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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들레르가 극단을 선택한 날 연인에게 보낸 편지 3억원에 경매

    보들레르가 극단을 선택한 날 연인에게 보낸 편지 3억원에 경매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67년)가 1845년 자살을 시도하기 전 연인에게 썼던 편지가 경매에서 23만 4000 유로(약 3억원)에 팔렸다. 프랑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오스낫(Osenat)은 당시 24세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시인이 6월 30일 혼혈의 연인 잔 뒤발에게 생활고를 털어놓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쓴 편지가 4일(현지시간) 낙찰 예정가의 세 배가 넘는 돈에 팔렸다고 밝혔다. 편지에는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때에는 난 죽어 있을 것”이라며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고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 일어나는 부담을 견뎌내지 못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유산을 받았으나 탕진했던 보들레르는 편지를 쓴 날 곧바로 자살을 감행, 가슴을 칼로 찔렀으나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결심한 그가 파리 현대미술전을 소개하며 쓴 평론은 날카로운 판단력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으며, 그가 이미 현대 예술의 방향을 읽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1845년에 집필했다. 그 뒤 22년을 더 살아 ‘악의 꽃(Les Fleurs du Mal)’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겨 프랑스 시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867년 매독으로 세상을 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성곤의 시시콜콜] 약인가 마약인가, 마리화나

    대마초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1만년 전 도자기에서 대마의 섬유질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대체로 대마는 우리 삼베처럼 섬유나 기름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3000년 전부터 중국과 인도에서 의료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로마시대에도 대마로 만든 밧줄의 효용과 진통 효과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게 서양에 전해져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등이 대마 예찬론을 펴는 등 대마 흡연이 증가한다. 그렇지만, 대마에 대한 폐해가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에서는 1914년 아편과 코카 재배를 규제하면서 대마도 끼어들게 된다. 1937년에는 대마초를 불법화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때도 논란이 많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대마를 불법화한다”거나 “대마의 뛰어난 섬유 가치에 위협을 느낀 목화 재배 농가 등이 압력을 넣었다”는 등의 반대 목소리가 거셌지만, 법안은 통과됐다. 이후 전 세계에 대마에 대한 규제가 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월남전에서 마리화나(대마초) 사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부상자들은 물론 군인도 마리화나를 애용(?)했다고 한다. 대마의 의료적인 효능 때문에 의료용으로는 허용하라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 술이나 담배보다도 덜한 만큼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캐나다가 지난 17일(현지시간) 0시부터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우루과이에 이어서 두 번째다. 이날 기호용 마리화나 소매점에는 줄지어 기다리던 구매자들이 마리화나를 손에 쥔 뒤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미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 세관은 캐나다에서 반입되는 마리화나는 압수한다고 여행객들에게 고지했다. 연방법과 주법이 따로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기호용 마리화나는 캘리포니아 등 9개 주(州)에서 합법화했고, 의료용 마리화나는 30개 주에서 허용했지만, 미 연방정부는 엄격하게 마리화나 유통·제조를 통제하고 있다. 대마의 유해성 논란은 쉽게 사그라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마가 인체에 해롭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캐나다 몬트리올 연구진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대마가 어린이의 인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학습능력 저하와 주의력 결핍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마의 문제도 중독성이다. 한번 손을 대면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마가 아편이나 코카인 등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약을 접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마가 천식 등 폐질환과 파킨슨병, 뇌전증(간질) 등 수많은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대마는 술이나 담배보다 훨씬 끊기 쉽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월남전 때 마리화나를 접했던 미군들이 귀국하고 나서 쉽게 대마와 절연한 것을 예로 든다. 이들의 주장이 모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츰 대마의 의료 효과는 차츰 인정을 받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대마 합법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미약하다. 대신 의료용 허용에 대한 요구는 지속해 왔다. 국내에 마리화나가 본격 상륙은 주한미군과 관련 있다. 이후 히피 문화가 들어오면서 연예인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피워왔다. 그러다가 곤욕을 치른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중현, 조용필은 물론 이장희 등 쟁쟁한 연예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요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불꽃 송사를 벌이는 김부선씨도 대마와 인연이 깊다. 대마 때문에 5번이나 처벌을 받았다. 최근에는 젊은 연예인들도 대마와 엮이곤 한다. 지드래곤과 빅뱅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지난 9월 대마를 의료용으로 사용할 길을 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뇌전증이나 알츠하이머병(치매) 등에 대마를 활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호용 대마 허용은 언감생심이다. 캐나다의 마리화나 합법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있다면 실망할 일이지만, 우리 국민과 주무 부처, 국회의 정서 등을 감안하면 아주 먼 훗날에나 기대해 봄직한 일이겠다. 김성곤 논설위원 sunggone@seoul.co.kr
  • 이 시대의 ‘젊은 어른’… 별이 되다

    이 시대의 ‘젊은 어른’… 별이 되다

    佛 문학 연구·비평 ‘순수 국내파’ 사회 비판한 ‘밤이 선생이다’ 인기따뜻한 시선으로 시대를 통찰한 국내 대표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가 8일 오전 4시 20분 별세했다. 73세. 2015년 담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고인은 지난 2월 암이 재발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직을 취임 두 달 만에 내려놨었다. 지난달부터 병세가 악화된 고인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 1945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한 고인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에서 유학하지 않은 순수 국내파로 남다른 입지를 다져온 고인은 프랑스 현대시의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주로 연구하며 문학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0년부터 경남대, 강원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해왔다. 최근 병세가 나빠지는 중에도 출간을 앞둔 산문집에 대해 편집자와 머리를 맞대고, 번역에 매달리는 등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난 6월 함께 출간된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 번역서인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됐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의 머리말에서 고인은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라고 썼다. 고인은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서 사회에 대한 조언과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문학과 사회 현안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담은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2013)는 6만 3000여부가 팔리며 독자들로부터 두루 사랑받았다. 젊은 감각을 잃지 않았던 고인은 수년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40만명이 넘는 팔로어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생전에 미식가였던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병실을 찾은 후배 문인들에게, 고향인 목포를 그리워하듯 “민어가 먹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편집한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자 고인과 오랫동안 교유한 김민정 시인은 “학교가 아닌 데서 만난 세상의 스승, 다시 만날 수 없는 격이 있는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김 시인은 고인이 남긴 A4용지 400장 분량의 트위터 글과 2800장 분량의 번역에 관한 글을 정리해 펴낼 예정이다. 고인이 지은 책으로는 ‘우물에서 하늘 보기’, ‘밤이 선생이다’,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이 있다. 서정시학 작품상,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2007년 한국번역비평학회을 창립해 제1대 회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의료원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02)923-4442.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근대의 풍경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근대의 풍경

