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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청소년 62명 집단탈주/44명은 돌아와… 18명 계속 수색

    【대전=이천렬기자】 23일 하오3시45분쯤 대전시 중구 낭월동 153의6 비행청소년 직업위탁교육시설 효광교호직업보도원(원장 김정환·58)수용원생 함모군(17·서울 관악구 봉천5동)등 62명이 집단탈주했다가 이날 자정 현재 양모군(17)등 44명이 돌아오거나 경찰에 붙잡혀 재입원됐다. 경비원 정병무씨(55)에 따르면 이날 원생 1백19명이 원내 마당에서 보도블록 설치 작업을 하다 휴식시간중 62명이 갑자기 「와」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을 밀어제쳐 잠금장치를 부순 뒤 문을 열고 인근 보문산 쪽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경비원과 교사등 3명이 배치돼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자진 귀원한 양군은 『그동안 잦은 기합으로 불만을 품고 경비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탈주한 것일 뿐 사전모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의경등 2백여명과 효광원 직원 10여명을 동원,보문산을 중심으로 달아난 나머지 18명을 찾고있다.
  • 현장체험담「흙과 더불어」펴낸 양천구청하수과장 김학수씨(화제의인물)

    ◎“토목공사 사고방지에 도움주려 정리”/공사현장에 얽힌 구조적 모순·애환 등 담아/24년간 여정 틈틈히 메모… 자비로 출간·배포 『기술공무원은 기술자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시대변화와 신기술의 발전에 대처할 적응력과 함께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24년동안 서울시 기술직 공무원으로 일해오면서 겪은 체험을 최근 「흙과 더불어」라는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 서울시 공무원들사이에 화제가 되고있는 양천구청 하수과 김학수과장(48). 그는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와 같은 부실시공으로 엄청난 물적·경제적 피해를 줬지만 많은 사람들이 곧 잊어버려 많은 대형공사 현장에서 사고재발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미진하지만 저의 현장체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했다』고 책을 펴낸 동기를 밝혔다. 김과장은 공무원 초년시절 업자들의 농간과 관계기관의 관리감독 소홀이 맞물려 보도블록의 바닥모래 치수가 바뀌는 공사현장의 모순구조를 꼬집은 글을 비롯,토목하수과의 업무를 보면서 경험한 애환이 담긴 글등 20여편을 진솔한 필체로 이 책에실었다. 김과장은 지난해 6월부터 6개월여동안 퇴근후의 시간을 이용,일기형식으로 메모해두었던 기록을 정리,맏딸 보라(18)양의 표지도안을 곁들여 지난 1월 1천5백권을 자비로 출간,구청직원·구의원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한강취로 사업중 작업인부 7명이 매몰돼 혼쭐난 이야기며 겨울철 동파된 대형수도관의 누수를 진흙으로 막고 용접한 뒷얘기등 기술서적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기발한 재래식 기법과 함께 시정개선을 위한 창안,자신의 승진과정등 24년동안의 인생여정이 그대로 그려져있다.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전문대 2학년때 부친의 권유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그는 단국대 토목공학과 3학년에 편입,대학을 졸업하고 토목기좌로서 줄곧 승진시험으로 9급에서 현재의 5급간부로 승진할 만큼 연구노력하는 공무원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신공법으로 건설되는 구조물 공사를 관리감독하기 위해서는 기술공무원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면서 「신기술·신공법으로 건설한 구조물들을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후손에게 떳떳하게 물려줄수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상배 25대 서울시장의 취임 포부와 각오

    ◎시민편익 최우선… 봉사행정 실천/“신상필벌 확립,신뢰구축에 역점/대선 공정선거되게 적극 뒷받침”/“지하차도 사업 추진시기등 신중결정” 『모든 시정을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열과 성을 다해 펼쳐나가겠습니다』 26일 제25대 시장으로 취임한 이상배서울시장은 『시정은 바로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민들의 깊은 신뢰와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역점을 두고 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비롯한 5만4천여 서울시 공무원들이 하나가 되어 확고한 봉사자세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했다. 공직자의 자세로는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 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주민참여 유도해야 이에따라 이시장은 취임하자마자 모든 서울시공무원들을 향해 『이 시간이전까지 봉사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했거나 잘못이 있었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최대의 관용을 베풀겠지만 앞으로는 각자 맡은 일의 결과를 철저히 따져 상줄 사람에게는 합당한 상을,벌줄 사람에게는 벌을 주겠다』고 밝혔다. 웃음띤 얼굴을 잃지않던 이시장은 이 대목에서는 정색을 하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시민의 입장과 어려움을 살피지 못하는 공직자는 자치시대·민주화시대에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의 편익을 위한 일이라면 골목길의 보도블록 하나나 거리의 간판 하나라도 제대로 놓여있는지 스스로 찾아 해내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취적 자세가 긴요 『아직 시정전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나 기왕에 추진되고 있는 사업은 계속 추진되어야 하겠지만 아직 연구·검토단계에 있는 사업은 방법과 시기등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서울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하도로와 쓰레기 소각장건설,정도 6백주년 기념사업등 대규모 사업들의 추진방법등에 다소 변화가 있을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오는 29일 공청회를 앞두고 있는 지하도로건설문제에 대해 『재정적인 문제와 여론,외국의 예등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방법과 시기 등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추진방법 변화 시사 그는 『그러나 전혀 타당성이 없는 사업이 아니고 시장이 바뀐다고 해서 계속되던 사업이 중단되거나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시대의 시의회와 중앙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도서울이 잘 돼야 우리나라 전체가 잘 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구의회와 내무부등 중앙정부 각 부처와도 충분한 대화와 협조로 지방자치제도와 수도행정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서울시의 당면과제로는 환경·교통·쓰레기·상하수도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잘 치르라는 뜻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30여년동안 내무행정을 맡아와 임명권자가 내무·지방행정통으로 알고 뽑아준 것으로 알며 오는 대통령선거는 가장 공명한 선거가 되도록 행정력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답변했다. 『앞으로 얼마동안 시장직을 수행할지 모르겠지만 재임기간동안 특별한 사업을 벌여 개인의 공적으로 남기려하지 않겠다』면서『그보다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에 더 주력해 시민과 공직자 사이의 틈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현대자 27일부터 정상조업/휴업 13일만에

