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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의병진압 잔혹사 낱낱이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이하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 등 의병으로 나선 백성들은 조약의 폐기와 친일내각 타도를 외치며 일본에 맞선다. 부패한 관료들과 싸움을 벌이다 고종의 퇴위와 군대해산 등 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할 즈음 아예 일본군과의 의병전쟁으로 확산된다. 그러자 일본은 총 1291명으로 꾸려진 본토의 정예부대인 일본군 보병 14연대를 한국으로 파견한다. 이후 2년 동안 항일 의병을 잔혹하게 진압한다. 한국토지공사 산하 토지박물관은 11일 치열하게 의병활동이 전개되던 1907년 7월~1909년 6월 일제가 벌인 항일의병 진압작전의 기록지인 ‘진중일지’(陣中日誌)를 입수, 공개했다. 박물관 측에서 자체 분석하고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 감정을 거친 결과 일본군 보병 12여단 산하 14연대가 한국에서 ‘적도토벌’(賊徒討伐·의병진압 일지의 원래 표기)을 벌인 작전 일지임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일본군의 작전 기록지로는 독립기념관 등에 동일한 표제(진중일지)의 자료가 있긴 하지만 한 권짜리이거나 광복시점에 가까운 종군위안부 관련 후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진중일지는 모두 14책 2400여쪽으로 이뤄져 있으며 진압작전 지도 50여점이 포함됐다. 의병운동의 활동 상황과 함께 일제의 진압작전 내용 등이 몇시 몇분 단위까지 적힐 정도로 상세하고 방대하게 적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 14연대는 1907년 7월25일 일본 모지(門司)항을 출발한 뒤 부산항에 도착, 처음에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예하 중대를 전국 각지에 파견해 의병 진압 활동을 벌이는 한편 현지 약도, 물자, 교통, 위생, 토착민의 정태 등을 기록으로 만들어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문경과 대구 등으로 본부를 옮기며 개성, 서울, 인천, 공주, 대전, 청주, 군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진압 활동을 벌였다. 1907년 9월15일 문경 근처 전투 보고에서는 ‘적의 수괴’ 이강년(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대승사로 쫓겼다가 적성 방향으로 퇴각했다고 적은 뒤, ‘전투 후 의병이 점령하고 있는 해당 촌락을 소각했다.’는 내용과 ‘대승사가 의병의 소굴이어서 불태워 버리려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이강년 외에도 하동에서 의병 활동을 했던 임봉구(건국훈장 애국장) 등의 이름이 보인다. 특히 의병 3도 도원수 윤영수와 지리산 의병대장인 박동의 등 현재 독립유공에 추서되지 않은 사람의 이름과 나이, 본적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김상기(충남대 교수) 소장은 “이 무렵 의병 진압작전에 대한 일본측 자료가 일부 공개되긴 했지만, 이 진중일지는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기록이며, 아울러 독립유공자 등록을 위한 공훈자료로도 활용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30] 직장인들이 말하는 아부의 기술

    [2030] 직장인들이 말하는 아부의 기술

    “아이 선배님~ 선배님 없으면 제가 어떻게 살았겠어요~.”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선후배 사이의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그린 한 방송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다. 그 중에서도 후배에겐 윽박지르고 선배에겐 아양떠는 캐릭터가 폭소를 자아낸다.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다.”며 온갖 아부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마치 ‘아부의 기술’이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하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자아낸다. 2030들이 생각하는 ‘아부의 기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아부의 현실과 한계는 무엇인지 들어 봤다. 아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을 터. 단지 “사회생활을 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2030세대들은 ‘회사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사와의 인간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아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복지 업무를 3년째 맡아 하고 있는 강모(28)씨는 ‘앓는 소리’의 귀재다. 민원인들과 하루종일 씨름을 하고 나면 선배들에게 달려가 하소연하는 것이 강씨의 하루 일과다. 동사무소에 있다 보면 가끔 난감한 민원인을 만날 때가 있다. 술 마시고 매일 같이 동사무소에 찾아와 “이번 달 보조금이 5만원이나 빈다.”며 강씨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할아버지도 있고, 5분마다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인감을 떼어 와라, 몸이 아파 꼼짝도 못하겠으니 밥을 시켜 달라.’며 괴롭히는 할머니도 있다. 이런 민원인들을 오랫동안 숙련되게 다뤄온 선배들의 노하우를 얻는 것이 강씨에겐 꼭 필요한 일이다. 노하우를 얻기 위해 강씨가 쓰는 방법은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는 것. “선배들이 딱하다며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뒤 ‘난감한 민원인을 훌륭하게 처리해온’ 선배들을 치켜 세우죠. 그럼 선배들은 제게 노하우를 털어 놓기 시작해요.”라고 강씨는 말했다. 선배들은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민원인 치다꺼리를 하면서 고생해도 열심히 하면 시청으로 발령날 수도 있고 승진도 바라볼 수 있다.”며 진심어린 충고도 잊지 않는다. 강씨는 “아부가 목적인 아부는 의미가 없어요. 아부를 통해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직장생활 노하우를 얻는 게 더 현명하죠.”라고 말했다. 효과 만점 ‘아부의 기술”에 대해 많은 2030들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놓고 아부를 하는 것과 은근슬쩍 아부를 하는 것을 놓고 어떤 방법이 더 효과가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보였다. 해운회사 늦깎이 신입사원인 임모(31)씨는 ‘정공법’을 선택한 케이스다.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회사내의 귀염둥이가 되는 것. 이런 방법으로 임씨는 입사 반년 만에 상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임씨가 말하는 비결은 “선배들이 시키면 무조건 하고 능력을 120% 발휘하면 된다.”는 것. 임씨는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동기 30여명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다. 뛰어난 언변과 유머감각으로 과제수행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주무기는 뒤풀이 때 빛을 발했다. 술은 주는 대로 마셨고 노래는 트로트부터 랩까지 소화하면서 코믹 댄스까지 곁들였다. 과장, 부장은 물론 이사급 이상 임원진도 임씨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임씨는 첫주부터 거래처 고객의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매주 두차례 이상 같은 부서의 김모 과장을 따라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 실력을 선보였다. 분위기 메이커인 임씨를 ‘영업에 최대한 활용하라.’는 임원진의 주문이 있었다면서 김 과장은 임씨에게 미안해 했다. 물론 매번 과음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과격하게 몸을 흔들고 난 뒤 온 몸이 쑤시는 아픔도 있다. 그러나 임씨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게 제 능력이죠. 그 능력으로 상사들에게 인정받는다면 회사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기쁨조가 되어서 상사를 즐겁게 하는 게 아부의 정공법”이라고 정의내렸다. 올해 초부터 서울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김모(26)씨는 요즘 ‘포인트 아부’에 대해 배우고 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선배 교사 A씨에게서다. 김씨는 A씨에게 업무처리법부터 시작해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의 성향까지 크고 작은 정보를 얻어 왔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김씨는 A씨의 업무처리 능력과 대인관계 조절능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당연히 A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지내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A씨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김씨는 ‘놀라운 비밀’ 한 가지를 듣게 됐다. “내가 학교 생활 잘 하는 비결 하나 가르쳐 줄까?”라며 A씨는 자신의 ‘처세술’ 강의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윗사람에게 잘 아부하는 방법’이었다. “드러내 놓고 아부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어요. 가장 최고급 아부는 하는 듯 안하는 듯 은은하게 하는 거야.”라고 설명하는 A씨의 ‘아부 병기’는 ‘포인트 아부’였다. 우선 아부가 잘 먹힐 만한 상사를 몇 사람 정해 놓는다. 대학 선배라든가 고향 선배, 혹은 지인의 지인 등등이 좋은 예다. 그런 뒤 정말로 ‘응원의 한 마디’가 필요한 시점에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지나간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내놓은 의견이 교무회의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 회의 직후 “그 아이디어 좋았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라며 심정적 지지를 하는 식이다. 어려울 때 지원을 받은 상사들은 A씨를 잊지 않고 꼭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A씨의 얘기를 들으며 “아부 고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은행원 박모(28)씨도 ‘은은한 아부’의 예찬자다. 박씨는 “아부 덕분에 5년 전 군생활을 편하게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부의 달인’이었는데, 박씨가 세운 아부의 두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원칙은 ‘남에게 들은 말을 활용해 아부하라.’는 것. 다른 사람이 칭찬한 것을 전해 주는 식으로 선임병에게 아부하라는 원칙이었다. 예컨대 부대의 한 장교가 ”김 병장이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등병이었던 박씨는 “아무개 장교가 김 병장님이 너무 성실해 일을 맡기는 게 가장 미더운 사병이라고 하더라.”라고 전하는 식이었다. 남의 의견을 포장해 전하면 자신의 의견인 양 말할 때보다 아부의 효력이 배가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두 번째 원칙은 ‘구체적으로 하라.’였다. “많은 후배들이 든든한 김 병장님을 믿고 따른다.”고 추상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김 병장님은 아침저녁 내무반 쓰레기통을 손수 비우실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모범을 보여 후배들이 믿고 따른다.”며 콕 집어 아부하는 것이다. 박씨는 “아부의 다른 말은 칭찬”이라면서 “적절한 아부 덕분에 내가 실수를 해도 선임들이 크게 혼내지 않고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나친 아부는 자신을 해친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또 지나친 아부는 ‘역효과’를 불러와 왕따를 자초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2년차 직장인인 심모(29)씨는 요즘 자괴감에 빠져 있다. “나도 닳고 닳은 사람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공대를 나온 심씨는 대학 때만 해도 ‘아부’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남자들이 많은 공대의 특성상 ‘아부’는 그저 ‘낯 간지러운 소리’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심씨가 본격적으로 ‘아부’를 배운 곳은 군대였다. 행정병으로 일한 심씨는 사무실에서 난무하는 은근한 아부를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선임병 치켜 세우기는 기본이고 초코파이를 건네는 등 물량 공세도 서슴없이 진행됐다. 군대에서 아부의 ‘기본기’를 익혔다면, 회사에서는 ‘응용편’을 써야 했다.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심씨는 ‘라인’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아부를 서슴지 않는 동료와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심씨가 보기엔 기발하지도 않은 상사의 아이디어에 “그것 괜찮겠네요.”라고 공치사를 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추진력’이 붙었다. 이제 “팀장님 요새 아이디어가 샘솟으시나 봅니다.” 같이 낯뜨거운 말도 익숙해졌다. 심씨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아부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속마음과 다른 말을 일상적으로 하려니 스트레스가 밀려 온다.”며 씁쓸해 했다. 2년차 회사원인 김모(27)씨는 지나친 아부로 역풍을 맞은 케이스. 김씨는 요즘 점심을 혼자 먹는 ‘대굴욕’을 감당하고 있다. 2개월 전 새로 부임해온 팀장에게 지나치게 아부를 했다가 주위 동료들의 견제를 당한 것. “처음에는 팀장님 몰래 책상에 꽃을 갖다 놓거나, 음료수를 살짝 놓거나 하는 방법으로 관심을 끌려 했어요. 그러다가 팀장님 집이 저희 집과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고 아침에 제 차로 모시러 가겠다고 팀장님께 귀띔을 드렸어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눈도장을 열심히 찍었죠.” 문제는 김씨가 팀장과 함께 출근을 하는 사실이 일주일 만에 들통난 것. 동료들은 “김씨가 너무 튀려 한다.”며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야 말았다. 김민희 유대근 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 [모닝 브리핑] 제2연평해전 부상자 2명 국가유공자 인정

