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병합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수명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석유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52
  • 7월부터 ‘인터넷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최대 징역 3년 9개월

    7월부터 ‘인터넷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최대 징역 3년 9개월

    오는 7월부터 인터넷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3년 9개월을 선고하도록 권고하는 기준이 마련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5일 열린 93차 전체회의에서 명예훼손,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의결했다. 양형기준은 재판부가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으로, 법정형과 달리 구속력이 없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을 선고할 때는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따로 기재해야 한다. 법정형 상한이 징역 7년인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의 경우 양형기준은 최대 3년 9개월로 정했다.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기본 양형기준은 징역 6개월 이상 징역 1년 4개월 이하다. 다만 범행 동기가 비난할 만하거나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등 특별가중인자가 더해지면 상한이 징역 2년 6개월까지 늘어나고, 특별가중인자가 2개 이상 더해지면 최대 3년 9개월까지 가중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군형법상 상관명예훼손죄와 상관모욕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함께 마련됐다. 군사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관모욕죄의 경우 일반 모욕죄에 비해 상·하한이 2개월씩 높고, 마찬가지로 특별가중인자가 2개 이상이면 최대 1년 8개월까지 기준이 올라간다.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은 법정 최고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했다. 조직적 유사수신 범죄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비난 가능성이 큰 경우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기죄 등이 병합되면 형량이 더해질 수 있다. 또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통장 매매 행위에 대해서도 영업적·조직적·범죄 이용 목적 경우를 구분해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극단원 상습 성추행’ 이윤택 징역 8년 구형…李 “대가 받겠다”

    ‘극단원 상습 성추행’ 이윤택 징역 8년 구형…李 “대가 받겠다”

    이윤택 측 “연극인들에 의해 성추행 용인된 점 감안, 중형 선고 합리적 판단을”피해자 공개 증언 “단 한순간도 성추행 동의 안해···응당한 처벌 원해”극단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했던 이윤택(67)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에 대해 검찰이 2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전 감독은 2010년 7월∼2016년 12월 여성 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26일 서울고법 형사9부(한규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감독의 항소심 병합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구형 이유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앞서 2014년 3월 밀양연극촌에서 극단 운영의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극단원 A씨에게 유사성행위를 시킨 혐의로 추가 기소됐으나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극단원 신분이 아니라 업무나 고용 관계가 없었다는 이 전 감독 측 주장을 수용했다. 최후진술에서 이 전 감독은 “모든 일이 연극을 하다 생긴 제 불찰”이라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식하든 못하든 모든 불합리한 것들이 관행처럼 잠재돼 있던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노출되고, 제가 그 책임을 지게 된 입장”이라고 했다. 다른 상황이 아닌 정상적인 연극을 하다가 불합리한 관행을 따른 자신이 시대가 바뀌어 결국 책임을 지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전 감독은 “젊은 친구들을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못하고 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변명하지 않겠다. 제가 지은 죄에 대해서 응당 대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변호인은 “연극인들에 의해 용인돼 왔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며 중형 선고가 합리적인지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결심공판에 앞서는 이 전 감독의 추가 기소 사건의 피해자인 극단원 A씨가 법정에 나와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날 증언은 A씨 요청에 따라 공개로 진행됐다.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온 A씨는 “제 무의식 속에는 요구를 거절하면 안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두려움과 공포는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폭력에 대한 기억조차 잊게 만들었다”고 힘겹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도 예술감독이 두렵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저는 단 한 순간도 예술 감독에게 합의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예술감독이 제게 행했던 모든 요구와 행위들이 어떤 경우라도 해선 안 되는 것임을 인정받고 응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는 새달 9일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트럼프, 이스라엘 총리 만나 ‘골란고원 주권 인정’ 선포

    트럼프, 이스라엘 총리 만나 ‘골란고원 주권 인정’ 선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선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에서 공동회견을 하고, 이스라엘의 골란고원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서명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관계는 강력하다”며 “양국 관계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10억 달러를 절약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시리아에서 칼리프(이슬람 신정일치 지도자)를 격퇴했다”며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반유대주의라는 독(poison)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늘은 정말 역사적인 날”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에서 로켓이 발사돼 이스라엘 가정집에 있던 7명이 다친 것과 관련해 “오늘 아침의 비열한 공격은 이스라엘이 매일 직면하는 심각한 안보 문제를 보여준다”며 “나는 오늘 이스라엘이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증진하고, 강력한 국가 안보를 갖도록 하기 위한 역사적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네타냐후 총리는 방미 기간 중 미국의 유대계 이익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미 의회 지도자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로켓 공격 소식을 접하고는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하기로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호적 관계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선거를 돕고자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센 상태다. 골란고원은 원래 시리아 영토이나 지난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 간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이 땅을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1981년 당시 이른바 ‘골란고원법’을 제정해 자국의 영토로 병합했으나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22일 ‘골란고원에 대해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할 때가 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발전용 LNG 수입부과금 84% 내린다

