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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자정의 태양’과 함께… ‘제야의 종’ 10만명 운집 예상

    ‘자정의 태양’과 함께… ‘제야의 종’ 10만명 운집 예상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보신각 제야(除夜)의 종 타종행사를 시작으로 힘찬 여정을 출발한다. 서울시는 31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인 2024년 1월1일 새벽 1시까지 보신각~세종대로에서 ‘2023 제야의 종·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보신각에서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약 400m 거리에서는 사전공연·새해 축하공연 등이 펼쳐진다. 메시지 깃발 퍼포먼스, 탈놀이와 북청사자놀음, 농악놀이패 공연도 열린다. 올해 보신각 타종은 시민들이 직접 추천한 시민대표와 글로벌 인플루언서 18명이 함께한다. 지난 8월 3일 서현역 ‘묻지마 칼부림’ 당시 피를 흘리고 있던 여성을 발견해 응급처치로 더 큰 피해를 막은 18세 의인 윤도일씨, 지난 5월 19일 자신의 안경원 밖에 쓰러져 있는 홀몸노인을 발견해 119에 신고하고 병원비까지 지원한 김민영 씨 등 우리 사회 가까운 곳에서 활약한 의인들이 ‘영광의 얼굴’로 이름을 올렸다. 장엘리나, 키카 킴 등 인플루언서 6명은 서울의 타종 행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특히 장엘리나의 틱톡 구독자 수는 1330만이며 인스타그램은 342만, 유튜브 채널은 118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지난 2002년 귀화했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다녀 한국어에 유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세종대로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첫날’인 ‘자정의 태양’이 떠오른다. 자정의 태양은 지름 12m 규모의 거대한 태양 구조물로, 새해를 밝힐 예정이다. 서울 지하철과 버스 38개 노선은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한다. 하지만 막차 시간이 호선·목적지별로 다르고, 경기·인천행 열차는 대부분 자정 전 운행이 종료된다. 이 때문에 미리 막차 출발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행사장 인근 종각역은 역사 내 인파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에 대비해 31일 오후 11시부터 1일 새벽 1시까지 열차가 무정차 통과한다. 시는 이날 타종 행사에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전에도 철저히 대비한다. 서울시와 종로구 공무원과 경찰 등 4000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 성남시의회, ‘3분 조례-김종환 의원 편’ SNS 통해 공개

    성남시의회, ‘3분 조례-김종환 의원 편’ SNS 통해 공개

    성남시의회는 ‘3분 조례-김종환 의원 편’ 영상을 시의회 공식 SNS에 게시했다. 이번에 소개된 조례는 김 의원 등 17명이 발의한 ‘성남시 동물보호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이다. 본 조례는 지역에 반려·유기동물 돌봄센터 공공진료소를 설치함으로써 동물들의 전염병을 예찰·예방하고, 취약계층 소유 반려동물 진료를 지원함으로써 동물 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개정했다. 이번 개정은 반려동물 진료비 완화를 위한 표준수가제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병원비 부담을 줄여 반려동물이 유기될 가능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예방함으로써 성남시민과 반려동물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례는 지난 2023년 2월 20일부터 시행 중이다. ‘성남시의회 3분 조례’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남시의회 의원들이 발의해 시행되는 조례를 시민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하는 콘텐츠이다. 조례를 발의한 의원들이 직접 출연하는 토크쇼 형식 등으로 진행되며 조례를 발의한 이유, 조례 발의 목적, 기대효과 등을 중점적으로 알리고 있다. 매주 수요일 17시에 공개되며, 성남시의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 8개월 아기가 숨진 그날, 엄마는 모텔에 있었다 [사건파일]

    8개월 아기가 숨진 그날, 엄마는 모텔에 있었다 [사건파일]

    분윳값도, 기저귓값도 없었다. 우편함에는 ‘연체금을 포함한 건강보험료 16만 1740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 꽂혀 있었다. 성매매로 임신해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홀로 1.87㎏ 아이를 낳아 기른 A(37)씨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가족과는 연락을 끊었고, 지능이 낮아 업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장에서도, 옷가게에서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정부에서 기초생계급여와 한부모 아동양육비로 다달이 주는 돈은 137만원. 월세, 기저귀, 분유, 난방비, 전기, 수도, 통신요금, 밥값, 옷값, 병원비 등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과금은 밀렸고, 당장 아이를 먹일 분윳값을 벌러 나가야 했다. A씨는 그렇게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게 됐고, 미숙아였던 아이는 또래 아이 평균의 발육으로 커가고 있었다. 2022년 5월 21일. ‘5시간에 35만원.’ A씨는 그날이 아이를 보는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배가 고파 우는 아이 입에 젖병을 물리고, 긴 베개를 올려 고정했다. 성매수남한테 돈을 받아 모텔에 있던 A씨는 가끔 아이를 돌봐주던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당장은 돌봐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집을 비운 지 두 시간이 지나 아이를 보러 간 지인은 아기가 긴 베개에 얼굴이 깔린 채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했고, A씨에게 전화해 알렸다. “밖에 나갔다 왔는데,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요.” A씨는 112에 신고했고, 성매매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복지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찰도 항소를 포기해 재판은 1심으로 종결됐다. 1심 재판부는 “취약계층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갖고 피해자를 보호·양육해 왔다. 단지 범행의 결과를 놓고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지적 능력 및 업무수행 능력, 경제적 형편 등 여러 사정을 봤을 때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 열위에 놓여 있는 사회적 보호 대상이라고 볼 여지가 크고, 정상적인 다른 직업을 얻어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2항에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피고인에 대한 일부 재정적 지원만으로는 자활 수단이 충분하게 마련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편집자 주 매일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사건파일]은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잊지 못할 사건사고를 전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전말, 짧은 뉴스에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려드릴게요.
  • [씨줄날줄] 개모차/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개모차/박현갑 논설위원