    기차라는 교통수단이 생긴 것은 두 세기가 채 못 된다. 유럽의 철도는 1830년대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파리 생라자르역은 1837년에 세워졌다. 역을 지나는 노선이 늘면서 사람과 마차의 통행을 방해하자 1868년에는 역 위를 가로지르는 유럽교가 건설됐다.카유보트는 유럽교를 대상으로 소규모 습작을 포함해 대여섯 점의 그림을 그렸다. 나는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대상을 줌인해서 캔버스를 꽉 채운 구성이 대담하고, 단색 조로 다리의 형태감과 금속성을 강조한 모던함이 돋보인다. 화면을 대칭으로 분할하고 있는 교각 사이로 생라자르역이 보인다. 철삿줄같이 뻗어 나간 선로, 역 건물과 플랫폼, 기관차가 내뿜는 흰 연기가 보인다.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멈춰 서서 역을 내려다보고, 한 사람은 다리를 지나치고 있다. 뒷모습이 보이는 주인공과 화면 왼쪽 몸의 반만 보이는 행인은 옷차림이 판에 박은 듯하다. 깃을 세운 검은색 코트를 입고 톱해트를 썼다. 1860년대 이후 중산층 남성의 복장은 오늘날의 비즈니스 슈트와 비슷한 짙은 색 상하의, 흰 셔츠, 톱해트로 통일됐다. 파리에서 손꼽히는 멋쟁이였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단체로 초상난 거 같다”고 한탄했지만, 허리가 잘록한 프록코트라든가 화려한 색의 조끼는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에게 실크해트라는 명칭으로 익숙한 톱해트는 부유한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중산층 하층과 노동자계층은 볼러라고 하는 둥근 모자를 착용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몸의 일부만 보이는 사람이 노동자 계층이다. 연한 파란색 겉옷을 입고 볼러를 썼다. 다리라는 산업 건축물을 배경으로 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데서 ‘근대성’이라는 인상주의의 핵심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유럽교란 명칭은 없어졌다. 다리를 지나 연장된 거리는 비엔가로 불린다. 트러스 구조의 철제 난간도 사라졌다. 야트막한 콘크리트 담장 위에 평범한 격자형 난간이 설치돼 있을 뿐이다. 미술평론가
  • [이호영의 그림산책9]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 도시의 산책자

    [이호영의 그림산책9]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 도시의 산책자

    녹음이 깊은 숲. 나무는 햇빛을 차단할 정도로 울창하다. 그늘이 만든 공간. 바람이 지나지 않는 듯. 흔들리는 것은 없다. 나무들 사이. 빛이 스며들며 공간을 만든다. 거기에 두 신사와 두 여인이 있다. 빛이 만든 푸른 공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벗은 여인과 한 명의 신사. 그 앞에 반쯤 누운 남자는 무언가 말을 하는 듯 오른 손을 들고 앞의 남자를 향해 있다. 그들 뒤로 한 여인이 강에 들어가 물결에 손을 담그고 있다. 이들이 타고 왔을 나룻배는 물길의 오른 쪽에 정박해 있다. 점심식사를 막 마친 듯이 보이는 이들의 시간은 한가롭다. 준비해온 바구니와 음식물 그리고 보자기들이 어지럽게 뒹구는 것은 왼쪽 하단의 풀밭 위이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마네의 점심은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의 눈으로부터 시작한다.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 시작은 정면을 바라봄으로부터 시작한다. 벗고 있은 여인. 그 여인은 화면 밖의 관객에게 시선을 맞춘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은 순간 당혹에 빠진다. 왜 이 여인만 벗고 있고 다른 사람은 옷을 입고 있는가. 작가의 도발은 그러한 순간을 기다린다. 작품은 일상의 삶에 파격을 줌으로서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파격, 충격을 통해서이다. 당시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의 평범한 나들이가 이 점심의 근간이며 그 일상의 평범함에 누드라는 파격을 덧입힌 것이 마네의 시선이다. 1863년 살롱의 낙선전(落選展)에 출품된 이 작품은 마네의 대표 문제작이다. 파격은 고전주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들로 작품의 골격을 만들었다는 것에도 있다. 구도는 라이몬디가 제작한 동판화, 라파엘로 ‘파리스의 심판’(라이몬디 판화,라파엘로 파리스의 심판의 부분)의 일부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며, 벗은 여인과 옷을 입은 남성의 대칭적 배치는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조르조네 전원의 합주)에서 빌려왔다. 고전작품에서 차용한 것들을 자신의 작품에 배치함과 동시에 당시의 풍경들을 고전의 구조에 덧입히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현재가 고전이 되고, 고전이 현재가 되는 것. 이 작품에서 마네가 실현하고자 한 한 축의 의도이다. 현대미술에서 패러디(Parody)가 언급될 때 대표적 원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또한 이 작품이다.‘올랭피아’ 1865년 이 작품으로 살롱전에 입선한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평범한 누드에 지나지 않는 작품. 당시 아카데미에서 누드의 사용은 여신을 그리거나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올랭피아는 누드모델을 그대로의 표현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렸다. 당시의 모델을 했던 사람들은 창녀들이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고,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 역시 그러하다. 빅로링 무랑. 올랭피아 모델의 실제 이름이다. 풀밭위의 점심의 나부로 등장한 모델. 작품 속의 여인은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미인도, 여신도 아닌 모델- 빅로링 무랑이다. ‘풀밭 위의 점심’으로 문제작가로 언급되었고, ‘올랭피아’로 거듭 문제 작가로 언급됨으로서 마네는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 주목은 많은 비난과 비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생각과 행동. 그러한 것이 작품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눈에 목격한 것을 그리자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작가의 시선에 직접 비춰진 사실들을 그리자는 것이다. 인상파를 형성하는 작가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들의 강령이 된 이러한 생각들은 당시의 살롱전을 지배하고 있는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들과 방식이었다.1832년 파리에서 출생한 마네는 1884년 세상과 이별한다. 법관인 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마네는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살았다. 세련된 도시적 삶을 살다간 화가 마네. 도시적 삶이라는 의미에서 또 다른 도시의 삶을 근간으로 하는 모더니스트, 시인 보들레르와의 교류는 상징적이다. 모더니스트인 시인과 화가의 만남과 교류. 또한 에밀 졸라를 비롯하여 새로운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인상파를 형성할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알프레드 시슬레, 폴 세잔 등과도 친분을 가졌고, 그들을 작품세계를 지탱하게 하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마네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평생 도시에 머물렀고, 도시가 이루는 현실의 풍경을 그렸다. 거기에는 새로 생긴 거리풍경과 술집들이 등장한다. 그 도시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이 그러하다. 작품은 그 풍경 너머의 무엇을 나타내기보다 그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서 지금 여기가 만드는 현실, 감각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그가 그린 그때의 풍경은 당대의 사실이면서 동시에 여기 지금, 이 시간 속에서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서 감각하고 동시에 행동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화두이다. 지금 여기는 지나간 시간에서 오고, 미래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되어지는 순간, 행동-실천을 미룰 이유가 없다. 마네가 그러했듯이. 시간은 머문 적이 없다.
  • [문화마당] 내 방을 둘러보며/김소연 시인

