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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체첸공 수도 봉쇄/전투기·헬기 그로즈니 외곽 맹폭

    ◎체첸,연방잔류 등 거부/2차협상 결렬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체첸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러시아와 체첸공화국간의 2차 협상이 13일 양측간의 의견대립으로 합의도출에 실패한 가운데 이날 체첸 수도 그로즈니 외곽지역에선 전폭기와 무장 헬리콥터,중포등이 동원된 치열한 격전이 재개됐다. 러시아군은 이날 SU­25 전폭기등을 동원,그로즈니 부근의 한 군용비행장에 이틀째 공습을 계속했으며,중포 공격을 개시해 민간인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밝혔다. 칸칼라 기지의 알메르잔 아흐마디예프 체첸군 사령관은 기자들에게 러시아 수호이 SU­25전폭기가 12일 하오 체첸의 공군기지 건물을 공격한데 이어 13일 상오에도 공격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또 잉구세티아 지역을 경유해 체첸으로 진격하려다 현지 무장세력에 의해 좌절됐던 한 러시아군 부대가 이날 체첸 국경을 돌파했다고 로이터 통신기자가 밝혔다. 로이터 통신기자는 잉구세티아 무장세력들과 지난 11일 충돌했던 러시아 기갑부대가 이날 상오 체첸 영내로 진입,그로즈니서쪽 약 35㎞지점에서 진격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3개방면으로 나눠 공격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다른 한 부대는 현재 그로즈니 북서쪽에 진출,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나머지 동쪽으로 부터 다게스탄 지역을 통해 진격하던 제3의 러시아 부대는 약 40명이 포로로 잡힌 이후 아직 전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측은 또 그로즈니 서쪽 25㎞의 한 마을상공에도 SU­27전폭기들과 헬리콥터들을 출격시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이날 하오 수도 그로즈니를 봉쇄할 계획이라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군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러시아군 군사작전처가 자리잡고 있는 러시아 남부 모즈도크의 군사 소식통들은 러시아군은 13일중으로 체첸수도 그로즈니를 봉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밝혔다. 이에맞서 체첸측은 병력수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체첸관리들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후의 노력으로 북부 오세티아의 수도 블라디카프카즈에서 이틀째 협상을 벌였으나 러시아측이 체첸의 러시아연방잔류를 요구하는등 『실현 불가능한』 주장을 펴는 바람에 아무런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체첸공화국의 한 대표는 또 체첸대표들이 체첸지역내 불법조직의 무장해제와 자유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러시아측의 해결안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러­체첸 교전 이모저모/체첸,게릴라전으로 맞서/러 총리,군개입 적극 옹호/“러 자극 우려” 서방 침묵 일관 ○…러시아군이 13일 체첸수도 그로즈니 외곽지역에서 전폭기와 무장헬리콥터등 우세한 공군력을 활용,공격을 강화함에 따라 러시아군이 체첸에 진주한 이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러시아의 무장 헬리콥터를 비롯한 공군기들이 그로즈니 북쪽15㎞에 위치한 마을등에 대규모 공격을 반복함에 따라 그로즈니와 외곽지역은 폭격및 폭발음으로 진동하고 놀란 주민들은 급히 대피,체첸군은 미사일을 발사하고 러시아군의 진군을 늦추기위해 강의 다리위에 설치한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고 들판에 참호를 파며 대항. ○…체첸과 러시아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재개된 가운데 체첸군은 군사적으로 크게 우세한 러시아군에 대항하기위해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다. 체첸군은 러시아 전폭기와 헬리콥터 공격에 대비,그들의 무기를 언덕이나 숲속에 감추고 있다.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북쪽 25㎞지점에 있는 돌린스코예마을의 한 노동자는 『체첸군은 모두 숨어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첸군 관계자는 『체첸의 독립을 러시아가 무력으로 막으려 할 경우 체첸은 「제2의 아프간사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체첸의 남부는 아프카니스탄과 같이 험한 산악지대이다.체첸군은 러시아군에 대항하기 위해 이미 산악지대에 게릴라진지를 구축했다고 군관계자가 밝혔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관계악화를 우려,체첸사태에 신중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 서방외교관은 『우리 모두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고 있다.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매우 미묘한 상황에서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그래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그러나 그것이 체첸사태를 우려하지않는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는 13일 체첸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적극 옹호하면서 러시아측이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군사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이날 모스크바 교외의 한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옐친대통령과 정부는 체첸이 러시아 영토의 일부이며 체첸에서도 러시아 연방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헌법은 준수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러군 체첸진공에 주변자치공 반발/“언젠가 우리땅에도” 불안 고조

    ◎「독립도미노 차단조치」 역효과 유발/옐친 자칫하면 「소수민족 늪」에 빠질수도 러시아와 체첸공화국간의 전면 무력충돌로 비화하고 있는 체첸공화국 내전 사태는 러시아의 우려대로 인접국으로까지 비화될 것인가? 아직 그 가능성을 점치기는 이르지만 러시아내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독립 도미노현상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전면 무력동원이란 극약처방을 들고나온 옐친 대통령의 도박은 오히려 체첸내전을 인접국들로까지 확산시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개입에 인근의 몇몇 자치공화국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러시아군이 병력을 통과시키면서 주민들과의 충돌로 인명피해를 낸 잉구세티아공화국의 루슬란 오세프 대통령은 이미 체첸공화국에 대한 지원을 공식표명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이 체첸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이같은 보도에 대해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공화국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기위해 날조된 것이라고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무력개입에 인근 공화국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인접국들에선 이미 러시아의 무력개입을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이들은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영토 주장이 언젠가는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카자흐공화국 외무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사태의 조기해결,관련 당사자들의 평화적 분쟁해결 방안 모색과 자제심 발휘,유혈충돌 중지및 평화회복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분쟁이 격화한다면 부정적인 결과가 체첸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옛 소련 전지역의 안정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우크라이나공화국은 12일 체첸인들에 대비,주요 핵시설들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이는 지난 91년 체첸공화국이 처음 독립을 선포했을 때 체첸공화국이 옛 소련 전지역에서 비행기 납치 등 테러행위를 통해 러시아군의 침공에 맞선 전력을 갖고 있으며 이번에도 이같은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크다고 보기 때문이다.체첸공화국의 두다예프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91년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옛 소련의 핵시설들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기도 했었다. 체첸공화국 내전에서 보듯 러시아는 복잡한 소수민족들로 큰 골치를 앓고 있다.옛 소련에서 전체 소수민족이 1백개 이상을 넘고 있으며 이중 인구 1백만명을 넘는 민족만도 22개 민족을 헤아리고 있다.이들 소수민족들이 러시아내에 자치공화국만도 20개,그 밖에 자치주가 8개 또 10개의 자치관구를 형성하고 있다.러시아가 소수민족의 독립 도미노현상을 우려하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민족분규,그루지야에서의 압하스 분리독립 투쟁 등으로 홍역을 앓은 러시아가 체첸공화국의 독립선언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처럼 복잡한 소수민족 문제에 비춰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둘러싼 전면 무력충돌은 러시아에 있어 상당기간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을게 틀림없다.
  • 러,체첸 수도 공습/옐친 무력승인 하루만에/군증파 국경 봉쇄

