에게는 청량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은 세계사진사의 초기인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초상화 풍경 누드 의상 삽화 및 건축사진 등을 망라했다.마네에서 보들레르에 이르는유명예술가와 명사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은 최초의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의 작품부터 70년대 파리의 컬러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작가 13명의 작품 2백20점이 소개되고 있다. 작가들은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이브 몽탕이나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화려한 연예계의 스타들을 독특한 사진미학으로 화면위에 생생하게 떠올렸다.또 파리의 옛모습,히피축제,대중오락의 장면들이 즐겁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이 전시는 시대변천에 따라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변화돼가는 빛과 색의 절묘한 관계,그리고 한 문명의 이기가 어떻게 사람과 기계의 눈을 결합해 오묘한 영상을 낳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서울 압구정동거리 중심부에 있는 갤러리아미술관에서 열린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은 흔히 「욕망의 해방구」로 불리는 압구정동의 문화풍속도를 조명하고 있다.화가 사진작가 건축가 평론가 시인 비디오아티스트 디자이너등 여러분야 예술인들이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새로운 개념의 다장르의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취했다. 흥미위주의 시각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주목돼온 압구정동문화를 본격적 문화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자리로 다양한 방식의 전시작 1백여점이 소개되고 있다.김복진 김환영 박불똥 서숙진 신지철등 화가와 건축가 정기용,디자이너 박혜준등 12명이 출품한 이 작품들은 대부분 TV와 광고등의 대중매체를 메시지 전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압구정동문화를 문명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들은 물질로서의 미술품이나 권위와 신화에 의존하는 미술개념을 철저히 거부한다.이들은 곧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상업적 이미지와 일반대중 매체로 채워지고 있음을 압구정동의 문화해부를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숭동의 분위기있는 전시공간인 인공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은 국내 건축인들의 모임인 「4·3그룹」의 회원전이다.지난90년 결성된 「4·3그룹」은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14명의 건축가들이 20세기 마지막 10년의 한국현대건축을 주목하기 위해 모인 젊고 건강한 건축인그룹.출신학교와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구분없이 우리시대의 문화와 건축,사회상황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기위해 모인 이들은 매달 세미나를 갖고 토론으로 건축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탐색해 왔다.그룹결성이후 회원들의 첫 작품발표 자리가 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건축가가 규방의 건축에서 벗어나 현대건축의 그 어떤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중요한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시인 정현종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사물의 핵심 꿰뚫는 파격적 시어 계발/「도시기질」 집착… 신선한 지적감수성 돋보여/자제된 행동·감정처리… 「침묵의 미」에 눈뜬 사색형/생명있는 모든것 포용할 자세로 시작몰두 「특이한 지적 예리성」과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세련된 형상화 작업」­. 65년3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씨의 화려한 추천사와 함께 정현종이 문단에 등단했을 때는 그는 당장 젊은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경쾌한 에피큐리안」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빛나며 아름다웠던 추천시 「독무」는 젊은 날의 추억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남겨져 잊을수 없는 명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후 신촌역 부근이나 태평로 순화동 인사동 남산길등 그가 생계를 위한 직장을 전전하던 무렵 그는 서울의 어느 길목에 서있어도 당황하며 망설이는 모습,겨울날 빈들에 홀로선듯 눈가에 외롭고 춥고 공허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보고 시인 고은씨는 「수묵같은 눈동자」라 했고 평론가 김현은 「깨끗하고 맑은 눈」이라 했다. 