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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불륜경쟁(외언내언)

    「바보상자」가 이제 「섹스상자」「불륜상자」로 그 이름이 바뀌어 가고 있다한다.우리 TV의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성표현의 증가에 대한 비난이다.실제로 많은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TV 보기가 민망하다」고 털어 놓는다. 기발한 불륜관계의 설정에 노골적인 침실장면·욕실장면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이야기쇼등 다른 프로그램들도 느닷없는 외설스러움으로 안방의 가족시간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끼」를 상품으로 내세운 어느 여성쇼진행자는 「가장 맛있는 술이 무엇이냐」는 질문(답=입술)으로 출연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방송진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반라의 여인들을 병풍장식처럼 세워놓는 프로그램도 있다.이런 프로그램들은 유흥업소 밤무대의 방송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표현때문에 방송위원회로 부터 지적을 받은 방송내용이 92년에는 91년보다 2배로 증가했는데 올해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방송관계자들은 내다본다. 한국갤럽의 최근조사에서도 조사대상자 10명중 8명이 TV를 비롯한 영화 잡지등 대중매체의 외설 및 폭력을 우려하고 「너무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이어서 문제가되는 매체」로 TV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어 우려된다.시청률 경쟁은 필연적으로 방송의 품위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민영방송인 sbs 탄생이후 KBS와 MBC의 방송내용에도 선정성 오락성이 강화됐는데 올 봄 프로개편과 함께 세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KBS는 채널 차별화란 명목으로 제2채널을 오락성 내용으로 채우다시피했고 MBC는 이에 맞서 추가개편까지 하며 맞대응 편성을 하고 있다.TV가 수신교과서 일수는 없지만 그 막강한 영향력때문에 시청률의 논리에만 맡겨둘수는 없다.
  • 「그때 그 여인」 심수봉씨가 털어논 「10·26현장」

    ◎김재규,차지철 쏘며 “건방져”/“합수부 「버러지같은 자식」 발표 허위”/전두환씨,조사뒤 “보약먹으라” 돈줘/방송국에서 전화 받고 달려가/미스신 「사랑해」 부르던중 총성/김이 나에게 쐈으나 총알 없어 우리 헌정사의 대전환을 가져온 「10·26사건」현장에 있었던 「그때 그사람」의 주인공인 가수 심수봉씨(38·본명 심민경)가 14년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였다.심씨는 10일밤 1시간동안 방영될 SBS­TV 「주병진 쇼」의 사전녹화에서 당시 끔찍했던 사건현장을 처음으로 공개증언했다. 『김재규가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기 직전 「각하,이 버러지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항간에는 알려져 있지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건방져」라는 말 한마디뿐이었습니다.박대통령에게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차지철을 쏜 다음 곧바로 쏘았구요』­ 「10·26」현장에 있었던 몇 안되는 생존자인 심씨는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온 부분들을 바로 잡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심씨는 또 사건조사가 끝난뒤 당시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불러 가보니 『고생했다.보약이나 지어먹으라』며 금일봉을 줘 1백만원을 받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털어놓았다.심씨는 자신은 병풍뒤에 숨어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며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병풍이 있었다는 사실은 현장검증때 알았다』고 밝혔다. 심씨는 79년 10월26일 당시 TBC의 「쇼쇼쇼」녹화현장으로 전화가 두차례 걸려와 녹화를 취소한뒤 기타를 들고 궁정동으로 급히 달려갔다고 했다.『이전에도 두번이나 궁정동으로 불려간 적이 있지만 이 사건이 있기 며칠전부터 꿈에 초라한 행색을 한 육영수여사가 박대통령에게 뭔가를 전해달라며 나타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도착 즉시 술상이 차려진 방으로 안내됐는데 김재규씨와는 두번째,김계원씨와는 첫 대면이었고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고 했다.심씨는 주연에 앞서 「7시 뉴스」에 「삽교천 행사」와 「김영삼 현대통령이 외국인사와 만나는 모습」이 나오자 박대통령이 『신민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외국인사와 만난다』며 언짢아해 분위기가 어색해졌다고 말했다.그래서 누군가 노래를 부를 것을 제의해 심씨가 먼저 「그때 그사람」을 불렀고 뒤이어 차경호실장이 부른뒤 신모양이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다고 했다.『미스 신이 노래를 부르는데 기타반주와 음이 맞지않아 다시 부르는데 「건방져」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총성이 났고 손목에 총을 맞은 차실장은 화장실로 급히 몸을 피했습니다』 차실장이 노래를 부를때 김재규가 잠깐 밖에 나갔다왔는데 그때 권총을 갖고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총에 맞아 쓰러진 박대통령에게 신모양이 괜챦으냐고 묻자 「괜찮다」고 대답했고 재차 묻었을때도 「나는 괜찮아」라고해 총맞은 사람같지 않았다고 증언했다.심씨는 또 『제가 박대통령을 부축하고 있는데 김부장이 차씨를 뒤쫓아와 총을 발사,차씨는 탁자를 던지며 저항하다 쓰러졌고 김씨는 박대통령머리에 다시 총을 쏜뒤 저까지 쏘려다 총알이 없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확인사살이 진행되는 동안 심씨와 신모양은 다른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그고 숨어있다 하오 11시쯤 집으로 돌아갔다. 심씨는 어려울때 전두환씨가 호의를 베풀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는데 대통령취임직후 자신에게 방송출연정지조치가 내려져 「박대통령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 때문」일 거라고 여기면서도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있었다고 털어놓았다.사건이후 유가족들과 만난 적은 없었다는 심씨는 지난 91년 박근영씨가 안부전화를 해왔을때는 놀랐다고 말했다.신모양과는 사건이후 친해져 요즘도 연락하며 지낸다고 덧붙였다. 7일 하오5시부터 「궁정동 모의세트」가 세워진 서울 운현궁 스튜디오에서 2시간가량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 담담한 태도를 보인 심씨는 당시의 깊은 상처를 뒤로 한채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본 89년:14)

    ◎「매신」의 8차례 부록 발간/충무공 등 소개… 암흑기 민족의식 고취/광개토대왕의 기개·정몽주충절 상세히/이퇴계·정약용·김정희 등 석학·명필 망라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총독부 기관지로 새로 창간한 경성일보(일문판)에 흡수되어 국문판 자매지 성격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매일신보는 1938년 4월16일 경영체제의 독립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이는 1936년 중일전쟁을 시발로 내선일체를 더욱 강조해가던 일제가 한국인들의 민심계도를 위해 보다 강력한 한글신문의 필요를 느꼈기 때문 이었다. 이에따라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등 새경영진이 선임되고 편집국장에 김형원 논설부장 유광렬등이 새로 임명되었다.이들은 제호부터 신자를 신으로 고쳐,매일신보로 바꾸고 경영독립을 기념으로 대대적인 지면혁신및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매일신보의 지면혁신 내용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록판 발행.독립경영 2개월후인 6월30일자에 첫번째호를 발간했다.「역대명가유필진적」이라는 제목하에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필적을 소개한 이 부록판은 비록 이듬해 1월31일까지 매월 말일자로 여덟번 발간된후 중단됐으나 36년8월 동아의 일장기말소사건 이후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볼때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론 획기적 기획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부록판은 표면적으로는 선현들의 「글씨」소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한국 역사인물과 역대왕조의 소개등이 자연스레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일제하에서 역사를 빼앗긴채 「일본신민」으로 살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높은 기상을 자랑하던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을 알리고 고려말 충신들을 소개했다.또 이순신장군의 대첩,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조 유명한 선비들에 대해 소개했다.이는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민족문화의 중요성과 그 보존을 강조한 것이 틀림없다. 이 부록판 발간에 대해 매일신보는 첫호가 나가기 전날인 1938년 6월29일자 1면에 사고를 내고 『본사경영독립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서도의 금자탑인 역대명가의 유필진적을 애독자 제위에게 무료증정하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또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본사가 그동안 막대한 노력과 시일을 들여 수집망라한 것으로 글씨 한개마다 전문 사학가의 해설을 곁들였음』을 밝혔다.인쇄및 장정에 대해서는 『본사 특선의 고급당지에 석판이도쇄로 미려정교하게 인쇄,병풍을 만들어 영구히 보존할수 있도록 고급전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사고는 또 이 부록판 발간을 『조선신문 초유의 희생적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반드시 독자제위의 열광적 환영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자신했다. 38년 6월30일자로 발간된 첫번째 부록판은 황해도 해주군 광조사지의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등 고려전기의 탑비 6편을 수록했다.해설의 예를 보면 진철대사비의 경우 고려 태조 20년에 세운 것으로 작자는 최언위 필자는 이환상으로 구양순체임을 밝히고 있다. 7월31자로 발간된 두번째 부록판은 고려때 최고의 왕사였던 석탄연의 문수원비를 비롯,오늘날 지극히 귀한 것으로 알려진 이규보의 유묵과 안향 정몽주 문공유등 고려시대 석학들의 필적을 실었다.특히 포은 정몽주는고려말 절개를 지킨 굴지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기술했다. 특히 세번째 부록판(8월31일자)은 광개토대왕비등 만주 안동성 집안현 일대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비문들로 꾸며졌다.특히 광개토대왕비에 관해서는 『동양인이 쓰고 세운 비석 가운데 최고 최대의 비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자세하게 대왕의 업적을 소개했다.『고구려의 19대왕으로 아버지는 고국원왕,아들은 장수왕이며 18세에 즉위했다.왕은 천자영매하고 용병의 귀신이었으며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겼다.64개의 성과 1천4백개소의 촌락을 공략하여 국경을 넓혔다.이르되 호태왕이라 한다.…』 ○신라때 비석도 게재 네번째 부록판(9월30일자)은 함경남도 함흥군 하기천면소재 황초령 진흥왕순수비와 낭공대사탑비,신행선사비등 주로 신라시대 인물들의 탑비를 싣고 있다.진흥왕순수비는 한반도내 광개토대왕비에 버금가는 최고,신라 제일의 비로 소개했다. 다섯번째 부록판(10월31일자)은 박연 성삼문 서거정 김시습 안평대군 정란종 최흥효등 조선 전기 각분야에서 특출난 인물들을 소개했다.박연은 세종때 처음으로 아악을 연구 시행한 음악가로 이조판서와 대제악을 역임했으며 성삼문은 조선의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 세임금을 섬겼으나 세조를 거부한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크다고 설명했다.또 김시습은 단종폐위사건에 반발하여 일평생 방랑생활을 했던 신동으로 일시적으로 금오산에 우거,금오신화를 남겼고 이율곡이 그를 백세지사로 극찬하였음을 소개했다. 여섯번째 부록판(11월30일자)은 일제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인 이순신을 비롯,이황 양사언 한석봉 김구 등 조선중기 대가들의 유필을 수록했다.특히 임진왜란때 일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이순신장군에 대해서는 그의 난중일기 일부를 소개하며 거북선 건조,옥포 당포 한산도 해전에서의 대첩등 큰 전공을 세운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일곱번째 부록판(12월31일)은 허목 이광사 이숙 윤순거 송준길등 조선 중기 석학들에 대한 필적과 업적을 소개했다. 마지막회가된 39년 1월31일자 부록판은 김정희 조광진 정약용 이삼만 권돈인강세황등 조선말기의 명필 석학들의 글씨를 두루 실었다.특히 초서 해서 전서 예서에 통달,조선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를 자세히 소개했으며 남쪽의 김정희에 필적할만한 북쪽의 명필로 조광진을 내세웠다.또한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는 뛰어난 학문과 저작을 칭송하고 그의 형 정약전 정약종과 함께 이들 형제의 천주교 귀의와 순교내용을 상세히 기술했다. ○「매신」 실체규명 계기 이같이 한국의 대표적 역사인물들을 두루 소개한 매일신보 부록판은 39년 1월 별다른 설명없이 중단되었다.그러나 이 부록판은 민족자각의 의도성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따라서 이같은 매일신보의 새로운 측면은 그동안 친일 반민족 신문으로만 평가되어 한국언론사연구에서 제외되다시피 했던 매일신보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할을 규명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야 의원도 재력가 수두룩/민주 재산등록마감 계기로 살펴보면…

