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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

    정문식(43) 이레전자 사장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는 끊임없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회사를 국내 대표적인 중견 영상가전 전문기업으로 키웠다. 칠전팔기의 인생을 살아온 만큼 그를 만나기 전 드센 사람이려니 상상했지만 차분하고 겸손했다.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는 열정도 가득했다. 이레전자의 올해 매출 목표는 2000억원이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동네에서 유일하게 수도가 있었던 전남 목포의 유지 출신이다.5·16 당시 아버지가 병역 기피자로 낙인 찍히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과음 탓에 10살이 되던 해에 간경화로 돌아가셨다.‘쾨쾨한 냄새, 뒹구는 술병….’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다. 13살 나이에 어머니와 상경한 그는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학교에선 친구들 머리를 깎아주고 방학 때는 청계천 엠프 공장에 나갔다.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왔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시장에서 버려진 배춧잎을 가져다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양공고 야간반에 진학한 뒤에도 신문 배달, 파출소 사환, 공장일 등 아르바이트는 계속됐다.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지려는 다급한 마음으로 특전사에 지원했다.“공수부대에 가면 낙하산을 탈 때마다 1만원을 준다.”는 공장 선배의 농담을 믿고서다.1982년부터 5년간 복무하며 어머니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댔다. ●“정보는 생명이다!” 군인 시절 만난 부인 유청자(42)씨와 결혼해 1990년 ‘이레전자’를 창업했다. 살림 집인 연립주택 반지하 방을 공장 삼아 전선을 일정 길이로 잘라 단자에 연결하는 일을 재하청 받아 생업으로 삼았다. 직원이라곤 그와 부인 유씨 단 둘뿐. 아무리 치워도 구리선 부스러기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어린 남매의 살갗을 파고 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500만원을 선배로부터 빌려 월세로 지하 5평 창고를 얻어 공장으로 개조했다.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러 밤에는 하청업자들이 벌이는 고스톱 판을 전전하며 담배나 술 심부름을 했다.1년여를 일해도 돈을 벌지 못해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새 거래처나 기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다.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덤핑 공세가 시작되자 하청일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새 정보와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해외 전자박람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993년 3월. 독일 하노버 전자박람회는 그에게 혁신을 가져다준 계기다. 국내에선 백만원이 훌쩍 넘는 휴대전화 단말기가 그곳에선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때문에 단돈 1마르크(한화 2000원)에 유통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이 국내에 도입되면 휴대전화 수요는 폭발적이다.1994년 차량 내에 시거잭을 이용한 휴대전화 충전기와 핸즈프리로 사양업인 전선가공업을 대체했다. 이듬해 휴대전화 충전기도 개발했다.3개월간 이천 현대전자 연구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한 끝에 단말기 개발팀 담당자를 겨우 만났다. 당시 현대전자는 휴대전화 단말기만 자체 생산했지 충전기는 하청업체에 맡겼다. 단말기 출시를 앞두고 이레전자가 현대전자 하청업체중 충전기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했다.1996년 충전기만으로 연 8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외국에서도 통하는 불도저 열정 사실 핸즈프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 불량품이 생산돼 전량 폐기처분한 경험이 있다. 아이디어만 있지 기술이 없던 게 문제였다. 교훈을 잊지 않고 언제나 우수한 파트너를 통한 아웃소싱을 추구한다. 현대전자에 납품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했던 것도 다른 기술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현대전자와의 물품 계약이 체결되면서 50평 공장만으로는 부족했다. 공장은 5평 창고에서 17평,30평,50평,150평으로 커지다 이윽고 1997년 지금의 구로공단 디지털 산업단지 한국전자협동 빌딩으로 이사했다. 당시 빌딩내 400평을 쓰다 계속 확장을 시도하면서 현재 전자협동 빌딩은 물론 인근 건물까지 총 6000여평을 쓰고 있다. 물론 이레의 오늘이 있기까지 현대전자와의 인연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협력업체가 계약을 중단하면 중소업체의 생사는 묘연해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새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휴대전화 충전기에 이어 900㎒ 무선전화기도 만들었다.1997년 미 라스베이거스 박람회내 미 최대 통신사인 벨 부스 앞에서 3일을 꼬박 기다렸다 사장 데니엘씨를 만나 900㎒ 무선전화기 10만대 계약을 따냈다. 그의 열정이 외국에서도 통한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이레전자’ ‘이레’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말로 ‘예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레전자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예비돼 있는 기업이란 얘기다. 어제의 고난은 오늘의 축복이 있도록 하기 위함일까? 그의 도전은 전화기에서 끝나지 않았다.2000년 지인으로부터 LCD 컴퓨터 모니터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사무실에서 책상의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둔탁한 모양의 모니터 아니던가. 선진국에서는 이미 날씬하고 화질 좋은 TFT-LCD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IT 선진국인 우리나라에도 날씬한 모티터가 유행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국내 기업에서도 LCD 모니터를 만들었다. 이레는 차별화된 모니터 개발에 역점을 뒀다. 선명도와 속도는 물론 특수 제작된 강화 유리를 액정 모니터에 달았다.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지난 2002년 PC방 영업을 통해 총 8만여대를 판매했다. LCD모니터를 통해 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기술을 축적한 만큼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PDP TV를 양산해 그 해 매출 1000억원 돌파를 기록했다.1998년 라스베이거스 전자쇼에서 PDP 벽걸이 TV를 발견하고 다가올 디지털TV 시대를 준비한 데 따른 결과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 그는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은 내가 잘 났기 때문도 아니고 많이 배웠기 때문도 아니다. 남보다 하나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돌이켜보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젊어서 고생’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젊어서 고생이 미래를 살찌우는 힘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딸 미성(19)과 아들 지복(17)을 각각 13세 때 홀로 외국으로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딸은 뉴질랜드를 통해 미국으로, 아들은 인도네시아를 거쳐 뉴질랜드에서 유학 중이다. 부모 밑에서 호강하기보다 밖에서 남의 눈치도 보고 서러움도 맛보며 고생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어 쓰도록 하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은 하반기 출시되는 인터넷 겸용 디지털TV ‘J2’다. 컨버전스 시대에는 모든 가전제품이 인터넷과 접목돼야 경쟁력이 있다는 게 그의 분석. 예컨대 냉장고에 계란이 떨어지면 스스로 알아서 인근 슈퍼에 주문하는 냉장고가 판매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2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젊은 시절은 길지 않다. 어떤 일이든 적당히 하는 사람은 절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성공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정문식 사장의 이력서 ▲1962년 전남 목포 출생 ▲1981년 한양공고 전자과 졸업 ▲1982년 특전사 복무 ▲1987년 홍진전자 생산직 ▲1990년 이레전자 설립 ▲1996년 이레전자 법인 전환·대표이사 취임 ▲1999년 산자부 산업분야 신지식인선정 ▲1999년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발전유공대통령표창 수상 ▲2000년 무역의 날 1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3년 무역의 날 2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4년 무역의 날 7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4년 무역의 날 동탑산업훈장수상 ■ 이레전자 변신의 15년 이레전자는 1990년 4월 5평짜리 창고에서 전선가공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LCD모니터, 디지털TV 등을 생산하는 하이테크 전문 업체로 탈바꿈했다. 남들보다 한 발 빠른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삼아 성장해 왔다.1995년 휴대전화 충전기를 생산해 현대전자에 납품했고, 남들이 긴축경영을 하던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당시 이레전자 정보통신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원 수는 현재 60여명. 1998년 900㎒ 무선전화기를 개발해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벨에 수출했으며,2002년 이후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모니터를 생산하며 디스플레이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2003년부터 PDP TV 양산을 본격화했고,LCD TV도 만들어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국내 대형 전자전문 매장에서도 대기업 제품들과 나란히 판매되고 있으며, 백화점에서도 조만간 팔릴 예정이다. 현재 시중에 42인치 HD급 PDP TV와 32인치 HD급 LCD TV를 판매 중이다. 하반기에는 50,60인치 대형 PDP TV도 내놓는다. 특히 최근 인터넷과 TV를 한꺼번에 즐기는 디지털TV ‘J2’를 개발, 하반기 이레전자 브랜드로 출시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설] 개탄스런 병역기피용 국적포기