    지난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전·사상자 가운데 2명이 추가로 국가유공자가 됐다. 국가보훈처는 4일 “참수리 357호의 병기병과 기관병으로서, 북한 함정과 전투를 벌인 고경락(28·당시 병장)·김면주(29·당시 상병)씨가 ‘전상군경 7급’ 판정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고 밝혔다. 당시 전·사상자 가운데 국가유공자 심사 대상은 전사자 6명, 전상자 7명, 상이등급 미달자 5명 등 모두 18명이다. 이 가운데 고씨 등을 포함, 15명이 유공자로 인정 받았다. 고씨와 김씨는 그동안 환청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서는 우리 쪽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김익권 장군의 자서전 /이기웅 열화당 대표·파주출판도시 이사장

    [열린세상] 김익권 장군의 자서전 /이기웅 열화당 대표·파주출판도시 이사장

    나는 지금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이 글을 쓴다. 에스토니아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탈린에서 이번 여행의 동반자인 나의 아들과 함께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 앞을 지나 ‘긴 다리 거리’를 걸어 시청광장에서 잠시 쉬다가 유서 깊은 ‘비루 거리’의 풍광을 만끽하면서, 그 거리에 자리한 아폴로서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에스토니아의 역사, 종족, 언어와 예술에 관한 책들을 한보따리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책이란 무엇인가. 땅의 반영이고, 인간의 반영이고, 역사의 반영 아닌가. 오늘 내가 관심 둔 책 모두를 훑어보니, 에스토니아와 탈린의 모든 반영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책들을 쌓아 놓고 한 권씩 훑어 읽으면서 그 나라 역사의 울림을 가슴에 담아내며 밤을 지새웠다. 가장 큰 울림은, 우리글이 창제되고 ‘훈민정음 해례’를 비롯한 한글 책들이 출판될 즈음에 이 나라에서도 에스토니아의 언어로 최초의 출판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우리의 세종 임금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던 말의 형체를 모으고 가다듬어 올바른 글자를 갖추는 혁명적 일을 해내었던 것이다. 바로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리적 숙명과 역사의 사실들을 중심으로 발틱의 이 작은 나라와 분단된 우리나라의 운명을 비교해 보면서 이 모든 기록들이 어쩌면 이렇듯 교훈적일까 싶었다. 역사의 교훈은 제것에서만 찾을 일이 아니었다. 이 지구상의 다양한 민족이 겪었고, 하고 많은 인간들 개개인이 겪어 냈던 증거들에서 찾아내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 큰 숙제 하나를 안고 길을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뜨는 순간부터 에스토니아에 이르기까지 틈틈이 김익권(金益權)이라는, 이제는 고인이 된 한 장군의 자서전 원고를 읽으면서 출간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분과 무언의 약속처럼 느껴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스물세 살의 내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장군이 사단장으로 있던 중부전선의 한 부대에 배속되면서 그분을 만났다. 사단 연병장엔 사단에 배속된 장교 100여명이 사단장에게 신고하기 위해 도열해 섰다. 콧수염에 강인한 인상의 김 장군이 간결하면서도 차가운 음성으로 준 교훈의 말씀은 세월을 넘어 지금의 내 가슴에 각인돼 있다. “오늘부터 제관(諸官)들은 병사의 아버지이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분의 말씀엔 그러나 따뜻하고 온유한 철학과 아버지 같은 인자함이 배어 있음을 지금 크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와의 첫 대면 이후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그런 인연이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 철이 들어 가면서부터였다. 그 무렵 나의 내부로부터 일어나던 ‘젊은 생각’은 우리나라 현실의 불합리성과 충돌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나의 이십대를 키웠다. 1960년대의 한국은 내 고통이었으나, 자양(滋養)이 되기도 했다. 김 장군의 자서전 원고는 내겐 큰 감동이다. 왜냐면 1960년대 그 삭막하고 가난했던 나라에서 우연히 만난 그가 내 아버지였음이, 그가 기록한 자서전 문맥의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농가(篤農家)의 아들이었고, 참된 가정교육을 받았다. ‘말’과 ‘글’, ‘문자’의 존귀함을 철저히 배웠다. 책으로써 공부하고 인격을 닦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고전(古典)으로써 오늘의 삶을 살았다. 그런 바탕으로 그는 참군인이 되었고, 장군이 되었다. 일제 때 학병으로 중국에 강제 종군했다가 해방을 맞았다. 서울대 법대 1회 졸업생이었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육군 소령으로 내내 치열했던 전장에 있었다.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의 그의 역사는 현대사 바로 그것이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기획하고 있는 ‘영혼의 도서관’은 자서전으로 채워질 도서관이다. 장군의 자서전 만드는 일이 마치 ‘영혼의 도서관’의 첫 작업으로서 계시를 받은 듯 느껴진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파주출판도시 이사장
  • [CEO 칼럼] 물의 생명력/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CEO 칼럼] 물의 생명력/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물은 맛도 없고, 빛깔도 없으며, 향기도 없다. 그러나 물은 생명을 낳는 어머니이고, 물 없이는 모든 형태의 목숨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수행하는 우주탐사에서도 물의 흔적을 찾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이다. 물의 흔적을 찾았다는 것은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확증이기 때문이다. 인체의 상당부분은 물로 구성돼 있고 어릴 때일수록 수분의 함량은 더 크다. 어른이 될수록 그 함량이 줄어드는데, 우리는 이를 노화현상이라 부른다. 인체에서 물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생명을 마감한다. 따라서 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물로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많은 교훈도 얻는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는 강가에서 물을 보고 사색하며 득도의 경지에 오르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 그렇다. 그는 물에서 배우려 하였다.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였다. 이 물과 물의 비밀을 이해하는 자는 다른 모든 비밀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강의 많은 비밀 중에서 그는 오늘 단 하나, 그의 영혼을 붙잡는 단 하나의 비밀을 보았다…. 이 물은 흐르고 흘러 영원히 흐르고 있으나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것을, 항상 그곳에 어느 때나 같은 물이나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라는 것을….” 싯다르타는 물의 흐름을 보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물은 순환한다. 물은 증발해 구름을 만들고 생명을 키우는 비의 형태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노자는 물의 이런 순환과정에서 우주만물은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밤이든 낮이든 물은 결코 쉬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면 비와 이슬을 만들고 아래로 내려와 흐를 때면 시내와 강물을 이룬다. 물은 선을 표상한다. 막으면 그대로 멈추고, 길이 만들어지면 그 길을 따라 흐른다. 따라서 싸우지 않는다.” 노자는 삶의 방식으로 물의 존재양식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물처럼 행동함이 필요하다. 방해물이 없으면 물은 흐른다. 둑이 있으면 물은 머무른다. 둑을 치우면 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물은 그릇 생긴 대로 따른다. 이와 같은 성질이 있기 때문에 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물을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한다. 교회 의식에서도 물로 세례를 주고 성수를 적셔 성호를 긋는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의 무병장수와 성공을 기원했다. 물은 또한 파괴와 응징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대홍수로 깨끗이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든다는 구약의 이야기는 물의 이런 파괴적 변혁을 의미한다. 물은 우리에게 심오한 철학을 선사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어떻게 물을 잘 이용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지속성 유지가 결정된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가뭄이 계속 이어져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올여름에는 오히려 장마철 집중호우로 지역에 따라 많은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겨울 극심한 가뭄 속에서 물 사용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해주고, 수원(水源)을 관리해왔다. 올여름에도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24시간 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물에 대한 가치관은 고전을 통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강조돼왔다. 하지만 물에 잘 대처하고 나아가 물을 잘 관리해서 우리 삶의 미래를 담보해 나가야 한다는 대전제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 [영역별 지상강의-수능의 맥] 언어, 수리 (가)·(나) 3회

