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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봄날, 어느 ‘세월’ 꼭 꿈으로라도 다녀가렴

    어느 봄날, 어느 ‘세월’ 꼭 꿈으로라도 다녀가렴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 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안산 합동분향소에 있던 단원고 학생 어머니의 편지 중에서)공교롭게도 아이의 백일 상에 올려 두었던 용품들과 명주실 타래를 책상 서랍에 넣어 둔 날이었다. 차일피일 정리를 미루다 결국 아이가 200일 가까이 되고 나서야 계획했던 예쁜 상자에 넣는 일은커녕 그것들을 그저 안 보이는 데로 치우기만 한 거였다. 하필 그 저녁에 저 편지를 읽고야 말았다.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 한쪽의 실밥이 툭 터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사월이다. 당연히 돌아가는 시계이고, 돌아오는 계절인데도 그 후로 4월이면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눅진하다. 아기를 낳고 나니 뼈 안쪽이 더 지긋해지는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이럴진대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어떨까 하며 제주 쪽을, 합동분향소와 학교가 있던 안산 쪽을 굽어본다. 2014년 4월 16일. 소설 마감과 학교 수업 준비에 밤을 새우고 정신없이 등교했다. 교실에 들어섰는데 아이들의 행동이, 교실의 공기가 여느 날과 사뭇 달랐다. 마주 앉아 있는 학생 몇몇은 울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 대신 우는소리만 돌아왔다. 학교는 단원고와는 십여㎞쯤 떨어진 곳이었다. 초조하게 뉴스를 보던 아이들과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올라왔을 땐 안도했지만,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원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퍼졌다. 학생들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들은 파편으로만 남아 있다. 추모를 위한 모임이나 분향소에 가지 말 것, 상복으로 느껴질 만한 색의 정장을 입고 등교하지 말 것 등의 ‘이상한’ 공문이 내려왔고 그것이 하달될 때마다 나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은 탄식과 저항의 말들을 쏟아냈다.노란 리본을 달고 등교하는 것도 금지였다. 나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리본 스티커를 구해서 차에 붙였다. 꿋꿋하게 검은 옷을 입고 갔고, 방과 후 수업을 빠지고 장례식장에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1주기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갔다. 광장을 빙 둘러쌌던 그날의 차벽들과 저항하던 사람들, 그리고 경복궁 앞에 웅크리고 있던 삭발한 유가족들. 곳곳에서 터지던 비명과 고함, 그리고 차벽을 넘어갔다가 아예 차체를 쓰러뜨리던 사람들 곁에 나는 그저 서 있었다. 이리저리 사람들이 몰려다니던 한복판에 그저 서 있었다. 단지 그 한가운데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밥을 굶고 앉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밖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던 날이었다.세월호에 관련된 문학 작품들을 읽고 있던 대학의 강의실에서 누군가 크게 울어 이유를 물어보니 그 전날 수학여행을 마치고 자신들이 타고 왔던 배가 세월호여서 어쩌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학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아연함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듣는, 희생자의 친구 얼굴은 또 얼마나 어두웠던가. 7년이 지났다. 그로부터 세상은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나. 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정책의 결정자들은 얼마나 달라졌나. 7년이라는 세월을 대충 가늠하기도 전에 여전히 광장에, 청와대 앞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속해서 삭발하고 끼니를 거르며 서 있다. 어째서 저들이 여전히 저 자리에 서 있는가.정권이 바뀌고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어가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을 비롯해 생존자들은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 나갔다. 단원고에 4·16 기억교실을 세워 기록물 보존과 유품, 유류품들을 보존 관리하기 시작했고, 기록 유형에 상관없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수집하고 등록하며 정리했다. 마을 공동체 등과 협업해 마을 아카이빙 양성교육, 미래세대 청소년 기록단 양성교육과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의 민주 시민 교육 등을 활성화했으며 4·16 기억 전시관의 문을 열었다. 총 100권으로 쓰인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를 출간했고, 팽목항에 ‘팽목 기억관’을 세우고 지켰다. 엄마들이 모여 뜨개질을 했고, 아빠들은 목공예 작업을 시작했다. 합창단과 연극팀을 꾸려 전국 곳곳을 다니며 공연도 했다. 명예졸업식을 치르고, 해마다 기일이 되면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추모하러 다닌다. 희생자 학생들 외에 일반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다 잊지 않기 위해, 참척의 아픔을 삭이려 다니던 길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쌓은 발자취들이었다. 또 유가족들은 5·18과 선감학원, 남영호 등의 피해자들을 만나는 일도 병행했다. 상처와 상처들이 만나 참사와 안전 그리고 연대라는 말들과 함께 새로이 어깨를 견주었다. 제주에 기억 공간을 만든 것도 역시 유가족들이었다. ‘세월호 제주 기억관’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지만 끝내 닿지 못했던 곳, 제주에 아이들을 위한 기억 공간을 만들자”는 생존학생 장애진 아빠 장동원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4·16 가족협의회와 평화쉼터 신동훈 대표가 협약서를 체결하고 6개월 준비 기간을 거쳐 신동욱 작가가 완성한 현판 글씨체를 강정마을을 지키던 문정현 신부께서 조각해 주셨다. 이 소식을 듣고 제주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도서, 조각품, 나눔 물건 등을 전시하면서 2019년 11월 6일 제주 4·3 평화공원 아래에 ‘세월호 제주 기억관’이 탄생했다.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기억관 내의 세월호 리본 옆에 그달에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기리는 일도 하고 있다. 2015년에 택시기사 임영호씨의 도움으로 ‘한별이’에게 생일 케이크와 꽃 화분을 전달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그 생일 기억 공간이 무척 특별하게 보였다. 기일이나 추모 대신 생일을 기억해 주는 일이라니! 제주 기억관에서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뿐만 아니라 4·3의 아픈 기억을 새긴 동백 배지도 함께 전시하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리본과 배지를 함께 나눠 주는 일을 진행 중이다. 단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유가족들은 먼저 간 아이와의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 이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 나갔고, 아직 아무런 답이 없는 정부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허공에 떠 있고, 노란 리본은 나날이 빛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엄마’이자 ‘아빠’인 가족들은 힘을 내었다. 7년이 지나는 동안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져 가던 아이들의 흔적을 혼신을 다해 기록해 두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들에게는 노란빛의 숙명처럼 다가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안전법들은, 연대의 방식들은 유가족들이 해 낸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들이 직접 만든 목공예품들은 현란한 꾸밈이나 노련한 솜씨들은 아니지만 사포질 하나에도 아이의 모습을 담아 매만졌을 거라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애잔한 조형물들처럼 느껴진다. 그 옆에는 304개 리본 트리와 기억조형물들이 놓여 제주 기억관을 꽉 채운다. 관람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생존자들도 간혹 다녀가는데, 희생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생존자들 역시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또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앞길이 모쪼록 편안하기를.금요일에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수요일에 떠났던 수학여행은 여전히 진도 해상 어디쯤에서 멈춰 있다. 그들 대신 세월호 기억관이 제주에 왔다. 못다 한 수학여행을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마무리하길, 매년 다가오는 봄의 어느 금요일에는 꼭 꿈으로라도, 바람이나 이슬, 햇살로라도 다가오길. 후생에는 꼭 다시 태어나 무병장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수학여행 길에 동참했다. ‘어디까지 와시니?/ 용머리해안까지 와수다/ 어디까지 와시니?/ 마라도 와수다 어디까지 와시니?/ 약천사 와수다/ 어디까지 와시니?/ 외돌개 와수다/(중략)/ 어디까지 와시니?/ 미천굴까지 와수다/ 어디까지 와시니?/ 성산일출봉 와수다/ …이젠 어디로 갈 거고/ …엄마…/ …집에는 언제 와시니?/ …아빠…/ 아가, 어디까지 와시니?/ …못 찾겠다 꾀꼬리!/ …할아버지…// (중략) 내 소리 들어점시냐/ 이 하르방 보염시냐/ 설운 애기 어디까정 와시니/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중략) 찾았다!/ 안녕…할아버지! (소설 ‘귤목’(橘木) 중에서) 소설가 이은선
  • 아파도 말 못하는 軍…병사 4명 중 1명 “진료 제때 못 받아”

