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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로 읽는 병무행정/국방부 이달 중순 발간

    병무청이 6월 중순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로 읽는 병무행정 가이드’(가제)를 펴낸다.집필은 해양소설가로 알려진 千金成씨가 맡았다. 3부 350쪽 분량으로 입영절차,복무형태 등 군입대에서부터 제대 뒤의 동원소집까지 복무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총망라했다. 딱딱한 내용을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 써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병무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지금까지는 병역에 대한 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어 쓴 사례집이 발간됐을 뿐이다. 제1부에서는 병역 의무,병역제도 변천사,병역 종류,징병검사,재학생 입영,병력 동원(훈련)소집,외국 병역제도 등을 소개했다.중간 중간에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낼 부모 등의 심정을 잔잔하게 곁들인다. 제2부는 육·해·공군 별로 장교 준사관 하사관 특기병 군무원의 모집 절차를 안내했다. 병역법을 요약한 3부에서는 어려운 병무 용어를 풀어 쓰고 PC통신을 이용한 민원 안내와 전국 병무청 지정병원 등 병무 행정 관련 홈서비스를 실었다.
  • 새 대통령 내년 3월 선출/印尼 대학생 시위 軍 동원 봉쇄

    【자카르타 외신 종합】 인도네시아는 내년 3월쯤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한 측근은 20일 내년 1월쯤 총선거를 실시해 새 대통령을 선출할 국민협의회(MPR)를 구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초대위원 명단을 21일 발표키로 했다. 의사당으로 하르모코 의장을 방문했던 학생 대표들은 하르모코 의장이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22일까지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은 수라바야,반둥,족자카르타,메단 등지에서 수하르토의 즉각 사임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특히 수하르토의 고향인 요가카르타에는 25만명의 시위군중이 몰리기도 했다.그러나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병력이 15만명이 동원된 자카르타는 시위가 원천 봉쇄되면서 대체로 평온했다. 회교지도자로 대표적인 재야인사인 아미엔 라이스는 이날 상오 돌연히 학생 지지 시위 다짐을 번복했다가 정오쯤 의사당 시위현장을 방문해 “현 체제에서의 개혁은 있을 수 없다”며 군 지휘관들에게 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 중무장 15만 병력 시위 원천봉쇄/印尼 ‘국민각성의 날’이모저모

    ◎탱크 등 동원 도심진입 막아/중앙은행 사상 첫 임시휴무 【자카르타 외신 종합】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인도네시아의 반정부 시위가 20일 일단 소강상태를 보였다. 군병력이 예상됐던 시위를 원천봉쇄한데다가 수하르토 체제를 반대하는 층들도 유혈사태를 우려해 ‘국민 각성의 날’ 시위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둥과 보고르 등 주요 도시에서는 산발적으로 시위가 이어져 인도네시아는 폭풍전야의 정적을 실감케 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이날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시위를 막기 위해 집회장소로 예상된 대통령궁 부근 모나스광장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봉쇄했다. 15만여명의 병력은 모나스 광장 이외에도 탱크와 중화기를 동원해 중심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쳤다.상공에서는 하루 종일 헬리콥터가 경계활동을 폈다. 한편 1만여명의 대학생들은 3일째 국회의사당 건물을 점거,농성을 계속했다.강경파 학생들은 “수하르토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대통령의 총선후 사퇴 주장을 일축. ○…유혈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케 된 것은 수하르토의 조건부 사임의사 표명으로 김이 빠진데다 일부 반정부 지도자들의 시위 자제 요청이 주효한 탓으로 풀이된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해 왔던 회교지도자 아미엔 라이스는 이날 예상을 깨고 반정부 인사들에게 대규모 가두시위 자제를 요청. 그러나 정오쯤 학생들이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국회 의사당에 도착, 열렬한 박수를 받는 등 반정부세력의 중심인물로 자리를 잡아가는 인상이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자카르타의 상황악화로 이틀간 휴무를 실시한다고 발표.소요사태 이후 중앙은행 업무가 전면 중단되기는 이번이 처음. 한편 자카르타 북부의 탕그랑 등에서는 지난주에 있었던 폭동 때 약탈한 냉장고,TV,핸드폰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장물시장이 곳곳에서 들어서기도.
  • 수하르토 진영 사분오열 조짐/‘럭비공 印尼 사태’ 이모저모