    병역의무를 마친 뒤 국적의 포기 여부를 결정토록 한 개정 국적법의 시행을 앞두고 국적포기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제1국민역에 편입되는 만 18세 이전이나, 병역문제를 해결한 후에 국적 포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새 국적법이 시행되면 후자의 경우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원래 원정출산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적용 대상자가 원정출산자는 물론이고 외교관·상사주재원·유학생 등의 기존 자녀까지 포함되자 국적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썽사나운 점은 국적 포기자들 가운데는 부모의 직업이 외교관과 교수, 연구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치 않을 경우 국내 경제활동이나 취업시 제약이 많을 텐데도 단지 군대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국적을 쉽게 버린다고 한다. 특권을 누리는 데는 물불을 안가리면서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저버리겠다는 행동으로 비춰져 개탄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많이 받고, 교육 수준도 높은 사람들이 국가적 이익을 내몰라라 하는 세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선거 때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가 쉽게 이슈화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방증일 것이다. 명예와 의무를 중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不在)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중요 직책 임명시 곧잘 드러나는 지도층 가족의 병역·납세문제 등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해 전에는 전문브로커가 낀 중산층의 원정출산까지 기승을 부려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남의 나라 국적 취득을 막을 수는 없겠으나 이를 병역 기피 등 국민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쪽으로 악용해서는 곤란하다.
  • [강동석 건교 사의표명] 청탁·투기의혹에 고위직 사퇴 도미노

    올해 들어 현직 장관을 비롯한 참여정부 고위 인사들의 중도하차가 줄을 잇고 있다. 마치 ‘도미노’가 시작된 양상이다.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이 27일 아들 입사청탁 의혹 등으로 사의를 표명하자 정·관가에선 “다음은 또 누구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올들어 고위인사의 잇따른 퇴진은 지난 1월7일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잇따라 물러났다. 강 장관까지 석 달도 안돼 3명이 퇴진했고,1명이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땅과 자녀’와 관련된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 전 교육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 사외이사 겸직과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 판공비 과다지출 문제가 처음 불거진 뒤 관련 의혹을 부인했으나 장남의 한국국적 포기 사실, 경기도 수원 땅 투기의혹이 뒤따르자 두 손을 들고 취임 57시간 만에 사퇴했다. 이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공직자재산공개를 통해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돼 지난 7일 사퇴했다.2000년 8월 재경부장관 퇴직 당시 25억여원이던 재산이 경기도 광주시의 부동산 매매차익 등으로 지난해 부총리로 복귀할 당시 86억여원으로 껑충 늘어난 사실이 지난달 24일 공직자재산공개를 통해 드러났고, 이후 부인의 위장전입 및 허위계약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결국 퇴진했다. 최 전 인권위원장은 이달 초 부인의 경기도 용인 땅 위장전입 문제로 투기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도덕성 논란과 함께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10여일 만인 지난 19일 자진사퇴했다. 이들이 물러나는 과정 또한 비슷하다. 부동산 투기의혹 제기-본인 부인-청와대 의혹 일축-추가의혹 제기-비난여론 비등-사의 표명-청와대 경질의 수순이다. 강 장관의 사의표명을 계기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은 다시 한번 여론의 뭇매를 맞을 전망이다. 강 장관 아들의 인사청탁 의혹은 취임 직후의 일인 만큼 제쳐 놓더라도 처제와 동창의 인천공항 주변 땅 투기의혹은 검증작업을 통해 걸러 냈어야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

