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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사 관광코스로 개방/월요일 제외 오전10시부터… 입장료 2천원

    ◎토요일엔 사관생도 퍼레이드 관람도 가능 육군사관학교(교장 장창규 중장)가 관광코스로 개발돼 1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관광코스로서의 육사개방은 육사가 개교 50주년을 계기로 육사에 대한 국민들의 거리감을 해소하고 관광코스 다양화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정부 시책에 따른 것이다.평일은 상오 10시부터 개별,단체관광이 가능하며 토요일 상오 11시30분에는 사관생도 퍼레이드도 관람할 수 있다.월요일은 개방하지 않는다.육사측은 개방에 따른 학교측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해 육사견학 담당업체를 한국관광공사와 재향군인회 산하 중앙고속으로 지정,견학접수 및 안내를 맡게 했다.육사 관광 수수료는 외국인 3천원,내국인 2천원,고교생 이하 1천원이다. 육사의 한 관계자는 『관광객들은 육군박물관에서 육사 소개영화와 국내 유일의 군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육사기념관에서는 육사 50년의 발자취를 살핀 뒤 64m 높이의 전망대를 거쳐 화랑연병장,야외 군사장비 전시장,기념품 센터 등을 둘러볼 수 있다』고 말했다.관람은 관광 하루전까지 육사관광안내소(02­976­6454∼5)로 신청하면 되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통역원이 안내를 맡게 된다.
  • 온건론자 승리로 체첸평화 “서광”

    ◎압도적 지지 당선… 안정된 정책기반 확보/강·온 양분 독립문제·경제재건 해법 관심 체첸선거가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체첸평화과정에 한 획을 그었다.28일 하오 최종결과는 아니지만 그는 60%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됨으로써 선거부정시비는 피할수 있게 됐다.소련시대 포병장교 출신인 그는 체첸야전사령관때인 지난해 러시아측 협상파트너인 알렉산드르 레베드 전국가안보위 서기와 평화협상 담판을 성사시켰던 실용주의 인물이다.이번 선거에서 「평화·독립열망」「경제재건열망」이란 두개의 수레바퀴를 조화시키겠다는 비전이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거결과와 관련해 체첸문제 전문가들은 『체첸평화는 선거이후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평화정착과정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크게 보아 마스하도프가 풀어야할 숙제는 두가지다.하나는 1백만 체첸공화국 주민의 독립열기를 어떻게 수렴,발산시켜나갈 것인가의 문제다.다른 하나는 21개월간 전흔으로 이지러진 체첸경제를 무엇으로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이다.그는 체첸공화국을 국제적으로 승인받기 위해 우선 러시아와의 담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이번 선거에서 2위득표자로 확실시되고 있는 과격파인 샤밀 바사예프를 지지한 유권자를 의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바사예프는 선거기간중 러시아로부터의 즉각적인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은 인물이다.이와 관련,러시아는 선거직전 『체첸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는 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해놓은 상태이다. 러시아 민족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협상술에 능한 마스하도프가 독립열기를 이용,주민들의 상처를 러시아로부터 경제적으로 보상받는데 주력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전략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구사될 것으로 보인다.독립을 유보하는 경우에만 어느정도의 경제재건비용을 대줄 것이기 때문이다.체첸독립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강경한 입장때문에 전후 첫 체첸민선정부는 러시아와의 정치·경제협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이 과정에서 바사예프 주변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급진정치세력이 규합되고 이들 세력이 체첸공화국의 내부통합에 다시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 평화회담 성공 이끈 독립운동 영웅/마스하도프 누구인가

