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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타는 株價 흐름을 읽어라”

    국내 증시는 87년 이후 세차례의 대세 상승과 두차례의 하락 국면을 맞았다.상승기는 2년 4개월 가까이 지속됐고 하락기는 최장 3년 7개월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6월 말부터 시작된 3차 상승은 1년도 안돼 주가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고 있다. 1차 상승기 87년 초부터 89년 4월까지 종합주가지수(이하 주가)가 1,000선을 첫 돌파하는 시기다. 87년 6·29 민주화 선언과 88년 10월4일 자본시장 국제화 발표에 힘입어 주가가 89년 4월1일 1,007.7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3저의 순풍을 타고 무역·건설·금융 등 트로이카주가 상승을 이끌었으나 89년 들어 경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실적장세가 뒷받침되지 못해 92년 8월5일 493.33포인트까지 곤두박칠쳤다. 2차 상승기 92년 8월부터 94년 11월9일 사상최고치인 1,138.39포인트를 기록할 때까지 2년 3개월간 계속됐다.저금리 영향으로 금융장세로 출발,93년 2월25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취임과 8월13일 금융실명제 실시로 900선을돌파했다. 94년 7월8일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사망으로 대북 관련주와 무역·금융 주식이 강세를 보였으나 95년 부동산실명제 실시와 경기퇴조로 하락세로반전했다. IMF를 거치는 대폭락기 94년 말부터 97년 6월까지의 국면이다. 95년 벽두부터 멕시코 페소화의 폭락으로 경상수지에 암운이 깃들자 주가는 5월27일 850선 밑으로 떨어졌다. 증권거래세 인하 등 정부의 수요 진정책으로 1,000선이 일시 회복됐으나 같은해 10월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900선마저 깨졌다. 96년 10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지만 97년 1월 한보그룹 부도와 7월 기아자동차 부도 유예,10월23일 홍콩증시의 대폭락으로주가는 500선까지 밀렸다.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잠깐 600선에 육박했으나 한국경제의 신용등급 하락과 잇따른 대기업 부도로 지난해 6월에는 300선마저 붕괴됐다. 3차 상승기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대외신인도가 회복되고 금융·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자 지난해 10월 현대의 기아차 인수를 시작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98년 12월12일 뮤추얼 펀드의 등록은 수요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됐고 지난 1월25일 S&P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에다 저금리 지속은 은행 등 금융주를 중심으로 1월 말 600선을 돌파했다. 2월 말 단기조정을 받았지만 ‘바이코리아’의 열풍으로 시중여유자금이 증시로 몰리면서 지난 6일 810선을 뚫었다. 앞으로의 흐름은 IMF 이후 재무건전성이 높고 시장을 지배하는 대표기업쪽으로 투자가 쏠리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친 은행주와 증시활황에 힘입은 증권주도 향후 유력종목으로 꼽힌다. 특히 부당내부거래의 금지로 기업 이익이 계열사로 분산되지 않는 모기업의경우 계열사 보유지분까지 매각하게 되면 현금흐름마저 개선돼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1차 관심주이다. 백문일기자 mip@
  • 한보 해외은닉 비자금-마지막 200만弗 환수

    한보그룹 계열사인 동아시아가스(주)가 스위스은행에 숨겨두었던 비자금 3,270만달러가 검찰의 추적으로 전액 환수됐다.검찰이 지난해 6월 동아시아가스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이래 11개월만에 올린 개가다. 서울지검 외사부(姜忠植 부장검사)는 4일 한보그룹이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서 빼내 미국으로 송금한 200만달러를 미연방 국세청(IRS)의 협조를 받아지난달 27일 강제환수했다고 밝혔다.미연방 국세청과 공조,해외 은닉 비자금이 강제환수된 것은 처음이다.검찰은 이에 앞서 한보의 3,270만달러의 비자금 중 200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를 세금징수 등의 방법으로 국고로 입금시켰다. 3,270만달러의 비자금은 동아시아가스가 97년 11월 러시아 루시아석유회사의 주식 900만주를 5,790만달러에 매각한 뒤 2,520만달러(460억원)에 판 것처럼 신고해 조성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 착수 1개월 만인 지난해 7월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전 총회장의 4남 정한근(鄭澣根·34·수배)부회장이 비자금 3,270만달러를 스위스은행에 숨긴 사실을 밝혀냈다. 정부회장은 이가운데 200만달러를지난해 2월 동아시아가스 임종인(林鍾仁·34·구속) 기획부장을 시켜 미국 LA의 스미토모은행에 개설된 박모씨 계좌로 빼돌렸다. 검찰은 지난해 7월25일 국세청을 통해 미연방 국세청에 문제의 200만달러에 대한 추적을 요청했다.미 국세청이 자금출처 조사에 들어가자 부담을 느낀박씨는 검찰에 예금반환 의사를 밝혔으나 정씨 일가의 반발을 우려,국내 송금을 주저해 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지난달 정전총회장을 비밀리에 소환,미국 은닉 비자금을추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뒤 박씨에게 통보,이자를 포함해 201만5,000달러를 송금받았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6월 정부회장이 동아시아가스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스위스은행의 비자금 가운데 2,100만달러를 외국인 투자자금으로 위장해 국내로 들여온 사실을 밝혀내고 국세청에 통보,정씨 일가의 체납세금으로 징수토록 했다. 또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된 동아시아가스의 전규정(全圭正·41)사장과 임 기획부장이 주식매각 과정에서 정부회장 몰래 횡령한 590만달러 등모두 960만달러를 스위스은행에 숨긴 사실을 확인했다.검찰은 1심 재판과정에서 전사장 등을 설득,960만달러를 모두 회사에 반환토록 했다.비자금 가운데 10만달러는 전사장 등이 돈세탁 경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 수억짜리 운보그림 진짜 있었나

