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병력 동원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쟁점 법안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공수처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재건축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허위사실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06
  • 故백남기 부검영장 강제집행, 경찰 유족 반대로 철수…영장 25일 만료(종합)

    故백남기 부검영장 강제집행, 경찰 유족 반대로 철수…영장 25일 만료(종합)

    경찰이 23일 오전 고(故) 백남기씨 시신의 부검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철수했다. 부검영장은 오는 25일이 만료일이다. 시한이 이틀 남았다. 이날 경찰이 철수하면서 앞으로 영장 집행이 어떻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법원에서 유족과 협의하라는 취지로 ‘압수수색 검증의 방법과 절차에 관한 제한’이란 조건을 내건 부검영장을 발부받은 이후 6차례에 걸쳐 부검을 위한 협의요청 공문을 보냈다.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부검을 전제로 한 협의에는 응할 수 없다’며 매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영장 집행 시도에 나선 이날 경찰은 장례식장 주변에 경비병력 800명을 배치했지만, 물리력을 동원해 백씨 시신을 확보하려 하지는 않았다.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현장에서 “유족이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히면 오늘 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유족 의사를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이날 서울대병원으로 향한 것이 실제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공권력 집행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집행의지를 보여주려는 액션이 아니었느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이 영장까지 발부받은 상태에서 투쟁본부 등의 반대로 이를 집행하지 않는다면 ‘무기력한 공권력’이라는 비판을 피할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이달 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25일 전에 (부검 영장이) 집행될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유족과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 시도조차 없으면 당장 경찰이 무능하다는 질타를 받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부검했을 때 법원이 영장에 기재된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그 결과의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집행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더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에는 경찰의 강제집행에 대비하겠다며 300∼400명의 ‘시민지킴이’가 모여 있다. 경찰이 한 차례 집행을 시도한 만큼 위기감을 느낀 진보진영이 서울대병원으로 더 몰려들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이 물리력으로 시신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강제집행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경찰에 연행되는 사람이 나오면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 민주노총 등이 백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 약 1년 만인 다음 달 12일 ‘2016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예고해둔 상황에서 경찰이 진보진영을 자극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과 종로경찰서 등 경찰 관계자는 남은 영장 시한 이틀 동안 집행 시도가 또 있을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고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24∼25일에도 영장의 강제집행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만약 영장이 시한인 25일까지 집행되지 않으면 경찰이 기존 영장을 반환하면서 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해병대사령관 방한…“유사시 한국에 항공·함정 모두 지원”

    美 해병대사령관 방한…“유사시 한국에 항공·함정 모두 지원”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사령관(대장)이 15일 방한해 유사시 미국 해병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한국을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해병대사령부는 “넬러 미 해병대사령관이 오늘 우리 해병대사령부를 방문했다”며 “넬러 사령관은 이상훈 해병대사령관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비한 한미 해병대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넬러 사령관은 “미국과 한국의 해병대는 형제”라며 각별한 우의를 강조하고 “유사시 모든 것을 다해 도울 것이고 항공자산은 물론, 함정까지 모두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9·11 테러 이후 미 해병대가 중동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지역 국가들의 위협이 증가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상훈 사령관은 “한반도 안보 상황이 이토록 극한 대립구도로 장기간 지속된 적이 거의 없지만, 한미 해병대의 강력한 전투력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자”고 화답했다. 이 사령관과 넬러 사령관은 서해 최전방 서북도서 지역에서 북한의 전술적 도발 가능성이 커지는 데 대응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유사시 미 해병대 전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서북도서뿐 아니라 전시 한반도 전역에 대한 미 해병대 전력증원 방안을 긴밀히 협의하고 연합 위기관리 능력을 강화할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에 따라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제3해병기동군을 한반도에 긴급 전개하게 돼 있다. 지난달 말에는 미 제3해병기동군 병력 200여명이 서북도서에서 실전적인 증원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 사령관과 넬러 사령관은 지난 3월 한미 해병대가 진행한 연합상륙훈련인 쌍룡훈련과 미 해병대의 한국 전지훈련(KMEP)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 훈련을 강화할 방안을 협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朴대통령 “북한 주민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

    朴대통령 “북한 주민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

    박근혜 대통령은 1일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이고,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 주민을 향해 “한국으로 오라”고 직접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한 주민에 대해 “통일시대를 여는데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이와 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북한 군인과 주민을 향해 “우리는 여러분이 처한 참혹한 실상을 잘 알고 있다”면서 “국제사회 역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는 여러분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은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고 내부분열을 통해 우리 사회를 와해시키려고 하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핵 도발 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하나 되고 장병 여러분들이 단합된 각오를 보여줄 때 북한 정권의 헛된 망상을 무너뜨릴 수 있고 국제사회도 우리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저에게 어떤 비난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을 목숨같이 지켜낼 것이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으며 북한의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는 견고한 국민적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념과 정파의 차이를 넘어, 우리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에 하나가 되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은 우리 국민에게 핵을 사용하겠다고까지 공언하고 있고 앞으로도 핵무기의 고도화와 소형화를 추진해 나가면서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것은 현실이고,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자 국민의 생명과 우리 자손들의 삶이 달린 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응징하여 도발의 대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한·미동맹의확장억제능력을 토대로 실효적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능력 등 우리 군의 독자적인 대응 능력도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북한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상황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육군 동원전력사령부 창설과 병력 및 물자 동원제도 개선 등 예비전력을 정예화하고 유사시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핵심과업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테러, 사이버, 생물공격과 같은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응해 민·관·군·경 통합방위 체계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에 대해 “최소한의 자위권적 방어조치”라면서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고 군사적 긴장을 높여서 정권 안정과 내부결속을 이루려 하고 있지만 이는 착각이고 오산”이라면서 “북한이 소위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며 체제 균열과 내부 동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늦게 오는 자는 역사가 처벌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이제라도 북한 당국은 시대의 흐름과 스스로 처한 현실을 직시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정상국가의 길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 김정은 정권은 끊임없는 공포정치와 인권 유린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굶주림과 폭압을 견디다 못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있고 북한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마저 연이어 탈북을 하고 있으며 북한 군인들의 탈영과 약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내부 동요를 막고 우리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사이버 공격과 납치,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DMZ) 등에서의 무력시위와 같은 다양한 테러와 도발을 저지를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군 장병들에게 “북한의 도발로 다리를 절단하는 삶의 최고의 기로에 섰을 때도 동료와 나라를 먼저 걱정하고,군으로 복귀하고,제대를 연기한 그 정신을 믿는다”면서 “저는 해마다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가슴 뭉클하며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며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구 실종 초등생 수색 4일째, 오리무중

