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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이사철, 미분양 감소세...’알짜’ 수도권 아파트 관심↑

    봄 이사철, 미분양 감소세...’알짜’ 수도권 아파트 관심↑

    전세난에도 불구하고 봄 이사철 부동산 시장이 분주해졌다.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부동산경기 부양책 등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매매 수요가 늘어났다.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미분양 주택들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5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 5만8576가구로 집계돼 지난 2006년 5월, 5만8505가구 이후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입지 조건이 좋은 이른바 ‘알짜’ 상품들에 주목하고 있다. 교통환경이나 교육여건, 생활인프라가 개선된 수도권 인근 상품들이 그것. 경기도 남양주 ‘호평 파라곤 테라스 하우스’도 그 중 하나다. 이 아파트는 친환경 전원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천마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분양 관계자에 의하면 “강남권 진입이 30분대로 서울 접근성이 우수하다”며 “여기에 친환경적인 입지조건과 대형 커뮤니티시설 등을 갖춰 실속형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들에게 안성맞춤의 착한 분양가로 잔여물량 소진이 임박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 아파트는 풍부한 48%에 달하는 풍부한 녹지공간을 바탕으로 녹색단지를 실현하고 있다. 단지 외적으로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표방하는 슬로건인 ‘슬로 시티(Slow City)’ 에 가입한 남양주시의 대표적 명산 천마산이 주변을 초록빛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감각의 조경시설들이 배치됐으며, 주차시설도 모두 지하로 배치해 지상을 공원화했다. 편리한 교통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경춘선복선전철 호평평내역을 이용하면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봉역까지 20분대에 도달할 수 있다. 수서~호평 간 도시고속도로로 서울 강남과 강북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경춘고속도로, 호평 IC 등 교통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호평 파라곤은 지하 3층 지상 15~20층, 25개 동, 전용면적 84~281㎡형으로 구성돼있다. 특히 1275가구의 유럽형 대단지로 설계됐다. 주택별 가구수는 84㎡형 258가구, 115㎡형 150가구, 127㎡형 118가구, 159㎡형 364가구, 182㎡형 330가구와 테라스하우스 225㎡형 15가구, 281㎡형 40가구로 이뤄져 있다. 분양 관계자는 “강남권 진입이 30분대로 서울 접근성이 우수하다”며 “여기에 친환경적인 입지조건과 대형 커뮤니티시설 등을 갖춰 실속형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들에게 안성맞춤이고 착한 분양가로 잔여물량 소진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분양문의: 031-590-7300.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밴드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에게는 소원이 있다. 그는 오직 음악밖에 모르고 살아온 철없는 아빠였기에 아들 우현의 세상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런 아빠가 이제는 달라지려 한다. 10년 넘게 추억 하나 없던 부자(父子)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아내 현주씨가 계획을 세웠다. 태원은 아들의 마음을 열고자 인생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힐링로드 만남(OBS 밤 11시 5분) 경기도 가평천을 따라가다 보면 옛 농촌의 정취가 묻어나는 도대리 마을이 보인다. 개발제한에 묶인 이곳의 시간은 정지된 듯하지만 봄이 오면 넓게 펼쳐진 논에 화색이 돌고, 오래전 화전으로 일궈놓은 조그마한 밭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는 것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봄과 함께 또 다른 희망을 품으며 행복을 찾아가는 도대리 사람들을 만나본다. ■헬릭스(AXN 밤 10시 50분) R층에 벡터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앨런에게 대니얼은 X층의 존재를 알린다. 그곳에 바이러스 보관실이 있고 나르빅의 개발자가 하타케라고 말한다. 앨런에게 추궁을 당하던 하타케는 자신은 그 바이러스를 사용할 의도가 없었으며 만일 다른 사람이 연구에 착수했다면 일라리아에 바이러스가 넘어갔을 거라고 털어놓는데….
  • BALI-홀로 발리에 갔소이다만