    【그로즈니 AFP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1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체첸 자치공화국에 대한 무력 개입을 승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한뒤 하루만인 10일 전투기를 동원,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공습을 가했다. 현지의 AFP,로이터 통신 기자는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로즈니 상공을 여러 차례선회 비행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미사일 공격을 가했으며 이에 맞서 체첸 정부군이 격렬히 반격하는 것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전투기들의 공습은 체첸 국경에 대규모의 러시아군 병력이 집결하는등 무력개입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는 가운재 이뤄진 것이다. 타스 통신은 정부가 이날 내무부 보안군에 국경을 차단하고 국방부에는 영공을 봉쇄할 것을 각각 지시했다면서 이는 체첸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위해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하라는 대통령 포고령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 기자는 이날 폭격기 1대가 지나간뒤 그로즈니 남동쪽 15㎞ 지점의 아르군마을에서 커다란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으며 수분뒤 2대의 다른 전투기들이 통과하면서 주거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체첸 관리들은 러시아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탄두가 장착된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투하된 폭탄 가운데 하나가 주거지역에 명중해 재산피해를 냈다고 주장했다.
  • 체첸공에 러 무력투입 임박/전투기 6대 그로즈니 외곽 포격

    ◎옐친,“질서회복 조치 시행”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특약】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1일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을 꾀하고 있는 체첸공화국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선언한 가운데 정체불명의 전투기가 그로즈니를 폭격하는등 이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공보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대통령의 지도력과 통제아래 체첸공화국내 상황을 개선하고 헌정상의 법질서를 결정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시행중』이라고 밝히는 한편 『이것이 비상사태선포를 자동적으로 의미하진 않는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옐친대통령이 체첸공화국의 적대세력들에 대해 무기를 버리도록 요구한 최후통첩시한인 1일 상오6시(한국시간 1일 정오)가 지난지 수시간뒤 정체불명의 전투기 6대가 수도 그로즈니 외곽을 폭격했다. 현지 로이터통신기자는 전투기들이 그로즈니상공을 최소한 2차례 비행한뒤 공항부근에 폭탄을 투하했으며 폭음에 이어 2개의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고 전했다. 정체를 알수 없는 전투기들은 지난달 29일과 30일에도 그로즈니를 폭격했으며 체첸공화국은 러시아측 소행이라고 비난했으나 러시아공군은 이를 부인했다. 체첸공화국내의 상황은 1일 상오중 평온을 유지했으나 그로즈니 서쪽 1백여㎞ 떨어진 북오세티아의 블라디카프카즈공항에서는 이날 수십대의 러시아군 수송기들이 병력을 수송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러시아군은 이밖에 북오세티아의 모즈도크에도 60여대의 장갑차들을 집결시켰다고 러시아 정부소식통들이 말했다. 러시아군의 무력개입을 우려해 그로즈니를 탈출하려는 민간인들은 이날도 속속 피난길에 올라 도시 중심가는 한산했다. ◎러 자치공 독립 차단 안간힘/체첸공­러 정면대치 안팎/“연방해체 우려… 이탈 절대불가” 입장 견지/무력개입땐 유엔 반발·회교권 자극 가능성 체첸공화국 사태가 체첸·러시아간 정면대결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완전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체첸공은 지난달 29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보낸 「48시간이내 무장해제」 최후통첩을 즉각 거부한데 대해 러시아가 전투기와 헬기를 동원,수도 그로즈니를 공습하자 그로즈니에서 부녀자들을 소개하기로 하는등 결사항전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있다. 이에대해 러시아는 체첸공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될 것에 대비,내무부 소속 보안군 병력들을 인근 북오세티아공화국에 집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체첸공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개입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체첸공간의 긴장관계는 지난 91년 11월 러시아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틈을 타 체첸공이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러시아 남부 코카서스산맥 북쪽에 위치한 체첸공은 현재 러시아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89개 자치지역 및 공화국의 하나로 인구 1백20만명의 회교공화국이며 풍부한 석유자원을 보유,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체첸공에서 독립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쿠데타 발발에 앞서 같은해 옛 소련의 공군장성 출신인 조하르 두다예프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부터다.두다예프는 대통령에 선출되자마자 옛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 이후 활발해지고 있던 이슬람재건운동에 힘입어 「러시아제국으로부터의 민족해방·독립투쟁」을 내세우며 러시아연방조약협정과 지난해 실시된 러시아총선에 불참하는등 지금까지 독자노선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체첸공내의 반정부·친러시아세력은 지난 8월 두다예프 대통령의 해임과 임시정부수립을 선언,체첸공 정부군과 대립해 왔으며 이번에도 체첸공정부를 공격해서 거의 정권을 무너뜨리는듯 했으나 실패해서 최근의 긴장사태를 불러 일으켜 왔다. 현재 체첸공의 독립요구에 대해 러시아는 「절대불가」의 입장이다.체첸공의 독립을 인정할 경우 그 여파가 러시아내 독립을 요구하는 다른 민족으로까지 확산돼 자칫 러시아연방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또 체첸공은 러시아내에서 유수한 유전지대인데다 옛 소련의 화약고인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등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러시아로서는 쉽게 포기할수도 없다. 그렇다고 섣불리 무력개입을 단행할수도 없는 것이 러시아의 입장이다.무력개입으로 인해 국제적인 비난은 물론 체첸공을 지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란등 회교권을자극,러시아와 회교세력의 전면대결을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체첸공 반군들이 현정권을 무너뜨리기를 기대하면서 은밀히 지원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 오늘 전농대회/경찰 1만5천명 배치

    경찰청은 28일 「전국농민회총연합회」 등 11개 농민관련 단체가 29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개최하는 「쌀 생산비 보장과 WTO 비준반대 전국 농민대회」 행사장 주변 등에 경찰 1백27개 중대 1만5천여명을 배치,폭력시위 등 돌발사태에 대비키로 했다. 경찰은 이날 농민대회장인 보라매공원 주변을 비롯해 행진코스인 대방로∼여의교∼KBS별관∼여의도광장에 이르는 4㎞구간과 도심 주요 지점에 병력을 집중배치,평화적인 시위를 유도키로 했다. 경찰은 또 28·29일 이틀간 전국 주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등에 경찰력을 동원,농민대회장에서 폭력시위용으로 쓰일 우려가 있는 화염병·쇠파이프·각목 등을 압수키로 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번 농민대회가 사전신고된 합법시위인 만큼 농민들의 대회참가를 차단하지 않고 플래카드·피켓·유인물 등의 소지도 허용할 방침이다.
  • 미해병 2천명 보스니아 급파/내전악화 대비

