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병력 동원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커머스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석사학위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일본군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인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91
  • 가계 부담·학생 좌절… 학부모도 “반값”

    가계 부담·학생 좌절… 학부모도 “반값”

    “학부모 입장에서도 반값 등록금은 절실합니다. 아들을 따라 집회에 나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학생 자녀 두 명을 둔 직장인 강모(51)씨. 그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에 나간다는 아들을 “고생하고 조심해라.”라는 말로 배웅했다. 강씨는 1980년대 민주화 시위 때도 “짱돌 한번 던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8년 대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나간다고 할 때도 철없는 짓이라고 나무랐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 집회’를 바라보는 강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난 2월 두 자녀의 등록금 13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800만원을 대출받았다.”면서 “비싼 등록금 때문에 가계가 흔들리고 학생들이 좌절한다. 나라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반값 등록금 촛불 시위를 하던 대학생 2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저녁에 잠시라도 광화문 쪽으로 나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교문 밖을 나온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가 심상치 않다. 갈수록 기세가 거세지고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이제까지 촛불 집회라면 냉소를 보내던 40~50대 ‘학부모 세대’가 호응과 지지를 보내고 있어서다. ●“40~50대가 거리에 나선 것은 이례적” 반값 등록금 집회는 지난달 29일 시작돼 5일로 8일째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예전의 촛불 집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학생들의 촛불 집회를 방관하거나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던 중장년층의 참여율이 높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대학 등록금은 줄이고 싶어도 줄이지 못하는 절실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4일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는 참가자 1000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일반 시민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00~200명이 40~50대의 학부모였다는 점이다.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 이모(26)씨는 “아버지나 삼촌 나이로 보이는 분들이 100명 넘게 참여했고 간식거리를 사주시고 격려해 주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촛불 문화제에서 이렇게 많은 40~50대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40~50대가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등록금 문제가 서민·중산층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집회에 참가한 은행원 최모(49)씨는 “학부모로서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솔직히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이들 등록금 1000만원, 2000만원 내고 나면 노후 준비도 제대로 못 한다.”고 말했다. 김삼호 대학연구소 연구원은 “자녀들의 등록금 문제가 서민뿐만 아니라 그나마 여유가 있는 중산층 학부모들도 압박하면서 사회의 중추 세력인 40~50대가 대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중장년층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는 반값 등록금 집회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이제까지 집회나 시위에 회의적이었던 40~50대가 거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학부모 세대가 나온 이상 반값 등록금 촛불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경찰 7~10일 ‘촛불대회’ 금지통보 5일 밤에도 광화문 일대에서는 학생과 시민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값 등록금 촛불 문화제가 진행됐다. 촛불 문화제는 오후 10시쯤 마무리됐지만 일부 학생들이 트위터를 통해 연락, 명동 일대에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은 12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한편 경찰은 7~10일 서울 도심에서 열겠다고 신고해 온 ‘반값등록금 국민촛불대회’에 대해 집회금지통보를 내렸다. 김동현·윤샘이나기자 moses@seoul.co.kr
  • 백호가 나타났다?…실제크기 인형에 놀란 英경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처럼 영국에서 실물 크기의 호랑이 인형을 실제 야생동물로 착각해 대규모 경찰력이 동원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21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영국 햄프셔 사이스햄튼 헤지앤드 인근 지역에 살아 있는 백호를 목격했다는 주민들의 신고로 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이 보도했다. 백호로 추정된 그 야생동물이 발견된 곳은 인근에 골프장이 있어 경찰 측은 무장 병력과 헬기를 출동시켰으며 인근 동물원의 전문가들도 동원했다. 또한 인근 지역 주민을 긴급 대피 시키고 야생동물이 도주 가능한 고속도로도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이 참여한 대규모 생포 작전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무장 경찰이 백호로 추정되는 생포 대상에 접근했지만 그 야생동물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헬기에 장착된 열화상감지 센서에도 어떠한 열원이 감지되지 않았다. 이는 목표물이 실물 크기의 호랑이 인형이었던 것. 이에 대해 경찰 대변인은 “헬리콥터로부터 발생한 하강기류에 호랑이가 뒤집어지면서 실물 크기의 인형임이 밝혀졌다.”면서 “당시 촬영된 CCTV 영상을 보면 우리 모두가 진짜 호랑이로 착각할 만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대원들이 미소를 띠고 되돌아가는 사건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며, 이번 사건은 우리가 다루는 다양한 사건 중 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이번 해프닝을 일으킨 호랑이 인형의 실제 주인을 찾기 위해 조사 중이며, 해당 인형은 분실물 처리돼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5·16 50돌] 5·16을 말한다

