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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여의도서 민중대회 3만명 평화시위

    ‘준법·평화시위’가 정착되고 있다.14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민주노총과전국연합 등 51개 노동,농민,종교,사회단체 회원 3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대규모 민중집회에 이은 거리 행진을 했으나 경찰과 충돌없이 끝나 성숙해진시위문화를 보여줬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여의도에서 열린 ‘생존권 보장 및 노동시간 단축,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민중대회’는 민주노총 등 단체가 참여 했다.이에따라경찰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 경찰 107개 중대 2만5,000명의 병력이 동원되는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참석자 3만여명은 집회를 갖는 도중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경찰의‘통제선’을 따르는 등 질서를 유지하며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나게 하는데힘썼다.참여자들은 여의도 집회를 마친 뒤 서울역 광장까지 6.4㎞ 가량의 거리 행진을 했으나 끝까지 질서 정연하게 행진했다. 장택동 이창구기자 taecks@
  • 터키 ‘제2강진’ 이모저모

    [앙카라 두즈체 AFP AP 연합] 터키는 저주받은 땅인가.지난 8월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은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12일 또 다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터키 북서부 지역을 강타했다. 국제사회의 아낌없는 위로와 지원이 즉시 이어졌고 생존자 수색및 복구작업이 13일부터 본격 시작됐지만 사상자 수가 4,000여명을 넘어서자 터키 국민들은 재기의 의지는 물론 슬픔을 가눌 기력조차 상실한 모습들이었다. ●터키 NTV는 이날 강진이 엄습한 두즈체 마을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히 보도.방송은 특히 한 청년이 무너진 건물더미 안에 갇힌 여동생을 살려달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한 여성이 붕괴된 가옥에서 치솟고 있는 불길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을 퍼부어대는 모습을 거듭 방영. 두스체 마을 병원 관계자는 “500명이상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온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의료진들은 병원 건물이 무너질 것을 우려,어두운 병원 마당으로 나와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 ●터키 정부는 지난 8월 대지진 당시수습 노력미진에 따른 여론을 감안해즉각 중앙구조대원과 군병력을 현장에 파견,구조활동에 착수.독일,오스트리아 구조팀이 13일 현장에 도착했으며 이스라엘.미국,그리스,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폴란드,스페인,핀란드,스웨덴,캐나다 등도 구조대를 파견. 터키와 전통적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이란도 피해 복구 지원 의사를 터키측에 전달.구조대들은 이날 건물 더미에 깔려있던 소녀를 포함,수십여명을 구조.볼루 마을에서는 건물 잔해에 깔려있던 닐건이라는 임산부를 발견,그녀의팔을 절단한 뒤 끌어내기도. ●이스탄불 소재 칸딜리 지진 연구소의 아흐메트 메티 이시카라 소장은 터키전역에서 감지된 이번 지진으로 북동부 사카리야 주의 스판자와 아캬지 마을사이의 지역과 이즈미트 시에 지진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 이시카라 소장은 “이번 강진으로 지각이 다시 움직일수도 있다”면서 “거대한 시스템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 ●터키는 54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18∼19일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정상 회담을 불과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어서 회담개최가 불투명진 상황.그러나 술레이만 데미렐 터키 대통령은 OSCE정상회담은 연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딸 첼시아와 함께 터키를 방문중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여사는 13일 터키 국민들을 위로. 힐러리 여사는 터키 주재 미 대사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은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울 준비가 돼있다”고 천명. ●두즈체 마을에서는 가옥들이 대부분 무너져 폐허로 변했는가 하면 대형 빌딩도 아슬아슬한 형태로 기울어져 있어 조만간 붕괴할 조짐. 터키 정부는 건물 붕괴에 따른 화재 위험을 막기 위해 병원을 제외하고 두즈제 일원에 전기공급을 중단.이에 따라 수천명의 주민들은 영상 3도의 쌀쌀한 날씨속에도 불구하고 노숙.
  • 사목연구회 ‘대희년 심포지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가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앞두고 최근 개최한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대희년 심포지엄’에서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토론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 발제자들은 대표적인 잘못으로 ▲18세기 말 서양선박 요청사건 ▲제사금지에 따른 갈등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무시 ▲민족운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 ▲신사참배 허용 등을 꼽았다. 원주교구 교회사연구소의 여진천 신부는 “1796년과 1801년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서양 선박과 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낸것은 서양 배와 군대가 오면 천주교에 대한 금령(禁令)이 풀려 선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신유박해(辛酉迫害)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또 인천가톨릭대의 최기복 교수는 “18세기 교황청의 제사금지 조처는 천주교를 패륜의 사교(邪敎)로 낙인 찍히게 했고 복음의 토착화를 더디게 하는장애로 작용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인정했다. 가톨릭대 장동하 교수는 “개항기 선교사들이 민족 고유의 문화와 풍습 등을 야만시함에 따라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산 것은물론 지식인들의 반외세감정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남대 윤선자 교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천주교회가 민족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행태를 문제를 삼았고,한신대 강인철 교수도 “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하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독려한 것은 반민족적·반가톨릭적인 과오였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주교 전래기에 교회와 사회가 충돌했던 것은 대부분교회가 당시의 민족사적 요구나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맹목적인 신앙의 논리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호기자
  • 고위직 병역공개 내용및 의의