    ◎위험물등 제거… 작업재개 준비/노조원들 가두시위… 경찰,49명 연행 【울산=이용호·백문일·이기철기자】 한달넘게 분규에 휩싸였던 현대자동차가 오는 27일 휴업조치를 해제,이날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간다. 현대그룹 정세영회장과 현대자동차 전성원사장등 임원들은 22일 상오6시 현대자동차 본관 회의실에서 긴급 정상화대책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이로써 노사분규로 인한 현대자동차의 휴업조치는 13일만에 정상을 되찾게 됐다. 회사측은 이에 따라 이날 하오 부서장·조반장 3천여명에게 분규사태에 대한 설명과 수습방안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회사측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2시부터 과장급이상 직원 1천여명을 출근시켜 각 부서별로 위험물 제거와 피해상황조사 등을 벌이는 한편 안전관리사 4백여명을 투입,회사내 위험물 저장탱크 등의 안전도 검사를 실시했으며 13개 정문에 배치됐던 바리케이드 등도 모두 철거했다. 22일 하오6시40분쯤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4,5 도크등 2곳에서 현대자동차근로자등 8백여명이 「민주노조탄압중지하라」는등 구호와 함께 보도블록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자 2시간만에 해산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현대미포조선 노조대의원 김재준씨(38)등 33명을 연행,조사하고 있다. 또 이날 하오6시쯤 중구 옥계동 새치굴다리밑에서 현대자동차근로자 1백여명이 시위를 벌이다 이종일씨(28)등 1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연행된 근로자 전원을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 돌에 맞아 입원 조병구 상경

    ◎“돌·화염병 세례댄 전쟁 치르는 느낌”/“소모적 과격시위 공방 언제까지…” 『화염병과 돌 등에 맞아 부상자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우리나라의 시위양상은 언제쯤 가야 바뀝니까』 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경찰병원 5017호에 입원해 있는 서울 3기동대 27중대소속 조병구상경(21)은 시위당시의 악몽을 잊고 싶은듯 병상에서 돌아 누우며 그칠줄 모르는 우리나라의 과격한 시위문화를 개탄했다. 조상경은 지난 19일 밤12시쯤 서울대학생들이 신림2동 파출소에 돌과 깨진 보도블록을 던지는 심야시위를 벌일 때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다. 조상경을 집도한 임혜경안과과장(40)은 『입원당시 눈조리개 역할을 하는 홍채가 탈구됐고 각막이 찢어졌었다』면서 『실명의 위험은 없으나 시력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지는 며칠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상경은 2남1녀의 장남으로 고향인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 부모와 두동생이 있으나 걱정할까봐 연락조차 하지않고 있다. 조상경은 『시위도중 학생들이 다치면 언론에 크게 보도되나 사실상 부상당한 경찰은 언론에서 취급조차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우리는 방어만을 위주로 시위진압에 나서도록 명령을 받고 이를 준수하나 학생들은 무차별적으로 돌과 화염병을 던져 어떨때는 전쟁을 치르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조상경은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많이 배운 대학생들과 못배운 내가 만나 시위문화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벌여 경찰측입장에서 지지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병원 7106호에는 지난 6월24일 새벽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동령알루미늄공장에서 벌어진 노사분규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근로자들이 뿌린 염산에 두눈을 잃은 박규송수경(23)이 석달째 입원중이어서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대학생 2백명 한밤 파출소 습격/화염병 던지며 격렬 시위

    ◎경찰,위협 발사… 구경하던 대학원생 절명/어젯밤 신림2동 파출소 17일 하오 10시4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2동 가나안제과 앞길에서 서울대학생 2백여명이 서울관악경찰서 신림2동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며 기습시위,파출소 내부가 일부 불에 탔다. 경찰은 학생들이 보도블록을 던지며 파출소를 습격하자 공포탄과 권총을 쏘며 이들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구경하던 서울대 대학원생 한국원씨(28·공업화학과 박사과정)가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쏜 총에 왼쪽 가슴을 맞아 숨졌다. 학생들이 이날 신림2동 파출소에 화염병 30여개를 던지며 기습시위를 벌이자 파출소장 조동부경위(39)등 직원 5명은 옥상으로 올라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과 공포탄 4발을 쏜 뒤 이어 권총실탄 8발을 쏘았으며 이 가운데 1발이 파출소 건너편에 있던 한씨의 왼쪽가슴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한씨는 이날 부인 서윤경씨(24)와 함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중이었다. 한씨는 사고직후 부인 서씨등에 의해 인근 관악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한씨의 사체가 안치된 관악성심병원에는 학생 3백여명이 병원입구를 봉쇄하고 병원앞 6차선도로를 점거한채 철야농성을 벌였다. 이날 학생들의 기습시위로 파출소안에 있던 팩시밀리 1대가 불에 타는등 내부 일부가 불에 탔다. 조파출소장은 신림2동 『학생들이 화염병과 보도블록을 던지며 파출소를 습격해 이를 막기위해 공포탄을 두차례에 걸쳐 4발을 쏘고 38구경 권총 8발을 쏘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날 하오 10시부터 관악경찰서 이전반대및 연행된 동료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40여분간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폭력시위 「일본의 양식」이 잠재웠다/60년대 학생소요 수습의 교훈