    [5·16 50돌] 5·16을 말한다

    ■ “8기 JP가 주도했다고? 5기가 핵심 세력이었지” 주역 중 1인 김재춘 前중앙정보부장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김재춘(84·육사 5기)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은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였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재춘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와 1955년 육군대를 졸업했다. 1957년 연대장을 지낸 뒤 1961년 5·16 당시 5·16 군사정변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을 맡았다. 이후 방첩부대장 겸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지냈으며 1963년 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이후 무임소장관,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쳐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김포·강화, 민중당)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고양·김포·강화, 민주공화당)을 지냈다. 1974년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1975년 한·중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 “5·16前 JP가 찾아와 정치발언 하기에 내쫓아” 反혁명분자 몰렸던 김웅수 당시 6군단장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소장)이었던 김웅수(88)씨. 수도권 요충지에 포진한 6만명의 예하 병력을 법을 어겨 가며 진압군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반 혁명세력으로 몰렸고 1년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그레이트폴스시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5·16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쿠데타로 본다.”고 했으나, 답변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5·16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단장급 이상 야전군 지휘관 회의가 5월 17일 강원 원주의 야전군사령부에서 예정돼 있었어요. 16일 열리는 체육행사에도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25~26명의 지휘관들이 15일 원주에 다 모였어. 16일 새벽 4시쯤 잠을 자고 있는데 이한림 야전군사령관이 관사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거야. 그래서 가 보니 이 사령관이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면서 “각자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장악해라. 병력 이동의 빌미가 될지 모르니 부대에 비상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6군단은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6군단의 작전지휘권은 내가 아니라 미 1군단장이 갖고 있었어요. 불법을 진압하려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북한군 교신이 급격히 늘어나기에 비상을 걸었지. 비상을 걸면 자동적으로 1개 사단이 완전무장해서 특정지구로 출동하게 돼요. 이 일로 나중에 나는 반 혁명세력으로 간주되게 되었죠. →미군에는 조치를 요구했나요. -18일 나의 매부인 강영훈 육사교장이 육사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라이언 1군단장한테 “왜 1군단이 갖고 있는 서울 비상계획은 쓰지 않는가.”라고 따졌어. 그날 저녁 라이언 장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매그루더 미 8군사령관이 이한림 장군을 찾아가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 장군이 “I will do(하겠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실제 그날 저녁 이 장군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와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다음날 아침 이 사령관이 소집한 군단장 회의에 가려고 횡성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미군 대령이 “이 장군이 이미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면서 되돌아가라고 하더라고. →결국 미군이 묵인한 건가요. -매그루더 장군이 누구를 진압할 성격이 못 됐어요. 강직하지 않았어. →미국이 5·16을 사전에 감지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17일 마셜 그린 미국 부대사가 ‘군은 헌정에 의한 정통 정부에 귀속하라.’는 서한을 보내 왔거든. →6군단장으로는 언제까지 근무하신 겁니까. -20일 대통령 특사가 온다기에 군단 비행장으로 나갔어요. 도착한 비서 2명이 건넨 윤보선 대통령의 서신에는 ‘대립을 피하고 쿠데타에 협력하라.’라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그날 장도영 장군이 21일 오후 1시쯤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서울로 떠나려는데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불길하다는 거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헌병 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중앙청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달려들어 막아서기에 내려보니 집사람이더라고. 그래서 “군인의 아내이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잘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는 차에 올랐어.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어. 의사당 앞에 도착하니까 어떤 장교가 다가오더니 권총을 옆구리에 대고 같이 가자고 해요. 차지철이었던 것 같아. 나를 마포 형무소에 집어넣더라고. →박정희 소장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나요. -잘 몰랐어. 하지만 그 사람이 청렴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그래서 1957년 내가 군수참모부장으로 있을 때 그를 군수기지사령관에 추천했어요. →직접 본 박정희 소장은 어떤 인물이던가요. -강직한 느낌이었어요. 군수기지사령관 취임식 참석차 부산 동래에 내려가 있었는데 박정희가 숙소로 찾아와서는 “각하, 혁명이라도 해야지 나라가 이대로 되겠습니까.”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군인이 혁명한다고 나라가 잘 된다는 보장이 있나.”라고 했지. →김종필씨와는 인연이 있습니까. -5·16 전에 김종필 소령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부패한 장성들은 군대에서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부패한 장성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소문으로 알지 실제로는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정치적 발언하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미국으로 떠난 이후 두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은 없나요. -1972년인가 장모님이 위독하셔서 한국에 갔었어.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 →청와대로 갔나요. -청와대에서 박정희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기에 “이제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사정이 더 중요하다. 막내 아들이 대학 들어가는데 3년은 더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박정희가 “기업체를 순방하고 군부대도 순방해 달라.”고 그래요. 내가 “장모님 병 때문에 어렵다.”고 했더니 “나이 든 사람의 병이란 늘 그런 것 아니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그래서 포항제철하고 과학기술연구원인가 두 군데 돌아봤어. →김종필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만났더니 “선배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나라가 부패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지. →5·16은 필요했다고 보십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오늘날 국민 전체가 수긍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보면, 5·16이 나라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구나, 국민의 감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정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김웅수는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청산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 김조현의 거처로 옮겨 6살 때까지 중국 하얼빈 근처 독립군 부락에서 살았다. 일본 관동군 학도병으로 끌려간 뒤 일본 센다이 예비사관학교에 편입해 장교가 된다. 일본 야마가타 연대 소대장으로 임명된 지 몇 달 뒤 일본 패망으로 해방된 한국에 들어왔고, 국군 장교가 됐다. 5·16 당시 혁명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뒤 집행유예로 석방,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밟고 워싱턴 DC의 가톨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일했다. 여동생이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이날 김 이사장은 박정희 소장의 지시에 의해 당시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거사의 취지’를 알리는 서신을 전달하는 등 여러 중요 역할도 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여서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쓰레기 도시’ 伊 나폴리, 군인 동원 수거 작전

    이탈리아 나폴리가 쓰레기 처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해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지난주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쓰레기 수거를 위해 군인 투입을 결정한 이래 10일(현지시간) 군인 170명을 동원, 쓰레기 수거 작전에 나섰다. ’미항’ 나폴리가 ‘쓰레기 도시’로 변한 이유는 쓰레기 소각장 건설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앞마당에는 쓰레기 소각장을 들일 수 없다.”는 나폴리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이같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쓰레기 수거 작전에 ‘선거용’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오는15, 16일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연말에도 군병력의 손을 빌려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쓰레기를 치운 바 있다. 한편 4월 중순 이후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폴리는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들과 이를 무단으로 소각하면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이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美 네이비실의 영웅, 최신 이지스함으로 재탄생

    美 네이비실의 영웅, 최신 이지스함으로 재탄생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반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네이비실 대원의 이름이 미 해군 최신 구축함의 함명으로 명명됐다. 미 해군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메인주의 제너럴다이내믹스 조선소에서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인 ‘마이클 머피함’(DDG-112 Michael Murphy)의 명명식이 열렸다. 이번에 세례와 함께 함명을 받은 마이클 머피함은 미 해군의 주력인 ‘알레이버크급’(Aleigh Burke Class) 이지스 구축함의 62번째 함정이자 미 해군 통상 89번째 이지스함이다. 함명은 아프간에서 작전 도중 전사한 네이비실 대원 마이클 머피 대위에게서 따온 것이다. 네이비실은 지난 달 말 알카에다의 창설자 빈 라덴을 사살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미 해군의 특수부대다. 마이클 머피 대위는 지난 2005년 6월 다른 세 명의 네이비실 대원과 함께 아프간 동북부 쿠나르주의 아사다바드 인근 산악지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탈레반 반군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반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매복공격을 가했고, 머피 대위와 대원들은 불리한 지형조건과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된다. 상황이 악화되자 머피 대위는 위험을 무릅쓰고 엄폐된 자리를 벗어나 본부와의 교신을 시도했다. 대위는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도 침착하게 지원을 요청하는데 성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교신 직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전투를 계속했고 끝내 숨을 거뒀다. 2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머피 대위를 포함 3명의 네이비실 대원이 전사하고 나머지 한 명은 부상을 입었으나, 탈레반은 수십 배에 달하는 90여 명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부상을 입은 대원은 인근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다 며칠 뒤 극적으로 구조됐다. 미국은 머피 대위에게 군 최고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했다. 비록 작전은 실패했지만 동료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대위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미 해군 장병이 명예훈장을 받은 것은 베트남전 이래 머피 대위가 최초로, 미 해군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신예 이지스함을 대위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한편 이날 명명식에는 머피 대위의 모친인 마우린 머피 여사가 대모(代母)로 초청됐으며, 미 해군 전통에 따라 직접 샴페인 병을 선체에 부딪쳐 깨트려 군함을 앞날을 축복했다. 사진 = 미 해군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 해병대 서북도서 사격훈련