    사상 처음으로 고위공직자의 병역내역이 29일 샅샅이 공개됨에 따라 병무행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앞으로 본인은 물론 직계비속까지 병역문제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고위공직으로의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병무비리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권력층과 서민층 사이에 불신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힘 없고 못가진 어둠의자식만 군에 끌려간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군 내부에까지 확산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따라서 병역실명제가 실시돼 ‘특권층’의 병력사항이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이같은 논란은 한결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공개된 고위공직자 및 자녀의 병역면제율은 일반인(36.5%)의 절반 수준인 17.8%로 수치상으로는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일반인들의병역면제 사유가 대부분 학력미달이나 생계곤란,고아,범죄 전과 등임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게 병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내용면에서도 과거 성행했던 병무비리 연루의혹이 물씬 풍기는 면제 사유도적지 않다. 대표적인 기관이 입법부가 될 것 같다. 막노동보다 더 힘들다는선거운동을 거뜬하게 견디어 내는 국회의원 32명이 질병으로 군입대가 ‘좌절’됐고 22명은 의병제대한 것으로 밝혀졌다.국회의원 자녀도 5명 중 1명꼴로 질병 등으로 군에 가지 못했다.병명도 병무비리 수사당시 단골메뉴였던척추디스크나 안과계통이어서 의혹의 눈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적잖은 직원들이 병무비리에 연루됐던 병무청 역시 직원들의 병역면제율은4%에 불과하나 자녀들의 병역면제율은 18.4%로 여타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면제율보다 월등히 높아 ‘빗나간 자녀사랑’의 의심을 받고 있다. 고위공직자 4명이 우울증이나 자폐증 등 정신과질환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았고 직계비속 정신질환자도 7명이 된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따라서 과거 어떤 이유로 병역이 면제됐든 병역실명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면제사유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편 병무청의 확인작업을 거쳐 이날 공개된 내용은 입영일자,전역일자,전역사유 등이며,병적관련 공부상 확인이 가능한 내용만 공개됐다. 공개기준에따르면 29년생 이전 출생자는 ‘병역법 제정 이전으로 병적부 작성안됨’으로,병적부가 보존연한 경과로 폐기된 경우에는 ‘병적부 보존기간 경과로 기록없음’으로 표기됐다. 우득정기자 djwootk@ *기관별 병역내역 분석 청와대와 입법·사법·행정부별 주요 공개대상자의 병역실태를 정리한다. [청와대·행정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해상방위요원으로 근무했으나 병역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병역기록이 없다.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 8명 가운데 김정길(金正吉)정무,김성재(金聖在)민정수석 등 2명이질병 사유로 면제됐다. 행정부처 고위공직자 719명(여성 10명 포함) 가운데 병역을 마친 사람은 606명,면제자는 103명이다.장관 18명 가운데 면제자는 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김성훈(金成勳)농림,정덕구(鄭德龜)산업자원부,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등 4명으로 경제부처가 많은 편이었다. 장관 아들 23명 가운데 5명은 소아마비·근시 등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직급별로는 장·차관급 91명 가운데 21명(23.6%)이 면제됐고,1급 공직자213명 가운데 45명(21.8%)이 면제됐다. [국회 국회의원] 10명 중 3명은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김종필(金鍾泌)총리를 제외한 국회의원 287명(여성의원 11명 제외)중 병역의무를 행한 사람은 206명이었다.병역이 면제된 의원은 81명이었다. 당별로는 한나라당의 면제율이 가장 높았다.한나라당이 31.7%(40명),자민련27.7%(15명),국민회의 24.8%(25명) 순이었다. 반면 현역입영률은 국민회의 68.3%(69명),자민련 66.6%(36명),한나라당 64.3%(81명) 순이었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자민련 박철언(朴哲彦),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의원 등 45명은 부자(父子)가 함께 병역을 필한 ‘현역가족’이다. 반면 한나라당 박주천(朴柱千),국민회의 박정수(朴定洙),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 등은 본인은 물론 가족중 한 명도 현역으로 군복무를 필하지 않았다. [법원·검찰] 법조계 인사의 병역면제율은 18.42%로 전체 고위공직자 평균병역면제율인 17.4%를 약간 웃돌았다.그러나 법조인 아들들의 면제율은 6.05%로 전체 고위공직자 자제 평균 면제율(10.1%)의 절반 수준이었다. 최종영(崔鍾泳)대법원장은 육군대위로 만기 전역했고,외아들은 육군대위로복무중이다.대법관 13명과 고·지법원장급 23명은 전원이 육군 또는 공군 대위·중위로 전역했다.고위 법관의 아들 124명 가운데 8명이 질병을 사유로면제됐다. 검찰은 검사장급 이상 48명 가운데 39명이 복무를 마쳤고 면제자의 경우 질병 사유가 4명,질병 이외의 사유가 5명이었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육군대위로 만기 전역했고,장남은 현역병 입영대상으로 법무사관 후보생으로 있으며 차남도 재학중 입영연기가 돼있는 상태다.대전고검 채수철(蔡秀哲)차장검사는 생계곤란을 이유로 면제가 됐으나 장남은 현역입영을 신청했다. [지방자치단체] 서울시의 경우 고건(高建)시장은 58년 제1보충역에 편입된뒤 79년 병역의무가 끝났으며 강홍빈(康泓彬)행정1부시장은 질병으로 징집이면제됐다. 부산시는 20명 가운데 전진(全晋)행정부시장과 안영일(安英一)부산진구청장이 질병으로 징집 면제를 받았을 뿐 대상자 모두가 군대에 다녀왔다.광주시는 8명중 고재유(高在維)시장을 비롯해 6명이 병역을 마쳤다. 전북도에서는 대상자 16명중 김완주(金完柱)전주시장 등 4명이,전남도는 27명중 이영권 장흥대학장 등 7명이 병역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경북도는 대상자 27명중 노병용 정무부지사 등 5명이,경남은 25명중 고영호 거창전문대학장 등 7명이 질병 등의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제주도에서는 5명중 김태환(金泰煥)제주시장이 고령으로,신철주(申喆宙)북제주군수가 체중미달로 군대를 가지 못했다. 박정현 김재순 김성수 강충식기자 jhpark@ * 병역 면제사유등 특이사례 29일 공개된 고위 공직자 병역사항 가운데 신상우(한나라당)국회부의장이‘육군 이병 탈영삭제’로 표기돼 단연 눈길을 끌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신부의장은 59년 3월 입대후 탈영했다가 10년 만인 68년말 국방부의 특례조치로 보충역 편입과 동시에 전역한 것으로 드러났다.탈영 경력자는 신부의장을 비롯,도의원 1명,시의원 2명,군의원 3명 등 모두 7명이다. 입영기피자는 외교통상부 김석현 외교안보연구원을 비롯,시의원과 군의원각 1명,구의원 6명 등 모두 9명이다.김연구원은 67년 소집에 불응한 이후 병적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봉호(국민회의)국회부의장도 질병으로 징집면제 처분을 받았으나 병명은공개되지 않았다.한나라당 이세기·한이헌 의원,국민회의 조세형 의원,자민련 김용환·지대섭 의원 등 모두 32명의 국회의원이 질병으로 군면제 처분을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은 영주권 취득으로 군복무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보충역에 편입됐다가 병역을 치르지 않고 소집면제 처분을 받은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을 비롯,23명이나 됐다. 이홍구 주미특명 전권대사와 한나라당 강용식 의원,이진설 서울산업대총장 등14명은 병적부에 군복무 기록이 없어 ‘병적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으로공개됐다. 의병전역한 고위공직자는 이기호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 등 156명,직계비속은 외교통상부 박영준 대사의 장남 등 74명이었다.기관별 의병전역자는 기초및 광역의회가 86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회 22명 ▲자치단체 17명 ▲교육부 15명 ▲외교통상부 8명 ▲행자부 2명 ▲대통령비서실 1명 ▲검찰 1명 ▲경찰 1명 등이었다. 병역내역이 공개된 전체 1만2,674명 가운데 강원도 원주시의회 양창운 의원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다. 우득정기자
  • [발언대]