    [문화마당] 내 방을 둘러보며/김소연 시인

    내 방은 사면이 책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다. 한쪽에는 사전과 도감들이 꽂혀 있고, 그 옆에는 평전과 음악, 미술, 과학 책들이 자리잡았다. 중앙에는 역사, 철학 서적들이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서리를 꺾어 다른 면은 소설책들이, 또 모서리를 꺾어 다른 면에는 시집과 문학이론서들이 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오른쪽 벽은 커다란 창문이 있고, 창문을 뺀 나머지 벽은 사랑에 관한 책들만을 수집해서 꽂아 놓았다. 사랑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랭 바디우, 울리히 베크와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지그문트 바우만, 김영민, 플라톤, 조르주 바타유, 이성복, 파스칼 키냐르 등등. 아무리 읽고 밑줄을 쳐도 허기가 가셔지질 않는 세계였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벨 훅스, 에바 일루즈를 알게 됐는데 그나마 내가 알고자 했던 것들을 조금은 알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재미 삼아 읽어 보려 며칠 전에 구입한 정희진의 영화 에세이 ‘혼자서 본 영화’에서 사랑에 대해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걸 듣는 느낌이 강했다. 모두 여성이 썼다. 나는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려 했던 것일까? 그러려고 작정한 적은 없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왜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려 했던 것일까? 질문을 바꿔 놓고 생각하자 여성이 여성으로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참으로 많은 남성 학자들로부터, 남성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에 대해 나는 배워 왔다. 그들이 제시하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그려 내는 타자(여성)를 여성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겪을수록 사랑을 더 모르겠는 사람이 돼 갔던 것은 아닐까. 유년기에 읽었던 동화들에서부터 청소년기에 읽었던 소설들, 대학 시절에 읽었던 시집들을 비롯한 숱한 문학서적들, 철학책과 역사책들. 그때그때 나를 바꿔 놓았던 명저들의 저자들은 거의 전부가 남성들이었다. 나는 아마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 사고구조 자체가 남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사면의 빼곡한 내 책들을 둘러보며, 새삼스럽게 경악해 본 적이 있다. 2016년 초겨울 이 집으로 이사해 텅 빈 책꽂이에 다시 책을 꽂을 때였을 것이다. SNS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을 쏟아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이후 1년 남짓 동안은 일부러 여성이 쓴 책들만을 골라 읽었다. 리베카 솔닛, 주디스 버틀러, 게일 루빈 같은 페미니스트의 저서들이 철학책들을 모아 둔 자리에 꽂혀 있다. 보들레르나 랭보보다는 쉼보르스카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을 읽었다. 독서를 통해 더이상 낯선 시선이 만나지지 않는다는 시큰둥함이 어리석음과 무지에 기반한 것임을 이 저자들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새로운 저자들과 다르지만 같은 시각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으로부터 그리고 김지은 정무비서의 증언까지. 들어야만 하고 배워야만 하는,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적인 증언들이다. 무지가 곧 폭력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 증언들이야말로 고통스럽게 알아 가야 하는 이 세계의 진실이다. 무지할 권리와 외면할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걸, 그 권리 자체가 폭력이라는 걸 이제는 모를 수 없게 됐다. 내 방에서 함께 기거해 온 남성 저자들에게서는 거의 배워 본 적 없는 세계다.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워낙 바삐 서두르다 보니 외출하면서 가방에 넣은 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와 지하철이 생각보다 일찍 연결되어서 약속 장소에 나와 시계를 보니 상대방이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제야 내가 가방 속에 무슨 책을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책과 관련된 일을 오래 해서일까. 어딜 가든지 책 한 권을 함께 데려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꺼내 맨 뒤쪽 면지를 보니 누군가 써 놓은 글씨가 일순간 눈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책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이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거기서 30분 동안 나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를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정작 책은 한 문장도 읽지 못했다.올해로 헌책방 운영도 11년째를 맞이했지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헌책방 일을 배운 것까지 더하면 11년 위에 몇 년을 더 얹어야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새 책이 아니라 헌책을 더 좋아할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된 것 중 하나는 헌책이 주는 특별한 질감이다. 여기서 질감이라고 하면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을 포함해서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나무 냄새,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흔적을 말한다. 그렇다.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책은 헌책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흔적’이라고 해도 좋다. 책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 스스로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책에 있는 흔적은 모두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책을 갖고 있었던 주인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헌책을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책 속에 있는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그 책의 예전 주인과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밑줄과 메모가 가득한 책을 보면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성실한 어떤 사람 얼굴이 금세 떠오른다. 시처럼 멋진 문장을 면지에 남긴 것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이를 상상하게 되고, 어떤 때는 며칠 동안 그렇게 상상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저 사람이 바로 그이가 아닐까 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책의 흔적에서 비롯된 이런 기분 좋은 설렘도 헌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어떤 사람은 왜 헌책을 좋아할까 그날 내 가방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책을 확인하니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표지를 감싸고 있는 종이커버 재질 때문인지 벌써 테두리 쪽은 빛바랜 자국이 선명하다. 책을 볼 때 항상 서지면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은 솔출판사에서 2000년에 펴낸 것으로 초판은 10월 5일에 나왔는데 내가 가진 것은 2쇄 본이고 그 날짜는 10월 16일이다. 딱히 특별한 구석은 없는 책인데 초판을 내고 불과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게 솔직히 부럽다.●“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다시 책 속에 누군가 써 놓은 글씨를 살핀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글을 쓴 날짜는 2002년 5월 23일이다. 이 날은 목요일이고 일주일 후면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에 거리 이곳저곳에서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IT 회사에 출근했을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애써 특별함을 갖다 붙여 보자면 이날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과 같다는 것 정도일까. 어쩌면 이 책의 주인도 나처럼 축구보다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급히 외출을 했는데 가방 속에 책을 챙겨 넣는 걸 잊었던 것이다.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 서점에 들어가서 산문집 한 권을 사들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선 책을 펼치고 면지 아래에 글씨를 쓴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날짜도 써 둔다. 2002년 5월 23일. 이 독서가는 낙타가 십리 밖에 있는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어디서든 책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향기를 잡아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었던, 내가 그려낸 상상 속 독서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렇듯 말 없는 헌책은 내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해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모아 엮어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헌책방에서 일하며 느꼈던 보석 같은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남다른 애정이 깃들어 있다. 보통은 책을 쓰고 난 다음 그 책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책을 준비하는데 이 헌책의 흔적에 관한 책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떠날 줄 모른다. 헌책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런 인연과 만나기 때문이리라.‘아이들의 풀잎노래’는 양정자 시인이 교사로 일하며 써낸 진정성 넘치는 시들이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993년 초판인데 책 뒤표지 안쪽 면지에 누군가 긴 일기를 써놓았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니 시집의 첫 주인은 시인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것 같다. 담당하고 있는 학급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빼곡한 손글씨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한달음에 써내려 간 하루치 일기라곤 하지만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서 어쩌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양정자 시인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고 시인을 만나면 시집을 내보이며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보들레르가 ‘바우델아이레’? 어떤 독자는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책 속 면지에 강렬하고 치열한 시어 곳곳에서 “Baudelaire의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나는 한동안 알파벳으로 쓴 이 작가의 이름을 “바우델아이레”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시인은 없었다. 전공자들이나 알 만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시대 작가가 아닐까? 상상력이 지나치게 발동되어 바우델아이레라는 시인의 작품을 꼭 찾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보들레르”였던 것이다. 전에는 무슨 이유 때문에 보들레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책이나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오해였기에 부끄러운 심정을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 나는 반성하는 자세로 보들레르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최승자 시인의 시들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 알제대학의 철학교수인 장 그르니에는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아름다운 산문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를 발굴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 그르니에의 책 중에서 ‘섬’은 카뮈가 쓴 서문이 들어 있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카뮈는 ‘섬’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나도 가슴이 벅찬 나머지 그대로 집까지 내달려서 방에 들어가 스승의 글을 읽었다고 썼다. 그것은 카뮈가 스무 살 즈음에 겪은 일이고 이 책을 읽은 후 자신도 글을 써 보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 무명의 독자도 카뮈와 같은 심정으로 민음사 이데아총서 시리즈로 펴낸 ‘섬’을 읽었나 보다. 그는 100년 전 카뮈가 그랬듯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짧은 글을 남겼다. 이 문장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헌책이라면 거기에 더해 이름 모를 또 다른 독자들과 친구가 되는 설렘을 만들어 준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 성별, 종교, 가치관, 이념, 그 무엇도 상관없다. 우리는 헌책 속에 남겨진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인연을 나눈 것이다. 헌책을 읽는 것은 책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 남겨진 흔적은 그 책을 가졌던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만나는 거룩한 인연의 시작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연재를 마칩니다.
  • [지금, 이 영화] ‘쇼콜라’, 19세기 프랑스를 사로잡은 흑인 광대와 백인 광대 실화

