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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희 전역 “‘무한도전’ 종영 아쉬워..앞으로 재밌는 모습 보여드릴 것”

    광희 전역 “‘무한도전’ 종영 아쉬워..앞으로 재밌는 모습 보여드릴 것”

    가수 겸 방송인 광희가 MBC ‘무한도전’의 종영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3월 13일 입대했던 광희는 7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선양 광장에서 취재진들과 팬들을 향해 전역 인사를 했다. 이날 광희는 “병장 황광희, 전역 인사드리겠습니다 충성”이라고 취재진 앞에 경례를 한 뒤 “많이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늘 날씨도 추운데 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광희는 “군대에 있었을 때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무한도전 멤버들”이라고 답했다. 앞서 광희는 MBC ‘무한도전’ 멤버로 합류해 활약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군복무 기간 도중 ‘무한도전’은 종영됐다. 광희는 “종영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는 질문에 “무한도전 종영은 아쉬웠지만 딱히 드릴 말씀이 없어서…”라고 답한 뒤 “따로 통화하고 만나기로 해서 괜찮다”며 멤버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복귀를 예고한 광희는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섭외가 오면 할 것”이라며 “재미있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왜 국민들은 대체복무 기간에 분노할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왜 국민들은 대체복무 기간에 분노할까

    군 복무는 ‘고생’ ‘짐’일 뿐대체복무에 대한 불만으로흔한 할인 혜택조차 없어자긍심 높일 방안 찾아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기간 산정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군 복무에 준하는 강도로 대체복무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부터 ‘현역보다 긴 기간을 근무하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주장이 맞섰습니다. 국방부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과 형태를 ‘36개월 교도소 합숙 근무’로 잠정 결정했습니다. 34~36개월을 복무하는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와의 형평성을 맞춘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왜 많은 분들이 대체복무 기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군 복무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 특히 남성들이 자긍심을 가져야 할 신성한 의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군 복무를 ‘고생’, ‘짐’ 정도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용한파…군 복무 ‘손해’ 인식 고용한파는 이런 인식을 굳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 2009년 금융위기 최대폭, 최장기간 고용률 하락은 청년들이 군 복무를 ‘손해’라고 여기게 했습니다. 헌법 제39조 제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했지만 많은 청년들은 군 복무 자체를 ‘불이익한 처우’로 보고 있습니다. 2016년 국방부가 육·해·공군 현역병사 2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현역병사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복수응답)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가장 많은 65.1%가 ‘진로(취·창업)’을 꼽았습니다. 계급이 높고 고학력자일수록 진로 고민이 많았습니다.그 다음은 제대 이후 사회적응에 대한 불안감’(50.4%), ‘군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에 대한 부담감’(48.8%)이었습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대부분 제대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한 것입니다. 군 복무 관련 내용을 고민한다는 비율은 14.6%로 극소수였습니다. 수십년을 내다봐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 20대 초반에 사회와 단절돼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군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병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입영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입대 전 군에 대한 이미지로 ‘나빴다’고 응답한 비율이 46.6%나 됐습니다. 반면 긍정적인 응답을 한 비율은 12.6%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군 입대 전 이미지 “나빴다” 46.6% 군 복무를 마친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군무새’(군대와 앵무새를 합성한 신조어)라고 비하하거나 직장에서 “군대도 다녀온 사람이 왜 굼뜨게 행동하냐”는 비아냥을 받기 일쑤입니다. 군 복무는 오로지 의무나 고생스러운 것일 뿐 자긍심을 갖게 할 만한 요소가 보이질 않습니다.정부는 매년 10월 ‘제대군인 주간’을 마련하고 5년 이상 장기복무한 직업군인에게 롯데시네마,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에서 특별 할인 행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의무복무한 병사들은 수능시험을 치룬 학생들도 받을 수 있는 그 흔한 할인혜택조차 못 받습니다.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제대 병사를 위한 지원책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나마 최근 정부는 군 복무 고충을 헤아려 육군 기준 복무 기간을 현행 21개월에서 2021년 말까지 18개월로 단축했습니다. 해군은 23개월에서 20개월, 공군은 24개월에서 22개월,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에서 21개월로 각각 복무기간이 줄어듭니다. 병사 월급도 병장 기준으로 올해 40만원인 봉급을 2020년 54만원, 2022년 67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릴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40만원은 올해 월 최저임금 157만 3770원의 4분의1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병사들의 자긍심을 높이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런 군에 대한 불만은 양심적 병역 거부 대체복무 기간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갔습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8%가 병역 거부자의 무죄 판결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심지어 육군 복무 기간의 2배인 36개월에 대해 ‘부족하다’는 의견이 65.3%로 가장 많았고 ‘적당하다’는 의견은 34.7%에 그쳤습니다. ‘과하다’는 대답은 0%로 아예 없었습니다. ●군 복무자 수고로움 헤아려야 군 복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 현역 복무자의 취업기간은 면제자 등과 비교해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6년 학술지 ‘국방정책연구’에 발표된 ‘대학생의 군복무가 구직기간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복무자의 취업기간이 사회복무요원에 비해 1개월 빨랐고, 면제자보다는 5개월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그렇지만 1년이 넘는 복무기간과 비교해 줄어드는 취업기간은 너무 짧습니다. 이점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약한 수준으로, 연구진도 “군 복무 기간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취업기간이 짧지는 않다. 현역 복무자의 사회적 지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부는 대체복무 기간 논쟁 이면에 깔려 있는 군 복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군 복무자의 자긍심을 높일지, 국방의 의무를 지는 분들의 수고로움을 어떻게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을지 고민할 때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국민청원 합니까 여론재판 합니까

    국민청원 합니까 여론재판 합니까

    문재인 정부의 ‘신문고’를 목표로 출범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각종 사건·사고를 둘러싼 논란과 이슈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국민이 정책을 제안하고 의견을 내는 직접민주주의의 효과도 있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집단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의견 수렴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부정확한 사실이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 국민들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지난 13일 발생한 이수역 폭행사건은 14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글이 올라온 뒤 사건 발생 6일째인 18일까지 진실 공방과 성대결의 재료로 변질됐다. 처음 청원글이 올라왔을 때에는 ‘여성 혐오 범죄’로 알려지며 “가해 남성을 엄벌하라”는 의견에 30만명 이상 동의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여성들이 먼저 남성의 신체를 건드린 사실이 공개돼 상황이 반전됐다. 이후 “피해자들이 틀린 정보로 여론전을 했다” “남녀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남성들 사이에 터져 나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청원 게시판의 역기능에 대한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부정확한 사실을 확산시키고 여론 재판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역 폭행뿐 아니라 최근 청원게시판에는 살인, 폭행과 같은 범죄와 관련해 “피의자를 강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18일 현재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들을 살펴보면 강서 PC방 살인(119만명), 거제 50대 여성 폭행 살인(37만명), 이수역 폭행(35만명), 2013년 여성 상해치사(25만명), 조두순 출소 반대(24만명), 가수 이스트라이트 폭행(23만명), 등촌동 전처 살인(20만명), 17세 조카 자살 소년법 개정 촉구(20만) 등 10개 중의 8개가 범죄와 관련되어 있다. 지난해 8월 17일 게시판이 신설된 뒤 올라온 총 34만여건의 청원 중 국민들의 관심을 끈 것은 정책 제안보다 사건·사고가 많았다. 난민 등 소수자 혐오 발언이 담긴 청원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평창올림픽과 러시아월드컵 당시 특정 선수에 대한 자격 박탈 요구나 일부 국회의원에 대한 파면 청원 등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도 나왔다. 이에 따라 “청원 사이트를 폐쇄하라”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배경으로는 우선 사법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꼽힌다. 수사와 재판 절차를 통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보다는, 여론을 모으는 강한 수단을 통해야 빠르게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법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청원으로 해결하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면서 “사법 절차보다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게 이야기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온라인 공간에서 단시간에 확산되는 점도 문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원 게시판은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로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일차적 진실을 파악하기 전에 여론이 성급하게 움직이고,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 대리전이 벌어지는 것은 경계하고 팩트에 의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긍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묻힐 뻔한 중요 사안이 청원게시판을 통해 사회적 어젠다로 부상하기도 했다. 음주운전 차에 치여 사망한 윤창호씨 사건, 자주포 폭발사고를 당한 이찬호 병장에 대한 보상 문제, 유기견 보호소 폐쇄 위기 등이 대표적이다. 낙태죄 폐지나 권역외상센터 지원 등이 사회적 의제가 되는 데에도 청원게시판의 역할이 컸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섣불리 폐쇄하기보다는 더욱 성숙한 운용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 교수는 “이수역 사건처럼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지만, 일방적 주장이 최종 결론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면서 “허위 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은 무고로 처벌하면 될 문제”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청와대 내부에서 직접 답변하기보다는 관련 부처에서 실무자들이 검토하고 여론이나 청원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그 이유를 해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류준혁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나 사회문제는 단순히 처벌 강화만으로 줄어들지 않는 만큼, 문제에 대한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애국가 4절까지 불렀던 브룩스, 굿바이