    절도범 김강룡씨가 훔쳤다는 시가 6억원짜리 운보 김기창화백의 수묵산수화와 3억원짜리 남농 허건의 그림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이번 사건 가운데 현직장관이 연루돼 특히 궁금증을 더하는 그림건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김씨는 지난 17일 한나라당 관계자들에게 “도곡동 매봉터널 부근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 집에서 운보와 남농의 그림 등 4점을 훔쳤다”고 밝히고“운보 그림은 장물아비에게 8,000만원에 넘겼고,남농 작품은 고위공직자에게 선물했으며 나머지 2점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장관은 “도난당한 그림은 4점이 아니라 2점이며 중국여행때산 탁본과 중앙대부총장 재직시 미대학생이 선물한 유화”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김씨와 김장관의 주장이 맞서던 중 서울시 광장동에 사는 사업가 이모(67)씨가 지난달 11일 운보의 그림을 도난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김장관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그러나 이씨가 도난당한 그림은 1,00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소품(청록산수화)인데 반해 김씨가 김장관 집에서 훔쳤다는수묵산수화는 한 벽면을 다 채울 정도의 300호짜리 대형이어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김장관의 집이 강남구 삼성동인데 김씨는 도곡동 매봉터널 근처에서그림을 훔쳤다고 진술,한나라당조차 김씨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으나매봉터널과 삼성동은 인접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김씨가 여러 부유층 집을 터는 과정에서 운보와 남농의 그림을 훔친집을 김장관 집으로 착각했을 개연성도 농후하다.하지만 김씨가 “그림을 훔칠 때 서랍에서 김장관의 운전면허증을 봤다”며 구체적 정황을 설명하는 데다 평소 김장관이 서화수집에 각별한 취미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그림 주인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증폭되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故 文益煥목사 복권될 듯

    정부는 22일 3·1절 및 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및 복권,가석방을 25일자로 단행한다. 법무부는 21일 “이번 사면은 22일 오전 9시 임시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오전 11시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면에서는 간첩혐의로 체포돼 42년째 복역 중인 禹용각씨(71) 등 미전향장기수 17명을 준법서약서 제출없이 잔형 집행면제로 석방하기로 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한보그룹 대출과 관련,구속기소된 申光湜 전 제일은행장 등 한보사건 연루자 및 金和男 전 의원 등 선거사범,집시법 및 국가보안법·노동법 위반 사범 등도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인 林秀卿씨,任鍾晳 전 전대협 의장,徐敬元 전 의원,소설가 黃晳暎씨,고 文益煥 목사 등은 복권될 전망이다.
  • YS 일단 ‘함구’

    시끌시끌하던 金泳三전대통령 주변이 조용해졌다.金전대통령은 최근 잇단산행을 두고 언론에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이런저런 추측을 하자 13일엔 집에서 보냈다.92년 대선 당시 金전대통령이 한보자금 150억원을 받았다는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의 지난 4일 증언이 나온 뒤 연일 들끓었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13일 국회 ‘IMF환란조사특위’가 자신을 고발키로 한 데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상도동의 한 측근도 “예정됐던일 아니냐”며 무시했다.그는 “고발당한 것과 기자회견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해 회견을 강행할 뜻을 시사했다.그러나 기자회견 시점을 못박지는 않았다.金전대통령도 12일 북한산 산행길에서 “말을 할 때가 올 것”이라고말했다. 설연휴에도 특별한 계획은 잡지 않았다.가능하면 집에서 기자회견 등에 대한 입장을 최종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한 비서관은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찾아오는 손님은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吳豊淵 poongynn@
  • 국회환란특위 국정조사결과 보고서(요지)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 보고서작성 소위는 12일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초안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다음은 초안 요지.▒경제위기 발생과정 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 연쇄부도가 발생,금융기관의 자본회수가 시작돼 자금난이 가중됐다.많은 기업들이 흑자도산에 직면하고 중소하청기업의 연쇄부도를 야기하는 등 ‘기업위기’가 발생했다.대기업 연쇄도산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일부 금융기관은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는 등 금융불안이 가중됐다.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에 이은 동남아 위기가 확산되면서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을 믿지 못하게 됐다.97년 하반기부터 대출회수가 본격화돼 외화부도 사태에 직면했다.기아사태 처리가 지연돼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대외신뢰가 떨어졌다.▒경제위기의 원인▩관치경제와 정경유착=민간경제주체의 정부 의존이 심화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경영혁신 노력이 미흡한데다 공기업 등 정부부문의비효율성이 심화돼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가 고착됐다.정치권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정경유착과 책임소재 불분명에 따른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만연,종금사 감독부재 등 정부의 역할이 소홀해졌다.▩기업의 부실화=대기업들은 외형 위주의 차입경영과 선단식 경영을 지속해비효율적인 자본투자와 금융비용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불건전해지고 계열기업간 상호지급보증이 크게 늘어 계열기업 전체의 부도위험이 증가했다.▩금융기관의 부실화=관치금융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증가,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나빠졌고 외부압력의 작용으로 기업의 중복과잉투자및 지나친 차입의존을 사전에 견제하지 못했다.▩국제수지의 적자증대=정부의 수출진흥책 부재와 맞물려 경상수지 적자가지속됐다.특히 93년 이후 일본 중국 대만 등에 비해 원화가치만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경상수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외채증대와 외채관리 부실=金泳三정부 출범 당시 428억달러였던 외채규모가 97년 11월 말 1,569억달러로 증가했고,기업들의해외 현지금융을 포함한총외채는 2,100억달러를 넘었다.이 중 63%가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여서외채구조도 나빴다.▩외부적 원인의 작용=97년 10월의 홍콩 주가 폭락 이후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 우려가 확산돼 신용등급이 하락되고 외국의 투자비중 축소,달러화 환수등이 환란을 재촉했다.