    대구 실종 초등생 수색 4일째, 오리무중

    대구 모녀 변사와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25일 낙동강 일대와 집 주변에서 류정민(11·초등학교 4학년)군을 찾기 위한 4일째 수색에 나섰지만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경찰관과 의경 2개 중대, 119대원, 민간인 등과 수상·수중 장비를 동원해 류군 어머니 조모(52)씨 시신이 나온 낙동강 고령대교 주변과 달성보를 중심으로 수색하고 있다. 전날보다 병력은 다소 줄인 대신 수중 탐색 장비, 보트, 민간 행글라이더 등을 활용해 수면 안팎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하지만 류군 실종과 관련해 별다른 흔적은 찾지 못했다. 또 류군 집 주변인 수성구 범물동 일대에도 1개 중대를 투입했으나 류군과 관련한 어떤 정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류군은 지난 15일 조씨와 함께 아파트를 나간 뒤 인근 네거리 폐쇄회로(CC)TV에 마지막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수배 전단을 배포하며 공개수사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오인 신고 외에 별다른 제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아동을 찾는 일이 급선무다”며 “류군을 찾아야 이번 사건 윤곽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류군은 3년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다가 올해 2학기 재취학했지만 지난 9일을 마지막으로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조씨는 지난 20일 낙동강변에서, 류군 누나(26)는 이튿날 집에서 숨진 채로 각각 발견됐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군부의 힘과 시민의 힘이 맞서고 있던 1987년 6월 13일 밤이었다. 성당 내부에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건넨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온화한 경고는 결국 가장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가 되어 명동의 신화를 만들게 된다. 결국 경찰은 병력 1500여명을 철수하게 되고 1987년 6월 15일 오전 11시, 시위대는 해산한다. 이로써 6월 10일부터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은 6월 항쟁의 신호탄을 명동에서 청와대로 쏘아 올린 기폭제가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종루(鐘樓)의 역할을 하던 명동성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당 앞뜰과 언덕을 숨 가쁘게 뛰어 오르던 낯빛 붉은, 꽃병(화염병) 쥔 청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DUTY FREE' 로고 한 가득, 흰 비닐가방 서너 개 든 외국인 관광객의 셀카봉에 명동성당 첨탑 십자가는 그윽한 서울의 배경으로 내려 앉았다. 삼일대로와 서울로얄호텔에서 명동성당 앞까지 밀려오던 사복경찰(일명 백골단)들이 즐겨 입던 청재킷은 어느덧 4만9000원 가격표를 달고 매장 앞 옷걸이에 ‘가을 신상’으로 걸려 있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중심에서, 2016년 서울 투어의 중심이 되었다. 명동성당이다. ●1898년 5월 29일 축성, 봉헌된 고딕 양식의 성당 2016년 9월, 명동은 24시간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지극히도 붐비는 곳이자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바로 이 곳,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2가에 자리 잡은 명동성당(明洞聖堂)은 현재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이자,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이며 고딕 양식의 기독교 교회당이라는 역사적 의미 역시 깊은 곳이다. 성당은 높이가 23m, 종탑의 높이는 46.7m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성당 내부에는 아치형 복도,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이런 종교적, 건축적 의미들로 인해 1977년 11월 22일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니 처음부터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인 곳이었다. 우선 이곳에 신앙공동체가 처음으로 형성된 시기는 1784년 명례방 종교 집회였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천주교 박해가 풀리고 1883년 조선 교구는 침계 윤정현(梣溪 尹定鉉)의 집과 땅을 사들여 1887년에 성당 건립을 위한 땅다지기 공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성당의 터가 종현(鐘峴·진고개) 지역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있어서 왕궁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저택 역시 고종이 직접 하사한 것이었다. 이에 고종은 작업 중지와 토지권의 포기를 요구하고 결국 후일 금교령까지 내려진다. 하지만 천주교회측은 공사를 강행하여 1898년 5월 29일 작업을 완료하고 성당의 축성식을 연다. 그리고 성당 이름은 지역 명을 따서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이 곳에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모시게 되었고, 현재까지 지하성당에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일제 침탈 시기인 1930년대의 명동 성당의 역사에는 전시총동원(戰時總動員) 협력이라는 아픈 기록도 분명히 남기고 있다. 중일전쟁 발발 여드레 만인 1937년 8월 15일의 성모승천축일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는 등의 일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당시 천주교 선교의 도움을 받고자 한 이런 비정치적 행동이 결국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천주교회가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여 지금까지도 명동성당 기억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겨져 있다.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아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는 이름은 명동대성당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1970, 80년대 근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으로 명동성당이 한국 근현대사 정치의 중심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성당 측은 4·19 학생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자세를 드러내었고 천주교 신자였던 장면에 대한 애정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후 5·16 쿠데타에 의한 장면 정권의 교체는 명동 성당으로서 뼈아픈 일이었다. 이 시기 서울 대교구와 성당측은 적지 않은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경향신문을 군사정권에 탈취당하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본격적으로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성당측은 가지게 된다. 드디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는 역량을 키우게 된 것이다. 1980년 6월 25일 김수환 추기경은 시국관련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후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피의자들이 원주교구에 피신을 요청하게 되고, 최기식 신부가 이를 받아들여 구속된다. 이에 김수환 추기경은 1982년 4월 7일 강론을 통해 ‘가톨릭 사제로서 정당하고 합당한 행동’이라고 인정한다. 이제 군부정권은 뜻하지 않게, 조선시대 이후 역사의 ‘산전수전'(?) 다 겪은 명동성당이라는 지독한 상대를 만나는 불운(?)을 겪기 시작한다. 이후 명동성당 본당 사목회 산하 ‘사회정의위원회’가 신설되고, ‘청년연합회’의 활발한 정치적 활동, ‘카톨릭 민속연구회’의 창설 등 민주화 운동을 향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난다. 결국 1987년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이루어진 ‘명동농성’을 통해 시위대, 정의구현사제단과 수녀단, 명동성당의 평신도들의 삼각협력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그 빛을 발한다. 당시 시위대의 안전한 귀가와 그 어떤 문책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군부정권으로부터 받아냄으로써 명동성당은 어느 순간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정치참여 활동은 순수한 종교적 구원을 추구하는 일반 신도들에게는 또 다른 불만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 아고라(Agora)의 위상 유지와 순수 가톨릭 정신의 구현이라는 본래의 역할 수행이라는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1990년대를 맞이한다. 이후 현재까지 명동성당은 한국사회의 변동이라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의 적절한 역할을 향해 끈임없이 고심중이다. 현재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 속에서 80년대와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명동성당의 풍경은 항상 역사적으로 남아있음은 분명하다. <명동성당에 대한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인가? -당연하다. 굳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입장이어도,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방문의 가치는 충분하다. 경건한 종교 시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명동을 방문할 일이 있는 누구에게나. 쇼핑으로 무겁고 힘든 짐을 진 자들부터 성지순례를 원하는 가톨릭 신자까지 누구나 열려 있다. 3. 건축학적인 의미는 어떠한가?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으로 전주의 전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4. 시간은 많이 걸리나? -그리 넓지는 않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본당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5. 명동성당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공간은? -성당 내부 곳곳에 있는 성화와 성상,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리화. 6.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mdsd.or.kr/ 7. 미사시간은? -평일미사는 오전 6시 30분, 오후 6시, 7시. 주일미사(일요일)는 오전 7시, 9시(영어미사), 10시, 11시, 12시(교중미사), 오후 4시, 5시, 6시, 7시(청년미사), 9시/ 자세한 시간은 홈페이지 참조 8. 성당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박물관, 평화화랑-1898 아케이드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은? -지하성당. 엄숙한 종교적 공간이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명동성당은 결코 관광지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여행지임에는 분명하다. 바티칸의 거대함보다 우리 삶의 현장에 있는 명동성당의 가치를 느껴보는 것도 종교를 떠나 가치있는 일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정치 뒷담화] ‘月200만원 모병제’ 논쟁 불붙은 南…北은 모병→징병제로 바꿨다는데…

    [정치 뒷담화] ‘月200만원 모병제’ 논쟁 불붙은 南…北은 모병→징병제로 바꿨다는데…

    최근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 도전을 염두에 둔 여야 잠룡들 사이에서 모병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 인력 운용은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이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2002년 징병제와 동일한 ‘전민복무제’를 시행했다. 과거에는 모병제와 유사한 ‘자원입대제’를 유지해 왔다. ‘전국요새화’, ‘전민군사화’, ‘전민무장화’ 등을 통해 주민 전체를 군인으로 양성하는 정책을 시행한 북한이 군 복무 제도를 의무복무제가 아닌 ‘지원제’로 했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모병제 논란을 계기로 남북한 병력 운용 실태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모병제 이슈를 공론화한 것은 남경필 경기지사다. 남 지사는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모병제를 주장하는 등 굵직한 어젠다를 띄우며 내년 대선 공약에서 활용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남 지사가 모병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우선 인구 변화다. 군이 현재 63만명인 병력 규모를 2022년까지 52만명으로 감축할 계획이지만 현재의 출산율 등 인구 추이로 보면 2025년 전후로 인구절벽에 부딪혀 50만명 이상의 병력 규모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논리다. 따라서 남 지사는 2022년까지 모병제로 완전 전환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 지사의 구상에 따른 모병제는 30만명 병력 규모로 간부급 12만명, 사병급 18만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사병급 18만명에게 현재 10만~20만원 선에서 대폭 늘린 200만원의 월급을 지급해 일자리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약 3조 9000억원이 소요돼 현재 63만명 병력의 전력 운용비 16조 4000억원에 비하면 운용비도 절감된다고 설명한다. 또 자발적 의사에 따라 군대에 입대했기 때문에 병영 내 인권 의식이 향상되고 병역 비리 근절,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 종식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 지사는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함께 ‘모병제 희망모임’을 만들어 지난 5일 국회에서 모병제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도 열었다. 김 의원 역시 2012년 대선 경선에 나설 때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은 모병제에 대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군대의 위상과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며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제동을 걸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한림대 특강에서 “모병제를 시행하면 부잣집 자식들은 군대를 가지 않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대에 갈 것”이라며 “우리나라 안보 현실에서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월급 200만원을 받는 모병제가 되면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거나 휴학을 하는 방편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냈던 유 전 원내대표는 “저출산 때문에 2023년부터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는데, 그런 상황에서 모병제까지 하면 우리 군은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면서 “모병제 주장은 당분간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징병제로 가되 부사관을 확대하고 무기 등 군사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병제를 하더라도 재벌집 자녀들이나 고위 공무원 자녀들 중에 공직 진출을 위해 군대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모병제가 실시되면 전반적으로 경제적 상황 때문에 가난한 집 자식들만 전방에 가서 총 들고 서 있는 상황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비판에 남 지사는 곧바로 반발하며 유 전 원내대표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남 지사는 “모병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병역 비리도, 상대적 박탈감도 주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군에 가지 않을 자유가 생긴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유 전 원내대표는 모병제 실시로 군내 인권 의식이 향상된다는 남 지사의 주장을 거론하며 “군에서 성추행, 성폭행, 왕따, 집단폭행, 자살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건 그 자체로 막아야 하지 그게 징병제와 모병제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재반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도 “아주 무거운 대체복무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남한 정치권에서 최근 들어 ‘징병제→모병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북한은 2002년부터 ‘모병제→징병제’로 전환했다. 6·25전쟁 이후 남북 모두 상대방의 체제 전복을 지상 목표로 했기에 군인 수의 적정선 유지는 필수적이었다. 현재까지 북한은 100만명이 훨씬 넘는 군인을 보유하고 있다. 돌격대, 노동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준군사조직까지 더하면 그 수는 200만명에 육박한다. 북한 당국은 군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군 복무는 ‘청년들의 신성한 의무’라고 선전했다. 이 때문에 6·25전쟁 이후 북한 남성은 군 입대를 애국심, 자긍심으로 생각했다. 여성들은 군인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여겼다. 북한 군 입대 적령기의 청년들은 ‘남자로 태어나 국가에 대한 헌신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기류가 강했다. 또 이런 사람들에 대한 대우를 국가가 나서서 책임졌기에 군 복무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00년대 들어 군 제도를 전민복무제로 개편해야만 했던 것은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고난의 행군’ 등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라는 집단보다 개인의 안위가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기에 한 가정에서 자녀를 기껏해야 1~2명 정도 낳아 군 징집 대상이 줄어든 것도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이유가 됐다. 또 군을 기피하는 부류들이 생겨났다. 부유층 자제들은 군에서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리는 병사들이 늘어나자 뇌물을 주며 군 면제를 받으려고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이 밖에 시력 저하, 디스크, 천식 등 다양한 병명을 구실로 군대에 안 가려는 젊은층이 늘며 북한에서도 점차 군에 대한 사회적 인기가 시들해졌다. 현재 북한 인구는 2500만명 정도다. 이 가운데 군 입대가 가능한 10·20대 남자는 약 200만명이어서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바꿔야 적정 군인 수를 유지할 수 있다. 북한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탈북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과거 북한에서는 군 입대를 청년들의 ‘신성한 의무’라며 자원입대하는 분위기가 높았다”면서 “그러나 경제적으로 결핍되고, 군사훈련보다 건설이나 농사에 동원되는 등 군의 인식이 격하되고 있다. 가능하면 군에 안 가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펴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군 장교로 근무하다 탈북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도 “북한 주민들이 군인들을 가리켜 ‘공산군’이라고 비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식량 부족으로 굶주림을 못 견딘 북한군들이 농가에 내려와 절도를 일삼으니 어떤 주민들이 좋다고 반기겠느냐”고 최근 북한군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전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태풍 므란티에 쑥대밭 된 대만…이번엔 말라카스?