    ◎「전학연」 국회난입에 질타여론 비등/언론사서 「구국선언」… 극렬투쟁 퇴조 1960년 6월17일은 일본신문사와 반체제운동사에 길이 남는 일이다. 이날 도쿄(동경)에서 발행되는 7대 신문은 조간1면 중앙에 5단 크기의 박스로 「폭력을 배제하고 의회주의를 지키라」는 공동선언을 일제히 게재,폭력을 규탄했다. 『6월15일 밤 국회 내외에서의 유혈사건은 그 사태를 야기한 이유를 별도로 하고,의회주의를 위기에 몰아넣는 통한사였다. 우리는 일본의 장래에 대해 오늘날 만큼 깊은 우려를 가진 때는 없다고 시작되는 이 공동선언은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것은 결단코 허용될 수 없다고 밝히고 『일단 폭력을 시인하는 것 같은 사회적 풍조가 일반화된다면 민주주의는 사멸하고,일본의 국가적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사태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폭력사태를 철저히 비판했다. 반면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의 양식에 부응하는 결의를 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사회·민사 양당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쟁점을 잠시 덮어두고 솔선해 국회에 돌아와 국회기능을 정상화시킴으로써 사태수습에 협력하는 것이 국민 다수가 바라는 바』라고 피력했다. 이 공동선언의 말미에는 이 선언에 참여한 일본경제·동경타임스·동경신문·독매·매일·조일·산경신문사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적혀 있었다.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당시 일본의 사회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해 6월4일 안보조약 개정저지를 위한 제1차 스트라이크에는 전국에서 5백60만명이 참가했다. 1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비서가 하네다(익전) 공항에서 포위되는 곤욕을 겪었다. 15일에는 안보조약 개정저지 제2차 투쟁이 벌어졌다. 전국에서는 5백80만명이 통일행동에 참가했으며 국회주변에는 11만명의 데모대가 둘러쌌다. 「전일본 학생자치회총연합」이라는 명칭의 「전학연」은 국회구내에서 집회를 갖기로 방침을 정하고 1만7천명의 멤버가 국회주변에 집결했다. 이 가운데 1천5백명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국회구내에 돌입했다. 최루가스·소방호수·경찰봉으로 저지하는 경찰에 데모대는 보도블록을 깨뜨려 던졌다. 15일과 16일에 걸친 국회 주변에서의 격돌에서 학생측 1백82명이 검거됐으며 구급차 48대가 44차례에 걸쳐 출동,부상자 5백89명을 실어 날랐다. 이 와중에서 동대문학부 3년생 간바 미치코(화미지자)양이 사망했다. 6월16일부터 17일에 걸쳐 일본 열도는 「성명」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정부를 비롯,각 정당·노동조합·대학·신문사·재계 등 일본의 유력한 기관은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성명을 발표했다. 그만큼 전학연 주류파에 의한 국회난입사건은 일본의 중추를 진동시켰다. 더구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더욱 국민적 분노를 사게 되어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밝혀 둠으로써 국민을 무시하고,혹은 진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때문이다. 정부는 전학연의 행동에 대해 『사회질서를 전복시키려는 국제 공산주의의 기도에 함께 춤추는 계획적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가야 세이지(모성사) 동대학장은 『사망자를 낸 난투사건은 학생측의 행동에도 책임 있다. 그러나 경찰에 다소의 과잉이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며 결론적으로 의회정치의 룰을 깨뜨린측의 책임도 크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일본에 있어서의 소위 「학생운동」은 전전·전후를 통해 일관하여 좌익운동 또는 정치운동의 대명사가 되어왔다. 사회적으로 하나의 층을 형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집단·조직적 행동이 반체제·반권력 투쟁의 선봉역을 맡아 왔다는 사실은 일본 역사의 큰 교훈으로 남는다. 일본에 있어서 반사회적 극렬 학생운동은 60년대와 70년대 초반에 걸친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계속 벌어졌다. 7대 신문의 공동선언이 있고도 일본의 학생운동은 10여 년 동안 계속되다 69년 「야스다(안전)강당사건」으로 막을 내린다. 동대 야스다강당 점거농성사건은 「전공투」(전학적투쟁조직)에 의해 발생했다. 당시 과격파 학생들은 아카몽(적문)과 더불어 동대의 상징인 야스다강당을 점거,학사행정 일체를 마비시켜 놓았다. 학교당국은 경찰에 캠퍼스내 진입을 요청한 상태였다. 경찰은 69년 1월19일 8천5백명의 경찰관,3백45대의 방석차,4대의 헬리콥터를 동원,몇달째 강당을 점거하고 있던 과격파 학생들에 대해 대공세를 펼쳤다. 돌과 화염병,1만발의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격전은 상오 7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하오 5시47분 야스다강당이 불타는 가운데 경찰이 7백67명의 농성학생 전원을 체포함으로써 격전은 막을 내렸다. 수련의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던 의학부학생 12명이 68년 1월 무더기 징계조치를 받음에 따라 발단이 된 이 사건은 전체학생의 「1년간 유급」이라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낳았다. 지난 56년 제9차 전학연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던 학습원대 고야마 겐이치(향산건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과격이 휩쓴 자리에 남는 것은 소모 뿐이었다. 그래도 면학에 열중한 대다수 학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일본이 가능했던 것이다』 과거 학생운동에 정열을 불태웠었다는 한 중견언론인도 『무정부 상태에서 파괴가 계속되면 그 회복에 30년은 걸린다. 일본이 70년대초를 끝으로 학생운동에 종막을 고한 것은 여론의 냉혹한 비판과 경제력의 축적 때문이었다. 총리를 구타하는 것 같은 반인륜적 행위가 자행되는 오늘의 한국은 매우 우려해야만 할 상황이다. 사회의 각계각층은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신의 입장을 뚜렷이 밝혀야 한다. 오늘의 한국은 이런 점에서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시청앞 대회」 불허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은 7일 이수호 「대책회의」 집행위원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8일 하오 3시 시청 앞에서 개최하려는 「제5차 국민대회」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대책회의는 그 동안 6차례에 걸쳐 도심지 간선도로를 장시간 무단점거하고 수많은 화염병과 인도의 보도블록을 깨 던지는 등의 불법가두시위를 주도해왔다』면서 『여의도광장이나 고수부지 등 시민의 불편이 적은 곳으로 변경한다면 보호할 용의가 있으나 강행할 경우에는 강력하게 해산하겠다』고 말했다.
  • 「애국단체」 가면 쓰고 온갖 행패/불순 「시위꾼」의 행태

    ◎농성장 떼지어 돌며 금품요구 예사/“평화시위” 호소 시민들에 주먹질도/“밥풀떼기” 자칭 30대 초반 전과자들… 명동에만 3백여 명 명동성당과 백병원에서 농성을 벌여온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의 「불순시위꾼」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사회혼란 또는 체제전복을 노리는 폭력배 또는 전과자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그 동안 검찰과 경찰에 행패를 부리는 것은 물론,「대책회의」 관계자들과 학생들에게 시위와 농성에 참여하는 대가를 요구하고 주먹질을 하거나 금품을 요구하기가 일쑤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28일 성균관대 학생들이 평화적인 가두행진과 농성을 벌이던 때였다. 1만여 명의 학생들은 이날 경찰과 약속한 대로 명동성당과 백병원 일대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인 뒤 자정이 가까워오자 대부분 해산했다. 그러나 「시위꾼」들은 새벽 4시까지 남아 술에 취해 시내버스와 승용차에 발길질을 하고 경찰에게 학생들로부터 빼앗은 화염병 50여 개와 돌 1천여 개를 던지며 과격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또 숨진 김귀정양의 부검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29일 하오 서울지검 형사3부 임채진·김수남 검사 등 검찰관계자들과 서울의대 이정빈 교수가 찾아갔을 때도 여러 차례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이들은 경찰이 연행하려고 하면 경찰의 멱살을 잡고 『경찰이 민주시민을 죽이려 한다』고 고함을 쳤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이들의 행패가 갈수록 심해지자 30일에는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시민을 자처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질서를 해치고 대책위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이들의 만행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50여 명은 30일 밤에도 성균관대학생들의 시위에 「애국시민회」 「파고다동지회」 「서울시민회」라는 깃발을 들고 참가,학생들에게 폭력시위를 선동하다 호응을 얻지 못하자 보도블록을 깨 던지고 과격시위에 항의하는 시민을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비로소 이들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 「대책위」 관계자들은 이들이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범국민대책회의」가 연세대에서 농성을 할 때부터 함께 행동을 해온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또 명동성당에서의 기자회견장소 뒤쪽에 10여 명씩 줄지어 서 있으면서 『언론의 보도태도가 형편없다』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백병원에서도 학생들은 병원측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비교적 애를 쓰는데 비해 이들은 원무과와 입원실에까지 들어가 멋대로 잠을 자고 기물을 파괴해 「대책회의」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그 동안 대규모 시위 때에는 1천여 명씩 참여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백병원과 명동성당 주변에도 2백∼3백명씩 머물다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31일 상오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현재는 10여 명 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며 부르는 「밥풀떼기」라는 별명은 사람의 옷이나 얼굴 등에 묻어 있는 밥알처럼 사람의 모습을 추하게 만들거나 일정하지 못한 곳에 기생하며 살아간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쨌든 이번 「불순 시위군」 사건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세력과 우범자들이 기회만 있으면 사회혼란과 체제전복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폭력시위 선동·파괴행위 조장/「애국시민회」 집단

