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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 만나보세요”

    “조명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 만나보세요”

    “남성들에 가려져 조명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애국심 느껴보세요” 충북도가 청주시 방서동 미래여성플라자 1층에 마련한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이 다음달 3일 문을 연다. 100여㎡ 규모인 이곳에는 윤희순·어윤희·박자혜·임수명·이화숙·연미당·오건해·신순호·신정숙·박재복 등 지역 출신 여성독립투사 10명의 흉상과 그들의 생애 등을 살펴볼수 있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이들은 직접 항일운동에 참여하거나 남편의 광복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윤희순 선생은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으로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부인 박자혜선생은 간호사로 일하며 3.1운동 부상자를 치료하고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연미당 선생은 윤봉길의사 의거 당시 폭탄을 보자기에 싸준 인물로 전해진다. 임수명 선생은 항일비밀문서 연락과 배포 등을 지원하다 남편인 신팔균장군 전사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 신정숙 선생은 중국으로 가 조선의용대에 참여했으며 김구 선생 비서로도 일했다. 전시실 관람은 무료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도청 인터넷 홈페지이에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다. 투입된 사업비는 총 6억원이다. 도는 정부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업에 이 사업을 신청해 국비 1억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도 관계자는 “건국훈장애족장 이상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흉상으로 제작했다”며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정신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독립운동가들 흉상을 만들어 상설전시공간을 마련한 것은 충북이 처음이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김민석, 전역 전날 몰카범 잡았다...제압 후 경찰에 인계

    김민석, 전역 전날 몰카범 잡았다...제압 후 경찰에 인계

    배우 김민석이 전역 전날 몰카법은 잡은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21일 소속사 리스펙트엔터테인먼트 측은 “김민석이 말년 휴가 기간이었던 지난 1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고 있는 발견하고 직접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당시 전역을 하루 남기고 있던 김민석은 현장에서 몰카범을 발견하자마자 직접 경찰에 신고한 뒤 인계했다. 특히 그가 군 복무 중 디지털 성착취물 팬데믹 근절 캠페인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는 게 재조명되면서 더욱 감동을 자아냈다. 한편, 김민석은 당초 20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전역하라는 국방부 방침에 따라 미복귀 제대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충성. 군 생활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팬 여러분들 기다려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선물도 정말 잘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전역 소감을 밝혔다. 김민석 드라마 KBS2 ‘태양의 후예’, SBS ‘닥터스’, JTBC ‘청춘시대2’,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北 김정은에게 ‘생일상’ 받은 100세 장수자

    [포토] 北 김정은에게 ‘생일상’ 받은 100세 장수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에서 장수자 대열은 날을 따라 늘어나고 있다”면서 100세 장수자인 김순탄 할머니의 사진을 공개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할머니에게 생일상을 보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제도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 인민은 무병장수를 노래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23년 산 아파트 1채 보유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23년 산 아파트 1채 보유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23년 동안 산 서울 여의도 아파트 1채만 소유한 1주택자로 총 17억738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8일 국회에 회부된 문재인 대통령의 박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부속서류에 따르면, 박 후보자의 재산은 서울 여의도 소재 한 아파트가 14억7000만원(2020년 기준시가 적용)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예금은 3억9068만원이었고, 현금은 생활자금 5000만원을 신고했다. 1000만원의 ‘밀레니엄힐튼서울’ 헬스클럽 회원권도 재산목록에 포함됐다. 채무로는 2019년식 제네시스 G90에 대한 리스 금액 9683만원과 사인간 채무 5000만원을 신고했다. 박 후보자는 1967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으며, 자녀는 딸 2명으로 지난 1994년 국적을 상실했다. 장녀와 차녀 모두 결혼했고 아내와는 2018년 사별했다. 범죄경력으로는 지난 2006년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에 추징금을 선고받았고 지난 2007년 사면, 2008년 특별복권됐다.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으로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 후보자는 1999~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2~2003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18, 19,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민생당 의원으로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올해 6월부터 단국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사유서에서 “남북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숨은 주역으로서, 남북화해의 첨병 역할과 30여년간의 정치활동을 통해 얻은 전문성과 경륜을 살려 국가정보원이 국민의 신뢰를 토대로 선진 정보기관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한편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배우자와 어머니, 아들까지 합쳐 총 10억 758만여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부동산은 배우자 명의로 서울 구로구 아파트(2억 3100만원)와 어머니 명의로 충북 충주시 아파트(9100만원)를 각각 신고했다. 예금은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1억 8872만원, 4억884만여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 밖에 자신 명의의 니로 하이브리드 자동차(1981만원), 아들 명의의 채무(3000만원) 등이 있다고 신고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군인권센터 접수 사건 35% 증가, 성희롱·성폭력 사건 증가 두드러져

