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병장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창원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4억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사표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이름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63
  • [천안함 인양 이후] “누가 우리아들 날개 꺾었나” 통곡

    [천안함 인양 이후] “누가 우리아들 날개 꺾었나” 통곡

    25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는 곳곳에서 오열하는 등 하루 종일 침통한 분위기였다. 2함대 체육관 앞 공터에는 유가족과 조문객 대기소로 쓰일 천막이 가족당 1동씩 설치됐다. 체육관 외벽과 입구에는 “故 ‘천안함 46용사’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오후부터는 정운찬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과 조문객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유가족을 비롯, 지인과 일반시민 등 이날 하루 동안 1500여명이 다녀갔다. 한 시민은 “초등학생 아들이 뉴스를 보고 울면서 오고 싶다고 해 조문을 왔다.”면서 “내 동생도 20세에 세상을 떠나 희생 장병을 보면 내 동생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희생 장병에 대한 화장 절차도 이어졌다. 이날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서는 안경환 상사와 임재엽 중사, 이상민 하사, 장철희 일병 등 4명의 시신이 유족들의 오열 속에 화장돼 한줌 재로 돌아갔다. 안 상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 주저앉아 “우리 아들, 엄마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가니. 누가 내 아들 날개를 꺾었습니까.”라며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울부짖다 실신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던 이 하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 배웅은 해야 한다.”며 팔에 링거를 꽂고 연화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또 충남 연기군 은하수공원 화장장에서도 김종헌 중사와 조정규 하사, 문영욱 하사, 이재민 병장 등 4명에 대한 화장식이 진행됐다. 김 중사의 부인은 남편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엄마, 엄마”를 외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조 하사의 어머니는 동료 해군 장병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필승’ 구호를 외치자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손수건으로 막았다.앞서 24일에는 문규석 상사 등 6명에 대한 화장식이 연화장에서 이뤄졌다. 장병들의 시신은 화장로에 들어간 지 2시간여 만에 한줌 재로 봉안함에 담겨 가족들의 품에 안긴 채 다시 2함대로 옮겨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합조단 중간조사 결과] 추모물결 고조… 각계 성금도 줄이어

    천안함 실종 장병들이 끝내 시신으로 발견되자 15일에 이어 16일에도 해군 홈페이지와 장병들의 미니홈피 등에는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해군 홈페이지에는 젊은 승무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바다를 이뤘다. 두 아들을 군에 보냈다는 한 어머니는 ‘그대 죽어서도 바다를 지키려 했는가’라는 애도시를 올려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대 임무 이미 끝났으니 어서 돌아오라고, 살아서만 돌아오라고, 전 국민이 명령했는데 이제야 말없이 돌아온 그대, 죽어서라도 그대가 사랑하는 바다를 지키고 싶었는가?”라고 적어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포털사이트에 마련된 추모 페이지에도 이들의 넋을 기리는 네티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 페이지에서 헌화를 받고 있는 네이버는 2만여건의 헌화가 접수됐다. 다음 아고라의 추모 서명란에는 전체 희생자는 물론 서대호 하사, 이상민 병장 등 개별 장병들에 대한 추모 서명도 진행되고 있다. 희생 장병들의 미니홈피에도 추모글이 이어졌다. ‘모두 보고 싶다’는 제목이 달린 고(故) 이상희 병장의 미니홈피에는 친구들이 “자랑스러운 내 친구, 정말 사랑한다…. 고마워…. 이제 편히 쉬어.”라는 글을 남겼다. 이 병장은 다음달 1일 제대를 한 뒤 6월쯤 일식 요리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갈 계획이었다. 고 이재민 병장의 미니홈피에도 “차가운 바다에서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등 500여건의 추모글이 달렸다. 트위터나 블로그 등에도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들이 바다에 지고 말았다.”면서 “살아 숨쉬는 미안함을 넘어 이들이 바랐던 꽃 피는 세상을 대신해 피워야 할 마음을 다잡아본다.”고 적었다. 각계 성금도 이어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이날까지 4460명이 12억 5200만원의 성금을 냈다. 약정액까지 합치면 모금액은 더 늘어난다. 또 ‘천안함’이란 함명을 따온 충남 천안에서는 천안함 대원들이 남몰래 도와왔던 천안지역 소년소녀 가장들을 앞으로 주부모니터단이 돕기로 했다. 천안함 장병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주부모니터단은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씨줄날줄] 수병의 꿈/함혜리 논설위원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끔찍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인생의 목적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론이다. 꿈과 희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활력소가 된다. 각자의 삶마다 종류와 크기가 다르지만 꿈과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천안함의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저마다의 꿈을 갖고 있었다. 이상희(21) 병장의 꿈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고2 때부터 취득한 조리사 자격증이 5개나 되는데 일식에 집중하기 위해 5월1일 제대하고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청양대 호텔경영학과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이상민(21) 병장은 세계적인 호텔의 지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천안함의 막내였던 장철희(19) 이병. 부산 동의과학대에서 전기를 전공한 장 이병은 철도기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복무 중 틈틈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김선호(20) 상병은 전역하면 꼭 대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32) 중사는 태어난 지 석달된 딸을 마음껏 안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자신의 큰 손이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걱정은 좀 되지만 최 중사는 사랑스러운 딸이 크는 것을 지켜보고 싶어서 육상근무를 자원했다. 강준(29) 중사는 꽃피는 5월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혼인신고를 마쳤다. 해군 부사관인 아내와 알콩달콩 살면서 자원봉사도 계속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효성이 지극한 수병들은 부모님께 무엇이라도 보답해드리는 게 소원이었다. 조진영(23) 하사는 혼자 계신 아버지가 언제나 마음에 걸렸다. 월급을 모아서 올 여름에는 반드시 아버지에게 에어컨 바람을 선사하고 싶었다. 박보람(실종·24) 하사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기적금을 부었다. 적금 600만원이 이달 만기였다. 김동진(19) 하사는 지난해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홀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2009년 9월 해군 부사관 224기로 입대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몽땅 어머니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드렸던 효자인 그는 용돈 10만원을 쪼개서 유니세프와 복지관에 기부도 했다. 착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녔던 그들. 그들은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꿈도 무정한 바다에 잠겨버렸다. 피어 보지도 못하고 잠긴 수병의 꿈,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절단면 너덜너덜 찢겨… 외관은 비교적 멀쩡