    ◎“은행에 불지르자” 충동질/지나는 차량에 돌던지기 일쑤/부검협상 검사들에 폭력행사도/서울시경,19명 연행 철야조사 최근 곳곳의 집회시위 현장에서 주최측의 뜻과는 무관하게 폭력시위를 선동하거나 파괴행위를 일삼는 무리들이 수백명씩 떼지어 날뜀에 따라 경찰이 30일 밤부터 본격적인 검거에 나섰다. 한달 이상 계속되는 시국관련 집회시위로 사회불안이 가중돼 학생·재야 및 경찰이 바람직한 시위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운데 폭력과 파괴를 조장해 평화적인 시위를 방해하는 이들 불순세력들은 지난 28일의 명동·퇴계로 시위 때와 30일의 종로3가 시위에서 극단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30일 밤 3천여 명이 참가한 종로3가 시위에서는 「파고다동지회」 「서울시민회」 「애국시민회」라는 깃발을 들고 나선 50여 명의 불순세력 집단이 학생들에게 폭력시위를 선동하다 학생들이 평화적인 방법을 고수,을지로 쪽으로 빠져나간 뒤에도 남아 있다가 보도블록을 깨 경찰에 던지기도 했다. 이들은 학생들이 물러간 뒤에도경찰에 폭언을 하고 『왜 경찰이 길을 막아 시민에게 불편을 주느냐』고 대들기도 했다. 이들은 또 과격시위에 항의하는 시민을 집단 구타했다. 이 때문에 시위를 주최했던 학생대표 몇명이 현장에 있던 김세옥 서울시경2부장을 찾아와 『저 사람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알아서 처리해 달라.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을지로3가까지 가겠다』고 요청,경찰은 이가운데 김 모씨(48·무직·강서구 화곡동) 등 19명을 붙잡아 종로경찰서에서 시위참가 동기,시위방법 등을 밤새워 조사했다. 또 이처럼 비뚤어진 시위양상이 갈수록 두드러짐에 따라 서울시경 특수대는 30일 밤 5개 중대 경찰병력을 종로와 명동·퇴계로·백병원 앞 등에 배치,불순분자를 붙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의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30일 서울 중구 백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병원 주변에 민주시민을 가장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온갖 행패를 부리며 질서를 해치고 있어 「대책위」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면서『이들이 「대책위」와 국민들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정체와 배후를 밝혀내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들은 지난 28일 하오 11시쯤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명동입구에서 열린 「김양사망규탄대회」가 끝난 뒤 학생들의 해산요구를 묵살,화염병을 빼앗아 경찰에 던지고 지나는 차량에도 돌을 던져 과격시위를 유도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20여 명은 지난 29일 부검을 위해 백병원에 찾아온 검사와 부검의들을 폭행하고 계란을 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허름한 옷차림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병원 주변에서 10∼30여 명씩 몰려 다니며 『학생들이 시신사수에만 신경을 쓰고 시위는 하지 않는다』면서 과격시위를 부추기다 학생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신종 「시위공갈배」의 성격을 띤 이들 불순세력집단은 김귀정양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백병원 주변에서 「대책위」와 학생단체들에게 『열심히 싸워주겠다』면서 금품과 음식제공을 요구하거나 병원사무실에 무단으로 들어가 떼지어 잠을 자고 나오는 등 행패를 일삼았다. 또 28일의 백병원 주변 시위 때는 일부러 주변상가 유리창에 돌을 던져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고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에게 『은행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등 매우 위태롭게 행동했다. 「대책위」는 『이들은 자신들을 「애국시민회」 「서울시민회」 소속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신분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규찰대를 강화해 이들이 병원 주변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도 이날 「대책위」가 신원불명자들로 지목,경찰이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고 있는 것과 병행해 시위현장의 불순세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들이 시위현장에서 김양 사체부검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고 과격시위를 부추킨 점을 중시하고 이들의 신원파악과 시위가담 경위 및 목적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29일 검찰관과 의사가 백병원에 도착해 「대책위」측과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검사와 부검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린 점과 학생 등 시위대들 조차도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며 검찰과 시위대 사이를 벌려놓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이들이 과격시위를 충동하는 목적을 띤 의도적인 불순세력이 아닌가 보고 철저히 수사한 뒤 공개하기로 했다.
  • 또 주말시위… 곳곳 산발 충돌/노조위장 사망 규탄

    ◎도로점거 화염병·최루탄 공방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투신사망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11일 서울을 비롯,전국 15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또 한차례 공권력과의 충돌을 빚었다.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 6시30분쯤 「대기업노조연대회의」와 「전노협」 「전대협」 등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를 갖지 못하자 그 중 일부가 종로일대와 광교 청계천 을지로 등 도심 곳곳에서 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6시쯤 종로 2가와 세운상가 앞 등에선 3천여 명의 시위대가 연좌농성을 벌이다 집회장소인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보도블록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이들은 경찰에 밀려 종로2가∼종로4가 광교 청계천 2·3가 등으로피해 다니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하오 9시쯤 해산했다. 앞서 이들은 이날 하오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퇴계로 3가 대한극장과 동대문운동장 앞에 각각 집결해 종로 4가까지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재야 쪽 「전국노동자대책위원회」 소속 근로자와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 2천여 명은 이날 하오 3시20분 홍익대에서 박씨의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이 교문출입을 막자 하오 4시30분 건국대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경찰이 교문 앞에서 막자 삼삼오로 짝을 지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이용,을지로3가 앞에 집결한 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일대 상가들은 시위대가 몰려들자 대부분 철시했으며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이 미리 시내를 빠져나가 지난 9일의 대규모시위 때와는 달리 큰 혼잡은 없었다. 홍익대에서는 이날 미리 학교에 들어와 있던 부천지역 15개업체 근로자 1백여 명과 대학생 등 7백여 명이 참석해 약식으로 집회를 가졌다. 대구와 광주 등 14개 지역에서도 집회예정장소 주변과 진입도로 근처에서 최루탄으로 막는 경찰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일요일인 12일과 화요일인 14일에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와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각각 예정돼 있고 노동단체에서도 15일부터 3일 동안 사업장별로 파업투쟁을 벌일 움직임이어서 5·18 10주년인 18일까지는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전국 곳곳서 산발시위/24개시/학생·재야등 3만여명 참가