    군인권센터 접수 사건 35% 증가, 성희롱·성폭력 사건 증가 두드러져

    군인권센터가 8일 발표한 ‘2019 군인권센터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군인권센터가 지원한 사건은 총 1669건으로 전년 대비(2018년 1238건) 약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 창구 별로 살펴보면 홈페이지를 통한 상담이 50.6%, 전화를 통한 상담이 42.3%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전체 상담 중 홈페이지를 이용한 상담이 늘어난 것은 병사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모바일 접근성이 강화된 데에 따른 증가분으로 파악된다. 접수된 사건의 피해자 대다수는 현역(81.2%)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으로 보충역 상담이 100건을 넘어가면서 전체의 9.7%(145건)을 차지했다. 뒤를 이어 예비역(3.8%), 민간인(3.7%), 상근예비역(1.3%) 순이다. 이는 사회복무요원을 포함해 병역 의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산업체기능요원, 승선근무요원 등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결과로 보여진다. 피해자를 소속 별로도 살펴보면 육군(987건)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상담 접수 건이 전년 대비 440%가 증가하고, 의무경찰은 141% 증가하며 큰 증가폭을 보였다. 의무경찰은 각종 집회 증가로 여전히 투입 소요는 많으나 폐지를 눈앞에 두고 있어 인원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이라 근무 피로도, 휴식 시간 미보장 등의 상담이 많았다. 현역병 피해자의 계급 분포는 일병(12.2%), 상병(10%), 병장(11%)이 각각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이는 군 내 인권침해가 수직 위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서 점차 또래 집단 폭력으로 성격이 확장되어가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현역간부 피해자의 계급 분포는 부사관이 하사(26.7%), 중사(22.4%), 장교는 중위(21%), 대위(40.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중간 관리자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연차가 낮은 초급간부들이 겪는 부당 지시, 사생활 침해, 폭언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장교로 전체 가해자 비율의 23%를 차지했다. 피해 장병들은 주로 지휘관의 부당지시나 인권침해 사건을 신고받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점에 대하여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3대 폭력행위인 가혹행위, 언어폭력, 구타 상담은 줄어드는 반면 성희롱·성폭력 상담은 늘어났다. 3대 폭력행위는 전체 상담 접수분을 고려했을 때 예년보다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됐고, 특히 사망사고 경우 전년 대비 30% 이상으로 접수율이 하락했다. 그러나 성폭력·성희롱 관련 상담은 접수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장난을 빙자하여 이루어지는 불필요한 신체접촉이나 상습적인 성희롱, 혐오표현, 음담패설 등 낮은 성인지감수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생활 속 성폭력에 대한 상담이 많았다. 군인권센터는 이에 대해 “국군 장병에 대한 성인지감수성 함양 및 인권교육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용산, 일제강점기 위수감옥 학술심포지엄 개최

    서울 용산구는 용산위수감옥 역사성 및 장소성 규명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29일 밝혔다. 용산위수감옥은 일제강점기 용산에 주둔했던 일본군 20사단이 기지에 건설한 군 시설이다. 1909년 준공된 이 건물은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에 일부가 남아 있다. 구는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위수감옥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위수감옥에는 의병장 강기동 선생 등이 수감돼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강기동 선생 외에도 대한제국 소속이었던 군인들이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위수감옥에 구금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적인 사료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근현대 동북아 역사의 산실로서 미군기지 용산공원화 사업의 핵심은 역사성과 장소성에 있다”며 위수감옥 보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조교를 형님이라 부르다니”...훈련병 쇠봉으로 때린 병장 집행유예

    “조교를 형님이라 부르다니”...훈련병 쇠봉으로 때린 병장 집행유예

    훈련병을 쇠봉으로 수십차례 때린 혐의를 받는 20대에게 1심 법원이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9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이영훈 판사는 특수폭행 등 혐의를 받는 강모(23)씨에게 벌금 2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지난 24일 선고했다. 강씨는 병장으로서 전역을 약 두 달 앞둔 지난해 11월 13일 오후 강원 인제군에 있는 군부대 생활관에서 훈련병 A(21)씨의 머리와 무릎, 다리 등을 쇠로 된 옷걸이 봉으로 수십회 가격한 혐의를 받는다. A씨 지도조교였던 강씨는 A씨가 다른 조교를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괘씸한 마음에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강씨는 A씨가 흡연을 했으면서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허리띠로 5차례 내려 치고, 양쪽 귀를 잡은 채 A씨를 끌고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이 판사는 “초범이고 후임병을 괴롭히겠다는 악의적 의도로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라며 “피해자와 모두 합의했고 반성하고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는 점을 감안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예비역 병장 노승열, PGA 투어 복귀 후 최고 성적