    ◎美 “수하르토 美 망명 요청 없었다”/회교 지식인 단체 조기대선 촉구/한국 교민 2천여명 잔류 여부 고심 【자카르타 외신 종합】 소강국면을 보이던 인도네시아의 반정부 시위가 재개되고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의 하야 압력이 거세지면서 수하르토 진영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8일 발표될 예정이던 수하르토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아무 설명없이 안나온 것은 수습대책 마련을 놓고 수하르토 진영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부르기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에 미국에 망명토록 허용해 달라는 요청은 없었다고 언급. 유럽연합(EU)·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 와 있는 클린턴 대통령은 회담 폐막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의 운명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 클린턴은 또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를 직접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정치적 대화의 부재가 분명히 이 나라의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간접적인 비판을 가하고“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지도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 ○…상오 10시30분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 촉구시위는 탱크를 동원한 무장 군병력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를 이용,대학생과 시민들이 속속 몰려들어 당초 200여명이던 집회 참가자 수는 정오를 넘어서면서 3천여명으로 급증. 참가자들은 ‘리포마르시(개혁)’를 연호하면서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를 거듭 촉구. ○…인도네시아 회교 지식인들은 17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지난 3월 재선된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임기 종료 이전에 대선을 실시할 것을 촉구.저명한 극작가와 칼럼니스트,경제학자 등이 회원인 소장파 회교 지식인 단체는 “수하르토의 대통령 재임과 집권이 종식돼야 한다”며 오는 2000년 1월 이전에 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의회 구성에 관한 법률 등을 제정하자고 주장.이 단체의 대표인 누르촐리스 마지드는 특히 수하르토 대통령 일가는 개인재산을 헌납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인도네시아 당국은 18일 며칠 전 폭동과 약탈 과정에서 신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탄 주민들의 시신 203구를 자카르타 동부의 폰독 란곤 시립묘지에 매장했다. ○…자카르타에서 약탈 및 폭동 과정에서 5백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면서 은행 업무가 전면 중단되자 돈을 찾으려는 시민들은 아직 작동되고 있는 현금자동인출기로 수백명씩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뤄 몇시간씩 기다리는 모습.모든 은행 창구와 자동인출기는 지난 14일의 방화와 약탈 사태 이후 폐쇄됐으나 약탈을 모면한 일부 자동인출기는 아직도 대고객 서비스를 하고 있는 상태. ○…인도네시아의 정정불안이 심화되면서 국외로 탈출하려는 외국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한국 교민들이 의외로 많다. 인도네시아에서 온갖 고생 끝에 자리를 잡은 삶의 터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못하는 교민들은 2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군 20만명 엑스트라 출연/北,홍콩과 영화 합작

    【홍콩 연합】 북한이 해외 영화 합작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홍콩 마이다스영화사의 공동대표인 장즈량(張之亮·38) 감독은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의 전쟁이야기를 다룬 영화 막꽁(墨攻)을 북한에서 공동 제작키로 한데 따른 타당성 조사를 위해 10명의 실무진과 함께 오는 27일 베이징(北京)을 경유해 평양으로 떠난다고 26일 밝혔다. 홍콩의 대표적 감독중의 한명인 장 감독은 12일간의 이번 북한 방문에서 촬영장소로 예정된 정주산성(定州山城),금강산,해금강 등을 현장 답사하고 구체적인 제작 경비 산출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후 북한측과 최종 합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타당성 조사결과에 따라 빠르면 오는 8월말쯤 북한에서 영화를 합작으로 촬영해 오는 11월초 서울,홍콩 등 세계 각지역에서 동시 개봉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작 내용은 홍콩 마이다스가 자본과 기술을 대고 북한측은 최고 20만명의 병력을 엑스트라로 동원하는 것을 포함해 현지 촬영 장소 및 숙식 비용과 일부 배우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돼있다고 장 감독은 밝혔다.
  • “6월 선거 필승” 강력한 야당 기치/전당대회 이모저모

    ◎1만1천여명 참석… 여당 연합공천 등 비난/요란한 행사 생략… 對與 투쟁 영상물 이채 한나라당이 4·10 전당대회를 통해 강력한 건전야당의 기치를내걸었다.당직자,대의원 등 1만1천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 한나라당은합리적 견제와 비판적 협력으로 국정의 한 축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졌다.새로 출범한 총재단은 당내 결속과 단합을 통해 4·2재보선 압승의 여세를 6월 지방선거 승리로 몰아갈 것을 다짐했다. 행사의 절정은 趙淳총재와 李會昌 명예총재가 재추대되고 5명의 부총재가지명되는 순간이었다.이들은 趙총재와 李명예총재를 중심으로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했다. 趙총재는 취임사에서 “여권이 연합공천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국민회의 자민련 국민신당 3당 야합을 획책하는 것은 망국적인 신(新)지역감정의 조장이며 지역 분할통치의 음모”라고 통렬히 비판했다.李명예총재는 치사에서 “정부 여당이 북풍이다 정계개편이 다하여 구시대 권력정치에만 열중하면 민주주의도 경제회복도 국민대통합도 실종될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했다. 李漢東 부총재는 “총재를 중심으로 뭉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金潤煥 부총재는 “국익을 위해서는 협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정권에 대해서는 야당의 자세를 확고히 지키는 건전하고 건강한 야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基澤 부총재는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된 조국에서 중앙청 수위라도 하고 싶다’고 했던 정신으로 당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열변을 토했다.辛相佑 부총재는 “허탈감과 좌절감을 벗어 던지고 집권여당과 당당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자”고 촉구했다.金德龍 부총재는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기위해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趙총재의 가필로 논란을 일으킨 당헌당규개정안 부칙2조에 대해서는 金榮馹 제1사무부총장이 제안설명을 통해 “趙총재가 당무운영위에서 부칙2조가 대의원의 전대소집 요구를 배제한 의미가 아니며 ‘소집한다’는 ‘소집하여야 한다’는 뜻이란 점을 분명히해 조문상 오해를 완전 해소했다”고 보고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여당때 연예인이 동원된 요란한 식전행사가 간단한 난타공연과 ‘선구자’합창으로 대체됐다.현 정부 출범뒤 대여(對與)투쟁 상황을 담은 영상물을 방영,야세(野勢)를 과시하기도 했다.특히 玄敬大 헌정수호비상대책위원장과 李圭正 제2사무부총장이 金鍾泌 총리서리 체제의 위헌성을 공박하고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고발하는 성명을 각각 낭독,열기가 고조됐다. 4·2 재보선에서 당선된 朴槿惠 의원 등이 소개될 때는 승리를 자축하는 박수가 울려 퍼졌다.그러나 경제난을 감안,팡파레·축포 등 특수효과는 사용하지 않았다.여당때처럼 엄격한 출입통제나 경비병력도 눈에 띄지 않았다.
  • 빨치산 토벌(대한민국 50년:13)