    경찰에 투신한 지 1년이 되는 신임경찰관이다.갖은 불법과 무질서로 얼룩진 우리의 교통문화를 보면서 일반시민이었을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점을 느끼게 된다.우리의 운전문화는 사실 무엇이 정상인지 혼란이 일 정도이다.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음주운전,왜곡되고 변형된 자동차문화는 속도와 미관만을 과장한 자동차 광고도 한 몫한다고 여겨진다.몇초 만에 시속 150㎞에이른다는 자동차광고는 국내 도로여건을 생각지 않고,사고를 부추긴다. 그래서 규정속도인 80㎞로 달리다가는 뒷차의 경적과 번쩍거림,갖은 욕설을 들으며 추월당하고 차를 세우고 싸우게 된다.작은 접촉사고라도 나면 ‘죽을 뻔 했다’는 주장과 함께 단순과실범을 살인미수범으로 취급하며 재판까지 한다.이런 운전습관 속에서 교통사고 줄이기운동은 정부나 경찰의 외로운 캠페인같다.매년 1개 사단병력의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거나 불구가 되는 현실에서도 자기는 예외라는 방심과 타성이 이런 운전습관을 되풀이하게 한다. 운전자들은 흔히 자신의 무모함을 자랑한다.“어디서 170㎞로 달려 몇분에끊었다”,“그 차는 밟아봤자 120㎞밖에 안나온다”,“어느 골목으로 가면음주단속이 절대 없다”그리고 경찰에 적발되면 ‘급한 일이 있어서 부득이하게’,‘함정단속’이라고 말한다.도대체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중한 일이무엇인가,과연 함정단속 앞에서도 떳떳한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어느 과학실험결과를 보면 사람은 동물보다 나약하기 한이 없어서 시속 16㎞의 저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 부딪쳐도 죽거나 불구가 된다고 한다.자신의 판단과 차성능만 믿고 속도를 즐기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장난이다. 선택과 행동은 자신의 몫이다.특히 그것이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행·불행을 가르는 일임에야 무슨 강조가 필요한가.한번 사고가 난 후 정신을 차리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새천년을 앞두고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운전문화만은 바꾸자.교통사고 현장에 서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위험한 운전습관을 버리지 못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김상민[경기도 남양주시 남양주경찰서 순경]
  • [대한광장] 민족의 안녕·행복·품위를 위해

