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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청에 출근하는 연예인들

    구청에 출근하는 연예인들

    영화 ‘마파도’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 주었던 배우 이정진(28)씨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소집된 지 10개월여 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청이 주관하는 공식 행사장이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일상의 모습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스타 이정진이 아닌 공익근무요원 이정진씨의 하루를 밀착 취재했다. ●광진구 어르신들에게 사랑받는 ‘정진이’ 지난 12일 오전 광진구 보건소의 50평 남짓한 체력단련실. 머리가 히끗히끗한 마을 어르신 10여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삼매경에 빠졌다. 두터운 겨울옷 몇벌을 걸어둔 옷걸이가 갑자기 ‘툭’하며 쓰러진다. 옷을 주섬 주섬 걸쳐 입던 60대 어르신이 누군가를 찾는다.“어, 정진이 어디갔어. 이거 정진이가 있어야 고치는데, 원….” 이정진씨의 임무는 고장난 옷걸이나 운동기구를 고치는 것은 물론 운동기구에 기름칠하고 청소하기, 서울 수돗물 ‘아리수’를 받아다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기 등 말 그대로 ‘잡일’이다. 보건소에서 비만이나 당뇨에 관한 설명회라도 열리는 날은 환자들이 앉을 의자를 배열하고 자료도 복사하며 쓰레기도 버리고 심부름도 하느라 더 바쁘다. 그가 일하는 체력단련실은 광진구 보건소 당뇨·고혈압 교실에 등록된 50대 이상 노인들이 주로 찾는다.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하는 당뇨·고혈압 환자들을 위해 광진구는 이들에게 체력단련실을 무료로 내주었다. 이날도 체력단련실을 찾은 어르신들은 그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을 시작했다.“‘배우’라는데, 나야 모르지, 그냥 애가 착하고 웃으면서 인사 잘 하니까 좋지 뭐.”라고 말을 하며 할아버지 한분이 운동을 시작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체력단련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그에게 껌한통을 건넨다. 매일 아침 보는 청년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였다. 그를 편히 여기는 50·60대 아줌마·할머니 이용객들이 가져다 주는 주전부리도 쏠쏠하다. 배와 곶감, 삶은 감자와 고구마 여러개를 이씨 손에 쥐어주고 가면 함께 일하는 공익근무요원들과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일본 여성 팬들 찾아와 난처한 적도 많아 오전 7시 출근, 낮 12시 점심식사, 오후 1∼2시 운동기기 점검, 오후 4시 퇴근. 퇴근 후에는 2시간 가량 운동을 하고 집에서 쉰다. 여느 공익근무요원과 똑같은 일상이다. 요즘은 노인들을 상대로 생활하다 보니 하루가 조용히 가지만 처음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그는 광진구에 처음와서 3개월 동안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했다. 자원봉사센터에서는 관내 초·중·고교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특강을 진행한다. 공익근무요원은 강사 보조 역할을 하지만 여중·여고를 방문하는 날이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를 보러 몰려든 학생들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며 정중하게 그를 쫓아낸 적도 여러 차례 있다. 그가 체력단련실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 이런 해프닝은 사라졌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방문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일본 여성 여행객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영화배우 권상우씨가 일본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이정진씨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한다는 사실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잘 타일러서 돌려 보내기라도 하겠지만 말도 안 통하는 일본인 아줌마 관광객들에게는 대책이 없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체력단련실에서 이정진씨의 공익근무 사실을 알리는 일본 신문을 들고 찾아온 아줌마 팬들과 멀뚱멀뚱 바라만 보며 민망한 시간을 보낸 적도 여러차례 있었다고 한다. ●“당분간 배우 이정진 잊어주세요.” “근무 시간에는 사인이나 사진 촬영은 안합니다. 쟤는 2년 동안 사진이나 찍고 갔어라는 말이 들린다면 연예인에 대한 특혜로 비춰지겠죠.” 배우 이정진씨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는 지난 2003년 MBC 드라마 ‘다모’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계약을 파기해 손해배상을 치르고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다. 드라마에 말타는 장면이 많았는데 말만 타면 이유없이 몸에 열이 나고 아팠다고 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종합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자신이 천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동물 알레르기에 천식까지 겹쳐 드라마 촬영도 포기했고 신체검사에서도 공익근무요원 대상자로 판정 받았다. “천식 때문에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연예인인 제가 공익근무요원이 된 것도 특혜라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근무 시간에는 일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소집 해제되면 어떤 배역을 맡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라며 짧게 답한다. 항간에 떠도는 여가수 모씨와의 열애설에 대해서도 “그냥,‘설’이잖아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 애인은 없다고 했다. 남들처럼 미팅과 소개팅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스타 공익근무요원으로 어려운 점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는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대단한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진씨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무척이나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공익근무요원 신분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동이 보도되면 오해를 살 것을 염려한 것이다.1년 가까이 남은 근무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이정진씨가 다시 영화팬들의 품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 본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스타 공익근무요원 활용방안 스타급 연예인 공익근무요원은 이정진씨 외에도 탤런트 소지섭(29)씨와 한재석(33)씨가 더 있다. 지난해 3월 마포구청에 배속된 소씨는 현재 구청 문화체육과 공보팀에서 일한다.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문화체육과에서 소씨는 보조 업무를 담당한다. 신문에 난 구청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각종 행사 촬영 비디오 테이프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도 한다. 야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청중이 앉을 의자를 배열하는 등 잔심부름을 한다. 마포구청 직원들은 소씨가 민첩한 편이어서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했다. 반면 말수가 적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연예인이라고 의식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2004년 11월 병역기피 파문에 연루됐던 한재석씨는 현재 송파구청 재난관리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씨는 당초 교통지도과에 배치돼 주차 단속과 과태료 통지서 발부 등의 일을 맡았으나 결국 대민 접촉이 적은 부서로 이동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한씨를 구청 홍보에 적극 활용할 방안을 고려했지만 병역 기피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민원인과 접촉이 덜한 부서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뀌띔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씨 역시 언론과 인터뷰를 일절 사절하고 구청 행사에 공식적으로 나서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등 일반적인 공익근무요원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스타급 연예인 공익근무요원들이 구청에서 담당하는 업무는 주로 행정 보조 및 잡무다. 비슷한 시기에 군에 입대한 god 전멤버 윤계상씨와 탤런트 박광현·홍경인씨처럼 연예 병사들이 국방부 근무지원단 홍보지원반에 소속돼 특기를 살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국방홍보원 기획과 안병호 홍보팀장은 “가수 유승준씨 사건을 계기로 군도 연예인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들은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겪는 어려움과 입대와 동시에 팬들에게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크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이어 “연예인들을 적극적으로 군 홍보에 활용해 보니 그 효과가 대단하다.”면서 “이들이 국민에게 다가서는 친근한 군의 이미지를 심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 공익근무요원들을 획일적으로 구청의 잡무를 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부가가치를 적극 활용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마포구청에는 소지섭씨를 보려는 일본인 여성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주일에도 수차례씩 구청을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소씨를 기다리는 중에 일본어와 중국어로 제작된 마포구 홍보 자료를 꼼꼼히 챙겨 보며 관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간다는 것이 구청 관계자의 말이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한은경 교수는 “소지섭씨와 같이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한류 스타에게 잡무를 시키는 것은 구청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라면서 “소씨가 마포구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마포구청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지는 후광효과가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인적 브랜드 자산 가치가 있는 스타 공익근무요원들을 잘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서울시는 물론 해당 자치구들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공익근무요원 실태 서울시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지난해 10월 현재)은 모두 8423명에 이른다. 서울시 본청에 1800명, 서울시 각 자치구에 6623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구청·동사무소에서 문서를 수발하거나 도로에서 차량을 단속하는 공익근무요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덕수궁 앞에서 매일 3차례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는 ‘조선시대 병사’들도 알고 보면 공익근무요원들이다. 병무청은 공익근무요원에 대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및 사회복지시설의 공익 목적수행에 필요한 경비, 감시, 보호, 봉사 또는 행정업무의 지원과 국제협력 또는 예술, 체육의 육성을 위하여 병역의무의 한 형태로 운영하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은 행정관서요원(2년 2개월), 국제협력봉사요원(2년 6개월), 예술·체육요원(2년 10개월)으로 나뉘는데, 공익근무요원의 99.5%가 행정관서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행정관서요원의 월급은 일반 사병과 같다.▲6개월차(이등병에 해당) 5만 4300원 ▲7∼13개월차(일등병에 해당) 5만 8800원 ▲14∼21개월차(상등병에 해당) 6만 5000원 ▲22개월차(병장에 해당) 7만 2000원을 받는다. 올해부터는 연말 보너스 200%가 월급에 반영됐다. 여기에 하루 식비 4000원, 차비 1600∼2000원이 지급된다. 또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주5일 근무를 하며, 상황에 따라 특근·야근을 하기도 한다. 신체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들은 “일반 군대에 비해 덜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들의 인터넷카페 ‘참공익’은 “총 대신 사회 구성원을 앞에 두는 이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젊음을 그렇게 바칩니다.”라면서 공익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김유영 정은주기자 carilips@seoul.co.kr
  • 쌍둥이 전우 ‘멋진 하모니’