    BALI-홀로 발리에 갔소이다만

    쪽쪽, 틈날 때마다 입맞춤을 하는 허니무너들 틈바구니에 짝 없이 홀로 멀뚱거리는 한 여자. “그래요, 나에요.” 기내식까지 떠먹여 줄 건 뭐냐며 속으로 구시렁거려 봐야 소용없다. 적어도 발리 출장은 연인과 함께 보내 달라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같이 갈 남자가 없으니 한숨만. 여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캐리어를 끌고 발리 공항을 빠져나가면서 옹골차게 다짐했다. 까짓, 혼자라도 얼마든 우아하게 여행해 주겠어. 흥! Artistic Ubud 아티스틱 우붓 우붓을 걸었다. 발리 좀 여행해봤다 하는 사람들이 으레 우붓 이야기를 꺼냈더랬다. 그리고 말미에는 어김없이 “네가 정말 좋아할 만한 곳이야.” 염장을 돋웠다. 타인이 보는 내 취향과 우붓, 거기엔 어떤 접점이 있을까 스스로 물음표를 갖고 우붓으로 들어갔다. 우붓은 발리섬 한가운데 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숲과 허수아비 반가운 논이 펼쳐지는 마을. 처음엔 그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이 작은 마을을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19세기 후반 발리에서 꽤 영향력 있었던 한 영주의 지원으로 예술가들이 우붓을 찾기 시작해 자연스레 지금까지 전 세계 예술가들이 이곳 우붓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독특한 예술인 마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귀동냥을 했지만 글쎄…. 때로는 고요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붓의 중심은 몽키 포레스트Monkey Forest, 200마리 가까이의 원숭이가 사는 숲이다. 발리 사람들은 원숭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고 했다.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라마를 도와 시타를 구출하고 권선징악의 결말을 이끌며 ‘선’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발리 전통 예술의 하나인 바롱Barong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선악이 대결하는 상황에서도 장난스럽고 익살맞은 표정과 몸짓으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 반얀트리 나무 사이를 자유로이 뛰노는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과 인상이 겹친다. 몽키 포레스트 앞으로 난 길 양쪽으로 공예품, 그림, 패션 아이템, 먹을거리 등 특색 있는 상점들이 빼곡하게 몽키 포레스트 로드를 잇고 그와 나란한 방향으로 하노만 로드가 우붓을 하나로 엮는다. 상점들 대부분이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가게마다 간판이며 상품의 디자인, 색채, 디스플레이 등이 무척 다채로웠다. 골목 참 예쁘다 싶어 따라 들어가면 1~2만원에 발리식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스파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몇몇 골목을 기웃거리다 욕심이 생겨났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몽키 포레스트의 반대편, 우붓 맨 끄트머리로 향했다. 택시는 ‘아르마ARMA’ 앞에 섰다. ‘아궁라이 아트 뮤지엄Agug Rai Museum of Art’. 인도네시아의 특색을 담은 작품을 수집하는 유명 컬렉터 아궁라이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어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소문이 나 있다. 양쪽으로 커다란 나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면 전통 사원을 연상케 하는 공연장이 나타나고 그 무대 너머에 잘 가꾼 조각공원을 사이에 두고 발리와 인도네시아 회화를 중심으로 한 전통관과 조각, 설치 등 보다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는 현대관이 있다. 전통 복식을 한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전시실로 인도한다. 높은 천장, 바깥의 녹음을 병풍처럼 두른 너른 창문,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들이 영화 속에서 보았던 어느 귀족의 대저택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간간히 그 남자의 나직한 도움말이 이어졌고 나는 적당히 대꾸를 했다. 순수예술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낯선 여행지의 문화를 단숨에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빠르게 그 분위기를 흡입할 뿐이다. 느낌 아니까. 우붓에서의 마지막은 인도네시아의 1%, 발리 사람들의 일상 조금 더 가까이로 고개를 돌렸다. 이슬람교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단 1% 발리 사람들은 힌두교를 따른다. 발리 사람들은 그 1%의 문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집집마다 가족사원을 두고 매일 꽃과 음식을 가지런히 담은 야자나무 접시 차낭canang을 만들어 재물로 바친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정성들여 기도한다. 또한 마을마다 힌두교의 주요 신을 모신 세 개의 마을사원을 두어 신을 기쁘게 하는 춤, 음악, 회화 등의 활동을 통해 발리만의 공동체 문화를 지켜 가고 있다. 가족사원과 마을사원은 그 구성원이자 기도하는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기의 구역. 여행자들이 힌두문화를 접할 수 있는 사원은 공용사원뿐이다. 우붓 왕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붓 왕궁Ubud Kingdom은 엄연히 가족사원이지만 일반에 개방하여 우붓 왕가의 문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짧은 바지를 입었다면 입구에서 허리춤에 기다란 스카프 형태의 사롱을 둘러 단장을 해준다. 발리 사람들은 사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머리, 가슴, 다리로 구분한다. 머리는 신이 사는 신성한 세계, 가슴은 사람이 사는 세계, 다리는 귀신이 사는 세계라고. 그에 따라 발리에서는 사람의 머리를 만지는 일은 되도록 삼가고, 적어도 사원에 들어설 때 다리를 드러내는 옷차림은 피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발리의 명절은 발리 힌두력 사카Caka를 기준으로 매년 조금씩 날짜가 달라지는데 특히 설날 녜삐데이Nyepi day에는 모두가 일손을 멈추고 침묵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연의 빛 외에는 어떤 빛도 허용되지 않는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다. 기도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할 뿐 관공서도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토해내던 공항도 멈춘다고 했다. 그래, 때로는 고요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아궁라이 아트 뮤지엄ARMA, Agug Rai Museum of Art 주소 Jl. Pengosekan Ubud Gianyar 80571 Bali 찾아가기 몽키 포레스트에서 차로 5~10분 오픈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5만루피아(카페 아르마 음료 한 잔 포함) 문의 +62-361-976659 www.armabali.com Romantic Jimbaran 로맨틱 짐바란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훔치다 핫hot 또는 힙hip 하다는 메인스트림을 뒤로한 채 발리에서 나머지 여정을 푼 곳은 짐바란Jimbaran이다. 그중에서도 짐바란 해변 절벽 위의 림바 짐바란 발리는 발리를 찾는 여행객들이 반색하는 풀빌라 타입의 리조트 아야나 리조트 앤 스파 발리Ayana Resort & Spa Bali에서 새로 문을 연 호텔이다. 사실 나는 풀빌라에 익숙하지가 않다. 개인 수영장과 함께 리조트에 머물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최고급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고나 할까. 뭔가 외딴 섬에 뚝 떨어진 느낌이 든다.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너르고 너른 풀빌라 안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곤 했다. 나도 안다. 촌스러워서 그렇다는 걸. 어쨌거나 림바는 기존 아야나 리조트의 다양한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즐기면서도 객실은 보다 단출한 호텔 타입으로 여러모로 부담은 줄고 즐길 수 있는 꺼리들은 더욱 많아졌다. ‘스테이 림바, 엔조이 아야나Stay Rimba, Enjoy Ayana’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가장 기대가 된 것은 역시나 록바Rock Bar. 절벽 아래 자연 암석 위에 있는 말 그대로 바위 위의 칵테일 바이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며 가벼운 타파스와 다양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어 1~2시간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절벽 위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아야나와 림바 투숙객이라면 언제 가도 우선 입장할 수가 있다. 따라서 굳이 시내의 물 좋은 펍이나 바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도착하자마자 록바로 달려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호텔 로비에서 살짝 멈칫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폐어선 세 척을 해체해 얻은 목재를 재활용하여 호텔 곳곳을 단장했다는 소개가 따라온다. 리조트 단지를 통틀어 천여 명이 넘는 직원 가운데 딱 한 명의 한국인 호텔리어 저스틴Justin의 목소리다. 방 안에 짐을 던지듯 부려놓고 록바로 향하는 길에 운 좋게 그의 에스코트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엔 6시에서 6시30분 사이 이곳 선셋이 뭐라 말 할 수 없이 멋지거든요. 록바의 선셋도 물론 좋죠. 그런데 여기 림바 로비에서도 은은한 선셋을 감상할 수가 있어요. 로비의 앞뒤가 벽이나 유리 없이 트여 있죠? 로비 입구에서 노을 지는 반대쪽을 향해 서면 로비가 하나의 액자처럼 보여요. 날 좋은 날 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선셋은 정말 최곱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림바에서는 아침이면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더불어 하루 일과도 더 일찍 시작됐다. 물속에 들어가면 맥주병이 되어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도 수영장에 나가 물장난을 했다. 수영장에서 바라본 림바는 새로웠다. 로비 양쪽으로 객실이 있고 로비 아래로 레스토랑과 층층으로 연결되는 수영장이 이어지는데 맨 아래층의 수영장에서 호텔 로비를 올려다보면 푸른 바다를 향해 닻을 올린 배 모양이다. 림바는 인도네시아어로 숲이란 뜻이라 하니 발리의 푸르른 숲이 짐바란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린 모양새다. 또한 점심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아야나의 프라이빗 해변 쿠부 비치Kubu Beach와 함께 콘셉트가 다른 단지 곳곳의 수영장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발리 출신의 가이드와 함께 현지 시장과 사원을 방문하거나 인도네시아 요리를 배우는 쿠킹 클래스 등 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림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인도양을 바라보고 있는 바위 위의 스파시설 ‘스파 온더 록스Spa on the Rocks’와 인도양의 해수를 끌어올려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아쿠아토닉 해수 테라피 풀은 여행의 노곤함을 한꺼풀 벗겨 준다. 림바에서는 맛집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발리 전통 음식부터 스타 셰프들이 만들어 내는 메뉴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발리, 씨푸드 등 다양한 테마의 레스토랑이 각기 스타일에 걸맞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리하고 있어 맛있게 먹고 슬렁슬렁 정원 산책에 나서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림바 안에서 보내기만도 며칠이 부족할 만큼 충분했지만 떠날 시간은 다가오고 발리를 그냥 흘려 보내기엔 아쉬웠다. 한낮의 뜨거움이 가시기 시작할 무렵 림바 가까이 짐바란 해변으로 나섰다. 모래사장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바다, 한쪽은 갖가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나란히 들어선 해변은 발리의 대표적인 선셋 포인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사내아이들은 왁자지껄 마냥 신이 났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팬티 차림의 꼬마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가 막 키스를 하려는 커플을 빤히 쳐다본다. 엄마가 급히 아이 손을 잡고 렌즈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 장면 하나로 그곳에 있던 모두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그 사이 나직하게 깔린 수평선 너머로 하루 해가 저문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훔치며 여전히 무엇이 될지 모를 내 삶의 한 조각을 맞추어 간다. 