    ◎일부 도심서 연좌농성… 한때 교통마비/화염병 투척 줄어… 전경도 해산위주로/한밤까지 공방전… 서울선 페퍼포그차 2대 전소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4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24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 화창한 주말이 돌과 최루탄가스로 얼룩졌다. 「강경대군 치사사건 범민족대책회의」가 전국적으로 「백골단 전경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궐기대회」를 갖기로 한 이날 학생과 재야 사회단체회원 및 야당인사 등 수만 명이 밤늦게까지 시위에 참가했으며 서울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하오 10시가 넘도록 시위가 계속됐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 서울 1만2천,부산 5천,광주 6천5백 명 등 전국에서 3만여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회의」측은 서울 20만,부산 4만,광주 2만명 등 28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시위참가자들은 이날 하오 2시부터 각 지역별로 집결장소에 모인 뒤 대회장소로 행진을 강행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궐기대회는 열지 못하고 도심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서 큰충돌은 없었으나 서울시청 등 각 도시 주요건물 주변 등이 이날 교통이 통제된 데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계속해 교통이 두절,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은 이날 시위진압방법 개선방침에 따라 인도를 행진하는 시위는 허용했고 차도를 점거할 경우만 최루탄을 쏘았으나 적극적인 체포활동은 벌이지 않았다. 시위대도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행위는 자제했다. 서울에서는 하오 4시쯤 시청 앞에서 갖기로 한 대회가 무산되자 하오 10시가 넘도록 1만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몰려다니며 서울역 광화문 을지로 남대문 등 서울시청 주변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하오 6시30분쯤 경찰이 본격 해산에 나서면서 다소 주춤했으나 하오 8시30분 서울역광장과 앞도로에 다시 모여 정리집회를 갖다가 경찰이 최루탄을 역대합실에까지 쏘며 해산시키려하자 1시간 30분 가량 보도블록과 화염병 등을 던지면서 격렬히 맞서다 해산했다.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대 조선대 등 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재야인사 시민 등 7천여 명은 금남로 충장로 등지에서 「백골단 해체」등의 구호를 외치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 대학생·시민 등 1만여 명은 4일 하오 3시쯤부터 부산역앞 8차선 중앙로 2백여 m를 점거,50여 분 간 「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극한대치의 「시위문화」/김용원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한시절 정의감에 불타는 학생들의 혈기를 부추기어 그들을 시위현장으로 이끌어 낸 경우가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냐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지금보다는 훨씬 낭만적인 시위를 벌이던 60년대,70년대에 흔히 나돌던 말이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캠퍼스에 탱크가 들어오고 얻어 맞고 잡혀갈지언정 화염병이나 쇠파이프·각목 등을 들고 나서지는 않았다. 스크럼을 짜고 가두행진을 하거나 길바닥에 드러눕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희생될지언정 남을 다치게 하지는 않겠다』는 일반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엄청난 희생을 치른 광주의 비극을 전후해 우리의 시위모습은 서로 상대방의 굴복을 요구하는 시가전,백병전의 양상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시위현장은 마치 「한풀이 한마당」같이 살벌해져 갔고 가슴 섬뜩한 저항의 노래들도 등장했다. 마침내는 각목과 쇠파이프·보도블록이 난무하고 화염병이 어지럽게 날게 됐다. 공권력의 대응방식도 강경으로만 치달아 서로가 맞부딪치기만 하면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극한 대립상을 보이게 됐다. 80년대 후반 봇물터지듯 확산된 노동운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노·사,노·정간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과격한 절규와 상식에 벗어난 격돌이 잇따랐다. 「피 묻은 작업복은 파업의 깃발」이라는 식이었다. 이런 판국에 분신·투신·치사사건이 속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몇해 전 학생과 노동운동 대열에서 열병처럼 번지다 한동안 잠잠하던 분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또 드러내고 있다.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전남대·안동대·경원대 학생 등의 잇단 분신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각계에서 자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와중에서 3일 대전 국립묘지와 충북 중원에 있는 중앙경찰학교에서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단면을 되새기게 해주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학생에 의해 희생된 동의대사태 순직 일곱경찰의 2주기 추모행사가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쓸쓸하게 거행된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만바뀌었을 뿐 학생이나 경찰이나 다 같은 희생양임을 안타까워 하다보니 못다 핀 채 스러진 젊은이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피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피에 너무 취해 어지럽다」는.
  • “폭력시위­과잉진압 제발그만”/대학총장·사회단체등 각계서 목멘호소

    ◎“화염병·최루탄 국민지지 상실/사회·학원안정 되찾게 자제를”/분신등 자해행위 중지도 당부 명지대 강경대군의 상해치사사건을 계기로 일부 학생들의 과격시위 및 경찰의 과잉진압 등 「시위폭력」을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국민들은 특히 『운동권 학생 및 급진재야 인사들과 공권력간의 장기적인 대치상태는 국력의 소모를 부르고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같은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 폭력을 삼가고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 등 서울시내 17개 종합대학 총장들은 2일 상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팔레스호텔에서 강경대군의 상해치사사건과 관련,간담회를 갖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교전하는 전투적인 시위나 진압방식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지지를 잃고 있다』면서 『서로 불신을 씻고 하루빨리 사회와 학원의 안정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총장들은 『강군의 사망에 대해 교육자로서의 깊은 애도를 표하며 분신등 더 이상의 자해행위를 중지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이번 사건이 경찰의 과잉진압이나 공격적 폭력에 의해 발생한 점은 심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학원에서의 건전한 비판기능과 자유로운 의사표시,평화로운 시위는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번 일과 같은 불행한 사태의 발생에 대해서는 교육자·정치권 등 기성세대의 반성이 앞서야 하며 특히 학원이 교육 및 연구의 장으로 미래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재야,나아가 국민 모두가 학원의 안정을 위해 협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지역의 대학 총·학장들도 금명간 모임을 갖고 이번 사건에 따른 학원안정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세대 이웃 Y식품점 주인 황주호씨(40·서대문구 창천동 80의16)는 『이번 사건이 터진 뒤 매상이 뚝 떨어져 장사하는 입장에서 볼 때 시위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히고 『학생들은 좀더 온건한 방법으로 주의·주장을 내세우고 전경들도 데모학생들을 끝까지추적해 체포하는 것보다 해산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시위를 진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시위현장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학생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으나 보도블록을 깨 던지는 등의 폭력적 행위는 공공재산을 손상시켜 결국 국민의 세부담만 가중시킨다』고 지적하고 『공공기물 파손행위는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강군이 사망한 뒤 학생과 경찰의 충돌로 학생 1백여 명과 진압경찰관 3백여 명 등 모두 4백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치안본부는 지난해에 만도 경찰관 4천4백83명이 부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 노·학 연대시위 전국 확산/5만여명 참가… 치사규탄·휴무강행