    애국가 4절까지 불렀던 브룩스, 굿바이

    사상 첫 흑인사령관… 2년 6개월 근무 평화무드 지지한 친한파·한국어 출중 신임 에이브럼스 “신뢰 통해 강한 관계” 남북, DMZ내 GP초소 1곳씩 보존 합의“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나라 사랑하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8일을 끝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의 직무를 마친 빈센트 브룩스 대장은 이날 경기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대연병장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친한파’답게 이처럼 한국어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2016년 4월 사상 첫 흑인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부임했던 브룩스 대장은 우리말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줄 알 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브룩스 대장은 이날도 이임사에서 “안녕하십니까, 정경두 국방부 장관님”으로 시작해 “같이 갑시다” 등 수차례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브룩스 대장은 지난 2년 6개월여의 한국 근무 기간 매년 현충일마다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1980년대 한국에서 근무했던 그는 취임 당시 “역사적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애국가를 다시 들으며 오늘날의 대한민국 및 미국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돼 매우 행복하다”며 한국어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특히 군인이면서도 남북 대화 등 평화 무드를 적극 지지한 평화주의자였다. 한·미 보수층 일각에서 남북 상호 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에 대해 안보불안론을 제시할 때마다 그는 남북 대화 지지 입장을 밝혔고 주한미군의 안보를 책임진 그의 그런 발언은 그 누구의 말보다 든든한 평화의 버팀목이 됐다. 브룩스 대장에 이어 이날 신임 사령관으로 취임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은 명문 군인 가문 출신이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 1군단과 9군단에서 참모장교로 근무한 아버지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전 육군참모총장의 3남이다. 미군의 주력 탱크인 M1 에이브럼스 전차도 그의 부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강한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면서 “한반도 안보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수행하면서 각 부대의 특별한 관계를 다지는 데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를 보내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중심으로 공고한 연합방위태세가 유지될 것이라 믿는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 재배치 등 현안들에 대해서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한·미 양국은 지난해 강원 양구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 1구에 대한 공동 감식을 해 신원을 확인했다. 또 남북 군당국은 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와 관련해 남측은 동해안 지역에 있는 GP, 북측은 중부 지역의 GP 각 1개씩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원형 상태로 보존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는 10일까지 굴착기를 이용해 병력, 화기 철수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일병이 말하고 사령관은 듣고 “이런 장면 처음이야”

    육군은 창군 이래 처음으로 병사들이 발표를 주도한 ‘장군에게 전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7일 개최했다. 과거 병사들이 가만히 앉아 지휘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형식에서 탈피해 직접 지휘관 앞에서 발표 주체로 나선 것이다. 이날 병사들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육군본부 주요 직위자와 야전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등 장성급 지휘관들 앞에서 장병 인식과 군 문화 개선, 정책 제안을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28사단 안정근 일병은 “육군이 ‘왜’라는 질문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지지 않고 있다”며 “병사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병사와 그 가족이 군과 간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사단 김승욱 병장은 “자율성과 책임성을 구비한 병사는 자율과 책임이 강조되는 병영문화에서 훈육되며 그 시작은 병사들을 자율과 책임의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병사들은 세미나에서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는 군 정책도 적극 제안했다. 야전수송교육단 박지민 병장은 육군이 편제 중심의 병사 배치에서 벗어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워리어퀘스트’(warrior quest) 사이트 도입을 통해 부대의 인력 수요와 용사 역량을 맞춰 복무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군항공학교 박동하 병장은 군 복무기간 18개월 중 총 2회의 사회파견제가 포함된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면 그 기간 동안 사회와 학업과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DMZ 화살머리고지서 전사자 유해 2구 추가 발견

    DMZ 화살머리고지서 전사자 유해 2구 추가 발견

    지난달 24일 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된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남북 공동 유해발굴 작업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화살머리고지에서 최근 유해 2구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국유단은 지난달 24일 고 박재권 이등중사(지금의 병장)의 유해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이번에 추가로 발견된 유해는 종아리뼈와 정강이뼈다. 종아리뼈는 지난달 29일 지뢰제거 작업 중에, 정강이뼈는 지난 5일 도로개설 작업 중에 각각 발견됐다. 이번 유해 2구는 모두 6·25전쟁 때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국군 전사자인지는 정밀감식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국유단은 추가 발견한 유해를 지난달 30일과 이날 각각 수습해 약식 제례(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해 봉송하기 전에 전사자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고 유해가 발굴 현장을 떠남을 알리는 의식) 후 임시 봉안소에 안치했다. 향후 신원 확인을 위한 정밀감식과 DNA(유전자)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화살머리고지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역 중 한 곳이다. 국군 전사자 200여명과 미군·프랑스 전사자 100여명의 유해를 비롯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도 함께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재권 이등중사의 인식표 등 유해와 유품이 처음 발견됐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유품 5000여점이 수습됐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해 발굴 사전 작업으로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지뢰와 폭발물 제거 작업을 오는 3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월드피플+] 아프칸서 양팔잃은 군인, 양팔 이식수술로 새 삶