    ◎1백억원대안팎 5명… 4명이 전국구/청빈 이우정·이윤수의원은 무주택/“불성실신고” 일부 의원들엔 소명자료 요구 오는 6일의 재산공개를 앞두고 민주당은 4일 소속의원및 당무위원 1백4명의 재산내역에 대한 신고접수를 마쳤다.민주당의 재산공개대책위(위원장 이부영)는 접수서류를 토대로 불성실 또는 축소신고여부에 대한 확인작업을 벌였으며,물의를 빚을 가능성이 있는 신고자들에게는 석명·해명자료를 제출토록 했다. ○시가·공시지가 병기 민주당당직자들은 민자당에 비해 비교적 성실하게 신고됐고 문제인사들도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별달리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다만 몇몇의원들이 공개후 닥칠 여파를 우려하는 듯한 눈치이다. ○…재산공개 첫 등록 접수의원은 지난달 31일 공개한 이기택대표이다.같은날 접수한 이해찬 이석현의원이 각각 2,3위를 기록. 가장 늦게 접수한 인사는 신기하의원과 한영애당무위원으로 서류를 잘못 작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민주당의원들의 공개 특징은 시가와 공시지가를 함께 기재하는 형식.또 골동품이나 고서화,보석,장서등도 상세히 기재하기로 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했다.그래서 희귀한 골동품이나 서화가 공개돼 뒷얘기가 많은 편이다. ○…접수결과 최고 재력가는 김옥천의원(전국구)으로 1백67억4천만원을 신고.김의원은 광주무등산온천레저타운 소유주로 5백40억원에 이르는 레저타운의 부채가 3백억원에 달해 순자본은 2백40억원에 불과하며 이중 50%인 1백20억원이 본인 몫이라는 것.2위는 영화제작사인 대일필름 소유주 국종남(전국구)의원으로 1백7억여원을 공개. 다음이 이경재의원(구로 을)김충현의원(전국구)강희찬의원(전국구)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이의원은 부동산을 포함,시가 91억원,공시지가로 72억원을 신고했다.형이 청기와예식장과 관계가 있는 김충현의원은 개인재산 77억7천만원에 가족재산을 합쳐 80억2천만원을 접수.강의원은 제주도와 서울 강남지역의 부동산등 62억8천만원을 신고. ○희귀본고서도 많아 ○…당초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던 신진욱의원(전국구)은 6일 공개까지는 외부 누출을 꺼리고있어 정확액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개인재산 17억여원만을 신고했다는 소문.대구지역의 학원재벌로 알려진 신의원은 학원재산은 비영리법인이라는 이유로 이번 신고에서 제외시켰다는 것. 역시 학원재벌인 김인곤의원(영광·함평)은 한남동빌라,광주 학동빌라와 아들명의 5층건물등 46억여원을 등록.김의원은 『비영리법인의 재산 3백66억원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 ○…꼴찌의원은 9백28만원을 신고한 이윤수의원(성남 수정).이의원의 소유재산은 21평형 아파트 전세금 2천8백만원,주택부금 5백만원등 5천2백70만원이지만 7백40만원의 농협대출금등을 빼고나면 1천만원도 안된다는 것이다.이어 이우정의원이 1천3백만원으로 「청빈의원」 대열에 합류했다.1천1백53만원을 신고한 김충조의원도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이들 모두 내집이 없이 전세를 살고 있다. ○…손세일 홍사덕 박석무의원은 「책부자」로 알려졌다.손의원은 2만권의 장서를 6천만원으로 평가,신고했다.대학교수들중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각종 희귀서적을 소장하고 있다.대표적인 희귀본은 선교사 비숍이 지은 「은자의 나라 한국」,달레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서정주의 「화사집」등이다. 교사출신으로 다산 정약용연구가인 박의원은 구한말 척사파의 거두인 최익현선생과 의병장 기우만등이 교환한 서찰 40여통을 공개했다. ○「대원군 난서」 신고 ○…서적외에 귀중한 서화 소장의원도 많았다.이석용당무위원이 김기창화백의 동양화등 20여점을 감정가 2억원으로 공개해 단연 으뜸.손세일의원도 김영주화백의 「신화시대」등 15점을 공개했다.강창성의원도 남농화백의 4폭짜리 병풍을 가격은 기재하지 않은 채 공개했으며,이대표는 대원군의 「난화」 2점,김원기최고위원은 고종당시의 왕실화가가 그린 조부초상화를 신고했다.
  • 이농여파/문닫은 농어촌국민교 11년간 819곳(심층취재)

    ◎늘어나는 폐교 실태와 재활용 길 점검/일부시설 파손된채 곳곳 흉물로 방치/법에 묶여 처분도 못해 청소년탈선장 되기도 이농현상이 심화되면서 문을 닫는 농촌지역의 국민학교가 급증하고 있다.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82년부터 지금까지 문을 닫은 국민학교는 학생수가 2백50명이상인 본교만도 1백51개교나 되며 학교규모가 작은 분교와 분교장을 합하면 자그마치 8백19개교에 이른다.이같은 국민학교의 폐교는 도서·벽지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하다.경북의 경우 올해 폐교된 학교만도 51개교나 되며 전북도 35개교에 이르고 있다.이처럼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자 폐단도 만만치 않다.일부지역에서는 문을 닫은채 방치된 학교가 불량 청소년들의 범죄장소로 악용되는가 하면 아름다운 자연경관마저 해치고 있다.문을 닫고 있는 이들 농어촌 학교의 자원을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농어촌지역의 폐교실태와 문제점·대책등을 본사 취재망을 통해 알아봤다. ▷폐교실태◁ 전국적으로 농어촌 국민학교의 폐교가 가장 많은 도는 경북. 지난 82년이후 지난달말까지 1백49개교가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82년부터 90년까지 35개교가 문을 닫았으나 90년대부터 폐교가 가속화돼 91년 13개교,92년 49개교,올들어서는 51개교나 문을 닫았다. 전남은 같은 기간동안 1백31개교가 문을 닫았고 충북은 79개교,전북 1백11개교,전남 1백31개교,강원 90개교,경남 1백21개교,경기 66개교,충남 51개교,제주 11개교가 폐교됐다. 전국의 국민학교 폐교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취학아동수의 격감에서 잘 읽을 수 있다. 전국 국민학교 취학아동수는 지난90년 74만4천4백35명이던 것이 지난해 64만8천8백24명으로 9만7천6백11명이나 줄어들었다. 또 콩나물시루 교실의 도시와는 대조적으로 산간벽지나 섬지방의 취학아동감소현상은 극심한 실정이다. 이는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적 혜택이 적은데다 교육환경이 열악해 학부모들이 2세교육을 위해 도시로 떠나 폐교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1백31개교(본교 25,분교 1백6개교)가 문을 닫은 전남은 도서·벽지가 많아 앞으로도 폐교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섬을 많이 끼고 있는 완도·해남은 그동안 12개교가 각각 문을 닫았고 진도·신안 역시 각각 8개교로 이들 도서지역의 폐교가 도내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전남도에서는 올들어서도 담양 원산동국교등 15개교가 문을 닫게 되며 송주군 마산국교등 31개교가 분교장으로 격하될 전망이다. 특히 오는 9월 분교장으로 격하되는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국교는 올해 10명이 졸업한데 비해 입학생수는 3명에 불과해 전체 학생수가 44명에서 37명으로 줄어들었다. 산간벽지가 많고 교통불편이 많은 강원도도 사정은 마찬가지.그중에서도 석탄산업 합리화조치로 폐광이 늘자 도시지역으로 이주하는 주민이 속출해 광산지역은 집단촌의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강원도지역은 이같은 인구격감으로 폐교 말고도 지금까지 69개교가 통폐합되기도 했다. 경남도 최근들어 취학아동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섬지방인 통영군의 경우 관내 31개 국민학교 분교장의 올해 취학아동수가 1백50여명에 불과해 1개교당 학생수는 4·8명에 불과하다. 지난 91년만해도 취학아동수는 2백43명이었으나 지난해 1백93명으로 줄어들어 욕지면 국도분교장이 폐교됐고 올해도 봉도·남노대분교장등 2개교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도 모두 66개교가 문을 닫았으나 대부분이 강화·옹진군등 도서지역 학교들이다. 강화·옹진군에서는 올해도 5개교가 문을 닫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어촌지역의 폐교수 증가와는 반대로 대도시나 중소도시의 국민학교는 과밀학급 편성이나 2부·3부제 수업으로 매년 교실난에 따른 신·증설을 해야하는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다. ▷문제점◁ 이처럼 폐교가 늘어나자 일선 교육청은 학교부지 관리와 재활용 등에 골치를 앓고 있다. 우선 폐교에 따른 일선교육기관의 관리비 부담이 크며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보수하는데 드는 비용도 무시못할 정도다. 학교재산은 현재 부동산투기억제 조치에 묶여 일체 처분을 못하게 되어 있다. 당초 통·폐합이 실시되던 89년까지만 해도 학교시설물을 매각토록 했었으나 90년 10월부터 매각을 중지,청소년수련장·교원휴양소·마을회관등 건전한 시설에만 활용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시설물은 대부분 산간오지나 섬지역 등에 많아 공익단체들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실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설이 안타깝게도 방치되고 있다. 또 폐교건물의 관리를 일선 교육청에 맡겨 시설물의 노후화가 가속되고 있다. 일선 교육청은 현재 관리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폐교사 시설물의 관리를 기능직 요원 1명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폐교된 전남 영암군 영암읍 영암남국교는 교실바닥이 모닥불을 피운듯 바닥판자가 거의 타 버렸고 유리창도 모두 깨져 마치 폭탄을 맞은 건물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폐교 건물이 불량 청소년들에게 탈선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빈 폐교사 건물은 대부분 부랑인들의 숙소나 불량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활용대책◁ 1백49개교가 폐교된 경북의 경우 지금까지 34개교가 매각됐고 14개교가 현재 야영장과 마을회관등으로 사용중이며 4개교가 유상임대됐다. 그러나 나머지 97개교는 폐허로 방치되고 있다. 전남의 경우 문을 닫은 1백31개교중 36개가 매각(12개교),야영장·수련장 등으로 이용(11개교) 또는 유상임대(13개교)되고 있을 뿐 나머지 95개교는 방치된 상태다. 충청·강원도 등도 폐교건물의 대다수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져 화재나 붕괴등 사고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에대해 강원도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투기억제를 목적으로 폐교사 시설의 매각을 억제하고 있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선별적이라도 제한조치를 풀어 매각토록 해 과원교사에 대한 활용방안을 서둘러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북의 한 관계자는 『활용이 불가능한 낡은 건물은 과감히 철거하고 부지로 남겨 관리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당국자는 『폐교시설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공익단체·학교법인등 비영리 법인들의 참여를 유도할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들 일선 교육청 관계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폐교사의 교육재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능률적인 관계법령 개정이 선결과제』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또 『학생이 줄어들면서 교사들이 남아도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농어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육구조를 대폭 개선해야 할것』이라고 역설했다. ◎당구자의 말/학교임대차규정 대폭 완화 방침/사용목적 맞춰 내부시설 개조허용/이수종 교육부보통교육국장 『오는 4월부터 농·어촌의 폐교된 학교의 임대차 규정을 크게 완화해 앞으로 임대차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있도록 할 방침이다. 전국 초·중·고교의 재정,신설및 통·폐합업무,시·도 교육청 지도감독권을 관장하고 있는교육부 이수종 보통교육국장은 『방치되어 있는 농·어촌지역 폐교의 효율적인 관리방안으로 내무부와 함께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지방재정법 시행령이 폐교된 학교를 임대차할때 학교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그러나 개정령에서는 운동장과 학교건물의 외형은 원형대로 보존하되 내부는 임대목적에 따라 임차인이 개조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습니다』 이국장은 이와함께 『이번 폐교의 내부구조 개조허용을 계기로 전국의 8백19개교(6백68개 분교포함)가운데 80개곳에 불과한 마을 교육장,학생수련장,마을회관,교직원휴양소,마을 공부방등으로 크게 활용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국장은 그간 폐교된 학교의 관리비용을 줄이는 한편 학교자체는 보존한다는 방침아래 임대활동을 폈으나 학교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규정에 묵여 임대돼 활용되고 있는 학교는 전체의 12%인 96개에 불과해 폐교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폐교된 학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채 방치할게 아니라 매각처분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국장은 『지금은 급속한 도시화,산업화로 농·어촌 학교가 불필요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실시돼 농·어촌지역의 복지가 향상되면 농·어촌으로의 인구역류현상으로 학교수요가 늘어나게 될것이라는 예상에 귀를 기울여야 될 것』이라고말했다. 이국장은 『폐교를 관리하는데 추가비용이 소요되는등 어려움이 있지만 농·어촌 지역의 많은 학교가 그 지역에서 문화적·사회적으로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폐교된 학교외형을 보존해야하는 가치는 얼마든지 있다』며 말을 맺었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5)