    서울신문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16일 국제법 전문가인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로 부터 조례의 부당성,우리 영토인 독도의 법적 근거,향후 우리의 대응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영토 문제는 우리나 일본이나 내부에 서 쉽게 하나로 의견이 통일된다.그 러다보니 학술적으로는 국민 감정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먼저 시마네현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 말해보자.시마네현 영토편입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지역 차 원에서 할 것이 아니다.시마네현 관할에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정부의 영토이어야 하는 것이다.1905년 1월 28일 일본 중앙정부에서 독도를 영토에 편입했다.영토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이 냐.이전에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었으니까 영토를 편입하는 것 아니겠느냐.즉 당시 1월 28일 영토 편입은 이전까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한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전제가 이미 모순이었고,때문에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역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예전에 일본의 한 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이 당시 현대국제법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길래 “그럼 일본은 독도 말고 다른 섬은 없느냐.다른 섬은 왜 당시 영토편입을 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아무 대답도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럼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를 따져보자.일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꼭 한국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먼저 최소한 제3국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는 영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그래서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다음은 한국의 영토인 근거에 대해 따져보자.먼저 고문서상의 문제다.서 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적혀 있다.거기에는 양국 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이다.일본은 1849년 프랑스 선박에 의해서 독도가 발견됐을 때 ‘량꿔(liancourt·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즉 당시 독도가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으며 먼저 선점하게 되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하지만 앞서 말했던 고지도나 일본 문서에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즉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를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가 되고 이는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인데 일본이 편입시켰다면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했다는 게 된다.그래서 국제법 위반이다.그럴 때 일본 측이 한국 땅인 줄 몰랐다고 나오는데 우리가 줄기차게 다녔고 지도에도 나왔으니 몰랐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시마네현 영토에 관한 문제를 따져보자.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어업을 가려한다고 하자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다음에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이는 일본에서 맨 처음으로 유권해석한 것이다.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따져봐야 할 문제가 국가가 변할 때는 영토가 같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발해가 우리 영토였지만 승계를 못 받아서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것과 같다.하지만 독도는 고려 를 거쳐서 세종실록이라든지 연산군 왕조실록들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울릉도와 우산이 다같이 우리 영토로서 승계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영토로서 증거력을 가지고 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영토 문제 다루는 비변사에도 기록이 있다.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 조선왕조에는 계속 승계되어 왔다. -일본이 문제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1430년 세종 때부터 우리나라가 300년정도 동안 공도정책을 썼던 것이다.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일부 섬이 조세 면탈자,병역기피자들이 가서 살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 이 되기도 해서 아예 그 섬에 사람 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그래서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비워뒀다.당시에는 변방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지대였기 때문이다.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거기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보고선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그러면서 다시 우리 주민들도 많이 들어갔다.우리가 비워 두는 사이에 왜구들이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가고 했었다.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하고 직접 적극적인 관할을 하기로 한다.그래서 적극적으로 관할하려면 도감을 두는 수준보다 격상시켜서 1900년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이 관할하지 않고 군수를 두겠다고 한다.울진군과 격상시켜서 독립된 군으로 만든다.이때 독도인 죽도를 석도로 표현한다.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데 이는 터무니없다.공도정책이라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자체가 바로 통치권 행사의 증거다. -또 고종 황제가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이니 측량을 하자며 1898년 양지아문을 만든다.서양 지도 전문가를 불러서 지도 전문가 30명을 양성한 뒤 대한여지도와 대한전도를 만든다.1899년 나왔다.그 지도에 울릉도,우산 이렇게 섬이름까지 넣어서 조선 영역을 표시했다.우리 관에서 만든 영토 지도다.고종 황제가 직접 관할하려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래서 우리의 땅을 법령상에 표기한 것이다. -1953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망뀌에 및 에끄레 후(Minquiers and Ecrehos) 영토분쟁이 있었다.당시 영국의 영토로 결정됐는데 서로의 주장을 가른 근거는 국가가 영토로서 그 주권을 행사한 직접 증거로 입법을 했다든지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든지 영토지도를 가지고 있다든지 등의 증거였다.우리에겐 대한전도가 대표적인 영토지도였으며,칙령 41호가 입법조치이다.군수 를 파견한 것이 행정조치이다.즉 우리는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측이 자꾸만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일본은 1905년 영토 편입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영토가 아니기때문에 편입한 것이므로 근거가 되지 못하고 고기잡으러 남의 땅에 간 것이 자기 네 땅이라는 증거도 아니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일본 국가 기록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막부 시절 다카하시,이 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포함된 것이 없다.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됐다.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를 볼 때는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오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 례로 결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 조치를 합법조치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시마네현 문제는 국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일본은 문서 자료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 역사 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 리가 불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국제 사법재판소 가도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리고 시비건다고 다 국제사법 재판소 가지 않는다.우리는 국제사법 재판소 갈 일이 없다.우리는 100% 우리 것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일본이 센카쿠열도 등 은 죽어도 자기들 것이니까 국제사법재판소 가자고 말하지 않지 않느냐.일본이 독도 문제에선 유독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려고 의도하는 것은 결국 독도 문제에선 우리가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 하는 것이다. -2차대전 끝나고 나서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건 문제가 없다.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물론 지금 정세를 이해는 하지만 이번에 국회에서 너무 감성적으로 ‘독 도 이용 특별법’ 만든다고 하던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오면 되는 것 아니냐.변방 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때문에 못갈 수도 있지만 제주도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하겠느냐.독도를 특별취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국민정서는 당연히 이해한다.하 지만 이번에 외교부에서도 반기문 장 관이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고 주권 문제니까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경하게 천명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야한다. -일본이 자꾸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분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전략에 불과하다.일본 측의 한 마디만 나오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가서 화형식하고 하면 NHK 등에서 몇 시간식 방영해서 일본 내에서 이용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적으로 감정이 격앙되고 있는데 물론 그 감정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국제사법 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 [日 독도주권 침해] 1877년 日총리실 “독도, 신라부터 조선땅”

    [日 독도주권 침해] 1877년 日총리실 “독도, 신라부터 조선땅”

    ■ 日 영유권주장 근거는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역사적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면서 국제법상으로 일본영토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독도는 역사적·법적으로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대로다. 일본 정부는 1952년 양국간 영토분쟁이 발생한 이후 매년 3월말 이같은 입장을 우리정부에 통보해 왔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독도를 왜 일본영토라고 하는가에 대한 근거 등은 본격적인 분쟁에 대비,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우리측이 반박근거를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국제법상 실효성 있는 중요한 증거들은 아직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일본내 우파학자들이나 언론, 시마네현 등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근거들을 제시하지만 약하다는 평가다. 시마네현은 일본인들이 1618년 이후 독도와 울릉도에 어로와 벌채를 했던 사실을 들어 “1904년의 주민청원에 따라 1905년 1월 각료회의에서 다케시마로 정식 명명, 시마네현 소관으로 결정한 뒤 2월22일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그 내용을 공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시마네현이 같은 해 관유지대장에 이를 등록,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소의 소관으로 정해 어민들의 조업을 허가, 강치(바다사자라고도 함)와 전복 등의 어업이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지사 시찰도 이루어졌고,1906년에는 시마네현 제3부장의 현지 실태조사도 실시하는 등 국제법에서 요구하는 제반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 국제무대에 알린 것도 일본영토의 근거로 삼는다. 아울러 2차대전 패전 때까지 나카이 등의 어부들이 독도와 그 주변에 어부막사를 치고 조업하는 등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한 만큼 국제법상 일본 고유영토임이 틀림없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패전으로 1945년 11월1일 해군성이 소멸하자 다케시마는 소관부서가 당시의 대장성으로 변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952년 1월18일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영유권을 선언하면서 다케시마도 이승만라인에 포함된다고 주장했고 1978년 4월30일 영해 12해리를 설정, 일본 어선을 몰아낸 뒤 등대와 감시초소, 병영을 설치하고 경비원을 상주시키는 등 불법점령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taein@seoul.co.kr ■ 서울대 백충현교수의 반론 “일본은 독도가 1905년 1월28일 영토 편입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토 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니까 영토로 편입한다는 것 아닙니까.” 국제법 학자인 백충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16일 “독도가 시마네현 관할로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 정부의 영토여야 하는 것”이라면서 “‘다케시마의 날’을 조례로 제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조치를 합법조치로 만들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전화로 만난 백 명예교수는 “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그렇다면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 것이냐는 문제를 한번 따져보자.”면서 조목조목 독도가 우리 영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도는 왜 한국영토인가 먼저 고문서에 나타나 있다. 서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다 나타나 있다. 일본은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한다. 일본은 1849년 리앙쿠르호라는 프랑스 선박이 독도를 발견하고 마음대로 이름붙인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를 영토로 편입한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던 독도를 선점했다고 우긴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고지도나 일본 문서로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 즉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로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이고, 당연히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 ●일본 정부도 ‘독도는 한국땅’ 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의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고기잡이를 가려고 하자 태정관은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이후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 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 이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맨 처음 유권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 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막부 시절 다카하시, 이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킨 것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했다. 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의 공도정책에 문제있나 일본은 세종 시대인 1430년부터 우리나라가 300년가량 공도정책을 썼던 것을 문제삼는다. 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몇몇 섬에 조세 면탈자, 병역기피자들이 몰려가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이 되기도 하는 바람에 아예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 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독도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본 뒤에는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비워둔 사이 왜구들은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갔다. 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했다. 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일이다. 공도정책을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통치권을 행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면 일본은 불리한 문서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역사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 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 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땅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든다는데 국회가 너무 감성적으로 ‘독도 이용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의 정세는 이해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 오면 되는 것 아니냐. 변방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로 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제주도에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한가. 독도를 특별취급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 만에 하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야구 100주년 사업단 박현식 위원