    “나는 힌두이다.나는 모슬렘이다.나는 크리스천이다.무엇보다도 나는 인도인이다.” 간디의 말이다.종교와 이념의 분열을 막고 한 민족으로 독립국가체제를 유지하려던 그의 부르짖음이다.그는 과격 분열주의자의 총에 죽는다. “신이 한 인간에게 이렇게 고상한 정신을 내려준 예가 많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송사(頌詞)다.그의 비폭력,독립의 성취,인도주의는 인류 역사에 살아 남는다. 남북간 전쟁과 불행을 예견해 남한의 단독선거와 반쪽 정부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화해 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는 한 자객의 총에 죽는다.그의 정신은 민족사에 빛나고 있다.사람은 극적으로 타살돼야만 또는 사지(死地)에 몰려가야만 이념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일까.시저·이순신·안중근·링컨·루터 킹·박정희·만델라….그리고 격이 같진 않지만 특히 예수. 송도 3절(三絶).경관도 수려한 박연폭포,박식 심오한 도학자 화담(花潭) 서경덕,기생이면서도 애절한 시작품으로 국문학사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명월 황진이. 그녀는 자기를 사모하다죽은 한 총각의 한(限)에 큰 충격을 받는다.정을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그래서 그는 남녀의 사랑을 섬세한 감각으로 느껴헤아린다.자기를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남녀의 사랑에 투철한다.그녀가 지은 정한(情恨)의 시를 우리는 애송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명월이 만 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난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남북관계를 남녀관계에서 본다.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남자는 상대에게 용서받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그는 진정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순수한 애정으로 결혼을 간청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또 속이고 결국은 버릴 것이라고 믿는다.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속임수고 적화통일 노선은 불변이라고 믿는다.50년이 지난다.남자는 죽는다.그래서 황진이는 나섰다. 북은 1960년 남북연방제를 제안했다.그리고 80년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방안을 제안했다.서로 상이한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각각의 정부와 군대를 유지하되 병력은 10만명으로 줄이자고 했다.통일된 체제와 국가는 다음 세대에 맡기자고 했다.중국과 홍콩의 예도 들었다.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안기부 해체,주한미군 철수 등 단서를 달았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인 대외 수사(修辭)와는 달리 여러차례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김일성,김영남,이삼로,북·미 장성회담 대표 이찬복중장 등.“주한미군의 지역안정 역할을 인식한다.남북통일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원하는 만큼 계속 주둔해도 된다.” 한국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년),민족공동체 통일방안(94년),김대중(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95년)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양측은 한번도 서로의통일방안을 놓고 책임자끼리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다.조평통의 허담 위원장은 지난 85년 필자에게 “남북이 제안한 통일안은 공통점이 많다.서로진지하게 상의하고 양보해 통일을 이룩하자”고 했다. 미국은 지난 9월17일 늦게나마 94년 북한과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 경제제재 완화의 일부 조치 그리고 국교정상화 의향을 발표했다.페리는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남북 자체의 문제라고 했다.북의 곤경에 인도적인 동정을 표명했다.우리 정부의 총괄적 타결 주장과 설득을 미국·일본이 수용한 결과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식량·자원 부족,이념·종족 분쟁,환경오염 등 격변의 21세기를 앞둔 지금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이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의 멸시와 조소를 받지않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분단의 낭비와 비극을 하루속히 종결시켜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을 제창했다.국가연합·연방단계를 거쳐 완전통일의 3단계다.김대통령의 높은 뜻과 목표가 임기중에 달성될 것을 간곡히기대·기원한다.진정한 포용정책과 세계화는 “나는 친북이다.나는 친일이고 친미며 친중이며 친러이다.나는 세계 모든 국가와 인민에게 우애를 견지한다.나는 무엇보다도 이 민족의 안녕과 행복과 품위를 위해 일한다”일 것이다. 손장래 전말레이시아 대사
  • “美 2개전쟁 동시수행능력 약화”

    [워싱턴 AP 연합] 과거보다 축소된 미국의 현 군사력으로도 두개의 전쟁을동시에 수행할 수는 있으나 전쟁 병행에 따르는 위험은 높아졌다고 헨리 셸턴 미 합참의장이 26일 말했다. 셸턴 의장은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른바 ‘윈-윈’ 전략에 관해 증언하는 가운데 “앞으로는 적대행위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이는 영토의 상실 위험과 사상자 발생 가능성의 증가를 의미한다”고말했다. 셸턴 의장은 또 미군 장교들은 단일전쟁 수행에 따른 위험을 ‘보통’으로간주하고 있으나 제2의 전쟁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에 따른 위험은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미국이 2개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셸턴 의장은 2개 전쟁 동시수행의 위험이 증가된 이유에 대해 병역 대상 연령층 등의 감소로 신병 보충이 어렵고 급여 문제로 기존 병력규모 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미군은 병력면에서 10년전보다 40%나 축소됐고따라서 군인들은 더욱 바빠졌다”고 말했다.
  • [대한광장] 대한민국의 침묵