    [지금, 이 영화] ‘쇼콜라’, 19세기 프랑스를 사로잡은 흑인 광대와 백인 광대 실화

    쇼콜라(Chocolat)는 프랑스어로 초콜릿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그런데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쇼콜라는 한 남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도 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라파엘이다. 하지만 그는 쇼콜라라는 예명으로 사람들에게 불렸다. 유럽에 노예로 여덟 살에 팔려 온 흑인 남성 라파엘에게 관심을 갖는 프랑스인은 없었다. 다들 무대에서 우스꽝스럽게 발길질당하는 흑인 광대 쇼콜라를 구경하며 깔깔대고 싶어 할 뿐이었다. 순진무구한 웃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웃음은 웃는 사람과 웃기는 사람의 위계에서 생긴다. 웃는 사람은 정상인 척, 웃기는 사람은 바보처럼 군다. 웃는 사람은 웃기는 사람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믿는다.“인간은 웃음으로써 물어뜯는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산책하듯 살았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이다. 그는 웃음의 본질에 대해 쓰면서 웃음은 이렇듯 ‘악마적’이므로 또한 철저하게 ‘인간적’이라고 언급한다. 로슈디 젬 감독의 영화 ‘쇼콜라’를 보는 일이 그렇다. 분명 이것은 100여년 전 실존했던 웃기는 광대에 관한 작품이다. 그러나 관객은 박장대소하지 못한다. 이를 통해 악마적이어서 오히려 인간적인 웃음의 속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식민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감독은 그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스타가 된 흑인 광대. 이 흥미롭고 놀라운 스토리와 함께 우리의 식민주의 과거를 얼버무리지 않고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포부를 밝힌 대로 그는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세우던 프랑스가 어떻게 쇼콜라(오마 사이)를 ‘억압·차별·조소’의 대상으로 취급했는가를 낱낱이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투적 재현(쇼콜라를 경찰이 고문하는 장면)을 답습하거나, 과잉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쇼콜라가 길에서 절규하는 장면)도 나온다. 관객이 자문하도록 하지 않고, 관객에게 그냥 설명해 버리는 신(scene)도 눈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장점이 더 많다. 그중 하나가 쇼콜라의 파트너 백인 광대 푸디트(제임스 티에레)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조르주다. 그렇지만 그는 쇼콜라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푸디트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영화에서 푸디트의 개인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한데 그는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푸디트가 양면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공연장에서 그는 식민주의의 대리자를 연기한다. 제국―푸디트는 식민지―쇼콜라를 발로 걷어찬다. 반면 공연장 밖에서 푸디트는 쇼콜라를 돕는 유일한 친구다. 이와 더불어 무대에서는 최고의 익살꾼인 그가 현실에서는 더없이 과묵한 남자라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디트의 이중적 모습은 웃으면서 우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보통의 삶. 9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날마다 윤동주 만나다

    날마다 윤동주 만나다

    ‘윤동주 DIARY(다이어리)’는 윤동주 탄생 100년을 기념해 서울시인협회와 윤동주100년포럼 기획으로 윤동주의 시와 그가 애독한 시들 위주로 선정·수록한 다이어리다. 스스로 날짜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는 5년 다이어리로 윤동주의 시, 수필 및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남긴 지인들의 말을 다이어리 상단에 짧게 정리해 날마다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윤동주가 가장 사랑하고 이를 통해 시상을 떠올렸던 발레리, 보들레르, 프랑시스 잠, 장 콕도, 릴케, 정지용, 김영랑, 이상, 백석 등의 주옥같은 시 100편을 엄선해 실었다. 다이어리의 첫 날짜가 시작되기 전 앞부분에는 윤동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지인들의 증언 등과 그가 사랑한 시인들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수록했으며, 윤동주의 귀한 사진들도 첨부해 단순한 다이어리에 그치지 않도록 했다. 스타로고 관계자는 “윤동주 탄생 100년을 기념해 출간하는 만큼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다”면서 “윤동주 다이어리는 각자의 마음을 아름답게 다잡고 시련 앞에 무너지지 않으며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진심으로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 독창성·몰입도 탁월

    ‘신예(新銳)’란 새롭게 등장해 만만찮은 실력이나 기세를 떨치는 대상을 향해 쓰는 말이다. 신예가 될 신인시인에게 기대하는 우선적 요건을 ‘얼마나 오래 쓸 것인가’에서 찾고자 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일 것이다. 본심에 오른 열 분의 작품들은 언어 구사력과 시적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문화적 지표에 기댄 채 포즈화되곤 했다. 시의 세련된 문화화는 모험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상 수프’와 ‘10월 삽화’의 시적 가능성은 녹록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어휘와 문장은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나 그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에 대해 응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일상에 대한 섬세한 천착이 믿음직했으나 자기가 감각한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설명적 묘사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타자화된 세계를 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동혁의 ‘진단’을 당선작으로 내보낸다. 보들레르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젊은 시인은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가 가장 뜨거워지는” 부재의 역설을,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는” 시의 비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막 탄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의문의 창문들을 열게끔 설계된 그의 시편들이, 끊임없는 자기갱신으로 시간의 수압을 잘 견뎌내기 바란다. 심사위원 정끝별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 [현장 행정] 망우리고개 다리, 중랑의 남북 잇는다