림바 짐바란 발리rimba Jimbaran Bali 주소 Jalan Karang Mas Sejahtera Jimbaran, Bali 80364 Indonesia 객실 짐바란 베이, 힐 사이드, 짐바란베이 스위트, 풀억세스 등 총 4개 타입 비용 2인 1실 1박 조식 포함 기준, USD220부터 문의 +62-361-8468468 www.rimbajimbaran.com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인도네시아 관광청 www.tourismindonesia.com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www.garuda-indonesia.co.kr 림바 짐바란 발리 www.rimbajimbaran.com ▶travie info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으로 인도네시아 곳곳을 보다 편리하게 인도네시아 국영항공사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을 이용하면 인도네시아 여행이 훨씬 편리해진다. 인천-자카르타, 인천-발리 노선을 에어버스330 최신 기종으로 주 7회 운항하는 것은 물론, 인도네시아 각 지역을 오가는 국내선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매일 아침 출발하여 자카르타에 오후 3시45분, 발리에는 오후 5시에 도착한다. 특히, 세계 항공사 최초로 도입한 기내 입국 서비스 IBOImmigration On Board는 인도네시아 입국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법무부 직원이 기내에서 진행하여 입국심사에 대한 피로감과 시간을 대폭 줄여 준다. 현재 인천-자카르타 구간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조만간 인천-발리 구간에서도 시행될 예정이다. 단, 기내입국서비스는 인천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한 후 도착비자 발권 데스크에서 미화 25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영수증을 수령해야 이용 가능하다. 운항정보┃인천→발리 매일/ 11:05 출발 17:00 도착/ GA 871 발리→인천 매일/ 00:20 출발 08:25 도착/ GA 870 인천→자카르타 매일/ 10:35 출발 15:45 도착/ GA 879 자카르타→인천 매일/ 23:30 출발 08:30(+1일) 도착/ GA 878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 아파트(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 아파트(중)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만든 ‘아파트 공화국’의 흑역사 풍수학자 최창조(전 서울대 교수)가 “이제 모든 국토는 도시다”라고 선언하자 사회학자 전상인(서울대 교수)은 “사실인즉 우리나라 모든 도시는 아파트이고 따라서 모든 국토가 곧 아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화답했다. 산비탈과 논두렁, 밭두렁 일색이던 우리 땅이 ‘아파트 천지’로 변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의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경관은 산이나 강이 아니라 아파트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에서 ‘상전금지’(桑田地)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좋든 싫든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 출신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 두 대통령의 의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작금의 아파트공화국은 박정희·전두환의 의지와 그를 맹신하는 추종자들이 내놓은 합작품이다. 박정희가 기획하고 전두환이 연출했다. 박정희가 ‘아파트지구 지정’을 통해 서울 강남을 아파트 숲으로 변하게 했다면 전두환은 ‘택지개발촉진법’으로 대한민국을 아파트 밀림으로 만들었다. 아파트 발전사와 주거사회학, 아파트 문화사를 두루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주거혁명은 5·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에 오른 1961년 시작돼 5~9대 대통령을 지내고 1979년 10·26사건으로 시해된 18년 동안 진행됐다. 그의 경제이데올로기는 ‘건설입국’(建設入國)이었고 그에 편승해 아파트는 지배적 주거 형태로 등극했다. 보릿고개에서 막 벗어난 신생 대한민국의 목표가 ‘먹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전환된 시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독재자의 선택이었다. 관계 당국의 조건 없는 정책지원과 아파트 건설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수직 폭발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의식주생활은 너무나도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이 많았음은 주지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생활혁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가 있으며 현대적 시설을 완전히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은 이러한 생활혁명을 가져오는 데 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인구의 과도한 도시집중화는 주택난과 더불어 택지가격의 앙등을 가져오는 것이 오늘의 필연적인 추세인 만큼 이의 해결을 위해선 앞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이러한 고층아파트 주택의 건립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바입니다.” 1962년 국내 최초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치사 중 일부다. 박정희의 ‘생활혁명론’은 앞으로 집권기간 동안 그침 없이 추진될 ‘아파트 입국’의 미래를 웅변한다. 육사 8기생으로 혁명주체세력의 한 명이었으며 대한주택공사(지금의 LH) 총재를 두 번 지낸 장동운이 아파트 전도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동운은 미국 군사학교 유학시절 잡지에서 본 대단지 아파트 사진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뭔가 새로운 것’을 찾던 김종필 등 혁명세력에 알렸다. 아파트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빈민굴’이라는 인식 탓에 그의 추진력과 혁명세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마포아파트 부지 확보와 건설자금 마련 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장동운은 두 번째 주공 총재 임기 중이던 1968년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라는 우리나라 아파트건설사에 획을 긋는 대표 작품을 남겼다. 일본신문 광고의 80%를 주택광고가 차지하는 것을 보고 중산층 아파트의 성공을 확신했다고 한다. 사상 첫 모델하우스의 등장과 아파트 분양제도의 도입이라는 신기원을 기록했다. 이후 현대건설 등 민간 건설사들이 뛰어들면서 아파트 건설시장은 비등점을 향해 치달았다. 1994년 폭파된 남산 외인아파트도 장동운의 작품이었다. 1970년 박정희에게 외국인 바이어 거주용 아파트의 필요성을 건의하자 박정희는 지도 위에 한남동 외인주택에서 남산공원까지 줄을 쫙 그으면서 “이 선 안쪽으로 아파트를 세우시오”라고 분부했다는 것이다. 남산 중턱에 16층, 17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2개 동 450가구가 들어섰다. 남산 하얏트호텔(지금의 그랜드하얏트서울)은 어부지리로 생겼다. 1972년 외인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가 건물 옥상에 설치된 대피용 헬기 포트를 시찰하다 눈에 거슬리는 군사시설이 보이자 “철거하고 호텔을 지으라”고 지시한 것이 하얏트호텔의 탄생 비화이다. 개발연대 남산에는 ‘3대 흉물’이 있었다. 외인아파트와 남산맨션, 하얏트호텔이 그것이다. 외인아파트는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으로 사라졌지만, 남산을 병풍처럼 막아선 하얏트와 남산맨션은 건재하다. ●김현옥·양택식·구자춘 3인 ‘아파트 도시’ 밑그림 혁명세력을 등에 업은 주공이 마포아파트와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의 성공으로 서울에 아파트의 싹을 틔웠다면 꽃은 세 명의 서울시장이 피웠다. 주공은 주공아파트, 서울시는 시민·시범·시영아파트로 독재자의 입맛을 돋웠다. 박정희의 전폭적 신임을 바탕으로 서울에 건설바람을 일으킨 김현옥(1966~1970), 양택식(~1974), 구자춘(~1978) 등 세 명의 시장이 재임한 12년 동안 ‘아파트 도시’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김현옥의 시민아파트, 양택식의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잠실주공아파트, 구자춘의 반포아파트가 대표적이다. 김현옥은 판잣집을 철거하고 철거민을 근교로 집단이전시킨 뒤 철거 터에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와 1971년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한강변을 아파트 택지로 조성했다. 한강상류에 소양강댐이 건설돼 물난리 걱정이 사라지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으로 강북지역에 대한 안보불안감이 높아진 게 일조했다. 양택식은 김현옥이 벌려 놓은 난제를 꼼꼼히 처리했다. 여의도개발과 시범아파트의 분양 성공은 서울시의 만성적인 재정난을 타개했을 뿐 아니라 아파트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시켰다. 구자춘의 뚝심이 강남을 아파트로 뒤덮게 했다. 1975년 3월 4일 서울시 연두 순시에서 박정희는 강북 인구의 강남 분산을 지시했다. “영동이나 잠실을 막연하게 개발하는 것은 서울시의 인구증가 정책밖에 안 된다. 획기적인 방안을 내놔라”라는 것이었다. 구자춘은 시내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터미널을 반포로 옮기고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할 것을 결심한다. 관료 출신으로 매사 신중했던 양택식과 달리 군 출신인 김현옥, 구자춘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외에 상전이 없는 듯 행동했다. 관계부처 장관과의 협의나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관련 절차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허벌판’ 강남을 아파트지구로 지정하는 일도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권력자의 지시를 받은 지 1년여 후인 1976년 7월 5일 구자춘은 천호대교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를 구획정리가 한창인 영동지구로 안내한 자리에서 아파트지구 지정계획을 보고했다. 개인의 건축허가 행위가 금지되고 아파트만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설명이 끝나자 대통령은 아파트지구 지정계획이 그려진 도면 위에 특유의 사인을 했다. 이른바 윤허였다. 이때 반포·압구정·청담·도곡·이수·잠실·이촌·서빙고·원효·여의도·화곡 등 11개 지구 236만평이 아파트지구로 지정됐다. 개인의 재산권 침해에 대해 누구도 가타부타할 수 없었고 나머지는 통과의례였다. 10여년 후 11개 지구에는 680개동 5만 가구분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강남은 아파트 쑥대밭이 됐다. ●탈아파트 시대 성큼…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박정희의 시대가 지고 전두환의 시대가 왔다. 박정희와 추종자들의 아파트 입국 노력은 1980년대 전두환 시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서슬 퍼런 국보위를 통해 주택 500만호 건설이라는 경천동지할 공약을 내놓았다. 1981년부터 10년간 3조 6000억원을 투입해 아파트 151만호 등 주택 500만호를 짓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존재하던 대한민국 주택의 총량이 500만호였으니 그 배포를 짐작할 만하다. 공약을 시행하는 수단인 택지개발촉진법이 1981년 시행됐다. 전두환·노태우 시대를 관통한 아파트를 위한, 아파트에 의한, 아파트의 시대가 막이 올랐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택지개발촉진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정 공포된 6000여개의 법률 중 가장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법률”이라고 평가했다. 택지개발예정지구라는 이름으로 어떤 땅이나 수용해 택지로 개발할 수 있고, 다른 법과 처분의 적용이 일체 배제되는 법이다. 이후 20년 동안 1억 1380만평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다. 이 시기 남아 있던 모든 녹지는 택지로 변했다. 개포·고덕·목동·상계·중계지구가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신도시가 건설된 것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전두환의 ‘주택 500만호 건설’과 노태우의 ‘주택 200만호 건설’ 공약에서 ‘주택’이란 아파트의 다른 이름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예의 ‘아파트 해법’으로 주택수요를 충족시켰다. 나아가 부의 축적과 차별적 지위를 제공함으로써 중산층의 욕망을 채워줬다. 아파트 건설 업체들도 재벌그룹으로 성장하도록 배를 불렸다. 그 결과 우리나라 주택 열 채 중 여섯 채가 아파트로 둔갑했다. 고밀도 초고층 아파트 덕분에 2008년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집 부족에서 벗어나는 대역사가 이룩된 셈이다. 아파트는 고질적인 주거문제를 해결했지만 저출산·고령화와 나홀로 가구의 증가 등 산적한 문제 앞에 노출돼 있다.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선임기자 joo@seoul.co.kr
  • 실속 내 집 마련, 초록빛 지상 낙원 ‘테라스하우스’ 누려라