    [영역별 지상강의-수능의 맥] 언어, 수리 (가)·(나) 3회

    ■ 언어-전체 흐름 파악 뒤 문제 정보 찾아야 제시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눈에 띄는 단어 몇 개를 가지고 문제를 풀려고 하다보면 오답을 고르기 쉽다. 수능 출제자는 그렇게 단순한 사고의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 수능은 글 전체의 흐름을 살피고, 제시문에서 필요한 부분의 정보를 찾아야 한다.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2007대비 9월 평가원 모의평가 인문] 한국사 연구에서 임진왜란만큼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연구 주제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다. 즉, 온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만 제시되면서, 그 이면의 다양한 실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의병의 봉기 원인은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종래에는 의병이 봉기한 이유를 주로 유교 이념에서 비롯된 ‘임금에 대한 충성’의 측면에서 해석해 왔다. ⓐ실제로 의병들을 모으기 위해 의병장이 띄운 격문(檄文)1)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해석이 일면 타당하다. 의병장은 거의가 전직 관료나 유생 등 유교 이념을 깊이 체득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킨 동기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일반 백성들이 의병에 가담한 동기를 설명하는 데에는 충분치 못하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느닷없이 임진왜란을 당했던 데다가, ⓑ전쟁 중에 보였던 조정의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당시 조선 왕조에 대한 민심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이 오로지 임금에 충성하기 위해서 의병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금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득한 한자투성이 격문의 내용을 백성들이 얼마나 읽고 이해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의병의 주축을 이룬 백성들의 참여 동기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의병들은 서로가 혈연(血緣) 혹은 지연(地緣)에 의해 연결된 사이였다. 따라서 그들은 지켜야 할 공동의 대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결속력도 높았다. 그 대상은 멀리 있는 임금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가족이었으며,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었다. 백성들이 관군에 들어가는 것을 기피하고 의병에 참여했던 까닭도, 조정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관군과는 달리 의병은 비교적 지역 방위에만 충실하였던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의병을 제외하고는 의병의 활동 범위가 고을 단위를 넘어서지 않았으며, 의병들 사이의 연합 작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병장의 참여 동기도 단순히 ‘임금에 대한 충성’이라는 명분적인 측면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의병장들은 대체로 각 지역에서 사회ㆍ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갖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그러한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병장들이 지역적 기반을 계속 유지하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유교적 명분론과 결합하면서 의병을 일으키는 동기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한편 관군의 잇단 패배로 의병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된 ⓓ조정에서는 의병장에게 관직을 부여함으로써 의병의 적극적인 봉기를 유도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관료가 되어야 양반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관직 임명은 의병장들에게 큰 매력이 되었다. [문제] ⓐ~ⓓ 중, <보기>의 역사 자료 ㄱ과 ㄴ을 그 근거로 제시하기에 적절한 것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은? ㄱ. 왜적이 대동강변에 나타나자 조정의 대신들은 피란을 떠나기 위해 먼저 평양성을 나섰다. 이에 성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칼을 빼어 들고 그 길을 막으면서 크게 꾸짖어 말하였다. “너희들은 평소에 나라의 녹봉만 훔쳐 먹다가 이제 와서는 나랏일을 그르치고 백성들을 속임이 이와 같으냐?” ㄴ. “진실로 기운을 내고 떨쳐 일어나, 우리 조상 임금님들께서 남기신 은덕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창고에 가득한 물건과 벼슬자리를 나는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는 아름다운 칭송이 있을 것이고, 자손에게까지 은택이 흘러 전해질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으랴!” ①ⓐ - ⓑ ② ⓑ - ⓐ ③ ⓑ - ⓓ ④ⓒ - ⓐ ⑤ ⓒ - ⓓ [풀이]기존 연구자들은 의병의 봉기 원인을 유교 이념에서 비롯된 ‘임금에 대한 충성’의 측면에서 찾았으나, 글쓴이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며, 유교적 충의 이념에 따른 봉기에 앞서 혈연과 지연으로 묶인 지역으로서 마을을 지키기 위한 마음과 노력이 의병 봉기의 직접 원인이라고 보았다. 즉, 의병의 입장에서는 가족과 마을의 수호를, 의병장의 입장에서는 지역적 기반을 계속 유지하려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의병 봉기의 직접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당수의 수험생들은 ②번을 정답으로 골랐다. 그러나 정답은 ③번이다. <보기>의 ㄱ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에 왜적이 침입하자 조정 대신들이 앞다투어 피란을 떠나는 행태에 대해 백성들이 꾸짖는 내용이다. 이것은 전쟁 중에 보였던 조정의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당시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민심이 형성된 근거로 제시하기에 적절하다.(ⓑ) <보기>의 ㄴ은 ‘우리 조상 임금님들’이나 ‘벼슬자리를 나는 아끼지 않을 것이다.’, ‘자손에게까지 은택이 흘러 전해질 것이니’ 등의 내용으로 보아, 조정에서 의병장에게 관직을 부여함으로써 의병의 적극적인 봉기를 유도한 근거 자료로 적절하다. (ⓓ) [함정에 빠진 이유] ㄱ은 왜적이 대동강변에 나타나자 조정의 대신들이 피란을 떠나기 위해 평양성을 나섰고, 이에 성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칼을 빼어 들고 그들을 꾸짖어 말하는 내용으로, 이를 전쟁 중에 보였던 조정의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당시 조선 왕조에 대한 민심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는 내용의 ⓑ를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ㄴ에서는 진실로 기운을 내고 일어나 조상 임금님들께서 남기신 은덕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창고에 가득한 물건과 벼슬자리를 나는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조정에서 의병장에게 관직을 부여함으로써 의병의 적극적인 봉기를 유도한다는 ⓓ에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31%나 되는 학생들이 ㄴ의 내용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아~ 이건 ⓐ에서처럼 의병들을 모으기 위해 의병장이 띄운 격문의 내용이겠구나.’라고 성급하게 판단하여서 ㄴ을 ⓐ와 연결하고 ②를 답으로 선택하는 함정에 빠졌다.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 강사 ■ 수리(가)-그래프 시각적인 분석을 [출제 유형 분석] 수학 2 미분은 매년 2문제 출제되고 있으며, 진위판정형 문제, 계산 문제로 출제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분 단원에서는 그림으로 주어진 함수의 미분가능성 판정, 극점, 방정식의 실근 개수, 부등식 등 미분 전체의 소단원별 주제들이 융합되어 참 거짓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009년 수능에서는 극한과 미분이 통합 출제되었습니다. [대비 전략] 다항함수의 참거짓을 밝히는 유형은 최근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수식과 그래프를 통합하여 시각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함수의 미분가능성, 극대 극소, 방정식 실근의 존재와 개수 여부, 부등식 등은 도함수와 그래프의 개형을 이용하여 접근하는 미분의 대표적인 주제들입니다. 또한 절대값, 함수의 대칭성(우함수 기함수)을 이용한 함수들이 자주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 두어야 합니다. 다음 공식은 기억합시다. ■ 수리(나)-증명·반례로 참거짓 구분 [출제 유형 분석] 행렬 단원은 매년 가형에서는 2문제, 나형에서는 4문제가 출제되고 있습니다. 2009년 수능에서 출제된 문제유형을 분석해 보면, 가형에서는 단순 계산 문제 하나, 새롭게 정의된 행렬 집합의 대수적 성질에 관련된 진위판정형 문제가 있었고, 나형에서는 성분합, 거듭제곱과 역행렬에 관련된 문제 두 개가 추가로 출제되었습니다. [대비 전략] 위와 같은 유형을 행렬집합의 대수적 성질을 묻는 진위판정형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주로 행렬의 집합을 정의한 후 이 집합이 어떤 연산에 대해 닫혀있는지 혹은 역원(역행렬)이 존재하는지, 혹은 연산의 결과 어떤 성질이 있는지 등을 묻는 문제입니다. 특히 역행렬의 존재여부, 행렬 곱의 교환가능성, 행렬의 거듭제곱, 영인자의 특징에 관련된 참거짓 문제는 여전히 출제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중 다음 공식들은 다시 한 번 정리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권혁민 종로학원 수리 강사
  • “정부, 베트남전 납북포로 총살 알고도 33년동안 월북자로 분류”