    ◎지상의 생지옥:다/어린이도 통나무 운반 등 땔감사역/너무 힘에 부쳐 몇차례 쓰러지기도/일 서투르면 소달구지끌기 등 형벌 정치범 수용소내에서 하는 작업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험한 일은 모두 망라돼 있다. 수용소 설치목적 자체가 죽어도 무방한 사람을 가두어 놓기 위해 만든 곳이니 어떤 험한 작업이 자행되는지는 충분히 짐잘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어른들은 물론 인민학교 아이들까지도 갖가지 노역에 가혹하게 동원되었다. 처음 이곳에서 내가 한 일은 학교에서 시키는 땔나무 작업이다. 땔나무 작업이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곳에서의 나무하기란 어린 나이에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한으로 치면 국민학교 2학년 또래인 내가 첩첩산중에 들어가 아름드리 통나무를 잘라 끌어내리는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보위부원인 선생이 주는 톱과 도끼 등을 들고 학교에서 3㎞ 떨어진 병풍골과 돈사골까지 걸어 이동한뒤 그곳에서 다시 산중턱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 나이든 아이는 톱과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우리 또래는 여럿이서 자른 나무를 나르도록 돼있었다. 어린애들이 커다란 통나무를 자르기도 힘들거니와 그것을 나르기란 정말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는 「죽을 일」이었다. 처음 내가 동원된 날 애들이 내게 통나무 한덩이를 메어주고 나르라고 했다.통나무를 어깨에 맨 것까지는 했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몇발자국 옮기지도 못한채 나는 나무를 어깨에 멘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때 넘어진 나를 보며 애들은 『새로온 새끼』라고 놀렸다. 학교에서 한 또 한가지 작업은 농사돕기였다.말이 좋아 「돕기」이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강냉이를 키워내는 일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끝에 봄기운이 돌면 수업은 아예 집어치우고 강냉이농사 사역에 동원되었다. 하루에 어른은 1백50평,우리는 50평크기의 묘판에 강냉이를 뿌리는 것이다.그냥 강냉이만 뿌리는 것이 아니고 부식토를 날라와 뿌린뒤 흙을 덮고 곡괭이로 22㎝씩을 파고 강냉이 씨를 심고 나면 그 위에 물과 비료를 주는 작업이다. 가뜩이나 먹을 것 없는 이른 봄에 힘든 일을 하다보면 하늘이 노랗게보이면서 현기증으로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이 절반은 넘었다. 또 중학 1학년 때부터 5학년 졸업때까지는 토끼먹이주기·개밥먹이기 등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위부원들의 눈밖에 나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가혹한 형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드리나 되는 돌을 양쪽에 쌓아놓고 벌줄 사람을 양쪽에 정열시킨 뒤 자기들 앞에 있는 돌들을 마주보는 쪽으로 날라다 놓는 일을 하루종일 반복해 시키는 것이다. 이런 벌을 받다보면 돌덩이에 발등을 찧는 어린이부터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사람,손톱이 빠지는 사람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보다는 덜 힘드는 사역으로는 소달구지끌기·똥푸기 등이 있다. 소달구지끌기란 소나 말 대신에 사람이 멍에를 메고 잔뜩 짐을 실은 달구지를 끌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똥푸기는 수용소내 인분을 퍼다 버리거나 농토에 뿌리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요령을 부리면 자루가 길게 달린 똥바가지를 빼앗고 자루없는 깡통으로 퍼 나르게 했다. 오물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은 물론 얼굴과 손에 냄새가 배어들어 집안식구들이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겨울철의 경우는 고약한 냄새를 지우려고 얼음을 깨고 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만 했다.그러나 비누는 물론 세제가 전혀 없는 수용소에서는 악취가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참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기자)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기자)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추리작가협 창립10돌 기념 「겨울 추리여행」 현장을 가다

    ◎눈덮인 덕유산서 펴본 상상의 나래/추리문학원 회원·독자·작가 등 참여/강의·산행·추리게임 2박3일 체험 눈덮인 덕유산 자락으로 스릴 만점의 추리여행을 떠나자.우리 추리문학의 선두주자인 김성종씨가 지난해 여름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문을 연 「추리문학관」과 추리문학사가 올 겨울부터 추리여행을 마련했다. 「제1회 겨울추리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동안 무주 리조트와 덕유산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추리문학관」회원들을 비롯해 일반독자와 추리작가등 50여명이 참가했다.이들은 때이른 봄볕이 조금은 화사하다고 느껴지는 산자락을 구비구비 따라 추리를 앞세운 여행길에서 상념의 날개를 폈다. 「겨울추리여행」은 한국추리작가협회(회장 이상우)가 창립10주년을 맞아 추리문학인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획된 행사.전국 곳곳의 외딴 명산과 해변에서 여행에 동반한 「여행자」들의 추리적 상상력을 자극시킨다.그래서 참가자들로 하여금 한편의 추리소설을 구상토록하는 기회가 됐고또 책장속에서나 맛보던 추리소설의 묘미를 몸소 체험할 수도 있었다. 「제1회 겨울추리여행」은 크게 추리문학및 범죄와 상상력 전반에 걸친 강의와 산행·추리게임등 강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짜여졌다.강의는 숙소인 유성장호텔에서 5분거리에 있는 구천국교 1학년 교실에서 이루어졌다.도심생활에 경직됐던 상상력의 나래를 펴보기엔 제격인 작고 호젓한 공간.장난감처럼 작은 책상앞에 걸상을 놓고 앉으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한적한 덕유산자락이 시야로 들어왔다. 정해조교수(부산수산대)의 「추리문학의 개념과 과제」와 추리작가 유우제씨의 「범죄와 상상력」,박상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생물학과장의 「과학수사일화」가 시작됐다.그리고 소설가 윤정규씨(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의 「산업사회와 문학」,추리작가 김성종씨의 「추리문학의 이해」등 다양한 내용의 강연이 3일동안 연속되면서 참가자들의 머리속에는 한권의 소설을 쓸만한 분량의 추리력이 꿈틀거렸다.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박상규박사의 강의는 일반독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타액,머리카락,혈액,지문,정액및 DNA 감식법등 말로만 듣던 범죄증거물수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쏟아졌다.실제로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들을 예로 들어가며 생생하게 들려주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모두 사건현장에 빨려드는듯 했다. 이번 여행동안 참가자들은 덕유산 정상을 오르면서,또 무주 리조트 야간스키장을 눈앞에 두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조명등이 켜진 야간스키장 기슭에서 한 미모의 여인이 스키를 신은채 외상 하나 없이 시체로 발견됐다.또 백련사 부근 한적한 산속에 등산복을 차려입는 40대 부부가 나란히 살해돼있었다는 등등의 사건이 선정되고 그 사건을 쫓는 추리력이 발동됐을 것이다. 추리문학은 소설이 끝날때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누가 범인인지 모르도록 모든 트릭을 동원하는 작가와 이를 풀려는 독자와의 고도의 「지적 게임」이다.독자들은 이번 추리여행에서 작가들이 즐겨 쓰는 추리기법을 문틈으로나마 엿보게 됨으로써 게임규칙을 숙지한 운동선수처럼 작가들과의 멋진 승부를 준비한 자리가 바로 「겨울추리여행」이었는지 모른다.
  • 고미술품/크리스털/모피류/고급품 전문수리점 각광