    얼마 전 공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가족을 방송에서 봤다. 50대로 보이는 부부와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생일 현수막과 축하 풍선을 내걸고 케이크와 간식으로 생일상을 차리는 모습이 나왔다. 주인공은 귀여운 반려견. 가족들은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손뼉 치며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른다. 비반려인에게는 이색적인 모습이나 반려인들에게는 가족 행사였다. 열 집 중 두세 집이 반려 가구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지난해 2370만여 가구의 25.4%인 602만 가구, 1306만명이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75.6%는 개를, 27.7%는 고양이를 양육하고 있었다(복수 응답 기준). 마릿수로는 개 544만여 마리 등 약 800만 마리로 추정됐다. 월평균 양육비는 병원비를 포함해 약 15만원이었다. 반려산업도 번창일로다. 반려동물 학교나 병원, 장례업체는 물론 반려동물 산책 대행 전문업체도 성업 중이다. 반려동물 전용 공간을 둔 커피전문점이나 식당도 늘고 있다. 최근 전자상거래업체인 G마켓에 따르면 올 1~3분기에 반려동물용 유모차가 사상 처음 유아용 유모차보다 많이 팔렸다고 한다. 전체 유모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 비중은 2021년 33%, 2022년 36%에서 올해 1~3분기 57%로 급상승했다. 반면 유아용 유모차는 같은 기간 67%, 64%, 43%였다. 유모차의 변신이 아닐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의지하는 ‘지팡이’로 바뀐 데 이어 반려동물의 나들이 수단이나 노령견의 휠체어로 쓰임새가 바뀐 셈이다. 자녀 보육과 교육 문제로 허리가 휘어질 대로 휜 국민들이 부지기수다. 꼬리를 흔들며 행복감을 주는 반려동물이니 유모차 주인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방치하면 저출산 해결은 더 힘들어진다. 이미 통계청은 2년 전 추계했던 내년 출산율 0.7명이 0.68명으로 떨어지고 2025년에는 0.65명으로까지 낮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유치원과 산부인과 병의원, 결혼식장이 사라진 자리에 반려동물학교, 요양병원, 장례식장이 들어선다. 지하철이 임산부석을 텅 빈 채로 두고 다니는 모습도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유모차가 ‘개모차’로 일반명사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 쓰러인 노인 돕고, 작은 음악회에 재능기부…서대문구 전국 첫 구정언론홍보 표창 눈길

    쓰러인 노인 돕고, 작은 음악회에 재능기부…서대문구 전국 첫 구정언론홍보 표창 눈길

    서울 서대문구가 나눔과 봉사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매월 구정언론홍보 표창을 시상했다고 25일 밝혔다. 구는 훈훈한 미담으로 언론에 보도되며 독자와 시청자들의 감동을 더하고 지역의 긍정 이미지를 확산시킨 우수 단체와 개인을 선정해 올해 2월부터 매월 표창하고 있다. 올해 서대문구에선 다양한 선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사례가 많았다. 산불 진화에 참여한 주민과 노인의 집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한 경찰관, 쓰러진 노인을 119에 신고하고 병원비를 건넨 안경사, 재능 기부로 상권 활성화에 기여한 유명 셰프, 신촌에서 열린 축제를 홍보한 외국인 유학생, 무료로 우산을 수리해 주는 봉사단, 명품 소나무를 관내 공원에 기증한 기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서대문구는 올해 62개 기관과 개인 42명에게 표창을 진행했다. 이달에는 11년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홀몸노인에게 쌀을 기부해 오고 있는 ‘서대문 아름장학회(회장 송건범)’와 ‘문화가 흐르는 홍제천, 작은 음악회’에 재능 기부로 참여한 ‘추계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단장 조성원) 및 문화공연팀(지역협력센터장 이용구)’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20일 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은 “뜻깊은 상으로 격려해주셔서 더 높은 자긍심으로 나눔과 재능 기부 활동을 힘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성헌 구청장은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추진하시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이 우리 사회에 희망을 더함은 물론 ‘행복 100% 서대문’ 구현의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수상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서현역 의인’ 등 제야의 종 타종인사 시민대표 선정