    국방부가 베트남전 실종자인 안학수 하사를 지난달 ‘납북 국군포로 추정자’로 공식 인정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1976년 안 하사가 북한에서 총살됐다는 유력 증언을 확보하고도 33년 동안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월북자로 분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21일 “지난달 열린 제90차 국군포로대책위원회에서 안 하사를 북한에 끌려간 국군포로 추정자로 공식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안 하사를 계기로 미귀환 베트남전 국군포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변경한 전향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인정한 베트남전 국군포로 추정자는 안 하사가 유일하다. 역시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김인식 대위, 정준택 하사, 박성열 병장 등 3명은 구체적 물증이 없어 병적기록상 탈영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방부는 박 병장은 북한방송에 출연한 사실을 파악했고 김 대위는 북한에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 하사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상태이다. 안 하사의 동생 안용수씨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령부가 형이 1975년 12월쯤 북한을 탈출하다 붙잡혀 총살됐다고 기록한 문서를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명예회복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북한을 탈출하려던 형이 사망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탈영·월북자’로 기록된 병적기록을 수정하지 않아 가족들도 남파간첩 접선 대상자로 분류돼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에는 1976년 남파했다 자수한 간첩 김용규씨의 진술 내용이 들어 있다. 안 하사가 북·중 국경선에서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됐고 ‘간첩죄’로 총살형을 당했다는 진술이다. 정부는 안 하사의 유족들이 2000년부터 제기한 민원에 지난해 11월에야 합동조사단을 베트남에 파견, 현지 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단은 안 하사가 강압적으로 납북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하사는 1964년 9월 입대, 베트남 붕따우 외과병원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1966년 9월9일 사이공에서 실종됐다. 국방부는 안 하사가 이듬해 3월 북한 평양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자 월북자로 분류했다. 안 하사는 지난 4월 통일부 심의에서 납북자로 결정됐고 5월에는 ‘탈영·월북자’에서 ‘납북자’로 병적기록이 정정됐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군인 2명 신종플루 확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외국인 관광객 안내를 담당하는 병사 1명과 육군 모 부대 소속 병사 1명 등 군인 2명이 신종인플루엔자(인플루엔자A/H1N1) 감염자로 확진됐다. 군 검역요원으로 인천공항에 파견나갔던 병사 3명 이후 두번째 군 감염 사례다. 16일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JSA 대대에서 근무하던 A상병과 휴가 중이던 육군 모부대 B병장이 신종플루 환자로 판명돼 국군수도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A상병은 판문점 안보견학자에 대한 안내 및 경호 업무를 담당하는 병사로, 지난 10일 오전부터 발열,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나 정밀진단을 받고 16일 확진판정됐다. 한미연합사는 A상병이 증상을 호소한 이후인 11일부터 18일까지 JSA투어를 잠정중단했다. B병장은 정기휴가 중이던 이달 초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국제 선교대회에 참가한 뒤 11일부터 기침 등의 감기증상을 보여 보건소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감염자로 확인됐다. 한편 이날 경기도 부천초등학교의 신종플루 감염자 5명 등 총 28명의 감염자가 추가돼 국내 누적 감염자 수는 635명이 됐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기고] 리더가 갖춰야 할 4대 조건/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

    [기고] 리더가 갖춰야 할 4대 조건/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

    세상을 살다 보면 실체적 진실이나 정의, 대의에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지기 전에 소아적 사고에 젖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실례로 서울을 다녀온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서울역에 내려 남대문을 구경한 시골 노인이 남대문은 북쪽에 있더라고 자랑하자, ‘남대문은 남쪽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북쪽에 있을 수 있느냐.’며 우겨대더란다. 서울 구경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 옳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리더가 겪는 일들도 이와 유사하다. 리더는 때때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땅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경우를 겪게 된다. 이때 리더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우물쭈물 망설이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곧잘 대세를 그르치고 만다. 그래서 세상은 보다 현명한 리더를 원하고 그를 통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훌륭한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나름의 생각을 기초로 ‘리더의 4대 조건’을 소개한다. 첫째,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이다. 프랑스의 작은 섬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한 배경에는 그의 강력한 포병부대가 있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바로 나폴레옹 그 자신이 포병장교 출신이었고, 초급장교 시절부터 겪은 풍부한 경험과 포병이론에 철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이디어와 추진력이다. ‘세종실록’을 보면 주변에 인재가 풍부했음에도 세종은 그 스스로 훈민정음을 고안하는 아이디어맨이었으며, 수많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영실과 같은 천민을 중용할 수 있는 추진력을 겸비한 리더였다. 이런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조선왕조 역대 최고의 군주로 칭송받게 된 것이다. 셋째, 인적·물적 네트워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보면 천하를 놓고 초나라의 항우와 겨뤘던 한나라의 유방에게는 항우와 같은 카리스마와 군사적 재략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장량, 한신, 번쾌 등 뛰어난 전략과 재능을 소유한 인재들로 넘쳐났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강한 군사력을 지닌 항우를 쉽게 몰락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넷째, 위기 관리능력과 비전 제시다. 리스크를 최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는 항상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무장해 늘 상존하는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돌아가는 상황을 수시 체크하고 반드시 현장 확인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돼야 할 요소가 있다. 필자가 정립한 완찰 6법의 원리다. 겉으로 보는 표찰(表察), 속을 뚫어보는 통찰(通察), 자세히 살피는 세찰(細察),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보는 역찰(易察),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는 균찰(均察), 시대흐름에 비추어 보는 동찰(動察) 등이 6대 관찰법이다. 또 일의 성공을 위한 에너지인 PCP Power다. 즉 긍정적 사고의 힘(Positive), 창조적 아이디어의 힘(Creative), 목표를 향한 강력한 추진력(Propeller) 등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명명했다. 이러한 요소는 사물과 현상, 일을 대함에 있어서 기본 자세이다. 요즘은 세상이 참으로 시끄럽다. 우리가 가야 하는 목표는 하나다. 국민들이 편하게 잘사는 세상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위정자들은 국민이 바라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노근 서울 노원구청장
  • 조선후기 석축·배수시설 ‘모습’ 백자등 15~20세기 100여점 나와