    태풍 므란티에 쑥대밭 된 대만…이번엔 말라카스?

    대만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인 슈퍼태풍 ‘므란티’로 쑥대밭이 된 대만에 다시 16호 태풍 ‘말라카스’가 접근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대만 중앙기상국은 16일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 현재 태풍 말라카스가 초속 50m(시속 180㎞)의 강풍을 동반한 채 시속 22㎞의 속도로 대만을 향해 접근하고 있으며 17일께 대만 동북부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보했다. 말라카스는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강함’을 뜻한다. 대만 당국은 이에 따라 태풍 므란티가 대만을 빠져나가며 해제했던 해상과 육상의 태풍 경보를 각각 15일 오후 11시30분, 16일 오전 8시 30분 다시 발령했다. 대만 정부는 17일 군병력 3200여명과 각종 군 장비를 태풍 상륙 예상지역에 배치해 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당국은 아울러 므란티로 피해를 본 지역에도 군병력 3만 6000명을 동원, 복구작업에 나섰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린취안(林全) 행정원장도 중추절인 15일 므란티 피해 지역인 남부 가오슝(高雄), 핑둥(屛東) 지역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수재민들을 위로하면서 보상을 약속했다. 므란티는 태풍 최고등급인 17급의 강풍과 함께 대만 남부 핑둥현에 835.5㎜, 동부 타이둥(台東)현에 722㎜의 비를 뿌렸다. 대만 중앙재해대책센터는 15일 새벽 58세 어민 천(陳)모 씨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지 하루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는 등 사망 1명, 부상 62명의 인명피해를 남겼다고 전했다. 므란티로 99만6천859가구의 전기와 72만 2699가구의 수도공급이 끊겼고 통신시설의 피해로 2만1천159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또한 6488명이 집을 떠나 대피했다. 가오슝시 시즈완(西子灣)에 정박한 4척의 어선이 태풍 므란티에 넘어가 기름이 유출됐고 가오슝항에서 출항을 앞둔 선박의 컨테이너가 무너져 내렸으며 진먼(金門)도의 고적지 일부가 손실됐다. 한편 대만 중앙기상국은 제16호 태풍 말라카스가 20일께 일본 후쿠오카 쪽으로 진입하면서 바람이 점차 약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제주를 비롯한 한국 남부지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보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이대 농성에 배후있다”… 용역 투입 정황 수사

    “교수협 공동회장단이 농성 방조” 총장 퇴진 반대측 경찰에 고발장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둘러싸고 빚어진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찰이 이들의 농성을 유도한 배후 세력의 존재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히 지난 7월 26일 미래라이프대 설립 방침을 결정한 대학평의원회의가 열렸을 당시 학생들의 요청을 받은 경비용역업체 직원 20명이 본관 주변에 투입된 것과 관련, 학생들과 별개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8일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등 학생 3명이 농성을 주도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이들 말고 또 다른 배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7월 26일 평의원회의가 열렸을 때 경비용역업체 직원 20명이 학교로 투입된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학생 외 배후 세력을 따로 추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5일 학생들의 본관 농성 초기 학생 2명이 사설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들을 소환 조사하기로 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들 학생은 경찰병력 투입에 따른 충돌을 우려해 학생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용역업체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용역업체 동원이 대학평의원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을 감금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한편 학생들의 농성이 이날로 44일째에 접어들었지만 교수, 학생, 동문 등이 사분오열하면서 이화여대의 혼란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농성 학생과 교수협의회 측은 최경희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재단 이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은 지난 6일 교수협의회 공동회장단과의 면담에서 “최 총장이 현 사태를 잘 수습하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총장 퇴진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에 농성 학생들과 교수협의회는 9일 비공개 토론회를 열어 최 총장 퇴진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최 총장 퇴진을 반대하는 교수 및 동문 진영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과 출신 권성희(53·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는 지난 7일 오후 교수협의회 공동회장단인 김혜숙(철학과)·정문종(경영학과)·정혜원(의대) 교수 등 3명을 업무방해, 퇴거불응, 다중위력과시강요 미수 등 3가지 혐의에 대한 방조범으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교수가 제자들을 만나 대화한 것을 방조죄로 몰고 가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러 전투기 흑해 상공서 美초계기에 근접 아찔한 위협

    러 전투기 흑해 상공서 美초계기에 근접 아찔한 위협

     러시아 전투기가 흑해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미국 해상초계기에 3m 가까이 접근해 비행하는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병합, 동유럽에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병력 확대를 놓고 꾸준히 대립해온 양국간의 긴장 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미국 국방부는 7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흑해 공해상에서 정기적인 작전활동을 하던 미 해군 P-8A ‘포세이돈’ 해상초계기에 대해 러시아군의 수호이(Su)-27 전투기 1대가 30피트(약 9m) 간격을 유지한 채 비행하다가 10피트(약 3m) 이내로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군의 위험한 (전투기) 기동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같은 행동이 국가 간의 불필요한 긴장을 키우고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오판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에 “Su-27 전투기들을 급발진시켜 미국의 P-8기를 확인했으며 이는 국제 규정에 엄격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그들(미군) 비행기는 식별장치를 켜놓지 않은 채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국경에 2차례나 근접해 러시아 군사훈련을 염탐하려 했다”고 반박했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 전투기들이 미군 정찰기의 고유번호 등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정찰기에 접근하자, 이들 정찰기가 갑자기 진로를 바꿔 러시아 국경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말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로 흑해 등의 해역에서 긴급 전투태세 점검 훈련을 벌여왔다.  러시아군과 미군 사이의 근접비행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도 흑해 상공을 비행하던 미군의 RC-135 정찰기에 러시아의 Su-27 전투기가 약 5m 거리까지 근접 비행을 실시했고, 지난해 4월 발트해 상공과 지난해 6월 흑해 상공에서도 러시아 전투기가 미군 정찰기에 근접비행을 했다.  지난 4월에는 폴란드 인근 발트해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구축함에 러시아 전투기가 순간적으로 약 10m 거리까지 접근하는 위험한 비행을 했다.  한편 러시아군은 지난 5일부터 닷새동안 크림반도 흑해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1만 2500명의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대 점거농성’ 학생들 경비용역 동원 논란…“신변상 안전 걱정돼 고용”