    한국전쟁 발발 직후 피란지 대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주한미대사를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무초는“각하,이제 전쟁은 당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 되었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곧이어 7월12일 한국전쟁의 작전권은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에게 이관되었고,이승만은“대한민국에 있어서 UN의 공동 군사노력에 있어 한국 내 또는 한국 근해에서의 작전중인 유엔군의 모든 부대가 귀하에게 통솔되고 귀하가 그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본인은 현재의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위촉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으면서도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계속 직면하였다.유엔군 병력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 한국측은 부사령관 지위도 얻을 수 없었고,38선 수복 후 북으로의 진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휴전선을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었다. 전쟁 중 마셜 미 국방장관이 내한하였으나 대통령은 물론 육군참모총장도만나지 않은 채 미 8군의 벤플리트 장군과 요담하고 떠난 일도 있다.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일권은 “섭섭하다 못해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하면서 “원조받는 입장의 참모총장이 겪어야 했던 이 섭섭함은 지금껏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은 군지휘관이 입은 정신적 상처와는 비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이후 겪게 되었으며 ‘우방’이라는 논리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상황만큼 무초의 말을 실감케 해주는 일은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1949년 6월21일에 이미 미 극동군사령부는 유사시에대비하여 480명의 미 군사고문단을 포함한 2,000여명의 재한 미국인 철수계획을 미리 짜놓고 있었다.‘한국전쟁’에서 스톤은 자신이 만난 보좌관이 남한의 미군 장교 가족들과 그외의 사람들을 후송하기 위한 선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증언을 한 사실을 중시하였다. 실제 미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단 3일 동안에 1명의 실종자만 냈을 뿐 전원을 일본으로 무사히 철수시켰다.26일부터 29일까지 도합 2,000여명의 미국인이 수송기와 배편으로 한국을 떠났다.미 CIA 요원을 지낸 박 하리마오는 이러한 철수가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물론 자국민 보호를 위한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전쟁 중미군 3만명이 전사한 일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노근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우방’인 미군의 총탄에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내맡기고도 지금껏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우리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형식상으로 한국전쟁은 한국과 유엔,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미국의 확고한 동맹 속에서 치러진 전쟁이었다.그러나 사실 ‘우방’,‘동맹’이라는것은 냉엄한 국제질서 속의 대등한 지위에 있는 국가간의 관계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무초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애초부터 솔직하게 한국전쟁이 자신들이 주도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된다.오직 한국정부만이 그러한 주장을 ‘천기 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제해온 것이다.그렇다면 역대 정부가 피학살자들의 ‘진상규명’요구를 ‘국가안보’ 혹은 ‘한·미우호’의 명분으로 금기시해온 사실이야말로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한국 정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뒤늦게나마 미국측에 의해 확인되고 있는 도처에서의 양민학살건과 한국인을 사실상 적으로 취급한 그러한 행동이 한국인에 대한 멸시와 ‘인종적 편견’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미국은 양심과 정의라는 또 한번의 강자의 포용력을 과시하면서 한국전쟁을 뒷수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우방’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어 무고한‘국민’의 희생에 대해 항의 한번 해보지 못한 한국의 시계는 50년 동안 멈추어 서있다.침묵의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한국정부가 이 긴 침묵을 거두고 당당하게 나서서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설 때만이 한·미간에 진정한‘우리’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으며,지금도 ‘청심환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는’ 피해자들이 국가의 품안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동 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 東티모르 과도행정기구 승인 유엔, 독립때까지 활동

    유엔본부 AFP AP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5일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과도행정기구(UNTAET) 설립을 승인하고 세르지오 비에이라 드 멜로(51) 유엔 인권문제담당 사무차장을 행정기구 수반에 임명했다. 안보리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 주도로 동티모르의 입법,사법,행정권을 책임질유엔 과도행정기구를 수립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9,000여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을 현지에 파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UNTAET 설치에 관한 유엔 결의 1272호에 따르면 UNTAET는 동티모르가 독립할 때까지 약 2∼3년간 사회 기반시설 건설과 민주정부 수립 등을 위해 행정,사법,입법권을 행사한다.1차 활동시한은 2001년 1월 31일까지이지만 연장이 가능하다. UNTAET는 군병력 8,950명,군사 고문단 200명,경찰 1,640명 등으로 이뤄진사상 최대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을 보유하게 되며 이 평화유지군은 지난달파견된 호주 주도의 다국적군을 대체하게 된다. 이와관련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다국적군이 내년 1월 중순까지현지에 주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표결이 끝난 뒤 과도행정기구 수립과 관련,“하루 빨리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지금은 “동티모르 주민의 생활을 위해 매우중대한 단계”라고 말했다. 베르나르 미예 평화유지업무 담당 사무차장은 평화유지활동이 코소보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복잡하고 원대한 임무”라면서 활동 시작을 위해 일단 유엔 총회에 2억 달러의 예산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엔 평화유지군의 숫자는 전세계적으로 1만700명에서 2만7,30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유엔은 지난 22일에도 시에라리온에 6,000명의 유엔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 체첸首都 그로즈니 함락 임박

    [그로즈니 모스크바 외신종합]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시(市)로 진격중인 러시아군은 며칠안에 그로즈니시를 탱크와 병력으로 완전 포위할 것이라고 러시아 관리가 22일 밝혔다. 러시아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그로즈니 외곽 12킬로미터 밖까지 다가왔으며 일부 러시아군은 더 가까운 곳까지 들어와 있다고 체첸측은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토포로프 국방 차관은 “조만간 군병력이 그로즈니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1일 밤 러시아군의 미사일과 로켓탄 공격으로 체첸 민간인 200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부상했다고 체첸 정부 관리들이 말했다.사상자의 대부분은 6발의 로켓탄이 터진 시내 중심가의 시장에서 발생했다. 체첸 관리들은 그로즈니시로 진격중이던 러시아군이 미사일과 로켓탄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으나 러시아측은 이를 부인했다.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상군의 그로즈니 진격 계획을 부인했으나 블라디미르 토포로프 국방 차관은 “조만간 군병력이 그로즈니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東티모르 독립… 印尼, 공식 승인