    ◎49년 ‘레드 킬러 작전’ 3,400여명 사살·생포/군검,지리·오대·태백산일대 주민 90% ‘적색’ 분류/48년부터 6·25휴전후까지 산악지대서 ‘소탕전투’ ‘낮에는 대한민국,밤에는 인민공화국’. 빨치산의 점령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낮에는 군경의 치안아래 있으나 밤만 되면 빨치산의 점령구로 바뀌었다.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한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48년부터 50년 사이 일부 남한지역은 이처럼 사실상‘무정부 상태’였다. 봄바람이 북풍을 녹이기 시작하던 49년 3월.1백여명의 빨치산은 전남 곡성군에서 군경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경찰 사망자 수는 1백여명이고 통신도 파괴됐다.보성 화순 순천 나주 함평 구례 영광 등에서도 비슷한 전투가 잇따랐다.그해 8월 전남 화순도 더위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3백여명의 빨치산은 광부들과 연합해 철로,통신시설을 차단한뒤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관을 무참히 학살했다.호남지역 빨치산 활동의 중심은 역시 험준한 산세를 갖고있는 지리산 일대. ○48년 ‘여순사건’서 촉발 경상북도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빨치산이 은신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일월산 부대’의 지휘자는 유명한 金達三이었다.일제 또는 미제 소총으로 무장한 빨치산은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했다.국군 1개 중대는 빨치산의 공격으로 4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경북지역 가운데 봉화 영덕 영주 등의 동북지역에서 빨치산은 발호했다. 대중과 연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일컫는 빨치산은 48년 10월의 여순사건으로 촉발됐다.토벌 군경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은 소규모 유격전을 벌였다.49년 6월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은 더위 만큼 날뛰었다.조국전선을 결성한 북한이 게릴라를 대거 남파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은 게릴라 전문양성기관인 ‘강동정치학원’을 설치해 게릴라들을 훈련시킨뒤 남으로 내려보냈다.때로는 남한에서의 투쟁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남한내 빨치산을 북으로 불러 올려 교육시켰다.강원도지역도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빨치산들과 어울려 유격활동을 했지만 남쪽지역에 비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빨치산의 활동은 49년 9월들어 절정에 달했다.정규군 편제인 병단을 만드는가 하면 중대 소대 분대도 편성됐다.심지어 여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무기와 탄약은 북한으로부터 보급받았으며 생활은 현지보급에 의존했다.산악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은 이즈음해서 산을 내려온다.경찰서와 군부대를 공격하는 ‘아성(牙城)공격’이다.목포형무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해 1천4백여명의 죄수 가운데 4백여명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李承晩 정부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다.전국을 지리산,오대산,태백산 지구로 나눠 빨치산 토벌 동계 대공세를 벌였다.38선에서의 대치와 충돌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산악지대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빨치산의 수는 1만여명.하지만 빨치산과의 전투보다 추위와 눈보라와의 싸움은 토벌을 더욱 힘들게 했다.빨치산은 지리산이나 일월산처럼 산세가 험하거나 외진 곳을 주 근거지로 삼았던 탓이다.빨치산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당시 관계자들은 회고하고 있다.군경은 주민 가운데 90%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주민들은 빨치산 편으로 분류됐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군경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빨치산의 보복과 경찰에 대한 반감·증오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6일 李承晩 대통령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단시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끝내고 명년 초에 후방치안문제로 유보해오던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다”고 빨치산 소탕작전을 독촉하는 발언을 했다.토벌군은 마을을 불살라 유격대를 주민들과 분리시키는 ‘소진(燒盡)소개(疎開)작전’으로 빨치산의 끈질긴 저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체포로 “작전 끝” 정부군의 진압에 49년 겨울을 지나면서 게릴라들은 차츰 소멸돼 갔다.12월 15일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인 ‘레드 킬러’로 1천7백여명의 빨치산이 사망했고 1천7백여명이 생포됐으며 132명이 귀순했다.이에 앞선 그해 10월 좌파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남로당에 대한 등록취소령도 남한내 빨치산 활동에 조종(弔鍾)을 울리는데 일조를 했다.50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졌다.마치 6월의 한국전쟁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빨치산 토벌작전은 한국전쟁이 끝난후까지도 여전히 계속됐다.53년 5월17일 빨치산 소탕 작전사령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틀림없이지리산 벽점골 비트에 잠복중입니다”.작전과장의 설명에 장교들은 침을 삼켰다.남한내 빨치산의 총지휘자이자 충청 경상 전라도를 넘나들며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던 남부군단 사령관 李鉉相.종적을 감춘지 3년만에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여순사건의 지휘자였던 金智會 등을 체포해서 밝혀낸 쾌거였다. 치밀한 작전계획 아래 포위망을 좁힌 것은 그로부터 5개월뒤.李鉉相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4개 연대였다.9월 18일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1연대는 운봉을 출발해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해 반성리에 포진했으며 3연대는 노고단을 경유에 반야봉으로,5연대는 함양을 경유해 백무동 능선을 압박해 나갔다. 2연대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바스락 소리에 돌격대는 숨을 멈췄고 수십미터 앞에는 잡초를 헤치는움직임이 포착됐다.빨치산 3명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리가 5m 앞으로 좁혀졌을때 돌격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숨진 빨치산가운데 한명이 李鉉相.이로써 기나긴 3년동안의 빨치산과의 전쟁은 끝났다.당시 李承晩 대통령이 완전히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것이 빨치산 토벌이었다. ◎약간의 마을 파괴” 미 반공시각 파악/일부 국내학자들 “지금이라도 진산규명” 주장/“민족사 정립 차원 특별법 제정해야” 빨치산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빨치산진압작전은 ‘모조리 죽이고,모조리 태우고,모조리 빼앗는(殺光,燒光,槍光)’다는 ‘삼광(三光)작전’.일본군이 만주 및 한만 국경지역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할 때 사용하던 전술이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게릴라가 아닌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군경의 초토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49년 경남 하동과 경북 문경에서는 국군이 마을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집단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국회에서도 “민중들의 삶의 근거지를 빼앗고 좌익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李靑天 국방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빨갱이 소탕’이라는 지상명제에 밀렸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영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서는 “별로눈에 띠지 않는 약간의 마을 파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드럼라이트영사의 보고서는 다분히 반공논리에 의해 작성된 측면이 많다.“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비공산주의자 청년들을 가려 뽑아 그들을 좌익과 같이 견고하고 무자비한 행동에 맞설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특별법을 제정해 ‘민족사 정립을 위한진실규명 국민위원회’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제주 4·3사건의 피해자·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요즘들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4·3사건과 빨치산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져 50년동안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북 대규모 무장 시위