    예비역 병장 노승열, PGA 투어 복귀 후 최고 성적

    군 제대 이후 올해 초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돌아온 노승열(29)이 복귀 이후 최고의 라운드를 펼치며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총상금 740만 달러) 첫날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노승열은 26일 미국 코네티컷주 크롬웰의 TPC 리버 하이랜즈(파70·6천841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뽑아내 6언더파 64타를 쳤다. 필 미컬슨(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등과 공동 5위에 오른 노승열은 단독 선두로 나선 매킨지 휴즈(캐나다·10언더파 60타)를 4타 차로 뒤쫓았다. 6언더파 64타는 노승열이 군 복무를 마치고 PGA 투어에 돌아온 이후 기록한 가장 좋은 스코어다. 2017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CJ컵을 끝으로 입대한 그는 지난해 8월 전역해 가을 국내 대회부터 나서기 시작했다. PGA 투어에는 올해 1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부터 출전했으나 3월 초 혼다클래식까지 4개 대회에서 내리 컷 탈락해 고된 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PGA 투어가 중단되면서 실전에 나서지 못했고, 재개 이후엔 이날 처음으로 공식 경기를 치렀다.넉 달 가까이 만에 치른 실전에서 노승열은 깔끔한 경기로 재기를 선언했다. 1번∼2번홀부터 연속 버디로 분위기를 끌어 올렸고,전후반 버디 3개씩을 적어냈다. 페어웨이를 6차례, 그린은 5번 놓쳤지만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가 1.615개로 상위권이었다. 휴즈가 버디 10개를 몰아치며 리더보드 맨 위에 자리한 가운데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3타 뒤진 공동 2위(7언더파 63타)에 올라 시즌 2승 도전에 시동을 걸었다. 강성훈(33)은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2개를 묶어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공동 11위(5언더파 65타)에 자리했다. 임성재(22)는 2언더파 68타를 적어내 안병훈(29), 김시우(25) 등과 공동 58위로 첫 날을 마쳤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6·25 때 첫 여군 생겨… 당시엔 오히려 차별 없었다”

    “6·25 때 첫 여군 생겨… 당시엔 오히려 차별 없었다”

    “지금 세대는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해 그 참담함을 알지 못하지요. 당시 여군이 처음 생겨서 차별이 오히려 없었어요. 여성용 군복이 없어 남성용 군복과 군화 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6·25전쟁 당시 대구에서 여자의용군 1기생으로 입대했던 김명자(89)씨는 동기 200명과 함께 부산에서 한 달간 훈련을 받고 정훈장교로 편성돼 최전방 심리전에 투입됐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6·25전쟁 및 여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여성 참전용사 및 육·해·공군 사관학교 1, 2기 여군 장교와 함께 자리를 가졌다. 참전용사는 보병장교로 전방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임동순(90) 대령,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조종사인 김경오(91) 대위, 최근 코로나19 극복 공익 캠페인에 출연해 화제가 된 김명자 대위, 간호장교이자 애국지사 이상설·이충구 선생의 손녀이기도 한 이현원(89) 중위, 여자의용군으로 참전해 활약한 최선분(85) 중령, 손태순(89) 대위 등이 참석했다. 이 장관이 “어린 나이에 전쟁에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느냐”고 말문을 열자 임 대령은 당시의 참혹함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죽은 사람들로 너무 처참해 볼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 중령도 “6·25전쟁이 터졌을 때 여학교 3학년이었는데 학교에서 여성 장교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았다. 인민군이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장면을 보며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첫 여성비행사인 김 대위는 “당시 전국의 각 도를 대표해 여고생 한 명씩 추천받아 15명이 공사 1기생들과 함께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고 기억했다. 이 장관은 간담회를 마치면서 “6·25전쟁 당시 구국의 일념으로 젊음을 바친 여성 참전용사의 용기와 헌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투철한 사명감으로 국가 안보와 평화 유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군 장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현역 장교로는 공군 최초 여성 전투대대 비행대장이 된 박지원(43) 중령, 첫 여군 중령으로 성폭력·인권침해범죄수사대장을 맡고 있는 노현주(40) 중령, 해군 최초 여군 함장이 된 안희현(41) 소령이 참석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경기도 의왕시는 6.25전쟁 참전 유공자 무공훈장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전수식을 가졌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하나다. 6·25전쟁 당시 국방부, 육군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였던 선배 전우의 명예선양을 위한 사업으로 이번에 전수한 훈장은 화랑무공훈장 훈격이다. 전수대상자는 5사단 소위 조도형, 9사단 병장 김학근, 3사단 하사 이병선 3명이다. 김상돈 시장은 화랑무공훈장을 참전자 유족인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과 유족 2명(조선훈, 이창례)에게 전수했다.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은 “아버지의 훈장을 이렇게 대신 받게 돼 참전자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시장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세분의 전공을 오늘에서야 화랑무공훈장으로 전해 드리게 됐다”고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조국의 운명 앞에서 기꺼이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공로를 시민과 함께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사이언스 브런치] 무병장수 100세 인생 원하면 ‘이런 곳’에서 살아라