    아파도 말 못하는 軍…병사 4명 중 1명 “진료 제때 못 받아”

    군 복무 중에 군 의료서비스를 경험한 병사 4명 중 1명은 진료 또는 검사를 제때 받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장병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군 의료체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군 의료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병사 637명 중 158명(24.8%)이 진료 또는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었으나 제때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군 간부 145명 중 진료 또는 검사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간부는 13명(9.0%)에 불과했다.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이번 실태조사는 군 복무 중 대대·연대급 부대 의무실, 사단급 이상 부대 의무대, 국군수도병원 등에서 진료·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장병 78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병사들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한 요인을 살펴본 결과(복수응답) ‘증상이 가볍거나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 같아서’(46.2%) 다음으로 ‘훈련·근무 때문에 의료기관에 갈 시간이 없거나 근무지를 비울 수 없어서’(44.9%), ‘부대 분위기상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워서’(27.8%)가 주된 이유였다. 계급이 낮을수록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떨어졌다. ‘부대에서 정한 단체 외래진료 날짜에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응답 비율이 훈련병과 이병은 각각 40.0%, 42.9%였으나 일병은 28.9%, 상병은 20.7%, 병장 18.0%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병사들이 아플 때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경험(미충족 의료 경험) 비율은 일반 국민의 미충족 의료 경험률인 7.8∼10.8%보다 2∼3배 높다”면서 “업무 대체가 어려운 장병들도 의료서비스를 쉽게 이용하게 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부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병대 최초 ‘세 쌍둥이’ 대원 탄생… 큰형까지 무적해병 4형제

    해병대 최초 ‘세 쌍둥이’ 대원 탄생… 큰형까지 무적해병 4형제

    해병대 창설 72년 만에 처음으로 세 쌍둥이 해병대원이 탄생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8일 부대 연병장에서 해병 1267기 1154명 수료식을 했다. 이날 수료식에서 세 쌍둥이인 김용호·김용환·김용하 이병은 ‘무적해병’이 됐다. 세 쌍둥이 해병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 19세인 이들은 2015년 연평도에서 해병 1203기로 복무한 큰형(김동화 예비역 병장) 추천으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 해병대 입대를 결심하고 같은 기수로 병무청에 지원서를 냈다. 첫째인 김용호 이병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며 “어머니와 함께 형을 면회하러 갔을 때 북한이 보이는 연평도에서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해병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대 후 힘들 때 서로 도우며 단결력을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세 쌍둥이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병대 6여단에 배치된다. 주특기로 상륙군통신운용병 임무를 부여받아 2주간 후반기 교육을 받고 백령도로 갈 예정이다. 이들은 “형을 포함해 4형제가 모두 대한민국 서북도서를 지키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백령도에 가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포토] 세쌍둥이 해병 탄생… 서해 최북단 백령도 배치

    [포토] 세쌍둥이 해병 탄생… 서해 최북단 백령도 배치

    세쌍둥이 해병대원이 탄생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8일 부대 연병장에서 해병 1천267기 1천154명 수료식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족 초청 없이 부대 자체 행사로 연 수료식에서 세쌍둥이인 김용호·김용환·김용하 이병은 ‘무적해병’이 됐다. 세쌍둥이 해병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쌍둥이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병대 6여단에 배치된다. 연합뉴스
  • 해병대 첫 세쌍둥이 해병 탄생…서해 최북단 백령도 배치

    해병대 첫 세쌍둥이 해병 탄생…서해 최북단 백령도 배치

    해병대 창설 72년 만에 처음으로 세쌍둥이 해병대원이 탄생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8일 부대 연병장에서 해병 1267기 1154명 수료식을 했다. 이날 수료식에서 세쌍둥이인 김용호·김용환·김용하 이병은 ‘무적해병’이 됐다. 쌍둥이 형제들이 한꺼번에 해병대에 입대한 경우는 수차례 있었으나 세쌍둥이 해병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 19세인 이들은 2015년 연평도에서 해병 1203기로 복무한 큰 형(김동화 예비역 병장) 추천으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 해병대 입대를 결심하고 같은 기수로 병무청에 지원서를 냈다. 첫째인 김용호 이병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며 “어머니와 함께 형을 면회하러 갔을 때 북한이 보이는 연평도에서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해병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대 후 힘들 때 서로 도우며 단결력을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세쌍둥이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병대 6여단에 배치된다. 주특기로 상륙군통신운용병 임무를 부여받아 2주간 후반기 교육을 받고 백령도로 갈 예정이다. 이들은 “형을 포함해 4형제가 모두 대한민국 서북도서를 지키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백령도에 가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구한말 첫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출생지는 경기 구리”

    “구한말 첫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출생지는 경기 구리”