    절단면 너덜너덜 찢겨… 외관은 비교적 멀쩡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안함이 들어올려진 날 온 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국방부는 16일 새벽 1시 현재 772함 함미(艦尾) 안에서 이상민 병장 등 실종자 시신 36구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로 실종됐던 병사 46명 가운데 얼마 전 사망이 확인된 남기훈·김태석 상사에 이어 나머지 실종자들의 시신이 이날 무더기로 발견됨에 따라 천안함 침몰은 해군의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참사로 기록되고 말았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군은 침몰 20일 만인 이날 서해 백령도 인근 해저에 두 동강 난 채 가라앉아 있던 함미를 크레인을 이용해 물 밖으로 완전히 인양, 바지선에 옮긴 뒤 실종자 수색에 돌입했다. 오후부터 실종자 발견 소식이 속속 전해졌지만, 안타깝게도 싸늘한 시신으로 ‘귀환’했다는 비보(悲報)였다. 가족들의 긴 오열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눈물은 온 나라를 삼켰다. 서대호·방일민 하사는 식당 입구에서, 이상준 하사, 이상민 병장의 시신은 식당 안에서 발견됐다. 정종률·박석원·강준·안경환 중사, 손수민·조진영·서승원 하사, 이재민·이상희·강현구 병장, 김선명·안동엽·박정훈 상병, 나현민 일병, 장철희 이병의 시신은 침실에서 발견됐다. 민평기·김경수·최정환 중사, 심영빈·문영욱 하사, 조지훈 일병의 시신은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김종헌 중사, 김동진 하사, 이용상 병장, 김선호 상병의 시신은 후타실에서 발견됐다. 신선준 중사, 임재엽 하사의 시신은 탄약고에서, 차균석 하사는 유도행정실에서, 문규석 상사는 휴게실에서, 문영욱 하사는 제독소에서, 조정규 하사는 기관창고에서, 정범구 상병의 시신은 전기창고 입구에서 발견됐다. 시신들은 인근 독도함으로 옮겨져 가족들의 신원 확인을 거친 뒤 헬기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로 운구돼 안치됐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이날 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현장에서 실종자를 다 찾겠다는 각오로 수색작전을 실시하라.”고 독려했다. 이날 물 밖으로 끌어올려진 함미의 절단면은 너덜너덜하게 찢긴 모양으로 철판들이 뾰족하게 위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서 바라봤을 때 비스듬하게 사선 각도로 잘라진 형태였다. 반면 절단면을 제외한 배 밑 등 나머지 부분은 외관상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디젤엔진실 위에 있는 추적레이더실과 그 뒤로 함대함 하푼미사일 발사대 2개, 40㎜ 부포, 76㎜ 주포, 폭뢰는 온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꼬리 쪽 밑에 있는 스크루 역시 손상이 없었다. 하지만 어뢰발사대 1문과 주포와 부포 사이의 하푼미사일 발사대, 절단면 근처의 연돌(굴뚝)은 유실됐다. 국방부는 해군 9명과 수사요원 4명, 실종자 가족 4명을 바지선에 탑승시켜 선내 수색을 벌였다. 함미를 실은 바지선은 17일 새벽 경기 평택의 2함대사령부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군은 사고원인을 밝혀줄 단서인 금속 파편 등을 찾기 위해 함미가 있던 주변 500m 해역에 대한 정밀 수색도 이날 병행했다. 김상연 오이석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차디찬 바다서 이제서야 돌아오느냐” 가족들 통곡

    [천안함 함미 인양]“차디찬 바다서 이제서야 돌아오느냐” 가족들 통곡

    “아들아~ 내 아들아. 차디찬 물속에서 얼마나 추웠니….” 통곡의 바다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아들의 ‘마지막 신고’에 가슴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15일 오후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시신이 잇따라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오자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숙소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삼삼오오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가족들은 팽팽했던 20일간의 긴장이 일시에 풀린 듯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을 훔쳤다. 장병들의 시신은 군(軍)이 제공한 헬기에 실려 속속 2함대 영내로 도착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오후 6시9분 방일민·이상준·서대호 하사의 시신을 운구한 헬기가 2함대 헬기장에 내렸고, 곧 대형 태극기가 덮인 서 하사의 시신이 첫 번째로 의무대에 도착했다. 서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씨는 시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내가 우리 아들을 보면 안다. 아들을 봐야 돼.”라고 절규해 주변의 눈시울을 붉혔다. 안씨는 “우리 애가 기름 속에 있었나봐. 기름 범벅이다. 시신이 왜 새파라냐.”며 흐느꼈다. 곧이어 이상준 하사의 시신이 들어오자 아버지 이용우씨와 어머니 김미영씨도 “상준아!”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얼굴을 감싸고 쓰러져 통곡했다. 오후 7시10분 이상민(88년생)·박동혁 병장, 임재엽 하사 등 3명이 헬기에 실려 2함대로 들어오고 25분 뒤 강현구 병장, 박정훈 상병, 신선준 중사 등 3명을 실은 헬기까지 도착하자 2함대 영내는 거대한 울음바다로 변했다. 오후 11시50분까지 발견된 박석원 중사, 서승원·차균석 하사 등 27명의 시신도 뒤따라 도착했다. 의무대까지 시신을 운구하는 18명의 장병들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을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나머지 가족들은 애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씨는 “함미가 물 위로 올라왔을 때 크게 부서진 것을 보고 희망을 잃었다.”면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오늘 하루가 지금까지 보낸 시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 가족들 사이에는 대화가 끊겨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시신으로 돌아온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씨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만 흐르고 있다.”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족들이 더 이상 울지도 못할 정도로 탈진했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심영빈 하사의 동생 영수씨는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도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심정을 밝힐 만한 여지조차 없다.”고 슬퍼했다. 2함대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야간 응급진료 서비스가 도입됐다. 경기도립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진이 15일부터 야간진료를 시작했다.”면서 “구급차도 5대 보강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현용 윤샘이나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천안함 함미 인양] 부유물·전선 뒤엉켜 아비규환… 곳곳에 싸늘한 시신