    ‘이대 점거농성’ 학생들 경비용역 동원 논란…“신변상 안전 걱정돼 고용”

    이화여대 본관 점거 사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농성 초기 학생들이 학내에 경비용역을 불러들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대학 학내 분규와 관련해 외부 용역직원들이 캠퍼스에 들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농성과정에서 그동안 학교측의 경찰 투입 요청을 비난해온 학생들이 경비 용역들을 직접 부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농성 학생들의 교수와 교직원 감금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당시 본관 주변에 용역 남성 20명이 있었던 점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용역 중 일부를 조사했으며, 이들은 농성중이던 학생 2명이 이들을 불렀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화여대 본관 점거 시작과 함께 교수, 교직원 등 5명을 46시간 동안 나가지 못하게 한 혐의(감금)로 농성 학생들을 수사 중이다. 이대학생들의 농성이 시작된 것은 7월 28일 부터이며, 주말인 30일 낮 1600여명의 경찰병력이 교내에 투입됐다. 7월 28일 오후 2시쯤 캠퍼스 안에 들어온 이들 용역은 현장에 교직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직원 등 일부 경찰을 보고 3∼4시간 정도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다 철수했다. 경찰은 용역이 학생들에 합세해 불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동원된 구체적인 경위가 확인될 경우 감금 혐의 입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불러들인 학생 2명을 곧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또 용역 남성 20명에 대해서는 별도로 경비업법 위반이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경찰은 허가를 받은 경비용역회사 차원이 아닌 한 회사 직원이 사적으로 사람을 불러모아 현장에 간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이 용역 동원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성 학생들도 이를 시인했다. 농성 학생들은 “시위자들은 20대의 여자들로 신변상의 안전이 걱정돼 자구책으로 고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호원을 20명 미만으로 부르면 경비업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업체의 안내를 받아 경호원 19명을 불렀으며 나머지 1명은 총괄팀장이다”고 말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 점거농성을 시작한 학생들은 지난달 3일 최경희 총장이 계획 철회를 밝혔지만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40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감금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이대 총학생회 최은혜 회장, 이해지 부회장, 사범대 허성실 공동대표 3명을 이달 2일 불러 조사했으나 이들은 인적사항만 확인한 채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 3명이 용역을 부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수사할 부분이 몇 개 남아있으나 곧 끝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필리핀 폭탄테러 14명 사망, 67명 부상…두테르테 “도심에 軍 배치”(종합)

    필리핀 폭탄테러 14명 사망, 67명 부상…두테르테 “도심에 軍 배치”(종합)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다바오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市) 야시장에서 2일 오후 10시 30분쯤(현지시간)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최소 14명이 숨지고 67명이 다쳤다. 사망자가 15명으로 늘었고 부상자가 71명에 달한다는 일부 보도도 있다. 사상자 중에는 임신부와 어린이도 있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3일 테러 현장을 둘러 보는 자리에서 이번 테러 행위로 필리핀에서 ‘무법 상황’(state of lawlessness)이 벌어지고 있다고 선언하며 군사력 등을 동원해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무법 상황 선언은 다바오를 포함한 남부 민다나오 전역에 적용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계엄령까지는 아니지만 도심 주요 지역에 군대가 배치돼 경찰의 검문검색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지금은 비상 상황인만큼 병력을 동원해 수색에 나설 권한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필리핀은 지금 마약, 살인과 관련한 위기 상황이고, 무법 폭력의 환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다바오를 찾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다바오 내 다른 장소에 머물고 있었으며, 현재 현지의 한 경찰서에 머물고 있다고 아들 파올로 두테르테 다바오 부시장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폭발이 발생한 야시장은 평소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주 투숙하는 마르코 폴로 호텔 인근이어서 이번 폭발이 그에 대한 암살시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필리핀 남부 무장세력 ‘아부사야프’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고 현지 ABS-CBN 방송이 전했다. 아부사야프 대변인 아부 라미는 “이번 공격은 필리핀에 있는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의 단결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며칠 내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은 “대통령실에서 아부사야프의 보복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CNN 필리핀에 말했다. 필리핀 경찰은 폭발 직전 현장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인 4명의 용의자를 쫓고 있다. 앞서 필리핀 당국은 마약상의 소행 가능성도 제기했다. 마틴 안다나르 대통령 공보실장은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화가 나 있을 부류가 많다”며 이슬람 세력과 ‘마약과의 전쟁’에 반발한 마약상의 소행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취임한 직후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약 용의자 2000명이 경찰이나 자경단의 공격을 받아 숨졌고 70만 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 때문에 마약조직이 대통령을 암살하려 든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 1일에는 이와 관련한 무기공급상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폭탄 공격 때문에 다바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80㎞ 떨어진 다바오는 두테르테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치안을 확립해 놓은 곳이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이 아부사야프의 활동 무대이기는 했지만, 다바오시 만큼은 필리핀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도시로 손꼽혔다. 산페드로대학에 다니고 있는 리어노어 랄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밖에 나가기가 겁이 난다”며 “다바오가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알려진 데다가 이런 상황이 워낙 드물어서 모두 겁에 질렸다”고 말했다. 한편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다바오시 한인회는 한국인 교민이나 관광객의 피해가 있는지 확인 중이지만 현재로선 피해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필리핀 테러로 14명 사망 67명 부상…이슬람 무장단체·마약조직 지목

    필리핀 테러로 14명 사망 67명 부상…이슬람 무장단체·마약조직 지목

    2일 밤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에서 8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 테러의 범인으로 이슬람 무장단체 ‘아부사야프’가 지목되고 있다. 마약조직의 소행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 6월 말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단체와 마약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에 나서면서 이들이 보복이나 암살 위협을 해왔기 때문이다. 테러 지역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적 터전인 다바오 시인 데다 폭탄이 터진 야시장이 그가 자주 찾던 마르코 폴로 호텔 인근이어서 대통령을 겨냥한 공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번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다. 필리핀 정부는 테러 장소와 규모에 비춰 아부사야프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아부사야프는 3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1990년대 초반 결성된 것으로 알려진 아부사야프는 다바오 시를 포함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을 거점으로 납치와 테러를 일삼고 있다. 2014년에는 IS에도 충성을 맹세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도 연계된 아부사야프는 70대 한국인을 납치한 후 10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시신으로 돌려보내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아부사야프는 올해 상반기 인질로 잡고 있던 캐나다인 2명을 참수한 데 이어 지난 8월 말 10대 필리핀인 인질을 참수했다. 이에 격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아부사야프 섬멸을 지시했고 필리핀군은 이 무장단체의 근거지인 남부 술루 섬에 2500여 명의 병력을 급파, 지금까지 30여 명을 사살하는 등 토벌 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번 폭탄 테러 발생 전에 아부사야프의 위협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아들인 파올로 두테르테 다바오시 부시장은 “이틀 전에 공격 위협이 있다는 믿을만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델핀 로렌자나 국방장관도 아부사야프를 지목했다. 정부의 대규모 군사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아부사야프의 보복 테러라는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번 테러와 관련, 필리핀이 ‘무법 상황’이라며 군사력까지 동원해 테러범을 응징하겠다고 선언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필리핀이 IS 테러로 파괴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테러 공격을 받으면 10배로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모두가 용의자”라며 마약조직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마틴 안다나르 대통령 공보실장은 “대통령과 정부에 화가 난 부류가 많다”며 이슬람 무장단체와 마약조직 가운데 한 곳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판매망이 막힌 마약상들의 반격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달간 2000명가량의 마약 용의자가 사살됐다. 최근 로널드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거물 마약상들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IS와 이슬람 반군단체인 방사모로자유전사단(BIFF)의 조직원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초에는 뉴빌리비드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상들이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인의 목에 5000만 페소(12억 원)의 현상금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검거한 무기 밀매상으로부터 한 고객이 두테르테 대통령 암살에 쓰일 총기를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괴짜들의 사기극, 전쟁을 끝내다