    “우와∼, 저 사람은 못 다루는 악기가 없네.” 지난해 12월 해군 1함대 군악대가 강원도 동해시에서 개최한 군악 연주회에서 시민들은 잇따라 등장한 한 병사가 드럼, 북, 꽹과리 등 타악기에 이어 클라리넷 등 관악기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하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나중에 종합연주 코너에서 똑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이 각각 드럼과 클라리넷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고서 그들이 쌍둥이인 줄 알게 됐다. 쌍둥이 형제가 한 부대 군악대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형제애와 함께 전우애까지 키워 가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해군 1함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최원일(23) 병장과 원두(23) 상병으로, 최 병장이 30분 먼저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두 사람은 2003년 11월 최 병장이 1함대에 배치된 데 이어 이듬해 12월 입대한 동생도 같은 부대에 배속돼 형은 타악기를, 동생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화인생 27년 여류작가 서공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화인생 27년 여류작가 서공임씨

    친근하고 정겹다. 해마다 이맘 때면 늘 든든하고 풍요롭게 다가온다. 원래 백성이 그렸다. 온 가족의 소망을 담았고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다. 집안의 액운을 물리쳐 주고 무병장수를 염원했다. 맞다. 민화(民畵)라 한다. 좋은 일을 바라고 나쁜 일을 막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려졌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액을 막고 복을 누리기 위해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요즘 들어 전통 민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대회의 휘장이나 행사장의 포스터 등만 하더라도 민화적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기업인들은 사업번창을 위해 너도나도 민화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었다. 여기엔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진 창작 민화의 발전이 한몫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류 민화작가 서공임(47)씨. 특유의 정성과 섬세함으로 우리의 민화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고교 졸업 직후 스무살 처녀 때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27년째 전통 민화를 그려오는 셈. 특히 1998년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띠 그림전을 시작으로 매년 새해 초 어김없이 우리 일상과 반가운 ‘띠그림’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끄는 작가다. 올해에도 그냥 있을 리 없다. 병술년의 개그림 민화 등을 포함, 서민들의 새해 소망과 벽사를 기원하는 뜻에서 길상화(吉祥畵) 49점을 선보이고 있다(2월5일까지·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갤러리). 지난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작업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작업실이 독특했다. 전통 한옥에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현관 천장을 유리로 장식했다. 어디서 본 듯한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지난 96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씨와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국왕 부부는 유럽에서 서씨의 명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방한한 김에 서씨 작업실에 일부러 들렀다. 이 자리에서 소피아 왕비는 30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 민화 감상을 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서씨는 왕비에게 그림 한 점을 기증해 국내와 스페인 언론에도 소개됐다. 먼저 이번 전시회의 분위기를 물었더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님 등 각계 어른들께서 많이 찾아주셨고 아무래도 새해 벽두이고 개가 우리와 친숙해서인지 일반 관람객들도 많네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개는 옛날부터 집을 지키고 사냥,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는, 즉 재난을 경고·예방해 주는 것으로 믿어 왔지요.”라고 덧붙인다. 아울러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비롯해 용, 해태, 닭, 모란, 봉황, 거북이, 사슴 등도 우리 길상화에 자주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띠그림으로 매년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 아니냐고 했다.“8년 전 호랑이 길상화전을 열면서 호랑이를 무려 100마리나 그렸지요. 이때 얻은 별명이 ‘호랑이 100마리를 키우는 여자’였어요.”라며 웃는다. 서씨의 좌우명은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를 맞는다.’는 것. 정말이지 27년 동안 연중무휴로 그림을 그려 왔기에 언제 어디서든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민화 인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뭐, 변변치 못해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걸요.”라며 애써 겸손한 모습이다. 잠시 회상에 젖더니 “여든일곱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지요. 원래 어머니가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지난해 어머니가 (골다공증으로)쓰러지고 나서는 제가 보호자라는 걸 알았어요.”라고 했다. 인생의 한 깨달음을 느꼈을까. 이어 “어머니는 저를 안 낳으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래서 덤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인내심이 저절로 강해지더군요. 아마 어머니를 보호해 드리려는 마음도 그런 데서 생겼나 봐요.”라고 말꼬리를 약간 흐린다. 서씨는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씨 가족은 서씨가 중학교때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한다. 서씨는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미술 방학숙제를 죄다 해줄 정도로 타고났다. 취직을 해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에 성남 제일실업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책가방에 갱지 노트를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들판의 꽃과 나무를 그렸다. 수업이 끝나면 남한산성으로 어서 달려가 풍경화며 수채화를 그리기 일쑤였다.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4월 서울시내 화방에 미술재료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민화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그 길로 곧장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민화공장이었다. 미군들을 상대로 파는 이른바 ‘쫑쫑이 그림’을 생산해 내는 곳. 처음에는 접시 닦고 걸레질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직하게 7년을 버텼다. 불교화, 이발소 그림, 일본 수출용 그림 등 손을 안댄 그림이 없었다. 그러다 스물여섯 살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어 홍익대 미대의 송수남 교수한테 2년 동안 수묵화를 배웠다. 드디어 86년 한국민화 연우회전을 시작으로 세상에 명함을 내밀었다.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초대전을 가졌고 93년 이후에는 매년 단체전·초대전을 열면서 많은 팬들을 확보해 나갔다. 특히 9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갤러리에서 개최된 ‘서공임 민화 호랑이전’은 빅히트였다.IMF 외환위기 직후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 부자가 되는 ‘웰빙민화’를 떡하니 내놓아 인기폭발이었다. 이때부터 신문과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흐름이 생겨났지요. 가구나 도자기 등에도 민화가 많이 응용됐어요.” 그의 그림은 어떤 사람이 소장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 등은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외국인 초청 행사가 많은 부산 하야트호텔이나 제주 그랜드호텔 등에서도 장식용으로 민화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와 지난해 8월 열린 세계의료윤리학회에도 협찬출연하는 등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서씨는 아침 9시면 작업실로 출근해 밤 12시가 돼야 퇴근한다. 토·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일 중독증 환자란다. 동방대학원과 연세대·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자신의 인생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무(無)에서 유(有)도 생겼다. 명성과 덕, 마음의 부유함, 주위 친구들이다. 학연도 지연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 오늘날 이 자리에 온 것만 해도 커다란 복이 아니냐고 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유(有). 서씨의 민화가 올해 유니세프카드에 실려 세계 각국의 어린이 생명을 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이 카드에는 그동안 고흐·샤갈·피카소 등 세계적인 미술가의 명작들이 실렸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실명 민화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0년 전북 김제 출생 ▲79년 성남 제일실업고 졸업 ▲2000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예술사학 수료 ■ 작품 활동 ▲86∼92년 한국 민화연우회전 ▲88년 한국일보 초대전 ▲93년 일본 다카시마 백화점 초대전 ▲94년 민화의 새 지평전(동호갤러리) ▲95년 한국 민화작가전(세종문화회관) ▲97년 한국 민화3인전(롯데화랑) ▲98년 무인년 호랑이 민화전(롯데화랑) ▲2000년 불멸의 신화 ‘용’ 전(삼성플라자갤러리) ▲02년 아트월드컵 대한민국 부채그림전(고양 꽃박람회 전시관) ▲05년 9회 개인전-서공임 민화 닭그림전(한국일보갤러리) ▲06년 1월 서공임 병술년 길상화전(한국일보갤러리)
  • 국방부 “비용 5000억 들어” 난색