    45세로 무려 2년여에 걸쳐 계속된 러시아와의 내전기간중 체첸저항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체첸독립운동의 영웅이다.지난해 수개월동안 계속된 레베드 전 연방안보위 서기와의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기간중 체첸협상대표를 맡아 국내외 언론에도 얼굴이 익히 알려진 인물.협상과정을 통해 드러났듯이 러시아측으로부터 체첸지도자들중 그나마 「말이 통하고 실용주의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있다.지난 6일 체첸주둔 러시아군이 완전철수하고 이번 선거가 무리없이 치러진 것도 상당부분 그의 이러한 온건적인 입장 덕분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내전기간중 산하에 5천명의 정예 게릴라부대를 이끌었으며 이전에는 러시아군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했다.협상타결을 위해 체첸독립을 5년유예하는 조건으로 러시아로부터 자치정부수립이라는 타협을 이끌어냈으나 앞으로 주민들의 독립열기와 러시아의 독립불가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쉽지않은 숙제를 안고있다.
  • DMZ 무인도서 외로이 병마와 투쟁/「유도 황소」 뭍에서 새삶

    ◎해병대 장교들 90분만에 구출작전 완료/부상치료뒤 「평화농장」 만들어 사육키로 『누렁이를 구출하라』 비무장지대 무인도에서 죽어가는 황소 한마리를 구해내기 위해 해병대 장병들이 펼친 이색「구출작전」은 90분만에 끝났다. 해병 2사단소속 수색대 장병 22명은 17일 정오 고무보트 4대에 나눠타고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보구곤리 해안에서 북쪽으로 500여m 떨어진 유도에 상륙,하오 1시30분쯤 황소를 뭍으로 옮겼다. 황소는 섬해안가 갈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가 마취총을 쏜뒤 접근한 장병들에 의해 별다른 저항없이 보트에 실려졌다. 이날 황소 수송을 지휘한 군 수의관 주민석 대위(28)는 『황소가 수송도중 보트에서 움직이면 전복될 우려가 있어 마취를 시킨 뒤 배에 실었다』고 말했다. 이 황소는 약 150㎏짜리 수소로 왼쪽 앞다리를 심하게 다쳐 고름을 흘리고 있었으며 영양상태가 상당히 악화돼 여위어 있었다. 이날 구출된 황소가 보구곤리 해안을 지키는 해병장병들에게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해 8월초.수십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비무장지대의 무인도에 느닷없이 소가 나타난 것이다. 이곳 대대장 조건철 중령(40)은 『지난해 여름 홍수때 경기북부지역에서 떠내려오다 유도에 기어올라 지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던 황소가 겨울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여위고 활동량도 줄어들었다.지난해 12월말 때마침 유정복 김포군수(40)가 장병위문차 이 부대에 들러 소가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부대에 황소구명을 제의,이날 구조가 이루어졌다. 군측은 유도가 비무장지대에 위치해 정전협정상 남북 양측이 상륙할 수 없는 지역임을 고려해 지난 16일 북한측에 유도상륙을 사전통보한 뒤 이날 구조작전을 폈다. 김포군은 이날 하오 3시쯤 마취에서 깨어난 황소를 검단동물검역소로 보내 검역을 실시했으며 곧바로 김포군 농촌지도소로 보내 20여일동안 부상을 치료해주기로 했다. 유군수는 『올해가 소의 해이고 어렵게 구출한 황소인 만큼 관내에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농장」을 만들어 사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육사교정 새해부터 개방/푸른동산·서울온천 연계 관광상품화

    ◎박물관·생도의식 퍼레이드 인기끌듯 육군사관학교 교정과 교내박물관 등이 관광코스로 내년 1월중 개방된다. 4일 육사에 따르면 지난 11월부터 시험운용기간을 거쳐 신원확인 등 보안상의 미비점 등을 보완,내년부터 푸른동산과 서울온천을 연계,3시간짜리 관광상품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육사 개방시간은 평일 상오 10시부터 12시30분까지,하오 2시부터 4시30분까지 하루 두차례,토요일 상오 10시부터 12시까지 한차례로 결정됐으며 토요일에는 육사생도들의 화랑의식과 퍼레이드 등이 펼쳐진다. 육사 관광코스를 보면 육군박물관은 각종 군사자료와 보물 13점 등 1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육사기념관과 1만1천평 규모의 화랑연병장,국궁장,승마장 등이 있다. 단체관광객 인솔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출입증을 발급할 계획이다.
  • 「공비소탕」 전사/오영안 준장 등 3명 눈물의 영결식