▒정책의 실패▩원화의 고평가=96년 경상수지 적자가 237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자본시장 개방을 추진,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억제하는 등 환율관리에 실패했다.97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 기회를 놓쳐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외환보유고의 소진=97년 1월 한보사태 이후 외환수급 불균형이 심화됐으나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쓰면서 외환보유고가 97년 1∼3월 46억달러가 줄었다.환율변동폭 확대 및 시장개입 자제 등을 통해 환율상승 압력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데도 정부는 무리하게 환율을 방어하려고 달러를 소모했다.97년 12월 18일에는 가용(可用)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로 급감했다.▩금융감독의 소홀=국제결제은행(BIS)기준자기자본비율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기준을 국제기준보다 완화하거나 유가증권 등 고위험 자산에대한 투자제한 등 건전성 감독기준이 없었다.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건전성 감독기준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종금사 인허가 남발 및 감독소홀=30개의 종금사가 난립,부실 및 파산의 원인이 됐다.정부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투자금융사(단자사)들이 종금사로전환하는 것을 변칙적으로 허용했다.불법 로비 없이는 전환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재정경제원(현 재경부) 감독책임자들이 종금사에 대한 감사를 허술히 했다.▩조급한 대외개방 정책=96년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성급히 추진했다.해외여행 및 해외유학 급증,사치성 소비재 수입의 증가,과소비 조장 등으로 외환위기 발생의 요인이 됐다.OECD 가입조건으로 추진된 자본자유화 확대와 외환거래 자유화로 금융기관 및 기업의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었지만 외환보유고를 충분한 수준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미흡했다.▩뒤늦은 위기인식과 정책 실기=97년들어 대기업 연쇄도산과 금융기관 부실화에 따른 금융위기를 정부가 인식하지 못했고 근거없는 낙관론에 집착,기아사태 처리가 장기화되는 등 위기대처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의 주요 원인은 ▦정책담당자의 시장상황 인식 등 전문성부족 ▦姜慶植전경제부총리,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李經植전한국은행총재 등경제정책 책임자들의 실력부족과 안이한 판단 ▦金泳三전대통령의 국정파악능력 부족 ▦金전대통령에게 국가부도 위기의 위험성에 대한 늑장 보고 및사후대책의 혼선 등 국가 위기관리 체제의 미비 등을 꼽을 수 있다. IMF행 한달 정도 전에 위험성을 느꼈으나 金전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金전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97년 11월 10일이었다.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등에 의해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洪在馨전경제부총리의 전화를 받고 처음 알게 됐다.특히 재경원은 문서로 金전대통령에게 국가 부도위기의 위험성을 보고하지도 않았다.외채상환능력을 상실했지만 외환보유고가 어느정도 있었던 10월 중에 정부가 IMF와 협상을 시작했더라면 협상조건에서 유리한 입장 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다.▒국정운영시스템의 결함▩국가위기관리체제의 결함=정부내에 위기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하는 조기 경보체제가 없었다.金전대통령이 비공식적인 조언을 통해 국가 경제위기를 처음으로 감지한 뒤에야 경제부총리가 보고(97년 11월 14일)했다.▩정부조직구조의 문제=金泳三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재경원을출범시켜 일사불란한 정책의 수립을 꾀했으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봉쇄,재경원장관 등 소수 정책책임자들이 독주했다.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대응이 필요했지만 재경원 국제금융 담당국을 축소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이 불합리했다.금융감독 권한이 재경원,한은,은감원,증감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으로 분산돼 체계적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정책담당인력의 전문성 취약=경제위기를 위기 발생 1개월 전에야 겨우 알았다는 姜전부총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그를 보좌하던 전문 공무원의전문성과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볼수 있다.▒경제위기의 책임▩정부 책임=정부는 정책의 투명성 및 일관성의 부재,만성적 경상수지적자방치 및 환율정책의 실패,단기외채 누적 방치 등 외채관리의 실패,관치금융의 지속,금융감독의 소홀,기업의 중복·과잉투자 방치 등의 정책적 잘못을범했다.▩기업의 책임=국내외적 경쟁 심화에도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차입에 의존한 사세확장 등 외형확대 위주의 차입경영을 지속한 것을 비롯,중복 과잉투자,경영투명성의 미흡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금융기관의 책임=편중대출에 따른 위험 증가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데다수익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외형성장을 추구하는 등 책임경영체제를 이루지못했다.▩정치권의 책임=정치권이 은행장 및 정부 고위관리의 선임 등에 관여해 정경유착을 초래했다.정치권의 필요에 따른 특정지역 대형산업 투자 등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했다.기아사태 처리지연 조장,경직적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노동법 개정의 당리당략적 추진,금융개혁입법의 무산 등 대외신인도 추락의 계기를 제공했다.▩국민의 책임=90∼96년 무분별한 임금인상을 요구,일본의 6배,대만의 2배에 달하는 급속한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의 한 원인이다.사치성 과소비 등으로 외화를 낭비해 경상수지 적자 및 외채누적의 원인을 제공했다.▒부도발생 원인▩외부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기업확장=기아특수강 기산 등 자동차 외 업종에서 무리한 차입투자를 강행했다.97년 5월 기준 그룹의 총차입금 9조4,000억원 중 47.8%인 4조5,000억원이 제2금융권으로부터 빌린 것이다.▒자금조달의 어려움 97년 대기업 연쇄부도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이 가중됐다.