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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P PUTIN] “당신이 이 나라 대통령이라면, 이 엄마의 울음을 들어봐라”

    [STOP PUTIN] “당신이 이 나라 대통령이라면, 이 엄마의 울음을 들어봐라”

    “당신이 이 나라 대통령이라면 어떻겠느냐? 이 동영상을 보고 이 엄마의 울음 소리를 들어봐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녹화돼 이틀 뒤 미국 CNN 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온’을 통해 방영된 인터뷰 도중 앵커 제이크 태퍼가 동영상을 봤을 것이라고 말하자 이렇게 되물었다. 태퍼는 직접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찾아 독점 인터뷰를가졌다. 그가 말한 동영상은 한 어머니가 주유소 맨홀에 던져진 시신의 신원이 아들로 확인되자 오열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이건 내가 일생 동안 보아온 것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이다. 난 무엇보다 아버지로서 이 동영상을 본다. 가슴이 미어진다. 비극이다. 고통스럽다. 이 여인과 같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정도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가족의 비극이다. 재앙이다. 여러분이 지금 잃고 있는 꿈이며 인생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살아간다. 진실이다. 아이들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최상의 것이다.” 그는 이런 동영상을 보면서 가족사와 정부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떼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내겐 너무 큰 고통이다. 아버지로서 볼 수가 없다. 여러분 모두가 바라는 것은 복수하며 죽이는 것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난 수많은 이들이 죽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기 때문에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이 동영상을 봐야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이런 고통을 끝내기 위해 평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모두는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길면 길수록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미국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에 따르면 이 여인은 키이우 근처 부조바 마을에 사는데 지난 10일 어린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자 이렇게 오열한 것이었다. 부차를 비롯해 키이우 외곽 지역의 마을들에서 러시아군이 퇴각하기 전에 벌인 잔학한 행위들은 그 동안 많이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이 일대에서 900구 정도의 민간인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물론 러시아는 일체 그런 일 없었으며 우크라이나 측이 자작극을 꾸민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조작하거나 연출했다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위성 사진 등의 증거로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다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다. “러시아는 이걸 ‘군사작전’이며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차에서 일어난 일을 봐라. 심지어 전쟁이 아니라 제노사이드란 점이 명백하다.” 그는 덧붙였다. “그들은 그냥 사람들, 병사들이 아니다, 사람들을 죽인다. 그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쏜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다, 버스를 타다, 걷다가 총에 맞는다. 거리에 시신들이 줄지어 나뒹군다. 병사들이 아니다. 민간인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손을 묶는다. 그들은 어머니들을 강간하면서 아이들에게 지켜보게 강요했다. 그 뒤 그들은 사람들을 우물이나 집단묘지에 던졌다. 어린이들, 어른들, 어르신들 모두.”위 기사와 관련된 내용은 동영상 시작 4분 10초쯤에 나옵니다.
  • 모스크바호 격침 당시 사진?…침몰한 ‘러시아의 자존심’

    모스크바호 격침 당시 사진?…침몰한 ‘러시아의 자존심’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미사일순양함 모스크바호가 침몰한 가운데 당시 상황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1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는 온라인 상에서 러시아 군함인 모스크바호가 피격된 직후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출처와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 사진은 배 후미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한쪽으로 선체가 쏠린 한 군함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에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배는 슬라브급 순양함으로, 이처럼 파괴된 사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침몰한 모스크바호는 구소련 시절 건조된 슬라브급으로 불리는 프로젝트 1164 미사일 순양함의 1번함이다. 슬라브급 순양함은 길이 186.4m, 최대 폭 20.8m, 흘수 8.4m, 표준 배수량 9380톤, 만재 배수량 1만1490톤에 이르는 대형 전투함정이다. 대형 함정이다 보니 탑승인원만 약 500여 명에 달한다. 가스터빈과 디젤 엔진을 조합하여 최대 32노트까지 낼 수 있다.    앞서 지난 13일 막심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지사는 텔레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넵튠 지대함 미사일 2발이 모스크바호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대해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호가 이날 폭풍우 속에서 목적지 항구로 예인되던 중 탄약 폭발에 이은 화재로 14일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모스크바호가 침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양 국가 주장이 서로 다른 셈이다. 이처럼 양 국가 발표가 엇갈리는 가운데 미국 국방부는 15일 모스크바호의 침몰 원인이 우크라이나 공격에 따른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침몰로 인한 인명 피해도 양 국가 주장이 달랐다. 먼저 우크라이나 측은 모스크바호의 함장을 포함 총 510명의 승무원들이 이번 미사일 공격으로 모두 사망했다는 주장했다. 이에대해 러시아 측은 사실 확인을 거부하며 침몰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있다. 다만 러시아 국방부는 해군 수장인 니콜라이 예브메노프 제독과 다른 2명의 장교가 해군 장병 약 100명 앞에 서 연설하는 26초 분량의 동영상을 공개하며 장병들이 모스크바호에서 구조된 선원들이라고 주장했으나 언제 촬영했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유럽’은 17일 한 해군 병사의 말을 빌어 모스크바호 침몰로 40명 정도가 죽고 다수가 실종됐으며 더 많은 수병들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처럼 양 국가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모스크바호가 러시아 흑해 해군력의 상징이라는 자존심과 군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사기를 높일 수 있는 큰 전과가 되는 셈이며 러시아로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단일 사건으로 최대 피해라는 불명예 기록이 될 수 있다    
  • [STOP PUTIN] “침몰한 모스크바 호 피격 후 화염에 휩싸인 사진 두 장”

    [STOP PUTIN] “침몰한 모스크바 호 피격 후 화염에 휩싸인 사진 두 장”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흑해에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 호가 심하게 훼손된 모습을 담은 사진이 17일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고 있다. 전날 우크라이나 군의 넵튠 미사일 네 발 가운데 두 발을 맞고 탄약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결국 다음날 침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주장이며 미국도 이를 인정한 반면, 러시아는 단순 화재로 인해 선체의 균형을 잃어 침몰한 것이라고 맞서는 가운데 화재 연기가 치솟고 선체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모스크바 호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BBC는 사진을 게재하지 않으면서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전쟁연구소 박사후 과정 롭 리는 트위터에 “진짜 사진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오픈소스 첩보 정보를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을 운용해 유명한 OSINT테크니컬은 “진짜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도 슬라바급 순양함인데 이런 식으로 파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군사전문 매체 ‘워 존’은 옛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건조돼 선령이 40년 된 모스크바호가 심하게 파손된 사진 두 장을 홈페이지에 실어 눈길을 끈다. 피격 당시 이 순양함에는 500명 정도가 승선해 있었는데 한 명이 사망하고 27명이 실종됐으며 나머지 승조원들은 모두 구조돼 인근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지내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호의 침몰 원인을 세바스토폴 모항 근처의 폭풍 때문이라고도 했는데 이 사진을 보면 바다 상황이 굉장히 안정돼 보인다. 물론 이 사진이 촬영된 뒤에 날씨가 급변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고 매체는 지적했다.  이 사진들은 당시 모스크바 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다른 나라 배들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번째 사진이 침몰하기 직전의 모스크바 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첫 번째 사진의 진실성을 더욱 굳게 믿게 한다고 매채는 덧붙였다.  사진 촬영자들이 시점이나 장소 등을 밝혀주면 훨씬 수월하게 두 사진의 진위가 확인될 수 있겠다.   한편 이와 별개로 BBC는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유럽’을 인용해 모스크바 호에서 근무했던 한 해군 병사가 어머니에게 전한 내용을 인용해 모스크바 호 침몰로 40명 정도가 죽고 다수가 실종됐으며 더 많은 수병들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 어머니는 “끔찍했다”며 “아들이 나에게 전화해 본 것 때문에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아들은 모스크바 호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날아온 미사일 세 발을 맞고 침몰했다고 주장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이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 수병이 모스크바 호에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문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바야 가제타 유럽은 러시아의 언론 감시를 피하려고 이달 초 설립돼 러시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 러시아에 있는 본사 격인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때문에 러시아 정부의 압박을 계속 받다가 지난달 운영을 중단했다.  
  • “모스크바호 침몰로 40여 명 사망…폭발로 팔다리 잃어”