눈끝이 치켜올라간,그러나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속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이 단순하게 「마음의 창」같은 눈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색의 깊이를 짚어볼수 없는 신비감 때문에 그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남에게 나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려는 겸허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명철의 기색인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지나 여전히 싱싱한 탄력성을 지닌 시들이 「샘처럼 솟아나고 꽃처럼 피어나자」그의 눈빛은 허공 한 끝을 스치는 짧은 허무나 명철의 멋이 아닌 인간과 사물을 향해 직관으로 치닫는 눈빛,그래서 그의 시마저도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의 눈빛에서 빛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이상학적 초월 추구” 그가 사랑해 마지않고 또 그를 끈질기게 지켰던 김현도 「정현종은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구는 에피큐리안」이라 했고 이 「에피큐리안」속에는 그의 시적 공간과 구조의 한계를 밝히려는 의혹이 다분히 숨겨져 있었으나 「한 시인이 자기특유의 시적 표현방법을 가지고 시적으로 높은 경지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그런 의미에서 정현종은 「한국 현대시의 표현법과 소재 면에서 큰 충격을 준 시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사막에서도 불 곁에서도/늘 가장 건장한 바람을,한끝은/쓸쓸해 하는 내 귀는 생각하겠지,/생각하겠지 하늘은/곧고 강인한 꿈의 안팎에서/약점으로 내리는 비와 안개,/거듭 동냥 떠나는 새벽거지를,/심술궂기도 익살도 여간 무서운/망자들의 눈초리를 가리기 위해/밤 영창의 해진 구멍으로 가져가는/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을,/…. 「곧고 강인한 꿈」 「약점으로 내리는 비」 「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등등 파격적 시어들은 서정시와 향토시에 익숙해있던 독자들에게 느닷없는 경이를 안겨주면서 「사물에 대한 신선한 감수성과 독특한 서구적 조사법」이란 김현의 호평에 한결같이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정현종은 전에도 그랬지만 후배들과 그의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지금도 「그의 유년시절을 완강하게 숨기고」그의 시의 고뇌가 주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이미 문학에서 「침묵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시」이며 「시는말이 배제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임을 알고 있었거나 「시는 시 자체일뿐」시를 이루는 배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뜻으로 이를 묵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어쨌든 그는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시외엔 다른 말들은 별로 늘어놓지 않으려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경기도 고양군 화전에서 보냈다.대광중때부터 다시 서울에 올라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그이전 10여년을 서울 변두리에서 농촌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 와서 도시에서 세련되어 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에서 보듯 완강하게 도시기질을 고집하는 형이다. 꾸밈없이 깍듯한 예의,낯선사람에 대한 낯가림,그러면서 자신의 할 바를 과장하지 않고 단정하게 해낸다. 집안은 엄격한 가톨릭 가문으로 가톨릭 본명은 알베르토.그러나 대학시절 채풀시간을 자주 걸러 칼바르트와 니버에 관한 리포트를 추가로 제출하여 뒤늦은 정식졸업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 살았던 만리동고개,카바이트 불을 밝혀놓고 책을 빌려주는 서점에 드나들면서 그는 보들레르의 「여인들의 술」처럼 「달랠길 없는 뜨거운 섬망」의 술대신 왕성한 독서에 빠져 그의 손가락이 넘기는 책장은 「슬기로운 회오리바람의 날개」였으며 그는 그 날개를 타고 「몽상의 천국」을 마음껏 누비는 사춘기를 보냈다. 종로2가 르네상스 음악실에선 바하의 「마태수난곡」에 탄복하여 무릎꿇었고 영화 「로얄발레」를 보고는 「육체가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가」란 충격에 그는 「그 충격이 번개처럼 와서 내 자신의 육체에 우뢰로 흐르다가 감동의 전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발레에 미쳐 「이사도라 던칸 자서전」서문을 써주는등 춤은 마침내 「꽃의 침묵」이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악·춤에 심취하기도 그러나 춤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은 문학소년시절 누구가 접할수 있는 흔한 경험이겠지만 연대 숲에서의 그의 존재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만은 이 시인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수가 있다. 그는 수줍어하는 성격탓에 결핏하면 혼자서 울창한 숲속을 거닐었고 그날도 우연히 그속에 앉아있다가 돌하나를 집어 숲 저쪽으로무심하게 내던졌다고 한다. 「숲 위쪽에서 던진 돌은 저아래 어디엔가 떨어졌다.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지구무게만한 어떤 느낌이 마치 지진처럼 내속으로 지나가는걸 느꼈다.