    실속 내 집 마련, 초록빛 지상 낙원 ‘테라스하우스’ 누려라

    봄 이사철을 맞아 한숨 쉬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삐 풀린 전셋값 상승세에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린 상황에서 전세매물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부동산전문가는 “최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며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것이 집값보다 비싼 이른바 깡통전세까지도 늘어나면서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사례가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은 수도권 아파트들이다. 서울 지역 전셋값 수준으로 새 집 장만이 가능한 데다 최근 주거트렌드인 ‘힐링’과 ‘친환경’이라는 측면에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수요의 매수전환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서울지역에서 인근 수도권 지역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지역에 비해 가격 부담이 덜하고 교통여건까지 편리한 이른바 알짜 미분양 단지들이 속속 팔려나가면서 일대 부동산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친환경 주거지로 떠오른 남양주시에서는 ‘호평파라곤’ 테라스 하우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배산임수 명당인 남양주 호평동 천마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이 아파트는 지하 3층 지상 15~20층, 25개 동, 전용면적 84~281㎡형으로 1275가구의 유럽형 대단지로 설계됐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은 대규모 녹지다. 슬로 시티(Slow city)를 표방하는 남양주의 대표적인 명산 천마산이 호평 파라곤을 초록빛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 단지의 실제 녹지비율은 무려 48%에 이른다. 여기에 단지 곳곳에 주변 자연지형들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감각의 조경시설들이 배치됐으며, 주차시설도 모두 지하로 배치해 지상을 공원화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기대할 수 있다. 탁월한 교통망도 강점으로 꼽힌다. 경춘선복선전철 호평평내역을 이용하면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봉역까지 20분대에 도달 가능하며, 또한 수서~호평 간 도시고속도로로 서울 강남과 강북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경춘고속도로, 호평 IC 등 교통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분양관계자는 “강남권 진입이 30분대로 서울 접근성이 탁월하고, 친환경적인 입지조건과 대형 커뮤니티시설 등을 갖춰 실속형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며 “착한 분양가의 실속 내 집 마련 기회로 주목되면서 현재 일부 대형 평형대 잔여물량만이 남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남양주 호평파라곤은 84㎡형 258가구, 115㎡형 150가구, 127㎡형 118가구, 159㎡형 364가구, 182㎡형 330가구와 테라스하우스 225㎡형 15가구, 281㎡형 40가구로 구성돼 있다. 분양문의: 031-590-7300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여기는 태평양에 뜬 절해고도. TV 일기예보에서나 간간이 들었던 ‘남해 동부 먼바다’에 속한 섬이다. 바다 건너온 봄이 가장 먼저 온기를 풀어놓는 곳, 전남 여수의 거문도다. 섬 주변 절벽엔 벌써 수선화가 곱게 피었고, 섬집 돌담엔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피보다 붉은 동백도 여기저기서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처럼 섬은 때론 거칠게, 때론 보드랍게 꽃을 어루만지며 애면글면 봄을 틔워내고 있다. 여기에 39개 섬들이 웅장하게 늘어선 백도까지 묶어 돌아본다면 봄날의 여정은 더없이 풍성해질 터다.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114.7㎞쯤 떨어져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고도가 가장 번화하다. 여객선 선착장과 면사무소 등 주요 시설이 밀집돼 있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반면 동도는 서도선착장에서 도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동도와 서도를 잇는 연도교는 올 연말께 개통될 예정이다. 거문도는 종종 백도를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거문도관광여행사의 최민기 가이드는 “거문도 방문객의 90% 정도가 백도와 거문도 등대 정도만 ‘찍고’ 돌아간다”고 했다. 한데 이거 단단히 잘못됐다. 거문도에서 ‘기와집몰랑’(175m)과 녹산곶을 빼면 ‘팥소 빠진 찐빵’과 다름없다. 보통 배 시간에 맞추느라 두 곳 모두 건너뛰기 십상인데, 아침 잠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둘러보길 권한다. 거문도에서 가장 이름난 볼거리는 거문도 등대다. 거문항 선착장을 기준으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로봉(170m)과 수월산(128m) 아래로 난 약 4㎞ 길이의 산책로, 혹은 덕촌마을에서 불탄봉(195m) 방향으로 올라 약 5㎞ 길이의 기와집몰랑길을 따라간다. 산책로는 왕복 두 시간, 기와집몰랑길은 세 시간쯤 걸린다. 두 길은 무넹이(목넘어)에서 합쳐진 뒤 거문도 등대까지 줄곧 함께 간다. 대개의 여행객들은 산책로를 선호한다. 걷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와집몰랑길은 거칠고 남성적이다. 야트막한 산을 올라야 하는 게 다소 힘들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기와집몰랑길을 외면하지는 말길. 능선 위에서 맞는 장쾌한 풍경을 놓친다면 이는 명백한 손해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사투리다. 풀자면 기와집 형태의 산마루란 뜻이다. 능선에서 보면 그저 해안절벽이지만, 바다에서는 장대한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불탄봉과 보로봉을 거쳐 가는 기와집몰랑길은 정비가 잘돼 있다. 박석 깔린 능선길을 걷다 보면 바다 위에 선 듯한 느낌도 든다. 길옆 ‘비렁’(벼랑의 사투리) 아래로는 바다가 쉼 없이 넘실댄다. 비렁과 몰랑이 반복되는 길, 이게 기와집몰랑의 본질이다. 능선 너머로는 웅장한 해안 절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거문도 등대가 서 있는 수월산 쪽 해안 풍광은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올 정도다. 기와집몰랑의 끝은 무넹이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잇고 있는 낮은 갯바위지대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 이름도 무넹이에서 비롯됐다. 수월산 끝은 거문도 등대다. 1905년 남해안에선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등대 끝의 관백정(觀白亭)은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의 정자다. 정자 아래 단애에는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피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거문도 남쪽에 수월산이 있다면 북쪽엔 녹산곶이 있다. 근육질의 수월산에 견줘 녹산곶은 한결 여성적이다. 바다를 향해 부드럽게 펼쳐진 능선이 일품이다. 여인의 삼단 머릿결 같은 잡초들은 바람 불 때마다 일어선다. 곶부리를 둘러싼 바다는 파랗다. 하늘빛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위에 녹산등대가 촛대처럼 서 있다. 이 같은 풍경에서 ‘신지끼’ 전설이 싹 튼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신지끼는 상체는 여인,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섬사람들은 신지끼를 섬의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큰 풍랑이 일어나기 전날 어김없이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져 이를 알렸기 때문이다. 신지끼가 출몰했다는 신지끼여(수중바위)는 원래 녹산등대 맞은 편에 있다. 하지만 실제 신지끼 조각상이 세워진 곳은 녹산곶 아래의 야트막한 언덕이다. ‘인어해양공원’이라는 거창한 명칭 대신 ‘신지끼 언덕’이란 소박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신지끼 조각상은 서구형 미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 소라 귀걸이와 조개 머리핀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오른손엔 예의 돌을 든 채 초승달을 타고 앉았다. 영화 ‘인어공주’의 외모와 빼닮았다. 1885년(고종 22) ‘거문도 사건’을 일으킨 영국군이 섬에 주둔한 이후 생긴 전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배꼽 바로 아래부터 물고기 비늘이 시작되는데 지나치게 육감적이다. 이쯤 되면 성적 매력이 ‘메릴린 먼로급’이다. 거문도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백도(국가명승 7호) 유람이다. 거문도에서 28㎞ 떨어진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 등 39개 섬들로 이뤄진 무인군도다. 매바위, 병풍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거문도엔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영국 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봉쇄한다며 1885~1887년 사이 약 2년 동안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이다. 당시 거문도는 ‘해밀턴 항구’로 불렸다고 한다. 거문초등학교 옆 돌담길을 따라 우리나라 최초로 생겼다는 ‘해밀턴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글 사진 거문도(여수)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여수여객선터미널(663-0116)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7시 40분, 오후 1시 40분) 거문도행 여객선이 출항한다.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 등을 들러 거문도 고도까지 간다. 2시간 20분 소요. 배삯은 편도 3만 6600원이다. 고흥 녹동항에서도 거문도까지 여객선이 운항한다. 녹산등대의 들머리인 장촌마을까지는 택시나 자전거를 이용해 가는 게 낫다. 거문항에서 6㎞쯤 떨어져 있어 걸어서 오가기는 다소 멀다. 택시는 고도에서 녹산곶까지 왕복하는 데 4만원이다. 승합차량이기 때문에 여럿이 돈을 추렴해 이용할 수도 있다. 자전거는 1시간에 4000원, 하루 2만원이다. 대여점은 고도에 있다. 거문도등대에서 녹산등대까지 거문도 종주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거리는 8㎞가 채 안 되지만 족히 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백도는 오가는 데 2시간 이상 소요된다. 배삯은 2만 9000원. 거문도관광여행사(www.geomundo.co.kr)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도 좋겠다. KTX 등 교통편과 숙식, 그리고 거문도 종주코스와 기와집몰랑코스, 백도관람 등이 포함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665-7788. →잘 곳 삼산면사무소(659-1257)가 있는 고도에 모텔과 민박 등이 몰려 있다. 거문도 등대(666-0906)에서도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이용 신청은 희망일 2주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yeosu.mof.go.kr)에서 받는다. →맛집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감성돔, 참돔 등은 6만원, 삼치는 1㎏에 4만원 정도 받는다. 모둠해물은 5만원 선. 무엇보다 곁반찬이 ‘감동’이다. 개상어 회무침, 문어숙회, 돌낙지, 군소 숙회, 뿔소라 등 도회지에선 맛보기 힘든 음식들이 곁들여진다. 섬마을식당(666-8111), 충청도횟집(665-1986) 등이 알려졌다. 섬마을 식당은 아침에도 문을 연다. 각종 해산물과 나물이 곁들여진 아침상이 소박하고 맛있다.
  • 볼수록 정감 가는 우리 도자기와 항아리가 창고에만 갇혀 있어서야…

    볼수록 정감 가는 우리 도자기와 항아리가 창고에만 갇혀 있어서야…

    “소박하면서도 볼수록 정감이 가는 생김새가 옛 우리 도자기의 매력이죠. 일부 외국인 소장자들은 이런 고미술품을 창고 한편에 쌓아 놓아 사장시키곤 합니다. 이런 작품들을 경매에 내놓도록 설득해 세상에 존재를 알리는 게 제 몫이죠.” 1996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티 경매장. 다섯 발가락을 지닌 용이 그려진 조선시대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는 한국 고미술품 사상 최고가인 841만 7500달러(약 90억 4400만원)에 낙찰됐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황제나 왕을 상징한다. 조선 숙종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용문청화백자가 2012년 321만 8500달러(약 34억 5800만원)에 팔렸으나 이 기록을 뛰어넘진 못했다. 작품들은 모두 일본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더비와 함께 세계 양대 경매사로 불리는 크리스티에는 한국인 고미술 전문가가 몸담고 있다. 1991년 입사한 김혜겸 부사장이다. 한 우물을 파 온 그는 이런 굵직한 경매를 수없이 성사시켰다. 교과서나 해외 박물관 도록에서나 볼 수 있던 화려한 미술품들이다. 오는 18일 뉴욕에서 열리는 봄철 한국 고미술 경매에 앞서 한국에 머물던 김 부사장을 프리뷰 전시가 마련된 서울 중구 소공동 신세계갤러리에서 만났다. 크리스티는 봄가을에 걸쳐 1년에 두 차례 한국 고미술 경매를 연다. 그는 “한국인들이 전통 미술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대여 전시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보고 미국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이런 전시가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귀국 후 가장 먼저 삼성 리움미술관으로 달려가 ‘달항아리’부터 봤다고 했다. “어려서 (외교관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집에 한·중·일 미술품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미술에 눈을 떴죠.” 미국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현재 한국 고미술에 가장 조예가 깊은 해외 전문가로 통한다. 교수, 큐레이터 등 100여명의 두터운 인맥도 갖고 있다. 크리스티의 이번 경매에는 청화백자십장생항아리와 화각함, 10폭 병풍 등 135점의 ‘로버트 무어 컬렉션’을 비롯해 한국 고미술품 170여점이 출품된다. 그는 고미술품 경매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해외에선 개인 소장자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품을 대여 전시하는 게 관행”이라며 “경매를 통해 잊힌 작품을 발굴하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美 뉴욕서 행인 50명 ‘병풍’ 속 길거리 출산 ‘기적’

    美 뉴욕서 행인 50명 ‘병풍’ 속 길거리 출산 ‘기적’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한 영국인 산모가 노상에서 아이를 낳아 화제다. 26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사는 폴리 맥코트(39·여)는 지난 24일 오후 4시께 산기를 느껴 이스트 68번 스트리트와 3번 애비뉴에 있는 집 근처 병원으로 가려다 길거리에서 건강한 아기를 분만했다. 집 근처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맥코트는 아기가 나올 것 같아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50여명의 행인이 몰려들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맥코트가 택시 잡는 것을 도와주던 아파트의 수위 안톤 루도빅은 “별일 없어 보였는데 맥코트가 비명을 질러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지금 여기서 아기를 낳을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나가던 한 의사는 맥코트에게 다가가 경과를 지켜봤고 행인들은 코트를 벗어 산모의 몸을 가려줬다. 몇 분 후에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아기가 태어난 뒤였다. 맥코트의 남편 시안(40)은 “정상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다”면서 “아내가 정말로 침착했고 강한 모습을 보여줘 예쁜 딸을 얻게 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안은 코트를 벗어주고 분만을 도와준 뒤 사라진 이사벨이라는 행인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이사벨의 이름을 따서 ‘일라 이사벨 맥코트’로 지었다”고 밝혔다. 행인들은 모든 일이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왕이 쓰던 접이식 의자 처음 경매에