    우리나라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인 윤희순(1860∼1935년) 선생이 경기 구리시 수택동 검배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기 구리시는 6일 구리문화원이 최근 진행한 윤희순 출생지 관련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윤 선생의 출생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동안 출생지가 각종 기록에 구리와 서울로 양분되어 있었다. 다만 상당수 자료가 구리를 출생지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는 서울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구리문화원은 지난해 말부터 문중 자료 분석과 종친회·후손 면담 등의 방법으로 윤 선생의 출생지를 연구했다. 이를 통해 선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수택동 검배마을에 살았던 것을 확인했다. 구리문화원 향토사 연구진은 “조선 말기 시대적 상황으로 미뤄 윤 선생의 정확한 출생지는 검배마을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자문위원인 황선익 국민대 교수는 “해주 윤씨 문중 세거지와 세보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조사 결과에 상당한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으며 향토사 연구 차원을 넘어 학계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윤 선생은 1876년 16살 때 결혼해 시댁인 춘천에 살았으며 1895년 전국적인 항일운동인 을미의병 때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섰다.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당시 가사만 전담했던 여성에게 구국운동을 일깨우고 항일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1907년에는 30여 명으로 구성된 ‘여성의병’을 조직해 취사와 세탁 등을 지원하거나 탄약제조소를 운영했으며 때로는 남장하고 정보 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국권을 강탈당한 1911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선전, 독립자금 모금, 민족학교 설립 활동 등을 펼쳤고 1915년에는 중국인과 조선인의 항일 연대단체인 무순 조선독립단을 조직하고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했다. 국내외에서 40년간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일본 헌병에 체포된 뒤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5년 숨졌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안승남 시장은 “이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윤희순 의병장의 출생지를 근거 자료를 통해 밝힌 것은 항일 의병운동과 독립투쟁으로 나라를 되찾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빛내기 위한 역사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같은 계급 병사라도 분대장 공개망신 주면 상관모욕죄”

    “같은 계급 병사라도 분대장 공개망신 주면 상관모욕죄”

    군대에서 같은 계급끼리라도 분대장인 동료를 공개적으로 망신줬다면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상관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같은 상병 분대장에 사격점수 못 하다고 비아냥 A씨는 2016년 10월 생활관에서 같은 상병 계급인 분대장 B씨의 사격 성적이 자신보다 못하자 언성을 높이며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사격술 예비훈련 하는 것 아니냐”, “분대장이면 잘 좀 하고 모범을 보여라”라고 말해 B씨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1·2심은 B씨를 A씨의 상관이라고 볼 수 없다며 상관모욕죄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분대장은 규정상 분대원들에 대해 특정 직무에 관한 명령과 지시권이 있지만, 항상 명령-복종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분대장과 분대원은 명령-복종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분대장을 상관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육군 규정이 사병 상호 간 관등성명 복창과 지시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분대장’은 해당 규정에서 예외로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원심은 사병인 분대장을 상관모욕죄의 ‘상관’으로 볼 수 없다고 잘못 판단한 채 모욕에 해당하는지 심리하지 않고 무죄를 인정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중위 향해 “왜 시비냐” 말한 혐의는 무죄 한편 A씨는 동료 병사 B씨에 대한 상관모욕 혐의 외에도 중위 C씨에 대한 상관모욕 혐의로도 재판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이를 무죄로 본 원심이 정당하다고 봤다. A씨는 2016년 9월 21일 강원 홍천군의 연병장에서 대위 등 6명과 같은 부대 소속 병사 약 110명이 있는 자리에서 대위에게 유격훈련 불참을 요구하던 중 소대장인 중위 C씨가 “군의관 진료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유격훈련에 참여하고 어머니와 면담하겠다”고 하자 “협박 아니냐. 그럴 거면 소대장 어머니도 불러서 얘기하자”는 취지로 반박하며 삿대질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2016년 10월 5일 C씨가 또 다른 일로 진술서 작성을 요구하자 진술서 용지와 펜을 집어던지며 “아침부터 시비 걸어서 사람 아프게 해놓고 이런 것 쓰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시비”라고 말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C 중위를 향한 상관모욕 혐의에 대해 1심은 “군기를 문란케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재판 당시 이미 제대해 재범 가능성이 없는 점을 고려해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2심은 “A씨의 언행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며 1심을 파기하고 A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C 중위에 대한 상관모욕 혐의 무죄에 대해선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마·필로폰 투약에 재배까지 하는 軍···마약 범죄 5년간 59건

    대마·필로폰 투약에 재배까지 하는 軍···마약 범죄 5년간 59건

    2016년 8건에서 2019년 24건으로“마약 예방교육과 엄중 처벌 등 대책 마련 시급”군대 내 마약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순 투약부터 판매까지 범죄 형태는 물론 계급을 막론하고 마약 범죄가 군대 내 만연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이 국방부와 육·해·공군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군 내 마약범죄는 총 59건이다. 2016년 8건이던 마약 범죄는 2019년 24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10건으로 잠시 주춤했다. 육군이 47건으로 가장 많았고, 해군 5건, 국방부 4건, 공군 3건 순이었다. 범죄 유형은 다양했다. 계급도 가리지 않았다. 육군 병장 3명은 마약 광고를 보고 구매한 필로폰을 매수·매매·투약해 징역 3년형에 추징금 2100여 만원을 선고받았다. 인터넷에서 필로폰 2g을 구매해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된 해군 6급 군무원도 있었다. 대마·필로폰 뿐 아니라 엑스터시나 젤리 대마 등 신종·변종 마약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2020년에는 한 육군 하사가 밀수한 대마 씨앗을 직접 심어 기른 뒤 수확해 투약해 적발되기도 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강 의원 측에 “복무 중 휴가를 통해 입수한 마약이 적발돼 신분상 군으로 송치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면서 “적발됐으나 전역한 인원은 민간 검찰로 사건을 이첩해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대식 의원은 “20대 초반 병사들의 마약범죄 건수가 최근 들어 급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특히 2019년 4월 이후 사병들의 핸드폰 사용이 허용돼 SNS를 통한 마약접근이 쉬워져 향후 더욱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은 마약에 대한 예방교육은 물론 적발 시 엄중한 처벌을 하고, 마약사범에 대해 중독 치료를 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北 보란 듯… ‘심판의 날’ 타고 온 美국방

    北 보란 듯… ‘심판의 날’ 타고 온 美국방

    17일 한국에 도착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심판의 날 항공기’로 불리는 핵공중지휘통제기 E4B 나이트워치를 타고 와 눈길을 끈다. 미 국방장관이 핵전쟁 시 공중지휘본부 역할을 하며 핵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E4B를 타고 한국을 찾은 것은 2017년 2월 제임스 매티스 당시 장관 이후 처음이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정오쯤 E4B 나이트워치를 타고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E4B는 핵전쟁 시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을 태우고 이들이 공중에서 전쟁을 지휘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E4B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 잠수함 등 모든 핵전력에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모든 육해공군 사령부 및 부대를 지휘할 수 있다. 이에 오스틴 장관이 E4B를 타고 온 것은 한반도에 주요 전략자산을 전개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7년 2월 매티스 당시 장관이 E4B를 타고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북핵 위협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오스틴 장관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국방부 연내 연병장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과 함께 의장행사에 참석했다. 국방부는 오스틴 장관의 첫 공식 방한이라는 의미 등을 고려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의장행사를 180여명의 의장대가 참여한 정식 행사로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틴 장관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의장대 장병에게 개인적인 감사를 전해 주시기를 부탁한다”며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모두발언 말미에는 한국어로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인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오스틴 장관은 국방부 방문을 기념해 남긴 방명록에 “굳건한 동반자 관계와 보다 더 강력한 동맹으로 나아가길 고대한다”고 적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여성’이라 잊혀진 이름들 ‘여기’ 우리가 기억합니다