▦李信行전기산사장이 94년 9월부터 97년 7월까지 총 24억9,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등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91년부터 97년까지 기아의 총 분식결산 규모는 4조5,736억원에 이르며 金善弘전회장은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金전대통령은 97년 9월 4일 한 행사장에서 카폰으로 姜전부총리에게 기아를 부도내지 말도록 지시,대통령의뜻에 따라 기아처리가 지연됐음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종금사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洪在馨전부총리는 “대선 등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었고 청탁이나 압력도 없었다”고 증언했다.94년 전환된 9개 종금사중 4개사가 부산·경남지역에 편중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무더기 전환의 문제점 시장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채 2차에 걸쳐 24개 종금사를 무더기 전환해줘외화차입 등 과당경쟁을 유발했다.▒만기불일치에 대한 대처 미흡 단기외채를 빌려 장기 설비투자 자금으로 운용하는 등 만기불일치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적절한 대응조치가 없었다.▒주요관련사항 당진제철소 투자비 중 노무비로 과다 계상된 7,332억원이 최소 비자금 규모로 판단되나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비자금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빙처리할 수 없는 부분을 노임으로 처리한 것뿐’이라고 답변했다.그러나 이자금은 음성적인 비자금 등을 위한 은닉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된다.92년 대선을 전후해 鄭전총회장은 92년 12월 12일 하얏트호텔에서 당시 金泳三후보에게 100억원을 수표로 직접 전달하는 등 모두 150억원을 전달했다고시인했다.▒PCS사업 인허가에서 나타난 문제점▩심사기준의 변경에 따른 공정성 문제=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당초 심사기준이 변경되면서 LG텔레콤과 한솔PCS가 사업자로 선정되는 혜택을 받아 엄격하고 공정해야 할 심사기준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과잉중복 투자로 인한 낭비=이동전화시장 규모에 비해 PCS사업자를 과다선정,전국단위의 5개 사업자가 과당경쟁했다.기지국의 공용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기지국 설치 등에 있어 과잉투자를 초래했다.▒‘사직동팀’의 불법 계좌추적 金相宇 전 은행감독원 검사6국장과 朴在穆 전 경찰청 조사과장에 대한 증인신문과정에서 사직동팀이 계좌추적을 불법적으로 행한 사실이 확인됐다.국민회의가 창당된 95년 10월쯤부터 대선이 임박한 97년 8월까지 당시 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친인척계좌(소위 ‘DJ비자금계좌’)를 추적했다.이 계좌추적은 법원의 영장 없이 은감원과 증권감독원의 직원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裵在昱사정비서관이 사직동팀을 지휘했다.97년 10월 7일 당시 신한국당 姜三載사무총장이 발표한 ‘DJ비자금계좌’와 관련,朴在穆전과장은 ‘발표내용이 우리가 팀을 동원해 조사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증언했다. [정당팀]
  • 경제 청문회…증인신문 마친 청문회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특위’의 경제청문회가 11일 경제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청문회는 ‘통과의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않았다.하지만 성과가 컸다는 분석이다.한계상황 속에서도 굵직굵직한 사실이 밝혀진 것도 많다.대표적인 게 ‘사직동팀’에서 97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金大中국민회의후보의 계좌만 추적했고 신한국당의 姜三載사무총장이폭로한 DJ비자금도 조작됐을 것이라는 증언을 끌어냈다. 또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92년의 대선 직전 金泳三후보에게 150억원을 직접 건넸다는 것도 이번에 드러난 사실이다.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늑장대응과 한심한 외환관리,金전대통령의 차남인 賢哲씨가 92년의 총선에 개입했다는 것도 ‘흘러간 노래’였지만 흥미로웠다. ▒林昌烈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던 날인 97년 11월 19일 IMF체제로 가는 것을 알았다는 것 ▒삼성그룹이 부도 직전 金善弘 전기아그룹 회장의 영입추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재벌의 압력도 작용 ▒金전대통령의 기아부도 불가 지시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문심사위원을 독단적으로 선임하는 등의 전횡 확인도 주요 성과로 꼽힌다. 아쉬운 점도 많다.金전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IMF로 가기 전의 외환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鄭泰守리스트,金善弘리스트,李信行리스트등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된 구체적인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주요증인과 참고인들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증언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보대출 의혹,PCS 인·허가,종합금융사 인·허가 등과 관련된 정경유착의 구체적인 실상이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姜전부총리,金仁浩 전 경제수석,金善弘 전 기아그룹회장,李信行 전 기산사장 등 일부 증인과 참고인들의 뻣뻣하고 뻔뻔한 태도도 문제였다.진술이 엇갈리는 증언이 있었지만 대질(對質)신문이 이뤄지지않아 진실규명은 쉽지 않았다. 특위위원들도 문제가 많았다.그동안 감사원이나 검찰의 수사에서 나온 사실을 재탕,삼탕나열한 게 많았다.윽박지르기식의 질의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태도도 좋지 않았다.특위위원 몇명을 제외하고는 증인과 참고인의 책임회피성 진술과 잘못된 진술을 따질 수 있는 실력이 없었다. 청문회에서 맹활약한 국민회의 丁世均,자민련 鄭宇澤의원은 “출석을 거부한 증인과 위증(僞證)한 증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郭太憲 tiger@
  • 鄭泰守씨 서면답변 ‘계산된 不實’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자물쇠 입이 열리다 닫혔다’‘역시 공갈탄에 불과했다’.鄭泰守 전 총회장의 청문회 서면 질의서를 접한 정치권의 반응이다.그러나 서면답변 내용의 부실은 그럴만한 곡절이 있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우선 鄭 전총회장의 의도된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있다.당초 鄭 전총회장은 150억원을 직접 金泳三 전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진술 외에 다른 내용을 밝힐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여권의 끈질긴 설득과 추궁(?)에 입은 열었지만 앞으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빼지 않는다는 鄭 전총회장의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YS와의 확전을 바라지 않는 여권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다.