    ●고침 1월9일자 서울신문 6면에 보도된 ‘사립교 신규교원 채용’ 제하의 기사 내용 가운데 신규교원 채용은 3월부터가 아니라 내년 3월부터 시작되기에 바로 잡습니다. 주한 미군측이 홍수방지를 위해 주한 미2사단 등이 옮겨갈 평택기지의 지반을 높여달라고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해옴에 따라 한·미 양국이 조만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국방부는 9일 “조사방법과 주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현재 양측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평택기지가 안성천을 끼고 있어 홍수로 잠길 가능성이 있다며 건물이 들어설 지역은 3.3m, 연병장 지역은 2.6m가량을 높여 달라고 지난해 11월 국방부에 요청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5000억∼60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우리가 부담할 것을 주장했다.그러나 우리측은 비용도 만만찮은 데다 엄청난 양의 흙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입장을 미측에 전달했다. 양측은 지난해 말 한미연합사와 우리측 국방부 관계자들, 그리고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 등 주한미군 장성들이 참석한 회의를 열었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결국 양측은 홍수 및 기지 침수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이기로 하고 한·미 공동조사 또는 민간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전방 총기탈취범 2명 검거

    지난달 8일 강원도 고성군 동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K-2소총 2정과 실탄 700여발, 수류탄 6발 등을 탈취한 용의자 2명이 5일 군경합동수사반에 검거됐다. 합동수사반은 이들로부터 분실 무기를 전량 회수했다. 육군은 이날 오전 7시50분 K-2 소총 2정을 탈취한 용의자로 총기분실 지역의 부대 출신인 정모 예비역 중사와 장모 예비역 병장 등 2명을 전주와 울산의 모처에서 각각 검거했다.용의자들은 은행을 털기 위해 무기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31㎏ ‘필승감량’ 성공하니 임관이네요”

    3일 임관한 제 115기 공군사관후보생 가운데 장교가 되기 위해 몸무게를 무려 31㎏을 필사적으로 감량하는 등 이색 졸업자가 적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공군에 따르면 이병훈(24) 소위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키 187㎝에 몸무게 126㎏이었다. 현역이 되기 위한 몸무게 상한선인 113㎏을 맞추기 위해 꾸준한 식사조절과 헬스로 지난해 9월에는 110㎏으로 무려 16㎏ 감량에 성공했다. 이 소위는 “훈련기간에 규칙적인 훈련과 체계적인 체력단련으로 지금은 몸무게가 15㎏ 더 줄여 95㎏”이라고 가볍게 웃었다. 김정훈(23)·박장진(26)·김현(26) 소위는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어 군복무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군장교로 자진 입대한 케이스다. 김정훈 소위는 미국에서 태어난 데다 습관성 어깨 탈골이 있는데도 자원입대했고, 김현 소위도 1989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영주권을 갖고 있다. 박장진 소위는 1995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대 안보정책 석사를 마치고 입대했다.이들은 “공군 장교로서 나라를 지킬 기회가 주어져 기쁘고 앞으로 군 복무에 최선의 각오를 다해서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운 공군인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행정고시 16명, 기술고시 4명, 외무고시 1명 등 고시에 합격해 정부 부처에 근무하다 공군 장교가 된 이가 모두 21명이었다. 하버드대, 베이징대 등 외국의 명문대 출신자는 16명이었고, 러시아어·아랍어 등에 능통한 어학특기자는 25명이었다. 이날 경남 진주의 공군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김성일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15기 공군사관후보생 임관식이 열려 228명의 신임 장교가 배출됐다.공군사관후보생은 대학 출신으로서 3년간 군복무를 대신하는 것으로, 이른바 ‘학사장교’라고 볼 수 있다.대부분 지상 근무 요원이며, 그중 별도 시험을 거친 일부만 조종사 훈련을 받게 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지영, 일일기자 되다