    [월드피플+] 아프칸서 양팔잃은 군인, 양팔 이식수술로 새 삶

    아프카니스탄 전투에 참전했다가 폭발사고로 두 팔을 잃은 군인이 성공적인 양팔이식 수술을 통해 새 삶을 꿈꾸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등 현지언론은 주방위군 소속으로 전투 중 큰 사고를 입은 에릭 룬드(35) 병장의 사연을 전했다. 그는 지난 2012년 5월 아프카니스탄에서 복무 중 길거리에서 급조폭발물(IED)에 의한 큰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그가 처음으로 깨어난 곳은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의 한 병원으로 무려 30일이 지난 후였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은 건졌으나 룬드는 팔꿈치 아래로 사라진 두 팔과 일부 뇌손상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이렇게 그는 예상치 못한 부상에 절규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또한 군당국 역시 부상으로 돌아온 참전용사의 공로를 잊지않고 그의 재활을 위해 힘썼다. 이후 5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룬드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수술대 위에 누웠다. 기증된 두팔의 이식수술을 받는 것으로 집도는 이식전문의로 유명한 WP 앤드류 리 교수가 맡았다. 그로부터 다시 1년 후 룬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리 교수는 "현재 룬드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서 "특히 왼손은 작은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수술이 성공적인 것은 물론 재활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리 교수는 "팔꿈치 아래 양팔 이식수술은 룬드의 사례가 처음으로 매우 고난도 수준"이라면서 "신경이 매달 1인치 씩 재생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3년 이상은 재활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힘든 재활을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룬드는 고향인 미시건 주 러딩턴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룬드는 "현재 고향에서 지방 공직에 나가기위해 출마를 준비 중"이라면서 "미래에는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고 내 사업체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이어 "처음 부상 후 깨어났을 때 삶의 의미를 잃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더 많은 희망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6회 청량리(약령시의 기억) 편이 지난 27일 동대문구 휘경동·전농동·청량리동·제기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을이 농익은 서울시립대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했다. 또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청량리 수산시장, 동부청과시장, 청량리 재래시장, 청과물도매시장, 서울약령시(경동시장)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5개 개별시장이 뭉친 슈퍼시장의 위용을 체감했다. 때마침 26일부터 이날까지 ‘제24회 서울약령시 서울한방문화축제’ 기간이어서 흥겨운 한방축제 분위기에 젖었고, 한방박물관 무료관람 혜택도 누렸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 집결한 투어단은 의병장 허위 장군의 호를 딴 왕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110년 전통의 시조사를 보고 동광대장간을 들렀다. 떡 파는 가게가 즐비했던 떡전교를 지나 서울시립대에서 경농관과 자작마루를 둘러봤다. 사도세자의 능이 있던 배봉산은 건물과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청량리 육교 위에서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철길의 행렬을 지켜본 뒤 청량리역~금강헤어라인~청량리청과물시장~서울약령시~제기동성당의 순서로 2시간 20분간의 바쁜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철저한 사전답사와 준비를 통해 만족스러운 투어를 선사했다. 서울시립대는 자작마루의 문을 열어줬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동광대장간, 금강헤어라인의 장인으로부터 자부심 어린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아리아가 흐른 10월의 마지막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였다.청량리는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계에 속하는 고요한 성 밖 동네였다. 1911년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를 거쳐 1946년에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으로 자리잡았다. 서울과 경기도를 들락날락한 동쪽 교외(동교)였다. 겸재 정선이 남긴 ‘동문조도’(東門祖道)라는 진경산수화에 300년 전 동대문 밖 풍경이 등장하는데 낙산과 동망봉, 안암, 용마산 아래 동묘와 청량리 일대가 펼쳐져 있다. 조도란 길 떠나는 사람을 송별한다는 뜻이니 동대문 밖 청량리가 서울을 벗어난 첫 지점이라는 장소성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용두동·제기동·전농동 등 이른바 청량리 일대는 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적전)을 두고 제사를 모신 점에서 여타 교외 지역과는 격을 달리했다. 적전은 한성과 개성 2곳에 뒀는데 한성의 적전을 동적전, 개성의 적전을 서적전이라고 지칭했다.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지도에 동적전을 안암천(성북천)과 정릉천 사이에 표시하고 있고 동적전의 관리청인 필분각이 있던 텃골과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마을인 창마을(倉村)이 오늘의 서울시립대 앞 전농로에 있었다. 선농단의 친농의례는 종묘제와 사직제, 환구제의 대사(大祀)에 이어 중사(中祀)의 위상을 가졌다. 조선 성종 6년(1475)에 적전의례가 처음 실행된 뒤 연산군,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때 1회씩 거행됐으며 이후 영조와 고종, 순종 때 자주 거행됐다. 선농대제가 끝난 뒤 소를 잡아서 참가자들에게 나눠 준 게 설렁탕(설롱탕)의 유래가 됐다. 청량리(淸凉里)는 신라 고찰 청량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청량이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청량산에서 따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북한산)에 청량사가 있다고 적었다. 또 고려 예종 12년(1117) 왕이 남경(서울)에 행차하면서 청량사에 머문 사실도 전한다. 세종 5년(1423) “태조의 공신은 청량사에, 태종의 공신은 승가사에서 주상의 탄신일에 장수를 기원하자는 재를 열자”는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 청량사의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사는 1897년 명성황후가 홍릉에 들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농단 일대는 참담한 변화를 겪는다. 고종은 영조 이후 100년 넘게 거행하지 않던 친경례를 부흥시켰고, 순종은 1909년과 1910년 두 차례 친경례를 행했지만 1908년 개정된 제사제도 칙령에 의해 선농단의 위패는 사직단으로 옮긴 뒤여서 사실상 폐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일제는 선농단 터에 느닷없이 잠업기술 및 기술자를 양성하는 잠업시험소의 전신 원잠종제조소를 설치했다. 또 1934년 경성여자사범학교 부지로 제공, 기숙사를 짓는 과정에서 원형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선농단은 청량대(淸凉臺)라는 공원으로 훼손됐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책동이었다. 지금도 청량대라고 새겨진 빗돌 하나가 누워 있다. 광복 후 주민들이 넘어뜨려 울분을 달랬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선농단은 1950~60년대 서울사대부고나 서울사범대생들에게 개나리와 벚나무, 측백나무가 우거진 뒷동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선농단 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왕이 농사를 지은 장소 정도로 알았다. 휴식과 축제 장소로 사용했다. 대학신문 1961년 4월 27일자 ‘청량대 새 단장’이라는 기사에서 “왕이 백성들의 농사하는 모습을 살피려고 올라서곤 했던 청량대 비석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도록 그 위치를 옮긴다. 가장 큰 나무인 향나무에 중점을 두고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제거 혹은 이식시킨다”고 적혀 있다. 선농단 터는 제기동에 속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제기동과 용두동 경계에 걸쳐 있었다. 이후 116개의 필지로 분할됐다. 우뚝 솟은 향나무 한 그루가 선농단의 존재를 말없이 증언하고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높이 10m, 줄기의 둘레 2m에 이르는 600년 묵은 이 노거수는 다른 향나무처럼 휘어지지 않고 위로 곧게 자란 게 특징이다. 청량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청량리역, 588 집창촌, 서울약령시로 이름을 바꾼 경동시장 등이다. 주민의 삶이 아니라 외부인의 시각이다. 청량리의 두드러진 정체성은 철도이다. 청량리역은 1950~60년대 철도교통의 발달에 따른 도시적 확장 과정의 산물이다. 근대교통기관인 전차가 1899년 처음으로 홍릉까지 왕래했고, 수송의 중심이 전차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1968년 70여년간의 전차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전차노선의 중심이었다. 1911년 경원선 철도가 일부 개통됐고 1939년에는 경춘선이 성동역(제기역)을 기점으로 운행된 데 이어 중앙선까지 연결되면서 청량리는 물자 유통과 여객 수송의 요충지이자 철도 중심지로 명맥을 이었다. 1974년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이 근대 전차의 첫 목적지였던 청량리 궤도를 여전히 달리고 있다. 관사주택과 부흥주택, 도시 한옥, 시민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도심주변부 근대도시 주거지의 역할을 해냈다.서울약령시는 1000여 한의약 관련 전문 업소가 모여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전국 한의약 약재의 70%가 거래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3(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일시 : 11월 3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앞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女기상캐스터를 전사로 만든 한국형 신형 전투장비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女기상캐스터를 전사로 만든 한국형 신형 전투장비