    【베이징 연합】 북한은 22일 상오 수도 평양에서 대규모 무장시위행진을 벌였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시위대열이 20여대의 탱크를 비롯해 40여대의 장갑차,15대의 병력수송차 등 100여대의 차량으로 이뤄졌으며 그외에 자주포와 로켓포 등도 동원됐다고 전했다.
  • 이라크,자원 병력 동원령/후세인 지시

    ◎무기사찰 싸고 미와 갈등 고조 【바그다드 AFP AP 연합】 이라크가 미국인 단장이 이끄는 유엔무기사찰단의 사찰활동을 금지하면서 미국과 또다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7일 미국과의 대결 가능성에 대비해 자원병 동원령을 내렸다고 이라크 관영 INA통신이 보도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집권 바트당 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의 적들인 미국과 시온주의가 악의 길을 계속 걷고 있으며 그들이 비열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소한 핑계를 찾으려 하고 있다”면서 동원령을 지시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 탈주범 포위망 벗어난듯/천안서 쏘나타Ⅱ 도난신고… 추적 나서

    탈주범 신창원(30)을 쫓고있는 경찰은 12일 상오부터 태화산 일대 등에 대한 수색작업을 재개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 전투경찰 11개 중대 1천2백여명의 병력을 동원,태화산 10여개 봉우리와 인근 야산에서 산악수색을 벌이는 한편 천안 아산 공주시내와 조치원 읍내에서 불심검문을 전개했으나 신의 행적을 찾는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이 이미 다른지역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신이 지난 10일 대전 모정형외과에서 왼팔 골절치료를 받았으며 11일 경찰관 2명과 격투중 머리 등에 상처를 입은 점으로 미뤄 인근 병원과 약국 등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12일 상오 5시 20분쯤 천안시 성정동 비자이발소 앞에 세워져 있던 최모씨(50) 소유의 충남31나 4368호 쏘나타Ⅱ 승용차가 없어졌다는 신고에 따라 이번 사건과의 관련 여부를 조사중이다.
  • 외국인에 우호적… 곧 풀려날듯/한국인 납치 사건 안팎

    ◎예멘 정부 소수 부족 협상 성사가 관건/현지 공관 자제… 인질범 몸값 요구 없어 【카이로 연합】 예멘 당국은 지난 5일 납치된 허진 1등서기관 가족들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군·경 병력을 동원한 수색 및 막후 협상 등 강·온 양공작전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범인들의 정체와 석방 전망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 외교소식통들은 8일 예멘은 1천700여개의 부족과 씨족으로 구성된 다부족사회인 만큼 예멘당국도 물리적인 해결 보다는 부족장과 유지 등의 중재를 통한 협상을 주로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납치범들이 예멘의 소수부족인 알 하다족 소속 납치전문범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부족은 비교적 온순하고 외국인에 우호적인 소수부족으로 알려져 있다.또 지난해 10월 러시아의사 부부를 20일간 납치 억류했다가 풀어준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협상 방식과 요구사항도 타부족에 비해 온건할 것이라는 것이 현지 전망이다.따라서 예멘주재 한국대사관은 예멘정부의 국내문제 해결방식에 따르는게 가장 안전한 수순이라는 판단에 따라 자체 석방노력을 자제하고 있다. 게다가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하고 있진 않으며 부족의 이해와 직결된 불만이 범행의 직접 동기일 가능성이 높아 예멘 정부가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지난 4년간 발생한 대부분의 인질사건이 한달을 넘기지 않았고 단 한명의 인명피해자가 없다는 점도 사건의 조기해결 전망을 밝게 해준다. 예멘은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대표적인 아랍국.민족 구성원으로 보면,아랍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인 티하마흐 해안평원지대 주민들과 순수 아랍인들인 기타 지역주민으로 크게 나눠진다.또 종교적으로는 시아파 회교도인 북부 산악지대의 자이디족,수니파 회교도인 북부와 남부저지대의 샤피이 부족으로 구분된다. 4개 계급구조를 갖고 있으며 부족에 따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구조와 견해를 갖고 있다. 1천700여 부족과 씨족들은 족장인 셰이크의 지도를 받는다.부족간의 연합은 중앙정부 요직 선출에도 강한 입김으로 작용한다.지방 부족사회는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치를 행사,자체 무장을 하고 사우디의 재정지원으로 상당수준 재정자립을 갖추고 있다. 예멘정부는 이들의 반발과 정부전복 기도를 막기 위해 최근들어 부족사회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셰이크들을 매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부족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새 발굴 자료와 증언으로 다시쓰는 현대사(대한민국 50년:1)