    “모스크바호 침몰로 40여 명 사망…폭발로 팔다리 잃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날아온 미사일로 침몰”러시아 흑해 기함인 모스크바호 침몰로 40여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유럽’은 모스크바호에 복무하고 있는 한 해군 병사의 말을 인용해 “모스크바호 침몰로 40명 정도가 죽고 다수가 실종됐으며 더 많은 수병들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 수병의 어머니는 “끔찍했다. 아들에게서 온 전화 때문에 울고 있었다”면서 모스크바호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날아온 미사일 세 발을 맞아 침몰했다는 아들의 말도 전했다. 이어 아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 너무 끔찍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폭발로 팔다리를 잃는 등 다쳤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아들의 복무가 끝나길 기다리는 것이 끔찍하다고 전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이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 어머니나 수병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 수병이 모스크바호에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문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러시아 국방부는 아직 지난 14일 일어난 모스크바호 침몰 관련 사상자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호 침몰 원인이 폭풍우로 인한 탄약 폭발과 화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군이 쏜 넵튠 지대함 미사일 두 발이 모스크바호에 명중해 침몰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격침설을 부인하던 러시아는 보복이라도 하듯 함선 침몰 직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넵튠 미사일 제조 시설을 공습해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모스크바호는 러시아 흑해 해군력의 상징으로 길이 187m, 폭 21m에 승무원이 약 500명 이상 선승할 수 있는 미사일 순양함이다. 모스크바호가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러시아는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가 났을 것으로 보인다. 노바야 가제타 유럽은 러시아의 언론 감시를 피하려고 이달 초 설립돼 러시아 정부의 간섭없이 운영되는 매체다. 러시아에 있는 본사 격인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때문에 러시아 정부의 압박을 계속 받다가 지난달 운영을 중단했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과거와 현재, 그 인과를 잇는 그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과거와 현재, 그 인과를 잇는 그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온갖 화려한 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시선을 끌고, 눈처럼 꽃잎이 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연둣빛으로 새 생명을 자랑하는 나뭇잎들도 이에 질세라 저마다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4월은 잔인한 달, 꽃잎만큼이나 눈물 흘릴 일도 많았다. 인간의 생로병사 모든 것이 고통이라며 한 생애 살아가면서 울고 웃는 희로애락의 집착을 끊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던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온다.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과연 이를 피할 길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기원전 500년에 고행의 길을 택한 사람이 석가모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출가를 하고 고행을 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하면서 불교는 시작됐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불교 경전은 꽤 많다. 5세기에 구나발타라라는 승려가 번역한 ‘과거현재인과경’도 그중 하나다. 이름부터 과거와 현재가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이니 불교의 기본 원리를 명확히 드러내는 셈이다. 경전의 주요 내용이 석가모니의 생애와 전생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니 그의 성도(成道)는 과거에 쌓은 선업의 결과인 셈이다.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의 ‘회인과경’은 ‘과거현재인과경’ 그림이다. 일본에 남아 있는 그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 중 하나로 상당히 중요한 그림이다. 아래쪽에는 경전의 내용을 또박또박 한자로 쓰고, 윗부분에는 아래 경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렸다. 이러한 형식의 경전 그림으로 이보다 제작 시기가 올라가는 그림은 중국과 한국에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9세기경에 그려진 이와 유사한 형식의 그림이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예가 있는 것을 보면 한국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섯 가지 본의 ‘회인과경’이 알려져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경전을 필사한 글씨는 대체로 비슷하다. 당시 사경소(寫經所)에서 활발하게 경전을 옮겨 썼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붉은색과 노란색, 갈색을 주조로 색을 단조롭게 썼고, 인물과 배경도 아직까지 단순하게 묘사돼 중국 남북조시대 화법과의 유사성이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최소한의 배경과 인물의 움직임에서 일본 초기 회화의 발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순진하면서 소박한 솜씨를 보여 주지만 서체는 8세기 전반의 글씨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되는 그림에서 이 장면은 ‘경시무운’(競試武芸)에 해당한다. 즉 싯다르타 태자의 뛰어난 궁술에 기뻐하는 아버지 숫도다나왕과 그 소문을 듣고 태자와 무예를 겨누기 위해 성 밖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이다. 왕이 있는 건물과 사람들이 몰려든 성문이 비현실적으로 작게 표현됐고, 가늘게 자란 나무들 역시 마치 연극의 무대장치처럼 보인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인 것이다. 노란 옷을 입은 왕이나 관모를 쓰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당시 일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백제에서 불교가 전해진 지 200년가량 지나 불교가 이미 일본식으로 정착됐음을 시사한다. 일본인이 보는, 일본인을 위한, 일본의 불교회화인 셈이다.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머리 모양을 했든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같지만 말이다.
  • ‘진영이탈’ 씌워, 승전보 도착 날 참형…비운의 희생양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진영이탈’ 씌워, 승전보 도착 날 참형…비운의 희생양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조선군이 참패를 거듭하던 임진왜란 초기 양주 해유령전투는 누구나 인정하는 육전(陸戰) 최초의 승전이다. 부원수 신각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며 조선군과 백성 모두에게 왜적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신각 장군은 한강방어전에서 패퇴하면서 도원수가 아닌 유도대장 진영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해유령 승전이 조정에 알려진 바로 그날 처형되고 말았다. ●양주에서 군사 수습해 왜군 요격 신각 장군은 출생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1574년 경상좌수사, 1576년 경상우병사, 1587년 경상도방어사로 무관의 요직을 거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좌수사에 임명된 해는 왜란이 일어나기 18년 전이다. 종친이어서 32세에 전라우수사에 올랐을 이억기 장군을 예외로 하면 경상좌수사 당시 신각은 40세가 넘었을 것이다. 1592년 신각은 아무리 적어도 60세 안팎이 아니었을까 싶다. 5월 16일 해유령 승전을 선조수정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신각은 처음 부원수로 도원수 김명원을 따라 한강에서 방어했는데, 김명원의 군사가 패하자 이양원을 따라 양주에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했다. 마침 응원하러 온 함경 병사 이혼을 만나 군사를 합쳐 진을 결성했는데, 마을에 흩어져 약탈하는 왜병을 양주의 게재(蟹嶺·해령)에서 요격해 패배시키고 70급을 베었다.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한 뒤로 처음 이런 승전이 있었으므로 원근에서 모두 의기가 용동하였다.’ 용동(聳動)이란 솟구쳐 뛰어오르는 듯한 움직임을 가리키니 백성 모두가 승전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는 뜻이다. 게재는 오늘날의 해유령(蟹踰嶺)이다. 게가 넘나들었다는 ‘게너미고개’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해유령은 파주 광탄과 양주 백석을 잇는다. 광탄은 한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의주대로에서 혜음령과 임진강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한양도성을 점령한 왜군은 다시 북상해 임진강에서 조선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보급이 충분치 않았던 왜군은 주변 지역을 약탈했는데 이들을 노린 기습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해유령의 양주 쪽 경사면인 백석읍 연곡리에는 해유령전첩지(戰捷地)가 조성됐다. ●김명원, “불복종” 패전 책임 물타기 그런데 승전은 어이없는 비극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신각은 임진왜란 역사에서 가장 억울한 장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징비록’은 도원수 김명원이 임진강에서 올린 장계에 ‘신각이 제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는 등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의정 유홍이 글을 읽은 대로 임금께 보고했다. 조정은 신각을 처형하려 선전관을 보냈는데, 그 순간 신각의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다른 선전관을 보내 처형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이미 신각은 죽은 뒤였다고 했다. 신각의 처형은 조선군이 임진강전투에서도 패퇴한 5월 18일 직후인 듯하다. 김명원은 임진강 방어에는 나름 성공하고 있었지만, 대치가 열흘이 넘어서자 선조는 조급해졌다. 게다가 ‘적군이 서울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했는데, 멀리서 오느라 발이 부르트고 피곤해 쓰러져 있으니 몽둥이를 가지고도 격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소문마저 전해졌다. 선조는 도원수에게 ‘임진강을 건너 왜군을 무찌르고 한성을 회복하라’고 재촉했지만, 왜군의 기세를 알고 있던 김명원은 조심스러웠다. 선조는 명나라에 갔던 주청사 한응인이 연경에서 돌아오자 여진족을 상대로 풍부한 전투 경험을 쌓은 평안도 정예병력까지 모두 맡기면서 김명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 한응인은 충주 전투에서 순절한 도순변사 신립의 아우로 함남병사를 지낸 수어사 신할로 하여금 임진강을 건너도록 했다. 신할은 백전노장인 원수별장 유극량의 만류에 ‘늙은 겁쟁이’라고 모욕을 주며 군사를 몰아붙였다. 유극량이 분전했지만 조선군은 몰살당하다시피 했고, 건너편의 병력마저 흩어져 버렸다.●선조, 정치적 처형 결정 당시 신각과 경상좌병사 이각의 처형은 임진강 전투의 오판에 따른 비판에서 비껴 가려는 선조의 ‘정치적 결정’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럴수록 동래성 방어전을 회피한 데 이어 울산병영성마저 버리고 새벽에 도주한 이각과는 달리 신각의 처형에는 조정 내부에서도 상당한 성찰이 있었던 듯하다. 광해군 시대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이 ‘신각이 비록 무인이기는 하나 나라에 몸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하였는데, 죄없이 죽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원통하게 여겼다’고 적은 것도 그렇다. 김명원도 신각에 대한 ‘군율(軍律) 시행’으로 한강 방어 실패 책임의 일부는 그에게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선조수정실록에는 ‘유도대장 이양원은 당시 산골짜기에 있었으므로 상황 보고가 끊겼고, 김명원은 부원수 신각이 이양원을 따른다고 핑계대고 도망쳤다고 장계를 올려 처벌할 것을 청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하지만 선조가 보낸 선전관은 신각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신속히 달려가 목을 벴다. 신각이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을 조정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비변사가 신각을 명령불복종으로 군법에 회부할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선조실록 기사에는 ‘심지어 도원수가 이문하여 잡아가려 하였으나 버티면서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도원수도 어쩔 도리가 없어 장계를 올린 것’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문(移文)이란 기관과 기관 사이의 소통이다. 김명원이 유도대장 이양원 진영에 신각의 도원수 진영 복귀를 촉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는 뜻인 듯싶다. 왜적은 5월 3일 서울에 무혈입성했다. 김명원은 한강을 방어하는 도원수, 이양원은 한양도성을 지키는 유도대장이었다. 앞서 조정은 이양원을 도성을 방어하는 수성대장으로 임명하고 이진·변언수를 각각 좌·우대장, 신각을 중위대장으로 보좌토록 했다. 그런데 조정은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패하자 수도 한양을 버리는 파천을 결정하고 이양원을 임금이 도성 밖에 거동할 때 도성을 지키는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 다시 발령하면서 신각도 이양원 휘하에서 김명원 휘하의 부원수로 옮겨 임명한다. 조정은 한양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양원은 “병조가 뽑은 군사는 4500명인데 도성은 3만의 성가퀴에 궁가(弓家)가 7200이니 한 궁가에 한 사람식 배치한다 해도 절반도 채울 수 없으니 증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성가퀴는 성벽 위에 쌓은 낮은 담장, 궁가는 활을 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명색이 도원수인 김명원의 군사 역시 1000명 남짓에 불과했다. ●징비록 ‘김명원 무기 버리고 도주’ ‘징비록’은 ‘제천정에 머물고 있던 김명원은 적이 밀어닥치자 그저 바라만 볼 뿐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무기와 화포를 모두 강물 속에 버린 후 옷을 갈아입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양에 있던 이양원 또한 한강을 지키던 병사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이미 글렀다 생각하곤 양주로 도망쳐 버렸다’ 고 썼다. 제천정은 서울 한남동에 있던 정자다. 며칠 전까지 이양원 휘하의 중위대장이었던 신각이다. 우의정 이양원 휘하로 들어가 싸우는 것을 ‘도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월 말의 연성대첩(延城大捷)은 신각의 비극적 죽음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했다. 전 연안부사 이정암이 이끈 의병이 왜군의 나흘 밤낮 공격을 격퇴하고 연안성을 지킨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신각의 연안부사 시절이 떠올랐다. 1591년 3월 옥천 선비 조헌은 왜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상소를 했는데 답이 없었다. 조헌은 아들 조완도를 시켜 평안감사 권징과 연안부사 신각에게 참호를 깊이 파고 성곽을 수리해 수성전(守城戰)을 준비하도록 글을 보냈다. 권징은 크게 웃으면서 ‘황해도와 평안도에 왜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 돌아가 그대 부친에게 부디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각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적의 공격에 대비해 대대적으로 성을 수리하며 방어전을 준비했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고 이정암이 연안성을 지켜내자 고을 사람들은 신각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 그 공을 기렸다는 것이다. 선조수정실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징은 임진강 전투 당시 경기감사로 신할과 왜군 공격에 뜻을 모아 조선군을 참패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신각의 무덤은 알려진 것이 없다. 황해도 연안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는 비석이 남아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 “지뢰 수백개 탐지”…우크라이나서 활약하는 2살 강아지

