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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군 훈련 최근접지” 대만 팽호도를 가다/본사 이기동 특파원

    ◎전투기 굉음… 도로엔 군보훈련 군인/섬 전체 팽팽한 긴장감… 주민들 출어 못해/마공 시내는 선거철 소란 가득… 묘한 대조 대북을 출발한 90인승 쌍발 프로펠러여객기는 불과 1시간만에 팽호군도의 수도 마공시 공항에 도착했다.만만치 않은 전운은 비행기가 내리면서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느껴졌다.군용비행장의 한켠을 민간기들이 이용하는 탓인지 대만군의 주력 F5기들이 연이어 뜨고내리며 내는 굉음에 귀가 멍멍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통하는 해안도로변 곳곳에 위장망을 씌운 대공포가 솟은 방공포대가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중국군이 공정대를 투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전략요충지인 탓인지 도로 곳곳에서 M16 소총으로 무장한 소대병력이 구보훈련을 하고 있다. 도로변의 한 대공포진지를 찾아들어가보니 진지를 에워싸고 갓 만든듯 흙이 채마르지 않은 엄호·방어진지들이 불과 4∼5m간격으로 들어서 있다.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던 앳된 얼굴의 병사는 1주일여 전부터 엊그제까지 새 방어진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국군이 2차 실탄사격훈련을 벌였던 해역은 이곳 팽호도에서 서남쪽으로 불과 70여㎞ 떨어진 곳.고기잡이 배로도 1시간30분 남짓 거리이다.마을주민들이 가리키는대로 섬 남단 이수산항의 방조제 위에 올라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 훈련 인근지역인 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팽호도의 주민 10만여명은 대부분이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잡은 고기를 대북,홍콩,일본 등지로 수출해 보기 드문 부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중국군의 훈련으로 출어를 제대로 못해 생계에 적지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왕씨성을 가진 한 어부는 『중국군의 훈련을 전후해 출어를 삼가라는 현당국의 당부가 있었다.그리고 요즈음 날씨도 좋지 않아 이래저래 출어를 않고 있다』고 했다.왕씨는 『중국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대대로 살아온 이곳을 떠나기는 싫다.맞서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팽호도에서 중국군이 상륙하기에 가장 용이하다는 지형의 익문촌 일대 해변초소들에서는 병사들이 참호를 파고 모래주머니로 진지를 보강하느라 한창이다.진지 주변의 긴장감과는 달리 초소 앞까지택시를 들이대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26세라는 대만 가오슝 출신의 장교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초소의 엄호시설과 참호보강 작업을 하고 있지만 평소와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마공시내로 들어오면서 해변의 긴장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3일 실시되는 총통선거의 각당 운동원들이 떼지어 다니며 전단을 뿌리고 스피커를 단 선거운동용 차량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대북시도 그랬듯이 전쟁의 긴박감보다는 선거철의 소란함이 앞서는 것같았다.관광상품을 파는 한 가게주인은 심지어 『외국기자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당신들이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해질 무렵 항구에서 닻을 내리던 한 어부는 『중국군 훈련지역 쪽으로 가니까 대만해군정이 가로막고 더이상 밑으로는 못가게 하더라』며 그곳 사정을 전해주었다.한화로 30만원에 배를 빌려 이튿날 훈련해역으로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더니 그는 손을 가로저으며 『가까이 갈 수도 없을 뿐아니라 아무 표시도 없는 망망대해일 뿐인데 뭣하러 가느냐』고 만류했다.해가 지면서 시외곽으로는 또다시 전에 없는 긴장감이 에워싼다.군인들이 지나는 차량을 일일이 세워 검문하고 순찰군인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해안순찰도 크게 강화됐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피차 사생결단의 전의를 다지는 것도 아니고 적의 머리끝 하나 비치지 않는 이상한 「전쟁전야」속에 팽호도의 밤은 깊어갔다.
  • 대만정보국 “중,4차 훈련 가능성”/중­대만 현지표정

    ◎대만인 수만명 독립촉구 시위… 등 화형식도/중국 신문 “미 항모 실전경험 없는 골동품 ○…대만정부의 정보기구인 국가안전국은 16일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제4차 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가안전국 제4처 시자중 처장은 이날 대만 입법원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은 15일 TV 등을 통해 8일간의 미사일발사훈련 성공을 자화자찬.국영 TV는 이날 『인민해방군 미사일이 본토 산악지대의 이동발사대에서 밤하늘을 가르며 올라가는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고 『등소평 동지의 군건설에 관한 새 이념의 지도를 받는』 병사들이 미사일발사를 성공리에 마쳤다고 보도. ○…대만 마조도 방위사령부는 15일 중국군의 공습및 상륙작전에 대비,수백명의 병력을 동원해 방어훈련을 했으나 실탄사격은 자제.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에는 훈련공습경계경보가 발령돼 시민들이 방공시설로 대피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문과 창문을 걸어잠근 채 두문불출. ○…대만언론들은 다음주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례 대만·미국간 무기구매회담에서 대만정부가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잠수함,CH47 수송용헬기 등의 신속구매 승인을 미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보도. ○…수만명의 대만인들이 16일 중국의 군사위협에 반발하며 독립선언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가운데 일부 시위대는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91)의 모의화형식을 가졌다. 수도 대북을 비롯,주요 도시에서 수만명이 참여한 이날 시위는 대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것중 하나로 중국이 오는 23일 대만 총통선거 이후까지 대만근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데 자극받은 것이다. 「독립을 추구하는 세계 대만인연합」과 「대만대학교수협회」등 2개단체가 주도한 대북 시위에서 군중들은 「대만은 대만,중국은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공격과 재통일을 집어치워라」,「대만은 주권국」등의 구호를 외쳤다. ○…미국은 18일부터 4월30일까지 공격용 잠수함 1척,구축함 2척,급유함 1척 등 함정들이 마닐라 북서쪽 80㎞ 지점의 수빅항에 기항하도록 허용해달라고요청해 왔다고 필리핀군 고위관계자가 언급. ○…중국 문회보는 『대만해협에 배치된 미항모 인디펜던스와 니미츠호는 2차대전 이후 전혀 실전을 경험하지 않은 골동품』이라고 폄하.이 신문은 한 중국장교의 말을 인용,『미항모는 약소국은 겁줄 수 있지만 중국군의 작전은 막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해 중국군의 미항모에 대한 불안감을 간접적으로 시사. ○…최근 중국 해안가 인근 공항에는 군용기들이 모여들고 하루중 상당시간 동안 공항기능이 폐쇄되고 있으며 그나마 비행기 탑승객들은 비행기 창문을 가리도록 강요되고 있다고. ○…대만은 이등휘 총통의 지난해 방미 등 중국의 분노를 유발했던 것과 같은 대외정책을 앞으로 자제할지 모르나 유엔 복귀노력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복외교부장이 15일 말했다.그는 이총통이 가까운 장래에는 외국 지도자의 대만방문에 대한 답방으로만 외국을 여행할지 모른다고 말했다.그의 이같은 발언은 세계무대에서의 대만의 지위향상을 위한 이총통의 노력에 자극받아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고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 “5공 부정땐 국가정통성 부정”/변호인 모두진술 요지

