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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접수국 협정」가조인의 함축/유사시 한·미 역할 구조적 조정

    ◎전시 탄약·차량등 광범위한 군수지원/평시엔 도상훈련만… 큰 비용 안들어/“미군의 즉각적 자동개입 조항 미흡”지적도 전시접수국지원협정(WarTimeHostNationSupport)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본토나 해외기지에서 신속히 전개될 미증원군이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수와 병참지원을 제공토록 규정하고 있는 조약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쟁이 일어난 당사국에서는 우방으로부터 유사시 전개될 시차별부대전개목록을 받아 그 부대와 병력규모에 맞는 항만·도로·비행장 등 각종 시설과 유류·탄약·식품 등 전쟁물자,트럭·비행기·함정 등 수송수단과 노무지원 등에 대한 군수계획을 세워 전쟁에 대비한 양국간의 군사협정이다. 미국은 지난 85년5월 제1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협정의 체결을 제의했으며 87년5월 양국방장관 사이에 양해각서가 체결된후 지난해 11월 제22차 SCM에서 가능하면 빠른시일 안에 본협정을 체결한다는 일정에 합의했었다. 미국은 80년대초부터 벨기에·서독 등 나토회원 10개 국가와 이협정을 체결,유사시 전쟁자동개입과 즉시 증원군 파견의 의무를 갖고 접수국에서는 병참·수송·장비·보급 등 군수조달을 책임지도록 했다. 미국은 2차대전 직후부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전세계의 GNP중 약5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어 전쟁이 일어나면 병력은 물론 장비·탄약·식량·유류까지 자국에서 동원해 전쟁을 했으나 현재는 경제력이 약화되어 대군을 유지할 수 없어 해외주둔병력을 감군하는 추세에 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에 따른 안보상의 이유로,미국은 지상군이 감축된다고 해도 유사시 증원될 증원군의 작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동아시아전략계회(EASI)의 하나로 이 협정체결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한국은 50년 6·25이후 안보·국방면에서 미국의 무상군원을 받으며 의존해왔으나 80년대 후반 이후 국력의 신장과 경제발전으로 국제적지위가 점차 향상되어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방위비를 분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주도적위치에서 보조적위치로 재조정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상 미국의 대한안보공약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유사시 미증원군의 파견을 용이하게하고 증원부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배치를 가능케 함으로써 안보능력을 높이기 위해 이 협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국방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지난번 걸프전쟁에서 입증된 것처럼 현대전은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수송해야 하는 군수전쟁이어서 군수물자와 수송수단,병참기지의 확보가 보장되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전선에서 후방사이의 거리가 짧아 조기경보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며 미증원군이 본토나 태평양지역에서 전개된다고 해도 10∼20일이 걸리는 어려움이 있어 이 협정은 전쟁당사국이나 지원국 모두에 필수적이라는 것이 협정초안작업에 참가했던 실무자들의 의견이다. 미국이 걸프전 군수부문에서 고전을 한것은 사우디아라비아정부와 이런 종류의 협정이 없어 군수물자와 병참기지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82년 미국이 서독과 체결한 협정에는 ▲유사시 증원군의 전개시기를 「D+30일」에서 「D+10일」로 단축하고▲증원부대의 규모를 「4개사단」에서 「10개 기계화사단」으로 증강하며▲미군사단의 주요장비를 서독내 기지에 「사전비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간의 협정에는 『미국은 유사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연합사령부 작전계획」에 따른 시차별 부대 전개목록에 따라 한국에 증원군을 파견하는 계획을 유지한다』라고 되어 있어 유사시 증원받을 부대의 규모를 명시하지 못한 것은 군사조약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명시적으로 D+며칠안으로 몇개 사단의 증원군을 파견한다는 것이 아니고 유사시 증원부대목록과 예상도착일정만 적시해 놓아 유사시 미국의 즉각적인 자동개입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협정의 비준으로 인한 비용부담이다. 한국측은 WHNS훈련은 기존의 팀스피리트훈련이나 을지포커스훈련 등과 함께 병행해서 이 훈련은 도상훈련으로 하기 때문에 연간 추가비용이 3천만∼4천만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독처럼 3개 미군사단의 장비를 창고에 보관하려면 관리병력이나 예산이 많이 소요되나 한국의 경우 유사시 국가동원령이 내려졌을 경우에만 실제경비가 소요되어 평시에는 그다지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군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 팀스피리트 축소/내년 30% 줄여 10만명으로

    ◎한미야전사 내년 7월 해체 한미양국정부는 내년 1월부터 4월까지 실시되는 92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참가병력규모를 올해의 14만여명에서 10만명수준으로 20%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정호근합참의장이 22일 밝혔다. 정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훈련방법도 지금까지의 항공모함전단과 B52전략폭격기가 참가하는 대규모 육·해·공군·해병대의 입체훈련에서 야외기동훈련과 지휘소연습(CPX)을 위주로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정의장은 그러나 훈련참가 병력과 장비는 축소하더라도 현대전의 개념을 익히기위해 걸프전에 동원됐던 최첨단과학장비를 내년훈련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다. 정의장은 또 한미연합사령부 예하의 한미연합야전사령부를 92년 7월에 해체하고 92년말까지는 한미연합사령관이 겸임하고 있는 지상군 구성군사령관에 한국군장성을 보임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물난리속 20여곳에 산사태/중부 폭우피해

    ◎용인선 일가족 5명 참변/출수앞둔 농지 25만㏊ 황폐화/터널붕괴·교량잠겨 한때 열차 발묶여 휴일인 21일부터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경기·강원·충북·경북일대를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곳곳에서 참변이 잇따랐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일가족 5명이 매몰된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를 비롯,20여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흙더미에 깔려 13명이 숨지고 도로와 철도·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겨 교통·통신이 한동안 두절되는 등 피해가 많았다. ▷산사태◁ 21일 폭우로 용인·오산·화성군 등에서 잇따라 산사태가 발생,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진 것을 비롯,1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28명이 부상했다. 하오1시30분쯤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 이강학씨(40·이장)집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흙더미가 이씨집을 덮쳐 집안에 있던 이씨와 승재(13)정재(11)영재(9)등 세아들,이씨의 어머니 안옥희씨(78)등 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또 하오1시45분쯤 오산시 은계동 56의2 차주성씨(56)집과 은계동20의1 정준교씨(32)집 뒷산이 무너져 방안에서 잠자고 있던 차씨의 딸 혜정씨(23)과 정씨집에 놀러왔던 정씨의 매제 성규채씨(35)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도피해◁ 이날 하오1시쯤 병점∼오산의 5㎞구간 가운데 상행선 7곳,하행선 4곳 등 모두 11곳이 유실되거나 산사태로 파묻혔다. 병점역부근의 서울기점 51.3㎞지점에서 하행선 20m가량이 산사태로 매몰되고 길이 2백40m의 오산터널 벽일부가 무너졌으며 3백20여m의 둑이 붕괴됐다. 비슷한 시간에 오산터널벽이 무너져 내렸으나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313호 통일호열차가 이를 보고 급정거해 사고를 피했다. 이날 사고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29편이 운행을 중지,승객 2만여명이 환불을 요구하거나 4∼5시간동안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재산피해◁ 경기도는 이번 비로 2천2백27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부서져 77억4천6백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또 1천4백83명의 이재민을 냈으며 농경지 25만3천4백80㏊가 침수 또는 유실됐다. ▷군 구조◁ 육군은 집중호우가 내린 21일 하오5시30분부터 7시50분까지 경기도용인군원삼면미리내와 이동면에 UH1H 헬리콥터 2대를 동원,고립된 1백77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육군은 또 22일 상오 충북원성군대소면과 중원군·괴산군 지역에 트럭 21대·중장비 10대·병력 6백90명을 동원,유실된 국도 7m와 건물 7동·비닐하우스 1천9백평을 긴급복구했다.
  • 슬로베니아/연방의 최후통첩 일축/공화국 방위군 해체 거부