    ◎구국의 꽃이여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공비의 총에 맞아 전사한 고 오영안 준장(47),서형원 소령(34),강민성 병장(23)의 합동영결식이 7일 상오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제1군사령부장으로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친지 100여명을 비롯해 이수성 국무총리,김동진 국방부장관,윤용남 합참의장,도일규 육군참모총장,동료 등 1천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총리는 조사에서 『결연한 각오로 조국의 땅을 지키고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한 충절은 영원할 것』이라고 고인을 위로하고 『우리의 안보현실을 직시해 안보역량을 키우는 것이 고인에 대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에서 고 오준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고 서대령과 강병장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오준장의 시신은 낮 12시30분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소령과 강병장은 하오 대전 국립묘지에 안치됐다. ◎표종욱 일병도 영결식 한편 지난달 22일 무장공비잔당에 의해 살해됐던 육군 노도부대 표종욱 일병의영결식이 이날 상오 10시 가족 및 군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육군 철정병원에서 부대장으로 치러졌다.
  • 소탕작전 트럭전복 10명 사상

    육군은 6일 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된 702특공연대 1대대 소속 병력을 수송하던 군용 트럭이 5일 상오 3시30분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야시대리 지방도로에서 전복,이동찬 병장(22)이 숨지고 김경원 상병 등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무장공비 사살­어떻게 인제까지 갔나

    ◎오대산∼설악산∼향로봉 월북기도/휴전선 20㎞ 남겨… 통과 시기 노린듯/오대산 만행뒤 26일… 군수색으로 지연 5일 사살된 무장공비 2명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통선을 넘어 북으로 가려다 우리 군의 수색망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관측된다. 정찰조원으로 보이는 공비들이 사살된 지점은 향로봉(1천296m)과 3㎞,휴전선까지는 불과 8㎞ 남짓 떨어져 있다.월북을 눈앞에 두고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무장공비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때는 지난달 9일.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민간인 3명을 살해한 뒤로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9월18일 강릉시 대포동 해안으로 침투한 공비들은 칠성산∼대관령∼오대산∼한계령∼설악산∼향로봉 루트를 이용,월북을 꾀했던 것 같다.탑동리에서 흔적이 발견된지 26일만인 4일 하오3시 무장 공비들이 모습을 드러낸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도 이 루트 언저리에 있다. 공비들은 이 과정에서 북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미리 확보한 비상식량을 가지고 비트(비밀 아지트)생활을 하면서아군의 수색망이 소홀한 틈을 타 산악 행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사살된 공비들은 야간 산악 행군 때도 시간당 4∼5㎞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이어서 우리 군의 수색작전이 펼쳐지지 않았더라면 벌써 월북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9월18일 생포된 공비 이광수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정찰조 2명은 평상시 행군 능력이나 군사분계선 통과훈련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았다』고 전했고,휴전선 부근에서 근무하다 귀순한 곽경일 중사도 『아군 3명이 우리 중대 방향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승조원으로 추정되는 잔당 1명은 추위와 굶주림속에 이미 숨졌을 가능성이 커 이번 공비 침투사건은 사건 발생 49일만에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무장공비 침투 일지 ▲9월18일 상오 1시30분=택시기사 이진규씨(37),강릉 대포동 앞바다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 발견·신고 ▲하오 4시45분=무장공비 이광수(31),강릉 강동면 모전리 농가에서 생포 ▲하오 5시=강동면청학산에서 공비 11명 시체 발견 ▲19일 상오 10시30분=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공비 3명사살 ▲21일 상오 9시30분=칠성산 망기봉에서 이병희 중사(25) 전사 ▲22일 상오 6시15분=칠성산 계곡서 송관종 상병(21)·강정영 병장(21) 전사,공비 2명 사살 ▲23일 상오 6시30분=민간인 안상영씨(50),아군 오인사격으로 사망 ▲28일 상오 6시45분=성산면 보광리서 잠수함 부함장 유림(38)사살 ▲29일 하오 8시=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에서 매복중이던 한대성 병장(21),아군 오인사격으로 사망 ▲30일 하오 3시18분=왕산면 목계리 35번국도 인근에서 잠수함 기관장 만일준(48) 사살 ▲10월9일 하오 2시50분=진부령 탑동리에서 민간인 3명 피살체로 발견 ▲10일 하오8시40분=강릉 연곡면서 매복중이던 홍종진 대위(26),아군 오인사격 사망 ▲11월4일 하오3시=인제군 서화면 민통선내에서 거동수상자 2명발견 ▲5일 상오4시28분=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거동수상자와 첫 교전 ▲상오10시30분=정찰조원 추정 공비 2명 사살
  • 공비잔당 2명 사살/어제 상오 인제 야산서