    ◎나토군 25만명 파견도 검토/「세」계선 정부군에 “종전안 수락” 촉구 통첩 【뉴욕·브뤼셀·사라예보 외신 종합】 보스니아 내전이 격화된 가운데 미국은 미해병대 병력 2천여명에 대해 보스니아로 향하도록 명령을 내렸으며 나토는 최악의 경우 유엔 평화유지군 보호를 위해 25만명의 전투병력을 파견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미국방부는 25일 약 2천명의 미해병대및 해군 병력에 프랑스의 툴롱항에 정박하고 있던 수륙합동작전준비단 소속 함정들에 승선,보스니아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대변인은 미해병대 병력이 보스니아 전투지역으로 가는 것은 보스니아 내전 악화에 따른 예비조처라고 말하고 이들 병력이 필요하다면 유엔평화유지군과 나토 조종사들을 구출하는데 동원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아직까지 보스니아 북부 비하치를 포위하고 있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격을 위해 상륙하라는 명령은 없었다고 이 대변인은 덧붙였다.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보스니아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적대적 상황에밀려 철수하는 최악의 경우 최고 25만명의 전투병력 파견을 검토중이라고 나토 소식통들이 25일 말했다. 이에 앞서 유엔소식통들은 회교 정부군이 세르비아계의 공세에 밀려 비하치에서 퇴각함에 따라 비하치가 세르비아계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 유엔고위관리는 나토가 나토전투기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미사일 공격을 응징하기 위해 26일 세르비아계에 한차례 더 공습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오그라드·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는 26일 회교도정부측에 대해 그들이 제시한 종전안의 수락을 촉구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점령지전역에 전시상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니콜라 콜례비치 세르비아계 부통령은 전날 하리스 실라지치 회교도정부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내전종식방안을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적들은 군사적으로 분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이들의 통신사인 SRNA가 보도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얀 디르크 메르펠트 대변인에 따르면 격전지인 비하치부근에서 충돌하고 있는 회교도정부군과 세르비아계는 이날도 남쪽 시계에 위치한 한 병원부근에서 전투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예보 라디오방송은 이 병원에 약 2천명의 전상자가 수용돼 있다고 밝히면서 비하치를 방어하는 정부군 제5군단과 세르비아계 공격부대 사이에 오전중 백병전이 벌어지는등 급박한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고 전했다.
  • 레바논내 팔난민 유혈충돌/자치협정 찬반갈등

    ◎로켓포 동원… 11명 사망 【시돈 AP AFP 연합 특약】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25일 새벽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이 이끄는 파타세력의 내부파벌간 충돌로 최소한 4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고 레바논 경찰이 밝혔다. 이날 충돌은 이스라엘과의 자치협상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레바논 주둔 파타병력 책임자 칼레드 알 샤예브 장군의 관할지역인 아인 헬웨 난민촌에 대해 파타 주류세력의 게릴라들이 로켓포와 기관총을 앞세워 공격을 가함으로써 일어났다. 파타 게릴라들의 수시간에 걸친 공격으로 8만명이 수용된 이 난민수용소는 물론 시돈시까지 로켓포 소리가 들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 보스니아/유엔안전지대 함락 위기/「세」계,비하치 진입… 도심 맹폭

    ◎「보」정부군 퇴각… 유엔선 “휴전 발효” 발표 【사라예보·자그레브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북서부 유엔 안전지대인 비하치에 25일 상오(현지시간)를 기해 휴전이 발효됐다는 유엔측 발표에도 불구하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비하치 도심을 계속 포격중이라고 회교 정부측 비하치 TV방송이 보도했다. 격전지역을 취재중인 비하치 TV 기자는 휴전이 발효됐다고 발표된 이후에도 폭발음이 비하치 외곽을 진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현재 중포와 탱크,야포등의 포격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서 『휴전에 관해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비하치 TV의 또다른 기자도 『도시가 혼란상태에 빠졌다.그들(세르비아계)은 각종 중포와 박격포를 동원해 도시 한복판을 포격하고 있다』고 전하고 『세르비아계가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카심 트른카 크로아티아 주재 보스니아 대사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가 프즐레세비차 고원으로부터 비하치를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으며 보병 공격도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이와함께 유엔의 한 군사소식통은 세르비아계 병력 1천여명이 비하치에 진입했으며 이어 정부군 병력이 비하치에서 퇴각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정부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비하치 북부지역으로 퇴각했으나 4만8천명의 시민들이 대거 탈출소동을 벌일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그레브의 유엔군 대변인은 비하치 도심이 세르비아계의 직접 포격권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앞서 유엔군 사령관 마이클 로즈중장은 『25일 아침을 기해 비하치에 휴전이 발효됐다』면서 『지난밤을 고비로 전투가 현저히 약화됐다』고 밝혔다. 로즈 사령관은 또 비하치 일원에 발효된 휴전이 보스니아 전역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하고 비하치의 비무장화와 휴전 확대실시를 논의하기 위해 보스니아 정부와 세르비아계측 고위급 회담이 이날중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에 전면휴전 요청/보스니아총리 【사라예보 AFP 연합 특약】 하리스 실라이지치 보스니아총리는 25일 세르비아측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든 지역에서 전면휴전할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실라이지치총리는 이날 아침 사라예보공항에서 세르비아계 대표와 회담을 가진뒤 기자들에게 『세르비아계에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지역에서 즉각적으로 휴전을 하고 비하치시에서의 교전도 중단할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25일 하오7시 (한국시간 26일 새벽 3시)까지 긍정적인 답변이 없으면 보스니아정부는 나토와 미국에 군사행동을 취할것을 요구할것』이라고 덧붙였다.
  • 평양방송 “중대발표” 해프닝