    조선후기 석축·배수시설 ‘모습’ 백자등 15~20세기 100여점 나와

    서울시 신청사 건립공사 현장은 지난해 동대문운동장 철거 현장과 마찬가지로 과거 우리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유물·유적의 보고(寶庫)였다. 지난달 11일부터 유물 조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곳은 건립부지 1만 2709㎡ 가운데 옛 시청 주차장 터(2231㎡·전체의 18%)였다. 문화재청 발굴단은 이곳부터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옛 시청 주차장서 무더기 발굴 14일 문화재청과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유구(遺構)의 시기는 조선시대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이며 3개의 문화층으로 조사됐다. 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면서 ▲근·현대 유구(건물지) ▲근·현대 유구(입사지정·건물의 기초를 앉히는 자리) ▲조선시대 유구(석축·배수시설)로 나눌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 도기, 기와류, 일본사기 등에 이르기까지 15~20세기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아직 미분류 상태지만 유물 조각까지 합치면 100여점에 이른다. 1912년 지적도와 현 지적도, 발굴 조사지역 현황도를 비교한 결과 하층부에서 보이는 석축과 배수시설은 1912년 지적도에 표시된 도로와 구거(溝渠·인공 수로 또는 그 부지)의 진행 방향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는 도로 양측에 축조되는 구거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4일 신청사지도위원회 의견에 따라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곧 본격적인 유물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역사학 전문가들은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 유구와 유물의 발견은 예견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도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을 때 터파기를 거의 하지 않고 짓는 바람에 서울시청이나 한국은행 등 강점기 때 건물 밑에는 선조들의 유물과 유적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서 “땅을 파고 새 건물을 지을 때 조심스럽게 발굴작업을 마친 뒤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2011년 완공 등 공사에 차질 서울시는 문화재청의 본격 발굴 방침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사 현장 근처가 조선시대 병기제조 관청인 군기시터(서울신문사 자리)여서 15일부터 진행되는 본격 발굴을 통해 희귀 군 병장기를 발굴할 수 있다는 문화재청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발굴지점이 전체 공사면적의 일부(18%)여서 건립공사와 발굴작업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첨단복합문화시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를 건립하는 현장에서도 유구·유적 및 서울성곽 흔적이 발견되자 1년6개월여간 공사를 중단한 전례가 있다. 이어 발굴부지에는 서울성곽(이간수문, 치성)과 조선시대 건물지 유구 44기 및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유물 1000여점을 DDP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 영구 전시하기로 했다. 2011년 서울의 랜드마크 건물로 재탄생할 신청사는 2288억원이 투입돼 지하 5층, 지상 13층, 연면적 9만 7000㎡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한옥 처마지붕의 음영과 곡선미를 뽐낼 신청사는 전체 면적의 30% 이상이 다목적홀 등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진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병장진급 천정명, 팬카페 통해 안부전해