    해병대는 3일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도서 지역에서 연례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다. 군 관계자는 “백령도 서남쪽과 연평도 동남쪽을 해상사격구역으로 정해 사격훈련을 실시했으며 주한미군,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미해병대 관계자 등 16명이 훈련을 참관했다.”고 밝혔다. 훈련은 오후 1시 30분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훈련에는 K9 자주포와 벌컨포, 81㎜ 박격포 등 서해 5도 주둔 해병대에 편제된 모든 화기가 동원됐다. 특히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주일미군 소속 해병대 연대장과 대대장, 참모 등 지휘부가 처음으로 훈련을 참관했다. 이들은 최근 경기 연천 일대에서 유사시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병력을 신속히 전개해 임무수행 태세를 점검하는 연례훈련인 ‘한국전개훈련’(KITP)을 끝냈다. 군 관계자는 “오키나와 복귀 전 한국 해병대 포병의 훈련 모습을 참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참관하게 됐다.”면서 “그동안 해상 사격을 참관해 온 유엔사 군사정전위 장교들, 주한미군 병력과 함께 훈련을 참관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훈련을 앞두고 북한 해안 부대 일부에서는 휴전선 쪽으로 포를 전진배치 하는 등 이상 동향도 파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그냥 겁주는 것이 아니라 훈련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경계를 강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 2일 ‘우리 민족끼리’를 통해 “조선반도 정세를 더욱더 악화시키고 핵전쟁의 불집을 일으키려는 또 하나의 도발적인 북침전쟁 연습소동”이라고 비난했다. 오이석·윤설영기자 hot@seoul.co.kr
  • 駐코트디부아르 대사관 고립직원 5명 
‘숨가빴던 구출작전’

    駐코트디부아르 대사관 고립직원 5명 ‘숨가빴던 구출작전’

    대통령선거 불복 사태로 내전이 발생해 시내에 로켓포·총알이 날아다닐 정도로 치안이 악화된 코트디부아르 주재 한국대사관에 일주일간 고립됐던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숨 막히는 구출 작전’이 벌어졌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8일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 있던 대사대리를 비롯한 한국인 직원 5명 전원이 한국시간으로 오늘 오전 3시 50분쯤 유엔 평화유지군의 구출 작전으로 안전하게 탈출했다.”고 밝혔다.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의 직원들은 대통령직 이양을 거부해 온 로랑 그바그보 현 대통령 측과 알라산 와타라 당선자 측이 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격렬한 시가전을 벌이게 되자 지난 1일 오후부터 총격전 위협 속에 고립됐다. 대사관 직원들은 프랑스군 및 유엔 평화유지군과 연락하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교전이 악화되면서 구출 작전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대사관에 숨어 있다가 이날 극적으로 구출돼 안전 지역으로 이동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대사관뿐 아니라 인근 다른 대사관들도 총격과 로켓포 공격을 받아 시설 일부가 부서질 정도로 심각했다.”며 “일본 대사관 등에는 철문으로 만든 안전한 대피소가 있었지만 우리 대사관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 구출 작전에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고 전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구출 작전에는 중대 병력과 장갑차 8대, 야전 지프 10대 등이 동원됐으며, 총격전이 잠시 멈춘 동안 1시간 내에 이뤄져 교전은 없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구출 작전이 임박하면서 평화유지군 측은 대사관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대사관저로 먼저 피신한 현지 고용원 2명과 함께 대사관을 찾아 구출 작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출 작전이 위험했지만 유엔과 프랑스 정부, 군이 최대한 지원해 준 덕에 무사히 구출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출된 대사관 직원들은 대사관의 남동쪽에 위치한 프랑스군 주둔지 인근의 호텔에 임시 사무소 및 숙소를 확보, 긴급한 업무를 계속 수행할 예정이다. 현재 코트디부아르에는 우리 교민 113명(대사관 직원 제외)이 있으며, 이들의 거주 지역은 프랑스군과 신정부 군대가 장악하고 있어 인명 피해 등 안전상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코트디부아르의 여행 경보 단계는 3단계인 여행 제한으로 지정돼 있다. 한편 대통령 관저 주변에는 한국을 비롯해 인도·중국·이란·이스라엘·레바논·이집트·일본 등의 대사관이 밀집해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대사관 직원 5명과 인도대사관 직원 2명이 군사작전을 통해 구출된 상태다. 앞서 군인들로 보이는 무장세력이 지난 6일 코트디부아르 주재 일본대사관저를 급습했고 일본대사가 한때 억류됐다가 프랑스군에 구출되기도 했다. 유엔 평화유지군과 프랑스군 측은 앞으로도 상황을 보면서 다른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구출작전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중대본 파견 6개 부처 과장들, 숨가빴던 4개월을 말하다