    괴짜들의 사기극, 전쟁을 끝내다

    부대원 전선 곳곳 돌며 기만작전 ‘공연’ ‘속임수 게임’ 예술적 창의력으로 승리 고스트 아미/릭 바이어·엘리자베스 세일스 지음/노시내 옮김/마티/320쪽/1만 8000원 전쟁은 삶의 모든 측면이 동원되는 총력전이다. 전쟁은 속고 속이는 치열한 두뇌 게임이다.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목마’는 전쟁의 승패를 넘어 국가의 존망마저 가른 고전적인 기만 책략이다. 중국 손자는 그의 병법인 시계(始計) 제1편에 “전쟁은 속임수”라고 정의했다. 이탈리아 정치인 마키아벨리는 “책략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사람은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사람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대량 학살의 비극적 전쟁으로 사상자가 5000여만명에 달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직 속임수 하나만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 특수부대가 존재했다. 게다가 그 부대에 참전한 용사들 상당수가 군대와는 전혀 무관하게 여겨지는 인간 유형인 예술가들이었고, 자신들끼리는 공공연하게 서로를 사기꾼이라고 불렀던 이들이었다는 점도 이채롭다. 신간 ‘고스트 아미’(ghost army)는 2차 세계대전에 실존했던 특수부대 얘기다. 제23본부 특수부대, 일명 ‘고스트 아미’의 부대원은 고작 1100여명.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독일군을 속이는 것이었다. 1996년까지 미 국방부 군사기밀로 이들의 활약상은 봉인돼 있었다. 책은 반세기가 지나서야 드러난 23부대 괴짜들의 전투, 그들만의 전쟁을 실감 나게 재구성했다. 제603위장공병 특수대대 소속 조 스펜스 이병. 그는 2차 대전 당시 불가사의한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병사 네 명이 무게가 30t에 달하는 M4 셔면 탱크를 한 귀퉁이씩 잡고 번쩍 들어 올리는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바로, 고스트 아미의 작품이었다. 이 부대가 싣고 온 마대 자루마다 찌그러진 고무 전차가 한 대씩 들어 있었다. 노즐로 15분 정도 공기를 불어 넣으면 고무 덩어리는 전차로 둔갑했다. 독일군들은 숲속에 도열한 가짜 탱크들을 보고 우회하거나 공습 작전을 펴는 데 전력을 소모해야 했다. 고스트 아미가 주둔하는 최전선에서는 탱크뿐 아니라 지프, 트럭, 대포까지 온갖 모조 무기가 바람만 넣으면 마술처럼 솟아났다. 23부대는 전차, 트럭, 화물차, 불도저 소리, 강을 건너기 위해 임시로 놓은 부교를 설치하는 소리, 병사들의 욕설까지 다양한 전쟁터의 소음을 녹음해 마치 사단급이 주둔 중인 것처럼 음향전도 펼쳤다. 23부대의 작전은 전선 곳곳을 돌며 기만 작전을 펼치는 일종의 ‘순회 공연’이었다. 진짜 전투를 하는 실전 기갑 부대로 위장해 작전 지역에서의 미군 병력 규모를 부풀리는 게 핵심 임무. 부대원들은 다른 부대 소속 마크로 바꿔 달고 마을 술집이나 식료품점에 들러 거짓 이동 경로와 작전을 흘렸다. 나치 첩자들이 이를 독일군에게 정보로 팔도록 말이다. 그렇게 23부대는 아군마저도 숱하게 속이며 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부대원들은 군인이기 전에 예술가였다. 예술적 재능으로 뭉친 병사들이 그린 수많은 수채화와 드로잉이 전후에 발굴됐다. 오죽하면 최전선에서 이들은 전시회를 열 정도였다. 지난해 별세한 추상주의 화가 엘즈워스 켈리, 패션 디자이너 빌 블라스, 야생동물 화가 아서 싱어, 사진작가 아트 케인 등이 고스트 아미 출신이다. 고스트 아미는 1945년 독일 라인강을 건너 나치 최후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작전에서 빛을 발했다. 미 9군 소속 제30보병사단과 제79보병사단이 실제 공격 지점보다 남쪽으로 16㎞ 아래에서 도강 공격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게 고스트 아미의 임무였다. 1100명의 23부대는 마치 3만 병사가 라인강을 돌파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투입된 모조 전차와 군용차만 200대가 넘었다. 고스트 아미의 기만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두 사단이 실제로 라인강을 돌파하면서 발생한 사망자는 31명에 그쳤다. 고스트 아미의 마지막 공연은 기밀로 남았지만 군 지도부는 비밀리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전쟁도 끝났다. 저자는 “23부대는 미술가, 디자이너, 무선통신사 등으로 구성된 배역진이 진짜 무기 대신 고무로 만든 가짜 무기와 세계 최첨단 음향 효과 장치와 예술적 창의력으로 무장한 채 작전을 폈다”면서 “그들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에 자신들의 생명이 달려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커버스토리] 자동폐기 굴욕 감액도 4차례…제헌국회부터 굴곡진 ‘추경史’