    ◎5·18특별법 법원 재판권 뺏은 위헌법률/정승화씨 체포 대통령 사전승인 필요없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 및 5·18사건 관련 피고인의 전상석 변호사가 11일 공판에서 변호인단 대표로 낭독한 모두진술을 요약한다. 1,5공화국의 정통성 5공화국 헌법은 80년 10월27일 국민투표로 개정됐고 현행 헌법은 5공화국 헌법에 기초한 것이다.5공화국 헌법이 부정되면 현행 헌법의 실제 효력이 부정됨은 물론 대한민국의 연속성,정통성마저 부정된다.또 5공화국이 부인되면 대한민국의 외교적·국제적 지위는 물론 모든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지위가 부정된다. 2,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하여 5·18 특별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3권분립 제도에 반하여 법원의 재판권마저 찬탈한 위헌법률이다.또 5·18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9분의 4의 소수 의견이 9분의 5의 다수 의견을 제압한 것으로,역리가 순리를 제압한 것이다. 3,12·12 군사반란에 대하여 (가)정승화의 체포는 10·26사건의 수사책임을 맡은 합수부의 정당한 업무 집행이며 병력출동은 정승화계열 군부의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정승화는 10·26 사건 방조죄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재심에 의해 그 유죄판결의 기판력이 배제되지 않는 이상 누구도 확정된 유죄판결과 배치되는 사실관계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은 확립된 법리이다. (다)수사권의 행사는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의 사전승인이 필요없을 뿐 아니라 실정 법규상 사전결재 의무를 규정한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합수부의 병력출동은 정승화 계열 군부가 국방장관의 소재불명 등 사유로 군의 지휘공백이 초래된 상황에서 불법적 병력동원을 했으므로 이를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4,내란죄에 대하여 (가)5·17 전국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국보위 설치는 최규하대통령 정부에 의해 행해진 정당한 국법집행 행위이며 계엄군의 출동은 군의 정상적인 작전임무였다. (나)검찰은 5공화국의 헌법개정을 내란행위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에 의해 확정된 것이다.검찰은 국민 전체를 내란의 공범자로 보고 헌법개정 권력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국민의사를 임의로 폐기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다)검찰은 발포명령자가 없다고 하면서 자위권 발동지시가 사실상 발포명령이고 자위권 발동지시를 한 계엄사령과 배후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있었으므로 전두환보안사령관을 발포명령 책임자라고 주장한다.범죄의 성립에는 고의·과실 등 주관적 구성요건과 실행행위에 해당하는 객관적 구성요건이 있어야 한다.
  • 「12·12」 「5·18」 공판­쟁점과 전망

    ◎경복궁 모임/“군권찬탈 모의” “동요 막기 회합”/정총장연행­“재가없어 불법”에 “사후재가 유효”/총장공관 발표­“신군부 선제공격”에 “우발적 충돌”/재판부 최전대통령에 증인출석 요구 가능성 12·12 및 5·18사건의 첫 공판의 양상은 예상한대로였다.검찰과 변호인간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모두 진술을 두차례 하고, 이종찬 수사본부부장은 별도 기자회견까지 가졌다/ 변호인단은 모두진술내용을 책자로 배포하는 동시에 번갈아가며 논쟁을 부추겼다. 검찰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12·12와 5·18을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규정,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6명을 단죄하려 한다. 반면 변호인단은 5공의 정통성 수호차원에서 특별법에 의한 재수사의 부당성을 집중부각하려 한다. 첫 재판에서도 양측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전 육참총장의 강제연행,총장공관에서의 선제발포,병력의 불법동원,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후재가 등이 그것이다. 검찰은 경복궁 모임이「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34명이 모여 군권찬탈을 모의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은 정 전 총장의 연행에 따른 군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경복궁에 모였다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정 전 총장의 강제연행이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 없이 이뤄진 불법행위라는 검찰의 신문에 대해,피고인들은 자유당시절 김창용특무대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군수사기관이 상관인 김창용 특별무대장을 연행한 사실을 들어 「재가없는 연행은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총장공관에서의 발포가 보안사 수사관 3명에 의한 선제공격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피고인들은 연행에 불응하는 데 대한 우발적 범행이었으며 사전지시는 없었다고 강변했다. 병력의 동원에 대해서는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 등이 명령계통을 어기며 탱크 등을 동원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최전대통령의 사전재가가 없는 정전총장의 연행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맞섰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재판부에 의해 가닥이잡히고 있다.김영일재판장이 『양측은 법리논쟁보다 사실규명에 주력해달라』고 따끔히 주의를 준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재판부는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본격적인 심리를 진행,범죄의 사실규명에 주력하겠다는 생각이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신문이 늦어이자 재판일정을 1주일씩 순연할 방침이다. 이날 마무리하지 못한 전 피고인 등에 대한 12·12사건신문을 오는 18일에 마치고, 25일에는 5·17사건, 4월1일과 8일 5·18사건을 집중 심리할 방침이다. 특히 앞으로 공판에서 양측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지면 쟁점의 명확한 규명을 위해 재판부가 최 전 대통령의 가능성도 있다.
  • 전력 10배… 전면전은 어려울듯/중,대만 공격 가능할까