    ◎3차례 교전… 우리측 대령 등 3명 사상·14명 부상/공비,국군일병 납치 살해… 아군복장 위장 김경 무장공비 잔당을 추적중인 군당국은 5일 상오 10시30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창바우 마을 인근 야산에서 도주중이던 강릉침투 무장공비 잔당과 교전끝에 정찰조원 2명을 사살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하오 발표했다. 합참은 교전 과정에서 오영안 대령(47·3사 4기·303기무부대장)과 서형원 대위(34·학군24기·703특공연대본부 정보장교),강민성 상병(22·을지 독수리부대 수색중대) 등 아군 3명이 공비의 총격과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아 전사하고 우황용소위(12사단 51연대 1대대) 등 14명의 장병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군당국은 이날 사살된 무장공비의 유류품을 점검한 결과,공비 한명이 입고 있던 야전 점퍼 등은 지난달 22일 실종된 육군 노도부대 소속 표정욱 일병(22)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표일병은 당시 13명의 부대원들과 함께 월동준비를 위해 싸리나무를 베러갔다가 실종됐다는 부대원들의 진술로 미뤄 작업중 공비들에 의해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지난 9월18일 강릉 앞바다로 잠수함을 타고 침투했던 무장공비 26명 가운데 현재까지 사살 13명,생포 1명,자폭 11명 등 모두 25명이 소탕됐다.군당국은 이날 2명의 무장공비가 추가로 발견,사살됨에 따라 남은 1명의 무장공비도 아직 우리측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수색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에 의한 우리측의 피해는 이날 전사한 오대령 등 군인 9명,경찰 1명,예비군 1명,민간인 4명 등 모두 15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 합참은 수색작전을 벌이던 육군 산악부대 소속 장병들에 의해 무장공비 2명이 사살됐다고 밝히고 사살지점은 육군 을지부대가 전날 하오 3시10분 벙커작업 도중 거동수상자를 발견한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 산머리 곡산에서 남동쪽으로 8㎞ 가량 떨어진 철책선 남방 20㎞ 지점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사살된 무장공비가 지난달 강릉으로 침투했을 때의 복장인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에 총번호가 없는 M16소총과 일련번호가 없는 탄피가 흩어져 있는 점으로 미루어 지난9월18일 침투한 무장공비 잔당이 확실하다고 밝혔다.그러나 합참은 이들이 추가로 북에서 파견한 무장공비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생포공비 이광수를 현지에 보내 사살공비의 신원을 파악중이다. 군은 이날 새벽 4시28분쯤 사살지역 남쪽 500m 지점에서 공비들을 발견,추적하다 상오 6시50분 1차교전을 벌인데 이어 상오 7시20분 2차교전을 한 뒤 추적수색을 계속하던중 상오 10시30분쯤 공비 2명을 사살했다. 우리 군 부상자 14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중상(8명)=▲박경상 중령(대대장) ▲이종갑 소령(전투정보장교) ▲김용석 대위(중대장) ▲우황용 소위 ▲이동완 상사 ▲이수헌 병장 ▲백승현 상병 ▲송명훈 상병 ◇경상(6명)=▲이정우 대령(특공연대장)▲이채하 중위(연대 군수장교) ▲이윤록 상사 ▲노상현 병장 ▲서정광 상병 ▲김석권 일병 ◎ 육군은 5일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전사한 오영안 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 등 3명에게 각각 1계급 진급과 함께 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또 이들의 합동영결식을 7일 상오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거행키로 했다.
  • 백범암살의 진상은 묻히는가(사설)