    ◎「메가톤급」 예측… “청류다리 건설”에 실소/“김정일 권위 과시·「성수대교」 비아냥” 분석 북한 중앙방송이 9일 상오 돌연 이날 정오 「중대발표」를 예고해 북한의 권력개편과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일과성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통일원 등 정부당국은 김일성사망 다음날인 지난 7월9일과 마찬가지로 북측이 이날 수차례에 걸쳐 중대발표를 사전고지하는 바람에 긴장속에 주시했다.하지만 막상 방송내용은 대동강 청류다리 및 금릉2동굴 건설과 관련한 김정일의 지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됐다. 정부당국에 따르면 중앙방송은 이날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와 정무원에 대해 평양 대동강 청류다리 2단계 공사 및 금릉2동굴 공사를 조선노동당 창건 50주년이 되는 내년 10월10일까지 마무리토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의 이 지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51호 「평양시에 청류다리 2단계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 데 대하여」란 이름으로 하달했다. 정부당국자들은 당초 메가톤급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단했으나 이같은 「평범한」 내용이발표되자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특히 일부 통일원 관계자들은 「김정일 당총비서 선출」발표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북한방송에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다.그러나 정작 어이없는 발표가 흘러나오자 『김정일이 뇌를 다쳤다는 루머가 사실이 아닌가』라며 북한당국의 상식이하의 행태에 혀를 찼다. 다수 정부 관계자와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중대발표」소동을 연출한 이면에는 그들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측은 북한당국이 인민군 병력을 대거 투입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앞두고 노력동원 독려 등 경제적 측면 이외에 ▲당정군 최고 지도자로서의 김정일이 권위를 과시하고,북미 협상이후에 평화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투사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최고사령관 명의로 공사를 담당할 인민무력부와 자재를 공급할 정무원에 이례적인 중대발표 고지까지 하면서 동시에 지시를 내린 점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북한 특유의 지능적 심리전의 일환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이날 방송이 대형 다리등의 건설을 통해북한주민의 생활환경 개선 및 복리증진을 강조한 것은 김정일이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인 이른바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를 부각시키면서 우리측의 성수대교 붕괴와 대비시키려는 전술이라는 얘기다. 한편 평양 대동강에 자리잡고 있는 청류다리는 당초 흥부다리라는 이름으로 지난 90년초에 착공,최근 1단계 공사가 끝난 길이 4백50m의 현수교로 알려져 있다.또 금릉동굴은 대동강 능라다리 입구 해방탑에서 모란봉극장앞을 거쳐 모란봉구역의 안상택거리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단군릉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첩보도 있다.
  • 유럽군단 5천명 독·불서 훈련 시작

    【본 AFP 연합】 독일과 프랑스,벨기에,스페인 등 4개국에서 동원된 5천여명의 유러군단 병력이 독일 남부지역에서 6일 군사훈련에 돌입했다고 군사소식통들이 말했다. 장차 범유럽군이 될 이들 유러군단의 훈련은 오는 17일까지 계속되며 이 기간의 절반은 독일지역에서 나머지 절반은 프랑스에서 진행된다.
  • 철원 민통선내 산불/임야 10㏊ 태우고 계속 번져

    【철원=조한종기자】 7일 상오 11시35분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1리 민통선내 군부대 사격장에서 산불이 나 이날 하오 11시 현재 10㏊의 임야를 태운뒤 계속 번지고 있다. 이날 불은 군부대에서 개인화기 사격 연습중 불꽃이 사격장 주변 풀밭에 옮겨붙어 일어났다. 군당국은 불이 나자 군부대 헬기 2대와 군병력 50여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이 지역이 지뢰밭인데다 날이 어두워져 일단 철수했으며 불은 북쪽지역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선산·금릉소도 이와함께 이날 하오3시쯤 경북 선산과 금능에서 일어난 산불은 8시간이 지난 하오 11시 현재 임야 6㏊를 태우고 계속 번지고 있다. 금능군 남면 오봉리 앞산계곡에서 일어난 산불은 임야 3◎를 태우고 불길이 계속 번지고 있으나 금릉군은 날이 어두워 더이상 진화작업을 벌일 수 없게 되자 하오8시30분께 진화작업을 벌이던 인원들을 일단 해산시켰다.
  • 세르비아계 대대적 반격/유엔안전지대에 미사일 공격

    ◎계엄령 선포 검토 【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보스니아 회교 정부군과 크로아티아계의 협공을 받고 있는 세르비아계의 정치 지도자들과 군지휘관들은 4일 회동을 갖고 세르비아계 영토전역에 걸쳐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정통한 소식통들이 말했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이와함께 유엔이 설정한 「안전지대」비하치에 SA­2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감행,어린이 1명을 포함해 7명이 부상했다고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세르비아계가 전면전쟁에 돌입할 경우 대규모 병력 동원과 함께 경제도 전시비상체제로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통한 소식통들은 이와관련,전면전쟁 선포는 신유고연방측의 수락요청에도 불구하고 국제 평화안을 거부하도록 이끈 세르비아계 의회의 활동정지도 의미한다고 말했다.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국제 평화안 수락을 거부한데 대한 보복으로 세르비아계에 대한 정치 군사적 지원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전황이 세르비아계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보스니아 정부는 이날 정부군과 크로아티아 민병대가 세르비아계 거점인 쿠프레스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 정치적 파문 고려 “평가는 역사에”/검찰「12·12」수사발표 의미