    서지영, 일일기자 되다

    AM 7:10 잠 깨다. 오늘은 ‘서울신문 일일기자´ 뛰는 날. 기대반 걱정반. 두근두근. AM 11:00 이영표 기자로부터 확인전화. “이따 봐요” “예? 제가 기자가 된다고요?” 허걱,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내가 신문 기자가 된다니…. 서울신문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주말매거진 ‘We’ 100호 특집을 위해 나를 서울신문 문화부 ‘일일 기자’로 임명하겠단다. 게다가 현장에 나가 인터뷰를 하고 기사까지 작성해야 한다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인터뷰야 늘상 해 온 익숙한 일. 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기자 신분으로 취재 현장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창피 당하기 전에 포기할까?안 되지. 당찬 서지영이 그럴 수는 없잖아. 마음을 바꿔 덥석 OK의사를 밝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평소 만나지 못했던 동료 연예인들도 만나고, 궁금했던 질문도 마음껏 해봐야지. 푸훗. 근데 걱정이다. 누구를 섭외하지?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기사작성은 또 어떻게 하구?에궁∼걱정이 태산이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잖아. 한번 해보는 거야! 서울신문 일일기자 서지영의 좌충우돌 취재기 지켜봐 달라고요∼. # 서기자, 연예사병 인터뷰하다 취재에 앞서 서울신문 문화부에 들러 담당 기자와 기사 아이템을 논의하고 인터뷰 기본 요령도 교육 받았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모습을 볼 수 없어 소식이 궁금한 연예인을 만나는 것이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되겠지?음…누가 좋을까?그렇지!‘연예사병’이 어떨까?마침 내가 출연키로 한 국군방송 TV(KFN:스카이라이프 채널 533번)의 개국축하 특집 공개방송(1월1일 방송 예정)에 윤계상, 지성, 홍경인 등 군입대 스타들이 대거 얼굴을 내민다는데. 게다가 데뷔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로 지내 온 박광현 오빠가 사회자로 출연하잖아. 이참에 반가운 얼굴도 보고 좋잖아. 그래!결정했어! # 현장의 서기자 어휴, 속탄다 속타∼. 인터뷰의 기본은 약속시간 준수라는데…. 방송 녹화 시작 시간은 7시30분. 때문에 6시부터 1시간 동안 연예 사병들과 인터뷰를 하게 해달라고 미리 소속 부대에 부탁을 해 놓았다. 그런데 웬걸.30분이 지나도록 녹화장인 경기 양평실내체육관에는 광현 오빠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 있지?동료 부대원들과 함께 저녁 밥 먹으러 갔단다. 결국 10여분이 더 지나 나타난 광현 오빠. 한껏 핀잔을 주자, 돌아오는 대답.“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단체 행동을 하는 군인이라구!” 광현 오빠와 무대쪽 대기실로 가니 반가운 얼굴 들이 그득하다. 자∼첫번째 내 취재망에 걸려든 광현오빠를 필두로 본격적인 인터뷰에 돌입해 볼까. 서지영(이하 서기자):안녕하세요. 서울신문 서지영 기자예요. 호호. 박광현:충성!일병 박·광·현!아∼지영아, 오랜만이야.1년만인 것 같네. 근데 오늘 가수로 출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손에 웬 수첩?노트북은 또 뭐고? 서기자:호호. 가수가 아닌 기자 서지영으로 불러 줘요. 서울신문 일일 명예 기자가 됐어. 참, 이제부터는 농담하면 안돼. 오빠 한마디 한마디가 다 기사화된다니깐.(웃음) 박광현:아하. 그래요?아이고 무서워라. 흠흠∼(목을 가다듬고)오늘 무대는 1일 개국한 국군 방송 TV의 개국 축하 공연이야. 제20기계화보병사단 장병 3000명이 함께 하고 있지. 나를 비롯해 홍경인·윤계상 상병, 서병돈 병장은 손수 만든 신세대 진중가요 ‘너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를 선보일 예정이야. 윤계상 상병은 리포터 역할을 하기로 했어. 출연자?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울 길건, 하유선, 서지영, 디바, 더 빨강, 춘자, 아이비 등 섹시 여가수들과 신효범, 한혜진, 더 리플레이 등 유명가수들이 대거 참여해. 서기자:내가 보기엔 군생활 제대로 적응할 스타일이 아닌데?호호. 박광현:무슨 소리!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 근데 그리 녹록지 않더라고. 연예사병으로서의 군 홍보 업무는 물론 훈련도 받고…밖에 있을 때보다 스케줄이 더 바쁜 것 같아. 하하. PM 6:00 약속시간. 광현 오빠 콧빼기도 안 보임. 주거~! PM 6:40 드디어 만남. “오빠, 취재 빵꾸 낼 거야 진짜~” “미안 미안! 내가 원래 좀 바빠, ㅋㅋ” PM 7:30 방송 녹화 시작. 군인아저씨들 예상 외의 열광. 신난다! 서기자:입대한 지 1년 남짓 됐는데, 연예계가 그립지 않아요? 박광현:훈련소 시절엔 굉장히 그리웠지.TV에 연예인들 나오면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울컥해지기도 했어. 서기자:연예사병 모두 같은 내무반에서 자죠?잠자리 에피소드 없어요? 박광현:하하. 왜 없겠어. 국군방송에서 연예사병들이 각자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거든. 어떤 날은 내 옆 여기저기서 ‘잠꼬대 방송’이 이어지곤 해. 가령 홍경인 상병이 “지금까지 진행에 홍경인이었습니다. 윤계상씨 받아주세요∼.”하면 옆의 윤계상 상병이 잠결에 “예!윤계상 마이크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는 거지. 완전히 ‘릴레이 잠꼬대’라니깐. # 취재하랴, 출연하랴 바쁘다 바빠! 휴∼이제 한 명 끝냈다. 근데 녹화 시작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네. 서둘러야겠다. 어, 저기 홍경인씨잖아. 서기자:안녕하세요. 홍경인씨 오랜만이에요. 홍경인:아∼서지영씨, 아니 서 기자!안녕하세요?(웃음) 서기자:제가 어릴 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보고 경인씨 짝사랑했던 거 모르시죠.(이크, 인터뷰에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홍경인:오호!고마우셔라. 요즘 지영씨도 군인들 사이에 최고 인기 스타인 거 알아요?우리 내무반에서도 지영씨 노래 ‘Stay in me’가 종종 흘러나와요. 서기자:연예사병은 모두 몇명이에요?‘짬밥’ 순서는요? 홍경인:각자 소속 부대는 다르지만, 국방부 근무지원단 지원대대 소속 국방 홍보지원반 파견 근무 중인 연예사병은 모두 15명이에요. 저는 상병이고,(윤)계상이도 상병, 지성이는 일병이죠. 참 1월5일 전역하는 이민우 병장도 있어요. 홍경인 상병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반대쪽을 보니 윤계상씨와 지성씨가 보인다. 모두 짧은 머리를 해서인지 입대전보다 더 어려보인다. 계상씨는 전방 사단에서 9개월 근무하다가 지난 1일부로, 지성씨는 지난 11월 부로 각각 전입해 왔단다. 모두 “따로 따로 야전에 있다가 만나니까 서로 힘이 되어주고 많이 친하게 됐어요. 콩 한쪽도 나눠먹는 전우들이죠.”라며 한목소리를 낸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인터뷰를 마치고, 무대에 올라 노래 두 곡을 부르고 난 뒤 다시 돌아왔다. 에휴∼숨너머가네. 자∼이제 노트북으로 기사 작성을 한번 해볼까. 어라!이거 간단치 않은데. 첫 줄부터 막히는 게…. 함께 온 서울신문 담당 기자와 함께 한동안 머리 맞대고 씨름한 뒤에야 간신히 내 생애 첫 기사가 완성됐다! 운 좋게도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 100호를 맞아 기자 체험을 해봤는데,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취재한 6시간이 마치 6일 같이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내 노력이 알찬 정보가 돼 신문 지면을 빛낸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다. 새해에도 이렇게 치열하게 노래 부르고 연기해야겠다. 서울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지영이도 많이 예뻐해주시고요. <취재 서지영 일일기자> 정리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뉴스피플] 유럽축구 전문 서형욱 해설위원