    백범암살의 진상은 묻히는가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의 피살사건은 우리를 참으로 착잡하게 한다.백범을 살해하고도 79세의 나이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 나라의 현실도 그렇지만 끝내 피살이라는 참담한 최후를 갖게 했다는 점도 우리를 새삼 곤혹스럽게 한다. 민족주의자 백범의 암살과 그를 쓰러뜨린 안씨의 피살은 우리에게 새삼 민족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백범은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고착화하려던 49년 안씨의 흉탄에 쓰러졌다.민족통합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려 했던 김구선생의 이상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의 꿈은 한민족통합의 당위성과 남북통일의 정당성을 이 땅에 일깨워줬다.그리고 지금도 그의 민족주의는 통일에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남아 있다. 백범암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러나 안씨는 끝내 「배후」의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안씨는 범행후 줄곧 단독범행임을 주장해왔다.그러나 백범을 살해한 범인이 비록 6·25전쟁 발발이란 명분이 있었으나 투옥 1년여만에 포병장교로 군에 복귀한 사실,51년 제대후에는 당당한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상황은 그가 단독범이 아닐 것이란 심증을 온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9이후 비록 쫓기는 형편이 됐다고는 해도 안씨는 이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진 게 없다.그는 당시 군특무부대사령관 김창용씨 등 몇 사람을 배후인물로 거명하기도 했으나 이내 부인하고 마는 말뒤집기를 되풀이했고 한때는 배후에 커다란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처럼 암시하기도 했으나 어느것도 실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반민족적 범행이 있은 지 반세기가 다 되도록 그 진상이 하나도 속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는 사실도,범인이 법의 심판이 아니라 개인적 테러에 의해 희생된 것도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다만 반민족적 범죄는 법적 처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응징된다는 교훈만은 남긴 셈이다. 반민족적 범죄의 진실은 비록 안두희씨가 갔어도 밝혀져야 한다.배후세력중 어느 구석에서 어떤 단서가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민간기구가 됐든 국회차원에서건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작업은 계속돼야 한다.그래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고야 만다는 진리를 역사에 바로 남겨야 한다.그런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백범암살 진실」 영구 미제 가능성/안두희 피살과 배후규명 노력