    ◎쿠칸대통령 “연방군부터 병영복귀를”/크로아공선 유혈충돌 재발 【베오그라드·자그레브 AP AFP 연합】 스티페 메시치 유고슬라비아 연방간부회의장은 13일 연방 간부회가 수락한 EC평화안에 따라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연방군대에 대해 원대 복귀할 것을 지시했다. 크로아티아공화국 출신인 메시치의장은 그러나 연방군과 정규 평시 경찰병력을 제외한 모든 군편제를 다음 주말까지 해제하라는 연방 간부회의 앞서의 명령이 크로아티아공화국의 경찰병력인 국가방위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영 탄유그통신은 앞서 연방간부회가 오는 18일밤 12시(한국시간 19일 상오7시)까지 『유고 연방군과 평시의 정규 민병대 편제를 제외한 모든 군대』를 해체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었다. 메시치의장은 이와 관련,간부회의 이같은 명령을 무시하는 공화국들은 강제로라도 이를 준수하게 될 것이라면서 『공화국이 마지막 경고인 이같은 명령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국가는 무력을 포함한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밀란 쿠칸 유고 슬로베니아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슬로베니아 방위군을 오는 18일까지 해제할 것을 촉구한 최후통첩을 포함,유고 연방간부회의가 설정했던 일련의 통첩을 거부했다. 쿠칸대통령은 『우리는 평화에 대한 보장이 있을 때,즉 유고 연방군이 모두 병영으로 되돌아간 뒤에야 병력동원을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크로아티아가 군의 개입위협을 받고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한편 크로아티아공화국 수도 자그레브에서 50㎞ 떨어진 페트리냐지역의 수개마을에서 13일밤 로마 가톨릭 교도 크로아티아인들과 그리스도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들 사이에 박격포 수류탄 자동소총 등이 동원된 전투가 벌어져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 삼양금속에 공권력 투입/농성근로자 9명 구속

    ◎6명은 계속 취수탑 점거 경기도경은 14일 안산시 성곡동 스테인리스강판 제조업체인 삼양금속(대표 배장권)에 공권력을 투입해 두달이상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온 근로자 37명을 연행,이 가운데 노조위원장 장용렬씨(31)등 9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이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과 노조위원장 장씨등 노조원 1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미리 발부받아 하오5시쯤 8백여명의 경찰을 투입,구내식당 등에서 농성중이던 26명의 근로자를 연행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지난 5월13일부터 회사내 38m의 취수탑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여오던 노조원 6명은 경찰병력의 취수탑위 진입이 어려운데다 노조원들이 추락할 위험이 있어 연행을 포기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4시30분쯤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시장 배씨의 집에도 경찰 1백여명을 동원,이곳에서 농성을 벌여오던 노조쟁의부장 김인담씨(26)등 11명을 연행했다.
  • 유고연방군,슬로베니아 진격/군부,휴전거부/탱크등 동원…곳곳서 교전

    【베오그라드·류블랴나 로이터 AFP 연합】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은 슬로베니아의 재휴전제의를 일축하고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의 분쇄를 다짐한 뒤 3일 새벽(이하 현지시간)탱크와 장갑차량을 포함,막대한 병력을 북부로 파견했으며 슬로베니아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져 유고사태는 다시 일촉즉발의 긴장속으로 빠져들었다. 약 1백50대의 탱크와 장갑차량을 비롯,수천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연방군은 연방수도인 베오그라드내 병영을 빠져나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의 수도이자 슬로베니아로 가는 길목인 자그레브를 향해 진격했다. 이에 뒤이어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로부터 20㎞ 떨어진 곳에 위치,전날 연방군 항공기가 슬로베니아 라디오중계소를 맹폭격한 곳이기도 한 프림부근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또 류블랴나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의 브르니카 군기지부근에서도 총성이 울려퍼졌다. 한편 베오그라드시민들은 2일밤 예비군에 대한 동원령이 하달됐으며 슬로베니아방위군과의 전투에 대비,부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 탱크행렬 수㎞… 곳곳서 가옥·교회 불타/혼미 거듭하는 유고사태

    ◎강경파,“정부의 협상이 군작전 방해”/“군은 국민상대로 전쟁” 독 외무 비난 ○…연방군의 강경책으로 EC가 중재한 휴전이 하룻만에 깨진데 이어 3일 슬로베니아 곳곳에서 연방군과 슬로베니아방위군간에 전투가 벌어졌다고 슬로베니아 관리들과 현지 언론이 전했다. 크로아티아TV는 이날 하오 슬로베니아로 향하는 연방군의 중포와 수천명의 병력으로 이뤄진 행렬이 수㎞에 뻗쳐 있다고 전했다. 슬로베니아 현지 TV방송은 양측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방영했으며 이때 연방군탱크들이 포를 쏘며 교회와 가옥등을 파괴하는 모습이 비쳐졌다. 슬로베니아 라디오도 연방군 탱크들이 크로아티아접경 오르므즈에서 포격을 가해 가옥 여러 채가 불탔다고 전하고 이밖에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다고 보도했다.여러 도시지역에서도 연방군 공군기의 상공비행으로 인한 공습경보가 울렸으나 폭격은 없었다. ○…슬로베니아관리들은 블라고예 아지치연방군참모총장이 2일 『연방군이 당면한 전쟁을 가능한한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공격을 가할 것이며 슬로베니아는 곧 분쇄될 것』이라고 말한데 대해 이같은 발언이 연방군에 의한 「사실상의 쿠데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옐코 카친 슬로베니아공보장관은 오스트리아접경 고르냐 라드고나지역등 곳곳에서 3일 상오 산발적 전투가 있었다고 밝히고 연방군측이 슬로베니아의 휴전제의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탱크와 병력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시치,“내가 군통제”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은 2일 슬로베니아인들이 『모든수단을 동원해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협상을 요청해』 슬로베니아에서의 군사작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연방정부를 비난했다. 유고 연방군 최고사령부 참모본부의 블라고예 아지치 연방군 참모총장은 스티페 메시치 신임 연방간부회 의장이 루블랴나에서 전투종식을 위한 회담을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 가진 TV회견을 통해 『연방정부가 협상을 요청함으로써 군사작전을 방해하고 있지만 연방군은 적들이 휴전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사령부내의 강경파로 알려진 아지치장군은 연방군 가운데 슬로베니아 병력이 포함돼 있는 부대들이 슬로베니아방위군에 투항했다고 말했다. 한편 메시치 대통령은 아지치장군의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군은 내가 통제한다』고 말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은 3일 유고슬라비아연방군이 북부로 진격한 것에 대해 논평,『유고 군부가 미쳐 날뛰고 있으며 자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신설된 위기대처위원회 의장인 겐셔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그럼에도 불구,유고사태가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날 오후 프라하에서 열리는 위원회 회의에서 그 대답이 분명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C,감시단 급파 ○…유럽공동체(EC)를 대표하는 3명의 외교관이 유고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군간 유혈전투 감시를 위한 옵서버의 파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유고 수도 베오그라드로 출발했다고 네덜란드 외무부가 밝혔다. 네덜란드 외무부의 한 대변인은 이날 『EC감시단은 유고연방 당국과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 대표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EC외무장관들도 오는 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적대행위가 멈추지 않을 경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국가로 승인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네덜란드외무부 대변인이 3일 밝혔다. ○CSCE 긴급회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위기관리위원회 긴급회의가 유고슬라비아 분쟁을 토의하기 위해 3일 하오3시(한국시간 3일 하오9시) 체코슬라비아 수도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CSCE사무국이 2일 발표했다. ○유엔,중재노력 배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은 유럽의 대유고슬라비아 평화회복 시도가 결말이 나기전에 유엔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고 3일 밝혔다. ○…유고군부의 무력행사에 대해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등은 유엔의 개입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유고연방군은 공격받지 않는 한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슬로베니아 주둔 연방군 부사령관 안드리야 라세타장군이 3일 밝혔다. 라세타장군의 발언이 슬로베니아의 휴전제의를 완전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지는 불분명하나 3일 하오늦게부터는 양측의 정면 대결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또 연방군은 메시치 대통령을 군최고통수권자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 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5·끝