    15일 천안함 함미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미귀환’ 승조원들의 주검은 생존 동료들이 앞서 풀어 놓은 사고 순간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그들은 오랜 시간 물속에 있었던 터라 부은 모습이었지만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폭발과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암흑 속에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물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격 때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타박상은 그것을 강력히 방증한다. 온기 하나 없이, 말 한마디 없는 시신들이었지만 그들이 머무른 장소와 입고 있던 복장은 폭발 직전까지 평온했던 ‘지난달 26일 오후 9시22분’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이날 실종자 수색작업 진행 중 기자실을 찾아 “해저에서 볼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선체 내부의 모습을 설명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들어섰던 함미 내부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고 했다. 차가운 금속 파편들이 복도를 가리고 있고 을씨년스러운 부유물들과 각종 전깃줄이 뒤엉켜 통로 개척조차 쉽지 않았다. 어두운 내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실내 작업등을 설치했지만 어둠의 그림자를 쫓아내기엔 부족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아무 장비도 없이 들어간 SSU 대원들은 부서지고 넘어진 초계함 장비들 사이를 비스듬히 눕다시피 몸을 숙여 움직여야 했다. 우리 해군의 주력 초계함인 천안함은 그렇게 부서져 있었다. 이날 밤늦게까지 SSU 대원들과 해군 수중폭파팀(UDT) 대원들은 불을 밝혀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찾아 헤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했다. 처음 발견된 서대호 하사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채 자신의 근무지로 연결되는 사병식당 입구 쪽에서 발견됐다. ‘그날’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동료들과 담소를 나눴을 이상준·방일민 하사, 이상민(1988년생) 병장은 승조원 식당에서 사선(死線)을 넘은 전우애를 남겨 두고 떠났다. 서승원 하사도 자신의 근무지인 디젤기관실에서 창백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근무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의 유도무기를 관리하는 유도장 안경환 중사, 전투 능력을 담보하는 병기 담당 박석원 중사, 디젤기관 담당 정종률 중사, 병기병 이상민(1989년생) 병장, 보건대학에서 의약학을 전공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주던 이재민 병장, 그리고 나현민 일병, 동료들의 깨끗한 머리 정돈을 맡았던 이발병 안동엽 상병, 기관부 소속인 박정훈·김선명 상병은 기관부 침실에 삶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천안함의 ‘막둥이’로 모든 승조원들의 동생으로 기억되고 있는 장철희 이병도 함께였다. 특별한 점호시간이 없는 함선에서 근무를 마쳤거나 또는 근무를 앞두고 취침하거나 쉬던 박 중사 등은 순식간에 발생한 침몰로 탈출의 기회도 없었던 모양이다. 침대보가 어지럽게 엉켜 있던 기관부 침실에서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기관부 침실과 후타실 사이에는 탄약고가 있다. 혹시 모를 폭발의 위험 때문에 SSU 대원들도 최대한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진입했다. 바닷물 탓인지 충격 때문인지 문은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하지만 평소 관리가 잘돼 있던 터라 폭발의 위험은 없었다. 대신 2명의 장병들이 왜 이리 늦었냐고 원망하듯 대원들을 향해 누워 있었다. 중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던 임재엽 중사와 신선준 중사였다. 탄약고는 중간에 76㎜ 함포의 탄약이 장전되는 원형의 약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넓은 방처럼 돼 있다. 평소 이곳은 종교활동을 하거나 바둑을 두고 전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됐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승조원 104명에게 어머니 같은 손맛을 전해 주던 조리병 강현구 병장은 기관실에서 발견됐다. 갑판 담당인 차균석 하사는 유도 행정실에서, 가스터빈 담당인 김종헌 중사, 전기하사 김동진 하사, 이용상 병장, 김선호 상병은 체력단련실로 이용되던 후타실에서 각각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생존 장병들이 예측했던 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통신담당 문영욱 하사는 제독소에서 발견됐다. 또 전자전병 정범구 상병은 전기창고 입구에서 발견됐다. 정 상병은 평소에도 전자전과 관련된 조언을 함정 장교들에게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관부 침실 뒷부분의 승조원 화장실에서는 민평기·최정환 중사, 김경수·심영빈·손수민 하사, 조지훈 일병 등이 운동복 등 편한 차림으로 발견됐다. 몇몇은 옷도 제대로 걸치고 있지 못했다. 승조원 화장실이 샤워실과 세탁실을 겸하고 있어 이들은 근무를 준비 중이거나 마치고 들어와 개인정비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침몰 당시 생존한 장병들 중 샤워를 하다 선임병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고 말했던 상황대로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이들에겐 작은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세탁실과 침실, 식당, 휴게실에서 발견된 천안함 승조원들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했던 사고 직전 모습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대규모 폭발로 튕겨진 이들은 생사의 갈림길을 채 알아채지도 못하고 선체에 부딪혀 생의 마지막을 흘려보냈을 것이라고 해군은 추측했다. 지난 4일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함미에서 발견된 고(故) 남기훈 상사, 지난 7일 역시 주검으로 돌아온 김태석 상사가 익사 흔적 없이 몸 전체에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는 것도 급박했던 함미 상황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침몰 당시 선체가 뒤집히고 물이 거꾸로 역류해 들어오면서 실종됐던 승조원들이 순식간에 선체 아래쪽 디젤기관실 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색을 벌여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우리의 임무이자 먼저 보낸 승조원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외부공격 판명땐 전사자… 부사관 최대 3억5800만원