    지난 8월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당시 피해자들을 구한 18세 의인 윤도일씨 등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시민 대표로 참여한다. 서울시는 오는 31일 열리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참여할 타종인사 18명을 선정해 20일 발표했다. 시민 대표로 선정된 윤씨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당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여성을 발견하고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구조했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안경원 밖에 쓰러져 있는 기초생활수급 어르신을 구하고 병원비 등을 지원한 안경사 김민영씨와 골목에서 쓰러진 환자를 인명 구조한 방사선사 박상우씨 등도 포함됐다. 보호종료아동에서 자립준비 청년 멘토가 된 박강빈씨와 세종문화회관 꿈나무오케스트라 강사 홍린경씨, 청각장애 탁구선수 이창준씨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방사선사 박상우씨와 신신예식장 2대 대표 백남문씨,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고(故) 주석중 교수의 유가족, 아르헨티나 출신 열차 기관사 알비올 안드레스 씨 등이 시민대표로 참여한다. 앞서 시가 올 한해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 시민을 추천받은 결과 200여명이 후보군에 올랐다. 올해 처음으로 각 분야 민간 전문가 등 18명으로 타종인사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타종인사를 선정했다.
  • 성북구·성가복지병원의 동행… 사회적 고립 가구 위한 의료 지원 협력

    성북구·성가복지병원의 동행… 사회적 고립 가구 위한 의료 지원 협력

    서울 성북구가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병원인 성가복지병원과 함께 사회적 고립 가구를 위한 의료 지원에 나섰다. 19일 성북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 4월 성가복지병원과 협약을 맺고 ‘당신의 손을 잡아드려요’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사업은 통합 사례 관리 대상자 중 건강상 문제가 있지만 여러 이유로 진료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동주민센터 직원이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어 시작하게 됐다.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 대상자가 있을 경우 동주민센터에서 성가복지병원 측에 동행 방문을 요청한다. 성가복지병원 사회사업과 소속 수녀가 대상자 집에 직접 방문해 신체·정신적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내원할 수 있도록 함께 설득한다. 병원을 찾아 진료받기 어려운 주민만 병원 의료진이 가정을 직접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구에 따르면 구와 병원 의료진의 이러한 노력에 병원 진료를 시작한 주민도 생겼다. A씨는 2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으나 병원비와 병간호 문제로 수술을 거부하고, 퇴원 후 약물이 몸에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방받은 약도 전혀 먹지 않았다. A씨가 민간요법에 생계비 대부분을 지출하며 전문적인 건강 관리를 받지 않자 동주민센터가 병원에 동행 방문을 요청했다. 병원 소속 수녀들이 설득한 끝에 A씨는 자신의 병에 대해 인지하고 내원하며 진료받게 됐다. 한 동주민센터의 사례 관리 담당자는 “그동안 대상자들이 진료를 거부하면 손쓸 방법이 없었는데 병원에서 함께 설득하고 의료진이 직접 가정에 방문해 진료까지 해준 덕분에 대상자를 지원하는 데 큰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성가복지병원은 무료 진료부터 약 처방, 입원, 호스피스, 타 의료 기관 연계 등 의료 지원뿐 아니라 무료 급식, 이·미용, 목욕, 심리 상담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성가복지병원 사회사업과의 돈보스꼬 수녀는 “이웃들이 생활고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동행 방문을 통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들이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이끌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북구는 앞으로도 성가복지병원과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의료 지원을 위해 힘쓸 방침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가복지병원은 성북구의 큰 자원”이라며 “지역에 널리 알려 보다 많은 소외 이웃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성북구도 성가복지병원과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전 재산 있는 車 폐차장 보낸 노부부…잿더미 직전, 경찰관이 구했다

    전 재산 있는 車 폐차장 보낸 노부부…잿더미 직전, 경찰관이 구했다

    수년간 모은 돈을 폐차시킬 차량에 보관해두고는 깜빡하는 바람에 영영 찾지 못 할 뻔한 70대 노부부가 경찰의 도움으로 돈을 되찾았다. 18일 강원 양구경찰서에 따르면 70대 주민 A씨는 양구의 한 공업사에 노후한 스타렉스 승합차 폐차를 부탁했다. 그러나 A씨가 폐차를 맡긴 차 안에는 A씨 부부가 작은 한식 뷔페식당을 운영하며 수년간 힘겹게 모은 1600여만원이 보관돼 있었다. 이 돈은 병원비 등 노후를 위해 모아 두었던 전 재산이었는데, A씨는 폐차 부탁 후 수일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지난 7일 “소중한 전 재산 1600만원을 보관하던 차량을 폐차장에 보내버렸다”며 경찰 민원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공업사에도 다시 찾아갔지만, 공업사에서는 “차는 이미 폐차돼 용광로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기도 이천의 한 제철소까지 방문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긴 일이라고 여긴 A씨는 그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양구경찰서 생활안전계에서 분실물 업무를 담당하는 홍찬혁(26) 순경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던 홍 순경은 A씨에게 춘천으로 이동해 A씨 차량이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도착한 장소에는 폐차를 맡겼던 A씨 차량이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A씨는 곧바로 차 안에서 앞 좌석 시트 주머니를 확인했고, 그곳에는 자신이 수건으로 감싸뒀던 돈이 있었다. A씨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홍 순경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를 살게 해 준 젊은 경찰관을 격려해달라” A씨는 이 같은 사연과 함께 감사 인사가 담긴 7장의 편지를 양구경찰서장에게 보냈다. A씨는 편지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저를 살게 해준 경찰관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해 그냥 있을 수 없었다”며 “모든 분에게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경찰서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저를 살게 해 준 젊은 경찰관을 격려해달라”며 “서장님께 큰절을 올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홍 순경은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주민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함께하는, 신뢰받는 경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마취 깨어나 보니 멀쩡한 발에 철심”…‘영구장애’ 호소