    중대본 파견 6개 부처 과장들, 숨가빴던 4개월을 말하다

    구제역은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 신고가 접수된 이후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확산됐다. 수많은 소·돼지가 동시다발로 살처분되다 보니 부실 매몰지에서의 침출수 유출로 인한 2차 환경오염 문제가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정부는 원활한 사태 수습을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5개 부처에서 선발된 인력으로 부처합동 매몰지관리 지원팀을 꾸렸다. 또 행정안전부 재난대책과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중대본은 3월 31일 자로 해체되고 파견자들은 1일 소속 부처로 복귀했다. 서울신문은 중대본에 파견됐던 6개 부처 과장들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숨가쁘게 일했던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행정안전부 안병윤, 보건복지부 권준욱, 농림수산식품부 신현관, 환경부 백운석, 문화체육관광부 김재환, 국토해양부 이철조 과장 등이 인터뷰에 동참했다. →처음 합동 근무 명령을 받았을 때의 심정과 각오는. 권준욱 복지부에서 신종플루로 한동안 정신없었던 일을 떠올리며, 다른 부처 일로만 여겼던 구제역이 나의 일이 됐다는 것에 사실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근무를 시작하고 맞이한 토요일(2월 19일), 파견자들이 모여 구제역 괴담 등 국민들의 불안감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마치 전투 중에 최일선에 선 첨병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신현관 축산정책과장으로 구제역 중심에 있다가 중대본 파견 근무 명령을 받고 당황스러웠다. 구제역이 방역 지원과 조정(1차 백신접종이 거의 완료단계)에서 매몰지 침출수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매몰지관리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파견 중이던 국장이 국립식물검역원장으로 발령 나, 교체 파견자로 발탁된 것이다. 농식품부가 주무 부처였다가 여러 부처 공동 일이 돼 구제역과 매몰지 문제 종식을 위해 일익을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마음을 추슬렀다. 안병윤 재난대책 과장으로 지난해 9월 태풍 곤파스와 수도권 홍수피해, 연평도 포격 등 재난대응과 피해복구 지원에 직원들이 녹초가 된 상황이었다. 구제역 문제가 제발 중대본 체제로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경기 북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경기 제2청사에 정부합동 지원반을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본부에 구제역 매몰지 지원팀까지 구성하게 됐다. 중대본 총괄과장이다 보니 휴일과 낮과 밤 구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합동 근무의 의의와 성과를 꼽는다면. 백운석 정부 부처 직원들이 합동으로 지원팀을 구성해 운영한 것은 재난 대응에 있어서 통합적인 관리체제의 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대안을 제시하고, 중대본 지휘체제로 일원화해 전국 지자체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재난대응에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소속 부처 업무를 가리지 않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에서 큰 동료애도 느낄 수 있었다. 이철조 당초 예정됐던 3월 말까지 매몰지 정비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한 것이 최대 성과이다. 전국 매몰지에 대한 전수조사, 정비대상 매몰지 선정, 정비를 위한 설계 시공 등 일련의 과정을 계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중대본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향후에도 좋은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 중앙부처 외에도 각 부처 산하기관 소속 전문가들의 참여도 큰 힘이 됐다. 정비 대상 매몰지에 대한 설계와 시공상황을 점검해 준 기술 전문가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신현관 중대본이 꾸려지기 전에는 각 부처 일에만 충실하다 보니 의견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농식품부는 방역에 초점을 두고, 환경부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니 제대로 조율이 안 된 내용이 국민에게 전달돼 혼란을 야기시켰다. 중대본이 설치됨으로써 정부 내 의견이 조정돼 언로가 일원화되고, 군·경 병력의 동원과 지자체장의 관심을 유도하는 등 범정부적인 대처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본다. →힘들었던 점과 보완이 요구되는 사안은. 김재환 구제역과 매몰지 정비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언론과 인터넷에서 ‘식수대란’, ‘침출수 비상’, ‘축산업 붕괴’, ‘대재앙’ 등 극단적인 표현들이 나와 힘들었다. 물론 상황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랐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보다 과도한 표현들이 국민에게 큰 불안을 안겨 준 측면이 크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잘못된 정보도 많고, 과장된 해석도 많았다. 실제 구제역으로 인해 치러야 할 ‘언어의 비용’도 많았다. 백운석 연일 아침 일찍 나와서 밤늦게 들어가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와 잘해야 된다는 정신적 부담감도 컸다. 무엇보다 일부 언론에서 매몰 초기 급박한 상황에서 발생한 부실 매몰지에 대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매몰지가 아닌 지역의 일반적인 오염도까지 매몰지 때문으로 보도할 때는 힘이 빠졌다. 안병윤 재난 대응 인력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오랜 기간 연일 긴장된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피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우수한 전문인력이 재난관리 분야에 근무하도록 유인하는 조직상의 메리트가 부족하다. 또 교대근무를 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하다. 이번 중대본 운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 지진을 계기로 우리는 어떤 대비책이 필요한가. 이철조 기존 시설물의 내진 성능을 효과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나서야 한다. 매뉴얼과 분야별 대응 전략도 정비가 필요하다. 평소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대응훈련도 내실 있게 실시해야 한다. 국민들이 행동요령을 숙지해 따를 수 있도록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권준욱 미국 유학 시절 토네이도가 온다는 경고를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재난 시 자동으로 텔레비전이 켜지면서 경고 방송이 나왔다. 우리도 통신·방송수단 등을 통해 신속히 알리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 역시 부처 간 합동 태스크포스를 가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신현관 자연에 순응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의 정부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가축 매몰 매뉴얼만 봐도 현실 대응능력이 떨어진다. 각 지역의 상황이 다르지만 일률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큰 틀의 가이드라인으로 해당 지자체장이 지역 여건에 맞게 운용하도록 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합동근무를 마치고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재환 구제역 방지 업무를 하다 유명을 달리한 9명의 명복을 빈다. 이런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흙더미에 묻혀 사라진 347만 마리 가축의 영혼도 위로하고 싶다. 죽어가면서까지 새끼에게 젖을 먹였던 횡성의 어미소 사연은 가슴 아팠다. 우리는 살처분된 동물에게 미안함을 갖고, 두번 다시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권준욱 중대본 매몰지 지원팀 팀장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이제 파견근무를 끝내고 소속 부처에 복귀해 새로운 과제에 매달리고 있다. 당분간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푹 자고 싶다. 전국의 많은 공직자들이 구제역으로 고생했다. 특별히 지면을 할애해 지원팀 근무자들의 뒷얘기를 취재한 서울신문에도 감사드린다. 백운석 구제역이 동시 다발적으로 확산되다 보니 부적절한 장소에 매몰하거나 침출수 유출 방지를 위한 차수시설이 미비한 곳도 있었다. 이번 사례를 거울로 매몰 처리 시 침출수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고밀도 폴리에틸렌라이너를 차수재로 사용하는 등 매몰 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과거 사례를 답습해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가축들도 살처분했는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진지하게 모색해 볼 때이다. 신현관 구제역 매몰지 문제해결을 위해 부처합동 근무로 지원팀을 꾸렸던 것이 국민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아 좋았다. 구제역 위기에 관련 부처들이 상시적인 정보와 협의를 통해 대처한 것은, 향후 어떤 위기상황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안병윤 최선을 다해 구제역을 막았는데 한 세기 만의 혹한으로 방역효과가 잘 먹히지 않았다. 또한 사료차량 등 축산 관련 차량으로 인해 계속해서 구제역이 확산될 때는 맥이 풀렸다. 구제역 예방과 종식은 축산농가의 환경개선에 있다고 본다. 아울러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재난안전에 대한 요구를 정부 시스템상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재난안전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시스템 개선과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美·日 병력 2만5000명 수색 투입