    [천안함 함미 인양] 외부공격 판명땐 전사자… 부사관 최대 3억5800만원

    15일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천안함 실종 장병과 이들의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공무 중 순직(사고사)인지 전사(戰死)인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사망 보상금은 일시금과 매달 받는 연금으로 나뉜다. 일시금에는 정부가 군인연금법상 규정에 따라 주는 보상금과 맞춤형 복지보험, 군인공제회의 위로금이 포함된다. 병장 이하인 사병은 복지보험과 위로금은 없다. 현행 법에 따르면 군인이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사망 직전까지 받던 월급의 36배를 정부보상금으로 받게 된다. 정부보상금은 부사관인 하사부터 원사까지는 3900만~1억 4500만원이다. 여기에 맞춤형 복지보험 1억원과 군인공제회가 주는 위로금 200만원을 합하면 일시금으로 1억 4100만~2억 4700만원을 받게 된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하지만 전사자가 되면 정부보상금은 늘어난다. 천안함이 외부 공격에 따라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경우다. 부사관이 전사자로 분류되면 정부보상금은 2억 200만~2억 5600만원을 받게 된다. 보험과 위로금을 합하면 3억 400만~3억 5800만원을 받게 된다. 사병이 순직하면 중사 1호봉 월급의 36배를 받도록 돼 있다. 정부보상금은 3650만원이다. 근무 연수가 짧은 하사와 큰 차이가 없지만 부사관이 받는 보험이나 위로금은 없다. 하지만 전사자로 결정되면 정부보상금은 2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보상금과 보험 위로금 외에 부사관은 매월 141만∼255만원의 보훈연금과 유족연금을 받는다. 사병은 매달 94만 8000원의 보훈연금을 받는다. 순직이나 전사의 경우나 같다. 국방부는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전군의 간부 급여에서 일정액을 모금해 사망보상금 외에 1인당 5000만원씩의 위로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도 이뤄질 예정이다. 일단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신과 진료를 위해 군의관 2명과 간호장교 1명, 심리치료사 2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팀을 지원하고 있다. 또 생계유지를 위한 취업과 거주도 지원키로 했다. 가족이 원하면 군내 복지시설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가족들이 원하면 현재 살고 있는 군인 아파트에 계속 살 수 있도록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안타까운 사연들

    20일간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된 현실에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주위를 안타깝게 하는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전쟁터에서도 살아온 사람이 왜 이렇게 어이없이….” 제2 연평해전의 용사 박경수 중사의 가족들은 “해전 이후 6년이나 배를 타지 못하다 1년 전에 간신히 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남들이 평생 한번 겪기도 힘든 일을 두 번이나 겪고 가 너무 불쌍하다.”고 애통해했다. 누나를 셋이나 둔 이상민 병장은 집안의 자랑이자 효자였다. 가족들은 제대를 불과 한 달 보름 정도 남긴 채 배에 올랐던 막둥이를 하염없이 불렀다. 누나 상희(28)씨는 “동생이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엄마한테 안기는 걸 좋아했다.”면서 “요즘 젊은 애답지 않게 엄마 디스크 수술비에 보탠다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300만원을 마련해 주고 입대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13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면회를 왔었다. 2년간 한 번도 면회를 오지 못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을 찾아 평택에 온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이었다. 5월의 신부가 될 뻔했던 강준 중사의 아내 박현주(30)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 중사와 경남 진해에서 함께 일했던 해군 최초의 여성부사관인 박씨는 올 5월3일 결혼할 예정이었다. 정종률 중사의 아들 주환이의 사발면 역시 주인을 잃었다. 주환이는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던 해군 2함대 예비군 훈련장 숙소에서 부대 측이 제공한 사발면을 “아빠가 돌아오면 주겠다.”면서 차곡차곡 모아 왔다. 철 모르는 아들 때문에 계속 눈시울을 붉혔던 정 중사의 부인 정경옥(34)씨는 “진해로 근무지 발령이 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천안함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 중사는 자신의 큰 손과 몸집에 지난 1월 태어난 딸이 다칠세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는 여린 아버지였다. 또 딸이 크는 것을 보고 싶어 천안함을 마지막으로 함상 근무를 접고 육상 근무를 자원한 상태여서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다. 문규석 중사의 사촌형 강석(44)씨는 “규석이가 두 딸이 눈에 밟혀 눈이나 제대로 감았는지 모르겠다.”고 서러워했다. 문 중사는 사고가 나기 5분 전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날 남은 희생자 중 가장 먼저 발견된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아들이 ‘남자라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죠.’라는 말을 남기고 해군에 입대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45)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김 하사는 해군 정복을 입은 채 늠름하게 홍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홍씨는 “우리 아들은예. 여자도 몰라예. 결혼도예. 엄마가 찍어준 여자하고 한다고 했어예.”라고 말했다. 박건형 김양진기자 kitsch@seoul.co.kr
  • 軍旗 등 근현대 군사유물 7건 문화재 된다