    최근 육군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뭐니 뭐니 해도 '워리어 플랫폼(Warrior Platform)'이다. 워리어 플랫폼은 그동안 가장 값싼 소모성 전투 자원으로 인식되어왔던 개별 전투원을 정예화해 전투원의 전투력과 생존성을 극대화하겠다는 한국형 미래 보병체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신형 전투복 등 피복류 10종, 신형 방탄헬멧 등 전투장구 10종, K2C1 소총 등 신형 전투장비 13종으로 구성된 워리어 플랫폼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됐다. 일단 이 워리어 플랫폼을 입기만 하면 군대 다녀오지 않은 50대 여성도 특등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육군 측의 주장이었다. 지난 8월, 육군은 자문위원들을 대거 초청해 이 장비의 체험 행사를 가진 바 있었다. 당시 참여한 자문위원들 대부분 10발 중 8~9발 이상이 표적지 중앙에 명중한 사격 결과를 받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바 있었는데, 사실 당시 참여한 대부분의 자문위원들이 과거 사격 교육을 받은 ‘군필자’였기 때문에 “누구든 입기만 하면 특등사수가 된다”는 군 당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워리어 플랫폼이 마치 SF 영화 속의 ‘아이언맨 슈트’처럼 누가 입어도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라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착용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군 당국 주장대로 입기만 하면 특등사수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육군 측에 공개 실험을 요청했다. 실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공인 가운데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여성을 주요 피실험자로, 군대에 다녀온 지 오래된 예비역들을 비교 대상 실험군으로 삼아 실험을 실시했다. 여성 피실험자로는 월드미스유니버시티 출신 기상 캐스터로 유명하지만 군대라고는 면회도 가본 적 없는 모 방송국 남혜정 기상캐스터가 섭외됐다. 비교 대상 실험군으로는 군 생활 중 소총 사격은 별로 해본 적 없다는 전역 30년차 예비역 병장인 50대 대학 교수, 전역 10년차 예비역 장교인 30대 직장인 각 1명이 섭외됐다. 피실험자 3명은 경기도 모처의 백마부대 실내 사격장에서 사격 실험을 실시했다. 우선 워리어 플랫폼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K-1A 소총 사격을 먼저 실시했는데, 25m 거리에서 A4 용지 크기의 표적지에 10발을 사격한 결과는 예상한대로 3명 모두 엉망이었다. 생전 처음 소총 사격을 해본 남혜정 기상 캐스터는 단 1발도 표적지에 맞추지 못했다. 심지어 표적은 고사하고 표적지로 사용된 A4용지조차 맞추지 못해 그녀가 사격한 총탄은 모두 엉뚱한 곳에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총 사격이라는 것이 난생 처음이기도 했고, 170cm의 큰 키에 40kg대 깡마른 체구가 소총의 강한 반동을 제대로 제어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 캐스터가 사격한 총탄은 반동 억제 불량으로 인한 상탄(上彈), 즉 대부분 표적지 상단의 천장이나 벽에 박혀 있었고, 표적지 종이에는 그을음만 잔뜩 묻어 있었다.두 번째 사수로 나선 전역 30년차 50대 대학교수는 군필자답게 비교적 안정적인 탄착군을 보였다. 10발 중 9발이 표적지에 명중했으나, 표적지 중앙의 검은 원(8~10점)에는 단 1발도 맞추지 못하면서 총점 54점을 기록했다. 이 교수는 시력 때문에 표적지가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사격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세 번째 사수였던 전역 10년차 30대 직장인은 가장 최근에 군대를 다녀온 피실험자답게 10발 모두를 표적지에 맞추기는 했지만, 단 2발만 검은 원에 맞췄을 뿐 나머지 8발은 중구난방으로 표적지에 맞춰 총점 56점을 기록했다. 이 직장인 역시 시력 저하로 인해 표적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미필자 0점, 군필자 평균 55점을 기록했던 워리어 플랫폼 미착용 사격 실험 종료 후 피실험자들은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착용하고 다시 10발 사격에 나섰다. 우선 소총에 워리어 플랫폼 장비인 레일과 3배율 확대경, 도트사이트 및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장착하고 워리어 플랫폼 장구류인 방탄복과 헬멧 등을 착용했다. 장비를 착용한 뒤 동일한 25m 거리 표적에 대한 사격을 실시한 결과는 놀라웠다. 장비 미착용 사격에서 10발 중 2발만 표적 중앙을 명중시켰던 전역 10년차 30대 직장인은 8~10점대 표적지에 10발 모두 명중시키며 85점을 기록했고, 전역 30년차 50대 교수 역시 조준 착오로 인한 3발을 제외한 7발 전부를 표적지 중앙에 명중시키며 70점을 기록했다. 가장 극명한 효과를 보여준 것은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던 남혜정 기상 캐스터였다. 장비 미착용 상태에서 단 1발도 표적지 종이에 명중시키지 못했던 남 캐스터는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착용하고 10발 모두를 표적지에 명중시켰다. 심지어 10발 중 6발이 표적 중앙에 명중했으며, 이 가운데 4발은 거의 같은 지점에 명중하며 총점 86점으로 단숨에 1등을 차지했다. 0점에서 86점으로 점수가 급상승한 이유는 바로 워리어 플랫폼이었다. 소총에 부착된 수직 손잡이와 신형 개머리판 덕분에 보다 안정적인 소총 파지와 견착이 가능해 안정적인 사격을 도왔고, 3배율 조준경과 도트사이트는 쉽고 빠르면서도 정확한 조준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장비들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총이라고는 쏴본 적 없는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90%에 육박하는 명중률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야간사격이었다. 원래 우리 군의 K2 소총에는 가늠쇠 부분에 야광물질인 트리튬(Tritium)이 삽입되어 있어 이를 이용해 야간 사격 하도록 되어 있지만, 트리튬의 수명이 짧고 발광 능력이 약해 이를 이용해 야간 사격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그러나 워리어 플랫폼을 이용한 야간 사격은 주간 사격처럼 표적이 환하게 보이는 가운데 주간사격만큼이나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우선 실내 사격장의 전등을 모두 소등해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든 뒤 방탄헬멧에 장착된 야간투시경을 착용, 전원을 켜자 전방이 대낮처럼 밝게 보였다. 소총에 장착된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켜고 표적 중앙에 레이저를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기자 총탄은 마술처럼 표적지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격 결과 실험 대상 3명 모두 모두 표적지에 10발을 명중시켰으며, 최고점은 90점, 최저점은 73점을 기록했다. 이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워리어 플랫폼은 육군이 구상하는 3단계 발전 구상 가운데 1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육군은 1단계 워리어 플랫폼을 2023년까지 보급해 개선·보완 방향을 모색한 뒤 2026년부터는 개인과 전술지휘통제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동한 3단계 워리어 플랫폼 보급을 시작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3단계 워리어 플랫폼이 전력화될 경우 육군의 보병은 게임 상에서 ‘치트 코드(cheat code)’를 썼다고 표현할 정도의 가공할 전투 능력을 갖게 된다. 일부 게임에서는 게임 중 특정 치트 코드를 입력하면 캐릭터가 무적이 되거나 모든 적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드밴테이지가 주어진다. 3단계 워리어 플랫폼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워리어 플랫폼 3단계 장비에서는 개인 또는 분대 단위로 지급되는 소형 단말기 화면을 통해 자신과 주변 전장 환경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다. 가령 적이 몇 미터 전방 어느 건물 몇 층 몇 번째 창문 뒤에 숨어있는지, 어느 벽이나 언덕 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단말기 화면에 표시된다. 과거 전쟁처럼 제압사격으로 수백발의 실탄을 낭비할 필요 없이 위치가 파악된 적을 수백 미터 밖에서 고배율 조준경으로 조준해 단발에 제거하거나 지능형 유탄 혹은 아군 지원화력을 요청해 간단하게 제압하면 된다. 이러한 가공할 시스템을 갖추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현재 시스템 기준 개인당 약 600만원이다. 2026년 이후부터 지급될 3단계 Block II형은 헬멧 디스플레이와 연동되는 차세대 소총, 일체형 전투복 및 근력증강 시스템 등이 통합되어 있어 현재 개발되고 있는 선진국 유사 체계보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시스템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는 개인에게 엄청난 비용을 써가면서까지 워리어 플랫폼이라는 것을 추진하는 군에 대해 “이번에는 또 얼마를 해 먹으려는 것이냐”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훈련과 정신력으로 극복 가능한 것을 돈으로 메우려는 짓”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워리어 플랫폼은 비용 등 다른 제반 이슈들을 떠나 그동안 사람을 가장 값싸고 무가치한 자원으로 인식해왔던 한국군이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갖기 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 그간의 개혁 시도와 같이 잠깐의 이벤트로 흐지부지되도록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인식 전환과 개혁 시도는 오랫동안 ‘괴짜’나 ‘파격’의 꼬리표를 달고 비주류 취급을 받았던 김용우 육군참모총장 등 소장파 장성들이 육군 수뇌부에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개혁은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 강한 사람들이 주요 직위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처럼 육군의 개혁이 전군의 환골탈태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뇌부가 자리를 걸고 덤벼든 개혁과 혁신의 불꽃이 중간에 꺼지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이 강력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로 가려면 러시아, 중국 세관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수백여m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은 극명히 비교된다. 낡고 허름한 러시아 세관에 비해 중국 세관은 최신 지문 인식 기계를 도입했고, 규모 역시 수십 배나 된다. 비포장도로도 중국으로 들어서면 매끈한 아스팔트로 바뀐다. 달라진 중국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지난 24일 훈춘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투먼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더 가면 왕칭현 봉오동이다. ‘봉오저수지’라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은 간판을 지나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매끈한 화강암으로 만든 ‘봉오동 기념비´가 나온다. 2013년 투먼시 인민정부가 세운 것으로, 글씨 윗부분에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별 문양이 붙었다. 그 뒤로 100m 정도 떨어진 흙바닥에 1993년 만든 낡은 기념비가 적벽돌 주춧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돼 있다.두 기념비는 문구가 조금 다르다. 새 기념비는 봉오동전투에 관해 “중국 조선족 반일무장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하에 처음으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중대한 승리를 거둔 규모가 비교적 큰 전투”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두 개의 기념비에서 중국의 역사관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다. 기념비 왼편 계단을 올라 비탈길을 10분 정도 더 가면 봉오동 전적지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댐을 만들며 많은 지역이 수몰됐지만, 그나마 저수지 너머로 당시 전투지가 남아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연해주를 비롯해 간도와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일어났다. 이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다. ‘나는 홍범도´로 불리는 의병장 홍범도가 이끄는 부대와 난무의 대한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산에서 매복하다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한 야스가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19사단의 ‘월강 추격대대’를 격파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독립군 전사 4명, 부상 2명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이 숫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여전히 갈린다. 버스를 타고 80㎞를 달려 옌지시로 향했다. 한 식당에서 옌볜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로 꼽히는 김성호(67·전 조선력사연구소장) 옌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1980년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서 근현대사를, 1990년대는 인하대에서 조선근현대사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에게 봉오동전투 일본군 사상자 수가 왜 불명확한지 묻자 “하나의 역사를 두고 조선, 미국, 중국, 일본이 다 다르게 말했다. 자기 나라에 맞게 부풀리거나 줄이는 사례가 당시에는 흔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에 관해서도 “당시 독립신문이 일본군 200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장소에 직접 가 봤나. 2000명이 누울 자리 있던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지금도 정권이 앞장서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남북이 갈라진 지금 역사 인식을 통해 분단 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 일본군 위안부, 항일투쟁 등 남북 역사학계가 함께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고 충고했다.옌지시에서 룽징시를 향해 1시간 정도 더 달리면 명동학교가 나온다. 명동학교는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민족운동가 김약연이 세운 학교다. 그는 1908년 간도 명동으로 이주해 한인 집단 촌락을 건설하고, 명동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윤동주를 비롯해 문익환, 나운규, 송몽규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1929년까지 모두 1200여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졸업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윤동주다. ‘명동’, ‘윤동주 생가’라고 쓰인 큰 안내돌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윤동주 생가와 마주한다. 1932년 윤동주가 용정 은진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 허물어졌던 것을 1994년 복원했다. 윤동주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편입해 공부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해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교토 도시샤대 문학부로 전학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지만, 항일독립운동으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 옥사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기를 바랐던 민족시인의 향취를 이곳에서 느끼긴 어려웠다. 명동촌은 봉오동 전적지와 마찬가지로 ‘연변조선족자치주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집 인근에 윤동주의 시가 적힌 금색 조형물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m 정도 떨어진 명동학교는 너무 번듯하게 새로 지어놔 어색하기까지 했다. 명동학교에 들어가니 교실에 윤동주 인형을 만들어 사진 촬영용으로 쓰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인형을 바라보며 실소가 났다. 명동학교의 옛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값싼 관광지를 찾은 느낌만 들었다. 현지 가이드가 ‘중국은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한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명동학교를 나와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된 룽징시 비암산의 일송정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며 조잡한 관광물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 일송정 역시 울긋불긋한 정자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보며 울분을 달래고 마음을 다잡았던 해란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흔적만 남은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중국풍으로 바뀐 중국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해를 등지고 산에서 내려오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글 투먼·룽징(중국)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 ‘독립운동가의 명패’ 전달합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인 서울신문과 대한광복회가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독립유공자에게 ‘독립운동가의 명패’를 제작, 전달하기 위해 성금을 모금합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성금으로 제작되는 이 명패는 전체 1만 5052명의 독립유공자 중 주소지가 파악된 7647가구에 내년 초부터 먼저 전달됩니다. 명패는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우전·김국주 지사 등 42명뿐인 국내 생존 독립유공자와 7379명의 후손에게는 물론 의병장 최재형 선생의 후손(카자흐스탄), 대한매일신보 초대 사장인 어니스트 베델의 후손(영국) 등 해외에도 전달됩니다. 현재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여고 등 각급 학교, 대기업 등에서도 이 명패 운동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6월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명패 사업 추진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성금은 은행 계좌(우리은행 1005-403-489363·예금주 광복회)나 온라인 크라우드펀딩(www.ohmycompany.com→광복회 배너 클릭)으로 보내면 되며, 모금 기간은 오는 12월 31일까지입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K-9 전신화상’ 이찬호 “악성 댓글 무서워 형을 불렀다”