    ◎무기 낡고 첨단장비 부족… 승패 예측불허/최악의 상태 닥쳐도 해상봉쇄에 그칠듯 지난 5일 중국의 대만 근해에서의 미사일발사 훈련계획발표를 계기로 중국 본토와 대만의 양안간에 무력충돌의 우려가 고조되면서 갖가지 전쟁 시나리오가 나도는 등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북경외교가에선 중국의 미사일훈련과 오는 23일 총통선거를 앞둔 대만의 강경입장이 직접 대만 본섬에 대한 전면전으로 발전할것으론 보지 않는다.그러나 양측의 강경태도는 대만 외곽 도서지역에 대한 중국의 공격을 촉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중국은 지난 58년 복건성 하문에 인접한 김문도에 한달 보름가량 40여만발의 포탄을 쏘아대 긴장상태를 빚은바 있다.그래서 대만참모부는 특히 중국대륙에 인접해 있는 김문도,마조도 등에 대해선 중국군이 포탄과 미사일발사 단계를 넘어 육해군을 동원,공격해올수도 있다는 가정아래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등은 중국 군사력이 대만보다 외형상으론 10배가량 되지만 무기 노후화,첨단무기의 부족 등으로 대만을 공격한다해도 치명적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등 성공을 낙관할 수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이런 맥락에서 전면전보다는 미사일 및 장거리포 공격과 외곽 도서에 대한 점령시도 등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일부 군사전략가들은 「중국의 대만전략」이 ▲심리전 ▲미사일 및 포탄공격 등 병력접촉 없는 비접촉 공격 ▲대만봉쇄 ▲외곽도서 공격 및 점령 등 국지전 ▲대만에 대한 직접 무력침공 등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현 상황은 심리전에서 비접촉공격단계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만의 담강대전략문제연구소 임욱방 소장팀도 최근 이와 유사한 중국의 5단계 대만공격 시나리오를 내놓았다.임소장팀은 ▲군사이동 및 비난성명 ▲대만봉쇄 ▲외곽 도서 공격에 이어 해군 및 공군공격을 통해 대만군을 무력화시키고 최종적으로 군사력을 상륙시킨다고 가정했다.대만봉쇄는 주요 항구주변을 함정과 수뢰 등으로 막아 경제활동 및 물자보급에 타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 일제 한국인 60만 전시 징용/민족문제연 일 정부자료·문헌 분석

    ◎1935∼45년 미병 21만·정신대 20만 포함/일서 기록한 최소치… 보상 유효기준 될듯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동원한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한햇동안 일본 정부기록과 문헌들을 분석해 최근 발표한 「일제의 전시(1935∼45)인력수탈」연구결과는 전쟁터로 강제동원된 한국인의 수를 제시한 첫 종합적인 분석결과라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특히 이 숫자는 일본 기록에 나타난 한국인 동원의 최소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간에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보상측면에서도 유효한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제가 전쟁중 전쟁터로 직접 동원한 한국인은 육군특별지원병과 징병,학도지원병,해군특별지원병 및 해군,군속,여자 정신대 등 최소한 60만3천3백85명.1938년부터 1943년까지 동원된 육군특별지원병 1만7천명을 비롯해 1944년 징병 21만명,학도지원병 4천3백85명,해군특별지원병 및 해군 동원 2만2천명,군속 15만명,여자 정신대 20만명 등으로 돼있다. 이가운데 육군특별지원병은 1938년 2월 2일 칙령 제95호로 공포돼 4월 3일부터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제도에 따라 동원된 병력. 1944년 7월 일본 내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육군특별지원병은 1938년부터 1943년까지 6년동안 모두 1만7천6백64명으로 돼있다.1938년 입소자가 4백6명,1939년 6백13명이었다가 2차세계대전 발발후인 1940년부터 급증해 1940년 3천60명,1941년 3천2백8명,1942년 4천77명,1943년 6천3백명으로 늘어갔다. 이 육군특별지원병의 강제성은 1941년 일제관헌이 실시한 지원자 동기조사에서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조사에 따르면 자발적 지원이 5만1백84명인데 비해 관 종용이 7만9천6백72명으로 나타나 일제 관헌측이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지원보다는 일제의 종용에 의해 지원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훨씬 많았음을 알수 있다. 일제의 징병제도는 1943년부터 시행됐는데 1944년 8월 제85회 제국의회설명자료에 따르면 1944년 7월말까지 신체검사를 받은 총인원수는 20만6천57명에 이른다.후생성 복원국도 동원자수를 육군 18만6천9백80명,해군 2만2천2백90명 등 총 20만9천2백70명으로 보고 있어 1944년 당시 조선인 징병자 총수는 약20만∼22만명 정도로 집계된다. 또 1943년 10월 20일 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 시행에 따라 조선인 전문학교 및 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을 소집해 특별간부로 채용한 학도병(학병)도 1943년 10월부터 1944년 1월 20일까지 4천3백85명이나 됐다.일본제국의회와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강제 입대한 학병은 조선내에 9백59명,잠시 귀국중인 일본 유학생 1천4백31명,일본 잔류학생 7백19명,9월 단축졸업생 9백41명,취직중인 졸업생 3백35명 등 모두 4천3백85명으로 이 수치는 1944년과 1945년도 입대자를 제외한 최소치에 불과하다. 이밖에 1943년 5월 12일부터 실시된 해군특별지원병제도에 따른 해군 동원도 1944년 5월까지 9천6백29명 (제86회제국의회 설명자료)을 포함해 총 2만2천2백90명(공안조사청의「재일조선인개황」)이나 됐으며 군속(군요원 징용)도 육군 7만4백24명,해군 8만4천4백83명 등 15만4천9백7명(공안조사청의「재일본조선인개황」)에 달했다. 특히 여자정신대(군위안부)의 경우 지금까지 국내외 연구자료에 따르면 20만명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른바 「여자정신대근로령」이 발동된 것은 1944년 8월부터.그러나 군위안부의 경우 1932년 3월과 1937년 12월의 상해파견군,1941년 7월 관동군 등 파견군에 의한 군위안소가 그 이전부터 설치됐고 일본 육군성의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등 종군위안부정책의 통제와 지도관련 문건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만주사변 직후부터 정신대 동원이 시작되어 1944년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봐야한다는게 이 연구결과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은 『이번 연구결과에 나타난 일제의 한국인 동원은 단지 일제말 전시하라는 특정 시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서 『강제노무동원이나 군관계 동원에 포함되지 않았던 어린아이나 여성,학생에 대한 무차별 동원을 포함한 일제치하 모든 시기의 한국인 동원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실시돼야 할때』라고 말했다.
  • 박준병·장세동·최세창씨 구속/검찰/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경복궁 모임 참석·주선… 별력 불법 출동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2일 12·12사건과 관련,박준병 의원(자민련)을 군형법의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12·12 당시의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씨와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도 이 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서울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20부 김문관판사는 이 날 검찰이 청구한 박의원의 구속영장과 장·최씨의 영장을 함께 발부했다. 검찰은 상관살해 및 살해미수 혐의가 드러난 당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씨와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는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미국에 도피 중인 당시 1공수여단장 박희도씨와 5공수여단장 장기오씨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검찰에서 두차례 조사를 받고 지난 달 캐나다로 몰래 출국한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씨도 기소중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12·12 및 5·18 사건으로 사법처리됐거나 될 사람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정호용의원 등 현역 의원 4명을 포함,모두 19명이다. 박의원은 12·12 당시 반란을 모의한 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고 20사단 병력을 동원,육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출동하려던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을 사전에 저지하는 등 반란에 가담한 혐의이다. 장씨는 30경비단장실을 「경복궁 모임」의 장소로 제공,반란모의에 적극 가담했으며 정승화 전 육참총장을 연행할 때 30경비단 5분대기조 병력 70여명을 출동시켰다. 최씨는 12·12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에게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을 연행토록 명령,이 과정에서 김오낭 전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 사살당했으며 특전사 2개대대의 병력 6백여명을 경복궁으로 이동시켰다.
  • 박준병씨 구속영장