답변 내용은 물론,질의 내용도 부실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을 비롯,4명은 공동질의서에서 “검찰 조사과정에서 金泳三 전대통령에게 600억∼900억원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물은 뒤 ‘예스(YES)냐,노(NO)냐’로 답변할 것을 요구,쓴웃음을 자아내게 했다.鄭 전총회장으로부터 더 이상의 답변은 불필요했다는 방증이다.답변내용이 요식행위에 그치리라는 것은 특위 위원들의 반응에서도 이미 예상됐었다.張在植위원장은 “서면 답변은 변호사가 30분이면 작성할 수 있다”면서 이같은 기류를 전했었다. 여권 수뇌부에서 애시당초 YS 대선자금 문제를 건드릴 의도가 없었다는 점도 설득력있는 추론이다.문제가 불거지자 여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특위차원에서 나온 문제라고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李康來 전정무수석의 전격교체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추론이다.YS 대선자금이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든 鄭 전총회장의 서면답변은 한계를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姜東亨 yunbin@
  • 『경제청문회』이모저모

    姜慶植전부총리와 金相宇전은행감독원 검사6국장 등 6명의 증인을 다시 부른 국회 IMF환란조사 특위는 9일 지난 대선전 이른바 ‘사직동팀’의 불법계좌 추적 의혹을 밝혀내는 등 막판 급피치를 올렸다.▒국민회의 丁世均의원은 ‘사직동팀’을 상대로 구 평민당에 대한 불법계좌 추적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丁의원은“정당명의의 계좌와 친인척의 계좌 등 무려 70여개를 뒤지고 불법적으로 공개한 것은 정보기관과 금융당국 등이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사건”이라며 정치 공작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朴在穆전경찰청조사과장(사직통팀장)은 “당시 裵在昱전청와대비서관의 지시로 사직동팀이 국민회의 金大中총재의 비자금 계좌만을 추적했다”며 “이는 분명 실명제 위반이었다”고 시인했다.그는 또 “96년도부터 은감원 직원들이 사직동팀에 투입됐다”고 밝혀 대선 1년전부터 조직적으로 불법계좌 추적을 벌였음을 실토.▒한편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姜전부총리의 환란위기 ‘날벼락론’에 대해‘피뢰침론’으로 맞받아치며 정부의 대책 미비를 집중 추궁했다.이에대해姜전부총리는 도표까지 준비,정부의 정책 결정이 지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즉 환란이후 IMF행까지 영국은 117일,태국 47일,인도네시아 87일,멕시코34일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3일에 불과하다는 것이 姜전부총리의 항변.▒姜전부총리는 이날도 환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당시의 상황을해명하는데 급급,특위위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럼 왜 金泳三전대통령이 姜전부총리를 경질했겠냐”고 몰아세웠다.그러자 姜전부총리는 “경질문제는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라”고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취했다.▒姜전부총리는 “외환위기전 정부는 북한 붕괴시 우리한테 오는 부담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등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을 했다고말해 정부가 외환위기에 대한 사전 인지나 대책이 없이 오히려 북한문제를걱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자민련 鄭宇澤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 마자 “林昌烈전부총리는 취임 당시 IMF행을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며 林지사의 출석을 거듭 촉구했다.또“청문회가 역사앞에 부끄러움 없는 족적을 남겨야 한다”며 姜전부총리와 金仁浩전경제수석,李經植전한은총재 등의 대질신문을 강조했다.▒이날 특위에서는 鄭泰守전 한보그룹총회장의 서면답변서가 도착하기전부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원간에 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鄭의원은 “鄭전총회장의 서면답변서를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 것이냐”며 張在植위원장에게물었다.이에 대해 張위원장은 “국회의 관례와 법규에 따라 처리할 것이며회의록에 기재한 뒤 열람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특위위원들은 8일 증인으로 불출석한 金泳三전대통령을 집중 성토했던 것과달리 이날 金전대통령의 연기된 긴급 기자회견과 관련,전혀 언급 하지 않는 등 상도동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 경제청문회 이모저모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는 8일 경제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金泳三 전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하지 않기로 고심끝에 결정했다.특위위원들은 이날 YS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자 강하게 성토했다.▒張위원장은 오전 11시15분 “양당 간사와 필요한 의원들이 함께 상도동을방문해서 나와주도록 정중하게 요청하겠다”고 말한 뒤 정회를 선포했다.대부분의 특위위원들은 정회시간 중 회의를 갖고 “등산을 가 상도동에 없는것을 알면서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제시해 방문계획을 없었던 일로돌렸다. 張위원장은 오후 2시25분 청문회를 속개해 “金전대통령은 청문회를 거부하고 등산을 갔다”면서 “(상도동으로)전화를 해 어느 산으로 갔는지,언제 오는지를 물어봤지만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하며 2시28분 산회를선포했다.▒이에 앞서 오전 10시 특위 위원들은 청문회가 개회되자마자 불출석한 YS를 일제히 성토했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우리 국민에게 최악의 고통을 안겨준 97년 대환란의 주범 중의 주범은 바로 金泳三 전대통령”이라며 “金전대통령은 청문회장이 아니라 광화문 네거리에 나와 멍석깔고 머리를 풀어 국민에게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치 않을 환란주범”이라고 YS를 공격했다. YS에 대해 좋지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자민련 李健介의원은 “존경받지 못하더라도 고발받지 않는 전직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면서 “金전대통령을 고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한편 자민련 金七煥의원은 “환란의 핵심 인물들이 출석을 거부해 특위위원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상도동 방문 여부를 놓고 특위와 국민회의는 막판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특위는 지난 5일까지는 YS를 방문하지 않기로 했었다.鄭泰守 전한보그룹 총회장이 YS에게 정치자금을 150억원 줬다고 말한 상황에서 상도동을 찾아가 YS를 난처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하지만 6일 아침 趙世衡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국민회의 확대간부회의에서는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찾아가는 게 오히려 모양새가 낫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7일 YS의 측근인 朴鍾雄의원이 “YS는 특위위원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상도동의 싸늘한 기류를 전하자 방침은 또 변했다고 한다.韓和甲총무는 “가봐야 만나지도 못하는데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 경제청문회 위원들 평가