    ◎북경자료 분석통한 진겸교수의 추적/“장기전에 대비하라”…모,인해전술 지시/80만 병력 3조로 나눠 교대 투입/유엔 총공세에 12개군 지리멸멸/미의 휴전안 소 통해 전달받고 무력적화 포기 모택동은 중국지원군을 3개조로 나누어 교대로 한국전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스탈린에게 전달했다. 유엔군을 상대로 조기승리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는 않았다.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서 모는 『앞으로 몇년이 걸리더라도 미군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승리를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51년 3월중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팽덕회는 4월6일 중국지원군 당위원회확대회의를 소집,『단기전을 수행하되 장기전에도 대비하라』는 모의 교시를 전달했다. 팽은 이 자리에서 51년중 60만의 병력이 추가징발될 것이며 군사문제가 국가의 최우선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유엔군은 중국군의 추가병력이 도착한 4월중순까지 반격을 계속,3월중순 서울을 재탈환하고 전선을 38도선으로 옮겨갔다.맥아더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짓기 위해 중국본토를 공격할 것을 워싱턴에 건의했다. 그러나 트루먼대통령은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진격하자 전쟁을 그쯤에서 끝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견차 때문에 트루먼대통령은 4월11일 맥아더장군을 유엔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후임에 리지웨이장군을 임명했다. 미국이 전전 영토를 회복하는 것으로 전쟁의 목표를 줄여잡은 것과는 달리 중국은 완전한 승리의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51년3월 중국군 제3,9,19군단이 지원군으로 도착하자 팽덕회는 제5차공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4월6일 중국군당위원회에서 팽덕회는 총반격작전 개시일을 4월20일경으로 잡았다. 팽은 이때 미군이 북한지역의 동서해안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졌으나 기선을 잡기 위해서 공격날짜를 서둘렀다. 중국군 사령부는 이 5차공세를 공격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전쟁을 완결짓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5차공세는 4월22일밤 시작됐다. 유엔군 주방어군인 미제24,25사단을 일시에 포위,섬멸하고 서울을 재점령한다는 목표하에 북한인민군 제1군을 포함,총12개군의 대규모 병력이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작전은 예상보다 어렵게 진행됐고 서울공격에 나섰던 제64,65군은 유엔군의 공습·포공격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모택동은 그러나 5차공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는 서울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병력을 돌려 동부전선을 칠 계획을 세웠다. 5월16일 재차공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한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나 역시 대대단위 이상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조금씩 남하하다가 5월21일 공격을 멈추고 말았다. 이틀 후인 5월23일 새벽 유엔군이 총반격에 나서자 중공군은 허겁지겁 퇴각하다 제60군 예하 1백80사단이 전멸하는등 「한국전 기간중 최대의 피해」를 입은채 5차공세를 실패로 끝냈다. 모택동도 마침내 완전한 승리 대신 휴전을 수락할 뜻을 비추기 시작했고 동시에 미국도 종전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미국무부는 당시 프린스턴대 교수로 국무부 고문이던 조지 캐넌을 유엔 주재 소연대사 야코프 말리크와 만나도록 주선,두사람은 5월31일 롱아일랜드에 있는 말리크의 관저에서 만났다. 캐넌은 전전경계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협상을 통해 한국전을 끝내고 싶다는 미국정부의 뜻을 밝혔고 소연정부는 이를 즉시 중국측에 전달했다. 이 메시지를 받은 모택동은 6월초 북경으로 김일성을 불러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양자는 전전영토보장과 한반도 주둔 외국군대의 점진적인 철수를 약속한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51년6월23일 말리크소대사는 공식적으로 휴전을 제의했고 중국이 이에 동의했다. 이어 7월10일 중국·북한대표와 유엔군측 대표가 개성에서 첫대좌를 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휴전협정조인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2년의 세월이 걸렸다. 중국이 무력승리 정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한국전참전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엔군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땅으로 진격해 들어올 것에 대한 안보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모택동과 중국지도부가 갖고 있던 공산혁명 이데올로기가 보다 중요한 동기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모는 한국전을 아시아공산혁명의 한 단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모는 중국이 한국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적 의무」로 생각했다. 이러한 혁명논리가 동원될 때 비로소 모가 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전부터 한국전참전준비를 했고,왜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들었는가가 보다 분명하게 해명된다. 한국전참전을 통해 중국은 군사전략과 외교면 등에서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현대전에서 무기·병참 등의 열세 속에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가 원자탄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둘째 소연이 공군지원을 하겠다던 당초약속을 어긴 것은 그뒤로 모가 소연을 불신케 된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은 한국전에서의 패배로 그때까지 추구해온 아시아혁명전략을 전면 재조정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 80일만에 37도선돌파…병참선 재정비(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4)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의 추적/보급난 간파한 유엔군,대대적 기습 반격전/“한강이남 포기… 휴전 모색” 건의에 모가 반대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기 앞서 김일성은 12월초 비밀리에 북경으로 가 모택동을 만났다.두 사람은 이자리에서 중국·북한군 통합사령부를 창설키로 합의했고 팽덕회가 총사령관겸 정치장교로 임명됐다. 팽덕회는 공세작전의 성패는 병참에 달렸다고 판단,즉시 수송 및 보급망 개선에 주력했다.이와함께 중공당중앙군사위는 국공내전참전 용사 8만4천명을 추가동원하고 인민해방군 제19군단에 대해서도 51년3월까지 춘계대공세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중공군의 3차공세는 50년12월31일 시작됐다.초기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돼 이듬해 정월 2일까지 중·북한합동군은 유엔군 방어선을 15∼20㎞정도 밀고 내려갔다.중국지원군 38군과 조선인민군 1군은 서울과 인천을 향해 진격했고 중국군 42군은 인민군 제2,제5군의 지원을 받아 홍천,횡성으로 밀고들어갔다. 이들은 1월4일 서울을 함락하고 1월8일에는 37도선까지 밀고내려갔다.그쯤에서 팽덕회는 전황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보급선이 너무 길어져 중공군들이 엄청난 곤경을 겪고있었기 때문이다.팽은 유엔군이 비록 후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전력의 우위와 반격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공격작전을 중지하고 현위치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전전선에 시달했다. 1월8일 중공군사령부는 「조정기 중 우리의 할일」이라는 지침을 각급부대에 하달,차기 공세에 대비할 것을 명령했다.팽은 공격중지로 유엔군이 반격할 여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단시일내에 반격해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택동은 팽의 건의대로 공격중지를 허락했지만 미군에게 반격능력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51년1월14일 모는 팽앞으로 보낸 전문에서 미군은 최악의 경우 부산·대구지역에서 대규모 저항을 할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한국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월25일 중·북한군지도부는 춘계대공세를 위한 합동작전회의를 개최했다.같은날 유엔군은 김포,인천지역에서 대규모 반격작전에 나섰다.미8군사령관 월튼 워커장군이 불의의 자동차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매튜 리지웨이장군이 대신 작전지휘를 맡았다.리지웨이장군은 중공군의 작전수행능력이 물자,전투장비의 보급난 때문에 1주일 단위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리지웨이장군은 유엔군이 화력·기동성·보급면에서 앞서기 때문에 최단시간내 공세로 국면전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반격작전에 나섰다.갑작스런 반격에 당황한 중·북한 합동군사령부는 춘계공세계획을 일단 중지하고 유엔군 저지에 나섰다. 1월27일 팽덕회는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 미군의 작전목표가 『중국군을 한강 이북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탄약,식량의 부족 때문에 3월말까지는 이들의 공격을 저지하기가 힘들다고 보고했다.이와함께 팽은 『정치적으로 가능하다면』한강 이남지역을 포기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휴전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했다. 그러나 모는 1월28일 저녁 팽에게 전문을 보내 반격할 것을 명했다.모는 이 전문에서 ▲4차공세의 목표는 미군과 이승만정권을 몰아내고 대전과 안동 이북을 점령하는 것▲중국군이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주공격을 원주·홍천방면에 집중시킬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고▲대전·안동이북을 차지하면 일단 2∼3개월 힘을 모은 뒤 마지막 5차공세로 전쟁을 끝낸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팽은 다음날 중·북한군 합동작전회의에서 모의 뜻을 전달하고 반격작전을 개시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수립했다.전세로 보아 전면반격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부전선에선 현위치를 고수하고 서부전선에서만 공세를 취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서부의 중국지원군 제50군과 38군예하 1백12사단은 현위치를 지키고 제39·40·42·66군은 횡성과 지평리에서 진격해오는 유엔군을 공격하도록 했다.동시에 북한인민군 제2군과 제5군은 평창에서 한국군 제7사단을 공격,남진활로를 뚫도록 했다. 전면공격을 요구한 모의 지시에 크게 미흡한 작전계획이었지만 팽은 사실 이 정도도 무리라고 생각했다.1월31일 팽은 모에게 전문을 보내 현시점에서 반격을 개시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팽은 중국병사들이 식량·탄약·신발보급을 제대로 못받아 『눈길을 맨발로 걸어야 할』형편이라고 밝혔다.팽은 2월12일을 공격개시일로 잡았음을 알리고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한국전 전반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공군의 반격은 2월 11일 횡성·원주지역에서 시작됐다.작전초기 한국군 제8사단을 상대로 잠시 승리를 거둔 중공군은 미제2사단의 우세한 탱크·포 화력앞에 많은 전사자를 내고 결국 지평리에서 공격을 멈추고 말았다.중·북한 합동군사령부는 37도선북쪽과 38도선 이남의 두곳에 방어선을 치고 둘 중 한곳에서만이라도 유엔군의 북상을 막아보려고 했다.그리고 팽덕회는 북경으로 가 3월말까지 머물며 모와 향후전략을 숙의했다. 팽의 보고를 받고 한국전에 대한 모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모는 3월1일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1년안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당초의 생각을 바꿔 전쟁이 2년 정도 더 끌 것같다고 밝혔다. 모는 중국군이 심각한 병참문제에 시달리고 있고 단위부대 병력충원에 1개월 이상씩 걸린다고 말하고 『38도선 이북을 다시 적에게 내줄 가능성이높다』고 실토했다.이러한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모는 마침내 전략상의 일대 수정을 가할 것을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장기전에 대비,총병력을 3개조로 나눠 교대로 전선에 투입한다는 전략이었다.
  • 연방군,바리케이드 뚫고 수도외곽 포진/유고 내전사태 이모저모