    ◎바람속에 밝힌 등불/1948년 8월15일 감격의 새아침 열리다/유엔 총선감시단 평양행 좌절되고/좌·우 이념대립속 ‘5·10선거’ 실시/해방 3년만에 반공정권 탄생/미 군정 정책 혼선으로 우익진영은 분열되고 북은 빨치산까지 양성/정부 권력구조 싸고 이승만·한민당 또 갈등/끝내 ‘대통령중심제’로 올해 1998년은 대한민국 정부를 선포한지 50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다.그 반세기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파란만장한 당대사다.그럼에도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했던 여러 공화국의 정치상황 때문에 가려진 부분을 다 들추어내지는 못했다.또 전통주의의 수정주의에 입각한 학계의 양극화 현상은 현대사가 더러 왜곡 기술되는 오류도 드러냈다.그래서 서울신문은 새로 발굴한 자료와 생존자의 증언으로 엮은 주간기획물 ‘대한민국 50년’을 연재키로 했다.이 시리즈는 우선 대한민국 50년 역사속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이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다가오는 21세기 미래사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작업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새해가 밝았다.세밑 그믐날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활짝 개었다.수은주는 영하 11도7분까지 내려가 기온은 쌀쌀했지만,날씨만큼은 쾌청했다. 우리 민족에게 새해 원단은 늘 각별한 것이었다.해방을 맞고나서 세번째 돌아온 새해는 더욱 그러했다. 전해인 1947년 11월14일 유엔 총회가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채택해 두었던 터라 고무적일 수 밖에 없었다.유엔총회의 한국독립 계획안은 1948년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 및 정부를 조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1947년 봄부터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을 구상했다.미국의 대외정책문서(FRUS)에 나타난 이같은 구상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시사하는 것이었다.미·소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반도문제를 합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소련은 한반도문제의 유엔 이관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섰다.그 대신 1948년초까지 남북한 주둔 미·소병력을 동시에 철수,한국인들 스스로가 외부개입 없이 정부를 수립하자는 제의를 내놓았다. 소련의 제의는 명분상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당시 남북한 현실을 비교하면 남한쪽에는 위험한 것이었다.북한에는 이미 소련의 지원에 따라 사실상의 정부로 보아도 무방할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이와는 달리 남한에는 권한과 지지기반이 취약한 남조선 과도정부가 있기는 했다.그러나 미군정의 일관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우익 민족진영은 분열된 상태였고,북한의 조정을 받는 강한 공산세력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서 1948년 새해 첫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큰 사건 하나를 딛고 넘어갔다.이날 경무부장 조병옥은 이른바 ‘인민해방군’사건을 서둘러 발표했다.그런 어수선한 판에 1월4일에는 38선을 경비하는 북한 보안대원들로부터 황해도 연백경찰서 장곡지서가 습격되었다.그리고 15일에는 개성경찰서 여현지서가 피습되는 가운데 남로당 출신으로 이루어진 야산대라는 이름의 빨치산이 전국에서 설쳤다.이들 야산대는 소규모 빨치산에 불과했다.그러나 북한은 대규모 게릴라전을 위해 이 해에 평남 강동학원을 차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떻든 유엔 감시아래 한반도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키로 한 유엔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이에따라 총선을 감시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유엔한위·UNTCOK)이 1월8일 김포비행장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서울에서는 영등포공업지대 근로자들이 임금인상과 고용직 근로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간 날이었지만,시민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날 KPS메논 인도 대표와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 등 3개국 대표가 먼저 도착한데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서울에 왔다.유엔한위 1진이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유엔한위가 북한에 한 발도 못 들여놓을 것이라는 김일성 발언이 나왔다.그 때만해도 의례히 해보는 상투어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미군정연락장교편에 평양으로 보낸 유엔한위의 입북신청은 소련군사령 참모장에 의해 거절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유엔한위는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하는 문제를 놓고 미군정과남한 정치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연속회담을 열었다.우파에서는 남한 단독선거를 환영했으나 우익중에서 김구의 한국독립당은 반대했다.그리고 김규식을 주축으로 한 중도파도 통일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에 섰다.좌익도 물론 반대했다. 유엔한위는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와 부합되는지를 놓고 고심했다.그러다 이 문제를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소총회는 2월19일 유엔한위의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 우선 총선을 실시하자는 미국의 안을 받아들였다.투표결과는 미국 입장에 대한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나타났다.유엔 소총회가 남한 단독선거쪽으로 손을 들어주자 유엔한위는 곧 바로선거준비에 들어갔다.그리고 정치권에서도 이승만 중심의 우익진영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미군정은 우익진영과 협조하여 선거준비에 들어가는 한편 3월17일에는 국회의원 선거법을 제정발표했다.전통적인 민주선거원리에 입각한 이 선거법은 21살 이상의 남녀 모두를 유권자로 규정했다.이 선거법에 나타난 특이한 점은 일제에 빌붙어살았던 부일협력자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 박탈이다.새 정부의 민족정통성 확립을 위한 것이었는데,일제 청산은 뒷날 이승만정권에 의해 퇴색되었다.선거일은 처음 5월9일로 정했으나 일요일 투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음날인 10일로 바꾸었다.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남북협상에 운명을 걸고 평양으로 떠났던 김구와 김규식이 5월5일 서울로 돌아왔다.5·10선거를 방해하려는 북한 의도에 말려들었을 뿐 남북협상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5·10선거 역시 예상했던 대로 평온하지 못한 분위기속에 진행되었다. 총선거에는 대한독립촉성회,한민당,대동청년단 말고도 45개 군소정당이 나왔다.특히 무소속이 많아 전체 당선자 198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5명이 무소속이었다.이어 대한독립촉성회가 55명,한민당이 29명,대동청년단이 12명,다른 군소정당과 사회단체가 19명의 국회의원을 냈다.이들이 바로 제헌의원인데,국회는 5월31일에 개원되었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을 의장에,신익희와 김동원을 부의장에 선출했다. 제헌국회는 7월17일에 열렸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의 주장대로 대통령중심제를 권력구조로한 헌법을 통과시켰다.그리고 7월20일에는 헌법에 따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7월24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헌법 골격을 가지고 갈등을 빚었던 한민당과 또 격돌을 벌였다.이승만은 귀국 이후부터 자신을 추종하면서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준 한민당을 각료 선임에서 소외시켰던 것이다.그래서 민국당에 이어 민주당으로 개편한 한민당의 뿌리는 1960년 4·19혁명기까지 이승만과 영원한 정적이 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선포식은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 광장에서 베풀었다.미군사령관 J R 하지 중장은 미군정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해방을 맞은지 꼭 3년만에 독립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극심한 혼란속에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 군정의 갈등,공산주의 세력들과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태어났다.그러나 제1공화국이라고도 말하는 내정체제하의 반공정권은 그 장래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로부터 50년,꼭 반세기를 맞은오늘 험란한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야당지도자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새 정부가 막 돛을 올릴 참이다.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이 걸어온 반세기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그 역사속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한 여러 단계의 공화국이 기록되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창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21세기 한국,내 한표가 선택한다/소중한 주권 빠짐없이 행사를