    ◎훼손 그림 약품처리­수정 통해 복원/이 빠진 샴페인잔 곱게 갈아 광택내/헌모피코트 새것처럼 디자인·손질 가보로 내려오는 고서화,큰 마음먹고 구입했던 그림처럼 가치가 있는 물건,혹은 혼수로 마련한 크리스털 그릇등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 못쓰게 상해버린 경우.차마 버릴 수도 없고 그대로 구석에 처박아 두자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지만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분명히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일반적인 곳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물건들을 새것처럼 고쳐주고 치료해주는 전문수선점들을 소개한다. ○수리기간 1주일 ▷크리스털제품◁ 크리스털 그릇은 맑고 투명해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품목이다.때문에 혼수로 장만해 가기도 하며 선물로도 자주 선택되고 있다.그러나 다른 유리제품처럼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가면 쓸 수 없게 된다.회현지하상가에 있는 포룸파카크리스털(778­4803,776­2427)은 이처럼 못쓰게 된 크리스털제품들을 모아 전문기술자에게 보내주고 있다.두산에서 생산되는 파카크리스털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지만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중간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현재 못쓰게된 크리스털제품을 전문적으로 손봐 주는 곳은 두산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기술자의 공방이 유일하다.이가 빠진 경우 부위의 깊이만큼 다이아몬드파우더에 곱게 갈아 광을 내면 감쪽같아진다.금이 간 브랜디잔이나 샴페인잔은 그만큼 잘라내고 나면 보석함이나 아이스크림잔으로 쓸 수 있게 된다.밑 부분은 잘라서 곱게 갈아 여러개의 반지를 보관할 수도 있다.원상복구는 안되지만 훌륭한 생활용품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리폼된 제품에 크게 불만이 있을때엔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수리기간은 보통 일주일정도.비용은 컵 한개에 2천5백원,화채볼이나 화병의 경우 4천∼5천원선.그밖에 유명 백화점의 크리스털전문매장에도 수선을 맞기면 공방에 보내준다. ○30만∼50만원선 ▷고미술품◁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심해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림이 쉽게 상한다.특히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을 몇해 지내고 나면 아까운그림들에 곰팡이가 슬고 얼룩이 생긴다.표구전문가들의 모임인 표구협회(736­0303)에서는 작품의 종류와 상한정도에 따라 전문수리인들을 연결해 준다.또 대부분의 유명 표구점이나 화랑에서는 이처럼 상한 고미술품의 원형을 되살려 주는 작업을 해주고 있다.인사동에 있는 동문당(732­40 74)도 그 가운데 한곳.작품이 귀해서 손대기 조심스럽거나 상한 상태가 심한 경우 전국의 화랑들이 수선을 의뢰하는 곳이 고산방(739­40 53)이다.이곳에서 작품의 재질에 따라 특수 화학약품 처리로 곰팡이자국,얼룩,낙서등을 빼고 그 다음 수정전문가의 손에 의해 파손된 부위가 제모습을 찾게 된다.물에 담가 약품을 제거하고 다시 복원상태에 따라 여러차례에 걸쳐 약품처리를 하고 수정작업도 배접후에 재수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기간을 좀 여유있게 잡아야 한다.고화의 경우 처리기간은 약2개월정도.40호 전지크기의 근대화는 12만원,10폭 병풍도 30만원가량에 원형을 되살릴 수 있다.고화는 30만∼50만원,고화 병풍이 50만∼60만원 ○변형그림도 복구 ▷서양화◁ 유화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곳은 인사동 수도약국2층에 위치한 그림보존연구소(732­44 25)한곳.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에서도 유화복원작업을 하지만 일반인들의 소장품을 취급하진 않고 있다.지난 89년 문을 연 그림보존연구소(소장 최명윤)는 화방이나 표구사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도구들외에 물감의 화학적 성분을 알아내는 분석기등을 갖추고 유화의 복원과 보존작업을 해준다.그림은 자연상태에서 진동,습도,빛,온도에 의해 훼손되거나 인위적으로 파손되기 쉽다.이곳에서는 먼지와 불순물로 훼손된 그림을 닦아내는 작업,귀한 작품을 변형되지 않도록 보강해주는 작업,그림에서 물감 부분만을 남기고 캔버스와 틀을 교체해 주는 작업,틀보다 줄어든 그림을 원래대로 늘리는 작업등이 가능하다.과학적인 분석자료를 참고로 하긴 하지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경험적인 것이 토대가 된다는 것이 최소장의 설명이다.복원 및 보존처리 기간은 훼손상태에 따라 달라 길게는 몇개월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황변 벗겨내기와 같이 간단한 작업은 5만원이면 할 수 있다.○자사제품 무료로 ▷모피류◁ 가장 값비싼 의류의 하나로 꼽히는 모피도 관리 소홀로 좀이 슬거나 유행이 지나면 결국 옷장신세가 된다.모피코트류는 작은 조각들을 이어 만들기 때문에 충분히 리폼이 가능하다.근화나 진도등 유명 모피회사는 자사 제품의 경우 무료로 리폼작업을 해주고 있다.깃의 크기를 줄이거나 길이를 자르고 안감을 교체해 주는등 사이즈를 늘리는 것을 제외하고 원하는대로 수선할 수 있다. 상표가 불분명한 국외제작 모피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35동 건너편에 있는 오경자모피점(546­99 33)에서 전문적으로 해결해 준다.깃 모양을 바꾸거나 소매,길이를 줄이는 작업부터 원래의 디자인을 해체시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깔끔하게 처리해준다.수선비용은 얼마나 손을 대는지에 따라 6만원부터 60만원선으로 비싼 편이지만 새로 구입할 경우를 생각하면 투자해볼만하다는 것이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의견이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2)

    ◎생과 사의 경계선:사/눈쌓인 병풍산서 죽음의 벌목사역/굴러내리는 원목에 압사·골절 일쑤/작업성과 나쁘면 하루한끼 주는 구류장 형벌 정치범 수용소에서 실시하는 강제노역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1년동안 줄곧 계속하는 돼지기르기·소기르기·식품공장 사역등이 있는가하면 계절에따라 풀베기·강냉이 심기·무배추재배·산나물채취등 갖가지 노역이 기다리고 있다.또한 폭우·폭설이 내려 길이 훼손되거나 시설물이 부서지면 수시로 임시작업반이 편성돼 사역을 해야한다. 노역대상자는 7살 어린이에서부터 8순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각자 나이와 체력에 맞춰 빠짐없이 일해야 한다.노역자체가 형벌이므로 이를 게을리하거나 작업성과가 좋지않으면 강냉이쌀 배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한 달에 3번이상 지적을 받으면 그 무서운 수용소안의 구류장에 1주일정도 벌을 받게된다.반 평밖에 안되는 구류장에서 한 끼씩만 먹고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으면 나중에는 오금이 펴지지 않아 풀려나서도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나오게 된다.이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특히 구류장 형벌을 가장 무서워한다.꾀병을 부리거나 작업중 요령을 피우거나 건성으로 일을 하다가는 영락없이 적발되어 구류장 형벌을 받게된다. 폐병에 걸려 각혈을 하면서도,치질이 심해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하면서도,또 늑막염에 걸려 옆구리에서 고름을 흘리더라도 죽기전까지는 반드시 작업장에 나가야 한다. 강제 노역 가운데 가장 어렵고 고달픈 일이 벌목작업이다.사람들이 벌목작업을 무서워하는 것은 물론 힘들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업중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벌목작업은 수용소에서 4㎞쯤 떨어진 병풍산 일대에서 행해진다.작업 기간은 12월부터 3월까지이다.숲이 우거지고 나무잎이 무성한때를 피해 겨울철에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다.벌목작업에는 20대에서 50대까지의 「힘좋은 남자」들만 동원된다. 매일 새벽 6시에 수용소 앞마당에 집합,5명씩으로 된 1백여개의 작업조를 편성한뒤 작업장까지 걸어간다. 아직도 사방이 어둑어둑한 눈쌓인 추운 겨울 새벽.담요 조각으로 온통얼굴을 감싼채 넝마같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발에는 헝겊으로 감발한 사람들이 톱과 갈쿠리를 둘러메고 소리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유령들의 행진처럼 소름끼친다. 5명으로 구성된 각 작업조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계곡 양쪽켠 산등성이로 다시 기어 오른다. 병풍산은 크고 험하고 가파른 산이다.좁은 계곡 양켠의 V자형 산등성이를 올라가면 이미 사람들은 기운이 빠져 비실거린다.그곳에는 이미 붉은 페인트로 베어야 할 나무 밑둥에 표시가 되어 있다.벌목 대상은 주로 소나무와 전나무이며 지름이 30㎝ 이상 1m까지 되며 길이는 10∼20m의 거목이 대부분이다.우선 5명이 한 그루씩 달라붙어 톱질을 한다.30여분쯤이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무가 쓰러지고 이어 곁가지를 모두 잘라낸뒤 5m 길이로 2∼3토막의 통나무를 만든다. 벌목작업때 나무를 베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손쉬운 일이다.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은 토막낸 나무를 계곡 아래쪽으로 옮기는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계곡 양쪽의 산등성이는 60도정도로 가파르다.때문에 나무토막을 5명이 한꺼번에 아래쪽으로 밀쳐버리면 저절로 굴러내려간다.그러나 이때가 위험하다.나무 숲에 가려 아래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굴러내린 원목에 사람들이 부딪혀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허리·다리·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잇따른다.1t에 가까운 원목이 굴러내리는 탄력은 대단해 굴러내리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변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워낙 사방에서 우릉꽝꽝하며 원목이 구르는 소리 때문에 분간을 못하기 일쑤이다.작업하는 사람들은 원목을 굴릴때 『어이 간다』하며 함성을 지르지만 메아리 탓에 별 효과가 없다.보위부원들은 『죽거나 다치면 너희들만 손해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할 뿐 아무런 안전대책도 없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차장)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서예가집 수억대 미술품 도난/일중 김충현씨/8폭 산수화병풍등 9점

    지난 5일 밤 12시부터 6일 새벽사이 서울 성북구 동선동 4가310 원로서예가 일중 김충현씨(73)집에 도둑이 들어 김씨의 소장품 가운데 겸재 정선의 산수화 8폭병풍과 순금 5돈쭝 짜리 행운의 열쇠 1개등을 훔쳐간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도난당한 산수화는 조선조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묵담채화로 가격은 수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5일 자정쯤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 보니 벽에 걸린 액자속의 산수화 1점과 유리로 덧씌운 병풍속의 산수화 8점등 모두 9점이 도려져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집안에 도난당한 병풍과 산수화이외에 여러점의 고서화가 있었음에도 값비싼 작품만을 골라 예리한 칼로 도려낸 수법으로 미루어 고서화 전문절도범의 짓으로 보고 동일수법 전과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또 범인들이 평소 비워두고 있는 아래층 건넌방의 열린 창문을 통해 거실로 침입한 점등으로 미루어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2