    ◎슬로베니아 주민들 도로에 지뢰매설/영내 연방군 기지에 단전·단수조치도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일방적 이탈을 선언한 슬로베니아공화국의 수십만 시민들은 긴급파견된 연방 병력의 강도높은 무력시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6일 수도 류블랴나에서 1천년 만에 처음 맞은 독립을 대대적으로 축하했다. 시 중심가 「해방광장」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밀란 쿠칸 공화국대통령은 『마침내 꿈이 실현됐다』고 말문을 연후 『우리나라는 민주·자주 노선하에 어느 누구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부대 곧 투입” ○…슬로베니아공화국의 3개 지역에 배치됐던 유고연방군이 수도 류블랴나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슬로베니아인들은 수도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봉쇄하기 위해 버스·트럭과 소방차·불도저 등을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쳤으나 연방군 탱크와 장갑차들은 이를 깔아뭉개면서 진군을 계속해 곳곳에 부서진 차량들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슬로베니아정부는 연방군이 수도내로 진격해 올 경우 접근도로에 지뢰를 매설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일부 시민들은 이미 지뢰매설 작업에 착수. ○…슬로베니아 당국은 27일 공화국내의 브르니카에 있는 연방군기지에 대한 전기 및 수도와 음식물 공급을 중단. ○3개공항 완전폐쇄 ○…유고연방 당국은 26만 슬로베니아공내 3개 공항을 폐쇄시킨 데 이어 27일에는 류블랴나 외곽의 브르니크공항 주변까지 장갑차와 무장병력을 진격시키는 등 공항장악을 기도. 루파르 공항경찰사령관은 10여 대의 탱크가 공항주변에 진을 치고 있으나 더 이상의 접근은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브르니크 공항경찰은 연방군이 공항을 장악한 뒤 수송기를 이용해 군병력을 이동시킬 것을 우려,공항 활주로에 불도저 등을 세워놓는 한편 공항건물에 대한 경계를 계속. 페테를 슬로베니아공 총리는 『연방군 공수부대가 수시간내에 브르니크공항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고연방군은 27일 철도와 도로 등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여러 곳의 국경지역을 봉쇄했고 헝가리 국경의 2개 검문소도 폐쇄했으며 이탈리아와의 국경은 봉쇄되지는 않았지만 유고연방군 탱크가 잔뜩 진주해 있다고. ○…슬로베니아 경찰과 방위군들은 관공서 건물과 중앙우체국·철도역·방송사 등 연방군이 진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류블랴나시내 곳곳의 전략요충지에 배치돼 경계활동을 펴고 있다. ○…유고연방군은 슬로베니아공 상공에 군용기를 저공비행시켜 군의 행동이 슬로베니아인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고의 통합을 위한 것이라며 슬로베니아인들의 진정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대량 살포. ○…슬로베니아와 함께 일방적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서도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간의 유혈충돌이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몇몇 세르비아인 거점에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내부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유고통신 탄유그가 이날 전했다. ○…통일유고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유고연방군은 올 들어 발생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들 간의 유혈충돌 이후 크로아티아공화국의 여러 지역에 배치,치안유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함에따라 경우에 따라서는 연방군과 창설된 지 얼마되지 않은 두 공화국의 군병력간에 교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연방군이 이들 두 공화국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있으나 그같은 점령상태가 오래 갈 수는 없으며 크로아티아 출신 병사가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발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는 오히려 민족분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연방군이 육군 16만5천명,공군 3만5천명 등 총병력 21만5천명에 소련제 T­72탱크와 성능이 비슷한 M­84탱크 등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돼 있는 데 비해 크로아티아공화국과 슬로베니아공화국은 각각 민병대 수준의 병력 3만5천명과 6만8천명을 보유,병력규모 및 화력면에서도 연방군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연방군은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포한 슬로베니아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공화국이 각각 자체 보유하고 있는 군병력의 어떠한 저항도 분쇄할 화력을 갖고 있다고 서방 및 유고 군사전문가들이26일 말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그러나 유고연방군이 이들 두 공화국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할 경우 연방군이 와해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스페인내전이후 최악의 유혈사태 우려/유고 두공화국 독립선언의 파장

    ◎인종 뒤섞인 군경,일사불란한 「진압」기대난/국제여론은 “독립불가”… 타협 가능성에 희망 유고의 슬로베니아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공화국이 25일 밤 연방정부와 의회의 반대 속에 일정을 앞당겨 가면서까지 서둘러 독립을 결정,선포함으로써 유고연방 분열이 마침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연방정부는 26일 긴급 각의를 열고 슬로베니아공화국 접경에 병력을 긴급 파견,「영토 수호임무 등」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유고사태는 과연 연방유지가 가능할 것인가 또 유혈충돌이 발생할 것인가 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연방유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 서방외교관은 두 공화국의 독립선언이 지난 1918년 유고 건국에 정신적 토대를 제공했던 이 지역 슬라브인들의 단결이념을 압살하는 것이며 따라서 유고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이제까지의 유고연방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지금까지의 협상태도로 봐서 세르비아와 두 공화국사이에 타협이 어렵다 ▲연방의회가 독립선언 직후 군의 개입을 요청했다. 군이 비록 연방간부회의 통수를 받으며 연방간부회가 지금 의장의 궐석으로 기능정지돼 있으나 결국 개입할 수밖에 없다 ▲크로아티아공화국내에서는 크라지나와 슬라보니아지역에 약 50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집단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크로아티아가 독립한다면 공화국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결국 마찰이 불가피하며 이것이 내전으로 발전되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외교소식통들은 두 공화국 특히 크로아티아의 경우 독립은 희망사항이며 상황은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군도 각 지역인종이 섞여 있어 일사불란한 동원이 어려우며 동원한다 하더라도 분열되기가 십상이다 ▲두 공화국이 아직도 여타 공화국과 「공생」할 수 있다며 타협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두 공화국의 경제사정이 나빠 분리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유혈충돌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결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투지만 크로아티아공화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프란스 비스나르는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서 발행되는 주간 「글로부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유혈충돌이 벌어진다면 이것은 유럽에서 스페인 내전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가 될 것이며 레바논 이상의 비극적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공포가 협상당사자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제약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여론도 분리독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소련 EC 등은 군의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독립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유고의 분열이 지역정세를 뒤흔드는 사태로 진전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독립의 경우를 제외하고 2차대전 후 국가분리가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얻은 경우는 거의 없다. 60년 카탕가가 레오폴드빌 콩고(현 자이레)로부터 분리코자 했을 때 유엔 안보리는 불법이라고 비난했으며 67년 비아프라가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코자 했을 때도 유엔은 국가 분리원칙을 수락치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단 하나 유일한예외는 방글라데시의 경우뿐이나 이 때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분열됐기 때문이고 유고의 경우 국제사회의 여론이 승인불가 쪽으로 모아져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국가승인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립이 성공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90년 이후 고조돼 온 긴장상황은 독립선언으로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이미 다 건너 간 상태로 보인다.
  • 투­개표장등 설치완료… 시도별 상황 총점검