    18~19세기 조선의 왕이 앉던 ‘접이식 나무 의자’가 처음으로 경매에 나온다. 조선시대 왕실 가구 중 현재까지 공개된 접이식 의자는 국립고궁박물관의 ‘용교의’(龍交椅)와 경기도박물관의 ‘권교의’(圈交椅·보물 930호) 단 두 점뿐이다. 고미술품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다음 달 13일 열리는 경매를 앞두고 ‘용교의’로 추정되는 접이식 의자 등 144점을 26일 공개했다. 회사 관계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왕실 후손이 오랜 기간 갖고 있던 것으로, 당시 왕에게만 허락됐던 주칠을 사용해 장식한 것이 특징”이라며 “감정에서 ‘용교의’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경매될 예정인 ‘용교의’는 등받이에 둥근 여의주를 감싸는 용 한 쌍이 조각돼 있고, 용들은 왕을 상징하는 네 개의 발톱을 갖고 있다. 손잡이 부분과 등판에는 금칠 흔적이 남아 있고, 앉는 부분은 호피로 덮여 있다. 등받이가 둥근 곡선의 활 모양을 띠고 손잡이와 한 몸을 이루는 것도 눈에 띈다. 의자는 앞뒤쪽 다리가 교차해 접고 펴는 것을 편리하게 했다. 용교의는 현재 순조실록과 고궁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을 통해서만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이 용교의의 경매 추정가를 5억원으로 잡고 있다. 이번 경매에는 같은 소장자가 갖고 있는 조선시대의 10폭 병풍인 ‘요지연도’(瑤池宴圖)도 나온다. 경매 추정가는 6억원 선. 아울러 심사정의 ‘수하선인도’(樹下仙人圖·경매 추정가 8000만∼1억 2000만원),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3500만∼5000만원) 등 다른 조선시대 그림들도 출품된다. 1971년 발간된 시조집 ‘거북선’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추정가 2500만∼4000만원)와 박 전 대통령이 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면서 쓴 입당 원서(200만∼500만원), 이토 히로부미가 1885년 무렵 쓴 글 ‘일출’(日出)의 마지막 단락(250만∼350만원) 등도 경매에 나온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여보게, 마실길 따라 봄마중 가세

    여보게, 마실길 따라 봄마중 가세

    ‘서해가 아름다운 이유는 변산이 있기 때문’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변산반도의 해안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고사포, 변산 등 고운 모래로 명자깨나 날리는 해수욕장과 곰소만 등 풍요로운 갯벌, 그리고 채석강 등 기암절벽이 전북 부안의 해안을 따라 그럴싸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 같은 풍경의 보석들을 하나로 꿰고 가는 길이 있다. ‘변산마실길’이다. 올레길 등에 견줘 이름값은 떨어지지만 알음알음 찾는 사람들이 한 해 100만명을 넘는다는 길이다. ‘변산마실길’은 모두 9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조개미 패총길 새만금전시관~송포 5㎞)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 송포~성천 6㎞) ▲3코스(적벽강 노을길 성천~격포항 7㎞) ▲4코스(해넘이 솔섬길 격포항~솔섬 5㎞)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 솔섬~모항갯벌체험장 9㎞) ▲6코스(쌍계재 아홉구비길 모항갯벌체험장~왕포 11㎞) ▲7코스(곰소 소금밭길 왕포~곰소염전 12㎞)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 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 ▲해안누리길(새만금방조제~격포항 18㎞)이다. 코스에 번호가 부여됐다 뿐이지 들머리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순서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2~4코스다. 특히 3코스가 인기 높다. 걷는 구간의 풍경이 빼어나서다. 3코스만 걷기엔 다소 짧아 앞뒤 구간을 이어 걷는 이들도 많다. 길 나서기 전에 물이 들고 나는 시간도 확인해 둬야 한다. 특히 3코스의 핵심 볼거리인 채석강의 경우 들물 때면 접근할 수 없어 뒤편의 닭이봉으로 돌아가야 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외지인이 물때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변산반도에 든 시간이 날물 때라면 격포항을 들머리 삼아 코스를 되짚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채석강을 직접 답사할 수 있는 바닷길은 날물 때 하루 두 번밖에 열리지 않으니 말이다. 격포항 바로 옆은 채석강이다.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층을 이룬 절벽이 꼭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곳이다. 대명리조트 변산을 크게 돌아 만나는 적벽강(赤壁江)도 빼어나다.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해안절벽이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았다는 적벽강과 닮았다 해서 같은 이름을 얻었다. 해질녘엔 더 아름답다. 붉은빛을 띤 벼랑 위로 노을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적벽강 노을길’이란 코스 이름도 이 풍경에서 비롯됐을 터다. 길은 줄곧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간다. 숨이 턱까지 차는 된비알도 없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뿐이다. 길 위엔 낙엽이 켜켜이 쌓였다. 걸을 때마다 푹신한 느낌이 든다. 동네 뒷산을 산책한들 이보다 편할까 싶다. 다만 곳곳에 들어찬 모텔 등 숙박시설과 어류 양식장 등을 휘휘 돌아가야 할 때면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반월마을 고샅길은 제법 시원한 풍경 전망대다. 하섬과 누에섬, 위도, 고군산군도 등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 하섬 주변은 매달 보름과 그믐날 전후 2~3일 동안 바닷물이 갈라진다. 물 빠진 바닷길을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코스 끝자락은 성천이다. 순서대로 돈다면 3코스 들머리 노릇을 하는 갯가 마을이다. 고사포해수욕장의 끝자락에 웅크린 성천포구의 자태가 안온하고 정겹다. 이 길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볼거리 세 곳만 덧붙이자. 곰소만은 부안의 ‘버킷 리스트’다. 바다 위로 평야가 펼쳐진 듯, 너른 갯벌이 인상적인 곳이다. 변산마실길 7코스에 해당된다. 외변산 해안도로를 따라 초봄의 훈풍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노을이 내려앉을 때도, 여명이 밝을 때도 늘 찬란한 풍경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이다. 새만금 방조제는 최근 부쩍 이름값이 높아진 곳. 33.9㎞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방조제 안쪽 새만금 간척지의 크기는 프랑스 파리의 5배에 이른다고 한다. 솔섬은 해질녘 풍경이 빼어난 곳. 동틀 무렵 풍경도 못지않다. 격포항에서 차로 10분 남짓 거리다. 글 사진 부안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63)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변산, 혹은 호남고속도로→태인나들목→30번 국도→변산 순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나들목으로 나와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내려가는 것도 좋다. 변산반도국립공원 사무소 582-7808, 격포분소 583-2064. →잘 곳 대명리조트 변산이 첫손 꼽힌다. 격포항 인근 해안가 절벽 위에 터를 잡고 있어 조망이 빼어나다. 이 덕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장 일몰이 아름다운 명소’다운 해돋이를 방 안에서 감상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콘도와 호텔로 나뉘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과 개별 여행자 모두 이용할 수 있다. 1588-4888. 격포 쪽에 모텔과 펜션, 민박 등이 몰려 있다. 한적한 곳을 찾는다면 곰소만 일대 펜션이 제격이다. →맛집 곰소 염전 주변에 젓갈정식을 맛깔스럽게 내는 집들이 많다. 군산 쪽에서 간다면 복성루(445-8412) 짬뽕은 반드시 맛봐야 한다.
  • [열린세상] 한국정치에 대한 김연아의 교훈/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한국정치에 대한 김연아의 교훈/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소치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예상보다 성적은 낮았지만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힘들고 어려운 훈련을 견뎌 낸 모든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금메달에만 열광해 온 경향을 보인 우리 국민들이 이번 올림픽에서는 출전한 모든 선수들을 격려하는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도 좋았다. 국민들이 아쉬워했던 김연아 선수의 판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 선수의 쿨한 모습은 우리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의 텃세에 분노한 국민들의 감정적 대응에 대해 스물네 살 젊은 선수의 입장표명은 매우 인상적이다. 경기 후 그는‘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이 갔다고 생각하자, 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난 그의 메달 색보다 억울함에 대한 그의 어른스러운 대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1년을 넘긴 오늘에도 여전히 대선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등 일부 종교계와 시민단체 인사들, 그리고 야권의 일부 정치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한 대선 불복이었나. 그들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댓글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선거과정에 개입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영향에 상관없이 지난 대선이 불법이고 그에 의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주장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려면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도 대선 불복을 주장했어야 한다. 당시 대선 과정에서 현재의 야권은 병풍사건과 기양산업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 등을 조작해 사실상 대선 결과를 뒤집었고 관련자들은 두 대통령의 임기 중에 모두 불법으로 확정돼 처벌받았다. 그럼에도 현재 불법성을 근거로 박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 중 누구도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에 대한 대선 불복을 주장한 바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어쩌면 이렇게도 편파적인가. 이에 비하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김연아의 태도는 큰 아쉬움을 보인 국민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인 신사의 태도다. 한 술 더 떠서 만일 김연아가 “러시아가 메달이 많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전 그동안 많은 메달을 받았으니 원하신다면 은메달도 가져가시지요. 전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어요. 국민여러분, 성원에 감사하지만 더 이상의 판정불복은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세계의 여론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국민들 스스로 소치가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제로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됐다. 지난 1년간 정치권은 목소리를 높여 서로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막말을 해대면서 국민들에게 자기들만이 옳다고 지지를 호소해 왔다. 합의보다 극단적 대치만을 보이는 정치권을 보면서 국민의 마음은 어디로 향했을까. 상대방은 모두 잘못되고 나만 옳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정치권에 대해 정말 그들이 옳다고 생각을 했을까. 우리 정치권에는 고착화된 행동패턴이 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항상 반성문을 쓰고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께 봉사하는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맹세한다. 선거가 끝나면 맹세는 어디 가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비판을 넘은 비난으로 일관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한다. 일만 생기면 특위나 특검을 하자고 서로 싸운다. 그러다 보면 항상 시간이 부족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한꺼번에 처리해 버린다. 여름이 되면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 해외로 출장 겸 여행을 한다. 이런 그들에게 ‘국민’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필요할 때 입에 올리는 단어에 불과하다. 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논평을 해 온 필자는 우리 정치권이 항상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타협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밝히는 협력의 과정이어야 한다. 일시적 인기에 영합하거나 득표를 위해 국민을 속이는 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유일 낙화장 김영조씨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유일 낙화장 김영조씨