    야구 100주년 사업단 박현식 위원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 YMCA야구단’을 창단하며 이 땅에 야구가 뿌리내린 지 꼭 100년. 한국야구의 ‘원조 홈런왕’ 박현식(76)씨는 요즘 무척 바쁘다.‘야구 100주년 기념사업단’의 위원으로 위촉돼 지난 100년간 흩어진 야구 숨결을 한 곳에 담기 위한 방대한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막상 자료 수집에 나서니 빛바랜 사진들만 덩그러니 있을 뿐 역사의 숨결을 함께 한 스타들에 관한 자료도, 전시할 야구 관련 용품도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도 타고난 ‘강골’에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덕인지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애마’인 스포츠레저 차량을 끌고 전국을 주유한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1974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의 베이브 루스’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공식 기록이 부실해 정확한 개수는 알 수 없지만 프로 출범 이전까지 개인 통산 100홈런을 넘긴 최초의 슬러거임에 틀림없다. 현역시절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홈런포를 가동한 것은 유명한 일화.62년 농업은행(현 농협)의 4번타자로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박 위원은 실업연맹전 첫날 철도청 전에서 상대의 악의적인 투구에 얼굴을 맞아 기절했다. 이튿날은 ‘숙적’ 한국전력과의 경기. 병상에 누워 있던 그에게 문 틈으로 라디오 중계가 흘러나왔고,5회까지 농업은행이 3-4로 끌려가고 있었다. “차마 누워 있을 수 없었지. 병상을 박차고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야구장)으로 달려갔어. 경황이 없어 환자복을 언더셔츠처럼 받쳐 입고 유니폼을 덧입은 채 덕아웃에 나타나자 동료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9회초 2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그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고 공은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5-4 역전승. 다음날에도 경기 중간에 불쑥 나타나는 ‘환자복 선수’의 활약은 계속됐고, 농업은행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야구 출범 때도 그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인천 연고팀을 준비하던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이 ‘왕년의 슈퍼스타’를 영입,‘예고된 꼴찌팀’의 지휘봉을 맡긴 것.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인천야구의 토대를 닦아달라.’는 구단주의 약속과는 달리 13경기(3승10패) 만에 해고돼 역대 최단명 감독이 됐다.83년 9월 한번 더 삼미의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8승1무11패의 기록을 남긴 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병풍(兵風)’으로 뒤숭숭했던 지난해 프로야구판을 떠올리자 “중·고교는 물론 대학에 가서도 공부와 담을 쌓는 선수와, 기본기는 외면한 채 승리를 위한 잔재주만 가르치는 지도자만 있다 보니 병역기피 같은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로야구 열기가 식은 것도 메이저리그를 탓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재미를 못 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제대로 기본기를 닦지 못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정도를 벗어난 치졸한 작전이 횡행하는 경기장을 어떤 팬이 찾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야구 100주년 기념사업’이 의례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고 과거의 교훈을 되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돼야 새롭게 시작되는 한국야구의 두번째 세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음악 통해 문신 합법화 외칠래요”

    “음악 통해 문신 합법화 외칠래요”

    “3년째 바늘을 잡지도 못하고 있어요. 말이 집행유예죠. 예술의 자유도 없는 한국 사회가 감옥이 아니겠어요.” 서울 대림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던 문신 작가(타투이스트·Tattoist) 김건원씨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김건원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타투이스트. 중학교 때 좋아하던 록 음악 뮤지션이 새긴 문신을 보고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갔다. 성신여대 서양미술학과에 재학 중이던 98년에는 ‘예술로서의 문신’을 위해 ‘전업’을 선언했다. 김씨는 이후 ‘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 등 각종 영화에서 문신 분장을 맡았다.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 열린 타투 컨벤션에 초대되는 등 외국까지 이름을 알렸다. 시련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6월. 무면허 의료시술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한 청년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문신을 받았다가 적발된 게 화근이 됐다. 결국 그해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원지법과 대법원에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 문신만 알던 김씨는 이후 문신 합법화 ‘운동가’로 변모했다. 김씨가 느끼는 가장 큰 벽은 ‘문신은 조폭만 하는 것’이라는 일반의 오해다. 오랜 유교 문화도 걸림돌이고, 정체성의 혼돈에 따른 일탈이 문신으로 반영된다는 편견도 문제다. “연예인과 학생은 물론 교수, 스포츠선수, 은행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제게 문신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결정하고, 몸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강한 매력을 느끼죠. 자기 피부에 영혼을 새기는(Soul on Your Skin) 게 문신인 만큼, 판단력과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김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음악 등을 통해 문신의 합법화를 역설하는 것이다. 법적인 해결이 안될 경우 예술을 통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오는 5월에는 자작곡을 들고 가수 이상은씨, 전인권씨 등과 함께 타투 뮤직 페스티벌을 열기로 했다. 김씨는 “랩 뮤직을 통해 ‘타투는 타투이스트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메시지를 직접 전할 것”이라면서 “언젠가는 문신도 찢어진 청바지나 피어싱처럼 하나의 문화적 양식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여의도 in] 홍준표의원 홈피에 글 논란

    [여의도 in] 홍준표의원 홈피에 글 논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최근 정부의 잇따른 과거사 문건 공개를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치적 공작’으로 해석하며 박 대표의 ‘홀로서기’를 주문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홍 의원은 23일 개인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려 여권이 과거사 들추기를 본격화했다고 주장하면서 “박 대표와 당이 과거사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또 “박 대표 스스로 앞장서 당과 무관한 자신의 문제로 국한시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한다.”는 요구도 곁들였다. 이어 “그래야만 박 대표가 이 땅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고 그들의 음습한 책동도 분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제 한나라당은 과거와의 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지난 대선에서 연거푸 실패한 경험을 예로 들면서 “한국 보수의 최고 인물인 이회창을 내세우고도 패배한 것은 아들의 병역 기피의혹과 호화 빌라 문제 등이 터졌는데 정작 본인은 뒤로 빠지고 당이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사설] 훈련병에 인분먹인 대한민국 군대