즉 내가 방금 던진 돌에 의해,나에 의해,여기서 저기로 옮겨진 돌에 의해 우주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그것이었다.내가 던진 돌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 그 소리는 그의 귀를 「깊이」열어주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아마도 그의 육체가 땅에 떨어질때까지 그 소리를 듣게 되리란 것이다. 그는 부모님 타계후 집에서 나와 신촌에서 혼자서 자취를 했다.이 자취방에서 김현 김치수 김승옥과 어울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꽁치안주와 소주에 빠져 그들은 문학을 논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72년 첫시집 「사물의 꿈」을 민음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으로 인해 그는 문단데뷔이후 처음,아니 난생처음으로 말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게 됐다고 자랑한다. ○자아·우주에 대해 사색 이 시집은 김현 김치수와 김병익 김주연 이청준 홍성원 황동규 황인철등 평론가 작가 시인 친구들과 「잿빛먼지 황급하게 불어대는 좌절감의 청량리 부근」에서 밤마다 술잔앞에서 내통해 마지않던 문단선배 고은씨가 돈을 모아서 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은씨는 그가 시를 쓰지않으면 「시 쓰기가 얼마나 힘드는가」를 알면서도 그를 미워할만큼 「우리시대의 언어의 정령」과 만나고 있음을 자축하기 위해 그가 시집내는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요즘도 술을 마신다.문지(문학과 지성사)사람들과,또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과 호프집에도 간다. 단지 좋아하는 술을 평생동안 즐겨마시기 위해 폭음,폭주는 삼간다. 또 어느 자리에서나 두드러지지 않으려 든다.처신하는 바를 적절히 자제하고 운신의 폭을 파급시키지 않는다.웃음소리도 말소리끝에 「하,하,하,하」라고 문장을 읽는 것처럼 시늉만 할 뿐이다. 기계에 대해선 도무지 무지하여 다른 작가 교수들은 수년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는 오래지녀온 만년필 「쉐퍼」로 글을 쓴다.17년쯤 살고있는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신촌까지 운전을 할줄 몰라 버스나 택시를 타고있다.가족은 부인 이유미씨와 그리고 아들 민우(연대4). 이렇게 감정내색을 좀체 하지않는 그도 89년 대학후배이자 제자인 시인 기형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땐 서대문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남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새벽 2시까지 남아 허공에 잠깐 눈을 돌리는듯한 문단초기의 공허한 그늘을 눈가에 드리워 보였다. 다음해 그의 친구 김현의 죽음은 너무나 허탈하여 도무지 실감할수 없는 듯,「너는 아프냐…너는 아프구나」를 되풀이하더니 이른바, 맥주거품은 늘 왕관모양!/구름모양!부풀어 올랐고/그야 우리는 왕관부터 구름을 마셨으며/…의 김현을 위한 유명한 「황금취기」시리즈를 남기고 있다.김현은 문단의 「별」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문단전체의 통한이었다. 본래 익살스럽거나 짓궂은 구석은 없으나 그는 날이 갈수록 술을 마셔도 말을 줄이고 있다.그는 시인으로 사는동안 「상투적으로 사고하지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히 바라보는자」 「불가능을 꿈꾸는자」이고자 꿈꾸는지도 모른다.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록을 번역하는 동안 말이 말하고자 하는 한계를 알게되었고 말의 그런 모습에 절망한 나머지 「침묵」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그의 두 눈은 이제 「아는것」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로워져 요즘은 인간과 사물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는 인류애의 눈빛,눈빛으로 비쳐오는 시가 아닌,삶에 대한 분노와 파란과 비애의 극복이 담긴,심장을 울리는 뜨거운 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 보 ▲1939년 12월 서울 용산 출생 정재도씨와 방은련여사의 3남1녀중 셋째(차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 「독무」「화음」「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데뷔 ▲66년 「사계」동인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70∼73년 서울신문사 기자 ▲74∼75년 미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자작시 「고통의 축제」영역 참가 ▲75∼77년 중앙일보기자 ▲77∼82년 서울예전 교수 ▲82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핀란드 헬싱키대 개최 「현대문학 포럼」참가 ▲90년 샌프란시스코 휘트랜드재단주최 「문학회의」참가 ▲82년∼현재 연세대국문과교수 ▲72년첫시집 「사물의 꿈」(민음사),제임스 볼드윈 「또 하나의 나라」번역 출간,로버트 푸르스트·예이츠시선집 번역 ▲74년시선집 「고통의 축제」 ▲75년산문집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78년시집 「나는 별아저씨」(민음사) ▲79년크리슈나무르티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번역 출간(정우사) ▲82년시론집 「숨과 꿈」(문학과 지성사) ▲84년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 지성사) ▲89년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산문집 「생명의 황홀」(세계사),파블로네루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세계사) ▲92년 시집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이 시집으로 이상 문학상수상)