    [사이언스 브런치] 무병장수 100세 인생 원하면 ‘이런 곳’에서 살아라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과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출산율은 낮아지는 반면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일자리나 건강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래 살고, 나이들어서도 건강하게 삶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많은 사람들이 100세까지 무병장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보다 유전적으로 타고 나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 연구진이 유전적 요인은 100세까지 무병장수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의대, 식품영양학 및 운동생리학과, 보건학과, 수의보건학부 공동연구팀은 100세까지 무병장수는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사회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22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환경 및 보건분야 국제학술지 ‘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에 실렸다. 연구팀은 워싱턴주 보건부 보건통계센터의 통계를 활용해 2011~2015년 사망자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팀은 해당 기간 사망자 중 75세 이상 나이로 사망한 14만 5000명에 특히 주목해 사망 당시 나이, 거주지와 주변환경, 성별, 인종, 교육수준, 혼인여부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100세 무병장수는 20~35% 정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경제적 상황, 1차 진료기관 접근성, 대기오염 정도, 녹색 공간 노출 여부 등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노년층만 모여있는 것보다는 노동연령 인구비율이 높고 다양한 연령층이 혼재돼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노인들이 생활 속 운동이 가능할 정도로 식료품점이나 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많은 도심지역이나 소공원이나 녹지가 잘 형성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심지역의 경우 대기오염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노인들이 덜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줄 뿐만 아니라 병원 같은 의료기관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교외지역의 경우는 지역사회 참여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걷기 쉬운 환경이 형성돼 있고 자연환경과 가까워 가벼운 운동 등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오퍼 암람 의대 교수(보건지리정보시스템)는 “유전적 요인이 건강한 노년을 대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절대적 요인은 아니다”라며 “이번 연구결과는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천 황악산, 사명대사공원 22일 준공…체류형 복합 휴양관광단지