    피의자는 육군사관학교를 제 12기로 졸업하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이른바 「10·26사건」 당시 제 20사단장으로 근무했으며 육본 인사참모부장과 국군보안사령관 등을 거친 뒤 현재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의자는 10·26사건 이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육참총장을 강제로 연행,지휘권을 박탈하고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전두환·노태우 등의 사전계획에 따라 79년 12월12일 하오 6∼7시까지 유학성·최세창 등과 함께 제 30경비단장실에 모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도록 지휘부를 결성했다. 하오 8시30분쯤에는 제 20사단 참모장 노충현으로부터 「진도개 하나」 비상이 발령됐으며 육군 참모차장 윤성민,3군 사령관 이건영 등이 피의자를 급히 찾는다는 사실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30경비단장실에 계속 머무르면서 10∼15분 간격으로 노충현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장악을 철저히 하고 나의 육성지시 없이는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경기 성남시에 있는 제20사단 사령부 및 60·61·62연대 병력으로 하여금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고 기동타격대 및 의정부 지역의 도로봉쇄 임무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출동을 사전에 막았다. 피의자는 중요 임무 종사자로서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를 인멸한 염려가 있다.
  • IRA 런던 호텔 폭탄테러/휴전파기 선언 직후

    ◎건물 일부 붕괴… 100여명 부상 【런던·더블린 AP 로이터 연합】 아일랜드공화군(IRA)이 9일 북아일랜드 휴전 파기를 선언한 지 1시간만에 런던 동부 금융가의 한 호텔건물에서 강력한 폭탄테러가 발생,17개월째 유지돼 온 북아일랜드 평화에 암운을 드리웠다. 북아일랜드 경찰당국은 이날 휴전이후 완화돼 온 보안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새 계획을 발표하고 필요하다면 군병력까지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하오 7시(한국시간 10일 새벽 4시)쯤 런던에서 가장 높은 카나리아워프 빌딩에서 5백여m 떨어진 브리태니아호텔 6층 건물의 지하주차장에서 폭탄이 폭발,2명이 중상을 입고 행인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이 폭발로 호텔건물의 일부가 붕괴되면서 건물 지하실에 있던 5명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있는 것으로 파악돼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더블린 로이터 연합】 아일랜드 공화군(IRA)은 9일 1백여명의 부상자를 낸 런던의 대규모 폭발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공식 시인했다. 아일랜드 공화군은 이날 아일랜드 국영 라디오·TV방송에 보낸 암호 전문에서 자신들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북 아일랜드 평화는…/런던 폭탄테러/17개월 평화노력 물거품 위기/신·구교간 「유혈 보복」 악순환 우려/미,즉각 중재나서… 평화 실낱 기대 런던시내의 한 호텔에서 9일 발생한 폭탄테러에 대해 아일랜드공화군(IRA)이 자신의 소행임을 확인함으로써 지난 1년5개월간 추진돼온 북아일랜드 평화정착 노력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특히 이번 테러는 아일랜드 문제의 비폭력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오던 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 게리 애덤스당수의 권위에 큰 흠집을 안겨주게 됐다.또한 보스니아사태에 못지않게 아일랜드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신경을 써온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도 심한 좌절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지금까지 신페인당과의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IRA가 먼저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다른 중재안을 거부해왔다.이에 대해 게리 애덤스 당수는 영국의 완고한 협상태도를 비난하면서 무장투쟁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이번의 폭탄테러로 북아일랜드 신교도 내의 휴전 반대세력들의 입지가 강화됨은 물론 신교도 세력과 IRA로 대표되는 구교도간의 보복테러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부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사건 직후 애덤스당수가 앤터니 레이크 미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평화정착을 위한 기존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미국도 북아일랜드분규세력 지도자들과 즉각 접촉에 나서는 등 평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 평화에 대한 희망의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더욱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북아일랜드가 아닌 런던에서 발생한 점등을 들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가 IRA의 분파로 휴전참여를 거부해온 아일랜드민족해방군(INLA)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즉 이번 사건이 IRA 전체의 뜻이 아니라 한 과격분파의 비뚤어진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따라서 IRA 내부정돈이 이루어지면 예상외로 평화협상이 진척을 보이게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어쨌든 이번 폭탄테러로 북아일랜드의 운명은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 지자체 병력 요청 경찰서 거부/청주동부서