    새달부터…미세먼지 감축량 연간 427t 열병합용 LNG는 수입부과금 전액 환급 다음달 1일부터 발전용으로 수입되는 액화천연가스(LNG)에 매기는 각종 부담금이 유연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석탄 발전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LNG 발전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국무회의에서 발전용 LNG의 수입부과금을 인하하는 내용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발전용 LNG의 수입부과금은 현행 ㎏당 24.2원에서 3.8원으로 84.2% 낮아진다. 이는 발전용 연료의 제세부담금 체계가 환경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발전용 LNG의 미세먼지 관련 환경비용은 ㎏당 42.6원으로 84.8원인 유연탄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수입부과금과 관세, 개별소비세 등을 합친 제세부담금은 LNG 91.4원, 유연탄 36원으로 LNG가 유연탄의 2.5배다.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수입부과금을 인하하고 개별소비세를 조정하면 LNG의 제세부담금은 23원으로 낮아지고, 유연탄은 46원으로 오르게 된다. 산업부는 제세부담금 조정에 따른 미세먼지(PM2.5) 감축량을 연간 427t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또 열과 전기를 함께 생산하는 열병합용 LNG는 수입부과금 전액을 환급한다. 열병합용은 일반 발전보다 에너지 이용효율이 30% 포인트 정도 높기 때문이다. 환급 대상에는 집단에너지 사업자, 자가 열병합 발전, 연료전지 발전 등이다. 이번 발전용 LNG 세제 인하에 따라 100MW(메가와트) 미만 열병합용 가스요금은 다음달 1일부터 6.9% 인하된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크림 병합 5주년 맞은 날…푸틴, 거침없는 ‘차르’ 행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2014년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방문해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토임을 재천명했다. 그는 언론 탄압 법안에 서명하는 등 국내외 각종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르’(황제)를 방불케 하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방 비난에도 크림 방문해 러 영토 재천명 푸틴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5주년을 맞아 크림반도를 찾았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그는 심페로폴 등의 화력발전소 2곳의 확장 가동식에 참석하고 새 시설물 가동 버튼을 직접 눌렀다. 이 두 발전소는 앞으로 크림반도 전력의 90%를 생산하게 돼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새 발전소는 크림반도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행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를 즉각 비난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토는 “우리는 이 행동(크림병합)을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 탄압 논란 ‘가짜뉴스 금지’ 법안도 서명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은 언론 탄압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짜 뉴스 금지 법안과 국가 상징물이나 공공기관 등을 모욕하는 콘텐츠를 차단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법안에는 가짜 뉴스를 확산할 경우 최대 50만 루블(약 870만원)의 과태료를 물고 대통령·국가 상징·정부 등을 모욕하면 최대 30만 루블의 벌금과 징역 15일 형에 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AFP통신은 “옛 소련 시절의 ‘소련 체제 훼손 활동 금지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법률”이라고 평가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바우하우스 100주년’ 독일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바우하우스 100주년’ 독일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올해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은 독일에서 어느 때보다 특별한 이벤트·전시회 등이 열린다. 독일관광청은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독일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소개했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해 설립한 조형학교다. 독일어로 ‘짓다’는 뜻의 ‘바우’(bau)와 ‘집’의 뜻하는 ‘하우스’(haus)를 합친 말이다. 존속 기간은 14년(1919~1933)에 불과하지만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바우하우스 양식은 회화, 조각, 건축, 디자인뿐 아니라 교수법과 교육이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줬고 세계 곳곳에 보급됐다. 100주년을 맞아 바우하우스의 주요 거점인 바이마르, 데사우, 베를린 등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됐다. 우선 다음달 1~7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박물관에서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9월 8일에는 데사우 바우하우스 박물관 자체 행사가 열린다. 베를린 갤러리에서는 오는 9월 6일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오리지날 바우하우스 행사가 열린다. 이밖에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마인츠, 슈트트가르트, 뮌스터, 드레스덴, 콧부스 등 독일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에 관한 이벤트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한편 올해 국내 취항 35주년을 맞는 독일 국적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바우하우스 100주년에 주목해 다음달부터 서울-뮌헨 노선에 에어버스 A350을 취항한다고 밝혔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열린세상] 식민지 유산의 올바른 극복을 위하여/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식민지 유산의 올바른 극복을 위하여/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으로 부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발언으로 여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3ㆍ1절 기념사에서 색깔론을 극복하자고 호소한 대통령에 대한 도발이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를 ‘아베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비난한 여당의 대응 또한 퇴행적이다. 안 그래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실패의 범인 찾기가 벌어져 일본 주범론이 범진보 일각에서 회자되던 참이다. 작금의 사태는 한국 범보수의 아킬레스가 여전히 북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척점에서 범진보의 아킬레스가 여전히 일본 인식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런 소모적ㆍ유아적 논쟁 자체가 식민지 유산의 질곡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근대 국제체제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개별 민족국가는 대내적으로 근대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립과 대외적으로 자주적 평등질서의 보장을 불가분 불가결의 기본 요소로 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전략적으로 근대화와 자주화 동시 달성을 목표로 한다.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의 상승 조합이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이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에서 두 기획은 상쇄 조합의 함정에 빠졌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자주의 나라’가 돼 근대 국제체제에 편입됐지만, 이는 ‘근대 없는 자주’였다. 그로부터 30여년, 갑신정변·갑오개혁 등의 주체적 근대화가 좌절되고,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됐다. 그로부터 식민지적 근대가 시작됐지만, 이는 ‘자주 없는 근대’였다. 우리 민족주의는 이 ‘가짜 자주’와 ‘가짜 근대’를 동시에 극복해야 했으며, 우리가 벗어나야 했던 것은 ‘근대화와 자주화의 상쇄 조합’이라는 함정이었다. 해방으로 우리는 자주화와 근대화라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상승 조합으로 이끌어 갈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남한에서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는 다시 분열돼 상쇄 조합에 빠졌다. 근대화 프로젝트가 전략이 되면 자주화의 과제가, 자주화 프로젝트가 과제가 되면 근대화의 과제가 주변으로 밀려나 부정됐다. ‘오직 근대화’와 ‘오직 자주화’의 분열과 대립이 해방 후 한국 민족주의를 다시 상쇄 조합의 함정에 빠뜨렸다. 지리적으로도 분열됐다. 한국에서는 ‘오직 근대화’가 주류를, 북한에서는 ‘오직 자주화’가 국시를 이루는 사회가 됐다. 한국에서 ‘오직 근대화’가 주류를 이룬 계기는 사실은 4ㆍ19혁명으로 등장한 장면 정권에서다. 장면 정권은 이승만의 배일 정책과 민족경제 노선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일본 자본에 의한 경제 재건을 시도했다. 친일파가 한일 교섭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실은 이 시기였다. 5ㆍ16으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이 인맥을 계승해 장면 정권이 시도했던 경제협력 방침의 국교 정상화를 완성했다. 1980년 신군부를 거치면서 ‘근대화’는 한국에서 일종의 신앙이 됐다. 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자주화 민족주의’로 표출하면 ‘자주화’가 유일 노선으로 정착한 북한에 연계해 ‘빨갱이’ 낙인을 붙여 배제했다. 한국에서 ‘빨갱이’ 낙인은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의 상쇄 조합이라는 함정의 다른 이름이다. ‘빨갱이’로 몰려 사형 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가 상승 조합을 창출할 기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한일 공동선언로 한일 화해를 이루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에 나선 것이 이를 상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도한 한일ㆍ남북 화해의 병행노선이 실패한 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위기가 중첩·심화된 것이 2017년의 위기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성패는 자주화ㆍ근대화 상승 조합을 창출해 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자주화와 근대화는 민족주의라는 축의 양 끝에 달린 두 수레바퀴 같은 것이라 두 힘이 같은 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민족주의는 전진하며, 반대 방향으로 어긋물려 돌아갈 때 같은 자리에서 맴맴 돈다. 두 힘의 상승 조합을 창출해 한국 민족주의의 질곡에서 빠져나오는 것, 이것이 진정 식민지 유산을 극복하는 길이자 올바른 친일청산이다. 색깔론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의 두 기획을 하나로 엮어 나가자는 데 대통령의 본뜻이 있다고 믿는다.
  • 검찰, ‘김성태 의원 딸 부정채용’ 확인…KT 전직 인사담당 임원 구속