    일본 동북부를 휩쓴 대지진이 1일로 3주째를 넘어서고 있지만, 집과 가족을 잃은 희생자 가족과 이재민들의 가슴은 타들어만 가고 있다. 친지들의 시신은 찾을 길 없고, 고향과 내 집으로 돌아갈 기약 없이 고달픈 유랑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탓이다. 1만 7000여명에 달하는 대지진 실종자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장기화되자, 일본과 미국은 2만 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1일부터 3일 동안 피해지인 도호쿠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주일미군은 항공기와 함정 등을 총동원해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등 피해지역 해안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군은 원자력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을 이동시켰고, 헬리콥터 부대를 동원하는가 하면 FA18 전투기, EC2 조기경보기까지 띄웠다. 자위대도 항공기 100기, 함정 50척을 투입했다. 일본은 1만 8000명, 미국은 7000명이 각각 참가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 대변인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사고 원전과 과열된 사용후 연료봉을 ‘완전한 안정’ 상태로 만드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에서 최소 20㎞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은 몇달 안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수 있다.”고 말해 이재민들을 또 낙담시켰다. 에다노 장관은 또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수주 안에 봉쇄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새로운 문제들이 돌출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원전 주변 주민들의 소개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 원자로에 냉각수를 주입하는 가설 펌프의 전원을 2일까지 비상용 디젤 전원에서 외부 전원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마치기로 했다. 외부전력으로 가설 펌프를 구동하게 되면 냉각수를 안정적으로 넣을 수 있게 된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방사성물질이 떠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1일 오후부터 우선적으로 4호기의 서쪽과 5, 6호기의 북쪽 등 2개 지역에 합성수지 접착제 살포를 시작했다. 원액을 희석한 6만ℓ의 접착제를 2주일 동안 뿌려 성과를 본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中윈난성 ‘댐건설 보상’ 주민 수천명 격렬시위

    중국 윈난성 북부 쓰촨성 경계지역인 수이장(綏江)현 주민 수천여명이 댐 건설에 따른 강제 이주와 저가 보상 문제로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31일 명보 등 홍콩 언론들이 보도했다. 주민들은 장갑차까지 동원한 시위진압 병력에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진압병력 5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새벽에는 수이장현 공안국장이 시위대에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5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윈난성 북쪽의 창장(長江) 상류지역에 건설중인 샹자(向家)댐이 발단이 됐다. 2015년 이 댐이 준공될 때까지 수이장현 주민 4만여명과 강 건너 쓰촨성 주민 6만여명 등 10만여명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지만 양쪽의 보상 내역이 크게 다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이장현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쓰촨성 주민들은 농지 1무(약 200평)당 2만 8000위안을 보상받지만 자신들은 1만 7000위안밖에 못 받자 최종계약일인 이날부터 ‘보상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시내 도로 곳곳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공안 당국은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시위대가 최대 7000여명으로 불어나자 29일 1500여명의 병력과 장갑차를 동원, 강제해산시켰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바레인사태 종파 분쟁으로 치닫나

    바레인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에서 군 병력을 수혈받은 데 이어 국가비상사태를 15일(현지시간) 선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위대 옥죄기에 나섰다. 시종일관 안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바레인 사태는 사실상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셰이크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은 이날 성명을 통해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겠다면서 “군총사령관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고 밝혔다. 전날 사우디 정부는 바레인 정부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군병력을 파견했다. UAE도 500명의 경찰 병력을 바레인에 투입했다. 바레인 정부는 걸프협력회의(GCC)에도 파병을 요청했다고 확인했다. 파병의 표면적 이유는 ‘걸프국의 안전 수호’다. 하지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가 바레인의 수니파 왕정을 보호함으로써 혁명의 여파가 자국으로 옮겨 붙는 것을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바레인은 전체 인구 75만명 중 70%가 시아파이지만, 수니파인 알할리파 가문이 200년 넘게 나라를 지배해 왔다. 바레인에 해군 5함대를 두고 있는 미국은 걸프국에 바레인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경고했으나 퇴거를 촉구하지는 않았다. 미 정부 당국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UAE 외무장관에게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미국에 병력 지원을 미리 통보했다고 AFP가 미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지만 미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란은 바레인의 걸프국 병력 수혈이 ‘외세 개입’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호세인 아미르 압둘레히안 외교부 국장은 “외국 군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 시위대를 탄압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바레인 7개 주요 야당연합은 “외국 군의 월경은 명백한 점령이고 바레인 국민에 대한 음모”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바레인에서는 한달째 이어진 시위로 지금까지 7명이 숨졌고 지난 13일에는 200명이 부상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공세 전환’ 중동 정부… 민주화 바람 꺾이나