    ◎기소유예 불구,“명백한 군사쿠데타” 규정/고소·피고소인 모두 불만… 파장 오래갈등 부하 장교들에 의해 현직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이 전격 연행된 79년의 12·12사태는 15년가까이 지나 군사반란으로 결론지어졌다.다시 말해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79년 발생한뒤 쿠데타의 주역들이 그동안 대통령을 두차례나 역임하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던 게 사실이다. 사건 주역들의 위세에 눌려 침묵을 지켜왔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전수경사령관측이 지난해 7월 19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포함,신군부측에 섰던 34명을 내란 및 반란등의 혐의로 고소해옴에 따라 사건이 표면화됐다.검찰로서도 이 사건 피해자들이 고소해온 만큼 어떠한 결론이든지 내려야 할 처지에 이르렀던 것.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오는 12월 12일 끝나게 돼 있었다.이에 따라 고소인측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지난해 고소를 하게됐고 검찰 또한 공소시효 이전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수사에 착수했다. 공소시효를 넘길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검증을 통한 사법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소인과 참고인들을 부르기 시작,모두 1백51명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아울러 정승화 전총장이 연행됐던 한남동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현장확인과 함께 실황조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국회의 광주회의록,12·12사건 국정조사회의록등에 대해서도 모든 검증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은 군사반란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정전총장 등 고소인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반면 정전총장을 연행하거나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기 위해 「자파」의 병력을 동원한 신군부측의 변소는 거짓으로 판명난 셈이다.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던 전두환보안사령관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전총장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한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실행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러한 실정법위반이 드러났는데도 신군부측 관련자들에게 전원 불기소처분을 내려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군형법상 반란혐의는 사형등 「중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불기소 처분이 내려져 신군부측인사들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이들은 우리나라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로부터 당시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역사적 중죄를 짓고도 법정에 서지 않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됐다.후일의 「역사적 평가」는 사가들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분이 국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법률적 문제는 물론 정치·사회적 제반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신군부측 피의자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제2,제3의 불법적 군사행동이나 하극상 사건의 재발을 엄중히 경고했다. 김영삼대통령도 지난해 이 사건과 관련,『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언급한 바 있어 검찰수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공소를 제기하는 문제는 김대통령의 앞선 「언급」과 함께 검찰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모두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정식 재판에 회부할 경우 공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논쟁이 계속돼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는 계산을 먼저 심중에 넣은 것 같다. 이러한 난맥상은 또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자칫 국가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신군부측 인사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을 고려했음도 물론이다.더욱이 전직 대통령등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경우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참작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먼저 고소인들이 검찰의 결정에 대해 불복,항고의사를 분명히 했고 신군부측 역시 「무혐의」 또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그 파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군 수뇌 집결지 공격” 긴급명령/하오10시 40분/양측,한남동서 중화기무장 대치/밤∼다음날 새벽/최대통령 「총장연행」 재가… 신군부 승리/「그날」 일촉즉발의 순간들 「육군 26사단,수도기계화사단,공수9여단 병력 완전무장 출동하라」「전두환장군을 비롯한 반군 수뇌부가 집결한 경북궁 30경비단및 보안사령부를 공격하라」 79년 12월 12일 하오 10시 40분쯤 반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예하 부대에 타전한 「급보」내용이다. 수경사로 자리를 옮긴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있었던 장성들이 이날 하오 7시25분쯤 정승화참모총장의 강제연행으로 시작된 「군사반란」에 대응해 3시간여만에 일전불사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신군부측과 육본측은 일촉즉발의 경계에 돌입했다.그러나 상황은 이미 신군부측으로 기운 뒤였다.우선 수적으로 육본측은 열세였다. 당시 전합수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에 가담한 부대는 공수 1여단(박희도준장),3여단(최세창준장),5여단(장기오준장)을 비롯,수경사 30단(장세동대령),33단(김진영대령),9사단 29연대(이필섭대령)등 수도권 핵심주둔부대 대부분과 전방의 2기갑여단(이상규준장)등 무려 5천여명의 병력이 동원됐다. 이에비해 정규군측이 실제 동원가능했던 병력은 행정병을 포함,수경사 잔류병력 1백여명과 전차 몇대뿐이었다.공수9여단(윤흥기준장)병력은 합수부측의 항의를 받은 윤성민 육참차장의 복귀지시에 따라 회군해 버리고 말았다.또 출동명령을 받은 26사단등의 병력출동도 불발에 그쳤다. 이날 밤과 새벽사이 정육참총장의 공관이 있던 한남동과 한강다리쪽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양측은 장갑차와 전차등 중화기로 무장한채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치중이었다. 상황발생 9시간50분만인 13일 새벽 5시10분 합수부측이 최규하대통령으로부터 총장연행재가를 받으면서 신군부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상황은 끝났다.서울시내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을지도 모르는 시가전의 위협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 새로 밝혀진 「12·12」 6가지 사실

    ◎신군부가 13일새벽 노국방 “체포”/11월 중순께 핵심들 사전계획/최대통령,총장연행 재가 거부/우경윤대령은 합수부팀 총격에 부상/1공수단등 신군부 병력 먼저 출동/전군통신 감청… 육본측 동태파악 검찰의 수사결과에서 새로 밝혀지거나 확인된 12·12 사건관련 사실들을 간추린다. ○우씨 누가 쐈나 ◇우경윤씨는 합수부 수사관의 총에 맞았다=12월12일 당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우경윤 범죄수사단장은 보안사 수사관들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됐다. 정씨를 연행한 합수부측은 우씨가 총장공관 경비병에 의해 선제공격을 당해 총격을 입었으며 만약 그같은 불상사가 없었다면 무력충돌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그동안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우씨,최석립33헌병대장 등을 상대로 정총장 연행과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씨가 피격된 경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조사했다. 조사결과 정총장측 군인들중 유일하게 무장을 했던 총장경호장교 김인선대위는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이미 척추등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신음하고 있었다.또한 최헌병대장은 자신이 이끌고 온 합수부측 병력을 지휘,총장공관 외부를 경비하던 경비병들을 무장해제시켜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M16 소총으로 감시했다.공관현관앞 경비병들도 합수부측 병력으로 교체시켜 정총장 연행당시 공관외부도 합수부측에 의해 장악돼 있었다. 검찰은 『당시 공관 관리장교와 당번병 2명이 응접실로 들어와 정총장 연행을 제지하다가 부관실쪽에서 총성이 들리자 관리장교 등이 밖으로 뛰어 나가고 우대령이 이들을 뒤따라 나와 복도끝에서 총을 쏘다가 보안사 수사관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연행재가 여부 ◇최규하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을 사전에 재가하지 않았다=최대통령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사전재가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12·12 당일 하오6시43분쯤 전합수본부장은 이학봉중령을 데리고 보안사를 출발,총리공관에 도착한 뒤 접견실에서 최대통령에게 정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는 등 10·26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정총장을 연행조사하겠다고 보고했다. 최대통령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국방부장관의 보고와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처리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국방부 장관과 같이 와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두환합수본부장은 박정희대통령 재임시 보안사령관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전례를 들며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은 끝내 재가를 거부했다. 전합수본부장은 자파계열의 장성들이 집결해 있는 경복궁 30경비단장실로 돌아가 장성들에게 대통령의 재가거부를 설명했고 집단으로 재차 대통령 재가를 요청,다시 거부당하자 무력으로 군지휘계통을 제압하고 정총장을 강제연행했다. 이후 노재현국방장관마저 강제연행한 합수부측은 13일 하오 3시쯤 노장관과 신현확국무총리,최광수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요청,『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재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노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통령은 정총장연행 보고문서에 서명했다. 따라서 사태를 수습하는 의미에서 정총장 연행을 재가했더라도 이미 형성된 형사상 또는 행정상의 위법이 소급해 치유될 수 없다. ○반란계획 시점 ◇12·12사건은 11월중순 계획됐다=당시 정총장은 군의 정치불개입을 천명,비정규육사 출신장성을 중용했다.특히 전두환보안사령관은 10·26사건과 관련,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 이재전경호실차장의 석방과 이후락전중앙정보부장 출국허가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었으며 자신이 한직으로 좌천될 것이라는 설이 유포돼 있었다. 이에따라 전사령관은 11월중순쯤 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차규헌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 등과 접촉해 정총장에 대한 군내 여론을 탐문,정총장 연행·조사문제를 협의해 긍정적인 협의를 받아냈다.이어 12월7일 노사단장과 만나 김재규에 대한 1심재판이 12월 중순쯤 종결될 예정임을 고려,거사일을 12일로 결정했다. ○병력동원 선후 ◇12일 밤 군병력은 신군부측이 먼저 동원했다=전두환합수본부장등 신군부측은 최대통령이 노국방장관을 불러오라며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거부하자 12일 하오 9시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병력을 동원,육군 정식계통을 제압키로 했다. 이에따라 12일 하오 9시10분쯤 박희도1공수여단장은 이기용부여단장에게 병력출동 준비를 지시,9시45분쯤 1대대병력이 신월동 삼거리에 집결했다.당시 육본 수뇌부측은 신군부측의 이같은 군병력 동원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9공수여단 병력출동을 준비했다. ○노국방의 신병 ◇노재현국방장관은 신군부측에 의해 연행됐다=신군부측은 13일 새벽 2시40분쯤 국방부청사를 장악,청사내부를 수색,3시50분쯤 국방부 지하 상황실입구에서 노국방장관을 발견,체포한뒤 장관실로 연행했다. 연행된 노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국무총리등과 함께 국무총리 승용차를 타고 총리공관으로 출발했다.그러나 새벽 4시10분쯤 보안사령부 정문에서 무장병력에 의해 강제 하차당했다. 노장관은 보안사령관실에서 전두환합수본부장등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조사보고문서에 결재하라는 요구를 받고 사후 결재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문서에 서명한 후 새벽 5시10분쯤 총리공관에 도착,신총리·최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에게 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재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대통령이 서명했다. ○통신체계 장악 ◇신군부측은 12일 전군의 통신내용을 감청했다=12일 보안사 임시상황실은 감청활동을 강화,육본수뇌부의 수경사이동·육군참모차장과 특전사령관의 9공수여단 병력출동지시·수경사령관의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30사단 병력출동요청·김진기육본헌병감의 합수본부장 체포가능 여부타진 등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상황을 장악할 수 있었다.
  • “12·12는 군사반란”/검찰 수사결과 발표