    [커버스토리] 자동폐기 굴욕 감액도 4차례…제헌국회부터 굴곡진 ‘추경史’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제출한 지 딱 한 달 만인 26일 국회에서 추경안 통과를 전제로 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번 추경은 8월 임시국회 종료 전날인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추경 무산을 피하게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엄밀히 봤을 때 설령 이번 추경이 무산됐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숨 가빴던 1980년 정부가 10월 초 추경안을 제출했지만 전두환 군부가 이미 5월 20일에 군 병력을 동원해 10대 국회를 사실상 해산해 버린 상황이라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추경안이 자동폐기 바로 다음날인 10월 28일 다시 제출됐고, 전두환 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가 나흘 만에 이를 통과시켰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 등으로 추경 편성의 조건을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되기만 하면 여야 간의 정쟁으로 이어진다. 제헌국회에서도 그랬다. 우리나라 추경의 역사 속에 담긴 정치, 경제, 사회상을 살펴봤다. ●6·25전쟁 발발했던 1950년에는 총 7회 올해 추경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정쟁에 민생이 파묻힌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예산안, 추경안 등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정쟁은 이미 제헌국회(1948~1950년) 때부터 치열했다. 또 정부수립 초창기 국내 상황의 혼란과 여러 행정기능 미비로 인해 예산 편성부터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부는 1949년과 1950년 회계연도가 시작된 뒤에야 예산안을 제출했고, 어쩔 수 없이 2년 연속으로 당장 급히 써야 할 돈을 가예산으로 편성·집행했다. 이후 본예산을 현재의 추경인 ‘추가예산’의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는데, 이마저도 당시 세수 및 세출 예측 능력의 부족으로 여러 차례의 추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모두 일곱 번의 추경이 이뤄졌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추경은 1950년 3월 23일 국회에 긴급 동의 형식으로 상정된 ‘단기 4282년도 제3차 추가예산’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황호현 의원은 3차 추가예산을 재정경제위원회 심의를 생략하고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긴급 동의했다. 그는 “5월 총선거를 앞두고 의원 대다수가 시골로 내려갔기 때문에 본회의조차 정족수를 간신히 채운 상황”이라면서 “예산을 심사할 재정경제위원회 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에 심사를 끝내고 내일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추경 ‘1950년 3차 추가예산’ 그러자 야당인 한국민주당 서우석 의원이 “재경위 종합심사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서 다루는 것이 도리어 시간을 더 끌게 된다”며 반발했다. 또 같은 당 김상순 의원은 “농림부의 예산 산출 인원수 계산이 기획처의 계산과 차이가 나는데, 확인해 보니 농림부가 틀렸다”면서 “이런 유사 사례가 많을 테니까 재경위에서 1차 심의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결국 당시 추경안은 야당의 주장대로 분과위원회를 거치고 3월 27일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빼도 박도 못하는 허점을 지적해 ‘현미경 심사’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추경이라고 하면 보통 나랏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태풍 등으로 무너진 도로·시설물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씀씀이를 줄인 ‘감액 추경’도 네 번이나 된다. 6·25전쟁 발발 직후였던 1950년 7차 추경 때 정부는 세수와 세출 56억원을 줄였다. 전쟁으로 인해 세금을 걷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자연히 세수와 세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1982년에는 추경에서 2643억원을 삭감했는데, 전년도에 국보위가 정부가 잘못 계산해 제출한 세입·세출을 제대로 심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해 상반기까지 예상 경제성장률 전망치(8%)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1982년의 실질경제성장률은 8.3%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이었던 1997년 10월, 그해 1차 추경에서 8722억원을 감액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환란이 그해 하반기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자연히 세수에 펑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덜 걷힌 세금은 1조 5909억원이었고, 전년도에 쓰지 않고 남았던 세계잉여금 7187억원을 이입해도 9000억원 가까운 수입과 지출을 줄여야 했다.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이전에 이미 감액 추경이 위기를 알리고 있었던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1조 6985억 최대 감액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3월 1차 추경은 우리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추경으로 기록되고 있다. ‘경제점령군’으로 들어온 IMF는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전년도에 정부가 짜고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줄여 금융 구조조정 비용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6985억원을 감액했다. 당시 실무 사무관으로 추경 작업에 참여했던 한 정부관계자는 “우리가 짠 예산을 다시 우리가 줄이면서 공무원 급여부터 삭감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는데, 계속해서 IMF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면서 “약간이나마 ‘망국(亡國) 관료’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98년 9월에는 세수를 메우기 위해 5조 4902억원을 보전하는 세입추경을 포함, 실업·경기대책 마련을 위한 12조 2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실시됐다. ●2002년 태풍 루사 피해때 제출 ~ 통과 ‘딱 3일’일반적으로 군부 독재 시절의 정부 추경안이 국회를 더 빨리 통과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헌정 사상 가장 빨리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의외로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태풍 ‘루사’ 피해 복구를 위한 4조 1000억원 규모의 추경이었다. 2002년 9월 10일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은 바로 그날 국회 재정경제위, 행정자치위, 운영위, 교육위에 회부됐고, 다음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이틀 뒤인 9월 13일 본회의에 상정돼 바로 통과됐다. 2002년 DJ 정부의 마지막 해로 각종 특별검사와 게이트가 쏟아지기는 했지만,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또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민심을 외면한 채 정쟁을 벌일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리역 폭발사고’ 재해 아닌 인재로 긴급 편성 가슴 아프면서도, 특이한 사연을 지닌 추경은 1977년 11월 2차 추경이었다. 행정부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추경은 주로 태풍과 오일쇼크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1977년 2차 추경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 때문에 긴급 편성됐다. 11월 11일 이리역에 서 있던 화약수송열차가 관리원의 부주의에 따른 화재로 폭발해 직경 16㎞ 이내의 집과 건물이 모두 파괴됐고, 58명이 사망하고 1400여명이 부상했다. 1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재산 피해는 당시 돈으로 100억원이 넘었다.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 폭발 사고 뒤, 이리 시내 다방과 음식점에는 반창고로 얼굴이나 손등을 허옇게 바르고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부는 사고 나흘 뒤인 11월 15일 사고 복구를 위한 5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열흘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물론 5억원으로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보상비를 노린 투기꾼들이 이리에 몰려들면서 민심마저 흉흉해졌다. 그런데 이 사고로 유명해진 인물이 있는데, 바로 ‘20세기 최고의 코미디언’ 이주일이다. 사고 당일 이리역에서 500m 떨어진 삼남극장에서 관객 600여명이 들어찬 가운데 인기가수 하춘화의 리사이틀이 열리고 있었고, 폭발사고로 극장 지붕이 내려앉고 의자가 뒤집혀 6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무명 MC였던 이주일은 자신도 머리가 함몰돼 4개월 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져 있던 하춘화를 업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이주일은 이 사건 이후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춘화는 2007년 11월 열린 이리역 폭발사고 30주년 추모행사의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70㎞가 넘는 비무장지대(DMZ)를 접하는 강원 철원은 6·25전쟁의 아픈 상흔을 간직한 ‘평화의 고장’이다. 철의 삼각지, 노동당사, 제2땅굴 등 수많은 6·25전쟁 전후의 아픈 상처와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자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통의 역사를 딛고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와 경원선 남북 연결, 금강산선 복원 연결로 통일시대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를 꿈꾼다. 9세기 후반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철원은 도성의 성곽 등 유적지와 함께 궁예 왕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산지대로 이뤄진 현무암 단층의 한탄강 절경이 있고 우리나라 중부 제1의 곡창인 철원평야에서는 명품 오대쌀이 생산된다. 한탄강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10선’에 선정된 한여울길이 있어 한탄강의 기암절벽과 철원평야의 황금 들녘을 감상하며 자전거 등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지만 자연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철원으로 떠나 보자. [볼거리] ●백마고지 전투 등 6·25 격전지 ‘철의 삼각지’ 6·25전쟁사에 길이 남을 철의 삼각지는 북위 38도선 이북에 있는 철원, 김화, 평강지역을 잇는 삼각지대로 백마고지 전투 등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던 곳이다. 문혜리에서 시작해 지경리, 청양리, 와수리를 잇는 이 지역은 전쟁 때 공산군이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으로 미8군이 이곳 일대 철원평야를 빼앗은 뒤 김일성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로 남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2007년에는 중부전선 최북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철원평화전망대가 들어섰다. 2층 전망대에서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평강고원과 북한선전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초정밀 망원경시설과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지형 축소판이 있어 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관광객 수송 시스템인 모노레일을 운행,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육단리에 있는 승리전망대는 휴전선 155마일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전망대로 북한군의 이동 모습은 물론 오성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금강산철도,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 남북분단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발견한 제2땅굴 철원 제2땅굴은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발견한 땅굴이다. 시추 작업으로 땅굴 소재를 확인한 뒤 수십일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한국군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북괴의 기습 남침용 지하 땅굴을 확인했다. 땅굴은 견고한 화강암층으로 지하 50~160m 지점에 놓여 있다. 땅굴의 길이는 총 3.5㎞에 이르고 군사 분계선 남쪽으로 1.1㎞까지 파내려 왔다. 규모는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로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됐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됐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北공산독재 시절 주민 착취 악명 떨친 노동당사 광복 이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이곳은 6·25전쟁 때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되며 주민들을 착취했다. 북한은 노동당사를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이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했다. 특히 건물의 내부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로 쌓은 3층 건물로 6·25전쟁 당시 주변 다른 건물들은 모두 파괴됐지만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어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공산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고문·학살 등의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했을 만큼 무자비한 살육이 저질러진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석·주상절리… ‘지질 표본실’ 한탄강 주상절리는 용암이 굳어지면서 기둥 형태를 이룬 모양으로 한탄강과 대교천 현무암 협곡층에서 발견된다. 한탄강 유역은 한반도 제4기의 지질과 지형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교천은 한탄강의 지류이지만 하상에 현무암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한탄강 주류 하천이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대교천이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부근의 기반암은 쥐라기의 화강암이다. 쥐라기는 중생대를 3기로 나눴을 때 2기에 해당하며 1억 8000여만년 전부터 1억 3500여만년까지 4500여만년간의 시기이다. 대교천 현무암 협곡의 폭은 25~40m이고 높이는 30여m에 이른다. 강바닥과 강 주변 절벽들은 화강암이 부정합으로 덮여 있어 제4기 사력층 또는 추가령 현무암의 부정합면, 계곡지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용암류와 주상절리 등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한탄강 유역에서도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뤄 천연기념물 제436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의 근거지였다는 고석정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은 철원 팔경의 하나로 한탄강 중류에 있다. 일반적으로 강 중앙의 고석(孤石) 정자와 그 일대의 현무암계곡을 아울러 고석정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라는 문무를 겸비한 천인이 산적 무리를 조직해 강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함경으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분배해 줬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 있다. 강 중앙에 약 23m의 높이로 우뚝 솟은 고석바위와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암절벽 아름다운 순담계곡 래프팅 명소 각광 순담계곡은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진 곳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깎아내린 듯한 벼랑, 연못 등이 수없이 이어지고 물도 많을 뿐 아니라 계곡에는 보기 드문 천연 하얀 모래밭이 형성돼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는다. 특히 계곡 뒤쪽으로는 래프팅 최적지인 뒷강이 있어 여름철 래프팅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근래 들어 수려한 주변 경관과 급하지 않은 물살로 인해 주말을 이용해 새롭게 래프팅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계곡 주변에 전문강사들이 운영하는 스포츠숍들이 많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먹거리] ●한탄강 최상류 메기로 끓인 풍미 가득한 매운탕 한탄강 메기매운탕은 철원지역 향토음식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아 철원의 대표음식으로 꼽힌다. 맵지 않고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이 기본이다. 계피, 감초 등 한약재로 달인 물을 육수로 사용해 민물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흙냄새를 제거해 비린내가 없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한탄강 최상류에서 잡아 올린 메기에 게를 넣고 끓여 맛을 돋우고 두부, 미나리, 무, 대파 등을 아낌없이 넣어 풍미가 가득해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매운탕과 사뭇 다르다. 메기는 단백질 함량이 풍부하고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으며 특히 당뇨병이나 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다. ●두릅밥·버섯잡채… ‘농가맛집 대득봉’ 한상차림 철원 역사를 배경으로 해 신라 금성(김화) 태수의 딸 혜원 비구니가 궁예에게 바친 산채 상차림을 현대에 대득봉 지킴이가 ‘농가맛집 대득봉’ 상차림으로 재현했다. 농가맛집 대득봉의 대표 메뉴인 오대두릅밥은 철원 오대쌀과 대득봉 자락에서 재배한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한식 상차림이다. 밥은 황기 등 건강한 재료로 우린 물을 이용해 두릅을 얹혀 짓고, 오가피 장아찌류와 도라지 튀김, 더덕구이, 산목이 버섯잡채 등이 상차림으로 나온다. 몸에 활력을 공급해 주고 피로를 풀어 주며 항암작용과 혈당조절 등에 효과가 좋은 두릅은 산채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큼 건강한 식재료로 알려졌다. ●깨끗한 물과 고지대 신선한 바람이 키운 오대쌀 철원오대쌀은 휴전 이후 인적이 끊긴 DMZ에서 흘러드는 깨끗한 물과 해발 250m 고지대의 신선한 바람, 기름진 황토흙, 깨끗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재배, 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철원오대쌀을 주원료로 만든 철원오대쌀국수 포포면은 멸치맛과 매운맛 등 두 종류로 생산되며 쫄깃한 식감과 쌀을 재료로 한 웰빙 식품이다. 또 철원오대쌀의 맛을 이어갈 가공식품전문점 ‘모락모락’에서는 우리쌀과 농산물을 기호 식품화한 쌀찐빵, 쌀쿠기, 쌀마들렌, 쌀와플, 쌀머핀, 쌀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다. ●‘비타민·철분·칼슘의 여왕’ 철원산 파프리카 철원산 파프리카는 주야간 온도 차가 크며, 겨울이 춥고, 논을 밭으로 만든 깨끗한 토양의 환경에서 재배돼 색깔이 곱고 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향이 좋고 단맛이 강해 다양한 요리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비타민,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해 암과 비염 예방에 효능이 있어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는 철원의 특산품이다. ●민통선 샘통에서 생산한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 철원 최전방 민통선 안에 있는 샘통은 사시사철 수온이 13도를 유지하며 변화가 거의 없는 천연암반수 용출지역으로 이곳에서는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가 생산된다. 물고추냉이 잎과 줄기를 활용한 고추냉이 고추장, 장아찌, 미용비누, 탈취제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전시 아닌 비상 상황 병력 부분동원 가능