    ‘여성’이라 잊혀진 이름들 ‘여기’ 우리가 기억합니다

    각 위인 상징하는 명언·이미지 활용배지 등 일상 속 오래 남은 물건 제작 “문헌 속 ‘비록 여성이었지만’ 표현 많아독립운동에 성별 없다는 사실 알리고파”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해 정부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총 1만 6685명이지만 이 중 여성은 3.2%(526명)에 불과하다. 정말 그랬을까. 오랜 남성 중심의 역사를 고려하면 여성들은 독립운동에 이바지하고도 그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학생 5명이 뭉쳤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기록하려고 팀 이름은 ‘여기’(女記)로 지었다. 지난해 12월 결성된 ‘여기’ 팀은 현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이들이 남긴 명언을 활용해 배지와 스티커 등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정은(22)씨는 15일 “소셜미디어, 지하철, 버스 광고도 생각했지만 광고는 게재 기간이 끝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질 수 있어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디자인을 전공한 신혜선(23)씨가 팀에 합류했다. 신씨는 “학교에서의 여성 독립운동가 교육은 유관순(1902~1920) 열사를 위주로 짧게 가르치는 게 전부”라면서 “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주목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기’ 팀은 우선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1903~1988) 지사,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 독립운동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하고 세 번의 단지 혈서를 쓴 남자현(1872~1933) 의사,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1860~1935) 의사 등 상징성이 강한 인물들을 선정했다.임수아(23)씨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와 관련한 문헌이 많이 부족해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에 속상했고,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점을 반성했다”고 말했다. ‘여기’ 팀이 지난달 18일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목표한 후원 금액은 150만원이었으나 이날까지 약 240만원이 모였다. 이소원(24)씨는 “많은 후원금과 응원 메시지로 저희 프로젝트를 지지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기’ 팀은 배지, 스티커 등 판매 수익으로 역사 속에서 잊힌 여성 위인들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임채희(24)씨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소개할 때 ‘비록 여성이었지만’과 같은 말이 문헌에서 많이 사용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립운동 참여에 성별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UAE 파병 아크부대엔 ‘영웅의 아들들’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군사훈련·협력 등의 임무를 수행할 아크부대 18진이 9일 현지로 출국했다. 대를 이어 파병되는 장병, 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 등 135명으로 구성된 아크부대 18진은 오는 11월까지 현지에서 활동한다. 김명응(중령) 단장이 이끄는 아크부대 18진은 지난 8일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환송식을 한 뒤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아크부대 18진 장병들은 출국 전 기능별 주특기 훈련과 UAE 문화를 이해하는 교육 등을 받았다. 장병들은 두 차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출국 전까지 2주간 격리했다. 아크부대 18진은 육군특전사 특수전·대테러·고공팀과 해군특수전전단 요원(UDT/SEAL), 지원부대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육군 최정예 300전투원(300워리어)과 특전사 탑팀(TOP-Team)에 선발된 특수전 1팀 등 최고의 특전요원들이 포함됐다. 또 최초로 해병대 소령 편제를 반영해 최현창 소령이 지원과장 임무를 수행한다. 아크부대 18진에는 아버지를 이어 파병에 나선 장병들도 있다. 김태윤 중사의 아버지 김경천 원사는 이라크 자이툰 2·7진으로 파병됐으며, 지원중대 류웅렬 일병의 아버지 류인석 대령은 미국 합참 연락장교로 파병된 경험이 있다. 특수전 2팀 남지한 중사의 경우 형 남정한 중사가 레바논 동명부대 24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아버지 남익현 원사는 동명부대 25진으로 선발돼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있어 삼부자가 모두 파병에 나서게 됐다. 아울러 대테러 2팀장 엄지호 대위는 6·25전쟁 참전용사의 외손자로 18진에 포함됐다. 엄 대위의 외조부는 6·25전쟁 초기 다부동전투에 참가했던 고 조규한 병장이다. 특수전 4팀의 안요한 대위는 3대째 장교로 복역한 병역 명문가 출신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첫째 출산 월세 50% 감면, 둘째 무료… 충남 ‘더 행복한주택’ 주목