    ‘K-9 전신화상’ 이찬호 “악성 댓글 무서워 형을 불렀다”

    작은 소음에도 흠칫···여전히 극한 악몽에 시달려“제조사 한화에게서 사고 원인이나 설명 못 들어”“폭발 당시의 상황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고, 동료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납니다. 주변에서 깨지는 소리가 나면 긴장합니다.” 지난해 8월 훈련 도중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입원 치료 중인 이찬호(25) 예비역 병장은 “라디오 출연 이후 반향이 커서 많이 놀랐다”며 여전한 트라우마를 이야기했다. KBS가 오태훈의 ‘시사본부’ 전화 인터뷰 이후 이찬호씨를 병실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그는 4인실에 입원해 있으며, 다른 환자 일행의 커다란 목소리가 자꾸 병실을 울렸고, 작은 소음에도 흠칫했다고 그의 상황을 전했다.27일 KBS에 따르면 이찬호씨는 “몸도 그렇지만 사고 난 이후 1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사고 초기에는 정말 매일 같이 악몽을 꿨다.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나고, 폭발 당시의 상황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기도 했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서 주변에서 뭔가 부서지거나 깨지는 소리가 나면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낯선 곳을 가게 되면 꼭 안전한지 비상구나 주변에 있는 소화기가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워서.. 폭발사고가 난 곳이 굉장히 좁은 공간이어서 폐소공포증도 생겼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그렇고…”라고 덧붙였다.특히 그는 악성 댓글이 무서워 형을 불렀다고 했다. 이찬호씨는 “(라디오 출연) 반향이 커서 많이 놀랐고 또 두려웠다. 응원도 있었지만 기사 댓글에는 ‘(사진이)혐오스럽다’ ‘혐짤(혐오게시물) 표시 좀 하시지…’ 같은 말도 있었다”며 “몸이 성치 않아서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는데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 반응을 보곤 무서워져서 전화를 걸어 (친)형에게 와달라고도 했다”고 털어놨다.그는 사고가 발생한 K-9 자주포의 기계적 결함이 상대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는 것같다고 강조했다. 이찬호씨는 “인명피해만 없었지 사고가 나기 몇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K-9 자주포는 여전히 군부대 곳곳에 가동 중이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있다”며 “제조사인 한화 측으로부터 사고 원인 제공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군 복무중 다친 사고와 관련해 그는 “가능한 방법은 전역을 미루는 정돈데 그것도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으면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사고를 당한 모두가 국가유공자가 되지는 않다”며 “자비로 충당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K-9 폭발사고 ‘전신화상’ 이찬호 병장 “진상규명조차 안 돼…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철의 삼각지서 찾은 ‘박재권 중사’… DMZ 긴장완화 첫 결실