    ◎도심서 밤 늦도록 산발시위/신촌선 대형 붉은 사노맹 깃발 목격/최루탄에 맞아 근로자 각막파열 「노동절」의 부활을 주장하는 「전노협」 소속 근로자와 운동권 학생 5만여 명(경찰추산)은 1일 하오 서울 연세대를 비롯한 전국 80개 대학에서 「노동절」기념 및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규명집회를 갖고 거리로 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연세대에서는 「전노협」측 근로자와 재야단체회원 운동권 학생 등 1만3천여 명이 모여 하오 2시 원진레이온의 직업병과 강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노학연대집회를 가진 데 이어 하오 4시부터는 「노동절」을 기념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고 가두로 진출했다. 집회참가자들은 이어 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하기 위해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출동한 경찰과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였다. 학교 밖으로 빠져 나간 참가자들 가운데 2천여 명은 하오 9시쯤 신촌로터리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과 깨뜨린 보도블록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명동·공덕동·서울역 등 이날 하룻동안 서울시내 20여 곳에서 하오 11시40까지 1백∼1천여 명씩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 곳곳에서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날 연세대에서는 5백여 명의 학생이 철야농성을 하며 강군의 빈소를 지켰다. 이들은 내무부장관 등 강군사건 관련자의 처벌,구속노동자 석방과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고 올해 임금투쟁에서 승리를 위해 단결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지방에서도 시위가 잇따라 광주에서는 학생·시민 등 1만8천여 명이 하오 3시쯤부터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인천·청주·대전·부산 등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도 학교에서 집회를 가진 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연세대 학생회관 건물벽에는 강군 어머니의 절규하는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렸고 하오 7시40분쯤 신촌시장에서는 시위대 가운데 가로 2m,세로 1.2m 크기의 붉은색 바탕에 흰색글씨로 「당신이 동지 사노맹」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는 참석자가 목격됐다. 이날 하오 9시쯤 서울 신촌로터리서 전경들과몸싸움을 벌이던 유니온화학 근로자 윤영탁씨(26·부천시 심곡동 100)가 전경들이 던진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의 각막이 파손되는 부상을 입었다. 또 서강대생 김재록군(23·정외과 3년)도 같은 장소에서 최루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 위가 3㎝ 찢어졌다. 또 학생회관 1층에 마련된 강군의 분향소에는 이날도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이에 앞서 서울대 명지대 등 서울시내 24개 대학생 7천여 명은 하오 1시를 전후해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연세대로 모였다. 한편 「전노협」은 이날 산하 노조 4백50개 가운데 1백94개 노조 9만7천여 명이 휴무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2백1개 노조의 16만1천명 가운데 96개 노조 5만3천24명이 휴무에 들어갔으며 96개 노조 가운데 89개 노조는 이미 노사합의로 5월1일을 휴무일로 정한 곳』이라고 밝혔다. 이날 검찰과 노동부는 불법으로 휴무를 한 이들 7개 노조의 간부오 「노동절 휴무」 및 9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전노협」 및 「대기업노조연대회의」 간부들에 대한 전면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전노협」 현주억 의장 직무대행 등 4명의 검거에 나서는 한편 모두 20여 명에 대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구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수입 의약품 폭리 대책 세워라”/28일(국감중계)