    검찰, ‘김성태 의원 딸 부정채용’ 확인…KT 전직 인사담당 임원 구속

    검찰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딸의 ‘KT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당시 인사 업무를 총괄한 KT 전직 임원을 구속했다. 14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일)는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거쳐 전 KT 전무 김모(63)씨를 구속 수감했다. 검찰은 김씨 외에 인사 실무를 담당한 KT 직원 A씨의 구속영장도 함께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김씨는 KT 인재경영실장으로 근무하던 2012년 하반기 공개채용에서 절차를 어기고 김성태 의원의 딸을 합격시킨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성태 의원의 딸이 2011년 4월 KT 경영지원실 KT스포츠단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이듬해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수사해왔다. 검찰이 KT의 2012년 공개채용 인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김성태 의원의 딸이 서류전형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KT 공개채용 절차는 서류 전형, 인적성검사, 실무·임원면접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대해 김성태 의원은 “딸은 메일을 통해 서류 전형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딸이 KT스포츠단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할 당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절차적 문제 없이 공채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한 만큼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게 김성태 의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당시 인사 총괄 임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점을 볼 때 김성태 의원의 딸의 공채 합격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러한 채용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김성태 의원에 대한 직접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검찰은 일단 구속된 김씨가 당시 KT 수뇌부 등 윗선의 지시를 받아 김성태 의원의 딸을 부당하게 합격시킨 것이 아닌지 김씨를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서부지검에 접수됐던 김성태 의원에 대한 고발사건을 병합해 수사에 착수했다. KT새노조와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달 24일 김성태 의원을 직권남용,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또 같은날 민중당도 같은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김씨 재직 당시 김성태 의원의 딸 외에도 여러 명의 응시자가 절차에 어긋나게 합격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다른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센징, 꼬레아노 그리고 한국인 -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센징, 꼬레아노 그리고 한국인 -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 이민의 역사 :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으로 떠나다. “나두야 가련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거냐.”<박용철, 떠나가는 배 中에서, 1930> 시인 박용철(1904-1938)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을 떠나야 되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조선 젊은이들의 눈물을 <떠나가는 배>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 이주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었는 데, 재외한인으로서의 첫 해외 이주 공식 기록은 1903년 1월 13일로 남아 있다. 당시 101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의 형태가 아니라 ‘계약 노동자’의 신분으로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였고 이후 1905년까지 약 7,226명의 조선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물론 1800년대 후반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유랑민의 형태로 만주나 연해주, 러시아 등지로 이주한 비공식적인 기록도 남아있다. 격동하던 20세기 초 조국을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 인천의 한국 이민사 박물관이다.우리나라의 이민의 역사는 크게 4단계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바로 1860년대부터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1910년까지다. 이 시기는 구한말의 농민, 노동자,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 만주, 연해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로 경제유민(流民)의 형태로 이주하였다. 이중 중남미로의 이주는 1905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의 계약 노동자로 1,033명이 떠난 것이 시작이며, 이들 중에서 300여명이 다시 1921년에 경제난을 피해 쿠바로 재이주한 기록이 남아있다.하지만, 본격적인 재외 한인 이주는 일제 강점기 시기인 1910년부터 1945년까지로 본다. 바로 두 번째 시기다. 이 시기에는 일제로부터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대거 이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난민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특히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2년의 만주국 건설을 계기로 일제는 만주 지역에 25만명에 이르는 한인들을 강제로 집단이주시킨다. 또한 일본에는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대규모 한국인들이 광산, 전쟁터로 강제 이주를 하였는데, 1945년 8월까지 약 230만 명이 이주하였다. 이후 일본의 패전이후 한인들이 조국으로 귀환하자 급속히 감소하여 1947년에는 598,507명으로 급감하였다. # 나라 잃은 딸들의 절규, 8만 명이 종군위안부의 이름으로 이중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등장한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개시하면서 전선확대에 따른 병력과 일본 본토의 전시산업을 지탱할 노동력 확보가 필요하게 되자 1938년 4월에 국가총동원법을 발표한다.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1945년까지 조선인 노동자징발과 학도징용이 이루어졌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연행된 조선인 숫자만 724,787명에 이르고 여기에 군인, 군속 365,263명을 합하면 조선인 강제연행자 수는 100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물론 공식적인 기록이어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들이 강제 이주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런데 당시 일제는 ‘여성자원봉사대’라는 명목으로 20만 명의 여성을 전시 준비에 동원하였다. 이 중에서 소위 ‘종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여성이 공식 기록으로만 8만 명에 이른다. 따라서 ‘종군위안부’ 이주 기록은 우리 민족에게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해외 강제 이주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재외 한인 이주 세 번 째시기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발생한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학생 등이 입양, 가족재회,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또는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다. 1962년에 한국정부는 남미, 서유럽, 중동, 북미로 집단이민과 계약이민을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집단이민은 1963년 브라질로 103명의 농업 이민자들이 떠난 것이었다. 이후 독일로의 광부, 간호사 이민, IMF 외환위기 시절의 이민, 최근의 취업 이민 등으로 해외 이주의 역사는 계속 이루어져 오고 있다.바로 이러한 재외 한인 이주 역사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인천에 위치한 이민사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2008년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축면적 4천100㎡ 규모로 만들어진 이민사박물관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100년의 재외 한인들의 고단한 이민 역사를 잘 담아 놓고 있다. <인천 이민사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월미도에 갈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쯤은 방문해도 좋다. 역사적인 의미가 풍부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방문. 3. 가는 방법은? - 지하철 인천역 하차→ 버스 45번 승차→ 해사고등학교 앞 하차 4. 감탄하는 점은? - 생각보다 오래된 이민 역사. 특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강제 동원 역사.