    우리 전통 화법 중에 ‘낙화’(畵)라는 것이 있다. 화선지, 나무, 천, 가죽 등의 재료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글씨와 문양을 그려 넣는다. 붓이 아닌 인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회화와 공예의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러 그 맥을 잇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면서 일반인들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낙화를 그리려면 고도의 수련과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따라서 끊임없는 장인정신으로 달궈진 예술 혼이 아니면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무한한 인내와 끊임없는 정진이 요구된다.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보은읍 대야리, 25번 국도를 따라 속리산 방향으로 가다가 누청삼거리 부근에 버섯 모양의 집 두 동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었다. 한 집은 ‘청목화랑’이고 다른 한 집은 ‘낙화 체험장’이다. 먼저 ‘청목화랑’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8m 길이의 12폭 병풍 ‘낙화강산무진도’(畵江山無盡圖)가 떡하니 진열돼 있었다.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인문(李寅文)의 ‘강산무진도’를 전통 낙화 기법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인문은 단원 김홍도와 함께 정조, 순조 때를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작품인 ‘강산무진도’는 조선 회화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대 걸작 중의 하나다. ‘어떻게 이런 대작을 인두로 다 그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몇 발자국 옮기자 종이가 아닌 나무에 직접 그린 ‘신선암 마애보살상’이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낙화산수도, 사군자, 연과 버들 등 여러 그림들이 앙증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합해서 모두 100여점이다. 김영조(64)씨는 국내 유일의 전통 낙화장인(충북 무형문화재 제22호)이다. 22세 때 낙화에 입문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전통 낙화의 맥을 계속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42년째 낙화 인생의 길을 오롯이 걸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일까. 그가 오는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아솔로 비엔날레에 참가해 한국 낙화의 전통미를 한껏 알릴 예정이다. 그토록 소망했던 우리의 전통 낙화가 처음으로 외국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하여 김씨는 어느 때보다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화랑 옆에 있는 작업실에서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 예술도시 아솔로에서 5월 한 달간 열립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직위원회에서 초청하는 전문작가들만 참가한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낙화가 그들과 함께 세계에 알려진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는 아솔로 비엔날레에 애지중지 여기는 작품 7점을 엄선해 전시할 예정이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낙화 기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까지 시연할 예정이다. 그가 아솔로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지난해 9월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에 참가한 이탈리아 작가와 에이전시들이 전시된 낙화와 대작을 시연하는 김씨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그를 초청했다. 불에 달군 인두로 그려도 타지 않고, 특유의 원근법으로 살아 있는 산수화를 잘 표현해내는 것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낙화는 중국과 한국에만 있는데 특히 한국의 낙화를 더 알아줍니다. 예술성이 높아 회화의 한 장르로 인식되고 있지요. 이번 아솔로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적인 낙화 예술이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겠습니다.” 낙화 전수자인 그의 딸 유진씨도 동행해 비엔날레 현장에서 함께 시연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낙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그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 초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면서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등에 낙화와 관련해 1598년에 태어난 정부인 장씨를 언급하고 있어 문헌상으로는 400년 역사로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1822년쯤 밀양 박씨 박창규가 임금님 앞에 가서 시연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으며 당시 장안 양반집에 낙화 그림이 한 점씩은 대부분 있었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습니다.” 김씨의 스승은 일제강점기 때 활발히 활동했던 운포 백학기와 설봉 최성수의 계보를 잇는 전원 전창진이다. 전원은 1972년 서울 종로에서 한국낙화연구소를 차려 낙화를 가르치며 작품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출판업으로 전향했다. 당시 전원의 제자가 여러 명 있었으나 김씨가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맥을 잇고 있다. 김씨는 1950년 충남 부여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충북의 천도교 책임자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정치에 관심이 많아 27세 때 부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을 졌다. 이후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김씨 가족은 서울 뚝섬 쪽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당시 서울시가 무허가촌에 살고 있는 시민을 강제로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족 모두 성남으로 이사를 했다. 장남인 김씨가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였다. 원래 김씨는 미술대학에 들어가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어쩌다 용돈이 생기면 곧바로 종이를 사다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를 도와 바느질도 곧잘 했다. 지금의 예능적 끼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중학교 때에는 동양화를 좋아해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했다. 이런 김씨를 보고 미술 선생도 미술분야로 진로를 정해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꿈을 접고 취직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다니며 알아보던 중 어느 날 우연히 ‘낙화연구생 모집’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게 됐다. 이게 뭘까. 그때만 해도 낙화라는 말이 생소했다. 그러나 그림도 배울 수 있고 취업도 보장된다는 내용에 곧바로 모집광고를 낸 종로에 있는 한국낙화연구소로 달려갔다. “그때 장교빌딩 5층에 학원(낙화연구소)이 있었지요. 30여명의 수강생들에게 낙화를 가르치는 전창진 선생님의 모습이 아주 특이했습니다. 마음이 금방 끌리더군요. 처음에는 아주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무척 어렵더라고요.” 그는 집이 성남이라 낙화연구소에서 기숙하며 열심히 배웠다. 스승이 그려준 낙화를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그렸다. 낙화의 소재는 주로 동양화에 등장하는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사군자로 시작해 나중에는 꽃과 새, 산수, 인물 등을 배워 나갔다. 잠 잘 시간을 줄여가며 낙화에 몰두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낙화연구소의 운영이 점차 어려워졌다. 30명이 넘던 수강생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연구소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김씨는 남아 있는 낙화연구소 수강생 5명과 함께 종로2가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합숙을 하며 낙화를 연습했다. 나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작과 판매를 하며 사무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나자 같이 활동했던 멤버들이 모두 떠나버렸다. 혼자 남게 된 그는 기념품을 제작해 전국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판매했다. 다행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던 1977년 대구 동아백화점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 100여점을 풀어놨는데 10여점이 팔렸다. 이어 속리산 입구에 기념품 상점을 열었다. 그곳에서 10여년 동안 기념품을 팔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동안 소망했던 일, 즉 자신의 공방을 열어 본격적으로 전통 낙화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 가서 전통회화를 감상하고 연구를 했다. 회화와 도록에 나와 있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무에 낙()을 하는 기술과 종이에 낙을 하는 기술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두의 온도가 적당하고 손놀림이 빨라야 종이가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인두의 열로 그림과 선의 음양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후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반복된 노력 끝에 마음대로 종이에 낙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됐다. 그는 2007년부터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을 시작으로 여러 공모전에 10여 차례 수상을 하게 됐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김씨의 낙화기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후대에 전승해야 한다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것을 권했다. 결국 심사과정을 거쳐 2010년 10월에 지정됐다. 그동안 그린 낙화는 수천점에 이른다. 외국인들에게는 그의 산수화와 마애불이 특히 인기가 높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좋은 작품을 국내외에 꾸준히 선보이고 후진 양성에 진력해 예술적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영조씨는… 195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배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낙화에 입문했다. 1977년 대구 동아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79년 청목화랑을 개원했다. 2010년에 충북무형문화재 제22호 낙화장으로 지정됐으며 현재 한국 낙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활동 이력으로는 일본 궁기현(宮岐縣) 낙화전(2003년), 인도 세계공예심포지엄 워크숍 참가(2012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통공예작가 워크숍 참가(2013년) 등이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2007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2008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2009년) 등이다.
  • [임주형 기자 소치 프리즈마] 평창 홍보관 방문자 10만명… 침·뜸 체험장엔 ‘번호표 경쟁’

    [임주형 기자 소치 프리즈마] 평창 홍보관 방문자 10만명… 침·뜸 체험장엔 ‘번호표 경쟁’