    ◎전·노 전대통령등 34명 기소유예/전씨 좌천 막기위해 사전계획/대통령 재가없이 정총장 연행 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12·12사건은 당시 군부의 일부 소장파 세력이 사전 모의에 따라 실행한 군형법상 군사반란사건으로 최종 규정됐다. 「12·12사건」고소·고발사건을 조사해온 서울지검은 29일 수사결과발표를 통해 이사건의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사건을 직접 모의했거나 적극 가담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34명을 군형법상 반란수괴및 불법진퇴 등 혐의를 적용,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피고소인중 반란부화뇌동에 해당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당시 정호용 50사단장과 신우식특전사 작전차장,김진선수경사 작전처보좌관등 3명과 82년 사망한 백운택 71방위사단장 등 4명에 대해서도 「공소권 없음」을 결정,역시 불기소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사건발생후 15년동안 정치·사회적으로 국론소모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해온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법적 처리가 최종 마무리됐다. 서울지검조준웅 제1차장은 이날 수사결과발표문에서『12·12사건은 유신체제 붕괴로 사회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소장 군부세력의 리더였던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합수본부장 본인에 대한 좌천 인사조치를 사전 차단하고 소장 군부세력의 군내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 계획하에 실행한 군사반란사건임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피고소인측은 12·12가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충돌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10·26조사와 직무상 전혀 관련이 없는 국방부군수차관보와 수도권부대 주요 지휘관들이 총장 연행문제를 협의한점 ▲거사 직전 특전사령관등 육본 직할부대장들을 연희동요정으로 유인한 점 ▲일부 장군들이 집단으로 대통령에게 총장 연행재가를 요청한 점 ▲병력동원,핵심 지휘관 체포,국방부·육본 등의 점령 등에 대해 사전 모의,결정한 점 등에 비춰 전전대통령등 신군부측의 군권 장악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군형법상의 반란수괴 및 불법진퇴,상관살해 및 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 등의 혐의를,노태우 전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허화평·이학봉·허삼수등 14명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모의참여와 중요임무종사등 혐의를,권정달,조홍등에게는 반란중요임무행사 등의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검찰은 이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꾀함으로써 헌정사를 후퇴시킨 점등이 인정되나 이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재론되는등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가분열과 대립양상이 재연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으며 이들이 이미 5공청문회와 대선 등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은 것으로 판단돼 불기소처분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79년 11월 중순부터 정승화계엄사령관이 자신을 합수본부장에서 한직으로 좌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군내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차규헌 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등과 접촉해 정승화 총장을 연행·조사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이어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과 회동,12월12일을 최종 거사일로 확정하고 박준병 20사단장,박희도 1공수여단장,최세창 3공수여단장,장기오 5공수여단장 등과 공모하는 한편 이학봉 합수부 수사1국장,허삼수 보안사인사처장,우경윤 육본범죄수사단장 등에게 정총장 연행계획을 수립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정총장 연행시에 대비,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조홍 수경사헌병단장에게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육본헌병감등 육본직할부대장들을 신군부 핵심인물의 집결시간인 12월 12일 하오 연희동 소재의 요정으로 유인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우경윤,성환옥과 보안사 수사관 7명,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 「대통령 재가하에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한 진술을 받아야 한다」며 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M16 소총으로 위협,강제 연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은 같은날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대통령에게 찾아가 정총장의 연행 재가를 요청하다 거절당했으며 재차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 장군들과 함께 총리공관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재가를 요청하는등 2차례에 걸쳐 재가를 요청했다.이들은 결국 다음날인 13일 상오 5시1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을 위협,신현확 총리서리가 배석한 자리에서 대신 재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위헌소지… 결과 승복못해”/전·노씨/“기소유예 부당… 새달 항고”/고소인측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29일 변호인단 발표문을 통해 「12·12사태」와 관련,자신들에게 군형법상의 반란 혐의를 인정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전전대통령쪽은 검찰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통령쪽에서는 『정승화씨의 10·26 내란방조 혐의에 대해 80년3월 확정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검찰이 확정판결의 내용을 뒤집은 것은 월권이며 헌법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정씨를 연행·수사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 행위이며 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전보고와 사후재가 절차를 모두 밟았다』고 주장했다. ◎정승화씨 등 21명 회동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12·12사태 관련 고소인 21명은 29일 상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검찰의 수사결과에 불복,내달 2일 서울고검에 항고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전총장은 이날 『군사반란죄가 인정된다면 당연히 기소를 해서 법원의 판결을 받게해야 마땅했다』며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내달 2일 항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12·12당시 3군사령관이었던 이건영씨를 제외한 고소인 21명이 모두 참석했다.
  • 정총장의 김재규 옹호 증거없어/피고소인측 주장과 검찰 반박논리