    ◎광역선거 “준비끝”… 「선택」만 남았다/섬지방 기상이변 대비,투표함 사전수송/개표부정·폭력사태 막게 경찰 비상근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19일 상오부터 투표함 기표대 투표용지 등 30여 종의 선거관련 비품을 1백32개 선거구 2천3백33개 투표소에 비치하는 등 하오 6시까지 투·개표 준비를 완료. 선관위는 또 지난 기초의회선거 때의 낮은 투표율(42%)을 의식,4백94개동의 행정방송 지하철 안내방송 등을 통해 투표참여를 당부. 선관위는 이와 함께 투표구별로 12명씩 모두 2만7천9백96명의 투표참관인과 선거사무종사원 1만8천9백90명을 확보했으며 개표참관인도 후보자별로 2명씩 3천2백92명을 선정. 한편 서울시도 본청 2층 대회의실과 각 구청에 투·개표상황실을 설치,업무를 시작. 서울의 총 유권자 수는 7백21만2천8백87명(남자 3백55만7천6백60명,여자 3백65만5천2백27명).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시내 51개선거구 투표소 1천2개소에 대한 모든 준비를 완료. 시선관위는 19일 상오 투표함 기표대 투표용지 투표구위원회사무용품 표찰 게시문 등 27종의 선거관련 비품을 1천2개투표소에 배치하고 하오에는 잔여투표통지표 교부와 유권자들의 기권방지를 위한 선거참여 계도방송을 실시. 또 투표참관인법정인원 1만2천24명과 선거사무종사원 4천8백17명도 1백% 확보. 한편 부산시도 시청본관 2층 회의실에서 광역의회 투개표선거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분주. ○…대구시 선관위는 시내 4백68개 투표소에 투표함을 비롯,투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 특히 투표당일인 20일에는 새마을부녀회원 등 자원봉사자를 동원,투표안내와 함께 음료수 등을 제공할 계획까지 세워놓기도. 또 8개 개표소에는 소방차와 소방관을 대기시키는 한편 개표소당 경비경찰 2백명씩을 대기시킬 계획. ○…23명의 광역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광주 시내에서는 투표 하루 전인 19일 2백81개소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업무를 위해 구청과 동사무소 공무원 1천5백78명과 교육공무원 77명 등 모두 1천6백55명의 종사원을 지정 완료하고 투표함 2백90개도 모두 수송을 완료. 시는 또 동구는 동명동 광주과학연구원 강당,서구갑은 서구청 지하민방위교육장,서구을은 방림국민교 강당,북구는 북구청 3층 회의실,광산구는 구청 3층 회의실을 개표장소로 각각 지정. 전남도도 27개 시군 1천5백46개소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특히 1백26개 도서지방에는 2백27개 투표구를 설치,도서민들의 투표 편의를 도모하고 도서지역 투표함을 민간인 선박 51척과 행정선 16척,해군함정 1척 등을 동원,이미 수송을 끝낸 상태.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대전과 충남도 선관위는 투표용지 및 투표함 수송을 모두 끝내고 개표당일 사고에 대비,한전·소방서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는 등 투·개표 준비를 완료. 충남도 선관위는 보령·서산·태안·당진 등 도서지방 및 오지에 지난 18일 투표함 수송을 완료하고 8백18개 투표구에 경찰배치를 마쳤다. 대전시 선관위도 2백46개 투표구에 투표함 발송을 이미 끝냈으며 구청회의실 등에 마련된 개표장에도 유관기관과 협조,소방시설 전화기 비상등 설치 등 준비를 마친 상태. ○…전체지역이 섬으로 이뤄진 경기도 옹진군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 불과 2명의 광역의회의원을 선출하지만 총 1만4천3백27명의 섬지역 유권자를 위해 백령도 4,대청도 4곳 등 모두 34개소의 투표소를 마련하는 등 투표준비에 만전. 이와 함께 투표가 끝난 뒤 옹진군 선관위로의 투표함 수송을 위해 육상수송이 가능한 대부도를 제외한 송림·백령·대청도는 해군 PK함정 2척,덕적·자율도는 해경함정 2척,북도·영흥도는 행정선 2척 등 모두 6척의 선박을 동원해 수송한다는 「수송작전」도 마련. 백령도는 일반여객선의 경우 10시간 이상이 걸리나 해군함정의 경우 6∼7시간이 소요돼 21일 상오 2시쯤이면 기상이변이 없는 한 순조롭게 개표가 진행될 전망. ○…전남도경은 19일 경찰국에 임시선거대책 상황실을 설치하고 광주·전남지역 1천5백46개 투표소와 32개 개표소에 경비병력 3천여 명을 집중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계에 돌입. 도경은 또 도내 신안·진도군 일대의 도서지방 2백27곳에도 5백여 명의 병력을 배치,선거장폭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 경찰은 특히 광주시 등 도심지역 투·개표소 5백여 개 소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투·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키로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광역의회투표를 하루 앞둔 19일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기관에서는 관내 1천2백28개소의 투표소에 1천2백48개의 투표함 수송을 완료하고 투표장소 설비작업을 하는 등 분주한 모습. 부안군 위도면 등 도내 도서지방 16개 투표소에는 태풍 등 기상이변에 대비,지난 17일 투표함 수송이 이미 완료된 상태이며 투표소별로 선거인명부 투표용지 기표내 투표용구 등도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 투표가 실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투표일을 하루 앞둔 19일 경남도는 도내 4개 무투표선거구를 제외한 85개 투표구에 1천4백28개의 투표소를 설치하고 모두 1천4백60개의 투표함을 비치하는 등 준비완료. 행정공무원 6천2백59명과 교육공무원 4백92명 등 모두 6천7백51명의 투표사무종사원을 선정,이날 투표진행요령을 교육시킨 뒤,각 투표소 마다 4∼6명씩 배치. 특히 도서지역 투표함과 유권자들의 수송을 위해 선박을 준비해 놓고 있으며 기상악화에 대비,경비정 7척과 행정선 15척,민간인 소유어선 22척 등 44척이 항·포구에 대기중. ○…제주도는 19일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금품공세 등 불법선거운동이 극에 이를 것으로 보고 48개반 1천4백40명의 공명선거감시단원을 도내 1천2백52개소에 배치,불법선거운동 방지에 주력. 공명선거감시단은 도내 호텔·음식점·슈퍼마켓·시장·상가 등에 중점 배치돼 금품살포,향응 등 불법타락 선거행위를 감시하게 되는데 사법권이 없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의문. ○…울릉군은 죽도에 거주하는 5가구 유권자 9명의 투표를 위해 20일 상오 9시에 행정선을 보내 투표소인 도동으로 수송투표를 하도록 한 뒤 하오 2시 이들을 다시 죽도까지 태워다 줄 계획. 군은 또 폭풍 등으로 저동 등지의 투표함 수송이 어려울 것에 대비,경비정을 동원하기로 하는 등 준비를 완료.
  • 소 태평양합훈 한국초청/미·일에도 참관요청/“신뢰구축에 기여”