    병장진급 천정명, 팬카페 통해 안부전해

    군복무중인 배우 천정명(29)이 병장진급 소식을 전해왔다. 천정명은 지난 10일 오후 자신의 팬카페 ‘정명사상’에 “7월 1일부로 병장 천정명이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천정명은 “정말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요새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글을 시작한 뒤 “어느덧 중대에서 최고참이 됐다. 돌이켜보면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벌써 내가 병장이 돼서 중대에서 최고참이 되다니. 이제 앞으로 (전역이) 4개월 남았다. 시간이 빨리 지나서 팬 여러분들도 만나고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천정명은 “에너지를 잘 모아 전역해서 멋지게 팬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곧 나갑니다. 필승.”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편 천정명은 지난 2008년 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현재 30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군복무 중이다. 사진제공 = 천정명 팬카페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건더기 없이 멀건 국, 고춧가루를 적게 쓴 탓에 허연 김치와 깍두기, 튀김옷뿐인 튀김 등 질 낮은 ‘짬밥’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떠올리는 안 좋은 기억 가운데 하나다. 그런 군대급식이 달라졌다. 맛과 영양을 고려한 건강식단에 따라 좋은 국내산 재료를 위생적으로 조리해 낸다. 달라진 군대급식 현장에 가봤다. 글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동영상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은 스테인리스 솥과 조리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삽 네 자루에 눈길이 멈춘다. 엄마의 부엌보다 깨끗할 정도로 잘 관리된 이곳은 ‘삽질’과 ‘칼질’에 일가견이 있는 여섯 남자가 400명의 끼니를 뚝딱 만들어 내는 군대식당이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위치한 제8보병사단 독수리연대의 독수리식당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4월21일 문을 연 식당은 육군 최초로 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시스템이 도입된 최첨단 시설이다. 9억 8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400명의 장병들은 전투화에 묻은 흙을 샤워기로 털어낸 뒤 소독을 해야 식당에 들어올 수 있다. 급양담당관과 수의장교가 조리시설의 위생상태를 매일 점검하는 등 관리가 여간 깐깐하지 않다.평화로워 보이는 식당 바깥과 달리 안쪽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건장한 남성들이 조리실에 들어와 각자 맡은 위치에 섰다. ‘완전무장’ 차림이었다. 전투모 대신 망사모를 쓰고 전투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대신 고무장화를 신은 조리병들은 비장한 표정이다. # 400명 먹을 쌀 80㎏ 삽으로 쓱쓱 씻어 밥 짓고 오늘의 점심 메뉴는 된장국, 감자조림, 게맛살볶음이었다. 조리병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작했다. 황인용(21) 상병은 쌀을 씻었다. 들통에 쌀과 물을 쏟아부은 뒤 삽으로 골고루 돌려 젓는다. 황 상병은 “손목의 스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막걸리 색깔의 뽀얀 쌀뜨물이 떠오르면 따라내고 두 번 더 씻는다. 한 끼 식사에 한 가마니(80kg)의 쌀이 사용된다. 씻은 쌀을 50인분 용 솥 5개에 채우고 밥물을 맞춘 뒤 오븐에 넣는다. 황 상병은 “예전에는 네모난 찜기에 밥을 쪄 내서 먹으면 쉽게 배가 꺼지고 맛도 덜했는데 지금은 가스불로 조리해 밥맛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김기동(21) 상병은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넓적한 도마가 그의 무대다. 애호박 한 개를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를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1개를 써는 데 2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김 상병이 오늘 썰어야 할 야채는 게맛살볶음에 들어가는 피망 15개, 된장국에 들어가는 애호박 10개와 두부 1판, 감자조림에 들어가는 감자 50개와 당근 20개다. 이 모두를 써는 데 20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이다. 김 상병은 “당근이나 무처럼 딱딱한 야채를 썰 때 가끔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지만 썰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를 휴학한 김 상병은 조리병 경력이 벌써 1년 6개월째다. 제대 전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지만 공부를 안 해서 필기시험의 문턱을 매번 넘지 못했다. 그는 “실기는 자신 있는데 이론 공부는 영 자신이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 튀김실에선 섭씨 200도 넘는 기름과의 사투 조리병 중에서 가장 고참인 장형철(22) 병장은 오는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煎) 처리 담당이다. 재료를 씻고 썰고 다듬고 껍질을 벗겨 조리하기 쉽도록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장 병장은 “밥, 국, 튀김, 전처리, 반찬 담당으로 역할을 나누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튀김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한여름에 지름 1.5m 크기의 튀김 솥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20분 넘게 섭씨 200도가 넘는 끓는 기름과 씨름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장 병장은 “장병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닭튀김, 깐풍기, 탕수육 등 튀긴 고기요리”라면서 “몸은 고되어도 내가 만든 바삭한 튀김을 맛있게 먹어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방 한편에 마련된 튀김실에는 4개의 커다란 솥이 걸려 있다. 설렁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솥이다. 이곳에서는 튀김뿐 아니라 국과 볶음 요리도 한다.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튀김실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는다. 게다가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흡사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조리실 막내인 김정수(20) 이병은 능숙한 솜씨로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60일 됐다는 김 이병은 “2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처음 만들었던 음식이 된장국이었다.”고 말했다. 국은 쉬운 음식에 속한다. 끓는 물에 멸치, 다시마를 우려내고 된장을 푼 뒤 선임들이 썰어준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된다. 400인분의 된장국에는 된장 10kg과 고추장 1kg이 들어간다. 김 이병은 “된장이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는 게 포인트”라고 일러줬다. 튀김실 안쪽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겼다. 곽경태(19) 일병이 제법 모양을 갖춘 게맛살볶음과 감자조림의 간을 보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전하기 위해 고용된 민간조리원 김영매(55·여)씨도 옆에서 거들었다. 김씨가 “감자조림이 너무 싱거워. 물이 너무 많잖아. 간장 좀 가져와.”라고 말하자 곽 일병은 “국물에 밥 비벼 먹으라고 일부러 자작하게 한 거예요.”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조리병들은 김씨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간을 보는 게 아줌마의 역할이지만 김씨는 재료를 씻고 다듬을 때 손을 보탠다. 그는 “조리병들이 요리는 잘하지만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야채 손질이 어설프다.”고 말했다. # 땀 뻘뻘 1시간이면 요리사 뺨치게 조리 끝 오전 11시쯤 대부분의 조리가 끝나자 조리병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한숨을 돌리고 수다를 떨었다. 땀에 젖은 망사모와 마스크를 벗은 병사들은 영락없이 해맑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장 병장은 “장병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때가 제일 신난다.”고 말했다. 황 상병은 “돼불(돼지불고기), 닭튀(닭튀김), 오볶(오징어볶음), 오삼(오징어삼겹살볶음) 등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조리병들은 메뉴 이름이 길면 줄여 부른다. 일종의 은어인 셈이다. 이들은 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괴물밥’을 꼽았다. 김치콩나물밥을 뜻하는 ‘괴물밥’은 조리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장병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잔반이 많이 생긴다. 밥을 한 번 찐 뒤 김치, 고기, 콩나물 등 고명을 얹고 또다시 익혀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게 조리병들의 평가다. 군은 한 달에 한 번 급식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군급식개선회의에 보고하면 급양대(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배분하는 곳)에서 식단에 반영하게 된다. 지난달에는 닭죽, 조기튀김, 쫄면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닭죽은 영양보충에 좋고 쫄면은 별미로 좋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높았지만 조기튀김은 ‘발라 먹기 귀찮다.’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짬밥만 잘 먹어도 동안피부 저리가라! 12시가 되자 바지 춤에 수저통을 찔러 넣은 병사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각 중대에서 파견된 6명의 취사지원병이 배식에 나섰다. 순식간에 밥과 국, 감자조림이 동이 나 조리병들은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영석(19) 이병은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군대밥이 집밥보다 맛있다.”면서 “입대할 때 50kg이던 몸무게가 지금은 58kg”이라고 말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김 이병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오삼불고기와 돈가스다. 지난해 8월 입대한 안준성(21) 일병은 부대에서 알아주는 ‘피부미남’이다. 그는 “꼼꼼한 폼 클렌징과 ‘짬밥’효과가 피부관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김종도(20) 일병도 군대에 와서 피부가 좋아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입대 전에는 오리불고기에 손도 안 댔는데 군대에 와서 그 맛을 알게 됐다.”면서 “때마다 나오는 자장면 등 분식도 별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일병은 ‘군데리아’는 싫다고 했다. 빵, 고기, 치즈, 샐러드, 딸기잼을 따로 배식받은 뒤 조합해 먹는 군대식 햄버거는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 신세대 장병의 고기예찬은 그로부터 5분 넘게 계속됐다.
  •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건더기 없이 멀건 국, 고춧가루를 적게 쓴 탓에 허연 김치와 깍두기, 튀김옷뿐인 튀김 등 질 낮은 ‘짬밥’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떠올리는 안 좋은 기억 가운데 하나다. 그런 군대급식이 달라졌다. 맛과 영양을 고려한 건강식단에 따라 좋은 국내산 재료를 위생적으로 조리해 낸다. 달라진 군대급식 현장에 가봤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은 스테인리스 솥과 조리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삽 네 자루에 눈길이 멈춘다. 엄마의 부엌보다 깨끗할 정도로 잘 관리된 이곳은 ‘삽질’과 ‘칼질’에 일가견이 있는 여섯 남자가 400명의 끼니를 뚝딱 만들어 내는 군대식당이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위치한 제8보병사단 독수리연대의 독수리식당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4월21일 문을 연 식당은 육군 최초로 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시스템이 도입된 최첨단 시설이다. 9억 8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400명의 장병들은 전투화에 묻은 흙을 샤워기로 털어낸 뒤 소독을 해야 식당에 들어올 수 있다. 급양담당관과 수의장교가 조리시설의 위생상태를 매일 점검하는 등 관리가 여간 깐깐하지 않다.평화로워 보이는 식당 바깥과 달리 안쪽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건장한 남성들이 조리실에 들어와 각자 맡은 위치에 섰다. ‘완전무장’ 차림이었다. 전투모 대신 망사모를 쓰고 전투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대신 고무장화를 신은 조리병들은 비장한 표정이다. # 400명 먹을 쌀 80㎏ 삽으로 쓱쓱 씻어 밥 짓고 오늘의 점심 메뉴는 된장국, 감자조림, 게맛살볶음이었다. 조리병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작했다. 황인용(21) 상병은 쌀을 씻었다. 들통에 쌀과 물을 쏟아부은 뒤 삽으로 골고루 돌려 젓는다. 황 상병은 “손목의 스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막걸리 색깔의 뽀얀 쌀뜨물이 떠오르면 따라내고 두 번 더 씻는다. 한 끼 식사에 한 가마니(80kg)의 쌀이 사용된다. 씻은 쌀을 50인분 용 솥 5개에 채우고 밥물을 맞춘 뒤 오븐에 넣는다. 황 상병은 “예전에는 네모난 찜기에 밥을 쪄 내서 먹으면 쉽게 배가 꺼지고 맛도 덜했는데 지금은 가스불로 조리해 밥맛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김기동(21) 상병은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넓적한 도마가 그의 무대다. 애호박 한 개를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를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1개를 써는 데 2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김 상병이 오늘 썰어야 할 야채는 게맛살볶음에 들어가는 피망 15개, 된장국에 들어가는 애호박 10개와 두부 1판, 감자조림에 들어가는 감자 50개와 당근 20개다. 이 모두를 써는 데 20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이다. 김 상병은 “당근이나 무처럼 딱딱한 야채를 썰 때 가끔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지만 썰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를 휴학한 김 상병은 조리병 경력이 벌써 1년 6개월째다. 제대 전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지만 공부를 안 해서 필기시험의 문턱을 매번 넘지 못했다. 그는 “실기는 자신 있는데 이론 공부는 영 자신이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 튀김실에선 섭씨 200도 넘는 기름과의 사투 조리병 중에서 가장 고참인 장형철(22) 병장은 오는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煎) 처리 담당이다. 재료를 씻고 썰고 다듬고 껍질을 벗겨 조리하기 쉽도록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장 병장은 “밥, 국, 튀김, 전처리, 반찬 담당으로 역할을 나누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튀김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한여름에 지름 1.5m 크기의 튀김 솥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20분 넘게 섭씨 200도가 넘는 끓는 기름과 씨름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장 병장은 “장병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닭튀김, 깐풍기, 탕수육 등 튀긴 고기요리”라면서 “몸은 고되어도 내가 만든 바삭한 튀김을 맛있게 먹어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방 한편에 마련된 튀김실에는 4개의 커다란 솥이 걸려 있다. 설렁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솥이다. 이곳에서는 튀김뿐 아니라 국과 볶음 요리도 한다.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튀김실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는다. 게다가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흡사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조리실 막내인 김정수(20) 이병은 능숙한 솜씨로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60일 됐다는 김 이병은 “2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처음 만들었던 음식이 된장국이었다.”고 말했다. 국은 쉬운 음식에 속한다. 끓는 물에 멸치, 다시마를 우려내고 된장을 푼 뒤 선임들이 썰어준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된다. 400인분의 된장국에는 된장 10kg과 고추장 1kg이 들어간다. 김 이병은 “된장이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는 게 포인트”라고 일러줬다. 튀김실 안쪽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겼다. 곽경태(19) 일병이 제법 모양을 갖춘 게맛살볶음과 감자조림의 간을 보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전하기 위해 고용된 민간조리원 김영매(55·여)씨도 옆에서 거들었다. 김씨가 “감자조림이 너무 싱거워. 물이 너무 많잖아. 간장 좀 가져와.”라고 말하자 곽 일병은 “국물에 밥 비벼 먹으라고 일부러 자작하게 한 거예요.”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조리병들은 김씨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간을 보는 게 아줌마의 역할이지만 김씨는 재료를 씻고 다듬을 때 손을 보탠다. 그는 “조리병들이 요리는 잘하지만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야채 손질이 어설프다.”고 말했다. # 땀 뻘뻘 1시간이면 요리사 뺨치게 조리 끝 오전 11시쯤 대부분의 조리가 끝나자 조리병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한숨을 돌리고 수다를 떨었다. 땀에 젖은 망사모와 마스크를 벗은 병사들은 영락없이 해맑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장 병장은 “장병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때가 제일 신난다.”고 말했다. 황 상병은 “돼불(돼지불고기), 닭튀(닭튀김), 오볶(오징어볶음), 오삼(오징어삼겹살볶음) 등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조리병들은 메뉴 이름이 길면 줄여 부른다. 일종의 은어인 셈이다. 이들은 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괴물밥’을 꼽았다. 김치콩나물밥을 뜻하는 ‘괴물밥’은 조리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장병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잔반이 많이 남는다. 밥을 한 번 찐 뒤 김치, 고기, 콩나물 등 고명을 얹고 또다시 익혀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게 조리병들의 평가다. 군은 한 달에 한 번 급식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군급식개선회의에 보고하면 급양대(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배분하는 곳)에서 식단에 반영하게 된다. 지난달에는 닭죽, 조기튀김, 쫄면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닭죽은 영양보충에 좋고 쫄면은 별미로 좋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높았지만 조기튀김은 ‘발라 먹기 귀찮다.’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짬밥만 잘 먹어도 동안피부 저리가라! 12시가 되자 바지 춤에 수저통을 찔러 넣은 병사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각 중대에서 파견된 6명의 취사지원병이 배식에 나섰다. 순식간에 밥과 국, 감자조림이 동이 나 조리병들은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영석(19) 이병은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군대밥이 집밥보다 맛있다.”면서 “입대할 때 50kg이던 몸무게가 지금은 58kg”이라고 말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김 이병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오삼불고기와 돈가스다. 지난해 8월 입대한 안준성(21) 일병은 부대에서 알아주는 ‘피부미남’이다. 그는 “꼼꼼한 폼 클렌징과 ‘짬밥’효과가 피부관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김종도(20) 일병도 군대에 와서 피부가 좋아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입대 전에는 오리불고기에 손도 안 댔는데 군대에 와서 그 맛을 알게 됐다.”면서 “때마다 나오는 자장면 등 분식도 별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일병은 ‘군데리아’는 싫다고 했다. 빵, 고기, 치즈, 샐러드, 딸기잼을 따로 배식받은 뒤 조합해 먹는 군대식 햄버거는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 신세대 장병의 고기예찬은 그로부터 5분 넘게 계속됐다. 글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ㆍ동영상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국의 바다 온몸으로 지킨 ‘승리의 해전’