    지난달 18일에 시작된 경제청문회가 오는 13일 마감된다.경제문제는 어려운데다 일부 증인과 참고인들의 위증과 뻔뻔함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쉽지 않았다.특위 위원별 특성과 색깔도 달랐다. 국민회의 丁世均의원과 자민련 鄭宇澤의원이 돋보였다.청문회에 ‘양(兩)정’이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丁世均의원은 흥분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문제를 쉽게 풀어서 질의해 호평을 받았다.정치개혁 시민연대는 “丁의원은어려운 경제문제를 하나하나 풀어서 해 청문회의 또 다른 의미를 느끼게 했다”고 평가했다.鄭宇澤의원은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답게 해박한 경제지식을 활용해 성가를 높였다.국민회의 金元吉의원은 鄭泰守 전한보그룹총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金泳三전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건넸다”는 진술을 얻어냈다.이번 청문회의 최대 대어(大魚)를 낚으며 정책위의장의 ‘이름값’을했다.자민련 魚浚善의원은 재계출신(안국약품 회장)의 이점을 살려 쉽게 접근하고 증인과 참고인들을 거칠게 대하지 않아 점수를 땄다. 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뻣뻣한 증인과 참고인을 혼내는 ‘군기반장’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그래서 서민층으로부터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하지만 일부 오피니언층에서는 거부감도 있었다고 한다. 국민회의 千正培의원은 鄭泰守전총회장의 신문 때 진가를 발휘했다.97년 초 검찰이 鄭전총회장을 조사할 때 YS에게 정치자금을 준 점을 묻지도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율사출신의 이점을 살린 것으로 풀이된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은 청문회 초부터 모든 문제를 YS와 정경유착 쪽에만 결부시켜 사감(私感)에 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鄭전총회장이 하얏트호텔에서 YS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은 언론인 출신의 감(感)을 갖춰 사직동팀의 실체를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같은당 金榮煥의원은 준비를 많이했다.李錫采 전정통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에 깊이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다.자민련 金七煥의원은 차분히 문제에 접근했다는 평이다. 張在植위원장은 해박한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청문회를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했지만 다른 위원들의 신문 도중에 지나칠 정도로 끼어들어 흐름을 끊었다는 평도 받는다.국민회의 金民錫의원은 97년 4월의 한보청문회 때에는 활약을 했지만 이번에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홍일점인 국민회의 秋美愛의원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郭太憲 tiger@
  • 『경제청문회』이모저모

    5일 ‘PCS 사업자 선정 비리의혹’을 파헤치는 경제청문회는 파장분위기가역력했다.이날 PCS 의혹규명을 마지막으로 청문회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데다관련 증인·참고인들이 이 무더기로 불참,맥빠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특위위원들은 이날 동행명령을 거부한 金賢哲씨등 4명의 증인들을 집중 성토했다. 張在植위원장은 “金賢哲씨와 金己燮 전 안기부운영차장,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朴泰重씨 등 4명이 동행명령장을 전달받고도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고 간략히 보고했다.이어 張위원장은 “賢哲씨와 金전차장은 ‘특위취지에 찬성할 수 없다’며,洪전수석과 朴씨는 ‘몸이 아파서 못나가겠다’며 동행명령을 거부했다”고 밝힌 뒤 “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라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이에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金泳三 전 대통령과 賢哲씨가 ‘정치보복적’ 청문회란 이유를 내세워 출석하지 않고 있는데,환란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왈가왈부해선 안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청문회장 밖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국민회의 鄭東泳대변인도 논평을 통해“賢哲씨의 동행 거부는 법질서에 대한 무시이자 국회 권위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국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賢哲씨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대선자금 발언에 대한 야당측의 ‘회유·협박설’에 대한 특위의 반론도 치열했다.국민회의 李允洙 秋美愛의원 등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金전대통령측에서마치 우리 특위위원들이 구치소로 鄭씨를 찾아가 외압을 행사하고 협박을 해,서로 짜고 입을 맞춘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위원회 차원에서의 엄정 대처를 주문했다.이에 張위원장은 “증인 신문이 끝난 뒤 별도로 특위간담회를통해 논의하자”고 밝혔다.▒청문회 ‘국민 감시단’을 가동하고 있는 민주개혁 국민연합은 이날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밝혀내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후한점수를 매겼다. 국민연합은 이날 경제청문회 평가서를 통해 “92년 대선 당시 金泳三후보에게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진술로 97년 11월 환란의 출발점에 대선자금이라는 정경유착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재벌의 과다 차입경영과 과다 투자 ▒금융기관 부실화 ▒정부의 금융기관 감독소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이 총괄적인 환란 원인으로 규명되는 등 정책청문회로서 ‘자리매김’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국민연합은 가치판단이나 정책판단을 강요하는 특위위원들의 질의가 많았고,환란 등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부족해 자신의 논리에만 집착하고,증인의 논리를 반박하는 순발력이 떨어졌다고 혹평도 아끼지 않았다.