    ◎부채의 원리/인간과 도구·기계와의 관계 변화/로봇과 구도여행하는 삼장법사/상호 대립·단절… 균열속에 따로 존재/서구/쥘 부채처럼 사용자 마음따라 변화/동양/친화 바탕 새 도구관 한국서 나와야/이불·요는 필요에 따라 펴고 개키고/서양침대는 사람 일어나도 그대로/한국이이 자동차를 발명했더라면/주차장 공간 필요없게 연구했을것 □황규호문화부장=이 대담이 처음 시작되었을때 선생님께서는 「에너지에서 정보」로 산업사회의 가치체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21세기는 그동안 서양문명이 구축한 두꺼운 벽이 무너지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에너지와 벽은 어떤 면에서 상관성을 갖고 있는지요. ○인력·축력 1% 불과 ■이어령 전문화부장관=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이 사용한 전 에너지의 94%가 인간과 가축의 근력에서 나오는 에너지였다고 합니다.그런데 1백년이 조금 지난 오늘날에는 그것이 불과 1%도 안된다고 합니다.놀랍지 않습니까.산업화의 기점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것은 국민학교 학생들도 아는 상식이지요.근력이 증기의 힘,전기의 힘,그리고 이제는 원자력의 힘으로,에너지원의 새로운 개발이야말로 오늘의 산업화시대를 만들어낸 바로 그 심장이요 손발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연에너지가 인공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지요.지금도 자동차를 몇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산업화 이전의 에너지를 대표하였던 것은 말의 힘이었지요.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마는…. ■그래요.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조금 파고 들어가면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지요.말의 힘이 증기기관의 힘으로 바뀌어간 그 과정을 살펴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문명의 그 숙명적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당시의 영국사회 특히 런던의 그 도시환경 말씀이신가요. ■16세기중반에서 17세기에 이르면 런던과 같은 대도시의 연료와 목량업의 발전으로 영국의 산림자원은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수풀의 죽음속에서 서서히 농경 문명이 막을 내리게 되는 상징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심각한 열 에너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석탄이었는데 이 검은 돌과 탄광이야말로 산업문명을 낳은 아버지라고 할 것입니다. □『석탄 백탄 타는데』라는 개화기때의 우리나라 노랫가락이 생각나는군요. ■문제는 석탄을 연료로 썼다는 자체가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것은 아닙니다.첫째 이 석탄을 캐려면 탄광의 배수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결국 거기에서 발명된 것이 바로 배수펌프이고 후일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으로 맥을 잇게 되는 뉴커먼 기압기관의 탄생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아버지가 석탄이라면 그 어머니는 동력기의 발명이라는 말씀이군요. ■뿐만이 아닙니다.산에서 캔 석탄을 도시로 수송하려다 보니 이번에는 말이 자꾸 증가하기 시작합니다.말이 증가되면 그 사료를 증산해야 하고 이렇게 말 사료가 늘어가면 결국 사람의 식량이 달리게 됩니다.더이상 말을 늘릴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치고 만것입니다. ○채털리부인 숲향기 □알겠습니다.그 극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와트가발명한 인공의 동력의존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지요.말의 힘을 대신할 인공동력의 발명,기차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석탄을 때서 석탄을 운반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웃음).숲이 죽고 말이 죽고 그대신 태어난 것이 동력기관과 기계들이었지요.탄광과 공장,로렌스의 소설을 보면 숲의 죽음과 산업문명의 탄생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지지요.그의 문학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상실한 숲의 재생이라고 할 것입니다.그가 그리는 섹스라는 것도 이 남벌된 숲의 한 풍경에 지나지 않아요.왜 그 유명한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그 정사장면의 묘사를 보면 그가 그리려는 섹스와 숲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채털리부인의 온 몸에서는 숲의 향내가 나고 성불능에 걸린 그 남편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꽃을 토해내는 공장 굴뚝의 석탄 냄새가 나지요.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산업문명이 어떤 것인지 오관을 통해서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석탄냄새,지하의 탄광과 광부들,그리고연기를 내뿜고 달리는 철마­초기 산업문명의 이 풍경이야말로 근대인이 뽑은 운명의 카드였지요. □그런데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그와는 다른 또하나의 「운명의 카드」를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이군요. ■우리 손에 들린 그 새로운 운명의 카드에는 어떤 그림들이 보일까요.우선 동력기에 의해 돌아가던 거대한 기계들이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변한 모습이 보입니다.전자시계를 비롯한 전자제품들,전화,반도체를 이용한 컴퓨터와 모든 정보기기와 관련된 것들은 19세기때의 기계식 제품과는 달리 아주 작은 동력으로 돌아갑니다.강전의 시대에서 약전의 시대로 말입니다.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쓰는가?정보기기가 아니더라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품일수록 이 지상에서는 공룡처럼 자취를 감춰가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후기 산업사회는 전세계가 오일쇼크를 경험하고 난 그 뒤부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에너지」에서 「정보」로 그 힘의 비중이 바뀌어 간다는 말은 에너지에서 전파로,기계에서 전자로 그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계가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바뀌면서 모든 산업주의의 패러다임도 변화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동력기는 반도체로,에너지는 전파로,강전은 약전으로 중심개념이 옮겨간다.그래서 도구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그렇습니다.기계는 동력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들이라 인간과 다른 자기독자의 심장을 갖고 있지요.인간과 기계는 대립적이거나 단절적입니다.인간과 기계의 이같은 관계를 극단화시킨 것이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입니다.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기계와 인간이 힘을 겨루는 이야기는 유럽 미국등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서양사람들은 인간과 인간사이 만이 아니라 도구와 인간사이에도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었지요.이러한 벽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도구를 객체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인간따로 기계따로 제각기 따로 노는 균열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음따라 수시 변용 □한국의 경우는 어떻지요.인간과 도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말입니다.더 적대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서양사람과 한국사람 넓게는 동아시아 사람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번에 병풍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쓰는 도구를 보면 분명히 알수가 있습니다.부채를 보십시다.서양이나 동양이나 부채를 사용한 것은 다 같습니다.그런데 일본과 한국인은 접는 부채를 발명하였고 애용했습니다.전주의 합죽선은 지금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지 않습니까.보통 부채와 달리 왜 우리는 접는 부채를 많이 사용하였을까요.부채 역시 사람이 쓸때에는 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접어 둡니다.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의해서 도구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도구가 대화를 한다는 것이군요. ■서양부채는 사용할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똑같습니다.그러나 접부채는 쓰지 않을 때에는 작게 접혀서 옷소매나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부채만이 아니지요.이불과 요를 보세요.잠잘 때에는 펴고 일어나면 개키지 않습니까.이불과 요는 그 주인인 인간과 함께 행동하지요.그런데 서양침대는 어때요.사람이 자고 일어나도 꼼짝도 안합니다(웃음).24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는 거예요.어디 침대만 그래요.집집마다 양옥을 짓고 응접실에 소파를 들여놓고 삽니다마는 그 의자라는 것은 사람이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제가 혼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응접실은 결국 사람보다 의자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그러나 한옥 사랑방을 보십시오.의자 대신 방석이 있는데 손님이 오면 내왔다가 돌아가면 방석을 넣어둡니다.사람이 앉을 때만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집니다.인간과 도구는 일체가 되어 함께 호흡하지요.서양식탁은 세끼 밥먹기 위해서만 있는데 밤낮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먹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그러나 우리 밥상은 어디 그래요.먹을 때에는 나오고 먹고나면 들어갑니다(웃음). □먼저 시간에 말씀하신 한국의 보자기와 서양 가방의 차이와 같군요. ■자동차는 서양사람이 만든 물건 가운데 대표적인 최악의 발명품으로 사람이 탈때나 내릴 때나 변함이 없어요.한국인이 만들었더라면 전주 합죽선처럼 내리면 척 접혀져 작아지거나 벌떡 일어서거나(웃음)무슨 변화가 있도록 디자인 되었을 것입니다.빈차가 잠자고 있는 주차장 공간을 볼때마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현대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농담이 아니라 사실 근대에 들어서 동양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으로 유일하게 손꼽히는 인력거를 보더라도 손님이 내려 비었을 때에는 세워놓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까.가마도 다 해체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구요. □근대 기계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가요. ■일렉트로닉스는 합죽선과 가까운 도구인 것입니다.전자제품은 인간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지요.그것들은 몸에 휴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안테나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된 라디오 카세트처럼 쓸때와 쓰지 않을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인간과 대화를 하고 있지요.컴퓨터의 변화를 보세요.이젠 노트북 컴퓨터에서 펌(손바닥)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인체에 밀착하도록 발전되어가고 있지요.인간과 함께 하는 마치 인체의 일부처럼 붙어다니는 기계 그것이 전자제품들의 특성입니다. □무선전화니 휴대폰도 다 그렇구요. ■기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그 결과는 인간을 해치고 대결하고 파멸시키는 프랑켄 슈타인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그것은 좋은 동반자로서 같이 호흡하고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계는 생산하는 도구,공장의 기계로 대표되었던 그런 도구가 아니라 방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도구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도구와 인간이 일체가 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미래의 기계에 대한,도구에 대한 새로운 철학은 한국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도구론이 말입니다.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저팔계를 데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그 여행처럼 앞으로 우리는 로봇이었던 컴퓨터였던 그런 반려자를 데리고 복지의 땅 행복과 번영의 인간문명의 경전을 받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호칭에도 인격부여 □실제로 그런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가령 접부채를 만들어낸 일본의 예를 들어보면 그들이 어떻게 로봇왕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전세계의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의 80∼90%는 일본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급속도로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마치 인간처럼 기계와 친숙하게 벗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아침에는 로봇과 함께 라디오체조를 하기도 하고 인기가수나 연예인 이름을 따다 로봇에 붙여 놓고 부릅니다.『고장났다』고 하지 않고 『병에 걸렸다.몸이 불편한가 보다』라고 말한다는 겁니다.서양에서는 로봇을 인간의 대립물로 보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물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적대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요.도구와 친화력을 갖는 전통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에서 로봇이나 전자제품은 보다 잘 수용되고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계의 개념이 바뀌어지는 데서 21세기의 문이 열린다.산업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도구관이 탄생되어야 한다.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많다.대체로 이러한 논법에서 산업문명 뒤에 오는 미래의 역사를 전망해 주셨습니다.다음에 계속하지요.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1