    “마취 깨어나 보니 멀쩡한 발에 철심”…‘영구장애’ 호소

    서울의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왼발 대신 멀쩡한 오른발 뼈를 수술한 사건이 발생했다. 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직장인 A(29)씨는 지난 3월 10일 왼쪽 발목이 안쪽으로 접혀 바닥을 제대로 디딜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의 B병원에서 수술받았다. 2시간여의 수술 이후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멀쩡하던 오른 발목뼈가 잘리고 철심 3개가 박혀 있었다. A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해 의료과실 증거를 확보하고 다시 왼발 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 후 양쪽 다리를 모두 쓸 수 없게 돼 무려 5개월여 동안 입원했다.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4개월째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최근 가까스로 걸을 수는 있게 됐지만 발목이 구부러지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 집도의는 TV에도 출연한 박사 출신의 유명 의사였다. 담당 의사는 “수술 당일 함께 수술에 참여한 직원이 A씨의 왼발이 아닌 오른발에 수술 준비를 해놔서 그대로 진행하게 됐다”면서 “A씨의 오른 발목도 외관상 화상이 있고 온전하지 않아 수술 부위가 잘못됐음을 바로 알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A씨의 오른발은 복숭아뼈를 잘라 여러 뼈를 철심으로 연결해 발목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 놓았는데, 지금은 뼈들이 다 굳어진 상태여서 과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한다. A씨는 7살 때 공터에 피워둔 모닥불이 몸에 옮겨붙으며 큰 화상을 입어 왼발을 제대로 못쓰게 됐고 과거에도 4차례 수술을 받았다. 오른발도 화상을 입기는 했지만 걷고 뛰는 데는 문제가 없어 축구, 등산 등도 즐겼다고 한다.A씨는 “수술을 위해 왼발의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을 찍는 등 모든 검사를 왼발 중심으로 했는데 멀쩡한 오른발을 건드렸다. 오른발은 화상을 입었지만 축구와 달리기도 했다”면서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술 후 거의 1년 가까이 방치된 느낌이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병원과 보상금도 합의하지 못했다. 나의 억울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병원은 A씨의 병원비를 받지 않고 그의 재활치료를 돕기 위해 병원 근처에 월세방도 얻어줬다고 한다. B병원은 “왼쪽 발목은 (오른발 수술 후) 곧바로 수술해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수술 전 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지만, 교정 후 원활히 회복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다른 병원에서 모두 어렵다고 거절했지만 우리 병원에서 수술한 것이다. 오른 발목은 구부리는 각도의 제한은 일부 있겠지만 향후 나사 제거 수술과 재활을 통해 경과를 더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경우를 대비해 가입해 둔 한국의료배상공제조합에 보상을 신청해 심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추가 보상도 피해자와 조율해 최대한 원만하게 진행하고자 한다”면서 “환자분과 거의 매주 1회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병원에 대한 불만과 원하는 부분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 “치과의사가 직접 이 닦아줘”… 쪽방촌 주민들 활짝 웃었다

    “치과의사가 직접 이 닦아줘”… 쪽방촌 주민들 활짝 웃었다

    “틀니를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멀쩡한 치아도 망가지더라고요. 치아가 많이 빠진 상태로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비용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치과도 못 갔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무료로 새 틀니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7년째 살고 있는 나정해(69)씨는 10살 때 어머니를 여읜 이후 구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한 탓에 20여년 전부터 틀니를 낀 채 생활해왔다. 틀니를 오래 착용하다 보니 치아 상태가 악화했지만 병원비 부담에 병원엔 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쪽방촌에 무료 치과 진료소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들어서면서 나씨의 치아 걱정은 사라졌다. 센터에서 틀니를 새로 맞추고 스케일링도 받았다. 나씨는 치료 후에도 치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리받고 있다.14일 돈의돈쪽방상담소 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에서 열린 1주년 성과 보고회에 참석한 나씨는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씨는 “일반 치과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직접 이를 닦아주는 건 못 봤는데 센터에선 선생님이 직접 내 이를 하나하나 닦아줬다”면서 “이 치과가 ‘진짜 치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나씨의 소감을 듣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눈물을 훔쳤다. 서울시는 치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제적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치과를 찾지 못하는 쪽방 주민의 건강 회복을 위해 행동하는의사회, 우리금융미래재단과 협약을 맺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753명이 센터를 찾아 치료받았다. 주민들은 임플란트, 틀니, 보철, 잇몸·신경 치료, 스케일링을 비롯해 칫솔질 교육과 불소 도포 등을 받았다. 진료는 전임 치과위생사 1명과 자원봉사 치과 의사·치과 위생사 18명이 맡고 있다. 시는 센터에 대한 쪽방 주민의 반응이 좋고 수요가 많은 만큼 앞으로 의료 인력을 추가로 발굴하고 센터 1곳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오 시장은 “쪽방 주민 무료 치과 진료 사업은 주민의 수요와 생활 특성을 반영해 기획하고 두 협약 기관과 함께 기초부터 튼튼하게 세워 온 사업”이라며 “앞으로도 시민의 마음을 북돋고 활짝 웃게 하는 복지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 최서원의 옥중편지 “내 딸과 조민 불공평… 도와달라”