    ◎“무소신행정 방패막이 될수없다”/정춘수목사 동상철거 집회 마찰 【청주=한만교기자】 경찰이 소신없는 일반행정에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며 자치단체의 병력동원 요청을 거절했다.경찰이 행정기관의 무소신을 이유로 공식적인 병력동원을 거부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청주 동부경찰서(서장 오명배)는 7일 충북 역사정의 실천연합(회장 이관복)이 8일 청주 3·1공원에서 정춘수 목사의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갖기로 한 집회를 막아 달라는 청주시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다. 청주시는 지난 5일 동부경찰서에 정춘수 목사의 동상철거 집회를 막아 달라는 공문을 보내었다. 경찰은 이 날 청주시에 보낸 공문에서 『충북도와 청주시가 정춘수씨 동상의 철거방침을 세우고 시행절차만 남긴 상태에서 경찰이 철거를 막을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충북도와 청주시는 지난해 12월8일 충북 사회민주단체 연대회의(대표 정진동목사)를 비롯한 청주지역 재야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춘수목사의 동상를 철거키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최근 정목사 후손들이 동상철거에 크게 반발하자 청주시와 충북도는 「철거지시를 내려달라」,「시가 알아서 조치하라」는 등 서로 책임을 미뤄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왔다. 경찰은 『행정기관의 무소신으로 빚어진 집단민원에 경찰이 무조건 방패막이가 될 수 없어 병력동원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상 철거시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철거현장 주변에 형사기동대 2개 중대를 배치할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해 3월1일과 12월28일에 청주지역 재야단체들이 친일행각을 이유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가운데 한 사람인 정춘수목사의 동상 철거를 시도하자 병력을 동원해 이를 막았었다.
  • 「수도권 운하의 군사적 활용도」 송수섭교수 발표

    ◎“수도권운하 유사시 주민 소개에 도움”/2천만명 한강 이용 사흘내 남쪽 이동/병력 적시배치·군수품 수송에도 유리 세종대학교 부설 세종연구원은 30일 하오 서울 세종호텔에서 「수도권 운하의 국방전략 효과」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었다.심포지엄에서 이 연구원 송수섭연구위원(세종대 경영대교수)은 「수도권 운하의 군사적 활용도 분석」의 주제발표를 통해 서울과 아산만·전곡·춘천·오산·낙동강 등을 연결하는 운하가 건설되면 동북아의 물류기지로서의 경제적 효과는 물론,유사시 수도권 주민을 후방으로 피난시키고 군수물자와 병력을 전선에 배치시키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다음은 송위원의 주제발표문 요지. 수도권 운하의 군사적 효용성은 첫째,수도권 주민의 신속한 소개수단이라는 점이다.우리의 방어개념은 휴전선에 인접한 수도권에 과도한 인구가 밀집한 상황에서 수도권을 사수해야 함으로 주민들은 현 주거위치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돼 있다.전쟁이 일어나면 수도권 운하망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인원 및 물자를 신속히 수송할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주거민 소개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이 운하망의 중추인 한강은 서울을 관통해 동서로 흐르기 때문에 주민들이 주거지역으로부터 한강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짧으며 주 도로망에 지장을 주지않고 이동할 수 있다.바지선의 대량 수송능력은 주거민의 소개용으로는 다른 수송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24시간에 5백만∼7백만을 수송할 수 있다.사흘이면 서울과 한강 이북의 2천만에 이르는 수도권 주민을 평택 이남지역으로 소개할 수 있다. 둘째,우리 군은 평시 상비군으로 65만5천명의 병력을 유지하다 전쟁이 발발하면 초기 동원사단의 완전편성 및 전시손실에 대한 보충병력을 합하여 1백91만6천명을 동원,전쟁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운하망은 예비병력을 적시에 동원,필요한 전방 부대에 신속히 배치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즉 서울∼전곡간 운하는 철원축선에 맞닿아 있으므로 배후의 서울∼평택간 운하와 연계해 수도권 이남의 예비병력은 물론,한강하구를 끼고 문산축선의 김포반도와 문산지역에 병력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완전편성된 사단을 아산만 근처의 지역에서 철원축선의 전방전선인 전곡까지 14시간 정도면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현재 군 장비 및 물자의 수송체계는 부산의 군수기지에서 주로 철도와 육로수송에 의존하고 있다.따라서 이 기지는 전선인 수도권까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철도와 육로에 의한 장거리 수송은 수송량 제한은 물론 적의 포격,비정규전 공격 등에 많은 취약성을 안고 있다.이같은 취약한 수송체계의 대안으로 운하망은 수도권 남쪽의 평택지역에서 전곡·춘천 지역까지 바지선을 이용,대량의 군수물자를 한꺼번에 수송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또 아산항을 국제적인 항구로 개발할 경우 미국에서 선박에 의하여 수송되는 군수물자를 아산항에서 수도권 운하망과 연계하여 필요한 전선지역으로 신속히 수송할 수 있다.따라서 아산만 연안의 평택지역에 제2의 군수기지를 건설,전시에 보급로의 길이를 단축시켜 장거리 수송에 따른 취약성을 감소시키고 수도권 운하망을 연계하여 종합적인 군수지원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5·18」 3의원 구속영장 요지