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특색있는 박물관으로서 의미가 풍부한 곳인데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이주한 우리 민족의 역사. 우토로의 사진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박물관 바로 앞이 월미도 관광지구다. 많은 식당과 횟집, 카페들이 있어 먹거리 걱정은 없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icmuseum.incheon.go.kr/articles/13446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월미도 관광지구, 차이나 타운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재외국민이 해외에 거주하더라도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 선거를 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군주 고종(1852~1919), 조선을 지키려다가 억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1851~1895),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에게 독립의식을 키워 준 덕혜옹주(1912~1989).’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 소설, 뮤지컬이 보여 주는 조선 황실 인물의 모습이다. 이들은 열강의 조선 침탈 압박에도 나라를 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부 문화계가 돈벌이를 위해 부끄러운 우리 역사까지 항일이라는 이름으로 세탁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상이 허용되지만 일부 작품은 가히 역사 창조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조선 황실의 과오를 희석시키고자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게 모두 전가하는 ‘분노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역사 왜곡’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조선 황실 남성들 日장교 돼 일왕에 충성” 지난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은 항일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의병과 긴밀히 소통하는 ‘우국(憂國) 군주’의 모습으로 나왔다. 이태진(76)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도 “개혁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광무개혁(1896~1904) 등을 통해 청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미지는 다양한 작품에 투영돼 고종을 ‘비운의 군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학계 대다수는 이런 현상에 매우 회의적이다. 다른 나라들이 입헌군주제로 전환해 민주주의로 나아갈 때 오직 고종만이 조선을 전제군주제로 되돌려 망국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청일전쟁(1894~1895) 때는 미국 공사관으로, 러일전쟁(1904~1905) 땐 프랑스 공사관으로 피신하며 비싼 대가를 치렀다. 갑신정변(1884)과 을미사변(1895) 등 변고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외세에 의탁하기 바빴다. 1898년 독립협회가 의회 개설 등 개혁을 요구하자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이들을 탄압한 것도 큰 과오다. 당시 조선사회를 기록한 외국인들도 그를 ‘무능한 군주의 전형’으로 여겼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고 개탄했다. 조선이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하지 못해 세계 발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결국 일본에 병합됐다는 것이다. 망국의 가장 큰 책임이 왕 자신에게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무엇보다 고종은 자신의 안녕을 위해 조선 민족 전체를 일본에 넘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3일 “고종과 황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지키고자 조선의 식민지화에 앞장서 협력했다”며 “조선 황실은 식민지 기간 내내 (백성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이 제공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민족 행위”라고 꼬집었다.실제로 조선 황실은 1910년 경술국치 뒤로 별다른 국권 회복 노력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이왕가’(李王家)로 책봉된 뒤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경술국치 때 작성된 한일병합조약에는 조선 황실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조문이 빼곡히 담겨 있다. 황실 인사들은 일본식 고등교육을 받았고 특히 남성들은 일본군 장교가 돼 일왕에 충성했다. 그나마 1919년 의친왕 이강(1877~1955)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한 것이 유일한 항일 운동이었다. 3·1운동 시위에 참가한 학생의 기록에는 “주민들은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데 (고종 사망을 계기로) 그간 조선 황실이 너무도 호화롭게 지내 온 사실을 알게 돼 크게 실망했다”고 나온다. ●백성들에게 ‘늙은 여우’로 조롱받은 명성황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명성황후 역시 매스컴에 의해 이미지가 조작된 대표적 황실 인사다. 일부 문화계 인사들은 그를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한다. 국민들의 인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개인적 원한 때문에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1821~1898)과 권력 다툼을 벌여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무속 신앙에 심취해 국가 재정을 파탄 낸 ‘세기의 악녀’로 평가한다. 일부에서는 그가 “조선의 국가 규모를 감안할 때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를 넘어서는 사치를 부렸다”고 지적한다. 1895년 시해 때 일본 자객들은 명성황후를 ‘늙은 여우’라고 칭했는데, 이는 일본인이 만든 별명이 아니다. 조선 민중들이 그의 악행에 분노해 스스로 지어낸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명성황후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무용, 뮤직비디오 등에서 조선을 지키려고 싸우다가 희생된 애국자로 등장한다. 그의 최후가 너무 비극적이어서 대중의 안타까움이 과잉 이입된 탓이다. 역사 전공자들은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명성황후 미화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명성황후가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포장된 것은 2001년 KBS에서 그의 삶을 드라마로 방영하면서부터다. 국민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야 할 공영방송이 되레 망국의 주범을 구국의 위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제대로 된 고증 없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조선은 선(善), 일본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덕혜옹주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 입어” 2016년 개봉 당시 6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덕혜옹주’도 역사 왜곡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이덕혜는 1912년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25년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났고 1931년 쓰시마번주 귀족과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1962년 정신질환 상태로 한국에 돌아와 1989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간 이덕혜’는 분명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희생물이다. 영화 속 그는 시대 상황을 마음 깊이 고민하고 일제에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일본 옷 입기를 거부하고 조선인 유학생들과 항일 교류 모임을 가졌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연설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고자 중국 상하이 망명도 추진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정신병을 얻어 힘든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 덕혜는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를 입었다. 정신질환도 일본의 압박이 본격화되기 전인 10대 때 나타났다. 그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영화 속 내용은 모두가 원작소설 ‘덕혜옹주’를 바탕으로 허진호 감독이 머릿 속에서 만든 상상의 소산이다. 역사소설가 이원규(72)씨는 “대중 문화계에 근대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 어떤 작품에서는 살아있는 왕에 대해 ‘우리 고종께서…’라며 묘호(죽은 뒤 왕에게 내려지는 이름)를 썼다”면서 “최소한의 지식도 없는 작가들이 역사의 궤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려는 듯한 콘텐츠를 생산해 우려스럽다. 문화계 내부에 문제의식은 있지만 ‘동업자 정신’ 때문에 비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러, 30여년 INF 파기… 中까지 가세 ‘불붙는 핵군비 경쟁’

    미러, 30여년 INF 파기… 中까지 가세 ‘불붙는 핵군비 경쟁’