    최서원의 옥중편지 “내 딸과 조민 불공평… 도와달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과 자신의 딸 정유라를 비교하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소연했다. 14일 최씨의 딸 정씨는 페이스북에 모친의 옥중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최씨는 편지에서 자기 딸인 정씨와 조 전 장관의 딸 조씨 모두 부정 입학을 이유로 대학 입학 자체를 취소당했지만, 너무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딸아이는 승마 특기생으로 대학, 고등학교 입학을 취소당해 중졸인 데다 배운 건 승마뿐이고 얼굴은 다 알려져 일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다. 재산 등 모든 것을 나라가 다 빼앗아 갔는데 조씨는 지킬 건 다 지켰다”고 했다.최씨는 “가장 노릇을 하는 우리 딸은 엄마 병원비 내는 것도 허덕이는데 조씨는 후원도 많이 받고 여행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에 계신 분들께 간청드린다. 제발 유라에게 비난하지 마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최씨는 옥중 편지로 자신의 석방을 촉구한 바 있다. 최씨는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를 통해 공개한 편지에서 “이번에 사면이 되지 않으면 현 정부에서는 제 사면과 복권을 해줄 수 없는 판단이다. 허물 좋은 비선 실세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으로 엮어서 모든 것을 빼앗겼다”며 “그런데도 작금에 벌어지는 현실에 제가 묵언수행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이어 “모든 것이 진실보다는 거짓과 가짜뉴스로 국민을 선동하고 이 나라 최초 여성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역사에도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을 저에게, 제 잘못으로 폄훼하고 비판한 것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최씨는 2020년 6월 1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징역 21년을 확정받고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만기출소 예정일은 최씨의 나이 만 81세 때인 2037년이다.
  • [데스크 시각] 사후약방문이 전부… 대책 없는 ‘로맨스 스캠’/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데스크 시각] 사후약방문이 전부… 대책 없는 ‘로맨스 스캠’/정현용 플랫폼전략부장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4월 ‘데이팅 앱’을 통해 한 20대 남성을 알게 됐다. A씨는 불과 12일 동안 이 남성에게 1억 9900만원을 송금했다. 남성은 “운영 중인 업체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당해 돈을 탕진했다”, “병원비가 필요한데 나중에 갚겠다”며 온갖 구실을 댔다. 그래도 여성은 남성을 믿었다. A씨는 남성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알고 있는 건 프로필 사진과 이름뿐이었다. 그렇지만 우울한 마음을 수시로 달래 줬던 남성이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고 하니 외면할 수 없었다. A씨는 은행에서 어렵게 대출을 받고 주변에서도 돈을 빌려 53회에 걸쳐 2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건넸다. 이후 가족의 충고로 사기 피해를 의심한 A씨가 남성을 경찰에 신고하자 검은 실체가 드러났다. 남성의 프로필 사진은 가짜였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백수였다. 심지어 그는 비슷한 사기 행각으로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자였다. 신원은 특정했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남성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가 경찰에 체포된 시기는 1년 뒤였다. 그동안 남성은 도박으로 A씨의 돈을 모두 탕진했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이런 개별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 데이팅 앱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사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접수한 사건만 88건에 이른다. 2019년의 4배 규모다. 경찰 신고 건수와 신고조차 접수되지 않은 사례를 합하면 1년간 벌어지는 관련 사건이 수백 건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최근 수십억원대 투자사기 혐의가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전청조씨도 한때 데이팅 앱에서 결혼을 원하는 부유한 20대 여성 행세를 하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 미국도 로맨스 스캠 피해가 극심한 나라 중 하나다. 인터넷 정보업체 소셜캣피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로맨스 스캠 피해액 규모는 13억 달러(약 1조 7147억원)에 이른다. 2021년과 비교하면 피해액이 138%나 늘었다. 피해자들의 절규가 빗발치자 미국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 하원에서 발의된 ‘온라인 데이팅 안전법안’이 그것이다. 데이팅 앱 서비스 사업자에게 신원 확인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비록 회기 만료로 폐기되긴 했지만, 처음으로 처벌이나 피해자 사후 관리가 아닌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규제를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며 위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남은 방법은 사후 대처뿐이다. 현재 ‘청소년보호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외하면 데이팅 앱 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허위 광고와 불법촬영물 유통에 대한 사후 처분에 집중돼 있다. 그 외엔 데이팅 앱을 이용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규정돼 있을 뿐이다. 사기범은 이런 제도적 허점을 파고든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사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데이팅 앱에 안전한 서비스 이용 방안을 담은 정보 고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상대방의 허위 정보 제공 가능성과 개인정보 공유 금지, 금전적 요청에 따른 송금 금지, 오프라인 만남 주의 사항 등이 그것이다. 미국 코네티컷주, 텍사스주 등은 이미 법으로 데이팅 앱 고지 문구 예시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데이팅 앱 시스템 내부에 사기 피해 신고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손쓸 방법이 없다”고 방관하는 사이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특정 범죄자의 반복적 범죄행위를 막을 근본적 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경기소방 ‘따뜻한 동행119’ 사랑나눔 확산…1년 만에 지원금액 1억원 돌파