    ◎지역 의료보험료 30%선 인상 타당한가/조합주택 아파트 투기방치 이유 밝히라/“수입품 정밀평가… 불성실 신고자 엄격 제재하겠다” ○현안없어 설전만 ▷외무통일위◁ 외무부에 대한 감사에서 국내정치와 관련된 특별한 현안이 없는 탓인지 평민당 의원들은 주로 『노태우 대통령의 12월 중순 방소가 현시점에서 과연 필요한가』를 집중 추궁. 문동환 의원(평민)은 정상의 외국방문에는 특별하게 얻어내야 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국내 정국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당에 한소간에 외교채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중대한 현안이라도 있는가』라며 힐난성 질문. 최호중 외무장관은 이에 대해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만 정상회담이 열려야 된다는 논리는 지금 세상에는 안 맞는 얘기』라며 일축하고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도 국내적 어려움이 있지만 부시 미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부지런히 만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 조순승 의원(평민)이 이에 가세,『노 대통령 방소 경비로 50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막대한 국고를 사용하는데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원 사격. 조 의원은 또 『한소 수교교섭과 관련해 소측에 20∼30억달러의 경협차관을 제공키로 했다는데 사실인가』라며 물은 뒤 『고르바초프의 국내입지가 불안한 상태인데 경협차관을 함부로 주었다가 나중에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맹공. 답변에 나선 최 장관은 노 대통령 방소의 효과로 ▲한소 관계진전 ▲동북아 평화기여 ▲한중 수교자극 등을 열거한 뒤 『이러한 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마무리. 이처럼 결론없는 설전이 계속되자 조 의원이 『국내에 남아도는 쌀을 대소 경협명목으로 지원할 용의는 없는가』라며 이색질문. 최 장관은 이에 『소 정부 대표단과의 경협논의 과정에서 쌀 제공문제를 논의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긍정검토를 약속. ▷재무위◁ 산업은행에 대한 재무위 감사에서 임춘원·유인학 의원(평민)은 『산업은행이 태영의 계열회사인 태영산업에 지난 80년 이후 2백83억원을 대출해준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여의도 태영사옥의 등기부 등본을 증거로 내보이며 은행측의 자료제출을 요청,감사장은 시작단계에서부터 긴장. 그러나 은행측이 대출과정 및 담보설정경위,대출금의 회수 가능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해명함으로써 용두사미식 질의 답변으로 종결. 임 의원은 산업은행이 지난해 12월13일 태영의 여의도사옥에 대해 모두 8건의 추가담보가 한꺼번에 설정된 것을 문제삼으려 했고 이에 대해 이형구 산은총재 등 총재단이 답변을 머뭇거려 한때 술렁. 그러나 김영구 재무위원장(민자)이 은행실무자가 나와 상세히 답변토록 조치. 이 실무자는 태영산업의 전신인 울산 탱크터미널과 울산사일로가 지난해 9월 태영산업으로 합병되면서 공동담보의 필요성에 따라 생긴 추가담보일뿐 담보강화는 아니라고 해명. 임 의원은 태영의 자금상태가 문제가 있어 뒤따른 담보강화라는 쪽으로 사안을 몰아가려 했으나 이미 임 의원의 판정패로 결론은 내려진 상태. 유인학 의원은 더 이상 문제삼을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듯 『산업은행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태영이 그런 식으로 대출을 받지 않으면 안될만큼 자금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유도. 한편 이에 앞선 관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사치성 외제품과 농축산물 수입에 따른 문제점 및 관세청 퇴직간부들이 주축인 관우회의 부동산투기 문제를 추궁. 이수휴 관세청장은 『17개 소비재 수입품목에 대해서는 관세가격 평가를 강화하고 물품 수입시 관세 및 조세를 엄밀히 부과하겠다』면서 『개별·정밀평가를 병행해 불성실 신고자는 엄격히 제재하겠다』고 답변. ○전동차 유찰 따져 ▷경과위◁ 여야 의원들은 28일 경과위의 조달청에 대한 감사에서 새 민방 지배주주로 선정된 (주)태영의 정부공사 수주실태와 지하철전동차 구매계약 의혹 등을 집중 추궁. 이해찬 의원(평민)은 태영의 정부공사 수주가 과다하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지난 88·89년과 금년중 태영의 정부발주공사 계약 현황을 밝히라』고 요구. 신영국 의원(민자)은 지난 88년 지하철전동차 구매계약이 11번씩이나 유찰된 경위를 추궁하고 작년에전동차 구매계약을 맺은 현대정공 (주)대우 한진중공업 등 3개 업체간의 담합의혹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장홍렬 조달청장은 『지하철 전동차 구매계약이 11번이나 유찰된 것은 당시 서울시 예산이 과소책정된 때문이며 89년과 90년에는 예산이 적정수준으로 책정돼 계약이 순조로웠다』고 해명하고 태영의 정부공사 수주현황에 관한 자료는 곧 제출하겠다고 답변. ▷보사위◁ 보사부에 대한 이틀째 감사에서 ▲통합의료보험 추진용의 ▲주인없이 버려진 묘역의 관리대책 ▲생수시판 방침발표에 따른 문제점 등을 추궁했다. 그러나 첫날에 이미 7명의 의원이 주요 현안을 밀도있게 「훑은」 탓인지 열기는 다소 시들한 분위기. 박영숙 의원(평민)은 『올해초 농촌의 의료보험료가 30∼50%씩 인상되고 지난 8월에는 서울시의 의료보험료가 28%나 인상돼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추곡수매가와 임금은 한자리 수 인상을 고집하면서 의료보험료는 30%씩이나 대폭 올리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공박. 이어 김인영 의원(민자)은 『국토의 효율적인관리차원에서 천주교가 최근에 밝힌 20∼30년 지난 구묘의 화장제를 보사부가 적극 도입,범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킬 용의가 없느냐』고 제의하고 『일부 병원들이 첨단고가 의료장비를 수용능력 이상으로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냐』고 추궁. 김주호 의원(평민)은 『올 10월말 현재 완제 의약품 수입액수가 5천3백만달러에 달한다』고 말하고 『이런 수입약이 원가의 배에 달하는 폭리로 유통돼 약품유통 질서를 문란시키고 국민들의 외제선호성향을 부채질하고 있다』면서 가격관리 대책 및 수입관리 대비책의 제시 등을 요구. ○「체육협」 배경 추궁 ▷문교체육위◁ 여야 의원들은 가칭 「생활체육단체협의회」의 창립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여부와 골프장 과다승인에 따른 문제점·청소년대책·올림픽 유스호텔의 경영부실 이유 등을 집중 추궁. 박석무 의원(평민)은 『지난 7월 체육부의 협조공문을 통해 각 시 도별로 발족한 생활체육단체 협의회가 보조금·대회상금 등의 명목으로 체육부로부터 직접적인 예산지원 및 행정지원을 받도록돼 있는데 이는 차기 총선과 지자제 실시에 앞선 정치적 포석이 아니냐』고 질의. 이재연 의원(민자)은 『남북통일축구 하나만이라도 정례화시켜 축구를 통한 통일열기를 고조시킨 다음에 차차 남북단일팀 구성을 논의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본다』면서 현재 체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체육교류사업이 방만하기만 하고 실속이 결여됐다고 지적.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생활체육단체협의회」 문제와 관련,『범국민적 생활체육의 보급운동은 기존의 엘리트 체육조직에서 담당하기보다는 체육동호인 등 자생적 민간단체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창립하게 된 것』이라면서 『정치적 의도는 전혀 개입돼 있지 않다』고 답변. ▷행정위◁ 서울시에 대한 이틀째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소방공무원 이직률 증가 ▲서울시의 교통대책 ▲서울시 공유재산 부실관리 등 방만한 서울시 행정의 난맥상을 집중적으로 추궁. 이종찬 의원(민자)은 『서울시가 종로구 가회동·삼청동 등 10개동일대 2천7백56가구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증개축을 제한하는 등 과도한 규제조치를 취함에 따라 이 지역이 슬럼화되는가 하면 지난 수해 때 전 가족이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고 지적하고 과잉규제 조치를 대폭 완화할 것을 요구. 양성우 의원(평민)은 『무주택사원이나 공무원에 대한 특별 배려로 정부가 장려한 조합주택 아파트가 복부인들의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동산업자들이 직장조합아파트 거래를 광고까지 하고 있는 것을 방치하는 이유를 밝힐 것』을 촉구. 고건 시장은 김덕규 의원(평민)의 보도블록 교체에 따른 예산낭비 및 특정 납품업체와의 결탁의혹 질의에 대해 『값이 비싼 화강석 등의 블록은 간선도로변의 민간 대형빌딩 신축시 건축주 자비부담으로 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보도블록 교체공사는 파손률이 60% 이상인 경우와 지하매설물이 정비되어 재굴착이 필요없는 지역에 한해 시공하고 있다』고 답변. 고 시장은 또 유기수 의원(민자)이 시외버스터미널의 이전에 따른 특혜지원 의혹설을 추궁한 질의와 관련,『시외버스터미널 이전은 79년부터 계획수립에 착수,85년 9월에 확정됐다』고 밝히고 『도심권의 교통혼잡을 완화하고 시설의 현대화로 이용객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이전이 추진됐다』고 해명.
  • 술취한 경관 시민에 권총뺏겨/출동한 동료는 총조작도 못해(조약돌)