    “지뢰 수백개 탐지”…우크라이나서 활약하는 2살 강아지

    러시아군이 물러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일대에서 2살의 잭 러셀 테리어 한 마리가 수백 개의 폭발물을 찾아내며 맹활약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수도 키이우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체르니히우는 개전 직후부터 러시아군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체르니히우를 포위한 상태로 공격하던 러시아군은 지난달 말 결국 철수했다. 하지만 곳곳에 부비트랩을 남겨두고 갔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러시아군 병사들이 후퇴 중 식품 시설과 민간 주택, 시신에까지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이는 국제법상 금지된 행위”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지뢰탐지견이 군견용 전투복을 입은 채 곳곳을 누비며 잔해 속에 숨겨진 폭발물과 부비트랩을 차례로 찾아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어로 탄약통이란 뜻의 ‘파트론’을 이름으로 가진 이 지뢰탐지견은 생후 6개월부터 폭발물 탐지 훈련을 받았다. 파트론과 함께 활동하는 폭탄제거반원은 파트론이 폭발물을 찾을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치즈를 주고 배를 어루만져준다고 우크라이나 국가방재당국은 전했다. 개는 냄새를 분간하는 뇌 영역이 인간보다 40배 이상 큰 것으로 알려졌따. 그 중에서도 잭 러셀 테리어는 후각이 뛰어난 데다 상황 판단력이 좋아 폭발물 탐지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물·피 콸콸” 성경 사실이었다…예수의 의학적 사망 원인