    조국의 바다 온몸으로 지킨 ‘승리의 해전’

    지난 2002년 6월29일 최후의 순간까지 조국의 바다를 지켜낸 해군 영웅들을 기리는 제2연평해전 7주년 기념식이 29일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지난해 처음 정부 행사로 격상된 뒤 올해는 우리 해군이 승리한 해전으로 공식 재조명되면서 한승수 국무총리, 정당대표, 시민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호국영령들 국민 가슴 속에 영원히” 제2연평해전은 당시 한·일 월드컵 3, 4위전이 열리던 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25분여의 교전으로 우리측 윤영하 소령,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이희완 대위(당시 중위) 등 18명이 중경상을 입고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한 총리는 이날 기념사에서 전사자 6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호국영웅들은 국민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대한민국은 이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 총리는 “제2연평해전은 서해 NLL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용감한 해군 장병들이 북한의 기습도발을 온 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때에는 변변한 추모행사도 없이 외롭게 여섯분의 영웅을 떠나 보냈다.”면서 “제2연평해전을 우리 해군의 승전으로 다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부는 2002년 7월7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남한 함정 8척이 3450여발을 집중 응사해 북한 함정 등산곶 648호에서 30명 이상 사상자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었다. ●“북한군 13명 사망, 25명 부상” 이와 관련, 권영달 당시 합동참모분부 군사정보부장(예비역 소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여러 첩보들을 종합·분석한 결과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사망 13명, 부상 25명 등 모두 38명으로 최종 집계됐다.”며 “이는 청와대에도 보고가 됐다.”고 말했다. 권 예비역 소장은 “북한군의 도발은 의도된 계획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북한) 서해함대사령부와 8전대가 조종 통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2009 K-리그] 병장 김명중 역전골 명중… 선두탈환

    [2009 K-리그] 병장 김명중 역전골 명중… 선두탈환

    ‘타깃맨’ 김명중(24·광주)이 병장 계급을 달고 첫판에서 펄펄 날았다. 지난 1일 진급한 그는 21일 울산과의 프로축구 K-리그 12라운드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 2-1 승리를 이끌었다. 팀은 승점 26점(8승2무2패, 골득실 11)으로 전날 제주를 2-1로 꺾고 ‘반짝 1위’에 올랐던 FC서울(8승2무3패, 골득실 9)을 끌어내리며 선두를 되찾았다. 상대전적에서 2004년 7월28일 1-0으로 3승(2무5패)을 챙긴 이후 13경기 연속 이어진 지독한 무승(4무9패)의 고리도 끊었다. 김명중은 울산전에서 동점골을 내주며 1-1로 끌려가던 후반 41분 ‘일병’ 최성국이 골 지역 엔드라인에서 높게 올려준 공을 받아 헤딩 슛으로 골을 만들었다. 시즌 7골(3도움)을 기록, 공격포인트에서 에닝요(전북·14개), 슈바(전남·11개)에 이어 공동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토종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명중은 경기를 마친 뒤 “90분 내내 안정된 경기를 펼치며 찬스를 만든 수비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면서 “제대를 4개월 남겼는데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 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일고-동국대를 거쳐 2005년 포항에 입단했지만 그해 3월 피로골절로 수술대에 오른 뒤 막다른 길목에서 입대를 선택했던 그는 공격수로 보직을 바꿔 첫해인 지난해 31경기에서 7골(2도움)을 올려 도약의 발판을 다졌다. “축구화를 신고 철들었다.”는 그는 “경기장마다 찾아다니며 뒷바라지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힘을 낸다.”고 활짝 웃었다. 울산은 전반 36분 광주의 고슬기에게 골을 내주며 기선을 뺏긴 뒤 후반 6분 오장은의 동점골로 따라붙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결국 주저앉았다. 4연패한 울산은 승점 9점(2승3무6패)으로 14위에 머물렀다. 김호곤 감독도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쉽지만 무더운 날씨엔 정신력에서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면서 김명중이 이끄는 광주의 패기를 높이 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3代 10명이 52년9개월 현역복무