    19일 하오8시30분쯤 대전시 동구 대동4거리 멕시칸 양념통닭가게 앞길에서 대전 동부경찰서 교통계 이재연경장(40)이 술취한 채 주차문제로 40대 시민과 시비중 권총을 겨누다 빼앗겼다. 또한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실탄 제거법을 몰라 권총에 장전돼 있던 실탄 두발을 보도블록에 발사,시민들이 놀라는 등 소동을 빚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경장은 이날 술마신채 40대 남자가 주차금지 구역인 도로에 차를 세우고 통탉을 사러가자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시비가 붙어 권총을 얼굴에 겨누다 이 남자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또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10여분뒤 현장에 출동한 동부경찰서 신안동파출소 이상열순경(37)은 이 남자로부터 권총을 넘겨받아 실탄을 제거하기 위해 보도블록에 한발을 발사한뒤 다시 장전되자 재차 발사,주민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 해직교사 복직운동 펴다 꾸중/여고생 투신자살

    【경산=김동진기자】 해직된 전교조가입교사의 복직운동을 폈던 여고3년생이 영남대 인문관 4층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일 밤11시20분쯤 경북 경산시 영남대 인문관옆 보도블록에 대구 K여고 3학년 김수경양(18)이 갈비뼈가 부러지고 코와 입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영남대학교 경비원 정석태씨(24)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김양은 이날 하오 학교에서 교문밖을 몰래 나갔다 들어오다 서모교사(32)에게 들켜 꾸중을 들은 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운동권 학생과 학교 측으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다. 내일 학교에 안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씌어진 쪽지를 주고 바로 귀가했었다. 김양은 지난해 2학년 때 담임교사인 최모씨(33)가 전교조가입과 관련,해직당하자 해직교사 복직운동에 가담했었는데 교사들이 이 때문에 자신을 미워한다며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4층건물인 영남대 인문관 옥상에서 『엄마,아빠 미안해요. 다음에 태어나면 자랑스런 딸이 될께요』라고 김양 이름으로 씌어진 메모가 발견됨에 따라 김양이 학교생활을 비관해 옥상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울산시가지 온통 최루가스/현대계열 근로자 격렬시위

    ◎현대자등 9개사 파업ㆍ조단/「골리앗」1백20명 농성 계속 【울산=이용호ㆍ박대출기자】 현대중공업 공권력투입 4일째인 1일 현대자동차등 현대그룹계열 4개업체가 파업에 돌입하고 5개업체가 조업을 중단한 가운데 일부 근로자들이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등 과격시위를 벌여 이날 하룻동안 울산시내가 온통 최루가스로 뒤덮였다. 현대중공업 근로자 4천여명은 이날 상오 일산동 변덕고개에서 보도블록을 깨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후 하오늦게까지 대치했으며 현대종합목재 근로자 7백여명도 동부동 남부고개에서 시내로 진출하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심한 투석전을 벌였다. 이날 상오9시쯤 농성근로자 1백여명은 울산시 전하동 민자당 정몽준의원 사무실에 돌을 던져 대형 유리창 8장을 깨고 하오2시30분쯤에는 전하동 만세대광장 부근에 있는 현대중공업 사원용 경로당ㆍ목욕탕건물(40평)에 화염병을 던져 불태웠다. 또 이날 하오3시30분쯤 울산시 동구 전하2동 653의28 오정환씨(50)집 2층 베란다에서 시위를 하다 피신했던 이갑연씨(41ㆍ현대중공업 시운전부)가 경찰을 피해 도주하려고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현대자동차 근로자 1만5천여명은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회사본관앞 잔디밭에서 노동절 기념행사를 갖고 당초 1일로 예정한 파업시한을 4일까지(2일은 휴무)로 연장키로 결정한후 상오10시30분부터 시가를 행진하며 「노정권퇴진ㆍ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현대중공업의 공권력투입에 항의,파업을 결정한 현대정공은 상오9시 5백여명의 근로자들이 출근,같은 계열의 노조시위에 합류했으며 현대종합목재 근로자 7백여명은 이날 출근한뒤 부서별로 집회를 갖고 노조대의원회의에서 35명중 27명의 찬성으로 1일 하루를 파업하고 3일이후의 파업여부는 다시 결정키로 했다. 이지역 현대계열 12개업체중 1일하루 파업을 한 업체는 현대자동차ㆍ현대정공ㆍ현대종합목재ㆍ현대중장비등 4개업체이고 부분조업을 한업체는 현대미포조선ㆍ현대중전기ㆍ현대강관ㆍ현대로보트산업등 5개업체,정상조업이 이뤄진 업체는 현대철탑ㆍ금강개발등 2개업체이다.한편 이날 상오4시50분쯤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던 노조원 정봉철씨(28ㆍ의장외업2부)가 내려와 경찰에 연행,조사를 받고있다. 정씨는 경찰에서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근로자는 이갑용비상대책위원장(31)등 수배중인 5명을 포함,모두 1백20여명(경찰발표 57명)이며 라면15상자와 쌀 10㎏등이 비축돼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연행한 현대 중공업 파업주도 근로자 김재생씨(36ㆍ의장외업2부)등 9명을 업무방해등 혐의로 구속했다.
  • 아기 유산ㆍ가출에 앙심/내연의 처 살해

    19일 하오6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연지동 1의30 한국기독교 1백주년 기념관 앞길에서 김경환씨(29ㆍ무직ㆍ경기도 과천시 관문동 87)가 내연의 처 한초련씨(28)를 보도블록으로 때려 숨지게 한뒤 달아나다 길가던 사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88년11월 어머니 이모씨(59)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한씨와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무허가 하숙집에서 동거해 오다가 지난12일 숨진 한씨가 『살길이 막막하다』며 가출하자 한씨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날 자신이 살던 하숙집 부근에 숨어 있던 한씨를 찾아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숨진 한씨에게 『성북구 보문동에 사는 너의 큰아버지 집에 가자』며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중구 저동 중앙극장앞에 내린뒤 『다시 같이 살아보자』며 한씨를 타일렀으나 말을 듣지않자 보도블록으로 한씨의 머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하숙비까지 밀린데다 한씨가 가출한뒤 임신 7개월된 아기까지 유산시켜 한씨를 죽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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