    김천 황악산, 사명대사공원 22일 준공…체류형 복합 휴양관광단지

    경북 김천시 황악산 일원에 직지사와 연계한 체류형 복합 휴양관광단지로 조성된 ‘사명대사 공원’이 마침내 문을 연다. 김천시는 오는 22일 김천 대항면 운수리 사명대사공원에서 준공식을 갖는다고 19일 밝혔다. 2011년 ‘황악산 하야로비공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9년 만이다. 시는 지난 2월 공원 명칭을 하야로비공원에서 사명대사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사명대사는 직지사에서 출가해 주지를 지내는 등 김천시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총 816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김천 운수리 일대 터 14만 3695㎡(4만 3400평)에 조성된 사명대사 공원은 주요 시설로 ▲평화의 탑 ▲김천시립박물관 ▲건강문화원 ▲솔향다원 ▲여행자센터 등을 갖췄다.평화의 탑은 사명대사공원의 랜드마크로 5층 목탑 규모다. 내부에는 사명대사 관련 전시공간 등이, 외부에는 경관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웅장한 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김천시립박물관(5241㎡)은 사명대사공원에서 유일한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다. 전시실, 어린이문화체험실, 강당 등이 마련됐으며, 김천 출토 유물 564점이 전시됐다. 김천의 주요 관광지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김천패러글라이딩 투어와 터치모니터를 활용한 도자기 만들기,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한 체험형 디지털 콘텐츠로구성했다. 건강문화원은 한옥 숙박동과 체험동으로 꾸몄다. 숙박동은 4동, 5개 객실로 38인이 숙박할 수 있다. 한옥의 특성에 맞게 한 개 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채 형식으로 꾸며 자연과 어우러져 한옥에서 쉬어갈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체험동은 족욕과 온열체험 등 건강관련 장비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건강 상태와 체력, 스트레스를 자가 측정해볼 수 있는 건강측정실이 있다. 숙박동과 체험동 모두 유료 예약제로 운영된다. 솔향다원은 사명대사공원이 내려다보는 멋진 전망을 배경으로 다도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시는 이 공원이 운영에 들어가면 인근 부항댐 주변의 부항권역, 청암사·무흘구곡·수도산자연 휴양림이 있는 증산권역과 연계돼 관광벨트화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연간 260만 명의 관광객 방문으로 1444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연간 24억원의 소득유발 효과는 물론 연간 645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사명대사공원은 김천이 체류형 관광휴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요한 관광자원이다”면서 “앞으로 관광객들이 체류하면서 즐길 수 있는 관광 김천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근대교육자인 임면수는 이회영이나 이상룡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에 몸바치는 등 만주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운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 분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결사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돼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기거할 방 한 칸도 없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현 화성시)에서 아버지 임진엽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2남으로 출생했다. 삼일학교 설립에 기부한 재산을 보면 그의 가계는 중농 이상의 부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필동(必東) 또는 필동(弼東)을 사용했다. 임면수는 19세 때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돌본 전현석과 결혼했다.선생은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했지만 늦은 나이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수원양잠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화성학교에 진학,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화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군자금을 기부하는 등 일본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러일전쟁에 통역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기관의 일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항일투쟁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주시경·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 선생은 1905년 서울로 와서 한국사와 한국지리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던 상동청년학원에 입학했다. 선생은 국어강습회를 열었던 주시경과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을 그곳에서 만나 교류했다. 경기 강화에서 사학을 30여곳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선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수원에서 이하영, 김태제 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국한문 취지서를 자비로 발간해 동참을 호소하고 경기도 각 지역에 배포했다. 반향은 컸다. 수원에서는 취지서 발표 2~3일 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여원이 모금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1903년 29세의 선생은 젊은 동지들과 함께 유명한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졸업한 수원 삼일여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는 북감리교회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설립 후 3년이 지나자 재정난을 겪게 됐다. 부호 강석호는 1906년 5월 거금을 기부했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했다. 선생도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내놓았다. 현 매향정보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곳이 그가 희사한 땅이다. 1909년 선생은 삼일학교 교장이 됐고 다른 사립학교 설립도 도왔다. 선생은 1907년 기호지방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기호흥학회에서도 활동했다. 서우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와 같은 교육진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마다 학회가 조직됐는데 기호흥학회도 그중 하나였다. 광주와 수원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19개 지부가 있었고 수원 지역 교육자로서 선생은 교육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신민회에 가입하고 양기탁의 집에서 열렸던 구국운동회의에 참여했다. 신민회의 결의에 따라 모국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삼일학교 운영은 나홍석에게 위탁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초 선생은 극비리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망명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한 이회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6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농가 2칸을 빌려서 신흥강습소를 개설했고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 신흥중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중학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데 수만 평의 연병장과 수십 칸의 내무실은 생도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통화현 합니하는 독립군 무관 양성의 본영이 됐다. 선생의 역할은 재원 조달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고자 영하 40도의 한파와 폭설을 무릅쓰고 썩은 좁쌀, 강냉이, 풀나무 죽으로 연명하면서 동포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녔다. 선생 부부는 객주업에 종사했는데 독립군의 연락소, 휴식소, 무기보관소, 회의실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부인 전 여사는 수시로 방문하는 별동대, 특파대 등의 식사를 하루에 대여섯 번이나 내놓았고, 그들의 보따리와 총기를 맡아 챙겨 주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으로서 전 여사의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전 여사의 인내심과 온순함, 예의 바른 행동에 누구나 머리를 숙였고 ‘독립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았다. 선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로 선생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그 부인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으니 실로 선생댁은 독립군 본영의 중계 연락소이며 독립운동객의 휴식처요, 무기보관소요, 회의실이며 참모실이며 기밀 산실이었으니….” 만주의 한인자치기관 부민단에서는 1916년 3월 16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를 위협할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제지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방책으로 결사대 200명을 편성했고 7~8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했는데 선생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9월 9일 안동 주재 일본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재만 조선인 비밀결사 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등에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통화현)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이란 표현에서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의 선생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양성중학교 교장 일하며 제2 신흥무관학교로 선생은 1910년대 중반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제2 신흥무관학교 격이었다. 교수로 재직한 이세영과 재무감독 이동녕 등은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중심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본군들은 1920년 간도로 출병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1920년 6월 12일 밤 해룡현 북산성자 삼도가 김강의 집에서 체포됐다. 일본 경찰관과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동지들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려 한 혐의였다. 선생은 압송돼 가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여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생은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걸어서 14일 만에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 한인 농촌마을에 도착해 동포 박씨 집에 은둔했다. 그곳에 머물다 장춘을 거쳐 부여현에 도착해 안승식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 고문 후유증에 타계 그러나 1921년 2월쯤 길림시내에 잠입해 활동하다 밀정의 고발로 길림영사관에 체포된 뒤 평양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일제는 선생을 석방했고 수원으로 귀향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가족사도 불운했다. 만주에서 20세가 돼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남 우상이 1919년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만주로 돌아가다 동상을 입어 객사한 것이다. 선생은 1923년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30년 11월 29일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4년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선생의 유골은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묘소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기념사업회가 발족했으며 손자 임병무씨도 유품을 수원박물관에 기증하고 조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보성삼베 수의(壽衣) 윤달에 판매량 증가

    보성삼베 수의(壽衣) 윤달에 판매량 증가

    전남 보성군이 지난달 23일부터 윤달이 시작되면서 보성삼베 수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보성읍 봉산리에서 삼베옷을 제작하는 삼베 장인 박영남 씨는 “5월 초부터 전국에서 수의 제작을 문의하거나 수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수의 제작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4월 윤달은 ‘길일 중의 길일’로 꼽아 수의를 장만하려는 사람이 많다. 부정(不淨)과 액(厄)이 끼지 않는 달로 인식돼 조상 묘를 손질 하는 등 그동안 미뤄뒀던 집안일을 처리하곤 했다. 올해 윤달(음력 4월)은 양력 5월 23일~ 6월 20일까지다. 보성삼베는 100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거나 변하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고 감촉이 매끈해 명품 삼베로 불린다. 특히 삼베를 키우고 실을 뽑는 일부터 수의를 완성하기까지 50년 넘게 내공을 쌓아온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다. 박영남 장인은 “누군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을 나에게 맡겼기에 내 부모님 수의를 짓는다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다”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수의 문화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후학을 양성하고 인간문화재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보성 삼베는 전통 방식을 이어 대마(삼)를 수확해 실을 만들고, 배를 짜는 과정 모두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수의 한 벌을 만드는 데 꼬박 이틀이 걸린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자주포 공백은 없다” 전역 미룬 동갑내기 해병 3총사