    ◎계엄사측 병력 수사방해→최소한의 작전권 행사/정총장 유죄 확정→피고소인 정당성 근거 안돼 12·12 사건에 대한 전두환씨등 피고소인측의 주장은 검찰수사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군부측은 사전 모의후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군통수권과 지휘체계를 어기며 정승화총장을 연행했으며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라는 것이 검찰의 수사결론이다. 피고소인측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검찰의 반박논지는 다음과 같다. ◇합수부장은 대통령 결재 없이 계엄사령관을 수사할 권한이 있다는 주장=군사법경찰관 등이 수사권을 발동할 때는 법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함은 물론 군통수권과 지휘계통을 문란시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특히 비상계엄 아래에서 행정과 사법사무를 관장하고 지휘할 권한이 있는 계엄사령관을 범죄 혐의자로 연행,조사하는 것은 군 통수권자로서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을 임면할 권한이 있는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미리받아야 함은 당연하다.따라서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사전 재가 또는 승인없이 비상계엄하에서 무장 병력을 동원해 총장공관을 점거하고 계엄사령관을 강제연행한 것은 직속 상관에 대한 하극상임은 물론 군통수권을 침해한 것이다.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조사를 정식 건의하고 긴급구속했다는 주장=전두환 합수본부장이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보고나 건의를 한 사실이 없고 최대통령에게 건의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다.정총장에게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법정기간인 72시간을 넘어 19일이 경과한 79년 12월 31일에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으므로 긴급구속이라는 주장은 근거없다. ◇10·26 이후 정총장의 언동 등을 고려하면 연행·조사는 불가피했다는 주장=79년 11월 6일 김재규 내란사건 수사결과 발표당시 전본부장은 정총장이 10·26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합수부에서 정총장을 내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피고소인측도 이번 검찰조사에서 이를 인정했다.또한 정총장이 김재규에게 받은 돈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군 지휘관에게 준 추석 떡값이어서 처음부터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다.정총장이 이재전 경호실 차장을 석방시켰다거나 군요직에 자파 계열을 임명하고 계엄확대회의에서 김재규의 범행을 미화하는 발언을 하였다는 주장을 인정할 자료도 없으며 김재규가 법정에서 오히려 정총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그것이 그대로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지 않고 재판을 공개하도록 한 사실이 인정된다. ◇정총장 계열의 지휘관들이 먼저 9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부득이 병력을 동원했다는 주장=12일 하오9시10분쯤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이기용 부여단장에게 출동할 준비를 지시,9시 45분쯤 1공수 병력이 신월동 삼거리에 집결하고 이부여단장은 10시쯤 용산 삼각지까지 진출해 국방부·육본관계자와 접촉을 시도했다.1공수단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육본 수뇌부가 9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육본을 방어하기로 했을 뿐이고 9공수 병력이 실제 13일 0시5분쯤 출동한 것은 사실이나 9공수의 출동에 앞서 합수부측에서 1공수 출동을 지시하고 12일 밤12시쯤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 ◇합수부측의 병력 동원은 정승화 총장 계열의 지휘관들이 무력으로 보안사 공격을 기도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고 반란을 하므로 불가피했다는 주장=계엄사령관이 강제 연행된후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아무런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윤성민 계엄사부사령관이 육본을 방어할 목적으로 9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킨 것은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전권 행사라 할 것이다.또 수경사령관은 수도경비사령부설치령 등에따라 전복 음모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작전권을 발동,수경사 자체 병력 또는 특전사 여단과 3군 사령부 방패부대를 동원해 진압할 임무가 있었으므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병력을 동원,보안사와 30경비단을 공격하려한 행위는 정당한 것이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으므로 합수부측의 행위는 소급해서 합법화됐다는 주장=최규하 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조사에 관해서만 서명해 재가했을 뿐이고 병력 동원,육군 지휘계통의 핵심 지휘관 체포,국방부와 육본 점령 등은 재가한 사실이 없다.최대통령은 전합수부장에게계엄사령관 겸 육참총장이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국방부장관의 보좌를 받아 재가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국방부장관을 찾아 오라고 지시했을 뿐,국방장관의 배석하에 재가를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정총장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됐으므로 12·12 사건은 재론할 수 없다는 주장=문제의 판결은 위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과 동일한 범죄사실로 다시 기소하지 못하는 데 그치고(일사부재리 원칙) 피고소인측이 12·12 당시 취한 조치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것까지 금지 하는 것은 아니다.더욱이 이 사건 수사결과 피의자들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10·26 사건 관련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총장을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강제 연행하고 병력을 무단 동원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앞서의 판결과 별도로 반란을 인정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 “정문에 외교관차” 연막… 뒷문 출입/오진우 진찰 이모저모

    ◎검진30분… 부축받고 겨우 승차 병색 뚜렷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27일 파리시내 라에넥병원에서 「007작전」을 펼치면서 30분만에 전격적으로 폐암검진을 받았다. ○…오진우부장이 검진을 받은 병원측은 이른 아침부터 경찰병력을 동원하는등 경비를 강화.병원측은 환자나 출입자의 신원과 방문목적을 일일이 확인후 들여보내는등 취재진이 병원 구내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 특히 오부장의 진료예약시간인 상오10시30분이 다 되자 정문에는 정복경찰 4명이 추가로 배치돼 출입을 통제. 북한측 관계자 3명은 10시20분쯤 정문앞에 외교관용으로 대여해주는 렌터카를 세워놓고 오부장이 정문으로 도착할 것처럼 보이게 하는등 「성동격서」 작전을 전개. 북한측 관계자는 『오진우부장이 파리에 왔느냐』고 반문하면서 능청을 떤뒤 건강이 좋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김일성수령의 사망 1백일행사에 건강한 몸으로 나왔다』며 건강하다고 주장. 그는 『우리는 장사꾼으로 40일전쯤 파리에 왔다』며 『오부장이 암을 앓고 있다는 남한 신문보도를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딴소리. ○…그러나 회색바바리에 검은색 중절모를 쓴 오부장은 북한관계자들이 대부분의 취재진이 몰려있는 정문앞에서 시선을 끄는 동안 후문을 통해 병원에 도착. 오부장은 상오 10시30분 정각에 후문에 도착했으며 병원측은 평소에 열어두던 후문을 닫아놓았다가 오부장이 도착하자 문을 열어줘 신속히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 오부장은 이날 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경호원등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으며 간호원으로 보이는 여인 1명은 별도의 승용차에 탑승.오부장이 탑승한 승용차는 파리주재 북한 일반대표부의 박동춘 상주대표의 외교차량으로 확인. 정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북한관계자들도 10시40분쯤 승용차를 타고 정문을 통해 병원으로 입장. ○…오부장은 당초 검진이 하루종일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에벤박사를 팀장으로 한 의료진으로부터 검진을 받고 30분만인 상오11시 승용차를 타고 다시 병원 뒷문을 통해 출발. 오부장은 다리가 불편한 때문인지 북한측관계자가머리를 눌러줘서야 승용차에 탑승할 수 있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해 보여 병색이 완연한 모습. 이날 오부장 일행의 선두에는 프랑스의 요인경호대가 앞장서 경호를 했는데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점을 감안한듯 모두 사복경찰이었고 오토바이 경호는 하지 않았던 것.
  • 특별기 타고 급행…“폐암 중증” 관측/오진우,왜 갑자기 파리 갔나