    ◎시민단체들 바른 후보 뽑기·부정방지 홍보/경찰청 전국에 갑호 비상령… 부정단속 강화 ‘선택의 아침’이 밝았다. 18일 상오 6시부터 실시되는 투표 결과에 따라 선출되는 제15대 대통령은 21세기 새로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신중하고도 후회 없는 선택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차기 대통령에게 최악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한표의 주권을 행사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김홍우 교수(정치학과)는 “이번 선거는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달린 중요한 선거이므로 유권자들은 결연한 심정으로 투표에 참여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규의 공보과장(48)은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꼼꼼이 따져보고 모두 투표에 참가해 달라”면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의 신분증과 도장을 꼭 지참하고 투표소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특히 경로우대증이나 회사신분증 등은 인정되지 않으며 투표용지가 훼손되면 무효처리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강대생 박준경군(21·국문과 3년)은 “처음 해보는 투표라 마음이 설레지만 어려운 시국이므로 비전이 분명한 후보를 신중하게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부 권원숙씨(28·서울 용산구 청파동)는 “서민들이 안심하고 살도록 나라를 이끄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순 부장(39)은 “투표율이 높으면 대통령 당선자가더욱 큰 책임감을 느껴 경제난국을 해결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다 경제침체마저 겹쳐 투표율이 매우 저조할 것을 우려,유권자들의 선거 참가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각 후보자의 정책 도덕성 지도력 등에 대한 점수를 매겨 선택하면 올바른 지도자를 뽑을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는 19일 개표가 끝날 때까지 24시간 부정선거 감시체제를 가동하면서 선관위의 협조를 얻어 전국 1만6천407곳의 투표소에 선거감시반을 파견하기로 했다.한편 경찰청은 17일 전국 경찰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인원과 장비를 총동원,전국 303개 개표소마다 3∼4명의 채증조와 1개 중대의 경비 병력을 배치했다.
  • 침술(외언내언)

    질병을 찾아내고 퇴치하기 위해 수많은 요법을 개발해온 서양의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술인 동양의 침술을 인정하게 되었다. 침술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작업을 벌여온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은 침술의 효능에 대해 ‘침술로 인한 신경자극은 뇌하수체 등의 활동을 더욱 활성화시키며 신경호르몬과 혈액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고 밝힌다.스위스의 피에르 콘느박사는 ‘경락은 인체의 전기저항경로와 흡사’해서 저항의 유형을 관찰한 결과 관상동맥혈전증의 발생을 현대식 심전도에 나타나기 수개월전에 탐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침술전문가들은 최첨단 의료기기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심장질환을 그 자리에서 진단해낸다.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고작 한벌의 침과 4천500여년전에 쓰여진 중국의 ‘황제내경’이라는 의학서적뿐이다. 침술의 기초를 이루는 철학은 기원전 3천년경에 살았다는 황제 복희씨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전승되어온 바로는 그는 ‘역경’의 편찬자이자 팔괘를 처음 만들었고 백성들에게 사냥과 고기잡이,목축을 가르친 성군이다.이 책에서 그는 ‘우주는 음과 양이 대립되는 세계이며 인간의 신체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평소에는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몸에 병이 들면 음과 양의 어느 한쪽이 너무 많아지거나 너무 적어진다’고 쓰고있다.침술요법의 침은 바로 인체내의 음과 양의 흐름을 차단시키거나 자극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방법이다.또 숙련된 침술가들은 귀신같은 직감으로 맥을 짚어서 현재의 질병은 물론 과거의 병력과 미래의 질병을 진단하기도 한다.현대의 침술에서는 전통적인 석침이나 목침이 아닌 철침을 사용하고,필요한 부분에 자극을 주기 위해 계속 손으로 침을 돌리는 대신 바늘에다 약한 전류를 흘려보낸다.한때 침술은 그저 그럴싸하게 심리적인 안저을 느끼는 ‘플라세보(Placebo)효과’만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으나 침의 통증제어 효과는 인체내의 ‘자연 아편’으로 불리는 일군의 고통억제물질이 발견되면서 훨씬 이해하기 쉽게 됐다.바늘 하나로 경혈을 찔러 치명적 질환들을 고치는 동양 신비의 침술에 21세기를 지향하는 서양의 의사들도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나보다.
  • 류민 특파원,러 최정예 타만스카야사단 방문