    “현재 우리는 아무도 위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에 러시아를 위협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우리는 즉각 대응할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의 경우 잠수함에서 발사한 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러시아 국영TV ‘로시야 1’ 방송 진행자 드미트리 키셸로프는 지난달 24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지도를 보여주며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러시아가 타격할 수 있는 미국 내 여러 목표물을 제시했다. 목표물에는 미 국방부 건물(펜타곤)과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 등이 포함됐다. 지난달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만약 미국이 원한다면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 때와 같은 핵전쟁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잇달아 폐기하면서 핵전쟁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가세한 전 세계 핵군비 경쟁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30여년간 유지돼온 INF가 운명을 다하게 된 것은 소련이 붕괴되고(1991년), 미국이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을 본격화한 순간(2001년)부터 이미 예고된 결말이었다는 평가다. ●“소련 붕괴·美 MD체계 구축 따른 예고된 결말”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일 INF에 대한 의무 중단을 공식 지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 1일 러시아가 INF를 위반해 조약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INF는 1987년 미국과 옛 소련(러시아)이 사거리 500~5500㎞ 중단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한 조약이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누가 조약을 먼저 위반했느냐를 놓고 공방을 벌여 왔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부터 러시아가 개발한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9M729의 사거리가 2000㎞를 넘어 INF 위반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러시아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480㎞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배치한 미사일 발사대를 근거로 미국이 INF를 먼저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INF는 사실상 중국의 부상으로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INF가 체결될 때만 해도 미국과 소련이 양대 초강대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옛 소련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경제·군사력을 신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INF 당사자가 아니어서 아무 제약 없이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대거 개발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조약에 발목이 묶여 있는 사이 중국은 중거리 핵전력의 실전 배치를 마쳤고, 특히 둥펑(DF)21D 미사일은 사거리가 2700㎞에 달해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태평양 미 항공모함 전단까지 타격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INF 대상이 되는 중거리미사일 없이도 사거리 1만㎞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서로를 공격할 수 있다. 사거리 500~5500㎞의 중거리 핵전력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들 무기가 미러 양국의 유럽 내 동맹국들을 겨냥해 전진 배치된 무기였기 때문이다. 냉전 당시에는 실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직접 타격하기보다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했다. ●“美, 러보다 태평양서 中 견제 목적” 이에 따라 미국이 INF 파기를 선언한 것은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의도보다는 주로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동맹국이나 괌 등지에 중거리미사일을 전진 배치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이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군비 통제 조약을 제안한 배경에는 INF를 대체할 새 조약을 통해 중국의 중거리 핵전력을 묶어 놓겠다는 의도도 포함됐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INF 위반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신형 미사일 개발에 나섰을까. 이는 미국이 조지 W 부시 정부 때부터 추진해 왔던 MD 전략과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핵군비 전략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1987년 체결된 INF는 19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조약과 함께 냉전 시대 핵전쟁의 위협을 막은 양대 조약이었다. ABM 제한 조약은 미국과 소련 양국이 신형 MD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해 서로 핵무기로 피격될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협정이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거리낄 것이 없다고 여긴 조지 W 부시 정부는 2001년 12월 ABM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고 글로벌 MD 체계 구축에 나섰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둘 미국이 주도한 나토에 가입하고 미국 MD가 유럽 곳곳에 속속 배치되면서 러시아의 불안감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러시아’를 장기 집권의 명분으로 삼아온 푸틴 정권은 MD를 뚫을 수 있는 미사일 공격 능력 배양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푸틴으로서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신냉전 구도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럽 곳곳에 배치된 미 MD 체계와 미군 기지를 무력화할 중단거리 미사일 전력이 절실했다. 푸틴 정권은 이미 9M729 미사일 이외에도 미국이 요격하기 어려운 이스칸다르(SS26) 단거리 탄도미사일, 차세대 ICBM 사르마트(RS28) , 지르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킨잘 공대지 초고음속 탄도미사일, 아방가르드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등을 잇달아 개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달 사거리가 2500㎞에 이르는 해상발사 장거리 순항미사일 칼리브르의 지상용 버전 개발과 양산을 올해까지 마치고 지상발사형 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中 10월 사거리 1만 2000㎞ DF41 공개 예정 미국과 러시아가 INF의 족쇄에 묶여 있는 동안 미사일 전력 개발에 진력해 온 중국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DF21D에 이어 2016년부터는 사거리가 3000㎞로 괌 미국기지를 겨냥한 DF26을 도입했다. 오는 10월에는 사거리 1만 2000㎞의 신형 ICBM DF41을 공개할 예정이며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월 17일 우주 공간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사일 방어 전략을 발표하는 등 MD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기존 MD가 지상발사 요격 미사일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적의 미사일을 더욱 신속히 탐지하고 요격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주 공간에 센서층과 요격 무기를 설치해 MD를 증강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2월 핵태세 검토보고서를 통해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SLBM과 함정에서 발사되는 순항미사일을 활용한 저위력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공언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자가 되는 대량살상무기이자 상대편의 핵보복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실제 사용하기는 부담스러운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한정된 지역과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저위력 핵무기를 개발하면 그만큼 민간인 살상에 따른 도덕적 부담감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더이상 핵무기를 재고로만 쌓아놓지는 않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INF에 이어 미러 양국의 또 다른 협정인 ‘신(新)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도 조만간 폐기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INF가 폐기되면 미러 간 군비 통제 조약은 2010년 오바마 정부 시절 체결한 뉴스타트 협정만 남게 된다. 이 협정은 지난해까지 실전 배치된 핵탄두수를 1550기 미만으로, ICBM 발사장치를 800기 미만으로 감축하는 것이 골자인데 2021년 협정이 만료된다. 하지만 INF 파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 군비 증강을 이유로 뉴스타트 협정 연장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포스코건설, 멕시코서 1억 달러 열병합발전소 공사 수주

    포스코건설이 멕시코에서 1억 달러 규모의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고 11일 밝혔다. 에네르(Ener)AB가 발주한 1MW급 키레이(Quirey) 열병합발전소를 짓는 공사다. 공사기간은 착공 후 24개월이다. 에네르AB는 미국의 발전회사인 에이이에스(AES)사와 멕시코 발(BAL)그룹의 합작회사다. 포스코건설은 2006년 국내 기업 최초로 중남미 에너지 시장에 진출한 이후 13년 만에 누적 수주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 ‘사법 농단’ 임종헌, 변호사 새로 선임하고 오늘 첫 재판