    첫째 출산 월세 50% 감면, 둘째 무료… 충남 ‘더 행복한주택’ 주목

    ‘지난해 출생아 역대 최저, 대한민국 인구 첫 감소.’(통계청 발표) “아이가 복덩이구나. 둘째 출산도 생각 중이에요.”(충남도 ‘더 행복한주택’ 입주 첫 출산자 변영섭씨) 최근 들려온 두 소식은 상반된 듯하지만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갈수록 녹록지 않은 삶과 생활에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충남도의 주택정책이 인기를 끌면서 실질적 해법이 될 것인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첫아이 낳으면 매년 600만원 월세 절감 변씨는 지난해 12월 첫아이(딸)를 낳은 뒤 지난달 중순 임대료 감면 신청서를 제출했다. 첫 출산 덕에 매달 임대료가 15만원에서 7만 5000원으로 절반이 감면됐고 거주 기간은 6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신혼인 변씨 부부는 지난해 8월 충남도 더 행복한주택 모집공고를 보고 천안시 두정동 59㎡형 아파트를 신청, 23대1의 경쟁을 뚫고 당첨돼 같은 해 11월 입주했다. 충남도는 9일 방 3개와 거실 등을 갖춘 행복한주택 59㎡형 임대료를 매달 15만원, 44㎡형은 11만원, 36㎡형은 9만원만 받는다고 밝혔다. 도가 펼치는 저출산 극복의 핵심 정책이다. 변씨가 사는 59㎡형 아파트는 현 시세로 전세는 3억원, 월세는 보증금 5000만원에 60만원 정도다. 변씨 부부는 첫아이 출산으로 연간 월세 600만원을 아끼고, 10년을 살 경우 6000만원 넘게 지원받는 셈이다. 둘째까지 낳으면 전액 면제다. 폭등하는 집값을 생각하면 둘째 출산도 거부하기 힘든 조건이다. 충남도는 지난해 처음 충남형 더 행복한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예산 50억원을 들여 천안, 보령, 서산에 아파트 20채를 매입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2018년 7월 취임 후 저출산 극복을 강조하고 이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양 지사는 “저출산은 한국의 가장 큰 위기이고 당면 문제”라면서 “민선 7기를 시작하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의 심정으로 저출산 극복에 나서겠다”고 했다. ●충남 지난해 출생아 이순신 운동장 못 채워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 24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 300명이 감소했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예상 출생아인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1년 전보다 0.08명 줄어들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 5100명으로 역대 최고다. 출생보다 사망이 3만 3000명 더 많아 인구가 처음 감소 반전했다. 합계출산율 1.0 이하는 전쟁 등 큰 외부충격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수치로 알려졌다. 지난해 0.84명은 전 세계 최저다. 저출산 국가인 일본 1.4명보다 훨씬 낮다.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19년 출생아는 서울이 5만 3700명으로 6만 6704명을 수용하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다 채우지 못하고, 충남은 1만 3200명으로 아산시 이순신 종합운동장(2만 5000명 수용)에 앉혀도 절반이 텅텅 빈다. 중앙부처 공무원이 대거 이전해 국내 시도 중 최연소 도시인 세종시마저 1.47명에 그칠 만큼 출산율 안정지대가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006년 한국을 ‘인구소멸 1호 국가’로 지목했다. 인구 감소 부작용은 벌써 속출한다. 올해 대입 응시생이 부족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급증했다. 지난해는 유·초·중·고 학생이 크게 줄어 전년보다 69개교가 감소했다. 양 지사는 “내가 천안 보산원초에 들어갈 때 입학생이 100명을 훌쩍 넘었는데 지난해는 5명이 입학했고 그전 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전교생이 20명도 안 된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초등교사 채용을 해마다 줄이고 있다. 국방부는 병력 감소에 따라 사단 해체를 가속화한다. ‘북핵’보다 무서운 인구절벽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곳도 많다. 충남은 부여·청양·태안군에 없다.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지난해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154곳이 문을 닫았고, 폐업 직전에 있는 곳도 부지기수다. 어린이집은 전국적으로 매년 1398곳이 감소하고 문구점은 1000개씩 사라지고 있다. 행정비용도 불균형이다. 인구 65만 9000명으로 충남 최대 도시 천안시는 올해 예산이 2조 2600억원으로 1인당 342만원꼴이지만 3만 1000명에 불과한 청양군 예산은 4392억원으로 1인당 1400만원이 넘는다. ●효과 좋아 내년까지 1000가구 공급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보고서에 기혼 여성이 원하는 자녀 수가 2.16명인 것을 볼 때 현 출산율은 매우 저조하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비싼 교육비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주거환경도 크게 한몫한다. 아파트 가격이 정부 지지율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현실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양 지사는 “신혼부부에게 주택보다 큰 걱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성민 주무관은 “양 지사 취임 후 신생아에게 36개월까지 매달 10만원씩 지급하는 행복키움수당 등 각종 출산 정책을 벌이지만 행복주택보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은 없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에 적극 건의하는 정책”이라고 했다.도는 아파트 매입에 그치지 않고 직접 아파트도 건설한다. 내년 말까지 아산시 배방읍 600가구를 비롯해 천안시 50가구, 당진시 100가구를 건설한다. 낙후된 홍성군과 예산군 각각 75가구, 서천군 25가구도 짓는다. 서천 등 3곳은 낮은 출산율과 높은 고령화로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매입형 주택도 80가구를 추가해 모두 100가구로 늘린다. 모두 2404억원이 투입된다. 김태영 도 주무관은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정책으로 예산이 많이 드는 데다 신혼부부 등이 선호하는 도심은 값이 너무 올라 부지 등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현금 지급 등 다른 방법보다 반응이 좋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내년까지 매입형 100가구와 건설형 900가구 등 총 1000가구를 공급하고 그 이후는 성과와 여건을 보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후임 젖꼭지 1천번 추행’ 해병대원 “상병 강등 부당하다”

    ‘후임 젖꼭지 1천번 추행’ 해병대원 “상병 강등 부당하다”

    전역 후 유죄 집행유예대대장 상대 행정소송법원 “상병 강등 적법” 군 복무 시절 후임들을 강제추행하고 상습 구타해 유죄가 확정된 해병대원이 상병 강등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017년 해병대에 입대한 A씨는 탄약수로 복무하던 중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 사이 생활반에서 후임병인 B 일병을 자신의 침대로 부른 뒤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1000번가량 비볐다. C 일병도 똑같은 방법으로 A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그는 2018년 11월 9일부터 2개월간 B 일병을 300여 차례 때리기도 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C 일병과 또 다른 상병도 각각 255차례와 130차례씩 맞았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A씨는 해병대 2사단 보통검찰부의 수사를 받았다. 전역을 일주일가량 남기고 A씨는 징계를 받고 계급이 병장에서 상병으로 강등됐다. 군검찰은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A씨가 만기 전역하자 2019년 4월 대구지검 김천지청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은 3개월 뒤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A씨의 혐의 중 2018년 5월 위병소에서 근무 중인 다른 해병대원을 대검으로 2차례 폭행한 사실도 징계 당시 밝혀졌던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는 군검찰 조사에서 “A씨가 대검을 목에 갖다 대고 머리에 쓴 방탄 헬멧을 내리쳤다”고 진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강제추행 및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그와 검찰 모두 항소했으나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상병으로 전역한 A씨는 해병대에 복무할 당시 징계 사유와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강등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법 행정1-1부(부장 정우영)는 A씨가 해병대 2사단 모 대대장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징계 사유와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징계권자의 재량권을 벗어난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 등은) 상당한 기간에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피해자도 다수”라며 “영창이나 휴가 제한보다 높은 강등을 선택한 처분은 국방부 훈령인 징계 양정 기준의 범위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한 강제추행 정도가 가볍지 않고 피해자들이 느꼈을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강등 처분은 적법하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포토] 육군3사관학교생도의 오차없는 군기

    [포토] 육군3사관학교생도의 오차없는 군기

    3일 오후 경북 영천시 고경면 육군3사관학교 충성연병장에서 제56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렸다. 2019년 입교해 2년 동안 일반전공과 군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483명(여군 47명 포함)이 이날 소위로 임관했다. 이날 임관식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외부 인사 초청 없이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국방홍보원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중계됐다. 육군3사관학교 제공/뉴스1
  • GOP 부사관에서 장교로 새 출발…“태극기 자부심 확고해져”

    GOP 부사관에서 장교로 새 출발…“태극기 자부심 확고해져”

    3일 육군3사관학교 56기 임관식부사관 출신 최현성 소위, 대통령상중학교 교사 출신은 공보정훈 선택육군5사단 GOP(일반전초) 부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 최현성(27) 소위가 3일 오후 육군3사관학교 임관식에서 대통령상을 받는다. 2019년 입교해 2년 동안 교육 과정을 이수한 최 소위는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두 개의 군번을 갖게 됐다. 최 소위는 “처음 부사관으로 육군에 임관할 때부터 군복과 어깨의 태극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면서 “장교로 임관하게 된 지금 그 자부심과 긍지가 더 확고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야전에서 전우들과 잘 소통하며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 정예장교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박윤미(26) 소위는 사관생도가 되기 전 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박 소위는 교사 경험을 살려 장병 교육과 관련된 공보정훈 병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박 소위는 “예전에 가르친 학생들이 올해 고3 수험생이 되는 데 나를 보며 육군 장교의 꿈을 키워가는 학생도 있다”며 “야전에서 부여된 소임을 다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날 오후 3시 경북 영천 3사 충성연병장에서 열리는 제56기 졸업 및 임관식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외부인사 없이 최소 인원으로 진행한다. 6·25전쟁 당시 수도사단 소속이던 고(故) 서상안 하사의 외손녀인 황선영(25) 소위는 이날 외할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대신 받는다. 3대 군인가족도 탄생했다. 박인준(26) 소위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한 할아버지 고 박영윤 중령과 육군 중위로 전역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 장교의 길을 걷게 된다. 박지원(24) 소위는 태권도 4단, 특공무술 3단, 합기도 3단, 용무도 2단, 킥복싱 1단 등 도합 13단의 무도 단증을 보유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안승남 구리시장,“독립운동가들 숭고한 희생과 고귀한 정신 애국으로 계승해야”