    병력침투·살상무기 공격 때 한정된 지역 인력·물자 동원 가족 수목장림 신고 간소화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어도 병력 동원이 가능해졌다. 정부는 2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통합방위법 개정안과 병역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병력 침투나 대량살상무기 공격 등으로 발생한 비상 상황이나 여러 지역에서 적의 침투로 단기간에 치안이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 병력 동원 소집 대상자 중 예비역과 교육소집을 마친 보충역을 부분동원할 수 있다. 부분동원은 총동원보다 낮은 단계로 한정된 지역에서 인력이나 물자를 동원하는 제도다. 현행 병역법은 병력 소집을 ‘국가비상사태’로 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부분동원의 이유와 범위, 실시지역, 실시기간 등이 포함된 부분동원령을 선포할 수 있고, 이를 선포하면 지체 없이 국회에 알려야 한다. 상황이 해소되거나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해제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분동원제 도입 추진을 둘러싸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족이나 종중이 100㎡ 미만의 수목장림을 조성해 신고하면 산지 일시 사용, 나무 벌채 신고를 따로 하지 않도록 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도 가결돼 오는 30일부터 시행된다. 조성을 어렵게 하는 불편을 줄여 친환경 장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2014년 사망자 26만 7692명 중 약 80%인 21만 2083명은 화장(火葬)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수목장림은 개인·가족·종중 26곳을 포함해 50곳뿐이다. 자연휴양림, 산림욕장의 지정된 장소 외에서 취사 행위를 하면 1회 위반에 30만원, 2회 40만원, 3회 이상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산림문화·휴양법 시행령 개정안도 가결됐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1회 10만원, 2회 이상 2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역시 30일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시·군의 조정교부금 배분 기준 중 재정력지수 반영률을 20%에서 30%로 높이고, 징수실적 비중을 30%에서 20%로 낮춘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도 처리했다. 인구 반영률 50%는 그대로다. 한때 반영률을 인구 40%, 재정력 30%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인구가 많은 지자체엔 극히 불리해져 경기도 일부 시·군의 반발을 불렀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中 해군 동해서 실전 대항훈련 실시…“韓·日 겨냥한 것 아냐”

    中 해군 동해서 실전 대항훈련 실시…“韓·日 겨냥한 것 아냐”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군이 18일 동해상에서 군함과 항공병 등을 대거 투입한 실전 수준의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했다. 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해군이 전날 동해상의 한 국제수역(공해)에서 동해함대 소속 미사일 호위함 ‘징저우함’이 이끄는 편대와, 하와이에서 진행된 훈련을 마치고 복귀 중인 ‘시안함’ 편대가 합류한 뒤 홍군과 청군으로 나눠 실전 대항훈련을 했다고 중국 해방군보가 보도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있는 해역에서 중국이 실전 훈련에 나서면서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본 등을 동시에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훈련에서 홍군과 청군은 상대를 향해 선제공격과 반격을 반복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며 “현장에는 짙은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고 해방군보는 전했다. 이번 훈련에서 미사일과 대포 등 실탄도 대거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군보는 “일체화된 정보지휘센터의 지휘에 따라 함정 편대와 항공병이 원거리 해역(원해)에서 적의 해상병력을 정밀 타격하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다”면서 정찰·경보, 정보전달, 분석·식별, 지휘체계 등 각 분야에서의 능력을 점검했다고 소개했다. 부대 지휘관은 “이번 훈련은 원해 상에서의 장기간 작전능력과 연합 작전 능력을 제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중국 측은 특정 국가를 겨냥했을 것이란 관측을 염두에 둔 듯 “이번 훈련은 연간계획에 따라 이뤄진 정례적 훈련”이라며 특정 국가나 지역, 목표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우 빈민가에서 군·경찰 총격 피습…군인 1명 중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내 빈민가의 범죄조직이 군과 경찰에 총격을 가해 군인 1명이 부상했다. 10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이날 리우 시 북부 콤플레수 두 마레 지역에 있는 빌라 두 조앙 빈민가 근처 도로에서 괴한들이 군과 경찰이 탄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군인 1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현장에 경찰 3명도 있었으며 이 중 1명은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브라질 당국은 지난달 24일부터 올림픽 경기장을 비롯한 주요 거점과 거리에 군 병력을 배치했다. 리우 시 외곽에 분산 배치된 병력까지 포함하면 2만2천여 명이 동원됐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과 함께 사건이 잇따르면서 브라질 당국의 치안 확보 노력을 무색게 하고 있다. 리우올림픽 개막 이후 첫날인 지난 6일에는 데오도루 승마 경기장 미디어센터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당국은 빈민가의 범죄조직원이 경찰의 감시용 비행선이나 드론을 겨냥해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10일에는 취재진을 태우고 농구 경기장에서 올림픽 파크로 이동하던 버스에 2발의 총격이 가해졌다. 총탄에 맞은 피해자는 없었으나, 버스의 유리창이 깨지면서 2명이 피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연합뉴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면초가 중국, 사방이 적?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면초가 중국, 사방이 적?