    ◎병풍원리/탈경계­탈구축개념의 미래는/「벽속의 고립」 서구문명 한계에/초가식 「열린 자아」가 대안으로/바슐라르 표현대로 서양 문화는/서방이 벽면으로 싸인 지하실형/병풍속서 태어나 병풍속서 죽는 한국인 정서공간은 매우 신축적 □황규호문화부장=선생님께서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하셨을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정막이 무너지고 하였지요.오늘은 그 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기를 전망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서구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벽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지요.가령 도시국가라는 것은 완전히 성벽안에 세운 도시지요.성벽밖에는 한데지요.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일찍부터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은 성벽이라는 제한된 구획속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커지려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서양의 성곽 달라 □동양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성벽으로 나라와 도시를 둘러친 것 말입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그렇구요. ■물론이지요.한자로 나라국자를 써보세요.국은 사각형의 구자로 싸여 있지 않습니까.그것이 바로 성곽이지요.그런데 자세히 비교해 보면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는 성밖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마을이 있고 자연의 숲이나 냇가에서 사람들이 퍼져 살지요.즉 성안과 성밖의 구획은 있어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러나 서양의 도시국가 형태는 성밖과 성안은 인간의 공간과 인외경의 자연 공간으로 대립적 관계로 파악되었지요. □서양의 벽은 아주 뚜껍다는 것이군요.나라의 성만이 아니라 개인집의 벽도…. ■그래요.왜 우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아요.얼마나 벽이 허술하면 말이 이렇게 밖으로 다 새어나갑니까.그런데 서양의 속담에는 「벽에는 귀가 있다」고 하지요.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사람의 비밀이야기는 샌다는 뜻입니다.실제로 서양집은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만든 것이아닙니까.그러나 한국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벽은 기둥과 기둥의 공간을 바른 것이지 가옥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군요.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집은 벽을 부수면 집 자체가 무너지고 말지요. ■그래서 첨성대같은 건축물이 가구적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볼때 아주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지 않아요.첨성대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돌을 쌓아 말하자면 벽을 쌓아올린 내력벽건축물이기 때문에 서구의 것과 같다고 할수 있어요. □결국 서양사람이 두꺼운 벽을 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적이고 개인의 자아중심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내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양사람 자신들이 자기네들의 문화적 특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요.바슐라르같은 사람은 서양문화를 지하실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하실은 사면이 벽이 아닙니까.그런데 지하에다 판 것이어서 그 벽은 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로 허물수 없는 두께를 갖는 벽이라는 것이지요.서구에서는 문화예술도 정치도 온갖 음모와 형별도 이 지하실속에서 이루어 졌다는 겁니다.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도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요.반대로 나치의 온갖 만행­고문같은 것이 바로 또 이 지하실에서 감행되었지요.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단편 벽을 보시면 이 벽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러져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에는 지하실이라는 것이 없군요. ■지하실 대신 개구멍이 있었지요.(웃음)담벽을 뚫는 것 그것이 개구멍이고 이 개구멍을 통해서 궁궐과 사가의 내통이 가능했고 이도령은 춘향과의 사랑을 가능케 한 것이지요.서양의 역사가 벽을 쌓는 이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벽을 뚫는 개구멍에서 비사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겠지요.농담이 아니라 옛날 시조를 보십시오.「십년을 경영하여 초로삼간지어내니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산천을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바람이 맘대로 들락 날락하고 달빛이 새어 들어오니 이집 벽이 어느 정도겠습니까. ○궁궐­사가 내밀통로 □산천은 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담벽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 종장을 특히 주목해서 읽어야 됩니다.둘러치고 보리라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 병풍이야 말로 동양 특히 한국인의 마음과 의식의 지평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라고 할수 있지요.병풍이야말로 가장 가볍고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신축성있게 적응하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벽이지요.필요할때 펴면 벽이 되어 공간을 분할하고 또 필요가 없을 때는 접어서 개켜 버리면 형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콘크리트 벽같으면 야단나지요.한번 허물거나 또 쌓으려면 대 공사를 해야 하지요.그런데 서양에는 병풍과 같은 것이 없었나요. ■스크린이라하여 간단히 접어 세우는 나무판때기의 가리개가 있긴 하지요.그러나 병풍과는 개념이 다릅니다.병풍과 같이 신축성 있는 벽이 생긴 것은 천재적인 발명가로 알려진 백민스터 프라에 의해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지요.우리가 왜 아코데온 벽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병풍은 중국이 기원이고 일본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동양학자 맥쿤의 증언대로 이 지상에서 병풍을 가장 생활화 하고 현재에도 많이 쓰고 있는 민족은 단연 한국이라고 증언하고 있어요.생각해 보세요.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곳이 어디예요.병풍속이 아닙니까.그러다가 돌날이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돌상을 받지요.서양식으로 결혼을 해도 폐백을 드릴때만은 화조 병풍이 있어야되지요.환갑연이 돌아오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잔치상을 받습니다.그러다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병풍이 그 시신을 가려주지요.죽고 난뒤에도 병풍과의 인연을 끊지 못합니다.젯상을 받을 때 돌아가신 혼백들을 감싸주는 것이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렇게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생의 장면들을 병풍으로 장식하고 죽고난뒤에까지도 병풍에 의존하게 됩니다.이렇게 쉽게 만들고 허무는 그 공간의 경계선처럼 한국인의 자아는 말하자면 「나와 너」「나와 세계」의 그 관계는 매우 신축성이 있습니다 ○군중속의 고독 낳아 □근대적인 자아란 콘크리트 벽처럼 두껍고 튼튼한 것이 아닙니까.그리고 거기에서 프라이버시가 생겨나고요. ■병풍식 자아는 타아와의 경계선이 애매하고 가변적인 것이어서 항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요.쉽게 나와 너의 공간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분리되기도 합니다.서구식 관점에서 보면,그리고 산업사회의 풍토로 보면 근대적 자아가 결여된 것처럼 보입니다.우리가 예사로 남의 프라이버시에 개입하기도 하고 침해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병풍식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지요.아주 대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소연을 하고 넋두리 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남과 함께 자신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요.그러나 서양영화같은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장면은 우리와는 반대로 「I just want to be left alone」이라는 대사입니다.「날 좀 혼자 있게 해줘」즉 남과 세계를 향해 두꺼운 벽을 쌓고 그 안에 혼자 들어가 앉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막같은 사회,혼자서 지하실벽을 응시하고 있는 거꾸로 찍힌 활자의 고독,군중속의 고독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요.영국의 경우 가옥수는 많은 데도 주택난이 심한 것은 혼자서 집 한채를 차지하고 사는 독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극단적인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무인도적 존재를 낳게 됩니다.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것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표류기가 우리나라의 소설에는 없지요. ■무인도의 발견·무인도에의 표류­그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혼자 표류했지만 그 속에서 농업과 산업을 이룩합니다.혼자의 힘으로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나중에는 프라이데이라는 노예까지도 두게 됩니다.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로빈슨은 근대시민사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빈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인류가 걸어온 문명의 역정을 그 무인도에서 재현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이 개인의 힘,그 창조력과 자유에 토대를 둔 사회가 바로 근대 시민사회라고 하겠지요. 개척민이 만든 미국의 역사는 바로 로빈슨이 이룩한 그 표류도의 역사를 확대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우리가 표류기 없는 문학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 자아가 없는 문화속에서 살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남북 분단으로 우리는 할 수 없이 이산 가족이 되었고 그 슬픔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스스로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서기를 합니다.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의 원형이라는 마운틴 맨이 그렇습니다.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서 몇달이고 움막속에서 생활하면서 비바를 잡아 모피를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이지요.그리고 문학을 보아도 마크트웨인의 헉크핀의 모험에서 시작하여 멜빌의 백경,그리고 헤밍웨이의 여러 소설들은 모두가 가정에서 도망쳐 나오는 남자들의 이야기들이지요.그런데 이 두꺼운 자아의 지하실 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 앉는 소리와 그 서사극의 종말을 우리는 서구의 새로운 소설철학 그리고 실제의 현실속에서 목격하게 됩니다.이른바 「보더레스」(경계선없는)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없는 시대 도래 □보더레스라는 말은 주로 경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지요.기술 자본 상품등 다국적 기업이나 자유무역 등으로 오늘날의 기업이나 산업은 국경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가령 미국제 자동차라고 하지만 그 엔진은 멕시코에서 만들고 부품은 일본에서 그리고 차체와 디자인은 이탈리아가 맡는 식으로 말입니다.과연 그것은 미국제라고 할수가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그러나 그것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인간의 자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자의 경계가 불투명합니다.경계침범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요.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사물도 그래요.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사물들의 윤곽이란 것도 결코 그렇게 딱딱하고 분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존재하는 한 동물과 식물의 경계선이라는 것도 확실치가 않습니다.우체통을 보십시오.우체통은 폐쇄된 공간이 아닙니까.그러나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으면 넓고 먼 세계로 그 편지가 운반됩니다.우체통은 폐쇄공간이 아니라 열려져 있는 넓은 공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안과 밖이라는 개념도 그래요.호주머니를 흔히 내부공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외부가 안으로 침범해 들어온 것이 바로 호주머니가 아닙니까.호주머니 속은 「안」이 아니라 「밖」의 것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이 탈구축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서구 근대문명의 허구와 한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것은 병풍 같은 자아속에 잠재된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다음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 병풍을 두르도록 하지요.
  • 죽어가는 사람들(요덕 15호 북한 정치범수용소:2)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폐렴걸린 「수라」 약없어 “허무한 죽음”/담요로 시신말아 언땅 파고 매장/딸잃은 어머니 눈밭 뒹굴며 통곡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부장) 양승현(정치부)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방안에 켜놓은 관솔불의 마지막 불꽃이 막 사위려했다.흙으로 덕지덕지한 판자벽 틈새로 밤사이 내려 쌓인 눈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늘도 부토작업이 있는데…또 죽었구나』 강냉이 주먹밥 하나를 먹고 하루종일 눈속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매일 이 모양이지만 눈오는 날은 더욱 힘들다. 아침 식당에서 강냉이밥 한그릇을 먹고 곧장 평풍골 계곡으로 이동하면 하루 종일 허기와 추위속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눈밑에 쌓인 부엽토를 지게에 담아 3㎞가 넘는 눈덮인 계곡길을 어두워질 때까지 오르내리는 일은 정말 힘들다. 점심때가 되면 이미 꽁꽁 얼어붙어버린 강냉이 주먹밥을 겨드랑이 밑에 넣어 녹여 먹는다.일하는 틈틈이 감시보위원의 눈을 피해 도토리와 마른 머루를 주워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새벽녘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여인의 울부짖는 소리는 이내 통곡소리로 바뀌었다.수라네 집쪽이었다.불길한 예감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수라네 집으로 뛰쳐 올라갔다. 수라는 달포전부터 감기를 앓아왔다.못먹고 쉬질 못해서인지 최근 폐렴으로 악화됐다.작업장에서 보면 핼쓱한 얼굴에 각혈까지 하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했다. 이곳엔 약이 없다.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그뿐이다.죽을 죄를 지었는데 살려둔 것만도 당의 은총이며 배려인 것이다. 수라의 어머니가 자는듯이 누워있는 수라를 붙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수라야,니가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누가 우리 불쌍한 수라 좀 살려주소』 밤새 죽어가는 딸을 껴안고 몸부림 친듯 수라의 어머니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잠겨가는 목소리로 이름만을 부를 뿐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싸늘한 냉기뿐인 방 한 구석엔 4명의 남동생이 웅크리고 앉아 누이의 주검과 어머니의 몸부림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수용소에는 장례식은 물론 관이나 수의가 없다.먼동이 트자마자 보위원으로부터 매장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매장조로 편성됐다.한나절은 부엽토작업을 않게 된 것이다. 헌 담요조각으로 시신을 둘둘 말아 묻는게 예사였으나 왠지 수라만은 그렇게 묻을 수가 없었다.여기 저기서 판자쪽을 주워모아 관을 만들었다.관에 내 몫으로 배급받은 강냉이밥알을 한주먹 싸서 넣었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수라를 묻은뒤 도저히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 였다. 관을 메고 나오는데 수라의 어머니가 몸부림치며 다시 매달렸다.『불쌍한 수라야,수라야』미친 사람처럼 산발한채 맨발로 우리 뒤를 따라왔다.넘어지면 일어서고 딸이름을,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고… 다시 눈밭을 뒹굴고… 마치 자신도 죽으려는 사람처럼. 병풍산을 향해 관을 메고 가면서 모두 울고 있었다. 겨울내내 얼어붙은 땅은 여간 단단하지 않았다.괭이로 한나절을 팠는데도 겨우 40㎝ 정도였다.가까스로 묻고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수라는 14살 때인 76년 이 곳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0년만에 죽었다.수라아버지는 북송교포였고 어머니는 북한 처녀였다.수라아버지는 자신때문에 가족들이 이 지경이 되었다며 늘 괴로워 했다.그래서일까.얼마전 정신착란을 일으켜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산속의 외딴 정신병자격리 「요양소」로 끌려가 버렸다.남자없는 수용소안의 가족세대는 더욱 비참하다.땔감이나 배급강냉이와 섞어먹을 풀들을 구하기가 힘들다.죽기직전까지 수라가 그 일을 다했다. 아프기전 풀을 뜯다 들판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수라를 먼 발치에서 여러번 봤다.우리들은 작업도중 땅을 팔때 동면중인 개구리나 뱀을 발견하면 잡아다 수라에게 먹였다.전혀 약을 구할 수 없는 수용소에서는 스스로 영양보충을 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착하고 아름답던 24살의 처녀수라의 죽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4년간 12만명 아사/“소말리아 어린이를 돕자”

    ◎유니세프 문예인클럽,25일 강남Y회관서 「사랑의 장터」 열어/노 대통령 등 각계 300여명 참가/기증품 판매·자선공연 등 개최/「소말리아빵」 특별주문… 고통 함께 나누기 행사도 내전과 가뭄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말리아 어린이를 돕기 위한 대규모 자선행사가 열린다. 25일 상오11시부터 하오 6시까지 서울 논현동 강남YMCA회관에서 열리는 「소말리아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장터」가 그것.유니세프 문화예술인클럽(회장 박용구)이 마련한 이 행사에는 노태우대통령을 비롯,전두환전대통령 이수정문화부장관 김수환추기경등 정치·경제·문화·종교·언론·연예·스포츠 등 각계각층의 인사 3백여명이 자신의 소장품 또는 성금을 내놓는다.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내전과 가뭄으로 목숨을 잃은 소말리아인이 12만여명.현재도 1백만명이 넘는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아사직전의 위기에 놓여있으며 전체 어린이의 절반이상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6·25의 잿더미속에서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도울수있을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 마련된 이번 「사랑의 장터」는 기증 소장품의 전시판매와 공연,소말리아 빵 맛보기 행사등으로 진행된다. 전시판매될 소장품 가운데는 국립국악원장 이승렬씨가 사용하던 가야금,서양화 구상화단의 독보적인 중진화가 오승우씨가 아끼는 자신의 작품,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씨가 가보로 지녀 온 서예병풍,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그린 파스텔화,프로야구선수 장종훈씨가 사인한 기념시계와 야구공,탁구선수 유남규·현정화·김택수씨가 사인한 탁구라켓,인간문화재인 판소리 명창 박동진씨가 애용하던 합죽선등이 포함돼 있다.그밖에 소설가 박범신씨,국악인 황병기씨,문학평론가 김병익씨,음악인 박은희·이경숙·김남윤씨,무용가 문일지씨,프로바둑기사 조훈현씨,만화가 김수정·이보배씨등도 자신이 서명한 책·음반 및 각종 소장품과 성금을 기증했다.기증품중 진귀한 소장품은 경매에 부쳐질 예정. 또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공연프로그램에는 한국계 러시아 성악가인 넬리리씨,박동진명창,개그맨 이상운씨,가수 김세환·이택림·김창완씨등이 출연하겠다고 발벗고 나섰으며 소말리아 어린이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먹는 소말리아빵은 특별주문됐다. 이 행사를 마련한 유니세프 문화예술인클럽은 전세계 불우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사업취지에 공감한 국내 문화예술인 50여명이 모인 유니세프 후원단체.91년 11월 결성된이래 지난 5월 국립국악당에서 자선공연 「보리죽과 우리가락」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아프리카난민 어린이를 위한 기금으로 유니세프에 전달한바 있다.
  • 성신여대 박물관서 조선시대 민화 도난