  • 한보수사 두 주역 퇴장

    97년 한보사건의 1,2차 수사를 지휘했던 沈在淪 전 대구고검장(사시 7회)과 崔炳國 전 전주지검장(사시 9회)이 모두 ‘법조비리 파동’으로 옷을 벗었다.1차때는 崔 전 지검장이,2차때는 沈 전 고검장이 대검 중수부장을 맡았다. 검찰은 97년 1월23일 한보가 최종 부도처리된 직후인 1월27일 수사에 착수했다. 대검 공안부장에서 중수부장으로 발탁된 崔 전 지검장은 2개월 남짓 한보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다 3월21일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된 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賢哲씨에 대한 처리 미흡 등을 이유로 전격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은 賢哲씨 관련부분을 묻기만 하면 “모른다”고 버티는 바람에 검찰의 수사가 원점에서 맴돌게 됐다고 당시 수사관계자들이전했다. 인천지검장에서 崔 전 지검장과 중수부장 자리를 맞바꾼 沈 전 고검장은 “국민의 중수부장이 되겠다”며 외압 배제를 선언한 뒤 재수사에 착수,賢哲씨를 특가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賢哲씨는 수사의 핵심인 한보그룹의 대출비리와는 무관한 개인 비리로사법처리됐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P검사는 “賢哲씨에게 적용된 혐의사실을 보더라도 沈전 고검장이 수사를 잘하고 崔 전 지검장이 못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沈 전 고검장은 5일 퇴임에 앞서 기자들에게 “鄭 전 총회장은 아들이 구속되고 재산을 압류당한 탓인지 실어증이 있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당시 상황을 설명했다.朴弘基
  • 盧承禹의원 강제구인 방침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孫智烈부장판사)는 5일 한보그룹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1심에 계류중인 자민련 국회의원 盧承禹피고인이 이날 공판에 출석하지 않음에 따라 盧피고인을 강제구인하기로했다.姜忠植 chungsik@
  • ‘핵폭탄급 서면답변’ 할까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의 서면 답변이 정가의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오는 9일 IMF환란조사특위에 제출될 서면 답변의 내용을 놓고 정가는 벌써부터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鄭전총회장은 지난 4일 청문회에서 미묘한 사안에 대해 대부분 피해나갔다.“변호사와 상의해서 상세히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답변이 고작이었다.‘150억원 대선자금 제공’에 이어 정가를 발칵뒤집어놓을 핵폭탄급 발언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된 사안은 단연 92년 대선자금 제공 규모다.鄭전총회장이 4일 청문회에서 인정한 200억원 이외에 ‘+α 대선자금’을 규명하는문제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이 청문회 초반부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800억원 대선자금 제공설’과 국민회의 金元吉의원의 ‘300억원 제공설’ 등의여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5조원이 넘는 은행 대출금 가운데 행방이 묘연한 1조2,000억원 이상의 비자금도 관심사항이다.鄭전총회장은 4일 답변에서 ‘자금 조성비용’ 등 일부비자금의 용도를 밝혔지만 정치권에 뿌려진 비자금은 입을 다물었다.문민정부 당시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살포된 정치권 비자금 유입규모와 정치인들의 명단이 나올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다. 한보비리 조사 당시 검찰의 행태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국민회의千正培의원은 “검찰이 야당총재에 대한 자금제공을 인정하면 아들 譜根씨를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했었다”고 주장했고 鄭전총회장은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응수했다.
  • 여·야, YS대선자금·임시국회 소집 공방

    대치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는 5일 ‘YS 대선자금’과 임시국회소집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장외집회를 계속하면서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은 ‘국세청 불법모금 사건’에 연루된 徐相穆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徐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키로 하는 한편,장외집회 중지와 여야 총재회담 수용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李會昌총재 주재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어 대선자금문제에 당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 아래,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발언이 “여권의 공작”에 따른 것임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키로했다.