    ◎러 정치격변속 중립지킨 ‘문화부대’/주임무 정부건물·요인보호/자체박물관 갖춰 전사 보존/중대원전원 2개방서 생활 러시아 최정예부대로 정평난 타만스카야사단을 우리나라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본사 모스크바 특파원이 방문했다.유사시 크렘린을 비롯한 수도 모스크바의 주요 정부건물 및 요인보호를 주임무로 하는 이 사단은 볼셰비키 혁명전후에 탄생,2차대전에 참전해 독일을 패퇴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러시아 군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이 사단은 또 지난 수십년간 각종 러시아의 정치적인 소용돌이속에서도 엄정한 중립을 지키온 군부대로 이름나 있다. 모스크바시 서남쪽 50㎞ 지점.러시아 최정예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타만스카야 사단은 오히려 민간인 가옥들이 적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시골 소로길을 따라 여느 민간가옥으로 들어가듯 느꼈을때 차량은 어느새 부대안에 들어와 있었다.주변위장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자를 따라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은 사단 역사박물관.이곳은 1917년 러시아혁명을 전후해 탄생한 이 사단의전사를 한눈에 잘 볼 수 있게 해놓았다.차르시대때의 각종화포와 군복도 이채를 띠었다.피터대제 때부터의 군 발전상이 잘 정리돼 있었다.가만히 보니 타만스카야 사단은 사병을 특히 아끼는 부대 같았다.2차대전때 전공을 세운 사람이라면 장군·사병 차별없이 소형구조물로 이름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우리네 사단에서는 보기 힘든 이같은 자체 박물관은 러시아 사단 수만큼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연병장으로 나섰다.한 중대 막사 앞에는 부동자세,거수경례 요령 등이 자세히 적힌 입간판을 볼 수 있었다.우리나라 연병장과 차이는 없었다.다만 사열대 옆에는 역대 사단장을 동부조물로 만들어 놓아 방문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윽고 들어간 곳이 사단의 1연대 1대대 1중대 내무반.내무반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선 한 사병이 힘껏 거수경례를 해댄다.하지만 중대원은 모두 훈련을 나가고 없다.내부반 침상은 우리가 소대 혹은 분대별로 따로 되어있는데 반해 중대원 전원이 두 방에 나눠 자도록 돼 있었다.한꺼번에 몰아넣는 이유는 유사시 동원을쉽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침상옆 다른 방은 10평 남짓한 사병휴게실.여기에는 전화 TV 체스 등이 구비돼 있었다.휴게실 벽은 사병들의 솜씨가 담긴 각종 벽화,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문화적’ 군대라는 인상이 들었다.장교 휴게실은 사병 내무반 맞은편 ‘클럽하우스’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이 클럽하우스에는 3층 정도 높이에 사단병력을 동시 수용하는 강당이 구비돼 있었다. 내무반을 다 돌 무렵 안내자는 일행을 훈련장으로 안내했다.1연대 소속의 훈련장이었다.타만스카야 사단은 우리식으로는 기계화 보병사단.반경이 10㎞쯤 되어보일 정도로 끝이 안보이는 이 훈련장에서 한 중대원이 명중율 100%를 자랑하는 대전차 로켓포 발사시범을 보였다.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할 무렵 갑자기 우뢰를 동반한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일행은 비를 피해 임시로 설치해놓은 천막안으로 들어섰다.임시로 가설해 놓은 천막이 곧 무너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10여분쯤 뒤 비가 그친뒤 일행은 임시천막을 빠져 나왔다.모진 폭풍우의 영향으로 천막주위의 수십년된 포플러 나무가 여기저기 뿌리째 뽑혀 있었다.또 주위 대부분 나무들의 가지가 상당수 부러져 있었다.최악의 기상에 임시가설된 텐트가 조금도 흐뜨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악조건을 견뎌내는 붉은 군대’였다.〈마루쉬키노〈러시아〉=류민 특파원〉
  • 미·중동국 사상최대 합훈 시작/7개국 5만여병력 참가

    ◎지중해연안서 9일동안 【알 오마예드〈이집트〉 AFP 연합】 미국과 이집트 등 7개국 병력 5만8천여명이 참가하는 중동지역 최대 합동 군사훈련 ‘브라이트 스타(밝은 별) 97’이 25일 지중해연안 사막지대에서 시작됐다. 미국해군 대변인 마크 베이드 중위는 “미국해군 제24 파견부대 해병 500명과 200명의 이집트 특공대원이 항공기 26대의 엄호를 받으며 7척의 선박으로부터 상륙했다”고 첫날 작전내용을 설명했다. 다음달 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훈련에는 미국·이집트·영국·프랑스·이탈리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7개국 병력 5만8천여명과 항공기 337대,전함 24척,탱크 수천대 및 기타 장비들이 동원된다.
  • 컴퓨터판매사 ‘1원 경품’ 5천명 몰리자 취소 소동(조약돌)

