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경영진에 첫 배상 판결/서울지법
◎제일銀 소액주주 손배청구 승소/“한보철강에 2,714억 대출은 여신관리 소홀/이철수 전 행장 등 4명은 400억 지급하라”
소액 주주대표들이 국내 처음으로 부실경영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측이 전액 승소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全孝淑 부장판사)는 24일 제일은행 소액주주 61명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과 관련,李喆洙·申光湜 전 행장과 李世善 전 전무,朴龍二 전 상무 등 전직 임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측에 40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및 소송 공동참가인들은 6개월 이상 제일은행 주식을 보유한데다 보유 주식 액수가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기준을 충족하는 만큼 증권거래법에 규정된 주주대표로서 적법하다”며 주주 대표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들이 대출업무시 신용이나 회수 가능성,담보 등을 살펴 안전한 경우에만 대출해야 하는데도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한보철강에 장기간 거액을 대출한 것은 이사의 임무를 회피한 것”이라며 “2,714억이 넘는 손해 액수 가운데 최소한 400억원 정도는 배상해야 하며 원고측은 이를 가집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보사건으로 구속된 李喆洙·申光湜 전 행장의 경우 각각 10억원과 4억원씩의 추징금을 징수당한 상태여서 실제로 400억원의 배상금을 물어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金씨 등은 지난해 6월 “제일은행측이 한보그룹의 당진제철소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와 여신심사 임무 등을 소홀히 해 회사의 손실이 발생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며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위원장 張夏成 고려대 교수)를 통해 4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주주대표소송은 일정 지분 이상을 가진 소액주주들이 경영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서,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배상금은 원고가 아닌 회사로 귀속된다.국내에서는 현재 전체 주식의 0.01%를 충족하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단독 주주권이 인정되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연간 수백건이 청구될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소액주주 승소 의미·파장/경영진 독단·전횡에 철퇴/정경유착 등 탈피… 책임경영 정착 계기/소액주주 권리 인정… 유사소송 잇따를듯
법원이 24일 제일은행 소액 주주대표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것은 그동안 경영에서 소외돼온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에 대해 법적인 대항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부실경영을 초래한 기업주와 경영진의 민사상 배상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정경유착과 회계조작,재산도피 등 불법행위를 일삼아온 잘못된 기업경영 풍토에 쐐기를 박고 철저한 책임경영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참여연대 金石淵 변호사는 “경영진은 퇴진후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주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는 고 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오너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대출에 대해 은행 임원이 개인재산을 털어서라도 손실을 배상토록 함으로써 관치(官治)금융이 개입할 여지가 사라져 철저히 시장경제원칙에 따른 기업여신 관행이 정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로 퇴출은행 소액주주를 비롯,부실대기업 주주들의 유사소송이 대거 잇따를 전망이다.5개 퇴출은행의 소액주주 82만명과 퇴출기업중 10개 상장사의 소액주주 6,600명,한보 기아그룹 등 부도 대기업 소액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참여연대는 이미 삼성자동차와의 부당내부거래를 문제삼아 삼성전자에 대한 회계장부 열람권과 삼성전자 李健熙 대표이사 등에 대한 주주대표 소송을 오는 8월중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