    “물·피 콸콸” 성경 사실이었다…예수의 의학적 사망 원인

    예수의 죽음을 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어깨가 탈구됐고, 그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면서 심각한 출혈로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1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패트릭 풀리치노 신부는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알려진 ‘토리노 수의’에 대해 법의학자와 의학자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분석해 예수의 사망원인을 밝혀냈고, 가톨릭 의학 계간지 최신호에 논문을 게재했다. 수의에 새겨진 예수의 형상을 보면 오른팔이 왼팔보다 10㎝가량 늘어난 모습으로, 이는 오른쪽 어깨가 탈구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수가 오른쪽 어깨가 탈구된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바람에 쇄골하동맥이 찢어져 심각한 내부 출혈을 일으켰을 것으로 봤다. 쇄골하동맥은 흉부와 머리, 목, 어깨 등을 이으며 혈액을 공급하는 큰 동맥으로, 예수의 쇄골하동맥이 찢어지면서 흉곽과 폐 사이 공간에 1.7L 이상의 피가 고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성경에는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로마 병사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기록이 나온다. 리치노는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함께 나온 물이 뇌척수액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풀리치노는 이 성경 기록이 내부 출혈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풀리치노는 “예수가 어깨가 탈구된 상태에서 3시간여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쇄골하동맥이 갈비뼈 표면을 가로지르며 마찰해 결국 파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리노 수의의 등 부위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질 때 오른쪽 등에서 왼쪽 등으로 옮긴 흔적도 있다고 전해졌다.
  • [속보] 러, 1026명 포로 공개…우크라 “가짜뉴스” 교전 계속

    [속보] 러, 1026명 포로 공개…우크라 “가짜뉴스” 교전 계속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의 항구를 점령했고, 우크라이나 해병 1026명이 항복했다고 주장하면서 손을 들고 투항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는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한 병력 일부가 러시아군에 항복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여전히 교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지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최우선 공략 목표로 삼고 포위 공격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곳을 방어하는 아조프 연대와 우크라이나 해병대는 50일 가까이 결사 항전을 펼쳐왔으나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14일(현지시간) “마리우폴은 여전히 아조우 연대와 해병대가 지키고 있다”라며 “마리우폴은 앞으로도 우크라이나의 도시로 남을 것이다. 1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병사가 항복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국영 TV는 마리우폴 일리치 제철단지에서 해병들이 손을 들고 걷는 모습을 보도했다. 군인 중 한 명은 우크라이나 여권을 들고 있었다. 바딤 데니센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보좌관은 “마리우폴 항구를 둘러싼 교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러시아군이 포로로 잡았다고 주장한 36해병여단에 대해 “복합적이고 위험한 작전을 통해 포위망 뚫고 아조우(아조프) 연대와 합류했다”고 밝혔다. 세르히 볼리나 제36 해병여단 지휘관과 데니스 프로코펜코 아조우 연대 지휘관은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라면서도 우크라이나군 일부가 항복했다고 인정했다. 영국의 국방싱크탱크인 왕립연합연구소(RUSI)의 선임연구원 저스틴 브롱크는 “결과적으로, 마리우폴은 침공 초기부터 너무 일찍 포위돼서 제대로 보급이 이뤄질 기회가 없었다”며 “방어 병력들은 어떤 외부 분석가가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길게 버텼다”고 평가했다.“시체 치우라” 러 열병식 계획 러시아는 전승 기념일에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열병식을 계획하고 있다. 5월 9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나치 독일에 승리한 날로 러시아의 가장 큰 공휴일이다. 러시아는 이날을 기념해 매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여는 등 각종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BBC에 따르면 페트로 안드리우시센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러시아군이 러시아가 점령한 마리우폴 지역을 관할하는 코스티안틴 이바슈첸코에게 “5월 9일에 열병식이 열릴 수 있도록 도시 중심부의 잔해와 시체를 치우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자료로 미뤄볼 때 점령자들은 그들의 ‘특수 작전’이 성공할 때를 대비해 마리우폴에서 ‘승리의 축제’를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좋은 소식은 도시에 그런 행사를 수행할 차량이나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STOP PUTIN] 러시아 국방부 “흑해함대 기함 예인 중 결국 침몰”

    [STOP PUTIN] 러시아 국방부 “흑해함대 기함 예인 중 결국 침몰”

    러시아 국방부가 전날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심각한 피해를 입어 근처 항구로 예인하던 흑해함대의 순양함 모스크바호가 결국 침몰했다고 14일(이하 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미사일 피격 사실이 알려진 것만으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크렘린 참모들이 크게 당황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는데 러시아 해군력의 상징이 침몰했다는 소식은 재앙 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타스 통신이 전한 국방부 성명은 “지정된 항구로 예인되던 중에 그 함선은 탄약이 폭발한 뒤 발생한 화재로 큰 타격을 입어 균형을 잃고 말았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그 함선은 침몰했다”고 밝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호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여전히 부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격침 주장을 거듭 부인했다. 스푸트니크, AFP 통신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관여했던 모스크바호의 선상에서 탄약이 폭발했으나 화재가 진압돼 침몰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모스크바호는 부력을 유지하고 있고 주요 미사일 무기는 손상되지 않았다”며 “선원들은 이 지역 흑해함대의 다른 배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승선 인원은 대략 510명 정도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남부군 사령부는 “전날 ‘넵튠’ 지대함 미사일로 모스크바호를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줘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남부군 사령부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국 군의 공격 후 화재가 시작됐으며, 러시아 구조선은 탄약 폭발과 악천후로 구조에 지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모스크바호가 왜 폭발했는지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MSNBC 인터뷰를 통해 “(모스크바호 폭발이) 우크라이나 연안 방어 미사일 공격 때문이라는 소셜 미디어 발표들을 봤다”며 “이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길이 187m, 배수량 1만 1500t에 이르는 모스크바호는 역내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순양함으로 흑해함대의 기함(旗艦) 역할을 해 왔다. 옛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건조돼 1980년대 실전 배치됐다. 다양한 대함 크루즈미사일과 대공 미사일, 어뢰, 포, 근접 미사일 방어체계 등을 갖추고 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주의 막심 마르첸코 지사는 전날 텔레그램에서 자국 군의 넵튠 미사일 두 발이 모스크바호에 큰 피해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호는 지난 2월 24일 러시아 침공 얼마 뒤 오데사 앞바다의 즈미니섬 공격에 가담해 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수병들에게 “즉시 항복하라”는 무선을 보냈다가 한 병사로부터 “꺼져라”는 욕설 답변을 수신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수병들은 전원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던 사실이 전해졌고 포로교환으로 풀려난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으며 ‘영웅’ 칭호를 받았다. 모스크바호 공격에 사용된 지대함 미사일 넵튠은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실전 투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 우크라 참전 후 귀국한 男…‘가짜사나이’ 로건이었다