    ▷정호용◁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 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 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생하자 피의자 등의 정국장악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판단,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공수부대를 광주로 투입,강력히 진압하고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실탄을 분배해 발포케 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 충정작전을 실시해 광주 시민인 이정연 등을 살해했음.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 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고,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허삼수·허화평◁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 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7일 하오 11시쯤 사회혼란 조성 및 학생·노동계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등을,권력형 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혐의로 김종필 등을 각각 체포하고 18일 무장병력으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8월30일까지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통제하게 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음. 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하고 7월 중순 국보위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이학봉 등과 함께 간선제 대통령 선출안 등을 결정하고 피의자 등이 운영하는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국정을 장악하고 대통령과 행정 각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8월16일 하야하자 18일 서울과 제주를 필두로 잇달아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안보보고회의에서 새 대통령 후보로 전두환장군을 추대토록 하는 한편 8월21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8월27일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9월1일 취임했음.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거나 완결하고 언론을 순화시키며 신당을 창당해 정계를 개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엄상황을 계속 유지하면서 9월 20일 피의자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 5공화국 헌법개정안을 마련,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고,10월22일 국민투표로확정된 헌법개정안을 27일 공포하고,제10대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하여금 81년 4월10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고 80년 6월20일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특정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 80년 「신군부」와 맞섰던 사람들

    ◎신현확전총리­군 동원 시위진압 반대/유병현전합참의장­국보위설치 이의 제기/정웅사단장­시위 정치적수습 건의 5·18사건 전후 군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정국을 장악하려던 신군부에 맞서 나름대로 소신을 펴며 군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23일 검찰의 5·17,5·18사건 공소장속에 등장하고 있다. 신군부측은 이른바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80년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비상계엄전국확대·국회해산·국가보위비상대책위라는 비상기구 설치 등의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유병현합동참모의장은 이 회의가 열리기 전 주영복국방부장관으로부터 회의 안건을 듣고 『비상기구설치와 국회해산을 군지휘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안건을 일단 보류토록 했다. 안종훈육군군수사령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학원 소요의 과열·폭력화와 심상찮은 북한의 동향으로 계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사가 개진되자 『계엄확대조치는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해야 하는데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이 회의에서 정호용특전사령관과 노태우수경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측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비상계엄 전국확대는 참석자의 서명을 통해 결의됐다. 신군부에 대한 반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러 나섰던 계엄군 지휘관 가운데도 나타났다. 김기석전교사부사령관은 5월21일 하오4시쯤 황영시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거절했다.계엄하에서 상관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정웅31사단장은 5월21일 전투병과교육사령부를 통해 「시위대의 주장 내용이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수습보다는 정치적인 수습이 최선」이라는 사태 수습방안을 이희성계엄사령관과 정호용특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에게 냈다. 이밖에 공소장에는 대학생들의 시위진압을 위해 군병력 동원하자는 신군부측의 의견에 『유혈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신현확국무총리 등 일부 국무위원들,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서 김재규피고인 등에게 내란목적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소수의견을 밝힌 양병호대법원판사 등이 기재돼 있다.
  • 통일원·비상기획위 올 업무 계획 내용

    ◎통일대비 전문요원 20명 양성/국제기구 통해 북한 인권 지속적 공론화/북 경수로 건설현장서 남북 신뢰 무드 조성 통일원은 23일 ▲세계화된 보편가치를 구현하는 통일논의의 세계화 ▲북한당국과 북한주민을 함께 시야에 넣는 대북정책의 복안화 ▲통일대비의 각론화등 3대 통일정책 추진지침을 확정했다. 통일원은 이같은 지침에 따라 이날 각분야별 세부계획을 발표했다.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북 태도변화 유도 ▲경수로 지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건설요원,장비의 남북한 왕래등에 대한 지원방안 강구.북한건설현장에서의 남북한 신뢰분위기 조성.기술자의 신변보장,통신·통행등 필수적인 공급협정 이행세칙 마련을 위한 후속협상 추진.▲남북교류협력의 단계적 확대=민간급 접촉·교류 및 교역의점진적 증대.국제기구 및 제3국을 통한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상봉등 지원.남북협력기금 확충등 남북경협사업의 지원방안 강구.정부차원의 대북 지원은 북한의 태도변화에 따라 단계별로 조치.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민족발전공동계획」마련 ▲북한인권개선대책의 지속 추진=유엔인권위등 국제인권기구·단체를 통한 북한인권문제의 지속적 공론화.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 조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원칙」의 구현을 위한 후속조치 강구 ▲북한의 정전체제 무실화 책동 및 대미 평화협정 공세에 대한 다각적 대책마련 ▲한반도 통일문제의 국제협력체제 구축=미·일·러·중등 주변 4강과 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통일정책 포럼」개최.독일외 주요주변국에 「통일주재관」 파견추진. ◇남북대화 재개시 대비책 마련 ▲회담운영체제의 정비·강화=당국 및 민간급대화등 다양한 형태의 남북대화 재개에 대비한 효과적 운영태세 강구.분야별 회담요원 및 민간 대북접촉 인사들에 대한 사전·사후 교육훈련 강화. ◇정보변화에 따른 대북 정보역량 강화 ▲북한상황의 집중 추적·분석체제 구축=북한문제 전문가와의 공동작업 추진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분석결과의 객관성 제고.주변 4강,비동맹권등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회의등을 통해 정보·자료를 수집.민간단체,기업 및 각종 연구기관과의협조체제를 강화. ◇북한변화 대비책 강구 ▲통일대비 전문요원 양성=16개 부처에서 20명을 선발,독일등 11국에 파견해 해외 경험사례를 조사·연구.남북관계 진전에 대비한 각종 법제의 정비방안 강구.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 확대 ▲통일교육의 강화=초·중등 및 대학교 교과과정에 통일교육 내용을 확대 반영하고 전국 사회교육·연수기관의 통일교육기능을 강화.교육방송등의 통일교육프로그램 보강등 대중매체 활용.통일연수원에 주변국가 저명인사 초청. ▲통일홍보의 활성화=문화영상 제작등 영상매체를 활용한 홍보효과 제고.통일문제 공익광고 및 PC통신등 각종 매체를 활용한 홍보의 다양화.국제방송·인터넷 등을 활용. ◇통일정책의 각론화와 종합조정기능 강화 ▲남북교류·접촉의 다양화 및 전문화 추세에 대비=통일원은 각부처의 전문성을 살린 대북정책의 각론화를 지원하고 이를 총괄·조정.각 분야별로 구체화된 통일대비태세를 확립. ◎비상기획위/유사시 수도권 안보상 취약점 중점 보완/국가종합상황실·동원자원 관리 전산화/정부 각급 기관 비상대비 업무 총괄 조정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는 올해 업무추진의 기본방향을 「비상대비 태세의 완비」에 두고 어떤 형태의 비상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대비태세를 갖추는데 진력하기로 했다. 비상기획위원회(위원장 박익순)가 밝힌 96년 업무계획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위기관리능력의 배양 ▲안보환경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가변성을 고려해비상시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계획을 수립하고 정부 각급기관의 비상대비업무를 총괄 조정한다. ▲유사시 수도권의 안보상 취약점을 중점 보완하고 민생안정에 대한 비상대비 계획을 보완한다. ◇국가비상대비태세 점검 보완 ▲최근 북한의 식량부족등 경제난에 따른 이상징후와 특히 병력과 장비의 전방전개등 군사동향과 관련해 비상대비태세를 종합 점검한다. ▲상반기중 2월에는 주로 수도권지역,3∼4월에는 후방지역에 대한 비상기획위원회와 각급기관 관계관의 합동 점검한다.중점 점검분야는 「충무계획」의 시행가능성,국가비상시 전환준비태세,초기단계 동원태세 등이다. ◇정부연습 주관실시 ▲비상기획위원회가 주관하는 을지연습은 한­미 연합사의 포커스렌즈연습과 통합 실시한다. ▲재난관리연습 등을 충무훈련과 함께 실시하는 종합연습으로 실시한다. 국가종합상황 및 동원자원관리의 전산과학화 ▲유사시 신속한 상황전파를 위해 국가종합상황실과 동원자원의 관리를 연차적으로 전산과학화 한다. ▲전직원에 대한 전산교육을 간부급부터 실시한다. ◇국가비상대비요원의 운영활성화 ▲정부기관 및 동원지정업체의 비상대비요원에 대한 운영을 활성화 한다.
  • 「5·17­5·18」수사 검찰 발표