    【도쿄 AFP 연합】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는 오는 8월14일부터 16일까지 동해블라디보스토크 부근해상에서 실시할 훈련에 미국 일본 한국 등 기타 국가들을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했다고 소련외교 소식통이 18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앞서 미국과 일본이 『냉전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미소 관계에 대결적 요소가 남아 있던』 지난 89년의 경우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이같은 훈련 참관 초청 제의를 거부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상황은 변했으며 낙관할 만한 여지는 있다. 외국 군사 옵서버들의 참관은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이어 소련이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을 포함,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각각 1개국씩 2개국을 이번 훈련을 참관할 군사옵서버로 초청했다고 밝히고 『다양한 정치적 문제의 해결에 이바지할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는 군사부분에서의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훈련은 소련 극동 연안지역의 방어를 위한 훈련으로 20척의 함정과 35대의 항공기 및 1만명의 병력이 동원될 예정이다.
  • 오늘 김양 사체 부검/14일만에/대책위·유족,어젯밤 극적 동의

    ◎양측 부검의사등 15명 공동참여/한때 경찰투입 싸고 초긴장 대치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 사망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 3부(이광수 부장검사)는 6일 「김양 사망대책위」가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검찰의 부검방침에 동의함에 따라 7일 상오 10시 서울 백병원 영안실에서 김양 사망 14일 만에 사체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검찰의 이번 부검은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이날 상오 대책위측이 오는 8일 사체부검을 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겠다는 결정을 하자 이를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7일 상오 경찰병력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검찰은 그러나 대책위측이 검·경으로부터 공권력 투입결정을 통보받은 뒤 이날 하오 5시45분과 6시15분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전화를 걸어 부검에 동의하는 쪽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내부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하오 11시15분쯤 부검동의결정 사실을 알려옴에 따라 경찰병력 동원방침을 취소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대책위」측과김양 사체부검에 참석할 부검의와 참관인 등에게 연락하는 등 준비절차를 논의했다. 이번 부검에는 검찰측에서 이정빈·이윤성·황적준씨 등 부검의 3명과 보조의사 2명,임채진·김수남 검사 등 검사 2명,입회계장 1명,경찰관계자 1명 등 모두 9명이 참가하게 되며 대책위측에서는 참가의사를 밝힌 「인의협」소속 양길승·서광태 씨 등 의사 2명과 김양 사체를 처음 검시했던 백병원 레지던트 서병조씨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이 부검에 유족대표와 「대책위」관계자 1명,추천변호사 1명도 함께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부검을 위해 백병원 주위에 경비병력을 투입하는 문제는 중부경찰서에서 맡도록 하되 「대책위」측이 이를 막지 말도록 요구했다. 「대책위」 집행위원장 장기표씨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과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어머니 이덕순씨,「유가협」회원들이 김양 유족을 설득했다』면서 『김양의 사인을 밝히고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부검을 해야 한다는 장 총장 등의 설득에 유족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에 『유족들은 지금까지 당시 진압에 나섰던 경찰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김양 사망에 대해 당국이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문익환 목사와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7일 백병원에서 발인식을 가진 뒤 김양 사체를 성균관대로 옮겨 8일 상오 영결식을 갖고 대학로에서 1차 노제,김양이 숨진 대한극장 앞에서 2차 노제를 지낸 뒤 김양의 유해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이에 앞서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과 박형규 목사,유인호 중앙대 교수,한승헌 변호사 등 4명은 6일 하오 5시50분쯤 서울 중부경찰서를 방문,성희구 서장을 만나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부검을 할 경우 학생과 경찰의 충돌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공권력투입을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성 서장은 이에 대해 김원환 서울시경국장과 전화통화를 한 뒤 장 총장 등에게『빠른 시일 안에 부검에 응한다는 조건으로 백병원에 경찰진입을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장 총장 등은 하오 5시쯤 서울 백병원을 찾아가 「김귀정양 사건대책위」 집행위원장 장기표씨와 유족들에게 장례일정을 연기하고 부검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백병원 주변 부검준비 분주/학생들 한때 반발 바리케이드 철거 안해 한편 이날 하오 11시쯤 「대책위」가 부검에 응하기로 결정하고 검찰이 7일 상오 부검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긴장감이 감돌았던 백병원 주변은 서서히 밝은 분위기를 되찾아갔다. 그 동안 부검을 완강히 반대해오던 일부 학생들은 「대책위」 결정에 『우리 뜻을 무시하고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한때 반발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책위」 결정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대책위」 관계자와 학생들은 부검과 장례 등을 준비하느라 밤새 분주히 움직였다. 백병원측도 「대책위」의 결정에 환영을 표시하면서 부검준비를 서두르는 한편 병원 정상화방안을 철야논의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책위」측이 부검에 응하기로 한 뒤에도 백병원으로 통하는 양쪽 도로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는 자진철거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날 낮 12시쯤 백병원 김예회 병원장에게 전화로 압수수색영장을 다시 발부받은 사실을 통보했으며 병원측은 경찰이 진입할 것에 대비,환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었다. 또 학생들은 「대책위」측이 검찰에 부검에 응하겠다는 통보를 하기 전까지 화염병 3천여 개와 수천여 개의 돌과 쇠파이프 등을 영안실과 바리케이드안 도로 곳곳에 쌓아놓기도 했다.
  • 시민이 「그만하라」고 외친다(사설)

    드디어 시민이 맨몸으로 화염병 앞에 막아섰다. 「총리사형」으로 모자라 또 다시 가두시위를 하겠다고 나서는,도무지 가랠길이 없는 시위꾼 대학생들을 주민이 제지했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았던 이들 주민은 맨몸이었다. 시너에 설탕가루까지 섞어서 사제 수류탄 같은 무기가 된 화염병을,수북수북 길거리에 쌓아놓고 무장폭도들처럼 거칠게 뛰쳐나오는 공포스런 학생시위 세력 앞에 이 맨몸의 아주머니들은 무슨 용기로 나섰겠는가. 그들이 시위학생에게 준 첫번째 요구는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하라』였다고 한다. 시위로 지새우며 거리의 폭력배처럼 되어가는 시위학생들이 『학생답지 않다』는 것에 시민은 우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또 말했다. 『주민들을 더 이상 불안하게 하지 말라』고. 학교주변의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우리가 다 함께 알고 있는 일이다. 갓난아기가 있는 집은 이사를 가야 하고 그럴 형편이 못되면 당분간 피신이라도 해야 한다. 생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시민이 맨몸으로라도 화염병 앞에 서는 비장함을 실행한 것은 생존권 차원의 결의에 의한 것이다. 「민주화」가 목표이니 참아 달라는 운동권식 수사로 설득했지만 시민들은 듣지 않고,화염병 좀 제발 던지지 말고 『시위도 이제 그만 두라』고 단호하게 맞섰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는 학생들도 알 때가 되었다. 시위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설명하는 뜻이다. 마침내 이 시민을 향해 분별력없는 시위학생이 『…민자당에서 돈을 얼마나 먹고 동원되었느냐』고 폭언을 했다가 멱살까지 잡혔다고 한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이념에 중독되어 고칠 수 없도록 비뚤어져버린 그 젊은이들의 성정에 분노가 폭발되어 취한 행동이었던 듯하다. 처음에는 몇 사람 안 되던 주민이 삽시간에 1백명 가까이 불어나서 『…돈먹었다』는 수모스런 말의 대목에서는 살벌하게 항의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뒤집어 씌우면 시민은 주눅이 들 줄로 아는 것이 아직도 운동권의 시각인 모양이지만 시민의 의식수준은 그걸 훨씬 앞서가고 있다. 순진하고 정의감이 오염되지않은 젊은 학생을 일선에 세우고 여차직하면 핵심주류는 잠적해 버리는 것이 운동권의 시위포진이다. 그런 농간에 의해 앞줄에 선 젊은 시위학생들은 운동권의 소모품 병력이 된다. 그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시민은 모두가 「돈먹고」 동원된 취로사업 근로자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경직되고 편향된 성향이 그들 자신을 위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어쨌든 돈먹었다는 누명씌우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성숙된 시민들에 의해 3백명 가량의 고대학생 가투가 학교 안으로 밀려갔다. 공권력으로 막자면 그 10배도 더 드는 병력으로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자욱해진 거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을 것이다. 더늦기 전에 시위로 운동권의 입지를 반전시키려는 기도가 잘못임을 알아야 하다. 시위운동권 사람들은 「범시민」이란 말을 잘 쓴다. 바로 학생들이 밀려서 거꾸로 학교로 들어가게 했던 「시민」이야말로 범시민의 자격을 지닌 확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주민을 분노케 해 버려 시위도 무산되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의 현명함이 이미 그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학생다운 학생」으로 돌아가는 노력만이 스스로 되살아날 길이다. 다른 모든 시민도 고대 앞 주민과 행동을 같이 하여 시위는 이제 『그만하라!』고 말해야 할 때가 왔다.
  •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7