    軍旗 등 근현대 군사유물 7건 문화재 된다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로 한국전쟁 초기에 맹활약한 ‘L-4 연락기’와 대한민국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에 사용한 돛대 등 근현대 군사유물 7건이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고 문화재청이 14일 밝혔다. 공군박물관이 소장한 ‘L-4 연락기’(기장 6.82m, 기폭 10.73m)는 1940년대 미국에서 생산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이 사용하던 2인승 연락용 경항공기로, 1948년 9월 대한민국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가 미군에게 인수한 10대 중 1대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최초의 항공기로 한국전쟁 초기에는 뒷좌석에 앉은 관측사가 폭탄을 품에 안고 출격, 투척하는 방식으로 동원됐다. 여수·순천사건 진압과 지리산 무장공비 토벌 작전에도 쓰였다. 이후 육군에 파견돼 다용도로 사용되다가 1954년 L-19 연락기 도입에 따라 퇴역했다. 해군사관학교박물관이 보관하는 백두산함 돛대(폭 5.2m, 높이 11m)는 대한민국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에 사용한 마스트다. 이 함선은 해군 창설 뒤 제대로 된 전투함 한 척 없던 상황에서 해군 장병과 그 가족의 성금으로 1949년 10월 미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한국전쟁 발발 당일 대한해협을 초계하다가 북한 무장선박을 발견하고 이튿날 격침한 ‘대한해협 해전’의 주인공이다. 이 밖에 조선시대 말기 흥선대원군의 지시에 따라 무명 30장을 겹쳐 총탄을 막고자한 ‘면천갑옷’(오른쪽·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광복군 갑옷(육군박물관), 대한민국 육군 초창기 깃발(왼쪽·육군박물관),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때 사용한 책상(전쟁기념관), 경상북도 안동 지방 의병장 김도현(1852~1914)의 칼(독립기념관)도 함께 문화재 등록이 예고됐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표충사 사명대사 400주기 향사 경남 밀양 표충사(주지 재경 스님)는 17일 표충사 경내에서 사명대사 입적 400주기를 기념하는 향사(享祀)를 봉행한다. 이 행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사명대사(1544~1610)를 기리는 것으로, 학술대회도 병행된다. (055)35 2-1150. ● 제3기 새길신학아카데미 개최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21일부터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제3기 새길신학아카데미를 개최한다. ‘종교다원주의와 영성/에큐메니컬 교회일치 운동’을 주제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등이 종교 간 대화와 공존 방식에 대해 강의한다. (02)555-6959.
  • “나 혼자 살 수 없다, 돌아와라 현구야” 생존자 편지 공개

    “나 혼자 살 수 없다, 돌아와라 현구야” 생존자 편지 공개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전날 생존 장병들과의 만남을 통해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44명 모두 함미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9일 밝혔다. 이정국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날 “실종 승조원 가운데 복귀하지 않은 44명이 함미에 있느냐가 생존 장병과의 만남에서 가장 큰 관심사였고 우려되는 부분”이라면서 “생존 장병들과의 대화를 통해 실종자 전원이 함미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29일 해군2함대사령부가 천안함 조감도를 통해 설명했던 ‘천안함 침몰 직전 승조원 근무위치’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당시 해군 측은 32명만 선체 함미에 있고, 14명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 가족들은 실종자들이 함미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믿게 돼 큰 위안을 받았다고 협의회는 전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또 생존 승조원이 입대 동기인 강현구 병장에게 쓴 애절한 편지를 공개했다. 이 승조원은 전날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안에서 진행된 실종자 가족들과의 면담에서 이 편지를 전달했다. 이 승조원은 “제발 돌아와라. 현구야 보고 싶다.”면서 “나 혼자 살아있어 죄책감이 든다.”며 기적같이 살아돌아 오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또 “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지금 네가 없어서 너무 허전하다. 나 혼자 살아있어 너무 죄책감이 들어. 너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2008년 7월7일 해군에 입대하고 2008년 4월8일 천안함에 같이 전입했었잖아. 제대도 같이 해야지. 이놈아 지금 어디 있는 거냐? 난 네가 내 옆에서 ‘하나뿐인 내동기’라며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돌아와라. 현구야 보고싶다.”라며 동료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협의회는 해군2함대사령부 예비군교육장 천안함 실종자 숙소 옆 식당 벽에 생존 장병들이 쓴 39통의 편지를 붙여 놨다. 식당을 오가는 가족들은 편지를 보고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몸이 불편해 생존 장병들을 만나지 못했던 심영빈 하사의 어머니 김순자(53)씨도 “편지를 읽어 보니 (생존 장병들이) 다 내 아들같이 느껴진다.”면서 “빨리 마음의 짐을 덜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현구야, 제대도 같이 해야지 이놈아”