    논산 육군훈련소 훈련병들에게 변기물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대장이 인분을 먹으라고 강요했다는 것은 가혹행위를 넘어 엽기적이다. 금지옥엽 같은 자식을 연병장에 떼어놓고 무거운 발길을 돌릴 때 부모들은 걱정 말라는 훈련소장의 다짐 한 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많을 것이다. 그런 훈련소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가 자행되고, 그것도 언론보도가 되자 사건 발생 열흘만에야 뒤늦게 진상파악이 시작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문제의 중대장이 구속되고 국방장관이 사과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사불란한 군기를 유지하자면 고강도 훈련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옛날에는 이보다 심한 ‘군기잡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훈련과 가혹행위는 구별돼야 한다.‘옛날에도 했는데 뭘‘하는 생각은 더욱 안 된다. 수긍할 수 없는 비인간적 행위로 어떻게 군인들에게 높은 사기와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젊은이들 사이에 병역기피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 이번 일은 구타, 성폭행 사건에 이어 또 한번 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군 당국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조사해 해당 장교뿐만 아니라 최고 지휘책임자까지 문책해야 한다. 정부는 36개 신병훈련소에 대한 특감에 착수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을 전 군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도록 군대 내 가혹행위 감시체계를 만들라. 국방부가 약속한 훈련장면 인터넷 공개도 서둘러야 한다. 장교선발시 인성검사 등 자격요건도 강화해야 한다.
  •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14일 국회 행정자치위에서 열린 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부인의 국민연금 미납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의혹 등 도덕성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나 기존에 제기됐던 의혹을 재탕, 삼탕으로 질문하면서 청문회는 다소 맥이 빠졌다. 이에 따라 이번 청문회 결과가 노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에 어 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허 후보자는 이날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관련,“경찰이 범죄의 92.6%를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편의를 고려해서라도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자위는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17일 전체회의에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보고한 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경찰청장은 국회의 동의를 요하거나 국회가 선출하는 공직자가 아니어서 국회 본회의 표결없이 청문의결서 채택만으로 검증 절차가 끝난다. ●병역 및 임용 의혹 1973년 첫 입영 신체검사에서 좌우 나안시력 0.08과 0.06(2차검사 좌 0.06, 우 0.07)에 색맹 판정을 받아 보충역(방위) 판정을 받았으나,84년 경찰 경정 특채 채용 신체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의원들은 “당시 경찰공무원임용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시력기준은 나안 0.3이상, 교정시력 0.8이상이어야 하고 색맹이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허 후보자는 “평소 신체검사에서 평균 0.2 정도의 시력이 나왔는데 징병검사에서 왜 그렇게 나쁜 시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군 복무 중 대학을 다닌 것과 관련해서도 “당시 용산 국군영화제작소에서 초소 경계병으로 격일제 근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답했다. 병역법에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해야 군 입대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데 대해선 “그런 규정을 몰랐다.”고 강변했다. ●국민연금 미납 및 부동산투기 의혹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허 후보자의 부인 강모(49)씨가 지난 99년 6월부터 상가임대사업을 시작해 국민연금 납부대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신고 등으로 200만여원을 미납했다고 주장했다. 허 후보자는 “국민연금 납부대상인지 모르고 있다가 국민연금공단측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부터는 바로 납부해왔다.”고 답했다. 또 2002년 비상장 장외주인 시그마텔레콤 주식 1만4000주를 구입한 것과 관련, 주식투기의혹도 제기됐다. 이어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학곡리 일대 임야를 1800만원에 구입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또 부친이 2003년 대전시내 한 아파트를 구입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되판 것도 도마위에 올랐다. ●수사권 독립 허 후보자는 경찰의 수사권독립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수사권은 분권과 자율, 견제와 균형 원리에 따라야 하기에 경찰이 주체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높은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경찰과 검찰의 대립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경찰출신 열린우리당 우제항,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수사권 독립을 지지한 반면 검찰출신 의원은 이의를 제기했다. 우제항 의원은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독점적 수사지휘를 하는 곳은 없다.”면서 “왜 국민들은 검찰에서 수사를 받으면 인권이 보장되다고 생각하고 경찰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종수 박준석 박록삼기자 pjs@seoul.co.kr
  • [이기준 교육부총리 사퇴] 전력논란… 장남·재산파문… 낙마

    [이기준 교육부총리 사퇴] 전력논란… 장남·재산파문… 낙마

    ‘57시간 부총리’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취임부터 사퇴에 이르기까지는 만 이틀 반이 걸렸다. 그러나 이 부총리에게는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다. 이 부총리의 임명이 알려진 것은 지난 4일 오후. 청와대가 개각을 발표했다.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경험과 개혁 추진력이 임명 이유였다. 그러나 즉시 도덕성 시비가 불거졌다. 사외이사 겸직 문제와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 판공비 과다 지출 문제 등 서울대 총장 재직 중 일었던 논란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와 전교조 등 시민단체는 ‘유감과 반대’ 성명을 잇따라 냈다. 이 부총리는 취임 전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다. 취임식 다음날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알려지면서 ‘정실인사’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교육·사회·시민단체들이 잇따라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이날 오후에는 장남 동주씨가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이 부총리는 “나중에 호적등본을 떼어본 뒤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취임 이틀째인 6일 청와대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명에 나섰다. 서울대 총장 시절 도덕성 논란과 관련해서는 총장 사퇴로 이미 대가를 치렀다는 이른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내세웠고, 검증 과정에서 밝혀진 ‘청빈함’을 소개하며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교육계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은 ‘네티즌 90% 이상 임명 반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침묵하던 한나라당도 ‘자진사퇴 촉구’로 돌아섰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부총리를 계속 신뢰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총리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7일 경기도 수원 인계동 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국적을 포기한 장남이 국내에 건물을 지은 사실이 알려지고 장남과 이 부총리의 말이 달라지면서 재산에 대한 의혹은 증폭됐다. 외국에 있다던 장남은 이 부총리가 사외이사로 근무했던 그룹 계열사 과장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직자 재산등록 당시 부인인 장성자씨가 신고한 재산과 차이가 나 재산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대 총장 재직 중 다른 교수들에게 사외이사 겸직을 금지하면서 자신은 사외이사를 겸직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이 부총리에 대한 청와대의 믿음은 도덕성과 절차를 강조해온 참여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李 교육부총리 ‘도덕성 논란’ 확산