    ‘사법 농단’ 임종헌, 변호사 새로 선임하고 오늘 첫 재판

    ‘사법 농단’의 조력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첫 재판이 오늘(11일) 열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오늘 오전 10시 임 전 차장의 재판을 시작한다. 재판은 검찰이 임 전 차장에 대한 공소사실의 요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변호인단의 의견 진술 순서로 진행된다. 임 전 차장 본인이 직접 공소사실에 대해 입을 열 가능성도 있다. 다만 지난 1월 재판 진행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기존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한 뒤 새로 합류한 변호인들이 기록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날 재판에선 임 전 처장의 혐의를 부인하는 정도만 이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임 전 차장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을 둘러싼 ‘재판 거래’ 의혹 등으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 됐다. 이어서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서 ‘재판 민원’을 받고 판사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 등으로 올해 1월 추가 기소됐다. 지난달엔 특정 법관을 사찰하고, 이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실행했다는 혐의로 3차 기소됐다. 3차 기소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등과 함께 형사35부에 배당됐지만, 법원은 임 전 차장 사건만 분리해 기존 사건이 있던 36부 사건에 병합했다. 그간 임 전 차장은 혐의를 부인하거나 침묵하는 식의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간에서 지시를 받고 실행한 임 전 차장이 자칫 사법 농단을 주도한 인물들 대신 모든 혐의를 뒤집어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후유증 최소화” vs “민의 왜곡” 지자체 주민투표 약일까 독일까

    주요 정책 결정 때 찬반투표 사례 늘어 민주적 절차 통해 정당성 부여 긍정적 저조한 참여율·결과 해석 이견은 문제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주민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해 정책 방향을 정함으로써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투표에 참여하는 주민 비율이 극히 적어 민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공공기관끼리 이견을 보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인천시 남동구는 지난달 23∼24일 논현1·2동과 논현고잔동 주민을 대상으로 20여년째 표류 중인 영동고속도로 소래IC 설치사업에 대해 찬반을 묻는 직접투표를 직권으로 각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실시했다. 하지만 투표에는 대상자 8만 3454명 중 12.5%인 1만 481명이 참여했다. 이 중 7475명(71.3%)이 소래IC 설치에 찬성을, 2997명(28.6%)이 반대했다. 남동구는 “인천시가 투표 결과를 사업 추진에 적극 반영하길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시는 “주민투표로 인해 당장 결정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인천시교육청은 남동구 도림고 이전을 놓고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자 2017년 9∼10월 남동구민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형식의 찬반투표를 했다. 찬반 논란이 치열해 난처한 입장에 처한 시교육청의 출구전략이었다. 투표 결과 1090명(72.7%)이 찬성하고 410명(27.3%)이 반대하자 시교육청은 도림고를 서창지구로 이전하기로 확정했다. 하지만 학교 주변 5개 동 주민만 3만 7651명에 달해 학교 인근 주민들과 남동구가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인천 동구 주민들이 송림동 연료전지발전소 건립에 대한 찬반을 묻고자 추진해 온 주민투표는 중단될 상황에 처했다. 동구가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최근 “연료전지발전소 건립은 국가 사무에 해당돼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5년째 찬반 갈등을 빚는 경남 거창 법조타운 건립문제와 전남 나주 고형폐기물 열병합발전소 가동 여부도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아파트 경비원 감축 문제에 대해 입주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사례도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최윤경 인천대 교수는 “민의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 대한 주민투표는 최후 수단이 되고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이나 탈출구처럼 남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황제의 옥새2]충신 다 쫒겨난 조선...정해진 망국의 운명