    우크라 참전 후 귀국한 男…‘가짜사나이’ 로건이었다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출신 예비역 대위인 유튜버 이근을 따라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귀국한 남성이 ‘가짜사나이’의 로건(38·김준영)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건은 이근과 같이 해군특수전전단 출신이다. 제1특전대대 공중작전대에서 근무하다 중사로 전역했고, 전역 후 소방관으로 임관해 119구조대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1984년생으로 이근과 동갑이다. 로건은 헬스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와 글로벌 보안 전문회사 무사트(MUSAT)가 함께한 하이퍼 리얼리티 웹예능 ‘가짜사나이2’에 교관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14일 경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로건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한다는 이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보고 이근에게 연락했다. 이근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귀국한 남성 둘 중 또 다른 한 명은 20대 후반의 포토그래퍼 A씨다. A씨는 이근으로부터 종군기자 역할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고 우크라이나로 함께 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지난 11일 로건과 A씨 등을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아직까지 국외 체류 중인 이근은 귀국하는 대로 조사할 예정이다.우크라 국제여단 “이근, 기밀임무 수행” 확인 국제의용군에 따르면 현재 이근은 기밀 임무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국제여단의 다미엔 마그루 대변인은 지난 5일 “한국인들도 다른 병사와 마찬가지로 (전투에) 투입돼 있다”면서 “국제여단에 들어온 이들은 실제 전투 관련 업무를 맡고 전선에 배치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의용대원들은 군의관, 저격수, 유탄 발사, 대전차 운용 등 부대별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투경험이 있는 지원자만 활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는 “한국의 인기 유튜버이자 전직 특수부대 대원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이근의 인스타그램 내용을 인용해 전하기도 했다. 매체는 이근이 한국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현역 복무 당시 아프리카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 상대 군사 작전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한국 유튜버, 촬영 중 실수로 우크라 국경 넘었다” 또 다른 한국인 유튜버가 실수로 여행금지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유튜버 B씨는 지난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접경지역에서 촬영하다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에 발견됐다. B씨는 한국 외교부의 도움으로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B씨는 실수로 국경을 넘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법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현재 우크라이나는 외교부가 전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긴급 발령한 국가다. 여행금지인 여행경보 4단계가 발령된 나라에 정부 허가 없이 방문하거나 체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 “실종된 딸, 결국”…우크라 경찰, 딸 시신 보지 못하게 했다

    “실종된 딸, 결국”…우크라 경찰, 딸 시신 보지 못하게 했다

    “딸이 가까이에서 총을 맞았는지 머리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어요”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마을 부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카리나 예르쇼바(23)의 장례식에서 그의 양아버지 안드리 데레코(41)가 한 말이다. 그는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관 뚜껑을 열려고 애쓰는 아내 올레나 데레코를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밝혔다. 딸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예르쇼바는 초밥집 직원으로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부차에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10일 실종됐다. 당시 어머니 올레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예르쇼바가 부차의 ‘에너지 노동자 거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실종됐다”며 “내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알리기도 했다. 양부 “성폭행당한 뒤 총 맞아 사망 추정” 예르쇼바 얼마 후 그가 살고 있던 아파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예르쇼바의 죽음은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딸의 죽음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단지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고문을 당해 예르쇼바의 몸에 “상처”가 있다고만 했다. 이에 양아버지 안드리는 “러시아 군인들과 몸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바실렌코 하원의원은 “예르쇼바는 러시아 병사들에게 성폭행과 고문을 당한 뒤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날 11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국제인도법을 위반했다는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보고서는 “러시아군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유린했음을 시사하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발견했다”며 “대부분 러시아군이 실효적으로 지배한 곳이나 통제하고 있는 단체 하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 “러軍 전투함 우크라 미사일 맞고 폭발” 자존심 생채기

    “러軍 전투함 우크라 미사일 맞고 폭발” 자존심 생채기

    러시아 해군의 흑해 함대에서 기함(旗艦) 역할을 하는 순양함이 폭발했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막심 마르첸코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지사는 자국군의 ‘넵튠’ 지대함 미사일 2발이 러시아 해군 순양함 모스크바호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마르첸코 주지사는 “우리 미사일이 표적에 정확히 꽂혔다”면서 “흑해를 지키는 넵튠 미사일이 모스크바호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호는 지역 내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전투함이었다. 배수량 1만 1500t, 길이 187m, 폭 21m, 승무원 약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미국 잡지 포브스는 1월 이 대함미사일로 무장한 모스크바호 한 척으로 우크라이나 전체 해군 전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모스크바호는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본토 남단 근처의 즈미니섬 공격에 투입됐다. 당시 즈미니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병사 중 한 명은 투항하라고 회유하는 전투함을 향해 “꺼져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가 포로로 잡혔다. 지난달 풀려난 해당 병사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영웅’ 칭호와 함께 훈장을 받았다.어쨌든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막강한 전력의 모스크바호가 최우선 표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정확한 피해 수준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해전(海戰)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 해전대학교 러시아 해양연구소장 마이클 피터슨 박사는 “군사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피터슨 박사는 “모스크바호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주력함이다. 조금 낡긴 했지만 흑해에선 러시아 군사력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피터슨 박사는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러시아 해군의 해안 화재 지원 및 방공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 해군은 앞으로 우크라이나 해안에서의 작전에 앞서 멈칫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결론 내렸다. 일단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마르첸코 주지사의 모스크바호 격침 주장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항간에 떠도는 격침설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14일 “모스크바호에서 매우 큰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 화재로 탄약고가 폭발,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폭발의 원인이 단순 사고라는 주장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승선원 2명이 일부 보안 조치를 위반,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화재가 발생했다. 승선원은 모두 구조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모스크바호에 꽂힌 넵튠은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개발한 지대함 미사일이다. 이번 전쟁에서 사실상 처음 실전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 “옆방에 가족 있는데…” 러軍, 임신한 16세 소녀와 78세 할머니 성폭행 새 증언

    “옆방에 가족 있는데…” 러軍, 임신한 16세 소녀와 78세 할머니 성폭행 새 증언

    러시아군의 전쟁 성범죄 만행과 관련한 추가 폭로가 터졌다. 13일(현지시간) 독일 빌트지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점령 당시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새로운 증언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헤르손 크라스니바 출신 소녀 다샤(16)는 지난달 13일 러시아군이 마을을 점령한 이후 야만적인 성폭행에 시달렸다. 소녀는 빌트지와 인터뷰에서 “가족과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술 취한 러시아 병사에게 발각돼 끌려갔다”고 밝혔다. 소녀는 “처음에는 러시아군도 정상이었다. 그런데 마을을 뒤져 보드카를 마시면서부터 이상해졌다. 술에 취한 병사들은 젊은 여성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미리 지하실로 숨은 상태였다. 어머니와 형제 셋, 여동생 한 명과 몸을 피했다. 하지만 결국 들켰다”고 설명했다. 소녀는 러시아군이 어머니와 형제자매에게 나이를 묻고 차례로 심문한 후 자신을 끌고 갔다고 덧붙였다. 동료 병사가 어정쩡하게 막아섰지만, 술 취한 러시아 병사는 개의치 않았다고 소녀는 전했다.결국 동료 병사는 곧 돌아오겠다고 경고한 뒤 자리를 떠났고, 술 취한 병사는 소녀를 그 자리에서 성폭행했다. 방 옆 부엌에는 소녀의 가족이 있었다. 소녀는 “술 취한 러시아 병사에게 내가 16살이고, 임신 6개월째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나를 더듬었다. 저항하는 내 목을 조르고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 군인은 소녀를 마을의 다른 집으로 끌고 가 재차 성폭행을 시도했다. 다행히 동료 병사들이 들어와 추가 범행을 막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녀는 “다른 러시아 군인이 강간범을 총살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3일 후 가해 병사는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고 말했다. 소녀는 사건 이후 가족과 함께 마을을 탈출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소녀와 그 가족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놓아줄 수 없다고 했다. 전쟁범죄가 탄로 날까 우려한 것이었다. 결국 소녀는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을 탈환한 후에나 러시아군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녀는 자신이 러시아군 성폭행 만행의 유일한 희생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같은 마을의 78세 할머니도 러시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 류드밀라 데니소바에 따르면 실제로 러시아군은 셀 수 없이 많은 전쟁 성범죄를 저질렀다. 감독관은 특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14~24세 사이 소녀와 여성을 주택 지하실에 가두고 25일간 조직적으로 성폭행했다고 지적했다. 이 중 9명은 현재 임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여성이 우크라이나 남성의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어떤 남자와도 성관계를 원하지 않을 정도로 성폭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엄마가 보는 앞에서 11세 소년을 성폭행한 일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16세 소녀를 성폭행한 어떤 러시아 군인은 “나치 매춘부에게는 계속해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러시아 군인 알렉세이 비치코프(24)가 우크라이나 한 살 아기를 성폭행하고 관련 영상을 유포했다가 체포됐다. BBC는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러시아군이 부부 중 남편을 죽이고 50세 아내를 성폭행한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감독관은 러시아군이 저지른 성범죄 규모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직접 증언하지 않는 한, 그것들을 범죄로 기록할 수 없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를 요청했다.
  • 육군 31사단, 화순 백아산에서 국군 추정 유해 1구 발굴