    지난 4일 하오 3시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교내 박물관 제3전시실에 전시돼 있던 조선시대작품 8폭 병풍의 민화가 예리한 칼로 도려진 채 없어진 사실이 13일 밝혀졌다. 박물관 직원 권근자씨(31·여)는 『4일 하오 3시쯤 제2전시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한뒤 제3전시관으로 가보니 꽃·책등이 그려진 가로 30㎝,세로 97㎝크기의 조선시대 민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 노송·맑은 물 어우러져 자연미 극치/동해시 무릉계곡

    ◎청옥산·두타산 사이로 암반 14㎞ 뻗쳐/3단으로 된 용추폭포 절경중의 절경/명필 양사언 등 선인들,비경예찬 각자남겨 고려 충렬왕때 정치가이자 학자인 동안거사 이승휴가 절경에 반해 정3품 벼슬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높이 1천4백3m의 청옥산과 1천3백53m의 두타산이 합작해 빚어낸 무릉계곡은 이름그대로 수백년도 넘어보이는 낙락장송과 흰 반석위를 흐르는 맑은 물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특히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려도 깨지지 않을듯해 보이는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선 노송을 보고 섰노라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게다가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은빛 폭포수는 한층 높이 올라간 파란 하늘에 반사되어 비경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문간봉 남쪽 절벽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용추폭포는 무릉계곡 내 숱한 명승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힌다.상단 중단 하단으로 연결되어 일명 「삼단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용추폭포는 주위의 뛰어난 경관과 조화를 이뤄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이 폭포의 높이는 상단과 중단이 각각 20여m이고 하단이 10여m.장엄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선녀탕을 연출한 이 폭포는 1백여m아래 60여m높이의 쌍폭포로 이어져 암벽에 늘어선 단풍나무들과 함께 오는 가을 또한차례 단풍축제를 요란스럽게 펼칠 전망이다. 무릉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선인들이 무릉반석위에 남긴 성명각자에서도 잘 엿볼수 있다.조선조 선조때 강릉부사를 지냈던 명필 양사언은 무릉반석 위에 두타산의 절경을 예찬하는 초서각자를 남겨 신력에 가까운 그의 달필을 보여주고 있다.속세를 떠나 무릉반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명승을 찬미하던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석은 광장과도 같아 수백명이 한꺼번에 앉아 즐길수도 있다.본래는 평평한 모습이었으나 1920년쯤 지각변동으로 균열이 생겨 지금처럼 층계를 이루며 기울어졌다고 한다.지금은 자연훼손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을 찾은 시인 묵객들의 성명각자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무릉계곡은 길이가 14㎞나 된다.동해시청에서 무릉계곡 입구까지는 19.1㎞이고 도중에 용산서원과 쌍용시멘트공장 앞을 지나게 된다.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산이 높고 산세가 험한만큼 아무리 최단코스라 하더라도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등산객들이 흔히 택하는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두타산∼산성터∼삼화사 코스의 경우 19.6㎞로 9시간30분가량이 소요된다.또 삼화사∼두타산성∼두타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코스는 16.5㎞로 8시간가량이 걸리며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 등정은 17.6㎞에 7시간40분가량이 소요된다. 동해시에서 무릉계곡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다닌다.무릉계곡입구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계곡입구에는 30여채의 식당과 민박집이 있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산에 오르면 등산이 훨씬 쉬워진다.
  • 주민들 여름나기 실태와 북녘 명소(오늘의 북한)

    ◎「가족피서」 엄두도 못낸다/여행허가절차 복잡… “집에서 휴식”/원산 송도원·명사십리등 곳곳에 해수욕장/한반도 절경 금강산·백두산도 천혜 관광지 여름 한철,과연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더위를 나고 있을까. 북한에도 피서가 있을까.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는 북한주민들도 연간 14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고 있다.따라서 피서 나들이도 가능하다.그러나 말뿐이지 실제로 북한주민들이 여름철에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장거리 피서를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거주지 밖으로 나가려면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북한 전 지역의 절반이 여행제한지역이어서 누구든 외지로 나가려면 먼저 여행 14일 전에 직장책임자에게 신고,내락을 받아야 한다.최종허가는 4∼5차례에 걸친 신원조회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아야 떨어진다.여행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맨 먼저 현지 인민반을 찾아가 도착「신고」를 해야 한다. 또 휴가를 떠나려면 공장이나 기업소,협동농장의 근로자들은 휴가일분 만큼의 작업량을 미리 달성해 놓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가 않다. 일반노동자와 사무원의 경우는 분기당 한장씩 배당되는 「휴양권」을 타야 경승지와 온천지역에 설치된 휴양소를 이용할 수가 있다.그러나 소속 노동자수에 비해 형편없이 모자라게 나오는 휴양권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는게 귀순자들의 증언. 이처럼 집떠나기가 어렵다보니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휴가를 그냥 집에서 쉬는 것으로 대신한다. 북한주민들이 많이 찾고 또 북한당국이 근로자를 위한 정양소나 휴양소를 설치해놓은 북녘의 대표적인 휴양지와 피서지는 다음과 같다. ◇평양주변 ▲대성산유원지와 중앙 동·식물원=18만㎦의 부지 위에 각종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대성산성을 비롯,20여개 성문터와 안학궁터등 역사유적들이 있다.6백여종·4천여마리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동물원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날씨가 화창한 날엔 5만여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이외에 능라도 유원지,김일성의 출생지인 만경대에서 그리 멀지않은 갈매지벌과 송산벌에 걸쳐 조성된 만경대유희장도 대표적인 놀이시설.이곳의 부지면적은 60만평에 이르며 하루 수용인원은 10만명,50여종의 놀이기구가 갖춰져 있다. ◇남포지역 ▲와우도해수욕장=항구 서쪽에 위치한 인공해수욕장.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과 더불어 북한의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남포·평양주민의 여름철 휴식및 피서지로 이용된다.주변에 숲과 산책로,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빠징꼬,당구장,디스코클럽 등의 위락시설을 갖춘 외국 관광객용 월드 홀(87년 개관)이 있으며 객실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와우도호텔 등이 유명하다.또 남포시 항구역에는 호수와 울창한 소나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우산국민휴양지가 있다. ◇원산지역 ▲명사십리=갈마반도 해안에 자리잡은 길이 4㎞ 폭40∼1백m의 모래해변으로 주위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얕고 넓은 해변으로 유명하다.모래알이 곱고 가늘어 맨발로 걸어가면 발아래서 나는 부드러운 마찰음이 흡사 모래가 우는듯하다 하여 「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송도원=북한 제일의 해안휴양지구로 명사십리와 함께 원산 2대명소의 하나.배후지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잔디밭,계곡이 유명.북한은 이곳에 유원지,꽃동산,임간 레크리에이션시설,노천극장,경마장,동방식공원을 조성해놓고 있다. ◇개성지역 ▲박연폭포=황진이 서화담과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명소.폭포위 개울 소인 박연(직경 8m)에서 화강암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이 폭포는 높이가 35m나 된다.그 아래로 직경 40m의 고모담과 근로자를 위한 박연휴양소가 있다. 이외에도 개성지구에는 고려초기에 세워진 유학교육기관 성균관,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릉,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절개를 지키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선죽교가 있다. ◇백두산지역 백두산 천지를 비롯,각종 온천휴양지와 삼지연,이명수폭포등이 있다.일망무제의 나무바다속에 자리잡은 삼지연은 백두산의 화산활동으로 나란히 생긴 세개의 자연호수로 그중 가운데 호수가 가장 아름답고 크며 잔잔하다.짙푸른 물,호숫가의 모래와 돌부스러기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으며 호반에는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북한은 이곳을 「혁명의 성지」라 일컬으며 삼지연혁명사적관,노동자각,소년단각등을 설치, 김일성 우상화작업을 위한 사상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금강산지역 한반도의 천하절경으로 그 위치와 독특한 경치에 따라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구분된다.여성미를 띠고 있는 내금강의 비로봉 만폭동 명경대,남성미를 갖춘 외금강의 만물상 구룡폭포 상팔담 옥류동,그리고 해금강의 해만물상과 총석정 삼일포등은 경승의 극치를 이룬다. 이밖에 강원도 통천군에는 일광욕장 낚시터 온천장 물리치료실 요양소 등 휴양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석호 시중호가 있다. ◇묘향산지역 묘향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온 산을 뒤덮은 향나무·측백나무의 그윽하고 묘한 향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만폭동 문수동 상원동 계곡의 무릉과 비선폭포외에 임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5천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운 보현사를 비롯, 많은 불교유적들이 있다. 그러나 보현사 윗 계곡에 김일성·김정일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둔 국제친선전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경관이 크게 망가졌다는게 이곳을 다녀온 해외동포들의 전언.최근에는 김강산에 이어 묘향산 바위들에도 소위 「글발」새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김일성우상화 비석들도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몽금포지역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로 유명한 옹진반도 장산곶과 인접 해변가의 소나무숲과 모래밭,코끼리바위같은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그러나 아직 관광지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개발돼 있지는 않다.
  • 무등산/금강산 옮긴듯 암석미 절경

    ◎서석대 병풍바위·입석대 돌기둥 장관/철쭉만개 정상오르면 광주시 “한눈에”/증심사등 문화유적 많아… 늦가을 수박도 유명 광주 무등산은 암석미가 빼어나 예로부터 묘향산·구월산과 함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3대 진산으로 꼽혀왔다.정상이 부러워 천왕봉(1천1백87m)을 우러러보고 있는 서석대는 마치 김강산 해금강 한쪽을 옮겨놓은듯 하며 5∼6모 돌기둥을 10∼16m높이로 밀어올린 입석대도 석수가 먹줄을 튕겨 깎아 세운듯한 형상이다.게다가 천왕봉과 지왕봉 인왕봉주변에는 요즘 철쭉이 만발해 절경을 더한층 아름다운 비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광주시와 전남 담양 화순군등 1직할시 1도 2개구 2개군에 걸쳐 솟아오른 이 무등산은 총면적이 30.23㎦.높이는 1천2백m안팎으로 다른 영산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봄의 진달래,여름 산나리,가을 단풍과 억새,겨울의 설경과 빙벽은 무등산이 자랑하는 자연경관이다. 그중에서도 서석대의 사시사철은 그야말로 장관이다.청명한 휴일을 택해 서석대에 올라보면 광주시가지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멀리 남도의 풍경이 비단처럼 펼쳐져 천하를 한손에 넣은듯한 느낌이다. 「더할 나위 없다」는 뜨의 무등산은 고려시대에는 상서로운 돌산이라하여 서석산으로 불렸으며 세월을 거치면서 사연도 많아 무진악·무악·무랑산·무덤산·무정산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전남도립공원이기도 한 무등산은 영산답게 증심사 원화사 약사암 규봉암 관음암 충장사 충민사 경열사 등 많은 문화유적을 안고 있다.또 노거수등 천연기념물이 32점이나 있고 8백97종의 각종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특히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거둬들이는 맛좋은 수박은 이 고장이 자랑하는 제일가는 명산물이다.등산도중 만나는 지석묘 고분옹관묘 석등 불상등엔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무등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대개 네갈래로 나뉜다.무등산장 입구에서 오르는 길과 증심사앞,지원동,이서면에서 각각 출발하는 길이다.그러나 등산로로는 규봉암코스와 세인봉코스가 애용된다.규봉암코스는 산장→꼬박재→신선대→규봉암→장불재→중머릿재→대피소→왕산나무→증심사로 이어지는 등산로.전장 13,9㎞로 3시간30분가량 걸린다.세인봉길은 증심사입구에서 떠나 약사암→세인봉삼거리→중머릿재→봉황대→토끼등→바람재→늘재를 지나 산장까지 이어지는 11㎞의 코스로 2시간30분가량이 소요된다. 무등산장입구와 증심사,원효사계곡은 집단관광지구로 개발되어 시내버스가 다니고 여관,산장,식당등이 즐비하다. 철도나 호남고속도로 88고속도로편으로 광주에 도착해 택시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등산코스가 시작되는 산장이나 증심사까지 쉽게 갈수 있다.무등산장은 광주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14㎞거리이며 증심사는 7㎞거리에 자리하고 있다.승용차를 타고 무등산장으로 오르는 아스팔트길은 구절양장이어서 승차감이 이루 비길데 없다.
  • 「6시간 축제」 민자전당대회 이모저모