    반정부 시위 여파로 벼랑 끝에 몰렸던 아랍 각국의 정부가 수세에서 공세로 태도를 바꾸면서 중동지역에 불던 민주화 바람이 위기를 맞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군 병력이 시위진압을 돕기 위해 바레인에 진입했고 예멘 경찰도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등 피의 진압이 시작됐다. 사우디 병력 1000여명은 바레인 정부의 요청으로 13일 바레인에 도착했다고 AFP통신이 사우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현지 일간지 걸프 데일리뉴스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연합보안군이 바레인의 주요 전략시설들을 보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바레인 정부는 이와 관련, 즉각적인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외국군의 개입 사실이 알려지면서 바레인 야권은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시아파 정당인 이슬람국가협의회(INAA)를 포함한 바레인 야권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바레인에 대한 걸프 아랍국가의 개입은 바레인에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야당의원인 알리 알 아스와드는 “다른 나라 군이 바레인에 진입한다면 바레인 국민은 그들을 점령군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우리는 외국의 어떤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바레인 정부가 외국군에 ‘SOS 요청’까지 하게 된 것은 이곳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레인에서는 지난 13일 시위대와 경찰 간에 최악의 유혈 충돌이 발생, 2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 수천명은 수도 마나마의 금융중심지인 파이낸셜 하버센터로 통하는 도로들을 점거하며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으나 끝내 강제해산에는 실패했다. 33년간 장기집권 중인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불붙은 예멘에서도 경찰이 12일과 13일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 모두 7명이 숨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자위대 10만명 투입… 육·해·공 ‘기적의 생환’ 총력

    자위대 10만명 투입… 육·해·공 ‘기적의 생환’ 총력

    최악의 지진이 강타한 일본 열도가 생존자 구조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일본 자위대 병력의 절반을 비롯해 경찰과 소방·구급 대원, 공무원이 구조작업에 동원됐고, 헬기·선박 등 투입 가능한 모든 장비가 총가동됐다. 그러나 도로가 물에 잠겨 일부 지역에는 접근조차 어려운 데다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등 악재까지 이어져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다.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은 13일 “간 나오토 총리로부터 재해지역에 투입하는 자위대 병력을 10만명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전체 병력이 육상자위대 15만명 등 모두 2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을 구조·복구작업에 투입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5만명의 병력을 미야기현 등 피해지역에 보낼 예정이었으나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투입 병력을 늘리기로 했다. 간 총리는 전날 피해현장을 살펴본 뒤 긴급재해대책본부 회의에서 “쓰나미가 몰고 오는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지 느꼈다.”면서 “많은 해안 지역에서 주거지였던 곳이 휩쓸려 사라졌고 불길이 여전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 적십자사가 의료진 400명 등으로 꾸려진 62개 구조팀을 현장에 급파하는 등 민간 구호단체의 대응 노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적십자 대원들은 공공기관 청사와 학교 등 임시 대피처에 모여든 30만명의 이재민에게 담요를 제공하는 등 온정을 나눴다. 구조대원들이 고군분투하면서 기적의 생환 장면도 연출됐다. 81명의 선원을 싣고 운항하던 중 11일 메가 쓰나미에 휩쓸려 실종됐던 선박은 12일 미야기현에서 구조활동을 하던 자위대 및 해안경비대 소속 헬기에 발견, 구출돼 안전지역으로 옮겨졌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같은 지역에서 조난자를 수색하던 미군 헬기는 초등학교 옥상으로 피신했던 마을 주민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자위대 소속 블랙호크 등 헬기들은 수몰지역 이곳저곳을 저공비행하며 지붕 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조난자를 수색 중이다. 그러나 구조대원들의 안간힘에도 센다이시와 게센누마시 등 수몰지역의 도로 대부분이 파손됐고 교량마저 끊겨 구조작업에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구조차량들은 지진으로 뒤틀어진 채 모래 속에 파묻힌 도로를 조심스레 달리며 피해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해안가 수백㎞를 수색했으나 생존자를 찾지 못하자 구조대원들은 애를 태웠다. 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이어 다른 원전에서도 추가 폭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악재까지 겹치면서 혼란이 증폭됐다. 한편 일본은행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조만간 550억엔(약7470억원)을 지진피해지역 13개 금융기관에 긴급 방출할 계획이라고 교도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그리스 채무 위기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았던 지난해 5월 긴급 자본을 방출한 바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우디 시위 전면 금지 예멘 대통령 퇴진 거부

    리비아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에서는 정부가 시민과 야권의 민주화 요구에 잇따라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5일(현지시간) 일체의 행진과 집회, 시위를 불허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사우디 내무부는 성명을 내고 “현행법상 어떤 형태의 시위도 불법에 해당한다.”며 공공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는 11일로 예정된 대규모 민주화시위를 겨낭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11일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의원 직접선거 도입, 여성 인권 확대,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우디에서는 시아파가 밀집한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사우디에서는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시아파 무슬림이 다수인 수니파의 차별 행위에 불만을 제기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지난달 23일 주택건설과 결혼 자금 지원, 창업 지원, 국가 공무원 급료 인상 등의 유화책을 제시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사회·정치 분야 개혁에는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예멘에서는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연말 이전에 자진 사퇴하고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라는 야권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성명에서 “평화적인 권력 이양은 혼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국민의 의지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에서는 수도 사나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살레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이전에는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지난달 이후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2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정부는 6일 군수품과 식량을 차량에 싣고 이동 중이던 정부군 소속 병사 4명이 6일 마리브 주에서 알카에다로 보이는 무장 대원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숨지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알카에다 때문에 골치를 앓는 마당에 전국적인 민주화시위를 진압하느라 군 병력이 각지로 분산되면서 대테러 작전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핵전쟁 위험 커졌다”… 北 맹비난