    육군 31사단, 화순 백아산에서 국군 추정 유해 1구 발굴

    육군 제31보병사단은 전남 화순군 백아산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전을 펼친 끝에 국군 추정 유해 1구를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고 14일 밝혔다. 31사단 비호여단 충의대대 장병들과 국방부 유해발굴단으로 구성된 유해 발굴팀은 지난달 28일부터 전남 화순 백아산 일대에서 진행한 유해 발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유해 발굴 작전을 통해 국군 추정 유해 1구를 발견했다. 유해 발굴은 31사단 기준으로는 5년만, 화순지역에서는 15년 만이다. 발굴단은 지난 12일 발굴 유해를 수습해 발굴 현장에서 약식 제례를 한 뒤, 충의대대 주둔지에 마련한 임시 봉안소에서 최순건 사단장 주관으로 봉안식을 치렀다. 유해 발굴팀은 오는 18~22일 복토(覆土) 작업을 진행, 유해 발굴 지역을 원상태로 복구할 예정이다. 사진은 유해발굴팀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날까지 유해발굴 작전 수행 중 발견된 유해의 모습. 
  • “러시아 군함은 X이나 드세요”…우크라이나 ‘새 우표’에 강력 항전 메시지

    “러시아 군함은 X이나 드세요”…우크라이나 ‘새 우표’에 강력 항전 메시지

    우크라이나 우정국이 러시아군을 향한 비난 문구가 적힌 우표를 발행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우정국은 페이스북에 “‘러시아 군함은 가서 X이나 먹어라’라는 슬로건이 적힌 우표 판매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우표는 이날부터 주요 우체국과 온라인 채널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이날 발행된 우표에 담긴 슬로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에 항전하다 포로로 붙잡혔던 병사 로먼 흐리보우가 러시아 군함을 향해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흐리보우는 러시아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 본토 남단에서 48㎞ 떨어진 흑해상의 작은 섬인 즈미니에서 다른 국경수비대원 12명과 함께 영해를 지켰다. 우크라이나 영해 경계 구성의 핵심이었던 즈미니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지난달 24일 러시아 전함을 맞닥뜨렸다. 러시아 전함은 섬에 접근하면서 국경수비대원들에게 무전으로 2차례 “전쟁상황이다.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면 유혈사태와 불필요한 사상은 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포격하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흐리보우는 무전으로 “러시아 군함은 닥치고 꺼져라”고 맞섰다. 러시아군과 국경수비대가 주고받은 이 교신 내용은 현지 매체를 통해 보도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보도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흐리보우는 이날 우표 공개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우크라이나 우체국은 “그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기에 이번 우표가 발행될 수 있었다”며 경의를 표했다.
  • 보이소! 익숙한 도시 뒤 ‘쥐라기 공원’…오이소! 해운대·광안리 곁 신화의 바다[이우석의 미시(微視) 여행]

    보이소! 익숙한 도시 뒤 ‘쥐라기 공원’…오이소! 해운대·광안리 곁 신화의 바다[이우석의 미시(微視) 여행]