    경기소방 ‘따뜻한 동행119’ 사랑나눔 확산…1년 만에 지원금액 1억원 돌파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소방재난본부에서 추진 중인 이웃 사랑나눔 프로젝트인 ‘따뜻한 동행 경기119’의 세 번째 지원 대상자 13가구를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도 소방재난본부는 지금껏 3차례에 걸쳐 화재피해자와 경제적 취약 가구 지원 대상자 총 33가구를 선정해 1억 100만원을 지원했다. 지원 대상에 선정된 13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화재피해자 4가구와 경제 취약 가구 8가구, 119구급서비스 수혜 대상자 1가구 등이다. 선정된 이들을 살펴보면 구리시에 거주하는 70대 남성 A씨는 혼자 사는 1인 가정으로 지난 8월 집 안에 있던 휴대용 가스버너에서 불이나 얼굴과 팔, 어깨 등에 1~2도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기초연금 대상자이면서 일용직 노동자인 A씨는 화상으로 인해 병원 치료비와 각종 공과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평에 사는 70대 노부부는 남편은 뇌종양, 아내는 치매와 천식을 앓고 있는 어려운 여건 속에, 음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50대 아들이 지난 2021년 갑자기 쓰러져(뇌경색으로 독립생활 불가능)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마주하게 됐다. 아들의 병원비와 생활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가구로 이번 지원 대상자에 선정됐다. ‘따뜻한 동행 경기119’는 경기도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의 자발적 참여로 매일 119원을 적립, 기금을 마련해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시작해 1년 동안 약 2억 3000만원의 기금을 모았고, 한국소방시설협회 경기남부도회, 스타필드, 남촌의료재단 시화병원, 안성상공회의소 등 도내 기업체 및 단체에서 모금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소방공무원들이 업무성과로 받은 각종 포상금을 기부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소방은 앞으로 지원대상자를 지속적으로 선정해 지원할 예정이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적은 금액이지만 십시일반의 정성이 모여 도움이 절실한 분들을 조금이나마 돕게 된 것에 보람을 느끼고, 취지에 동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대리모 3명 통해 자녀 셋 낳은 60대 입건

    60대 남성이 대리모 3명을 통해 세 자녀를 출산한 뒤 호적에 올려 양육해 온 사실이 드러나 형사 입건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매매) 혐의로 30대 대리모 A씨, 50대 여성 B씨 등 브로커 2명, 의뢰인인 60대 친부 C씨 등 총 4명을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인터넷을 통해 만난 B씨와 출산비 및 병원비,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4900만원을 받고 대리모를 하기로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어 이듬해인 2016년 10월 29일 지방의 한 병원에서 C씨의 정자를 이용해 임신한 남자 아기를 출산한 뒤 C씨 측에 아기를 건네줬다. 이 사건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2015~2022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평택시는 “(복지부로부터 통보받은 사례 중) 아동의 생사가 불분명한 사건이 있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경찰은 생모 A씨를 입건해 조사했다. A씨 조사 과정에서 브로커 B씨의 존재를 인지한 경찰은 B씨의 소재를 파악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지난 9월에는 친부 C씨도 찾아냈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B씨를 통해 2명, 또 다른 브로커를 통해 1명 등 총 3명의 아기를 각각 대리모를 통해 출산해 양육하고 있다. C씨는 “이미 장성한 자녀들이 있으나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 대리 출산한 아기를 건네받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아동매매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 “아이 더 갖고 싶어서”…대리모 통해 ‘세 자녀’ 출산한 60대 남성 덜미

    “아이 더 갖고 싶어서”…대리모 통해 ‘세 자녀’ 출산한 60대 남성 덜미

    60대 남성이 대리모 3명을 통해 세 자녀를 출산한 뒤 본인의 호적에 올려 양육해온 사실이 드러나 형사 입건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매매) 혐의로 30대 대리모 A씨, 50대 여성 B씨 등 브로커 2명, 의뢰인인 60대 친부 C씨 등 총 4명을 형사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인터넷을 통해 만난 B씨와 출산비 및 병원비, 생활비 등 명목으로 4900만원을 받는 대가로 대리모를 하기로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어 이듬해인 2016년 10월 29일 지방의 한 병원에서 C씨의 정자를 이용해 임신한 남자 아기를 출산한 후 C씨 측에 아기를 건네줬다. 이 사건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2015년~2022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평택시는 “(복지부로부터 통보받은 사례 중) 출생 미신고 아동의 생사가 불분명한 사건이 있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했으며 경찰은 생모 A씨를 입건해 조사했다. A씨 조사과정에서 브로커 B씨의 존재를 인지한 경찰이 B씨 소재를 파악,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마침내 지난 9월에는 친부 C씨도 찾아냈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B씨를 통해 2명, 또 다른 브로커를 통해 1명 등 총 3명의 아기를 각각 대리모를 통해 출산해 양육하고 있다. C씨는 “이미 장성한 자녀들이 있으나,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서 대리 출산한 아기를 건네받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에 대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아동매매 혐의를 적용했다”며 “피의자들의 여죄 등 후속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 60대 아빠가 키운 자식 3명…대리모에 돈 주고 산 아기들이었다