    “핵전쟁 위험 커졌다”… 北 맹비난

    북한의 잇따른 협박 속에도 국지 도발과 전면전을 가정한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이 28일부터 시작됐다. 3월 10일까지 진행되는 키 리졸브 연습에는 해외증원 미군 500여명을 포함해 미군 2300명, 한국군 사단급 이상 일부 부대가 참가하며, 4월 30일까지 이어지는 독수리훈련에는 해외 미군 1만 500여명과 동원예비군을 포함한 한국군 20여만명이 참여한다. 두 훈련은 전면전 상황에 대비한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인 ‘작계5027’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에 따라 실시된다. 이번에는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제20지원사령부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부대도 참가해 북한 핵 및 미사일 등의 제거 훈련도 진행한다. 훈련에 대해 한·미연합사는 “키 리졸브 연습은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모든 잠재적인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고 밝혔다. 이번 훈련에는 정전협정 규정에 의해 한국으로 증원되는 미군의 장비와 병력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국제참관단 10여명이 두 훈련을 참관하게 된다. 이번 훈련에 대해 북한은 전날에 이어 맹비난을 이어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대화파괴책동에 깔린 반민족적 흉계’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 반도에서 핵전쟁 발발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남조선 호전광들이 북남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것을 계기로 전쟁도발 소동의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군사적 대결은 용납 못할 반민족적 죄악’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도 “북침 핵 선제타격을 노린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군사연습의 총포성을 터트리는 것은 고의적인 대화파괴 책동”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미국과 함께 긴장 격화와 북침전쟁 도발의 길로 나간다면 모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북측은 3·1절을 앞두고 반일 공동성명이나 결의문을 공동으로 발표하자는 내용의 팩스를 우리 측 정당과 종교·사회단체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팩스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5일 우리 측에 도착한 것으로 대화의 명분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이석·윤설영기자 hot@seoul.co.kr
  • [리비아 내전] 美 ‘포스트 카다피’ 설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 종식을 기정사실화하고 내부적으로 ‘포스트 카다피’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리비아의 반(反)정부 진영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공언한 것은 이미 포스트 카다피의 가닥을 잡았다는 신호로 읽힌다. 민주화 시위 실패 가능성과 반미(反美)주의 촉발 우려 때문에 공개적인 외국 정세 개입을 꺼려온 미 행정부의 행보를 감안할 때 힐러리의 발언은 미국의 계산이 명료하게 끝났다는 얘기다. 미국의 이 같은 방향 설정은, 리비아 내 미국인 인질 우려와 반미 정서 촉발 우려 등 두 가지 걸림돌이 해소된 덕분이다. 지난 25일 리비아 내 미국인들의 철수가 마무리되면서 미국은 이제 인질 우려없이 홀가분하게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또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카다피의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다피가 반미를 기치로 반전을 꾀할 명분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미 정치권에서 여야를 초월해 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발걸음을 빠르게 하고 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은 27일 나란히 CNN에 출연,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리비아 시위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사실상 촉구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카다피와 그의 지지세력이 항공기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라는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군 병력 투입이나 군사적인 방법을 이용해 카다피 세력의 방송을 차단하고 통신을 교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탈리아가 27일 리비아와의 친선·협력 조약의 효력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이탈리아 내 미군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기지들을 리비아 공격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부 고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한 보도도 미국의 포스트 무바라크를 향한 확고한 입장을 보여준다. 리비아에 대한 미군의 실질적인 투입 여부는 러시아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또다른 긴장을 몰고 온다는 점에서 당장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공공연히 반미를 표방해 온 카다피를 축출하면서도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도래를 막기 위해서 오바마 행정부는 필요하다면 군사적인 수단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 전망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은…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은…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한반도에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한 정례 훈련이다. 키 리졸브 연습 자체는 미군 증원 전력의 원활한 전개를 위한 지휘소훈련(CPX)에 해당된다. 미 항공모함과 주한·해외 미군 2000여명, 한국군 사단급 병력 등이 참여한다. 키 리졸브를 뒷받침하는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Foal Eagle)도 동시에 이뤄진다. 여기는 미군 1만여명, 동원예비군을 포함한 한국군 20여만명이 참가한다. 일반적으로 훈련 초기에는 북한의 국지도발 상황을 상정한 뒤 점차 전면전에 돌입하는 순서로 이뤄진다. 개전 초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등 핵심 전력을 정밀 타격해 수도권 안전을 확보하고 빠른 시간 안에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는 게 목표다. 전면전 때 미군 증원 전력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해 병력 69만여명, 함정 160여척, 항공기 2000여대 규모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과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연습도 진행된다. 이 연습에는 WMD 탐지와 제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부대인 제20지원사령부 요원들이 참여한다. 참가 인원은 2009년 150명에서 지난해 350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정예 특수부대가 북한 WMD 기지에 침투해 무력화하는 훈련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또 지난해 8월 실시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때처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도 중점 점검할 방침이다.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도발 상황에 대비한 계획을 보완하고,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도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리비아 피의 금요일]기도중 무차별 로켓포… 최악 유혈사태

    [리비아 피의 금요일]기도중 무차별 로켓포… 최악 유혈사태

    25일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주변 외곽도시에서는 사실상 피의 내전이 펼쳐졌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 등 중부와 동부 지역을 장악한 반정부 세력은 이날 카다피가 있는 서부 트리폴리를 두고 서쪽과 동쪽에서 일제히 진격해 들어가며 카다피를 압박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트리폴리에서 단 50㎞ 떨어진 자위야를 반정부 진영에 넘겨준 카다피는 트리폴리 주변에 7만여명의 병력을 배치,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일전’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전날 자위야에서는 친정부군이 많은 신도들이 모여 있던 이슬람 사원에 자동화기 등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여명이 숨졌다. 임시 의료센터에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들은 공격에 가담했다가 붙잡힌 군인 6명이 “시위대가 장악한 도시를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전날 반정부 시위대에 이곳에서 떠나지 않으면 대량학살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자위야는 원유 수출과 생산의 주요 거점인 데다 수도와 가까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 때문에 이날 군은 자위야의 사원 이외의 장소에서도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과 로켓 추진 유탄발사기를 사용하는 등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아들이 총에 맞았다는 한 여성은 “온 사방이 피투성이”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반정부 세력도 그냥 당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대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린 군인들의 지원과 밀수하거나 군으로부터 빼앗아온 무기를 소지면서 불과 일주일여 사이에 ‘반군’으로 변모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소형무기뿐 아니라 로켓 추진형 유탄발사기, 대공포 등 중화기와 자동화 무기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제3의 도시 미스라타의 경우 시위대와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된 무장 병력이 교전을 벌였고 결국 시위대가 승리했다. 한때 친정부 신문이었던 한 현지 언론은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타주라에서 아프리카 용병들이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들을 향해 발포했다고 전했다. 카다피가 이날 지지세력에게 시위대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고 결국 내전 양상의 국지전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같은 시간 트리폴리 거리에는 각기 다른 군복을 입은 비정규군 수천명이 배치됐다. 특히 카다피의 용병부대인 ‘이슬람 범아프리카 여단’ 2500명도 동원됐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목격자들은 “외국인 용병을 포함한 카다피 친위병력이 트리폴리 주요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을 겁주기 위해 공중에 총을 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정부 건물 주변의 경호는 더욱 삼엄해졌고 시위 가담자를 찾기 위해 가정집과 병원을 불시에 검문하고 있다. 한 주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집에 앉아 있는 게 마치 감옥에 있는 느낌”이라면서 “집 밖으로 나갔다가는 총에 맞을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이와 관련, 카다피 호위 세력인 리비아혁명위원회가 트리폴리에 있는 한 병원에 침입, 치료 중인 시위대원을 살해했다고 이탈리아 통신 MISNA가 보도했다. 특히 이들은 외신들을 의식, 살해 후 시신까지 가져가는 용의주도한 면을 보였다. 카다피 정부가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는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포착된다. 수도 트리폴리 거리에 시신이 나뒹굴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정부는 이날 일제히 거리를 깨끗하게 치웠다. 이처럼 정부군의 압박 수위가 높아짐에도 시위대는 오히려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카다피는 트리폴리 주변 북서쪽에 대한 통제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시위대가 가장 먼저 장악한 벵가지가 정부 기능을 대신할 자치위원회를 만든 것을 비롯, 구심점이 없었던 시위대는 나름대로 질서를 확립해 가고 있다. 이날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자위야의 경우 시위대는 군의 공격이 끝난 뒤에 다시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총알이 무섭지 않다.”면서 카다피를 향해 “떠나라.”고 외쳤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정부군과 시위대의 충돌을 통해 리비아 혁명이 튀니지나 이집트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독재 정권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두 나라의 경우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혁명의 중심이었다면 리비아에서는 좀 더 성숙하고, 반정부 활동을 해오던 이들이 시위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비아 시위는 헌법 제정과 법치를 요구하는 운동을 2~3년간 평화적으로 이끌어 온 변호사 연합체가 시작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격랑의 중동] 리비아軍 미사일까지 동원 진압… “최소 200명 사망”