    [자카르타 워싱턴 AFP AP 연합] 인도네시아의 최고 정책 결정기구인 국민협의회(MPR)는 20일 동티모르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로써 지난 75년 인도네시아가 침공,이듬해 강제 합병한 동티모르는 정식으로 독립 수순을 밟게 됐다. 아미엔 라이스 MPR 의장은 모든 정파의 MPR 대표들이 이날 새벽 실시된 표결에서 동티모르의 주민 투표 결과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지난 8월 30일 유엔 주관하에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했으며,개표 결과 주민들의 대다수가 자치보다는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MPR이 동티모르의 독립을 정식 승인함에 따라 유엔의 과도 행정부가 완전독립에 앞서 동티모르를 잠정 통치하며,현재 동티모르에 잔류중인 1,500명의인도네시아 병력도 철수하게 된다.
  •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을 뽑았지만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극히 험난하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메가와티여사의 낙선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불만과 저항을 불러일으켜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올랐다.지난 97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의 18년 독재를 몰락시킨 데 이어 새로운민주주의 대장정에 들어서려는 인도네시아 민중의 여망은 실현 한발 앞에서좌절되고 말았다. 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진 이날 선거는 겉모양새는 야(野)-야(野)대결구도.그러나 집권 골카르당과 이슬람세력은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반(反)메가와티 공동 전선구축에 성공,대세를 뒤집었다. 투표 직전까지 후보 지명과 사퇴가 잇따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메카와티쪽으로 기울던 승세는 새벽 급작스레 후보로 등록한 군소정당인 월성당(CSP)의 우스릴 마헨드라 당수가 투표시작 직전 “와히드에 표를 몰아주자”며 전격 사퇴하면서 반전됐다.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을 얻어가며 강력한 대통령후보로 부상한 메가와티 진영에는 긴장과 당혹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후보조차 못낸 집권당이 약체 후보인 와히드를 밀기로 했다는 설은 투표에들어가기 직전 일부 골카르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골카르의 와히드 선택은 일단 메가와티로 대변되는 민중민주 세력으로 권력을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결정에서 나온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변수였던 위란토장군과 군부 역시 기득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골카르 및 수하르토의 가족들과 친한 와히드 지지쪽으로 막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대통령제하에서 권력기반이 극히 허약한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도네시아는 정국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일차적으로 골카르 지지자들과 지분 나누기 정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여기다 메가와티의 낙선에분노한 시위가 격화될 경우 군부의 개입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와히드 후보는 수하르토 통치 18년을 무너뜨린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메가와티여사와 집권 골카르 후보 사이에 선택된 ‘과도기대통령’의 운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셈이다.김수정기자 crystal@ * 와히드 당선자는 누구 인도네시아 새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 라흐만 와히드(59) 국민각성당(PKB)당수는 지난 6월 총선에서 당을 인도네시아 제3당으로 도약시킨 인물. ‘구스 두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3,000만명의 회원을 지닌 인도네시아 최대의 회교조직 ‘나흐들라툴 울라마(NU)’를 이끌고 있으며민주개혁과 함께 종교 및 민족적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슬람적 이상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쓰는 한편 동시에 기독교도및 소수 중국계의 인권옹호에도 앞장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메가와티 민주투쟁당(PDIP) 당수와는 친밀한 친구 내지 조언자로 친분을 유지해온 반면 국민협의회(MPR) 의장이자 이슬람계의 또다른 지도자인 아미엔라이스와는 첨예한 라이벌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는 지지자들로부터 중간다리 역할 또는 ‘킹 메이커’로서만 비춰졌지만 막판 뒤집기에 성공,인도네시아 4번째 대통령에 오르게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98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부터. 수하르토에 이어 대권을 물려받은 하비비 대통령이 여전히 실정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을 불안으로 내몰자 민주개혁 운동의 새로운 인사로서 급부상,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뇌졸중으로 인한 시력장애 후유증을 겪고있는 등 건강에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옥기자 ok@*재확인된 군부위세 와히드 대통령정부의 앞날을 점치는 데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군부다.군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됐고 앞으로 군의 지지를 받아야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와히드의 당선은 국민협의회(MPR) 내 군부의원들의 지지와 친군부성향의 골카르당 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에서 도중하차한 B J 하비비대통령은 위란토 군참모총장 겸 국방장관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으나 위란토가 이를 거부했다.역시집권당 후보가 됐다 취소된 악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 역시 위란토를 후보로 지명했다. 이들이 위란토에게 매달린 이유는 간단하다.위란토장군과 군부의 지지 없이는 당선도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위란토는 정치적 야심을 좀처럼 내비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힘의 향배를 저울질하다 막판 와히드의 킹 메이커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권한행사를 보장한 특이한 나라다.국정최고기관인 국민협의회(MPR) 700명 가운데 38석이 군부대표 몫이다.이들은 임기 5년 동안 군복차림으로 당당하게 국정을 논한다.현재 군의 총병력수는 육해공군과 경찰군을 합쳐 50여만명. 수하르토 통치 32년을 떠받쳐온 것도 군부였고 지난해 5월 수하르토 하야뒤 하비비 정권을 지탱해준 것도 군부였다.따라서 위란토가 하비비의 부통령후보 제의를 거절했을 때 하비비의 정치적 운명은 끝난 것이었다. 위란토장군은 군부 내에서 일단 개혁파로 불린다.64년 육사를 수석졸업한엘리트고 89∼93년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승승장구,참모총장에 올랐다. 대중기반도 없는 제3당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에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에서군부와 위란토장군의 입김은 더 위세를 부릴 게 분명하다. 이기동기자 ye
  • 지구촌 화약고 카슈미르 평화 깃드나