    소치 올림픽타운에는 삼성전자와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아우디 등 공식 스폰서 11개 기업의 홍보관이 늘어서 있다. ‘빨강 애벌레’ 모양의 코카콜라 홍보관은 멀리서 봐도 톡톡 튀는데 한국인들의 눈은 바로 옆 건물로 쏠린다. ‘더 넥스트 호스트 시티 평창’(The next host city PyeongChang) 2018년 차기 대회 개최지 평창을 홍보하는 ‘평창하우스’다. 지난 15일 취재차 방문을 했더니 입구는 장사진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다간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관계자에게 부탁해 뒷문으로 입장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선전하는 홍보물을 황홀한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지난 7일 개관한 평창하우스는 625㎡의 아담한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만든 10점의 디지털 병풍이 왼쪽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병풍 내부의 60인치 화면에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민속화가 실시간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오른쪽은 강릉 선교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옥, 천장에는 방패연이 각각 설치돼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와 강릉 경포호가 각각 가로 12m 세로 4.5m 대형 사진에 담겨 있다. 또 한국관광공사와 평창 올림픽조직위가 제작한 홍보 영상이 가로 14m 세로 4.5m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영된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침과 뜸 체험 행사장이다. 한의사 2명이 희망자에게 침과 뜸을 시술하는데,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소치로 자원봉사를 온 치우천천(22·여·중국)은 평창하우스 관람을 마친 뒤 “한국이 갖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2018년에도 꼭 자원봉사를 신청해 평창에 가겠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이날 누적 관중 10만명을 돌파한 평창하우스.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피크타임인 오후 2~4시에는 시간당 2000명 이상 들어온다고 한다. 이들이 카메라에 담아 간 한국과 평창, 강릉의 아름다움은 지구촌 곳곳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글 사진 hermes@seoul.co.kr
  • [열린세상] 설 차례상 지키는 숲속의 보물/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설 차례상 지키는 숲속의 보물/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청마의 기운을 받고 시작한 갑오년 새해를 맞이한 지도 한 달여가 흘렀다.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어린애들처럼 설렘을 느낀다. 역시 진정한 새해 첫날은 설인가보다. 명절은 그 나라와 민족의 최대 축제다. 중국의 춘절, 미국의 추수감사절, 필리핀의 만성절, 러시아의 성 드미트리 토요일 그리고 베트남의 쭝투가 대표적인 명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문화 예술로 구성된 다양한 축제를 즐기고, 고유한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의 하나는 설날이다. 이 날은 아침 일찍 큰 방이나 마루에 병풍을 치고 여러 음식을 준비해 먼저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다. 설 차례 상의 음식 중 제일 먼저 밤(栗)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대개 남자가 준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차례 상에서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과실이기 때문이다. 밤 이외에도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실은 대추(棗)와 감(枾)도 있다. 이들은 숲 속에서 나는 우리나라 대표 임산물이자 차례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과실이다. 또한 차례 상의 나물류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보통 고사리와 도라지이며 취나물, 참나물, 죽순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숲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보물 먹거리다. 밤, 대추, 감에는 전통적 상징성과 재미있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밤송이에 들어 있는 세 톨의 알밤은 삼정승을 뜻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원하는 의미다.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수험생에게 그 뜻을 바라는 마음에서 밤을 먹여봄도 좋다. 또한 종자로 쓰이는 씨밤은 발아되어 큰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썩지 않아서 영적으로 조상과 연결돼 있다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이는 자손이 몇 대를 내려가도 조상과 항상 연결돼 있어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다. 밤이 차례 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식품으로서의 밤은 성분이나 기능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영양이 풍부하고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건강식품이자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다. 특히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밤 속껍질은 항산화 효능과 치매억제, 피부노화방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맛 또한 일품이어서 생으로 먹어도, 구워 먹어도, 삶아 먹어도 맛이 있다. 대추는 한 나무에 많은 꽃이 피고, 핀 꽃은 반드시 하나의 열매로 자라기에 자손 번창의 의미를 가진다. 대추씨는 하나이기 때문에 임금을 상징해서 차례 상에 가장 먼저 오르는 과실이다. 또한 절개를 뜻해 순수한 혈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추도 차례 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대추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불안증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비타민, 베타카로틴(β-carotene), 미네랄 등이 풍부하여 종합 비타민제로도 불린다. 이뿐만 아니라 대추의 다당류 성분이 장(臟) 손상의 개선 효과와 간 보호 효과가 있어 인기 있다. 감은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볼품없는 작은 열매가 열리기 일쑤다. 그래서 좋은 감은 고욤나무 가지를 째서 그곳에 접목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이렇듯 감은 가지를 째고 접을 붙이는 큰 고통과 같은 가르침을 받고 배워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감에는 카로틴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환절기나 겨울철 감기 예방과 호흡기 계통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데 제격이다. 게다가 다른 과일에 비해 10배 이상의 많은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여 심혈관 질환 등 성인병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 명절 차례 상을 지키는 숲 속 보물인 밤, 대추, 감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식품영양학적 가치만 봐도 조상님께 드리는 최고의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근 숲에서 나는 임산물은 로하스(LOHAS) 시대의 웰빙 먹거리로 부각되면서 소비시장 확대로 지난해 생산액이 4400억원에 달했으며, 주산지별 생산농가를 중심으로 명품화 및 브랜드화하려는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설날에는 차례 상 음식의 전통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영양 만점 임산물을 조상님께 드려보자.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개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에도 조금이나마 힘이 될 것이다.
  • 중요무형문화재 ‘배첩장’ 홍종진씨 보유자 인정 예고

    중요무형문화재 ‘배첩장’ 홍종진씨 보유자 인정 예고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 배첩장(褙貼匠) 보유자로 홍종진(61)씨를 인정 예고했다고 21일 밝혔다. 홍씨는 1966년 배첩에 입문한 뒤 47년간 전통 배첩 기능의 보존·전승에 투신했으며, 전통기능의 재현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첩 관련 전통도구와 장비를 잘 구비해 전승 환경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배첩장은 글씨나 그림에 종이나 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 처리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현재 배첩장 보유자로는 김표영(89)씨가 전승활동 중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현빈 무명 시절, 김동완 병풍 굴욕.. 다리만 나와 ‘충격’

    현빈 무명 시절, 김동완 병풍 굴욕.. 다리만 나와 ‘충격’

    ‘현빈 무명 시절’ 배우 현빈의 무명 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12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유명 배우들의 과거 무명 시절 모습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무명 시절 현빈은 그룹 신화 김동완의 인터뷰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병풍 굴욕을 당했다. 리포터가 김동완을 인터뷰 할 때 현빈의 옆모습이 슬쩍 등장하며 현빈의 다리만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또 김동완이 발차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쟁반을 들고 김동완이 차는 발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웃음을 자아냈다. 현빈 무명 시절 장면은 2004년 김동완 주연의 영화 ‘돌려차기’(감독 남상국) 당시 진행한 인터뷰다. 네티즌들은 “현빈 무명 시절 대박이다”, “현빈이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현빈 무명 시절, 김동완 병풍이었구나”, “현빈 무명 시절에도 잘 생겼어”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현빈 무명 시절)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현빈 무명시절, 김동완 돌려차기에 묻혀 ‘병풍’ 존재감 폭소

    현빈 무명시절, 김동완 돌려차기에 묻혀 ‘병풍’ 존재감 폭소

    현빈의 무명시절 TV 출연 모습이 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현빈 등 유명 스타들의 무명 시절 모습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 현빈은 그룹 신화 김동완의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배경보다 못한 ‘병풍’ 존재감으로 등장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현빈이 김동완의 인터뷰에 함께 등장한 것은 김동완이 주연으로 나선 영화 ‘돌려차기’에 함께 출연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방송에서 김동완이 리포터와 인터뷰하는 동안 현빈은 뒷모습만 보인다. 또 김동완의 와이어액션 장면에서는 다리만 살짝 지나간다. 김동완의 발차기 시범을 돕기 위해 현빈이 쟁반을 들고 있어 카메라 전면에 나서지만 이내 김동완의 발차기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현빈 무명시절 모습에 네티즌들은 “현빈 무명시절, 김동완에 완전히 묻혀 병풍 신세라니”, “현빈도 무명시절이 있었네”, “현빈 무명시절,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화폭에 담는 ‘산꾼 화가’ 곽원주씨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화폭에 담는 ‘산꾼 화가’ 곽원주씨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즉, ‘미쳐야 미친다’라는 뜻이다. 남이 이루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그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우봉 조희룡(1786~1856)은 한평생 매화에 미쳐 살았고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침실에 매화가 그려진 병풍을 세워놓고 매화로 만든 차를 마셨다고 한다. 또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서 매화 시를 썼을 만큼 광적으로 매화를 좋아했다. 그는 추사 김정희보다 세살 연하였으나 스승으로 깍듯이 예를 갖췄다. 우봉은 추사의 심복으로 지목돼 신안 임자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만구음관’(萬鷗吟館·갈매기 1만 마리 우는 집)이라는 편액을 내걸어 화아일체(畵我一體)의 경지까지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힘찬 용틀임과 곳곳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매화가 조화를 이루는 용매도(龍梅圖)라는 그림도 이곳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곽원주(64) 화백은 ‘산꾼 화가’로 통한다. 그저 단순한 산꾼 화가가 아니다. 평생 산에 미쳤고 그림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국내 섬산을 두루 거쳤고 백두대간, 낙동정맥 등 국내 산 1000여곳을 올랐다. 이어 중국과 일본의 명산 100여곳까지 올랐다. 그 다음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다녀왔으며, 지금은 그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의 힘찬 모습을 열심히 화폭에 담고 있다. 올해 9월이면 전시를 할 예정이며 동양화가로는 최초의 일이다. 그가 이렇게 산과 그림에 미친 계기는 섬산을 다닐 때 임자도에서 만난 우봉의 ‘불광불급’ 정신에서 비롯됐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화실에서 곽 화백을 만났다. 붓을 들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멈추고 “일출을 보기 위해 동대산(오대산 국립공원 내)을 다녀왔다.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며 자리에 앉는다. 먼저 왜 히말라야인지 물었다. “삶이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 대부분 여행을 떠나지요. 정보가 부족한 오지로 떠나는 여행은 처음 접하는 신비감 때문에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면 한없는 환희와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 하나를 보여주면서 다시 설명을 한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거쳐 딩보체에서 바라본 마차푸르레입니다. 물고기 꼬리를 닮았지요. 이곳은 신의 영역입니다. 일본 등산객 5명이 주민들 허락 없이 이곳에 갔다가 조난당했습니다. 신성스러운 곳인데 인간이 함부로 발을 디뎌 그랬다고 하더군요.” 히말라야 그림은 바로 그 신들의 파노라마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 없는 히말라야를 우리 인간 세상에 내려놓는 일이라고 했다. 네팔 쪽에 있는 히말라야 7좌 14폭의 병풍그림을 이미 마무리했고 현재는 파키스탄 쪽에 있는 히말라야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 2개 낱말이 결합된 복합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왜 히말라야인지 다시 물었더니 “불광불급이다. 그 신들과의 만남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곽 화백은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낭가파르바트, K2, 브로드피크 등 히말라야 14좌의 베이스캠프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다. 해발 3700m에서 6000m에 이르는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정상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화폭에 담았던 것.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에베레스트, 로체 등의 절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고 있다. 처음에는 히말라야가 동양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흠뻑 매료됐다. 눈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야생화, 짙은 녹음과 가을, 설경 등 한 시야에 4계절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동양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해 ‘히말라야 산수화’인 셈이다. 신들이 잠든 모습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관념성을 접목시켰다. 중국의 산수화는 먹의 농담(濃淡)으로 산의 형상을 표현하고, 일본의 경우 채색 산수화, 그리고 우리나라 산수화는 실경에 주자학적 관념성을 반영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산꾼으로서 히말라야를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동양화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요. 산이 각지고 음영이 심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붓을 저절로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곽 화백의 화풍은 전통 산수화에서 현대적 실경 산수화로 바뀌었다. 히말라야의 바람, 느낌, 풍경, 그리고 오묘한 신들의 메시지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를 혼자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등정 원정대와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 히말라야 10좌를 등정한 한국도로공사 소속 김미곤씨와 동행할 때가 많다. “네팔의 히말라야가 지리산에 비유해 여성적이라면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군은 한겨울 설악산을 빼닮아 강한 남성적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제가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들이 저를 오르게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에는 히말라야에 대해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한국의 지리산, 설악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해발 4000~5000m의 트레킹 코스는 한국의 여러 둘레길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힘든 경우는 없었을까. “히말라야를 가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고지대를 걸을 수 있는 체력,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30일 정도 걸리는 시간이 허락돼야 합니다. 그것만 해결된다면 한국의 산을 오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마 다른 화가들도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하겠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주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가 스케치하던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탈레반의 습격을 받아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고 강력한 거머리를 보고 섬뜩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열악하게 살아가지만 행복하고 만족하는 현지인들의 표정이었다. 그가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5월 ‘한·중·일 3국 명산전’, 그러니까 우리나라 백두대간, 낙동정맥, 중국과 일본 명산 50곳을 화폭에 담아 전시할 때였다. 우연히 전시장을 들른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에게서 ‘히말라야를 가봤느냐. 히말라야를 그릴 생각이 없느냐’는 적극적인 권유를 받고 시작됐다. 그가 산꾼이 된 것은 1969년 제주 여행을 갔다가 한라산을 오르면서였다. 산 중턱에 있는 나무 숲과 백록담을 보고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전부터 그림을 틈틈이 취미로 그렸으나 한라산을 보고 난 뒤 산 그림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어 비금도, 거문도, 욕지도, 임자도 등 남도 섬산을 찾아 화폭에 담았다. 임자도에서의 기억을 잠시 더듬는다. “임자도(荏子島)는 한자 뜻에서 보듯 들깨섬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우봉 조희룡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있습니다. 한양에서 불원천리 임자도까지 온 우봉은 바닷가 밝은 달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그림에 미친 불광불급을 떠올려 봤지요.” 이런 마음으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국내 산들을 스케치북을 들고 섭렵했다. 이렇게 그의 산꾼 인생은 섬산에서 시작돼 국내를 거쳐 중국과 일본, 그리고 히말라야로 이어진다. 중국의 경우 무이산, 안탕산, 장가계, 숭산, 화산, 태산 등 우리가 흔히 들었던 명산을 다니면서 화폭에 담았다. 그는 전남 고흥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스케치북을 들고 등산하는 것을 좋아했다. 임진왜란 당시 성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대학 다닐 때에는 낙수회라는 문학동호회를 결성해 시화전 등을 주관했다. 또 산과 그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이 가운데 김찬삼의 여행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떠난 것이 산과의 인연이 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산악회를 조직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전업작가가 된 것은 40세 때였다.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산예모’(산과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멤버들과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 산과 예술에 대해 공감을 나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을까. “오는 9월 히말라야 전시가 끝나면 킬리만자로로 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말의 해를 맞아 말처럼 달리면서 멋진 고봉들을 화폭에 담아볼 생각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곽원주 화백은 전남 고흥 출신이다. 순천대학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중국 시안(西安) 섬서미술관 초대작가이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동아 국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백두대간을 화폭에 담아’가 있다. ‘3국 명산전’ 등 개인전 20회, 한·중문화교류 3인전 등 국내외 단체전 150여회를 가졌다. KBS1 TV ‘학자의 고향’에 그림 연재를 했다. 현재 국민예술협회이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현대한국화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동북권 체육메카’ 도봉구가 딱 좋다