    자전과 공전 주기가 일정한 지구에선 항상 달의 앞면만 볼 수 있다. 여느 매체에서 우리가 봐서 눈에 익은 달이 바로 그 모습, 즉 ‘달의 앞면’이다. 많은 이들에게 부산은 해운대를 위시한 광안리, 서면, 남포동 등이 익숙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유리 마천루로 빼곡한 국제도시인 데다 대한민국 제2의 메트로폴리탄인 까닭이다. 여름이나 휴일이면 그림 같은 해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그들을 위해 많은 상업시설이 불야성을 이룬 덕에 부산의 야경은 ‘100만불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에 견줘도 모자라지 않는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100만불’이야 뭐 그리 비싼 가치가 아니다. 초인 개념의 ‘600만 달러의 사나이’ 역시 서울 강남 아파트 60평 1채를 팔면 구입할 수 있다.) 아무튼 모두가 떠올리는 이런 부산 풍경 역시 ‘달의 앞면’과도 같다. 그렇다면 그 뒤편엔 무엇이 숨어 있을까. 항구인 부산은 뒤가 없다. 서울 쪽에서 바라보는 기준으로 부산의 뒤는 망망대해 태평양을 향한 대한해협뿐이다. 서쪽으로 가 보자. 보통 ‘서부산’은 부산 강서구와 사상구를 이른다. 동해와 남해를 함께 품은 부산이지만 최서단엔 남해만 있다. 대신 이곳에 바다와 강이 함께 흐른다. 그 강은 바로 낙동강이다. 강원도 태백 고원에서 발원해 한반도 1300리를 유유히 세로로 지른 기나긴 강은 꿀처럼 비옥한 토지를 하구에 남기며 바다로 흘러들고, 그곳에서 유명한 명지 대파와 대저 토마토가 나왔다. 지금은 대파밭은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파보다 꼿꼿한 신식 아파트들이 무성히 자라났지만, 여전히 이름만큼은 명품 대파 산지로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국토 남녘의 끝, 신록도 이미 지나 수풀이 우거지고 있는 완연한 봄날 고즈넉한 서부산의 너른 품을 찾아 보는 것은 ‘익숙한 도시에 대한 낯선 도전’이다. 을숙도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낙동강의 서부산’이 ‘해운대의 부산’과 어떻게 다른지 직관적으로 말해 주는 곳이다.하중도(河中島)인 을숙도는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일 정도로 소중한 환경 유산이다. 현재 람사르 습지 보호 조약에 가입돼 있으며 세계적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이 많은 ‘지정’과 ‘조약’은 을숙도를 자연 그대로 남겨 놓을 수 있도록 개발로부터 단단히 잠가 놓았다. 덕분에 이 금싸라기 같은 땅에 값비싼 아파트를 심는 대신 환경과 에코투어라는 더 값진 보물이 남았다.요즘은 신록과 야생화가 백두대간 내륙에서 모여든 옥토를 채운다. 초여름부터 갈대가 한가득 피어나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에코 투어를 하기에 제격이다. 에코센터에서 운영하는 일일 한정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전기자동차를 타고 전망대와 탐조대 등 다양한 곳을 둘러보며 ‘광역시 속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과연 이곳이 내가 알던 부산이란 말인가. 아프리카 초원 같은 광활한 대지가 대도시 한편에 오롯이 남아 있다. ‘쥐라기 공원’이라 해도 믿을 만큼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인원 제한 탓에 을숙도 에코투어를 하지 못하면 해 질 무렵에 맞춰서 아미산 전망대를 가면 된다. 낙조가 붉게 물들이는 을숙도에서 서정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을숙도를 통과하는 낙동강 하굿둑 한편에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들어섰다. 경관을 해치기보다는 건물 외벽에 푸른 식물을 식재해 자칫 쓸쓸해 보일 수 있는 흙섬의 매력을 잘 살렸다. 그 덕에 건물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프랑스 아티스트 파트리크 블랑이 작업한 ‘수직정원’ 작품이다. 생태계를 해치지 않게 국내 자생종 175종을 심었다. 서부산엔 또 하나의 섬이 있다. 가덕도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오륙도쯤은 비교할 수 없다). 을숙도와는 달리 바다(남해)에 면해 있다. 옥빛 바다를 품은 풍광과 해안절벽 등 자연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섬이 품은 역사·문화적 내용에 눈길이 간다. 가덕도는 을사늑약의 단초가 된 러일전쟁(1904~1905년) 당시 일본군 요새 사령부가 주둔한 곳이다. 요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잇따른 초반 패전에 매우 분노한 차르가 내린 명령이 이 작은 섬에 역사를 더하게 했다.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당시 유럽 최강 전력인 발트 함대를 극동까지 보내기로 마음먹고, 전단장으로 명장 지노비 페트로비치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을 선임했다. 일본을 멸망시키려 했던 의지였다. 1904년 10월 위풍당당하게 출항한 발트 함대 38척은 규격 문제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해 최악의 코스인 희망봉을 돌아와야 했고, 영국과 독일마저 석탄 보급을 거부해 ‘가엾게도’ 이듬해 5월이 돼서야 극동까지 왔다. 병사들은 각종 질병과 영양실조, 그리고 사기저하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일주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해 스웨덴~노르웨이~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프랑스령 말리~가봉~독일령 나미비아~네덜란드령 남아프리카(공화국)~마다가스카르~영국령 실론 섬(스리랑카)~말레이시아~프랑스령 베트남~미국령 필리핀~대만~청나라~대한제국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대장정을 거쳤다. 지구 반 바퀴인 2만 8800㎞를 돌아왔지만, 쓰시마 해협에서 그들을 기다렸던 것은 ‘마일리지’가 아니라 이순신을 존경한다는 도고 헤이하치로 연합함대장이 지휘하는 일본제국 함대였다. 결론부터 말해 쓰시마 해전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 해전이었고 단일 해양 전투로선 세계 최대 패전 스토리였다. 집중포화를 받은 발트 함대는 37척 중 전함 6척, 순양함 3척을 합해 19척이 바닷물에 가라앉았으며, 7척이 나포됐다. 후방 순양함 3척과 기타 선박들은 도망갔다. 로제스트벤스키 전단장도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원래 합류 목적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착한 함정은 단 3척뿐이었다. 무려 5380명이 전사했고 6000여명이 사로잡혔다. 반면 일본이 본 피해는 전사자 117명에 어뢰정 3척뿐. 사실상 러시아군이 궤멸한 수준이다.이에 앞서 일본 육군 포병이 발트 함대가 지날 것으로 예상하고 기다린 곳이 바로 가덕도 외양포다. 요새사령부를 설치하고 280㎜ 유탄포 6문의 포대와 화약고, 사단 막사 등을 세웠다. 이 어두운 유물은 지금도 외양포 일대에 남아 있다. 새바지 대항에는 인공동굴을 만들어 러시아군의 상륙에 대비하는 요새로 삼았다.들어서자마자 시원한 동굴은 바다를 향해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총을 쏘는 구멍이다. 사람 서넛이 지날 수 있는 가장 큰 굴은 해변으로 뻗었다. 산악보루와 관측소는 전망대 구실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전화(戰火)의 시설이 지금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관광 시설이 됐다. 총포를 쏘는 구멍은 신비스러운 바다 전망창 노릇을 하고, 터널 통로는 숨겨진 해변까지 쉽게 다다르게 하는 지름길 구실을 한다. 이 밖에도 가덕도(눌차도)에는 길거리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가 자그마한 어촌을 빼곡히 채운 정거마을 등 오밀조밀 둘러볼 곳이 많다.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부산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이 이뤄진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설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수로왕과 결혼해 인도계 한국인이 된 ‘다문화 가정의 조상’ 허황옥은 서부산 대저 쪽으로 돌배를 타고 왔다고 전해진다.덕분에 이 지역엔 가락국의 신화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송정동 망산도가 대표적인 곳이다. 인도에서나 볼 법한 특유의 돌더미와 배가 가라앉았다는 유주암까지 그대로 있다. 흥국사는 신혼 첫날밤을 보낸 곳이다. 경내에 허황옥전이 따로 보존돼 있다. 부산시와 김해시는 이 지역을 묶어 ‘허왕후 신행길’로 지정하고 투어코스를 만들었다.서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대포다. 동부산에 해운대가 있다면 서부산엔 다대포 해변이 있다. 남해 특유의 서정적 풍광이 오롯이 남은 곳이다. 수심이 얕고 모래가 단단한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몰운대에서 다시 바라보는 해변 풍경도 근사하다. 낙동정맥이 마지막으로 솟았다 바닷물로 잠겼다는 몰운대(沒雲臺)는 원래 섬이었지만 지금은 곶처럼 불룩 튀어나온 바위산이다. 탐방로 주변으로 일렬로 늘어선 늠름한 해송을 지나 관측초소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오는 트레킹 코스가 특히 좋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 관측초소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풍경이 빼어나다. 황금 낙조가 붉은 해변에 잠기는 다대포 앞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꿈의 낙조분수’가 있다. 1000여개가 넘는 노즐에 최고 55m까지 물이 치솟는다. 그저 바라만 봐도 낭만적 분위기에 젖어 든다. 번쩍번쩍한 해운대나 광안리와는 딴판이다. 서부산 투어의 핵심은 김해국제공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서부산은 공항이 가까워 한 바퀴 둘러보는 1박 2일 내지 2박 3일 투어로 짜기에 좋다. 그동안 알고 있던 화려한 부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 호젓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만난 ‘광역시’ 부산의 맨 얼굴. 서부산이 짓는 풋풋하고 수줍은 표정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여행수첩 전복이 상다리 부러지게 갈미조개는 탱탱 달달해소희네집은 해물 정식이 맛있다. 한정식처럼 갖은 반찬을 미역국과 함께 차려 내는데 대부분 신선한 해물이다. 메뉴는 그때그때 나는 제철 해산물로 차린다. 새우나 전복 등 추가 메뉴가 따로 있는데 시키지 않아도 밥 한 그릇 먹기엔 과할 정도로 푸짐하다. 재료를 손질하는 솜씨도 좋다. 단 4명이 가야 좋다. 둘이 가나 넷이 가나 3만 2000원을 받는다.명지선창회타운은 지역 명물 갈미조개를 취급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개량조개지만 툭 튀어나온 패각이 갈매기를 닮았다고 갈미조개라 부르거나 명지에서 많이 난다고 명지조개라고도 한다. 새조개처럼 탱글탱글하고 달달한 맛을 낸다. 4월의 맛이 가득한 갈미조개는 샤부샤부로 데쳐 먹거나 수육으로 맛보면 된다. 삼겹살을 곁들여 갈삼구이로 먹어도 좋다. 금소리 갈미조개는 밑반찬도 좋고 육수도 잘 내 많은 이들이 찾는다.명지선창회타운 바로 옆에는 스타벅스 커피숍 명지선창 드라이브 스루(DT)점이 있다. 단순히 커피전문점이면 들를 필요가 없지만 웬만한 시골 공항만 한 규모의 대형 건물과 주차장을 갖춰 투어 중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전망도 좋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하구와 을숙도를 나지막한 높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DT점답게 테이크아웃을 하는 주민도 많다.
  • “드니프로 시신안치소에 러군 시신 1500구 보관 중…시신 찾아가라”