    [현장 행정] 망우리고개 다리, 중랑의 남북 잇는다

    망우리(忘憂里) 고개.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뒤 경기 구리에 자신의 묏자리를 둘러보고 도성으로 돌아가던 중 고개에서 쉬며 “이제 모든 근심을 잊고 쉴 수 있겠다”고 해 이름 붙여진 곳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곳은 지역민들에게는 ‘근심의 고개’이다. 이곳을 관통하는 망우로가 서울 중랑구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탓에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중랑구가 망우리고개의 좌우를 잇는 횡단도로를 만들어 이름의 본뜻을 되찾아 주기로 했다. 중랑구는 2일 망우리고개의 남과 북을 건널 수 있는 횡단교량(폭 14m·길이 45m)을 오는 30일 개통한다고 밝혔다. 이 교량은 망우로(왕복 6차로) 위에 설치됐으며 차도(왕복 2차로)와 인도를 모두 갖췄다. 망우로는 망우산을 관통해 뚫렸는데 남측으로는 망우묘지공원과 용마산 등이 있고, 북측으로는 중랑캠핑숲이 있다. 모두 수려한 풍경 덕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지만 남북으로 이어진 길이 없다 보니 지역민들이 자연 명소를 편히 둘러보기 어려웠다. 구 관계자는 “교량 설치로 지역 내 자원을 연계 관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중랑구의 남북통일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횡단교량 설치로 용마산과 망우산, 사색의 길~중랑캠핑숲을 연결하는 둘레길이 완성돼 중랑구도 명품 트레킹 코스를 얻게 됐다. 구는 횡단교량 개통을 계기로 서울의 대표적 역사문화 도시로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망우동 일대는 지난 7월 중소기업청이 정하는 ‘역사문화교육특구’로 전국 최초로 지정됐다. 이 덕에 2019년까지 국·시비 등 578억원을 들여 역사문화자원과 교육을 연계한 16개 특화사업을 개발, 시행한다. 중랑구 핵심 역사 교육 현장은 망우묘지공원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독립운동가 겸 시인 한용운, 화가 이중섭 등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여럿 잠들어 있다. 나진구 중랑구청장은 “망우 묘지가 지역 이미지를 훼손하는 곳으로 인식됐지만 어찌 보면 역사적 인물이 여럿 머무는 보물 같은 공간”이라면서 “역발상을 통해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처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장폴 사르트르와 시인 샤를 보들레르, 소설가 기 드 모파상 등의 묘가 있는 곳으로 파리의 대표 관광지다. 나 구청장은 “망우 묘지에 잠든 위인들을 홀로그램(3차원 입체 영상으로 사진 속 인물 등을 실물처럼 표현하는 기술) 등으로 되살려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좋은 역사 교육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또 동양 최대 인공폭포인 용마폭포공원과 서울장미축제가 벌어지는 중랑천 장미터널, 봉화산의 옹기 체험관 등 명소를 활용해 문화관광 특화산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구슬 연꽃’으로 피어난 한국 문화·정신

    ‘구슬 연꽃’으로 피어난 한국 문화·정신

    “한국의 전통 건축과 공간에 피어 있는 연꽃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성이라는 강한 상징성을 내포한 연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은 매혹적이고도 경이로웠습니다.” 다양한 소재의 구슬을 사용한 추상 조각으로 알려진 프랑스 조각가 장미셸 오토니엘(52)이 ‘검은 연꽃’(Black Lotus)이라는 제목으로 5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3관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풍부한 은유와 조형 감각이 농축된 유리 조각, 설치 작품, 회화 등 신작 10점이 선보인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하게 탐구되고 있는 꽃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꽃은 내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꽃이 지닌 숨은 의미나 상징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나에게 끊임없는 경이의 원천은 이처럼 실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는 전시 준비를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연꽃이 상징적으로 지니는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탐구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회 제목을 모순 그 자체인 ‘검은 연꽃’으로 지은 이유에 대해 “연꽃이 주는 순수함과 검은색이 지닌 어두움을 결합해 시적인 느낌을 강조하려 했다”면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랭보의 ‘보이지 않는 찬란함’, 제라르 드 네르발의 ‘우울함의 검은 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보라, 검정, 파랑의 구슬로 연결된 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커다란 구슬을 연결한 작품들은 각각 봉오리 형태이거나 반쯤 피거나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한다. 생테티엔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오토니엘은 세르지퐁투아즈 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다루다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리를 이용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이번 전시에서 백금박을 여러 겹 입힌 캔버스에 짙은 검은색 석판화 잉크로 그린 회화 작업 ‘검은 연꽃’을 처음 선보였다. 2011년 국내에서 첫 개인전 ‘마이 웨이’를 개최한 바 있는 오토니엘은 공공미술 작가로 미국과 유럽에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엔 프랑스 앙굴렘에 있는 성베드로대성당의 성물함과 유물함 옆의 성상을 현대미술 작가로는 처음으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7년이 소요된 이 프로젝트는 올봄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3월 27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맞닿아 있다, 천재성과 광기