    ◎당사자 통한 진실규명 불가/「참회록」 존재여부 관심 집중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의 피살로 백범 암살의 진실을 당사자의 입을 통해 확인할 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자칫 영구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커졌다. 안씨는 지난 49년 6월 범행 이후 지금까지 암살 동기 및 배후에 대해 한번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단독범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진실 규명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60년 4·19 혁명 직후부터였다.「김구 선생 살해 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안씨를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끝내 안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안씨는 87년 권중희씨에게 각목폭행을 당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91년 처음으로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전신인 OSS를 배후로 거론했으며,92년 4월12일에는 김창용 특무대장이 4∼5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암살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92년 9월에는 권씨에게 붙잡힌 상태에서 『범행 6일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채병덕육군참모총장 등을 만났다』고 말해 당시 권력 핵심부의 배후관련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씨는 『권씨 등의 강요에 의해 자백한 것』이라고 곧바로 부인해 의문만 증폭시켰다.94년 국회 백범 암살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단독범행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제 진실은 92년 그가 쓰겠다고 약속했던 「참회록」의 존재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안씨의 유품에서 참회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김태균 기자〉 ◎피살 안두희는 누구인가/백범 저격… 47년간 은둔생활/암살죄로 15년형… 6‘25때 사면·군복귀/한때 군납공장 운영… 강원 제2갑부로/4·19후 「응징」 두려워 개명후 자취감춰/87∼88년 권중희씨에 수차례 납치·피습/94년 국회 증언… 암살 배후인물 안밝혀 백범 김구 선생을 지난 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저격,암살했던 안두희씨는 범행후 47년 동안 은둔과 잠행속에 살아왔다. 범행 당시 32세의 포병장교였던 안씨는 평생을 「백범 시해범」이라는 꼬리표를 단채,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데 전전긍긍했다. 안씨는 백범 시해 직후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6·25가 터지면서 당시의 실세였던 김창용 특무대장의 비호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포병장교로 복귀했으나 전투도중 부상당해 51년 군복을 벗었다.56년 옛 동료장교들의 도움으로 강원도 양구에 군납공장을 지어 군대 부식을 공급하면서 부를 쌓았다.한때 강원도에서 두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후 터진 4·19혁명은 그가 진정한 죄과를 치르게 되는 계기가 됐다.혁명 직후 「김구 선생 살해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공장 문도 닫고 처 박모씨와 3남2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안영준」 등 가명을 써가면서 종로구 명륜동,동대문구 신설동,강원도 양구 등지로 도망다녔다. 안씨를 「응징」하려는 추적자들의 노력도 집요했다.65년 곽태영씨로부터 칼로 두군데나 목을 찔린 뒤 극적으로 살아나는 등 피습이 이어졌다.여러차례 이민을 시도했으나 법무부로부터 출국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실패했다.장성한 자녀들은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해 70년대 말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부인 박씨도 합의이혼하고 자녀들의 뒤를 따랐다. 86년 김명희씨(63)와 재혼하는 등 은둔에 「성공」,편안한 삶을 살아오던 그가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87년 3월 27일 집요하게 그를 추적해온 권중희씨의 피습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권씨와의 질긴 악연은 이때부터 이어져 88년 2월,92년 2월과 4월·9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권씨로부터 납치 및 구타를 당했다. 말년에는 언론사의 인터뷰에도 응하고 94년엔 국회 법사위에서 병상에 누운채 증언하는 등 약간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하지만 백범 시해가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점은 한결같았다.〈김태균 기자〉 □안두희씨 피습일지 ▲87년 3월27일=권중희씨,서울 마포구청 버스정류장에서 각목으로 안씨의 머리 구타. ▲88년 2월=권씨 등 3명,인천 집에서 안씨를 나무 막대로 구타. ▲92년 2월28일=권씨 등,백범묘소에서 안씨를 각목으로 폭행. ▲92년 4월12일=권씨 등,안씨 집으로 찾아가 안씨 구타. ▲92년 9월23일=권씨 등 4명,안씨를 경기 가평군 농장으로 납치,구타.
  • “「강한 국군」 건설 주도”/윤 합참의장 취임식

    윤용남 합참의장 취임식이 19일 하오2시 국방부 구내 여군학교 연병장에서 김동진 국방장관과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윤 신임의장은 취임사에서 『주변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북한의 변함없는 대남적화야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강한 국군」건설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이 이날 상오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렸다.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의 이취임식은 21일 하오 서울 용산 미8군 영내에서 열릴 예정이다.〈황성기 기자〉
  • 공비수색병력 20명 부상