    안승남 구리시장,“독립운동가들 숭고한 희생과 고귀한 정신 애국으로 계승해야”

    경기 구리시는 1일 오전 10시 시청 대강당에서 제102주년 3·1절 기념 행사를 가졌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 등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진행된 이번 기념식에는 독립 유공자 유가족과 보훈, 향군 단체 등 관계기관 관계자 등 약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리시 공식 유튜브 해피 GTV를 통해 생중계로 함께 진행됐다. 기념식은 함천우 독립 유공자 유가족 대표의 독립선언서 낭독, 안승남 구리시장의 기념사, 독립 유공자 유가족 꽃다발 증정, 안영기 구리문화원장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하며 순국 선열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우리 민족의 위대한 항쟁의 역사를 함께 기억했다. 안승남 시장은 기념사를 통해“조선 최초 여성 독립 의병장으로‘비록 여자라 해도 나라를 구하는데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신 구리시 출생의 윤희순 여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안 시장은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국가유공자 기록화 사업인 ‘잠들지 않는 이야기’에 구리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등 후손 2명을 추가하여 국가유공자의 날인 오는 26일, 3편을 발간하는 등 이러한 기록화 작업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고귀한 정신을 애국으로 계승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詩랑 동백이랑, 붉게 물들어볼까

    詩랑 동백이랑, 붉게 물들어볼까

    어디에선가 시 한 편을 접했다. 제목은 ‘숙희이야기’. 이른바 ‘라떼 시절’에 경북 포항의 구룡포에서 벌어진 애사가 담긴 시다. 한데 시에선 여태 알던 구룡포와 다른,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향기가 났다. 시를 쓴 이는 권선희 시인. 쉰여섯 생애 가운데 장성한 이후 20년 세월을 구룡포에서 살아온 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구룡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룬 시집이 벌써 두 권째다. ‘구룡포로 간다’(2007)가 앞서고 ‘꽃마차는 울며 간다’(2017)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펴낸 산문집 ‘숨과 숨 사이 해녀가 산다’까지 포함하면 세 권째다. 어느 곳엔들 저마다의 속사정이 없을까만, 이 마을엔 대체 무슨 사연이 이리 많은 건가. 주민이라야 7000명을 헤아리는 동네에서 말이다.“구룡포발 대구행 아성여객 차장이었을 때 숙희는 한 마리 비둘기였다지요 빨간 명찰 말년 병장 숙박계 날려쓰던 겨울 밤 싸나이 팔뚝에 머리 파묻고 처음 날개를 벌렸다지요 헐거운 여인숙 그 방을 두고 머리채 질질 반장 손에 끌려간 새벽은 세찬 바람으로 오래 울었다지요 태광호도 중심 잔뜩 부풀어 돌아오는데 아무튼 포장치고 회 뜨는 쉰 살 숙희 세꼬시 썰리듯 살아도 첫차처럼 올라탔던 싸나이는 여적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명치끝에 아예 눌러 붙었다지요” 시 ‘숙희이야기’의 전문이다. 초봄의 갯마을로 발걸음하게 만든 시. 실제 아성여객에 근무하던 차장(안내양)의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권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시들이 대부분 이랬다. 구룡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시가 됐다. 어찌어찌 권 시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귀동냥이라도 해서 새로운 느낌의 구룡포를 만날 요량이었다. 사실 여행자에게 동해 바다는 늘 낭만과 포용의 공간이어야 했다. 삶이 무료해질 때마다 그 바다 앞에 나를 세우려는 이들이 모험과 충전을 위해 찾는 무대였다. 하지만 낭만 너머에는 누군가의 고단한 삶이 있다. 권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구룡포’는 그런 다양한 생의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다. 시인은 구룡포 여정의 들머리로 선소(船所)를 권했다. 선소는 배를 만들거나 수리, 해체하는 곳이다. 배의 일생이 시작되고 끝을 맺는 자리란 뜻이다. 문제는 선소의 분위기가 여행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예전과 다르다고는 해도 선소는 여전히 걸걸한 사내들이 많은 일터다. 자칫 사진을 찍다 으르딱딱대는 선주와 마주칠 수도 있다. 될 수 있으면 눈으로만 살피며 빠르게 지나길 권한다. 선소 위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용의 대가리’ 용두산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언덕에 서면 구룡포항 일대를 얼추 굽어볼 수 있다. 구룡포항엔 위판장이 세 곳이다. 항구는 하나지만 위판되는 어종에 따라 구역이 나뉜다. 주민들은 이를 ‘판장’이라 부른다. 선소가 있는 남쪽부터 트롤선, 대게를 포함한 잡어선, 그리고 활어선(주로 오징어잡이배) 판장이다. 선소에서 잡어선 판장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구룡포 읍내다. ‘매월여인숙’부터 찾는다. 시 ‘숙희이야기’의 배경이었던 곳. 읍내 구룡포노인무료급식소 바로 옆에 있는데도 찾기가 쉽지 않다. 햇볕 한 줌 겨우 드는 골목을 지나야 나온다. 예전엔 이 일대에서 명자깨나 날리던 숙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여인숙’은 사라지고 낡은 건물만 남았다.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여인숙(‘매월여인숙’)은 이제 기억 속에 박제되고 만 거다. 읍내 고래고기 음식점에 전시된 고래 생식기처럼 말이다. 마을 골목골목엔 이 같은 사연들이 수없이 흐른다. 손 없는 집에 들어가 자식을 여섯이나 낳은 첩과 그 첩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받아낸 뒤 부산으로 가 광주리 장사로 먹여 살린 본부인 이야기(‘누가 더 불쌍한가’), 술추렴하다 “시발 문디 지랄 같은 기마 화딱 디비 엎어 뿔고 에이 시벌컥벌컥벌컥벌컥컥 컥”대던 사내 이야기(‘돌림노래’), “새끼 내삐리고 소식 는 둘째 놈” 탓에 “고래 새끼만도 몬한 내 손주 놈 가여버”하던 할아버지의 이야기(‘사램이 고래만 같으믄’)들이 항구 뒤편 골목에 가득 채워진다. “산 사람 덕분에 죽을 수 없는 개”(‘목포집 덩실이’)와 뭇 사내들에게 해체되던 고래(‘끝내주는 것’) 등 동물과 자연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강원 춘천 출신의 시인이 채록한 사투리들이 토속적 정취의 시어가 되어 주는 건 물론이다. 사실 구룡포 하면 TV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벌써 두 해 전에 끝난 드라마인데도, 촬영지를 둘러보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하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로 촬영된 곳은 일본인 가옥거리(근대문화역사거리)다. 옛 다이토 여관이었던 동백(공효진 분)의 가게 ‘까멜리아’ 등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일본인 가옥거리가 해안가 평지에 있다면, 한국인들이 살던 집들은 그 뒤의 비알에 있다. 일본인 거리가 방구석 1열, 한국인 거주지는 방구석 3열쯤 되려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았던 우리나라 해안 도시 어디나 비슷한 모양새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 비알에도 사연들은 빼곡하다. 우선 사라진 것부터. 권 시인에 따르면 비알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건 용왕당이다.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고 옮겨간 것이다.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었을 텐데, 그 사연이 씁쓸하다.예전 용왕당은 드라마 속 ‘동백이네 집’ 옆에 있었다. 일제 때는 일본 사찰이 이 자리를 차지했고, 일제가 물러난 뒤에는 가톨릭 공소로 쓰였다. 현재 텃밭 가운데에 성모 마리아상이 어색하게 서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용왕당을 허문 이들은 인근 충혼탑 뒤에 크고 번듯한 용왕당을 새로 지었다. 그 탓에 조상 대대로 전해지던 기억의 공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충혼탑 주변으로 볼거리가 많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사진이 촬영됐던 계단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동백이네집’, 과메기문학관, 아라예술촌 등에도 관심 두는 이들이 많다. 단층 폐가 위에 희망을 담아 세운 조형물 블루 프린트, 동백꽃담 등 거리 예술 작품들도 볼만하다.구만리도 찾았다. “청보리 수런대며 익어가는” 그 마을에 가면 “그렁그렁 차오르던 봄”(이상 ‘다시, 구만리’)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키 낮은 집들만 있던 시절엔 아마 청보리밭 끝이 바다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푸른 보리밭이 파란 바다로 풍덩 자맥질하는 모습이었겠지. 밭과 바다의 경계 어름에선 아마 아지랭이도 스멀스멀 피어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와 더불어 푸르렀을 청보리밭의 정취는 이제 찾기 어렵다. 키 높은 건물, 얼기설기 난 차도에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구만리 마을 초입, 공군부대 쪽에 있는 보리밭이 그나마 넓고 상쾌하다. 구만리에서 ‘호랑이 꼬리’를 넘어가면 풍경이 휙 바뀐다. 가수 최백호의 친구가 살았다던 영일만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위로 ‘철의 도시’ 포항이 신기루처럼 떠 있다. 여기부터는 다른 공간, 다른 세계다. 글 사진 포항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후임병 성추행·폭행 일삼은 해병대 부대원들, 징역 3년 선고