    맞닿아 있다, 천재성과 광기

    미쳤거나 천재거나/체자레 롬브로조 지음/김은영 옮김/책읽는 귀족/568쪽/2만 5000원 “미쳤거나 천재거나.”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8월 라디오방송에 출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겨냥해 던진 화제의 언사다. ‘미치광이 아니면 천재’라는 그 말은 천재보다는 ‘미친 사람’ 쪽에 둔 비아냥으로 들린다. 그런데 트럼프의 극단적인 김정은 평가와 달리 천재들은 대체로 병적이고 퇴행적인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갖는다고 한다. 그 ‘천재들의 광기’를 알아보고 일갈한 문헌은 숱하다. ‘미치광이가 현자를 가르친다’ ‘아이와 바보는 진실을 말한다’ 같은 속담이 있는가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피력했다. “많은 이들이 머리에 생긴 울혈로 인해 시인이 되고, 예언자가 되고, 무당이 된다. 광기에 사로잡혀 훌륭한 시를 낸 이들이 치료받고 나면 더이상 아무것도 써내지 못한다.” 가까운 예로는 지난 5월 타계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 존 내시를 들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거머쥔 이 천재 수학자는 평생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았다 ‘미쳤거나 천재거나’는 역사 속 유명한 천재들의 광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들춰내 흥미롭다. 법의학과 범죄인류학 창시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정신의학자가 실증적 조사를 통해 천재의 특징과 그 능력 뒤에 숨겨진 광기를 자세히 분석한다. 니체, 뉴턴, 쇼펜하우어, 루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천재들의 기행을 소설처럼 풀어 천재성과 광기의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구성이 독특하다. 책에 드러난 천재들의 정신병적 기행과 퇴행의 양상은 대체로 이렇게 모아진다. 매우 대비되는 성격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오락가락하며 자의식과 자부심이 강하면서 매우 이른 나이에 기괴한 방식으로 천재성을 드러낸다. 많은 경우 마약류나 흥분제와 각성제를 남용했고 호젓하게 한곳에 몰두하지 못한 채 계속 떠돌아다닌다. 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열정을 접지 않는다. 로베르트 슈만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구조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극단적 감정에 시달린 보들레르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 상점 유리창에 화분을 던질 만큼 충동적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여자들을 경멸하면서도 성적 대상인 여성들에겐 열렬한 구애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루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상대로 모략을 꾸민다고 의심해 모든 요소들을 자신에게 적대적인 범주에 넣었다. 심지어 ‘서간문 2집’에선 이렇게 고백한다. “무엇이든 실행을 겁내는 나태한 영혼과 조금의 불편도 참지 못하는 괴퍅한 기질이 한 성격 안에 결합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성격을 기반으로 ‘나’라는 존재가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파스칼은 열살 때 접시에 나이프가 부딪히는 소리에 영감을 얻어 음향이론 정립에 나서 열다섯 살에 원뿔곡선에 관한 걸출한 논문을 썼다. 중국의 독보적 시인 이백은 술과 더불어 영감을 얻고 결국 술 때문에 죽었다. 그렇다면 천재들의 광기는 무엇일까. 저자의 주장은 일단 ‘한쪽이 극도로 발전해 한쪽이 모자라게 된다’는 이론에 편승한 듯하다. 그렇지만 뇌의학적 근거와 통계적 뒷받침이 허술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인종과 유전이 천재성과 광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처럼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영웅과 제왕의 모험적이고 화려한 역사를 전달하는 데 진력하고 많은 사람들의 눈에 중요하게 보이는 전쟁에 대해선 시시콜콜히 기록하며 열심이었지만 심리학적 측면에 대해선 전혀 도외시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저자에 따르면 광기란 어느 시대에 발현되는가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먼 옛날 야만과 미개의 시대에 광기의 폭발이 만연했던 게 대표적 예이다. 천재의 광기가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 역사 속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고, 아니면 정신병원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천재와 정신이상의 현상은 유사하며 또 일치하기도 한다. 이를 보면 자연이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최고의 불운이라고 할 광기에 대해선 존중하는 마음을, 동시에 천재의 걸출함에 지나치게 현혹되는 것엔 경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천재는 정해진 궤도를 지키며 도는 행성이 아니라, 궤도를 잃고 지구 표면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유성과 같은 존재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가을이네… 예술·문학 담긴 ‘책 한모금’

    가을이네… 예술·문학 담긴 ‘책 한모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예술과 문학을 다룬 번역서와 평론집이 나란히 나왔다. 원로 문학평론가 황현산(70)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번역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과 문학평론가 김종회(60)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문학담론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문학수첩)다. ‘파리의 우울’에는 보들레르의 산문시 50편이 실렸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처하는 태도, 예술의 주제 표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의 오랜 이상과 그 현대적 실천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예술의 사회적 타락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발하고 예술의 악마성도 성찰했다. 보들레르는 1862년 ‘라 프레스’지 주간인 아르센 우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서문을 대신했다. 그는 편지글에서 자신의 산문시를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산문시들은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쓰였다. 시의 전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수사법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했다. 황 교수는 “‘시적 산문’은 보들레르 이전에도 많았지만 산문시를 쓴 것은 보들레르가 처음”이라며 “보들레르는 산문으로 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찾아내 그것을 산문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산문적 현실에서 건져 올린 산문적인 언어를 시의 높이로 끌어올리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기존 번역본들과는 달리 시마다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달렸다. 출판사는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는 김 교수가 3년 넘게 한국 문학에 대해 연구한 성과물이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 문학을 우호적이고 성의 있게 들여다보며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김 교수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토양에서 개화하는 예술 장르”라고 규정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이 지닌 품성과 역량, 꿈과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주의주장이다. 지금까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문인 모두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새롭게 성찰해 봐야 할 주제들을 다뤘다. 2장은 작가들이 동시대 삶의 환경을 어떻게 소설의 서사로 바꾸는지, 3장은 시인들이 자신이 당착한 삶의 비의를 어떻게 감성적 언어로 치환하는지를 살폈다. 4장은 아동·청소년 문학과 유명 해외 서사 작품들을 통해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5장은 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 문인들의 작품을 탐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보들레르가 산문시로 건져올린 예술의 타락

    보들레르가 산문시로 건져올린 예술의 타락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예술과 문학을 다룬 번역서와 평론집이 나란히 나왔다. 원로 문학평론가 황현산(70)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번역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과 문학평론가 김종회(60)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문학담론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문학수첩)다. ‘파리의 우울’에는 보들레르의 산문시 50편이 실렸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처하는 태도, 예술의 주제 표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의 오랜 이상과 그 현대적 실천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예술의 사회적 타락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발하고 예술의 악마성도 성찰했다. 보들레르는 1862년 ‘라 프레스’지 주간인 아르센 우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서문을 대신했다. 그는 편지글에서 자신의 산문시를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산문시들은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으로 쓰였다. 시의 전개도 기승전결 같은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수사법도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를 주로 사용했다. 황 교수는 “‘시적 산문’은 보들레르 이전에도 많았지만 산문시를 쓴 것은 보들레르가 처음”이라며 “보들레르는 산문으로 시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찾아내 그것을 산문으로 기술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산문적 현실에서 건져 올린 산문적인 언어를 시의 높이로 끌어올리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기존 번역본들과는 달리 시마다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달렸다. 출판사는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다’는 김 교수가 3년 넘게 한국 문학에 대해 연구한 성과물이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 문학을 우호적이고 성의 있게 들여다보며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김 교수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토양에서 개화하는 예술 장르”라고 규정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이 지닌 품성과 역량, 꿈과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주의주장이다. 지금까지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문인 모두 인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새롭게 성찰해 봐야 할 주제들을 다뤘다. 2장은 작가들이 동시대 삶의 환경을 어떻게 소설의 서사로 바꾸는지, 3장은 시인들이 자신이 당착한 삶의 비의를 어떻게 감성적 언어로 치환하는지를 살폈다. 4장은 아동·청소년 문학과 유명 해외 서사 작품들을 통해 문학에서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5장은 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 문인들의 작품을 탐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 여자가 야하다고? 규범에 갇혀 있군요!

    이 여자가 야하다고? 규범에 갇혀 있군요!