    [뉴스피플] 유럽축구 전문 서형욱 해설위원

    잠자는 시간을 빼면 24시간 그의 머릿 속엔 오로지 축구밖에 없다. 이제 겨우 ‘인생관이 선다.’는 이립의 나이 서른. 하지만 지난 10일 조추첨이 끝나며 본격 독일월드컵 시즌으로 접어든 지금, 그는 곳곳에서 쏟아지는 팬들의 축구 ‘지식갈증’을 해갈해주는 우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동안의 이 ‘청년’은 축구 마니아에서 ‘최연소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한 서형욱(30) MBC 축구해설위원이다. 스무살 때 간 군대에서 뒤늦게 축구에 재미를 붙였다. 매일 연병장에서 동료들과 공차며 뛰노는 게 마냥 재미났다.1997년 6월 제대하니 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탓에 ‘차범근 열풍’과 축구 붐이 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있을 때면 혼자 자료를 모으던 버릇이 옮아와 그때부터 축구에 빠져살았다. 서점에서 외국 전문서적을 찾아 헤맸고 99년 1월에는 PC통신에 ‘유럽클럽축구 동호회’를 만들어 1000여명의 회원들과 매일 축구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2000년 6월 SBS축구채널에서 분석가로 활동하다 3개월 뒤 마이크를 잡았다. 선수 출신도 아닌 데다 겨우 25살, 최연소였다. 이듬해 9월 한 스포츠신문사 기자가 됐다.1년 동안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MBC에서 해설을 이어갔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축구 여행을 떠났다. 한달 동안 유럽의 축구장 세 군데를 돌았다. 한 선수가 슈팅한 것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한 관중이 ‘이골레토’ 노래에 맞춰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3만여명이 함께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 소름끼치는 문화충격을 받았다. 축구는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즐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3년 7월부터 리버풀대학 축구산업대학원에서 1년간 석사 과정을 밟았다.19개국에서 몰려온 32명의 축구광들과 매일 토론했다.20곳 정도의 축구장을 돌아다녔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6월 ‘유럽축구기행’이란 책을 냈고 축구 서적으론 처음으로 4쇄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요즘 일주일 두 번의 방송 출연과 신문 칼럼 쓰기, 내년 봄 출간할 두 번째 책쓰는 작업에다 지난 9일 개설한 최초의 축구전문 사이트 ‘토털사커(totalsoccer.empas.com)’ 자료 업데이트 작업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서 위원은 “취미인 축구가 일이 됐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때 보람차다.”면서 “토털사커가 영화의 ‘씨네21’처럼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광장]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이용원 논설위원

    며칠전 ‘군대 친구’들이 송년모임을 가졌다.1980년을 전후해 같은 중대에서 병영생활을 함께한 이들로, 나이 또한 쉰살 안팎으로 고만고만한 사이다. 화제는 여느 때처럼 복무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요즘 군대’ 이야기로 모아졌다. 친구들 중에는 아들이 현재 복무 중이거나 입대를 코 앞에 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약간의 격론을 거쳐 그 자리에서 내린 결론은 ‘요즘 군대 불안하다.’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는 이러하다. 군대란 어차피 전쟁에 대비한 존재로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특수집단이다. 따라서 엄정한 군기가 기본이고 이를 바탕으로 상하간 명령·복종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군대는 군기가 빠져 있다. 이래서야 군가의 한 대목처럼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등등이었다. 이밖에도 군 복무는 신성한 의무이니만큼 개인 희생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의견, 군 복무는 일종의 성인식이며 남자는 제대해야 비로소 제몫을 하게 된다는 ‘남성우월적인’ 주장도 있었다. 심지어는 국방부가 사병과 그 부모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질타까지 나왔다. 올해는 군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다. 지난 6월 모 사단의 최전방 감시소초(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장병 8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희대의 참사가 벌어졌다. 그에 앞서 연초에는 논산훈련소에서 한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군에서 암 진단을 제때 받지 못한 사병이 전역후 몇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사례도 잇달았다. 건군(建軍)후 누적된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병영문화 개선안을 비롯해 군 개혁방안을 다양하게 내놓았고 그 결과 구세대로서는 감히 상상 못한 일들이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병장이 이등병의 발을 닦아주는가 하면, 내무반을 공개해 사병의 부모가 자식과 함께 숙식 및 근무를 체험하기도 한다. 아울러 병사들의 공동 생활공간인 내무반을 생활관 개념으로 바꿔 개인공간을 최대한 보장하며, 출퇴근 개념을 도입해 업무시간 말고는 제가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하도록 해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다 좋은 일이다. 군인도 다같은 우리 자식이기에 그들이 편하게 잘 지낸다는 데 불평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인권 역시 민간인과 다름없이 보장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일반사회에서 그러하듯 병영에서 벌어지는 구타·성폭력은 엄연한 범죄행위이므로 뿌리 뽑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같은 변화가 군의 목적과 존재이유를 충실히 지키면서 진행되는가 하는 점이다. 군대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진 다음날 신문은 ‘유격훈련 재미있어진다.’는 뉴스를 또 전했다. 유격훈련이면, 특수부대원을 제외한 육군 사병이 겪는 가장 엄격한 훈련이다. 그런데 이 유격훈련을 앞으로는 신세대가 좋아하는 ‘인공암벽 오르기’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군 복무 당시 유격훈련의 목적을 전투능력 향상과 군인정신 강화로 배웠다. 이번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유격훈련은 앞으로 전투능력 향상에는 도움될지 몰라도 군인정신 배양과는 무관하게 될 것이다. 일반기업체조차 신입사원 연수과정에 극기 훈련을 넣는 데가 적지 않은데 정작 군에서는 이를 버리는가. 군대는 어느 때라도 군대다워야 하는데…. 이십수년 전에 군을 제대한 구세대가 보기에 요즘 군대의 변화는 왠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파월 한국군 수당 比·泰와 비슷