    “자주포 공백은 없다” 전역 미룬 동갑내기 해병 3총사

    코로나 여파로 후임들 실전훈련 부족 전력 공백 걱정에 경험 전수 의기투합전역을 앞둔 해병대원들이 후임에게 전투 장비 운용 기술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해 눈길을 끈다. 10일 해병대에 따르면 1사단 포병여단에 근무하는 이경원(22·해병 1239기), 권기영(22·해병 1240기), 이위성(22·해병 1240기) 병장은 다음달 6일로 전역을 연기했다. 이경원 병장은 이달 4일, 권기영·이위성 병장은 이달 30일 전역할 예정이었다. 1998년생 동갑인 이들은 지난해 해병대가 도입한 최신 K9A1 자주포 전포병·조종병·사격지휘병으로 전문 능력을 보유한 인원들이다. 신형 K9A1은 탄·장약을 완전 자동화해 최대 발사 속도는 분당 6~9발, 운용병은 5명에서 3명으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전역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영외 실전 훈련이 원활하지 못해 후임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전수하지 못한 걱정을 했다. 동시에 전역하면 부대 임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고민을 한 것이다. 이들이 근무하는 부대에는 K9A1 자주포 운용에 숙달된 장병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K9A1 자주포 운용은 숙달된 능력과 경험, 한 몸 같은 단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해병대의 설명이다. 결국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지난달 각자 부모님께 이런 각오를 설명하고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해병대는 최근 전역연기심사위원회를 열어 부대 전투력 향상에 이바지하고 다른 장병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판단해 전역 연기를 결정했다. 이경원 병장은 “장비운용 경험 등을 후임에게 모두 전하고 전역하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부대원과 조직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부대 전투력 향상을 위해 전역까지 연기한 부하들의 선택과 결심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KBS, ‘만삭의 위안부‘ 구출 영상 새달 시청자에게 공개

    KBS, ‘만삭의 위안부‘ 구출 영상 새달 시청자에게 공개

    KBS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구출된 만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상을 발굴해 다음 달 1일 시청자에 공개한다고 29일 밝혔다. KBS에 따르면 이 영상에는 1944년 9월 100일간의 전투 끝에 연합군이 일본군 진지를 함락한 날 가까스로 진지를 탈출한 위안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고(故) 박영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구출돼, 연거푸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발견된 건 처음이다. 앞서 2017년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은 박영심 할머니 일행이 중국 쑹산에서 구출된 이후 모습이 담긴 18초 분량 영상을 첫 발굴했다. KBS는 영상을 누구든 해당 영상을 받아 교육·연구 등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청자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뉴스에서 공개한 50여초 분량을 포함한 6분 40초 길이다. 이 영상은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이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과거 한국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나왔다. 제작팀은 미국 국립 문서기록 관리청(NARA)에서 관련 자료로 추정하고 1500시간 분량을 복사했다.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사진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쑹산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소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KBS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한눈에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었던 박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재확인됐다는 측면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며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에 참여했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상병 제대자도 특별 진급한다”…국방부 입법예고

    “상병 제대자도 특별 진급한다”…국방부 입법예고

    제도적인 문제로 30개월 이상 복무했지만 상병으로 만기전역한 사람들이 앞으로 ‘특별진급’을 할 수 있게 된다. 국방부는 22일 “지난 19일 30개월 이상 복무한 상등병 만기전역자의 특별진급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과거 병사의 진급은 간부처럼 공석이 있을 때 이뤄졌다. 이 때문에 진급대상자에 비해 병장 공석이 부족해 30개월 이상을 복무하고도 병장 진급을 하지 못하고 상병으로 만기전역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육군·해병대는 1993년 이전까지, 해·공군 2003년 이전까지 30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이 적용 됐다. 그러나 그동안 현행 군인사법에 따른 현역군인의 진급이나 병역법에 따른 예비역·보충역 등의 진급은 있으나, 만 40세가 넘은 퇴역군인의 진급에 대한 법령은 없어 이들을 진급을 시키지 못하면서 국방부 내에서는 ‘난제 민원’으로 불려왔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상등병 만기전역자와 유족은 서면으로 복무 기관장에게 특별진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복무 기관장이 특별진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실을 조사하는 경우 관계 행정기관, 개인 및 단체 등에 자료 제출 또는 협조를 요청한다. 복무 기관장은 특별진급 신청을 받으면 120일 이내에 특별진급 여부를 결정해 신청인에게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특진 대상은 징계 등 처벌사항이 없는 상병 전역자로 제한된다. 국방부는 2018년 3월 관련법 입법을 추진해 해당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었다. 병무청은 30개월 이상 의무복무를 하고도 상병 만기 전역한 인원이 육군 69만2000여명, 해군 1만5000여명, 공군 3000여명 등 71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전쟁 나면 도망? 천만에!… 4명 중 3명 “軍 도울 것”