    [격랑의 중동] 리비아軍 미사일까지 동원 진압… “최소 200명 사망”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19일(현지시간)과 20일 내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장기 독재정권의 강경 진압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사상자가 속출하는 유혈 사태 속에서도 오히려 민주화 열기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독재정권의 강압에 오래도록 억눌린 시민들의 저항의식이 아랍권의 지형과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리비아 병 원, 수혈할 피 모자라 발 동동 리비아 동부에 위치한 2대 도시 벵가지에서는 20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엿새째 이어졌다. 보안군이 중화기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치면서 시민들은 “이것은 학살”이라며 치를 떨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와치는 이날 누적 사망자 숫자가 최소한 104명이며 이 가운데 최소 20명은 19일 살해됐다고 밝혔다. 반면 알자지라방송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벵가지 한곳에서만 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희생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사상자가 잇따르면서 병원들은 수혈할 피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리비아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거나 외부에 구체적인 시위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BBC방송은 19일 시위 도중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상객들이 14.5㎜ 대구경 기관총 공격을 받아 최소한 15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현지 병원 의사의 말을 인용, 희생된 시위 가담자들이 머리와 가슴에 조준사격을 당했으며 한 희생자는 지대공 미사일에 머리를 맞았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벵가지는 마치 시위대와 보안군이 대치하는 전쟁터 같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예멘 보안군, 시위대에 발포 AFP통신에 따르면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20일 사나대학교 학생 수백명이 학교 근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근에서 살레 대통령 지지 시위를 벌이던 100여명과 충돌이 벌어졌다. 19일에는 보안군이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 가담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보건부 당국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망자는 목에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남부 도시 아덴에서도 16세 소년 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예멘의 시위 사망자는 11명으로 늘었다. AFP통신은 20일 주요 야당 지도자 하산 바움이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남부 도시 아덴에 도착한 직후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바레인은 주말을 분기점으로 정부가 유화 국면을 조성하면서 지난 11일 이후 계속된 민주화 시위는 20일 모처럼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됐다. 17일 수도 마나마 중심부 진주광장에서 야영하던 시위대를 무력진압해 사망자 5명과 2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냈던 보안군은 19일 셰이크 살만 빈 하마드 알칼리파 왕세자의 지시에 따라 군 병력과 장갑차를 진주광장에서 철수시켰다. 진주광장에 다시 모인 시위대 수만명은 “우리는 오늘 바레인의 일부를 해방시켰다. 이제 전 바레인을 해방시키겠다.”며 기뻐했다. 광장에서 철야농성을 벌인 이들은 20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알칼리파 왕세자는 19일 “모든 정파와 모든 이슈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반대세력과의 대화를 제의했다. 이에 대해 시아파 정당 소속 야심 후세인은 “(대화 제의는) 정책이 180도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화답했지만 대화를 거부하는 인사들도 있어 시위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요 야당 지도자들은 20일 회합을 갖고 정부 측 제안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시위대도 보안군의 재진입에 대비해 진주광장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설치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이란 야당 진영 웹사이트들에 따르면 20일 이란 수도 테헤란 테헤란 발리 아스르 광장과 국영방송 앞에는 각각 1000여명과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곧바로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에 나섰고 이후 경찰과 시위대 간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반복되며 기습시위가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언론매체들의 테헤란 내 시위 취재가 금지된 상태이며, 이란 관영 매체들은 이날 시위와 관련된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모하메드 왕 권력 이양하라” 모로코에서는 20일 수도 라바트 에서 2000여명, 최대도시 카사블랑카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모하메드 왕에게 새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일부 이양하라고 요구했다.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는 19일 3000여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시도하다 진압 경찰과 맞붙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을 포함, 12명의 시위자가 부상했다. 현재 알제 도심에 자리한 ‘5월1일 광장’에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9개 경찰 부대 2만 6000여명이 배치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현행법상 불법인 정당 설립을 추진하면서 웹사이트에서 총선 실시와 투명한 정부 등을 요구하던 운동가들을 대거 잡아들였다. 사우디에서는 다음 달 13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계획돼 있다. 지난 3개월간 미국·모로코 등에서 치료를 받던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 국왕은 오는 23일 급거 귀국할 예정이다. 박찬구·강국진·정서린기자 ckpar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