    현구야 대답해라.항상 내가 부르면 ‘내 동기, 내 동기’하면서 반겨줬잖아. 우리 같이 입대했는데…같이 배에 남아서 제대일만 기다리며 버텨왔잖아.  제대도 같이 해야지 이놈아. 지금 나 혼자 내버려 두는 거냐?  제발 돌아와라 보고싶다.    천안함 침몰 생존 장병이 실종자인 입대동기 강현구 병장에게 쓴 편지가 9일 언론에 공개됐다. 전날 실종자 가족들이 생존 장병과 만난 뒤 가져온 편지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병사는 생사 여부가 불분명한 자신의 동기 강 병장의 이름을 부르며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랐다.  ”난 네가 내 옆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내 동기’라고 외치며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돌아와라. 현구야 보고싶다.”  이와 함께 생존 장병이 실종자 가족에게 쓴 편지도 공개됐다.  그는 “죄송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습니다.”며 “모든 대원들을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라는 심경을 전했다. 이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아래는 두 통의 편지 전문. ●첫번째 편지 내 동기 현구야 현구야, 대답해라 항상 내가 부르면 ‘내 동기, 내 동기’ 하면서 반겨줬었잖아. 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TV같이 보자며 재촉했었잖아. 정박 때나 항해 때나 항상 같이 TV 봤었는데, 그지? 지금 니가 없어서 너무 허전하다. 진짜 동기라곤 너밖에 없었는데 나혼자 살아있어 너무 죄책감이 들어. 너의 웃는 모습이 보고싶다. 동기라면서 항상 챙겨주고 제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좋아했었잖아. 내가 제대하고 나서도 잊지 말고 연락하며 지내자고 얘기한 거 기억나냐? 나는 니가 재밌는 이야기라며 들려준 것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얼마나 웃겼었는데. 다시 들려주면 안되냐? 진짜 듣고 싶다. 항상 나 먹으라며 부식 챙겨주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며 얘기했었지. 나는 항상 얻어먹으며 너한테 해준 게 별로 없어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내 동기 현구야. 2008년 7월7일 해군에 입대하여 2중대 1소대도 같이 나왔고 천안함에 2008년 4월8일 같이 천안함에 전입했었잖아 너랑 진짜 2년 되는 군생활 중 몇일 빼곤 항상 같이 있었잖아. 제대도 같이 해야지. 이놈아 지금 어디 있는 거냐? 나혼자 군생활하라고? 지금 나 혼자 내버려 두는 거냐? 같이 배에 남아서 제대일만 기다리며 버텨왔었잖아. 아... 나는 내가 너무 싫다. 하나뿐인 동기들 챙겨주지도 못하고 혼자 제대를 할 생각하니 너무 참담하다. 난 너가 내 옆에서 ‘하나뿐인 없는 내 동기’라고 외치며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그 순간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다. 살아가면서 널 ‘하나뿐인 없는 내 동기’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니까 제발 돌아와라. 현구야 보고싶다. ●두번째 편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저희는 모든 대원들을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희 또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슬픔을 나누면 나눌수록 줄어듭니다. 살아돌아온 저희가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평소에 더 잘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희 모두가 아들, 형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옆에서 부르면 웃으며 대답할 것 같고 함께 전역후 꿈과 야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농담도 하고 싶습니다. 너무 보고싶습니다. 너무 보고싶습니다. 너무 보고싶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힘내십시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침몰 13일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최원일 함장을 포함한 생존 승조원 58명 가운데 57명이 7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신은총 하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발생 보름이 다 돼가는데 가족들은 실종 장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함장도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최원일 함장) 실종된 장병들이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갖고, 복귀신고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고 해역에서의 주임무는 무엇이었나. -(최 함장) 2008년 8월에 부임해 20개월 근무했다.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16회 정도 경비했다. 주요 임무는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정확한 사고발생 시간은 →사고 시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몇시 쯤 사고가 났나.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한 시간이 21시24분이다. 그 시간에 대해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다. →9시16분쯤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큰 소음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들린 게 있나. -(통신장 허순행 상사) 9시14분부터 18분까지 통화를 했다. 함 내부에서 들렸다면 분명 전화를 끊고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들렸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9시16분 당시 좌현 함교 외부 당직이었다. 16분대에 일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디젤엔진이나 기관실 등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나. -(정종욱 상사) 함정이 6노트(11㎞) 저속일 때는 디젤엔진으로 기동한다. 군생활 17년 됐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전혀 들은 바 없다. →포술장의 최초 보고 내용과 ‘피격’이라고 한 것의 의미는. -(최 함장) 비상통신기와 휴대전화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가 계속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현장 구조가 어려워 옆에 허순행 상사를 위치시켜 지시한 내용을 전파하라고 했다. ‘뭐에 맞은 것 같고 충격이 너무 컸다.’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김광보 중위) 밖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함대 직통실에 보고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직통실 전화가 아니라 군부대 교환대를 이용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 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처한 위치나 상황, 구조요청 등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안난다. →함장이 사고시각을 침몰 다음날 27일 9시25분으로 했다가 28일 번복한 이유는. -(최 함장) 당시 전술지휘체계(KNTDS) 컴퓨터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측화면에서 오후 9시23분으로 확인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 보좌하고 있었다. ●사고 순간, 꽝 소리는 두번 →‘꽝’ 소리가 두 번 났는데, 파편을 본 사람 있나. -(전탐장 김수길 상사) 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꽝, 꽝’ 소리를 두번 느꼈다.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줄 알고 제가 바로 전탐실로 향했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이 났다고 발표가 됐다.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병기장 오성탁 상사)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암흑세계였다. 아무 것도 안보였다.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만져보니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순간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쾅’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컸다. 문 주위의 컴퓨터책상이 모두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가족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잡히는 집기를 모두 치워서 15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생각했다. →화약 냄새라든지 폭발 징후라고 느꼈던 것들이 있었나. -(오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라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안났다. ●사고직후 물기둥은 못봐 →갑판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물기둥은 봤나 -(김 상사) 침실에 들어가는데 ‘쿵’ 소리 후 3∼5초 있다가 다시 ‘쾅’소리 났다. 90도로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 소화호스 타고 5∼7분 걸려 탈출하고 난 뒤 달빛 보고 외부로 향하려고 하는데 외부 함미가 없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함정은 야간이 되면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적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각종 문을 닫고 있다. 기본적인 항해등만 켜고 항해해 물기둥은 실제적으로 볼 수 없다. →천안함이 오래됐다. 물이 새는 등 내부 문제는 없었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물이 샌다고 하는 경우는 잘 모르는 대원들이 함정 내부에 온도차에 의해서 파이프에 물이 맺히는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외부에서 물이 스며드는 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안전점검 받은 일자는. -(이 대위) 부임한 지 50일 가량 됐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항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니까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본다. ●해경 구조선에서 지휘보고 →사고 후 구조대가 오기까지 한시간 동안 함장 지시는. 뭐하고 기다렸나. -(박 대위) 함교에서 좌현 통로로 외부로 나온 뒤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 구조세력이 왔을때 선체에 접근을 해서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이함시킬지 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통신관 박세준 중위) 전투상황실 당직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많은 장비들이 떨어졌다. 전탐실에서 끼어있었던 하사 2명을 구조한 뒤 올라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했다.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함장실 앞에 있는 외부 도어를 풀고 가장 먼저 올라왔다. 확인 결과 함미가 안보였다. 여러 대원들이 갑판 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이 잠겨 있어서 풀려고 노력했고 함장이 구출된 뒤 인원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통신망으로 상황전파 후 침착하게 함장 지시에 따라 대처하면서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사병들 가운데 함미를 사고 직후 본사람 있나. 구조 직후 함장이 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나. -(최 함장) 해경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나는 사관실로 이동했고, 병들은 치료 휴식을 위해 해경정에 있는 침실에 배치됐다. 해경에서 지휘보고가 이뤄졌다. 참모총장, 작전사령관과 통화해 보고를 했다. 휴대전화 회수는 사실이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 곳에서 이뤄졌고 당시 피흘리고 다리 골절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란방지 차원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암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배가 출렁인다.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상황시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최 함장) 당시는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사고원인은 차후였다. 오후 10시32분 통화할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충격으로 느꼈다. →어뢰, 기뢰, 암초, 내부폭발, 선체폭발 등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최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며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 ●사고당시는 정상근무중 →사고 직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 비상상황인가 휴식상황인가. -(박 대위) 함교 당직사관으로서 정상근무 중이었다.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나한테 보고가 됐을 거다. 따로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 직전이나 혹은 그 이전이라도 함정의 소나(음파탐지기)에 이상징후 포착된 것 있나. -(홍승현 하사) 특별한 음탐신호가 없었다. 당직자는 정상근무였다. →사고직전 외부와 통화했던 승조원들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 끊을 만한 상황이 있었나. -(허 상사) 오후 9시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라서 관련해서 통화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주라고 했다. 이상 상황은 없었고 바로 통신실로 복귀했다. -(기관장 이채권 대위) 기관장이 상황이 있거나 주로 근무하는 위치는 기관조정실이다. 당시 정말 특별상황이 있었다면 고속추진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당연히 기관조정실에 있어야한다.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후타실에 5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 갔을 것으로 보나. -(오 상사)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거기 가 있는다. 사고발생 한시간 반 전에 가서 늘 운동했었다. 그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후타실에 안 갔다. 추정되는 5명은 항상 운동하는 인원이다. →함미부근 후타실에서 운동할때 어떤 복장으로 가나. -(전준영 병장)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 그랬을 거다. 나는 침실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 없었기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실망하다 절망한 가족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5시간 만에 함미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기적을 바라는 실낱같은 기대감이 허물어졌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긴급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시신의 신원이 나오기 전에는 극도의 전화 공포증을 보이는 등 아노미 상황을 방불케 했다. 이상민 병장의 누나 상희(28)씨는“군에서 (사망사실을 알리는) 전화 온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며 “불안해서 미치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앞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진행된 천안함 생존장병 합동기자회견을 유심히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음만 아프다. 오히려 안 보는 게 나을 뻔 했다.”며 고개를 젓는 가족들도 있었다.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예비군훈련장 내 실종자 가족숙소에서 TV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일부 가족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조진영 하사의 아버지는 “자식을 해군에 보낸 것을 이렇게 후회해 본 적이 없다.”며 말끝마다 한숨을 빼놓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만난 김종헌 중사의 작은 아버지 호중(59)씨는 부대 밖 해군회관 앞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면서 천안함 생존 장병 합동기자회견을 시청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씨는 “처음부터 기대는 안했지만 이 정도로 실망스러울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화가 난것 같다는 말에 조씨는 “기가 차서 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렇게 애들 장난보다 어설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군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씨도 “(생존 장병들이)이미 입을 다 맞추고 나왔다.”며 “지난 13일동안 한 것이 고작 저렇게 입을 맞추는 것이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2년 서해교전 생존자였던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국방부가 모든 책임을 생존 장병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면서 “생존장병들을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환자복 입은 사람들을 줄세워서 앉혀 놓고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장병들 침통… 눈물 흘리기도