    ◎종로교통 한때 마비 ○…1원짜리 동전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휴대폰과 고급시계 등의 경품을 주고 컴퓨터를 할인 판매한다는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업체 ‘T존’의 광고를 본 시민 5천여명이 18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이 회사 주변에 몰려 큰 소동을 빚었다. 18일 상오 8시쯤 관철동에는 ‘개점기념으로 1원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에까지 이르는 경품 1천점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인파가 몰리기 시작,행사 예정시간인 상오 11시쯤에는 매장앞에 늘어선 시민이 5천여명까지 불어났다. 이 때문에 종로 일대 골목이 북새통을 이루고 교통이 한때 마비되자 경찰은 8백여명의 병력을 동원,시민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소동이 빚어졌다. 특히 회사측은 매장의 수용인원이 2백여명에 불과하다며 경품행사를 취소하고 개점행사를 1주일 연기,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이지운 기자〉
  • 미 항모 걸프 도착/이란은 대규모 해상훈련

    【두바이·테헤란 AFP AP 연합】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12일 이라크 남부 비행금지구역 정찰력 강화를 위해 걸프지역에 도착했다고 미 해군 대변인이 밝혔다. 이란이 걸프 북부해역에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에 들어간지 하루만에 이곳에 도착한 니미츠는 6척의 부속 군함단과 F­18,F­14기 등 75대의 함재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항모 본선에 5천500명,부속 군함단에 2천여명의 해군병력이 탑승하고 있다고 고든 흄 대변인은 말했다. 니미츠호의 파견은 이란 전투기들이 지난달 29일 이라크 남부의 반정부 무장단체 거점을 공습한데 대한 대응으로 항모 니미츠와 부속 군함단은 당초 싱가포르 기항을 마치고 이달 말쯤 걸프지역의 기지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한편 이란은 11일부터 ‘피루치­8’이라는 훈련명으로 미사일 공격함과 구축함·잠수함 등 50여척의 해군함정들을 동원한 대규모 해상 기동훈련을 시작했다.
  • 걸프지역 무력충돌 위기 고조

    ◎이란­미 항모전단 파견맞서 모의전쟁 연습/이라크­‘비행금지 구역’ 재침범땐 강력 대응 미국이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와 부속선단 병력·장비를 걸프만으로 급파시킨 가운데 이란은 이에맞서 8일부터 걸프만 북부에서 대규모 모의전쟁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며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반이란 단체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개선언하고 나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라크 역시 지난 5일 발생한 바그다드 주재 유엔산하 세계보건기구(WHO)사무소 건물 피습사건에 이란 정보기관이 연루돼 있다고 주장,80년∼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후 최근 호전됐던 양국유화감정이 반전될 상황으로 치달아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다른 한편에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회교무장세력인 하마스의 지도자 칼리드 마샬의 암살사건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와 중동평화문제가 복잡하게 꼬이는 등 이래저래 이 지역엔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항공모함단 파견은 이란이 지난달 28일 이라크 남부 쿠트지역에 반이란세력인 시아파들에 대해 공습을 감행하면서 지난 91년 걸프전 이래 설정된 비행금지 구역을 넘어들어온 것에서 비롯됐다.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미국이 이란이나 이라크의 모종의 움직임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란이 지난달말 테헤란 근처 사막에서 20만 병력을 동원해 기동훈련을 한데다 미국의 항모단 파견명령에 즉각 1만5천 해리상에서 러시아제 킬로급잠수함 3척등을 동원,모의 전쟁훈련을 하겠다고 나서는등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이란의 압바스 모흐타지 해군참모총장이 “적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에 결연히 맞서기 위해” 군사훈련을 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미국이 이란과 프랑스 토탈사가 맺은 20억달러의 가스전 개발계약을 저지하지 못하고 이란이 인접국과 우호관계가 증대되자 이 상황이 미국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이 지역을 상습 긴장지역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만하고 있다. 미국 역시 미군 파병전후 이에 대한 정확한 브리핑을 하던 관례를 벗어나 ‘가공할 무기선단’의 급파는 “국제사회가 미국에 부여한 책무를 완수하기 위함이라고만 말하고 있어 과연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에 대해 양측 모두 불명확한 상태이며,국제사회는 높아가는 긴장속에 그져 방관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 이라크,전군 동원령 발동/1급 비상전투태세로

    ◎터키의 쿠르드족 소탕 침공에 대응/시리아도 탱크1개사단 국경 파견 【앙카라 AFP 연합】 터키가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소탕한다며 이라크 북부지방을 침공한 이후 시리아는 터키,이라크와 함께 접경하고 있는 국경지대에 1개 탱크사단을 파견했으며 이라크는 전군 동원령을 내렸다고 한 이라크 재야단체가 29일 말했다. 이라크민족회의(INC)의 한 대변인은 “시리아가 최근 5천여명으로 구성된 1개 기갑사단을 시리아 터키 이라크가 함께 접경하고 있는 지역에 파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도 남부에 있던 메디나 기갑사단을 모술로 파병하고,모술의 부대를 쿠르드족과 대치하고 있는 전선으로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라크 정규군 전부대와 공화국 수비대가 모두 1급 비상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시리아가 터키의 이라크 침공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터키는 지난 23일 이후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일소한다며 1백여대의 탱크와 2만여명의 병력을 이라크 북부에 파견했으며 전투기를 동원해 이라크내 반군 집결지를 폭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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