    파월 한국군 수당 比·泰와 비슷

    정부가 2일 공개한 베트남전 관련 잔여 외교문서 가운데 두드러지는 대목은 당시 정부가 북한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권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 외교를 펼친 대목이다. 항간에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당시 정부가 파병 장병의 해외근무수당을 비롯한 실익을 챙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정부가 지난 8월 베트남전 관련 핵심 외교문서인 브라운각서와 사이밍턴 청문회 관련 문서를 공개한 데 이어 이날 잔여 문서를 추가 공개함으로써 베트남전과 관련한 세간의 의혹은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 방위기구’ 창설 시도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말을 전후로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타이완을 등을 아우르는 지역적 방위기구 결성을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방부가 2일 공개한 베트남전 외교문서 가운데 ‘아국과 자유아세아의 안전보장 대책시안에 대한 대통령 각하 분부’라는 문서에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중국·북한을 위시한 아시아의 공산국가가 대항해 미국과 한국·일본·타이완 등이 함께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연상케 하는 지역적 방위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특히 미국과의 각서 교환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공동선언 또는 문서교환 등으로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조약기구로 형성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美, 한국군 근무수당 2억 3556만弗 지급 파월 국군장병들이 미국측으로부터 받은 해외근무수당은 하루 기준으로 준장은 한국군과 필리핀군 공히 7달러, 중령은 한국군과 필리핀군 6달러, 태국군 7달러, 소위는 세 나라 모두 4달러, 병장은 한국군 1달러80센트, 필리핀군 1달러20센트, 태국군 2달러 등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파월 국군 장병들이 베트남전 기간에 미측으로부터 받은 해외근무수당은 총 2억 3556만 8400달러로, 이중 82.8%에 달하는 1억 9511만 800달러가 국내로 송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간 집계된 액수로, 대일청구권자금으로 받아낸 3억달러와 유사한 규모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민사상 사상피해도 미군이 보상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전 당시 주월 한국군과 군속이 비전투중 사상 사고를 내더라도 보상책임은 미군이 져야 한다는 방침을 미국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주월 한국대사관이 1966년 3월15일 외무장관에게 보낸 ‘청구권에 관한 한·미 실무협정’ 보고서에 명기돼 있다. 한국군은 소청심사위원회를 설치해 민사사건에 대한 소청지급액을 독자적으로 책정하면, 주월 미국군사원조사령부 법무관은 소청지급액에 대한 지불보증을 하도록 합의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빠져 있지만 미국은 1966년 브라운각서 군사협조 제10항과 주월한국군수첩에 명기된 재해보상기준에 따라 해외근무수당과 별도로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부상한 한국군 장병들에게 총 65억 563만 7000여원의 재해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최용호 전쟁사2부장이 국방부 자료실에서 입수한 ‘주월군 경리지원(파월재해금 정산현황 제출)’이라는 자료에서 드러났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사망한 한국군 장병에게 지급한 재해보상금 규모가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미국 정부는 해외근무수당을 달러로 지급한 것과 달리 재해보상금은 한국의 관련 법규에 근거해 지급한다는 명분에 따라 원화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또 안타까운 ‘제2의 노충국’

    예비역 병장이 만기 전역 20여일 만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당시 소대장에 의해 1일 공개됐다. 2002년 육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모 사단에서 소총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지난 9월 전역한 예비역 육군 중위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철기(29)씨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당시 지휘자로서 반성으로 이 글을 올린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국방부 홈페이지에 자신의 소대원이었던 윤여주(26)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김씨와 윤씨의 부친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해 4월 말 만기 전역한 지 20여일 만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세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병원에서도 더이상 손쓸 도리가 없어 집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고 있다. 김씨는 “군대에 있으면서 배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했을 때 단순히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윤씨 가족은 지난해 국가보훈처에 원호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근거 불충분으로 기각됐고, 급기야 다음달 15일 행정재판을 앞두고 있다.윤씨의 부친은 “전역 뒤 간암 말기 판정 사실을 해당부대 대대장에게 알렸더니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줄테니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뒤로는 내 휴대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윤씨는 2002년 6월12일과 7월5일 두 차례에 걸쳐 국군벽제병원에 가서 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를 받았으나 정상이었다.”면서 “해당 대대장도 윤씨가 수술을 받은 뒤 윤씨의 부친과 한두 차례 전화통화를 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한 적은 있지만 그 뒤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故노충국씨 군의관 “보고 안했다” 진술 번복

    전역 보름 만에 위암 판정을 받아 숨진 고(故) 노충국(28. 예비역병장)씨를 진료했던 군의관 이모(31) 대위가 진료기록지를 조작한 데 이어 조작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도 보고한 것처럼 거짓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노씨 사건을 수사해 온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17일 이 대위가 진료기록지에 ‘가필’한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했는지 여부와 관련,“이 대위가 처음에는 상관인 진료부장대리와 병원장에게 보고했다고 했으나 수사과정에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합조단 관계자는 “진료기록지에 가필하는 장면을 동료 군의관인 최모 대위가 목격했고 또 다른 군의관 김모 대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며 “이 대위는 언론보도 이후 심적 부담을 느껴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합조단은 이 대위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자이툰 전역 4개월만에 ‘뇌종양말기’

    이라크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한 뒤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양태황(23) 예비역 병장은 가톨릭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03년 2월 군에 입대, 지난해 11월 자이툰부대에 지원해 이라크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성실히 마치고 지난 4월23일 전역했다. 신체등위 2급을 받고 입대했지만 자꾸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복용해 온 양씨는 전역한 지 4개월여 만인 지난 9월21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대한 건아’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이라크로 떠났던 꿈 많은 한 청년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양씨는 가정환경도 그리 넉넉지 않아 이라크 파병 대가로 받은 월급을 병원비로 다 써버렸다. 양씨 가족들은 청와대와 국방부,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양씨의 병이 군에 있을 때 발병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싸늘한 답변만 들어야 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요리talk 조리talk 홍경민 입니다