    철의 삼각지서 찾은 ‘박재권 중사’… DMZ 긴장완화 첫 결실

    유해발굴감식단 허벅지뼈 등 찾아내 인식표 토대 박재권 이등중사로 확인생존 여동생에 DNA 일치 확인 예정발견된 수통 30여발 총탄 박혀 있어지난 24일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첫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은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체결된 ‘9·19 군사합의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즉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례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획기적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없었다면 영영 발굴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평화’의 당위성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를 통해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강원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에서 공동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사전 작업으로 지난 1일부터 이 고지에서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2일 공병부대에서 지뢰 제거 작전을 펼치던 중 M1대검 등 다수의 유품이 발견됐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4일 해당 지역에서 허벅지뼈 유해를 발견해 추가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군은 함께 발견한 인식표를 토대로 부대 전사자 명부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 소속의 박재권 이등중사(현재의 병장)로 나타났다. 박 이등중사는 1931년 10월 2일생으로, 1952년 3월 21일 국군에 입대해 1953년 7월 10일 현재 화살머리고지의 옛 행정지명인 ‘강원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에서 전사했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국군 2사단과 미군 9군단이 참전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1953년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전투였으나, 박 이등중사는 안타깝게도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0일에 장렬히 전사했다. 화살머리고지는 6·25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철의 삼각지’ 전투지역 중 하나로,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대대와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 3400여명이 이 전투에서 희생됐다. 현장에서는 M1 소총과 헬멧, 수통, 탄두 등 아군과 적군의 전투 유품이 뒤섞여 발견됐다. 수통 중 하나에는 30여발의 탄이 박혀 있기도 했다. 국유단은 박 이등중사가 2남 3녀 중 장남으로, 현재 여동생 2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유가족으로부터 DNA 시료를 채취해 식별된 유해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25일 유해가 발굴된 현장에서는 전사자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는 약식제례가 진행됐다. 군은 화살머리고지에 국군 전사자 200여명을 포함해 미군, 프랑스군 전사자 100여명과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도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DMZ 내에는 1만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방부공동취재단·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뉴스 분석] 한반도 평화, 65년 잠든 국군유해 깨웠다

    [뉴스 분석] 한반도 평화, 65년 잠든 국군유해 깨웠다

    철원 화살머리고지서 지뢰 제거 중 발견 판문점 JSA 남북한 모든 초소·무기 철수 文대통령 “다시는 이 땅에 전사자 없어야”비무장지대(DMZ)에서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의 유해가 사상 처음으로 발굴됐다. 국방부는 25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9·19 남북 군사합의서’의 남북 공동유해발굴 이행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 중 지난 24일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처음으로 유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유해 발굴은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 군 당국 간 체결된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진행된 지뢰 제거 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65년 동안 잠들어 있던 유해를 깨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해가 발굴된 해당 구역 지표면에서는 허벅지뼈와 인식표 등 일부 유품이 함께 발견됐고, 지표면 아래 약 20㎝ 깊이에서 갈비뼈와 두개골편이 함께 발굴됐다. 군은 이번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해를 총 2구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유해와 함께 M1대검, M1탄 등 무기류도 발견됐고, 발견된 인식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란 글자가 표기돼 있어 군은 발견된 유해 중 일부를 고(故) 박재권 국군 이등중사로 추정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박재권 대한육군 이등중사(현재의 병장 계급 해당)가 전사한 지 65년 만에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제야 그의 머리맡에 소주 한 잔이라도 올릴 수 있게 됐다”며 “다시는 이 땅에 전사자가 생기는 일도, 65년이 지나서야 유해를 찾아 나서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이날부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군의 모든 무기가 철수된 것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또 다음 달 1일부터 서해의 북한 해안포들이 포문을 폐쇄하는 한편 북한 내륙지역의 포들도 서해 완충 수역으로의 포 사격을 전면 중지하는 등 한반도에서 가장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긴장 완화 조치들이 착착 시행되고 있다. 남북 군 당국의 이 같은 긴장 완화 조치들이 한반도 평화무드를 견인 내지 추동하면서 종전선언 등 평화정착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국방부공동취재단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K-9 폭발사고 ‘전신화상’ 이찬호 병장 “진상규명조차 안 돼…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K-9 폭발사고 ‘전신화상’ 이찬호 병장 “진상규명조차 안 돼…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비참한 건 움직일 수 없어 자살할 수도 없었다”지난해 8월 K-9 자주포 사격훈련 도중 발생한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예비역 병장이 25일 “자살 생각 했지만, 더 비참한 건 움직일 수조차 없어 자살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다. 이찬호씨는 이날 KBS1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생존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많이 다쳤고 겨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찬호씨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이면서 재활치료 받으면서 수술을 몇 차례 앞두고 있다. 화상은 다들 알다시피 최고의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고 치료과정도 길고 고되지 않나.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그래서 저는 절망감, 자살시도, 자살 생각으로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더 비참했던 것은 움직일 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면서 자살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거다”라고 말했다.이찬호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막막함을 전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 중이고요. 추후 수술을 차례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화상환자들끼리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과연 현실에 놓여지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을지가 걱정이 많이 되죠. 저는 아직 25살밖에 안 됐고 결혼도 해야 되고 안정적인 직업도 가져야 되는데 막막하죠.” “전역시 月 500만~600만원 치료비 걱정···부당함 알리려 앞당겨 제대” K-9 자주포 폭발사고는 지난해 8월 18일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해 장병 3명이 사망하고 전신 화상은 이찬호씨를 롯한 4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로 배우의 꿈을 접고 치료에 전념해오던 이 병장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보상과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 없이 9개월이 지났다. 전역 시 한 달에 500만~700만원 드는 (병원)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역을 한달 미룬 사정을 공개했다. “치료비를 생각한다면 제가 한 6개월 정도를 미룰 수 있었지만 이런 부당한 일을 사회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제2의 피해자가, 제2의 이찬호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치료비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저는 좀 일찍 전역을 했어요. 왜냐하면 군 소속일 때는 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하고 군법에 위배가 될 수 있어서 방송에 나올 수조차 없어요. 이런 군대라는 폐쇄적인 구조여서 알릴 기회가 없었던 거죠.” 이에 ‘자주포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장병을 치료해 주시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이 청원글은 3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지난 9월 이 병장을 국가유공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찬호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상황에 대해 자신은 기절해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고 했다. 대신 가족들이 정보를 찾아 동분서주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사고 직후도 아니고 사고 몇 시간 후에 위급하다고 연락 왔다“며 미비한 대처 매뉴얼을 꼬집었다. ”가족은 나라에 아들을 맡겼으니 국가가 해결해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는 그는 “치료비 문제로 군대를 연기했지만 연기신청도 6개월밖에 안 된다. 나라에서는 이중배상금지법 때문에 보상금을 받을 수가 전혀 없었다. 또 K-9 자주포를 만든 한화 제조업체에서는 기계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면서 저한테 아무런 보상금을 준 게 없다”라고 부연했다.‘전역 직전에 훈련하다가 다쳤는데, 전역 후에도 치료비를 지급해줘야 했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저희가 힘든 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을 부탁하는 건데도, 이게 개선된 게 전역 후 6개월밖에 지원이 안 된다는 거다”라며 “외부병원은 개인사비로 부담해서 치료를 받아야 되고, 전역 후 또 보훈처로 넘어가면 보훈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게 외부병원은 위탁승인이라는 과정과 절차를 밟아 허가가 떨어져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런데도 많은 장병들은 개인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시대의 미래를 짊어질 꿈많은 청춘, 소모품 아냐···당연한 걸 바래” 그는 이렇게 인터뷰를 끝맺었다. “아직 해결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진상규명도, 누구의 책임도, 누구의 처벌도, 어떠한 보상도 (없이) 아직도 자주포는 사용되고 있으며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미래를 짊어질 꿈 많은 청춘들이 나라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걸 바라는 겁니다. 선진국인 만큼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잊지 않고 응원해 주시는 시민 분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누구나 마음의 상처 잘 아물길” 한편 이 병장은 이달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라며 자신의 사진을 게재했다. 해당 사진은 이 병장의 화상 자국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그대들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겠죠. 마음의 상처든 뭐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니까요”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DMZ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 첫 수습…고 박재권 이등중사