  • ■鄭泰守씨 입 연 배경뭘까

    ‘모르쇠’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지난 4일 태도를 180도 바꾼 배경은 복합적이다. 국민회의는 ‘공식적’으로는 확실한 물증을 주요인으로 꼽는다.金元吉정책위의장은 “97년의 한보청문회에서도 ‘鄭전총회장이 300억원을 金泳三전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 건넸다’는 지적을 했었다”면서 이번에 대어(大魚)를낚은 게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당시에는 금액만 대충 알았지만 이번에는 정치자금을 건넨 시기,장소,금액을 확실히 파악한 데다 수표번호까지 알았기 때문에 鄭전총회장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金의장은 “그때 문간까지 갔는데 확인하지 못한 게 억울해 계속 추적해왔다”면서 “2년간 정성을 들였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말대로 정권교체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 게 굳게 닫힌 말문을 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국민회의는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정권교체로 확실한 물증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이 요인 외에여권의 설득작업도 한몫을 했다.공소시효가지난 데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金元吉의장은 직접 鄭전총회장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의원들이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자민련 李健介의원은 鄭전총회장을 지난달 28일 직접 안양병원에서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국민회의는 鄭전총회장의 3남인 鄭譜根전한보그룹회장과 처제를 연결통로로 활용했다.수표번호를 확보했다는 것을 알려 정치자금 제공사실을 인정하라는 뜻도 전했다. 鄭전총회장이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사실을 폭로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그가 “3,000억원만 있으면 한보철강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면서“내기를 해도 좋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 것을 이런 맥락에서 풀이하기도 한다.鄭전총회장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면이나 병보석 등을 물론 기대했을 수도있다. 정치권에서는 빅딜설과 사전 교감설도 나돌지만 국민회의는 물론 부인하고있다.金의장은 “(이러한 오해를 받을까봐) 鄭전총회장을 면회한 적이 없다”면서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 大檢, 국회고발땐 수사 검토

    대검찰청은 4일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지난 92년 대선때 金泳三전대통령에게 15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전달했다는 진술을 한 것과관련,국회가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면 수사착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任炳先 bsnim@
  • ‘200억제공’증언 규명돼야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金泳三 후보에게 50억원의 당비를 포함,모두 200억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한 국회 경제청문회에서의 증언은 환란 원인규명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鄭전회장의 이같은 증언을 대단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환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바로 정경유착이며 그 유착의 구체적인 증거가 이번에 제시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金전대통령은 鄭전회장의 증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동안 경제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것은 환란을 초래한 주범 가운데 하나는바로 ‘검은 돈’을 고리로 하여 연결된 정경유착이었고 그 유착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보비리였다는 사실이다.정경유착은 부실기업을 낳고 부실기업은 다시 엄청난 규모의 빚을 끌어들여야 하는 악순환을 빚은 것이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불러 온 원인이 된 것이다. 최근 한보그룹이 철강산업 진출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이 1조원을 넘는다는 등의 각종 의혹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는 대개 증거나 증언이 없는설(說)에 맴도는 수
  • 『鄭泰守씨 ‘92대선자금 폭로』술렁이는 政街

    鄭泰守 전한보그룹총회장이 4일 경제청문회 증인신문에서 ‘YS 대선자금 제공’을 시인함에 따라 2월정국이 대격변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문민정권 정경유착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정치개혁에 대한 각계의 목소리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金泳三전대통령의 청문회 출석은 물론 사법처리문제도 정치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어서 2월 한달은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을 둘러싼 정치권의 격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鄭전회장의 증언에 대해 ‘은행대출금을 받아 정치자금으로 헌납한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IMF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정경유착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는 평가도 내렸다. 이에 따라 정경유착과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 혁파를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급류를 탈 전망이다.여권은 정치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정치구조개선에 당력을 집중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金大中대통령은 올해 국정운영을 경제회생과 정치개혁에 둘 것임을 이미 천명한 바 있다.따라서 여권은 정경유착 근절을위한 법적·제도적 개혁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다. 鄭총회장의 증언으로 당장 타격을 입은것은 金泳三전대통령과 상도동계다.金전대통령이 한보로 부터 적어도 150억원 이상을 받아챙겼다는 증언이 나옴에 따라 ‘상도동 민주계’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金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검토도 불가피하게 됐다.다만 여권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문제만큼은 신중을 기할 전망이다.우리 현대사가 전직대통령의 처벌로 반복돼오던 점을 감안,이번 정권만큼은 ‘전직대통령의 사법처리’라는 불행한 수순을 밟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YS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가 폭로됨에 따라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이라고 요약되는 여권 정계개편 구상은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여권은 당초 金전대통령과 주변세력을 아우르는 개편을 염두에 둬왔던 것은사실이다.하지만 YS 비리에 대한 사법적 규명이 가속화되면 상도동계와의 결합가능성은 더욱 어렵지 않느냐는 것이다.여권은 따라서 영호남을 포괄하는지역연합은 그대로 추진하되여기에 일련의 개혁세력을 끌어들이는 ‘지역-개혁세력 연합’구도를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으로 ‘과거역사’를 정리하게 된 여권은 ‘대화합’실천을 위해오히려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에 날개를 달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대화합의 정치’실현을 위한 선언은 취임 1주년을 앞둔 오는 21일 金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담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증언이 한나라당에 미칠 ‘미진’도 관심거리다.정서적으로 YS입장을대변해 온 한나라당의 도덕적 입지에 손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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