    요리talk 조리talk 홍경민 입니다

    “불혹, 지천명에도 무대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음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건너편 주유소 옆 상가 2층에 자그마한 삼계탕집이 있다.‘장호삼계탕’.30∼40석 정도의 작은 규모에, 약간은 허름한 듯한 이곳을 지난 4일 찾았다. 겨울을 바라보는 시기에 웬 삼계탕이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겠다. 최근 리메이크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홍경민(29)과 만남이 약속됐기 때문. 그가 추천한 맛집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홍경민을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에게 살짝 물었다.“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사장님은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어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이어지는 집요한 질문에 “문을 연 지 21년 됐지만, 맛도 그렇고 식탁이나 의자가 그 때 그 시절 그대로인 것이 장점”이라며 허허 웃음을 흘린다. 자주 찾아오는 명사가 궁금했다. 일일이 꼽아보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때마침 방송 녹화 리허설을 마친 홍경민이 들어선다. 그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찾는다는 삼계탕을 일단 후다닥 주문했다. 홍경민은 “이쪽 생활이 한 끼 챙겨먹기 힘들 정도로 바빠요. 먹을 때 제대로 찾아 먹기에는 삼계탕이 제격이죠.”라면서 “특히 이곳은 담백하고 걸쭉한 국물이 그만이구요. 언제나 변함없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먼저 향긋한 인삼주 한 잔 건배. 그는 “좋죠? 인삼주도 그렇고, 여기서 매일 담그는 겉절이 김치도 별미죠.”라며 입맛을 다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삼계탕을 먹으랴 이야기하랴 바쁘다. 그의 추천대로 평소에 접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다! 장에 찍어 먹은 고추의 알싸한 맛도 마음에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레 삼계탕처럼 솔직담백한 그의 음악세계로 옮겨졌다. 내년이면 벌써 데뷔 10년째. 또 나이도 서른을 훌쩍 지나간다. 느낌이 어떨까.“특별하게 의식하지는 않아요. 이제는 젊은 혈기보다는 원숙미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음악보다는 오락·연예 쪽에서 많이 눈에 띈다고 말을 던졌다. 그는 “엔터테이너적인 느낌이 강했다는 건 알아요. 현실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척 아쉬운 부분이죠. 겉으로 보여지는 엔터테이너보다는, 소리로 들려주는 뮤지션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제대 이후 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한국의 리키 마틴’이 됐지만, 데뷔 전에도 그렇고 가장 하고 싶은 장르가 록이라고 설명한다. 록이 우리의 사물놀이와 음악적 정서가 맞아 더욱 마음에 든다고. “우리에게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것 같아요.‘걔가 록을 해?’하는 분도 있구요. 지금 록이 우리시장에서 먹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좋은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홍 병장’ 이미지에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입대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너무 미화됐다는 생각 때문.“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해서 물어보고 해서 정말 민망했죠.”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 진출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예전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 우리 음악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국내에서도 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네요.” 언젠가 ‘딥 퍼플’의 공연에 감명을 받았다는 홍경민은 “우리로 따지자면, 은퇴할 나이잖아요. 그런 데도 열정을 내뿜는 게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2·13일 리메이크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 기념콘서트 ‘의외의 홍경민을 보여주겠다!’ 8번째 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를 내놓은 홍경민이 오는 12일(오후 7시30분),13일(오후 5시) 이틀 동안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번 컨셉트는 ‘추억으로 떠나는 늦가을 여행’이다. 교복을 입은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연극 형식으로 들어가며 80년대 학창시절을 연상케 한다. 또 갈대밭이나, 벤치와 가로등 등 무대 소품으로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무대가 꾸며진다. 그 때 그 시절 유행했던 댄스곡도 부르며 직접 춤도 춘다. 홍경민은 어릴 적 우상이었던 신해철을 초대하려 했지만, 건강 문제로 불발된 게 가장 아쉽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홍경민에 대한 편견 깨기’. 방송에선 엔터테이너적인 면이 부각됐지만, 공연에서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 그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안다.2000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마지막 잼콘서트에 베이스 주자로 참여했을 정도. 지난 6집 ‘네가 그리운 날에’는 원맨밴드 형식으로 녹음했던 곡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드럼 두 대를 세팅, 세션맨과 동시에 연주하는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이다. 그는 “솔직히 연습이 부족해 수준급은 아니에요.”라면서 “하지만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밴드에서 즐겨 카피했던 ‘본 조비’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 홍경민은 “한 때는 제가 본 조비 노래를 국내에서 최고로 잘 한다는 착각도 했었어요.”라며 웃음 지었다. 그는 “앞으로도 사정이 허락한다면 팬들과 신나게 어우러지는 공연 위주 활동을 하고 싶어요.”라고 다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軍부대 수류탄 폭발 장교1명 숨져

    9일 오전 6시25분쯤 전남 담양군 육군 모부대 영내 사무실에서 수류탄 1발이 폭발해 당직 근무 중이던 김모(24) 중위가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부대 상황병이었던 강모 병장 등 2명은 “옆 사무실에서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사무실 집기가 부서지고 김 중위가 크게 다쳐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사고는 영내 1층 건물 중앙부 사무실에서 발생했으며 내무반과는 거리가 멀어 다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탄약고 열쇠는 김 중위가 소지하고 있었으며 사고발생 전 김 중위와 함께 있던 당직부관은 김 중위의 지시로 영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 당국은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사고 현장을 보존하는 한편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軍 노충국씨 진료기록조작 파문

    군 병원이 전역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투병 중에 숨진 노충국(28·예비역 병장)씨 사망사건과 관련, 노씨의 진단기록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방부는 6일 윤광웅 장관의 지시로 실시한 군 의료체계 관련 감사·조사 중간 발표에서 해당병원과 진료군의관에 대한 조사를 벌여 이같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진료를 담당했던 국군 광주병원 군의관 이모 대위가 지난 4월28일 최초 작성한 진료기록부에는 위암 의증과 관련된 기록이 없었으나,7월24∼25일 노충국 병장의 아버지가 진료기록부 복사를 요구하자 이 대위가 진료기록부에 ‘내시경 소견상 악성 종양 배제 어려워, 환자에게 설명’이라는 내용을 추가로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같은 사실은 본인도 시인했다.”고 설명했다.앞서 국방부는 노씨와 관련한 의혹이 확산되자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군 병원이 당초 노씨를 위궤양 및 역류성 식도염, 위암의증으로 진단해 휴가 중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했으나 노씨가 이행하지 않았다.”며 “군 병원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당초 국방부의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 군은 조작된 진료기록을 근거로 출입기자들까지 속여가면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난과 함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방부 합동조사팀은 조사가 마무리되는 다음주 초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발언대] 서울에어쇼는 GDP 2만달러시대 밑거름/최명상 서울에어쇼 공동본부장·전 공군대학 총장