    3代 10명이 52년9개월 현역복무

    “명예롭게 군 복무를 마치는 자부심이 우리 가문의 전통입니다.” 할아버지-아버지-손자 등 3대(代)에 걸쳐 일가 남자 10명 모두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한 백동림(73·서울 송파구)씨 가문의 이야기이다. 백동림씨는 1979년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보좌, 수사단장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인 10·26 사건 수사를 지휘한 책임자여서 또 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전·베트남전 무공훈장 받아 병무청은 18일 올해 최고의 ‘병역이행 명문가’로 백씨 가문을 선정, 대상(대통령 표창)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올해 병역이행 명문가로는 백씨를 비롯해 김상도(65·부산 해운대구)씨, 임희기(63·경기 수원 영통구)씨 가문 등 모두 147가문이 선정됐다. 대상인 백씨 일가의 총 군 복무기간은 52년9개월(633개월)이다. 국가유공자도 2명이 포함된돼 있다. 1대인 고(故) 백린선씨는 연대장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평양탈환 전투 등에서 공로를 세웠다. 1·4후퇴 당시 서울에 잔류한 가족은 군인가족이라는 이유로 전 재산과 집을 빼앗기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중령으로 예편한 백린선씨는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2대인 백동림씨는 육사 15기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0·26사건 당시 합수부 수사단장으로 박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직접 신문하기도 했다. 동림씨의 장남 봉원씨는 학군장교 23기 출신이다. 차남 봉철씨는 시력이 약해 현역 근무가 면제됐지만 현역을 지원해 병장으로 복무했다. 동림씨의 동생 동준씨와 동춘씨는 각각 군의관과 학군장교 1기로 임관했다. 동준씨의 장·차남은 병장으로, 동춘씨의 장·차남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학군장교 29기, 31기로 각각 임관했다. ●영관 2명, 위관 5명, 병장 3명 백씨 가문은 영관 장교 2명, 위관 장교 5명, 병장 3명 등 병역 이행자 10명을 배출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병무청은 질병으로 면제 판정을 받고도 완치한 후 자진 입영한 박재형 일병 등 모범 병사 10명에게도 표창을 한다. 시상식은 19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칠성부대 60돌 기념 위문 방문

    정갑철 강원 화천군수 10일 칠성부대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부대창설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군장병들을 위문하고 격려했다.
  • 軍관행에 눌린 억울한 죽음 최장 60년만에 바로잡았다

    “32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둔 아들의 죽음에 대한 한(恨)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1975년 8월 육군 한 사격장에서 숨진 뒤 변사 처리된 신모 병장 어머니의 편지) 군(軍) 내 관행의 힘은 무서웠다. 군에서 ‘이유 있는 사망’마저 변사로 처리됐던 억울한 죽음들이 길게는 60년, 짧게는 30여년만에 순직 및 전사로 바로잡혔다. 국방부는 9일 창군 이후 변사(變死)로 처리됐던 군내 사망사고 민원 491건을 재조사해 이 가운데 73건을 전사 및 순직으로 판정하고 국립묘지 안장 등 국가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창설된 국방부 조사본부 소속 ‘사망사고 민원조사단’은 1940년대부터 80년대 이후까지 군내 변사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번에 전사 및 순직으로 정정된 73건은 1940년대 1건, 50년대 33건, 60년대 19건, 70년대 10건, 80년대 이후 10건이다. 실례로 1961년 강원도 남면에서 군용트럭을 타고 부대에 복귀하던 중 운전병의 과실로 숨진 고(故) 박학래 병장 등 3명도 변사자로 처리돼 유족들의 가슴을 태웠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민원을 통해 재조사가 이뤄져 순직으로 처리됐다. 국방부는 민원이 제기된 박 병장뿐 아니라 당시 사망자인 정상균 일병과 김영태 일병도 민원에 상관없이 순직으로 정정했다. 조사단의 끈기도 빛을 발했다. 폐기된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참고인이 될 만한 부대 동료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1957년 원인미상으로 숨진 고 최종호씨의 경우 조사단이 참고한 자료는 인사명령지 2350여장, 매장보고서 13만 2460여장, 환자명부 2010여장이나 됐다. 인원 조회만 460명이었다. 전화 조사 150명을 거쳐 최종 순직임을 밝혀냈다. 조사단 관계자는 “지난해 한 조사관의 출장 횟수는 총 148회, 출장거리는 2만 4076㎞나 될 정도로 변사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군내 사망사고를 감추거나 형식적으로 조사한다는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7일 TV 하이라이트]

    ●SBS스페셜<1592 침묵의 거북선>(SBS 오후 11시20분) 경상남도가 거북선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최첨단 장비와 최고의 탐사팀이 만나 2003년 거북선의 실체를 찾기 위한 1년 간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1%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슴속 거북선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다.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30분) 고미영은 세계 최초로 여성 산악인 14좌 완등을 목표로 삼고, 지난 2006년부터 히말라야를 등반 중이다. 2009년 3월, 고미영은 자신의 히말라야 14좌 레이스 중 여덟 번째인 마칼루로 떠났다. 2009년 3월 19일부터 5월 17일까지 약 60일 간의 등반 과정에 동행해 마칼루 등반의 생생한 과정을 함께한다.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탤런트 박윤배가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옹기를 만들러 울산 외고산옹기마을로 출동한다. 메기병장 개그맨 이상운은 부안땅 오디 수확 부름을 받고 7~8년생 뽕나무와 씨름한다. 또 ‘사랑과 전쟁’의 단골 불륜녀 민지영과 이시영이 2만여마리 비단잉어 보금자리로 출동한다. ●2009 외인구단(MBC 오후 10시40분) 외인구단의 첫 승리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혜성은 엄지가 동탁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어떻게든 엄지의 모습이 보고 싶어 집 앞으로 찾아가지만 동탁과 함께 있는 모습에 돌아서고, 엄지의 회사로 찾아가 엄지를 만난다. 다음 날 혜성은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1999년 12월 30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영국 옥스퍼드 샤이어의 한 저택에서 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남자는 놀랍게도 비틀스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그의 암살 사건에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는데…. ●찬란한 유산(SBS 오후 10시) 2호점으로 찾아온 환은 다짜고짜 은성의 팔을 잡고는 옥상으로 끌고 간다. 진지한 표정의 환은 지금까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뜻밖의 말에 놀라서 환을 보는 은성에게 환은 할머니 회사를 절대로 안 뺏기겠다며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돼지 특허 출원. 돼지가 발명품이라는 것일까? 몬산토 사의 연구진은 돼지의 유전자 특허를 위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 특허 문제가 곧 효력을 갖게 되면, 농민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키우고 있는 돼지의 유전자 정보에 관한 특허가 특정 기업에 있다는 이유로 사육이 금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군무이탈’ 이재진, 징역 1년에 집유 2년

    ‘군무이탈’ 이재진, 징역 1년에 집유 2년

    ‘군무이탈’로 군사재판에 오른 그룹 젝스키스 출신 이재진 일병이 군법정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최종선고 받았다. 이재진 이병은 4일 오후 대구 북구에 위치한 육군 50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33일간 군무이탈한 혐의로 징역 1년형을 구형받았다. 군 검찰은 “미복귀 시기가 장기화됐던 이재진의 죄질이 가볍지 않아 정상 참작하기 어렵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재진 일병은 “군복무 기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병역비리로 늦은 나이에 현역병 복무를 하게 돼 동료병사들의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건강상의 문제와 집안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힘들었다.”며 “선처해주시면 열심히 군 복무해서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최후 진술했다. 이재진 일병은 3월 2일 청원휴가를 나와 복귀예정일인 3월 6일까지 복귀일을 넘기고 숨어지내다가 5월 8일 대구역 인근 모텔에서 현병대에게 긴급 체포됐다. 이재진은 2006년 게임개발 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지만 병역특례비리조사에서 부실 복무 혐의로 2008년 10월8일 현역으로 재입대했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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