    ◎주치의등만 수행… 정치목적 없는듯/의료수준·인도적 정책 고려 불 선택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폐암치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입국 신청 4일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20일 북경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오진우부장의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프랑스정부는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거물」의 입국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알렝 쥐페 외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입국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진우부장은 비자를 받은지 이틀 뒤인 24일 서둘러 평양을 출발했다.그의 비자발급을 위한 입국 목적도 「폐암 치료」라고 돼 있을뿐 아직은 그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단순한 검진차원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수교국간의 영공통과 문제로 특별기보다는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달라는 프랑스정부의 의사전달에도 굳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특별기를 타고온 점등을 보면 그의 폐암이 중증일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진우부장을 수행한 인물은 주치의2명,간호요원 2명,경호원 1명,통역 1명인 것으로 전해졌다.때문에 그의 프랑스 방문에 신병치료 이외의 망명등 정치적 목적은 없는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시내 라에넥병원은 파리의 6대 종합병원의 하나로 호흡기전문 병원이다.그러나 26일 현재 그의 병원입원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가명으로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진우부장이 중국 등 수교국을 두고도 프랑스를 택한 것은 프랑스의 발달된 의료기술,프랑스와의 관계및 프랑스의 인도주의적 정책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프랑스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서방국가 가운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84년 12월에는 통상대표부에서 일반대표부로 승격됐다.평양의 양각도호텔도 프랑스 기업이 투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의료기술은 에이즈 백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또 고 김일성주석의 심장박동기도 프랑스 의료진이 방북해 달았을 만큼 북한에는 프랑스 의료기술이 친숙한 점도 고려된듯하다. 또 프랑스가 미수교국의 지도층이 치료나 검진을 희망하는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해준 전례들도 오진우부장의 프랑스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프랑스는 지난 85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2인자의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지난 5월에는 리비아의 외무장관이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경유하는 과정에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오진우의 전력과 최근 행보/항일유격대출신 혁명 1세대… 77세로 거동 불편/군 좌지우지… 김정일과 권력투쟁설 올해로 만 77세인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근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노쇠현상이 뚜렷했다.가장 최근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16일 김일성사망 1백일 추모회였는데 이때 다리를 저는등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으로 북한 TV에 비쳐졌다. 그는 김정일에 이어 권력서열 제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 이후 몇몇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김정일과의 불화설등 그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상이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즉,7월20일 중앙추도대회 후 첫 중요행사인 「7·27 전승기념일」 행사에 군원로이며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으나 불참했고,이어 9·9절(정권수립기념일)행사,10월11일의 단군릉 개건 준공식등 비중있는 행사에 잇달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난달 20일 추석을 맞아 「혁명열사릉」에 헌화한 뒤 다음날인 21일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사망 45주 추모회에 참석했고 또 하루 뒤인 22일 김정숙동상에 헌화한 사실이 전해졌다.생전에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던 김일성부부,혁명열사 추모행사에만 참석했을 뿐이다. 폐암이라는 오의 병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86년 9월께 음주운전 사고를 내 의식불명의 중태에까지 빠졌었다는 것이 전부일 정도이다.당시 오는 한 연회에 참석한 뒤 만취된 채로 차를 몰고가다 평양시내 전승기념관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9개월가량 고위 당정간부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때 김정일이 헬리콥터까지 동원,긴급 후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치료에도 세심한 배려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김정일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그의 출생연도가 김일성보다 불과 5년 아래인 1917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폐암이 아니더라도 노환을 피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으로 혁명 1세대를 대표하고있는 그는 김일성과함께 오늘의 북한 체제를 구축한 주역의 한사람이다.함남 북청출신인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언제나 2인자로 군림함으로써 그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옛 소련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수료한 뒤 항일유격대에 가담한 오는 45년 10월 인민군 최고사령부 호위국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군부의 핵심라인에 올랐다.이어 60년 8월 1집단군 군사령관을 거쳐 당정치위 후보위원이 됐으며 마침내 76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 취임,군부를 장악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이 죽자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최근에는 그의 「거세설」·「연금설」과 함께 아들의 중국탈출설도 나왔었다. ◎“오진우란 환자없다” 입원 부인/파리병원 주변 스케치 ○…파리시내 비노가에 있는 북한 일반대표부는 오진우 부장의 방문에도 불구,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 북한측 한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부장이 대표부내에 있는지 등을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딱딱한 반응. 북측은 한달여전부터 폐암치료병원을 물색해 왔으며 암치료약을 상당분량 구입해 평양으로 수송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오늘중 검진 받을것” ○…오부장은 입원할 병원이 워낙 취재진에게 노출돼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거소에서 의사왕진을 통해 진료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라에네크병원측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오늘 이 시간 현재 「오진우」라는 환자는 병원에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다』고 발표. ○노출우려 왕진 가능성 ○…프랑스 내무부는 26일 상오 오부장이 이날 중 라에테크병원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 외무부는 검진결과에 따라 입원,수술,귀국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외교소식통,망명 일축 ○…한 외교소식통은 오부장이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정부는 인권탄압등의 경우에 한해 망명을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일축. 이 소식통은 『오부장의 프랑스방문이 핵문제합의문 채택에 이어 남북대화등 관계진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
  • 사체 추가발견 못해/군·경 사흘째 수색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을 수색중인 경찰과 군은 23일 상오 8시부터 하오5시까지 경찰과 군병력등 5백50여명을 동원,사흘째 시체와 유류품 인양을 위한 수색작업을 벌였다. 군경은 사고가 난지 이틀이 지난 점을 감안,사체나 유류품이 멀리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경구조정 5척과 고무보트 7척을 동원해 반포대교 일대까지 수색했다. 군경은 그러나 추가 사망자와 유류품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사체 추가발견못해/군·경 수색작업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을 수색중인 경찰과 군은 22일 상오 9시부터 경찰과 군병력등 6백80여명을 동원,이틀째 사체및 유류품의 수색작업을 벌였다. 군경은 이날 수색작업에서 교량 상판이 추락한 지점을 중심으로 6개 지역으로 나눠 물밑과 상판밑에 대한 정밀수색을 벌였다.군경은 그러나 책가방 지갑등 일부 유류품 말고는 추가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수색작업에는 경찰 구조대원 36명,서울시 소방본부 119구조대 53명,수중탐사요원을 포함한 특전사 소속 병력 4백38명,수방사 소속 도하단 88명,해군 해난구조대원 23명,해병수색요원 41명외에 각종 해상잠수장비 1백26세트,바지선 4척등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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