    모더니즘/피터 게이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816쪽/3만 5000원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막상 정의를 내리려면 막막해지는 것들이 있다. ‘모더니즘’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유럽 근대사상을 연구한 저명한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집한 증거들을 통해 다양성 속의 통일성, 단일한 심미적 사고 방식, 눈에 띄는 양식, 즉 모더니즘 양식을 발견하는 데 주력했다. 새 책 ‘모더니즘’은 지난 5월 뉴욕에서 눈을 감은 그가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집필한 마지막 저작이다. ●性의 해방·개성 표현·솔직함 중시 모더니즘은 대략 184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초까지,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에서 베케트와 그 이후 잭슨 폴록, 앤디 워홀의 팝아트까지를 아우른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견디었고, 전체주의의 혹독한 적개심을 이겼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인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시작은 프랑스 파리였지만 서서히 거점을 미국 뉴욕으로 옮겼다. 물질주의에 대한 반항, 부르주아들의 가식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성의 해방, 솔직함, 자신만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과 연결된다. ●보들레르·모네 등 당대 미학 비판 저자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과 ‘철저한 자기 탐구에서 비롯된 개성적 표현력’이라고 정리한다. 모던 발레의 거목 세르게이 댜길레프는 안무가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를 놀라게 하라!”, 에즈라 파운드가 제시한 “새롭게 하라”는 슬로건은 많은 모더니스트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저자는 시인 보들레르를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가장 자격이 있다고 지목한다. 독창적이고 자극적인 미술비평, 스스로에 대한 공정한 평가, 내밀한 시적 언어로 문학적 한계에 반항한 점, 탁월한 시적인 재능 등으로 보들레르는 모더니즘의 근본 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보들레르와 같은 시대에 진보적 아웃사이더로 꼽혔던 또 다른 인물은 화가 마네다. 역사가들은 당대의 미학과 도덕적 규범을 가장 심하게 비웃은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1863)를 최초의 모더니즘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어 클로드 모네와 뜻을 같이하는 반아카데미 화가 스물아홉 명이 1874년 4월 파리에서 공동 전시회를 열었다. 이때 전시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유래해 훗날 인상파라고 이름 지어지는 이들을 어떤 비평가들은 ‘비타협주의자’라고 불렀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라며 ‘예술을 위한 예술’을 옹호했던 테오필 고티에의 신조는 예술가를 숭배하는 미학운동의 선구자 휘슬러를 거쳐 19세기 후반 유미주의자들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인물은 오스카 와일드. 인생의 목표가 세상이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는 결국 그 신념 때문에 파멸했다. ●그림·건축 등으로 자유 열정 증명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험난한 여정이었다.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살아남은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은 전체주의의 박해와 전쟁의 시련 속에서 살아남았음을 소설과 그림, 건축으로 증명해 보였다. 모든 노력은 결국 예술적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귀결된다. 책은 모더니즘의 발생부터 발전, 쇠퇴에 이르기까지를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례들을 통해 소개한다. 산문과 시, 음악과 무용, 건축과 디자인, 연극과 영화, 아방가르드까지 각 장르의 모더니스트들과 예술가들의 상호교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도판을 곁들이고 있지만 자칫하면 모더니즘의 광대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리기 쉽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오마 샤리프의 죽음

    [최동호 새벽을 열며] 오마 샤리프의 죽음

    오마 샤리프가 영원한 연인 라라를 찾아 천국으로 갔다는 보도를 접하자 대설원을 배경으로 전개된 한 세기의 사랑이 펼쳐졌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1960년대 중반에 개봉된 영화 ‘닥터 지바고’는 당시 젊은 세대는 물론 많은 한국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6·25와 4·19를 경험한 세대들에게 ‘닥터 지바고’는 4·19의 좌절을 바라보면서 삭막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정신적 허기를 달래 주는 사랑의 서사시이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 오마 샤리프가 보여 준 탁월한 연기는 소설에 못지않은 감명을 전해 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라라와 헤어지는 장면에서의 오마 샤리프의 깊고 우수 어린 눈동자나 우랄산맥의 한 별장에서 겨울밤 여우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를 쓰던 장면이나 마지막 전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걸어가는 라라를 발견하고 급히 내려 뒤쫓아 가다 쓰러지는 장면 등은 라라에 대한 지바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극적인 순간들을 전해준 명장면들이었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은 라라의 첫 연인 파샤와 같은 혁명가가 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지바고와 같은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바고의 주제 음악을 사랑한 것은 물론 라라에게 바치는 시를 쓴 사람도 여럿 있었다. 지바고의 인기는 1958년 노벨 문학상이 파스테르나크에게 주어졌으나 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이를 거부하게 되자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상사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후일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서방세계에서의 ‘닥터 지바고’ 출판은 냉전체제를 깨뜨리려는 미국 정보당국의 작전에 의한 것이며 파스테르나크가 사랑했던 라라의 실존 인물이라고 지칭되는 여성은 소련의 정보당국이 파견한 비밀 요원이었다는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여성의 정체를 결국은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사랑한 이 여성이 자기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것을 매우 걱정했다고 한다. 파스테르나크로 하여금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게 만든 것은 ‘닥터 지바고’의 내용이 러시아혁명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닥터 지바고’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지난 4월 초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집을 찾아간 기억 때문이다. ‘닥터 지바고’를 집필했다는 커다란 책상은 자작나무가 보이는 이층 창가에 있었다. 지루할 때 사용했다는 입식 책상도 보였다. 서가에는 릴케와 보들레르 그리고 엘리엇이나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집이 꽂혀 있었다. 젊은 날 파스테르나크가 서방세계의 작품을 많이 읽었으며 혁명 후에는 은둔하며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살았다는 이야기에는 광복 후 북에서 러시아 작품을 번역하며 살았던 백석의 생애가 겹쳐지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그리고 문학의 자율성과 인간에 대한 이상주의적 희망을 추구한 문인들이었다. 작은 발견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안내인이 구두를 가리키며 밑창이 서로 다른 두께를 보라는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약간 절름발이였던 것이다. 아마도 라라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오니 일층 계단 옆에 초라한 침대가 하나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다리가 불편했던 노년의 파스테르나크가 이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일층에서 사용했던 침대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찡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전차에서 내려 라라를 뒤쫓아 가다 쓰러지던 명장면 때문이다. 침대 벽에는 파스테르나크의 관을 메고 갔던 군중의 장례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의 시와 소설을 사랑한 많은 사람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마 샤리프도 만년에는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이혼한 부인이 이미 작고했음에도 아들에게 전 부인의 안부를 자주 물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온 오마 샤리프를 파스테르나크가 위로하며 라라의 안부를 묻게 된다면 붉은 혁명으로 요동치던 시대에도 영원한 사랑을 찾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행간(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과도하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빅데이터 사회’에서 매일 일상에서 부닥치는 현실은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숫자로, 하나의 담론이나 프레임으로 제한하거나 규정짓는 착오가 빈발한다. 책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 ‘유령’이라는 테마의 얼굴을 분석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진정한 앎과 기쁨을 회복해 나가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객관주의와 합리주의에 매몰된 채 정확하게 분석·예측하고 그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모습을 끄집어내 지적한다. 상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예술작품이 차지하는 위치 등을 통해 인류 문화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즉 유령과 항상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음을 설명한다. 아베로의 철학과 보들레르의 시, 단테의 시와 소쉬르의 기호학 이론, 중세 의학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함께 도마에 올리기도 한다. 336쪽. 1만 7900원. 중국의 장사꾼들(양훙젠 지음, 정세경 옮김, 카시오페아 펴냄)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다음으로 높았고 경제성장률은 7%대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후 중국의 GDP가 미국을 앞질러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중국의 눈부신 성장 배후에는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중국 장사꾼들이 있다. 책은 중국 본토와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생명력과 경쟁력을 과시하는 중국 상인들의 기업 스토리를 공개한다. 어떻게 성공 기회를 잡고 투자했으며 위기를 넘겼는지, 어떤 전략으로 상권을 개척하고 시장을 점령했는지를 상세히 보여 준다. 그 ‘장사불변’의 법칙은 신용, 기회, 행동, 예상, 협력, 처세, 투자, 전략, 연마, 관리의 10가지로 압축된다. 중국 최대의 부자 리자청을 비롯해 샤오미, 알리바바를 제치고 중국 기업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한 QQ 메신저의 텐센트, 유럽 최대 화교기업 천씨 형제 회사의 천커웨이 등 50명이 넘는 중국 기업인들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440쪽. 1만 7000원. 박진영의 공룡 열전(박진영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한반도에서 최초로 중생대 최대 ‘거대 도마뱀’ 화석을 보고한 고생물학자가 쓴 공룡 입문서. ‘쥬라기 공원’이후 22년 만에 개봉된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도 보여 주지 못한 ‘진짜 공룡’의 세계를 그려 냈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이구아노돈, 데이노니쿠스, 스테고사우루스는 중생대 공룡의 각 분류군을 대표하는 스타 공룡들. 이 공룡들이 어떻게 생겨 자랐고 살았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콧구멍도 후빌 수 없는 짧은 앞다리를 어디에 썼는지,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긴 18m짜리 신경세포를 갖게 됐는지, 데이노니쿠스는 섬뜩한 갈고리 발톱을 어떻게 썼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20년간 이어진 티라노사우루스의 ‘시체청소부’ 대 ‘난폭한 사냥꾼’ 논쟁처럼 공룡 연구의 굵은 획을 그은 가설, 논쟁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 거리들이다. 328쪽. 1만 8000원. 삶의 기술 사전(안드레아스 브레너·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김희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삶을 음미하고 사유하라.’ 삶의 기술을 연구해 온 두 철학자가 인간의 일상과 감정을 철학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봤다. 60개에 이르는 삶의 상황과 감정들을 화두로 던져 그 정체와 숨은 면모를 차근차근 파헤진다. 철학이란 꼬인 일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나날의 사유라는 관점의 이야기들이 신선하다. 돈에 대해 ‘처분을 할 때에만 쓸 수 있는 물건’이라 일갈했던 칸트처럼 돈과 시간의 개념 뒤집어 보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시간은 자연스레 소멸하기 마련이며 아끼고 불리려는 욕망이 궁극적으로 그것을 잃게 만드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역설한다. 568쪽. 1만 7500원.
  • 대중, 누구냐 넌