    후임병 성추행·폭행 일삼은 해병대 부대원들, 징역 3년 선고

    수 개월간 부대에서 후임병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은 해병대 병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23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해병대 1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8일 피고인 이모씨에게 징역 3년을, 또다른 피고인 김모씨 등 2명에게 징역 3년예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앞서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9월 해병대 1사단에서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장기간 괴롭혀온 사건이 파악돼 군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주동자 이모씨를 비롯한 가해자들은 지속적으로 바지를 벗고 피해자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거나 얼굴에 들이대는 등 성추행을 해 왔다. 또 오전 6시부터 흡연·과업·세면 시간을 이용해 매일 십여 차례 이상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피해자에게 “차렷 자세는 부동자세”라며 가만히 있을 것을 강요하고, 침대에 결박한 상태로 추행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군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군 검찰에 이씨 등을 군형법상 강제추행·특수강제추행·상습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선고에 앞서 해병 1사단은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이들의 계급을 병장에서 상병으로 강등 조치했다. 군사법원은 가해자들의 진술이 계속 바뀌고 변명으로 일관했으며, 범행이 지속적이고 반복됐다는 점을 들어 형을 결정했다고 판시했다. 군인권센터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추행이 피해자의 일상이 됐으며 범행의 정도가 심각해 피해자의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군사법원의 낮은 형량 선고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킹덤’ 좀비 물리친 전술, 이 칼끝에서 나왔소