    이기준 신임 교육부총리에 대해 시민단체가 임명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도덕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관련 사이트는 물론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도 비난과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부총리는 5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에 들어갔다.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 이 부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여러 모로 부족한데 중책을 맡게 돼 개인적인 영예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도덕성 논란 탓인지 취임식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일단 취임했으니 지켜보자. 잘 하시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 도덕불감증 위험수위” 참여연대는 이날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교육부총리 임명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이 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재직시 판공비를 부당하게 집행하고, 사외이사직을 맡는 등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위반, 공직자로서 도덕성에 하자가 있는 인물”이라면서 “임명이 철회되지 않으면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현 정부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차원의 도덕성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논평에서 “이 부총리가 교육개혁이라는 국민 열망을 실현할 교육철학을 지닌 인사인지 회의가 든다.”면서 “서울대 총장을 도중에 그만둔 문제들에 대해 어떤 해명도 없이 교육부 수장으로 임명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서울 J고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는 김모(27·여) 교사는 “교육분야가 흑자를 내기 위한 사업도 아닌데 업무능력만을 우선으로 여기고 도덕성을 간과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 S고 국어담당 이모(25) 교사는 “시작부터 도덕성 논란을 빚은 부총리가 학생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네티즌 88% “부적절 인사”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교육부총리 임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이날 오후 11시 현재 응답자 6925명 가운데 88.2%인 6108명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적절하다.’는 8%인 554명에 불과했다. 다음의 설문조사에서도 4580명의 응답자 가운데 ‘부적절한 인사, 반대’가 90.5%인 4145명을 차지했다.‘업무능력 우선, 찬성’은 9.5%인 436명에 그쳤다.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틀째 비난 글이 쏟아졌다.‘노사모회원’이라는 네티즌은 “청와대의 변처럼 누구나 흉은 있겠지만, 아들의 병역기피 등 도덕성 문제는 교육부총리가 되는 데 상관없는 작은 흉이 아니다.”면서 “전두환, 노태우를 국방장관에 임명하면서 ‘누구나 흉은 있다.’고 말한다면 공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李 부총리 “호적등본 떼보고 알았다” 한편 이기준 신임 교육부총리의 장남이 지난 2001년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총리의 장남 동주(38)씨는 지난 89년 현역 1급 판정을 받았지만 미국에 장기체류하면서 입영 통보가 취소됐다. 그러나 98년 11월 이 신임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병역기피 의혹이 일자 이듬해 3월 경기도 고양시 화전 육군 모사단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이후 2001년 5월 병역을 마친 직후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부총리는 “나와도 전혀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했으며, 나중에 다른 일로 호적등본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국적을 포기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천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李교육부총리 도덕성 논란

    李교육부총리 도덕성 논란

    4일 단행된 개각에서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한 자질 논란이 뜨겁다. 총장 시절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과 판공비 남용 시비, 사외이사 논란 등 도덕성이 다시 도마에 오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 신임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이 된 것은 지난 98년 11월. 임명 초기부터 이중국적을 가진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의혹은 일단락됐지만 2002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이 총장이 아들의 복무기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를 했다.”며 다시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대측은 당시 “병무청에 문의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2002년에는 서울대 학생회에 의해 판공비 지출내역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당시 학생회측이 공개한 2001년 판공비 내역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당시 이 총장이 쓴 판공비는 4억 5100여만원으로 정부가 승인한 예산은 3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서울대는 일반회계와 발전기금 등에서 나머지 4억 2000만원을 편법으로 조달했다. 사용내역도 정치인과 정부 인사 등 각계 인사에게 보내는 선물비용으로 5800여만원을 지출했으며, 부인 장성자씨가 백화점에서 법인카드로 사용한 130여만원도 있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 전 총장이 LG화학의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공무원법상 영리업무 겸직금지 조항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그는 “LG화학의 경우 사외이사에게 연간 2000만원씩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대학교수의 직분상 보수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무보수로 일했으며 연구비조로 1년에 2000만원가량을 지원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곧이어 연구용역 수주 대가로 모두 1억 44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결국 총학생회의 총장실 점거 사태와 서울대 교수협의회의 퇴진 압력에 임기 6개월여를 남겨두고 중도하차했다. 교육 관련 단체들은 한결같이 새 부총리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적절한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사를 임명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부적절한 인사가 기용됐다.”면서 “참여정부가 교육계 열망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했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이기준 전 총장의 부총리 임명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그의 기용에 대해 “개혁은 학생이나 교수에게 동의받기 어려운 과제이고 개혁을 하면서 조금 힘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재천 홍희경기자 patrick@seoul.co.kr
  • [되돌아 본 2004 문화] ②방송계

    [되돌아 본 2004 문화] ②방송계

    2004년 방송계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드라마가 선봉에 선 ‘한류 열풍’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 파급력은 엄청난 경제 효과로 이어졌다. 시청률 50%를 넘는 ‘국민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고, 외주제작 시스템이 성숙 단계에 접어드는 등 외형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간접광고가 범람하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 경찰의 수사로 밝혀진 인기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 파문과 오락프로그램 녹화 중 숨진 성우 장정진씨의 사고 등은 방송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욘사마 신드롬 과거 동남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불던 ‘한류 열풍’은 올해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이란 달콤한 열매를 이끌어냈다. 이 드라마 하나가 국내 경제에 2조 3000억원의 경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후 일본에는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가 방영될 정도에 이르렀고, 박용하·권상우·류시원 등 스타 배우들이 또 다른 한류 스타로 발돋움했다. ●드라마 공화국 MBC ‘대장금’과 SBS ‘파리의 연인’이 5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는 등 안방극장에 드라마 열풍이 몰아쳤다. 기존 불륜·멜로 일변도에서 벗어나, 신데렐라 스토리는 물론 퓨전 사극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선보였다. 기존의 소극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새로운 여주인공상이 제시되기도 했다. 해외 수출을 의식한 해외 촬영 붐과 함께 수십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들이 범람하면서,‘간접광고(PPL)’ 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예계 병역 비리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 톱스타들이 병역 기피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군에 입대하는 등 연예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송승헌은 한류열풍을 타고 일본 등에 수출하려던 ‘슬픈 연가’에서 중도 하차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를 계기로 남자 연예인에게 군 문제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 문제로 인식되면서 나이가 찬 남자 연예인들이 서둘러 군에 입대, 남자 주인공 품귀현상이 생겨날 정도가 됐다. ●잇따른 사망사고 지난 3월 유창혁 바둑 프로기사의 부인인 김태희 아나운서가 숨진 채 발견됐고,7월에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차량전복사고로 세상을 떴다. 특히 KBS 성우 장정진씨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9월 13일 K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 녹화 도중 소품용 떡이 목에 걸려 질식,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한달 후 사망했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 제작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탄핵방송 논란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를 다룬 KBS,MBC 등 방송사의 방송 내용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탄핵안에 대한 논란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일단락됐지만, 방송 심의는 두 달여를 더 끌며 정계와 학계에까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위가 7월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제때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과 의혹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사설] 사형제 폐지·대체복무 입법하자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사형제 폐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대체복무제는 양심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형제 폐지법은 이번으로 세번째 국회 발의인 데다 여야 의원 과반수인 152명이 서명했다니 분위기 조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체복무제는 첫 발의이긴 하지만 지난 7월 판결에서 대법관 6명이 도입 필요 의견을 밝히는 등 공감대가 확산돼 왔다. 따라서 이번 국회에서는 두 법안의 입법을 구체화할 때가 됐다고 본다. 물론 두 법안 모두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다. 사형제의 경우 21명 연쇄살인범 유영철 체포를 계기로 흉악범에 대한 응분의 처벌과 유사한 범죄 억제를 위해서도 사형제는 존치돼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특정사안에 대한 일시적 감정으로 사형제 논의를 후퇴시킬 일은 아니다. 감정적 보복의 절제 자체가 문명사회 형법제도의 존재이유가 아니겠는가. 차분한 설득이 가능하리라 본다. 대체복무제 역시 현역과의 형평성, 병역체계 혼란, 병역기피성 거부자의 문제 등 부작용 우려가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는 이공계병역특례 등을 볼 때 전혀 새로운 제도라 볼 수도 없다. 또한 법률안은 복무조건 강화, 엄격한 판정절차 등 부작용 최소화장치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 폐지와 대체복무제 도입은 예외는 있지만 인권국가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의 성숙도도 이를 수용할 수준이 됐다고 본다. 국회와 정부의 진지하고 정교한 법률안 검토를 기대한다.
  • 송일국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기대하세요”