    전쟁 나면 도망? 천만에!… 4명 중 3명 “軍 도울 것”

    “직접 싸울 것” 12.5%뿐?… 그 이면엔남녀 75.1% “직간접으로 軍 뒷받침”“피난” 14.1% “외국 도피” 3.1% 불과10년 전 조사 비해서도 큰 차이 없어 “軍 생활 여건 향상” 94.2%이지만…女중대장 폭행 등 군기 문란 사건 여전기관총 오발에 ‘GP 총격’ 부실 대응도신뢰도 커진 만큼 사고 예방 총력 중요여러분은 ‘애국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국심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을 뿐 구체적으로 크기를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당장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아마 많은 분이 “전쟁 나면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겁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총 잡을 사람은 노인밖에 없다. 젊은 사람은 다 도망갈 것”이라는 비아냥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21일 국방부가 발간한 ‘2019 국방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8년 19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전쟁 발발 시 행동’을 조사한 결과 ‘군대에 들어가 직접 싸우겠다’는 비율은 12.5%로 집계됐습니다. 10명 중 1명꼴이면 너무 적은 수치인데, 여기엔 ‘통계 착시 현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성 63.6% “직접 안 싸우지만 軍 돕겠다” 남성 502명에게 물었더니 23.3%, 즉 4명 중 1명꼴로 군대에 들어가 싸우겠다고 답했습니다. 여성은 1.8%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남녀 응답을 합해 평균을 내다 보니 입대 의사가 12.5%로 크게 낮아진 겁니다. 여성은 징집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참전 의사가 적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싸우지는 않더라도 군대를 돕겠다’는 응답은 남성 61.8%, 여성 63.6%로 여성이 더 높았습니다. 남녀를 통틀어 75.1%, 국민 4명 중 3명은 직간접적으로 군대를 돕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대로 ‘전쟁이 없는 국내로 피난 가겠다’는 응답은 14.1%에 불과했습니다. ‘외국으로 도피한다’는 응답은 3.1%였습니다. 이런 응답 성향으로 미뤄 우리 국민의 애국심은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싸우겠다는 인원은 2014년 12.7%에서 2015년 16.7%까지 높아졌다가 서서히 하락해 2018년 12.5%가 됐습니다. 직접 싸우진 않더라도 군대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비율은 2014년 66.5%에서 약간의 등락을 보이다 2018년 62.7%가 됐습니다. 참전 의사는 지난 1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이 2010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군대에 들어가 직접 싸우겠다’는 응답이 15%,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군대를 돕겠다’는 응답은 62.7%였습니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처럼 과거에 애국심이 훨씬 높았다고 착각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20대 “직접 참전” 중노년층 “軍 돕겠다” 연령별로 군대에 들어가 싸우겠다는 비율은 19~29세가 22.1%로 가장 높았고 30대 16.2%, 40대 10.6%, 50대 10.9%, 60세 이상 6.2%였습니다. 직접 싸우진 않더라도 군대를 돕겠다는 비율은 19~29세가 44.9%로 가장 낮았고 60세 이상이 73.3%로 가장 높았습니다. 군대를 돕겠다는 의사는 중노년층에서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20대의 참전 의사도 그다지 낮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외국으로 도피한다는 비율은 60세 이상이 0.4%, 50대가 1.6%, 40대는 1.9%에 그친 반면 19~29세는 7.2%, 30대는 6.1%로 훨씬 높았습니다. 국내를 포함한 피난 응답은 19~24세가 24.2%로 가장 높았고 40대가 13.4%로 가장 낮았습니다. ‘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9.5%로, ‘신뢰하지 않는다’(40.5%)는 응답보다 높았습니다. 군에 대한 신뢰는 임모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과 선임병 구타로 숨진 윤모 일병 사건이 크게 부각된 2014년 50.9%까지 추락했다가 2016년 68.7%까지 높아진 후 2017년 50%대로 하락한 뒤 다시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군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 국방부가 추가로 다른 기관과 비교·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군 신뢰도는 65.0%로 공공기관·교육계(56.8%), 경찰(54.0%), 시민단체(47.7%), 정부(47.4%), 대기업(39.0%), 종교계(34.6%), 법원(33.1%)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특히 국회(8.6%)와 비교하면 7.5배 수준으로 조사됐습니다. 과거 군사정권을 거치며 군에 대한 불신이 커졌지만 군이 국가 방위라는 본연의 길을 가면서 다시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입니다.●‘軍 생활 나아졌다’ 인식 90%대로 높아져 병사 군 생활 여건에 대한 조사에서는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응답이 2014년 85.1%에서 2018년 94.2%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반면 ‘나아지지 않았다’는 응답은 2014년 9.2%에서 2018년 2.8%로 3분의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군 내 자살 사고는 2011년 97건에서 2018년 56건, 안전 문제로 인한 사고사는 같은 기간 42건에서 26건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해마다 군 사고가 줄어들고 있지만 최근엔 다시 ‘군 기강’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육군 상병이 작업 지시에 불만을 품고 대위인 여성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하고, 남성 부사관 4명이 술을 마시고 상관인 남성 장교의 집에 들어가 성추행하다 적발되는 등 군기 문란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또 경기 파주의 육군 부대에서는 4.2인치(107㎜) 박격포 사격 훈련 중 고폭탄 1발이 목표 지점(2.2㎞)을 무려 1㎞나 지나쳐 떨어지고, 해병대에선 정비 도중 기관총이 오발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북한군의 감시초소(GP) 총격 사건 조사에서는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원격사격체계인 KR6 기관총으로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K3 경기관총으로 임시 대응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군은 국민들의 신뢰를 동력으로 삼아 전진하는 조직입니다. 국민 신뢰도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자전거왕의 탄생- 전 조선 자전거 대회/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자전거왕의 탄생- 전 조선 자전거 대회/손성진 논설고문