    대중, 누구냐 넌

    대중(大衆). 대중음악, 대중미술, 대중소설, 대중도서, 대중매체, 대중스포츠, 대중교통, 대중운동, 대중집회, 대중정치…. 우리 사회의 어떤 요소들 앞에 붙여 놓아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우리네 삶과 떼려야 떼어 낼 수 없이 ‘대중적’으로 쓰이는 표현 수단이다.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과정 속 산업화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산물이다. 군중(群衆)과 다름은 물론이고, 민중(民衆)과도 그 쓰임,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주변에 늘 가깝게 있음에도 그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함의는 그리 만만치 않다.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고매한 척, 고상한 척 하지 않고 수더분한 것,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저급한 것, 혹은 조직화돼 있지 않아 무기력한 것, 개인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익명성 등으로 폄하의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긍정적 역할과 부정적인 기능이 혼재돼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82)는 대중(mass)을 뛰어넘는 ‘다중’(multitude)의 개념을 내놓았다. 자본의 지배가 공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제국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통일되어 있지 않고, 복수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 주체’로서의 존재를 일컫는다. 네그리의 이론에 따라 국내 사정을 들여다보면 예컨대 효순이·미선이 사건, 광우병 소고기 수입사태 등이 발생했을 때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나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해 온 대중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정체성을 갖는 순간 다중이 됨을 뜻한다. 다중이라 부르건, 대중이라 부르건 달라질 바는 없다. ‘대중’은 접근의 방법과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르게 차용되고 유통돼 왔다. 대중의 성격을 좀 더 정교하게 규명하고, 그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입체적 분석이 필요할 뿐이다. 새천년을 맞는 2000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스탠퍼드인문학연구소(SHL)가 시도한 연구 프로젝트의 첫 대상이 바로 대중이었다. SHL은 학제 간 벽을 넘어서는 융합연구의 상징과도 같은 연구기관이다. 이들은 계급, 성별, 연령, 인종, 국적 등이 혼합된 집합체로서 대중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학제 융합을 통해 포괄적으로 분석했다. SHL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내놓은 ‘대중들’(Crowds)은 16명의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학자들이 모여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지서 18세기에 이뤄진 각 혁명들과 현대 사이에 존재한 근대적 대중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측면을 추적했다. ‘따로 또 같이’ 진행된 협동적 인문학 연구의 또 하나의 전범이 됐다. 2006년 출간된 ‘대중들’은 최근 그린비 출판사에서 번역 소개했다. 그동안 개별 학문 분야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졌을지언정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관점을 엮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연구로서는 사실상 첫 작업이 된다. 문화와 예술, 스포츠 등에서 더욱 강하게 부상하는 대중의 존재를 짚는 한편, 각 학문 분야별 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대중의 사회적 인식, 대중의 존재감이 사회에 표출되는 방식을 교직하며 복원시킨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윌리엄 에긴턴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대중을 ‘친밀한 동시에 익명인 실체’로 규정했다. 공공 보편적인 선을 실천할 수 있는 집단화된 실체와 함께 개인적 욕망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집합체로서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양상이 혼재돼 있는 존재가 대중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발터 베냐민(1892~1940)이 말했던 ‘도시 대중의 근본적 익명성’ 혹은 ‘고독을 사랑했지만, 군중 속에서 구현되기를 원했던’ 샤를 보들레르(1821~1867)의 사유가 더 확장 심화된 결과물이다. 또한 앤드루 V 우로스키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교수는 미디어, 또는 영화에 드러나는 숫자로 상징되는 대중의 영향력에 주목했다. 프로젝트 책임을 맡은 제프리 T 슈나프 하버드대 교수는 “군중의 종말을 성급하게 선언하는 이들이 있지만, 반전 시위에 참가한 수십만명의 대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도하는 수백만명의 대중, 체육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대중들은 집단적 행동의 영속적 매력을 입증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조직이 파괴되고 인터넷 등으로 첨단화된 사회라도 대중의 존재는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에둘러 강조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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