    “드니프로 시신안치소에 러군 시신 1500구 보관 중…시신 찾아가라”

    러 사망 인정 1351명보다 훨씬 많아“시신들 화장·매장하고 싶지 않다”“숨진 러 병사 부모, 아들 시신 찾아가길”인근 자포리자 일대서 러-우크라군 격전우크라 러 사망자 수 1만 8600명 주장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지 한 달여가 지난 가운데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 시의 시신안치소에 1000구가 넘는 러시아군 시신이 안치돼 있다고 드니프로 부시장이 밝혔다. AFP 통신·BBC에 따르면 미하일 리센코 드니프로 부시장은 13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냉동고 4곳에 누구도 찾아가지 않은 러시아 군 시신 1500구 이상이 보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신들을 화장하거나 매장하고 싶지 않다”면서 “숨진 러시아 병사들의 부모가 아들의 시신을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드니프로에서는 직접적인 교전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인근 자포리자 일대에서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 격전이 벌어졌다. 리센코 부시장이 밝힌 시신 수는 러시아 측이 지난 3월 25일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망자 수인 1351명을 넘어서는 숫자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 군의 사망자 규모를 1만 8600명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자국군의 사망자 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러시아군 사망자 20%가 장교” 영국 더 타임스는 12일 러시아군 사망자 20% 이상이 장교로 파악되는 등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가 정확한 사상자 숫자를 알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시신이 돌아오면서 고위 장교들의 사망을 숨기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BBC 러시아어 서비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해 이송된 러시아군 1083명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이 중 20% 이상이 장교였다. 전문가들은 사망자 중 장교 비율이 높은 것을 두고 장교 시신을 우선 이송했을 가능성과 함께 러시아군은 장교들이 직접 전장에서 전술 판단을 내린다는 점을 들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또 사망자 15%는 엘리트 낙하산 부대원이고 특수부대원 25명도 있었다.더 타임스는 이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호스토멜 공항 전투에서 사망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은 침공 첫날 공항 확보를 위해 낙하산 부대원과 비무장 경량 차량을 투입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정규 보병들은 64㎞에 달하는 진군행렬이 멈춰서면서 제 때 오지 못했다. 더 타임스는 러시아군의 시신이 돌아오는 데 2주∼1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최근 전투에서 사망한 이들은 아직 이송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엘리트 탱크 부대인 59 경비연대 사령관 알렉산더 베스파로프(42) 대령과 49 제병합동군 소속 포병 정찰대를 이끄는 뱌체스라프 사비노프(40) 중령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베스파로프 대령은 하리키우 인근 작전에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장교는 갈가리 찢어진 그의 신분증 사진을 공유했다. 사비노프 중령은 시리아 전쟁에서 부상하고 두 차례 훈장을 받았으며 3월 12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다른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수주 후에나 확인됐다.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지난주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한 손실을 봤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는데 이는 사망자 숫자가 3월 25일 공식적으로 내놓은 1351명 보다 훨씬 많음을 시사한다고 더 타임스는 말했다. 
  • 반가사유상, ‘박물관의 아이돌’이 되다 [클로저]

    반가사유상, ‘박물관의 아이돌’이 되다 [클로저]

    ‘요즘 것들’도 반한 반가사유상 깨달음 중단한 ‘그’의 모습반가사유상, 인기에 굿즈 모조품까지이 모든 것, 싯다르타에겐 어떨까출가 전 부처의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왕자 싯다르타는 궁금했죠. 노인을 보고 병든 이를 보니 만사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둔 그가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갑자기 출가를 결심한 데 대해서는 ‘환락에 질렸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놀랐다’ 등 해석이 분분합니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난 그는 결국 스스로 깨달은 자 부처가 되었어요. 미륵보살은 중생 구제를 위해 스스로의 깨달음을 미룬 자예요. 부처가 된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죠. 둘의 공통점은 깨닫기 전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겁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던 자박물관의 ‘구원투수’가 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이돌’ 반가사유상 두 점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입니다. 반가사유상 두 점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죠. 이들은 2층 사유의 방에서 만날 수 있어요. 또한 박물관측은 대대적으로 이들을 홍보하며 굿즈까지 기획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평온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그는 관람객에게 평안을 선물합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담은 미니어처를 만들었는데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에 뺨을 댄 채 뺨 위에 살짝 손을 대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잠깐의 ‘정신적 공백’을 관객에게 선물하죠. 이런 모습을 담은 미니어처 등 ‘반가사유상 굿즈’는 다른 제품 형태로도 제작됐어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국립중앙박물관이 협업해 기획한 건데요.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4만원대인 미니어처는 이미 올해 초 판매량 약 1만개를 넘겼어요. 남성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가 구매했다는 소식도 인기를 높였다네요. 현재는 작은 크기의 경우 ‘마지막 수량’이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죠.● 시대를 건너온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어떻게 시대를 거슬러 오늘날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일반에 새롭게 제안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3층 전시실에 두거나 특별전에 출품하는 방식으로는 파급력이 기대보다 약했습니다. 관객의 접근 장벽을 낮춰야 했죠. 답은 2층 에스컬레이터 앞 사유의 방 구성이었습니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이 방 관람객은 이미 올해 초 13만명을 넘겼고 현재도 하루 평균 3000명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굿즈, 모조품도 나왔다 지난해 공개된 반가사유상 굿즈는 기획 당시 원색에서 파스텔색으로 바꿔 내놨습니다. 젊은 소비층이 파스텔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바꾼 건데요. 현재는 높은 인기에 원색도 출시된 상태입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개발한 이 제품, 유명세에 몸살도 겪었습니다. 재단측은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재단에서 기획 및 개발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인기로 이를 유사한 형태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정품 구매를 당부했는데요. 다음날 국립중앙박물관도 같은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 알림 코너에 게재했습니다. 싯다르타는 ‘나는 누구인가’를 깊이 고민하며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의심을 지웠어요. 텅 빈 심연의 울림을 느끼려면 진리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죠. 싯다르타는 요구와 욕망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합니다. 이 상태를 바라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오늘날 책상 위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두려는 소비자들도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평온을 구하려는 거겠죠.  모조품까지 생길 정도의 인기, 싯다르타 기준으로는 완전무결 상태로서의 수행을 위한 바라밀과는 결이 다른 상황이겠네요. 
  • 광복군·한국전쟁 영웅 이영수 애국지사 별세

    광복군·한국전쟁 영웅 이영수 애국지사 별세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약한 이영수 애국지사가 지난 11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2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 지사는 전날 경기 수원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작고했다. 경북 고령에서 1924년 태어난 고인은 1944년 10월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일본군 내 한국인 병사들을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초모(招募)공작’ 임무를 수행하다 1945년 5월 일본 헌병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으로 압송되던 중 탈출했고 피신하는 동안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빈소는 수원 연화장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3일 오전 7시 30분.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의 별세로 생존 애국지사는 11명(국내 9명, 국외 2명)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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