    자전거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9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독립신문 등 신문에 자전거 광고가 간혹 등장하는데 대중에게 보급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초의 자전거 대회는 1906년 4월 2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훈련원에서 열렸다고 한다. 1913년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주최한 전 조선 자전거 경주대회가 1913년 4월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평양, 개성 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열렸다. 본격적인 대회로는 처음인 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바로 자전거왕 엄복동이다. 그때 나이 21세였고 40대가 돼서까지 각종 경주 대회를 휩쓸었다. 장소는 서울은 용산 부대 연병장, 인천은 만석동 매립지였다. 지금이야 자전거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운송수단이었다. 스포츠 경기로는 거의 처음이었을 자전거 경주 대회에는 관람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천막을 쳐 놓고 구경했고 관람객을 위한 임시 전차를 운행하는가 하면 시내 중심가의 상점들은 하루 문을 닫았다. 고관들은 부인을 동반하고 대회장에 앉아서 관람했다. 용산에서 열린 서울 대회의 관람자는 10만여명에 이르렀다. “운동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송곳 세울 틈도 없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매일신보 1913년 4월 15일자). 서울 대회의 제1류 경주에는 일본인 4명과 한국인 엄복동, 황수복 두 사람이 참가했는데 엄이 1등, 황이 3등으로 골인했다. 그런데 이어진 본사 우승기 쟁탈 경주에 엄복동과 일인 8명이 경주를 펼쳤는데 엄 선수가 결승점에 들어오기 직전 일인 선수의 바퀴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 엄복동이 당시 대회에서 탄 자전거는 중고였다고 한다. 이후 엄 선수는 조선의 자전거 경주대회를 석권하게 된다. 3·1 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 5월 일제는 일본 최고의 선수들을 불러 엄복동과 한국인들의 기를 꺾으려고 대결을 붙였는데 일본 선수들은 뒤처지거나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일인들은 엄 선수가 대회장을 돌지 못하게 막아서며 방해했다. 우승기는 엄 선수 차지가 됐다. 분개한 일인들이 우승기를 빼앗고 엄 선수를 구타하는 소란을 피웠고 격분한 한인 군중은 “심판원과 일인들을 때려잡아라”라고 소리치며 돌을 던지며 항의해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매일신보 1920년 5월 4일자). 동아일보는 엄 선수가 골인하기 전에 심판이 별안간 경기를 중단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런 엄 선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20여년 동안 자전거 절도 행각을 벌이며 몇 번이나 처벌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다. sonsj@seoul.co.kr
  • 오렌지라이프 ‘오렌지 큐브 종합건강상해보험’… 필요 보장만 조립식 가입

    오렌지라이프 ‘오렌지 큐브 종합건강상해보험’… 필요 보장만 조립식 가입

    오렌지라이프는 비갱신형 특약으로 보험료가 오르지 않고 진단·수술·입원비 등을 선택해 보장하는 ‘오렌지 큐브 종합건강상해보험’을 내놨다. 맞춤형 보장을 원하는 소비자 성향을 반영한 이 상품은 원하는 급부만을 선택해 합리적인 보험료로 다양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재해장해보장을 주계약으로 구성해 건강보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 진단보장특약 12종, 입원보장특약 3종, 수술보장특약 4종과 사망보장·질병장해보장특약 3종까지 총 22종의 특약을 갖췄다. 이 상품은 암, 치매, 당뇨, 입원, 수술 등 살아있을 때 받는 보장을 특히 강화했다. 일반암진단특약에 가입하고 일반 암으로 진단 시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한다. 남녀특정암진단특약에 가입하고 유방암 및 전립선암 등 남녀생식기 암을 진단받으면 일반 암과 같이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한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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