    ▷1,공소제기개요◁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오늘 5·17,5·18사건과 관련하여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을 내란등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 기소하고 △이 사건 범행 당시 제3군사령관이었던 유학성을 내란모의 참여등 혐의로,육군참모차장이었던 황영시,보안사 대공처장이었던 이학봉을 각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였으며 △이 사건 범행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희성을 같은 혐의로,육군사관학교장 차규헌을 내란모의참여 등 혐의로 각 불구속기소하였음 ○이로써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하여 반란 등 혐의로 △5·6공화국 대통령 재직중 비리와 관련하여 수뢰혐의로 각 기소하고 ○행정부 등 강압 통제 △이번 사건을 추가기소함으로써 세가지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하였음. ▷2,공소사실요지◁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등은 △12·12 반란사건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나 그 문책이 우려되고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이 현실화됨에 따라△정국안정을 명분으로 12·12 반란사건의 핵심관련자를 주축으로 정치주도권의 장악을 기도한 끝에 ○군사력에 의한 힘을 바탕으로 정국을 장악하기로 하고 △행정부등을 강압적인 분위기속에서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구상하고 △입법부의 입법기능과 견제기능을 봉쇄할 수 있는 조치등을 강구하되 △그 개괄적 수단은 불법적 계엄확대조치 및 그 연장을 통한 폭압적 방법을 사용하기로 모의한 다음 ○국회기능 정지 시켜 ○80년 5월17일에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함에 있어 국무회의장 주변에 장갑차등으로 무장한 병력 6백여명을 투입하여 위압적인 분위기속에서 비상계엄 확대 선포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정당의 총재등을 체포·연금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5월18일에는 △계엄 해제를 안건으로 소집된 임시국회를 장갑차등을 동원하여 열리지 못하게한후 △그해 10월26일 제10대 국회가 해산될 때까지 그 기능을 정지시키고 △나아가 10월27일에는 입법기능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강압에 의해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또한 행정각부를 임으로 통제하기 위해 ○비상계엄 이용 개헌 △같은해 5월27일에는 대통령자문기구 명목으로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12·12 반란사건의 중요관련자들이 위원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상임위원회를 두어 그 소관위원회로 하여금 △공직자 숙정,삼청교육,언론인 해직 △개헌작업등을 추진하게 함으로써 행정각부를 조정·통제하여 국무회의와 행정각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데 이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에 이르게 하고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사이에는 광주지방의 시민·대학생등이 비상계엄해제,전두환 퇴진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피고인등의 목적을 관철할 의도하에 공수부대 병력등을 동원,과잉진압에 의한 살상행위등을 자행함과 아울러 ○비상계엄을 이용한 폭압적 분위기속에서 개헌,김대중 재판,언론기관 통폐합등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헌법기관인 행정부·입법부등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등 국헌을 문란할목적으로 △전두환은 최고책임자로서 △노태우,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은 각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유학성,차규헌은 각 모의참여자로서 폭동하여 내란함과 동시에 반란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한 범행을 저지른 것임. ▷3,향후수사계획◁ ○검찰은 5·17,5·18 사건에 대하여는 수사상황에 따라 관련자를 적법절차에 의해 계속 처리해 나가되 ○12·12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위헌 법률심판제청·헌법소원등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속중에 있으므로 그 결정이 내려진 후 처리할 예정이며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 및 축재사건에 대하여도 계속 수사해 나갈 계획임.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첫 투표 감격” 축제 분위기/팔 자치선거 실시 이모저모