    ◎“이젠 초강국”… 국제역할 확대 추구/“나토역외 파병 규제 불필요” 공식 거론/“안보리 제6상임이사국 돼야” 주장도 통일을 계기로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모습을 드러낸 독일에 대해 인접국가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독일의 국제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걸프전 기간 동안 전투병력을 파병하지 못하고 「돈주머니」 역할만 했던 독일은 걸프전이 끝난 뒤 기뢰제거 목적의 소해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분쟁지역에 병력을 직접 파병,국력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통독의 위상을 결정한 모스크바조약에 따라 ABC무기(원자·세균·화학)를 제조·보유하지 못하고 병력을 37만명밖에 유지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협약에 의거,독일군대는 역내의 작전에만 참가하도록 돼 있는 등 운신에 제한을 받아왔다. 그러나 통일이 되자 각 정당에서 초강국으로 등장한 독일이 세계평화 유지에 기여할 수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받고 있는 현재의 모순을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걸프전을 전후해 수면 위로 부상한 독일군대의 나토지역 밖으로의 파병에 대해 집권 연정인 기민당(CDU)·기사당(CSU)·자민당(FDP)은 물론 야당인 사민당(SPD)까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최근의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초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국방장관이 걸프해역에서 작전중인 독일 소해정부대를 방문한 데 이어 이란을 방문했던 콜 총리가 역시 독일 파견 부대를 사열한 사실은 통일독일이 앞으로 세계분쟁지역의 질서회복을 위해 나토역외까지 전투병력을 파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물론 걸프해역에서의 기뢰제거작업은 전후 마무리를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는 점에서 거대 독일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는 이웃 국가들에 의해서도 양해가 됐지만 나토역외로 독일 함정과 병력이 출동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즉 나토조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독일 국방정책의 한계를 시험하는 케이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루펠트 숄츠 전 국방장관은 소해병력의 걸프 파견과 관련,『독일 국방정책의 점진적인 변화』라고 표현했으며 야당인 SPD도 파견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유엔의 깃발 아래 평화적인 임무수행에만 독일 병력이 동원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집권 연정인 CDU와 CSU도 『이제 SPD가 나서 독일군의 해외파병을 결정할 때』라고 밝히고 『걸프전의 경우에서 보듯 헌법에 저촉됨이 없이 독일이 세계분쟁에 직접 개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인 SPD의 대부이며 총리를 역임한 브란트도 독일이 NATO지역 밖에 유엔평화군으로 참여하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 등 당 중진들은 최근 SPD가 집권했던 1973년 독일이 유엔에 가입할 때 유엔헌장을 준수한다고 서약한만큼 독일이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콜 총리와 FDP의 겐셔 외무장관은 이같은 기류변화에따라 헌법의 개정 없는 독일군의 해외파병에 반대해온 종래의 입장에서 후퇴,SPD내 파병 반대파와의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평소 유연한 태도를 보여온 겐셔 외무장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독일 전투병력의 걸프지역 파병을 완강한 태도로 반대해왔지만 최근에는 입장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의 정치적인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는 크라우스 킨켈 법무장관은 최근 유엔헌장에 따른 독일군의 해외파병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고 걸프전을 예로 들며 독일은 당연히 병력을 파견했어야 했다고 강조,눈길을 끌었다. 독일이 지난해 10월 통일될 당시만 해도 정치권과 여론은 독일군의 NATO지역 이외로의 파견은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최근에는 비록 「유엔군의 일원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폭넓은 파병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브란트 전 총리를 포함한 일부 정치권에서는 독일이 통일이 된만큼 유엔 안보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어 정말 독일이 탄탄한 국력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서 초강대국으로 다시 올라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주변국에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미국도 독일과 일본의 해외파병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통일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의 깃발 아래 직접 나서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콜 총리는 세계질서 유지 활동에서 독일의 임무가 증대되는 것을 경계의 눈으로 보는 이웃 국가들의 의구심을 배제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욱 유럽합중국의 건설을 강조하며 군사력의 증강을 제한한 모스크바조약의 준수를 다짐하고 있다. 즉 정치·경제·통화통합의 실현을 통해 독일의 독자적인 행동과 결정의 가능성을 덜어냄으로써 과거와 같은 유럽 제패의 재판을 막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관측통들은 지난해 2+4의 합의에 따라 독일이 군축을 추진하는 모양세는 갖추고 있지만 군사강국으로의 재부상 가능성에 대한 주위의 우려를 떨쳐버릴 만큼 확고한신뢰는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광주서도 평화시위/어제/대학생 5백명 2시간 가두행진

    【광주=최치봉 기자】 성균관대 김귀정양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양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에서도 학생들이 경찰과의 타협으로 평화적인 시위를 벌여 관심을 모았다. 전남대 조선대 등 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 5백여 명은 31일 하오 2시쯤 전남대 5·18광장에서 「5월투쟁 승리 경과보고 및 6월투쟁 전진대회」를 가진 뒤 전남대병원 앞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경찰은 이날 학생들에게 인도와 한쪽 차선만을 이용할 경우 평화행진을 허용하겠다고 제의,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적인 가두시위가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이에 따라 하오 4시쯤 정문을 출발,인도와 한쪽 차선만을 이용해 광주역,시외버스 공용정류장,한미쇼핑 앞을 지나 전남대병원 앞까지 2시간여 동안에 걸친 평화행진을 벌인 뒤 병원 앞 집회에 참석했다. 경찰은 이날 2개 중대 3백여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시위에 대비했으나 학생들과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행진대열을 저지하지 않아 충돌은 없었다.
  • 붉은장미 공중투하 속 애도행렬 인산인해/피살 간디 장례식 이모저모