    송일국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기대하세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장보고(최수종)를 노려보는 눈빛엔 손에 든 장검만큼이나 날이 서있다. 포효하는 목소리엔 독기가 흘러 넘친다.KBS 2TV 수목 드라마 ‘해신(극본 박상현ㆍ연출 강일수)’의 촬영이 한창인 경기 용인 민속촌에서 만난 송일국(33)은 신라시대의 장수 ‘염장’으로 변해 있었다. 드라마 ‘애정의 조건’을 통해 데뷔 5년 만에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선 그가 ‘해신’을 통해 다시 한번 물오른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최근 불법병역기피 혐의로 군에 입대하게 된 한재석을 대신해 염장 역을 따내는 뜻밖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는 “‘운’을 타고난 것 같다.”며 자신을 낮췄다.“‘애정의 조건’에서도 지성씨가 스케줄 사정으로 중도 하차하면서 한가인씨와 재결합했죠. 앞서 지난 2002년 TV소설 ‘인생화보’에서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의리의 사나이로 캐릭터가 바뀌었어요.”이번 드라마 출연도 ‘애정의 조건’에 함께 출연한 채시라가 ‘해신’의 프로듀서에게 적극 추천하면서 이뤄졌단다. 하지만 그의 가파른 행보가 ‘운’이 아니라 ‘실력’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강일수 프로듀서는 “드라마를 통해서 본 그의 연기력은 사극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큼 힘이 넘친다.”고 평가했다. “‘애정의 조건’이 종영하는 날 평소 질타만 하시던 어머니(김을동)가 전화를 하셨어요.‘이제 잘 하네.’하시며 데뷔 후 처음으로 칭찬을 해주셨죠.(웃음)” 평소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낯을 많이 가린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속시원한 대답을 별로 하지 않았다.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느리지만 또박또박 말한다.“음…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모르겠어요. 하지만…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죠.” 공교롭게도 최근 출연한 작품 모두가 소위 ‘악역’이었던 그는 이번에도 ‘악역’을 연기한다.“‘염장’은 제 가슴에 쏙 와닿을 정도로 아주 냉정한 인물이에요. 악역이지만, 한 여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함께 남자다운 의리도 보여주죠.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염장’의 모습을 기대해 주세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아하 그렇구나]홍경민 새달 전역콘서트

    [아하 그렇구나]홍경민 새달 전역콘서트

    지난 6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씩씩하게 돌아온 가수 홍경민에겐 제대 그 자체가 ‘레드 카펫’이 됐다. 스스로도 “이토록 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 이날 오전 10시 국방부 정문을 나서는 그를 화면에 담기 위해 TV 연예정보프로그램 카메라가 총출동했으며,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북새통을 이뤘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다시 만난 그는 대뜸 “남들이 보면 굉장히 얄미울 것 같다.”고 했다.“(군대)저 혼자 갔다오는 것도 아닌데….” 민감한 시기에 제대하는 탓에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운 기색이었다.“지금 나가면 군대 얘기밖에 더 하겠나.”라며 당분간 방송 출연도 자제할 것이라고 했다.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던 중 입대한 그는 단 한번도 군대를 안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엄한 아버지 때문. “우리 집에서는 안 통해요. 그런 말(병역 기피) 꺼내면 ‘나가 살아라.’ 한마디로 끝나죠.” 옆에 앉아 있던 형(배우 홍성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귀도 뚫지 못하고 머리 염색도 꿈도 못 꾼단다.“가수 중에 머리 염색 안 한 사람은 저하고 (구)준엽이 형밖에 없을 걸요.(웃음)” 2년여의 공백이 생겼지만 오히려 군생활은 그에게 내공을 키우게 해준 고마운 세월이 됐다.“우리가 사회에서 했던 일(노래 부르는 것)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똑같이 해야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군대 공연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예요.(웃음)” 특히 군대에는 AR(립싱크용 테이프)이 없어 극한 상황에서도 라이브로 노래를 해야 했기에 “이젠 어떤 무대에 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특히 기억에 남는 두 번의 공연에 대해 얘기를 들려줬다. 한번은 한미연합사 사령관 공관에서 마치 ‘학예회’처럼 치른 공연.“집이니까 당연히 신발은 벗어야 했고, 군악대 3명의 반주에 맞춰서 마이크도 없이, 양말 신은 채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불렀죠. 황당했어요.(웃음)” “또 한번은 인후염에 걸려서 온몸이 쑤시고 아플 때였죠.” ‘흔들리는 우정’‘가지마’ 등 자신의 히트곡 3곡이 메들리로 녹음된 MR(반주용 테이프)을 틀어놓고 있는 힘을 다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통역을 통해 ‘지금 내가 굉장히 몸이 안 좋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육군이 이 정도다. 만약 내가 몸이 괜찮았으면 여기가 다 뒤집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니까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이 껄껄 웃더라고요.”그가 한번 행사 때마다 받은 출연료(?)는 고작 5만원.“(서)경석이형하고 저하고 행사 뛴 것만 합치면 한 10억은 될 걸요?(웃음)” 여자는 출산이, 남자는 군대가 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그의 음악인생도 변화를 맞는다. 그는 12월에 나올 새 음반에는 “댄스음악이 단 한곡도 실려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어린 시절 꿈꿨던 록음악에 치중할 계획이다. 앞으론 ‘로커 홍경민’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새달 18∼19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제대기념 콘서트를 갖는 그는 “콘서트에서 춤추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750여일에 달하는 군생활 동안 오로지 음악과 무대에 대한 생각만 했다는 그의 복귀 무대가 한없이 기대된다.(02)522-9933.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병역비리’ 신승환 징역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연하 판사는 9일 브로커와 짜고 소변검사 결과를 조작해 병역을 기피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탤런트 신승환(25) 피고인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형이 확정되면 신 피고인은 수감생활을 마친 뒤 2년2개월 동안 보충역 근무를 해야 한다. 신 피고인은 지난 1월 브로커 우모(38)씨에게 3000만원을 주고 자신의 소변에 단백질 성분인 알부민을 섞어 소변에서 다량의 단백질이 검출되는 질병 신증후군 진단서를 받은 뒤 병무청에 제출, 병역을 기피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스타들의 입영전후