    지난주 서울공항에서 개최된 ‘서울국제에어쇼 2005’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다. 금년 6월 파리 에어쇼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초의 2층 여객기 A-380을 자랑했다. 또 8월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전략폭격기 Tu-160을 탑승했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연간 95조원의 거대한 세계 항공산업 시장에서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홍보 전략이다. 각국 정상들이 국익을 위해 에어쇼 전시장에 직접 나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 대통령도 서울에어쇼를 축하하고 초음속 훈련기 T-50 시뮬레이터를 시승했다. 대단한 홍보효과가 기대된다. 국제 비즈니스적인 ‘서울국제에어쇼’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1909년 시작된 프랑스 파리에어쇼나 1932년 개최한 영국 판버러에어쇼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다.1986년 시작한 싱가포르 에어쇼에 비교해도 절반의 역사다. 하지만 공군과 서울에어쇼공동운영본부의 노력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에어쇼보다 나은 동북아 최고의 에어쇼로 성장했다. ‘서울국제에어쇼’의 목적은 첫째, 대한민국의 위상제고 및 국가이익 창출에 있다. 전 세계 20여개 에어쇼가 2년 간격으로 경쟁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그때마다 많은 세계 귀빈들이 참가하는 국제적 행사다. 이번에 국방장관급이 8개국, 총장급이 27개국 참가했다. 우리의 국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둘째, 선진산업체와 기술교류를 통한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에 있다. 세계 일류 항공우주기술과 제품이 소개되고 첨단무기체계 세미나가 개최됐다.24개국에서 225개 업체가 참가했다. 셋째, 막강 공군력의 위용과시 및 군사외교 강화이다. 최신예 전투기와 최고 기량의 조종사를 보유한 한국공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국방태세의 확고함을 보여준다. 공군이 보유할 T-50과 F-15K가 시범비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선보였다. 외국 군사지도자들과 협력을 강화했다. 넷째, 우리 항공우주 및 방산제품의 수출기회 제공이다. 우리는 세계 12번째로 초음속 항공기 T-50을 개발 생산했다. 이미 KT-1 훈련기를 수출했다.K-9자주포와 차기보병장갑차 등도 있다. 참가전시 업체간 상담은 물론 해외 귀빈들 거의가 국방정책의 결정권자들이기 때문에 한국 방산제품에 대한 수출의 좋은 기회로 활용됐다. 행사기간 중 한국과 공동개발, 합작 등의 계약이 11억 2000여만달러어치가 이루어졌다. 또 참가자들에 의한 경제적 이익도 적지 않다. 다섯째,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항공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부여하는 데 있다. 한국항공우주소년단이 창단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끝으로, 국민화합 축제의 장 마련이다. 드높은 가을하늘 아래 항공기들의 멋진 묘기와 곡예비행에 무려 20여만명이 탄성과 신바람을 함께했다. 이렇게 ‘서울국제에어쇼’는 일반 전시회와는 다른 특징과 중요성을 갖고 있는 국제적 행사다. 우리는 자동차를 수출하여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열었다. 이제 2만달러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와 파급효과가 가장 높은 항공우주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국위선양과 국익창출을 위해 ‘서울국제에어쇼’가 일익을 선도할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에어쇼 경쟁이 치열하다. 주최측은 2020년에는 파리와 판버러에어쇼에 이은 세계3대 에어쇼가 되기 위한 ‘서울에어쇼 비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상설전시장이 없어 불리한 조건이다. 노 대통령의 참석을 계기로 전시관 건립과 대폭적 예산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서울국제에어쇼 2005’의 성공적인 개최에 참여와 성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최명상 서울에어쇼 공동본부장·전 공군대학 총장
  • 梧里 이원익 13대 종손 충현박물관 이승규·함금자 부부

    梧里 이원익 13대 종손 충현박물관 이승규·함금자 부부

    “저희 부부가 사재를 헌납하고, 땀을 쏟아 부은 이 박물관이 청백리로 한 시대를 살았던 오리(梧里)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로 알고 기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충현박물관(관장 함금자·65)이 ‘영정 보물지정 기념 이원익전’(11월14일까지)을 열어 눈길을 모았다. 우리에게 청백리 ‘오리 대감’으로 더 잘 알려진 문충공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격동기에 선조 등 3명의 임금을 섬긴 명신(名臣)으로 청렴함과 바른 처신으로 당대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 이번 전시회는 문화재청이 최근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4점의 오리 영정 중 ‘호성공신도상(扈聖功臣圖像)’을 보물1435호로 지정한 것을 기념해 열렸다.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간호대 동창회장도 맡고 있는 함금자 관장과, 오리의 13대 종손으로 이 박물관 관리법인인 충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편 이승규(65·전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교수)씨는 사실 박물관과는 거리가 먼 의료인 부부. 이들은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박물관을 연 것을 두고 “선조의 뜻을 너무 늦게 받들게 됐다.”며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실은 종중 내에서 재산 분쟁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6년을 끌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분의 유서 등 자료를 통해 정말 자랑스러운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집안에서 전해지는 영정과 종가 유물 등 자료를 다시 추려 정리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이 과정에서 이들 부부는 50억원에 이르는 사재를 박물관 건립에 쏟아부었다. 광명시 소하동 1085-16 박물관 부지는 오리가 노후에 관직을 떠나 타계할 때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이곳의 관감당(觀感堂)은 그의 공덕을 기려 인조가 하사한 당옥이다. 박물관의 이름 ‘충현´은 숙종 2년 오리의 학덕을 기려 건립된 사액서원인 충현서원에서 따왔다. 모두 90여평의 전시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오리 영정 외에 3점의 영정이 더 있으며, 이밖에 오리 묘와 신도비, 종택과 충현서원지, 영정을 봉안한 영우와 관감당 등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이곳에 전시된 600여점의 종가 유물도 조선조 반가의 생활상을 전해 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들. 함 관장은 “지금 생각해도 가계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더라면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부부는 이 자료들을 모아 지난 95년에 119쪽 분량의 컬러판 ‘오리 이원익 유적유물집’을 펴냈으며, 이황, 이덕형, 송시열은 물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섰다가 순절한 윤탁, 허적 등과 나눈 서간문을 따로 모아 엮은 ‘간찰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이들 유물 중에서도 유독 오리가 남긴 유언서에 큰 애착을 느낀다.“재산 분쟁 과정에서 유언서에 기록된 그분의 유지가 없었다면 이 박물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이사장은 “현행 세금 관련 법규정이 재단에 출연조차도 어렵게 한다.”며 “목적사업을 위한 재산 출연에 대해서는 법인세 등을 감면해주는 전향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명문 종갓집 맏며느리 30명 한자리에 모인다

    명문 종가의 맏며느리들이 전북 전주시에 모인다. 사단법인 전북향토문화연구회는 우리의 전통문화인 충(忠)·효(孝)·예(禮)의 사상을 진작시키기 위해 오는 29∼30일 전주에서 ‘명가 종부들의 전주 나들이 초청’ 행사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날 모임에는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의병장 유인석, 조선 중기 학자 김집,3·1운동 민족대표 박준승, 독립운동가 백관수, 한글학자 정인승씨 등 나라를 위해 앞장선 위인들을 키워 낸 명문 종갓집 맏며느리 3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50∼80대로 우리 나라 명가(名家)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몸 바쳐 온 종부들이다. 종갓집 맏며느리들은 오는 29일 전주 리베라호텔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한 뒤 경기전(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곳)과 한옥마을, 풍남문, 조경단, 전북지역 독립운동추념탑 등 전주시내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다.30일에는 남원 만인의총과 광한루, 장수 논개 생가 등을 둘러본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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