    ◎상가 철시·전 관공서 휴무… TV선 생중계/“인류의 커다란 손실”… 후세인도 조의 표시/“간디는 콤퍼지션 폭약에 절명”/힌두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장례식은 24일 하오 4시경(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3군 군악대의 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조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뉴델리시 야무나강 제방에서 힌두교 의식으로 엄수됐다. 간디의 아들인 라훌(17)이 관습에 따라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으며 인도 TV방송은 간디의 장례식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날 하오 1시경 간디의 장례행렬이 빈소가 마련됐던 탄 무르티하우스(네루기념관)를 출발,장례식장을 향해 뉴델리 도심 16㎞를 행진하는 동안 외국조문사절을 비롯,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뒤따랐다. ○…라지브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제단 조성에는 약 2백50명의 인부들이 동원됐다. 이들 인부들은 23일 하오 7시(한국시간 하오 10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밤을 꼬박 새며 6만여 개의 벽돌과 장작을 쌓아 제단을 완성했다. ○…라지브 간디의 장례식이 거행된 24일 뉴델리의 많은 상점들과 학교는 문을닫았으며 정부 관청들도 모두 휴무했다. 인도정부는 장례식 때 일어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6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요소요소에 배치했으며 군에도 최고경계태세에 들어가도록 명령을 하달. 경찰은 운구행렬이 지나는 도로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으나 뉴델리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고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니아 여사는 24일 창백하지만 침착한 모습으로 자녀들에 기댄 채 간디의 유해가 틴 무르티 하우스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편의 유해를 어루만졌다. 대형 인도국기에 덮인 간디의 운구행렬이 틴 무르티 하우스를 출발하자 헬기 한 대가 저공비행을 하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붉은 장미꽃을 뿌렸다. ○…간디 전 총리는 군작전용으로 쓰이는 콤퍼지션폭약에 의해 폭사당했다고 사고 지역인 타밀나두주에서 발행되는 힌두지가 24일 보도. 이 신문은 또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암살은 매우 전문적 기술을 가진 1명 이상의 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힌두지는 꽃다발을 들고있다가 암살을 감행한 것으로 믿어지는 한 젊은 여자의 산산히 찢겨진 사체 사진을 공개. 이 신문은 범인이 C1·C2·C3 등으로 알려져 있고 조형성이 좋은 군용 콤퍼지션 폭약을 허리둘레에 감고 있다가 허리를 숙이면 폭발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추정. 인도 중앙정부의 내무담당 국무장관인 수보드 칸트 사하이도 이 여인의 사체에서 전선·용수철·수입된 건전지 등이 발견됐으며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고 밝혔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암살당했을 당시 격한 분노와 보복 심리로 시크교도 3천명이 죽음을 당한 것과는 달리 현재의 분위기는 그가 이끌던 국민회의당에 대한 지지를 규합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안정을 위해 국민회의당에 투표하자」는 포스터가 붙은 틴 무르티 하우스의 담장을 지나 고 라지브 간디의 관을 보고 나온 많은 시민들은 추후 다시 실시될 총선에서 국민회의당을 지지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집단에서는 그의 죽음을 축하의 기회로 삼고 있는 표정으로,힌두교와 회교도간의 갈등이 일고 있는 카슈미르 출신의 한 회교도는 『10대의 내 아들이 카슈미르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라지브 간디가 당시 총리였다』고 말하면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은 거지에게 자선을 베풀었다고 소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의 죽음이 제3세계로서는 커다란 손실이라고 지적.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에게 보낸 조전을 통해 『우리는 라지브 간디의 가슴아픈 죽음을 깊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간디의 죽음은 제3세계와 인류애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걸프사태 동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기는 했으나 중립적인 자세를 보였었다. ○…라지브 간디의 외할아버지이며 인도 독립 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이름을 딴 자와할랄 네루 대학에서 만난 일단의 학생들은 이번 혼란의 원인은 그의 어머니인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야기한 권위주의적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사학과 대학원생인 빔라찬드양은 『우리는 간디가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국민회의당이 이탈리아 출신의 카톨릭 교도인 소니아 여사를 당 총재로 지명한 것은 동정표를 모으려는 처사라고 공박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23일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44)의 비극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크게 다루면서도 소니아 여사가 남편이 이끌던 국민회의당의 총재직을 거부하는 것이 그녀 자신과 인도를 위한 최상의 길이란 점을 숨기지 않고 피력. 간디의 피살로 언론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한 평범한 여성을 세계의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의 퍼스트 레이디로 만든 동화 같은 결혼 이야기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신문들도 이날 국민회의당이 소니아 여사에게 당 총재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 시험대에 오른 네팔 민주화/오늘 32년만에 자유총선

    ◎의회당 재집권 유력… 과반확보는 미지수/왕정통치 끝났지만 급진변화는 없을듯 32년간에 걸친 무정당 왕정독재에 종지부를 찍을 네팔의 다당제 자유총선이 12일 실시된다. 정당없는 의회(판차야트)를 유지하며 절대권력을 향유하던 비렌드라 국왕이 지난해 4월 8주간에 걸친 국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에 굴복,같은 해 11월 공표한 새 헌법에 따라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44개 정당 가운데 20개 정당에서 모두 1천3백45명이 후보로 출마한 가운데 2백5명의 의원을 뽑게 된다. 정당별로는 현 과도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중도파의 네팔의회당(NP)과 좌파연합의 네팔공산당(NCP­UML)이 각각 가장 많은 2백4명과 1백77명의 후보를 내고 있으며 최근 결성된 구왕당파 세력의 민족민주당(NDP)도 50여 명의 후보를 내며 만만찮게 도전하고 있다. 30여 년 만의 첫 자유총선을 위해 네팔정부는 선거업무에 공무원 6만6천명을 투입하는 한편 폭력사태와 투표방해사태를 막기 위해 경찰 및 군병력 7만5천명을 동원하고 있으며 세계 23개국에서 선거참관을 위해 60여 명의 옵서버들을 파견하고 있다. 지난해 비렌드라 국왕이 「피플파워」에 굴복,무정부정치에 종언을 고하고 개혁을 선언케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네팔 민주화의 기수 가네쉬 만싱(76)은 『지난 59년 이래 처음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지난해의 피플파워를 완성시키는 제2의 민주주의 혁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총 1천1백만명의 유권자가 참가하는 이번 총선의 최종투표 결과는 도로망과 통신시설의 미비로 오는 17일쯤 나올 전망이며 다음주 후반쯤에는 새 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 소식통들은 네팔의회당(당수 프라사드 바타라이)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제2당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번 총선에서 네팔의회당의 집권이 확실시되고는 있으나 과반수 이상의 의석 확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향후 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네팔의회당은 과반수 의석에서 14석이 모자라는 89석 확보가 기대되며 공산당은 59석,그리고 민족민주당은 5석 미만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현지 전문가들은 이처럼 과반수 이상의 다수당이 출현하기 어려운 이유로 네팔의회당은 오랜 정부의 탄압과 망명생활로 조직력이 약화됐으며 공산당은 연합 마르크스­레닌당을 비롯,9개 분파로 나뉘어 있어 표의 분산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네팔 민주화의 시금석이 될 5·12총선을 네팔국민들이 「달갑지 않은 선택」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네팔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뽑은 새 정부가 네팔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렌드라 국왕이 비록 지난해 11월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의 절대권력 중 일부를 양보하긴 했지만 여전히 네팔의 절대군주로 존재하고 있으며 더 이상의 양보는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네팔국민들은 이번 선거가 네팔 정국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지난 59년 이미 선거를 통해 한번 구성된 바 있었던 의회가 당시 마헨드라 국왕의 강제 의회해산으로 무너진 경험이 있어 더더욱 네팔국민들은 이번 선거를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은 네팔의 자유총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당이 되든 1백60달러에 불과한 1인당 국민소득과 불평등한 부의 분배문제 등은 향후 네팔의 민주화 행보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공화국 군사단체 무장해제령/유고연방회의/민족분규 수습안 합의

    ◎세르비아인 감독권은 군에 부여 【런던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유고슬라비아 연방간부회의는 내전의 위기감을 고조시켜온 민족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방안에 합의했다고 유고관영 탄유그 통신이 9일 보도했다. 유고의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 지도자들과 안테 마르코비치 연방 총리는 3일간 계속된 마라톤 비상회담 끝에 이날 성명서를 통해 『유고 간부회의는 유고슬라비아와 각 공화국의 영토적 주권을 충분히 존중해 준다는 원칙에 근거해 공화국 간의 분쟁을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행동계획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연방간부회는 이 성명에서 폭력사태가 즉각 종식되고 평화가 회복돼야 한다면서 크로아티아 경찰 예비병력과 세르비아의 민병대 등 모든 준군사단체의 무장해제를 명령했다. 연방간부회는 또 분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크로아티아공화국내 세르비아인 거주지역의 평화를 감독하는 권한을 군과 연방에 부여했다. 이같은 간부회의 성명은 연방간부회가 3일째 난항을 거듭하자 연방정부에 의해 제안된 것이다.한편 크로아티아는 군의 중립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데 군이 독립을 추구하는 크로아티아의 행동을 억제하는 데 동원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으며 역시 독립을 겨냥하고 있는 슬로베니아공화국 의회는 독립성 확보의 일환으로 군복무,민병대,무기와 군장비 구매에 관한 연방법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탄유그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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