  • 외언내언

    유명한 도박사 데이비스에게도 임종이 다가왔다.파리의 한 병원.그에게 의사가 말했다.『내일 아침 8시를 넘기기가 어려울 듯 싶소』.떠나는 의사에게 그는 맥없는 소리로 『선생님,내기할까요.내일 아침 9시까지 내가 살면 5기니를 내야 합니다』◆대도박사다운 여유가 있다.멋도 있다.하지만 아무리 여유있고 유머있는 데이비스라도 우리나라 도박판 실태를 듣는다면 잠시 넋을 잃는 것 아닐지.판돈 억대의 도박단이 예사로 적발되어 오는 것 아닌가.엊그제 적발된 1백억대 도박단에는 경리 여직원까지.개인 어음을 도박 자금으로 쓰고 나중에 은행에서 현금결제하는 판이었으니 그렇잖겠는가.며칠이 멀다 하고 그런 큰 도박단이 계속 적발되어 온다.◆고주일척이란 말이 있다.「송사」(구준전)「원사」(백안전)등에 나오는 말.도박에서 계속 잃기만 한 사람이 마지막에 그가 가진 것 모두를 걸고 단판승부하는 경우를 가리키면서 쓰인다.이게 망조.그래서 미인아내를 넘겨주는 경우도 있었고 요리집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하지만 그게 도박심리.잃은 것 찾을 욕심에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만다.◆도박의 해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적잖이 보아온다.그러면서도 『인생살이의 참된 매력은 하나밖에 없다.그건 도박이다』고 하는 보들레르의 말에 이끌린다.그의 실어증등 비참한 말로가 도박에도 일인이 있었음을 외면하면서.정치인도 대학교수도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빠져든다.그러지 않아야할 가정주부까지도.후회의 눈물을 흘릴 때는 이미 「때는 늦으리」.하건만 그때까진 정신을 못차리지 않던가.◆도박은 도박외적인 반사회성까지 동반해서 사회적으로 심각해진다.사기·정신이상·자살·이혼·노름빚 살인 등등.그런데도 더 확산되고 규모는 커져간다.이 또한 병든 사회의 표상인가.
  • 원로 불문학자 김붕구씨

    한국 불문학계의 원로인 김붕구씨(서울대 명예교수)가 1일 상오8시 서울 영등포시립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주요저서는 「작가와 사회」 「보들레르」 「불문학산고」를 남겼으며 유족으로는 미망인 윤정선여사(64)와 1남3녀가 있다. 발인은 3일 상오10시 장지는 미정. 연락처 영등포시립병원 영안실(634­9301).
  • 김붕구선생 영전에

    김붕구선생님,오늘 아침 세상을 뜨셨다는 비보를 받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일찍이 선생님께서는 「불문학 산고」라는 책을 통해서 이 땅에 앙드레 지드,앙드레 말로,생텍쥐페리 등의 프랑스 작가들을 소개하시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성과 행동의 덕목을 강조하심으로써 전후의 가치체계가 흔들리고 있을 때 많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한국문단에서 참여·순수의 논쟁이 일어났을 때는 「사회적 자아」와 「창조적 자아」의 구분을 주장하면서 사르트르의 참여이론을 공박하여 많은 제자들로부터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으시면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잃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부모와 같은 엄격함과 관대함을 보이셨습니다. 그후 선생님께서는 보들레르의 미학과 시 세계,그리고 평전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보들레르」를 완성하셨습니다. 이 책은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논쟁적인 문제들이 문학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어떤 방식의 해결에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연구서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후학들에게 외국문학을 어느 수준에서 전공할 수 있는지 몸소 보이셨습니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 선생님은 1년 3백65일 하루도 연구실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30여년의 학자생활 가운데 한번도 외도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10년전 선생님께서 급작스럽게 넘어지셨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회생하시어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몸소 보이셨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못내 아쉬워한 것은 「쥬네브학파」와 같은 「서울학파 ecole de Seoul」의 형성을 보지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저희가 감동한 것은 지난 10년간의 투병생활 가운데도 선생님은 언제나 책을 떠나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무서우면서도 다정한 스승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은 불문학계는 지금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저희는 통곡합니다. 선생님,부디 고이 잠드소서. 1991년 2월1일 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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