    [황제의 옥새2]충신 다 쫒겨난 조선...정해진 망국의 운명

    올해는 3·1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신문은 100주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앞서 나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직전 단행한 첫 번째 모험 때 조선 황제(고종)와 함께 한강에서 요트로 한반도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가 탈출 직전 마음을 바꿨다. 도착 예정지인 중국 상하이의 러시아 피난처(당시 러시아 비밀정보기관인 ‘상하이 서비스’로 추정)에는 나와 소녀(이 소설의 전편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 등장한 러시아 스파이)만 가게 됐다. 러시아의 거물급 정치인(당시 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이 그녀에게 내린 비밀 임무는 수포로 돌아갔다. (번역자주: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주인공인 빌리와 베델, 소녀는 러시아 정보당국의 도움을 받아 고종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합니다.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는 러시아 기밀 문서가 공개돼 최근에야 세상에 알려진 극비 사안입니다. 100여년 전 작가는 조선에 직접 와서 베델을 취재해 소설을 썼습니다. 아마도 베델은 러시아가 추진하던 고종 망명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하이에 머물던 나는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무모한 충동에 이끌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일제가 나를 어떻게 대할 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일본은 나에게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일본 총독은 조선 황제의 대담한 탈출 작전에 내가 관여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이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 조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공식적으로 나를 잡아 가두기보다는 어느 날 어둠 속에서 내 등에 칼을 꽂아 조용히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추론이 더 정확한 판단이겠지...나는 일본인들의 감시 속에서도 서울에서 나름 즐겁고 활기차게 지냈다. 밤에도 혼자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강철로 된 셔츠가 내 몸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내 모습이 옛날 그리스의 독립운동가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1792~1828) 같다고 여겼다. (번역자주: 입실란티스는 그리스의 혁명 지도자로 러시아의 장군이었지만 고국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1821년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8년 뒤인 1829년 그리스는 오스만 투르크에게서 해방됐습니다.) 조선 황제를 은밀히 도피시키려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지 2년쯤 지난 1907년 여름이었다. 먼지로 뒤덮힌 서울의 최고 지도자는 이토 히로부미(1841~1909) 후작이었다. 일본은 만여명의 총검으로 조선을 손쉽게 점령했다. 불쌍한 황제는 왕궁(덕수궁)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는 하기와라(당시 일본 공사관원으로 훗날 외무성 통상국장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1868~1911)의 허락 없이는 재채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였다. 왕자(순종·1874~1926)는 한 나라를 감당하기에 너무 나약했다. 그는 내전(內殿·왕비가 거쳐하던 곳)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바둑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라를 위해 고민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조선을 구하려던 충신들은 모두 쫓겨났다. 남은 신하들은 녹봉만 잘 챙겨주면 됐다. 이들에게 조선의 흥망은 관심이 아니었다. 신하들은 일본인들의 명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서울을 지키던 대한제국의 군대는 탄약이 들어가지 않는 소총과 약실이 없는 포를 부여잡고 힘겹게 버텼다. 일본인들은 이런 군대를 대놓고 비웃곤 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커튼을 걷어내고 새로운 무대를 올릴 준비가 돼 있었다. 아...안타깝지만 대한제국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본은 자신이 원할 때 언제라도 황제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일제의 음모는 마치 또아리를 튼 독사처럼 500년 역사의 암물한 왕좌를 휘감고 있었다. ‘황제의 옥새’는 3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1310억 달러의 베조스 따위야” 인류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1310억 달러의 베조스 따위야” 인류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1310억 달러의 자산으로 현대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모은 것으로 지난주 포브스가 집계했다. 그런데 베조스는 인류 역사에 있어왔던 부자들에 견주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실존한 인류 가운데 가장 재산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받는 이는 14세기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을 다스린 만사 무사 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역사학과의 루돌프 버치 부교수는 “당시 무사의 재산 규모를 세다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라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통치 권한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지금의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영국 BBC에 말했다. 2015년에 머니 닷컴에 기고했던 제이콥 데이비슨은 “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부를 누렸다”고만 적었다. 2012년에 미국 웹 매체 셀레브리티 넷 워스(Celebrity Net Worth)는 그의 재산을 4000억 달러로 추정했는데 경제 역사학자들은 숫자로 세는 게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그는 1280년에 태어났는데 형 만사 아부바크르가 필생의 숙원이던 대서양 탐사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은 1312년부터 제국을 통치했다. 14세기 시리아 역사학자 시밥 알우마리에 따르면 아부바크르는 바다 너머를 동경해 2000척의 배와 수천명의 남녀, 노예들을 데리고 떠났다. 세상을 떠난 미국 역사학자 이반 반서티마 같은 이들은 아부바크르가 남아메리카에 당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어쨌든 무사의 통치 기간 제국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팀북투 등 24개 도시를 병합했다. 제국은 3200㎞ 넘게 뻗어나갔다. 얼마나 방대했느냐면 지금의 니제르, 세네갈, 모리타니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감비아, 기니비사우, 기니, 코트디부아르가 조금씩이라도 속했다. 대영박물관은 그가 통치하던 말리 제국의 부가 세계 고대 왕국들의 절반 정도가 됐다고 평가했다.그 전까지는 그나 제국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지 않았지만 독실한 무슬림으로 사하라 사막을 건너고 이집트를 거쳐 메카 순례를 떠나면서 위용이 알려졌다. 대상(隊商) 행렬이 떠났을 때 무려 6만명의 남성과 1만 2000명의 노예가 따랐다. 먹으려고 양과 염소가 긴 행렬을 이룬 것은 물론이다. 수백 마리의 낙타 등에는 황금이 실렸다. 알우마리는 무사가 떠난 지 12년 뒤 카이로를 찾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무사 얘기를 하더라고 기록에 남겼다. 무사는 카이로에 3개월 머무르며 10년 통치에 쓰일 황금들을 다 넘겼다. 미국의 스마트애셋 닷컴은 무사의 메카 순례가 15억 달러의 손실을 중동 전체에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를 따라나섰던 어릿광대들마저 그에게 좋지 않은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로 그는 흥청망청 황금을 뿌렸다. 이렇게 통 큰 행보를 하면서 1375년 카탈란 아틀라스 지도에 팀북투가 표시되고 그 위 황금 왕좌에 앉은 그의 모습이 그려지게 됐다. 팀북투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로 불리게 됐다.19세기 골드러시 열풍에 힘입어 한탕을 노리는 유럽인들이 500년 전 만사 무사의 황금을 찾겠다며 아프리카에 몰려온 것도 이 덕분이었다. 무사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들과 안달루시아 지방의 시인 겸 건축가 아부 에스 하크 에스 사헬리를 비롯한 이슬람 학자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사헬리는 1327년 저유명한 징구에레버(Djinguereber) 모스크를 설계했고 무사는 200㎏의 황금을 선물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820만 달러가 된다. 아울러 문학과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던 그는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 팀북투는 교육의 중심지가 됐고,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들이 오늘날 상코레(Sankore) 대학으로 발전한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가 57세를 일기로 1337년 세상을 떠나자 아들들이 제국을 쪼개 통치하다 13년 뒤 결국 소멸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박겸수 강북구청장,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 참여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3.1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에 동참했다. 3·1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는 독립선언서 총 38개 문장 중 한 문장을 선택해 직접 필사하고 이를 48시간 이내에 SNS에 인증해 다음 참가자 3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 구청장은 지난 6일 챌린지에 참여한 김충섭 경북 김천시장의 지목을 받아 “처음부터 우리민족이 바라지 않았던 조선과 일본의 강제병합이 만든 결과를 보라”는 독립선언서 18번째 문장을 필사했다. 박 구청장은 다음 필사 대상자로 이백균 강북구의회 의장, 장형순 강북소방서장, 장석진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목했다. 박 구청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면서 “지난 3월 1일에는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 봉황각에서 구민들과 함께 재현행사를 열었다. 일제탄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의지를 밝힌 100년 전 그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그 뜨거웠던 함성을 마음에 새겨 행복과 번영이 가득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청정기 추가 투입·자발적 2부제… 현실성 없는 미세먼지 대책