    ◎16개 선거구 곳곳 수백명씩 장사진/“이,투표율 낮추려 위압 분위기 조성”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팔레스타인 사상최초의 선거가 20일 상오 7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동예루살렘 등 16개 선거구에서 일제히 실시됐다.1백1만여명의 유권자가 자치정부의 대표와 자치평의회 의원 88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일부 지역에서 유혈사태와 반대시위 등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무난히 치러졌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마을과 헤브론 등 일부 투표소들에서는 이른 아침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다고 목격자들이 증언했으나 대부분의 투표소들에서는 수십명 또는 수백명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지어 섰다.이날 가자지구의 이만 샤피 국민학교에서 제일 먼저 투표를 하고 나온 움 사미르는 『우리의 대표는 아부 아마르(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장의 애칭)이다.우리는 우리를 위해 좋은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투표일의 날씨는 쌀쌀하지만 햇볕이 내리쬐고 쾌청해 자치정부의 출범을 환영하는 듯했다.가지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축제분위기속에서 한껏 차려입고 입가에는 웃음을 띤 채 속속 투표장으로 향했다.흰색 차도르를 머리에 쓰고 가자지구의 시파 병원에 설치된 투표소에 도착한 18세의 아부 하마양은 『아침부터 혼잡할 것이라고 생각해 일찍 왔다』면서 『생애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대표와 평의회를 선출하게돼 감개가 무량하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유권자들은 투표소 밖에 비치된 긴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먼저 대표를 뽑기 위한 붉은 색 투표용지를 받은뒤 자치평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흰색 투표용지를 교부받았다.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선거를 하루 앞둔 19일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번 선거에 반대하고 있는 회교 과격세력인 하마스 민병대원 3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연쇄적인 선거 폭력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예닌시에서는 하마스의 무장 투쟁을 지지하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나와 『복수,복수』를 외치고 선거 포스터를찢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국제선거감시단원의 일원인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경찰들이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 경찰이 동예루살렘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는 한편 투표소로 들어가는 유권자들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들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유권자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경찰의 한 대변인은 카터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경찰병력 배치는 폭력사태 예방을 위한 것이고 비디오 촬영은 문제발생시 『관련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황영시·최세창·장세동·이학봉/허삼수·허화평·정호용·박준병의원 국회 끝난뒤 영장청구/“22일 내란혐의 일괄기소”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7일 두사건 전개 및 처리과정에서 군권 및 정권찬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학성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최세창3공수여단장,이학봉보안사 대공수사과장,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 등 5명을 내란 및 군형법상 반란중요임무종사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오는 22일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기소하면서 불구속 기소자들과 함께 이들을 일괄적으로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허삼수 당시 보안사인사처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정호용특전사령관,박준병20사단장 등 현역 국회의원 4명도 국회회기가 끝나는대로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국회로부터 체포동의안을 발부받아 회기중에 구속하는 안도 함께 고려하고 있으나 동의안의 부결가능성 등여러가지 점을 감안,국회회기가 끝난 뒤에 사법처리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소·고발인가운데 이날 구속된 5명과 현직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권정달보안사보안처장 등 관련자 15명 안팎을 불구속 기소하고 10여명을 기소유예 처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환서울지검장은 이날 이와 관련,『앞으로 현역의원을 제외하고는 추가 구속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장세동씨의 구속과 관련,『12·12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의 허락없이는 출입이 일체 금지됐던 수경사30경비단을 모임장소로 제공하는 등 반란군지휘부를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또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를 설득해 육본측의 병력출동을 저지하고 정승화육참총장 연행할때 30경비단소속 5분대기조 80여명의 병력을 총장공관으로 출동시켰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육참총장 연행 및 대통령재가에 핵심적 역할을 맡았으며 5·18이후 정치인과 재야인사 체포를 주도한 혐의가 적용됐다. 유씨와 황씨는 경복궁모임에 참가한 이외에도 2기갑여단과 30사단을 중앙청과 고려대에 진주시키는 등 육본측의 병력동원을 저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5·18당시에도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고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데 적극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또 경복궁모임에 참가한 것을 비롯,정병주특전사령관을 체포토록 지시하는 등 특전사령부를 유혈 진압한뒤 경북궁에 예하 병력을 진주시켰다는 것이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전씨 수뇌혐의 추가기소/오늘/이원조·사공일씨 불구속 기소

    ◎「5·18」 사범처리대상 선별착수 12·12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 3차장)는 12·12사건과 관련해 반란 수괴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두환전대통령에 대해 12일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를 추가해 기소키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기소대상자는 전씨를 비롯,10일 구속된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과 성용욱전국세청장,불구속 입건된 안무혁전안기부장 등 4명에다 이원조전의원,사공일전청와대경제수석 등 2명이 추가돼 불구속 기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한 뒤 이날 하오 2시 서울지검 소회의실에서 전씨 비자금 사건의 전모와 관련자들의 혐의 내용을 공식 발표키로 했다. 이본부장은 이와 관련,『전씨 비자금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민들이 많아 우선 드러난 사실만 발표키로 한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비자금 수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원조씨는 5공 시절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도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로 기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씨비자금 규모는 조성총액 5천억원대,잔액은 부동산 은닉 부분과 양도성예금증서(CD) 및 채권 등 금융자산을 포함해 1천억원대』라고 밝히고 『이 가운데 뇌물로 볼수 있는 2천억원대를 포함해 관련자들의 혐의내용이 수사결과 발표문에 상세히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4∼6명 구속 기소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 3차장)는 11일 이 사건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사실상 마무리짓고 이날부터 사법처리 대상자를 확정하기 위한 선별작업에 착수했다. 사법처리 대상으로는 ▲「경복궁모임」 가담자 ▲보안사팀 ▲정승화씨 연행 및 병력동원 지휘관 ▲광주 진압 주요 지휘관 등 40여명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4∼6명만을 구속기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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