    인도-파키스탄 대립의 핵이자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인 이 두 곳에서 화해의 첫 단추가 끼워지기 시작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집권후 팔레스타인측이 최소한의 신뢰의 표시로 요구한 요르단 서안의 유태인 정착촌 철거가 19일부터 시작되고 파키스탄이 18일 인도 접경 지역에 전진 배치한 파키스탄 병력 철수에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실은 18일 총리 지시에 따라 19일부터 요르단강 서안의 불법 유태인 정착촌 철거작업을 시작,2주안에 12개 불법 정착촌을 모두철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번째 철거지역은 우선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 도시라말라 북부의 라헬 시부트 헤이 정착촌.성서의 ‘사마리아’지방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정착촌 지도자들은 불법 42개 정착촌 가운데 한 곳도 철거할 수 없다며 총리에 맞서왔었다. 파키스탄의 인도 접경지역 병력철수는 베르페즈 무샤라프 군 참모총장의 일방적인 대(對)인도 긴장완화조치 발표에 이은 것.군 대변인은 “지난 2개월간 카슈미르 사태가 격화되면서 전진배치된 병력을 철수,평화시 배치상태로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해의 조짐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파키스탄이 병력을 철수한지역은 700㎞에 이르는 일반 국경지대로 파키스탄 인도 양국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의 군사통제선 병력은 해당되지 않았다.파키스탄측은향후 구체적인 철군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경우엔 유태 극단주의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변수.지난 17일 바라크의 정착촌 철거계획 발표 이후 극우주의자 수천명이 바라크 총리 관저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조직적 저항태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내달4일은 95년 암살당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서거 4주기.미망인 레아 여사는18일 “정착촌의 극단주의자들이 자살 테러를 시도할 지 모른다”며 우려를표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상록수부대’ 환영해요!…선발대 동티모르 도착

    지난 16일 동티모르 로스팔로스에 도착한 상록수부대 선발대가 17일 주둔지 정비와 경계활동 전개 등 본격적인 평화유지 활동에 들어갔다. 선발대는 이날 주둔지 주변의 오물과 쓰레기 등을 치우고 오는 22일 본대병력이 사용할 건물에 대한 보수작업을 했다. 선발대는 또 오는 20일 물자 수송선의 하역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의료진을동원,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우득정기자 djwootk@
  • 고령 ‘득성교 폭파’ 참가 美장병 인터뷰

    [뉴욕연합] “미안할 뿐이다.그러나 당시는 전쟁상황이었고 어쩔 수가 없었다” 미 제14전투공병대대 출신으로 지난 50년 8월3일 경북 고령군의 득성교 폭파에 참가했던 캐럴 킨즈먼(71·미시시피주 고티어시)씨는 14일 전화회견에서 폭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득성교 폭파 당시의 상황은. 미 21사단으로 생각되는데 폭파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미군 병력이 다리를건너기를 기다렸다.다리 위에 많은 피란민 행렬이 있었지만 미군 병력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폭파명령이 내려졌다. ■누가 명령을 내렸는가. 당시 현장에 대령이 나와 있었다.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순간까지기다리다 폭파명령을 내렸다. ■득성교 위에는 얼마나 많은 피란민이 있었는가. 나는 250여명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다리 위가 꽉 찬 것으로 보였으며 500∼1,000명까지 추정하는 동료도 있었다.다리를 폭파한 뒤 곧바로 트럭을 타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란민이 죽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리 위에 있던 피란민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리를 폭파한 것이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하는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폭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다리 폭파 직전에는 멀리서 북한군의 T-34 탱크 굉음이 들렸었다.한국어 통역을 통해 ‘다리가 곧 폭파되니 뒤로 물러서라’고피란민들에게 경고하고 머리 위로 위협사격을 했지만 필사적으로 다리를 건너려 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당시 나이와 계급은. 21세였으며 상병이었다.한국전에는 50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1개월간참전했다. ■이 사건과 한국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미군 부대 PX에 일하던 한한국여성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줘 고맙다”는 참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전쟁이었고 적이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했으며 우리는 한국을 돕기 위해 그곳에 갔다.
  • 파키스탄 비상선포 계엄통치

    [이슬라마바드 AFP AP 연합]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은무혈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한지 3일만인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행정권을장악하는 등 사실상의 계엄통치를 선언했다. 무샤라프 참모총장은 이날 새벽 1시쯤 관영 APP 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을 정지시켰다. 이날 선포된 비상사태는 이와 함께 내각 각료 전체의 직권을 정지시키고 상하원,지방의회의 활동도 중단토록 했다. 이에 따라 상하 양원과 지방의회의 의장,부의장 및 4개 지방정부 주지사와지방장관,보좌관 등도 직무정지 조치를 당했다.다만 무하메드 라피크 타라르 대통령은 그대로 현직에 남을 것이라고 성명은 밝혔다. 성명은 “육군 총참모부와 파키스탄 군 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페르베즈 무샤라프 육군참모총장 겸 합참의장은 파키스탄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며행정부 수반의 역할을 맡는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파키스탄 전체는 파키스탄 군의 통제하에 놓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이날 성명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사법부도 종전처럼 기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군부는 군총사령부에서 지난 이틀 동안 여러 정치인 및 헌법전문가들과 잇따라 만나 쿠데타 이후 내놓을 조치에 대해 숙의한 뒤 비상사태를선포했다. 파키스탄 중앙은행은 이날 쿠데타로 축출된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정부 고위 관리,의원 및 보좌관,그 가족들의 은행 계좌를 모두 동결했다고 정부 소식통이 말했다. 이 조치는 무샤라프 육군 참모총장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몇 시간만에 취해진 것이다. 이에 앞서 군 병력은 쿠데타 발발 이전에 소집돼 있던 국회가 당초 예정대로 15일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14일부터 국회의사당에 병력을 증강배치,입구를 철저히 봉쇄했다.
  • 파키스탄군부 17시간만에‘무혈 집권’