    천안함 사고 이후 13일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생존 승조원 57명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으며, 일부는 사건 당시 괴로운 기억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만 살아돌아왔다는 죄책감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신은총 하사를 제외하고 최원일 함장을 비롯해 모두가 참석했다. 7일 오전 10시25분쯤 환자복 차림의 천안함 승조원들이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일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일부는 목발을 짚기도 했다. 목과 허리에 깁스나 보조대를 착용한 장병도 있었다. 가슴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장병들은 어깨를 쉬이 펴지 못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실종된 동료들이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 생각에 괴로워하는 듯했다. 질의응답에 앞서 합동조사단 발표가 진행되자 일부 장병들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훔치거나 눈을 감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중령, 소령 등 영관 장교와 위관 장교 및 상사·중사·하사 등 부사관들이 대부분 대답했다. 사병 중 대답한 사람은 당시 갑판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황보상준 일병과 전준영 병장 2명뿐이었다. 전 병장은 울음이 복받쳐 나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함미 부분 후타실(체력단련실)에 있을 장병들이 어떤 복장을 하고 있겠나.”는 기자의 질문에 “보통 우리가 운동할 때는 소복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승조원들이)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가 들썩였다. 눈물이 새어나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간신히 이어갔다. 후타실에 있을 5명의 승조원이 생각나는 듯했다. 전 병장은 대답이 끝나고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건 눈을 연신 비볐다.
  • “세계는 하나 될지라도 주체의식 잃어선 안돼”

    “세계는 하나 될지라도 주체의식 잃어선 안돼”