    60대 아빠가 키운 자식 3명…대리모에 돈 주고 산 아기들이었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 과정에서 생사가 불분명한 한 아동의 생모가 자신은 대리모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평택 대리모 사건’의 수사 결과 임신 및 출산 의뢰인인 친부가 총 3명의 아기를 각기 다른 대리모들을 통해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6일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매매) 혐의로 30대 대리모 A씨, 50대 여성 B씨 등 브로커 2명, 의뢰인인 60대 친부 C씨 등 총 4명을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5년 인터넷을 통해 만난 B씨와 출산비·병원비·생활비 등 명목으로 4900만원을 받는 대가로 대리모를 하기로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듬해인 2016년 10월 29일 지방의 한 병원에서 C씨의 정자로 임신한 아기를 출산한 뒤 C씨 측에 아기를 건넸다. 이번 사건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2015년~2022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꼬리를 잡혔다. 평택시는 지난 7월 “(복지부로부터 통보받은 사례 중) 출생 미신고 아동의 생사가 불분명한 사건이 있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생모인 A씨를 형사 입건했다. A씨는 조사과정에서 “포털사이트의 난임 카페에서 B씨를 알게 돼 의뢰인 C씨의 정자를 받고 대리모를 하기로 했다”며 “돈을 받고 임신 및 출산 후 아동을 C씨 측에 건넸는데, 아이의 소재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브로커 B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금융거래 내역 분석을 통해 상호 간에 오간 금전 규모도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은 지난 9월 친부 C씨를 찾아내 현장 조사를 벌였다. 대리모 A씨가 낳은 후 C씨 측에 보낸 아동은 출생 신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며, C씨의 아들로 가족 등록이 돼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이 아동을 포함해 총 3명의 아동을 이러한 방식으로 낳도록 한 뒤 건네받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결과 C씨는 B씨를 통해 2명, 또 다른 브로커를 통해 1명의 아기를 각각 대리모를 통해 출산해 양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3명의 아동은 C씨 슬하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C씨는 출생증명서 없이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인우보증제’를 이용해 3명의 아동을 친자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우보증제는 병원 밖 출산으로 인해 출생증명서가 없는 경우, 출산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 2명을 증인으로 세우는 제도이다. 증인은 자녀의 부모와 친인척 관계가 아니어도 무방하며 나이 제한도 없다. 인우보증제는 악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2016년 말 폐지됐다. C씨는 “이미 장성한 자녀들이 있으나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서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아기를 건네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에 대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아동매매 혐의를 적용했다”며 “이번 수사에서 추가로 확인된 대리모 출산 아동 2명은 이미 다른 경찰서 2곳에서 각각 수사 중인 사건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예상 외로 대리모 사건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을 수사 과정에서 마주하게 돼 많이 놀랐다”며 “피의자들의 여죄 등 후속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경찰은 친자 여부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하는 등 보강 조사 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 “신고 다 했냐? 그럼 맞자”…신분증 요구했다 폭행당한 배달원 상태

    “신고 다 했냐? 그럼 맞자”…신분증 요구했다 폭행당한 배달원 상태

    배달로 술을 주문한 고객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는 20대 배달원이 “해당 고객은 ‘쌍방폭행’을 주장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JTBC ‘사건반장’은 지난 27일 취업을 준비하면서 배달일을 하다 고객에게 폭행당해 수백만원의 병원비가 나왔다는 20대 남성 A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로 배달을 간 A씨는 음식과 함께 소주 3병을 주문한 남성 고객 B씨를 만났다. 40~50대로 추정되는 B씨는 외견상 중년으로 보였다고 한다. 다만 규정상 술을 주문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대면으로 신분증을 확인해야만 했다. 신분증 요구하자 “시비거냐”…폭행 이어져 신분증을 요구하자 B씨는 “너 지금 시비 거냐”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씨가 “규정대로 해야 한다. 시비 거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B씨는 욕설을 하며 A씨를 강하게 밀쳤다. A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측에도 이 상황을 알렸다. 이때 B씨는 A씨에게 “신고 다 했냐”고 물었고 A씨가 “네 경찰관 오신대요. 기다리세요”라고 답하자 “그러면 맞자”라고 말한 뒤 폭행했다. 왼쪽 눈을 정통으로 맞은 A씨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에서 방어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이후에도 B씨의 무차별 폭행이 이어졌다. 고객은 ‘쌍방폭행’ 주장…전치 2주 진단서도 폭행을 이어가던 B씨는 본인 스스로 112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도착하자 쌍방폭행을 주장했다. B씨는 경찰에 “배달하는 사람이 3대 먼저 때렸다. 화나서 때리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하면서 전치 2주 진단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남성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며 “만약 내가 때렸다면 안경이라도 훼손됐을 것이다. 맞았다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경찰서에 걸어가는 게 말이 되냐”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B씨는 현장에서 경찰과 임의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CCTV 없어…“안와골절 등 전치 6주” A씨는 당시 현장에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는 점을 B씨가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B씨가) ‘여기 CCTV도 없다. 나도 맞았으니 쌍방이다. 경찰 와도 아무 의미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두 분 다 처벌 원하냐’고 묻자 B씨는 ‘저분이 그냥 가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들은 백성문 변호사는 “문제는 CCTV가 없는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건 몸에 남아 있는 상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해자로 추정되는 고객의 외관이 어땠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으면 쌍방폭행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는 안와골절 등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치료비는 600만원에 달하는 상황인데, 배달 앱 측에 산재 문의를 했으나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들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 ‘생존율 20%’ 660·550·540g 초극소 미숙아 세쌍둥이 치료 성공