    [방콕 연합] 파키스탄 군부는 12일 거사를 단행한지 17시간만에 무혈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페르베즈 무샤라프 육군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계획한 것은 이날 오전 10시.스리랑카를 방문중이던 무샤라프 참모총장은 샤리프 총리가 자신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지아우딘 부투 군정보국국장을 임명하려한다는 첩보를 접했다. 그는 즉각 거사를 결심,오후 3시 45분 카라치행 비행기에 올랐다.추종세력들에게 이미 병력 동원명령을 내렸다.앞서 3시 40분,샤리프 총리는 예정대로 지아우딘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하고 오후 4시 무샤라프의 해임을 공식발표 했지만 거사에 가담한 제10군단 소속 보병들이 이슬라마바드와 카라치로 입성중이었다. 무샤라프 참모총장이 탄 비행기는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오후 6시 30분 카라치 공항에 접근.지아우딘장군측 지시를 받은 관제탑 요원은 비행기의 착륙을 불허한 채 무샤라프 장군을 체포할 병력이 포진하고 있는 다른 공항으로 회항을 요구했다. 무샤라프 장관은 조종사에게 공항주변을 계속 선회하도록 요구했으며 결국관제요원을 위협해 7시 47분 착륙에 성공했다.거사 개시 17시간만에 쿠데타군은 총리를 감금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 다국적군 사령관,접경지역에 “동티모르 완충지대 설치”

    [딜리 캔버라 AFP AP 연합] 피터 코스그로브 국제동티모르파견군(INTERFET)사령관은 14일 다국적군과 인도네시아군 간의 충돌 방지를 위해 서티모르 국경지대를 따라 완충지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코스그로브 사령관은 기자들과 만나 “국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해야하며 이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완전 무장하고 고도의 경계태세를 갖춘 군병력을 주둔시키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제안했다. 코스그로브 사령관은 이같은 방안은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 군이 통상적으로 취하는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방안을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일 서티모르 국경지역에서 인도네시아 병력과 다국적군 간에총격전이 발생,인도네시아 경찰관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 99년 국방백서로 본 北군사력

    북한은 올들어 미사일여단을 미사일사단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전체 병력을1만명 가량 증강하고 상어급 잠수함 10여척을 새로 전력화한 것으로 드러났다.또 화학탄 2,500∼5,000t과 탄저균 등 생물학 무기 10여종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12일 국방부가 발간한 ‘99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이처럼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발간된 국방백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방위력 개선사업과 관련한 투자비 내역과 사업진행 과정 뿐 아니라 북한의 화생전 능력과우리 군의 대비책,북방한계선(NLL) 수호의지,주한미군의 전력 등을 자세히공개했다. ■98 국방백서와의 차이점 국방정책의 기조가 북한의 위협 뿐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도 대비하는 정책으로 전환됐다.국방획득 5대 정책방향을포함,2000∼2004년 국방 중기계획,올해 방위력개선 투자비 내역,올해 주요군사장비 전력화 계획,차기전투기사업 진행과정,주요 무기의 국외도입 현황등을 새로 담았다.주한미군의인가병력 및 미8군·주한 미공군 주요 장비 등의 종류,대수와 함께 신속억제방안,전투력 증강,시차별 부대전개 등으로 나누어진 증원전력의 종류를 수록했다.이밖에 북한 미사일 개발연표,주요 무기체계 전력화 현황,주요국의 군사혁신 현황 등 52종의 부록을 첨부했다. ■북한의 군사력 북한은 올해의 군사비를 총예산의 14.5%인 13억6,000만달러로 공표했지만 실제로는 3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남한은 총예산의 16.4%인 13조7,490억원이다. 실질구매력 측면에서 비교하면 우리보다 3배 이상 전력증강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최근 중국 국경지역에 미사일 발사기지를 건설했으며 AN-2기 및 상어급소형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했다.이밖에 주변국 위협 및 대외협상용 수단으로 1∼2개 정도의 초보적인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대 사거리 2,500㎞,6,700㎞인 대포동 1,2호 미사일을 중점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득정기자 djwootk@
  • 인니군-다국적군 첫 교전

    [딜리 AFP AP 연합] 동티모르에 다국적 평화유지군(INTERFET)이 배치된 이후 처음으로 10일 평화유지군과 인도네시아 군이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보안군은 호주 병사들이 국경을 넘어와 경찰초소에 사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경찰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국경 마을 모타인 인근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은 평화유지군이 동티모르에파견된 이후 3번째 전투이지만 민병대가 아닌 인도네시아 정부 병력과,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터 코스그로브 평화유지군 사령관과 인도네시아의 시토루스 여단장은 11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고 전투지역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교전 사태는 동티모르의 현지 무장세력이 1만 2,000명을 동원,다국적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존 하워드호주 총리는 다국적군과 민병대간의 충돌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국적군도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다국적병력 2,000명을 추가 투입한다고10일 발표했다.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배치되는 다국적군은 이번 병력 증파로전체 병력 6,500명의 거의 절반인 3,000명선으로 늘어나게 됐다. 한편 다국적군과 민병대는 지난 4일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교전을벌여 민병대원 2명이 사망하고 호주 병사 2명이 부상했으며 9일에는 동티모르 주도딜리에서 남서쪽으로 110㎞ 떨어진 알토 레바스 마을에서 전투가발생,민병대원 1명이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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