    서양화가 오유화(57)가 후진 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마련한 ‘2010 규랑예술제’가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규랑(圭琅)’은 오 화백의 아호이다. 행사는 호훈화랑(대표 김영훈)이 주최하고 규랑예술제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정진)가 주관한다. 해마다 열릴 예정이며, 첫 회인 올해는 강용길·강정진·류명렬·박대규·박인환·박철환·이영희·전성기·차대영·하정민 등과 폴란드의 웨셀 휴이스만, 일본의 기타 히토시 등의 신진작가들이 총출동한다. ●오늘 개막식서 북연주 선보여 오 화백은 5일 “유망작가로 꼽히는 이들이 평소 전시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사재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6일 개막식에서는 평소 춤에 관심이 많았던 오 화백이 직접 북연주를 선보이는 등 전통 국악의 향연이 벌어진다. 김태곤은 소금을 연주하고, 무용가 장순향은 ‘흥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개막식 구성에서 엿볼 수 있듯 오 화백은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오 화백은 “디지털 세상에서 사는 현대의 작가들은 사유의 철학이 더욱 있어야 한다.”면서 “세계는 하나가 될지라도 주체의식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서양의 매체와 동양의 철학을 조화롭게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량있는 후배들 활동에 큰 도움 이런 그의 노력은 최근작 ‘장생도(長生圖)’ 시리즈에서 잘 드러난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해, 구름, 소나무, 대나무, 거북, 학, 사슴 등을 다룬 십장생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양의 전통적인 그림 소재다. 김남수 미술평론가는 장생도 시리즈를 두고 “작품 ‘십장생’은 섬세한 필치와 극세필 묘법 같은 초현실주의적 화법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작품으로 서양화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한국미술의 창조적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체의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오 화백의 소신처럼 동양적인 소재를 서양적인 기법으로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는 평이다. 신작 ‘춤추는 화가’ 또한 마찬가지다. 규랑예술제 운영위 측은 “오 화백은 자신의 작품활동뿐 아니라 역량있는 후배들을 발굴해내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미술계의 대선배”라면서 “기꺼이 사재를 내놓은 오 화백의 뜻이 퇴색되지 않게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는 예술제로 키워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772함 실종자는 귀환하라. 마지막 명령이다”

    “772함 실종자는 귀환하라. 마지막 명령이다”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천안함 실종 군인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명령하는 글이 전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덕규라는 네티즌은 해군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772는 천안함의 고유 식별번호다. 그는 지난달 26일 밤 실종된 천안함 승조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그들의 생환을 간절히 염원했다.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귀대하라.”고 적었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한글자 한글자 가슴을 후벼판다. 정말 무사히 살아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개인블로그 등에 퍼나르고 있다. 비록 물리적인 힘은 없는 글일지라도 해저 수십미터 깊은 바다에, 그리고 아직은 아무 대답없는 하늘에 이 글이 닿길 간절히 바란다. ●다음은 글의 전문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772 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 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 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왜 자꾸 이런 일이…” 울먹인 연평해전 유가족

    [천안함 침몰 이후] “왜 자꾸 이런 일이…” 울먹인 연평해전 유가족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갔는데….”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는 1일에도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아침 일찍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한 박동혁 병장, 황도현 중사, 윤영하 소령의 어머니가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박 병장의 어머니인 이경진씨는 “한 준위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강원도에서 아침 일찍 올라왔다.”면서 “남을 도우려다가 이렇게 되다니….”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소령의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잠도 잘 못 잤다.”면서 “우리 아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갔는데 왜 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이들은 유가족의 심정을 헤아린 듯 안정을 취하고 있는 고인의 부인을 따로 만나 보지 않은 채 조용히 빈소를 떠났다. 고인의 입관식은 오전 10시 30분쯤 시작돼 1시간가량 진행됐다. 유족 10여명이 한 준위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다. 유족들은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복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분향소에는 고인의 곁을 떠나지 못한 조문객 20여명이 밤을 세우면서 고인과의 추억을 기렸다. 오전 10시부터는 각 부대의 단체 조문행렬이 다시 시작됐다. 이날까지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모두 2900여명으로 이중 일반시민 조문객도 200명이 넘었다. 전날에 이어 군 고위 관계자와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빈소를 찾았고, 역대 해군참모총장 20여명과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김양 국가보훈처장, 창조한국당 지도부, 공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장성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조문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육군 7사단 양승현병장 78세 실종 할머니 구조

    군부대 장병들이 강원도 화천에서 실종됐던 70대 할머니를 이틀만에 무사히 구조했다. 28일 화천군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4시쯤 육군 7사단 양승현(23) 병장이 동촌리 마을 인근 운봉골 숲 속에서 전날 낮에 실종됐던 이모(78) 할머니를 발견, 병원으로 후송했다. 할머니가 실종되자 마을 주민, 공무원, 경찰, 소방대 등 400여명이 수색에 나섰고 육군 7사단도 병력 100여명을 투입해 수색을 도왔다. 당시 이 지역은 밤사이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여서 자칫하면 할머니의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 병장은 “1박2일 동안 산속을 헤매던 할머니를 본 순간 콧등이 찡해졌다.”면서 “할머니를 업고 병원 후송차로 모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약간의 탈진 증세 이외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제대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실종자 가족 눈물바다

    [천안함 침몰 이후] “제대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실종자 가족 눈물바다

    전역을 채 3개월도 남기지 않은 이상민(21) 병장의 가족과 친지들은 26일 밤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불과 보름 전인 지난 13일 제2함대 면회소에서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마련해온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던 그였다. 손위 누나 세 명과는 나이 차가 많은 데다 외동아들이어서 이 병장의 부모는 누구보다 간절히 아들이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길 기도해 왔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막내누나 상희(28)씨는 “면회할 때 같은 배에 탔던 박보람(실종) 하사를 친형처럼 따르며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준다고 좋아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병장의 삼촌과 매형은 사고 다음날인 27일 밤 안타까운 마음에 수색작업이라도 보기 위해 백령도로 떠났다. 이 병장은 군 입대 전 고향인 충남 공주시 인근의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을 낸 ‘효자’였다. 어머니가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자 자신이 어렵게 번 돈 300만원을 선뜻 내놓아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누나 이씨는 “해군 측이 문이 잠겨 있다면 물이 들어가지 않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면서 “상민이가 돌아와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역을 불과 보름 앞둔 이상희(23) 병장의 가족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의 한 대학교 조리학과 1학년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이 병장은 조리병으로 근무하면서 전역 후 일본에서 요리를 공부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가족들은 “이번이 마지막 훈련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눈물을 훔쳤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