    청정기 추가 투입·자발적 2부제… 현실성 없는 미세먼지 대책

    사회재난 인정하는 개정안 국회에 계류 文 “학교 등 공기정화기 교체 즉시 검토” 趙 환경 “미세먼지 저감 시민참여 중요”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12곳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한반도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뿌연 먼지 때문에 가시거리가 줄어 차량들은 전조등을 켜고 운행했다. 미세먼지 관리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대두된 가운데 더욱 강력한 대기질 관리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비상저감조치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겨울철 질소산화물 배출의 50%가 난방이어서 가정용 가스보일러의 배출 기준 강화 등이 요구된다”면서 “서울의 대기오염을 줄이려면 소형 열병합발전소 관리가 효과적이다. 강원 영동 지역의 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은 체감효과가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1종 대기배출시설을 대상으로 총량 규제를 하는데, 이게 얼마 안 된다”며 “중소 규모 배출시설이나 상업·가정용 시설들이 대기배출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불편하더라도) 총량 규제에 이런 시설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정헌 건국대 기술융합공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해 왔던 정책들은 1차적인 미세먼지를 줄이는 대책들이었다”며 “앞으로는 비료·축산 등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석유화학단지와 주유소 등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규제하는 정책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도권과 충청권에 사상 처음 닷새째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지자 “미세먼지를 사회 재난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 중인 가운데 조만간 부처 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이고 여야 모두 개정안을 발의한 만큼 법률 개정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청도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특단의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 대용량 공기정화기를 빠르게 설치할 수 있도록 공기정화기 보급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게서 긴급 보고를 받은 뒤 “적어도 아이들이 실내에 들어가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중심으로 공기 정화기 추가 지원이나 교체 방안 등을 즉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책은 환경부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니 모든 부처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대통령과 총리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도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필요하다면 경제활동이나 차량운행 제한도 필요할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고농도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되면 국민 생명 안전에 지대한 위험이 될 수 있다. 농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데,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전국적인 차량 2부제를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초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법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시행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미세먼지 원천 물질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정책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조 정책위의장은 “(미세먼지 줄이기와 관련해) 한중 협조 체제를 협약이나 협정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세종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경남교육청 9급 지방공무원 210명 채용, 6월 15일 필기시험

    경남도교육청은 4일 올해 9급 지방공무원 210명을 뽑는 ‘2019년도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시행계획’을 이날 공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임용시험 필기시험은 지난 1월 미리 안내한 대로 오는 6월 15일 전국 동시에 실시된다. 도교육청은 이번 공개경쟁 임용시험을 통해 모두 6개 직렬에 210명(장애인 8명, 저소득층 5명 포함)의 9급 지방공무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직렬별 채용방법은 ●교육행정(105명) ●사서(9명) ●공업 일반기계(1명) ●공업 일반전기(4명) ●시설 건축(14명) ●시설 일반토목(1명) ●조리(40명) 직렬 174명은 공개경쟁 임용시험으로 선발한다. ●공업 일반기계(1명) ●시설 건축(4명) ●시설 일반토목(1명) ●운전(30명) 직렬 36명은 경력경쟁 임용시험으로 뽑는다. 시험 원서접수는 오는 4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인터넷을 통해 한다. 시험방법은 1·2차 필기시험을 병합해 실시하고 필기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오는 7월 27일 3차 시험(면접시험)을 실시한다. 최종합격자는 오는 8월 7일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으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도민들에게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청년 취업난 해소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올해는 3·1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신문은 100주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모험에 나서는 내용입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다음은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난 뒤 ‘조선의 형제’를 자처하며 한반도 침탈에 나선 일본이 벌인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또 수백년 간 조선의 왕들이 비밀리에 간직해 온 유물이자 종종 왕국에서 위대한 일을 해 낸 옥새에 대한 비화이기도 하다. <제1장> 헝클어진 곱슬머리 중년 여인 한때 명쾌하고 정곡을 찌르는 지혜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얼간이가 된 나(이 소설의 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미국인 빌리)는 하등 관계도 없는 작은 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조상의 지혜가 담긴 격언에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불에 데인 개는 불을 무서워한다”라는 말을 거스르기로 한 것이다. 이 말은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거나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처럼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개도 개 나름이고 불도 불 나름이니까. 내가 아는 ‘해피’(Happy)라는 이름의 개가 있다. 전에 자동차에 치어 눈과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런데 휘발유로 움직이는 마차가 또 한 번 해피에게 달려간다고 하자. 과연 그 녀석은 괴물을 보고 저 멀리 도망깔까. 아니다. 남은 3개의 다리와 한 쪽 눈으로 다시 한 번 그놈과 맞부딪히려고 할 거다.나와 베델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우리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부터 ‘조선의 형제’를 자처한 일본이 대한제국에 지른 불에 심하게 데였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불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한 번 크게 다칠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우둔하지만 행복하고(happy) 유쾌한 개니까. 그 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번역자주: 소설 속 화자인 빌리가 ‘불에 심하게 데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두 주인공 베델과 빌리가 조선의 황제를 중국으로 망명시켜 을사늑약 체결을 막으려다가 실패한 것을 뜻합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선조들의 지혜를 거스르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우리처럼 바보같고 혈기왕성한 청년들만 이런 짓을 한다. 나는 집(뉴욕 브루클린 소재 고급 아파트)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저 아래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축음기로 ‘겨자가 너무 많아요’(20세기 초 발매된 미국 재즈음악)를 듣고 있을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도 평화롭고 무료했다. 문득 내 오랜 친구 베델이 슬픔에 잠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조선)에서 다시 한 번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고 마음먹은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이제 다시 한 번 그를 도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는 친구니까.흔히 보험업자들은 증서 뒷면에 “신의 행위나 화재, 홍수, 공공의 적의 도발” 등에는 지불 의무가 없다는 면책 조항을 적곤 한다. 과연 이들은 일본에게 점령당한 조선 땅으로 다시 들어가 분란을 일으키려는 우리를 받아줄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겠지. 몇 년 전 우리는 조선의 황제(고종)를 중국 상하이로 모셔가려고 했다. 나와 소녀(전편에 등장하는 러시아 스파이), 베델은 황제와 함께 서울 성벽을 넘어 자유를 향해 달아나다가 앞에서 소개한 격언이 말해 주던 일(고종이 일본에 지레 겁을 먹고 조선 탈출 직전 망명을 포기)을 실제로 겪었다. 우리가 기획한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 갔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모험이었다. 일부 아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최근 이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했다. (번역자주: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912년 12월 미국의 ‘포퓰러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베델은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간하며 일본을 지독하고도 신랄하게 비난했다. 일본은 늘 그를 감시했다. 영국 대사관을 압박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게도 했다.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석방되자마자 서울로 돌아와 신문 되살리기에 열을 올렸다. 끝없이 비틀거리던 제국의 주인(고종)이 한반도를 빠져 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을 비난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번역자주: 실제로 베델은 1907~1908년 영국 대사관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재판에서는 6개월 근신형을, 두 번째 재판에서는 3주간 금고형 뒤 6개월 근신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 구금시설이 없어 베델은 두 번째 재판 뒤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황제의 옥새’는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