    스타들의 입영전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잊혀진다.’는 말은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말이 아닐까. 특히 신체 건장한 일부 남성 연예인들이 갖은 병명을 들이대며 군대라는 곳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렇다.2년이란 공백은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는 이들에게 너무도 긴 세월이다. 그러나 군대는 결코 ‘무덤’이 아니었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마치고 오히려 연예계를 씩씩하게 행보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또 다른 차원에서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차인표, 서경석, 이휘재, 홍경민, 이훈 등등. 이들은 모두 인기라는 달콤함을 맛볼 무렵 군입대라는 ‘입에 쓴 약’을 달게 받아 먹은 스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TV연예정보프로그램들을 통해 몇몇 스타들의 군생활이 중계되다시피 해 잊혀지기는커녕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전기를 맞기도 했다. 차인표가 그런 경우. 늦깎이로 데뷔해 트렌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후속작 대신 군대를 선택했다. 그가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점과 연인 신애라가 있었기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은 그의 군생활은 이미지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만약 인기에 연연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천태산’(MBC ‘영웅시대’)이란 인물을 맡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경석도 연착륙한 케이스. 방송으로 돌아오자마자 MBC ‘타임머신’ MC 자리를 꿰찼다. 결혼 직후 입대한 탤런트 이훈도 현재 MBC와 KBS를 오가며 입담을 뽐내고 있다. 새달 말 제대를 앞두고 있는 가수 홍경민은 민감한 시기에 방송에 복귀하는 터라 더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가 오히려 그의 컴백에 ‘윤활유’가 된 셈. 그의 성실한 병역의무 이행은 특히 남성팬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군대는 앞을 길게 내다본 사람들에겐 영광이요, 근시안을 가진 이들에겐 뼈에 사무친 후회와 한탄으로 남았다. 새달 군입대를 통보받은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은 드라마 출연 무산으로 ‘민폐’를 끼쳤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중고’를 자초했다. 가수 유승준도 ‘패가망신’을 스스로 부른 대표적인 경우. 군입대를 약속해 놓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국 입국 자체가 금지됐다. 결혼과 출산이 더이상 여배우들의 멍에가 아니듯 군대가 남자 연예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일 수 없다. 최근 병역 파동을 계기로 군입대가 이미지 유지 또는 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자리잡아가는 느낌이다. 원빈, 이동건 등 톱스타들이 앞다투어 군입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제대뒤 뜬 스타 윤영준 두려웠다. 일찍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통해 아역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공룡 선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얼굴도 알렸는데….26개월이란 공백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공백을 메우는 데는 두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픔도 컸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친구(이정재)가 그 기간동안 일약 스타로 떠올라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을 그저 내무반에 앉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다. 그 잊혀짐의 시간들이 오히려 연기자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데 둘도 없는 약이 됐으니…. 연기자 윤영준(29)처럼 요즘 회자되고 있는 연기자들의 병역문제가 가슴에 와닿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최근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극중 한기주(박신양)의 비서로, 앞서 ‘태양의 남쪽’에서는 나이트클럽 사장 용태(명로진)의 부하로 나오는 등 ‘의리의 사나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얼마 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그림자놀이’에서 주인공을 꿰찼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섭외도 줄을 이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실 저도 군 입대를 비켜가기 위해 별 짓을 다했어요. 하지만 결국 연기자를 믿는 시청자에게 서운함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인기는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는 ‘당시 군대를 면제 받고 연기생활을 계속 해왔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아역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에 짓눌린 채 더 큰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단다. 중1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그는 20살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연기자 윤영준’을 기억해 주는 이가 없었다. 이후 5년여 동안을 ‘일반인 윤영준’으로 지내야 했다.“제 스스로 최면을 걸었죠.‘이건 나의 옛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차원의 연기자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전화위복의 시간들’이라고요.” 그의 판단은 옳았고, 이후 아역 출신 연기자로서 흔치 않은 ‘대기만성형’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섰다. 올해로 연기 데뷔 17년째인 그는 나름대로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다.“연기는 바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의 경험이 드라마 캐릭터에 녹아들 때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거든요.”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가령 26세의 남자 역할을 맡으면,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제가 태어나서 26살까지의 경험들을 작문하듯 정리하죠. 그리고 ‘드라마는 그 26살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연기톤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대사, 행동 하나 하나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죠.” 그는 팬들의 사랑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는 현재 98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LONG RUN 배우 윤영준’이란 그의 팬카페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군입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저를 잊지 않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죠. 연기자는 팬들과 함께 커나간다는 것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병무청 “송승헌씨 새달 입대해야”

    병무청 “송승헌씨 새달 입대해야”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병역 기피로 물의를 빚은 탤런트 송승헌씨의 입대를 연기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탄원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 의원은 모두 6명. 국회 문화관광위 간사인 우상호 의원이 주도해 의원 5명 명의로 병무청에 탄원서를 발송했다. 이미경 위원장도 27일 협조 공문을 보냈다. 우 의원은 “한류 시장을 겨냥한 드라마 ‘슬픈 연가’는 제작비가 76억원이고, 외국 자본은 송씨의 출연을 전제로 30억원을 투자했다.”며 “송씨가 빠질 경우 드라마 제작이 무산되고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할 처지”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병무청은 이날 “병역 면탈자들에게 병역 연기나 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송씨의 입대를 연기해 달라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탄원서를 오늘 우편으로 받았다.”며 “병무청은 이미 입장을 발표했으며, 임의로 입장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에 대해 일체의 병역 연기나 감면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게 병역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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