    DMZ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 첫 수습…고 박재권 이등중사

    비무장지대(DMZ)에서 국군 전사가 유해가 처음으로 수습됐다. 6·25전쟁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 소속 고 박재권 이등중사(현재 병장)의 유해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남북 공동 유해발굴 작업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지표면에서 허벅지 뼈가, 지표면 아래 약 20cm 깊이에서 갈비뼈와 두개골 편이 각각 발견됐다. 유해와 함께 나온 인식표 1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M1대검, M1탄도 발견됐다. 국유단은 6·25전쟁 당시 전사(戰史)와 매·하장 보고서, 부대 전사자 명부를 통해 박 이등중사의 유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병적에 따르면 고인은 1931년 10월 2일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고, 1952년 3월 21일 입대했다. 하지만 1953년 7월 10일, 현재 화살머리고지의 옛 행정지명인 강원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에서 전사했다. 고인이 속했던 국군 2사단과 미군 9군단이 참전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1953년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2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다. 고인은 안타깝게도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에 전사했다. 국유단은 고인의 동생 2명으로부터 DNA 시료를 채취해 신원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화살머리고지에는 국군 전사자 200여명과 미군·프랑스 전사자 100여명의 유해를 비롯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도 함께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유단은 이날 DMZ에서 수습된 유해를 관에 넣어 태극기로 감싸는 약식 제례를 진행했다. 약식 제례는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해 봉송하기 전에 전사자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고 유해가 발굴 현장을 떠남을 알리는 의식이다. 이들 유해는 부대 내의 임시 봉안소에 안치할 예정이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해 발굴 사전 작업으로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지뢰와 폭발물 제거 작업을 다음 달 30일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국유단 관계자는 “68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6·25 전사자를 기다려 온 수만의 유가족분들께 희망을 주는 사례”라면서 “DMZ 내에 1만여구의 미수습 국군 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남북 공동유해발굴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람중심 공공디자인 혁신…서초, 도시의 품격 높이다

    사람중심 공공디자인 혁신…서초, 도시의 품격 높이다

    서리풀원두막·온돌꽃자리의자 등 올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해외서 이미 인정… 벤치마킹 봇물 디자인 전공자로 도시디자인팀 운영 조 구청장 “디테일이 패러다임 바꿔”“디자인이 상품의 가치를 높이듯 행정의 품격과 삶의 질도 끌어올립니다!” 서울 서초구가 공공 디자인으로 자치구 사이에 디자인 행정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구는 최근 여름날 뙤약볕을 가려 주는 서리풀원두막, 겨울철 칼바람을 막아 주는 서리풀이글루, 버스정류장 의자에 온도 기능을 더한 온돌꽃자리의자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201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의 아이디어로 나온 서리풀원두막은 2016년부터 서초구 내 횡단보도 등 154곳에 설치돼 뙤약볕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주민을 보호해 주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맨 처음 도로법상 적합 여부 논란을 일으켰으나 조 구청장이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으로 밀어붙인 뒤 벤치마킹 대상이 되면서 서울시가 그늘막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 앞서 유럽 최고 친환경상인 그린애플어워즈 상, 2017 서울 창의상 혁신 시책부문 우수상 등도 받았다.서리풀이글루는 일반 온기텐트와 달리 미닫이문을 설치해 외부보다 2~4도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만들어 폭설에도 끄덕없다. 벽면은 투명비닐을 사용해 시야를 확보했다. 지난겨울 서울시 최다(52곳) 설치로 시민 40만명이 이용했다. 온돌꽃자리의자는 버스승차대에 설치한 발열 의자로 40~42도를 유지한다. ‘여기 앉으면 복이 넝쿨째 팡팡, 여기 앉으면 무병장수,여기 앉으면 원하는 시험에 합격,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등 재치 넘치는 문구와 일러스트가 이용 만족도를 높인다는 설명이다.서초구의 공공디자인 성공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2016년 내놓은 커피컵 전용 수거함인 ‘서리풀컵’은 최근 환경부가 서울시 전역에 널리 설치하기로 하면서 또 하나의 모범으로 떠올랐다. 조 구청장이 도시디자인과 내에 디자인 전공자로만 구성된 도시디자인팀을 별도로 운영할 만큼 공공디자인을 중시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앞으로 방배카페골목, 양재말죽거리 등 골목 구석구석까지 디자인 요소를 강화할 계획이다. 조 구청장은 “문화예술도시답게 1%의 차이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디테일한 행정이 중요하다”면서 “서초에 산다는 게 자부심이 되도록 서초만의 세련된 도시디자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왜 부사관 후보생은 ‘병장 월급’을 받을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왜 부사관 후보생은 ‘병장 월급’을 받을까