    ‘킹덤’ 좀비 물리친 전술, 이 칼끝에서 나왔소

    그의 일과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아침이면 경기 수원 화성행궁에 있는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으로 출근한다. 단원들과 함께 무예24기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상설공연과 연습으로 구슬땀을 흘린다. 단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시범단 한켠에 있는 연구실에서 공부를 한다. 코로나19 이후 상설공연을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최근 1년은 거의 낮에는 수련, 밤에는 공부로 더 단순해졌다. ●‘몸’과 머리로 함께 공부하는 무예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을 맡고 있는 최형국 박사는 국내 최초로 무예사를 전공한 연구자다. 2일 화성행궁 앞에서 만난 그는 조선시대 기병전술이나 군사제도, 무예수련 방식 등을 단순히 옛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탐구했다. 그렇게 “몸과 머리로 하는 공부”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무예교본인 ‘무예도보통지’를 완역했다. 기존 번역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예수련과 역사연구 양쪽을 아는 사람이 낸 번역서는 처음이다. 최 박사는 “4년가량 걸려 작업한 끝에 다음달 민속원 출판사에서 나온다. 1000쪽이 넘기 때문에 비상시 무기로도 쓸 수 있다”며 웃었다. 얼핏 봐서는 최 박사는 몸 쓰는 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군대는 체중 미달로 공익근무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일단 활과 화살, 칼까지 차고 조선시대 무인복장으로 나타나면 눈빛이 달라진다. 검도 시범을 보여 줄 때는 동작이 너무 재빨라서 방금 뭐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다. 1994년부터 시작해 벌써 20년을 바라보는 무예24기 수련의 첫 계기는 “몸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한다. 최 박사는 “대학에 입학해서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다. 탈춤과 풍물을 배우면서 전통적인 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통문화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다 무예24기를 접하면서 ‘아 저런 식으로 몸을 쓰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는 대학마다 무예24기를 배우는 동아리 ‘경당’이 활발했다. 그렇게 시작한 무예24기는 1997년엔 정식 사범심사까지 통과할 정도로 삶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무예24기는 규장각 검서관인 이덕무·박제가, 장용영(壯勇營·수원화성 상비군부대) 장교였던 백동수 등이 정조 임금의 명으로 1790년 펴낸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도검 10기, 창·봉 7기, 마상무예 6기, 권법 1기 등 24가지 무예를 가리킨다. 무예도보통지는 도, 검, 창, 곤 등 병장기와 권법 등 각종 무예를 그림과 해설로 설명한 종합교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수원화성·무예24기 합쳐 관광 마케팅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무예24기가 삶의 일부가 된 두 번째 계기는 1999년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정조 시대 전통무예전’이었다. 최 박사는 “당시 무예24기 연출을 맡으면서 택견 전수자, 마상무예 시범단과 국방부 의장대 등과 함께 준비했다”면서 “수원화성이라는 공간과 가장 어울리는 게 무예24기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마침 2003년 화성행궁 복원이 끝나면서 화성에 주둔하던 상비군이었던 장용영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를 공연으로 해 보자는 제안을 수원시에서 받았다”면서 “그걸 계기로 무예24기 상설공연을 시작했다. 2015년 시립예술단 소속으로 바뀌면서 안정된 여건을 갖게 됐다. 그는 몸을 통한 수련을 계속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건 “무예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였다고 한다. 최 박사는 “1997년에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수원화성이라는 그릇에 무예라는 콘텐츠를 집어넣으면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대학원에 가서 ‘전통무예를 활용한 관광마케팅’을 주제로 2003년에 석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케팅만으로는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최 박사는 “무예가 근원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흘러왔는가, 조선시대에 실제 어떻게 무예를 익혔는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결국 2년간 준비한 끝에 2005년 중앙대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부터 목표로 했던 건 조선시대 기병전술이었다. 그는 “무예24기를 하면서도 마상무예는 제대로 익히기가 힘들었다. 당장 말타기부터 쉽지 않았다”면서 “결국 빚을 내 승마장 회원권을 구입해 말타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몽골에도 두 번 다녀왔다. 보름가량 말타고 활쏘기 연습만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물이 2011년 박사학위를 받은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였다. ●‘몸’ 모르면서 나오는 해석 오류 적잖아 역사연구와 무예수련을 병행하면서 그는 군사와 관련한 기존 해석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서 21세기보다도 더 우수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로 최 박사는 왼손잡이 관련 내용을 들었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게 기사(騎射), 즉 말 타고 활쏘기입니다. 좌우로 짚단으로 만든 인형을 5개씩 세운 다음 말을 타고 돌진하면서 좌우 번갈아가면서 쏘는 방식이죠.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좌집궁자우사(左執弓者右射), 우집궁자좌사(右執弓者左射)’란 표현이 나옵니다. 왼손잡이는 오른쪽으로 쏘고, 오른손잡이는 왼쪽으로 쏘라는 뜻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군대는 왼손잡이라 하더라도 억지로 오른손잡이와 똑같은 자세로 총검술을 가르치지만 조선시대 군대는 왼손잡이에게 억지로 오른손잡이와 똑같이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최 박사는 “활을 쏠 때 엄지에 끼우는 깍지만 해도 왼손잡이용이 따로 있었다. 가령 철종을 그린 초상화(어진)를 보면 왼손 엄지에 깍지를 낀 모습이다. 철종이 왼손잡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왼손잡이 대접만 놓고 보면 조선시대가 현대보다 더 선진군대였다”고 꼬집었다. 일단 오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고증 오류를 바로잡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류와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아예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그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에게 자문을 해 주는 활동도 많이 한다. 그는 “일부는 고증을 구색으로만 쓰거나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자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건 역시 드라마 ‘킹덤’”이라고 소개했다. 좀비물이라는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이 드라마에는 활쏘기나 총쏘기, 각종 대포류 등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그 뒤에 최 박사가 있었다.최 박사는 “조선시대에 좀비라는 적이 공격해 온다면 어디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어떤 무기로 어떻게 대응할까 상상했다”면서 “김은희 작가 등 제작진이 줄거리를 짤 때부터 고증 내용을 적극적으로 드라마에 반영해 줘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사극은 고증과 상상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면서 “고증에 맞게 상상력을 발휘하면 재미가 배가되는데 상상을 위한 수단으로 고증을 이용하려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무예수련을 통해 건강한 삶과 열정을 갖게 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잦은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최 박사는 “말에서 떨어지는 건 보통이고 검도 공연 도중 손을 다쳐 몇 시간 동안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면서 “부상을 통해 조선시대 무인들이 칼머리를 뒤로해서 칼을 차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등 부상도 공부의 한 부분”이라고 웃었다. 그는 “한마디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면서 “미쳐야 보이는 게 있다. 앞으로 수십년 더 미쳐서 공부하고 수련하다 보면 조선시대 무인의 삶과 군사제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삼겹살이 그리웠던 요스바니 “자가격리?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삼겹살이 그리웠던 요스바니 “자가격리?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삼겹살이 그리웠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같아요.” 국내 노선 위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에 요스바니 에르난데스가 마침내 합류했다. 코로나19로 해외 노선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모기업에 언젠가 찾아올 밝은 미래라도 예고하듯 요스바니가 합류한 대한항공은 산뜻하게 3-0 승리를 거두고 고공비행에 나섰다. 요스바니가 22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경기를 통해 V리그에 복귀했다. 자가격리로 아직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주축 선수가 빠진 공백을 채워주며 자신의 효용 가치를 증명했다. 특히 요스바니는 3세트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득점을 책임지며 복귀를 자축했다. 총 5득점에 공격성공률은 66.67%. 경기 후 요스바니는 “이기려고 한국에 왔는데 첫 단추를 잘 끼워서 기분이 좋다”며 “안산에 와서 느낌이 이상했지만 어디에서든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없이도 1위를 달렸던 강팀에 합류한 만큼 요스바니의 기대감도 남달랐다. 요스바니는 “대한항공은 우승할 수 있는 팀이어서 터키팀과 계약을 해지하고 왔다”면서 “한국에서 2시즌을 뛰었는데 못 이룬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요스바니는 지난 3일 대한항공의 ‘파리-인천 직항 노선’을 타고 입국했다. 이후 구단이 제공한 수원 소재 아파트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고 18일에 팀 훈련에 합류했다. 이번 시즌 V리그 미디어데이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의 ‘슬기로운 격리생활’이 화제였다. 요스바니는 어땠을까.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하루가 안 끝나는 느낌이었다니까요.” 요스바니의 입에서 제대를 기다리는 말년 병장한테나 나올 법한 말이 튀어나왔다. 요스바니는 “그래도 집에서 웨이트를 많이 했다”며 나름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격리가 끝나고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묻자 요스바니는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거리를 걷고 싶었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코로나19로 누구에게나 소중해진 평범한 일상이 요스바니에게도 그리웠던 것. 요스바니는 “격리해제가 더 좋았던 것은 내가 배구선수로서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고 덧붙였다.레프트와 라이트를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요스바니는 대한항공의 고공비행에 큰 힘을 보탤 전망이다. 요스바니는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지만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다음주 삼성화재전에서는 준비가 다 될 것 같다”고 했다. 대한항공은 오는 29일 홈에서 삼성화재와 맞붙는다. 요스바니의 합류에 곽승석도 기대감을 보였다. 곽승석은 “레프트, 라이트를 다 할 수 있는 선수라 어디든 들어가서 잘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면서 “높이와 공격력에서 확실히 팀에 플러스가 될 것 같다. 엄청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안산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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