    현대 국제질서는 국가 간 주권평등과 주권 간섭 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베스트팔렌 체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침략이나 내정간섭 등의 형태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 행위로 인식되어져 왔고, 이러한 범죄 행위가 발생하면 세계 각국은 국제연합(UN) 등 국가 간 공동체의 힘으로 침략자를 응징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체제가 대단히 불편한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인 입장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들은 결코 동등할 수 없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는 국호 그대로 화족(華族)은 세계의 중심이며, 다른 나라와 민족은 변방 오랑캐일 뿐이다. 동쪽은 동이(東夷),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 북쪽은 북적(北狄)이며, 이들은 모두 천자국(天子國)인 자신들의 속국이나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중화사상의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은 타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히 희박하다는 평가가 많다. 광활한 영토와 세계 1위의 인구를 바탕으로 미국과 더불어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넘보는 G2까지 성장했지만, 국경 또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국가에 영토·영유권 시비를 걸고 있는 중국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태평양에서의 압박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주요국들의 국방예산 지출은 20여 년 가까이 감소세를 보여 왔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오히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는 국가들이 여럿 등장하며 치열한 군비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시아·태평양 일대 국가들의 군비증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군비증강의 목적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11개 관련 법안을 제·개정한 일본은 헌법상 교전권 행사가 불가능한 군대인 자위대를 보통 군대, 즉 국방군으로 만들기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개헌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았지만 방위성은 자위대를 해외 군사 작전이 가능한 보통 군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육상자위대 내에는 사실상의 해병대인 수륙기동단이 창설되어 MV-22B 수직이착륙기와 AAV-7A1 상륙돌격장갑차가 납품되기 시작했고, 해상자위대는 항공모함으로 전용될 수 있는 3만톤급 헬기항공모함 2척의 전력화가 진행되고 있다. 해상자위대는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 구축함을 8척으로 늘리는 것을 포함,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전력을 크게 증강시키고 있다. 항공자위대 역시 내년부터 F-35A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100대 이상의 스텔스 전투기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주변국들은 이처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공세적 군비 증강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일본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적극적인 배려에 힘입어 일본은 동중국해 일대에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착착 갖춰 나가고 있다. 남중국해 일대에서는 중국과 바다를 두고 다투고 있는 국가들의 군비 경쟁이 한창이다.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으로 최근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은 필리핀은 1991년 미군 철수 이후 극도로 궁핍해진 재정 때문에 30년 가까이 방치했던 군사력 재정비에 나섰다. 우리나라로부터 FA-50 경전투기를 구매하는가 하면, 방공 미사일과 호위함 도입을 위한 사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파라셀 군도에서 중국과 분쟁 중인 베트남은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Su-30MK2 전폭기 36대 구매를 진행 중이며,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하다는 Su-35S 전투기 도입도 준비 중이다. 또한 러시아에서 신형 호위함과 잠수함 도입을 마무리 짓고, 최근에는 미국의 예산 지원을 받아 초계정은 물론 해상초계기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해양 영유권 및 배타적 경제수역을 놓고 대립 중인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등도 잇따라 신형 전투기와 초계함, 미사일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과 직접적인 분쟁 요소가 없는 호주도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자국 주요 군사기지에 미군 지상 전투 병력과 전투기, 군함 등의 순환 배치에 합의했고, 미국과의 협조 하에 대대적인 해군력 증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호주는 경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수 있는 대형 상륙함 2척 전력화를 최근 끝냈고, 3척의 이지스 구축함과 12척의 대형 잠수함 확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 최강의 전투기 F-22와도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전자전 전투기 EA-18G를 도입했으며,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 도입 계약도 체결하는 등 해군력과 공군력 증강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각국의 군사력 증강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군사적 팽창으로 인해 역내 국가들의 안보 불안 위기가 심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역내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이 미국의 지원 또는 배려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역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표방하며 태평양 지역 미군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고, 역내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을 돕는 것은 물론 동맹·우방국들과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포위·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아태 지역의 군비 경쟁 도미노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쪽에서의 압박 중국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일본-호주+동남아시아 세력만이 아니다. 사실, 태평양 인접국들이 중국에 대한 봉쇄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원유 등 자원을 수급해오는 루트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말래카 해협과 인도양을 틀어막지 못한다면 중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어렵다. 하지만 이 말래카 해협과 인도양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들도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면서 중국을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인도양 일대에서 중국에게 가장 골치 아픈 상대는 인도다. 인도는 인구 면에서 중국에 크게 밀리지 않는 대국이고, 무엇보다 핵무기와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나라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나라를 상대로 수차례 도발과 침략을 반복해 왔고, 이에 대한 인도의 인내심이 점차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중국은 1959년 인도와의 국경 지역인 롱주(Longju)에서 두 차례나 인도를 침략했다. 첫 번째 공격에서는 인도군의 초소를 점령했고, 두 번째 공격에서는 인도군 순찰대를 기습 공격해 다수의 인명피해를 입혔다. 두 차례 모두 인도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1962년에는 3개 사단을 동원해 대대적인 침공에 나섰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총격전 형태의 도발이 이어졌다. 이 분쟁으로 인도는 2400여 명이 죽거나 다치고 1700여 명이 실종되었으며, 4000여 명이 중국에 포로로 잡히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국 관계는 2013년 6월 인도령 카슈미르 주의 인도군 초소를 중국군이 공격함으로써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소대급 병력을 동원, 인도군 경비초소를 공격해 초소를 파괴하고 여기에 설치되어 있던 고가의 감시 카메라와 컴퓨터 등을 훔쳐갔다. 사건 직후 인도군이 이 지역에 증강 배치되고, 중국도 맞불을 놓으면서 3주 가까이 대치 상황이 이어졌으나, 인도가 먼저 외무장관을 베이징에 보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뜻을 보임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된 바 있었다. 문제는 인도가 상대적으로 관대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중국이 인도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3년 충돌에 대한 양국 정부의 대화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도발을 재개했고, 중국군은 2014년과 2015년에도 수시로 국경을 넘어 인도 지역을 침범했다. 이 때문에 인도는 2014년부터 중국과의 국경 지역에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약 5만여 명 규모로 편성된 산악타격군단을 창설해 국경 경비 병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한데 이어, 최근에는 T-72 전차 100여 대와 장갑차, 차량 등으로 편성된 2개 전차연대를 국경 지역의 라다크(Ladakh) 지역에 전진 배치했다. 인도는 여기에 1개 전차연대를 추가로 증파해 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이 지역에 상시 배치할 뜻을 밝혔는데, 인도가 중국 국경에서 불과 수km 떨어진 이 지역에 전차를 배치하는 것은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인도가 국경 지역에 대규모 기갑부대를 전진 배치하자 중국은 발끈하고 나섰다. 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인도의 조치는 중국 기업들의 인도 투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면서 투자 중단과 경제적 보복 가능성을 제기하며 인도를 위협했다. 하지만 인도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을 겨냥한 동부 지역 육·해·공군 전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인접한 동부 아쌈(Assam)주 테즈프루(Tezpur) 공군기지에 최신예 수호이 Su-30MKI 전투기를 증강배치한 데 이어 프랑스로부터 도입되는 최신예 라팔(Rafale) 전투기 역시 아쌈 지역에 배치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오는 2018년 취역 예정인 신형 항공모함 비크란트(INS Vikrant)는 벵골만을 담당하는 동해함대에 배치될 계획이며, 러시아로부터 추가 임차 예정인 아쿨라급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과 인도가 자체 건조한 아리한트(INS Arihant)급 전략원자력잠수함 역시 동해함대 지역에서 주로 운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그동안 인도의 군사력 증강은 파키스탄을 겨냥한 측면에 많았는데, 최근 일련의 군비증강 및 군사력 배치 현황을 들여다보면 인도 군사력 창끝의 무게 중심은 파키스탄에서 중국을 향해 서서히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를 방증하는 것처럼 인도는 최근 수상전투함과 군수보급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동중국해로 보내 미국, 일본과 중국을 겨냥한 해상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이 함대는 돌아오는 길에 말레이시아 해군과도 연합 훈련을 하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사실상 3면이 포위된 중국의 입장에서 이제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등 서방세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뿐이지만, 러시아도 중국 편은 아닌 듯하다. 최근 러시아는 한반도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중국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고, 중국이 러시아 최대의 가스 구매 고객이라는 현재의 상황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이지, 여기에 ‘인도’라는 변수가 끼어들면 러시아는 언제든지 중국을 버릴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인도가 중국과 대립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도에 온갖 최첨단 무기를 판매해 왔고, 심지어 중국이 대단히 불편해하는 전략무기들도 인도에 먼저 제안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와 긴밀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 공군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T-50 PAK-FA는 인도의 FGFA(Fifth Generation Fighter Aircraft) 사업과 함께 진행된 사실상 공동개발 프로젝트였다. 인도는 러시아의 최대 무기 수입 고객으로써 최근 80대의 수송헬기와 6대의 수송기 도입 계약 체결을 마무리했으며, 여기에 더해 12개 포대 규모의 S-400 방공 미사일과 4대의 Tu-22M3 전략폭격기 구매 협상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인도에 자국 해군용 아쿨라(Akula)급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2척 임대를 제안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국 해군용으로 개발 중인 10만 톤급 초대형 차세대 원자력 항공모함 판매까지 제안하고 있다. 중국의 신형 전투기 및 미사일 판매 요청에 난색을 표했던 것과 대단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동쪽과 남쪽에서는 미국과 일본, 호주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 중국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있고, 서쪽에서는 인도가 중국을 향한 창끝을 날카롭게 갈고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우방으로 믿었던 러시아는 중국보다는 인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현재 이러한 중국의 모습을 보면 2100여 년 전 항우가 떠오른다. 서초패왕(西楚覇王)을 칭하며 중원을 호령했던 항우는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국과 백성들을 괴롭혔고, 결국 그는 한신(韓信) 등 과거 자신의 부하를 포함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몰락했다. 지금 중국이 빠진 이 사면초가의 상황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믿고 중화사상(中華思想)의 깃발 아래 주변을 업신여기고 짓밟으려 했던 그들의 모습이 불러온 결과라는 사실을 중국은 항우의 교훈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터키 정보당국, 쿠데타 모의 미리 알았다…군에 5시간 전 통보”

    터키 정보당국이 쿠데타 모의를 사전에 알았을 뿐 아니라 이 정보가 쿠데타 시작 전 군 수뇌부에 전파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참모본부가 쿠데타 시도가 시작되기 약 5시간 전 정보당국(MIT)으로부터 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19일 터키 언론들이 보도했다. 참모본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성명을 이날 웹사이트에 발표했다. 훌루시 아카르 군총사령관 등은 이 정보를 평가한 후 터키군에 장비이동 금지명령과 기지 폐쇄명령을 내렸다고 참모본부는 설명했다. 이러한 내용은 쿠데타 세력에게도 전달됐을 것이라고 참모본부는 덧붙였다. 참모본부의 성명이 사실이라면 터키 정보당국이 쿠데타 모의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는 쿠데타 기도를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터키정부의 그간 설명과는 상반된다. 참모본부의 설명대로라면 쿠데타 주도세력은 정보당국에 꼬리가 밟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원래 계획보다 급하게 행동에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쿠데타 가담 혐의를 받는 장성급이 100명에 육박하는데도 15일밤 동원된 병력이 크지 않았던 이유도 참모본부의 이동 금지명령 등 대처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