    【평창=조한종 기자】 6일 하오 6시40분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창리 42번 국도에서 강원27다 7476호 쏘나타승용차(운전자 박재술·48)와 육군 모부대 수송트럭(운전자 박경식 병장·22)이 충돌,군트럭에 타고 있던 장원석 상병(22) 등 20명이 경상을 입고 영월의료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사고는 영월에서 정선쪽으로 가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무장공비 수색작전을 마치고 소속부대로 돌아가던 군트럭을 들이받아 일어났다.
  • 사병 수류탄 자폭/건봉사일대 경계근무중/고참에도 던져 부상입혀

    【강릉=조성호 기자】 경계 근무중이던 사병이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일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 달 30일 상오 11시쯤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 일대에서 경계근무중이던 육군 뇌종부대 소속 김창호 일병이 함께 근무중이던 최병률 병장에게 수류탄 한발을 던져 부상을 입힌후 자신도 또 다른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당시 사고는 최병장이 김일병의 근무태도를 꾸짖은 것이 발단이 돼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병장은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 무장공비 1명 추가 사살/승조원 김영일/잔당 3명 계속 추적

    ◎국군 1명 사망 【강릉=조성호·김경운 기자】 13일째 공비 소탕 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군수색대는 30일 하오 3시18분쯤 칠성산 서쪽 3㎞ 지점인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속칭 쇠골계곡에서 승조원 상위 김영일(30)로 추정되는 공비 1명을 추가 사살했다. 공비는 172㎝의 키에 감색 상하의 작업복,청색 운동화,밤색 양말 차림이었으며 66식 권총 1정,실탄 10발,탄장 2개,1.5ℓ짜리 물통 1개를 갖고 있었다. 육군 비호부대는 35번 국도에 100m 떨어진 목계리 옥수수 밭에서 공비를 발견,3차례 투항을 권유했으나 66식 권총으로 사격하며 달아나자 16발을 사격해 사살했다. 이로써 침투 공비 26명 가운데 23명이 소탕되고 공작원 2명 등 3명이 남았다. 한편 군은 이날 작전 지역을 강릉을 중심으로 반지름 50㎞에서 철책선까지 확대,광범위한 수색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 합동보도본부는 『지금까지 칠성산,청학산 등 강릉 일대 반지름 10㎞ 차단선에서 주요 작전을 전개했으나 잔당이 포위망을 벗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도주한 잔당이 버리고 간 국군 복장에 12사단 부대 표지가 부착돼 있는 점으로 미루어 12사단 인접 지역을 통해 월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군 당국은 잔당의 숫자가 3명으로 줄어듦에 따라 이날 하오5시30분부터 합참의장이 갖고 있던 작전지휘권을 1군 사령관에게 넘기고 합참은 북한의 제2,3의 무력도발 대응에 전념하기로 했다. 한편 군은 지난 29일 하오8시20분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에서 매복 근무를 하던 육군 을지부대 포병대 소속 한대성 병장(21)이 국군의 오인사격으로 숨졌다고 30일 발표했다.
  • 공비 유림 사살순간/장병 4인 증언

    ◎새벽 낙엽소리… 10m 앞 M16 든 공비 발견/아군매복 눈치채고 도주… 생포포기 사격 28일 무장공비 유림(39·잠수함 부함장)을 사살한 육군 일출부대 소속 우성제 대위(28)와 휘하 병사 3명은 10일이상 계속된 수색과 매복의 피로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이겨내 수훈을 세울 수 있었다. 28일 상오 6시35분쯤.우대위와 노극래 병장(25)·박정훈 병장(23)·정철환 상병(23) 등 4명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해발 250m 야산 정상부근에 참호를 파고 매복작전을 펴고 있었다.전날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해 눈이 절로 감겼지만 언제 공비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갑자기 「버석버석」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모두 긴장했다.이어 얼룩무뉘 위장복을 입고 M16소총을 든 남자가 총구를 밑으로 한 채 조심스럽게 산길을 헤쳐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10여m 전방. 모두 숨이 멎는 듯했다.우대위는 『일단 생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신호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6m 앞까지 다가온 공비는 그러나 아군의 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탕 탕」 두발의 총성이 태백산맥의 차가운 새벽공기를 갈랐다.노병장이 쏜 두 발의 총알에 등과 옆구리를 맞은 공비 유림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우대위 등이 다가갔을 때 유림은 이미 숨져 있었다.군 수색대로서는 지난 22일 함장 정용구 등을 사살한지 7일만에 거둔 전과였다. 노병장은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아군으로 위장한 남자가 혼자 산자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장공비라는 직감이 들었다』면서 『생포하려 했으나 갑자기 도망가 조준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 “젊은 넋이여 호국의 등불되소서”/전사 3인 합동영결식