    하사 부족해 중·상사 정원 확충 고육책박한 부사관 후보생 대우부터 개선해야제대군인 취업 등 재취업 지원 확대 필요 군이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예군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올해 기준 61만 8000명인 상비병력을 2025년까지 52만 2000명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체질 개선 핵심은 군의 ‘허리’를 담당하는 ‘부사관’입니다.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는 19만 8000명에서 21만 8000명으로 늘리고 병사는 42만명에서 30만 4000명으로 축소해 숙련자 중심의 군으로 재편할 계획입니다. 계획대로라면 부사관 수는 12만 7000명에서 2025년 14만 8000명으로 크게 늘어납니다. 앞으로 2만 1000명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20일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사관 정원은 12만 4000명인데 현원은 11만 2000명으로 현재도 1만 2000명이나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3년만 해도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정원은 11만 5000명이었는데 현원이 11만 3000명으로 충원율이 98.3%였습니다. 반면 현재는 충원율이 90.3%에 그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력 부족이 더욱 심화하는 양상입니다. ●하사 충원율 79.8%…軍 외면하는 청년들 더 깊이 들어가 ‘계급별 충원율’을 살펴봤습니다. 원사 98.2%, 상사 96.1%로 상급자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사는 105.4%나 됩니다. 문제는 하사입니다. 충원율이 79.8%에 그쳤습니다. 저출산이 고착화돼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방부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사관 지원자가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숙련도가 높은 부사관 위주의 정예군을 육성해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겁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하릴없이 청년과 병력 수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최근에는 고육책도 나왔습니다. 육군은 지난 18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하사를 비롯한 초급간부 선발비율을 30%가량 축소하는 대신 중·상사 정원을 확대해 숙련된 전투력 발휘 여건을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숙련자인 중·상사 정원을 대폭 늘려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만든다는 겁니다. 육군은 이런 인력구조 개선 이유에 대해 “인구절벽 시대 도래에 따른 가용 병력자원 급감과 병 복무 기간 단축, 병사 봉급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초급 간부 획득 여건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부사관 충원 문제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심각한 실업난에도 왜 부사관 지원자가 없을까. 먼저 ‘부사관 후보생’의 봉급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부사관 후보생은 정식 부사관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품위유지비’ 수준의 생활비만 준다고 합니다. 부사관은 군 미필자는 육군훈련소 5주, 부사관학교 16주 등 21주, 예비역은 16주의 훈련기간을 거칩니다. 4~5개월의 적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받는 봉급이 올해 기준 월 ‘40만 5700원’입니다. 이 금액은 의무복무하는 ‘병장’ 월급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8350원, 월 174만 5150원입니다. 올해는 시급 7530원, 월 157만 3770원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논쟁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려고 군문(軍門)에 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40만원의 ‘열정페이’를 받습니다. 군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아마 이런 사정을 전혀 몰랐을 겁니다. 참고로 올해 기초생활수급자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액’은 50만 1632원입니다. 내년은 51만 2102원으로 부사관 후보생이 훨씬 더 적은 돈을 받습니다. ●병장보다 적었던 부사관 후보생 봉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정부가 ‘그나마 노력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011년 병장 월급은 11만 3800원, 부사관 후보생 월급은 12만 4400원으로 부사관 후보생 대우가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에는 병장이 14만 9000원, 부사관 후보생이 13만 6500원으로 봉급액이 역전됩니다. 당시는 정치권에서 병사 대우에 대한 논쟁이 격화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병사 대우를 크게 높이다보니 2015년에는 병장 17만 1400원, 부사관 후보생 14만 2600원으로 격차가 2만 9100원으로 벌어집니다. 2016년에도 병장 19만 7100원, 부사관 후보생 18만 5400원으로 격차가 다소 좁혀지긴 했지만 병장 대우가 더 좋았습니다.그래도 나라를 위한 사명감으로 입대한 부사관들은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 후보생 때는 월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느냐”고 주변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장보다도 못한 부사관 후보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자 정부와 정치권이 어렵게 선택한 길은 “병장 월급에 맞추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병장과 부사관 후보생 월급이 동일한 21만 6200원이 됐고 올해는 대폭 인상돼 각각 40만 5700원이 된 겁니다. 그래도 대우가 2배로 좋아져 부사관 후보생들은 ‘가뭄의 단비’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우리 정부가, 정치권이 부사관 입대자를 대우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장교 등용문인 ‘학생군사교육단’(ROTC)도 할 말이 있습니다. 3학년 사관후보생 월급 55만 9000원, 4학년은 65만 3500원에 그칩니다. 사관 생도도 동일한 대우를 받으니 박한 봉급은 마찬가지입니다. 미군은 부사관 후보생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정페이’를 줄 일도 없습니다. ●왜 부사관이 부족한지 스스로 되돌아 볼 때 정식으로 하사 계급을 받았다고 해도 임금 수준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기준 1호봉 하사 본봉은 월 ‘145만 8800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올해 최저임금 월 157만 3770원에 못 미칩니다. 중사 1호봉 본봉이 월 155만 7400원이니 비슷하겠네요. 이 자리에서 고위급 장교의 월급과 비교하진 않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고위급 장교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저임금에 시달리는 부사관들의 대우를 시급히 높이는 것입니다. 군을 제대하면 더 혹독한 현실이 기다립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제대군인 취업률은 59.2%에 불과합니다. “어디 쓸 곳이 있어야 취업을 시킬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듣기 일쑤입니다. 청년 실업이 이슈인 요즘 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반면 가까운 일본의 제대군인 취업률이 97%인 것을 비롯해 미국(95%), 영국(94%), 프랑스(92%) 등 선진국은 대부분 제대군인 취업률이 90%를 넘습니다.2000년 우리 정부는 ‘하사관’이라는 명칭을 없애고 ‘부사관’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도입했습니다. 하사관이 장교에 예속된 ‘아랫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계와 각 군 설문조사를 거쳐 ‘사관’(士官)에 접두어 ‘부’(副)를 붙여 ‘부사관’(副士官)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명칭을 넘어 실질적인 부사관 대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왜 부사관 모집이 어려운지, 특히 최근 들어 청년들이 왜 군을 찾지 않는지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이유를 잘 되짚어 보시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열린세상] 아베 일본 총리 3선에 부쳐/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일본 총리 3선에 부쳐/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선에 성공함으로써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남의 나라 총리가 최장수를 하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일본 자위대의 헌법적 지위를 위한 헌법 개정을 목표로 삼는 인물이니 한국으로서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은 아니다.자위대는 어떤 실체인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결국은 1945년에 항복하게 되었고, 맥아더 원수가 군정을 하면서 다시는 군국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평화헌법 제9조를 만들어 군사력을 아예 갖지 못하게 헌법에 못박았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사물자 조달 등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에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가 부활했다. 미국으로서는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바라다본 서태평양 끝자락 일본은 전략상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기에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며 자위대 군사력 증강을 부추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익은 그들 나름대로 미국을 등에 업고 헌법을 위반해 가며 ‘국제사회에의 평화공헌’이라는 명목하에 첨단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다. 2018년 10월 19일 현재로 첨단무기 측면에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무기를 당해 낼 나라는 없다. 첨단무기의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최첨단 무기들로 무장한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 그나마 군사력 증강에 제동 혹은 족쇄가 되었던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이니 통한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한국으로서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아베 총리는 1차 총리를 할 때 방위청이었던 정부기구를 장관급의 방위성으로 승격시켰던 인물이어서 평화헌법의 개정 의지가 높은 인물이다.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승격되던 날, 필자는 방위성 연병장에서 자위대의 사열을 받던 아베 총리를 직접 보았다. 축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맡았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청년 장교’로 불리던 나카소네에 이어 아베 총리로 계승되고 있다. 일본의 헌법 개정 과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2 찬성이 필요한데 이런 의결 정족수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쉽지 않은 매우 높은 조건이다. 그만큼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그 어느 나라도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다. 일본이 한 선거구에서 3명 내지 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하에서는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는 구조여서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 등과 연립을 해도 3분의2의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 우익들은 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에서 1개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꾸면서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 등과 연립하면 3분의2는 거뜬히 마련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마지막 장벽은 국민투표인데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되는데 여론 조사를 볼 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외국 즉 북한이나 중국의 위협이 커지면 즉각 단결하는 일본 국민이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면 아베 총리에게 한국은 무엇을 희망사항으로 요청할 수 있는가? 아베 총리는 군사력 증강에 아까운 국가예산을 펑펑 쓰지 말고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피하면서 동북아 평화체제의 출범을 한국과 함께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시아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의 경험을 함께해 온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여 무기 사들이는데 돈을 적게 쓰고 그 돈으로 자국민들의 복지를 늘리는 데 서로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군사력 증강에 엄청난 돈을 쓰는 중국을 설득해 군비 축소라는 대화의 장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데 아베 총리가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일본 국민은 군사력을 늘리는 일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그들도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휘말려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악몽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일본 국민의 가족 중 적어도 1명 이상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죽어 나갔다. 3선의 총리에 선출된 아베 총리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헌법 개정에 골몰하지 말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의 평화를 만드는 중차대한 일에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야 한다.
  • 지뢰 탐지 임무 위해 전역까지 미룬 해병대원들

    지뢰 탐지 임무 위해 전역까지 미룬 해병대원들

    해병대 병장 7명이 서북도서 지역 지뢰 탐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전역을 연기했다고 해병대사령부가 30일 전했다. 이들은 각각 10월과 11월 전역이 예정됐지만 임무가 종료된 이후인 12월 5일에 함께 전역하기로 했다. 왼쪽부터 강재현·강혁규·정민혁·이재성·이태원·권승준·원현권 병장. 해병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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