    ‘동북권 체육메카’ 도봉구가 딱 좋다

    도봉구에 종합스포츠타운(조감도)이 솟는다. 도봉동 8 일대 3만 3819㎡ 규모 시유지에 다목적운동장과 보조운동장을 갖춘 종합 체육공간이 조성되는 것. 도봉구는 서울시 주관 ‘동북권역 체육시설 입지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도봉·성북·강북·노원 등 동북 4개구 대상 부지 가운데 도봉구가 최우선 순위로 뽑혔다고 1일 밝혔다. 올해 사업 예산으로 21억원이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경기 의정부시와 맞닿은 부지로,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과 8차로인 도봉로와 연결된 교통 요지로 접근성이 좋다. 도봉산과 수락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경치도 빼어나다. 도봉구는 이곳에 다목적운동장이 지어지면 바로 옆 식물원인 서울창포원과 연계한 최고의 레저 스포츠 공간 및 주민 쉼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북권에 생활 체육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시는 지난 4월 공공 체육시설을 확충하기로 하고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동북권역에는 시 전체 인구의 17.3%에 해당하는 180만 2000여명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체육관은 11곳, 유소년야구장은 1곳, 축구장은 9곳뿐이어서 다른 권역에 견주면 생활체육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도봉구는 지역 숙원 사업인 체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 애썼다. 원래 시는 2009년 남산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도봉동 8 일대를 장충테니스장 이전 장소로 선정했고, 이후 도시계획시설상 체육공원 조성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사업이 차일피일 지연되며 숱한 민원을 낳았다. 중간에 지역 의견과 배치되는 창포원 확대나 생태광장 조성 계획이 검토되며 명확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 도봉구는 지난해 9월 박원순 시장이 현장시장실 운영 때 종합스포츠타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공공 체육시설 설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강북구와 노원구도 각각 수유동 축구전용구장과 상계동 종합체육관 및 시민야구장 건립 등을 내세워 유치전에 나섰으나 시는 용역 조사 결과 도봉구의 손을 들어 줬다. 이동진 구청장은 “체육시설 유치를 위한 걷기대회와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체육인을 비롯한 모든 구민들이 함께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구민의 뜻을 지속적으로 모아 생활체육 발전에 반환점이 될 명품 종합운동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말에 얽힌 이야기] ‘백수의 우두머리’로 추앙… 말로 다 못하는 애마 민족

    [말에 얽힌 이야기] ‘백수의 우두머리’로 추앙… 말로 다 못하는 애마 민족

    “천하를 내달리면 바람과 구름이 일고, 한번 울부짖으면 천지가 진동하니… 말의 위용은 백수(百獸)의 우두머리요, 공덕을 논하자면 모든 가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조선 순조 때 장군인 이석구의 ‘애마시’)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화도진’. 이곳에는 말에 대한 예찬을 읊은 병풍이 놓여 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야전사령부 역할을 하던 진영(陣營)에 홀로 남겨진 이 병풍에는 이석구 장군의 말에 대한 사랑이 다양한 말(馬) 서체와 함께 구구절절 적혀 있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말띠의 해. 말 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활발하다는 청마(靑馬)의 해가 60년 만에 돌아왔다. 이는 육십갑자 가운데 갑오, 병오, 무오, 경오, 임오의 순서를 오방색과 짝지어 푸른말, 붉은말, 노란말, 흰말, 검은말 로 부르기 때문이다. 말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물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유독 친근한 존재다. 살아 있을 때는 승마와 역마 등 교통과 통신, 전마와 기마 등 군사 및 농경, 수렵 등에 이용됐다. 또 죽어서는 말갈기는 갓으로, 말가죽은 신발과 주머니로, 말힘줄은 활로, 말똥은 마분지의 원료와 땔감, 거름으로 활용됐다. 심지어 제 몸을 내어 고기를 주기도 했다. 이런 친숙함 덕분인지 말은 어떤 십이지(十二支) 동물보다 다양한 상징을 품고 있다. ‘풍요와 다산’, ‘신비로운 동물’, ‘나쁜 것을 막아 주는 동물’, ‘친숙한 삶의 동반자’, ‘왕업’ 등이 그것이다. 경주 금령총에선 무덤 주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마인물형토기’(국보 제91호)가 출토됐고, 천마총의 ‘천마도’는 액을 막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가야시대의 ‘마형 토기’는 의례용과 부장용으로 사용됐고, 고려시대 ‘마상배’는 전쟁에 나서는 장수가 승전을 기원하며 말 위에서 하사주를 마시는 데 활용됐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박문수와 같은 암행어사는 말이 새겨진 ‘마패’를 사용했고, 말을 타고 공을 치는 ‘격구’는 조선시대 무과 과목으로 채택될 만큼 중시됐다. 말은 일상에서도 노비 두세 명과 맞바꿀 만큼 귀한 존재였다. 장례에선 죽은 사람을 태우는 영혼의 대리자였고, 음력 정월 첫 ‘말날’인 상오일(上午日)에는 말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있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말의 이미지는 박력과 생동감으로 수렴된다”면서 “어느 동물보다 깊은 유대를 맺어 왔지만 한국인의 단면을 규명하기 위한 말과 관련된 생활사 기록은 부족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말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첫 기록은 중국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와 대립하던 위만조선이 5000필의 말을 보내 화친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말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선 부여에서 유난히 명마가 많이 나온다는 기록도 있다. 천 관장은 우리나라의 주요 건국신화에서 말이 거의 빠짐없이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부여의 금와왕,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혁거세 등 국조의 탄생신화에 대부분 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말은 왕의 죽음이나 국가의 흥망을 예시했다. 또 아기장수 설화에선 지도자의 탄생을 미리 알리기도 했다. 이는 영물인 말이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점은 ‘말띠 여자가 팔자가 세다’는 속설의 진위 여부다. 천 관장은 “일본에선 말띠해에 태어난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편의 기세를 꺾는다고 여기는 습속이 있었다”며 “일제강점기에 이런 속설이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선 이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조선왕조에서만 정현왕후(1462~1530년), 인열왕후(1594~1635년), 인선왕후(1618~1674년), 명성왕후(1642~1683년·현종의 비) 등이 모두 말띠였다. 천 관장은 “말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지금도 이어진다”면서 “갤로퍼(질주하는 말), 에쿠스(말을 뜻하는 라틴어) 등 승용차 이름은 물론 여행사, 고무신, 양말, 구두약 등의 상표에도 말이 꾸준히 애용돼 왔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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