    『탕 탕 탕…』 3군합동 의장대의 조총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가슴에 사무친 총성」,영결식장은 또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아들아.아들아.내 아들아…』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이병희 상사의 어머니는 목이 메어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어깨를 들먹이며 『내 아들아』를 되뇌였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고향 전남 순천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달려 온 송관종 상병의 어머니는 애끊는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25일 상오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 수도통합병원의 연병장에서 열린 고 이병희 상사(25)와 강정영 병장(21) 송관종 상병(21)의 합동 영결식장. 녹음조차 지친 첩첩산중에서 무장공비를 쫓다 젊음의 날을 마감한 고인들의 관이 태극기에 쌓여 의장단에 의해 합동연결식장에 내려졌다.이어 3군 합동 군악대의 조악이 울리는 가운데 고인들에게는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조총이 발사되고 유가족들의 국화 헌화와 떠난 이들의 넋을 신에게 의탁하는 종교의식이 거행됐다. 고인들이 산화하던 그날처럼 조국의 하늘은높고 푸르렀다.
  • 공비 추정 3명 추적/칠성산 망기봉/군경고 무시하고 도주

    ◎부상 사병 1명 사망 【강릉=박상렬·강충식 기자】 8일째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군은 25일 상오 6시30분 강릉시 강동면 칠성산 동남쪽 망기봉에서 공비 3명을 발견해 대대적인 추격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군은 공비를 추가 소탕하는데 실패,날이 어두워지면서 추격 작전을 멈추고 포위망을 구축한 채 매복에 들어갔다. 이날 칠성산에서는 여러차례 총성이 들렸으며 군 수색대는 상오 6시30분과 상오 11시 두 차례에 걸쳐 공비 3명과 교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칠성산 작전중 육군 노도부대 이영민 병장(21)과 화랑부대 소속 정상훈 병장(23)이 각각 오른팔에 총상을 입고 강릉 국군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군은 이날 강동면 학산리에서 이번 공비소탕과정에서 노획한 공비들의 유류품 1백90종,2천35점을 공개했다. 특히 북한 잠수함 내부에서 발견된 RPG­7 35㎜ 무반동 포를 비롯해 잠수함 스크루 부품,일본제 무비 카메라,북한군용 해양도첩,오리발 등 59종 6백34점이 처음 공개됐다. ◎21세 김태영 상병 지난 23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칠성산 일대에서 무장공비와 교전중 부상한 육군 이기자부대 소속 김태영 상병(21)이 25일 낮 12시5분쯤 치료를 받던 강릉 아산현대병원에서 숨졌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 오늘 합동영결식/국군수도통합병원서

    육군은 지난 21,22일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전사한 고 이병희 상사(25)·강정영 병장(21)·송관종 상병(21) 등 3명의 합동영결식을 25일 상오 10시 서울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거행한다.
  • 공비소탕작전중 전사/3명에 화랑무공훈장/각의,추서 의결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어 강릉 북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전사한 고 이병희 상사(육군특전사 소속) 강정영 병장(육군 보병 제11사단 소속) 송관종 상병(육군 보병 제2사단 소속)에게 화랑 무공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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