    ‘생존율 20%’ 660·550·540g 초극소 미숙아 세쌍둥이 치료 성공

    국내 의료진이 생존율 20% 정도의 1㎏ 미만 ‘초극소 미숙아 세쌍둥이’ 치료에 성공했다. 27일 순천향대 부천병원에 따르면 베트남 이주 여성 쩐 티 화이는 지난 7월 17일 임신 23주 만에 세쌍둥이 김느, 김흐엉, 김난을 조산했다. 세쌍둥이의 체중은 각각 660g, 550g, 540g으로 초극소 저체중 출생아였다. 신생아 평균 체중은 성별에 따라 3.2~3.3㎏ 정도다.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미숙아 중에서도 세쌍둥이는 초극소 미숙아로 분류됐다. 이런 경우 생존 확률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 즉시 전문적인 소생술이 없으면 사망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병원 의료진이 모여 차례대로 소생술과 처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세쌍둥이에게는 뇌출혈, 동맥관 개존증, 망막증, 장폐색, 장천공, 패혈증, 만성 폐질환 등 각종 중증질환의 시련이 찾아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원비도 4억원가량으로 늘어났다. 다행히도 의료진이 헌신적인 노력으로 보살핀 덕에 첫째는 지난 18일 출생 4개월 만에 2.6kg의 체중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둘째와 셋째도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퇴원할 예정이다. 부모가 둘 다 이주노동자여서 어려운 환경이지만 순천향대 부천병원 사회사업팀이 여러 후원 기관과 연계해 현재까지 병원비 2억원을 마련한 상태다. 세쌍둥이의 베트남 이름을 모두 합치면 한국어로 ‘똑같은 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신응진 순천향대 부천병원장은 “세쌍둥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직원이 힘을 합쳤다”며 “인간사랑 정신을 실천한 매우 뜻깊은 치료였다”고 말했다.
  • 전청조 범죄일람표 공개… 8개월간 28억 4513만원 사기

    전청조 범죄일람표 공개… 8개월간 28억 4513만원 사기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씨와 결혼을 약속했던 전청조씨의 사기 종류와 금액이 드러났다. 적게는 1200만원부터 많게는 11억원까지 편취당한 피해자 중 일부는 가정과 인생까지 송두리째 무너진 것으로 알려져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연예뒤통령 이진호’에서는 전씨의 사기 행각이 담긴 범죄일람표가 공개됐다. 지난 2~9월 전씨가 벌인 사기 종류와 피해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총금액이 28억 4513만원에 달했다. 그보다 앞선 시기에 사기를 친 금액이 반영되지 않아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사기 명분도 다양하다. 해외 비상장 주식 투자 권유, 어플 개발 회사 투자 권유, 프로젝트 비용, 혼인 빙자 집 계약금, 병원비, 모래 사업 투자 권유, IT기업 상장 투자 권유 등이 내역에 적혀 있었다. 돈의 일부는 전씨의 경호 팀장으로 알려진 이모씨 계좌를 통해 오갔고, 어머니 계좌를 통해서도 오간 것이 확인됐다.피해자 수는 23명으로 남씨의 펜싱 클럽 코치, 독서 모임, 남현희의 조카들이 대상이다. 피해자 중에는 집안이 가난한데도 전씨에게 생활비와 월급을 뺏긴 사례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진호는 “범죄에 사용됐기 때문에 해당 계좌주 역시 법적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현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으며 조만간 재판받을 예정이다. 법률대리인을 통해 여러 차례 본인의 사기 혐의를 인정해왔지만 남씨와의 공범 의혹을 두고는 서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전씨는 지난 8일 남씨와의 대질조사에서 남씨가 사기 범행에 대해 올해 3월쯤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사기 피해자인 남씨의 펜싱학원 학부모도 남씨가 사기 범행을 모두 알고 있고 전씨와 사기를 공모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남씨는 사기 범행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남씨의 혐의와 관련해 명확하게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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