    ◎“힘모아 대선승리” 다짐과 환호와…/“후보선출” 선언에 전원 기립축하/수락연설 도중 16차례 박수받아/노 대통령,“당대회 용광로삼아 무쇠결속 이루자” 14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민자당의 제2차전당대회가 19일 상오 전체대의원 6천8백82명중 6천7백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려 시종 차분한 분위기속에 6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후보 선출 행사.이종찬후보의 경선거부로 사실상 단독후보가 된 김영삼후보가 유효표 66.3%의 높은 지지율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의장 만장일치 선출 ▷대의원입장◁ 이날 대회는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이 김대표와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및 당3역등 지도부와 함께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이날 대회장에는 「6·29는 민주마당,5·19는 화합마당」 「뜻모아 후보선출 힘모아 정권창출」등의 대형 현수막이 나붙어 분위기를 진작. 이날 공식행사는 상오10시 사회자의 성원보고로부터 투표직전까지 1시간동안 당기입장,당약사 보고,의장단선출,총재·최고위원선출,총재치사순으로 예정된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 ▷의장단선출◁ 김종필최고위원의 개회선언에 이어 임시의장으로 선임된 정석모의원은 곧바로 전당대회의장단 구성안건을 상정,대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속에 박준규국회의장을 전당대회의장으로,구용상 전남 화순지구당위원장과 김장숙전국구의원을 부의장으로 하는 의장단을 선출. 박의장은 인사말에서 『2백만 당원들이 마시는 우물속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며 경선을 거부한 이후보 지지대의원들의 돌출행동을 사전 경계하며 김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유도. 대의원들은 또 노총재를 비롯,김대표와 김·박최고위원등 현수뇌부의 재선출을 결의. ▷총재연설◁ 노대통령은 총재연설을 통해 『후보의 자유경선은 당원동지 모두의 뜻이며 국민의 바람』이라고 강조하고 『바로 이것이 6·29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 믿고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 노대통령은 그러나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했다』고 이후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뒤 『지금 이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데 없다』며 참된 경선이 되지못한 아쉬움을 표시. ○“경선거부 납득못해” 노대통령은 또 『부동산투기를 제거하고 2백만호 주택건설을 과감히 추진,땅값과 집값을 잡은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번 대회를 거대한 용광로로 삼아 우리 동지들은 무쇠와 같은 결속을 이뤄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역설,장내는 우렁찬 박수. ▷투표진행◁ 상오11시쯤 이원경선관위원장의 투표개시선언과 함께 시작된 6천7백13명의 참석대의원들의 투표권행사는 점심시간과 겹쳐 하오1시 이후까지 진행. 노태우총재는 이선관위원장과 이춘구사무총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김영삼후보·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과 함께 제1기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 이에 앞서 이선관위원장은 후보자등록결과보고와 함께 후보자 약력 및 투표절차 등을 소개. 이선관위원장은 먼저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9선의 관록 ▲3선개헌반대투쟁 및 야당총재4선▲집권당 대표 경력등 화려한 김후보의 정치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나 경선거부를 선언한 이후보에 대해선 『이후보 약력이 아직까지 선관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배포된 유인물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고 약력소개를 생략. 한편 이날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6천6백60명이 투표에 참가,99.2%의 높은 투표참가율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53명은 일괄적으로 기권처리. 한편 이후보 선거대책본부인사들은 이날 상오 대회장부근 탄천주차장에서 이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비롯한 홍보유인물을 나눠줘 눈길. ▷김후보선출선언◁ 이날 하오 1시5분쯤부터 20개 투표함을 모두 개봉하고 개표에 들어간 당선관위는 개표시작 1시간 45분만인 2시50분쯤 작업을 모두 완료.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53명이 기권,6천6백60명이 참가한 이날 투표결과는 김후보 4천4백18표,이후보 2천2백14표,무효 28표로 공식집계. 이어 이원경선관위원장으로부터 선거개표결과를 서면으로 보고받은 박준규의장이 하오3시15분 『김영삼후보가 민자당의 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발표했고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전원이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당선을 축하. ○일부선 “이종찬” 연호 노총재와 김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자 풍선5백여개를 엮어만든 대형 당기 2개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노총재와 김후보의 대형초상화를 병풍처럼 펼쳐 분위기를 한껏 고조. 김후보가 이어 수락연설을 하는동안 대의원들은 「대선승리」등을 강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16차례의 힘찬 박수로화답하며 「김영삼」을 연호했으나 일부 대의원들은 간간이 「이종찬」을 연호하기도. ▷후보수락연설◁ 개표결과가 공식발표된뒤 김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여러분께서 저를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해 주신데 대해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일성. 김후보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를 의식,『이 뜻깊은 자리에 우리당의 몇몇 동지가 함께 자리하지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우리모두 겸허한 자기반성으로 당의 단결과 화합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나가야 할것』이라고 강조. 김후보는 또 『이번 대선은 21세기 길목에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규정짓고 『통일을 앞당기고 민주화를 완성시키며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하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날 것』이라고 그 중요성을 거듭 역설. ▷노대통령 축하연설◁ 노대통령은 개표가 끝난 이날 하오 3시15분쯤 다시 대회장에 입장,김후보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김후보의 손을 들어주AU 단상앞으로 나가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인사. 이순간 여성당원 2명이 노대통령과 김후보에게 축하꽃다발을 각각 증정. 노대통령은 김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난뒤 짤막한 축하인사말을 통해 『2년전 김후보의 구국적 결단이 있었기에 민자당이 창당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당운영에서도 김후보는 3당통합정신을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다』면서 『기필코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당원의 기대에 보답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나는 당헌 제23조에 의거 대표최고위원에 김영삼최고위원을 지명한다』고 선언. ▷이후보측반응◁ 이날 대회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로 비교적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이후보측 인사들의 참석여부가 주된 관심으로 부각. 이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채문식고문과 윤길중고문을 포함,박철언·김용환·장경우·오유방·김현욱·조영장의원과 박범진·박명환·박주천당선자등 대책위원들은 불참. 그러나 이후보의 경선거부에 반대한 이한동·박준병의원을 비롯,심명보선거대책본부장과 김중위·최재욱·강우혁·이진우의원 및 양창식·남재두·구천서당선자 등은 참석해 한표를 행사. ▷식전행사◁ 공식 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열린 식전행사는 연예인 박상규씨의 사회로 상오9시부터 50분간 진행. 식전행사에서는 풍물패의 풍물놀이에 이어 가수 조영남·주현미씨가 「우리는」「짝사랑」등을 열창,흥을 돋우었으며 민자당의 여성당원으로 구성된 21세기 합창단이 「선구자」를 합창. 이어 북방외교,보통사람의 시대,지방자치제 실시,3당합당등을 내용으로한 「6공화국이걸어온 길」을 멀티비전을 통해 상영.
  • 스승의 날 장관상 받는 신안 병풍도국교 조동헌 교사(이사람)

    ◎섬마을 선생님 외길 26년/“고향의 지식등대” 어느덧 환갑/동네마다 공부방 마련… 저녁에도 호롱불 수업/도로확장등 지역개발에도 앞장… “참스승” 칭송 낙도 어린이들을 가르치느라 젊음을 바친 할아버지 선생님.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리 병풍도국민학교 조동헌교사(60)는 1·2학년 학생 10명을 교사에서 50여m쯤 떨어진 바닷가로 데려가 현장수업을 하고 있었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타고 조교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맑게 퍼져나갔고 아이들은 또렷또렷한 눈망울을 굴리며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학생 50명,교사 5명이 전부인 이 외딴 섬마을 학교는 조교사가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한 곳이며 교직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조교사는 지난 59년 전남대 상대를 졸업한 뒤 일반회사에 근무하다 「고향발전과 2세 교육」이라는 평소의 꿈을 이루기 위해 66년 교직에 투신했다. 첫 임지로 고향인 병풍도를 자원,그해 초 부임한 조교사는 10여년전 고향을 떠날 당시에 비해 변함이 없는 마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조교사는 곧바로 3개 자연부락별로 8개의 공부방을 마련해 저녁마다 호롱불 아래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또 아이들에게 공책에 글자를 빽빽이 써 반복연습을 유도하는 「까맣게 쓰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1∼2학년을 집중교육시켰다. 그 결과 아이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돼 병풍도국교는 학력수준이 신안군내 1백여개 국민학교,58개 분교가운데 10위안에 드는 모범학교가 됐다. 그러나 조교사는 아이들의 학력향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주민들을 설득해 마을공동도로를 확장하고 화장실 개량등에도 앞장섰다. 특히 60년대 후반 이 섬에 들쥐가 극성을 부려 농사에 큰 타격을 입히자 육지에 나가 고양이 20여마리를 구입,마을에 풀어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병풍국교 교사로서보다 병풍마을의 지도자로서 주민들의 존경을 받게 됐다. 조교사는 69년 임기를 끝내고 인근 증도면 전증국교로 옮겼으나 병풍도 주민들의 성화에 못이겨 2년만에 되돌아와야했다. 이같은 일은 반복돼 조교사는 만26년의 교직생활중 20년을 병풍도에서 보냈으며 이번 근무는 4번째로 83년이후 계속해 오고 있다. 자신과 자녀 모두가 조교사에게 배운 「제자 2대」라고 밝힌 이장 이운학씨(45)는 『선생님은 주민들에게 주체의식과 협동정신을 앙양시킨 낙도의 참스승이자 고향의 상록수』라며 그의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교사는 자신이 낙도에서 학생교육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박연례씨(59)가 이해하고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면서 모든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그의 자녀 6남매는 섬을 떠돌아다니는 생활 속에서도 모두 대학을 마쳐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중 맏아들 용씨(34)는 춘천 한림대 의대교수로,셋째아들 삼구씨(28)는 일류기업체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아직 평교사인 그는 그동안 전남도교육감포상을 4차례,교육연합회장상을 1차례 받았으며 15일 스승의 날에는 교육부장관상을 받는다. 『고향에 남아 못다한 2세교육에 여생을 바칠까 한다』는 그의 미소 속에는 참교육의 의지가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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